제 36화 영원한 어둠에 안겨 잠들도록.
도미네 유토가 눈 앞에서 소멸되었다. 그 자리에 있던 대부분의 자들은 그걸 그의 죽음으로 해석했다.
“네놈이이이이!”
제일 먼저 움직인 건 알프. 어금니를 드러낸 채로, 흘러넘치는 감정을 주먹에 실어 휘두른다.
알프에게 있어 유토는, 나노하와 함께 페이트에게 미소를 되찾아준 은인이자, 마음이 놓이는 친구였다.
뭘 생각하고 있는 건지 파악하기 힘든 애지만, 그 행동의 구석구석에서 페이트를 배려하고 상냥하게 대하는 게 느껴져, 알프 나름의 동료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페이트에게서 그런 유토를 맡았다고 하는데,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자기자신에 대한 한심스러움과 펠릭스에 대한 분노를 담은 일격은 펠릭스가 펼친 장벽――칠흑의 벨카식 방벽에 쉽사리 막혔다.
“훗.”
“이게에에에에에에에에!!”
비웃음을 띄운 펠릭스의 장벽을 꿰뚫기 위해, 더더욱 주먹에 힘을 담았지만 1 밀리미터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알프의 자랑거리인 배리어 브레이크도 출력에 차이가 지나치게 큰 탓에 전혀 효과가 없었고, 반대로 펠릭스의 일격에 튕겨나가 버린다.
“잘도……유토를!!”
“레이징 하트!”
『All right.』
“―――――!”
하켄 폼으로 변형한 바디시를 거머쥐고 비상하는 페이트.
포격을 내쏘기 위해 아끼는 지팡이를 펠릭스에게 향하는 나노하.
형언할 수 없는 소리를 지르며, 검십자――슈베르트크로이츠를 거머쥐는 하야테.
셋 다 소중한 친구가 죽은 분노로 피가 머리에 치솟아 있다.
유토의 원수를 박살 낸다. 그런 마음에 의식이 필릭스에게 모여, 자신들에게 다가온 자들을 알아채지 못한다.
알프를 튕겨낸 펠릭스는 셋을 상대하려는 기색도 없이 여유로운 미소를 띄우고 있었다.
“네 상대는 나야.”
“――에?!”
빛나는 푸른 섬광. 페이트의 뒤에서 육박해온 그 인영은 한순간에 페이트를 앞질러, 페이트를 돌아보며 그 칼날을 휘두른다.
“크윽!”
순간적으로 고쳐진 바디시로 가까스럽게 그 공격을 받아냈지만, 충격을 다 죽이지 못해 뒤로 날아갔다.
“페이트!”
“나노하, 위야!”
유노의 경고로 뒤를 돌아보자, 거기에는 나노하와 비슷하게 포격태세를 취하는 슈테른의 모습이.
“크윽, 버스터!!”
눈 깜짝할 새 방향을 바꾼 나노하와 슈테른이 포격을 쏜 건, 완전 동시. 정면에서 맞부딪친 포격이 맞버티는 건 한 순간이었다.
“크으으윽!”
슈테른의 포격이 한 발짝 한 발짝 나노하의 포격을 되밀어――박살냈다.
“?!”
“으아압!”
슈테른의 포격이 나노하의 자그만 몸을 삼키기 직전에, 나노하의 눈 앞에 발생한 녹색 실드가 빛의 격류를 막는다.
그 짧은 틈에 유노는 나노하를 안아 이탈한다.
“고, 고마워, 유노 군.”
“응, 그래도……설마 나노하가 힘으로 질 줄이야.”
눈앞에서 일어난 일을 믿지 못해 멍하니 말하는 유노. 원래 나노하는 마력을 특출나게 가지고 있는 거다. 그 포격력은 그야말로 일격필살. 어지간한 마도사라면 방어 위에서도 한 방에 박살날 위력을 가져, 단순한 위력으로 비교하면 여기서 최강의 공격력이라고 하더라도 과언은 아닐 터였다.
그걸 시원스레 때려잡은 상대에게 전율을 금할 수 없다.
당사자는 나노하와 유노의 눈길을 받고, 쿡쿡 미소짓는다.
“한순간이라곤 해도, 제 포격을 원격조작 실드로 막을 줄이야……꽤 좋은 실력이네요.”
보통, 원격조작으로 만든 실드는 거리가 멀수록 그 위력이 떨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포격을 그럭저럭 막아낸 유노의 역량에 슈테른은 솔직히 칭찬을 보낸다.
“――하지만, 결국엔 쓰레기야.”
