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화
이튿날 방과 후 바벨탑 내 훈련장
"아하하, 반갑네. 네기 도령."
"우앗! 쿠페이가 어째서 여기에?!"
네기는 훈련장 중앙에 대기 중인 쿠페이를 보고는 놀라서 외쳤다. 이곳 바벨탑은 자신과 시로의 훈련 장소... 그런데 의외의 인물이 훈련장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었다. 때마침 뒤쪽에서 시로가 오고 있음을 느끼고는 고개를 돌려 시로에게 물었다.
"시로형, 쿠페이가 왜 여기에...?"
"아아... 쿠페이 말인가? 너의 무사부로 이곳에 초청했지."
"예? 무사부요?"
네기의 물음에 시로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너도 알다시피 나는 무기를 주로 사용하지, 물론 근접전용 격투술도 익히고 있기는 하지만 너에게는 맞지 않아서 말이야... 그래서 네게 맞을 만한 격투기를 고민 고민 하던 중에 쿠페이의 중국 권법을 보니 네게 딱 맞을 듯 하더라고. 마침 저번일로 네 정체에 대해서도 알겠다. 별로 큰 무리가 없을 것 같아서 바로 부탁했지."
시로의 말이 끝나자마자 쿠페이가 앞으로 나섰다.
"그런 이유로 오늘부터 네기 도령에게 중국 권법을 가르치게 되었다네. 잘 부탁한다해"
"아... 잘 부탁합니다. 쿠페이."
그렇게 네기의 중국권법 수련이 시작되었다.
"우선 네기 자네가 배울 것을 정하도록 하지해."
"네, 쿠페이!"
"일단 자네 몸부터 살펴볼까해."
쿠페이는 네기에게 다가가 몸을 더듬었다. 몸의 근육상태와 신체이상을 살피기 위해서 였다. 그렇게 한동안 몸을 더듬던 쿠페이는 이내 혼자서 고민에 빠졌다.
"일단 경(勁)수련이 필요한 형의권은 성장에 지장을 줄 수도 있을 테니 빼는 편이 좋겠고... 그렇다면 역시 무난한 팔괘장과 팔극권이 좋겠지해? 그리고 단련용으로 육합권도 익히게 하는 편이 좋겠고..."
그렇게 홀로 중얼거리던 쿠페이는 이내 결정을 했는지 손을 탁 치며 외쳤다.
"좋아, 결정했다해!"
그리고는 곧장 네기를 향해 돌아보며 말을 이었다.
"네기, 네가 배울 것은 팔극권과 팔괘장, 그리고 육합권이다해!"
사실 몇가지 더 가르쳐 줄 수도 있었지만 일단 일정수준에 올라야 되는 것도 있었고 게다가 실전에서는 사용하기 힘든 것도 많았다. 지금 시로와 네기가 바라는 것은 실전에 쓰일 수 있는 기술들... 이정도가 딱 좋았다.
"자, 그럼 우선 기본실력을 테스트 해보겠다해!"
쿠페이는 그렇게 말하고 곧장 자세를 취했다. 네기도 쿠페이의 말을 듣자마자 곧장 자세를 취했다. 그리고 한동안 두 사람사이에 정적이 깃들었다.
"타핫!"
먼저 움직인 것은 네기였다. 네기는 수학여행 당시 코타로를 상대 했을 때 사용했던 마법의 사수를 통한 강화를 사용했다. 갑작스런 네기의 돌진과 그 돌진력에 쿠페이는 잠깐 놀라긴 했으나 이미 수많은 수련과 싸움을 통해 단련된지라 가볍게 흘려 넘겼다.
"호오... 나쁘진 않구려... 마법에 의한 강화인가? 하지만!"
쿠페이는 그대로 팔괘장의 투로를 밟으며 순식간에 네기의 뒤를 점했다. 네기는 뒤늦게 쿠페이가 자신의 뒤에 있음을 눈치 채고 돌아서려 했으나 아직 익숙지 않은 기술을 쓴 탓인지 아니면 급속한 행동을 하려던 탓인지 몸에 상당한 부담이 왔다. 쿠페이는 그런 네기의 모습을 보고는 혀를 차며 가볍게 네기를 넘어뜨렸다.
