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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다시 갈림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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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에 대해 글을 쓸 때는 항상 조심스럽습니다. 결과적으로 항상 몽환적일 정도로 아름다운 느낌이나 현실의 풍파에 부딪히는 비참한 느낌으로밖엔 쓸 수가 없습니다. 그게 부모님에 대한 제 마음일지도 모릅니다. 뻔한 글이지만 그런 걸 생각하면서 읽어주셨으면 합니다.
무엇인가를 하기엔 너무 늦었다, 라는 건 참 슬픈 얘기야. 그가 내 옆에 털썩 주저앉으며 말했다.


(39) 향 냄새가 아련했다.


​  더 이상의 가능성에 대한 무산. 자신의 무력감을 확실하게 느끼게 되는 거지. 뭔 짓을 해도 되돌아오지 않는 거야. 만약 네가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사거리에서 발가벗고 브레이크 댄스를 추는, 자신이 병신이라는 것을 자가증명하는 일을 하면서까지 그 일을 돌이키고 싶다고 해도 그 일은 이미 끝났어, 기회는 이제 없어. 전 세계 사람들과 운명의 수레바퀴가 너의 마음을 짓밟으면서 손가락질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지. 시간의 흐름이라는 건 물고기가 물을 만나듯, 우리가 공기를 마시고 살아가듯 당연한 일이야. 너는 주어진 기회를 내팽개쳤고 그건 더 이상 돌아오지 않아. 오히려 그게 스스로 일으킨 일이기 때문에 더더욱 너는 자신의 어리석음을 통감하게 되는 거야. 그런 일들이 네 마음과 네 양심과 네 존재가치를 바숴버리고 있어. 그런데.
  
  그런데, 라고 그가 말하자 나의 마음은 덜컹거렸다. 계속 내리막길로 치닫고 있었던 열차가 돌덩이에 바퀴가 끼어 급정지하듯 마음이 크게 솟구쳐 흔들거렸다. 나는 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의 표정은 매우 진지했다.
  
  그런데 실제로 너는 그런 기회가 이미 사라졌다는 것을 억울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어. 마음속에서 그걸 용납할 수 없을뿐더러, 네가 마지막으로 썼던 기회가 정말로 '마지막'이었다는 걸 가르쳐 줄 녀석이 없었으니까. 너는 알 수가 없었으니까 화가 나는 거야. 조금만 더 시간이 있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조금만 더 현명했더라면 이런 일이 일어나도록 내버려두지는 않았을 텐데, 같은 생각이 들겠지. 물론 너는 예전에 주어졌던 기회를 헛되이 날려버렸을 수도 있어. 게으름을 피우거나, 향락을 위해 낭비하거나, 갑자기 그 기회를 올바르게 사용할 기분이 들지 않았거나. 그런 하찮은 이유로 기회를 썼던 건 당연히 어리석다고 생각되겠지만, 누구나가 좋은 기회에 좋은 행동을 취할 수 없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야. 덧붙여 그게 "행운"이라든가 "운명" 같은 변수에 기반을 둔 문제라면 누구라도 그럴 수 있겠지. 그러니까.
  
  그러니까, 네가 그렇게 울고 있을 필요는 없어. 그는 시선을 정면으로 두고 똑바르게 이야기했다. 그는 나를 쳐다보지 않았다. 나는 그저 울고 있었고, 흰색 모포에 둘러싸여 있는 그의 몸은 이미 차가웠다. 전신을 찢어발기며 시야를 암전시키는 그 자괴감과 후회감에 맞서 싸워야 하는 것은 그가 아닌 나였다. 그는 나를 쳐다보지 않았다. 나도 그를 쳐다보지 않았다. 나 또한 그에게 응석 부리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잠깐의 침묵 후 그는 조용히 일어섰다. 그가 천천히 걸어가는 소리가 들리자 나는 조그마한 소리로 그를 불렀다. 아버지.
  
  왜 그러냐. 그는 뒤돌아보지도 않으며 계속 걸어갔다. 나는 말했다. 아버지. 내가 당신을 잊어도 슬프지 않으시겠어요. 그러자 그가, 아니, 나의 아버지가 말했다. 늘 어렵게만 느껴졌던 그가, 무뚝뚝하게 나를 지켜보기만 하는 것 같았던 그가 이제는 나를 위로해주고 있었다. 괜찮아. 내가 너를 잊지 않으면 되잖니. 별일 없었던 것처럼, 그냥 언제나처럼 살아가. 그러다가 삶에 치이고 괴로울 때 한 번씩만 나를 떠올려주렴. 그럴 때 나는 어딘가에서 항상 널 지켜보고 있을 거야.
  
  나는 고개를 돌렸다. 그는 이미 사라져있었다. 나는 그가 있었던 곳으로 천천히 걸었다. 그리고 이미 눈물로 뒤범벅된 얼굴을 들고, 나는 환하게 웃었다. 마지막으로 보였던 그의 얼굴이, 세상에서 가장 환한 미소를 짓는 그 모습이 문득 보이는 듯했기에.
  
  분명 영원한 이별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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