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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우가x나노하 다이어리


원작 |

2화 운 다그바 제바 타카마치의 일기



운 다그바 제바. 그것이 내 이름이다.
이 세계로 떨어지기 전, 나는 그론기의 자랑스러운 왕이었다.
… 어이, 거기. 지금 '자기 종족 자기 손으로 말아먹고 자랑스럽긴 뭐가 자랑스럽냐'라고 말한 녀석. 조용히 입다물고 찌그러지기 바란다. 기준은 언제나 상대적인 거라서, 내가 자랑스러운 거라면 자랑스러운 거다.
게다가 우리 종족의 가치관 상, '약한 놈은 뒤져도 싸다'라는 종훈(種訓) 아래 약한 녀석들 150명 정도 쓸어버린 것일 뿐이기에, 나로서는 아무것도 거리낄 것이 없단 말씀.
그로 인해 50명 정도로 줄어버리긴 했지만, 남은 녀석들은 다들 그럭저럭 봐줄만한 녀석들(내 기준으로)이었기에 남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 50명마저도 싸우는 린트들(경찰)과─ 이 나의, 전 시공과 차원을 통틀어 단 하나뿐인 숙적 '쿠우가'에 의해 모조리 살해당했다.

아아, 쿠우가, 나의 라이벌이여. 내가 잠깐 눈이 멀었던 모양이야. 불완전했던 시절의 너에게 당할 정도로 약한 녀석들을 살려두는 우를 범하다니. 고 가돌 바에겐 나름대로 기대를 걸었는데 결국 그 녀석도 벌레 이하였던 것 같군. 더불어 나를 대신해 약해빠진 쓰레기들을 정리해준 것에 대해 감사한다. 기간이 9개월 씩이나 걸렸다는 건 조금 마이너스지만, 그 정도는 넘어가야겠지.

그러나 그건 그거, 이건 이거.
고마운 건 고마운거지만 싸움과 그것은 별개의 문제다.

「린트의 전사」쿠우가.
「그론기의 왕」운 다그바 제바.

우리 둘의 싸움은 운명을 넘어선 필연이며… 설령 이 우주를 만들어낸 자라고 해도 그것을 막을 수 없다.
우리들의 최종 결전은, 설산에서부터 시작된다.
지난번에 만났을 땐 너무나도 약했기 때문에, 죽여버릴까 하고 생각하기도 했지만… 역시 살려두길 잘했다.
나는─ 아니, 우리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전력'을 쏟아부어 싸웠다.

녀석은 사람들의 미소를 지키기 위해서.
나는 나 자신의 만족감을 누리기 위해서.

전신전령으로 싸우고 싸우고 싸우고 싸우고 싸운다.
육체가 부서지고, 피가 터져나오고, 영혼에 손상이 가도.
그 무대가 설산에서 허공으로, 우주로 바뀌어도.
우리들의 싸움은 멈추지 않았다.

전력을 다해 싸운다는게, 이토록 즐거운 일이었던가.

최강의 적과 최강의 싸움. 나에게 있어서 그것들은 최고의 쾌락, 최고의 향연.
같은 그론기들을 몰살시키고, 수많은 인간들을 참살해왔던 것은 오직 이 순간을 위해서.
…… 그런데.

 

 

어째서 울고 있는거냐, 너는.

 

 

즐겁지 않은건가?

[… 너는, 즐거운거냐.]

당연하잖아.
나는, 이렇게나 즐겁워.

[그런가… 미안하지만… 나는, 슬프다고.]

… 어째서?
즐겁지 않다면, 어째서 싸우는거지?

[나는, 모두의 미소를 지키기 위해서 싸우고 있어… 두번다시, 너 같은 녀석들 때문에 우는 사람이 나오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바보냐.
자기가 즐겁지 않은데, 무슨 의미가 있다는 거야.

[아아, 역시 넌 이해못하는 모양이네. 그러니까─ 나는, 절대로 너한테 안져. 너는 나한테 못이기는 거고.]

… 있을 수 없다. 이런 일은.
힘이라면 내가 훨씬 위고, 전투 경험도 내쪽이 몇백배는 많은데.
어째서, 내가 밀리고 있는거지?

───질까보냐.


「얼티메이트 킥」


나에게─ 아니, 우리들 '궁극의 어둠을 불러올 자'에게만 허락된 파괴의 힘.
이 싸움에서 살아남는 자가, '궁극의 어둠을 불러오는 자'가 된다.
녀석 역시도, 나와 똑같은 '궁극의 파괴'를 불러 일으킨다.


「얼티메이트 킥」


그래, 우리들의 결착을 내는데에는, 이거 이외의 것이 없겠지.
'궁극의 파괴'와 '궁극의 파괴'가 부딪히고, 그 섬광은 또 하나의 태양처럼 빛을 발했다.
지구에서 부딪혔으면 지구가 날아가버렸겠지만, 안타깝게도 이곳은 우주공간. 그런 피날레는 없었다.


