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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우가x나노하 다이어리


원작 |

3화 타카마치 나노하의 일기


 

오래 전.
숲속에서, '하얀 사람'을 만났습니다.
머리끝에서부터 발끝에까지, 옷자락 하나 하나까지 모두 하얀 그 사람을.
그 사람의 몸에서 하얗지 않은 것은, 칠흑보다도 어두운 검은 눈동자… 그리고 그 사람의 몸에서 흘러내리는 피.

"…… 뭐야, 너는."

저와 그의 이야기는,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답니다.

 

 

[인터루드]

 

 

"트레이닝 룸, 누가 쓰고 있어? 들어가고 싶은데."

말없이 모니터를 가리킨다.
그곳에서는, 기동 6과─ 아니, 시공관리국 ​최​고​.​최​강​.​최​흉​이​라​고​ 일컬어지는 2인조가 한창 모의 전투를 벌이고 있다.

「공포의 하얀 악마들」「하얀 마신 ​콤​비​」​「​삼​쇄​삼​멸​(​분​쇄​파​쇄​옥​쇄​ 섬멸괴멸소멸) 이인조」 etc, etc.

수많은 이명을 지니고 있는 두 사람이지만, 그 이명이 의미하는 바는 똑같다.

'적으로서 만난 놈들은 무조건 뒤진다.'

가볍게 한숨을 쉬고, 모니터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저 둘이 붙었으니 오늘도 해 떨어질 때까진 트레이닝 룸 못들어가겠네."

 

 

"후우… 후우…"

역시 강하다. 운 다그바 제바는.
본래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인간체… 그것도 배리어 쟈켓조차 걸치지 않았는데도, 나노하는 압도당하고 있다.

"많이 늘었는데, 나노하. 이래뵈도 진심으로 하고 있는데 말야."

놀란 것은 제바쪽도 마찬가지. 자신은 운 다그바 제바. 최강의, 그리고 궁극의 그론기. 인간체라고는 해도, 그에게 맞설 수 있는 존재는 거의 없다. 설령, 그론기의 2인자(즉 자기 다음으로 강한 그론기) 고 가돌 바라고 해도.
그러나 눈앞의 린트 소녀는, '고'의 그론기조차 능가하고 있다. 아마담도 없이, '신의 힘'도 없이, 타고난 재능과 노력만으로.
소질은 있다고 생각했지만, 설마 이 정도일 거라고는.

'가르친 보람이 있다고 할까, 지켜봐온 보람이 있다고 할까.'

제바가 나름대로 감상에 빠져있는 사이, 나노하는 결의를 굳혔다.
기회는 지금 뿐, 페이트도 하야테, 비타, 시그넘들이 급한 일로 나간 이때 이외엔 없다.

"전력, 전개…"

레이징하트가 마력을 한점에 끌어모으기 시작한다.
나노하 최대, 최강의 일격.
그 위력은 제바도 익히 알고 있다. 맨몸으로 받으면 아무리 그라도 목숨이 위험할 정도. 뭐, 받아치면 문제없지만.
뭘로 받아쳐줄까 하다가 어메이징 마이티 킥으로 결정하고, 천천히 자세를 낮추기 시작한다.
─그때다. 나노하가 말을 걸어온 것은.

"제바씨…"
"응? 뭐?"
"그, 그러니까─"

드물게도 말을 더듬고 있다.

"… 뭐야. 하고 싶은 말 있으면 해."
"저하고……"
"… 슬슬 짜증날라 그러거든? 빨리 좀 말해줄래?"

…… 뭔가가, 울컥했다.
그래서, 해버렸다.

 


"저와, 결혼해주세요!!"


[Star Light Breaker]

 

… 나 지금.
무슨 소릴 들은걸까나?

"… 에?"

멍청하게 반문해버렸다.
게다가 그 덕분에 제바는 자신이 무슨 말을 들은건지 그 의미를 해석하느라 반응이 늦어버렸고, 어메이징 마이티 킥은 캔슬. 무방비나 다름없는 상태로, 자주색 빛의 해일에 휩쓸린다.

 

─태어나서, 두번째로.
「자신이 아닌 남의 공격」에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인터루드 아웃]

 

 

 

 


"그땐 위험했지."
"어, 그랬어? 난 당신이라면 괜찮을줄 알고 쓴건데."
"… 저기, 아내님아. 아무리 나라도 '그건' 위험하거든? 게다가 너, 비살상 모드도 해제했었잖아."
"얼떨결에."
"얼떨결에?! 너, 얼떨결에 날 죽일 생각이었어?!"
"안죽고 결혼했으니까 됐잖아."

제바는 뚜욱하고 굳어버렸습니다.
웃음이 세어나오네요. 그를 아는 모든 사람이 두려워하고, 웃으면서도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이 사람을 귀엽다고 생각하다니. 하지만 이 사람을 이렇게 할 수 있는 건 전 시공을 통틀어 저 밖에 없답니다.

그날 이후, 저희 두 사람은 결혼했고… 1년 2개월이 지난 오늘까지 잘 지내고 있습니다.
… 뭐, 그 중 1년은 제바의 장기 출장이라 함께 지내지 못했지만요. 실질적인 결혼 생활은 2개월. 아직 신혼초라고 해도 기간 상으로는 문제없습니다. 전혀.

결혼하기 전엔 몰랐─ 아니, 대강 예상은 했지만… 이 사람, 무지 귀엽습니다.
키가 저와 비슷해서 눈높이가 똑같… 아니, 내가 약간 더 큰가? 아무튼 그래서 끌어안으면 쏙 들어와요. 피부도 부드럽고. 하지만 이 사람, 체온이 상당히 들쭉날쭉한게, 여름엔 얼음장처럼 차가운데 겨울에는 굉장히 따뜻합니다. 아마 같은 침대를 쓰는 저를 위해서 일부러 조절해주는 거라고 생각해요.
백색의 긴 머리카락(주의. 은발이 아니에요. 은발과 백발은 구분해주세요)은 너무 가늘고 매끄러워서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바람에 가지고 노는 재미는 없지만 관찰하는 재미는 있답니다. 지금의 헤어스타일은 제바가 자기 손으로 대강 로우 포니테일로 꼬아버리는 식. 보는 사람으로선 '이렇게 멋진 머리카락을 막 다루다니!!'라는 말이 저절로 튀어나오지만, 어쩔 수 없죠. 지난번에 손질해주려다 손가락을 베이는 바람에 관두기도 했고(세상에, 머리카락에 베일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어요. 정말 전신이 무기라니까).
그리고 얼굴. … 그래요. 나보다 예뻐요. 인정할게요. 정말 반칙입니다. 아무리 인간이 아니라지만 10년 전부터 계속 이런 얼굴을 유지하다니. 어렸을 땐 몰랐는데, 크니까 알기 싫어도 알게 되더군요. 같이 나가면 저보다 제바가 시선 더 받는다는 사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아내보다 예쁜 남편이라니.
하지만 무엇보다도 눈에 띄는 것은 눈동자입니다. 머리카락 한올부터 손끝, 발끝까지 눈처럼 하얀 그 사람의 몸 중에서, 딱 한군데 색이 틀린 부분.

