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화
잠시 후... 하늘을 꿰뚫은 뇌광이 그치고 새하얀 섬광이 중앙호수를 가득 메웠다. 그리고 상당한 위력의 충격파가 뇌광이 떨어져 내린 자리에서부터 퍼져나갔다. 네기와 카모는 힘겹게 충격파에 버티며 빛 무리가 사라지기를 기다렸다.
슈우우...
서서히 빛 무리가 걷히며 충격파도 잠잠해졌다. 그리고 이내 빛 무리가 다 걷혔을 때... 네기는 절망을 느꼈다. 거인이 아무런 타격도 없이 서있는 것 이였다. 아니... 타격은 있었다. 단지 거인의 재생력이 워낙에 뛰어난 터라 타격이 순식간에 아물어 버린 것이다. 치구사는 거인의 어깨 위에서 안도의 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휘유... 역시 사우전드 마스터의 아들인가? 하마터면 료우멘 스쿠나노카미의 힘을 발휘하지도 못하고 골로 갈 뻔했네..."
그만큼 네기가 시전한 인디그네이션의 위력은 엄청났다. 만약 료우멘 스쿠나노카미가 아니었다면... 그리고 코노카의 마력이 없었다면 버티지 못했을 지도 모를 엄청나기 그지없는 위력이었던 것 이였다. 하지만 그 엄청난 위력의 마법도 막혔다. 아마도 그 위력으로 보아 대부분의 마력을 사용했으리라...
"하지만 이것으로 끝인가?"
치구사는 미소를 지으며 힘겨워 하는 네기를 보았다. 신참에게 걸린 포박마법도 거의 풀린 듯 하니 저 사우전드 마스터의 아들은 그 신참에게 맡기면 될듯 했다. 이것으로 이쪽의 승리는 거의 확실시 된 것이다. 그렇게 치구사가 승리에 대해 확신하고 있을 때 치구사의 귓속으로 누군가의 목소리가 파고들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해?"
갑작스럽게 들린 목소리에 치구사는 뒤로 돌아보았다. 여름이 가까움에도 호수 한 가운데 얼어있는 얼음... 그리고 그 얼음 위에 은발과 흑발의 소녀가 서 있었다. 바로 이리야와 마리였다.
"누... 누구냐?!"
치구사의 물음에 이리야는 악동처럼 웃으며 대답했다.
"네기 선생님의 지원군이지! 중압(重壓)!"
이리야의 외침과 동시에 거인에게 엄청난 중력이 부가되었다. 다행이도 치구사는 코노카의 주력에 의해 중압을 막을 수 있었지만 갑작스런 적습에 거인에게 걸린 중압까지 풀 생각을 하지 못했다. 거인이 중압에 의해 몸을 수그리자 마리는 기다렸다는 듯이 거인에게로 뛰어 올랐다. 갑작스런 마리의 행동에 치구사는 당황해하며 식신을 꺼내 막으려 했다. 하지만 아무리 약체라 해도 영령인(어디까지나 전직) 마리. 식신정도로 막을 수 있을 만큼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불러들인 기병으로 단숨에 식신을 베어버린 마리는 그대로 코노카를 데리고 이리야가 있는 곳으로 단숨에 뛰어 올랐다.
호수 중심 1KM밖
뒤 늦게 호수에 도착한 시로는 마침 코노카를 탈환한 마리의 모습을 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약간은 사악해 보이는 미소를 지었다.
"이것으로 걱정 없이 혼내줄 수 있겠군..."
어느새 시로의 손에는 마궁 가 베이라가 들려있었다.
"트레이스 온!"
마력이 회로를 타고 손으로 집중되었다. 그리고 어느새 시로의 손에 비틀린 칼라드볼그가 생성되 있었다.
"자... 그럼 우선 1발!"
시로는 활시위에 비틀린 나선검을 걸고 팽팽하게 활시위를 잡아 당겼다.
"큭... 빨리 중압을 풀어야...!"
갑작스럽게 많은 일이 있었던 탓에 이제야 정신을 차린 치구사는 재빨리 료우멘 스쿠나노카미에게 걸린 중압주문을 해제하려 했다. 그러나 치구사에게 그럴만한 시간적 여유는 오지 않았다.
