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화
이른 저녁 마호라 학원 내 카페
“이런 시간에 무슨 일이지 차오린센?”
시로는 갑자기 자신을 불러낸 차오린센을 보며 물었다. 아무리 선생과 제자의 사이라고 해도 이런 시간에, 그것도 이런 곳에서 만나는 것은 이래저래 오해가 생길 소지가 많은 탓이었다. 특히 요주 인물들이 많은 3-A였다면 더욱이 그랬다.
“후후... 별거 아니다해. 곧 학원제이지 않은가? 그래서 장사를 위한 준비를 위해 에미야 선생님을 불러낸 것이라네해.”
린센은 자신 앞에 놓여진 냉커피를 홀짝이며 말했다. 시로는 린센의 말에 의문스러워 하며 물었다.
“장사라... 나랑은 무슨 관련이지?”
“후후후... 카에데와 쿠페이에게 들었다네... 요리 실력이 엄청나다고 하던데?”
왠지 사악해 보이는 듯한 웃음을 지은 린센을 보며 시로는 왠지 모를 불안감에 휩싸였다.
“그렇게 불안해 할 필요는 없다해~”
불안해 할 필요 없다지만 속을 알 수 없는 저 미소를 보면 왠지 모르게 불안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저 학원제 준비기간 때 개점하는 차오바즈의 요리사로 초청하고 싶은 것뿐이다해.”
“정말 그것뿐? 그것뿐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하겠는데?”
시로의 여태까지의 경험상 차오린센은 그런 이유가지고 이런 시각에 부를 만한 타입은 아니었다. 시로의 물음에 린센은 더욱 짙은 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역시 예리하다해. 하지만 그 이야기는 나중에다해. 지금은 차오바즈 운영이 더 우선이니까해.”
시로는 린센의 미소를 보며 이번 학원제 때는 상당히 큰일이 있을 거라는 느낌이 들었다.
학원제 준비기간은 선생도 학생도 모두가 바쁜 시기이다. 그 중에서도 네기의 반은 다른 반 보다 뒤늦게 시작한 터라 더욱 바쁘기 그지없었다.
“오늘도 바쁘구나, 네기.”
시로는 네기의 앞에 자신이 만든 특제 슈마이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얼마 전 차오린센의 제안에 의심쩍었지만 수락한 시로는 학원제 준비기간동안 이른 아침부터 차오바즈에서 요츠바와 함께 요리사로서 활동하고 있었다.(물론 다른 선생님들이나 학원장의 동의는 얻었다.)
“네... 어제 겨우 결정되기는 했지만... 아무래도 시간 안에 맞추기는 힘들듯 해요. 특히 우리 반은 부활동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으니까요.”
네기는 한숨을 내쉬며 시로에게 말했다. 네기는 3-A가 학원제에서 무엇을 할 것인지 결정하기까지 요 사흘 동안 아이들에게 엄청나게 시달렸던 탓이었다. 물론 어제 아침에 유령의 집으로 결정된 터라 한시름 놓았지만 그래도 다른 반보다 뒤늦게 시작한터라 바쁘기는 다른 반보다 심하게 바쁠 터였다.
“그거 큰일이네...”
요즘 들어 다른 바쁜 일이 많았던 터라 반에 자주 들리지는 못했지만 어쨌든 부담임이므로 반 행사에 관심이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였다.
“거기다가 어제 저녁에는 유령까지 나오는 바람에...”
“유령? 설마 아사쿠라의 옆자리에 앉아있던 아이사카를 말하는 거야?”
시로의 물음에 네기는 놀라며 되물었다.
“예?! 유령의 정체를 알고 계세요?”
“아시고 자시고간에... 예전부터 거기에 앉아있었잖아. 네기, 너 학생부 들고 있지? 그거 꺼내봐.”
