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그럼 이번엔 여기 부탁할게요!"
"……"
디아나가 손으로 가리키는 곳에는, 거대한 바위가 가로막고 있었다.
척 봐도 높이 20m 이상. 가로폭은 그것보다도 훨씬 넓다. 확실히 이래서야 4m 남짓의 거인족 열명이 달려들어도 어떻게 하긴 힘들었을 것이다.
기계는 잠시 두 손을 맞잡고 뚜둑거린 다음─거인족 전사들로부터 배운 '손 풀기' 동작이다─ 바위의 앞까지 걸어가, 적당한 곳에 손을 댔다.
그리고는 짧은 호흡 소리와 함께 힘을 가한다.
─천천히, 그 거대한 바위가 바닥에서부터 떨어지기 시작했다.
단순히 들어올린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다. 그 상태에서 바위를 짊어진 채 걸음을 옮긴다.
들어올린 바위의 무게 때문인지, 한발짝 걸을 때마다 바닥이 움푹움푹 패여가지만 신경쓰지 않기로 했다. 그렇게 10분 정도를 걸었을까. 경계 지점에 도착하고는 그대로 훌쩍 던졌다. 하늘로 날아오른 바위는 곧 방책을 넘어가고 그 뒤의 땅으로 떨어져, 진동과 함께 땅에 박혔다.
"아, 정말 살았어요. 그것 때문에 밭을 넓히고 싶어도 못하고 있었거든요♪"
디아나가 희희낙락하며 말하는 '밭'이라는 건 마을과 도시가 함께 사용하는 동쪽의 대규모의 야채밭을 뜻한다.
마을과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겐 사냥과 가축으로 얻는 고기, 그리고 서쪽의 과수원과 함께 귀중한 식량으로 사용되며, 동시에 안전 지역과 맹수들의 영역을 구분하는 방책에서 가장 가까운 장소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야채밭 한가운데에는 골칫덩어리가 하나 있었으니, 그게 바로 조금 전에 방책 너머로 던져버린 바위다. 지금까진 안쪽으로 야채밭을 넓혔는데, 그것이 한계에 달하여 바깥쪽으로 넓히려고 했을 때 저것이 가로막고 서있었던 것이다.
"그런 걸 이렇게 간단히 치워버릴 수 있을줄은 몰랐지만요."
"저도 놀라고 있습니다."
'어쩌면 될지도?'라는 마음으로, 실패하면 어쩔 수 없다는 생각에 가볍게 받아들였는데 설마 정말로 성공해버릴 거라곤 기계 자신도 생각하지 못했다.
'… 일개 사이보그의 스펙치곤 지나치게 과하다는 생각이 들지만.'
적어도 자신의 그 '과한 스펙'은 지금 이 마을에 도움이 되고 있다. 지금은 그걸로 충분하다고 해두자.
자신이 라이네스에 의해 이 마을에 오게 된지 오늘로 일주일 째. 첫날은 디아나에게 끌려다니며 마을 이곳저곳의 지리를 익히고, 그 다음날부터 지금까지는 디아나가 가져오는 '마을에 도움이 되는 일거리들'을 하고 있었다. 지금 개간을 막고 있던 바위를 치운 것도 그 중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다음 일은?"
"에, 또… 이 다음에는 땔감으로 쓰려고 나무 잘라놓은 거 옮겨야 하고, 과수원 쪽의 바위도 하나 옮긴 다음 마을에서 애들 봐줘야 하네요. 오늘은 사냥조로 나가는 사람들이 많아서."
마을 사람들의 명예를 위해서 말해두지만, 마을 사람들이 그에게 일을 맡기고 놀고 있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마을 사람들이 해야할 일을 다 하고 있으면서도 저만큼 일이 남았을 정도로 바쁘다는 이야기다. 이것은 기계에게도 좋은 일이었다. "누군가를 위해서 힘든 일을 도맡아 한다"는 것만큼 신용을 얻기 좋은 방법은 없으니까.