쾅-!
요란한 굉음과 동시에 료우멘 스쿠나노카미의 옆구리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치구사는 당황해하며 소리를 질렀다.
"도...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그러나 그 물음에 답해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흐음... 이용할 가치가 충분하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나 보군..."
백발의 소년은 치구사가 불러낸 료우멘 스쿠나노카미를 보며 중얼거렸다. 잠시 후, 소년은 엄청난 마력을 사용한 나머지 지쳐서 움직이지도 못하고 있는 네기에게로 향했다.
"뭐... 방해물 처리로 만족하는 편이 좋으려나?"
소년은 회색빛이 머문 손가락을 네기에게 향했다. 지금 소년의 손에 머문 빛은 상당히 고위에 속한 석화마법... 어지간한 주술사로는 도저히 치유가 불가능할 정도의 위력을 지닌 석화마법이었다. 이제 이 마법으로 네기를 석화시키면 자신들 앞에 방해물은 없을 것이다. 그때 소년에게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봐... 애송이... 우리 꼬맹이한테 무슨 짓을 하려는 거지?"
갑자기 들리는 서늘한 목소리에 소년은 자신도 모르게 뒤로 돌아봤다. 그러나 뒤에는 아무도 없었다.
"어딜 보는 거지?"
어느새 네기에게로 향하고 있던 손이 붙잡혔다. 소년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소년의 눈에 지쳐있는 네기의 그림자 속에서 튀어나오고 있는 한명의 소녀가 보였다. 마법사 세계에서는 너무나도 유명한 그녀, 바로 에반젤린이었다.
"우리 꼬맹이가 꽤나 신세를 질 뻔했군."
에반젤린은 씨익 웃으며 소년을 단숨에 던져버렸다. 소년은 호수 물을 가르며 날아가다가 곧바로 육지에 충돌해 버렸다.
"에... 에반젤린?!"
"빚은 갚은 거다. 네기꼬맹이."
에반젤린은 반가워하는 네기를 보며 악동 같은 미소를 지었다.
"도... 도대체 무슨 일인거야?!"
료우멘 스쿠나노카미의 옆구리에서 일어난 갑작스런 폭발에 치구사는 아무런 대처도 하지 못했다. 아니 대처를 하고자하는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콰광쾅쾅쾅-!
연속되는 폭발, 이 폭발은 평범한 폭발이 아닌지 대귀신 료우멘 스쿠나노카미는 폭발이 일어날 때마다 무척이나 괴로워했다. 게다가 폭발들은 이내 서로 겹치기 시작하더니 탐욕스럽게 주위의 공기를 먹어치우며 불기둥이 되었다. 아니 화염 폭풍이 되었다. 자신을 태우려는 화염에 치구사는 자신에게 있는 부적을 모두 사용해 자신의 몸을 보호해야만 했다.
"자... 마지막은 큰 거다!"
대략 15발에 이르는 칼라드볼그를 속사한 시로는 또다시 회로에 마력을 흘려보내며 투영을 개시했다.
"트레이스 온!"
이번에 투영하는 보구는 A++급에 이르는 보구 엑스칼리버인터라 개념을 비트는데 꽤나 힘이 들었다. 그러나 잠시 후 비틀린 나선검의 형태를 지닌 엑스칼리버가 시로의 손에 들렸다. 시로는 비틀린 엑스칼리버를 활시위에 걸며 불의 폭풍을 노려보았다.
"가라! 나선 엑스칼리버-!!"
시로가 활시위를 놓자마자 황금빛 섬광이 불의 폭풍을 향했다.
황금의 섬광이 화염 폭풍과 만나자 화염폭풍은 그야말로 모든 것을 삼켜버릴 듯한 폭염이 되어 거인을 태우고 있었다. 그러나 거인은 엄청난 재생력으로 폭염을 견디고 있었다. 에반젤린은 그 광경을 보고는 '재밋다'는 듯이 말했다.
"흐음... 에미야 선생이 한 일인가? 정말 엄청나군. 저쪽 거인도 굉장한데? 저런 화염 폭풍 속에서도 계속 재생하다니 말이야~"
"저... 저기... 안 도와 줘도 되나요?"