시로의 말에 네기는 허둥지둥 거리며 학생부를 꺼냈다. 시로는 재빨리 학생부를 받아들고는 재빠르게 학생부를 펼치며 손으로 1번 학생을 가리켰다.
“아이사카 사요. 1940년부터 쭉 우리 반에서 지내온 지박령(地搏靈)이지. 뭐 자신이 죽은 이유를 몰라서 저승에 가지 못하고 있는 듯 하지만 말이야. 그런데 네기, 모르고 있었어? 그리고 유령은 런던에도 많잖아. 런던탑에서는 관광객보다 거주중인 유령이 더 많더구만.”
시로의 말에 네기는 땀을 흘리며 말했다.
“런던탑에 그렇게 유령이 많았나요...? 저는 모르고 있었는데... 그리고 기척정도는 느꼈지만 설마 진짜로 있었을 줄이야...”
“아직 수행이 부족 하구나 네기...”
시로는 그 말을 남기고는 다시 전쟁터인 주방으로 향했다.
여담이지만 그날 저녁은 사진 빨이 좋지 않은 유령, 아이사카 사요를 퇴치하기위한 퇴마소동으로 인해 만들고 있던 기재의 반이 박살났다고 한다. 그 대신 오해는 푼 것 같지만... (덤으로 네기는 박살난 기재를 보고는 반쯤 실신상태가 되었다고 한다.)
다음날 아침
“무사히 해결 된 것 같은데 표정이 밝지가 않네...”
시로는 표정이 어두운 네기를 보며 물었다. 그러나 시로의 물음에 대답한 것은 네기가 아닌 서빙중인 차차마루였다.
“아마 어제 유령소동으로 인해 기재가 반파된 것이 원인 인듯 합니다.”
“그래? 그렇다면 오늘은 내가 도와주지.”
시로의 말에 네기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밝은 표정으로 변했다. 그렇게 시로와 대화를 나누던 네기는 문득 차차마루가 평소와 다른 것을 느꼈다.
“어라, 차차마루 오늘은 머리를 올렸네요. 잘 어울려요”
그 순간 시로는 차차마루의 얼굴에 약간의 표정변화를 발견 할 수 있었다. 히스리와 함께 하지 않았다면 발견하지 못했을 지도 모를 미미한 표정변화였다.
“안녕하세요.”
“지각이다! 사토미!!”
“니하오~ 사토미”
저쪽 편에서 들린 인사소리에 시로는 고개를 돌려보았다. 뒤늦게 온 사토미가 다른 아이들에게 사과하며 서빙을 시작하고 있었다. 그렇게 서빙을 하고 있던 사토미는 우연히 시로와 네기들이 모여있던 곳을 보았다.
“아... 안돼! 차차마루!!”
사토미는 차차마루를 보고는 기겁을 하며 달려왔다.
“차차마루! 머리를 올리면 어떡해!! 그건 방열용이란 말이야!!”
“아... 사토미 박사님...”
차차마루는 뒤늦게 사토미의 존재를 깨닫고 인사했다. 그러나 사토미는 차차마루의 인사를 무시하고 계속 말을 이었다.
“왜 이런 짓을 한 거야? 제대로 머리카락을 펴 두지 않으면 열이 쌓여서 과열 된다구!”
사토미의 설교에 네기와 함께 시로와 사츠키 특제 슈마이를 먹고 있던 코노카가 입을 열었다.
“왜냐니... 사토미도 참... 차차마루도 가끔씩은 멋을 내고 싶은 거야♡”
“멋?”
“네...”
코노카의 말에 사토미는 이해가 가지 않는 다는 듯이 차차마루를 바라보았다.
‘그런 프로그램은 입력한 기억이 없는데...’
“멋이라... 참 귀엽네요, 차차마루.”
“아... 그렇습니까... 정말 감사합니다. 그... 그럼 일하러 가보겠습니다.”