실제로 요 며칠간의 일 덕분에, 이방인인 그조차 무리없이 이 마을에 섞여들 수 있었다. 보통 사람들의 레벨에서 '힘든 일'이라고 해봐야 그에게는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라서 쉽게 처리할 수 있었고.
"뭐, 다른 일들은 그렇다쳐도, 애들을 돌봐달라는 건 그 아이들의 부탁이기도 해요. 며칠만에 마을의 히어로가 되버렸네요♪"
"그렇게 거창한 건 아닌데요… 적의를 갖지 않아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한데."
하지만 누군가에게 신용받고 있다는 것은 딱히 나쁘지 않다.
"왔다!"
"내려와주세요."
"싫어! 재밌는걸!"
"그럼 강제로."
"우왓?! 너무해! 악마! 해파리! 복어!"
"의미를 이해못하겠습니다만."
"욕하는거야!"
… 그다지 욕으로 들리진 않는데.
뒤통수에 찰싹 달라붙은 채 내려오지 않는 엘프 꼬마를 붙잡고 들어올렸다.
하지만 들어올려서 떼어내기 무섭게, 또 다른 꼬마가 와서 등에 찰싹 달라붙는다. 날개족 여자 아이로, 그 작은 날개를 파닥거려 잘도 등까지 올라왔다.
"날개 생겼다! 에헤헤~"
"제 날개는 아닌데요."
등에 붙은 날개족 아이를 떼어낸다.
하지만 떼어놓고 바닥에 내려놓자마자, 아이들은 깔깔거리며 사방으로 흩어지기 시작한다.
일단 돌봐달라고 부탁을 받았으니 내버려둘수도 없는 일, 기계는 누굴 먼저 붙잡아야할지 고민했다.
─그때, 주변이 어두워졌다.
고개를 위로 들어올리자, 2m에 달하는 인형이 자신을 향해 힘차게 다이브 중인 것이 눈에 들어왔다.
두 손을 들어올려, 그것을 받아낸다. 무릎을 굽히고, 몸을 살짝 뒤로 젖혀 자신을 향해 떨어진 '아이'가 다치지 않도록.
"굉장해! 우리 엄마랑 아빠도 내가 이렇게 달려들면 휘청거리는데!"
과연 거인족. 10살도 안된 아이조차 2m를 훌쩍 넘긴다. 당연히 무게도 다른 종족의 아이들과는 자릿수부터 다르고.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조금 전의 바위도 그렇고 실버백조차 들어서 던져본 전적이 있는 기계에게는 그다지 무거운 무게가 아니다.
물론 그것은 어디까지나 기계의 기준에서 하는 이야기. 다른 아이들의 눈에는 저 거대한 거인족 아이를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낸 기계가 어떻게 보일지, 상상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우와, 우와, 우와! 지금 거 어떻게 받아낸거야?""받아낸거야?""낸거야?"
"… 그냥 받은 것 뿐인데요."
"거짓말! 쟤보다 작은데 어떻게 그냥 받아?! 마법 썼지! 아니면 정령이라거나!"
"마력이 없으니까 마법은 못쓰고, 엘프밖에 다루는 정령을 제가 무슨 수로 다루나요."
"우우! 얘 자꾸 거짓말 한다! 빨리 불어!""말해!""솔직하게!"
… 지금, 처음으로.
아이들이 약간 무서워졌다.
어째서 이 아이들은 이런 걸 하면서 웃고 있는걸까.
이 아이들은 그저, '모두 함께 놀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마냥 즐거워하고 있다.
아이들의 '기쁨'도 '즐거움'도, 지금의 기계에게는 이해불가능의 감정.
하지만.
'곤혹'스럽긴 해도.
'거부감'이 들진 않았다. 그것이 스스로도 신기했다.
"잘 놀아주네."
"그렇죠, 그렇죠? 저렇게 애들이 잘 따르는 사람도 별로 없고♪"
"… 어째서 네가 자랑스러워하는거야."
"에~엣? 뭘 부끄럽게 그런 걸 묻고 그래요♪"
이 자식이.