네기의 물음에 에반젤린은 무척이나 친절(?)하게 설명했다.
"네기... 내 주특기가 뭔지 알아? 그건 바로 빙계마법이야. 그런데 저런 화염에다가 빙계마법을 쓰면 어떻게 될까? 바로 상쇄되어 버릴걸?"
에반젤린의 설명에 네기는 저번에 에반젤린과 싸웠을 때의 기억을 떠올렸다. 확실히 그때 그녀가 썼던 마법의 대부분은 빙계였었다.
그렇게 네기가 옛 기억을 뒤지고 있는 동안 불길은 서서히 약해지며 거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4개의 팔중 2개의 팔이 완전 소각되어버리고 군데군데에 아직도 불길이 타오르고 있었다.
그어어어어-!
거인은 무척이나 괴로운지 소리를 질렀다.
에반젤린은 한동안 그 거인을 지켜보다가 네기에게 말했다.
"네기, 잘 봐라. 이런 대규모의 전투에서 마법사의 역할이란 말이지 궁극적으로 포대야. 한마디로 전위에서 싸워줄 동안 큰 걸 한방 먹이게 마법사의 역할이야. 그런 의미에서 네가 쓴 마법은 쓸만했지만, 아직 마력 활용이 어설퍼. 지금부터 어둠의 복음이라 불리는 최강 마법사의 힘을 보여주지!"
그 말과 함께 에반젤린은 검은 망토를 활짝 펼치며 날아올랐다. 그리고 먼저 대기 중이던 차차마루에게 명령을 내렸다.
"차차마루, 결계탄."
"알겠습니다."
차차마루는 대전차포에 버금가는 위력을 지녔을법한 총의 총구를 거인에게로 들이밀었다. 그리고 발사되는 탄환. 탄환은 거인에게 명중하자마자 거대한 결계를 형성하며 거인을 가두었다. 가두어진 것을 깨달은 거인은 한층더 난동을 부리기 시작했다.
"흐음... 사토미가 만든 결계탄. 꽤나 쓸 만한데?"
"마스터. 아무리 힘이 줄었다지만 이정도 질량을 상대로는 약 30초 정도 밖에 구속하지 못합니다. 어서..."
"알고 있어."
차차마루의 경고에 에반젤린은 주문을 영창하기 시작했다. 주위의 마력이 공명하며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계약에 따라 나를 따르라 얼음에 여왕! 오너라, 영원한 어둠! 영원의 빙하!!"
에반젤린의 주문과 함께 거인은 급속도로 얼어 붙어버렸다,
"자... 자꾸 연달아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야?!"
료우멘 스쿠나노카미를 소환하자마자 일어난 무수한 일들로 인해 치구사는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게다가 기껏 화염지옥을 빠져나왔더니 이번에는 료우멘 스쿠나노카미가 완전히 얼어버린 것이다. 그것도 아주 순식간에. 치구사는 본능적으로 자신의 눈앞에 떠있는 소녀가 원인임을 깨달았다.
"넌 또 누구야?!"
치구사의 걋슴?에반젤린은 사악한 웃음으로 대답했다.
"크크크... 상대가 나빴어. 이 여자야! 거의 절대 영도로 사방 150피트를 완전 동결시키는 섬멸주문이다. 아마 저 덩치로도 막을 수 없을 거야. 특히나 빈사상태로는 더더욱! 나의 이름은 흡혈귀 에반젤린, 어둠의 복음 에반젤린A.K.맥도웰!! 사상 최강의 악의 마법사다!! 아하하하하!!"
에반젤린은 자기소개를 끝내고 영창을 계속했다.
"모든 생명이 있는 자에게 평등한 죽음을! 그것은 안식!"
영창이 계속되면서 얼음덩어리가 된 거인의 몸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료우멘 스쿠나노카미의 어깨에 있던 치구사는 무척이나 당황했으나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세상의 끝- 부서져라!"
에반젤린은 영창을 끝내며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요란한 굉음과 동시에 얼음조각이 된 거인은 부서져 내렸다. 에반젤린은 부서져 내리는 거인을 보며 비웃음을 날렸다.
"멍청한 것, 전설의 귀신인지 뭔지 모르겠지만 내 상대는 아니야!"
