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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와 짐승과 마을 이야기


3화


 

그곳은, 신비로운 곳이었다.
숲에 둘러싸여, 호수를 등지고 있는 작은 마을.


이 마을에 있는 건축물들의 대부분은 그다지 정교하다고 말하기 힘들었다. 사람들이 살고 있는 집은 나무를 대충 잘라 만든 통나무나 판자조각을 모아 벽을 세우고 그 위에 짚이나 커다란 나뭇잎을 올려놓았을 뿐인 오두막. 길은 그저 자주 걷다보니 저절로 생겨났을 뿐인 산길이라, 도로조차 깔려있지 않기 때문에 비라도 한번 내리면 흙탕물이 흘러가는 시냇물이 되고 만다.
그런 마을 안쪽의 허술함과는 달리, 마을의 입구에는 커다란 철문이 자리잡고 있다. 그에 더불어 벽돌로 만들어진 두껍고 높은 성벽과 물을 채워넣은 해자가 마을 주변을 빙 둘러싸고 있다. 이것이라면 어떤 들짐승이나 침입자라도 함부로 들어올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마을의 특징은 그런 마을의 외견이 아니다.
이 마을이 무엇보다도 특이한 점은, 마을 한가운데에 서서 주변을 둘러보면 곧바로 알 수 있다.


한손에 들어올만큼 작은 페어리들이 즐겁게 날아다닌다.
1m가 될까말까한 난쟁이들이 분주히 돌아다니고 있다.
땅딸막하고 수염이 덥수룩한 드워프들이 망치를 두드린다.
강인한 뿔을 가진 들소족의 사람들이 짐을 옮기고 있다.
하반신이 말로 되어있는 인마족들이 그 작업을 돕고 있다.
길다란 귀를 가진 토끼족들이 어디다 놔야할지 가르쳐준다.
사냥을 나갔던 견족의 사람들이 사냥감을 들고 돌아온다.
기품과 아름다움을 품은 엘프들이 나무를 돌보고 있다.
거대한 체구를 가진 거인들이 부서진 마을의 벽을 고친다.
각양각색의 날개를 가진 날개족 사람들이 낮게 날아다닌다.
그 이외에도, 수많은 인종들이 마을의 일을 거들고 있다.


마치, 동화와도 같은 풍경.
오래된 옛날 이야기에 등장하는 낙원과도 같이.
서로 다른 종족들이 서로를 도와가며, 마을을 이루고 살아가고 있다.


현실에서는 결코 볼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광경.
그것이, 이곳에서는 당연하다는 것처럼 이루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딱 한가지.
이 마을에도, 없는 것이 있었다.
엘프도 요정도 난쟁이도 수인도 거인도 있었지만.


딱 하나. '인간'만은 존재하지 않았다.

 

 

 


"… 이해했습니다. 이 상황은 '인간이 없는 것이 원인'인거군요."
[뭐, 그런 거다. 이해해주니까 고마운데.]


늑대가 기계를 데려온 곳은 숲 밖에 있는 호수 근처의 마을. 그 외곽의 오두막이었다.
하지만 그 오두막의 주변에는 지금 수많은 사람─물론 이 안에 인간은 없다─들이 둘러싸고, 조금이라도 안쪽을 보기 위해 옹기종기 모여있는 상태였다. 이것은 모두, 이 마을이 생긴 이래 처음으로 나타났다고 하는 '외부인'을 보기 위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외부인이란 두말할 것 없이 기계 자신.


"하지만 전 인간이 아니라고 이야기했는데요."
[그건 어쩔 수 없어. 여기있는 이들은 인간이라는 걸 이야기로 듣거나 동화책으로 본 적 밖에 없으니까. 그런 와중에 여기 있는 어느 종족하고도 닯지 않은 귀공이 나타나니까 놀란거다. 게다가… 「마법이 일절 사용되지 않은 기계장치의 골렘같은 존재」라고 하는 것보다 「인간」이라고 하는 쪽이 설명하기 간단하고.]
"그런 문제입니까."
[그런 문제다.]


