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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와 짐승과 마을 이야기


24화


 

[네놈이 아무리 발버둥쳐도오… 이 스펙 차이는 어떻게도 안된다고오오!!]


눈깜짝할 사이에 거리가 좁혀지고, 주먹이 날아온다.
그것에 반응할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외의 무엇도 아니었다. 루퍼스가 몸을 살짝 흔든 시점에서부터 방패를 들어올렸는데, 그것이 끝났을 때에는 이미 거리가 완전히 좁혀지고 루퍼스가 이쪽을 향해 주먹을 날리고 있었다.


급하게 전개된 에너지 실드의 위로, 루퍼스의 주먹이 떨어지고, 에너지 실드는 그 일격만으로 산산히 파괴됐다.


"……!!"


실드가 파괴되고 부서져가는 블랙 크로스와 함께 뒤로 날려간다.
지금까지 모든 공격을 막아내왔던 에너지 실드가, 펀치 한방에 파괴. 게다가 블랙크로스를 들고 있던 팔에까지 데미지가 왔다.


빠르게 판단하여, 블랙크로스를 버리고 손을 자유롭게 했다.
오른쪽 허벅지의 장갑이 열리고, 몬스터 슬레이어가 튀어나온다.
그것을 붙잡고 들어올려 루퍼스를 향해 겨누었다.


─방아쇠를 당기기도 전에, 루퍼스의 발이 손을 걷어차 몬스터 슬레이어를 부숴버린다.


─손이 공격당할 것을 포착하고, 왼쪽 장갑에서 꺼내려고 했던 플라즈마 소드조차 붙잡기도 전에 맞아서 부서진다.


[그러니까, 느리다고.]


깨닫기도 전에, 흉부에 장타(掌打) 일격.
날려가서 빙벽에 부딪혀 떨어졌다.
신체 파손률 27%. 그 한방만으로, 의식을 담당하는 회로가 나가버리지 않은 것만도 다행일 정도의 데미지를 받았다.


파워, 스피드, 반응속도, 전신 감각, 내구력, 방어력, 체구력, 지구력, 순간 스피드.
그 모든 면에서, 루퍼스는 '기계'를 아득히 웃돌고 있다.


기계는 모른다. 「자신보다 강한 상대와 싸워서 이기는 법」 같은 것은.
실제로 케찰코아틀과 싸웠을 때도, 블랙크로스를 꺼낼 수 있게 된 다음에야 쓰러트릴 수 있었다. 그 전의, 격투 능력밖에 없을 때는 사용할 수 있는 모든 능력과 전술을 동원했는데도 쓰러트릴 수 없었다.
지금까지 자신이 이길 수 있었던 것은 「자신보다 약한 상대」 뿐. 최종적으로 '기계'에게 있어, 「자신보다 강한 상대」와 싸우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런데도, 이기지 않으면 안된다.
기억을 잃기 전에도, 기억을 잃은 후에도.
단 한번도 해본 적 없는 '승산없는 싸움'.


[이제와서, 네놈이 ​뭘​하​겠​다​고​오​오​오​오​오​오​오​오​오​!​!​]​


그걸, 지금부터 보여주지.
루퍼스의 주먹이 허공을 갈랐다.

 


아무것도 맞추지 못한 채, '빈 허공'을 갈랐다.

 


[뭐…?!]


위로 뛰어올라 회전하며, 루퍼스의 뒤로 넘어간다.


[쓸데없는 짓거리를…!!]


루퍼스는 몸을 돌리는 것과 동시에 다리를 휘둘러, 지면으로 착지하려는 기계에게 날렸다.
아까의 주먹보다도 훨씬 강한 일격. 설령 브류나크라고 해도 적중됐다간 장갑을 파괴당할 것이다.


─그것마저도 피해내며, 뒤로 뛰어서 루퍼스의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그대로 회전하며 발차기.
그 일격이 루퍼스의 복부에 꽂히고, 처음으로 공격받은 루퍼스의 몸이 뒤로 밀려났다.


[어째서…?!]