"그렇게 무리한 행동은 몸에 부담을 많이 준다해."
쿠페이가 설명하는 동안 네기는 재빨리 일어서서 쿠페이를 공격했다. 상당히 깔끔한 기습, 그러나 쿠페이가 보기에는 조잡하기 그지없었다. 쿠페이는 가볍게 네기의 공격을 흘리고 네기의 가슴에 손을 얹었다. 순간 위험을 느낀 네기는 재빨리 몸을 비틀었다. 그리고 그 순간...
쿵-
요란한 진각과 함께 네기의 몸이 튕겨져 나갔다. 쿠페이의 손바닥에서 발한 발경... 그것의 위력은 엄청나서 빗겨 맞았음에도 네기는 숨이 막혀 옴을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쿠페이는 의외로 멀쩡한 네기를 보고는 감탄하며 말했다.
"오오~ 반사 신경이 굉장하구려. 보통은 여기서 기절일 터인데..."
쿠페이는 발경을 사용하면서 힘을 많이 줄였지만 그래도 보통사람... 아니 어지간히 체격이 좋은 사람이라도 단번에 기절 시킬 수 있을 정도의 위력이었다. 그런데 그것을 맞고도 기절하지 않았다는 것은 발경이 발하는 순간 몸을 틀어 위력을 반감시켰다는 얘기가 되는 것이었다.
쿠페이는 네기의 뒤로가 네기의 몸속에 잔류하고 있던 발경의 충격을 완전히 해소시킨 후 입을 열었다.
"오늘은 간단하게 육합권의 형만 익히도록 하지."
"예-..."
무척이나 짧은 격투였지만 상당한 체력과 심력을 소모한 네기는 힘겹게 대답하며 쿠페이의 뒤를 따랐다.
6시간 후
"어때?"
지쳐 쓰러진 네기를 뒤로한 쿠페이는 시로의 물음에 의문스런 표정을 지으며 되물었다.
"도대체 어떤 훈련을 한거냐해? 반사 신경, 기본체력, 그리고 타격에 대한 저항력까지... 또래의 아이들보다 월등하다해. 아니 어지간한 어른들보다 훨씬 낮다해. 보통 훈련으로는 이런 신체능력이 나올 수 있을 리 없다해."
쿠페이의 의문에 시로는 빙그래 웃으며 대답했다.
"특별히 한 훈련은 없어. 그저 실전에 가까운 대련을 계속 해왔을 뿐이지."
"도대체 얼마나 대련을 해왔기에...?"
"글쎄..."
시로는 쓰러져있는 네기를 보며 빙긋 웃기만 했다.
이튿날 방과 후 마호라 중등부 체육관 복도
"뭐? 사사키 마키에가 출전하지 못할지도 모른다고?"
사사키 마키에는 리듬체조부 고문인 니노미야 선생님을 만나러 가고 있었다. 얼마 안 있으면 열리는 리듬체조 여름 대회의 출전 여부 탓이었다. 그렇게 고문인 니노미야 선생님을 만나러 부실로 향하던 마키에는 부실 안에서 들린 선생님의 말에 충격을 받았다. 마키에는 충격에 휘청 이는 몸을 추스르고 선생님의 말을 엿들었다.
"어째서야?"
"뭐, 기술적으로는 문제가 없어. 아니 도리어 천부적이라고 해야겠지? 여지껏 많은 아이들을 봐 왔지만 이 아이만큼 리듬체조에 어울리는 아이는 없었으니까..."
마키에는 고문인 니노미야 선생님의 평가에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러나 듣다가 이상한 점을 느꼈다. 여기까지 들어서는 자신이 출전하지 못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그런데 왜?"
"뭐... 기술적으로는 좋지만... 그 아이의 성격 탓이랄까... 그 아이의 밝은 성격과 단순한 점은 장점임과 동시에 단점이야. 좋게 말하면 천진난만, 나쁘게 말하면 유아틱, 한마디로 연기라기보다는 그저 기분대로 움직이는 타입이지. 그 바람에 아직 지금 단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
고문인 니노미야 선생님의 혹독한 평가에 마키에는 울상을 짓고는 체육관이 떠나가라 할 정도로 소리를 지르며 밖으로 달렸다.
