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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와 짐승과 마을 이야기


2화



결국 자는 동안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정확히 3시간 후 눈이 떠졌다. 고개만을 살짝 돌리자, 바로 옆에 누워있던 늑대는 이미 온데간데 없었다.
매트 위에 눕혀두었던 몸을 일으켜, 동굴 입구를 향해 걸어가 바깥 쪽을 살펴보았다. 다행히 비는 그쳤지만, 대신 해가 떨어졌다.
물론 그에게 있어서, 밤이 된다고 문제가 되진 않는다. 기계는 동굴에서 걸어나와 낮에 하던 이동을 계속 했다.


아무리 밤이 되었다곤 해도, 여전히 움직이는 짐승들은 움직인다. 지금 걸어가고 있는 주변에도 몇마리인가의 동물이 감지되고 있고, 좀전에는 뱀 무리에게 습격받기도 했다. 상당히 치명적인 독을 지니고 있는 뱀들이었기에, 그가 아니라 보통의 인간이었다면 이미 절명했을 것이다.
뱀만이 아니고 서벨타이거, 나이트울프, 머드 사스콰치, 투 헤드 아나콘다, 식스 풋 재규어, 블랙 이글, 퀵 터틀. 그 이외에도 무수한 맹수들이 주변에서 침을 늘어뜨리며 기다리고 있었다. 섣불리 모습을 보이지 않고 미행하기 시작한 건 자신을 휘감았던 아나콘다를 두 손만으로 풀어서 던져버렸을 때 이후부터인 것 같다.


이들은 '숲'이 아니라, 바위산이라거나 늪지라거나 하는 다른 환경에서 서식하는 동물들이라고 하는 것.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숲속에선 볼일이 없는 동물들이라는 점이다. 아무리 데이터를 뒤져봐도, 지금의 이 상황은 정상적인 생태라고 생각할 수 없다.


'이미 이 숲의 생태계 자체가 심각하게 무너져있다… 보통 일은 아니겠군.'


… 설마 내가 원인인 건 아니겠지. 그런 생각이 문득 머리를 스쳤지만, 고개를 붕붕 돌렸다. 아까의 키드 데빌 때도 생각했던 거지만, 이 일의 원인이 자신이라면 덤벼들 리가 없으니까.

 


걸음을 멈춘다.

 


조금 전까지 자신을 미행하고 있던 짐승들의 움직임이 분주해졌다.
자신이 아니라, 다른 방향을 보고 있다. 자신이 걸어가려고 하는 방향을. 이 자리의 모든 짐승들이, 일제히.
그리고 한 차례 몸을 떨더니, 그대로 반대 방향을 향해 내달리기 시작했다.
뛸 수 있는 동물들은 사방으로 흩어졌고, 날 수 있는 새들은 하늘로 날아오른다. 뛰지도 날지도 못하는 동물들은 풀 숲 사이로 숨어들며 모습을 감춰버렸다.


쿵.


지면이 흔들렸다.
나무들이 이리저리 춤을 추고, 나뭇잎들을 떨어뜨린다.


쿵. 쿵.


한번 더.
진동과 함께 소리가 들려왔다. 이것은 틀림없이, '발자국' 소리다.
그것도, 상당히 거대한 물건. 지면에 손을 갖다대고 눈을 감아 촉각에 신경을 집중시켰다.


쿵. 쿵. 쿵.


저 멀리서부터 전해지는 진동과 그 지속시간. 그 정도의 자료만으로 대략적인 사이즈를 알아낼 수 있었다.
체중은 3t 이상. 발자국의 간격으로 보건대 2족 보행. 그것으로 신장을 산출해보면 대략 5~6m. … 대형이다.
발소리는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 목표는 아마도…… 기계 자신. 바닥에서 손을 떼고 몸을 일으켜, 정면을 주시한다.


쿵. 쿵. 쿵. 쿵. 쿵. 쿵.


'그것'은 마침내 숲의 나무들 사이에서 그 거대한 모습을 드러냈다.
전신을 백색이 섞인 흑색의 털로 뒤덮고 있는 유인원.


'… 확실히, 이거라면 다른 짐승들이 서식지를 뺏기고 쫓겨나도 어쩔 수 없겠네.'


