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실지도 모르겠지만 이 근방의 전설엔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보름달 뜬 밤에 사라진 아이들의 이야기. 그러니까 오늘과 같은 밤입니다. 네, 딱 오늘 같은 밤이었습니다. 달은 노오랗게 떠오르고 아이들이 노래를 부르던 밤. 그 고장의 전설대로 아이들은 귀신을 쫓기 위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지요.
백귀야행, 귀신의 밤. 그곳에 있는 건 원하는 것. 그러나 조심하라. 잡히면 죽고, 도망쳐도 죽으리라. 언제나 무서운 것은 인간. 달이 가득 찬 밤에 쫓고 쫓기며 웃으리라. 그러나 언제나 무서운 것은 인간. 신은 그 누구도 벌하지 않으리. 그리고 언제나 속이는 것은 인간. 잠들지 못하는 밤, 쫓고 쫓기며 웃어대리라.
아이들은 이 노래가 산속 깊은 곳의 동굴에 들어가지 말라는 얘기인 줄 알고 있었습니다. 그 또래 녀석들이 언제나 그렇듯, 동굴로 들어가 보자는 이야기가 나오지 않을 리 없지요. 아이들은 묘하게 예민하니까요. 당연히 매력적인 무언가가 금기 속에 숨어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을 겁니다.
첫 번째 아이가 말했습니다. 번득이는 안광들은 우리를 좇지 않아. 두려워할 필요 없잖아. 두 번째 아이가 말했습니다. 우리는 서로 손을 잡고 있어. 두려워할 필요 없잖아. 세 번째 아이가 말했습니다. 어른들은 우리에게 헛소리만 해. 두려워할 필요 없잖아. 네 번째 아이가 말했습니다. 나는 가지 않겠어. 모두 조심해. 그렇게 말하는 아이의 얼굴은 보름달을 받아 노오랗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한 아이가 남고, 세 아이는 떠나갔습니다.
동굴 안은 깊고, 어둡고, 숨 막힐 정도로 따뜻했습니다. 아이들은 끝날 줄 모르는 길을 걷고 또 걷다가 마침내 지쳐버렸습니다. 촛불의 불빛은 두려움을 없애기에도 부족했지만, 피로를 덜어주기에는 더욱 부족했지요. 지치고 지쳐 포기하고 싶은 녀석이 생기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한 아이가 말했습니다. 나는 이제 여기서 쉬고 있을게. 너희끼리 다녀와. 두 아이는 약간 망설임이 섞인 눈빛으로 마주보았습니다만, 행동엔 관성이 있는 법 아니겠습니까. 멈춘다고 말한 녀석은 아무리 말해도 멈출 뿐, 나아가길 원하는 자들은 아무리 말해도 나아갈 뿐. 그들은 단순히 두 녀석은 깊고 따스한 어둠에 먹히는 것을 본능적으로 두려워한 것일지도 모르지요. 그들은 나아갔습니다. 노오란 불빛에 꼬이던 날벌레가 한 마리 떨어져 나갔습니다. 불빛을 잃어버린 벌레는 살 수 없습니다. 벌레의 절규가 멀어져가는 불빛에 섞여 희미하게 들려왔지만, 이미 나아간 그들에게는 들릴 만한 거리가 아니었습니다.
한 아이가 남고, 두 아이가 떠나갔습니다.