─밀리고 있다. 이 나의 '궁극'이.


어째서?!

[말했을텐데… 나는, 너한테만큼은 절대로 안져.]

모르겠다.
남을 위해서, 타인의 미소같은 것을 지키기 위해서 싸우는 이 녀석이 어째서 이렇게까지 강한 거고, 어째서 이렇게까지 싸울 수 있는건지.
나로서는, 알 수 없다.

…… 그러고보니.

 

 

처음의 나는, 뭘 위해서 싸웠더라…?

 

 

 

 

 

…바.

─바.

─제바.

─이 인간이,


"빨리 일어나지 못해?!"
"으갹?!"

순간 천장하고 바닥이 뒤집혔다.
… 모처럼의 일요일인데 늦잠 좀 잤다고 침대를 뒤집어 엎을 건 없잖냐. 안그래도 늦게 자는 바람에 졸려 죽겠는데.
계속 투덜거리며 뜨고 싶지 않는 눈을 억지로 뜬 후 손으로 땅을 짚어 겨우겨우 몸을 일으키자, 익숙한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 일단 뭣 좀 입지?"
"그럴 생각인데, 일단 당신부터 확실하게 깨우고."
"일요일이잖아. 게으름 좀 피우면 어때서."
"애같은 소리하지 말고, 빨리 일어나. 이렇게 화창한데 비비오 데리고 놀러가지 않으면 손해라구."
"… 망할."

내가 비비오 소리에 약해진다는 걸 빨리도 파악했다.
이래서 눈치빠른 아내하고 같이 살기 힘들다고 하는건가.
이 녀석의 이름은 타카마치 나노하.
이 몸의 아내이자… 내 이름인 운 다그바 제바 뒤에 타카마치라는 성을 달게 만든 사람.
사실 따지자면 그론기의 왕비이라는 직함도 붙여야겠지만 이 세상이든 저 세상이든 남아있는 그론기는 나 하나뿐이니 그건 의미없다.

… 생각해보면, 이 녀석과도 온갖 우여곡절을 다 겪었지.

─10년 전.
나는 쿠우가와의 싸움에서 패배했다. 그것은 틀림없는 사실.
하지만, 얼티메이트 킥과 얼티메이트 킥의 충돌은 쿠우가도 나도 예상하지 못했던 결과를 불러왔다.
아니, 그야… 설마 우리를 세상에 탄생시킨 신이라는 작자도 '궁극의 파괴'끼리 부딪힐 거라곤 생각못했을테니 우리가 모르는거야 당연한걸지도 모르지만.
어쨌거나, 그 격돌은 우주의 뒤틀림을 불러왔고, 시공의 균열마저 만들어냈다.
쿠우가는 어떻게 그걸 막아낸 모양이지만, 내 경우엔 미처 상쇄시키지 못한 녀석의 얼티메이트 킥에 직격당한 상태라 저항조차 하지 못하고 균열에 빨려들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는 그 덕분에 목숨을 건졌고.

내가 추락한 곳은, 지상의 숲속.
그리고 나는… 이곳에서, '하얀 소녀'를 만났고… 나와 나노하의 이야기는 그때부터 시작된 것이다.
뭐, 그 이야기를 일일이 다하자면 밤이 새도 모자랄테고… 그래도 듣고 싶다는 분은 '마법소녀 리리컬 나노하''마법소녀 리리컬 나노하AS'를 보고 적당히 상상하기 바란다(임마).

생각해보면 나도 그때까진 아직 그론기로서의 본성이 남아있었다.
금발 꼬맹이라던가 강아지 여자, 하야테나 기사놈들. 지금이야 그럭저럭 친하게 지내고 있다고 해도… 만약 그 녀석들과 싸울 당시에 나노하가 브레이크를 걸지 않았다면 다 그때 거기서 죽었을 놈들이다.

아마도 나노하와 만난 그때부터… 점점 예전으로 돌아가고 있는 모양이다.
그 예전이란 건, 그론기가 되기 이전─ 린트와 가까운 종족이었을 당시의 나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 원인은 분명하다.

첫째로 쿠우가에 의해 벨트가 파괴되어, 그론기로서의 흉악성이 점차적으로 사라져간 것.
한번 사라진 흉악성은 벨트가 재생된 다음에도 쉽게 돌아오지 않았다.

그리고 두번째 이유가 바로 눈앞의 타카마치 나노하.
벨트가 일시적으로 파괴된 이후… 내가 흉악성을 잃어버리는데 가장 큰 역할을 한 사람이 바로 이 녀석.

결혼하자고 외치면서 스타라이트 브레이커. 거짓없이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 자신이 아닌 남의 공격」에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건 쿠우가 이래로 처음이다. 정말, 지금 생각해도 이 녀석 정말로 린트 맞는건가.
처음에 결혼했을 때만 해도 분명 '지루해지면 때려치우자'라고 생각했던만큼, 거의 장난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 녀석에게 콩깍지 한번 제대로 씌인 것 같단 말이지.