─단지 노려보는 것만으로,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불길에 휩싸이게 만들고, 모든 것을 어둠으로 뒤덮어버리며, 기상조차도 자신의 의지대로 바꿔버릴 수 있는 흑빛 눈동자.

그를, '파괴신'으로밖엔 모르는 사람들 전부가 두려워하는 눈동자.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그 눈동자에는 저 밖에 비치지 않습니다.

"뭐야, 그 소름끼치는 표정은."
"… 아, 정말! '귀여운 남편을 바라보는 사랑스러운 아내의 얼굴'이 어떻게 그렇게 해석되는건데?!"

… 뭐, 이래저래 시끄럽지만 잘 살고 있어요, 우리들.

 

 

 

8월 7일.

"낙승이군."

생물이 절멸되고, 그 자리에 기계들이 들어선 황폐한 세계.
그러나 안그래도 황폐한 세계를 더 황폐하게 만든 사람이 여기에 있습니다.
덤벼오는 기계생물들을 모조리 태우고 날려버린 제바, 즉 저의 남편입니다만.
… 아니, 잠깐만.

"타이탄 소드까지 꺼낸거야?"
"아, 마지막에 기계룡 하나가 덤벼서. 그건 꽤 쓸만하더라. 너나 금발 꼬맹이보단 못하지만."

제가 지금까지 봐온 제바의 싸움은, 대부분 단순히 상대를 노려보는 것만으로도 끝나버립니다. 그 이외의 행동은 할 필요도 없이.
그것만으로도 상대는 수천~수만도의 불길에 휩싸이던가, 수백줄기의 번개에 맞는다던가, 자연재해에 필적하는 공격을 받게 되죠.
그걸 견뎌내거나 피할 수 있는 사람에게만 제바는 검이나 창, 혹은 보우건을 꺼냅니다(물론 지난번 비비오가 납치당했을 때라던가 스바루들 훈련시킬 때는 예외 중의 예외에 속하는 경우였고).
하지만 누가 뭐라고 해도 제바가 가장 무서울 때는 맨손으로 싸울 때죠, 네. 그걸 알고 있는 건 직접 보거나 당해본 저와 페이트짱, 시그넘씨와 비타짱. 이 네 사람 뿐입니다.
무기를 들 때보다 맨주먹이 더 세다니, 말도 안된다고 생각하시나요? 하지만 사실입니다.
즉, 제바의 전투 성향은

1. 눈으로 봐서 태우거나 번개를 때린다.
2. 그걸 버티면 무기를 꺼낸다.
3. 무기를 써도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으면 맨주먹.

이 세 가지. 물론 지금까지 3번까지 가게 만든 건 아까 말했다시피 네 명 뿐이지만요.
… 격전이었습니다. 대격전이었어요.
시그넘씨의 슈트름 팔켄을 코앞까지 날아오게 내버려뒀다가 잡아버린다던가 비타짱의 기간트 슐라크를 주먹으로 쳐낸다던가, 페이트짱의 바르디슈 잔버을 이빨로 받아낸다던가 엑셀리온 버스터를 손바닥으로 막아낸다던가. 다른 사람들이 들으면 절대 믿지 않을 일들을 태연하게 해냈죠.
… 뭐, 그 대가로 손이 뜯겨져 날아가버리고 주먹이 으깨진데다가 입 주위와 혀가 찢어지고 손바닥이 다 타버리는 등 유혈 사태가 벌어졌지만요.

"하지만 제바… 재미없지 않아? 자기보다 약한 상대하고 싸운다는 건."

분명히 예전엔 '어떤 사람'과 최고.최대의 격전을 치룬 적이 있다고 했습니다.
제바가 얼마나 강한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저희들로서는, 그 '어떤 사람'에 대한 것 역시 상상할 수 없었습니다.
그도 그럴게, 저 사람과 정면으로 주먹을 맞댈 수 있는 사람이 있을 거라곤 생각도 못했으니까요.
하지만 그런 사람과 싸웠다고 하면 왠만한 상대는 눈에도 안들어올텐데.
(저나 페이트짱들은 아슬아슬하게 통과점이라고 치고)

"헤에, 재미없는 농담을 하는구나, 나노하는."

─가끔.
제바는 이런 식으로, 전신이 오싹해지는 웃음을 지을 때가 있습니다.

"확실히 내가 제일 좋아하는건 그거 맞아. 나와 동등… 혹은 그 이상의 힘을 가진 녀석과 죽도록 치고받고 싸우는 거. 하지만…"

발치에 있는 기계덩어리를 걷어차며, 말을 잇는 제바.

"이렇게, 자기가 강하다고 '착각'하는 벌레들을 일방적으로 밟는 것도 싫어하진 않거든♪"

… 아아, 그랬습니다.
제 남편은, 이런 사람이었습니다.

"이, 바보같은 싸움 닭이!!"
"으갹?!"

있는 힘껏 레이징하트를 휘둘러, 뒤통수를 때려줍니다.

"무슨 짓이야?!"
"애 앞에서 그딴 소릴 하니까 물든 거 아냐!! 지난번 외출했을 때 오렌지 사건 이야기(정확히는 '그때 너무 심하게 밟은 거 아닌가'라는 자책감) 나오니까 비비오가 나한테 뭐랬는 줄 알아?"
"… 뭐랬는데?"
"'괜찮아요, 엄마. 적이라고 판명된 자식들은 인정사정 봐주지 말고 구족을 밟아놔야 나중에 잡초처럼 또 나타나지 않는단다라고 아빠가 ​가​르​쳐​줬​으​니​까​요​.​'​라​던​데​.​ 어떻게 생각해?"
"과연 내 딸. 내 가르침을 훌륭하게 기억하고 있잖아!"