흘러내린 식은땀 한 방울이 용기를 뒤흔들 정도로, 등불마저 꺼져가는 칠흑 같은 어둠의 자궁 속에 두 아이가 있었습니다. 어느 순간, 아이들은 다투기 시작했습니다. 발을 조금 밟은 것 정도로 신경질이 난 건 아닐걸요. 그저, 어둠 속에서 사람은 미치기 마련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두려움을 때릴 수는 없으니까 옆의 방해물을 때린 것뿐이죠. 아이들의 싸움은 단순히 격앙된 감정의 표현이니까요. 다만 누구의 이빨이 나가든, 손가락이 부러지든, 눈을 찔리고 목을 조르고 팔을 부러뜨려도 두려움은 사라지지 않으니까, 싸움은 멈추지 않을 뿐입니다. 더 이상 누굴 때리거나 맞기에는 너무 지쳐버린 한 녀석은 등불도 잊고 떠나갑니다. 어두운 장막의 뒤를 향해서. 자신이 버렸던 패배자와 만나기 위해. 뭐 만날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마는, 끝없이 불길한 마성을 풍기는 어두컴컴한 내장 속에서 과연 그 어떤 것이 남아있을 수 있었을까요.
한 아이가 남고, 한 아이가 떠나갔습니다.
남은 아이와 남은 등불. 여하간 둘 다 얼마 남지 않은 건 분명했습니다. 다 타버리기 전에 그저 앞으로,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는 없었죠. 두려움, 공포, 후회. 그런 건 다 도중의 일일 뿐입니다. 처음이든 마지막이든, 그 순간에는 아무런 감정도 없이, 본능 같은 것도 없이 그저, 끝에 무엇이 있는가를 알기 위해서. 등불이 꺼진 지는 이미 한참 오래전 일이지만, 아이는 칠흑 같은 어둠 속을 더듬고 더듬으며 그 무엇인가를 찾았습니다. 노래 속에 숨어 있던 것은 이제 와서야 소년에게 속삭이기 시작했습니다.
얘. 이곳에 무엇이 있는지 아니. 소년은 무시했습니다. 소년의 귀에 무엇인가가 속삭였습니다. 얘, 네가 지금 무엇을 찾고 있는지 아니. 소년은 필사적으로 기었습니다. 얘, 네가 지금 무엇을 향해 가는지 아니. 끝에 끝까지 가면 무언가 있을 것 같니. 아무것도 없어. 이제 그만 포기해. 소년은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자아, 이제 포기해. 여기가 너의 한계야. 바야흐로 백귀야행의 밤. 도망쳐도 숨어도 살아날 수 없는 곳. 너는 이제 끝이야. 귀신은 말했습니다.
그 목소리에 담긴 필사적인 감정을 소년은 알고 있었습니다. 무엇인가가 이 앞에 있다는 걸 알자, 소년은 있는 힘을 다해 손을 뻗었습니다. 안돼. 그건 아니야. 너는 그걸 집을 수 없어. 그걸 집으면 너는 죽어. 그게 이 너의 끝이야. 그건 집으면 안 돼. 소년은 그 더럽고 상처입은 손으로, 쉬어버린 목소리로, 두려움도 공포도 없이 손을 뻗었습니다. 그는 중얼거렸습니다. 그래, 내가 찾던 것은 바로.
금기. 도대체 금기 안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금기 안에는 분명히, 우리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그 미약한 신보다도 더 강력한 무언가가 존재하고 있습니다. 금줄을 깨부수고 태아를 바수는, 갈기갈기 동물을 찢고 필요하다면 남을 배신하고 빼앗고, 쓸데없는 규칙을 어기고, 결국 모든 게 행한 그대로 흘러가는데 말입니다. 처벌 따윈 없습니다. 잡히거나, 보이거나, 들리지 않으면 됩니다. 어둠 속에서 일어나면 됩니다. 아무렴 어때요. 신은, 당연하게도 그 빌어먹을 신은 아무도 벌하지 않으니까요.
