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및 문화 콘텐츠 사이트 삼천세계

기계와 짐승과 마을 이야기


13화



"왔어. … 마침 두 사람 다 있었나."
"어서오세요♪ 다리 상처는 좀 어때요?"


라이네스가 오두막의 문을 열고 들어오자, 디아나가 그렇게 물었다.
라이네스는 언제나처럼 미소를 띄우며 대답했다.


"물론 완치됐지. 평소처럼 뛰어다녀도 ​문​제​없​을​거​라​던​데​.​"​
"다행이네요. 엄청 걱정했었는데."


라이네스가 입은 부상은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었다. 그 고통을 태도로 드러내지 않고 태연하게 움직였던 라이네스가 대단한 것일 뿐이다. 자칫 잘못했다면 한쪽 다리를 영영 쓰지 못하게 됐을지 모른다.
회복력이 뛰어난 수인족인 그녀조차 그런 고려를 했어야 할만큼 큰 부상.
사실 이것은 케찰코아틀에게 입은 부상 때문만이 아니고, 부상을 입고도 통증을 제거한 후 한참동안 전속력으로 뛰어다닌 것이 더 큰 문제였다. 다행히 그 이후로는 치료를 계속해서 완치가 됐다곤 해도, 라이네스 본인이나 그 통증을 제거해준 디아나로서는 상당히 등골이 오싹한 사건이었다.


"… 그런데. 무슨 일 있나요?"


'마침 두 사람 다 있었나'라는 말은, 두 사람 모두에게 볼일이 있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 말에서부터 유추하여 디아나가 질문한 것이다.
그리고 라이네스는 전에 없이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자리에 앉았다.


"전사들을 데리고 바깥으로 순찰을 돈 세이렌에게서 들은 이야기지만 말야. 실버백의 시체가 발견됐어."


디아나는 눈을 크게 뜨고 입을 가렸다.
기계조차, 인상을 굳혔다.


실버백. 빅풋이 진화한 괴수이며, 숲 영역의 원래 '주인'이다.


"케찰코아틀에게 당한 겁니까?"
"아니. 세이렌이 그러는데, 부패한 정도로 봐선 꽤 됐다고 하던데. 일주일 정도 전일까. 너와 내가 실버백과 만나고 하루나 이틀 정도 뒤에 죽은 거 같아."


그렇다고 하면 케찰코아틀이 갑자기 숲에 나타났던 이유도 추측이 가능했다.
숲의 주인인 실버백이 목숨을 잃었기에, 그 영역을 차지하기 위해서였겠지.


"그 뿐만이 아냐. 잘하면… 그 이상으로 큰 문제가 벌어진 걸지도 몰라."


실버백이 죽자, 숲 전체에 혼란이 생겼다. 그 뿐만이 아니고 다른 영역으로 도망치는 맹수들까지 나타났을 정도다. 이를테면 숲에서만 살아야 할 맹수가 느닷없이 황야나 초원에서 발견된다는 식으로.
즉, '주인'이 죽으면 그 영역 전체의 균형이 무너져 동물들이 사방팔방으로 흩어져버린다고 하는 것이다. 실제로 케찰코아틀이 죽자 강변 근처에 살아야 할 맹수가 숲에서 발견되기도 했다.


─문제는, 그것만이 아니다.


이미 꽤 전부터.
'늪'지대에서만 발견되는 맹수들이 숲에서 발견되는 일이 있었다.
같은 맥락에서 생각한다면, 늪의 주인인 킹 게이터 「파프니르」도 목숨을 잃었을지 모른다.


"세이렌이 말하길, 그런 식으로 동물들이 섞여서 흩어지는 영역은 이렇다고 하더군."


우선, 숲.
그 다음 강.
그리고 늪.
여기에 황야.
마지막으로 초원.
'산'과 '설원'을 제외한 모든 영역의 맹수들이, 자신들의 영역을 벗어나 다른 영역에서 출몰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즉─


"최악의 경우, 설원의 브류나크와 산의 다크 우드를 제외하고 나머지 세 주인들도 죽었을 가능성마저 있어."


