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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와 짐승과 마을 이야기


6화



"일곱의 주인들은 단순히 영역을 지배하는 강하기만 한 괴수가 아니니까요. 그들이 각 영역에 배치되어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이 작은 '정원'의 균형이 유지되는 거고, 그 안의 생물들도 안정적으로 성장하고 또한 생활합니다. 달리 표현하자면 그 상태 그대로 발전없이 정체되어 있다는 이야기입니다만, 변화가 없다는 것이 나쁘다는 건 아니죠. 이런 야생의 세계에서 태초의 생명을 간직한 채 살아가는 이들이라면 더더욱 그렇겠지요. … 이야기가 잠시 빗나갔습니다만, 결국 결론은─"
[─일곱의 주인 중 하나가 사라짐으로서 균형이 무너지고 빈 자리를 차지하려고 드는 녀석이 생긴다는 거군. 실제로 놈들이 서로 싸우지 않는 건 서로의 전력을 잘 알고 있기 때문. 그렇기 때문에 섣불리 싸우지 않았지만 '싸울 상대 자체가 사라져버린' 지금이라면 힘들이지 않고도 다른 영역을 차지할 수 있다는 계산인가.]
"… 말 끊지 말아주세요, 정말."


케찰코아틀이 느닷없이 숲에 나타난 이유. 그것은 말할 것도 없이 실버백이 사라져버렸기 때문이다.
다른 주인들은 그래도 사태를 파악해보려는 노력이라도 할 정도의 분별을 갖고 있었지만, 케찰코아틀은 아니다. 원래부터 많이 먹어치우는 이 괴수는 언제나 굶주린 채로 있었고, 실버백의 느낌이 사라지자 곧바로 숲 영역을 차지하기 위해 늪지대를 가로지르는 위험을 감수하며 이곳까지 온 것이다.
만약 실버백이 일시적으로 어딘가로 떠났을 뿐이라면 돌아왔을 때 다시 강으로 가면 그만이고, 죽은 거라면 이대로 숲을 차지할 생각이었던 것이다.


"그러나저러나 저 늑대는… 저쪽 거주 지역에 살고 있는 수인이었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을 향해 눈을 돌린다.
그곳에서는 한 마리의 늑대가 케찰코아틀과 싸우고 있는 중이었다.
잠시도 한 자리에 가만히 있지 않고 끊임없이 움직이며 케찰코아틀의 공격을 피하고, 가끔 달려들어 이빨로 베거나 발톱으로 찢거나 한다.
그것을 지켜보다가 대답했다.


[… 우수한 전사다.]
"오호─ 생각지도 못한 후한 평가인데요."
[공격하는 타이밍, 방어와 회피, 그리고 종합적인 스피드. 딱히 결점이 될만한 건 없군. 쳐야할 때와 빠져할 때를 잘 구분하는 걸로 봐서 전투 경험도 상당한 것 같고. 어쨌거나 저 뱀의 일격은 꽤 파괴력이 높으니까, 만약 내가 케찰코아틀과 싸운다 하더라도 같은 방법으로 싸우겠지.]
"그 정도입니까."


연신 감탄을 터트린다.


[단지 하나.]
"… 아직 남았나요?"
[힘이 딸리는 게 유감이군.]


케찰코아틀의 비늘은 두껍다. 그것도 상당히. 비록 같은 파충류에 속하는 늪의 주인인 파프니르나 설원의 주인인 브류나크에 비할 바는 아니더라도, 상당히 방어력이 높은 것이다.
분명 라이네스의 공격은 대부분 케찰코아틀의 몸에 적중되고 있다. 하지만 전부 비늘에 타격을 주는 선에서 그치고 있고, 치명타가 될만한 것은 없다.


"흐음. 그럼 지금은 저렇게 스피드로 버티는 게 고작이고 곧 체력이 다해 지게 될거다… 그런 이야기인가요?"
[저 늑대는 그렇게 바보가 아냐. 다른 놈들이 도망칠 때까지만 시간을 벌려는 거겠지. 그런 다음 녀석도 물러나면 돼. 지금 녀석이 보여주고 있는 스피드와 거기서 산출되는 체력을 감안하면 그리 어려운 것도 아냐. 저 늑대에게 있어서의 승리 조건은 케찰코아틀을 쓰러트리는 게 아니니까.]


이길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지지도 않는다. 그는 그렇게 평가하고 있었다.


