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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와 짐승과 마을 이야기


10화



무언가가 다르다. 아까 전까지의 '검은 것'과는.
물론 옆에 철덩어리 하나 들고 있다고 그렇게 표현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이 무엇인지까진 케찰코아틀도 모른다. 모르지만─ 눈앞에 있는 '검은 것'은 분명 아까의 '검은 것'과 같은 것이지만, 동시에 아까의 '검은 것'과는 뭔가 하나가 결정적으로 다르다.


"… 마지막으로, 경고하겠다."


기계가 무슨 말을 하든지, 케찰코아틀이 그것을 알아들을 수 있을 리 없다.
하지만, 적어도 그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그 의지는 전달된다.


"지금이라도 전투 중지의 의사를 지니고 있다면, 우리들 역시 더이상 아무것도 하지 않고 물러날 수 있다."


라이네스의 부상도 걱정되고, 더이상 쓸데없는 전투로 시간을 끄는 것도 의미가 없었다.
적어도, 기계의 눈으로 보기에는 그러했다.


"하지만, 혹시 이 이상의 전투를 원한다면─"


금색의 눈동자가 케찰코아틀의 눈을 주시한다.
별 생각없이 눈을 맞춘 케찰코아틀은, 한순간 전율마저 느꼈다.


─이것이, '생물'이 가질 수 있는 눈인가 라고.

 


"나는 당신을, 더이상 적대 의사를 표현할 수 없게 될 때까지 철저하게 분쇄하겠다."

 


잠깐동안의 정적.
하지만 그 정적은 결코 오래 가지 않았다.


​─​캬​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 역시 그 쪽인가."


이미 케찰코아틀은 포이즌 웨이브로도 자신들을 죽이지 못했다는 것만으로 자존심에 크게 상처를 받은 상태. 약간 마음에 걸리는 것이 생겼다고 해서 전투를 피할 리 없다.
그렇다면 이제 기계가 선택해야할 것은 단 하나 뿐이다.


─눈앞에 있는 개체를 '적'으로 구분하고, 확실하게 '제거'한다.


눈앞의 괴수는 더이상 '보호가 필요한 야생 동물'이 아니다. 그러니까 죽일 수 있다. 죽인다. 없앤다. 박멸한다.


"종명 데빌웜, 코드 케찰코아틀을 AA클래스 위험 지정 생물로 인식─ 제압 모드에서 전투 모드로 전환. 케찰코아틀의 완전 침묵까지의 무차별 공격 승인. … 전투 개시."


그리고 기계는 움직였다.

 

 

 


꼬리를 휘두르는 것은 이미 상대에게 통용되지 않는다. 그것을 잘 알고 있는 케찰코아틀은 아예 처음부터 하늘로 날아올랐다.
케찰코아틀은 결코 어리석지 않았다. 이미 눈앞의 '검은 것'이 몇번이나 자신의 예상을 뛰어넘은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고, 전력을 쏟아붓기로 결정한 것이다. 그 판단은 틀리지 않았고, 그렇게 판단할 때까지의 속도도 빨랐다.


─단지, 기계가 그보다 아주 약간 더 빨랐을 뿐이다.


공중에 떠오르려는 케찰코아틀의 꼬리에 십자가의 머리를 꽂아넣는다.
그와 동시에, 십자가의 머리가 양 옆으로 갈라지면서 칼날이 튀어나와 비늘을 가르고 꼬리를 찔렀다.


​─​캬​아​아​아​아​아​아​악​?​!​


꼬리를 꿰뚫은 십자검을 그대로 그어내린다. 꼬리가 둘로 쪼개지고, 사방으로 피가 튀어올라 지면의 풀들이 핏빛으로 젖어들었다.
갈라진 부분은 약 4m. 전체 길이 80m가 넘어가는 케찰코아틀에게 있어서는 그다지 큰 부상이라고 할 수 없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아팠다.
아팠기 때문에, 그 잘린 꼬리를 그대로 휘둘러 공격한다는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본래의 케찰코아틀이었다면 이런 실수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안그래도 공복인데다 조금 전의 일로 머리 꼭대기까지 열이 올라있던 상태인데다 난생 처음 겪어보는 종류의 강렬한 통증까지 느꼈던 탓에 냉정하게 대응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 기회를 기계는 놓치지 않았다.
5분 전까지의 기계라면 놓쳤을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어떠한 맹수를 상대로 하면서도 치명상을 입히는 것을 자제해왔던 기계라면.
하지만 지금의 '이' 기계에게, 더이상의 거부감따윈 없었다.