통칭 「빅풋」. 고릴라의 형태를 하고 있는 이것은 이미 '짐승'이 아니라 '괴수'로서 분류되는 생물이다. 거인족보다도 거대한 몸집을 하고 있는 이 생물은 과거 오지의 숲을 지배하는 왕으로 군림했으며, 최강의 생물이라고 일컬어지던 드래곤조차 함부로 손을 대지 못했다고 한다.


어째서 이곳엔 과거 1000년 전에 모두 멸종했다고 알려진 동식물들이 이렇게도 많은가.
그것을 생각하기 이전에, 기계로서는 자신이 갖고 있는 이 데이터 자체가 사실인지 어떤지조차도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런 것보다도 우선은, 눈앞에서 '기분 나쁘다'는 감정을 온몸으로 표현하고 있는 이 원숭이부터 어떻게 하지 않으면 안된다.


"언어를 알아들어주면 좋겠지만, 우선… 당신하고 싸울 생각같은 건 없어요."


자료에 의하면 빅풋의 두뇌는 인간의 말을 이해할 수 있을 정도의 지능을 갖고 있다고 한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은 오직 머리 속에 있는 이 데이터들 뿐이다. 진실성의 여부는 둘째치고, 일단 믿는 수밖에 없다.


[……]


빅풋은 고개를 아래로 내려, 기계를 내려다보았다.
하지만 그 눈에 호의가 담겨있다고는 생각할 수 없다. 아마도, 당장 쳐버릴지 말지 고민하고 있는 정도겠지.


"다시 한번 말하지만, 당신과 싸울 생각같은 건 없습니다. 저는 단지 이 안에서 무언가를 찾고 싶을 뿐─"


… 그러고보니, 한가지 중요한 것을 보지 않고 건너뛰었다.
빅풋은 확실히 인간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인간과 오래 대하며 성격이 유순해지고 언어를 많이 접해본 개체의 경우다. 인간의 언어를 접해볼 기회가 없는 야생의 빅풋이라면 못알아들을 확률이 훨씬 더 높다.
그렇다면 아마, 자신이 조금전까지 한 말도 "왠 작은 생물이 건방지게 자신을 보고도 개기려고 쫑알쫑알 짖어댄 것"이라고 판단할 소지가 다분하다.


기계가 그 생각을 떠올린 것은, 그가 빅풋의 거대한 손에 맞아 날려가고 있는 도중이었다.


어지간한 사람보다도 거대한 손바닥이 기계를 강타했다. 기계는 그대로 수직에 가깝게 날려가, 나무에 부딪히고 나서야 정지했다. 그의 몸을 멈춰준 나무는 충격을 버티지 못하고 중간부터 꺾여지더니 결국 쓰러지고 말았다.
나무에 부딪히고 바닥으로 떨어진 기계는 몸을 일으킨 후, 자신의 몸을 점검했다. 지금까지 자신을 향해 공격해온 모든 맹수들의 이빨이나 발톱도 무시해왔던 그였지만, 지금의 공격은 '아팠다'.


"지금같은 걸 몇번 더 맞으면 파괴될지도… 갑자기 공격해오다니, 난폭한 사람이군요."


아니, 사람이라는 말은 맞지 않겠지만.


​[​워​어​어​어​어​어​어​어​어​어​억​!​!​]​


빅풋은 두 주먹으로 가슴을 쿵쾅쿵쾅 두들긴다.
​드​러​밍​d​r​u​m​m​i​n​g​이​라​고​ 불리는 행위로, 손으로 가슴을 두들긴다. 빅풋과 같은 계열의 짐승인 고릴라의 행동 중에서 가장 뚜렷한 행위이며, 주로 위협의 뜻을 나타낸다.
보통 위협이라고 하면, 상대를 경계하기 때문에 행하는 것.
하지만 빅풋의 드러밍은 고릴라의 그것과는 약간 다르다. 빅풋에게 있어서 이것은 자신의 분노를 끌어올리는 행위이기도 하며─ 본격적으로 적을 공격하기 직전에 하는 행동이기도 하다.


쿵, 쿵, 쿵, 쿵, 쿵, 쿵, 쿵.
커다란 발소리가 연속으로 들려온다. 보통 사람의 4배에 달하는 거체가 고속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한발짝 내딛을 때마다 비에 젖어 물렁해진 지면이 파헤쳐지고, 지축이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뒤흔들렸다.
이빨을 드러내고, 적의를 드러내며 숲의 왕은 그 손을 뻗어왔다.