에반젤린은 부서진 얼음조각을 뒤로한 채 네기가 있는 곳에 착지했다.
"거기 잠깐-!!!"
한창 싸우고 있던 대장요괴는 길가메쉬들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아무도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요괴들을 향해 공격을 행하고 있었다. 대장요괴는 그들의 만행에 무척이나 노하면서도 몇 번이고 소리를 질렀다.
"잠깐!! 싸움 좀 멈추라니까!! 저기를 봐! 저기를!!!!"
그제서야 길가메쉬를 포함한 다른 사람들은 거인이 있던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들은 보았다. 부서져 내리는 거인을...
"너희들의 승리다. 이제 갈 테니까 제발 좀 그만해라!"
"에이... 좀 섭하다해!"
"그러게... 아직 몸도 안 풀렸는데..."
"제발!!!!"
뒤늦게 참전한 쿠페이와 마나의 말에 대장요괴는 처절하게 절규했다.
"알겠냐, 네기? 이번 일을 요즘 내가하고 있는 RPG게임에 비유하자면 게임초반에 죽기직전의 위기에서 최종보스가 나타나 구해준 셈이지. 다음에 또 나의 도움을 받을 수 있을거란 생각은 말라고. 알았어?"
"그만 좀 해"
네기들과 합류한 시로는 네기를 향해 설교를 늘어놓는 에반젤린에게 한마디 했다. 그러자 에반젤린은 눈을 흘기며 시로를 쳐다보았다.
"너도 말이야, 척 보기에도 이런 일 한두번 겪은 게 아닐 텐데? 그런데 눈앞에 두고도 납치돼? 어? 뭔가 변명 좀 해봐!"
에반젤린의 추궁에 시로는 당황했다. 확실히 방심했다고는 하나 코노카를 목적지에서 빼앗긴 것은 시로 자신의 잘못이 컷었던 탓이었다. 그렇게 에반젤린에게 추궁당하고 있던 시로는 뭔가 안 좋은 예감이 들었다. 그렇게 시로가 딴 생각에 빠지자 에반젤린은 얼굴을 찌푸리며 소리를 질렀다.
"무슨 딴 생각을 하는 거야?!"
순간, 시로는 에반젤린의 등 뒤에서 무엇인가 나타나는 것을 보았다. 살기가 느껴지는 것으로 보아 최소한 호의적인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잠시 후 그 '무엇'의 실루엣이 드러났다. 아까 전에도 보았던 백발의 소년이었다.
"에반젤린!!"
"장벽돌파 돌의 창!"
시로는 다급히 에반젤린을 끌어안았다. 그리고 그 순간, 백발 소년의 주문이 시로의 옆구리로 돌의 창이 시로의 옆구리를 훝고 지나갔다.
"크윽!!"
"시로?!"
"석화의 사안!"
에반젤린을 향한 공격이 실패한 것을 깨달은 소년은 그대로 제 2의 공격 목표를 공격했다. 소년의 손에서 뿜어진 회색의 마광이 로브가 흘러내려 드러난 어깨에 적중했다.
"?!"
네기는 기묘한 감각을 느끼며 쓰러졌다.
갑작스런 일에 뒤늦게 반응한 이리야와 마리는 황급히 네기와 시로의 상세를 보았다. 에반젤린은 자신의 방심에 의해 다치게 된, 두 사람을 보고 분노에 떨었다. 그때 소년이 에반젤린을 향해 물었다.
"에반젤린A.K.맥도웰... 인형사인가?"
그 질문에 에반젤린은 한쪽 손을 손을 힘껏 치켜들며 답했다.
"그래 불사의 마법사지!!"
에반젤린은 엄청난 마력이 담긴 손을 힘껏 휘둘렀다.
콰아아아아앙-
요란한 굉음과 함께 소년은 또다시 날려져야만 했다. 그때 에반젤린의 귀로 미약하기 그지없는 소년의 목소리가 들렸다.
"과연... 진조가 상대라면 좀 불리하지... 게다가 이계의 수호자까지 있으니... 기습으로 부상을 입혔다만 역시 만만한 상대는 아니지... 오늘은 이만 물러나야겠어..."
그리고 소년은 물이 되어 사라졌다.