그렇게 한참을 달리던 마키에는 세계수 앞 언덕까지 오게 되었다.
"유아틱하다고? 도대체 뭐가 부족한 걸까 나..."
그렇게 한참이나 자책을 하던 마키에는 세계수 쪽에서 들리는 기합성에 고개를 돌려 보았다. 기합성이 들리는 곳을 보니 담임인 네기가 연무를 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저건 네기? 그러고 보니 어제부터 쿠페이한테서 중국권법을 배운다고 했었지..."
마키에는 네기를 놀래켜 줄 요량으로 살금살금 네기에게로 다가갔다.
"좋아, 다음 형이다."
네기는 모처럼 밖에서 홀로 연습하고 있었다. 본래는 평소처럼 바벨탑에서 시로,쿠페이와 함께 연습할 생각이었으나 길가메쉬의 사정에 의해 홀로 연습하게 되었다. 하지만 간만에 혼자서 하다 보니 여러 가지로 구상이나 생각들을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그렇게 훈련에 열중하고 있던 중 갑자기 뒤쪽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네기는 반사적으로 탁창장을 상대의 목을 향해 날리고 있었다.
"히엑-!"
익숙한 목소리에 네기는 자신이 공격하고 있던 소녀를 보았다. 자기 반의 학생인 사사키 마키에였다. 네기는 재빨리 공격을 거두고 식은땀을 흘리며 인사했다.
"아... 안녕하세요. 마키에?"
"아... 안녕 네기..."
마키에는 너무나도 놀란 나머지 네기에게 인사하자마자 다리가 풀려버렸다. 마키에는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네기에게 물었다.
"방금 전의 그건 중국권법?"
"네, 팔괘장(八卦掌)의 탁창장이에요. 얼마 전부터 쿠페이에게 배우고 있어요."
"그렇구나... 굉장한데. 격투기 대회라도 나가려고?"
"아니... 그건..."
네기는 마키에의 질문에 당황했다. 보통사람에게는 말할 수 없는 목적으로 배우고 있던 탓이였다. 다행이도 마키에는 무척이나 단순한 터라 네기가 우물쭈물거리자 그냥 넘어갔다.
"그나저나 아까 정말 멋졌어. 다시 해봐!"
"아... 네..."
그렇게 네기와 마키에가 대화에 정신이 팔려있던 중에 한쪽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네기는 갑자기 느껴지는 인기척에 인기척이 느껴지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뾰류퉁한 표정을 짓고 있는 에반젤린이 차차마루,차차제로와 함께 서 있었다.
"꽤 열심이구나, 꼬맹이..."
"아하하... 안녕하세요."
"어라? 에바님, 차차마루님 안녕"
어째서인지 에반젤린의 말에서는 상당한 악의가 느껴지고 있었다. 악의가 가득 찬 에반젤린의 인사에 네기는 힘겨운 표정을 지었다. 마키에는 전번에 있었던 흡혈귀 사건 때의 세뇌 탓인지 무의식적으로 존칭을 말하고 있었다.
"쿵푸수업을 받기로 한거냐? 그럼 내 제자로 들어오겠다던 부탁은 없었던 것으로 해도 상관없겠네?"
"그... 그건!"
명백하게 진득한 악의에 제대로 입을 열수 없었다. 그래도 네기는 최대한 변명하기위해 진득한 악의 속에서 억지로억지로 입을 열었다.
"아... 아니 이건 효율적인 전투방법에 대한 연구를 위해..."
"상관없어, 어차피 애초부터 제자를 받을 생각 따윈 없었으니까..."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에반젤린의 말투에서는 여러 감정이 뒤섞여 나오고 있었다.
"무슨 일이야 네기?"
마키에의 물음에 앞뒤 사정을 잘라먹고 대충 말했다. 그러나 마키에게는 그것으로 충분했다.
"그러니까... 본래 에바의 제자로 들어가려 했던 거라 그거지... 그런데 쿠페이한테 쿵푸를 배우기 시작했다고 안 들여 준다라... 쪼잔 하잖아 에바."
"뭐라고?"