조금 전의 타격력을 봤을 때 정면으로 받아내는 것은 불가. 게다가 심정적으로도 2대나 맞아줄 생각은 없다. 빅풋의 오른손이 다가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아슬아슬한 거리에서 몸을 반회전시켜 흘려버린 후, 빅풋의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그리고는 빅풋의 복부를 향해 오른주먹 스트레이트. 전력으로 치면 빅풋과 같은 크기의 바위도 부숴버릴 수 있을 정도지만, 죽이기 위한 목적으로 공격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속도는 유지하되 주먹의 힘을 반감시켰다.


그러나 빅풋의 왼손은 그것보다도 빨리 움직여, 복부의 바로 앞에서 기계의 주먹을 막아냈다.
주먹을 받아낸 자세 그대로 왼손을 휘둘러 기계를 쳐내 다시 한번 아까처럼 날려버리지만, 이번에는 기계 또한 날려가면서 자세를 바로잡아 지면에 착지. 워낙 강하게 날려진 터라 바닥을 가르며 밀려났지만, 어떻게든 몸을 자력으로 멈추는데 성공했다.


그 뒤에 이어진 추가타. 다시 바로 코앞까지 다가온 빅풋은, 이번에는 그 이름의 유래가 된 커다란 발을 휘둘렀다.


─이번에는 피하지 않고 팔을 넓게 벌려 그 터무니없는 발차기를 받아낸다.


밀려난다.
다리는 버텼는데 정작 그 다리를 지탱해주어야 할 지면이 버티지 못하고 밀려나갔다.
한번 걷어차이면 커다란 참나무도 꺾이고 커다란 바위조차 공처럼 날아간다는 강력한 일격.


그런 것을 기계는 두 팔만으로 버텨냈다.
버텨내는 것만으로 그치지 않고, 자세를 바꿔 빅풋의 발을 붙잡은 다음 몸을 크게 휘두른다.
빅풋의 거체가 지면에서 떨어져 하늘을 날았다. 태어날 때부터 야생에서 보기 힘든 최종포식자이며, 지금까지도 최종 포식자로서 살아온 빅풋으로서는, 누군가에게 날려진다는 것은 아마도 태어나서 처음 해본 경험일 터.
하지만 그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공중에서 그 몸을 뒤틀어 자세를 바로잡은 후 안전하게 바닥에 착지했다. 그 체중으로 인해 바닥이 내려앉긴 했지만, 빅풋 자신에게는 아무런 데미지도 남지 않았다.


'… 생각보다 힘든데.'


두뇌가 크다곤 해도 결국은 야생 짐승. 그러나 지금 이 전투 상황에서는 '단순한 야생의 짐승'이기 때문에 얕볼 수 없다.
덩치에 비해서 상당히 빠르고, 완력은 빅풋이라는 시점에서 이미 보증 수표. 거기다 눈도 좋아서 자신의 주먹을 막아낸데다 날려간 그 순간 자세를 바로잡았을 정도로 순발력과 판단력도 높다. 과연 야성의 파워, 숲의 왕이라고 할까. 조금 전까지 마주쳐왔던 맹수들과는 힘의 자릿수가 다르다.


생각할 틈도 없이 빅풋이 다시 덮쳐왔다. 이번에는 양손을 함께.
우측과 좌측. 어느 쪽으로 피해도, 조금 전 빅풋이 보여준 순발력을 생각하면 금새 추가 공격을 받을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고 뒤로 물러나봤자 상황은 변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할 수 있는 일은 하나.


'… 싸울 생각같은 건 없었지만…!'


몸에 떨어지는 불씨는 털어내버리지 않을 수 없다.
다리가 굽혀지고 그 안의 인공 근육이 밀집, 수축하면서 힘을 모은다.
아니, 다리만이 아니다. 전신을 앞으로 눕혀 몸을 낮췄다. 크라우칭 스타트─ 그 자세에 가장 가깝지만, 그보다는 높으며 보다 '공격적'인 태세.


─강철로 만들어진 발이, 지면을 걷어차 날린다.