"뭐, 저야 싸움같은 거 잘 모르니까 그런 건 아무래도 좋습니다만."
[… 그럼 묻지마.]


그는 낮게 으르렁거리며 남자를 노려보았다.


─그러다가 느닷없이 몸을 일으켰다.


"우와와와왓?! 무, 무슨 일입니까?! 혹시 제가 뭔가 기분 상하게 했나요?! 그럼 무릎 꿇고 빌테니까 부디 용서를─"
[…… 온다.]


그의 눈은 이미 남자가 아니라, 그 너머의 무언가를 포착하고 있었다.
─이쪽으로 오고 있다. 정확히는 케찰코아틀과 늑대가 싸우고 있는 장소로.


그것도… 상당히 빨랐다.

 

 

 


'좋아. 다른 녀석들도 떠난 것 같고… 그럼 나도 이만 슬슬 튀어볼까.'


주인을 상대로 죽고 죽이기. 한다고 하면 못할 건 없지만, 역시 목숨이 아까우니까 그만두기로 했다.
다른 전사들의 인기척도 완전히 떠났고, 더이상 이곳에 있을 이유가 없다. 그렇게 생각한 라이네스는 후퇴를 결정했다.
자신의 발이라면, 이런 뱀의 추격 정도는 금방 따돌릴 수 있으니까. 그렇게 생각하고 몸을 뒤로 날렸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케찰코아틀은 꼬리로 옆에 있던 나무를 휘감아 뿌리채 뽑아내 라이네스를 향해 던졌다.
뒤쪽으로 살짝 고개를 돌린 덕분에 그 공격이 올 것을 알고 있었던 라이네스는 몸을 옆으로 옮겨 떨어지는 나무를 피해냈다.


─그 순간 케찰코아틀이 몸을 들어올리고 입을 벌렸다.


'무슨 짓을?!'


이제와서 돌진이라도 할 생각인가. 아주 잠깐동안, 라이네스는 틈을 보였다.


라이네스라고 해서, 주인들에 대해서 전부 알고 있는 것은 아니다. 속속들이 알고 있는 것은 실버백 정도 뿐이며, 나머지 주인들에 대해서는 이름과 모습, 그리고 대략적인 전투력만 알고 있을 뿐.
즉, 케찰코아틀의 모든 전투방식을 다 알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포이즌 애로우」


케찰코아틀의 벌려진 입에서, 흑보라빛의 화살들이 쏟아진다. 바닥에 꽂힌 그것들은 단숨에 풀들을 말려죽였다.
그것은 케찰코아틀이 독성을 고체로 만들어 내뱉는 것. 한번에 수십발을 날릴 수 있으며, 케찰코아틀은 이 능력으로 터틀 크랩의 껍질을 녹이고 부숴, 강의 주인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


[큭…!]


라이네스는 몸을 옆으로 굴렸다. 흙과 풀이 자랑하던 은빛 털을 더럽혔지만, 지금은 그런 걸 신경쓰고 있을 때가 아니다.
조금 전까지 라이네스가 달리고 있던 자리. 그리고 그보다 앞의 자리에 포이즌 애로우가 꽂혀, 풀들을 죽이고 지면을 녹여간다. 만약 그 상태 그대로 달렸더라면 맞았을지도 모른다.


숨을 돌릴 틈도 없이, 라이네스 위의 하늘이 어두워졌다. 케찰코아틀이 방금 나무를 뽑아 던졌던 그 거대한 꼬리를 위로 들어올려 라이네스를 향해 내려치기 시작한 탓이다.


'주제에 시간차 공격이라니!'


땅을 박차고 위로 뛰어오른다.
떨어져내리는 꼬리를 아슬아슬하게 피해 위로 올라가고, 꼬리는 땅을 때려 크레이터를 만들었다.
꼬리를 피해낸 라이네스는 그제서야 숨을 돌리며, 도주를 재개한다.


─그 순간, 등골이 오싹해졌다.


케찰코아틀의 눈.
그것은, 여전히 라이네스를 놓치지 않고 있었다.
라이네스의 몸은 아직까지 꼬리를 피하기 위해 공중에 떠오른 그대로.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한가지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설마… 이 녀석…!'


나무 던지기와 포이즌 애로우와 꼬리의 시간차 공격.
그리고 자신이 그것을 피할 것까지.


벌써 예상하고 있었다. 완벽하게.