"이계의... 수호자?"
에반젤린은 소년이 남긴 말을 혼자서 곱씹었다.
소년이 사라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흩어져 있던 코노카 구출대 및 지원대(?)가 중앙호수의 제단으로 몰려들었다.(어째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코타로도 거기에 끼여 있었다.)
“네기!!”
“네기선생님!!”
“시로!!”
“네기도령!!”
도착한 모두는 쓰러져있는 두 사람을 보고는 놀라 소리를 지르며 황급히 두 사람에게 다가갔다.
“시로선생님 쪽은 중상이기는 하지만 시로선생님의 자체치유력도 상당하니 치유마술정돋?어느 정도 회복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네기선생님 쪽은...”
두 사람을 진료하던 차차마루는 네기의 가슴 쪽의 옷을 젖히며 말을 이었다.
“아까 백발소년에게 당한 부위부터 석화가 시작되었습니다. 선생님의 강력한 대 마력과 로브의 강력한 항마력 탓에 석화되지는 않았지만 도리어 ?탓에 폐와 기도가 막혀 죽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차차마루의 말에 모두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에바, 이리야, 어떻게 할 방도가 없는 거야?”
“나는 치유계 마법은 잘 못해... 불사신이라서...”
“나는 방법은 알지만... 용의 피가 필요해...”
현재 여기서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이리야는 마술이지만...) 유일한 두 사람의 선언에 모두의 얼굴은 절망으로 가득 찼다.(왕의 재보의 에릭실은 어쨌냐고 물으면, 길가메쉬의 깜빡은 이제 신에게만 용서받을 수 있으니 넘어가주자.)
그때 한쪽 구석에서 가만히 있던 코노카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기... 네기에게 키스해도 돼?”
“이런 비상시기에 무슨 말이야!!”
모두들 코노카의 말에 어이없어 했으나 단 한 마리, 카모 만큼은 예외였다.
“과연... 그 수가 있었군...!”
“뭔가 방법이 있어?”
카모의 외침에 모두의 시선이 카모에게로 향했다. 카모는 코노카 옆에 있는 세츠나를 향해 물었다.
“세츠나누님, 아까 낮에 코노카누님의 마력 덕에 상처가 모두 회복되었다고 했었지?”
“으...응.”
“그것으로 보아 코노카누님의 마력에는 엄청난 치유능력이 잠재되어 있음을 알 수 있어. 그리고 가계약시, 가계약자의 잠재력과 마력은 일순간 최고조에 이르지...”
“그게 무슨 상관... 아?!”
에반젤린은 투덜거리던 중 카모가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깨달았다.
“설마?”
“그래... 그거야 에바누님, 가계약 중에 최고조에 이른 마력을 그대로 폭주시키는 거지... 뭐 폭주시킨다는 것은 조금 표현이 안 맞을 듯 하기도 하지만... 뭐 어쨌든 시간이 없으니까!”
카모는 재빨리 네기를 중심으로 가계약진을 그렸다. 그리고 코노카는 천천히 네기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갖다 대었다. 그리고 입술과 입술이 겹친 순간 호수는 찬란한 빛으로 물들었다.
“헉- 헉- 그런 괴물같은 녀석들이 마구 튀어나올 줄이야...”
가까스로 그 얼음지옥에서 탈출한 치구사는 전력으로 달리며 산을 내려가고 있었다.
“큭... 하는 수 없지... 다음기회를 노리는 수밖에...”
그렇게 다음 기회를 노리려 마음먹은 치구사, 그 순간 주위에서 인기척과 함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당신... 악당이지?]
[자신의 목적, 욕망을 위해 타인의 희생을 꺼리지 않는 자. 그것이 바로 악인이지]
“왜... 왠 놈이냐?!”
갑작스럽게 들린 목소리에 치구사는 공포에 떨며 물었다. 그러나 목소리의 주인은 치구사의 물음에 아무 대답 없이 계속 말을 이었다.
[하지만 자존심 있는 악이라면 언젠가 자기도 같은 악에 의해 자신의 몸을 망칠 날이 오리라는 것을 각오했을 터! 너에게는 그런 각오가 있는가!]