라고 말하면서도 웃고 있는 이 늑대의 이름은 라이네스. 본인 말로는 400년 이상을 살아온 늑대인간이며, 인간을 능가하는 힘을 지닌 이 마을에서도 제일로 꼽히는 굴지의 전사라고 한다. 처음 기계를 동굴에서 봤을 때는 자신을 겁내지 않는 모습을 보고 "마을의 어디 다른 놈이 사냥나왔나 보군"이라고 가볍게 생각하고 동굴을 빌려준 것이라고 했다. 그 이후 동굴에서 나와 사냥을 하다보니 "그러고보니 마을에 저런 갑옷 입은 놈은 없을텐데."라는 것을 생각해내고 달려왔을 때엔 이미 빅풋과의 싸움이 한창이었을 때.
본래는 끼어들 생각이었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잘 싸우는 것 같길래 위험해지면 끼어들자는 심산으로 구경했다고 한다.


"그러고보면 빅풋도 당신을 보고서 그냥 도망쳤죠."
[도망… 이라고 하는 건 좀 아니군. 말그대로 '물러나준' 것 뿐이니까. 사실 이건 귀공의 덕분인 것도 있다.]


라이네스의 말에 따르면, 만약 라이네스 혼자였더라면 빅풋이 돌아가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고 한다. 바로 그 전까지 빅풋과 대등하게 싸운 기계가 같이 있었기에, 둘을 한꺼번에 상대해서는 이길 수 없다고 판단하여 돌아간 것일 뿐이라고.


[결국은 수로 우위였기 때문에 물러간 것이다. 그러지 않았다면 그가 프라이드를 꺾는 일은 없었겠지.]
"… 잘 아는 사이인겁니까?"
[물론. 나는 이 마을 소속이지만, 보통은 숲에서 살고 있으니까. 그 숲의 왕자와는 꽤 오래 전부터 먹이를 놓고 자주 부딪히는 사이다.]


… 어라?
라이네스의 말에 기계는 잠시 기억을 되살렸다.
빅풋이 옛날부터 있었던 존재라면, 딱히 키드 데빌이나 다른 동물들이 서식지를 잃고 숲으로 들어온 이유와는 관계없을 확률이 높다.


'… 설마 나, 엄청난 착각을─'
[그러나, 귀공도 터무니없군. 기억을 잃었으면 얌전히 숲 밖으로 나와서 다른 길을 찾을 것이지 굳이 안쪽으로 들어가다니. 물론 그럴 정도의 실력은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무모했어.]
"충분히 반성하고 있습니다…"


숲 안쪽까지 들어가봤지만, 결국 그는 자신의 이름조차 기억해내지 못한 상태 그대로다. 수확 제로. 만약 라이네스를 만나지 못했더라면 지금도 쓸데없이 숲을 헤매고 있을지도 모른다.


[뭐, 그런 건 그렇다 치더라도… 귀공은 지금부터 어찌할 건가. 기억을 잃었다고 하면 딱히 돌아갈 곳도 없을텐데.]


확실히 라이네스의 말대로. 지금의 자신에게 돌아갈 곳 따위가 있을 리 없다.


"지금으로선 딱히 생각해둔 건 없습니다. 아마도… 계속 이곳을 돌아다니게 될 것 같네요."


그렇게 돌아다닌다고 해서 기억이 돌아온다는 보장은 없다.
하지만 아무리 미약한 가능성이라고 해도, 그에게 그것에 매달린다는 것 이외의 길은 없다.


[난 기억을 잃어버린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지만… 역시 기억이 없으면 불안한가?]
"불안하다… 확실히 감정 코드가 계속 변화하고 진정이 되지 않습니다만, 그렇습니까. 이런 걸 '불안하다'고 하는 건가요."


인간으로 친다면 심장이 급하게 계속 뛰는 것과 같은 상태일 것이다. … 진짜 심장을 가져본 적이 없기 때문에 '아마도'라고 추측할 수밖에 없지만.


[그렇지만 오늘처럼 계속 돌아다니겠다는 건 지극히 안좋은 생각이라고 보는데.]
"……? 어째서 그렇습니까?"
[어째서냐니, 그야 당연─ 아, 그렇지. 귀공은 외부인인데다 기억상실이었지. 모르는 게 당연하겠군.]


천하의 얼간이를 보는 듯한 표정─기계로서는 실로 기분나쁜─을 하려고 하던 라이네스는 생각났다는 듯이 말을 바꿨다.


[이 마을은 맹수들의 영역과 가장 가까운 프론트 라인이니까. 여기에서 한발짝이라도 밖으로 나가면 그 순간 맹수들의 영역지. 물론 귀공의 능력으로 봤을 때 어지간한 맹수는 처리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절대로 피하지 않으면 안되는 맹수들이라는 것도 있거든.]