힘. 깨부수고 바수는, 찢고 더럽히는, 빼앗고 어기는, 행한 그대로 흘러가는, 그러나 원한다면 그 모든 것들을 다시 되돌릴 수도 있는 힘. 노래 속에 숨겨져 있던, 모두가 찾아 헤매던, 그리고 소년이 찾아 헤매고 있었던 것. 그것이 그 동굴 안에 있었습니다. 어떻게 그것이 그곳에 있었는지는 모릅니다. 어떻게 그것을 소년이 느꼈는지는 모릅니다. 그 모든 것을 막론하고, 어쨌거나 그것은 소년의 바로 코앞에 놓여 있었습니다. 소년은 분명히 잡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잡은 것은 그가 아니었습니다. 그 소년은, 그러니까, 안광을 번득이며 동굴 밖에서부터 그들을 쫓아간, 그들의 헤맴을 모두 지켜본 피투성이 소년은 미소 지으며, 상처투성이 소년의 손을 밟고 서 있었습니다.
어떻게 네가 여기에 있지. 상처투성이 소년이 말했습니다. 빙그레 웃음 짓던 피투성이 소년은 천천히 그것을 손에 쥐었습니다. 그래, 난 분명히 가지 않았어. 그곳에 남았었어. 그리고 너희가 출발하고 나서, 너희의 불빛을 따라가, 남아있던 약해진 벌레들을 짓밟고, 마지막 순간을 숨죽여 기다렸어. 그래서 여기에 서 있지. 그래서 이것을 손에 넣었지. 상처투성이 소년은 멍하니 그를 올려다보았습니다. 백귀야행의 밤, 귀신의 안광이 불빛으로 노오랗게 물들어 녀석의 얼굴을 스쳐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소년은 말했습니다. 그러니까, 언제나 무서운 것은.
그리하여 영원할 듯한 밤이 끝났습니다.
시커먼 보름달이 둥그렇게 떠 있는 밤. 그날도 나는 노오란 전등이 소주에 비치는 기묘한 광경을 보며, 주인마저 졸고 있는 노오란 포장마차의 밤. TV에서는 어릿광대의 노래가 울려 퍼지고, 옆에서는 레코드판의 잡음 같은 이야깃소리들이 들려왔다. 세상 참 더러워. 이젠 뉴스도 듣기 싫다니까. 도대체 얼마나 많은 녀석들이 나쁜 짓을 해대는지 원. 그런데 아무도 벌을 받지 않아. 나는 또 한 잔을 쭈욱허니 들이켰다. 소주병에 비치는 것은, 주로 날벌레였다. 그들은 노오란 불빛에, 그 열기에, 아니라면 내가 모를 그 어떤 매력에 이끌려 생명을 불태우고 있었다. 기껏해야 그런 것이다, 생명 하나란. 죄 하나란 겨우 그런 것이다. 나는 그따위의 개똥철학을 혀 꼬부라진 발음으로 주워 삼키고 있었다.
참 이상했다.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이 마신 밤이었음에도 그 어느 때보다도 머리는 차갑게 돌아갔다. 나는 중얼거렸다. 그래, 오늘도. 어쩌면 나는 그때 술 취한 자의 특권-자신의 목소리를 자기가 들을 수 있다는 어느 소설의 말처럼, 단지 나의 목소리를 듣고 싶었을지도 모르겠다. 옆의 사람들의 소리는 어느 새엔가 사라졌다. TV는 꺼져 있었다. 그들이 떠나간 것인가, 내가 어딘가로 떠밀린 것인가. 알코올이 껴서 둔해진 머리로 잠시 생각해보다가, 나는 그만 웃어버리고 말았다. 그래, 오늘도 그 밤이다.
차가운 광풍(狂風)이 비닐 천막 뒤엣편으로 스멀스멀 기어들어왔을 때, 나는 그리 놀라지도, 짐짓 놀란 표정을 지어주지도 않았다. 심지어는 뒤를 돌아보는 것 따위의 촌스런 리액션을 취하지도 않았다. 보름달 뜨는 밤은 백귀야행의 밤이라 했던가. 나는 그저 그렇게 씨부렸다. 소주병에는 노오란 전구등과, 그것에 미칠 듯이 달려드는 벌레들과, 입이 찢어질 듯이 괴기한 웃음을 웃는 백색의 사내가 비쳤다. 사내는 맹수에라도 쫓기는 듯 괴로운 호흡으로 웃어댔다. 나는 슬쩍 조소를 띄워 그에 답했다. 허어연 머리의 사내는 허어연 양복을 입고 허어연 구두를 신고 허어연 웃음을 지으며 뻔뻔하게도 인사치레를 했다. 초면이네요. 나는 대답했다. 구면이겠지.