루퍼스가 이를 갈자, 등 뒤의 아머가 움직여 다시 한번 포구로 변해 어깨 위에 올랐다.


「FORCE CANNON」


조금 전 브류나크에게 사용했을 때와는 달리, 위력이 아닌 연사형의 개틀링.
수많은 빔탄들이 순식간에 탄막을 만들어내며 '기계'를 공격했다. 그리고 그 틈에 섞여, 루퍼스도 함께 달려든다.

 


─하지만.

 


모든 탄환들이 빗나가고.
루퍼스의 주먹과 발마저도 '기계'를 맞추지 못하고.


오히려, '기계'의 주먹에 턱을 얻어맞고 뒤로 밀려났다.


[뭐야… 어째서?!]


파워도, 스피드도.
그 이외의 다른 능력들도.


말할 것도 없이, 자신 쪽이 훨씬 우위에 있다.
그럴, 터이다.


그런데도.
그런데도 어째서─


[왜 공격이 맞질 않는거야?! 왜 저 녀석 공격은 나한테 먹히는거고?!]


루퍼스의 절규를 들으며, '기계'는 천천히 몸을 뒤로 돌렸다.

 


─바로 조금전까지의 은빛 눈이 아닌.


─단 한번, 케찰코아틀과의 싸움에서 보여주었던 것.


─금색의 눈동자에, 핏빛 자위로 이루어진 불길하기 그지없는 눈.

 


하지만, 그때하고도 다른 것이 있다.
그때도 '기계'의 눈에서 나타났던, 굉장히 작은 '문자'와 '숫자'들이 다시 한번 나타났다.
그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속도로 떠올랐다가 사라지며, 이동한다.


그리고.
마치, 피눈물을 흘리는 것처럼.


─그 눈에서, 적갈색의 액체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오버 클럭(Over clock).
안드로이드라면 극 초기형을 제외하고서 어느 개체라도 가지고 있는 '기능'이다.


리미터를 해제하고, 강제적으로 '기능'과 '연산 속도'를 극대화시키는 것.


─지금은, 루퍼스의 공격에 대한 '반응 속도'와 '계산 속도'를 어거지로 끌어올린 상태다.


루퍼스의 공격을 확실하게 보고 인식할 수 있으며, AI의 지시를 신체 각부로 전달하여 처리하는 속도도 높였다. 그것으로 인해 루퍼스의 공격을 피하고, 지금까지 틈을 보이지 않은 루퍼스에게 공격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그 대가는 확실하게 치루고 있다.

 


[웃, 기지 ​마​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지나치게 머리에 열이 오른 루퍼스는 눈치채지 못했다.
'기계'의 눈에서 흘러내리는, 과열된 피하수체를.
그리고, 신체 여기저기에서 뿜어내고 있는 미약한 증기를.


말하자면 지금 '기계'가 하고 있는 것은 과도한 도핑과 다를 바 없다. 본래부터 그런 힘을 계속 사용하는 것이 상정되어있지 않은 그의 육체는 서서히 부서져가고 있다.


그렇지만, 풀 수는 없다.


이 오버 클럭은 지금의 '기계'가 루퍼스와 싸울 수 있는 유일한 수단. 다시 리미터를 거는 순간 당한다.
아무리 신체가 삐걱거리고 몸 속의 열이 차올라도, '기계'는 끊임없이 움직이고 움직였다.

 


본래 안드로이드는 스스로 리미터를 해제할 수 없게 되어있다. 아니, 그 이전에 리미터 자체가 해제되도록 만들어지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들의 리미터는 그들의 몸 자체가 너무 높은 스펙으로 망가지는 것을 막으려고 스펙을 조정하기 위해 달려있는 것이니까. 당연히 리미터를 해제하는 것은 숙련된 사이보그 기술자가 아니면 안되고, 안드로이드 자신의 판단이나 의지로는 해제할 수 없게 되어있다.


'그런 잠금같은 건 기억이 날아갈 때 함께 없어졌지만.'