라이네스의 말에 따르면, 이곳에서 중심부로 더 들어가면 더 많은 이들이 모여사는 '도시'가 있다. … 그야 물론, 이 많은 종족들이 개체 수를 유지하기 위해선 이 마을만으론 너무 작다고 생각했지만.
이곳은 도시로 들어가는 입구를 지키는 마을이며 중심부의 「안전 지역」, 그 가장 외곽에 있는 곳이다. 이곳을 나간다는 것은 안전 지역을 벗어난다는 이야기이며, 곧바로 맹수들에게 노출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 안전 지역은 먼 옛날부터, 수많은 전사들이 목숨을 바쳐가며 맹수들과 싸워 얻은 '맹수가 아닌 이들의 영역'. 맹수도 인류(인간 제외)들도 무수한 피를 흘려 굳혀진 땅이기에, 지금은 맹수들도 안전지역을 둘러싼 방책을 넘어서 들어오는 일은 거의 없다고 한다.


[그래도 가끔 들어오는 놈들은 들어오지만, 대개는 사냥해버리지. 사실 마을로 침입해들어오는 녀석들은 영역도 없이 떠돌아다니는 놈들이라, 그렇게 큰 피해는 없거든. 정말로 무서운 건 자신만의 영역을 확실하게 구축하고 있는… '맹수'라기 보단 '괴수'라고 불러야 될 녀석들이야.]


안전 지역은 7개의 각기 다른 영역에 의해 둘러싸여져 있다고 한다. 좀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7개의 영역이 겹쳐지는 중간 지점에 이 안전 지역이 존재하는 것이지만.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일곱 영역. 「숲」, 「늪」, 「강」, 「초원」, 「산」, 「황야」, 그리고 「설원」. 이 7개의 지역은 각각의 지형과 기후에 맞는 맹수들이 서식하고 있으며, 그 정점에 서있는 맹수 중의 맹수… '괴수'들을 '주인'이라고 부른다.


머리만이 하얗게 샌 털로 뒤덮혀있는 거대한 원인. 숲의 주인, 빅풋의 「실버백」.
거대한 물소조차 한입에 집어삼키는 구안(九眼)의 뱀. 강의 주인, 데빌웜의 「케찰코아틀」.
갑옷과도 같은 껍질로 몸을 감싼 초대형의 악어. 늪의 주인, 킹 게이터의 「파프니르」.
주인 중에서도 가장 거대한 몸집을 가진 암석거인. 초원의 주인, 스톤 자이언트의 「버서커」.
어떠한 괴수보다도 상대하기 힘든 살아있는 악마의 숲. 산의 주인, 리빙 포레스트의 「다크 우드」.
지하에 만들어둔 동굴 깊숙히 숨어있는 곤충의 왕. 황야의 주인, 타일런트 버그의 「운골리언트」.
자신의 영역에서 벗어나지 않음에도 가장 두려운 용. 설원의 주인, 스노우 드래곤의 「브류나크」.


[귀공이 싸웠던 실버백도 이 땅에서 폭군으로 군림하는 일곱 마리의 괴수 중 하나다. …라고 해도, 주인 중 가장 약하지만. 아니, 머리는 브류나크 다음으로 좋던가? 그 이외엔 딱히 내세울 게 없군.]


라이네스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지만, 기계의 얼굴은 굳어있었다.
빅풋, 실버백의 강함은 바로 아까 전에 자신의 몸을 통해서 직접 체험했다. 라이네스의 말에 따르면 그런 괴수 이상의 존재가 여섯이 더 있다는 이야기.


[게다가 아까보니 귀공은 실버백과 이야기를 하려고 하던 모양인데, 브류나크 이외의 녀석들은 대화같은 걸 할만큼의 지능도 없어… 문자 그대로 '야수'지. 전투력도 격이 다르고. 브류나크도 이야기가 통한다 뿐이지 성질은 더러우니까, 만약 실버백에게 했던 것처럼 어설프게 상대하면 이번에야말로 죽게 될거야.]
"… 살아있지 않으니까 죽는 게 아니고 부서지는 거지만요."


약간 심통이 난 듯한 표정과 목소리로 그렇게 이야기해보지만, 그런 걸론 어떤 자기 위안도 되지 않는다.
하지만 정작 그 말은 기계가 생각지도 못했던 효과를 불러 일으켰다.