그리고 사내는 그날도 그 언제나처럼 번들거리는 안광을 뿜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참 이상했다.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이 마신 밤이었음에도 그 어느 때보다도 머리는 차갑게 돌아갔다. 나는 중얼거렸다. 그래, 오늘도. 어쩌면 나는 그때 술 취한 자의 특권-자신의 목소리를 자기가 들을 수 있다는 어느 소설의 말처럼, 단지 나의 목소리를 듣고 싶었을지도 모르겠다. 옆의 사람들의 소리는 어느 새엔가 사라졌다. TV는 꺼져 있었다. 그들이 떠나간 것인가, 내가 어딘가로 떠밀린 것인가. 알코올이 껴서 둔해진 머리로 잠시 생각해보다가, 나는 그만 웃어버리고 말았다. 그래, 오늘도 그 밤이다.
차가운 광풍(狂風)이 비닐 천막 뒤엣편으로 스멀스멀 기어들어왔을 때, 나는 그리 놀라지도, 짐짓 놀란 표정을 지어주지도 않았다. 심지어는 뒤를 돌아보는 것 따위의 촌스런 리액션을 취하지도 않았다. 보름달 뜨는 밤은 백귀야행의 밤이라 했던가. 나는 그저 그렇게 씨부렸다. 소주병에는 노오란 전구등과, 그것에 미칠 듯이 달려드는 벌레들과, 입이 찢어질 듯이 괴기한 웃음을 웃는 백색의 사내가 비쳤다. 사내는 맹수에라도 쫓기는 듯 괴로운 호흡으로 웃어댔다. 나는 슬쩍 조소를 띄워 그에 답했다. 허어연 머리의 사내는 허어연 양복을 입고 허어연 구두를 신고 허어연 웃음을 지으며 뻔뻔하게도 인사치레를 했다. 초면이네요. 나는 대답했다. 구면이겠지.
그리고 사내는 그날도 그 언제나처럼 번들거리는 안광을 뿜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42) 삐에로가 늘 그렇듯, 광대 같은 사내는 어딘가 겁먹은 투의 말을 잇는다.
아실지도 모르겠지만 이 근방의 전설엔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보름달 뜬 밤에 사라진 아이들의 이야기. 그러니까 오늘과 같은 밤입니다. 네, 딱 오늘 같은 밤이었습니다. 달은 노오랗게 떠오르고 아이들이 노래를 부르던 밤. 그 고장의 전설대로 아이들은 귀신을 쫓기 위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지요.
백귀야행, 귀신의 밤. 그곳에 있는 건 원하는 것. 그러나 조심하라. 잡히면 죽고, 도망쳐도 죽으리라. 언제나 무서운 것은 인간. 달이 가득 찬 밤에 쫓고 쫓기며 웃으리라. 그러나 언제나 무서운 것은 인간. 신은 그 누구도 벌하지 않으리. 그리고 언제나 속이는 것은 인간. 잠들지 못하는 밤, 쫓고 쫓기며 웃어대리라.
아이들은 이 노래가 산속 깊은 곳의 동굴에 들어가지 말라는 얘기인 줄 알고 있었습니다. 그 또래 녀석들이 언제나 그렇듯, 동굴로 들어가 보자는 이야기가 나오지 않을 리 없지요. 아이들은 묘하게 예민하니까요. 당연히 매력적인 무언가가 금기 속에 숨어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을 겁니다.