​─​샤​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유리를 긁는듯한 소리를 내며, 이번엔 머리로 직접 공격해들어온다.
케찰코아틀의 머리 양옆에 있는 지르러미들이 마치 날개처럼 펼쳐져, 더더욱 공포스러운 형상을 만들었다.
머리 옆에, 날개와도 같은 지르러미. 그것에 박혀있는 수많은 '발톱'과 같은 형태의 갑골(甲骨).


그 무진장한 적의를 받아가면서도 라이네스는 몸을 뒤틀었다.
허공에서 할 수 있는 움직임이란 한정되어있다. 그렇기 때문에 케찰코아틀도 지금 이 순간을 노린 것이고.


케찰코아틀의 이빨이 라이네스에게 닿는다.
그 순간 몸을 틀어 스스로 케찰코아틀에게 부딪혔고, 그 반동으로 라이네스는 몸을 피해 바닥을 굴렀다. 케찰코아틀의 입은 라이네스가 피하자마자 닫혔다.
만약 단 0.1초라도 늦었더라면 케찰코아틀의 입 속으로 집어삼켜졌을 터. 지금까지의 경험에서 나온 반응이 라이네스의 목숨을 건졌다.


그렇지만.


'…… 아픈데.'


오른쪽 다리의 털이, 새빨갛게 물들어가고 있었다.
은빛의 털을 물들인 피는 한방울 두방울 곧 바닥에 떨어지기 시작한다.
몸을 부딪혀 반동으로 피하는 과정에서, 이빨에 스쳤다. 그나마 방금 전 포이즌 애로우를 사용했던 터라 아직까지 이빨에 독이 충전되지 않았던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지만, 가벼운 부상은 아니다. 부러진 것 같진 않지만, 상당히 깊게 베였다.
이것으로 조금 전과 같은 스피드로 움직이는 것은 불가능. 섣불리 도망치는 것도 할 수 없게 됐다.


'… 이런 걸 두고 '핀치'라고 하던가.'


아주 오래 전, '모험'을 끝내고 돌아왔을 때 이래론 느껴보지 못했기에 잊고 있었다.
어렸을 때는 항상 느끼면서 지내왔던 '위기감'이라는 감각을.


다리를 절뚝거리면서도 움직이기를 계속했다. 안그러면 케찰코아틀에게 틈을 보여버릴테니까.
하지만 케찰코아틀은 이미 라이네스가 자신의 이빨에 스쳤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있었다. 그 부상이 상당한 것이라는 것도. 그리고, 아마도 조금전처럼 빨리 움직이는 것이 불가능할 것이라는 것도.


'저 영악한 놈이. 좀 속아주면 어디가 덧나기라도 하는건가.'


서서히 여유롭게 다가오는 케찰코아틀을 보며 라이네스는 혀를 찼다.


'하는 수 없나. 어디까지 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얌전히 죽어주는 건 자신의 성격에도 맞지 않는 일이니까.
라이네스는 곧 결심을 굳히고, '발버둥'을 준비했다.

 

 


─그때였다. 하늘에서 '새카만 것'과 '노란 것'이 떨어져내린 것은.

 

 


[우웃?!]
─샤아아아아악?!


마치 운석이 떨어진 것같은 진동과 굉음.
라이네스도 케찰코아틀도 놀라면서 그곳에서 멀어졌다.


─먼지 구름 속에서, 무언가가 일어섰다.


그 '무언가'가 팔을 휘둘러 먼지 구름을 걷어버리고.

 


─금색의 여우가 늑대를 향해 달려들었다.

 


"와아! 라이네스다! 역시 무사했네요!"
[… 디아나?! 그렇다는 건─]


라이네스는 방금 낙하의 충격으로 생긴 크레이터의 중심부를 바라보았다.
그곳에 있는 것은, 지난 몇일 동안 봐왔기에 익숙해져버린 모습이었다.


─어깨까지 닿을 듯한 머리칼을 올려묶은 회색 머리.
─흑색의 재킷 위에 금속 파츠를 씌운 칠흑의 갑옷.
─강철로 된 손, 강철로 된 발.
─짙은 회색빛 눈을 가리고 있는 바이저 고글.


그 모든 것이 가리키는 '인물'은, 라이네스가 알고 있는 한 단 한명이었다.


"무사하십니까."
[… 아아, 어떻게든.]