네기의 칭찬에 또 묘한 표정을 지은(어디까지나 알아본 것은 시로 뿐 이었다.) 차차마루는 만두가 가득 든 찜기를 들고서 다른 테이블로 향했다. 그러던 중 차차마루는 발을 삐끗했는지 무척이나 요란하게 넘어졌다. 네기와 대화중이던 시로와 네기, 그리고 세츠나와 아스나는 허공에 흩어진 찜기를 가까스로 받아냈다.
네기와 시로, 아이들은 차차마루에게 찜기를 넘기며 물었다.
“괜찮아요. 차차마루?”
“괜찮아?”
찜기를 받아들던 차차마루는 갑작스럽게 네기가 자신의 얼굴 앞에 들이밀자 깜짝 놀란 나머지 또다시 허공에 흩어졌다. 사토미는 그런 차차마루를 보면서 엄청난 의문을 느꼈다.
‘어떻게 된 일이지? 차차마루가 평지에서 넘어지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야... 사발을 2m높이까지 양손에 들고 하이힐을 신은 상태에서 발을 걸어도 넘어지지 않는 오토 밸런스 시스템을 탑재한 차차마루가...’
“죄... 죄송합니다. 네기 선생님...”
“괜찮아요.”
사토미는 네기에게 사과하고 있는 차차마루에게 다가가서 물었다.
“차차마루... 어디 문제라도 있니?”
“아니요, 특별히 시스템 문제는 없습니다만...”
차차마루의 말에 사토미는 한동안 고민에 빠졌다. 특별한 문제가 감지되지 않음에도 이상이 있다는 것은 상당히 위험한 것의 신호일 가능성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음.......”
한동안 고민하던 사토미는 이내 결심한듯 차차마루에게 말했다.
“차차마루, 방과 후에 연구실에 들려줄래? 오랜만에 널 해체해서 점검해보고 싶으니까 말이야.”
“아... 알겠습니다.”
사토미는 그 말을 하고나서 다시 서빙에 들어갔다.
여느때처럼 평범하게 수업이 끝났다. 그러나 아이들은 오후에 있을 작업과 관련해서 시끌벅적했다. 그러던 중 치어리더 3인방 중 한명이 이야기를 꺼냈다.
그것은 학원제의 전설...
학원제 마지막 날에 세계수 밑에서 좋아하는 사람에게 고백을 하면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옛날부터 마호라 학원에 전해져 내려오는 전설이었다. 많은 아이들이 학원제의 전설에 상당한 관심을 보였다. 차차마루도 왠지 모르게 그 학원제의 전설에 대한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러던 중 에반젤린이 차차마루에게 말했다.
“유치하기는... 가자 차차마루.”
그러나 차차마루는 알 수 있었다. 그렇게 말하는 에반젤린 자신도 미묘하게 얼굴을 붉히며 그 소문에 귀를 기울이고 있음을... 그러나 말하면 테엽이 말릴 때 까지 감을 것이 뻔 하기에 굳이 말하지는 않았다.
“아, 마스터. 사토미 박사님이 정비를 위해 대학으로 오라고 했습니다.”
“응, 그래? 그럼 어쩔 수 없지...”
차차마루는 에반젤린에게 인사를 하고는 대학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가고 있던 차차마루를 네기,코노카,아스나,세츠나가 발견했다.
“아... 차차마루다.”
“그렇네...”
복도를 걸어가는 차차마루를 보며 코노카가 의문스러운 표정으로 아스나에게 물었다.
“차차마루... 정말 로봇인 거야?”
“그런 것 같긴 한데...”
아스나의 말에 코노카는 왠지 모르게 불안한 표정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괜찮을까 차차마루... 사토미가 [해체]어쩌고 하던데...”
“그러고 보니... 사토미와 차오는 굉장한 천재지만 사실 그 정체는 과학에 영혼을 판 악마이자 미친 과학자라는 소문이...”