괴물인 내가, 인간 흉내나마 낼 수 있게 된 것도.
싸움 이외의 것에서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게 된 것도.
지금처럼 나름대로 '멀쩡하게' 살아갈 수 있는 것도.
전부 네가 나를 여기까지 바꿔준 덕분이야, 나노하.

"알았어, 알았다구. 일어나면 될 거 아냐."

나는 힘이 들어가지 않는 몸에 힘을 넣고, 바닥에서 일으켜(아까 침대 채로 뒤집어 졌으니까) 투덜거린다.
부스스한 꼴로 일어나, 바닥에 아무렇게나 던져놨던 셔츠와 바지를 찾아 입었다.

"잠깐만. 아직 씻지도 안했잖아. 목욕부터 해."
"네, 네, 네. 알겠습니다 마누라님."


신세 한번 처량하구나, 「궁극의 어둠을 불러올 자」여.
세상의 모든 린트와 그론기, 아니 「세계」조차 두려워하던 그 운 다그바 제바는 어디로 간거냐. 응?
만약 옛날의 내가 지금의 나를 봤다면 당장 찢어죽였을 거다. 장담한다. 옛날의 나는 그러고도 남을 놈이었으니까.

 

 

 

 


8월 10일.

나노하 자식, 이렇게까지 치사하게 나오다니.
지금 내 아내는 하나 뿐인 딸, 비비오를 데리고 놀러나갔다.
자고 있던 걸 침대를 뒤집어엎어 깨우길래 나는 나도 함께 가는 건 줄 알았다.
근데 아니었어. 나한테 귀찮은 일 다 떠넘기고 놀러나갈 줄이야.

"속였구나, 나노하!!"

나는 하늘을 보며 절규하다 아래쪽을 내려다보았다.
그나저나 이 자식들, 정말 못쓰겠구만.

"제바씨… 아직 안끝났나요…"

스바루 이하 꼬맹이 넷.
나노하가 "나 대신 그 애들 훈련 좀 부탁할게~☆"라고 했던 녀석들이다.
즉, 앞으로는 내가 이 녀석들의 훈련담당이라는 이야기.
근데 진짜, 어딜 어떻게 손을 봐야할지 모르겠다. 슬쩍 건드리기만 해도 날려가는 애들을 어떻게 하라고.
분명 나노하나 금발 꼬맹이는 이 나이 때 내 눈으로 봐도 꽤 봐줄만 했는데. 수준이 이렇게까지 차이가 날 줄은 몰랐다.

"니들 말야… 하다못해 내 공격 1번 정도는 받아내야 하지 않냐?"
"무리예요!! 제바씨 공격은 한방한방이 수십톤 단위인데!!"
"나노하랑 금발─ 그러니까 페이트는 너희 나이 때 막아냈는데. 그것도 몇번이나."
"비교 대상이 잘못됐어요!!"

으응, 확실히 나노하들은 그때조차 왠만한 그론기쯤 가지고 놀 정도로 강했으니까. 지금이야 '고'의 그론기들도 상대가 안될 정도고.
그에 비하면 지금의 이 녀석들은 '즈'나 '메'도 상대할 수 있을라나 걱정될 정도다.
아니, 도대체 말야. 인간체로 쓰는 천지마투 정도는 뚫어야 되는 거잖아.
그러고보니 나노하한테 가르쳐준 천지마투도 못뚫었다는 소릴 들은 것 같은데. … 그럼 내 걸 뚫는 건 더더욱 무리라는 이야기.
어떻게 하지…….

………… 좋아. 이왕 나노하가 나한테 맡긴 거, 어떻게 다루든 나노하가 나한테 불평할 리는 없다. 내가 곱게 가르칠거라곤 나노하도 생각안했을테고.
최소한, 넷이서 '고' 하나 정도는 상대할 수 있게 '만들어'주지.

"좋아, 꼬맹이들아. 의견절충해서, 이렇게 하자."
"… 네?"

스바루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지만, 내가 뭘 하는지 보면 알테니 대답하진 않았다.
지금의 나는, 내가 알고 있는 그론기들을 떠올리고 이미지하고 있었다.
한번 깨진 후 새로 부활한 내 아마담의 새로운 능력.

─내 몸이, 투구벌레의 그론기… 「고 가돌 바」의 모습으로 변한다.

"제바씨?!"
"모습이, 변했어… 저게, 그론기…"
"어, 하지만 지난번에 봤을 때 하곤 다른데."

일일이 대답해주기도 귀찮았기에, 침묵하기로 했다.
가돌 강력체의 형태를 하고, 장신구를 하나 뽑아 '검'으로 만든다.