자신을 향해 휘둘러지는 꼬리를 포착한다.
그 꼬리에 대고, 십자가의 광검(光劍)을 용서없이 내리긋는다.


다른 주인들에 비해서 방어력이 떨어지는 케찰코아틀의 비늘이라곤 해도, 그것이 다른 맹수들과 비교할 수 있을 정도라는 이야기는 결코 아니다. 보통의 검이나 보통의 창… 아니, 어지간한 명검이었다고 하더라도, 케찰코아틀의 비늘을 뚫진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기계가 사용하고 있는 것은 금속으로 만들어진 실체검이 아니라 분자 구조의 결합 자체를 끊어버리는 광자검. 그 앞에서는 케찰코아틀의 비늘이 아니라 다른 무엇이라고 해도 '방어'는 불가능하다.


직경 4미터에 달하는 꼬리가, 아무런 저항도 없이 '절단'되고 떨어져나갔다.


쿵, 하는 소음과 함께 꼬리토막이 지면에 떨어졌다.
케찰코아틀이 비명을 지르는 사이, 십자가를 회전시켜 반대로 든다. 이번에는 십자가의 하단부가 케찰코아틀을 향하게 되었다.


케찰코아틀을 향해 겨눠진 십자가의 하단부가 양쪽으로 열리고, 연결부분이 마치 짐승의 이빨과도 같은 형태가 되어 마물의 턱과 같은 모습으로 변형된다.
스파크가 파직거리며, 그 짐승의 턱 사이에서 한데 뭉쳐 청백색의 에너지체를 형성했다.


에너지체는 곧 한줄기의 빛이 되어 날아가, 케찰코아틀의 왼쪽 지르러미에 붙어있는 눈을 꿰뚫었다.

 


​─​─​─​─​─​─​─​─​─​─​─​─​!​!​

 


대기조차 찢어버릴 듯한 비명. 하지만 이어서 발사된 또 한줄기의 빛이, 오른쪽 지르러미의 눈마저 관통했다.
태어난 이후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한번도 직접적으로 공격당해본 적 없는 부분. 하물며 눈은 가장 민감한 기관 중 하나다. 그곳을 양쪽 모두 꿰뚫린 고통에, 케찰코아틀은 끊임없이 몸부림쳤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르러미를 움직여 공중으로 날아오르는 것만은 잊어버리지 않았다. 지르러미에서 끊임없이 피를 흘리면서도 멈추지 않고 움직였다. 고통은 고통이었지만, 그보다는 분노가 더욱더 커졌던 탓이다.


아팠다.
지르러미도, 양쪽의 눈도. 방금 잘려나간 꼬리도.
그리고 케찰코아틀은 '고통'을 '분노'로 바꿀 수 있는 신경줄을 가지고 있었다. 고통이 커지면 커질수록 움직임은 난폭해지고, 공격성은 더해지며, 반응속도도 빨라진다. 그 반면 머리 한쪽 구석은 차갑게 식어 언제나 냉정을 잃지 않고 주위를 살필 수 있게 해준다.
머리의 냉혈과 심장의 온혈이 공존하는 괴물. 그 공존할 수 없는 성질의 두 감정이 공존하게 만든 정신력이야말로 케찰코아틀의 무엇보다도 큰 무기였다.


'여기까진 잘 됐군.'


이 이후가 다시 문제다. 어쨌거나 지금 것은 허를 찔러서 데미지를 입힌 것 뿐이고, 케찰코아틀은 똑같은 공격에 몇번씩이나 당해줄만큼 멍청하지 않다.