[후후, 후훗… 하하하, ​하​하​하​하​하​하​핫​!​!​]​


─느닷없이, 라이네스가 웃음을 터트린 것이다.
얼마나 웃었을까. 라이네스의 느닷없는 폭소는 기계가 서서히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기 시작했을 때야 그쳤다.


"……?"
[아니아니, 실례. 지금 그 표정이나 말도 그렇고. 귀공은 스스로를 기계장치의 집합체일 뿐이라고 말했지만, 상당히 '생물'답잖나.]
"… 그런가요."


자기 스스로는 잘 모른다.


[어찌되었든, 무계획적으로 돌아다니는 건 그만두는 게 좋아. 아무리 귀공이라도 버티지 못할테니.]
"이해했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7개의 전혀 다른 지역들이 선이라도 딱딱 그어놓은 것처럼 정확히 나누어져 있는걸까.
그 점에 대해서 새로운 의문점이 생겼지만, 지금으로선 어떻게도 할 방법이 없다. 게다가… 냉정하게 말해서 자신과는 상관없는 이야기고.


"그러면 저는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글쎄. 기억을 찾기 위한 실마리가 필요하다고는 해도, 무모하게 괴수들을 향해 닥치고 돌격해야 한다는 법은 없을테니 당분간 시간을 보내보는 게 어떨까 하는데. 귀공, 아직 깨어난지 12시간도 지나지 않았다고 했었나?]


그랬다. 숲을 돌아다니고 키드 데빌들을 만나고 실버백과 교전하고 라이네스와 만나고 이 마을에 오는 등 여러가지 일이 많이 있었지만, 시간 상으로 보면 아직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았다.


[조급해한다고 기억이 돌아온다면 진작에 돌아왔을테니, 느긋하게 지내보는 것도 괜찮겠지. 어떤가, 이 마을은?]
"… 즉, 이 마을에서 지내도 괜찮다는 이야기를 하시는 건가요?"
[직설적이군. 다른 마을관 달리 여기는 원래 촌장따윈 없는 마을. 따로 허가따윈 필요없지. 무엇보다 이 집은 내 집이니까, 내가 허락하면 그 뿐이고.]


무엇을 하든지간에 거점은 필요하고, 그것을 내주겠다면 거절할 이유가 없다. 아니, 오히려 대환영이다.
하지만.


"……"
['고맙긴 한데 납득은 못하겠다'는 얼굴이군. 그래, 뭘 묻고 싶나?]
"그럼 질문하겠습니다만, 어째서 그렇게까지 해주시는 건지?"


기억을 찾을 때까지 머물러도 좋다는 건, 분명 고마운 일이고 이쪽에도 잘된 일이다. 문제는 '너무 잘된 일'이라는 것. 만난지 얼마 되지도 않은 외부인─그것도 정체가 확실하지도 않고 기억상실이라는 수상쩍은 변명을 하고 있는데다 악의가 있는지 어떤지도 모를─에게 해주는 것치곤 친절이 과하다.


[흐음, 과연. 인간에 의해 만들어졌기에 감정만 가진 게 아니라 인간의 나쁜 점까지 물려받은 것 같군.]
"… 인간의 나쁜 점?"
[순수한 호의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무언가 속셈이 있는 게 아닐까하고 의심하는 것 말이다.]


분명, 인간의 행동 중에는 누군가를 이용하기 위해서 호의를 가장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만약, 정말로 아무런 타산없이 호의만을 가지고 제안을 한 경우라면 지금 자신의 반응은 얼마나 잘못된 것인가.
힐책하는 듯한 라이네스의 말에, 그 사실을 되새긴 기계는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분명─"
[뭐, 내 경우엔 속셈이 있는 거니까 별 말 안하겠지만.]
"있었던 겁니까!!"


한순간 열이 확 올랐지만 가까스로 가라앉히는데 성공했다. 뭐라고 할까, 이대로 화를 내고 뒤집어 엎어버리는 건 문제도 아니지만 그렇게 하면 나중에 가서 엄청나게 후회할 것 같다는 '불확정된 미래에 대한 걱정'이 분노와 함께 솟아올랐기 때문이다.


[그렇게까지 화내지 않아도…]
"화 안났습니다."


말과는 달리, 어조도 목소리도 표정도 "나 화났습니다. 무지하게. 지금 당장 온몸으로 표출하고 싶은 걸 겨우겨우 참고 있습니다"라는 티를 팍팍 내고 있는 기계를 보며 라이네스는 웃었다.