[넷이서 이 모습의 나와 대등하게 싸울 수 있으면, 합격이다.]
"진짭니까!!"
"혹시나 해서 묻겠는데, 지금 그 모습이 원래보다 강하다던가?"
[그럴일은 절대 없다. … 랄까, 나는 커녕 나노하보다도 약간 아래 정도.]
"좋았어! 승산이 있을지도 몰라!"

금새 의기충전하는 애송이들.
… 나랑 싸우다보니 잊고 있구나, 애송이들아. 나노하가 얼마나 강한지. 그거보다 약간 아래면 너희가 이길 수 있을리가 없잖냐.
무엇보다도, 지금 이 녀석… 나 다음으로 강한 그론기걸랑. 지금 니들 실력같곤 절대 무리지.

그날.
고 가돌 바가 되어 힘조절을 한 덕분에, 평소랑 비교하면 마음놓고 두들길 수 있었다.
아아~ 스트레스 확 풀리네☆

 

 

8월 12일.

"나노하, 나왔─"

… 없다.
… 없어.
… 나노하가 없다. 더불어 비비오도.
젠장, 또 나만 빼놓고 놀러나간건가. 명색이 '남편'이고 '아빠'인데!!
홧김에 뭔가 때려부술만한 물건이 없을까 하고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문득 비디오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제목은… '타카마치 가(家)'. 연도로 봐선 나와 나노하가 만나고 얼마 안됐을 때다.
… 혹시, 말로만 듣던 영상일기라던가?
솔직히 그 당시의 나는 나노하와 함께 살지 않았기 때문에 그때의 나노하의 일상에 대해선 잘 모른다.

"…… 훗."

이런 걸 그냥 넘어갈 수야 없지.
TV를 틀고, 비디오를 넣는다.
아, 이제 나온─

…… 병원.
…… 학교.
…… 침실.
…… 침대.
…… 목욕탕.
…… 욕조.

 

"이, 빌어먹을 자식."

 

내 이 페릿 새끼를 잡아족치지 않으면 그날로 내 이름에서 '운'자랑 '제'자 빼버리리.
기다려라, 페릿. '진정한 파괴'라는 단어가 어떨 때 쓰이는 말인지 그 몸에다 똑똑히 새겨줄테다.

 

 

[인터루드]

 


유노 스크라이어로서는, 운이 나빴다고밖에 할 수 없다.
본인도 기억이 가물가물한 행위 때문에, 최악의 '파괴신'의 분노를 끄집어내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을 테니까.
아니, 따지고 보면 딱히 큰일도 아니었고, 그 나이대의 ​'​어​린​아​이​들​'​에​게​는​ 있을수도 있는 일.

 

─하지만, 콩깍지에 씌인채로 돌아간 눈의 파괴신에게는 그런 '일반론'같은 게 먹힐 리 없다.

 

이후, 유노 스크라이어는 한동안 '하얀색'을 보기만해도 공포에 떨어야 했다고.

 


[인터루드 아웃]

 

 

 

8월 15일.

오늘은 정말로 곤란한 일을 겪었다. 내 일생에 있어 이 정도로 곤란한 일이 과연 몇번이나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오늘치 훈련을 마치고 나오던 중, 스바루와 빨간 털 꼬맹이─에리오 몬디알이라는 이름이었던가─, 트윈테일 꼬맹이가 비장한 얼굴로 가까이 오더니 '제자로 받아주세요!'라고 외치고는 권술과 창술, 사격술을 가르쳐달랜다.
…… 식은 땀이 저절로 흐르더라.
일단 대답은 보류. 내일 대답해주겠다고 말하고는 잽싸게 그 자리를 빠져나와 나노하와 의논했더니 이 여편네는 글쎄

"해도 좋지 않아? 제자라니, 나도 꼭 가져보고 싶었던 건데."

잠깐만 기다려주세요, 사랑하는 아내님아.
내가 쓰는 권술, 창술, 사격술은 물론 그론기의 전투술이다.
그리고 이 그론기의 전투술은, '그론기의 운동능력'에 맞춰져 있기 때문에 인간의 몸과 힘으로 따라했다간 전신 복합 분쇄 골절이 일어난대도 이상할 거 하나도 없다.
거기에 더해, '내' 전투술은 그론기 중에서도 최강의 능력을 자랑하는 세상에 딱 하나 뿐인 '운 다그바 제바 전용 전투술'.
쉽게 말해, '고'의 그론기조차도 따라할 수 없는 전투술이다. 하물며 인간이 따라한다는 건 택도 없는 이야기.

… 이걸, 인간용으로 뜯어고치란 말이야? 이제와서?

"그런 귀찮은 짓거리, 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해?"
"어머나, 안하면? 또 별실 쓰고 싶어?"

윽.
이 자식, 요즘들어 뭐하면 각 방 쓰겠다고 협박하고 있다.
빌어먹을!! 부모가 아이를 사이에 두고 자는데 방해물이 이렇게 많다니!!

