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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지가 땅에 처박혀 있다. 더럽고 꼬질꼬질하고 냄새나는 거지가 머리부터 땅에 쳐박혀 있다. 마치 한 그루의 나무처럼. 실상은 나무보다도 쓰임새가 없는 그의 앞을 언제나처럼 나는 지나친다. 지나가던 세일즈맨이 가식적인 미소를 지으며 동전을 던졌다. 멋진 포물선이 그려지며 깡통에 내려꽃히자 땡그랑, 하는 소리가 귓가에 울린다. 거지는 감사하다는 듯 연신 다리를 굽힌다.
역겹다. 여하튼 발걸음을 재촉한다. 서두르지 않으면 학원에 늦고, 늦으면 수업을 잘 못 듣고, 그건 틀림없이 대학 입시에 영향을 끼친다. 그런 건 안 된다. 나는 먹이사슬의 강자가 되고 싶다. 뚜벅뚜벅 걷고 있자니 달려오고 있던 어느 중년의 샐러리맨이 거칠게 어깨를 부딪힌다. 나는 얼굴을 찌푸린다.
"아저씨, 지금은 상황이 여의치 않아 그냥 넘어가겠지만 더 이상 폭력적 행위를 가하시면 형법에 의거하여 인생의 패배자로 만들어드릴테니 알아서 하십쇼."
샐러리맨은 연신 고개를 숙이며 사과한다. 나는 흥, 하고 콧방귀를 뀌며 다시 가던 길을 간다. 뭐 이딴 거 가지고 지랄이야, 라는 샐러리맨의 조그맣지만 누구나 들을 수 있을 정도의 욕 지껄임이 들려왔지만, 나는 그런 것에 신경쓰지 않았다. 뒷담화 같은 걸 일일히 신경쓰는 건 올바른 민주 시민의 태도가 아니므로.
학원 건물 앞의 횡단보도 앞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심장 박동이 느려진다. 시계를 보니 5분 20초 정도의 시간이 남아있다. 이 정도라면 시간에 간당간당하게 맞출 수 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여유가 생겨 옆을 잠시 돌아보니 어여쁜 여자 아이가 눈에 띈다. 스타일도 외모도 동양 문화권에선 제법 상위권에 위치할 수준이다. 왠지 낯이 익어 곰곰히 생각해보니 우리 학원 애다. 성공적인 장래를 위한 가능성을 조금 더 늘리기 위해 말을 걸까 말까 주저하는 사이에 신호는 어느새 초록색으로 바뀌었다. 그 아이가 걸어가는 것이 보이자, 나는 당황해서 아무 생각도 하지 못한 채 황급히 달려갔다.
"저, 저기…."
그 아이가 돌아본다. 좋은 향이 코를 스친다. 무언가 더 말하려고 했던 순간 끼이이익, 이라는 소리와 함께 그 아이의 몸이 하늘로 튕겨졌다. 떠오른 몸은 만유인력의 법칙에 의거하여 h=1/2at제곱이라는 완벽한 공식에 의해 반원의 궤적을 그렸다. 쿵, 하고 떨어지는 그녀의 몸을 보며 나는 중얼거렸다. 물론 여기서의 a는 물론 중력가속도를 의미하지. 그 소리를 들은 주변의 경찰이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너를 저 아이의 반사적 시야를 차단한 혐의로 형법에 의거하여 처단하여야겠지만, 네가 언젠가 경쟁사회의 강자가 되어 돌아올 가능성이 두자릿수는 되니 이거 참 고민되는구나. 너 혹시 국영수 평균등급이 몇이니."
"소수 자리까지 쳐서 일점 삼인데요."
경찰은 으음, 하는 소리를 내며 고민하다가 내가 다니는 고등학교를 물었다. 나는 대답했다. 수도권 아닌 이 지역에서는 제법 다닐 만 하다는 S고 다닙니다. 경찰은 내가 다니는 학교가 이 근방 명문인 Y고가 아니라는 사실에 잠깐 고민했지만, 잠시 후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나중에 크게 되면 나 좀 잘 봐다오. 난 어디어디 경찰서에 근무하는 김 경관이란다." 나는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비어있는 교탁을 보니 선생님은 오지 않은 모양이다. 학원 의자에 앉아 창 밖을 바라보니 아직 죽지 않은 아까의 소녀가 꿈틀대며 행인들에게 도움을 구걸하고 있다. 행인들은 모두 바쁘다는 표정으로 눈길 한 번 주지 않은 채 그녀를 지나친다. 나는 잠시 죄책감 비슷한 무언가를 느낄 뻔 했지만 곧 마음을 다잡았다. 경쟁사회에서 남을 동정하다니, 최악이군. 최악이야.
나는 창 밖을 본다. 태양은 나의 머리 위에서 언제나 환하게 세상을 비추고 있다. 나는 빙긋 웃었다.
오늘도 참 미쳐버리도록 좋은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