마키에의 말에 에바는 이마에 혈관마크를 띄우며 마키에에게 살기를 뿌렸다. 하지만 단순한 마키에는 그 살기를 느끼지도 못하고 말을 이었다.
"사실이잖아~ 혹시 유아체형이라서 마음까지 유아처럼 쪼잔하고 좁은 거 아니야? 뭐 됐다, 됐어. 네기라면 너에게 배우지 않고도 금방 강해질 수 있을 거야."
"크..."
마키에의 말에 에반젤린의 살기는 더욱 짙어졌다. 네기의 얼굴은 이미 창백해질 대로 창백해지고 있었다. 그렇게 일촉즉발의 상황... 그러나 에반젤린은 이내 살기를 갈무리 하며 말했다.
"좋아... 방금 제자입문 테스트내용을 결정했어... 그 쿵푸로 차차마루를 한번이라도 쓰러뜨려 봐라. 그러면 합격시켜주지. 단 1대1이다."
"좋아! 네기라면 그 정도야..."
"가라, 차차마루."
"하지만..."
"잔말 말고."
"예..."
마키에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에반젤린의 명에 의해 차차마루가 움직였다. 차차마루는 눈으로 쫓기 힘들 정도의 빠른 속도로 네기에게 향했다. 네기는 반사적으로 마법의 사수를 손에 인챈트하며 차차마루의 공격을 막았다. 그러나 월등한 힘의 차에 의해 날려져 구석에 처박혀 기절하고 말았다.
"호오... 마법의 사수를 통한 강화라... 재미있군... 하지만 약해..."
에반젤린은 마키에를 향해 말했다.
"마키에, 네기가 깨어나면 전해라. 장소는 여기, 시각은 일요일 오전 0시로 하지... 그럼."
에반젤린은 그렇게 말하고는 차차제로와 차차마루를 대동하며 그 자리를 떠났다. 그리고 남겨진 마키에는 쓰러져있는 네기를 보며 생각했다.
'호... 혹시 나... 엄청난 실수를 한 걸까?'
그렇게 밤은 깊어져만 갔다.
다음날 세계수 앞 공터
"네기, 너는 무섭도록 이해가 빠르고 재능도 있어해... 하지만 이틀 만에 준 달인 급에 가까운 차차마루를 쓰러뜨리라니... 솔직히 무리다해..."
쿠페이는 네기와 대련하면서 네기의 물음에 대답했다. 확실히 네기의 배움이 빠른 편이지만 차차마루의 실력은 준 달인 급에 가까운 수준(어디까지나 네기의 말을 근거로 한 것이지만...)... 아무리 배우는 것이 빠른 네기라지만 이틀 만에 준 달인 급에 이르는 힘을 지니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럼 네기의 제자로 들어가는 것은 무리일려나?"
"네기 선생님은 전투에 있어서는 초보에 가까우니까요."
그렇게 네기와 아이들이 서로 의견을 나누고 있을 때 멀리서 한 소녀가 엄청난 양의 도시락을 들고 오고 있었다. 마키에였다. 마키에는 어제의 일에 책임을 느낀 탓에 네기를 돕기 위해 엄청난 양의 도시락을 가져온 것 이였다.
"네기~ 도시락 많이 싸왔어~!"
마침 점심시간도 되었기에 네기를 포함한 모두는 공터에 둘러앉아 마키에가 들고 온 도시락을 열었다. 도시락은 그야말로 호화 찬란 그 자체였다. 특히 스테미너 회복에 좋은 많은 터라 대련에 소모된 체력을 회복하기 딱 좋을 듯 했다.
"네기, 이것 좀 먹어봐! 아, 이것도!"
마키에는 어제의 일을 만회라도 하고 싶은지 많은 음식을 네기에게 먹였다. 그리고 점심시간이 끝나자...
"우... 몸이 무거워..."
"아... 약해졌다해..."
과다한 스테미너식의 섭취에 의해 네기의 몸은 상당히 무거워져있었다. 그리고 어째서인지 상당한 양의 살이 붙었다.
"미안해 네기! 우리부에 전해 내려오는 비장의 다이어트 방법으로..."
당황한 마키에는 랩으로 네기의 전신을 휘감고 담요를 만 채 근처 마호라 사우나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3시간 후...
