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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飛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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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학생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을 자유와 일탈에의 본능과 괜히 쿨하고 시-(ㅋ)해보이고 싶은 생각으로 문제를 방치하고 넘어가려는 그런 문제를 전혀 진지하게 다루지 않은 부조리한 상황에 대해 썼습니다. 당시 그냥 학교가 싫었어요.
​​  앗, 하는 사이에 날아올랐다. 순식간에 허공에 몸을 던져 기껏 몇 초 활공한 후 추락. "뭔 소리 하는겨"라든가 뭐 그런 말을 할 틈도 없었다. '철퍽'이라는 소리가 한 번 들리고는 끝나버렸다. 남은 것이라곤 나뒹구는 흰색 살점들과 붉은 피비린내. 나는 그저 조금 얼굴을 찌푸렸다. 불쾌했다.

(37) ​"나는 날 수 있다니까."


  사람이 하늘을 난다. 거 참 개소리다. 물론 여기서 '사람'은 아무 장비도 갖추지 않은 맨몸뚱이고 '하늘'이란 높은 상공을 가리키는 거고. 당연하게도 일반적으로 이게 불가능하다는 건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임이 틀림없고. 그런데 그 녀석은 그런 말을 태연하게도 지껄여댔다. 나는 날 수 있어. 처음 들었을 때는 얘가 농담하나 싶었다. 세 번쯤 들었을 때는 "적당히 좀 해라"라는 기분이었다. 녀석의 입에서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그런 말들이 쏟아져나올 때 슬슬 눈치를 챘어야 했다. 녀석은 그 때부터 이미 반쯤 맛이 가 있었다.
    
  녀석과의 사이? 글쎄. 친구라면 정말 오랜 친구지만 친한 녀석은 아니었다. 성격도 취미도 습관도 영 서로 들어맞지 않았다고나 할까. 그래도 말마따나 불알친구라고 제법 속사정도 어느 정도는 아는 관계랄까. 물론 귀찮았다. 세상에는 알게 되면 귀찮아지는 일이 한 움큼 정도 있는데, 그 녀석에 관한 일이 바로 그런 거였다. 예를 들자면 예전부터의 가정 불화라든가.
    
  가정 불화라고 해도 뭐 흔하디흔한 일이다. 이혼 가정에서 아동 학대가 일어나고 위축된 아동은 또래 집단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게 되어 결국엔 사회부적응이라든가 뭐 그런 거. 텔레비전이나 뉴스에서 많이 나오던 그런 상황 되시겠다. 근데 그런 놈들이 어디 한두 명인가. 뭐 대중매체에서 나오는 사례들만 손꼽아봐도 두 손 가득 되는 쓰레기들을 일일이 배려하면서 살 수는 없는 노릇이고 또 그러기도 싫다는 게 세상 인심이다. 나도 그 중 하나고.
    
  고로 난 그 녀석의 고민 같은 시답잖은 일들을 일절 도와주지 않았다. 까놓고 말해 어떻게 도와줘야 할지도 잘 모를 노릇이고, 자칫 그 여리디여리신 마음에 생채기 하나라도 내 버리면 큰일이잖아. 유서에 대문짝만하게 "저승에 가서 그 말아먹을 XXX 새끼 저주할 거다"라든가 써놓고 다이빙해버리는 상황을 생각하면…어휴. 정말 깝깝해서 세상 살아먹겠냐. 그러니까 그런 녀석과는 애당초 상종을 안 해 버리는 게 안전한 거다. 뭐, 같은 반 놈이라서 아예 대놓고 피할 수는 없었지만 될 수 있으면 관여를 하지 않으려고 무진장 노력했던 거다. 내 나름대로는.
    
  그런데 이게 웬일이여. 녀석은 턱 하니 죽어버렸다. 졸업식도 기껏해야 얼마 남았다고 그러냐. 이제 답답한 왕따 생활도 몇 달 안 남았을 상황에서 뒈진다니 난 정말 이해할 수가 없다. 게다가 사람을 옥상에 불러놓고서 한다는 얘기가 헛소리, 그러니까 '힘들다. 견딜 수 없어. 여기서 벗어난다고 해도 다시 똑같아질 거야. 답답해. 답답해.' 같은 지극히 개인적인 하소연이나 늘어놓고 끽이냐. 정말 사람 귀찮게 하는 데에는 뭐 있는 녀석이다.
    
  나는 쳇, 하고 혀를 차고는 옥상을 내려왔다. 밤바람이 아직은 조금 차가웠다. 계단을 뚜벅뚜벅 내려왔다. 걷고 있자니 녀석의 마지막 흔적이 아직도 꿈틀꿈틀대는 것이 보인다. 확실히 이건 좀 잔인하네, 라고 지껄이며 조금 고개를 삐딱하게 기울이고 사체를 보니까 뭔가 좀 이상하다. 자세히 보니 시체는 무슨 모양을 이루며 흩어져 있다. 뭘까, 하고 자세히 살펴보니까 이건 어째 날개의 형상을 하고 있다. 그 바보 같은 녀석이 마지막까지 지랄을 하는구만. 조소를 내뱉으며 학교를 나서는데 어디선가 꿈지럭꿈지럭하는 소리가 들린다. 뒤돌아보니 녀석의 시체는 모이고 모여 하늘로 펄럭이며 날아가고 있다. 씨발, 저 새끼 정말 나는구나. 오만상을 찌푸리며 그 추한 모습을 뒤로 하자니 가슴이 뻐근하다. 내려다보면 어느새 내 가슴에서는 날개 한 자락이 내 목을 조르며 눈을 희번득거리고 있다. 그래, 나는 날 수 있다니까. 윽박지르는 듯한 그 말에 나는 그저 낄낄 웃어주고는 말았다. 아마 조만간에 내 날개도 활짝 펴져 하늘을 날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올려다본 늦봄의 밤하늘은 말할 것도 없이 극한쾌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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