어디까지나 가능성이지만. 라이네스는 그렇게 덧붙였다.
케찰코아틀 하나를 쓰러트리는 데만도 그런 고생을 치루어야 했다. 그런데도, 다른 주인들까지 줄줄이 죽어나갔을지도 모른다니.


"저기… 자연사했을 가능성은 없나요? 수명이 다 됐다던가."
"그렇게 편한 전개가 되어주면 우리들도 마음 놓겠지만 말야… 실버백이 죽은 꼴을 보면 그렇게도 안될 것 같아."


그렇게 말하며 라이네스는 자신의 목을 손날로 살짝 치는 시늉을 했다.
그 제스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금새 알아챈 디아나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너무 그러지마. 나도 믿고 싶지 않은 건 마찬가지라고. 늪지대의 킹게이터야 실버백보다 좀 나은 수준이고, 초원의 버서커도 케찰코아틀보단 랭크가 아래니까 어떻게 당할 수 있다손 쳐도… 운골리언트까지."


주인 중에선 드물게 '고작 3m 정도로 소형'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시할 수 있는 존재는 아니었다. 그렇다고 하기보다, 브류나크는 운골리언트를 자신과 다크 우드 바로 다음의, '세번째로 강한 주인'이라고 평가했을 정도니까.


운골리언트는 항상 수많은 벌레 떼들에게 둘러싸여 그 모습은 거의 볼 수 없지만, 현존하는 모든 벌레들의 장점과 무기를 모조리 갖추고 강화까지 한 주제에 단점은 별로 안갖고 있다고 하는, 문자 그대로 치트 버그다.
디아나가 말한대로 자연사했다면 상관없지만, 운골리언트가 살해당했다고 했을 경우 이 땅에서 그 '살해자'에 대적할 수 있는 것은 브류나크와 다크 우드밖에 없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 이외에 가능성이 있다면, 한 사람.


"그래서 말야. 남은 둘한테도 가보려고."
"… 라이네스 씨가 말인가요?"
"아. 나말곤 설원과 산의 깊숙한 곳까지 갈 수 있는 사람이 없으니까 말야."


세이렌정도의 자질이라면 넉넉잡아서 50년 정도 더 수련하면 될지 모르겠지만, 필요한 것은 '지금 당장' 쓸 수 있는 전력이다. 다른 곳은 어떨지 몰라도 '산'과 '설원'은 어설픈 실력으론 살아돌아오지 못한다. 그 이전에, 마을에서조차 지금까지 거기 갔다가 돌아온 사람이라곤 라이네스 밖에 없다. 지금으로부터 약 100년 정도 전의 이야기이긴 하지만.


"그리운 이야기지. 그땐 어려서 무모한 일도 많이 했으니까. 젊은 혈기로… 진짜 죽는 줄 알았던 적도 많아."
"… 노인네같은 소릴. 지금도 딱히 성질 죽은 건 아니지만요. 아야?!"
"쓸데없는 말 하지마."


회상에 잠기려던 라이네스에게 태클걸다가 한대 맞았다. 디아나는 머리를 감싸쥐고 신음을 흘렸고, 라이네스는 곧 본론으로 들어갔다.


"앞뒤 복잡한 말은 그만두고, 바로 말하지. 디아나와 같이 산하고 설원에 갈건데, 도와줬으면 한다."
"에?! 저도?!"
"당연하잖아. 마을의 다른 녀석들은 데려가봐야 방해만 되고. 너 정도가 딱 좋아."
"우우, 그거야 그럴지도 모르지만─"

 

"그러죠."

 

"그래, 그래. 출발은 내일 아침이니까 지금 당장 대답해달라는 건 아니─ 뭐?!"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나온 대답에 부탁을 했던 라이네스조차 경악했다.
물론 기계로서도 고민을 하긴 했다. 대답이 나올 때까지 걸린 시간은 불과 2초 정도였지만.