'조금전까지의 공방으로 대부분의 스펙 데이터는 이미 입력 완료. 레이저 블레이드도 페이탈 건도 타겟의 회피능력과 반사신경을 생각하면 그다지 결정타는 못되고… 그렇다면─'


생각을 마치고, 기계는 전신의 부스터를 가동시켜 날아올랐다.
목표는 물론 케찰코아틀. 속도에서는 기계 쪽이 위인 덕분에, 금새 따라잡을 수 있었다.
케찰코아틀 역시 그것을 감지하고, 고개만을 뒤로 돌리고 입을 벌렸다.


「포이즌 애로우」


입에서부터 쏟아지는 독의 화살들이 기계를 덮쳤다.
하지만 그 직전에 기계는 오른팔의 십자가를 앞으로 내밀었고, 곧 십자가 중앙의 코어 메탈이 빛과 함께 에너지 실드를 전개, 포이즌 애로우들을 막아냈다.
이 시점에서 케찰코아틀은 처음으로 자신의 포이즌 웨이브를 막아낸 것의 실체를 확실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약점까지도 순식간에 파악했다.


포이즌 애로우를 계속해서 기계에게 발사하며, 케찰코아틀은 방향을 전환하고 기계를 향해 돌진했다.


'공격 패턴 분석. 이빨로 벨 확률 3%, 집어삼키려고 들 확률 11%, 몸통 박치기로 전환할 확률 8%… 그리고─'


기계가 펼친 에너지 실드의 바로 앞에 다가올 때까지 포이즌 애로우를 멈추지 않은 케찰코아틀. 마치 실드 채로 집어삼킬 기세로 날아왔기 때문에 기계로서도 에너지 실드를 거두는 일은 할 수 없었다.


그리고는 급격하게 급브레이크. 그 반동으로 앞을 향해 쏠린 몸을 이용해, 기계의 뒤쪽으로 몸통을 움직였다.


'바로 앞에서 급브레이크를 걸어 에너지 실드가 없는 뒤쪽을 공격할 확률 78%.'


에너지 실드는 전면에밖에 칠 수 없다. … 아니, 그렇다고 하기보다, 십자가의 코어 메탈이 있는 방향으로밖엔 만들 수 없다. 아마 케찰코아틀의 입장에선 지금의 공격이 '단순히 예측이 맞는지 어떤지 알아보기 위해 찔러보는' 수준이었겠지만, 그것이 적중되어버린 것이다.
케찰코아틀의 꼬리가 기계의 등을 강타하고, 앞으로 밀린 기계는 케찰코아틀의 입 속으로 날아갔다. 그리고 케찰코아틀은 에너지 실드 채로 집어삼키기 위해 입을 다물었다.


에너지 실드는 스파크를 일으키며 케찰코아틀의 이빨에 씹히기 시작했다.
본래 케찰코아틀의 근본은 '뱀'. 아무리 지금의 형태가 뱀이라기보단 용에 가깝다고 해도 그 근본이 사라지진 않는다. 그리고 뱀이란 동물은 원래부터 턱 힘이 그리 강한 편이 아니다. 애초에 씹어서 잘게 부수는 것보다는 통째로 집어삼켜 소화시키는데에 특화되어 있으니까.
물론 케찰코아틀만큼 거대한 뱀이라면 그 턱 힘도 비례하여 무시무시할 정도까지 올라가지만, 파프니르나 브류나크라면 모를까, 그 정도로는 에너지 실드를 부술 수 없다.


─문제는, 이대로 집어삼켜져버릴 경우.


케찰코아틀의 뱃속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그 독액과 위산을 그대로 뒤집어쓴다는 것과 같은 이야기다. 외부의 장갑이나 피부는 확실하게 녹아내릴 것이다.
까놓고 말해서, 그렇게 되면 리스크가 대단히 커진다. 장갑을 수리받을 수 없는 이곳에서 지금의 이 모습을 잃을 수는 없다.


……
……
……?


'무엇에 대한 리스크'가 큰 것인가. 생각나지 않았다.
하지만 '리스크'에 대한 것은 둘째치더라도 이 외형을 잃을 수 없다는 것은 확실하다. 그 마을 속에 섞여들어 살아가기 위해서라도.