… 오늘 하루만에 다 할 수 있으려나, 이거.

 

 

8월 20일.

제자로 받는 대신 유예기간을 뒀다. 일주일 정도. 아무리 나라도 전투술 체계를 하룻밤만에 뜯어고치는 건 무리니까.다행히도 녀석들은 순순히 물러났다. 계속 빨리 가르쳐달라고 헛소리했으면 뭉개준 후 없던 일로 하려 했건만.
기간은 일주일이었지만, 5일만에 뜯어고치는데 성공. 인간… 아니, 그론기 승리라고 불러주길 바란다. 진짜 고 가돌 바가 지금의 나를 보면 "그론기들 살아있을 때 그렇게 성실했으면 좀 좋냐"라고 했겠지.
젠장맞을, 이렇게까지 머리아프게 만들어놓고 제대로 못배우면 가만안둘테다, 꼬맹이들.
어쨌거나, 녀석들에게서 얻어낸 기한은 일주일. 앞으로 이틀이나 남아있기에, 그 동안은 푹 쉴 수 있게 되었다.

………… 라고 생각했던 것이 오산이었다는 것은, 그 직후에 깨달았다.

"식사 다됐어요, 제바씨."
"……… 야, 금발 꼬맹이. 어째서 네가 여기에 있는거지?"
"나노하가 일 나가버렸으니까요. 제바씨는 자기가 밥을 해먹느니 그날 하루 굶는 걸 택하는 사람이잖아요?"

… 부정할 수 없다는 사실이 슬프다.

"제바씨 혼자라면 모를까, 비비오까지 끼니 거르게 되면 불쌍하니까요."
"… 아, 맞다."

그러고보니 비비오도 있었지.
비비오는 졸린 눈을 비비면서 금발이 차린 아침 식사를 먹고 있다.
…… 귀엽잖아, 제기랄.
내 딸이라서 하는 말이 아니라, 진짜로 귀엽다. 지난번의 그 오렌지 순살 사건 이래 내가 하는 말이라면 뭐든지 믿고. 하여간 이뻐 죽겠다니까. 장래에 어떤 그론기가 될지 정말 기대된다. 나노하도 좀 보고 배워야 되는데.
… 잠깐. 얜 그론기 아니지, 참. 확실히 내 교육방식에 문제가 있다는 건 나도 잘 알고 있다. 어떻게든 해야되는데, 서고와 서점엔 출입금지 당해버렸으니. 그외 육아 ​경​험​자​(​린​디​라​던​가​)​한​테​ 물어봐야겠지만, 기회가 쉽게 안나고.

"아, 너무하네요 제바씨. 지금 또 꼬맹이라고 불렀어요. 제대로 이름 불러주기로 했잖아요."
"알았어, 알았어. 확실하게 페이트라고 부르면 되는거지."

10년이나 알고 지냈음에도 불구하고 이래저래 귀찮은 녀석이다.
이 녀석의 이름은 페이트 T 하라오운. 원래는 테스타롯사라고 불렸던 모양이지만, 내 알 바 아니고.
예전 PT 사건 때 이후 나노하의 가장 친한 친우로 지내고 있으며, 시공관리국에서도 몇안되는 '초'엘리트다.
… 전쟁터에서 날뛸 때의 녀석과, 지금 여기서 앞치마 두르고 식사 차리고 있는 이 녀석은 전혀 매치가 안되지만.

"식사 다하고, 조금 후에 비비오 데리고 놀러가요. 제바씨도 오늘은 일 없죠?"
"남의 스케쥴을 왜 꿰고 있는거냐, 너."
"어라, 제가 미리 알아두는 건 나노하랑 제바씨 스케쥴 뿐인걸요."

그러니까 나노하는 그렇다쳐도 왜 내 스케쥴까지 알고 있는거냐고.

"일단, 걱정되는걸요. 이래뵈도 제바씨가 오기 전까지 제가 나노하랑 둘이서 비비오를 키웠는데… 제바씨가 과연 제대로 아빠 노릇 할 수 있을지. 당분간은 옆에서 감시할 생각이에요."
"… 됐어. 마음대로 해."

이 녀석도 10년 전의 꼬맹이가 아니니까, 자기 앞가림 정돈 알아서 하겠지.
입을 벌리고 한차례 하품을 한 후, 자리에 앉아 식사를 시작한다.

"… 맛있네."
"입에 맞는 것 같아서 다행이네요."
"나노하 녀석도 요리 잘하는 편이지만, 뭐랄까… 거창한 걸 좋아해서 말야."

그래. 그 녀석이 한번 부엌에 들어가면 나오는 요리는 식탁이 무너지지 않을까 불안해질 정도다.
보통 거기까지 하지 않아도 될텐데, 왜 그렇게까지 하는건지 원.


더 경악스러운 건 그걸 전부 한끼에 끝장낸다는 사실.