그녀는 눈앞에서 양 볼을 손으로 감싸 누른 채 꺄~ 꺄~ 거리며 몸을 흔드는 디아나를 보며 폭력 충동이 끓어오르는 것을 간신히 참아냈다.
나잇살이나 먹어가지고 귀여운 척이라니. 그런데 그건 또 그거대로 어울린다는 게 더욱더 그녀의 분노를 부채질하고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세이렌. 이 마을에 살고 있는 엘프의 한 사람인 동시에 훌륭한 검전사이며, 늑대족의 라이네스나 여우족의 디아나와는 이런저런 악연으로 똘똘 뭉쳐있는 사이다.
… 그래. 이 정도는 참지 않으면 안된다. 이 망할 여우 기집애가 이런 식으로 나오는 것도 하루이틀 일이 아니고, 이런 거에 일일이 화를 내다간 이쪽 건강만 악화될 뿐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찰나.
"세이렌, 노처녀 히스테리는 나빠요."
그 한마디가, 세이렌의 인내심을 박살냈다.
"누가 노처녀야?! 난 아직 적령기라고!! 남자를 못만드는 게 아니라 안만드는 것 뿐이고!! 게다가 너, 분명 라이네스랑 동갑이겠지!! 나보다 두배는 오래 살았으면서!! 마을이랑 도시 탈탈 털어도 너보다 나이많은 사람 1명밖에 없잖아!!"
"아야, 아야, 아야!! 폭력 반대!!"
"그렇게 폭력 반대하고 싶으면 맞을 소릴 하지 말았어야지!!"
귀와 꼬리를 잡아당기고, 양 관자놀이 옆에 주먹을 갖다대 문지르고, 볼을 붙잡아 늘려버리고.
몇백년을 살아왔다곤 믿기지 않을만큼 유치한 싸움이었지만, 이것 또한 일상이었다. 그 증거라고 하긴 뭐하지만, 주변을 지나가고 있던 마을 사람들은 그 소리에 놀라 이쪽을 보더니 곧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젓고는 다시 갈길을 가고 있었으니까.
얼마 동안을 그렇게 놀고 있었을까. 얼굴도 옷도 엉망진창이 된 두 사람은 숨을 몰아쉬면서 일시휴전을 선언했다.
"후우… 후우… 오늘은 이 정도로 해둘까…"
"네에… 이렇게… 쓸데없이… 힘만 빼는 거보단…"
서로서로 붙잡고 있던 머리카락과 귀를 놓고 호흡을 가다듬은 후 자리에 앉았다.
마이페이스인 디아나는 그렇다쳐도, 세이렌은 머리를 식히고 나자 곧 자괴감에 빠져 마리를 감싸쥐었다. 저쪽에서는 이쪽의 부탁으로 아이들을 돌보면서 일하고 있는데 자신은 옆에서 쓸데없는 싸움이나 하고 있다니. 이래서야 두배로 미안하다.
"라이네스에게 들었지만, 저 녀석은 기계장치의 골렘같은 거라고 하던데."
"네. 그런 것 같더라구요. 그런데 그게 왜?"
"글쎄…"
세이렌은 고개를 돌려 기계와 아이들 쪽을 바라보았다.
디아나도 따라서 고개를 돌렸고, 잠시동안 말없이 지켜보는 시간이 이어졌다.
"즐거워 보이는데. 아이들도, 저 녀석도."
"뭐, 그는 아이들한테 사랑받는 타입인 것 같으니까요."
그에게 이런저런 장난을 걸며 깔깔거리는 아이들.
그리고 그런 장난을 아무렇지도 않게 태연히 받아주며, 흔들림없이 페이스를 지키는 그.
평소에는 종족의 차이로 인해 할 수 없는 놀이들도, 그라는 '매개'를 통해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정말로 기계인거냐, 저 녀석. 확실히 몸 여기저기에 철이 붙어있고, 피부에도 쇠 냄새가 섞여나고 있지만…"
보통의 '기계'나 '골렘'이라고 하는 건, 저런 것과는 거리가 먼 물건들일 터다.
