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화
다음날 아침
반의 모두는 노도카에게 몰려 ‘호화상품’을 구경하려 했다.
“와~ 이게 호화상품인거야?”
“아, 보여줘 보여줘~”
노도카는 손에 들고 있는 호화상품을 살며시 반 아이들 쪽으로 내밀어 보여주었다. 노도카가 받은 호화상품은 노도카의 그림이 그려진 타로카드였다. 상당히 예쁘게 나온 터라 아이들 사이에서도 상당히 호평이었다. 아이들 사이에서 돌던 중 반장과 마키에의 라이벌 선언이라던가 코노카의 카드가 갖고 싶어 등 여러 가지 말이 많았지만 사소한 것이므로 넘어가자.
시즈나 선생님이 조별활동 준비를 위해 방으로 돌아가라는 말에 노도카는 싱글거리며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그리고 몇 번씩이나 상품으로 받은 카드를 보았다.
‘이것이 네기선생님과의 첫키스의 증거... 소중히 간직해야지~♡’
그렇게 가벼운 발걸음으로 방으로 향하던 노도카는 저 앞쪽에 모여 있는 한 무리를 발견했다. 모여 있는 사람은 네기 선생님과 시로 선생님 그리고 관리인 보조인 길가메쉬씨와 히스리씨, 마지막으로 동급생인 아스나와 세츠나, 에반젤린, 카즈미였다. 노도카는 왠지 모르게 숨어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몰래 숨어서 네기 선생님 일행의 대화를 엿들었다.
“카즈미... 카모! 도대체 무슨 생각인거야?! 이런 이벤트를 벌여 대량 가계약 음모를 벌이다니!! 일반인을 함부로 끌여 들여서 어쩌자는 거야?!”
“하지만 전력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거 아니야?”
아스나는 화가나 외쳤다. 하지만 카즈미는 반성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으며 아스나의 말에 꼬투리를 잡았다. 그 말에 더욱 화가 난 아스나는 카즈미와 카모를 향해 소리쳤다.
“카즈미,카모와 함께 입 좀 다물고 있어주련?”
험악하기 그지없는 아스나의 말에 카즈미는 상당히 반발했으나 여관 벽에 금이 가게 하는 아스나의 킥이 얼굴 바로 옆을 지나가자 카즈미는 곧장 입을 다물었다. 그렇게 카즈미의 입을 다물게 한 아스나는 우려에 가득 찬 목소리로 말했다.
“도서관은 일반인이니까 골치 아픈 일에 휘말리게 하지 말라고. 이벤트 경품이었다니까 복제카드를 넘긴 건 어쩔 수 없지만... 마스터 카드는 절대 사용하면 안돼.”
“마법사라는 것도 밝혀지지 않게 하는 것이 좋겠지요?”
세츠나가 아스나의 말에 덧붙였다. 네기는 갑자기 든 의문에 아스나를 쳐다보며 물었다.
“하지만 아스나도 일반인이 아닌가요?”
“이봐이봐, 이제 와서 나한테 그런 말이 나와?”
그러고 보면 아스나는 이미 발을 뺄 수 없을 정도로 깊이 연루되어있었다. 게다가 이상하게도 기억지우기 마법조차 안 통하는 것을 보면... 아마 평생 이쪽세계와 관련을 지어 살아가게 될 것 이었다.
“하... 하긴 그러긴 하네요... 노도카에게는 모든 것을 비밀로 해두겠어요.”
무엇을 비밀로 한다는 것일까? 멀리 있는 노도카로서는 많은 것을 들을 수 없었다. 그 사이 카모는 아스나의 손에 들려있는 노도카의 가계약카드(마스터카드)를 보며 무척이나 아쉬워했다. 그리고 아스나에게 복제한 가계약카드를 건네며 말했다.
“그래도 아깝네요. 은근히 강력한 능력인 듯한데... 뭐 좋아요 누님도 복제된 카드를 받아 두세요.”
“에이... 난 그런거 필요 없어. 어차피 통신이외에는 필요 없을 거 아니야.”
“아니에요! 형님이 없어도 도구는 꺼낼 수 있다니까요!”
아스나의 말에 카모는 버럭 소리를 지르며 말했다. 하는 수 없이 카드를 받아든 아스나에게 카모는 카드의 사용법을 설명했다.
“꺼내는 방법은 카드를 쥐고 [아데앗트(나와라)]라고 외치면 되요.”