원래부터, '1체로 최강'을 전제로 하여 만들어진 그는 다른 안드로이드들에 비해 오버 클럭의 폭이 넓다. 보통 안드로이드가 오버 클럭으로 인해 평소의 1.2배에 달하는 스펙을 낼 수 있다면, '기계'는 2배 이상을 낼 수 있다.
당연히 그의 몸은 그런 스펙을 견딜 수 있도록 만들어지지 않았고─그 이전에, 아직까지 연방의 기술력으로도 그 스펙에 버틸 수 있는 보디를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로 인한 붕괴를 막기 위해 리미터가 붙고 잠금 프로그램이 입력되었다.


하지만 그는 메모리에 데미지를 입어 '기억'을 잃었고, 그때 받은 데미지로 인해 잠금 프로그램에 대한 것까지도 함께 삭제되었다.
그렇기에 지금의 그는,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오버 클럭을 하고 하지 않고를 정할 수 있는 것이다.


─피한다. 피한다. 피한다. 피한다. 피한다. 피한다. 피한다.
─때린다. 때린다. 때린다. 때린다. 때린다. 때린다. 때린다.


무기는 조금 전, 루퍼스에게 전부 파괴당했다.
블랙크로스도, 지금은 자신의 손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공격은 오로지 격투 기술 뿐.


필요한 시점에서 가장 적절한 공격을, 가장 효과가 높은 장소에 때려박는다.
그것만이 반복되었음에도, 점차 루퍼스의 몸에는 데미지가 쌓여가기 시작했다.

 


​[​■​■​■​■​■​■​■​■​■​■​■​■​■​■​■​■​■​■​■​■​■​■​■​■​■​!​!​]​

 


루퍼스의 입에서, 더이상 말조차 되지 않는 괴성이 터져나온다.
공격의 스피드가 올라가고, 점차 방식이 거칠어져간다.


지금껏 '이성'이라는 울타리에 갇혀있던 '폭력'이, 마음껏 해방된다.
강해지면 강해질 수록, 빨라지면 빨라질수록, 그것을 계산해야하는 '기계'의 부담은 계속해서 커져간다.


그럼에도, 멈추지 않고 오버 클럭을 더한다.


몸 속의 회로들이 보내오는 경고 신호를 모조리 무시하면서.
'단순한 안드로이드'라면 할 리가 없는 일을, 계속해서 해낸다.


'리미터는 완전히 해제됐다… 하지만…!!'


루퍼스는 완전히 냉정을 잃어버리고, 닥치는대로 공격을 퍼붓고 있다.
주먹질, 발길질, 어깨의 캐논에서 빔을 발사. 주변의 물건을 들어 던지기도 한다.
그런 공격들이라면, 얼마든지 피해내고 반격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부족한 것이 있다.


'힘이… 필요해…!'


필요한 것은, 파워. 화력. 파괴력.


눈앞에 있는 이 '적'을.
'저 녀석'을, 완전히 날려버릴 '파괴력'이 부족했다.

 

 

 


[… 보스?!]


백호가 몸을 움직인다.
앞으로 쓰러진 몸을, 두 손으로 땅을 짚어서 일어서려 한다.
그 과정에서 팔의 근육이 끊어져 피가 뿜어져나왔지만, 개의치않았다.


[저대론 안돼…]
"… 뭐…?"


백호의 눈은, 흐릿하게 보이는 광경 속에서도 정확하게 '기계'와 루퍼스를 포착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기계'의 몸에 일어나고 있는 이변들을.


저 녀석이 무슨 짓을 했길래 루퍼스의 공격들을 모조리 피하고 반격까지 할 수 있는지까진 알지 못한다.
하지만, 그 수단이 몸에 엄청난 부담을 주는 것이라는 것만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이대로는, 루퍼스의 몸에 데미지가 쌓여가는 것보다도.
그보다 더욱 빠른 시간에, '기계' 자신의 몸을 부술 뿐이다.


이 싸움, 결코 오래 끌 수 없다. 오래 끌어선 안된다.


​[​크​으​으​으​으​으​윽​!​!​]​


고통을 참고, 몸을 완전히 일으켰다.
저 안드로이드는 기계 주제에 자신의 몸을 망가뜨려가면서까지 이기려 하고 있다.
그런 것을 보고 있으면서, 이 정도 고통에 무릎을 꿇는다는 것은 말도 안된다.