… 제 머리속에서 이성이라고 하는 분이 감성이라고 하는 분에게 오라오라로 쳐죽여진 것은 제 잘못 아니에요.

 

 

8월 10일.

"흥, 어디 한번 혼자 열심히 일해보시지."

저는 지금 비비오를 데리고 놀러나왔습니다. 교관일은 전부 제바에게 떠넘기고.
이제부터라도 비비오에게 제대로된 교육을 시키지 않으면 안되요. 그러기 위해서, 육아 관련 책을 구하기 위해 나왔습니다.
하지만 모처럼의 휴가니까 비비오와 함께 모녀끼리 놀러다니는 것도 나쁘지 않죠.

"자, 비비오. 이건 엄마가 주는 선물."

비비오가 들기엔 조금 큰 곰인형을 넘겨줍니다. 그거 들고 아장아장 걷는 거 보고싶다고 생각하진 않았어요(…).
그런데.

"… 그래서, 엄마는? 뭘 갖고 싶으신데요?"
"…………… 에?"

지금 무슨 소릴?

"아빠가 그랬어요. 세상은 기브 앤 테이크가 기본. 그러니까 뭔가를 공짜로 주는 사람은 없으니까 조심하라던데요."

…………
…………
…………
애 교육 좀 제대로 해보려고 했더니.
남편이라는 자식이 끝까지 발목 붙들고 늘어지는군요. 돌아가서 이 바보를 어떻게든 해야겠어요.

"아, 엄마. 저기 페이트 엄마 있어."

비비오가 가리키는 대로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는 저의 오랜 친구인 페이트짱이 여기저기를 둘러보며 걸어오고 있었습니다.

"아, 페이트짱!"

… 뭔가 이상합니다.
이쪽에서 손을 흔들자, 화들짝 놀라는게.
감이라고 할까요, 엄청나게 수상해요.

"아, 아아… 나노하… 비비오도 있네. 오랜만이야."
"페이트짱은 여기 무슨 일로 온거야?"
"조금, 살 게 있어서."
"뭘 살건데? 같이 고를까?"
"아니, 그─ 개인적인 거라."

더더욱 수상해집니다.
이렇게 되면 철저히 파헤치고 싶어지는 것이 사람의 심리죠, 네.

"개인적인 물건이라… 페이트짱이 쓸거야?"
"아니, 내가 아니라…"
"그럼 크로노? 에이미?"
"그게 아니라, 제바씨한테 선물로──"

여전히 이런 유도 질문에 약하구나, 페이트는.
…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페이트짱…"

설마, 아직도─

"으응, 아니야. 그냥 선물. 걱정하지마. 그 사람은 나노하랑 결혼했잖아."

믿을 수 있을까보냐.
눈빛이 평소의 페이트짱이 아닙니다. 굳이 표현하자면 오야시로 버전 레나씨나 오니화 미온씨 정도일까요.
아, 물론 눈빛만 그렇다는 겁니다. 그 사람들처럼 얼굴 자체가 변하진 않았어요.
그러나 자고로 이런 눈을 한 사람, 특히 여자는 사고를 쳐도 특대형 사고만 골라치는 법. 방심할 수 없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비비오를 사이에 두고.
무언가가 엉클어진 듯한 느낌을 남겨둔 채로, 쇼핑은 그렇게 끝났습니다.

 

 

8월 11일.

훈련을 시켰을 땐 의욕없어 보였지만, 그래도 막상 시작하니 의지를 불태우는 제바.
그리고 그런 제바의 호령하에 이리 구르고 저리 구르는 스바루 이하 신입들.
아아, 정말 이 사람은 사람 굴리는데 재주가 뛰어나요. 두들겨패도 딱 '움직일 수 있을 만큼만' 체력을 남겨두는 기술이 환상적이더군요. 저도 나중에 따로 배워볼까요.
훈련이 끝나고, 저는 제바를 마중하러 나갔습니다.

"제─"

─저보다 한발 먼저.
제바와 이야기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끝나자마자 미안하지만, 훈련 상대가 되주지 않겠나?"
"아, 나도나도. 제바랑 훈련하는 거 오랜만이잖아."
"상관은 없지만… 너희들 상대라면 나도 봐주기 힘들다구. 맨손으로 간다?"
"바라던 바다."
"괜찮아. 그때부터 확실하게 단련해왔으니까."

… 신이시여.
제바가 등을 돌린 틈을 타 얼굴을 붉히고 조용히 나이스를 외치는 저 두 처자가 정녕 그 볼켄리터의 시그넘씨와 비타짱이란 말입니까.

"아, 그리고… 혹시 이후에 예정있나?"
"…… 저 신입들 교정 좀 해주면 그 다음부턴 이렇다할 일 없는데."
"그럼 나중에─"

─우직.

[Master, Master!]

미안 레이징 하트. 조금 금이 가버렸네. 하지만 참아주렴.
제바와 내가 결혼한지가 언젠데, 페이트짱도 그렇고 이제와서 저 따위로 뒤통수를 치다니.
이 자식들, 어떻게든 하지 않으면─

 

 

8월 12일.

어제는 하루 종일 기분이 나빴습니다.
결혼한 후엔 다 떨어져나간 줄 알았던 것들이 다시 들러붙기 시작했으니까요.

─이것들을, 어떻게 해야 떨어뜨릴 수 있을까요.

그것을 알아보기 위해, 가벼운 실험을 했습니다.

 

 

"카라미티 타이탄, 블래스터 페가수스, 스플래시 드래곤, 어메이징 마이티킥."
"에, 에, 에?"
"어떤 걸로 쳐맞고 싶냐."
"어째서 갑자기?!"
"이유는 됐고. 그럼 내 마음대로 간다? 넌 특별히 맨주먹으로─"

 

 

정말로 좋은 남편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옛날 비디오 하나 올려놓은 걸로 이렇게까지 생각대로 움직여주다니. 유노군에게는 바닷가 모래사장의 모래알 한톨만큼 미안합니다만, 이걸로 실험은 성공.
하지만 이걸로는 충분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제바가 페이트짱들을 대하는 것과 유노를 대하는 것은 하늘과 땅 이상이니까요. 유노군을 박살냈다고 페이트짱이나 시그넘씨, 비타짱까지 그렇게 한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일단 체크체크.
이 문제에 대해선 누구하고도 의논할 수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의견대상은 하야테입니다만… 지금 상황에선 하야테까지 적일 확률이 매우 높아요. 제가 제바와 결혼하기 전까지만 해도 엄청나게 달라붙었으니까.
크로노군이나 유노군은 애초에 논외. 에이미는 별 도움안될 것 같고.