"흐어~"
"아아... 훨씬 더 약해졌다..."
네기는 상당한 양의 수분이 몸에서 빠져나가 인간이라 볼 수 없는, 완전 미라상태가 되어있었다.
"미안해 네기!! 자꾸 방해만 되고!!"
네기는 거의 울먹이며 네기에게 사과했다. 네기는 엄청나게 소모되었지만 그래도 선생인데다가 제자인 마키에가 선의로 일을 진행하다가 잘못된 것임을 알고 있었기에 힘겹게 웃으며 말했다.
"아하하하... 괜찮아요, 마키에. 그보다 일요일에 대회 선발시험이 있다고 하지 않았나요?"
네기의 말에 마키에는 안색이 새하얗게 변했다.
"아!! 깜빡했다!! 그랬었지?!"
"역시나..."
마키에와 같이 왔던 아코가 말했다. 모두는 창백한 마키에를 보며 우려의 말을 했다.
"괜찮은 거야?"
"이거..."
"그렇게 안절부절 할 정도면 심각한 거 아니야?"
"응... 선생님이 내 연기가 어린애 같다고... 네기에게도 폐만 끼치고... 나 정말 왜 이러는지 몰라..."
마키에는 거의 울상에 가까워졌다. 아스나는 그런 마키에를 보고는 한가지 제안을 했다.
"마키에, 여기서 한번 리듬체조를 해봐."
"에엑~! 난 못해!!"
마키에는 선생님의 유아틱 하다는 평가에 상당히 자신감을 상실한 상태였다. 하지만 그렇게 때문에 아스나는 마키에를 보며 해보라는 제안을 한 것 이였다. 모두들 아스나의 숨은 의도를 깨달은 터라 마키에를 향해 해보라는 권유를 했다. 그리고 어느새 회복한 네기마저도 마키에를 보며 리듬체조를 해보라고 말하고 있었다.
"하아... 하는 수 없지... 그럼 조금만..."
마키에는 주머니에서 리본을 꺼내 리듬체조를 하기 시작했다. 가벼운 발놀림과 함께 시작된 리듬체조는 마키에의 성격과 같이 단순하고 호쾌하며 경쾌했다. 그야말로 마키에의 모습을 단적으로 드러내고 있었다.
리듬체조를 마친 마키에는 부끄러운지 얼굴을 붉히며 물었다.
"어... 어때?"
짝짝짝-
그렇게 모두에게 묻고 있을 때 멀리서 박수소리가 들렸다. 모두는 갑자기 들린 박수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멀리서 시로가 박수를 치며 다가오고 있었다.
"멋진 리듬체조였어. 네 마음 자체가 그대로 드러나고 있는 걸."
"그... 그런가요?"
"그래, 선생님이 네 연기를 유아틱하다고 생각한 것은 너의 천진난만한 성격이 연기에 그대로 드러나고 있어서겠지. 이런 문제는 네 마음에 조금만 변화를 주면 되는 일이야. 그럼 그 심정이 그대로 네 연기에 드러나게 되겠지? 열심히 해보라고."
시로의 말에 잠시 동안 얼굴이 밝아졌으나 이내 다시 어두워졌다. 테스트가 내일 모레임을 깨달은 탓이었다.
"그래요, 우리 같이 힘내요!"
그러나 자신보다 더 힘든 일을 포기하지 않고 시도하는 네기의 말에 마키에는 다시 힘을 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요일 오전0시 세계수 앞 광장
"마스터, 정말 괜찮은 거야?"
"뭐가?"
차차제로의 물음에 무슨 소리냐라는 표정을 지으며 에반젤린이 되물었다.
"아까 동생 녀석한테 들으니 현재 꼬맹이의 실력으로 동생을 쓰러뜨리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던데? 꼬맹이의 불합격은 마스터로서도 그렇게 바라는 건 아니지 않아...?"
차차제로의 물음에 에반젤린은 이마에 혈관 마크를 띄우며 대답했다.
