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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버스


리버스 1화



  “아민아! 류아민!”
  목이 터져라 불러 봐도 대답이 없다. 들리는 것은 전장의 총성과 적들의 울음소리. 아민이는 검은 형체에게 질질 끌려가고 있었다. 정신을 잃었는지 비명은 들리지 않는다. 대기 명령을 무시하고 뛰쳐나가기 직전, 어두운 그림자는 거대한 늑대와 같은 생명체로 그 모습을 바꾼다. 그리고 한 소녀를 그대로 들어올려, 상반신을 씹어 먹었다. 다리가 힘없이 떨어진다. 사격이 괴물에게 집중된다. 놈은 다시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와 유유히 사라진다. 아민이가, 죽었다.
  “으아아아아!”
  『퀘스트에 실패하셨습니다.』
  익숙한 알림음과 함께 배경이 하얗게 변했다. 캡슐이 열리고 차가운 공기가 나를 현실로 끌어냈다. 이미 로그아웃해 있던 아민이 투덜거렸다.
  “이걸 어쩌라는 거야. 야, 내가 잡혔으면 당장 튀어나와서 구했어야지!”
  “나더러 뭘 어쩌라고. 애초에 잡힌 게 잘못 아냐?”
  나를 노려보던 아민이는 이내 작게 한숨을 쉬었다.
  “야, 더 할래?”
  “미안, 약속 있어.”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민이는 뚱한 표정을 짓더니 그래 하고는 도로 캡슐로 들어가 버렸다. 나도 같이 어울려주고 싶지만 슬슬 시간이 다 되어 간다. 훈련소에서 나와 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15분 정도 기다렸을까. 정확한 약속 시간에 노크 소리가 들리고 방문이 열렸다. 차렷 자세로 대기하고 있던 나는 문이 열리는 순간 머리를 확 숙였다.
  “오셨습니까!”
  “아, 네…… 안녕하세요.”
  예상과 전혀 다른 목소리에 슬쩍 고개를 들었다. 처음 보는 사람이다. 복장을 보니 서비스 센터 직원이다. 어깨에 커다란 상자를 두 명이서 같이 지고 있었다. 어라? 뭐 주문한 적 없는데?
  그들은 상자를 방 한구석에 내려놓고 금세 사라졌다. 나는 상자를 뜯기 전에 내용물이 무엇일지 추리하는데 골똘했다. 그 탓에 누군가 방에 들어왔다는 것을 뒤늦게 눈치 채고 말았다.
  “폭발물 아니니 이제 그만 열어보는 게 어떤가.”
  “안 그래도 지금……. 엇?”
  재빠르게 고개를 뒤로 돌렸다. 정 교관님이 특유의 무뚝뚝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지금 바로 뜯겠습니다.”
  “그전에 해야 할 일이 있지 않은가.”
  “네?”
  그게 뭐죠. 라고 묻는 듯한 내 태도에 정 교관님은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자네는 언제가 되어야 제대로 인사를 할 것이냔 말일세.”
  아차, 이래서 문 앞에서 대기하고 있었던 건데.
  “죄송합니다. 오셨습니까!”
  “엎드려 절 받기로구먼. 왜 자네 따위가 선발되었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어.”
  선발이라뇨. 라고 묻는 대신 나는 침묵을 지켰다. 어차피 다 설명해 주실 거다. 반문해봤자 시간만 아깝지.
  “용건만 말하지. 자네는 지금부터 비밀임무에 투입될 걸세.”
  “예!”
  “그럼 잘해보게.”
  “예! ……예?”
  무언가 중간과정이 생략된 듯한 기분이 든다. 아니 분명히 생략됐다.
  “저기, 어떤 임무인지는 설명을 해주셔야…….”
  “내가 말꼬리 흐리지 말라고 얘기 안 했던가?”
  “죄송합니다!”
  교관님은 쯧쯧 혀를 차고는 그대로 밖으로 걸어 나가며 말했다.
  “자네는 오늘부터 ‘학생’이라는 것이 되어주어야겠네. 지령서는 캡슐 안에 있으니 알아서 확인하게.”
  내가 얼떨떨하게 서있자 교관님은 한마디를 덧붙이셨다.
  “인사는?”
  “안녕히 가십시오!”
  몇 분 대화하지도 않았는데 피곤해졌다. 밤을 새서 훈련한 탓일까. 터덜터덜 침대로 걸어가 그대로 뻗어버렸다. 비밀임무? 일단 자고 나서 생각하자.