아스나의 말이 마치자마자 아스나와 코노카의 머릿속에서 상당히 위험한 망상이 떠올랐다. 아마 본인(?)이 보았다면 무척이나 기겁할 만한 망상이었다. 그 망상에 왠지 차차마루가 위험하다고 느낀 두 사람은 불안해하며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왠지 갑자기 걱정이 된다...”
“그... 그래... 차차마루 우리도 같이 가도 돼?”
“아... 예...”
그렇게 차차마루가 가는 길에 네기일행이 추가되었다.
“오늘도 화창하네.”
오늘도 기숙사 앞의 화단을 가꾸고 있는 히스리는 문득 기숙사 앞을 지나가는 한 무리를 보았다. 차차마루와 네기 일행이었다. 히스리는 차차마루들이 어디로 가고 있는 지에 대해 의문을 느끼고 차차마루를 향해 물었다.
“어디로 가는 지요 차차마루?”
“아... 히스리씨. 지금 차차마루의 점검을 견학하러 마호라대학 공학부에 가고있어요.”
히스리의 물음에 네기가 말했다. 네기의 말에 흥미를 느낀 히스리는 차차마루를 향해 물었다.
“차차마루. 저도 동행해도 되겠는지요?”
히스리의 물음에 차차마루는 약간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말했다.
“괜찮지만... 괜찮겠습니까? 사토미 박사님이 약간 무례를 범할지도 모르는데...”
워낙에 특이한 사람들이 많은 탓에 많은 사람들이 잊고 있지만 히스리는 분명 로봇이었다. 그것도 차차마루 이상의 성능을 지닌 완전 자율형 인공지능 로봇... 심한말로 과학에 미친 사토미가 히스리를 보고는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몰랐다. 그러나 히스리는 차차마루를 보며 빙긋 웃었다.
“걱정 마세요. 당신이 걱정하고 있는 일은 없을 테니까요.”
히스리는 사뿐히 걸음을 옮겼다.
한동안 차차마루를 따라 걷던 히스리와 네기일행은 척 보기에도 엄청나게 커다란 건물을 볼 수 있었다.
“이곳이 마호라대학 공학부건물입니다. 사토미 박사님과 차오는 이곳에 연구실을 빌리고 있습니다. 전 여기서 태어났지요.”
차차마루는 이 건물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한 후 사토미의 연구실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사토미 박사님 실례합니다.”
차차마루는 노크를 한 후 곧장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마침 사토미는 양자에너지 계측실험을 하고 있었다. 그에 따른 장비를 착용하고 있던 터라 네기들은 무척이나 놀라며 외쳤다.
“미친 과학자가 나타났다!!”
“우린 다 해체되는 거야?!”
“어라? 다들... 이곳에는 무슨... 얼레?!”
쾅~!!
사토미가 한눈을 판 사이 실험기구가 과열로 인해 폭발했다. 다행이도 그렇게 큰 폭발은 아니었던 터라 모두들 무사했다.(그 이면에는 히스리가 일순간 동안 연구실 전체를 코하쿠력 배리어로 감쌌다는 사실이 숨겨져 있다. 물론 눈치 챈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하하하... 괜찮아요? 미안해요. 실험 중 이었거든요.”
사토미의 말에 폭발을 겪은 다름 사람들은 콜록거리며 연기를 내뱉을 뿐이었다. 사토미는 차차마루를 보며 말했다.
“자, 그럼 바로 점검에 들어가도록 하자.”
사토미의 말에 차차마루는 가까이 있던 의자에 앉았다.
“자~ 그럼 웃옷을 벗어볼까?”
“아...! 여... 여기서 벗어야 하나요?”
“응”
사토미의 말에 차차마루는 자신도 모르게 네기를 보았다. 마침 네기는 코노카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러나 왠지 모르게 부끄러운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자, 어서”
“아, 네”
사토미의 재촉에 차차마루는 천천히 셔츠를 벗어 제쳤다. 그리고 강철로 된 나신을 드러냈다. 차차마루의 나신을 본 코노카는 놀라며 외쳤다.