첫 번째 아이가 말했습니다. 번득이는 안광들은 우리를 좇지 않아. 두려워할 필요 없잖아. 두 번째 아이가 말했습니다. 우리는 서로 손을 잡고 있어. 두려워할 필요 없잖아. 세 번째 아이가 말했습니다. 어른들은 우리에게 헛소리만 해. 두려워할 필요 없잖아. 네 번째 아이가 말했습니다. 나는 가지 않겠어. 모두 조심해. 그렇게 말하는 아이의 얼굴은 보름달을 받아 노오랗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한 아이가 남고, 세 아이는 떠나갔습니다.
동굴 안은 깊고, 어둡고, 숨 막힐 정도로 따뜻했습니다. 아이들은 끝날 줄 모르는 길을 걷고 또 걷다가 마침내 지쳐버렸습니다. 촛불의 불빛은 두려움을 없애기에도 부족했지만, 피로를 덜어주기에는 더욱 부족했지요. 지치고 지쳐 포기하고 싶은 녀석이 생기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한 아이가 말했습니다. 나는 이제 여기서 쉬고 있을게. 너희끼리 다녀와. 두 아이는 약간 망설임이 섞인 눈빛으로 마주보았습니다만, 행동엔 관성이 있는 법 아니겠습니까. 멈춘다고 말한 녀석은 아무리 말해도 멈출 뿐, 나아가길 원하는 자들은 아무리 말해도 나아갈 뿐. 그들은 단순히 두 녀석은 깊고 따스한 어둠에 먹히는 것을 본능적으로 두려워한 것일지도 모르지요. 그들은 나아갔습니다. 노오란 불빛에 꼬이던 날벌레가 한 마리 떨어져 나갔습니다. 불빛을 잃어버린 벌레는 살 수 없습니다. 벌레의 절규가 멀어져가는 불빛에 섞여 희미하게 들려왔지만, 이미 나아간 그들에게는 들릴 만한 거리가 아니었습니다.
한 아이가 남고, 두 아이가 떠나갔습니다.
흘러내린 식은땀 한 방울이 용기를 뒤흔들 정도로, 등불마저 꺼져가는 칠흑 같은 어둠의 자궁 속에 두 아이가 있었습니다. 어느 순간, 아이들은 다투기 시작했습니다. 발을 조금 밟은 것 정도로 신경질이 난 건 아닐걸요. 그저, 어둠 속에서 사람은 미치기 마련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두려움을 때릴 수는 없으니까 옆의 방해물을 때린 것뿐이죠. 아이들의 싸움은 단순히 격앙된 감정의 표현이니까요. 다만 누구의 이빨이 나가든, 손가락이 부러지든, 눈을 찔리고 목을 조르고 팔을 부러뜨려도 두려움은 사라지지 않으니까, 싸움은 멈추지 않을 뿐입니다. 더 이상 누굴 때리거나 맞기에는 너무 지쳐버린 한 녀석은 등불도 잊고 떠나갑니다. 어두운 장막의 뒤를 향해서. 자신이 버렸던 패배자와 만나기 위해. 뭐 만날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마는, 끝없이 불길한 마성을 풍기는 어두컴컴한 내장 속에서 과연 그 어떤 것이 남아있을 수 있었을까요.
한 아이가 남고, 한 아이가 떠나갔습니다.
남은 아이와 남은 등불. 여하간 둘 다 얼마 남지 않은 건 분명했습니다. 다 타버리기 전에 그저 앞으로,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는 없었죠. 두려움, 공포, 후회. 그런 건 다 도중의 일일 뿐입니다. 처음이든 마지막이든, 그 순간에는 아무런 감정도 없이, 본능 같은 것도 없이 그저, 끝에 무엇이 있는가를 알기 위해서. 등불이 꺼진 지는 이미 한참 오래전 일이지만, 아이는 칠흑 같은 어둠 속을 더듬고 더듬으며 그 무엇인가를 찾았습니다. 노래 속에 숨어 있던 것은 이제 와서야 소년에게 속삭이기 시작했습니다.