『주여!』
“?!”
내리쏟아지는 건 검은 빛의 무수한 칼날. 한 발 먼저 그걸 깨달은 리인포스가 소리를 높이지만, 이미 포격 상태로 들어간 하야테에겐 그걸 막을 방법이 없었다. 아무리 반년 사이 마법에 대한 지식을 얻기 위해 힘써왔다곤 해도, 그걸 살릴만한 경험이 너무 부족한 거다.
어둠빛 나이프가 소나기처럼 쏟아져 내려, 하야테의 모습을 폭염이 뒤덮는다.
“하야테!”
“주!”
“하야테!”
“한눈 팔 짬은 없다고요?”
수호기사나 나노하 등이 소리를 높이며 하야테가 있는 쪽으로 날아가려 했지만, 그걸 그대로 둘 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윽?!”
수호기사들에게는 자신의 카피가 덮쳐들고, 나노하와 유노에게는 수많은 광탄이 날아온다.
“하하하하핫! 늦다고 늦어! 네 스피드는 겨우 그 정도냐?!”
“……윽!”
고속으로 하늘을 종횡무진 날아다니는 페이트를 따라가며 비웃는 레비. 그 스피드는 페이트를 상회해, 때때로 달라붙듯, 때때로는 돌아 들어가듯 참격을 휘두른다. 나노하가 자신을 상회하는 포격력을 가진 상대에게 만난 적이 없는 것처럼, 페이트 또한 자신보다 빠른 적과 상대하는 건 처음이었다. 그 당혹감과 유토로 인한 동요가 그녀의 움직임을 얼마간 둔하게 만들어, 페이트가 방어에 치중하는 하나의 원인이 되어 있었다.
“쓰레기들이, 완전 틈 덩어리구나?”
방어에 쏠린 나노하와 페이트가 결정적인 틈을 보인 순간을 노리고자, 그 손에 마력구를 만드는 디아키.
가학심이 흘러넘치는 미소를 지으며 타겟을 굳힌다.
“발뭉!”
“?!”
폭연 속에서 뻗어나온 하얀 섬광. 빈틈을 찌른 포격은 빗나가지 않고 디아키에게 직격한다.
“내한틴 축복의 바람이 붙어 있다! 그리 간단히 당할거로 생각했음 꿈 꾼기다!”
설령, 하야테 자신의 경험과 기능이 부족하다고 해도, 그걸 채워주는 게 축복의 바람인 리인포스다.
대응할 수 없는 하야테 대신에 방어마법을 발동시키곤, 그대로 공격의 보조까지 해치웠다.
어둠의 서 본체로서의 기능은 대부분 잃었지만, 융합기로서의 기능은 건재한 거다.
“날개도 모자란 까마귀 새끼 주제에…….”
슈베르트크로이츠를 거머쥐고 시원스레 소리친 하야테에게, 디아키는 열받는 듯 혀를 차면서 손에 든 디바이스――예르시니아크로이츠를 향했다.
“큭, 이게……!”
한편 크로노는 자신의 카피에 더해, 유노, 알프의 카피들과 3:1 상태를 맞이하고 있었다.
카피 크로노의 포격, 유노의 바인드, 그리고 알프의 사격을 종이 한 장 차이로 피하거나 방어해 나가면서도, 그 눈은 냉정하게 전황을 파악하고 있다.
펠릭스와 동일화된 어둠의 서가 오리지널의 데이터를 가지고 있는 탓이겠지. 수호기사들과 그 카피의 능력은 완전히 동일한 모양이라, 그 전력은 거의 차이 없이 맞부딪치는 것 처럼 보였다.
자신들의 카피도 수집 시의 데이터나 수집된 사람들의 기억으로부터 충실하게 재현되어 있는 것 같아, 이쪽도 얕볼 수 있는 적은 아니다.
그리고 나노하, 페이트, 하야테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세 사람은, 단순한 출력으론 오리지널을 능가하고 있다.
뒤로 빠져있는 펠릭스는 현 시점에선 적극적으로 참전하려는 기색은 없는지 계속 방관하고 있다. 숫자 상으론 호각이지만 전황적으로는 이쪽이 불리한 건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찌를 틈은 있어!’
“스팅어!”
몇 발의 빛의 탄환을 흩뿌리듯이 발사한다. 위력보다도 속도를 중시한 그 탄환은, 목표에 부딪치는 순간 폭발을 일으켜 그 눈을 가린다.
대미지는 그리 주어지지 않았겠지만, 지금 일격은 원래부터 견제가 목적이다. 카피 셋이 헛발질하는 틈에 단숨에 거리를 좁혀, 그대로 공격으로 들어간다.