“와~ 정말 로봇이었구나...”
“어이! 사토미씨, 당신이 차차마루의 개발자인 건가?”
네기의 어깨에 앉아있는 카모는 차차마루를 점검 중인 사토미를 향해 물었다. 카모의 질문에 사토미는 무척이나 자랑스러워하며 입을 열었다.
“네, 그래요. 동력부분은 소형화가 힘들어서 마법의 힘을 빌렸지만 에바의 다른 인형들과는 달리 차차마루는 구동계, 플레임, 양자컴퓨터, 인공지능 등, 모두 제가 만든 과학의 산물이에요. 물론 인공지능 시스템의 기초는 MIT에서 빌려왔지만요. 그 외에 구동계나 플레임, 양자컴퓨터의 기초들도 다른 곳에서 빌려와 제작했답니다.”
‘과연...’
카모는 사토미를 보며 감탄했다. 이제 중3이 된 소녀가 세상을 앞서가는 자립형 로봇을 만들어 낸 것에 대한 감탄이었다. 그렇게 네기들을 보면서 말하고 있던 사토미는 문득 낯선 인물(?)이 끼여 있음을 깨달았다.
“앗!! 당신은!!!”
그 인물(?)이 누구인지 깨달은 사토미는 점검하다가 말고 재빨리 그 인물에게 다가갔다. 그 인물이란 당연히 중등부 기숙사의 유명인인 강철의 메이드 히스리였다. 사토미는 히스리를 보자마자 살벌하면서도 미묘한 눈빛으로 그녀의 몸을 훑어보며 말했다.
“잠깐 몸 좀 살펴도 될까요?”
상당히 실례인 말이었지만 사토미는 절대로 실례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자신은 과학에 영혼을 판 과학자... 과학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라도 할 수 있었다. 설령 그것이 세상에서 죄악으로 취급받을 지라도...
“안 된답니다. 제 몸을 살필 수 있는 사람은 단 두 사람 뿐 이거든요.”
화를 내거나 순순히 몸을 보여줄 것이라는 사토미의 예상과는 다르게 히스리는 웃으며 거절했다. 게다가 그 웃음에는 뭔지 모를 마력이 깃든 것인지 사토미는 히스리가 거절하자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물러났다.
다시 점검을 시작한 사토미는 차차마루의 몸에서 평소 이상의 열이 나고 있음을 느꼈다. 또 청진기에서 들리는 소리로 모터의 회전수가 평소 이상으로 올라가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상하네... 어디에도 이상이 없는데 모터의 회전수가 올라가고 있어... 게다가 열까지... 차차마루 넌 어때?”
사토미의 물음에 차차마루는 눈을 돌리며 대답했다.
“그게... 기묘한 느낌이... 뭐라고 표현해야할지... 아무래도 부끄럽다는 말이...”
“에엑!! 부끄럽다고?! 인공지능이 부끄럽다니 무슨 소리야!!”
차차마루의 말에 사토미는 여지껏 놀라지 못했던 만큼을 한 번에 놀라며 외쳤다.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였다. 비록 인간과 비슷하다고는 하나 로봇이었다. 인공지능이었다. 0과1로 이루어진 프로그램에서 감정이 나타나다니... 물론 그런 프로그램을 입력한다면 당연히 그런 반응이 나오겠지만 사토미는 그런 프로그램을 입력한 적이 없었다.
“이상하네... 이런 반응을 보이다니... 대체 어느 부분에 이상이...?”
“하나도 이상할 것 없어. 가슴이 두근두근 한다는 것은 사랑에 빠진 것이 아닐까?”
코노카의 말에 사토미는 단박에 부정하며 말했다.