"어이, 착각하지 마 차차제로. 난 정말 제자 따윈 필요 없어. 게다가 현재 꼬맹이의 실력으로 차차마루를 쓰러뜨린다는 게 한없이 제로에 가까워. 하지만 최소한도로 차차마루를 한번이라도 쓰러뜨릴 정도의 실력을 지니지 않으면 내 수업에 견디지 못해. 만약 못 되면 그것은 꼬맹이의 실력이 없어서라고. 그러니까 차차마루 봐주지 마!"
에반젤린은 밑의 계단에서 대기 중인 차차마루에게 말했다. 차차마루는 에반젤린의 말에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네기를 기다렸다.
뎅~
“네기 스프링필드 제자입문 테스트를 받으러 왔습니다!”
12시를 가리키는 종이 울림과 동시에 네기가 모습을 드러냈다. 에반젤린은 네기의 모습을 찬찬히 살피다가 입꼬리를 치켜올리며 입을 열었다.
“잘 왔다 꼬맹이, 그럼 바로 시작할까? 규칙은 간단해 네가 차차마루를 한번이라도 쓰러뜨리면 바로 합격이다. 하지만 한번이라도 쓰러뜨리지 못한 채 네가 쓰러지면 그걸로 끝이다. 이해했지?”
“그 조건만 통과하면 되는 거지요?”
“그래, 그런데 말이야...”
에반젤린은 손가락으로 네기의 뒤쪽을 가리키며 물었다.
“저 구경꾼들은 어떻게 된 거냐?”
“아... 그게...”
네기의 뒤에는 시로들과 같은 관계자를 제외하고도 뒷세계와 인연이 없는 사람들이 꽤나 있었다. 그들의 공통점이라면 이전에 에반젤린이 자신의 시종으로 삼았던 아이들이라는 걸까? 뭐 그것과는 상관없어 보이지만...
“뭐, 상관없겠지... 그럼 시작하도록 하지!”
에반젤린의 시작선언과 함께 차차마루는 스커트를 벗고 네기는 자세를 잡으며 전신에 마력을 퍼트렸다.
“실례하겠습니다.”
먼저 공격한 것은 차차마루였다. 차차마루는 먼저 페이크인 선타를 먼저 날리고 연계기로 로켓으로 가속한 펀치를 날렸다. 보통 사람이라면 피하기는 고사하고 피해를 최소화 하는데 급급했었을 터이나 이미 이틀 동안의 대련에 의해 이정도 공격은 무리 없이 피할 수 있었다. 네기는 차차마루의 공격을 흘려 넘기며 차차마루의 뒤쪽을 점했다. 그리고 연이어 들어간 팔극권의 전신과타의 수. 그러나 준 달인에 가까운 차차마루는 그 공격을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 재빨리 팔을 오므리며 네기의 공격을 막았다. 외야에서 구경하던 아이들은 네기의 초인적인 움직임에 감탄하며 외쳤다.
“정말 대단한데!”
“제법이다해! 하지만...”
“승부는 길게 끌수록 불리하다는 거지...?”
쿠페이가 고개를 끄덕이는 도중에도 네기는 마력을 통한 강화로 초인적인 움직임을 소화하고 있었다. 에반젤린은 그런 네기를 보며 중얼거렸다.
“정제하지 않은 순수한 마력을 통한 직접적인 강화라... 효율은 떨어질지 몰라도 쓸만하긴 하지...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차차마루를 따라잡는 것조차 힘들 텐데?”
에반젤린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차차마루가 좀 더 움직이는 속도를 올리자 네기는 숨을 헐떡거리며 버거워했다. 네기는 차차마루의 공격을 피하며 잠시 물러서더니 양손과 양발에 마법의 사수를 부여했다. 에반젤린은 갑작스런 네기의 행동에 무엇이 나오는지 흥미진진한 눈으로 네기를 쳐다보았다.
잠깐 숨을 고른 네기는 힘껏 발을 내딛었다.
슥-
그리고 그와 동시에 네기의 모습이 흐려지며 이내 모습이 사라져 버렸다.
“아니?”
갑자기 로스트 된 네기의 반응에 차차마루는 심하게 당황했다. 현재 네기의 실력으로 봤을 때 자신의 인지를 벗어 날수 있다고 생각되지 않았던 탓이었다. 차차마루가 당황하고 있는 사이, 차차마루는 등 쪽에서 갑작스럽게 느껴지는 강력한 충격에 고개를 돌렸다. 네기가 팔극권중 하나인 철산고를 차차마루의 등에 먹이고 있던 것 이였다.