“하아... 하기 싫은데... 아데앗트.”
아스나는 무척이나 싫어하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카모가 가르쳐 준 대로 주문을 외웠다. 그러자 카드에서 빛이 일면서 일전에 사용한 부채로 변했다. 아스나는 무척이나 신기해 하면서 말했다.
“굉장하다! 이거 마술에서도 써먹을 수 있겠는데?!”
“그런소리 마세요. 거둘 때는 [아베앗트]라 외치면 되요.”
아스나가 카모의 말대로 아베앗트를 외치자 부채는 또다시 카드가 되었다.
“와~ 신기하다!”
아스나가 혼자서 가계약카드 기능에 신기해하고 있을 때 옆에 있던 에반젤린이 살기를 피워 올리며 카모에게 물었다.
“그러고 보니... 어째서 나와 에미야 녀석이 서로 가계약 되어버린 거지?”
그 당시 에반젤린이 아무리 정신이 없었다지만 자신과 관련된 마력파동을 느끼지 못할리 없었다. 그것이 다른 사람과 인연을 잇는 가계약이라면 말이다. 에반젤린의 말에 카모는 진땀을 흘리며 변명했다. 까딱이라도 잘못 변명했다간 그대로 사망할 것이 120% 틀림없었기 때문이었다.
“그... 그게... 마법진에 손상이 있었나 봐요.”
“어떤 손상이 있었던 거지?”
에반젤린은 그 질과 농도만으로도 어지간한 사람은 그대로 죽어버릴 듯한 살기를 카모에게 퍼부으며 물었다. 카모는 살기에 굳어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때 카모에게 한줄기 구원의 빛이 보였다.
“제가 설명하지요. 미스 에반젤린.”
그렇게 말하며 나선 사람(?)은 바로 히스리양. 에반젤린은 갑자기 나선 히스리양에게 살기를 퍼부었으나 여러 전장을 누벼온(그 중에는 전장아닌 전장도 있었지만...) 강철의 메이드... 어지간한 살기는 그녀에게 있어서 아무런 감흥도 주지 못했다.(게다가 인형이므로 살기에 둔감한 탓도 있었다. 단 살기를 느끼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누가 뭐라 해도 인형사와 매지컬앰버의 최고의 걸작중 하나니까.)
“어제 밤, 지붕을 타고 안으로 들어오려 하던 나루타카 자매에 의해 미스터가 설치해놓은 함정이 작동했습니다. 마침 그곳에 설치된 함정의 타입이 룬을 이용한 마술함정이었던 터라 거기서 흩어진 마력에 의해 마법진이 손상된 것 같습니다.”
그 말에 에반젤린이 눈을 흘기며 시로를 보았다. 시로는 에반젤린에게 미안함을 느낀 터라 휘파람을 불며 딴청을 부렸다. 그사이 신색은 회복한 카모는 4장의 카드를 꺼내들며 말했다.
“뭐 어쨌든 가계약은 되었으니... 여기 마스터 카드와 복제카드 받으세요.”
에반젤린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카모에게서 마스터 카드와 복제 카드를 받아들었다. 시로도 에반젤린의 뒤를 이어 카모에게서 마스터 카드와 복제 카드를 받았다. 에반젤린과 시로는 뚫어져라 서로의 가계약 카드를 보았다. 시로의 경우는 ‘불퇴(不退)의 수호자’라는 글귀와 함께 평소 수호자 모습에서 입고 있던 붉은 성해포 대신 금빛으로 찬란히 빛나는 천으로 만들어진 갑옷을 입고 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었고 에반젤린의 경우에는 ‘밤의 여제’라는 글귀와 함께 평소 에반젤린이 주로 입던 검은 드레스대신 수수하면서도 모든 것을 압도하는 듯한 은빛의 드레스를 입고 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두분 다 무척이나 엄청난 능력일 것 같은데요.”
카모의 말에 시로는 쓴웃음을 지었다. 에반젤린 것은 모르겠지만 자신의 아티펙트는 분명 ‘그것’을 모토로 만들어 진 것이리라. 아니면 이런 형태가 나올 리 없으니까. 그러니까 능력도 대충 예상이 되었다. 에반젤린은 뚫어져라 두장의 카드를 보더니 품안에 넣고는 그대로 말도 없이 그 자리를 벗어났다.
그때 에반젤린의 얼굴이 약간 붉어져 보이는 것은 모두의 착각일까?