[정말 귀공을 보고 있으면 헷갈리는군. 인간의 손에 만들어진 인공물인지, 아니면 정말로 살아있는 생물인건지… 뭐, 어쨌든 속셈이 있다곤 해도 귀공에게도 나쁜 이야기는 아니다. ​기​브&​테​이​크​.​ 인간의 말이지.]
"… 즉, 머물게 해주는 대신에 뭔가를 해달라고?"


그래, 이쪽이 한결 낫다.
이 마을에 아무것도 해주지 않고 눌러 살고 있어서야 단순한 기생충이니까. 그에 비하면 ​기​브&​테​이​크​는​ 오히려 건전한 관계다.


[이제와서 말하는 것도 뭐하지만, 혼자서 실버백과 싸울 수 있는 건 마을을 탈탈 털어도 나 정도 뿐이거든. 그 정도라면 다소 무리를 해서라도 갖고 싶다는 게 본심이다. 어쨌거나 최전방이나 다름없고.]


이 마을은 아까도 말했듯이 맹수들이 안전 지역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한 일종의 '방어선'. 그렇기 때문에 살고 있는 이들도 각 종족에서 선발된 전사들과 그 가족들 뿐이다.


"그럼… 마을은 도시에 의해 통치되고 있다. 그렇게 이해해도 되는 건가요?"
[인간같은 사고방식은 하지 말아줬으면 하는데. 상하관계따윈 없다. 단지 차이가 있다면, 맹수들과 싸우는 게 가능할 정도의 이들은 마을로 가고 비전투원들은 도시에 남는다. 그 차이 뿐이니까.]


도시라고 해서 마을보다 잘 산다던가 하는 차이는 없다. 단지 인구 수의 차이가 있을 뿐. 마을은 많아봐야 200명 전후가 살고 있을 뿐이지만, 도시에서 살고 있는 이들은 수천명에 달한다.
인간보다 월등한 신체 능력, 특수 능력을 지닌 이들이 수천명.
─그 정도인데도, 안전 지역 밖으로 나가는 것은 생각할 수 없다. 그만큼 맹수들의 위협이 크다는 것이다.


[그런 이야기다. 가능하면 도와줬으면 좋겠는데.]
"…………"


기계는 입을 다물고, 생각했다.
하지만 뭐라고 대답해야할 것인지는 이미 정해져있었다.
기계 자신도, 이미 오래 걸릴지도 모른다고 각오하고 있었으니까.


"신세지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 하지만 라이네스 씨. 드릴 말씀이."
[응? 뭐가?]
"그 '귀공'이라는 호칭, 어떻게 해주지 않으시겠습니까. 그런 호칭으로 불릴만큼 대단한 것도 아니고."
[글쎄. 나로선 충분히 경의를 받을만한 실력을 보여줬다고 생각하는데. 그렇게까지 싫다면 다음부턴 보통으로 부르도록 하지. 하지만 성가시군. 이름까지도 잊어버렸다니.]
"… 면목없습니다."
[아니, 탓하는 것이 아니다. 어디까지나 사고로 인한 것이니까, 누군가를 책망한다는 것도 말도 안되지. … 우선, 이 마을에서 살아갈 거라면 기본적으로 알아야할 것과 알아두어야 할 장소들이 있으니까. 일단 그쪽부터 이야기해줄까.]

 

 

 


"─라는 예정이었지만, 라이네스는 사냥이랑 경비일 때문에 바쁘니까요."
"… 그건 상관없습니다만, 당신은…?"
"디아나라고 불러주세요♪"


이야기를 하려던 찰나 라이네스가 바깥으로 불려나갔고, 그 뒤론 돌아오지 않았다. 그 대신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자, 다른 사람이 들어왔다.


인간 여성의 모습을 하고 있는 그녀는 스스로를 '디아나'라고 소개했다.
하지만 이 마을에 있는 것 자체가 그녀가 인간이 아니라는 것의 증명. 그녀의 길다란 금발 사이에 섞여 여우의 귀가 튀어나와 있고, 그 뿐만이 아니라 둔부 부분에도 역시 여우의 꼬리가 나있다. 라이네스와 마찬가지로 수인족이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라이네스 씨가 바쁜 것과 디아나 씨가 여기 온 것의 상관 관계를 모르겠습니다만."
"아, 라이네스한테서 마을 안내 해주라고 부탁받았거든요. … 말투가 워낙 그렇다보니까 부탁이라기 보단 명령에 가까웠지만."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쓴웃음을 지었지만, 곧바로 표정을 고쳤다.


