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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와 짐승과 마을 이야기


20화


 

 

기계가 움직인다.
몸을 낮추고, 전신의 부스터를 개방하고, 엔진을 가동시킨다.
그것만으로 기계는 연방 제일의 스피드를 손에 넣었다.


백호가 움직인다.
몸을 낮추고, 체내의 근육을 응축시켜, 단숨에 폭발시킨다.
그것만으로 백호는 제국 최강의 파워를 손에 넣었다.


제일과, 최강.
두 극이, 일점집중으로 공격해들어갔다.

 


─루퍼스의 발밑에서 일어난 '그림자'의 벽이, 기계와 짐승의 공격을 튕겨냈다.

 


"───────"
「파이어 스톰」


디아나의 노래 소리와 함께, 사방에서 수많은 번개의 구슬들이 만들어졌다.
위로 날아오른 주작이, 불꽃의 날개로 바뀐 양팔을 휘두르자 불꽃의 회오리가 생겨난다.


맹렬하게 소용돌이치는 불회오리가 번개의 구슬들을 싣고 날아간다.
함께 싸우는 것은 이번이 겨우 2번째, 그것도 원래는 동료도 아니었던 두 사람이 하는 것이라곤 믿기 어려울 정도로 호흡이 맞아떨어졌다.
불과 번개의 춤이 내뿜는 '빛'으로 인해, 루퍼스를 감싸고 있던 그림자 벽도 사라졌다. 설령 '주인'이라고 해도 태워 없애버릴 정도의 화염과 번개의 폭풍 앞에, 루퍼스는 맨몸으로 노출되었다.


오른손을 들어올려, 손을 편다.


─그대로 아래를 향해 내리그어, 폭풍을 둘로 쪼갰다.


둘로 갈라진 폭풍은 양쪽으로 흩어져 얼음 벽에 부딪혀 사라졌고, 얼음의 벽은 녹아서 흘러내리다가 기온으로 인해 다시 얼어붙었다.
그 폭풍의 뒤에 숨어서 돌진해오던 라이네스와 청룡이 루퍼스의 양쪽에서 검을 휘두르고 창을 내지른다.
검은 목을, 창은 심장을. 일격만으로 적의 목숨을 빼앗을 수 있는 급소를 노리며, 그녀들이 할 수 있는 최대의 힘과 최대의 스피드를 담고 루퍼스를 노렸다.


두 손을 뻗어, 검은 장갑으로 검과 창을 붙잡는다.
오른쪽에서 날아오는 검을 오른손으로 붙잡고 왼쪽으로 던진다.
왼쪽에서 뻗어오는 창을 왼손으로 붙잡고 오른쪽으로 던진다.


"윽?!"
[큭…!!]


마치, '괴수'에게 붙잡힌 것처럼 거짓말같은 괴력.
수백년간 단련된 수인의 힘으로도, FP 입자가 사용된 키메라 클론의 힘으로도 거역하지 못하고 끌려가 던져졌다.
아니… 지금의 이 힘은, 분명하게 말해서 '괴수'조차 능가하고 있었다.


​[​「​B​U​R​S​T​」​!​!​]​


루퍼스의 발밑이 폭발을 일으킨다. 폭발과 더불어, 바닥이 부서지면서 생긴 얼음의 파편들도 위로 튀어올라 루퍼스를 덮쳤다.
이번에도 역시, 아무런 상처없이 루퍼스는 폭발의 구름 속에서 위로 뛰어올라 모습을 드러낸다.


─브류나크의 경우엔 그걸 노리고 있었지만.


​[​「​E​R​A​S​E​R​」​!​!​]​


상대의 방어력이나 방어벽과는 관계없이 지정한 구역의 공간을 통째로 '소멸'시키는 고등 마법.
칠흑색의 블랙홀이 열리고, 루퍼스의 육체를 갈기갈기 찢어 먹어치치울 듯한 기세로 그를 감싼 후 사라진다.