얘. 이곳에 무엇이 있는지 아니. 소년은 무시했습니다. 소년의 귀에 무엇인가가 속삭였습니다. 얘, 네가 지금 무엇을 찾고 있는지 아니. 소년은 필사적으로 기었습니다. 얘, 네가 지금 무엇을 향해 가는지 아니. 끝에 끝까지 가면 무언가 있을 것 같니. 아무것도 없어. 이제 그만 포기해. 소년은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자아, 이제 포기해. 여기가 너의 한계야. 바야흐로 백귀야행의 밤. 도망쳐도 숨어도 살아날 수 없는 곳. 너는 이제 끝이야. 귀신은 말했습니다.
그 목소리에 담긴 필사적인 감정을 소년은 알고 있었습니다. 무엇인가가 이 앞에 있다는 걸 알자, 소년은 있는 힘을 다해 손을 뻗었습니다. 안돼. 그건 아니야. 너는 그걸 집을 수 없어. 그걸 집으면 너는 죽어. 그게 이 너의 끝이야. 그건 집으면 안 돼. 소년은 그 더럽고 상처입은 손으로, 쉬어버린 목소리로, 두려움도 공포도 없이 손을 뻗었습니다. 그는 중얼거렸습니다. 그래, 내가 찾던 것은 바로.
금기. 도대체 금기 안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금기 안에는 분명히, 우리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그 미약한 신보다도 더 강력한 무언가가 존재하고 있습니다. 금줄을 깨부수고 태아를 바수는, 갈기갈기 동물을 찢고 필요하다면 남을 배신하고 빼앗고, 쓸데없는 규칙을 어기고, 결국 모든 게 행한 그대로 흘러가는데 말입니다. 처벌 따윈 없습니다. 잡히거나, 보이거나, 들리지 않으면 됩니다. 어둠 속에서 일어나면 됩니다. 아무렴 어때요. 신은, 당연하게도 그 빌어먹을 신은 아무도 벌하지 않으니까요.
힘. 깨부수고 바수는, 찢고 더럽히는, 빼앗고 어기는, 행한 그대로 흘러가는, 그러나 원한다면 그 모든 것들을 다시 되돌릴 수도 있는 힘. 노래 속에 숨겨져 있던, 모두가 찾아 헤매던, 그리고 소년이 찾아 헤매고 있었던 것. 그것이 그 동굴 안에 있었습니다. 어떻게 그것이 그곳에 있었는지는 모릅니다. 어떻게 그것을 소년이 느꼈는지는 모릅니다. 그 모든 것을 막론하고, 어쨌거나 그것은 소년의 바로 코앞에 놓여 있었습니다. 소년은 분명히 잡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잡은 것은 그가 아니었습니다. 그 소년은, 그러니까, 안광을 번득이며 동굴 밖에서부터 그들을 쫓아간, 그들의 헤맴을 모두 지켜본 피투성이 소년은 미소 지으며, 상처투성이 소년의 손을 밟고 서 있었습니다.
어떻게 네가 여기에 있지. 상처투성이 소년이 말했습니다. 빙그레 웃음 짓던 피투성이 소년은 천천히 그것을 손에 쥐었습니다. 그래, 난 분명히 가지 않았어. 그곳에 남았었어. 그리고 너희가 출발하고 나서, 너희의 불빛을 따라가, 남아있던 약해진 벌레들을 짓밟고, 마지막 순간을 숨죽여 기다렸어. 그래서 여기에 서 있지. 그래서 이것을 손에 넣었지. 상처투성이 소년은 멍하니 그를 올려다보았습니다. 백귀야행의 밤, 귀신의 안광이 불빛으로 노오랗게 물들어 녀석의 얼굴을 스쳐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소년은 말했습니다. 그러니까, 언제나 무서운 것은.
그리하여 영원할 듯한 밤이 끝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