십자가와 팔을 연결하고 있는 연결부를 해제하고, 손을 자유롭게 한다.
이 상태에서 십자가가 미끄러지지 않고 버틸 수 있는 시간은 길어야 몇초 정도. 그 이상이라면 쓰러져서 케찰코아틀의 뱃속으로 들어가버릴 것이다.


그러나 기계에게는 그 몇초로 충분했다.


오른쪽 허벅지의 장갑이 열린다. 그 안에서 한 자루의 핸드건이 모습을 드러낸다.
왼쪽 허벅지의 장갑까지 열린다. 그 안에서 한 자루의 금속 막대가 모습을 드러낸다.
두 손으로 그것들을 붙잡고 꺼낸다.


우선은 왼손에 들어올린 금속 막대를 움직인다.
막대의 안쪽에서부터 금속제의 칼날들이 단계적으로 튀어나왔고, 최종적으로 그것은 1m 길이의 금속검으로 변형되었다. 그리고 그 검날 부분을, 푸른 빛과 함께 맹렬한 진동이 감싼다.
검의 표면에는 플라즈마를, 날에는 초진동을 더한 플라즈마 소닉 블레이드. 그런 터무니없는 고도의 테크놀러지로만 가득한 물건을, 케찰코아틀의 아랫턱을 향해 꽂어넣었다.


─비명.
─출혈.
─산화.


케찰코아틀이 비명을 지르고, 상처에서는 피가 뿜어져나오다가 플라즈마에 의해 기화되버린다. 덧붙여 아래턱의 뼈와 살도 녹아내리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케찰코아틀은 입을 벌릴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런 물건이 몸 속에 박혀있다는 것은 어마어마한 고통일텐데도, 케찰코아틀은 기계에 대한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그렇다면, 강제로 멈추게 만들면 된다.

 


핸드건을 위로 들어올려 주저없이 방아쇠를 당긴다.
한번이 아니도, 두번 세번 네번 다섯번 계속해서.
케찰코아틀의 입 천장에 구멍이 뚫리며, 비명과 몸부림이 훨씬 더 심해졌다.


정식명칭으로는 이상 진화 재해 생물. 통칭 「괴수」.
맹수에서부터 상식적으로는 있을 수 없는 진화를 이룩하여 거대화되거나 강력한 힘을 손에 넣은 소수의 생물을 뜻한다.
하지만 괴수를 괴수라고 판단하는 근거로 단순히 외형과 크기와 초월적인 힘의 유무만을 따지는 것은 아니다. 그런 식으로 치자면 대부분의 대형 생물을 전부 괴수라고 분류해야 할테니까.


맹수를 이상 진화시켜, 재해에 해당하는 파괴 활동을 할 수 있게 만드는 원동력.
제어하기는 커녕, 정체를 알 수조차 없는 미지의 물질.
그것은 「페이탈 프라이멀(FP) 입자」라고 이름 붙여졌다.


괴수가 존재한다면 그것을 이용할 연구도, 쓰러트릴 연구도 진행되는 것이 필연.
그리고 지금 기계가 꺼낸 핸드건은 그중 '쓰러트릴 연구'의 결정체. 더블F 입자를 기준치 이상으로 보유하고 있는 생물에게 치명적인 데미지를 주는 '안티 페이탈 프라이멀 입자(AFP)'를 사용하는 「몬스터 슬레이어」다.
케찰코아틀 역시, FP 입자에 의해 이상 진화를 이룬 존재. 그렇기 때문에, 몬스터 슬레이어의 효과는 대단히 크다.


쏜다.
꿰뚫린다.
쏜다.
꿰뚫린다.
다시 쏜다. 다시 꿰뚫린다.
이미 케찰코아틀의 입 안에 박힌 탄환은 8발. 케찰코아틀의 거체와 비교하면 먼지만도 못한 크기지만, 그것이 가져오는 고통은 엄청났다.


지금까지 그토록 완고하게 입을 다물려고 하던 케찰코아틀이, 기계와 십자가를 함께 뱉어버렸을 정도니까.