  배가 고파 잠에서 깨어났다. 시간을 확인하니 오후 1시였다. 밥 먹을 시간이네. 여섯 시간 정도 잔걸까. 점심 먹으러 가면서 임무나 확인해 둘 생각으로 캡슐을 열고 지령서를 꺼냈다. 살짝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읽어보니 ……어? ‘지령을 확인하는 즉시 로그인 할 것. 늦어도 8시 30분 까진 접속 요망.’
  8시 30분? 저녁인가? P.M.이겠지? 나는 날아가려는 멘탈을 부여잡으며 지령서를 계속 읽었다. ‘임무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가상 세계 내부에서 진행하겠음. 1-2 집합. 지각 시 엄중 처벌.’ 하… 하하하하하하. 뭐야 이게!
  밥 먹을 때가 아니다. 잽싸게 캡슐에 들어가 로그인했다. 익숙한 감각이 전신을 휘감고 배경이 바뀌기 시작했다.   
  나는 운동장 한 가운데서 눈을 떴다. 많은 사람들이 축구와 농구를 하거나 스탠드에 앉아 점심을 먹고 있었다. 그들의 대부분은 나와 비슷한 또래로 보였다. 모두 비슷하게 생긴 옷을 입고 있었는데 남자는 회색 바지에 남색 마의 여자는 체크무늬 스커트에 하얀 블라우스 그리고 넥타이를 매고 있었다.
  일단 운동장을 빠져나와 옆에 있는 건물로 뛰어 들어갔다. 1-2 집합이 무슨 소린가 했었지만 들어와 보니 알 수 있었다. 방들이 죽 늘어서 있었는데 문 위 푯말에 1-10 1-9 같은 숫자가 적혀있었다. 복도를 뛰면서 창으로 안을 살펴보니 여러 개의 책상과 의자가 줄을 맞추어 놓여있었다. 문 반대편에도 창이 있었고 몇몇 사람들이 자리에 앉아 있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1-2의 문을 열어젖히며 큰 목소리로 사과했다. 그러나 아무도 없었다. 뻘쭘함과 동시에 머릿속으로 복잡한 생각이 밀려들었다. 임무는 시작조차 하지 못하고 실패. 징계는 피할 수 없다. 교관님하고 아민이한테도 한 소리 듣겠지. 근신 처분을 받으면 당분간 전투에도 나가지 못할 테고. 으으 잠이 원수다.
  고개를 푹 숙이고 절망하고 있을 찰나 뒤에서 누군가 어깨를 툭툭 건드렸다. 뒤를 돌아보니 신비한 느낌의 여자애가 생글생글 웃고 있었다. 단아하게 정리된 머리칼, 작은 얼굴, 동양풍의 미인이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이목구비. 처음 보는 얼굴이다.
  “네가 한야야?”
  나를 알고 있어? 나는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그런데요.”
  “존대는 하지 마. 나는 교관이 아니라 ‘학생’이니까.”
  학생이라는 말을 두 번째 들었다. 무슨 뜻일까.
  “그게 뭔데?”
  “배우는 사람.”
  무얼 배우는데 라고 묻지는 않았다. 더 신경 쓰이는 질문이 있으니까.
  “내 이름 어떻게 알았어?”
  “출석 부를 때 너만 없었으니까.”
  역시 체크했구나. 이제 빼도 박도 못하는 징계다 징계. 내가 우울해 있자 그녀는 계속해서 말을 걸어왔다.
  “점심시간인데 밥은 먹었어?”
  “못 먹었는데.”
  “빵 줄까?”
  “어 그래도 돼?”
  현실의 배고픔은 가상 세계에서도 영향을 끼친다. 가상 세계에서 음식을 먹으면 현실의 배고픔도 이겨낼 수 있다. 원리는 모르겠지만.
  소녀는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가방을 뒤적거렸다. 나는 그 뒤를 졸졸 따라갔다.
  “한야, 너 무슨 마을에서 왔어?”
  “아 나는 둔촌 출신인데…….”
  말을 끝맺지 못했다. 소녀가 어느새 꺼내든 단검이 내 가슴을 찔렀다. 가상 세계에서도 고통은 생생하게 전해진다. 비명을 지르려던 때 소녀는 손수건을 꺼내 내 입을 틀어막았다.
세 번째로 써보는 라이트노벨입니다. 완결 경험은 없습니다. 이번엔 끝까지 포기하지 않기를 혼자서 빌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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