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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와 짐승과 마을 이야기


16화



기계와 백호가 충돌한다.
어깨와 어깨가 부딪히고, 머리와 머리가 부딪히는.
문자 그대로, 서로를 향해 돌진하여 한발짝도 물러나지 않는 '정면충돌'. 단지 그것 뿐이다.


─단지 그것 뿐인데, 그 주변의 공기가 파열된다.


파열된 공기가 강풍으로 변하여 주변에 영향을 미친다.
언제부터인가 떨어져내리기 시작하던 빗방울들이, 그들의 주변에서만 한순간 '그쳐버린' 상태가 된다. 이 둘은 단지 몸통박치기만으로 그 정도의 충격파를 만들어낸 것이다.
두 사람이 딛고 있던 지면이,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함몰되어 크레이터로 변해버린다.


그러나 정작, 그것을 일으킨 두 사람은 단 한발짝도 물러나지 않고 있다.
어느 쪽도 '일반적인' 키메라 클론이나 '일반적인' 안드로이드의 규격을 까마득히 능가한 힘으로, 교착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연방의 모든 과학력을 집중시켜 AFP 입자를 병기로서 만들어 실용화시킨 블랙 크로스를 장비하고, "적 거점의 완전 소멸" "단기(單機)로 대군 살상" "전술 전투 지휘" "대(對) 거대괴수 결전" "적 사회 내부 잠입"등 지금까지 용도에 따라 무수한 종류로 분리되어 만들어져온 안드로이드들의 컨셉 중 5가지를 단 1기의 안드로이드에게 집결시켜놓은, 「최강의 안드로이드」.
그것이, A넘버즈의 「타입Z」였다.


다른 키메라 클론들과는 달리, 다른 모든 "초능력"을 포기하고 오직 "최고로 강하고, 최고로 빠른, 최고 전투력의 1체"라는 컨셉으로 전투력만을 극단적으로 추구한, 심플하기 그지없는 전투형의 성수. 그 결과로 만들어진 압도적인 신체 능력과 그 자신이 스스로의 의지로 갈고 닦아 향상시킨 기량이 합쳐져, '1인 1군단'이라고까지 일컬어지는 「최강의 키메라 클론」.
그것이, 4성수 최강의 「백호」였다.


연방 최강의 안드로이드.
제국 최강의 키메라 클론.
두 지상 세계의 최강이, 서로에게서 떨어졌다.


그리고 백호는 새로운 손톱을 만들어내고, 기계는 블랙 크로스를 꺼내 전개했다.


어째서, 지금 이렇게 교전 상황까지 오게 되었을까.
이유라면 여러가지가 있지만, 가장 큰 것으로 하나를 고르라면 백호가 기계를 보자마자 공격을 퍼부었다는 것을 꼽을 수 있다. 함께 온 두 사람은 현재 다른 성수들, 그리고 다크 우드를 상대하는 중이고.


「FATAL BLOW」


백호가 두 팔을 휘두르자, 청백색의 절단파들이 허공과 지면을 가르며 날아간다.
일반적인 물질이라면 설령 다이아몬드를 가져다놓는다고 해도 잘라버릴 기세로.
그것을, 재빨리 펼쳐낸 에너지 실드로 튕겨낸다. 튕겨내자마자 블랙 크로스를 반회전시켜 레이저 건을 발사, 백호는 다시 만들어낸 발톱으로 레이저 건을 쳐내버린다.


─하지만, 쳐낼 때 사용한 발톱 중 하나가 녹슬어버리듯이 새빨갛게 변하고는 이윽고 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이것도 저것도 죄다 AFP 무기인가. 성가시게 만드는군.]


키메라 클론이 몸에서 만들어내는 무기나, 그들이 사용하는 이능력 역시 FP 입자를 사용해서 이루어지는 것. 그것을 소멸시키는 힘을 가진 AFP 무기는 당연히 천적일 수밖에 없다.
백호로서는 별로 상관없는 이야기지만.


발톱을 거두고 주먹을 쥔 후 달려들어 날린다. 블랙 크로스를 다시 회전시켜 방패로서 그것을 막아낸다.
금속과 금속이 부딪히는 굉음이 울린 후, 기계는 블랙 크로스 채로 뒤로 밀려났다.
초능력을 중시하는 생체 갑각 생물 「키메라 클론」 중에서, 초능력이 없다는 것은 본래라면 폐기 처분 대상감이다. 아무리 높은 신체 능력을 지니고 있다고 해도, 백호 역시 태어난 직후에는 수많은 고초를 겪어야 했다.
하지만 백호는 그 약점을 자신의 기량과 노력으로 메웠다. 본래부터 가지고 있던 키메라 클론 제일의 육체를 손에 넣은 것만으로 만족하지 않고, 끊임없이 전투 기술을 익히고 몸을 단련하여 더더욱 잠재력을 끌어냈다.


