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버스 3화
『쉬는 시간이 시작되었습니다. 체력 회복 속도가 상승합니다.』
종소리가 울리기 무섭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한시라도 빨리 이 여자 곁에서 벗어나고 싶다.
도망치듯 발걸음을 옮겼다. 악마의 표적이 된 그녀는 양 팔을 베고 엎드려 있었다.
“저기, 안녕?”
“누구?”
그녀는 눈을 감은 채 졸린 목소리로 대답했다.
“한야라고 하는데…….”
“선희조.”
“아, 이름이 선희조야?”
“무슨 일.”
무슨 일이냐 하면.
선택지 1. 너 혹시 플레이어야?
선택지 2. 저 뒤쪽에 앉은 여자애가 너 좀 보자는데.
아니다. 내가 할 일은 이 사람이 플레이어인지 npc인지 구분하는 것이 아닌 경고를 해주는 것. 그러니까.
“칼에 안 찔리게 조심해라.”
희조가 눈을 살짝 떴다.
“지금 협박?”
“어? 아니 그게 아닌데.”
“저리 가.”
짧게 대답한 희조는 도로 눈을 감아버렸다. 나는 터덜터덜 내 자리로 돌아왔다.
“성과는 있었어?”
“없어.”
나는 그대로 책상에 엎어졌다. 잠깐 대화했을 뿐인데 말투도 행동도 선희조에게 전염된 느낌이네.
“자꾸 그렇게 비협조적으로 나오기야?”
“응.”
“사람이 죽는 건 싫다며? 네가 협조하지 않으면 나는 계속 누군가를 죽일 수밖에 없어.”
이 살인마가 뭐라는 거야. 뒤를 돌아보며 쏘아붙였다.
“개소리. 다짜고짜 칼로 찔러놓고 이젠 내 탓이냐? 협조하면 남을 죽이지 않을 것처럼 말하지 마.”
“초반에 킬을 해서 레벨을 높이면 일이 쉬워질 것이라고 생각했을 뿐이야.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어. 살인을 하지 않아도 이길 수 있다구. 하지만 협조자를 찾지 못한다면, 이전 계획대로 경쟁자를 죽이는 수밖에 없어. 다시 생각해 줘. 우린 같은 반대파잖아.”
그녀가 쉴 틈 없이 빠르게 말을 뱉었다.
“널 어떻게 믿지? 그전에 반대파가 무슨 뜻?”
“내게 순순히 죽었을 때도 의심스러웠지만…, 네 마을의 교관은 아무 설명 안 해준 거야?”
지령서에 써있다고만 하고 바로 밀어 넣었지. 지령서에도 별 내용은 없었고.
“못 들었어.”
“바보 같을 정도로 정정당당하네. 물론 학생에게 최소한의 설명만 해주고 게임에 투입하기로 합의가 되어있지만 정말 그대로 하는 교관이 있었을 줄은……. 좋아 짧게 설명할게.”
그녀의 설명이 시작되었다.
“게임의 승리 조건은 ‘가장 우수한 스펙으로 졸업한다’ 게임의 목적은 ‘과거의 지식을 습득한다.’지만 공동체 연합의 진짜 목적은 그런 애들 장난이 아냐. 각 공동체 중에는 그 목적에 찬성하는 파도 있고 반대하는 파도 있지. 찬성파의 학생은 이 게임의 클리어를 목적으로 하고 있어. 반대파에서 투입한 학생은 일종의 감시자 혹은 방해꾼이야.”
“그 목적이 뭐냐니까? 내가 반대파라고 생각한 이유는?
“미안, 지금은 말해 줄 수 없어. 이유는… 사람을 죽이지 않겠다고 했으니까.”
“이해가 안 가는데. 찬성파도 사람을 죽이기 싫어할 수 있잖아?”
“아니, 누군가를 죽이지 않으면 그들의 목적은 성사될 수 없어.”
나는 여전히 미심쩍게 그녀를 바라봤다.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단호하게 말했다.
“약속할게. 네가 내게 협조한다면, 나는 더 이상 이 게임 안에서 사람을 죽이지 않아.”
침묵이 이어졌다. 이 사람은 나를 죽였다. 숨기고 있는 비밀도 많다. 이용만 실컷 당하고 버려질 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쩐지 신뢰가 갔다. 나를 죽이고 조소하던 그녀와는 전혀 다른 사람인 것처럼 느껴졌다. 그 이해할 수 없는 차이가, 나를 망설이게 했다.
“반만 믿겠어. 날 죽인 것도 용서는 하지 않아. 네가 다른 사람을 죽이려 한다면 막을 거야.”
“응, 그걸로 됐어.”
그녀는 안심했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서, 내가 뭘 도와야 하지?”
“일단 아군의 확보가 최우선이야.”
그녀는 내 귓가에 얼굴을 가져다 댔다.
6교시 쉬는 시간. 선희조는 여전히 눈을 감고 엎드려 있었다. 자는 걸까. 나는 선희조에게 다가섰다.
“선희조, 오늘 방과후에 너희 집에 가도 될까?”
“찌르게?”
자고 있는 건 아녔구나.
“응? 뭔 소리야?”
“길고 살을 아프게 파고드는 그것으로. 쿡쿡.”
“…… 칼질 안 하니까 아까 했던 소리는 잊어줘.”
“그럼 왜?”
“응? 아 그게. 같은 반이니까 친목 도모 할 겸?”
“그래.”
“어. 혹시 화났어?”
“아니.”
“너무 단답만 하니까…… 아까 선생님하고는 제대로 얘기하던데.”
“하지만 말을 길게 하면, 졸려서 하품이. 하아암.”
그래…… 그럼 먼저 가지 말고 기다려 줘. 그렇게 말하고 자리로 돌아왔다.
“잘 됐어? 역시 안 된다고 하지?”
“아니. 오라던데?”
“어?”
그녀는 혼란에 빠진 듯 보였다.
“플레이어라면 벌써 집이 있을 리가 없는데. 잘못 짚었던 걸까.”
“너 보는 눈이 없구나.”
“너는 정확히 플레이어인걸 맞췄다구? 좋아, 아직 확실한 게 아니니까 가보긴 해야겠어.”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종례가 끝났습니다. 로그아웃이 가능해집니다.』
『내일 등교시까지 모든 능력치가 두 배로 증가합니다.』
“선희조. 가자.”
학생들이 빠르게 빠져나간 교실에서 희조에게 손을 흔들었다. 눈을 비비며 일어난 희조는 이쪽으로 다가와 말했다.
“옆은 누구?”
“얘도 같은 반이야. 그러니까…,”
어라? 얘 이름이 뭐더라?
“반가워. 오늘 같이 실례 좀 할게.”
됐다. 나중에 물어보지 뭐. 어찌됐든 그녀는 희조에게 미소 지었다.
“안 돼.”
그러나 희조의 대답은 차가웠다.
“왜?”
“안 되는 건 안 돼. 가자 한야. 하아암.”
희조가 크게 하품을 하며 교실 문을 나섰다.
“어어 잠깐만.”
나는 다급하게 그녀를 따라갔다. 그러나
『교실을 나갈 수 없습니다.』
몸이 멎어버렸다. 앞으로 나가려고 하니 도저히 움직이지 않는다. 발을 뒤로 빼니 이번에는 움직여졌다.
『교실을 나갈 수 없습니다.』
『교실을 나갈 수 없습니다.』
『교실을 나갈 수 없습니다.』
“으아니. 왜 난 하교할 수가 없어!”
희조와 그녀는 나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고 있다. 그제야 잊고 있던 기억이 떠올랐다. 지각한 벌. 방과 후 교실 청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