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및 문화 콘텐츠 사이트 삼천세계

쿠우가x나노하 다이어리


원작 |

4화 페이트 T 하라오운의 일기


 

상처투성이의 소녀는, 울어버릴 것 같은 얼굴로 외칩니다.

"나는… 이길거야…! 당신한테도, 나노하한테도, 절대로 지지 않아…!"

모든 것은, 사랑하는 어머니를 위해서.
그녀는 소녀를 딸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소녀에게 있어서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어머니.
그렇기 때문에, 모든 것을 걸고서 싸울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미안한테 말야.]

「하얀 파괴신」은.

[네 사정같은 건 내가 알 바 아니거든.]

소녀의 용기를, 산산히 부숴버립니다.

 

 

"페이트? 무슨 일이야?"

눈을 떠보니 알프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쳐다보고 있습니다.
… 천천히 일어나 몸을 살펴보니, 확실히 걱정할만한 모습이네요. 잠옷이 식은땀으로 절어서 온통 흐트러져있어요.

"괜찮아? 굉장히 얼굴 안좋던데."
"… 조금, 악몽을 꾼 것 뿐이야. 괜찮아."

그 일이 있은 후… 10년이나 지난데다, 지금은 소중한 친구가 되었는데도 그때의 일은 아직도 떠올리기 두렵습니다.
그때의 그 사람은, 지금의 그 사람과 동일인물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니까요. 지난번 스바루와 티아들에게 옛날 자료영상을 보여줬을 때 "얼굴만 같고 생판 다른 사람 아니에요?"라는 이야기까지 들었으니 뭐.
지금이야 나노하에게 세뇌될대로 세뇌되고 밑천 몽땅 까발려져 볼짱 다 봤다지만, 그때의 제바씨는 정말로 무서웠습니다. 아마 야천의 서 사건때까지 계속 그랬죠, 아마.
제바씨는 저희들이 모르고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입니다만, 사실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만약 그때 나노하가… 제바씨를 말릴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면 저와 알프는 물론이고 볼켄리터 여러분들도 전부 그 자리에서 죽었을 거라는 것.

"알프, 지금 몇시?"
"새벽 2시. 갑자기 소리가 나서 깜짝 놀랬다구."

알프에게 웃으면서 사과하고, 우리는 다시 침대에 누웠습니다. 물론 옷은 갈아입고.
하지만 한번 잠에서 깬 직후라 쉽게 잠이 들 수 없군요.

 

 

그론기의 왕.
하얀 파괴신.
궁극의 어둠을 불러올 자.

「운 다그바 제바」

뭐, 지금이야 나노하와 결혼해서 이름 뒤에 "타카마치"라는 패밀리 네임이 붙었습니다만, 본명은 저겁니다.
처음 만났을 때는 이유없는 공포에 몸을 떨었고, 두번째엔 한번 도전했다가 죽기 일보직전까지 당했죠. 이후에도 몇번이나 마주쳤지만, 결국 이기긴 커녕 생체기 하나 내본게 전부.
… 그것도 제바씨가 제 힘을 알아본다고 일부러 맞아준 거였죠, 네. 잔버 폼으로 있는 힘껏 때렸는데 대신 돌아온건

<정말 약하구나, 너.>

라는 무지막지한 폭언.
솔직히 말하자면 상당히 충격받았답니다.

"그러고보니…"

나노하와… 그 사람을 만난지 10년이군요. 첫만남이 어제처럼 또렷한데도, 벌써 그만큼이나.
이제와서 하는 말이지만… 저는 그 사람이 싫었습니다.
첫 만남때부터 인상 최악. 외모는 둘째치고, 나타나는 것과 동시에 알프를 걷어차서 날려버렸으니까요.
게다가 상당히 세게 찼기 때문에 알프는 곧바로 의식을 잃어버렸죠.
이후에도 몇번이나 저희들 앞을 가로막았습니다. 나노하와 함께.
덕분에 저희들이 모은 쥬얼시드는 전부해서…… 아니, 관두죠. 그 이상은 떠올리기 괴롭습니다.
하지만, 저희들이 지금 이렇게 있을 수 있는 것이 그 사람덕분이라는 건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그 사람은 강하고, 무적이고, 최강이고, 불사신이고, 아는 것도 많고 그것을 응용할줄도 알며 할 줄 아는 것도 많습니다. 그러고보니 그 사람이 손대서 제대로 되지 않은 일이 없네요.

문득 예전 일이 떠올랐습니다.

<너, 요리 못하는군. 독… 까지는 아니지만, 개밥 수준이랄까. 알프한테 먹일거야? 아니, 그 녀석도 이건 ​못​먹​을​텐​데​.>​
<​실​례​잖​아​요​!​!​ 그러는 당신은 얼마나 ​잘​한​다​고​!​!>​

그 직후 그 사람은 코웃음치며 프라이팬과 집게를 들고 요리를 시작했고, 약 10분 정도 후에 나온 결과물을 한입 먹어본 저는 솔직하게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습니다.