비로 인해 약해진 지면은 두부처럼 부서져나갔고, 기계의 몸은 폭발적인 스피드로 날아간다.
좌회전도 우회전도 뒤로 후퇴도 없이, 오직 '앞으로 전진'하는 것만을 위한 가속. 미사일과도 같은 기세로, 빅풋을 향해 돌진했다.


단 한번.
그 단 한번의 도약이 낳은 스피드로.
빅풋의 반응 속도를 넘어서 그 거체에 검은 화살처럼 꽂혔다.


​[​─​─​─​─​─​─​─​─​─​─​!​!​]​


빅풋이 뭐라고 외친다.
고통인지 분노인지, 아니면 태어나서 한번도 겪어본 적 없는 충격을 받아본 당혹감인지. 혹은 그 모두일지도 모르는 감정을 담은 비명.
빅풋의 발이 바닥에서 떨어지고, 그 몸은 뒤쪽으로 날려가 바닥에 떨어졌다. 기계는 빅풋과 부딪힌 반동으로 튕겨져 나왔고, 곧바로 한쪽 무릎을 굽히며 땅에 착지했다.
빅풋의 몸이 바닥에 떨어지자 굉장한 기세로 지면이 흔들렸지만, 빅풋은 불과 수초만에 몸을 일으켰다.


[후욱… 후욱… 후욱…!!]


한순간 의식을 잃어버렸을 정도의 타격을 받고도, 빅풋은 일어났다.
지금의 그를, 타격을 무시하고 움직이게 만드는 원동력은 다름아닌 「자존심」.


이 숲을 지배하는 폭군으로서.
이 땅에 있는 일곱의 패자 중 한명으로서.


​[​워​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옥​!​!​]​


왼손으론 바위를 들어올리고, 오른손으론 바로 옆에 있는  나무를 뿌리채 뽑아 기계를 향해 투척했다. 그리고는 자신이 던진 나무의 뒤를 따라 달리다가, 그대로 바위를 쥔 채 위로 뛰어오른다.
나무로 시야를 가리고, 그것을 피하거나 방어하는 틈을 타서 바위로 내리찍는다. 지극히 단순하지만, 그 파워와 높은 도약력을 살린 작전.


'… 하는 수 없나.'


저걸 그냥 내버려뒀다가는 정말로 파괴당할 것 같다.
결국 이쪽도, 진심으로 '싸우는' 수밖에.

 

 

 


1.0초. 나무가 지면에 떨어진다. 하지만 그 시점에서 기계의 모습은 빅풋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1.2초. 빅풋이 지면에 착지하기도 전에, 그의 손에 쥐여져있던 바위가 산산히 부서졌다.
1.3초. 거대원숭이의 안면이 오른쪽으로 돌아간다. '무언가'에 걷어차인 충격으로.
1.5초. 오른쪽으로 돌아간 얼굴이 이번엔 왼쪽으로 돌아간다. 역시 강렬한 타격음과 함께.
1.6초. 빅풋이 지면에 착지한다. 그 순간 복부에 충격을 느끼고 몸을 앞으로 구부린다.
1.7초. 구부리자마자, 뒤통수를 강하게 맞고 안면을 바닥에 찍어버린다.
1.9초. 지면에 꽂혔던 얼굴이 다시 위로 들려진다. 물론 빅풋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그 후로 약 3초. 빅풋은 몇대나 맞았는지 모를 정도로 두들겨졌다.
주먹으로, 발로, 팔꿈치로, 무릎으로, 어깨로, 발뒤꿈치로, 수도(手刀)로. 기계는 불과 수초동안 쉴새없이 때리고 때리고 때리고 때렸다.


마지막 한 순간.
공격이 멈추고 빅풋이 비틀거릴 때.
기계는 빅풋의 머리 위에서 모습을 드러내고, 양발로 그 머리를 강타했다. 빅풋은 앞으로 거꾸러지며, 머리부터 바닥에 쳐박혔다.