『Blaze Cannon.』
뒤랑달에서 뿜어져 나오는 푸른 섬광.
“쳇?!”
쏟아낸 포격이 노린 건 시그넘의 카피. 오리지널 시그넘과 맞서 서로를 견제하는 상황에서 들어온 공격을, 카피는 레반테인을 휘두르는 걸로 응격한다. 하지만 그건 맞서고 있던 시그넘에게 커다란 틈을 낳는 행동이었다.
물론 시그넘이 그 틈을 놓칠 리 없다.
“하아아아아앗!”
카피 시그넘이 깨달았을 때는, 칼날을 나눠 채찍형 연결 칼날――슐랑게포름이 된 레반테인의 칼날이 주위를 춤추고 있었다.
자신의 사각에서 엄습해오는 칼날을 감으로 쳐내며 어찌저찌 그 부근을 돌파했지만, 그건 시그넘에게 유도된 결과였다.
“비룡일섬!”
자신의 심장을 노려 날아오는 연결 칼날. 막대한 마력을 실은 그 일격과 자신의 사이에 레반테인을 끼워넣을 수 있었던 건 다행이었지만, 그 기세와 위력을 막지 못했다.
“와앗, 멍청이!!”
카피 시그넘이 쳐날아간 쪽에는 카피 비타가 있었다. 설마 동료를 요격하거나 피하거나 할 수도 없어, 그대로 말려들어갔다.
목적대로 자신들의 카피를 떨쳐낸 시그넘과 비타는 남은 수호기사 카피들에게 일격을 넣어, 그대로 크로노 쪽으로 합류.
머티리얼들에게 견제의 일격을 날려대는 세 사람.
“거기!”
“하앗!”
“읏차!”
머티리얼들은 무리 없이 그 공격을 피했지만, 그 틈에 소녀들은 탈출해 크로노 쪽으로 합류한다.
집결한 나노하 일행에게 머티리얼들은 디바이스를 향했지만, 펠릭스가 손으로 그걸 제지한다.
나노하 일행이 준비를 마칠 때까지 기다리라는 의미다. 주인의 그런 의지를 느낀 머티리얼 들은 기막힌 듯 한숨을 내쉬었지만, 원래 압도하고 있던 상황이다. 그 정도의 핸디캡을 줄만한 여유는 가지고 있다.
“그렇게 여유를 부리는 것도 어떤가 싶은데.”
“흥, 쓰레기들이 뭘 한다고 해도 우리의 승리는 안 흔들린다.”
“그렇고 말고! 어차피 녀석들은 우리들의 힘 앞에서 무릎꿇을 운명이야.”
머티리얼 들은 자신들의 승리를 의심하지 않는다. 아무리 큰 힘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어둠을 깨트릴수는 없다. 깨트릴 수 없는 어둠이야 말로 자신들에게 있어서 유일하고 절대적인 힘인 거니까.
“다들, 괜찮아?”
“응, 우리는 어떻게든…….”
크로노를 향해 고개를 끄덕이는 소녀들. 배리어재킷은 부분부분 손상되었지만, 움직임에 지장이 생길만한 대미지는 받지 않았다.
하지만 그 뒤론 말이 이어지지 않는다. 말할 것도 없이, 사라져버린 유토가 그녀들에게 큰 영향을 주고 있다.
『도미네 유토는 무사하다. 걱정할 필요는 없어.』
“정말?!”
나노하와 페이트의 굉장한 반응에 쓴웃음 지으며 긍정하는 리인포스.
『아아. 도미네 유토는 사라진 게 아니야. 어둠의 서 내부의 포박공간에 갇혀있는 것 뿐이다.』
그걸 들은 일행의 얼굴이 순식간에 밝아진다.
“구할 방법은?”
그렇게 물어보는 페이트의 소리는 약간 들떠 있었다. 절망이 반전해 희망으로 바뀌었기에 얼마간 마음이 설레는 거겠지.
“방법은 둘. 나를 쓰러뜨리거나, 그가 자신의 의사로 꿈에서 깨어나는 거다.”
――대답한 건 리인포스가 아니었다. 자신의 가슴을 톡톡 두드리면서 대답한 건 펠릭스였다.
“꿈?”
“그래. 그는 현실에선 결코 이뤄질 리 없는 꿈을 꾸고 있네. 자신이 바라는, 자신에게만 상냥하고, 자신에게만 적당한, 평온한 꿈을.”