"뭐, 좋잖아요 그런 기계인지 사람인지 헷갈리는 갭이라는 것도."
"… 나쁘다고는 한 적 없어. 단지 신기하다는 것 뿐이고."
그가 온지 3일째 되던 날. 그때부터 그가 골렘이든 인간이든 신경쓰지 않기로 했다. 어찌되었건 무지막지하게 강한 주제에, 마을을 위해서 일하는 용도로밖에 그 힘을 쓰지 못할만큼 사람좋은 바보니까.
성실하고, 착하고, 아이들 잘 봐주고, 덤으로 예쁘기까지 한 걸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 이종족이라고 해서 그 점에 있어 인간과 크게 다를 것은 없다.
"역시 그렇죠? 처음 봤을 때부터 레벨이 높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에 와서 보면 정말로 찾아보기 힘든 고급이라니까."
세이렌은 눈을 가늘게 뜨고, 눈앞에서 손을 맞잡고 황홀한 표정으로 말하는 디아나를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좋지만
"너 그거, 남편 자랑하는 아내같아."
"어머나, 아직 거기까지 가진 않았는걸요."
"… '아직'이라니. 상대는 기계라고?"
"뭐 어때요. 나 한명 옆길로 샌다고 해도 여우족이 망하는 것도 아니고."
볼을 부풀리며 그렇게 반론하는 디아나를 보고, 세이렌은 한숨을 쉬었다.
"… 그래, 네 마음대로 해라. 난 모르겠다."
"마음대로 할거예요. … 그치만 좀 걱정되는 것도."
"뭐가 말야?"
"그게, 마을에도 도시에도 저보다 예쁜 사람들 투성이니까요. 그러니까 어쩌면 다른 사람한테 뺏길지도 모른다고…"
세이렌은 다시금 디아나를 훓어보았다.
얼굴을, 몸을. 마을은 커녕 도시까지 탈탈 털어도 몇명 나오지 않을 것 같은 미안(美顔)과 프로포션. 지금 한 말을 마을 여자들에게 들려줬다간 디아나를 죽이려고 달려들지도 모른다. … 그렇다고 해도 죽을 여자가 아니지만.
"수고하셨습니다♪"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가고, 기계가 다가오자 디아나는 만면에 웃음을 띄우며 맞아주었다.
몰려든 아이들의 흙장난으로 더러워진 바이저를 벗어 손으로 닦아낸다.
"오늘은 평소 때보다 아이가 많아서 힘들었죠?"
"천만에요. 익숙해진 일이고."
이 일주일 동안 가장 많이 맡은 일이 그거니까.
물론 의심스러운 이방인에게 처음부터 아이를 돌봐달라는 부탁을 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라이네스 아니면 디아나가 옆에 붙어있었고, 처음에는 의심스러워하면서도 아이들이 대단히 좋아하기 시작하자 본격적으로 맡기기 시작했다. 그것이, 이 마을에 오고 4일 째 되는 날의 일이었다.
"마을 사람들도 다들 고마워하고 있어요. 덕분에 마을 사람들이 해야할 일이 상당히 줄어들었다고."
"신세지고 있으니까, 그 정도는 얼마든지. … 그러고보니 디아나는 그 동안 어디에?"
"아하하, 전 저 나름대로 바빴어요. 세이렌이랑 같이 일했는걸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거짓말을 말하고 있지만, 그에게 그것을 간파할 능력은 없다. 믿는 수밖에.
그렇게 오늘 있었던 일들에 대해 잡담을 하다가, 문득 디아나가 평소에는 보기 힘든 진지한 얼굴로 '본론'에 들어갔다.
"… 기억, 아직 안돌아왔나요?"
"…… 네. 다행인지 불행인지."
일주일.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그 시간동안, 그는 이 마을에서 나가지 않고 머무르고 있었다.
물론 마을에서 신세를 지고 있으니까 일을 해야한다는 이유도 있었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혹시 여러가지 일을 해보면 기억을 찾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리고 조금 전에 말했듯이, 수확은 없었다.