"상처입힐 생각은 없었지만, 결국 이렇게 됐나…"


머리 위에서 뛰어내리고는 빅풋을 돌아보며 그렇기 중얼거린다.
숨 소리가 들리는 것으로 봐서 의식은 잃어버린 모양이지만, 목숨까지 잃지는 않았다.
상대를 죽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곤 해도, 생각했던 것 이상의 고전. 기록에 의하면 최상위 사이보그는 몇개의 부대를 단신으로 몰살시키기도 했다는데, 그걸 믿을 경우 이 녀석의 전투력은 그 '부대 몇개' 이상의 레벨이라는 이야기가 된다.
하지만 결국, 쓸데없는 싸움까지 했는데도 기억나는 건 쓸데없는 '전투 지식' 뿐이다. 여전히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한 기억은 돌아오지 않았다.


'역시 조금 더 들어가봐야─'

 


─다리를 잡혔다.
뒤를 돌아보는 순간 하늘과 땅이 뒤집혔다. 빅풋의 손에 붙잡혀 거꾸로 매달린 상태인 것이다.
하지만 그 상태도 오래 가진 않았고, 빅풋은 붙잡은 기계를 크게 휘둘러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윽…!!"


굉음과 함께, 크레이터마저 만들어가며 지면에 부딪힌다. 그러고도 아직까지 붙잡은 다리를 놓지 않고 있던 빅풋은 다시 한번 팔을 휘둘러, 이번엔 손을 놓으며 기계를 멀리까지 던져버린다.
바닥에 한번 부딪히고 튀어올라, 또 한번 부딪히고 튀어오른다. 그것을 3번 정도 반복하고 나서야 간신히 손으로 지면을 붙잡아 멈출 수 있었다.


'아직도 이런 힘이…!'


얼굴에서 피를 흘리고 있으면서도, 빅풋은 다시 일어섰다.
힘도 체력도 내구력도 질릴 정도. 지금 받은 공격의 충격도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다.
기계는 빅풋을 견제하며 몸을 일으켰다. 거리가 조금 떨어지긴 했지만 저 원숭이의 도약력을 보면 단 한번으로 여기까지 올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데미지가 큰 것은 빅풋도 마찬가지. 집어던진 이후의 추가 공격은 하지 않고, 자신이 일어난 그 자리에서 기계를 노려보고 있었다.


기계와 거대원숭이가 그렇게 서로를 노려보고 있을 때.

 


느닷없이 '하얀 늑대'가 한가운데로 뛰어들었다.

 


"[?!]"


아까 전의 동굴에서 봤던 커다란 늑대. 그것이 지금 기계와 빅풋의 사이에 서서, 빅풋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늑대의 출현에 놀란 것은 기계만이 아니었다. 빅풋 역시 눈에 띄게 당황하며, 늑대를 주시했다.


기계도, 원숭이도, 늑대도.
서로 움직이지 않고, 시간만이 흘러갔다.


그렇게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을 무렵. 빅풋이 신음소리를 흘리며 발걸음을 뗐다.
늑대를 보면서도, 몸을 뒤로 돌리고는 숲의 안쪽을 향해 걸어간다. 나타날 때처럼 커다란 발 소리를 울리며.


늑대는 빅풋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자, 이번엔 기계를 향해서 고개를 돌렸다.
한순간 움찔한 기계는 어떻게 반응해야할지 몰라 곤혹스러움을 느꼈다. 그때.

 


[바보인가, 귀공은.]

 


늑대가, 인간의 언어를 내뱉았다.


"… 네?"
[내버려뒀다간 둘 중 하나가 죽을 것 같아서 끼여들긴 했지만 그래도 할 말은 해야겠군. 힘도 속도도 그렇게 좋은 주제에 그렇게밖에 못하는 건가. 덤으로 마무리도 허술하고. 계속 구경하고 있었지만, 빅풋이 누웠다고 몸을 돌리다니 아무리 봐도 죽고 싶어 환장한 거라고 밖엔 생각이 안돼.]


그렇게 말하면서 늑대는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왔다.


"… 저기, 당신은?"
[시끄러우니까 닥치고 들어.]


낮게 으르렁거리는 소리에, 반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늑대는 기계를 상대로 '설교'를 늘어놓았고, 기계는 '이 숲에 들어오고 처음으로 대화가 통하는 상대를 만났다'는 사실에 기뻐하면서도 현 상황에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결국, 늑대의 '설교'가 끝나고 기계가 이야기를 할 수 있었던 것은, 그로부터 2시간이 지난 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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