"지금 이 사태에 관련되었을 만한 이들에게 약간이지만 짐작이 있습니다."
"… 호오?"


만약, 정말로 지금 '주인'들을 죽이며 돌아다니는 이들이 있고.
그들이 지금 자신이 생각하는 자들이라면, 라이네스와 디아나만으로는 어떻게 할 수 없다.
'붉고 푸르고 검은' 자들이라면, 라이네스가 1:1로 어떻게든 할 수 있을지 모른다. 문제는 '하얀' 자다.


"물론 어디까지나 '짐작'이고, 확신은 없지만요. 그걸 알아내기 위해서라도 직접 가서 상황을 보고 싶습니다."


'주인'들이 수명때문에 자연사한 것이고 '그들'의 개입이 없다면 아무것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그 비행선에서의 전투와 실버백의 경우를 생각하면 '그들'의 개입은 거의 확실. 이미 절반 정도는 그들과 마주치게 될 거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지금 라이네스에게 말한 것은 혹시 '아닐 경우'를 대비해 쓸데없는 걱정을 끼치지 않기 위해서.


'교섭의 여지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무슨 목적으로 '주인'들을 사냥하고 있는건지 모르는 상태로는…'


그 부분의 기억은 돌아오지 않았기에 섣불리 접촉하기도 힘들다.
최악의 경우에는, 그들과 싸워야할지도 모른다.


'그때에는…'


죽인다. 철저하고 확실하게.
보통이라면 어려워도, 주인과 싸우고 있는 도중을 포착하게 된다면 기회는 있다.
지금의 자신이 가진 힘으로도 충분히 쓰러트릴 수 있다. 원래 자신의 무장은 그들을 쓰러트리기 위해 만들어진 거니까.

 

 

 


"이 정도면 됐을까."


라이네스는 내일 입고갈 자신의 복장을 점검했다. 어차피 먹을 것도 마실 것도 현지조달이니까, 따로 들고가야할 물건은 없었다.
드워프들이 만든 경량형 갑옷. 본래 갑갑한 것을 싫어하는 그녀의 성격상 방어구는 거의 착용하지 않는다. 게다가 주인급의 맹수들이 상대라면 갑옷같은 건 별 의미가 없기도 하고.
하지만 지금 그녀가 준비하고 있는 것은 다르다. 드워프들이 심혈을 기울여 만들고, 거기에 엘프들이 마법을 걸어준 특제품. 설령 지난번처럼 케찰코아틀의 독액이 쏟아져도, 한번이나 두번 정도는 어떻게든 막아낼 수 있을 것이다.


─그의 발목을 붙잡지 않아도 된다는 이야기다.


지난번 싸움에서 뼈저리게 느꼈다. 도움이 됐다고 자신할 수 있는 것은 케찰코아틀이 날개를 펼치기 전 뿐. 그 이후론 그에게 지켜지기만 했을 뿐이다.
본래부터 프라이드 높은 전사인 그녀에게 있어서, 이것은 대단히 심각한 문제였다.


객관적으로 판단했을 때도 주관적으로 판단했을 때도 그녀는 결코 약하지 않았다. 오히려, '주인'급이 아닌 이상 이 땅에서 그녀를 상대할 수 있는 존재는 없다고 보는 것이 옳다. 지금까지는 그것으로도 충분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상황은 그녀의 힘이 닿지 않는 곳에서 벌어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는 그에게 도와달라고 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나 잔뜩 폐를 끼친 그에게.


"……"


눈앞에 있는 물건을 들어올린다.
과거, '모험'을 했을 때 이후로는 사용하지 않았던 것. 벌써 100년 이상이나 쳐박아두었던 물건이다.
이틀 전 장례식이 끝난 직후 드워프들에게 부탁해, 새롭게 날을 벼린 한 자루의 검이었다.