"많이 불안하겠네요. 전 기억을 잃어본적이 없어서 잘 모르지만, 그래도 자기가 누군지 모른다는 건…"
"말씀하신 그대로 입니다."
자신의 기억이 없다. 자신이 누구인지 모른다. 자신에게는 '과거'가 없다.
숲에서 눈을 떴을 때 이전의 일을 기억하려고 해도, 떠오르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것은 곧, 자신의 근본조차 알지 못한다는 이야기. 자아를 지닌 존재라면 불안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그것은 그가 '기계'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다.
지금의 그는 스스로를 자각한 어린 아이가 혼자 세상 밖에 내던져진 것과 다름없는 상태. 그렇기 때문에, 숲에서 눈을 떴을 때의 불안감과 초조감은 보통 인간이 기억을 상실했을 때 이상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이대로도 나쁘지 않을지 모른다고 생각하지만요."
"…… 네?"
그의 말을 들은 디아나는 한순간 멍한 얼굴을 했다가 그 직후에 정신을 차렸다.
그는 푸른 색의 보석같은… 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유리'와도 같은 느낌을 주는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대로, 라니… 기억을 찾지 않아도 괜찮다는 건가요?"
그녀로서는 쉽게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을 것이다.
게다가 그녀의 경우, 이 일주일동안 기계가 얼마나 필사적으로 기억을 찾으려고 했는지 옆에서 봐왔으니까.
그러고보니 어제부터는 잠잠했었는데. 한순간 그런 생각이 디아나의 머리를 스쳤다.
"제가 인간이 아니라는 것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아시겠지요."
"뭐, 이제와서 새삼 듣지않아도 잘 알고 있지만… 그것과 지금 이야기가 무슨 관계가?"
어제 불현듯이 떠올라, 머리 속에서 떠나지 않는 생각.
그것을 디아나의 앞에서 털어놓기 시작했다.
"데이터에 기록되어있는 「사이보그」, 혹은 「안드로이드」는 본래 불구가 된 인간을 정상적으로 움직이게 하거나, 인간이 갈 수 없는 장소를 탐험하거나, 인간의 육체로는 수행할 수 없는 일을 하기 위해 만들어진 「로봇」이 그 시초라고 합니다. 그게 크게 변질되어 전투형도 만들어졌습니다만 그것은 지금 중요한 게 아니고…"
여기서 잠시 호흡을 끊은 뒤, 각오를 굳히고 입을 열었다.
"통상의 안드로이드라면 그 신체 능력은 인간의 5~6배 정도. 설령 전투형이라고 해도 10배를 넘는 기체는 거의 없습니다."
"… 잠시만요. 그렇다면─"
눈치빠른 디아나는 그가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지 금새 눈치챘다.
그리고 그는 그녀의 생각을 긍정하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실버백을 집어던지고, 거인족이 할 수 없는 일조차 해낸다… 안드로이드 중에서도 저의 힘은 정상이 아닙니다. 말그대로 어딘가가 잘못되어있다고 표현해도 좋을 정도로."
파워, 스피드, 내구력, 감각, 사고 속도.
자신의 모든 능력은, '통상의 안드로이드'의 규격에서 크게 벗어나있다.
"제가 안드로이드인 이상, 제가 그런 스펙을 가지고 태어나도록 만든 '누군가'가 있겠지요. 그리고… 아마도 그는, 순수한 의도로 절 만든 건 아닐 겁니다."
이를테면, 거점파괴나 대량학살을 위한 전쟁용의 병기라거나.
꼭 그렇게 만들어졌을 거라는 확신은 없지만, 그쪽의 확률이 가장 높은 것은 사실이다. 어쨌거나 '인간'은 전쟁에 필요한 무기를 개발하는데 있어서는 터무니없는 재능을 발휘하니까.