노도카는 에반젤린이 그 자리에서 벗어나려고 하자 재빨리 다른 통로를 통해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들키면 왠지 사과정도로 끝나지 않을 거라는 느낌이 확실하게 왔던 탓이었다. 방을 향하던 노도카는 아까 네기선생님 일행의 대화를 떠올렸다. 자세히 듣지는 못한 터라 그렇게 많이 기억나지는 않지만 ‘아데앗트’라는 말과 함께 아스나의 손에 들려있던 카드가 부채로 변한 것을 떠올렸다.
“아데앗트”
노도카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아까 아스나가 하던 대로 주문을 외웠다. 그러자 카드에서 빛이 일더니 표지에 라틴어가 쓰여진 책으로 변했다. 노도카는 습관적으로 책을 펼쳤다. 카드가 변한 책을 펼쳐보니 표지 바로 뒷면에 라틴어와 일본어로 설명이 적힌 것을 빼고는 완전 백지였다. 그러나 책이 은은히 빛나더니 글과 그림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떠오른 것은 어제의 일과 그때 이후의 소감... 노도카는 갑자기 얼굴이 붉어졌다.
“노도카”
“왜...왜?!”
책을 보고있는 도중 노도카는 갑자기 뒤에서 부르는 소리에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절친하기 그지없는 유에가 평소와 같이 있었다. 노도카는 안심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뭐야... 유에였구나...”
그 순간 노도카가 들고 있는 책이 빛나더니 어제 유에에게 있었던 일들이 떠올랐다. 노도카는 너무 놀란 나머지 ‘파앙-’소리가 날 정도로 책을 덮어버렸다. 유에는 노도카가 처음 보는 책을 들고 있자 무슨 책인지 궁금해하며 이리저리 책을 보려했다. 그러나 노도카가 책을 숨기자 약간은 삐진 듯한 표정을 하며 물었다.
“노도카. 그 책은 뭐야? 왜 숨기는 거야? 내 앞에서 책을 숨기다니 섭하네...”
유에의 말에 노도카는 상당히 곤란해 하며 어찌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그 순간 하루나가 대치상태인 노도카와 유에 사이에 끼어들어 두 사람을 방으로 끌고가며 말했다.
“얘들아! 둘 다 왜 넋을 놓고 있는 거야!? 빨랑 준비하자!!”
오늘 일정은 자유행동. 네기는 수학여행 전에 샀던 옷으로 갈아입고 로브를 펴서 지팡이에 감아두는 둥 만반의 준비를 했다. 왜냐하면 오늘은 학원장님의 친서를 전하러 관서주술협회 본산으로 갈 생각이었기 때문이었다. 네기가 막 최종점검에 들어갔을 쯤 시로가 들어와 물었다.
“네기, 준비는 끝났어?”
“예, 그런데 코노카와 나머지 아이들에 대한 보호는...?”
“뭐, 여태까지처럼 길가메쉬와 히스리양에게 맡겨둘 생각이야. 뭐 세츠나도 있으나 함부로 도발 같은 건 하지 못하겠지...”
시로의 말에 어느 정도 안심을 한 네기는 지팡이를 들었다. 지팡이는 로브를 감아놓은 탓인지 약간 묵직한 느낌이 손에 전달되었다.
“그럼 가볼까?”
“네.”
시로와 네기는 학생들에게 들키지 않게 기척을 숨기며 여관 뒷문으로 빠져나갔다.(물론 여관주인에게 허락을 구해놓은 상태였다.) 무사히 여관에서 빠져나온 시로와 네기는 약속장소인 대단천의 다리에서 아스나를 기다렸다.(사실 시로와 네기 둘만 가려했으나 아스나의 고집 탓에 어쩔 수 없이 데려가기로 약속했다.) 어느 정도 기다렸을까? 여관쪽 방향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그것도 대다수의... 시로는 인기척이 느껴지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스나가 5조 전원과 함께 온 것이었다.(보호자 역할 탓인지 세츠나가 5조와 합류해 있었다.)
“와아~ 여러분 모두 귀여워요!”
한순간 5조 사람들의 모습에 감탄을 한 네기는 정신을 차리며 아스나에 다가가 속삭였다.
“아니 이게 아니라... 어... 어째서 사람이 이렇게 많은 거에요?!”
“미안 하루나에게 들켰어...”
시로는 두사람의 대화를 듣고는 역시 아스나는 떼어놓고 가는 편이 나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로는 허둥대는 두 사람을 보며 한동안 5조를 데리고 다니다가 몰래 빠져나가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될 수 있으면 아스나도 함께...