나와 비비오가 억지로 꾸역꾸역 절반 정도 먹어치울 동안, 그 녀석은 나머지 절반을 다 먹어치우고 식사 끝낸 후 외출 준비하고 있다.
시그넘이나 비타, 샤멀이라면 좋아. 걔네들은 아무리 먹어도 살찌기 힘든 몸이니까. 쟈피라야 근육 유지에 들어간다 치고.
근데 나노하, 넌 인간이잖아. 어떻게 그렇게 먹고도 살이 안찌는건가 불가사의라니까.

"가끔은 괜찮네. 양이 '보통'이라는 건."
"다음에 또 해드릴게요."
"호오, 폐끼치는 거 아냐?"
"어머나, 언제부터 그런거 신경썼어요?"
"안 썼지. 최초부터. 예의상 물어본 것 뿐이야."

비비오도 오랜만에 정상적인 양의 식사를 하고 있는 중이라 말은 안했지만 기쁜 것처럼 보였다.

"놀러 나가는 건 좋은데… 어디로?"
"그야, 비비오도 놀 수 있는 곳으로요."

 

 

페이트가 처음으로 안내한 곳은, 시공관리국 내의 유원지.
청룡열차를 타거나, 유령의 집에 들어가거나, 관람차를 타거나.
청룡열차는 내가 뛰는게 훨씬 빠르기 때문에 별 감흥없었지만, 유령의 집에선 비비오가 나를 꽉 붙들지 않았다면 다 때려부쉈을지도 모른다. 기척도 느낄 수 없는 기계들이 막 튀어나왔으니까. 관람차는 느긋하게 탈 수 있었으니까 마음에 들었지만.


다음으로 간 곳은 패밀리 레스토랑.
… 근데 말이야, 페이트. 비비오가 어린이 점심 세트라는 건 그렇다쳐도, 어째서 너하고 내가 커플용 식사를 하고 있는거지?
라고 물었더니 페이트 녀석이 상큼하게 웃으면서 하는 말.

"돈 걱정은 하지 마세요. 이거 전부 제가 내는 거니까."

아니, 그러니까 그런 문제가 아닌─
…… 뭐, 됐어.


세번째. 영화관. 물론 비비오가 있기 때문에 수위 높은 건 볼 수 없다.
솔직히 액션 영화는 보나마나지만(내가 그 '액션 영화'보다 더한 액션을 즉석에서 할 수 있기 때문에), 이래뵈도 꽤 즐기고 있다고. 예전부터 느꼈던 거지만, 정말 린트들은 재미있는 걸 많이 만들어냈다니까.
하지만 이번에 본 영화는 액션이 아니다. 어디까지나 어린이용 극장판 애니메이션.
… 그래도 설마, '라이온킹'을 아직도 영화관에서 상영할거라고는.


네번째. 동물원. 비비오가 무지 좋아했다.
호랑이, 코끼리, 기린에 원숭이같은 '보통의 동물'은 물론이고 지구 외 동물도 많이 끼여있어 나도 놀랐다.
… 하지만 말이지. 이 정도로 큰 동물원을 이 안에서 무슨 수로 유지하는 걸까나.


다섯번째. 케이크 전문점. 난 단 건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그다지 즐길 순 없었지만, 다른 둘이 좋아하니.
비비오가 케이크 좋아하는 건, 뭐 아직 어린애니까 그럭저럭 예상 범위 내였지만, 페이트까지 그럴 거라고는 예상못했다. 케이크양만 가지고 따지면 나노하와 맞먹을 정도라니.


일단 오늘의 시공관리국 탐방은 여기까지.
시계를 보니 벌써 오후 9시.
한번 돌아보고 놀랐다. 지난번 나노하와 데이트 비슷한 걸 한적은 있지만, 그땐 이렇게 가게가 다양하지 않았으니까.

"… 제바씨. 나노하랑 마지막으로 데이트한 게 언제예요?"
"1년 전. 그게 왜?"
"보통 1년이면 사람이 사는 곳이 변하기엔 충분해요."
"확실히, 인간에게 1년은 그다지 짧은 시간이 아니었지. 인간은 금방금방 커버리니까. 너도 그렇고."
"… 그렇죠. 당신한테는, 눈 깜짝할 순간일텐데.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워낙 많이 돌아다녔기에 피곤했던지 비비오는 내 등에 엎혀 잠이 들었다.
지금 나는 페이트보다 앞서서 걸어가고 있었기에, 그 녀석이 어떤 표정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다.

"꼭 그런 것만은 아냐."
"… 네?"
"10년쯤 전부터… 의미라면 잔뜩 생기고 있으니까."