지금 그가 가지고 있는 강함은, 다른 성수들이 지니고 있는 '선천적인 이능력'의 강함과는 다르다.
살이 찢어지고, 뼈가 부러지고, 그것이 채 낫기도 전에 다시 혹사하는.
순수하게, 한 마리의 전투생물로서 매일매일의 단련으로 쌓아올린 그 자신의 힘.


수많은 무기가 개발되면서 낡은 체계라 불리며 버려진 무술들을 철저하게 연구하고 익히고.
그것들을 완전히 습득하기 위해, 한도 끝도 없이 시간과 힘을 들였다.


그런 끊임없는 노력이야말로, 백호가 가지고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
그렇기에 그는 다른 성수들에게조차 절대적인 존경을 받는 '최강의 전사'가 될 수 있었다.


기계가 사용하는 AFP 무기는, 분명 초능력을 중시로 싸우는 키메라 클론이나 성수들에게는 커다란 위협이다.
그러나 반대로, 싸움에 있어서 초능력에 비중을 두지 않는 백호에게 있어서는 별 의미가 없다.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블랙 크로스 위를 주먹으로 두들긴다.
팔을 통해지는 중량감. 적어도 이 키메라, 물리력에 있어서는 자신보다 위다. 기계는 그렇게 느꼈다.


어차피, 정직하게 드잡이질을 할 생각은 처음부터 없었다.
좌우 허벅지의 장갑이 동시에 열리고, 그 안에 들어있던 무기가 튀어오른다.
블랙 크로스를 놔버리고, 두 자루의 플라즈마 소닉 블레이드를 집어들어 동시 작동. 그대로 백호를 향해 내리쳤다.


이것 역시 AFP 입자가 사용된 무기. 정직하게 받아냈다간 전신이 FP 입자로 구성되어있는 백호의 몸이 붕괴된다.
그래서, 피해냈다.


백호가 주먹을 날리던 도중에, 도저히 피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하고 최대의 스피드로 내려친 참격.
그런 것을 도저히 피할 수 없는 타이밍에 자세였음에도 불구하고 피해냈다.


"… 지금 건, 어떻게…?"
[어떻게고 자시고, 그냥 피했을 뿐이지만.]


살짝 스친 가슴 부분의 생체 갑주를 통째로 떼어내 바닥에 버린다.
버려진 갑주는 얼마 지나지 않아 새빨갛게 물들어 사라졌고, 백호의 흉부에는 새로운 갑주가 만들어져 자리잡았다.


[굳이 말하자면 '인간의 힘'이다. 너 같은 기계나, 타고난 이능에만 의존하는 초능력자라면 손에 넣지 못할 내 자랑거리 중 하나지.]


─아마도, 지금 그의 말은 사실일 것이다.
정신적인 면은 둘째치고, 육체적인 전투 기술에 있어서.
'노력으로 강해진다'라는 것은, 자신에겐 불가능한 이야기니까.


[저번에는 생각지도 못한 사고가 터져서 결판을 못냈지. 하지만… 이번에는 확실하게 때려눕혀주겠다.]
"…… 저번의 계속이라는 건가요."


한번 죽이지 못한 표적을 확실하게 제거한다.
그런 거라면 이해할 수 있지만, 굳이 장소를 바꿔 1 : 1로 몰고온 것은 이해할 수 없었다.
게다가, 백호에게 있어서는 다크 우드의 사냥이 더 중요할텐데.


[확실히 그런 감정을 가지는 건 암살자 실격이겠지. 이해를 바란 적은 없다.]


말했지만, 백호는 제국 최강의 키메라다.
그렇기에 어느 누구를 암살한다고 해도 피가 끓어오를 틈도 없이 속공으로 살해할 수 있었다. 영웅이라거나 최강이라거나 최고라거나, 그런 수식어가 따라붙는 자들조차 벌레처럼 압도적으로.
비록 여기에 와서 싸운 '주인'들은 꽤 오래 버텼지만, 결국 그의 손에 쓰러졌었다.
단순히 능력만 가지고는 사성수의 톱이 될 수 없다. 그에 못지 않은 실적까지도 함께 갖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지금 이 싸움은 시간을 너무 끌어버렸다.