결국, 인생은 어차피 혼자라는 겁니다(…).

방법을 찾고 찾고 찾고 찾고 찾습니다. 일단 레이징하트로 대화 나누기. 물론 각개격파입니다. 아무리 저라도 4:1은 무리니까.
… 근데 1:1이라도 만만한 사람이 없네요. 일단 이 작전은 힘이 너무 소모되기 때문에 보류.
대화로 결착낼 수 있다면 제일 좋겠지만… 불자와 륜자로 이루어진 단어를 목표로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대화가 먹힐 리가 만무하고.
아아, 남편 하나 있다는게 이렇게도 골치아플 거라고는 생각못했어요 정말로.

 

 

8월 15일.

몇일에 걸쳐 고민하고도 답이 나오질 않아 기분은 더더욱 다운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남편의 고민을 들어주어야 하는 것이 아내의 도리지요.
게다가 이번엔 모처럼 제바쏙에서 의논을 걸어준 겁니다. 거절할 수야 있나요.

"그래서 결론은… 스바루들이 당신한테 싸우는 법을 가르쳐달라고 했다, 이거?"
"요약 잘하네. 그거야."

… 잠깐만.
제바가 훈련을 ​시​킨​다​->​스​바​루​들​이​ ​강​해​진​다​->​페​이​트​짱​들​에​ 대한 방패막이로.
…… 순식간에 플랜이 세워졌습니다.

"해도 좋지 않아? 제자라니, 나도 꼭 가져보고 싶었던 건데."

이건 반쯤 진심입니다. 정말로 제자 하나 정돈 갖고 싶어요.
하지만 제바는 여전히 곤란해하는 얼굴. 말인즉, '자기가 쓰는 전투술은 오로지 자신을 기준으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인간이 쓰다간 뼈가 박살난다. 걔네들한테 가르치려면 처음부터 다 뜯어고치지 않으면 안되는데, 그게 귀찮다'고 하는군요.
어쩔 수 없네요. 비장의 무기를 꺼내드는 수밖에.

"어머나, 하기 싫어? 그럼 또 따로 자야겠네."

이거 한마디면 제바는 침몰입니다.
아, 지금 저 표정, 좋았어요. 사진으로 찍어두고 싶을만큼 가련한 얼굴.
… 제바의 이런, 여러가지 얼굴들을 볼 수 있는 건 저뿐이었는데 말이죠. 어째서 자꾸 침입자가 생기는 건지.

 

 

8월 18일.

이렇게 된 이상 방법은 하나 뿐입니다. 결혼하기 전과 마찬가지로, 계속 제바와 붙어다니는 것.
단순한 방법이지만, 그만큼 효과적이죠. 입증된 방법이기도 하고.

"… 너, 요새 너무 달라붙는 것 같은데."
"하지만 불안한걸. 당신 혼자 놔두면 무슨 사고칠지 모르니까."
"언제는 안 그랬던가…"

미안하지만 제바, 내가 말한 '사고'와 당신이 생각하는 '사고'는 다른 거라서.
아무리 그론기라서 인간, 특히 여성의 심리에 대해선 말로 전하지 않으면 손톱만큼도 눈치못채는 둔탱이에다(가끔 말로 전해도 모를 때가 있지만) 이상한데서 고집강한 벽창호라고 해도 걱정되서 내버려둘 수 없다니까.

 


[인터루드]

 

"… 어떻게 생각해?"
"알아차린 모양이지. 역시 아내라서 그런가, 남편의 신상 변화를 눈치채는게 빨라."

비타와 시그넘은 거의 동시에 한숨을 내쉬었다.
나노하의 모습을 봐서, 적어도 오늘 하루는 찰싹 붙어다닐 게 뻔했다.

"… 이미 두 사람은 부부 사이다. 우리들이 끼어들 자리는─"
"시끄러워. 애초에 먼저 우리 뒤통수를 친 건 나노하 쪽이라고. 그런데도, 저 녀석만─"

저 녀석만은, 믿었었는데.
시그넘은 뭐라고 입을 열려다가, 잠자코 고개를 돌린 후 천정을 올려다본다.
어째서 자신들은, 저 무신경하고 폭력적인데다 싸움밖에 모르는 바보에게 마음을 빼앗겨 버린 것인가.
자신의 경우… 처음에는 단순한 동경이었다. 그가 가지고 있는 압도적인 힘에 대한.
자신에게도 저런 힘이 있다면, 세상의 누가 덤벼와도 하야테를 지켜낼 수 있다고.
비타는 제바를 싫어했다. 엄청나게. 첫만남부터 험한 꼴 당했으니까 당연하겠지.
하지만… 그에게 여러번 목숨을 구해지고난 후부터, 변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것이, 어느 틈엔가 이렇게.
물론 옳지 못한 일이라는 것은 알고 있다. 그래도─

 

 

[인터루드 아웃]

 

 

8월 21일.

(이날의 일기 페이지는 쫘악하고 찢겨져있다)

 

 

8월 22일.

(이날의 일기는 아예 적혀있지 않다)

 

[인터루드]

 

페이트는 나노하가 제바와 결혼한 이후, 처음으로 나노하와 모의전을 가지게 되었다.

"오랜만이네, 페이트짱. 우리 둘이 이렇게 서는 건."
"… 응."

나노하는 평소와 다름없이 웃고 있었다.
하지만 페이트는 10년전 그날 이후, 나노하의 웃음이 이렇게도 등골이 오싹하게 느껴진 적이 없었다.

"그럼, 시작하자."

말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자주색의 광탄이 날아갔다.
직격으로 날아온 공격이었지만, 속임수도 뭣도 없는 단순한 공격이었기에 피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플라즈마 랜서… 파이어!!"
"디바인 슈터!!"

8개의 뇌창과 수십발의 마력탄이 부딪혀 상쇄된다.
하지만, 두 사람은 서로에게 공격을 날린 직후 자리를 옮긴 다음.