10년 전. 나노하와 만난 그날부터.
내 시계는, 바쁘면서도 천천히 돌아가기 시작했다.
하루하루 사건사고 투성이고, 너무나 여러가지 일들이 일어나서 눈이 돌아갈 정도로 바빴다.
하지만… 그것이 즐거웠다. 그 '바쁘다'는 사실이.
지금까지 살아온 수만년의 세월과, 최근의 10년을 바꾸라고 하면 나는 주저없이 후자를 택하겠지.

"너는 재미없었어? 우리들과 함께 해온 10년이."
"… 아니오. 너무나도 즐겁고… 행복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그렇지? 그러니까, 의미라면 얼마든지 있어. 우리들의 시간에는."

일부러 '내 시간'이 아니라 '우리들의 시간'이라고 표현했다.
나와 나노하, 그리고 페이트와 다른 모든 녀석들을 포함한 말이었지만… 이 녀석이 눈치챘을라나. 못챘어도 상관없지만.

 

 

우리들은 집으로 돌아왔다. 집이라고는 해도 나와 나노하, 비비오의 집이지만.
잠이든 비비오를 침대에 내려놓고, 비비오의 방에서 나왔다.

"이걸로 오늘 하루도 그럭저럭 끝났나."

또 추억 한페이지가 늘었다.
그론기라서 어지간한 일은 절대 까먹지 않는다는게 고맙다고 생각되는 건 이럴 때 정도다.
─하지만, 페이트가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말했다.

"… 무슨 말이에요? 하루가 끝나다니."
"… 뭐?"
"아직 가고싶은 곳이 몇군데 남았는걸요."

아니아니, 그건 절대로 안되지.

"오늘은 여기까지로 하고, 내일 가자."
"… 내일, 이요?"

좋았어. 넘어왔다.
비비오만 남겨두고 나갔다가 나노하한테 걸리면 작살나는데 그럴 수야 없지.

"그래, 내일. 내일이라면 어디든지 가줄테니까."
"약속했죠? 설마 그론기의 왕이라는 사람이 약속을 깨진 않을테고."

페이트는 몇번이나 몇번이나 다짐을 받은 후에야 현관을 나섰다.

"… 데려다줄까? 집까지."
"그건 내일을 위해 미뤄두죠. 그럼, 내일 봐요."

페이트는 밝게 웃으면서 현관문을 닫고 나갔다.
… 뭔가 찜찜하긴 하지만─ 상관없겠지, 뭐.

 

 

[인터루드]

 


이 당시의 운 다그바 제바 타카마치는 알지 못했다.
이 약속이, 나중에 어떤 파장을 몰고 올 것인지.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자기 손으로 자기 무덤을 파고 묘비명까지 새겨놓은 짓을 했다는 것을.

 


[인터루드 아웃]

 

 

9월 1일.

한동안 일기를 못썼다. 예의 그 '비밀 임무'를 받았기 때문에.
응? 비밀 임무가 뭐든 내 힘이면 금방 끝내버렸을텐데 라고?
유감이지만 이번에는 아니다.

파견나간 세계가 '인페르시아'인지 뭔지 하는데였던데다 상대가 그 동네 용마투신이었기 때문에.

장담컨대, 쿠우가 이외의 상대 중에는 최고로 강했다.
꼬박 하루가 걸려서 겨우겨우 이긴 것까진 좋았는데, 그때 데미지가 컸던데다 막판에 엉뚱한 녀석한테 뒤통수 까이는 바람에.
닷새 동안이나 뻗어있었다고 하니 말 다했지. 나말고 다른 녀석이 갔으면 죽었을 거다.

… 잠깐, 전의 기억들을 점검해보자.

 

8월 21일

이 날은 하루종일 페이트 녀석에게 끌려다녔다. 낮에는 공원과 광장에서 대충 시간을 떼웠고, 저녁에는 꽤나 고급풍의 레스토랑. … 비싼 것 같던데 페이트 녀석, 지갑은 괜찮으려나. 나보다야 그 녀석이 부자지만.
이후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긴 했는데… '결혼한 남자와 그를 좋아하는 소녀'에 대한 러브로맨스물이라고 하는, 전혀 내 취향이 아닌 영화가 나오는 바람에 졸려 죽는 줄 알았다. 실제로 몇번이나 잠이 들었다가 깨기를 반복했고.
마지막으로 시공관리국 내 바에서 술 마시다 페이트 녀석이 쓰러진 후에 그 녀석을 데리고 집에 돌아왔다. 에이미한테는 이 녀석이 여기서 자고 간다고 전화 한번 하는 걸로 해결.
근데 술에 취했으면 곱게 잠이나 자지 뭘 그렇게 중얼거리는 건지, 원.