아스나 덕(?)에 5조와 함께 행동하게 된 시로와 네기는 5조 사람들과 한동안 바쁘게 돌아다녔다. 5조의 하루나와 유에가 게임센터로 향하자 시로는 빠져나갈 절호의 기회임을 느꼈다. 그러나 네기가 하루나와 유에의 권유로 게임을 하게 된 탓에 시간이 좀 더 걸릴 것 같았다. 몇 판 정도 지났을까? 어느 정도 네기가 게임에 숙달되자 기묘한 소년이 네기의 옆에 앉았다. 시로는 소년이 보통 인간이 아님을 느꼈지만 적인지 아닌지에 대한 여부는 알 수 없었으므로 그냥 조용히 있었다. 소년 덕분에 네기의 게임은 생각보다 일찍 끝났다. 소년은 게임이 끝나자마자 몇마디 인사말과 함께 바로 게임센터를 벗어났다. 나가는 도중 들어오던 노도카와 약간의 트러블이 있었지만 그렇게 큰일은 아니었던 터라 하루나와 유에는 카드를 모으기 위해 게임에 열중하기 시작했다.
시로는 지금이 기회임을 느끼고 세츠나에게 코노카의 보호를 맡기고 네기와 함께 게임센터를 나왔다. 언제 눈치 챘는지 두고 가려했던 아스나는 미리 먼저 나와 기다리고 있었다. 시로는 한숨을 내쉬며 아스나도 함께 데려갔다.
10분 후
시로와 네기, 아스나는 적의 본진이라 볼 수 있는 관서 주술협회 총 본산의 입구에 도착했다. 그냥 보기에도 무엇인가 튀어나올 것만 같은 장소...(두사람 눈에는 그 정도 밖에 안보였겠지만 시로의 눈에는 이곳을 이루고 있는 강력한 결계와 영기의 흐름까지 볼 수 있었다.) 네기는 감탄하며 말했다.
“여기가 관서주술협회의 총 본산...?”
“뭐라도 튀어나올 것만 같다...”
“너무 긴장하지는 마 친서만 전해주면 되니까.”
시로는 그렇게 말하고는 그대로 입구로 들어가려 했다. 그러나 갑자기 느껴지는 마력파동에 시로는 고개를 돌렸다. 고개를 돌리자 나타난 것은 세츠나의 식신인 자칭 꼬마 세츠나... 아마 걱정이 돼서 보낸 듯 싶었다.
“이곳에는 주술협회의 수장이 있을 테지만 그젯밤에 습격한 무리들의 동향도 모르고 함정이 있을 수도 있으니 조심하세요.”
꼬마 세츠나의 우려 깊은 목소리에 시로와 네기 아스나는 각자의 무장을 갖추며 만반의 준비를 했다. 그리고 누군가 없는지 살핀 후 곧장 돌입했다. 시로는 불안한 마음에 좀더 살피고 들어갈까 했으나 아스나가 너무 막무가내로 돌입한터라 걱정이 된 탓에 충분히 살피지 못하고 입구로 들어갔다.
돌입하고 약 10분... 마력으로 신체를 강화하며 달린 시로들에게 있어 통로의 끝이 보이고도 남을 시간이었지만 어째서인지 통로의 끝이 보이지 않았다. 수상하게 여긴 시로는 아스나와 네기를 멈춰 세웠다.
“잠깐 기다려봐. 아무래도 좀 이상하니까...”
아스나와 네기를 멈춰 세운 시로는 평범한 활과 화살을 투영했다. 그리고 전방을 향해 겨누고는 그대로 쐈다. 시로는 화살을 쏘자마자 그대로 활을 버리고는 간장과 막야를 투영해 뒤를 돌아보았다. 인간이 쏜 화살이라고 생각하기 힘든 속도로 날아오는 화살... 시로는 그런 화살을 가볍게 쳐내며 입을 열었다.
“역시...”
“뭐가 역시인거죠?”
옆에서 시로의 기묘한 행동을 본 아스나가 물었다. 시로는 자신이 쳐낸 화살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 화살을 봐. 저 화살은 아까 내가 전방에다가 쏜 화살이다. 그런 화살이 왜 뒤에서 날아 왔을까? 바로 여기 이 공간이 외부와 단절된 채 무한이 연결되어있기 때문이지.”
“무간방처(無間方處)의 결계?!”