이런 상황에서, 강한 아군의 등장을 반기지 않을 사람은 없다. 그것은 라이네스라고 해도 예외는 아니었다.
한편, 디아나는 라이네스를 끌어안으며 까불거리고 있었다.


"저기, 저기! 라이네스, 진짜 굉장했어요! 꼭 끌어안으라고 하길래 뭔가해서 안았더나 발 뒤꿈치랑 몸 여기저기에서 갑자기 뭔가가 화악하고 뿜어져 나와서! 정신을 차려보니까 숲 위를 날고 있지 뭐예요! 게다가 엄청 빨랐어요! 괴조들도 ​못​따​라​잡​더​라​니​까​!​"​
[… 디아나. 나 좀 아프거든? 이거 놔. 게다가 무슨 소릴 하는건지 모르겠잖아.]
"네? 아프다니, 어디가… 히이이이잇?! 다리가, 다리가?!"
[그러니까 상처 만지지마! 아프다니까!!]


뒤에서 늑대와 여우가 촌극을 벌이는 동안, 기계는 한걸음 두걸음 앞으로 걸어나왔다.
케찰코아틀은 기계의 느닷없는 등장에 경계를 늦추지 않으며, 아직까지 '관찰'하고 있었다.
기계는 그런 케찰코아틀을 올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 우리들은 동료를 데리고 가고 싶을 뿐입니다. 더이상 공격하지 않겠다면 우리들도─"


실버백에게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대화를 시도하던 기계는 순간적으로 말을 멈췄다.
그 직후, 얼굴을 굳히고 자세를 낮췄다.


[전에도 말했지만, 그 녀석에겐 말이 통하지 않아. 애시당초─]
"… 몇명인가요."
[…… 뭐?]
"몇명, 잡아먹혔습니까."


라이네스도, 디아나도.
한순간 호흡조차 멈출 정도로 동요했다.


[… 어떻게 그걸─]
"종족명 데빌웜, 코드 「케찰코아틀」의 복부에서 인간 사이즈의 실루엣을 감지했습니다. 몇명입니까?"
[… 두 사람이다. 이미 죽은 다음에 먹혔어.]
"… 코드 케찰코아틀의 사이즈로 추정했을 때, 같은 사이즈의 데빌웜이 인간형의 '먹이' 둘을 먹었다고 만복감을 나타냈다는 데이터는 없습니다. 저쪽에서 이쪽을 공격하는 이유… 공복감을 채우기 위한 포식 행위라면 저희들을 공격하는 걸 멈출 리 없겠군요."


두 사람을 데리고 도망친다는 방법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그 방법을 쓸 수 없다. 라이네스조차 모르는 사실로, 500세 이상된 고령의 데빌웜은 지독할 정도로 집요하니까. 한번 노린 먹이가 눈앞에서 도망친다면 설령 마을 안으로 들어간다고 해도 쳐들어오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을 정도다.
만약 저런 괴수가 마을로 들어온다면 최악의 상황이 벌어질 것이라는 것은 상상해보지 않아도 뻔하다.
결국 싸우지 않으면 멈출 수 없는건가. 기계는 금속으로 된 주먹을 강하게 쥔다.


"통상 모드에서 제압 모드로 전환. … 전투 개시."


실버백과 대면했을 때조차, 고속전을 위해 단 한번 사용했을 뿐인 힘. 행동의 제약이 줄어들고 공격의 바리에이션이 늘어난다.
단지 그것만으로도, 이미 기계는 실버백과 잠시 교전했을 때보다 강해져있었다.


​─​샤​아​아​아​아​아​아​아​아​악​!​!​


그 시점에서는 케찰코아틀도 눈앞의 상대를 짖이겨버리기로 결심한 상태였다. 어쨌거나 지금까지 500년 간, 절대적인 포식자로 군림해온 그에게 있어 지금 이 상황은 먹이가 늘어난 것에 지나지 않으니까.
우선은 그 거대한 몸을 뒤틀어, 꼬리를 휘두른다. 보통 위에서 아래로 내려치지만, 이번엔 횡으로 움직였다.


기계는 위로 뛰어올라 그것을 피해냈지만, 단지 회피에서 끝나지 않았다. 그대로 꼬리 위에 올라타고는 실버백 때와 마찬가지로 몸을 굽히고 가속시켰다.
비록 발판이 불안정해서 그때만큼의 스피드는 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충분히 포탄같은 기세로 케찰코아틀의 목에 부딪혔다.
위력도 속도도 실제의 포탄에 비교해도 손색없을 공격을 목에 직격으로 받은 케찰코아틀은

 


아무렇지도 않게 몸을 털어냈다.