'같은 생각을─'

거리가 좁혀지고, 바르디슈와 레이징하트가 부딪힌다.
한번만이 아니고, 연이어서 몇번이나.
속도라면 페이트쪽이 훨씬 우위에 있기 때문에, 점점 페이트가 몰아붙이는 형세가 되어간다.
바르디슈와 레이징하트가 크게 부딪혀, 페이트의 움직임이 잠깐 멎은 틈을 타 나노하는 거리를 벌렸다.
그리고 곧바로 포격 준비.

"이렇게 빨리?!"

당황하면서도, 페이트 역시 그에 맞설 준비를 한다.
잠시후, 자주색의 대형 광선과 강렬한 전격이 두 사람의 한가운데에서 부딪혔다.

"디바인 버스터!!"
"썬더 스매시!!"

'시가전' 모드로 설정되어있던 시뮬레이션 [도시 필드].
그러나 지금, 두 가지의 힘이 부딪힌 여파로 그 주변이 싸악 날아가버렸다.
먼지가 가라앉자마자, 두 사람은 쉴 틈도 없이 다시 격돌.

"썬더 폴!!"
"스타더스트 폴!!"

하늘에서 강렬한 번개가 떨어져내린다. 단발의 위력이라면, 제바의 그것에 버금갈 정도로.
하지만, 지면에 흩어져있던 무수한 바윗덩어리들이 떠올라, 그것을 막아냈다.
위력을 완전히 죽이진 못했지만, 피하고 공격을 준비할 시간은 충분히 벌었다.

"디바인… 버스터!!"

같은 마법이었지만, 아까의 것보다 훨씬 강력한 자색 빛의 기둥.
그것은 정확히 페이트를 향해 날아오고 있다. 전혀 사정 봐주지 않고.

"으, 윽…!!"

그 짧은 순간에 반응하여, 회피하는데 성공. 비록 배리어 쟈켓의 일부가 타버리지만, 이것을 피한 대가치곤 싼 편이다.
─라고 생각하는 찰나.

"레이징하트, 엑셀리온 모드, 드라이브."
​[​I​g​n​i​t​i​o​n​.​]​

카트리지가 로드되고, 레이징하트의 날개가 펼쳐진다. 모두, 여섯장.

[A.C.S Stand by.]

나노하의 발밑에, 자주색 마법진이 생겨난다.

"엑셀 차저 기동. 스트라이크 프레임!"
[Open.]

레이징하트로부터, 빛으로 만들어진 창날이 솟아난다.

"엑셀리온 버스터, A.C.S! 드라이브!!"

온다.
나노하가, 그녀 최고의 전우와 함께.
그것을 눈치채는 것이 늦었다면, 틀림없이 이걸로 결판나버렸을 것이다.
지금 이 경우라면… 페이트의 반응속도에 놀라야하는 것일까.

"플라즈마 스매셔!!"

금색의 원형 띠가 감긴 왼손에서부터, 금빛의 섬광이 발사된다.

'속도가, 빨라졌어…!'

나노하는 표정을 굳혔다. 원래는 조금 더 오래 걸리는 마법이었을텐데.

무엇이든지 꿰뚫을 수 있는 자색의 창.
무엇이든지 날려버릴 수 있는 금색의 빛.

두 가지 힘의 충돌은, 시뮬레이션의 도시를 통째로 날려버리기에 충분했다.

 

 

두 사람의 힘이 충돌한 여파로, 바깥에서는 일시적으로 모니터링 불가능 상태에 빠졌다.
그리고… 그것은 두 사람이 바라던 바이기도 했고.

"겨우 단 둘이 이야기할 수 있게 됐네, 페이트짱."
"……"

페이트는 대답하지 않았다.
나노하는 얼음처럼 냉정한 얼굴로, 그녀에게 말했다.

"어제 말야. 제바랑 같이 있었지?"
"……"

역시 알고 있었던가.

"아직도 좋아하는 거구나, 페이트짱."
"……"

그녀는, 여전히 침묵을 지키고 있다.
물론 나노하는 그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지만.

"하지만, 여기까지야. 나와 제바는 결혼했고, 함께 살고 있어. 물러나야 하는 건 페이트짱이라구. 우리들이 결혼한 시점에서, 포기했던 거 아니었어? 이제와서─"
"…… 틀려."

마침내, 입을 열었다.

"먼저 반칙한건 나노하니까."
"…… 무슨 의미야?"

페이트는, 1년전부터 하고 싶었던 말을 입밖으로 꺼내놓기 시작했다.

"그때 우리들은, 전부 긴급임무 때문에 밖으로 나가있었어. 나도, 하야테도, 시그넘도, 비타도. 기지에 남아있던 건, 너와 제바씨 뿐이었지. 그리고 너는… 제바씨에게 프로포즈했고, 제바씨는 받아들였어."
"… 그게, 어쨌는데?"
"모르겠어? 우리들은, 출발선에 서지도 못하고 탈락당한거야. 우리 의사와는 상관없이."

나노하도 제바를 좋아하고 있다, 는 사실은 다들 알고 있었다. 오히려 그때문에 누구도 앞으로 나서지 못했고… 그저 애만 태웠지.
만약 그때─

"그때 남아있던 게, 나노하가 아니라 나였다면… 지금 제바의 옆에 있는 사람은 나였을수도 있어."
"……!"
"오해는 하지 말아줘. 모든게 나노하 잘못이라는 건 아니니까. 우리들 모두… 「누군가가 먼저 말하는」것으로 지금까지의 관계가 변해버리는 걸 두려워했었으니까. 기회를 잡지 못한 우리 잘못도 있어."

─하지만, 그래도…

"그래도… 이대로는 싫어. 나쁜 일이라는 건 알아. 윤리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용서받지 못한다는 것도. 그렇지만, 아무것도 해보지 못한 채로 계속 아파하는 것보다는 나아."

나지막한 목소리였지만, 기세는 단호했다. 얼굴도 전에 없이 비장했고.
이번에는 나노하쪽이 침묵할 차례. 나노하는 한동안, 고개를 숙이고 입을 다물고 있었다.
─얼마쯤 지났을까.
나노하는 고개를 들어올리는 것과 동시에, 레이징하트를 들어올렸다.

"얽혀버렸네, 우리들… 정말로, 심하게 엉클어졌어."