 


8월 22일

이 날부터, 본격적인 훈련(이라 쓰고 스트레스 해소라고 읽는다)이 시작되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지금 녀석들한텐 고 가돌 바도 수준이 너무 높았기에 '즈 고오마 그'까지 낮춰서 상대를 해줘야했다. 정말 성가시게 하는 꼬맹이들이다.
하지만 다행히도 배우는 속도는 그럭저럭 봐줄만 했다.
… 생각해보면, 이 녀석들도 린트 기준으로 보면 엄청나게 강한 축에 속한다. 나노하와 페이트, 그리고 그 관련자 녀석들이 터무니없을만큼 수준이 높을 뿐.
역시 눈높이를 낮추면 세상이 다르게 보인다니까. 앞으로는 너무 닥달하지 말아야겠다.

"… 이미 늦었어요오…"

밑에서 스멀스멀 기어올라오는 신음소리에 그쪽을 바라보았다.
… 좀비가 네 구.
조금 심했을라나.

 

8월 25일

쉬지도 못하게 하고 빡세게 굴린 보람이 있던가, 이 녀석들 꽤 강해졌다. 하나하나가 '즈'급은 넘어섰을 정도로.
… 하지만 아직 '고'급은 역부족이다. 실제로 고 가돌 바로 변신해서 다시 한번 시험했더니 1분도 못버티고 쓰러지더라.
나노하와 페이트가 써먹기 좋을만큼 만드려면, 아직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할 것 같다.

 

 


그리고 26일날 파견 나갔다 드레이크랑 싸우고 오늘까지 뻗어있었지.
눈 뜨자마자 제일 먼저 본 게 너무 울어서 눈물 자국이 그대로 남아있는 나노하의 얼굴이라는 건, 좋은건지 나쁜건지.
머리 쓰다듬기, 볼에 손등 갖다대기, 귓볼 만지작거리기, 눈물 핧아먹기. 정말로 내가 아는 기술(?)들을 총동원해서야 간신히 달래놨다.

"정말로, 위험할 것 같으면 다른 사람들 부르란 말야. 나라든가 페이트라든가."
"… 미안한데 말야, 나노하. 내가 위험할 정도면 너희 불러봐야 별 도움 안될텐데."
"윽, 그건 그렇지만─"
"게다가, 이번엔 마지막에 조금 방심한 것 뿐이야. 다음번엔 그런식으로 안당해."
"… 헤에, 조금 방심해서 죽을 뻔했으니까 거기서 더 나갔으면 죽었겠네."

… 반박할 말이 없다.

"다음부터 조심할게. 그럼 됐지?"
"아니, 부족해. 어디 나간다고 하면 어디 가는지 확실하게 말하고, 일을 할 때도 어떤 일인지 확실하게 말해줘. 위험한 일이면 나도 같이 가게."
"… 야, 아무리 그래도 그건─"
"안돼?"
"아니, 그렇다기 보단 현실적으로─"
"진짜로, 안되는거야?"

…… 안돼, 못이기겠다.

"알았어. 노력하겠습니다, 아내님."
"진짜지?"

순식간에 나노하의 얼굴에 화색이 돈다.
그걸 보고 기뻐하고 있는 나도 나라니까.
이 녀석이 웃고 있는 걸 보면 나도 웃고 싶어지고, 이 녀석의 표정이 나빠지면 내 기분까지 나빠진다.
─역시 나는, 이 녀석에게서 헤어나올 수 없는 건가.

 

 

과거.
눈에 보이는 모든 생명들을 살육하고.
손에 잡히는 모든 것들을 파괴하고.
그저, 그것밖에 할 줄 몰랐다.

그 당시의 '내'가, 지금의 나를 본다면 틀림없이 죽이려고 달려들겠지.
솔직히 나도 내가 여기까지 바뀔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고, 나름대로 놀라고 있기도 하다.

… 하지만, 그걸 알고 있다고 해도 말야.
진짜로 저녀석에게 빠져버린 이상, 져줄 수밖에 없잖아.

 

 

쿠우가, 나의 영원한 적이자─ 어찌보면 친구라고 할수도 있는 존재여.

그때의 너는, 쓰러지지 않은게 아냐.
쓰러지고 싶어도 쓰러질 수 없었던 거다.
지켜야할 것이, 짊어지고 있는 것이 너무나도 많았기 때문에.
도망쳐버리면 편해질 것을, 도망치지 않고 끝까지 정면에서 맞섰던 것은 네가 그만큼 강하다는 증거.

쿠우가, 아니.
고다이 유스케.
네가 아닌 다른 인간이 '쿠우가'였다면… 나를, 우리 그론기를 상대로 거기까지 싸워내지 못했을거야.
그런 의미에서, 너는 스스로를 자랑스럽게 여겨도 좋아. 너는 선대 '리크'와 함께 내가 인정한 나의 '적'이니까.

지금이라면.
아무리 힘으로 압도하고, 전술로 눌러도.
결코 쓰러지지 않고 계속 일어나 덤벼들던 너를, 조금쯤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

지금의 나에게는, 그때의 너처럼 '지켜야할 것'들이 생겼으니까.

 

 

불만있으면 얼마든지 덤비라고, 옛날의 나. 얼마든지 뭉개줄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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