토해진 십자가와 함께 떨어지며 그것을 공중에서 회수하고 오른팔에서 장착, 기계는 지면에 착지했다.
케찰코아틀 역시 지면에 내려앉았지만, 제대로 착지한 것이 아니라 고통 때문에 몸부림치다가 머리부터 떨어진 것이다. 그러고 나서도, 한참 동안 몸을 뒤틀며 주변의 나무나 바위들을 때려부숴갔다.
고작 6g이 될까말까한 탄환. 그럼에도 불구하고, FP 입자를 가진 괴수에 한해서는 저런 효과를 불러일으킨다. 직접 겪어본 적은 없기에 정확한 데이터로 산출할 수는 없지만, 이걸 만든 연구부의 말에 의하면 "혈관 속을 개미 수천마리가 돌아다니는 것과 비슷한 정도"라고 했으니까 굉장히 고통스러울 것이라는 정도는 예측할 수 있다.


하지만, 방심하고 접근하는 것은 금물.
저토록 몸부림치면서, 몸을 뒤틀면서도, 남아있는 7개의 눈은 여전히 기계를 노려보고 있다.
새빨갛게 충혈되고 몇몇의 눈에서는 피마저 흘러나오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저 괴수는, 지금 느끼고 있는 엄청난 고통마저도 분노의 양식으로 바꾸고 있다.


들썩, 들썩, 들썩, 들썩─
케찰코아틀의 몸이 변형되기 시작했다.
몸의 옆부분에 있는 비늘들이 합쳐지고 돌출되어 형태를 바꾼다. 마치 '사람의 팔'과도 같은─물론 그 형태는 그로테스크하고, 괴수다운 팔이지만─ 형상으로. 손가락은 물론이고 손톱마저도 생겨나고 있었다.
레이저에 의해 눈이 꿰뚫린 양쪽 지르러미. 거기서 무수한 눈들이 새로 개안(開眼)하고 있었다. 원래 지르러미에 있던 눈보다는 훨씬 작지만, 숫자는 압도적으로 많았다.


그 수, 본체에 있는 것까지 합치면 약 일백.


'… 저렇게 될 확률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분명 그것의 성공률은 5% 미만이었을 터다. 그런데도, 저것을 해버리다니.
지극히 드문 현상이지만, FP 입자는 숙주의 격한 감정에 반응하여 한층 더 진화를 촉진시키는 경우가 있다. 데이터 베이스에 있는 「이상 진화 재해 생물」 카체고리에도 검색되는 항목은 단 2개 뿐일 정도로 드문 ​현​상​이​지​만​(​이​것​까​지​ 포함해도 셋이다).
즉, 안그래도 강력한 괴수가 더욱 강하게 진화한다. 더욱 포악하고, 더욱 공격적으로. 하물며 그것이 케찰코아틀급의 괴수가 일으키는 진화라면 어느 정도가 될지, 생각할 것도 없다.

 


─물론, 그것은 순순히 진화하게 내버려뒀을 때의 이야기다.

 


"코드 「블랙 크로스」 화력 전개. … 이대로 내버려둘 경우, 코드 「케찰코아틀」은 위험도 S클래스의 괴수로 진화할 우려가 있음."


위험도 S클래스. 데이터 베이스 속에도, 그 클래스의 괴수는 단 2마리밖에 없다.
지금도 어딘가에 살아있다고 하는 투신 「갓슬레이어 펜릴」. 그리고 천년에 달하는 세월동안 하늘을 지배해온 제왕 「드라고 피닉스」. 그 둘도 원래는 괴수에서 한번 더 진화한 개체들이라는 걸 감안하면, 케찰코아틀도 그렇게 되지 말란 법 없다.


그러니까, 지금 이 자리에서 확실하게 '죽인다'.
일절의 망설임없이 결정한 기계는 블랙 크로스를 땅바닥에 꽂는다. 그와 동시에, 블랙 크로스의 하단부와 상단부, 그리고 십자가의 양쪽이 열렸다.
레이저 블레이드도 레이저 건도 플라즈마 소닉 블레이드도 몬스터 슬레이어도, 케찰코아틀에게는 결정타가 되지 않는다. 고통은 줄 수 있어도, 저 괴수는 그 고통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애초에 그 넷은 거대괴수용 무기도 아니고.'