이름은 없다. 이름은 없지만, 라이네스에게 있어서는 추억이 깊은 검이다. 뭐니뭐니해도 이 녀석은 '모험'을 시작하기 전부터 사용했고, 7개의 영역을 몽땅 돌고 돌아올 때까지 사용한 검이니까.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용케도 부러지지 않고 버텼다.
'모험'을 끝마치고 돌아와, 어지간한 맹수는 늑대의 모습으로도 쓰러트릴 수 있을 정도가 되었을 때, 그녀는 검을 쓰지 않게 되었다. 버릴 이유도 없고 해서 보관해두긴 했지만 연습이라면 목검으로 해도 충분했으니까 사용하는 일도 꺼내보는 일도 없었다. 바로 오늘 이 순간까지는.


들고서, 휘두른다.
다시 한번 휘둘렀다. 처음보다 빠르게.
그리고, 한번 더 휘둘렀다.


케찰코아틀과 싸울 때 이게 있었더라면 조금은 더 나은 싸움을 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설마 숲에서 케찰코아틀과 만날 줄은 몰랐기에 검을 들고 갈 이유가 없었다던가, 변명을 하려고 하면 할 수 있겠지만 그럴 마음은 없다.


문득, '그'에게까지 생각이 미쳤다.


그는 처음 만났을 때부터 어딘가 이상했다.
숲 속 한가운데의 동굴에서 만난 커다란 늑대를 경계도 하지 않고 퍼질러 누웠다. 이 세상 누가 그런 짓을 할까. 나중에 듣기론 나름대로 생각이 있어서 한 일인 모양이지만, 그런데도 바보같았다는 점은 변하지 않았다. 하도 기가 막혀서, 실버백과의 조우 이후에는 그것까지 포함해 한바탕 쏟아붓고 말았다.
마을에서 지내기 시작한 다음부터도, 이 녀석이 정말로 자기가 말하는 것처럼 '기계'인지 의심한 적도 한두번이 아니다. 그만큼 이 녀석은 다른 녀석들과 다를 바 없었다.


마치, 사람이 갑옷을 입고 행동하는 것처럼.
행동도 말투도 감정 표현도, 다른 사람들과 다를 게 없었다.


하지만 케찰코아틀과의 마지막 싸움에서, 그가 가진 '기계'로서의 편린을 느꼈다.
그는 실버백도 맹수들도, 자신이 두들겨맞는 것을 감수하고서라도 죽이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아니, 케찰코아틀과 싸울 때에도, 분명 케찰코아틀을 전투불능으로 만들려고는 했어도 죽이려고 살의를 갖지는 하지 않았다.


그것이 일변한 것은, 라이네스 자신과 디아나가 케찰코아틀의 포이즌 웨이브를 뒤집어쓸 뻔했을 때.
그 독액의 물결을, 갑자기 꺼낸 검은 십자가의 방패로 막아냈을 때.


그때부터 그는 변했다.


본 적도 없는 무기들을 사용해서 케찰코아틀을 공격하고, 용서없이 그 목숨을 빼앗았다.
그 전까지 보이던, 생명을 빼앗는 것에 대한 주저라곤 전혀 나타내지 않은 채.
최후의 최후에, 눈에서 흑적색으로 된… 마치 피와 같은 것을 흘리긴 했지만, 그 얼굴 자체는 평소와 다를 바가 없었다.


말할 것도 없다. 그를 그렇게 하게 만든 것은 자신이다.
자신이 스스로를 지키지 못했고 디아나를 지키지 못했다.
그것은 자신이 약했기 때문이다.


"이거 하나 든다고 어디까지 달라질 수 있을진 나도 모르겠지만."


'그 시절'의 호기 넘치던 그녀는, 브류나크에게조차 한방 먹여줬을 정도다. 지난번처럼 추한 꼴은 보이지 않을 것이다.
지난번처럼… 그 혼자서 적을 죽이고 울게 두지 않을 것이다.


"좋아. 그럼 준비는 끝났고."


지금은 내일을 위해서 쉬어두자.
그렇게 생각하고, 라이네스는 몸을 눕혔다.

 

 

 

그리고, 다음 날.
두 사람의 수인과 한체의 기계는, 마을을 나섰다.
세 사람의 첫번째 목적지는 다크 우드가 있는 '산' 영역이었다.