─그, 사라진 자리에서 튀어나온 수십줄기의 그림자가 바닥에 모여, 다시 루퍼스의 모습으로 변했다.


"위험하잖습니까. 놀랬다구요, 지금 건."


그림자 속에서 새로운 모자를 꺼내, 다시 머리에 쓴다.
짧은 시간 동안 퍼부어진 그 많은 공격들을, 이 남자는 아무렇지도 않게 피해냈다.


"그래도 뭐, 천년 동안 놀고만 있었던 건 아닌 것 같네요. 이레이저를 노 캐스팅으로 사용하다니, 그런 건 예전에도 못했잖아요?"
[지금도 그때의 일은 후회하고 있다. 「대소멸」이 일어나기 전에 네놈의 존재를 눈치채고 죽여버렸더라면 「대소멸」 자체를 막아낼 수도 있었을텐데.]
"아, 그건 안된다고 생각하는데요. 당신보다 먼저 그 생각했던 루베나도 저한테 박살났던 판국에 당신이 뭘 할 수 있었겠습니까."


빛의 신들과의 싸움에서 패배해 지상으로 떨어졌다가, 그 몸을 언데드로 바꿔서 살아남은 마지막 어둠의 신.
그녀의 이름이 거론되자, 브류나크는 이를 갈았다.


[역시 네놈은 죽는 한이 있어도 그때 내 손으로 죽였어야 했다…!]
"하지만, 저는 지금 여기에 살아있습니다. 그게 현실이에요. 지나간 일을 아무리 후회해봤자 달라지는 건 없습니다."


「AFP 탄두탄-레이저 건 전탄 발사」


블랙크로스의 하단부가 전개되어 끝 부분에선 레이저가, 그 이외의 부분에선 소형의 미사일들이 발사되어 루퍼스에게로 떨어진다.
순간적으로 루퍼스의 그림자가 그를 감싸는 벽이 되어, 레이저와 미사일들을 막아낸다.
처음부터 통할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기에, 이걸로 좋다.


"지금의 이야기론, 당신과 그는 구면이라고 판단됩니다만."
[본의는 아니지만, 그렇다.]
"그렇다면 그를 쓰러트리기 위해서도 정보의 공개를 요구하겠습니다. ​수​락​하​시​겠​습​니​까​?​"​


미사일의 발사가 끝나고 그림자가 열릴 기미를 보이자, 다시 레이저 건을 쏜 후 슬레이어를 뽑아 발사했다.
그 덕분에 그림자의 벽은 열릴 듯 하다가도 다시 닫혔다.


그것을 바라보고 있던 브류나크는, 곧 입을 열기 시작했다.


[저것은 「7개의 폭력」, 그 제어 기관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성'이라고 해야할까. 실제적으로 지상을 멸망시킨 「폭력」은 '육체'에 해당하지.]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는데 말입니까."
[모습은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모양이더군. 나도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가 인간의 모습이고, 처음 만났을 때는 드래곤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 이해했습니다. 요컨대 저것과 「폭력」은 다체(多體)로 1심. 「대소멸」의 주범이라는 거군요."
[정답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아직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은 있다.
애초에 「7개의 폭력」은 어째서 이 세계를 멸망시키려고 했고, 지금 또다시 그것을 재개하려고 하는 것인지.


[반물질이라는 것에 대해서 알고 있나.]


기계는 고개를 끄덕였다.
통상적으로는 '입자가 모여서 물질을 만드는 것'처럼, '물질과 특성 성질이 반대인 반입자가 모여서 만들어진 것'을 의미한다.


['저것'과 「폭력」은, 이 세계의 반물질에 해당하는 존재다. 서로 닿으면 쌍방이 소멸될 뿐, 어느 한쪽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다른 한쪽을 없애버리는 수밖에 없는 존재. 과거에 이 세상이 탄생할 무렵부터 존재해온, "세계를 없애기 위해 태어난 반(反)세계". 그게 저놈과 「폭력」이다.]