"걱정되는 것은 그것 뿐만이 아닙니다. 혹시 잃어버린 기억 속에 그런 것들과 관련된 기억들이 있을지도 모르고, 기억이 날아갔을 때 회로에 이상이 생겨 지금의 감정같은 걸 갖게 됐는지도 모릅니다. 기억이 돌아오면 휴면됐던 프로그램같은 것이 깨어나 전투병기가 되버릴지도 모르지요. 그렇지 않더라도 지금 제가 느끼고 있는 감정들이 사라져버릴 수도 있습니다."
"……!!"
그가 가장 두려워하고 있는 것.
그것은, 기억을 되찾음으로서 '본래 감정을 가지지 않아야 정상인 기계'로 돌아가는 것.
지금의 자아와 이성을 잃어버리고, 정말로 '단순한 안드로이드'로 전락해버리는 것.
그는 지금 그것을 무서워하고 있다.
자아를 갖고 있는 존재가 자아를 잃어버리면 어떻게 될 것인가. 자아를 가진 자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것이겠지. 하물며 자아를 가진 것조차 얼마 되지 않는 자라면 더더욱.
비록 얼굴 표정도 목소리도 어조도, 평소와 다를 바 없었지만.
디아나는 그가 품고 있는 '공포'의 감정을 읽어낼 수 있었다.
"그래서 지금은… 이대로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그렇게 끝을 맺었다.
뭐라고 말을 하면 좋을까. 결코 짧다고는 할 수 없는 세월을 살아온 그녀였지만, 이런 상대를 대하는 것은 처음이었기에 뭐라고 해야할지 몰랐다.
그리고, 곧 결론을 내렸다.
"… 저도."
"……?"
"저도 좋다고 생각해요. 당신이 정말로 그걸 원하는 거라면, 나중에 후회하지 않을 거라면."
기억을 잃어본 적이 없는 그녀로서는 이해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아니, 틀림없이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이날 이때까지 살아오면서, 나쁜 기억도 많이 있지만 좋은 기억도 많이 있는 그녀는 기억을 지우고 싶다는 생각조차 해본 적 없으니까.
그렇지만, 만약에.
눈앞에 있는 이 기계가 정말로, 진심으로 '기억따윈 필요없어'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그걸로 좋은 게 아닐까. 그녀는 그렇게 생각했다.
"이 마을의 아무도 당신에게 기억을 빨리 찾고 나가라는 이야기같은 건 하지 않아요. 반드시, 절대로, 하늘이 둘로 쪼개져도 기억을 찾지 않으면 안된다는 법도 없고요. 만약 당신이 자신의 의지로 그 길을 선택한다면… 그걸로 된 거 아닐까요?"
"……"
"이 마을에서 살다보면 기억 같은 건 금방 쌓일 거예요. 잃어버린 기억같은 건 금방 덮어버리고 싶을만큼 많은 기억들이. 좋은 기억들도 잔뜩 생길거고, 나쁜 기억도 생길지 모르지만… 으~응. 이런 이야긴 라이네스가 잘하는데. 아무튼!"
언제나처럼.
밝고, 쾌활하게.
눈앞의 여우여인은 이렇게 단언했다.
"찾기 싫으면 관둬요. 그런다고 나무랄 사람 아무도 없으니까."
그리고 디아나는 이때.
처음으로, 그의 멍한 얼굴을 보게 되었다.
"……"
"……"
"… 에, 저기… 나 뭔가 잘못 말했… 나요…?"
목소리가 갈수록 줄어들더니 끝에 가서는 완전히 자신감을 잃어버리고는 조용조용히 말했다. 귀까지 축 늘어뜨리고서.
하지만, 확실히 지금까지 생각지도 못했다. 아예 기억을 찾지 않기로 결정한다는 선택지는 지금까지 떠올리지도 못했으니까.
그렇기에 이렇게 말할 수 있었다.
"… 감사합니다."
"…… 네?"
어쩌지, 어쩌지, 어쩌지, 평소처럼 바보같은 말을 해버린 것 같아, 어쩌면 좋지─라고 고민하던 그녀는 생각지도 못했던 말에 고개를 들어올렸다.