"… 그런데, 다크 우드라는 건 어떤 사람이에요?"
"'사람'이냐고 물으면 대답하기 곤란한데…'


숲을 가로질러가며 디아나가 질문했다.
가장 앞에서 라이네스, 그 뒤를 디아나와 기계가 따랐다. 이 중에서 가장 길을 잘 알고 있는 것이 라이네스였기에 그녀가 앞장서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고, 디아나의 경우엔 빨리 뛰는 것에 자신이 없었기 때문에 기계가 등에 엎은 채로 달리고 있었다.
처음 그렇게 했을 때 라이네스가 눈을 가늘게 뜨고 말없이 노려보긴 했지만, 이렇다할 말은 하지 않고 이동을 시작했다.


"다크 우드는 '주인' 중에서도 제일 이상한 '변종'이다. 뭐니뭐니해도 그 녀석의 근본은 다른 주인들과 달리 '식물'이니까. 식충식물… 아니, 식육식물이라고 할까. 광합성이나 땅에서 양분도 끌어내는 주제에 맹수들도 잡아먹고. 여하간 골치아픈 녀석이지."


리빙 포레스트라는 종족명칭 그대로, 마치 숲이 움직이는 듯한 나무괴수. 그것이 다크 우드였다.
식물이기 때문에 다른 동물에게 존재하는 '급소'라고 하는 것이 아예 없으며, 어떤 부분을 노려도 일정 이상의 데미지는 기대할 수 없다. 게다가 상처를 내도 금새 다른 나뭇가지를 만들어서 뒤덮어버리기 때문에, 혼자서 상대하기엔 버거운 존재. 거기에 사이즈까지도 버서커 다음으로 주인 중 2번째로 ​거​대​한​(​케​찰​코​아​틀​은​ 3번째) 몸을 지니고 있으니 더더욱 그렇다.


"뭐, 약점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지만."
"헤에?"
"원래 나무니까. 불을 싫어한다. 그것도 굉장히. 그래서 100년 전에 만났을 때는 부싯돌로 불 지르고 냅다 튀어서 살았지."


불을 싫어한다고 해도, 야생계에서는 다크 우드가 무적이나 다름없다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 애초에 '불'은 모든 종류의 야생 동물에게 있어서 두려움의 대상이며, 일반적인 야생 동물이라면 입에서 불을 뿜거나 하지 않는다.
실버백의 '무기'나 '지혜'도, 케찰코아틀의 '독'도, 버서커의 '괴력'도, 파프니르의 '턱'도, 운골리언트의 '곤충의 힘'마저도 일절 통하지 않는 괴수. 다른 주인들의 자랑거리를 모조리 무시해버리기에, 다크 우드는 브류나크 다음으로 강력한 주인이라고 평가되고 있었다.


"그래도 그 뒤에 브류나크와 만났을 때 듣기론, 나한테 당한 이후부턴 항상 몸을 물에 적시고 다닌다던데. 성가시게 됐지."
"… 그거, 엄청 안좋은데요?! 젖은 나무는 제 불로도 잘 안탄다구요!"
"뭐어뭐어, 꼭 싸우러 가는 건 아니니까."
"우리한테 싸울 마음이 없어도 저쪽이 싸움을 걸어올 가능성도 있지 않나요?"
"상당히 높지. 아무튼, 다크 우드도 호전적인데다 성격 나쁘고. 기분이 안좋을 땐 먹을 것도 아니면서 뭔가를 죽이기도 한다던데."
"최악이잖아요, 그거?!"


아무리 디아나가 이제와서 불평한다고 해도 행선지가 바뀔 일은 없다.


이렇게 한가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긴 했지만, 사실 '보통'으로 생각한다면 결코 한가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지금 세 사람의 주변에는 나무 위를 돌아다니는 맹수들과 아래 쪽에서 달려오는 맹수들에 공중에서 날고 있는 괴조들이 계속 뒤따라오며 공격을 퍼붓고 있었던 것이다.