"그런 이유니까, 앞으로 잘 부탁해요♪"
"저야말로."


고개를 숙인다. 하지만 묘하게 하이텐션인 것처럼 느껴지는 건 기분 탓일까.
문득 시선을 느끼고 다시 고개를 들어올리자,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없는 눈빛으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 무슨 일이신지?"
"응, 응! 얼굴은 귀여워서 좋고, 목소리도 마음에 드네요. 울리면 섹시할 것 같아. 키가 나랑 비슷한 건 좀 유감이지만 감점될 정돈 아니고. 총합 평가로 보면 도시에서도 쉽게 볼 수 없는 고득점이네요♪"


…… 지금 이해할 수 없는 말들이 몇개 섞여있었는데.
고민할 틈도 없이 디아나가 기계의 손을 낚아챘다.


"그럼 우선은 여기서 가장 가까운 곳부터 시작할까요."
"잠깐만요. 갑자기─"
"괜찮아요, 괜찮아♪ 「천릿길도 한걸음부터」라고 인간의 말에도 있잖아요?"
"사용법이 틀렸습니다! 아니, 그렇게 잡아끌지 않아도 갈테니까─"


만류에도 소용없이, 디아나는 기계의 손을 붙잡고 끌고 나가기 시작했다.
… 상당히 가녀린 외형임에도, 힘이 세다. 과연 수인족이라고 하는 걸까. 그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면서 기계는 디아나와 함께 오두막의 밖으로 나갔다.

 

 

 


─쿠우우우웅.


굉음이 울린다.
지면이 흔들리고, 나무가 춤을 추며, 새들이 날아오른다.
짐승들이 사방으로 흩어지고, 벌레들의 울음 소리조차 그쳐버렸다.


[…………]


손톱끼리 부딪히며, 묻은 피를 털어냈다.
생각했던 것보다 오래 걸렸지만, 결국 목표로 했던 것은 얻었다.
피를 거의 다 털어냈을 무렵, 뒤쪽에서 손뼉을 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야, 이야. 과연 대단하시네요. 다른 구역에 비해서 레벨이 떨어진다고는 해도 일단은 괴수의 카테고리로 분류되는 녀석인데 이렇게까지 간단하게 해치울 줄이야. 역시 당신의 앞에선 송사리에 지나지 않았나 보군요."
[… '간단'이라. 네 눈에는 그렇게 보였던가.]


온 힘을 다하고 쓰러진 강적을 한순간에 '송사리'로 전락시켜버린 남자를 향해, 보이지 않게 송곳니를 드러냈다.
거의 대부분의 사람에 대해 '좋다'고도 '싫다'고도 표현하지 않는 그이지만, 이 남자만큼은 싫다고 단언할 수 있었다.
숲 속이라는 배경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칠흑색의 정장과 모자. 한 손에는 방금 벗은 롱 코트까지 들고 있다. 이 남자는 지금 자기가 세계에 다시 없는 비경(祕境)에 와있다는 것을 알고나 있는건지.
물론 싫어하는 건 싫어하는 거고, 그 능력에 대해서까지 경시하진 않는다. 어쨌거나 자신들이 이곳에 올 수 있었던 것도 이 남자의 힘이고.


그는 방금 몸에서 잘라내어 들고 있던 실버백의 머리를 남자에게 던졌다.


"우와, 우왓?! 갑자기 머리같은 걸 던지지 말라구요! 옷 더러워지는데!"
[알 바 아니다. 다른 녀석들은?]
"… 아직 조정 중입니다요. 다른 분들은 아직 당신처럼 혼자 다녀도 될만큼 익숙해지질 않았거든요."


그렇게 대답하고도 한참 동안이나 투덜거렸지만, 남자는 다시 미소를 띄우며 말했다.


"어쨌거나 수고하셨습니다. 명성에 걸맞는 멋진 솜씨, 잘 봤어요. 솔직히 걱정했다구요? 지상에서야 굴지의 실력가라도 여기에서도 그 힘이 통용된다는 보장은 없었으니까."
[쓸데없는 걱정을. 어떤 장소이고 어떤 상대라고 해도 나의 손톱이 무뎌지는 일은 없다.]


그렇게 말하고 몸을 돌린 그는 숲의 어둠 속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실버백의 머리에서 원하던 것을 찾아낸 양복의 남자는 "이런이런, 칭찬이었는데 말이죠."라고 중얼거리며 그 뒤를 따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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