누가 저런 것을 만들어냈는지는 모른다.
이 세상을 만든 '누군가'가 그를 만들어낸건지, 아니면 저절로 만들어진 건지.
확실한 것은 저것이 지금 이 세상에 존재하고, 이 세계에 대해서 무한한 적의를 지니고 있다는 것.


"뭐, 그런 거지요."


그림자의 벽을 해제하고, 루퍼스가 한걸음 걸어나왔다.


"태어날 때부터 세계에 배제되고, 이 세계를 없애도록 만들어졌습니다. 그 결과로 세계에 싸움을 걸었다가 깨져서 이 모양 이 꼴. 누가 작성한 시나리오인지는 몰라도 우습지 않나요?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세계를 멸망시키기 위해서 움직이는 저, 그리고 거기에 휘말려 아무 의미도 없이 사라져야 했던 무수한 생명. 이 세상을 만든 게 '신'이라면, 그 작자는 분명 엄청난 악취미일 거예요."


마치 춤을 추는 듯한 동작으로.
루퍼스는 몸을 움직이며, 그렇게 이야기했다.
이야기를 끝낼 때의 그는, 한손을 가슴의 앞에 놓고 허리를 숙이고 있었다.


─입은 웃고 있지만, 눈에서는 피눈물을 흘리고 있다.


거부할 수 없는 이 운명을 비웃는 것처럼.
그 얼굴은, 울지 못해 웃는 것처럼 보였다.

 

 


─만.

 

 


[「ICE BLAST」!!]


브류나크의 외침과 함께 얼음의 폭풍이 루퍼스를 덮쳤다.
루퍼스는 잔상을 남기며 몸을 뒤로 날려, 얼음 폭풍의 사정거리에서 벗어났다.


[웃기는 소릴. 네놈이 그렇게 신경줄 얇은 자일 리가 없을텐데. 애초에 지하에서 영면을 취하고 있던 「폭력」들을 불러깨워 세계에 싸움을 걸게 만든 건 네놈의 판단이었지 않나! 하려고만 하면 세계를 멸망시키려 하지 않고 살아가는 것도 가능했을 터다!!]
"그야 어쩔 수 없잖아요. 짜증났는걸요, 바퀴벌레처럼 대륙을 꽉꽉 메우고 있던 것들이. 싹 청소해버렸음 보기 좋겠다 싶어서 해버렸지요."


조금 전의 거짓으로 지은 표정에서 일변.
루퍼스는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볼을 부풀리며 말했다.


"이번에 「대소멸」을 일으키는 원인입니까. 뭐, 한번 싹 정리를 했는데도 다시 지상을 메우기 시작하는 벌레들과 한쪽 구석에 숨어서 야금야금 숫자를 불려가는 천것들이 마음에 안든다는 것도 있습니다만, 역시 가장 큰 이유는…"


잠시 고민한 끝에 나온 대답은, 이러했다.

 


"찜찜하잖아요. 일을 하다가 중간에 멈춘 걸 내버려두면. 인간도 그렇지 않습니까?"

 


그 말 한마디로, 이 자리에 있는 전원이 행동을 결정했다.


─눈앞에 있는 이 '괴물'을 쳐죽이기로.


가장 먼저 행동한 것은 브류나크였다.


[안드로이드!! 키메라!! 너희들의 동료를 지켜라!! ​「​S​H​I​E​L​D​」​!​]​


기계가 앞으로 나서 에너지 실드를 치고, 백호가 다른 이들을 가로막는다.
그 모든 것을 감싸는 반구형의 빛이 생겨나, 그들을 보호했다.
그러나 브류나크는 그 결과를 확인하기도 전에, 큰 소리로 외쳤다.

 

[「GRAND BIG BANG」!!]

 

푸른 빛의 섬광이 브류나크를 중심으로 퍼져나왔다.
그리고, 점차 원형으로 바뀌어, 급속도로 커졌다.

 


─푸른 빛과 어마어마한 굉음을 동반한 '대폭발'은, 오랜 세월 브류나크가 군림해온 얼음의 성을 깨끗이 날려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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