본래 그 4무기의 목적은 따로 있지만, 지금에 와서는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이다.
그가 갖고 있는, 단 하나의 대(對) 거대괴수 토벌용 병기. 그것을 사용하기 위해, 블랙 크로스를 전개했다.


그리고 그 심상치 않은 낌새를, 이번에도 케찰코아틀은 빠르게 눈치챘다.
진화 중인 몸을 움직이고, 그 입을 벌린다.


​─​─​─​─​─​─​─​─​─​─​─​─​─​─​─​─​─​─​!​!​


길고 커다란 포효와 함께.
케찰코아틀의 입에서, 흑회색의 액체가 쏟아져나왔다.
지금까지의 독액과는 다른 '어떤 것'. 그것들이 순식간에 기계와 블랙 크로스를 뒤덮어버리고─ 바위처럼 굳어버렸다.

 


「스톤커스 웨이브」

 


녹여버리는 것이 아니라, 굳혀서 봉쇄한다. 독액이 변화되어 만들어진 석화액. 이것 역시 지금 진화의 과정에서 얻은 새로운 힘이다.
기계와 블랙 크로스의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된 후에도 계속해서 뿜어내어, 최종적으로는 그 자리에 크기 30m에 달하는 바윗덩어리가 새로 생겨나게 되었다.


이것은 지금까지의 진화와는 방향성이 다르다.
아무리 도가 지나쳤다곤 해도, 지금까지 케찰코아틀이 지니고 있던 힘은 어디까지나 「포식」, 「방위」를 위한 기능들의 연장선상. 야생의 동물들이라면 그런 능력을 지니고 있다고 해도 이상할 것이 없는 능력들이다(독, 비행 등. 위력은 둘째치고 그 능력의 종류로 따졌을 때).
하지만 지금의 뿜어낸 석화액은 '보통의 생물'에게는 존재하지 않는 힘. 오로지 눈앞의 적을 죽이고 싶다는 일념 하나로 만들어진 힘이다. 돌로 만들어 굳혀버리면 자신의 영역으로 만들수도 없고, 잡은 먹이를 먹는 것도 불가능해진다.


언젠가는 케찰코아틀도 자신의 실수를 알아차리겠지만, 적어도 지금의 케찰코아틀은 기뻐하고 있었다.
이제야 겨우 간신히, 눈앞에서 '검은 것'이 완전히 사라져버렸으니까.

 


─바위가 쪼개진다.

 


갈라지면서 생긴 무수한 틈새들 사이에서, '검은 빛'이 뿜어져나왔다.
케찰코아틀은 당황하면서도 다시 석화액을 뿜어내, 갈라진 틈새들을 메운다.
하지만 메우는 속도가 쪼개지는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게 되버렸고, 이윽고 검은 빛이 바위들을 완전히 날려버리고 석화액을 소멸시켰다.


그 검은 빛의 출처는, 말할 것도 없이 블랙 크로스. 그 한가운데에 있는 코어 메탈이다.
에너지 실드는 어디까지나 이 무장을 개발하면서 우연히 탄생된 '부산물'. 진짜는 이쪽이다.


AFP를 아낌없이 사용한, 대괴수전용 최대 최강 무장.

 

「안티 페이탈 프라이멀 캐논」

 


「CROSS FIRE 聖火十字砲」

 


검은 빛의 기둥이 석화액을 밀어낸다. 아니, 반대로 역류시키면서 케찰코아틀의 머리를 향해 뻗어나갔다.
검은 빛의 분류. 칠흑색의 심판. 괴수를 불태우는 칠흑빛의 염화.
그것이, 케찰코아틀의 머리를 집어삼킨다.

 


​─​─​─​─​─​─​─​─​─​!​!​

 


하늘을 찌르며 높이 울려퍼지는 단말마.
실제로 크로스 파이어에 감싸여진 부분은 머리 뿐이지만, 그 고통은 전신에 걸쳐 퍼졌다.


태워진다.
부서진다.
녹아내린다.
죽는다.


수분에 걸쳐 열선을 쬐며, 그 모든 과정을 겪고 케찰코아틀은 마침내 침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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