기계의 얼굴은 아까보다 훨씬 편해보였다. 어쩌면 아주 잠깐동안이나마 웃었던건지도 모른다고 생각할 정도로.
"그런 생각은 해본 적 없었으니까요. 그렇군요… 스스로 원하지 않는 기억을 찾을 필요는 없었던 거군요…"
"… 에, 그럼… 도움이 된 건가요, 저?"
"네, 충분히. 감사를 드려도 모자랄만큼."
잠시 동안 기계의 얼굴을 주시하던 디아나는 곧 만면에 웃음을 띄기 시작했다.
"에헤, 에헤헤헤헤… 해냈다!"
와아─하고 두 손을 높이 들어올리며 환호하는 디아나.
하지만 그녀는 곧 소리를 줄이더니 손을 내리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잠깐만… 생각해보면 이거…'
엄청난 상담을 받아버린 거 아닐까, 나?
그 생각이 그제서야 디아나의 머리를 스쳤다.
잃어버린 기억을 되찾고 싶지 않다는 상담같은 것을 아무한테나 할 수 있을 리 없다. 적어도 디아나의 기준에선, 가장 신뢰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설령 가장 신뢰하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털어놓긴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눈앞의 그는 자신에게 상담했다.
그것을 자각하자, 서서히 얼굴이 붉어지기 시작했다.
"에, 또… 저기… 이런 이야기, 저한테 처음 한건가요?"
"……? 그런데요. 뭔가 문제라도?"
"아니아니아니아니, 문제가 있다는 게 아니라, 그러니까…"
딱 잘라 말하겠다. 지금 디아나는, 엄청나게 부끄러워하고 있었다. 세이렌이나 라이네스가 봤더라면 기절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경우엔 디아나의 인식이 꽤 빗나간 것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리 지성이 쌓여있다곤 하지만, 그의 자아는 생겨난지 얼마 안된 아이의 것처럼 순수하다. 따라서, 무엇을 다른 사람에게 숨기고 무엇을 드러내야 하는지 아직까지 자각이 없다.
요컨대, 프라이버시라는 개념이 희박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가장 가까이에 있던 디아나에게 이야기를 꺼낸 것일 뿐이지만, 그것을 알 리 없는 디아나는 절찬리 착각 대 바겐세일 중. 사실 디아나를 신뢰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니까 착각한다고 해도 무리는 아니지만.
"무엇보다, 당신을 보고 있으면 고민한다는 것 자체가 바보같기도 하고요."
"…… 웃."
벗어두었던 바이저를 다시 착용하며, 던지듯이 말하자 디아나의 움직임이 멎었다.
"저, 저도 고민 정도는 있는걸요! 오늘 식사는 뭘로 할까라거나 라이네스한테 말해줄 단어도 골라야 한다던가!"
"…… 그 이외에는?"
기계의 말에 디아나는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
"……"
5분 경과.
"……"
"……"
10분 경과.
"… 에, 또… 더 자세히 생각해보면, 나올 것 같기도 하고…"
"……"
겸연쩍게 말하는 디아나를 보면서 기계는 생각했다.
어쩌면 아무런 고민도 없어보이는 이런 사람이야말로 최강이 아닐까 하고.
─두 사람만의 대화는, 갑작스럽게 들려온 오두막의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의해 깨졌다.
"어이, 디아나! 안에 있어?!"
"… 세이렌? 무슨 일이야?"
세이렌의 목소리에 디아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세이렌은 디아나가 안에 있다는 걸 확인하자마자 허락도 받지 않고 문을 벌컥 열어젖힌다.
그녀의 얼굴은 평소의 다부짐을 찾아볼 수 없을만큼 다급함이 섞여있었다.
─무언가가 일어났을지도 모른다.
가슴 속에서 검은 연기가 뭉개뭉개 피어오르는 기분을 느끼며, 기계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이어서 들려온 세이렌의 말은, 두 사람을 모두 동요시키기에 충분했다.
"낮에 사냥나갔던 사람들이 아무도 안돌아왔어! 라이네스도 같이 갔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