​─​워​어​어​어​어​어​어​어​억​!​!​


실버백의 후손뻘인 빅풋. 이쪽은 실버백과는 달리 덩치도 3m 정도에 털도 흑갈색이었지만, 그 대신 나무를 굉장히 잘 탔다. 나무 줄기를 로프처럼 사용하고 나뭇가지를 점프대로 사용하여, 세 사람을 쫓아오고 있었다. 그것도 십여마리 정도의 '한 무리'가.


​─​우​키​키​키​키​키​키​키​키​!​!​


반면 이쪽에 있는 것들은 상당히 익숙한 얼굴이다. 기계가 처음 이 숲에 떨어졌을 때 악연을 맺었던 '악마의 원숭이'라고까지 불리는 키드 데빌들이다. 이미 배가 고파 눈이 뒤집혔는지, 라이네스와 디아나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공격을 해왔다.


​─​캬​아​아​아​아​아​아​아​악​!​!​
​─​쉬​익​쉬​익​쉬​이​이​이​익​!​!​


나무를 타는 속도와 능숙함이 원숭이를 훨씬 능가한다고 일컬어지는 플라잉 재규어. 한번 둘러싸이면 5초 안에 뼈만 남게 된다는 코크 스콜피온도 무리를 지어 몰려들고 있었다.


하늘을 올려다보자, 나뭇잎과 가지들, 그리고 그 위를 날아다니는 괴조들 때문에 하늘이 보이지 않았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서로를 잡아먹지 않고 있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라고 하기 보다, 이상했다.


"그들이 보기엔 우리가 작고 연약하고 무방비해보이기 때문… 이겠지요. 추측이지만."
"… 호오. 연약해 보이기 때문이라고?"


라이네스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단, 그것은 결코 일반적인 웃음이 아니라… 상당한 분노가 담긴, 웃음을 가장한 '다른 것'이었다.


"와, 왓?! 잠깐만요! 그렇게 갑자기!!"


디아나는 라이네스가 무슨 일을 하려고 하는지 눈치챘고, 곧바로 자신의 귀를 틀어막았다. 그 직후.

 


​─​W​O​O​O​O​O​O​O​O​O​O​O​O​O​O​O​O​O​O​!​!​

 


라이네스의 로어가 숲을 뒤흔들고.
주변을 어지럽게 돌아다니던 맹수들이, 한순간에 자취를 감추었다.
본래부터 실버백과도 대등하게 맞설 수 있던 그녀의 로어를 견딜 수 있는 건, 실버백 수준이나 혹은 그 이상의 힘을 가진 '주인'들 이외엔 없다.
텅텅 비어버린 주변을 보며, 라이네스는 코웃음을 쳤다.


"결국 이렇게 될거면서 귀찮게 굴다니."
"… 전부터 느꼈지만, 로어란 참 편리하군요."
"너도 노력하면 할 수 있을지 모른다. 열심히 연습해."


그건 무리입니다. 기계는 속으로 대답했다.
로어란 말하자면, 고대에 드래곤들이 사용했다는 '드래곤 피어'와 비슷한 것으로 '생명의 파동'을 뿜어내어, 주변의 '자신보다 약한 생명'을 압도하는 힘. 따라서 원래 생명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를 안드로이드인 자신이 사용할 수 있을 리 없다.


"왓! 저 앞에서 또 몰려오는데요!"


디아나가 손가락을 들어 앞쪽을 가리킨다.
─확실히 그녀의 말대로, 저 앞쪽에서 또다른 맹수들이 모여들어 무리를 짓고 있었다.


"… 정말 귀찮게 하는군."


라이네스는 진절머리를 쳤지만, 이 정도는 감수하는 수밖에 없었다.
뭐라고 해도 지금의 그녀들은, 이런 곳에서 힘을 낭비할 수 없었으니까.

 

 

 


하지만.
세 사람이 '산'을 향해, 다크 우드를 향해 가는 동안.
한발 먼저 그곳에 도착한 이들이 있었다.

 

댓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