그렇게 말하며 펠릭스가 띄우는 온화한 미소에, 어째선지 일행의 등줄기가 오싹해졌다.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뭔가 나쁜 예감에.
“단언해도 좋네. 그는 이대로 어둠의 서 안에서 꿈을 꾸고 있는 게 가장 행복하겠지. 그에게 있어 이상적인 꿈을 꾸고 있는 거니까. 그대로 꿈을 계속 꾸게 해 주는게, 그에게 있어서 가장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나?”
“아냐! 헛소리 마! 유토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주제에!”
가슴 속에 있는 형언할 수 없는 불안감과 초조함에, 저도 모르게 소리치는 페이트. 이대로 유토가 멀리 가 버려 다시는 만나지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런 예감이 생겨 버렸다.
“흠. 확실히 나는 그에 대해 아는게 없군.”
어둠의 서의 꿈은, 대상의 심층의식에 액세스해 대상자가 강하게 바라는 꿈을 보여준다. 수집시에 대상의 기억도 어느 정도 읽었지만, 물론 기억이나 생각 등 그 모두를 읽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펠릭스 자신은 유토가 바라는 꿈이나 기억 등에 큰 흥미를 느끼지 못해, 읽지도 않았다. 그러니 페이트가 하는 소리를 부정할 수 없다.
“역으로 묻겠네. 너희는 그 소년에 대해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가? 그가 누구고, 그가 바라는 꿈이 무엇인지를 이해하고 있나? 설령 너희가 그를 꿈에서 깨워냈다고 하면, 정말로 그는 기뻐할까? 거꾸로 너희를 원망하지는 않을까?”
“…………으.”
페이트는 반사적으로 그 말을 부정하려 했지만, 자신이 그걸 부정할 만한 근거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걸 깨닫고 숨을 삼킨다.
유토가 뭘 바라고 뭘 하고 싶은지. 유토에 대해서는 그런 것조차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속지 마, 페이트.”
그런 페이트를 꾸짖듯이 크로노가 말을 걸었다.
“그 녀석은, 너나 나노하의 그런 반응을 즐기고 있는 것뿐이야. 녀석들의 말을 하나하나 진지하게 들을 필요는 없어.”
크로노의 머릿속에 떠오른 건 과거에 상대한 범죄자이자, 스승이라고도 해야 할 자매들의 모습이었다. 그런 녀석들은 이쪽이 반응을 돌려주면 돌려주는 만큼 더 심해진다. 과거에 잔뜩 체험했으니 틀림 없다.
한편 펠릭스는 크로노의 말을 부정하지도 않고 미소를 띄우고 있다. 지금 이 대화가 어떻게 흘러갈지조차도 즐기고 있는 거겠지.
“……그래도.”
페이트가 유토가 뭘 바라고 있는지를 모르는 건 사실이다. 혹시나 펠릭스가 말하는 대로 현실에선 이룰 수 없는 꿈을 꾸고 있다고 하면, 유토가 자신들을 원망할 가능성은 0이 아니지 않을까.
혹시나 소중한 친구에게서 원망이 담긴 눈길을 받게 된다면. 그건 페이트에게 있어, 엄마에게 버림받는 거나 마찬가지로 두려운 일이다.
“괜찮아, 페이트.”
그런 페이트의 손에 자신의 손을 겹쳐, 미소짓는 나노하.
“꿈은 끽해야 꿈다. 계속 잘라카믄, 우리가 깨워줘야 안카나.”
나노하가 겹쳐준 손 위에, 하야테도 자신의 손을 올려 힘차게 단언한다.
하야테의 말에 응응 끄덕이면서 나노하가 말을 잇는다.
“친구가 잘못을 저지르면, 부딪치더라도 그걸 고쳐주는 게 진짜 친구야.”
한때, 알리사나 페이트와 전력전개로 맞부딪쳤던 나노하기에 할 수 있는 말이었지만, 아무리 봐도 9살짜리 소녀가 할만한 말은 아니다. 보통 남자들보다도 훨씬 사나이다운 생각이다. 안타깝게도 여기서 그걸 딴죽걸만한 사람은 현재 어둠의 서 안에서 현실도피중이었지만.
“……응, 그렇네.”
페이트 자신도 나노하와 정면에서 부딪쳐, 마음을 억눌려, 수도 없이 마음이 뒤흔들렸었다.
그렇기에 더더욱 나노하의 말이 올바르다고 믿을 수 있었다.
설령 얼마나 좋은 꿈이라고 해도, 그건 현실이 아니다.