나노하의 얼굴은, 어느 사이엔가 원래대로 돌아왔다.

"이제 그만둘래."
"… 뭐?"
"엉킨 이야기는, '우리 식대로' 풀어야지."

걸음을 옮겨, 거리를 벌렸다.
그리고… 레이징하트를, 페이트에게 겨눈다.

"나한테 이기면 제바한테 대쉬해도 봐줄게. 하지만… 지면 '친구 이상'은 절대 금지. 어때?"
"…… 확실히, '우리 식'이네."

실소가 저절로 머금어진다.
이렇게 엉망이 된 이야기를, 이런 식으로 매듭짓는다… 나쁘지 않을지도 모른다.

"바르디슈."
[Zanber form.]

도끼의 날이 둘로 갈라지고, 검의 가드와 같은 형태로 펼쳐진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부터, 금색의 검이 나타난다. 페이트의 키보다도 큰, 빛의 검이.
물론 나노하 역시도 이미 준비에 들어가고 있다.

[Star light Breaker.]
"전력전개, 스타 라이트───!"

허공에서부터 나타난 별빛들이, 레이징하트로 모인다.
그리고 그녀의 앞에, 거대한 원형 마법진이 생겨났다.

"뇌광일섬, 플라즈마 잔버───!"

바르디슈를, 크게 뒤로 젖힌다.
하늘에서 떨어져내린 번개가, 바르디슈의 검에 깃든다.
잠시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웃었다.
아무리 남자 문제가 얽혀있다고 해도, 두 사람 모두 서로를 진심으로 미워할 수는 없다.

 

 

​"​"​브​레​이​커​─​─​─​─​─​─​─​!​!​!​!​"​

 


─물론, 그것과 지금 이것은 다른 문제.
두 사람은 전력을 다해 검과 창을 휘둘렀다.

 

 

[인터루드 아웃]

 

 


8월 23일.

아아, 곤란하게 됐습니다.
아니 정말로 곤란하게 됐어요.
뭣때문에 곤란해졌냐고 하면─

"아, 제바씨. 음식 가리지 마세요. 모처럼 솜씨 발휘한거니까."
"……"
"거기, 비비오도. 음식 골라내지 말고 먹어야 되는거 알지?"
"……"

네, 그렇습니다. 페이트짱이 우리 집으로 거처를 옮겨버렸어요.
애초에 방은 몇개 비어있었으니까 그건 문제가 아닌데… 아무리 생각해도 뭔가 굉장히 엇나간 느낌이 드네요.
어제 저희들은 결국 끝을 내지 못했습니다. 체력과 마력의 한계까지 싸우다가 둘 다 쓰러졌으니까.
거기까진 그렇다쳐도, 나중에 페이트짱은 의무실 침대에 나란히 누워있을 때 "너한테 무승부는 진 거나 다름없지만, 나한테 무승부는 이긴 거나 다름없다."라는, 뭐가 뭔지 모를 기묘한 이론을 내세웠고 결국 이렇게 되버렸어요.
지금 이 상황에 대해서는 제바조차 한손으로 이마를 감싸쥐고 뭐라뭐라 쫑알거리고 있을 정도니까요. 확실히 너무 갑작스러웠습니다. 비비오야 엄마가 하나 더 늘어난거에 기뻐하는 눈치지만.
……
……
……
…… 뭐, 괜찮으려나.
오히려 한집에 살게 됐으니 감시하기 편하다는 장점이 생겼습니다. 게다가.

"그래도, 페이트짱이 와줘서 다행이야."
"… 응?"
"제바 저 인간한텐 비비오 못맡겨. 틀림없이 어딘가의 암살자처럼 만들어낼거야."

네, 그렇습니다. 그거 하나만큼은 정말로 다행이에요.
지금까지 봐오신 분들이라면 알겠지만, 제바가 하는 식으로 비비오를 키우게 내버려뒀다간 제바Jr라던가 나나야 비비오라던가 다스비비오같은, 상상하기도 끔찍하게 될게 분명해요.

"… 야. 아무리 나라도 ​그​렇​게​까​진​─​─​─​─​─​"​
"… 부정안해?"
"………… 노 코멘트."

오랜만에 페이트짱과 눈으로 대화를 나눴습니다.
이 인간, 언제 한번 날 잡아서 제대로 세뇌교육 시키지 않으면 안되겠어요.

 

 

9월 2일.

갑작스러운 이야기지만, 그는 우리들에게 있어서 특별한 존재입니다.
물론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의미도 됩니다만, 그 이전에 그는 「최강」이고 「무적」의 상징.
이 세상이든 저 세상이든, 그 어디의 누구를 상대로 싸운다 하더라도 그는 지지 않는다─ 그런 믿음을 우리에게 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틀림없이 「무적」이고 「최강」이고 「불사신」이지만, '신'은 아닙니다. 따라서 실수도 해요.


그가 중상을 입고, 의식을 잃은 채로 운송되어왔을 때, 그것을 뼈저리게 느꼈어요.
처음 그가 피투성이가 된 채로 돌아왔다고 들었을 때는 믿지 못했습니다. 아니, 안믿었어요.
하지만 실제로 의식불명에 빠진 그를 봤을 때는… 꿈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크로노군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싸움 자체는 승리했습니다만 이겨놓고 방심한 틈에 다른 녀석이 등을 찌르는 바람에 그렇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사람답다고 할까요.
다행히, 5일이 지난 어제 눈을 떴습니다. 인간이었다면 몇번이고 죽었을 상처도 거의 다 나았고(힘은 아직 절반 정도밖에 돌아오지 않은 모양입니다만).
상태가 많이 나아진 제바를 집에다 데려다놓은 후, 저와 페이트짱은 밖으로 나왔습니다. 물론 이젠 괜찮으니까 집에 있기 갑갑하다고 나오려는 제바의 뒤통수를 레이징하트와 바르디슈로 후려쳐서 기절시키는 번거로운 작업이 있긴 했습니다만.
저와 페이트짱은 말없이 이동했습니다.
말할 필요도 없죠. 우리 두 사람의 목표는 딱 한 곳이니까요.

─인페르시아의 금붕어머리가 있는 곳.