 


"윽…!"


케찰코아틀의 비늘은 다른 주인들의 방어수단과 비교하면 그다지 방어력이 높은 것도 아니다. 브류나크와 파프니르의 강철보다도 단단한 비늘이나 버서커의 암석으로 된 몸체, 운골리언트의 가볍고도 견고한 갑각. 그것들과 비교하면 확실히 떨어진다.
그러나 그 대신, 그의 비늘에는 다른 주인들에게 없는 장점이 하나 있다.
극도의 유연성과 탄성으로 인한 충격 흡수력. 아무리 강한 타격에도 변형되지 않고, 모든 충격을 흡수하여 분산시켜버린다.


'데빌웜의 비늘이 그렇다는 건 데이터로 갖고 있었지만, 설마 이 정도까지…!'


상성이 안좋다. 자신의 전투 스타일은 주먹과 발을 이용한 격투. 반면 케찰코아틀은 타격에 거의 데미지를 받지 않는 몸을 갖고 있다.
─겨우 그 정도 핸디캡으로 포기할 생각은 처음부터 없었지만.


가속한다.
지면을 박차고, 발뒤꿈치에 있는 부스터의 속도까지 더해서 가속한다.
더욱 빠르게, 더욱 날쌔게, 더욱 맹렬하게.
기계의 움직임이 흐려지고 가늘어진다.
점점 더 빨라지고, 빨라지고, 빨라져서 칠흑색의 선으로밖엔 보이지 않게 되버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완전히 사라진다.


​─​쉬​이​이​이​이​이​이​이​익​.​


케찰코아틀은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가며 사라진 '먹이'를 찾아해맸다. 하지만 기계는 그것보다도 더욱 빨리 이동하며 철저하게 케찰코아틀의 시야 밖에서만 움직이고 있었다. 멀리서 지켜보고 있는 라이네스와 디아나에게는 보일지언정 바로 앞의 케찰코아틀의 눈에는 보이지 않을 것이다.


─콰앙.


두리번거리던 케찰코아틀은 뒤통수에 강한 통증을 느끼고 머리를 뒤로 돌렸다.
그 순간 다시 한번 뒤통수를 강타당했다.


​─​샤​아​아​아​아​아​아​아​악​!​


고개를 돌리면 다시 뒤통수를 맞고, 그쪽으로 돌리면 또 머리를 강타당한다.
조금 더 시간이 흐르자, 케찰코아틀의 머리가 자신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이리저리 흔들리기 시작했다.


뒤통수를 맞고, 턱을 맞고, 볼을 맞고, 미간을 맞고, 정수리를 맞고, 다시 뒤통수를 맞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케찰코아틀의 눈은 자신을 때리고 있는 적의 모습을 찾지 못했다.
찾으려고 머리를 돌리면 맞고, 찾지 않으려고 해도 맞는다. 분노는 쌓여만 가는데 그 분노를 쏟아부을 대상이 보이지 않는다.


실버백과의 싸움에서 그를 침몰 일보직전까지 몰아넣었던 초스피드의 연격. 아무리 특수한 비늘로 전신을 보호하고 있다고 해도, 사방팔방에서 두들겨져 뇌가 흔들리는 것만은 방어력만으로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실제로 지금 케찰코아틀은 지금 극도로 심한 뇌진탕에 시달리며, 제대로 앞을 보는 것조차 하지못하고 있었다.


이런 식으로 천천히 의식을 잃게 하고, 싸울 수 없는 상태로 만들어 자신들을 공격하지 못하게 한다. 그 뒤에 빠져나가면 된다.
기계는 그렇게 마음을 굳히고 더욱더 속도를 높여, 공격하는 시간 간격을 줄여나갔다.