현실에는 자신이나 나노하, 알리사나 스즈카, 그리고 그의 부모님이나 반 친구들. 유토가 돌아오길 기다리는 사람이 잔뜩 있는 거다. 그걸 냅두고 꿈 안으로 도망가는 게 옳은 일일 리가 없다. 지금부터 자신들이 하고자 하는 게 잘못되지 않았다는 확신이 솟아오른다.
굳건한 마음을 가슴에 담고, 바디시를 제대로 고쳐쥔다.
“그리고, 유토라면 스스로 깨어날 지도 모르고.”
그건 유토를 향한 페이트의 신뢰. 유토가 보여주는, 언제나 근거 없는 자신감과 흔들리지 않는 당당한 태도는 자신이 정신적으로 약하다는 걸 자각하고 있는 페이트에게 있어 정신적인 강함을 가지고 있는 사람의 이상형이자, 동경의 대상이기도 했다. 앞으로 일상에서 좀 더 유토와 접할 시간이 늘어나면 그게 착각이라는 것도 깨닫겠지만.
“아니, 그럴 린 없겠지.”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자일수록, 꿈에 속박당하기 쉬우니까.』
“……유토 군, 자신의 욕구에 솔직하니까.”
“평소부터 떼쟁이고 하고 싶은대로 해대고~.”
“덤으로 기합도 근성도 없어요.”
형편없는 평가였다.
일상적으로 유토와 접할 일이 많은 나노하와 하야테. 매 주 한 번 특훈으로 유토가 얼마나 얼간인지를 뼈저리게 느끼고 있는 기사들은, 페이트 같은 잘못된 신뢰를 느끼거나 하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유토는 자신의 욕구에는 한없이 층실한데다 게으름뱅이여서, 어둠의 서의 꿈꾸는 듯한 유혹에는 제일 약한 타입의 성격이라 할 수 있다.
물론, 뜻밖의 언동도 많고 읽지 못하는 부분도 있기에 자력으로 탈출할 가능성도 없는 건 아니지만.
다른 사람들의 발언은 8할 진심, 2할 농담이라는 정도다.
“다들 너무해…….”
“사실이니까 어쩔 수 없어.”
――그러면서도 이상한 데서 남을 잘 돌보거나, 책임감이 강하거나 하지만.
하고 마음속으로만 보충해두는 크로노. 정말 제멋대로기만 한 녀석이라면 주얼시드 사건이나 이번 어둠의 서 사건에 끼어들거나 하진 않는다. 본인의 주장을 믿는다면, 그의 개입이 없어도 사건은 무사히 해결되는 거니까. 본인이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보다 좋은 방향으로 끌고 나가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기에, 귀찮은 짓을 스스로의 의사로 한 거다. 결과적으로 그게 사태의 악화를 불렀다고 해도.
입으론 나쁜 척 하고 있지만, 이러니저러니 해도 유토는 사람 좋은 멍청이인 거다.
그런 멍청이를 구하기 위해서라도 다시금 상황을 확인한다.
“리인포스. 유토를 억지로 깨우는 방법은 정말 그가 말하는 대로야?”
『아아. 녀석이 행동하지 못할 정도의 대미지를 받으면, 꿈의 결계를 유지할 여유는 없어져. 녀석에게 어느 정도의 대미지를 주든지, 도미네 유토에게 대미지가 미칠 일은 없어.』
“즉, 마음껏 해치우면 괜찮다는 거지?”
『아아, 있는 힘껏 해치워 줘.』
“응!”
뭐가 그렇게 기쁜지, 방금까지완 돌변해서 의욕으로 넘치는 나노하가 힘차게 끄덕인다.
비타는 그렇게나 포격을 쏴대는 게 좋냐고 딴죽을 걸고 싶었지만, 어찌저찌 그건 참으며 다른 말을 입에 담았다.
“뭐, 지금 녀석이 있으면 있는대로 방해니, 거꾸로 좋은 상황일지도.”
유토의 마력이 아무리 많든, 이 멤버 속에선 전투력은 없는 거나 마찬가지다. 마력보급쪽에만 전념시킨다고 해도, 그를 지킬 걸 생각하면 디메리트 쪽이 크다. 이전의 카피처럼 이 레벨의 싸움에선 맞기만 하면 일격으로 박살날 레벨인 거다. 애초에 수집을 당한 뒤니, 제대로 마력도 남아있지 않을 거고. 그렇다면 그의 안부를 신경쓰지 않아도 되는 이 상황은 거꾸로 적당하다고도 할 수 있다.