지난번에도, 그리고 지금도.
너무 오래 끌어버려서, 피가 끓어버리고 말았다.
분명히 말하지만, 백호는 이런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암살자에게 있어서 필요한 건 냉정한 사고 능력과 실력 뿐. 살인이나 전투를 즐기는 감정같은 것은 필요없다.


그러나, 이미 끓어올라버린 피가 저절로 식을 리도 없다.


그렇기에 지난 2주간은, 백호에게 있어선 고문이나 다름없었다.
'주인'들조차 끝끝내 쓸어버린 자신을 상대로,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대등하게 싸워낸 유일한 상대.


[이번에야말로 결판을 내자, 연방의 「기계」.]

 

 

 


라이네스와 디아나는 지금, 다크 우드를 상대로 싸우고 있었다. 성수들이 아니라.
그러기는 커녕, 오히려 성수들도 힘을 더해 함께 다크 우드에 맞서고 있었다.


​[​하​아​아​아​아​아​앗​!​!​]​


「이레이저 랜스」


청룡이 새로 만들어낸 창을 앞으로 내지른다.
조금 전까지 역린검으로 사용한 에너지 블레이드와는 달리, 관통형의 에너지 스피어. 그 공격으로 인해 뚫린 구멍으로, 라이네스와 디아나가 들어갔다.


​"​─​─​─​─​─​─​─​─​"​


디아나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불과 바람의 노래.
바람은 라이네스의 몸을 감싸 더욱 빨라지게 하고, 불은 소용돌이치듯이 움직여 나뭇가지들을 태워버린 후 라이네스가 지나갈 수 있는 불길의 터널을 만들어냈다.
그것을 통해, 다크 우드가 만든 방어벽의 안쪽으로 들어간 라이네스는 차고 있던 검을 뽑아내는 것과 동시에, 날아오는 가지들을 잘라냈다. 틀림없이 바위 이상의 마치 보통의 풀잎처럼 깨끗하게 절단. 뾰족했던 끝부분이 잘려나가 공격력을 잃어버린 가지들을 연속으로 밟고 뛰어올라, 뒤에 이어진 공격들마저 피해내는 묘기까지 선보인다.


하지만 코어로 다가갈수록 다크 우드의 방어도 강해진다. 나뭇가지만이 아니라, 바닥에서 일어난 뿌리와 줄기들까지 합세하고 떨어지는 나뭇잎들조차 칼날로 변하여 그녀들을 공격한 것이다.


─그 모든 공격을, 주작의 불꽃이 태워버린다.


"어이!! 가까이 오지 말라니까!! 당신들 가까이 오면 어지럽다고!!"


주작이 근처에 오자마자 라이네스는 코를 틀어막고 물러났다. 얼굴이 붉어지고, 눈가에는 눈물마저 고였다.
하지만 반대로 주작은 화를 내며 소리쳤다.


[그럼 어쩌라고?! 이 좁아터진 길에서 안까워질 수 있겠냐고!!]
"아예 들어오질 말던가, 아니면 디아나처럼 밖에서 하던가!!"
[직접 보는 게 잘 된단 말야!!]


이것은 키메라 클론의 특성 때문에 생긴 사고였다.
라이네스의 비유를 빌리자면, "반은 뭔지 모를 생물(인간) 냄새, 나머지 반은 쇠 냄새와 약 냄새"같은 게 난다고. 그리고 그 '쇠 냄새와 약 냄새'가, 수인족 중에서도 후각이 뛰어난 늑대족, 그리고 그 늑대족의 한계에 다다랐다고 할만큼 코가 좋은 라이네스에게 알레르기에 가까운 반응을 보이게 만들었다.
디아나의 경우엔 보통 여우족보다 약간 뛰어난 정도라 기분이 나빠지는 정도라지만, 라이네스한테는 독이나 다름없었다.


[하여간 하나하나 시끄럽기만 하고! 보스가 원주민한텐 손대지 말란 명령만 안했어도…!]
"안했어도? 안했으면 어쩔거냐?!"
[뻔한 걸 뭘 물어!! 당장 저거랑 같이 잿더미로 만들었지!!]
"호오? 할 수 있을 것 같으냐, 새파란 계집애가!!"