시로의 설명에 꼬마 세츠나는 떠오르는 것이 있는지 외쳤다.
“이 주술이 무간방처의 결계이라 불리는 주술인가? 어쨌든 이런 류의 결계는 정말 귀찮고도 위험해... 결계의 핵을 깨트리지 못하면 술자가 결계를 풀거나 하지 않는 한은 탈출이 무척이나 힘들거든...”
시로의 말에 아스나와 네기의 안색이 어두워 졌다. 하지만 시로는 네기와 아스나를 향해 웃으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 간단히 깰 수 있는 방법이 있으니까.”
“어떤 방법 이지요?”
네기의 물음에 시로는 천천히 바로 옆에 있던 토리이에 다가가 손을 얹었다. 그리고 설명을 이었다.
“마술적 결계는 말이야. 하나의 세계와도 같아. 하지만 말이야... 그 내부에 결계보다 더 큰 세계가 생기면 어떻게 될까?”
“네?”
네기의 의문스러운 표정을 뒤로한채 시로는 천천히 눈을 감으며 심상을 떠올렸다. 그리고 잠시 후 시로의 입에서 주문이 흘러 나왔다.
“몸은 검으로 되어있다.”
그 순간. 네기와 시로, 아스나를 가두고 있던 결계는 그대로 쩍-쩍- 갈라지더니 깨진 유리처럼 무간방처의 결계가 부서져 버렸다.
치구사의 명령으로 무간방처의 결계 안으로 들어온 시로들을 감시하던 소년은 결계의 이상이 있음을 느꼈다. 주술의 핵이 파괴당하지 않았음에도 무간방처의 결계가 깨져 나가고 있었다.
“어... 어떻게 된 거지?!”
소년은 시선을 다시 시로들에게로 옮겼다. 그리고 시로가 토리이에 손을 얹고서 주문을 외우는 것을 보았다. 저거다. 소년은 그렇게 생각했다. 아니 그렇게 느꼈다. 소년은 전신에 기를 흩어놓고 전투준비를 했다. 여지껏 시종의 뒤에서 마법만 쏘아대는 나약한 서양마법사들을 경시해 왔지만 이번에는 왠지 만만치 않을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자 가지.”
무간방처의 결계가 깨졌음을 확인한 시로는 토리이의 얹었던 손을 떼고 네기들을 보며 말했다. 네기들은 무간방처의 결계를 무척이나 가볍게 깨버린 시로의 능력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먼저 가고 있던 시로는 갑자기 앞을 가로막는 소년의 모습에 걸음을 멈추었다.
“여기서부터는 통행금지야.”
소년은 그 말과 동시에 품속에서 세장의 부적을 꺼내 뒤로 던졌다. 부적이 땅에 떨어지자마자 모습을 드러낸 세 마리의 식신... 하나같이 꽤나 강력한 식신들이었다. 단지 ‘어지간한 보통의 능력자’들에게 있어서 말이다...
“방해 된다.”
언제 꺼내들었는지 시로는 마궁 가 베이라를 전방에 겨누고 있었다. 그리고 텅 빈 오른손에 세자루의 칼라드볼그를 투영했다. 소년은 시로가 텅빈 활시위를 잡아당기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콰광-! 콰광쾅쾅쾅-!
어느새 세자루의 칼라드볼그가 세 마리의 식신을 꿰뚫었다. 완전히 꿰뚫렸다지만 가만히 두면 반나절 내로 회복될 정도의 회복력을 지닌 식신들이었다. 하지만 시로는 적의 식신을 가만히 둘 만큼 친절하지 못했다.
“브로큰 판타즘.”
시로의 중얼거림과 함께 식신을 꿰뚫은 세 개의 칼라드볼그가 폭발했다. 가 베이라의 효과에 의해 마력이 증폭된 탓인지 칼라드볼그의 폭발력은 평소의 배에 가까웠다. 소년은 전율했다. 아무리 자신이라도 식신 세 마리를 저렇게 가볍게 날려버리지는 못한다. 게다가 자신이 부른 식신은 전부다 상급에 드는 녀석들... 저렇게 간단히 날아갈 만한 녀석들이 아니었다.
“큭-!”
소년은 전신의 털을 곤두세우고 손톱의 날을 세웠다. 그리고 전투자세를 잡았다. 설령 상대가 안 될지라도 한번 붙어보고 싶다. 그런 생각이 소년의 뇌리에 휘몰아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