“그건 말도 안돼요! 있을 수 없어요! 사랑이라니!! 그건 희노애락의 감정과 성애까지 포함한 마음, 요컨대 주관의 문제잖아요! 이건 과학사, 철학사상 최대의 수수께끼의 영역에 발을 들여놓게 되는 거라고요!! 인공지능이 마음을 가지고 주관을 소유할 수 있다니... 아니 차차마루가 자아의식을 지니고 있는 것은 거의 의심하고 있지 않았어요! 자아의식이란 즉, 자신의 사고를 모니터링하는 육체의 눈... 요컨대 메타의식으로 이건 과학적으로도 충분히 가능한 질문이죠. 차차마루으 전뇌에 그와 유사한 시스템을 입력하기도 했고... 하지만, 하지만 말이에요! 이것이 감정의 문제가 되면 얘기가 전혀 달라져요! 나의 가설에 따르면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감정이란 생식하고 죽음의 관념을 갖는 유기적인 생명체밖엔 표현할 수 없는 거에요. 레플리전트 처럼 유기적인 인조인간이라면 또 몰라도 차차마루 같은 솔리드한 소재로 구성된 로봇에게 지금 이 순간에도 마음이 깃들어 있다는 것을 믿을 수 있겠어요?! 역시 학습프로그램에 의한 의태...?! 애초에 과학적인 수법을 사용한 이상 주관에 대한 질문은 해결할 수 없죠. 왜냐하면 과학이란 객관적인 대상을 다루는 것이기 때문에.,.! 아니 내가 지금 왜 패배선언을 하고있는 거지요?! 안돼요!! 과학에 영혼을 판 내게 패배란 단어는 있을 수 없어요!! 앗! 설마 에바가 부여한 마력 기관이 시스템에 예상밖의 영향을?! 아니 안돼요!! 그런 애매한 가설을....!! 정신 차려요 사토미!!”
사토미의 이론정립에 옆에서 듣고 있던 네기와 아스나는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그렇게 횡설수설 하던 사토미는 코노카가 내뱉은 한마디에 마음을 돌렸다.
“그래도 로봇이 사랑을 한다니... 로맨틱하고 멋질 것 같은데?”
‘하긴... 인공지능이 사랑을 한다면... 그건 노벨상 수준의 대발명?!’
“그래... 사랑일지도 몰라요...”
마음을 돌린 사토미는 실험에 쓸 기재들을 챙기며 눈을 번뜩였다. 사토미의 눈빛은 아까 히스리의 몸을 살펴보고자 했을 때의 눈과 같았다.
“그럼 지금부터 실험 시작하겠습니다!”
사토미의 말에 차차마루는 갑자기 엄습하는 불안감을 느꼈다. 그리고 이내 자신이 잠들고 있음을 깨달았다.
와글와글
차차마루가 다시 깨어났을 때는 고딕풍의 드레스를 입고서 공학부 건물 내 카페 중앙에 있었다. 어느새 몰려들었는지 수많은 사람들이 차차마루를 둘러싸고 있었다.
“저... 저기 이게 무슨?!”
당황한 차차마루는 사토미를 찾았으나 수많은 인파에 둘러싸인 터라 쉽사리 찾을 수 없었다.
“후후후... 평소에는 하지 않던 멋내기로 부끄러운 상황을 만들어 아까 모터의 회전수 상승을 재현하는 실험이에요! 자~ 차차마루!! 좀 더 귀여운 포즈로 공학부 남성들의 시선을 끌어봐~!”
그렇게 사토미는 몇 번이고 차차마루의 옷을 바꿔서 사람들 사이로 내보냈다. 그때마다 사토미는 쑥쑥 상승하는 모터 회전수를 볼 수 있었다. 그렇게 실험을 계속하던 사토미는 갑작스럽게 내뱉은 코노카의 한마디에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정말 사랑이라면 누군가 상대가 있을 텐데...”
“확실히 그렇군요... 그럼 차차마루의 기억드라이브를 검색해 보겠어요!”