옆에서 듣고 있으려니 한심하기 짝이 없는 대화가 오고 간다.
하지만, 입은 끊임없이 떠들고 있어도 그 몸들은, 쉴 틈도 없이 날아들어오는 다크 우드의 공격을 피하고 있었다.
위에서, 아래에서, 오른쪽에서, 왼쪽에서. 나무로 위장하고 있던 것이 느닷없이 공격해 들어온다. 라이네스는 아무런 문제도 없이 피해내고, 그녀만큼의 속도가 없는 주작은 불꽃을 일으켜 피하지 못할 것 같은 공격들을 불태웠다.


'이 늑대 여자…!'


말과는 달리, 주작은 상당히 놀라고 있는 중이었다.
그녀의 보스인 백호가 '늑대 수인'과 '여우 수인'에 대해서 "우수한 전사들"이라고 평가했을 땐 한 귀로 듣고 흘렸었다. 무엇보다 그녀로서는 백호가 다른 여자를 그렇게 평가했다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직접 보고 나서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저쪽 여우 여자의 능력도 그렇고─


'속도만이라면, 보스하고 맞먹을지도…!'


그러나 상대에게 놀란 것은 성수들만이 아니다. 라이네스와 디아나 또한, 성수들의 힘에 충분히 놀라고 있었으니까.
바깥에서는 디아나가 현무, 청룡과 함께 다크 우드의 신경을 분산시키며 입을 열었다.


"굉장하시네요, 여러분들."
[… 그렇게 말하는 당신도.]


푸른 색의 비늘과도 같은 생체 갑주로 전신을 감싼 여성이 대답했다. 이름은 청룡이라고 했던가.


[하지만, 괜찮은건가요? 우리들에게 협력해줘도.]
"우~웅… 저도 괜찮을 것 같진 않지만… 먼저 공격해온 건 저 나무니까요."


처음에는 분명, 두 사람과 성수들은 서로 대치하던 중이었다.
그러나 움직이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던 다크 우드가 느닷없이 움직여서는 다섯 사람을 공격하기 시작했고, 위기를 넘기기 위해서 각자가 대응을 하던 중 협력하는 형태가 되었다.
본래는 이 자들이 무슨 생각으로 '주인'을 사냥하고 다니는지 알아내려고 했지만…


'이 사람들 능력으로 보면 나랑 라이네스만으론 힘들 것 같고.'


자신이 한 사람, 라이네스가 한 사람. 그렇게 견제한다고 쳐도 한 사람이 남는다.
… 이거, 생각했던 것보다 힘들지도 모르겠다.

 

 

 


"곤란하네요. 정말로 곤란해요."


기계와 백호가 싸우고, 수인과 성수들이 힘을 합쳐 다크 우드와 싸우고 있다.
그리고, 그것을 '그림자' 속에서 지켜보고 있던 루퍼스가 신음소리를 흘렸다.


'모처럼 써먹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성가신 짓을 해준단 말이지요, 저 기계는. 모처럼 버그를 일으켜준 보람도 없이 방해하다니. … 엄밀히 따지면 쟤 잘못이 아니긴 한데.'


원래 계획대로라면, 연방에 대한 기억을 잃어버린 기계는 '이 땅'을 더욱 소중하게 여기게 되어 이쪽에 협력하거나 최소한 방해는 하지 않아야 한다는 전개가 되야 했다. 그렇게 되도록 해놨었고. 루퍼스에게 있어서 계산 착오는, 기계가 아니라 백호의 성격이었다. 평소에는 그렇게도 프로페셔널한 암살자로서의 모습을 하고 있으면서 중요할 때에 쓸데없이 끓어오르다니.


'… 뭐, 하지만 이건 이거대로 재밌으니까 괜찮다고 해둘까요.'


그러나 계획에 영향은 없다.
그로서는 백호와 기계, 둘 중 하나만 살아남으면 된다. 둘 중 하나만 살아서, 브류나크의 앞까지 도달하기만 하면 되니까.


'죽이는 건 일도 아니지만, 여기서 저 나무쪼가리한테 손댔다간 죽도 밥도 안될테고.'


루퍼스에게 있어 껄끄러운 것은 브류나크 한명. 그를 제외한 나머지 주인들은 안중에도 없다.
오직, 브류나크의 존재 때문에 지금까지 직접 손대지 않고 있는 것 뿐이다.
아마도, 그 빌어먹을 노룡(老龍)은 지금 이 순간에도 이곳을 관찰하고 있겠지. 덕분에 그림자에서 한발짝도 나가지 못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제 조금.
조금만 더 기다리면 된다.


"그러니까 열심히 힘내서 싸워주세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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