제바가 드레이크라고 하는 용마투신을 때려눕힌 직후, 제바의 등을 찌르고 그를 반 시체로 만들어놓은 명부신.
이름을 들은 것 같긴 합니다만, 그런 녀석은 금붕어머리로 충분합니다. 이름같은 걸 불러줄까보냐.
이번만은 예외. 친구가 될 생각따위 털끝만큼도 없습니다. 권유는 없습니다. 이야기도 안들어요.
─라는 것까진 좋은데.

"좋겠네, 나노하는."

… 대단히 음울한 웃음을 지으며, 페이트짱이 말을 겁니다.

"분명히 간호는 둘이 돌아가면서 했는데 했는데 말야… 그 취급의 차이는 대체 뭘까, 응?"
"그야, 아내니까 당연한거잖아."
"머리와 볼 쓰다듬기, 귓볼 만지작거리기는 그렇다쳐. 근데 뭐야, 그 눈물 핧아먹기는?!"

… 그게 부러웠나 보네.
페이트짱, 제바랑 알고 지낸 뒤부터 캐릭터가 확 변했어요.
아니, 제 차례 때 제바가 깨어난 걸 저보고 어떻게 하란 걸까요. 그야, 페이트짱과 교대하고 1분 정도 후에 제바가 눈을 뜨긴 했지만, 그런 건 인력으로 어떻게 되는 일이 아닌데.
하여간 그렇게 옥신각신 하다가, 마침내 명부… 인페르시아에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이 세계에서 제일 마주치면 안되는 사람이랑 마주쳐버렸습니다.

"……"
"……"
"……"
"……"
"……"
"…… 누구냐, 너희들."

8월 26일 오후 2시 21분부터, 27일 오후 1시 48분까지.
꼬박 하루동안, 제바와 대등하게 싸운 용마투신 드레이크.

<어떻게 하지, 나노하?>
<글쎄… 제바랑 싸운 상처가 아직 다 낫진 않은 것 같은데.>

몸 여기저기에 붕대를 감고 있습니다. 갑옷도 절반 정도 벗어던진 상태고.
─하지만, 눈앞의 '이건' 본성을 드러낸 제바와 주먹질로 치킨 레이스를 벌인 괴물. 힘의 절반만 돌아왔다고 해도 저와 페이트짱으로선 목숨을 걸어야 합니다.
한편, 2m 60Cm의 초거체를 자랑하는 용인은 턱을 쓰다듬으면서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고 있습니다.

"… 그러고보니 니들 목소리, 들어본 적 있는 것 같은데 말야."

식은땀의 숫자가 늘어났습니다.

"아, 생각났다."

오른주먹으로 왼손바닥을 가볍게 치며 탄성을 지르는 드레이크씨.
이렇게 되면 싸우는 수밖에─


──(씨익)──


도마뱀 얼굴로도 웃을 수 있다는 거, 오늘 처음 알았습니다. 더불어 엄청 소름끼친다는 것도.


"다곤 새끼라면 어제 눈이 시뻘개지도록 엑박 돌리느라 저~기 동굴에서 자고 있어. 잡아족치려면 지금이 기회라고."


…… 에?
지금 이 사람, 뭐라고?

"왜, 우리한테…?"

제가 할 질문을 페이트짱이 대신 해주네요.

"뭐, 별건 아냐. 같은 명부신이라고 나는 직접 건드리면 안되거든."
"아니, 아무리 그렇다고─"
"아, 그거 귀찮게 하네."

그리고 드레이크씨는 어딘가 먼산을 바라보는 듯한 눈을 하고서 말을 이었습니다.

"나는 말이지. 그 붕어대가리한테 '투구걸이로도 못쓸 돌대가리'라던가 '힘만 센 무식이'소릴 들었다고 이러는 게 아냐. 툭하면 역린 위치 까발리겠다고 협박받고 쌈박질 못하게 근신처분 내리겠다고 해서 이러는 것도 아냐. 명부신 회의할 때 내 의견만 정면으로 개무시당한 거 갖고 이러는 것도 아니고 '의견을 내려거든 뇌세포 숫자 좀 늘리고 다시 와라'는 말 때문에 이러는 것도 아냐. 이 기회에 요새 하는 거라곤 엑박돌리는 거밖에 없는 폐인 자식 한번 물먹여보자고 이러는 것도 아니고 허구헌 날 '넌 밥 굶는 게 좋겠다' 선언들었다고 이러는 건 더더욱 아냐. 나는 단지, 어디까지나, 공정하게, 정정당당한 1:1 대결에 끼어든 것에 대한 벌을 조금 주고 싶은 것 뿐이야. 언더 스탠?"

…… 그 생선머리… 여기저기 원한 많이 샀겠군요.
하지만 그냥 비켜주겠다니 다행입니다. 싸웠으면 위험했을텐데.

"게다가 난 덩치가 크다보니 말이지, 너희같이 작은 애들은 지나가는 거 잘 못 볼 때가 많거든."

입에 침이나 좀 바르고 거짓말 하시지요. 저보다 작은 제바도 잘 봤으면서.

"아참, 그러고보니 조금 전에도 손님 왔었는데. 그 자식 원한 많이 샀나봐?"
"… 손님?"
"세명이었어. 흰 머리 여자 하나랑 키 ​요​~​만​하​고​(​무​릎​까​지​ 손을 갖다댄다) 망치든 꼬맹이, 그리고 빨간 머리 위로 묶은 칼 쓰는 여자. 그냥 들여보내주긴 했지만. 혹시 아는 사이냐?"

이럴수가?! 하야테마저도?!
아니, 절대로 안됩니다. 제가 인정할 수 있는 건 페이트까지예요. 그 이상은 무리, 각하, 문제외.
저와 페이트짱은 드레이크씨에게 가볍게 인사하고 몸을 돌려, 아까 드레이크씨가 가르쳐준 동굴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아참, 니네들 남편한테 전해라. 상처 나으면 한판 더 붙자고."

─안 전할 겁니다. 절대로.

 

 

"어라, 나노하짱이랑 페이트짱 아니가."
"… 역시. 하야테짱이었어."

게다가 시그넘씨랑 비타짱까지.
두 사람은 왠지 모르게 고개를 반대쪽으로 돌리고 있습니다. 역시 찔리는게 있는 걸까요.

"뭐어, 여기까지 와서 숨기는 짓같은 거 안할란다. 우리 셋 다 제바씨 복수하러 왔다이가."
"근데, 어떻게 우리보다 먼저…?"
"너희가 여기로 올 거라고 생각하고 출발을 조금 더 일찍 했으니까. 오늘 아침에 우리 만난 적 없제?"