“어찌됐건 녀석들을 쓰러뜨리지 않으면 우리도 이 결계에서 못 나가.”
“우리가 뿌린 씨앗인 걸요. 스스로 제대로 베어 내야죠.”
“백업 데이터라곤 해도, 우리와 같은 존재가 있는 것도 마음 편하진 않군.”
“좋아, 한 방 먹여 주자!”
기합으로 가득찬 볼켄리터들에게, 크로노도 동의한다.
“우리가 이렇게 싸우는 동안 유토가 혼자서 꿈 속에 있는 것도 열받아. 녀석들을 쓰러뜨리고 후딱 깨우자고.”
자신들의 승리를 의심치 않는 크로노의 말투에, 디아키가 실소한다.
“어리석군. 카피는 너희들과 호각. 그리고 우리 셋의 마력은 너희를 능가한다. 마력으로도 수로도 열세한 너희에게 승리라곤 없어. 실제로 아까 너희는 우리에게 방어밖에 못하지 않았나.”
“그렇고 말고! 어차피, 너희는 우리의 발판에 지나지 않아. 어둠의 힘 앞에 엎드리도록 하라고!”
“최종적인 목표는 펠릭스지만, 우선은 착실히 전력을 깎아가자. 포메이션을 짜서 단숨에 가자고.”
“응!”
“연습 대로네.”
“어차피, 카피는 카피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알려 주겠어!”
자신에 가득한 레비의 말을 멋지게 무시하는 일행.
“들으라고! 우리 이야기를! 무시 하지 마, 이봐!”
“박살 직전의 융합기와 용도가 다한 프로그램 주제에……웃음이 나오네.”
그런 일행에게 불만을 터뜨리는 레비와, 코웃음치는 디아키.
레비는 손을 붕붕 흔들고, 디아키는 비웃음을 띄우고 있지만, 자신들――특히 디아키는 큰 지뢰를 밟았다는 건 아직 깨닫지 못했다.
“그런 너희들에게 멋진 선물을!”
그런 레비에게, 하야테는 빙긋 미소 지으며 고한다.
“약한 개일수록 잘 짖는다 안카나. 컹컹 귀에 거슬리니까 좀 다물라.”
『주……?』
하야테의 분위기가 확연히 바뀌었다. 말의 날카로움 이전에 그녀가 뒤덮는 분위기 그 자체가.
겉으로는 웃고 있는 만큼, 그 자그만 몸에서 풍기는 분노가 더더욱 두렵게 느껴진다. 그 표변에 리인포스를 필두로 한 아군 쪽이 무심코 거리를 벌려버릴 정도로.
“까마귀 새끼 주제에……지금, 뭐라고 했어.”
“입 쳐다물라캤는데 귀 막혔나? 어둠을 통솔하는 왕인지 문진 몰겠는데, 남네 가족한티 글케쌌는데 걍 끝내주겠나?”
“이……게!”
그야말로 일촉즉발. 디아키와 하야테. 어둠을 통솔하는 왕과 야천의 왕의 눈길이 교차해, 보이지 않는 불꽃을 흩뿌린다.
“하야테가 화내는 거……처음으로 봤어.”
비타가 흘린 말에 저도 모르게 끄덕끄덕 동의하는 수호기사 일동. 평소 온후함이 옷을 입고 걷고있는 것 같은 하야테가 이렇게나 분노를 드러내는 모습은 상상한 적도 없었다.
『평소에 착한 사람일수록 화내면 무섭다.』는 말이 문자 그대로 드러나 있다.
“비타랑 자피라, 페이트가 전위! 최우선 공격목표는 저쪽의 샤말과 유노 군. 적에겐 충전 시간을 안 주는걸 중심으로!”
척척 지시를 날리는 하야테. 이 반년간, 마법의 지식 연습과 병행해 받았던 지휘관 연수는 폼이 아니다.
“시그넘과 크로노 군은 유격! 쬐금 많은 수를 맡게 될 지도 모르겠지만 버텨줘! 알프랑 유노 군, 샤말은 그 서포트! 나노하랑 나는 모두가 방패가 되어주는 틈에 커다란 거 준비!”
자신이 내려고 한 지시가 그대로 나온 걸 본 크로노가 남몰래 몸을 움츠리고, 그 어깨를 위로하듯이 두드리는 유노.
“까마귀 새끼 주제에 기어 오르지 마! 폐기품이나 마찬가지인 융합기랑 수호기사따윈 잿더미로 만들어 주마!”
“할 수 있음 해 보라! 야천의 왕과 그 수호기사의 힘, 그 영혼에 박아 주께!”