“이런... 파워가 모자랐나...”
보통남성, 아니 어지간한 수준의 무인 이였으면 쓰러지는 정도가 아니라 날려 졌을 정도의 위력이었으나. 차차마루는 로봇인데다가 준 달인급에 실력을 지닌 이였던 터라 쓰러지지 않고 버틸 수 있었다. 차차마루는 재빨리 주저앉으며 네기의 발을 쓸었다. 네기는 피하려했으나 로켓으로 가속된 터라 결국 걸리는 수밖에 없었다.
“큭!!”
네기는 도움닫기를 하며 자세를 다시 정비하려했다. 그러나 차차마루는 그 틈을 주지 않겠다는 듯이 로켓으로 가속된 펀치를 날렸다. 모두들 네기가 지리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차차마루의 주먹인 네기에게 닿을려는 그 순간...
쾅-!
믿지 못할 일이 일어났다. 요란한 굉음과 함께 네기와 차차마루가 서로 날려진 것 이였다. 그리고 먼저 떨어진 것은 몸무게가 많이 나가는 차차마루였다. 너무나도 의외의 결과에 에반젤린은 차차마루와 네기를 번갈아보며 입을 열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거지?”
“뭐, 급작스런 카운터에 당한거지.”
시로의 말에 에반젤린은 화를 내며 물었다.
“카운터? 장난해? 얼마 전에 권법을 배우기시작한 초보가 저런 흐트러진 자세에서 카운터라고? 그리고... 카운터로 저만한 위력이 나온다고 생각해?”
“뭐, 보통의 카운터라면 그럴 리 없겠지만... 암흑히스이권의 카운터라면 문제가 좀 다르지...”
“암흑히스이권?”
“근접공격에 대비한 카운터로 네기에게 가르친 암흑히스이권 봉사수정파(奉仕修正派), 기묘한 팔의 회전으로 상대의 공격을 흐트러 놓고 그 공격 사이로 상대의 힘을 실은 공격을 먹이는 기술이지... 뭐, 네기는 이 기술과는 안 어울리는 탓에 위력이 많이 반감되었지만...”
“저게 반감된 위력이라고?”
에반젤린은 계단 양쪽에 처박힌 네기와 차차마루를 보며 허탈한 듯이 말했다. 그러던 중 에반젤린은 네기가 마지막에 사용한 기술이 쿵푸가 아님을 깨달았다.
“그럼 네기는 불합격이네, 쿵푸가 아닌 기술을 사용했으니 말이야.”
“아니 합격이야.”
시로의 말에 에반젤린은 어이없다는 듯이 말했다.
“억지 부리지 마시지.”
“억지가 아니야. 네가 시작할 때 뭐라고 했었지?”
시로의 말에 에반젤린은 천천히 고민했다.
“그러니까 분명히... 차차마루를 한번 쓰러뜨리라고...”
떠올린 순간 에반젤린은 자신이 놓치고 있던 점을 발견했다. 쿵푸로서 만이라는 제한을 하지 않은 것 이였다.
“내 말이 맞지?”
“크으... 알았어! 졌어! 약속대로 훈련은 시켜줄게 언제든 오두막으로 와, 그리고 쿵푸든 암흑히스이권이든 마음대로 배우라고!”
에반젤린은 심통을 부리며 차차마루와 차차제로를 데리고 사라졌다. 그리고 네기의 싸움을 숨을 조리며 지켜보고 있던 이들은 뒤늦게 축하하는 말을 네기에게 날렸다.
그리고 수시간 후 체육관
“사사키 마키에. 리본으로 할 거니?”
“예!”
자신감이 넘치며 약간 다른 듯한 마키에의 모습에 체조부 고문인 니노미야 선생님은 눈을 비비며 되물었다.
“너 정말 마키에 맞니? 순간 다른 사람인줄 알았어.”
“별일 아니에요.”
“뭐, 상관없겠지... 그럼 5번 사사키 마키에 연기 시작!”
“네!”
여담이지만 그해 여름대회에서 사사키 마키에는 준우승이라는 영광을 거머쥐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