어느새 몇 자루의 칼이 치구사의 발아래에 꽂혔다. 그리고 공포에 떠는 치구사의 앞에 자신의 몸보다 더 큰 칼을 든 인형이 눈에 들어왔다. 인형은 덜그럭거리는 소리를 내며 무표정하게 말했다.
“그런 각오가 없다면 넌 그저 어리석거나 삼류겁쟁이에 발 빠른 쥐새끼일 뿐이야.”
“히이익-!”
“자존심도 없는 악은 땅바닥이나 설설 기다 비참하게 죽는 게 제격이지.”
인형은 치구사를 향해 칼을 휘둘렀다. 치구사는 너무나 공포에 질린 나머지 정신의 놓고 말았다. 인형은 기절한 치구사의 옆에 칼을 꽂아놓고 그 위에앉아 투덜거렸다.
“뭐... 요즘은 우리 주인님도 성질이 많이 죽어서 재미없기는 마찬가지지만...”
참새가 지적이는 아침
“으음...”
네기는 머리에 묘한 두통을 느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네기는 두툼한 이불의 감촉에 주위를 둘러보았다. 어느새 숙소로 돌아와 있는 것 이였다. 네기는 자신이 언제 숙소로 돌아왔는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그때 마침 시로가 네기의 상태를 보러 들어왔었다.
“깨어났구나 네기.”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요? 주범인 치구사는...?”
네기의 속사포 같은 질문에 시로는 곤혹스러워 하며 말했다.
“하나씩 물어, 하나씩!”
시로의 말에 네기는 차근차근 물었다.
“우선 너는 그 백발소년의 공격에 의해 폐와 기도가 거의 석화되어 죽기 직전이었지, 나도 소년의 공격에 옆구리를 당했었고 말이야. 그때 카모가 코노카와 너를 가계약시켜 코노카의 마력을 활성화시켜서 너와 나를 치유한 거지. 주범인 치구사도 에반젤린이 잡아서 협회장어르신께 넘겼다고 하더군...”
“휴... 다행이다.”
시로의 말에 네기는 안도의 한숨을 내 쉬었다.
“네기,시로! 에이슌 녀석이 부른다.”
에반젤린의 말에 두 사람은 자리에서 일어나 에반젤린의 뒤를 따랐다.
“아, 여러분 잘 쉬었나요?”
코노에 에이슌은 몰려오는 네기 일행을 보며 인사했다. 에반젤린은 약간은 피곤해 보이는 에이슌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더니 입을 열었다.
“에이슌, 스쿠나의 재봉인은?”
“약간의 문제가 있었긴 했지만 시로 선생님과 이리야양 덕분에 무사히 마쳤습니다.”
“그래? 다행이군...”
그때 네기가 에이슌의 뒤에서 자그마한 목소리로 물었다.
“어... 어르신, 코타로는?”
“코타로군 말인가요? 그렇게 무거운 처벌은 없을 겁니다. 아직 어리기도 하고 말이죠. 치구사에대해서도 저희 측에서 알아서 하겠습니다.”
“그보다 놓친 백발소藪?대해서는...?”
시로의 물음에 에이슌은 약간 얼굴을 찌푸렸다. 아마도 어제 당한 기억이 떠올라서인 듯 했다.
“현재 조사 중입니다. 지금으로서 그가 스스로 자처한 이름이 페이트 아웨룬크스라는 이름과 한달전 이스탄불 마법협회에서 일본으로 연수형태로 왔다는 것밖에는... 뭐 당연히 위장일테지만요... 그나저나 그새 다 왔군요. 여깁니다, 네기군.”
에이슌의 말에 네기 일행은 고개를 들어 에이슌의 시선이 향하는 곳으로 보았다. 시선의 끝에는 서양식... 아니 천문대와 비슷한 양식으로 지어진 저택이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니 그곳은 커다란 하나의 서고였다.(바벨탑에 비교하자면 너무나도 작지만)
5조의 도서관 탐험부 사람들은 집 한가득 쌓인 무척이나 기쁜 표정을 지었다.
“와~ 책이 많다!”
“그가 마지막으로 찾았을 때의 모습 그대로 보존해 두었습니다.”
에이슌의 말에 네기는 별장내부를 둘러보며 무척이나 고조된 기분이 되었다.