 


그러나, 기계가 가지고 있는 데이터는 어디까지나 일반적인 '데빌웜'에 대한 것.
라이네스가 포이즌 애로우의 존재를 몰라서 부상을 입었던 것처럼, 기계 역시 케찰코아틀에 대해서 모든 것을 파악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실버백 때도 그랬지만, '주인'은 단순한 괴수가 아니다.
덩치가 크고, 힘이 강하며, 몸이 날쌔고, 교활하다고 하나 겨우 그런 것만으로는 주인이라는 칭호를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캬​아​아​아​아​아​아​아​악​!​!​

 


케찰코아틀이 날뛰기 시작했다.
머리를 흔들고, 꼬리를 날리고, 몸을 뒤튼다.
지금까지의 먹이를 노리며 신속하고 정확하게 공격을 날리던 것과는 정반대의 광포한 움직임.
기계는 그 공격들을 피해냈지만, 대신 주변의 나무나 바위나 지면들이 박살나고 그 파편들이 허공으로 튀어올랐다.


그리고 튀어오른 파편들은 한창 공중을 이동 중이던 기계를 두들겼다.
데미지는 없었다. 고작 돌 파편이나 나무 파편에 맞은 정도로 본체에 영향을 미칠만큼, 그가 입고 있는 장갑은 약하지 않으니까.


하지만 그 대신.
부스터에 파편이 들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 공중에서 움직임을 멈추고.
팔을 들어올려 얼굴을 가리고.
파편들이 장갑에 엉망으로 부딪혀 소음을 일으켰다.


방어자세를 취하고 파편이 튀어오르는 것이 끝날 때까지 걸린 시간은 아마도 1초 남짓이었을 것이다. 그 직후에 곧바로 케찰코아틀을 향해 몸을 돌렸으니까, 딜레이도 거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몸을 돌린다.


케찰코아틀과, 정면으로 눈이 마주쳤다.


조금전까지 뇌진탕으로 인해 초점마저 흐려져있던 눈이.
지금은 자신을 완벽하게 포착하고 있었다.

 


─위치가 노출됐다.

 


그것을 인식한 순간, 정면에서 날아드는 꼬리를 받아냈다.


​"​─​─​─​─​─​─​─​!​!​"​


신음이나 비명을 흘릴 새도 없이 꼬리와 함께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 일격에, 바닥에는 운석이 떨어진 듯한 크레이터가 생겼고 기계는 지면과 꼬리 사이에서 샌드위치가 된 채 파묻혔다.
단순히 일격의 위력만 따진다면 실버백과도 비교가 되지 않는다. 전신의 관절이 삐그덕거리고, 장갑 또한 변형된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충격을 받았다.


'이게, '주인'…!'


통상적으로 생각하면, 방금 전의 케찰코아틀이 한 행동은 지극히 무모했다. 자칫 잘못하면 그 '발광'으로 인해 뇌진탕이 더욱 심해져 실신해버리고 완전히 무방비 상태가 될 수도 있었던 것이다. 일반적인 맹수라면 도망을 치면 쳤지 결코 그런 행동을 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케찰코아틀은 했다.
그 위험을 감수하고 몸을 움직여서, 주변을 때려부쉈다.
그 파편을 띄워, 기계의 움직임을 멈추게 하는 것과 동시에 위치를 포착하고 곧바로 공격을 날렸다.
뇌진탕때문에 정신이 없었을 것이 분명한데, 아주 잠깐 동안의 딜레이에 그것을 참아가며 적중시키기까지 했다.


오직 '이기기 위해서'.
야생 동물이 '먹기 위해서' 싸우는 것과 달리, 눈앞의 '적'과 싸워서 이기기 위해서 위험을 감수하고 몸을 아끼지 않는다.
그것 또한, '주인'들이 가지고 있는 특성 중 하나였다. 요컨대 기계는 케찰코아틀의 프라이드를 너무 얕본 것이다.


'움직이질 않아…!'


자신을 위에서 누르고 있는 꼬리를 밀어내기 위해 힘을 써보지만, 케찰코아틀의 꼬리는 몇번 들썩거리기만 할 뿐 기계의 위에서 비키지 않았다.
이대로는 교착 상태가 계속 될 뿐이지만, 느닷없이 꼬리가 움직여 기계를 휘감으려고 들었다. 그 순간을 이용해 발뒤꿈치의 부스터를 점화하지만, 미처 다 빠져나가지는 못한 채 하반신이 꼬리에 휘감기고 말았다.


​─​샤​아​아​아​아​아​아​악​!​!​


소리가 들려오는 곳을 향해 고개를 들어올리자, 그곳에서는 케찰코아틀이 기계를 집어삼키기 위해 입을 벌리고 있었다.
황급히 두 손을 위로 들어올려 입을 받아내지만, 위에서도 내려오고 아래쪽의 꼬리도 자신을 입으로 집어넣으려고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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