디아키와 하야테. 어둠을 통솔하는 왕과 야천의 왕. 두 명의 왕이 방아쇠를 당기고,
“흥, 마력의 차이는 뚜렷해! 너희들이 어쩌든 승산은 없어!”
“유감이지만, 아까 처럼은 안 돼……! 마력의 차이가 전력의 결정적인 차이가 아니라는 걸 가르쳐 줄게!”
레비와 페이트. 푸른색과 금색 섬광이 하늘로 홰치고,
“제 힘 모두를 가지고, 당신들을 때려 부숴주죠. 영원의 어둠에 감싸여 잠드세요.”
“……언젠가는 잘거야. 그래도 그건 지금은 아냐. 우리도, 유토 군도, 돌아오는 걸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있어. 그러니……지금은 싸울 거야! 미래를 잡기 위해서!”
슈테른과 나노하. 흑과 백의 포격마도사가 그 힘을 해방한다.
서로의 존재를 걸고, 미래를 쟁취하기 위해,
거북해. 그저 거북했다.
이유는 말할 것도 없이, 아까까지 연인에게 울며 안겨붙고 있던 자신이 너무나 꼴사나워서 보여줄 낯짝이 없었기 때문이다.
한편 유나는 나랑은 반대로 콧노래를 부르며 아침밥을 준비하고 있다.
유나의 얼굴을 본 순간 머릿속이 새하얘져 그런 행동을 저질러 버렸지만, 한바탕 운 지금은 어떻게든 침착을 되찾았다.
우선은 현상 정리. 이건 아마 어둠의 서가 보여주는 꿈.
지금까지 9년간 있었던 게 꿈이고 유나라는 존재가 진짜라고 생각하고 싶지만, 그렇다고 하기엔 이 9년간 체험한 것들이 꿈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선명했다.
난 훌륭한 오타쿠라는 걸 스스로 인정하는데다 어느 정도는 망상벽을 가지고 있기도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한계라는 게 있다. 페이트나 나노하와 있었던 일. 지금까지 살아왔을 9년간은 꿈이 아니라고 단언할 수 있다.
자신의 손을 바라본다. ‘도미네 유토’의, 어린애의 손은 아니다. 좀 더 성장한 남자의, 성인 남성의 손이다. 거울을 살펴보자 9년만에 자신의 맨얼굴이 보였다. 그립고도 위화감이 넘쳐서 뭐라 할 수 없는 이상한 기분이었다.
“유―토―, 밥 다 됐어―.”
뒤에서 들려온 소리에 슬쩍 돌아본다. 잠옷 대신 입는 와이셔츠(고등학생 때 내가 쓰고 있던 거)에서 검은 플레어스커트와 보더 셔츠, 그 위에 앙상블을 더한 편한 복장으로 갈아입고, 뻗은 머리칼은 한곳에서 묶어 포니테일로 만들었다. 내 눈길에 “응?”하고 고개를 조금 갸웃거리는 모습이 귀여워서, 기쁨이나 사랑스러움이라거나 등등이 뒤섞인 감정이 치솟아 오른다. 젠장, 꿈이라도 여전히 귀여워!
거북한 마음은 있지만, 언제까지나 거기에 구애되어봐야 아무 도움도 안 되기에 마음을 꾸욱 가다듬으며 방 중앙에 놓인 자그만 탁자 앞에 앉는다.
탁자에 놓여있는 건 버터를 바른 토스트와 샐러드. 베이컨 에그에 콩소메 스프 등 간단한 식사다.
나도 유나도 아침엔 그리 안 먹는 타입이기에, 아침밥으로선 이걸로 족하다.
잘 먹겠습니다, 하고 손을 맞댄 뒤 말없이 먹기 시작……했지만, 유나가 지긋이 이쪽을 바라보는데 집중하고 있어서 좀 거북하다.
“여기 보지 마.”
힘 없이 말해보긴 하지만, 그게 수줍어하는 거라는 건 상대한테도 빤히 보인다. “응, 미안.”이라고 사과하면서도 유나는 이쪽을 기쁜 듯 흘낏흘낏 바라본다.
뭔가 말하려고 했지만, 지금 내가 무슨 소릴 하든 효과가 없을 건 명백하기에 일단은 식사에 전념하면서 앞으로 할 일을 생각한다.
내게 선택지는 둘. 이대로 꿈을 계속 꿀지, 아닐지. 이건 꿈이고, 현실에선 가족이나 친구들이 기다리고 있다. 혹여 내가 돌아가지 않으면 확실히 슬퍼할 사람이 있으니 답은 이미 정해져 있다. 정해져 있지만…….