"정말이지… 하나같이 무리해대는군. 지상의 남자들은 다 이 모양인건가."


이렇게 말하는 자신도 남의 말을 할 수 있는 처지는 아니다.
쓴웃음을 지으면서, 라이네스도 몸을 일으켰다.
백년 동안 함께 해온 전우는 이미 부러진 상태. 그럼에도, 할 수 있는 일은 있을 것이다.


"디아나. 미안하지만… 한번 더 힘내줄 수 있을까."
"… 물론, 이죠… 이 정도는, 얼마든지…!"


평소에는 그렇게도 연약하고, 몸을 쓰는 일에 약했던 디아나조차 일어서려고 하고 있다.
라이네스는 그런 그녀를 붙잡고 일으켜 세워준다. 하지만 자신의 몸도 만신창이인 주제에 그런 짓을 했기에, 하마터면 두 사람이 함께 쓰러질 뻔했다.
그것을 붙잡아준 것은, 두 사람의 성수였다.


[… 이런 곳에서 넘어져있을 틈은 없습니다. 아직 힘이 남아있다면… 일어서야죠.]
[현무, 그런데서 자고 있지 말고 빨리 일어나. 자고 싶으면 마지막까지 일하고 자라구.]
​[​…​…​…​…​…​…​…​…​]​


바닥에 쓰러져있던 현무도 일어났다. 그의 두 팔은 팔을 감싸고 있던 장갑과 함께 처참한 꼴로 부서져있었지만, 그런데도 일어섰다.


─라이네스의 앞에, '무언가'가 떨어졌다.


"… 아."
[… 내 동족들의 파편이다. 네가 쓰던 검보단 튼튼하겠지.]


드래곤 칼리버의 한 조각.
우연인지 어떤지, 그 한조각은 정확히 검 한자루가 될만한 크기였고, 그 끝에는 천이 감겨져있었다.
그것을 라이네스의 앞에 떨어뜨린 브류나크도, 천천히 그 거체를 움직여 한발 두발 일어섰다.


[움직일 수 있나?]
[… 어떻게든.]


항상 몸에 걸어두는 마법 장벽이 없었더라면 죽었을지도 모른다. 루퍼스의 포격은, 드래곤 사이보그인 그조차 목숨의 위협을 느낄만큼 강력했다.


─우선은, 전원이 아직 움직일 수 있는 것 같다.


그러고보니 확실히, 세계가 멸망하는 것을 구경시켜주겠다고 했었던가. 그 때문에 죽이지 않고 살려둔 것 같다.
하지만, 그 빌어먹을 오만이 자신의 목을 죄게 될 줄은 몰랐겠지.


[주작, 청룡. 단 5초만으로 좋다. 녀석의 주의를 돌릴 수 있겠나?]
[그 경우에는, 물어보실 필요 없어요, 보스.]
[저희들에게는, '명령'을 내리시는 걸로 충분합니다.]


주작과 청룡의 응답에, 백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몸을 돌려, 라이네스를 바라보았다.


[늑대, 그리고 현무. 둘이서 딱 2번만 녀석의 공격을 막아줬으면 좋겠는데.]
[──────]
"당신의 명령에 따를 이유따윈 없지만… 그럴 필요가 있는 일이라면, 얼마든지."


현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라이네스도 승낙했다.
그러면 남은 것은─


[여우와 드래곤. 한 순간으로 좋다. 녀석의 움직임을 막아줘.]
"… 그것 자체는 못할 거 없지만…"
[무언가 생각이라도 있는건가?]


생각이라.
… 없는 것도 아니다.


백호는 몸을 돌려, '기계'와 루퍼스를 주시했다.


[저 '괴물'은 지금, 조금전까진 드러나지 않았던 약점을 완전히 드러냈다. 거기에 결정타를 먹일 수 있게 도와주려는 것 뿐이야.]

 

 

 


─'기계'와 '짐승'의 눈이 마주쳤다.
그것만으로, 상황이 급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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