“여기서 옛날에 아버지가...”
네기와 시로등이 눈을 떼고 있는 사이 도서관 탐험부의 아이들은 모두 별장 안에 있는 책들을 뒤지기 시작했다.
“제지 안 해도 돼?”
“일반인이 볼 때는 무슨 책인지 모르니까요. 아가씨들! 고인의 책이니 조심해서 다루세요!”
에이슌은 혹시나 별장 안에 있는 책이 손상될까 걱정이 되어 도서관 탐험부의 아가씨들에게 약간의 주의를 주었다. 그렇게 모두가 별장 안을 살피고 있을 때 네기는 에이슌에게 다가가 물었다.
“저기... 어르신, 아버지에 대해서 말씀해 주실 수 있나요?”
“흐음... 그러지요... 세츠나, 코노카, 아스나, 이쪽으로... 아, 시로 선생님도 잠시... 여러분들에게도 얘기하는 편이 좋겠지요?”
책을 읽고 있던 유에는 갑자기 뭔가 수상함을 느끼고 네기의 근처로 자리를 옮겼다. 사람들이 모이자 에이슌은 입을 열어 말을 시작했다.
“저는 일찍이 큰 전쟁에서 아직 소년이었던 나기와 함께 싸웠던 전우였어요. 그리고 20년 전, 평화가 돌아왔을 때. 그는 이미 수많은 활약으로 인해 영웅... 사우전드 마스터로 불리고 있었지요.”
에이슌은 지긋이 책상위에 있는 사진을 바라보았다.
“그 사진은?”
“사우전드 마스터와 전우들... 20년 전의 사진이지요. 참고로 제 옆에 있는 것이 15살의 나기 스프링필드... 바로 네기군의 아버지지요.”
에이슌의 말에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사진을 보기위해 책상으로 몰려들었다.
“이 사람이...”
“네기의 아버지?”
‘확실히 내가 봤던 나기랑 비슷하군...’
‘어라... 이 사람들?’
모두가 사진을 보며 각자의 상념의 빠져있을 때 에이슌이 말을 이었다.
“아마가사키 치구사의 부모님도 이 전쟁 때 목숨을 잃었지요. 아마 서양마법사에 대한 원한이며 이번 행동의 원인이겠지요. 어쨌든 20년 전의 전쟁이 끝난 후에도 저는 한동안 나기와 함께 다녔습니다. 그런데 10년 전... 돌연 자취를 감췄지요... 공식적인 기록은 1993년 사망... 그의 마지막 발자취가 어떻게 되었는지 아는 사람은 없답니다... 저도 그 이상은 아는 것이 없군요... 미안합니다, 네기.”
“아... 아니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네기는 약간의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결국 단서는 없는 걸까요?”
“유감이구나 네기...”
카모와 시로의 말에 네기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 그렇지 않아요. 아빠의 방을 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여기 온 보람이 있는 걸요.”
에이슌은 그런 네기른 한동안 바라보다가 뒤늦게 생각난 것이 있는지 손을 탁 치며 별장을 뒤져 무엇인가를 꺼냈다.
“참! 네기, 이것을...”
‘저것은?’
유에는 네기 선생님일행의 얘기를 모두 엿들었다. 그 중 이해 못할 것도 많았지만 그것이 네기 선생님의 아버지와 관련된 일이라는 것은 확실했다. 지금 코노카의 아버지가 네기 선생님께 건네고 있는 것도 필시 네기 선생님의 아버지와 관련이 있는 것이리라...
그렇게 유에가 생각에 빠져있을 때 아래쪽에서 카즈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 위쪽에 계신 여러분들! 어려운 얘기는 다 끝났나요? 기념사진 찍게 어서들 내려와요! 아직 5조와 6조를 깜빡했었지 뭐에요~.”
카즈미는 모두를 한 곳에 모으고 합동 기념사진을 찍었다. 그렇게 수학여행의 마지막 날이 끝났다.
마호라 학원행 신칸센
"안녕하세요. 선배, 길군~"
여담이지만 수학여행이 끝나고 돌아오던 중 길가메쉬와 세츠나는 같이 가게 된 예비 전학생에게 기겁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