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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말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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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 끝난 후 밤새 컴퓨터하다가 생각했습니다. 한밤중 느껴지는 그런 어둠 속의 시선이 느껴진다면, 50%는 착각이고 40%는 가족이고 10%는 어둠이 바라보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땐 그랬다구요.
 ​침묵. 당연한 일이겠지만, 밤에는 그다지 소리가 없다. 자동차의 경적 소리는 말해봤자 뭐할까마는 자잘한 잡소리마저도 사라지는 시간이란 어째 신비롭다. 기껏해야 바람의 희미한 감촉만이 느껴지는 그 시간대 속에, "나"는 분명히 있다. 그 속에 섞여 있는 것은 분명히 가감 없는 "나"이다. 나는 그렇게 멀찍이서 "나"를 보고 있을 뿐이다.
  
  그러한 가운데 삐그덕 소리를 내며 스르륵 열리는 문. 슬며시 다가오는 냉기를 흘려보낸다. 멍한 눈길로 슬쩍 뒤를 돌아보니 언뜻 보이는 무언가의 형상. 초점을 맞추려는 찰나에 새빨간 눈을 드러내고 나를 응시한다. 순간 정신이 아찔해진다. 까무러칠 듯한 의식 속에서, 그러나 나는 저 눈을 알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를 악 다물고 녀석을 쏘아보았다. 

(41) 악마는 참 야비하게도 소리없이 뒤에서만 나타나는 습성이 있다.


  "또 왔냐." 짜증스러운 나의 말투에 녀석이 길길대며 웃는다. 뭐, 그렇게까지 예상치 못한 불청객도 아니잖냐. 복장도 언제나 말끔하게 차려입고 오는데 말이지. 음산한 중저음이 마치 몇년지기 친구에게라도 말하듯 친근한 말투로 울려 퍼진다. 언제나 어둠 속에서 살아가는 그들은, 생각보다 복장이 깔끔한 편이다. 검은 양복에 검은 넥타이, 검은 와이셔츠. 어쩌다가 한 번이라도 눈 돌아갈 일은 없을 옷차림은 그들을 어둠으로 회귀시키는 데에 큰 도움이 되는 것 같다. 실상 복장이야 어떻든 간에 저 녀석들은 반갑지 못할 따름이지만. 
  
  그래서 오늘은 대체 무슨 일로 왔느냐, 며 미처 따져물을 새도 없이 녀석이 말한다. 스산한 달밤에 어두운 방구석. 둘이서 마주보는 불확실한 존재들은 그저 둘 다 서로 무서울 따름인데, 그렇다면 너와 나 둘 중 누가 더 무서울까. 녀석은 그러한 말을 눈썹 하나 까닥하지 않은 채 말했다. 나는 "당연히 너지"라는 진리를 내뱉으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다. 불친절하게도, 녀석은 말 한마디 내뱉은 채로 이미 사라져 있었다.
  
  ◇
  
  늦은 밤 화장실에 홀로 다녀오던 소년이 말하길, "그거 알아요? 어둠 속에는 악마가 살고 있대요. 악마는 차갑고, 무섭고, 괴로워요. 악마는 언제나 노래를 부르며 놀아요. 악마는 밤늦게 누군가의 눈구멍과 귓구멍과 콧구멍을 통해서 들어간대요. 그리고 조금씩 아주 조금씩 마음을 파헤쳐 먹는다죠. 그게 악마예요, 무서운 것."
  
  
  저녁에 빌라 옥상에서 담배 한 대 꼬나물고 한숨 푹푹 내쉬는 청년이 말하길, "그거 알아요? 악마는 어둠에 살지 않습니다. 악마는 따뜻하고, 비열하고, 즐겁습니다. 악마는 언제나 즐겁게 웃으며 놉니다. 악마는 언제라도 누군가에게서 슬며시 나옵니다. 그리고 켈켈켈 웃어대며 마음을 찢어발깁니다. 그게 악마입니다. 무서운 것."
  
  
  황혼 무렵 길거리에서 마주친 가방 든 샐러리맨이 말하길, "악마요? 그딴 거 어린애나 믿는 거죠. 뭐, 옛날엔 무서워했습니다만, 지금은."
  
  
  대낮에 공원에서 만난 멍한 할아버지가 말하길, "악마가 무섭습니까? 나는 그것보다도."
  
  ◇
  
  그리고 나는 꿈을 꾸었다. 나는 그 속에서, 그 누구도 아닌 평범하기 그지없는 "그", 어느 누군가가 되어 서 있었다. 멀뚱히 서 있자니 어느 날 카페에 앉아 우아하게 커피를 마시던 악마가 나를 보고 손을 흔들었다. 여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생물 등장이시군 그래.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던 그는, 그저 조금 인상을 찌푸렸다.
  
  꿈에서 깬 나는, 약간 인상을 찌푸렸다. 녀석은 때를 놓치지 않고 찾아들었다. 그래, 역시 너희들이 더 무서운 종이겠지. 애초에 우리는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악취 나는 찢어진 입을 길게 늘어뜨리며 녀석이 웃었다. 악마가 웃었다.
  
  나는 조금 슬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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