슬쩍 유나를 바라본다. 눈이 딱 마주친다. 상냥하게 미소짓는 그녀의 눈동자를 들여본 순간, 이유 없이 가슴이 죄여든다.
9년간 계속 갈구했던 일이다. 꿈이든 환상이든……이 미소를 내가 뿌리칠 수 있을까?
싫다. 놓치고 싶진 않다. 현실에서 그녀와 만나는 건 거의 불가능하겠지. 설령 그 세계에도 그녀가 있다고 해도, 그건 내가 알고 있는 그녀랑은 또 다른 사람인 거다.
꿈과 현실, 거기에 어떤 차이가 있는 걸까.
전력도 못 되는 내가 있든 없든, 나노하 일행의 승패에는 아무런 영향도 없다. 아니 것보다, 그 멤버로 진다는 걸 상상할 수 없다.
원작의 흐름을 비춰 봐도, 내가 안에 있으면 공격할 수 없거나 하지도 않았을 거다. 페이트가 안에 있었을 때, 나노하는 있는 힘껏 공격하고 있었고.
그렇다면 난 이대로 꿈을 계속 꿔도 괜찮을 거다. 펠릭스가 지는 걸로 이 꿈이 끝난다면 그걸로 좋다.
그러니까, 그 때 까지는.
변명에 변명을 더하고 있다는 건 자각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도. 다시는 꿀 수 있을 리 없는 이 꿈을 계속 꾸겠다는 욕구를, 나는 막을 수 없었다.
식사 후, 설겆이를 마쳤을 즈음에 유나에게 딱밤을 먹였다.
“아야! 뭐야?! 갑자기 뭐 하는 거야?!”
“계속 날 히죽거리면서 보고 있으니까.”
누가 어떻게 봐도 화풀이다.
“으―, 그치만, 유토가 나한테 안겨붙어서 우는 건 처음이었고. 나를 의지해 준다고 생각했더니, 왠지 자연스레 얼굴이 풀어졌는 걸.”
듣고 있는 내가 부끄러워 지는 같은 이유에, 뺨이 화악 붉어진 걸 자각한다.
하나하나 그런 반응을 보이면, 나도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난감하다.
“아―, 응.”
말이 막힌 유나의 머리에 손을 톡 얹고.
“……내 약점은 너한테 정도 말곤 보여줄 수 없으니까.”
아무래도 얼굴을 보고 말하기엔 부끄럽기에 눈을 돌리면서 나직히 말한다.
작은 소리로 말했지만, 유나에겐 제대로 들렸던 모양이라 한 순간 눈을 크게 뜨곤 바로 기쁜 듯이 말한다.
“……응.”
그 미소를 보고 다시금 자각해 버린다. 나는 어쩌지 못할 정도로 이 미소를 좋아하고, 이 녀석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해 버린다는 걸.
오직, 이 녀석과 함께 있고 싶다. 그것만이 내게는 제일 중요한 일인 거라고.
“유나, 이쪽.”
“……?”
햇볕이 닿는 창쪽 자리로 간 뒤 앉아, 유나를 부른다.
“저기, 에에, 유토?”
내 앞에 앉힌 유나를, 뒤에서 살며시 껴안는다.
당황한 유나의 목소리가 들려오지만, 지금은 무시.
“미안. 잠시 이대로 부탁해.”
“……유토가 이런 식으로 응석부린다니, 정말 드무네.”
굳어졌던 유나의 몸에서 힘이 빠져, 살며시 내게 몸을 기대준다.
“가끔은…….”
“뭐가 있었는진 안 가르쳐 줄 거니?”
아까랑 같은 질문을 들었다.
“……미안.”
말할 수 있을 리가 없다. 그 말을 했다간 이 꿈이 끝나 버릴 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서.
“어쩔 수 없네~, 정말~.”
오늘은 수업을 빠지겠다고 했을 때도 같은 소리를 하는 유나.
내가 평소 상태가 아니라는 걸 느껴준 유나는, 더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오늘 하루를 나랑 보내는 걸 양해해 주었다.
그 배려가 고마웠다.
유나의 허리에 두른 내 손에, 유나가 살며시 손을 얹었다.
“유토의 손, 차가워서 기분 좋아.”
“피가 차가우니까 어쩔 수 없어.”
“응, 그래도 유토한테 이렇게 안겨있으면 정말 따뜻하다고?”
“그건 잘 됐네.”
“응.”
지금은 오직, 이렇게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그녀의 온기를 느끼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