그러고보니 그랬습니다.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은 했었지만, 설마 여기에 왔을 줄이야.
이어서 비타짱과 시그넘씨가 말합니다.

"게다가, 이왕 싸운다면 둘 보다는 다섯이 낫잖아."
"아무리 상태가 심각하다고 해도 일단은 명부신이니까."

드레이크씨가 지금 생선머리는 자고 있다고 합니다만, 그걸 과연 그대로 믿어도 될지. 뭐, 안자고 있어도 때려부술 생각이었습니다만.
하지만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자고 있는 거 맞드라. 엑박 끄지도 않고."

… 명부신 맞습니까?!

"그런데, 왜 공격안했어."
"느그들 올 때까지 기다린다고."

새치기할 수는 없다이가, 라면서 하야테짱은 웃었습니다.
… 살짝 고마워지긴 했습니다만, 아직 어림없어요.

"자, 그럼 올 사람도 다 왔겠다, 한방에 날려버리고 치아버리자. 아참, 결계 있데이. 그거부터 날려야 된다."
"그건 나와 비타가 하기로 하고… 그럼 놈을 직접 박살내는 건 세 사람의 역할이군."

이윽고, ​포​메​이​션​X​(​제​노​사​이​드​)​ 발동.
시그넘과 비타가 전면에 서고, 저와 페이트짱, 하야테짱은 뒤로 물러났습니다.
예전, 제바와 1:5로 맞서기 위해서 만들었던 저희들만의 포메이션.
시그넘씨는 레반틴과 칼집을 겹쳐, 한 자루의 활로 만들고, 그것과 거의 동시에, 비타짱의 그라프 아이젠도 형태를 바꿉니다.

[Falken form.]
[Gigant form.]

비타짱이 망치를 위로 들어올리자, 그 크기는 골디언 해머급이 되버립니다.
시그넘씨가 빛의 시위를 잡아당기자, 거기에서 한 자루의 화살이 생겨납니다.

"날아가라, 매여!!"
[Sturm Falken.]
"굉천, 폭쇄!! 기간트 슐라크!!"

시그넘씨의 마력이 담겨 보라빛으로 물든 화살은, 하나의 매가 되어 날아갔습니다.
비타짱은, 그 골디언 해머를 전력으로 내려칩니다.
그 두 공격으로, 동굴─ 아니, 그 산 전체에 중첩되어 펼쳐져있던 결계들이 산산조각.
이제 남은 것은, 세 사람의 공격 뿐.

「스타라이트 브레이커」
「플라즈마 잔버 브레이커」
「라그나로크 브레이커」

뭔가 비명소리가 들린 것 같기도 합니다만, 신경쓰지 않기로 했습니다♪

 

 


9월 5일.

[인터루드]

 


​"​제​에​에​에​바​아​아​아​아​아​!​!​!​!​"​

 

나노하는 집의 문을 때려부수고 제바의 멱살을 붙잡은 후, 뭐가뭔지 몰라 멍해져있는 제바를 끌고 강제로 밖으로 나왔다. 비비오가 페이트와 함께 나가있던 것이 다행.

"갑자기 뭐야?!"
"어제 아침에! 비타랑 카페에 가서 파르페 먹었다면서!"
"…… 뭐?"
"게다가 하필 커플 파르페?! 나랑도 먹어본 적 없잖아!!"
"돈은 없고 둘이 먹으려면 그거밖에 없었는데 어쩌라고?!"
"그리고 어제 낮에! 시그넘이랑 영화관에 갔었지!"
"아, 말하는 거 깜빡했네. 덕분에 스타워즈 잘 봤다고 대신 좀 전해줘."
"어제 저녁에는?! 하야테랑 레스토랑?! 게다가 고급으로?!"
"그 녀석이 낸다고 했으니까. 나야 잘 먹었지만. 근데 그게 왜?"

돌아버리겠다.
나노하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이 인간… 여기까지 오면 이미 '둔탱이'가 아니다. '돌탱이'지.

"… 그건 됐다고 쳐. 그럼 지난달 21일, 페이트랑 어디 갔었어?"
"어, 그러니까… 그날 하루종일 끌려다녔지. 공원, 광장, 레스토랑, 영화관, 그리고 바도 있고…"
"그거 말고는?"
"아참, 예쁜 반지있다면서 골라달라고 하는 바람에 골라준 적도 있─"

"나한텐 그런 거 해준 적 없잖아! 한번도!!"

"아니, 그거야 사달라고 한 적 없으니까─"

 


"용서못해!! 머리뼈를 ​깨​먹​어​줄​테​다​!​!​!​!​"​

 


─이후, 시공관리국에서는 이 날을 특별히 제 2차 저지먼트 데이라고 지칭했다. 게다가 나중에는 지금 거론된 네 사람까지 합세하는 바람에 일이 더더욱 커지고.


일이 모두 정리된 후, 하라오운 제독은 "차라리 새로 시공관리국 하나 만드는게 싸게 먹히겠네."라고 하며 한탄했다고.
그리고, 사람들은 또 한번 기원했다. 다음에 저 둘이 싸울 때는 제발 자신들이 전원 출장 나간 다음으로 해달라고.

 

[인터루드 아웃]

 

 

떠들썩하고, 가끔 화내고, 서로 싸우기도 하지만 그래도 잘 지내고 있어요, 우리들.
… 물론 갑자기 집에 사는 사람들 숫자가 늘어나서 골치를 썩고 있지만요.
페이트는 여전히 제바의 팔을 붙잡고 있고, 시그넘과 비타도 은근히 접근하고 있는데다 하야테는 얼핏 방관자인 척 하면서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습니다. 이걸 어떻게 해야할지, 정말로 난감하네요.

하여간 제바, 당신이 정신 똑바로 차려줘야 한다구. 심장이 돌인 거에도 정도가 있지. 아무리 그론기라서 인간 여자 마음에 관심없다고 해도 너무하잖아.
… 그런 것 까지 포함해서 사랑하고 결혼한 나도 나지만.

 

이후에도 우리들끼리의 이야기는 계속됩니다만, 그건 또 다른 이야기.
나중에, 언젠가 다시 만나기로 하고 이번 이야기는 여기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
……
……
……
…… 미드칠더, ​중​혼​되​려​나​(​중​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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