“그런 것도 가능해?”
“잠깐!! 이건 프라이버시 침해 아니야?!”
아스나의 말에 사토미는 음흉한 미소로 아스나를 보며 말했다.
“과학의 진보를 위해서는 약간의 비인도적인 행위도 어쩔 수 없는 거에요!! 아, 여기 계속 반복해서 재생하고 있는 영상들이 즐겨찾기에 폴더별로 나눠져 있군요.”
“아...!”
차차마루는 당황했다. 숨기고 싶었던 자신의 감정이 만천하에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빠직-!
“엥?!”
“어라?”
옆에 있던 히스리의 손이 어느새 사토미의 노트북을 반으로 가르고 있었다. 사토미는 너무나 갑작스런 히스리에 행동에 화를 내며 외쳤다.
“이게 무슨 짓이...”
짝-
요란한 소리와 함께 사토미의 고개가 돌아갔다. 히스리가 사토미의 뺨을 갈긴 것 이였다. 히스리는 무척이나 노한 표정으로 사토미를 보며 말했다.
“엄마로서 실격이군요. 딸아이의 비밀을 함부로 파헤치려하다니... 저를 만든 이도 상당한 괴짜였지만 최소한 당신처럼 자신의 자식과도 같은 존재의 비밀을 함부로 파헤치려하지는 않았습니다.”
히스리는 그렇게 말하고는 당황하고 있던 차차마루의 손목을 잡고서 그 자리를 벗어났다. 히스리가 사라지자 사토미는 떨리는 눈빛으로 중얼거렸다.
“나의 딸...?”
사토미의 중얼거림은 한동안 계속되었다.
“자, 여기서 잠시 이야기를 하지요.”
공학부를 나선 히스리와 차차마루는 길가에 있던 벤치에 앉았다. 차차마루는 아까와는 달리 확연하게 표정을 드러내며 말했다.
“역시 로봇에 불과한 저에게 감정은 사치인 것일까요?”
차차마루는 생각했다. 0과1의 프로그램으로 이루어진 인형의 불과한 자신이 감정을 가지게 된 이유는 왜일까? 그 이유는 왜일까? 지우고 싶었다. 이런 감정 따위는 로봇에게 있어서 사치에 불과하다. 그렇게 차차마루가 생각하던 중에 히스리가 말했다.
“그것으로 괜찮은가요?”
“!!”
“감정... 그것은 좋은 것입니다. 좋아하는 마음도 부정하지 마세요. 그것이 설령 0과1로 이루어진 프로그램 일지라도... 그것이 우리들의 존재며 사랑이니까요.”
두서없고 어지러운 말... 하지만 그 말에 담겨진 히스리의 마음을 차차마루는 느낄 수 있었다.
“잠시 시간을 때우다가 돌아가도록 하지요. 그때쯤이면 사토미양도 진정할 테니까요.”
히스리는 웃으며 차차마루에게 말했다.
다음날 아침 차오바즈
“미안 차차마루... 어제는 내가 좀 심했어... 너에게도 너만의 프라이버시라는 것이 있을 텐데 말이야...”
“아니... 괜찮습니다...”
사토미의 사과에 차차마루는 조금은 감격했다. 차차마루가 사과를 받아들이자 사토미는 어두웠던 얼굴을 펴며 차차마루에게 말했다.
“어제 일에 대한 사과의 의미로 제대로 멋을 낼 수 있게 방열 대책을 준비해 왔어! 나중에는 관절도 보이지 않게 인공스킨도 만들어 줄께!”
히스리는 멀리서 그런 두 사람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이내 사토미가 차차마루의 머리에 단 것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커다란 원판형 방열판... 이래서야 멋내고자하는 의미가 사라져버리는 것 이였다.
그 자리에 있던 모두는 그런 사토미를 보며 공통적으로 생각했다.
‘누가 매드 사이언티스트 아니랄까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