요리는 어디까지나 많고 많은 예시 중 하나일 뿐이고… 처음 잡아본 일도 그 사람은 거의 완벽하게 해냈습니다. 세상에 가장 '완벽'에 가까운 사람이 있다면 이 사람이 그럴거예요.
하지만 그런 이 사람도, 몇가지 도저히 어떻게 할 수 없는 단점이 있습니다.

첫째. 무지막지한 '싸움바보'라는 것.
그저 싸움이라면 좋아죽습니다. 1:1로 대등하게 치고받는 일반적인 '싸움'부터, 자기보다 약한 상대를 일방적으로 짓밣는 '구타'나 혼자 수많은 적을 상대하는 '일인 대 다수의 전쟁'까지. 물론 그 사람이 패배한 적은 한번도 없습니다.
싸울 상대가 없으면 직접 만들어서 싸웁니다. 즉, 대련을 빙자한 구타 행위를 아군에게 일삼는다던가.
특히 저희들 중에서 '방어'에 특화되어있는 유노 군이라던가 쟈피라씨는 불쌍할 정도로 당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호전적인 시그넘이나 비타도 대련횟수가 잦고… 가끔 저나 나노하가 시뮬레이션으로 대련할 때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 아무도 모르게 적대 세력까지 혼자 쳐들어가 ​밟​아​놓​는​다​던​가​(​물​론​ 이 일은 철저하게 기밀에 붙여져서 자료까지 ​파​기​되​버​립​니​다​만​)​,​ 그것도 없으면 고이 잠을 자고 있는 고대의 괴수라던가 악마라고 하는 것들을 일부러 두들겨 패서 깨운 후 싸움을 건다던가.
우리들이 가진 상식으론 도저히 이해가 안가는 사람입니다만, 유감스럽게도 그 사람과 그 사람의 종족… 그론기에게는 오히려 그쪽이 상식인 것 같습니다. 유노군이 간신히 말리려고 했을 땐 "이게 그론기야!!"라고 외치며 걷어차버렸죠.

얼마 전엔 바다속에서 곱게 잠들고 있는 금색의 천년용왕을 깨워서 싸움 걸기도 했죠. 수호성수인지라 그 사람의 말도 안되는 시비는 무시해주었지만, 하마터면 비상이 걸릴 뻔 했습니다.

둘째. 자존심이 너무 강합니다.
보통이라면 그다지 나쁜 것이 아닐지도 모르지만, 이 사람에 한해서는 극악의 단점. '도발'이라는 걸 당하면 결코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습니다. 자신을 도발에는 반드시 응하며, 그 대가는 박살(搏殺).
솔직히 혼자서 차원을 몇개라도 부숴버릴 수 있는 그 사람에게 도발을 걸만한 존재가 있다는 것 자체가 믿기지 않는 일입니다만… 실제로 있으니까 문제입니다. 일례로 지난번 명부의 용마투신이라던가 임수전 베어권의 권마라던가.
… 생각해보니 이건 첫번째거 하고 연동되는 것 같군요.

마지막 셋째. 말로 표현할 수 없을만큼 둔합니다.
다른 사람의 감정을, 전혀 몰라요. 하지만 일반적으로 말하는 '둔함'과는 종류가 다릅니다. 다른 사람이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는지, 전혀라고 해도 좋을만큼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직설적으로 말해, "넌 떠들어라, 난 ​안​들​을​테​니​"​랄​까​요​.​
네에, 그렇습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렇게 대시를 하는데 눈치 못 챌리가 없습니다. 누가 봐도 "데이트 신청"에 "데이트"인데도 그 사람한테는 단지 '산보'인 모양입니다. 돌도 저 사람보단 나을 거예요.
상황이 이러니 저만이 아니라 시그넘이나 비타, 하야테도 별 차이가 없지요. 가끔 넷이 모여 한숨을 터트리기도 한답니다.

─아니, 딱 한 사람. '예외'가 있습니다.

그 사람이,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기분'같은 걸 신경쓰는 사람이.

타카마치 나노하. 저의…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친구이자, 그 사람의 아내.
「백색 마신 콤비」「삼쇄삼멸 이인조」「하얀 절망 2인분」 etc, etc… 적들로부터 수많은 이명으로 불리고 있지만, 그 의미는 하나같이 '적으로 만나고 싶지 않아'라는 바램이 담겨있습니다.

두 사람이 만난 것은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저와 만난 것은 그로부터 몇일 뒤.

단지, 그 차이 뿐인데도─ 그 몇일의 차이는, 결코 좁혀지지 않았습니다.
제 개인적으로도 두 사람은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요. 그런 두 사람이 결혼했다면, 축복해줘야 맞는 거겠죠.

하지만… 그래도 저는─

 

 

[인터루드]

알프는 걱정스러운 눈길로 옆에 돌아누워있는 페이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감정이라면 알고 있다. 상대가 상대인지라 불안하긴 하지만, 그래도 그 녀석이라면 세상 누가 적이 되더라도 페이트를 지켜줄 수 있을거라고 생각해서 마음속으로 응원해주고 있었다.

그런데도 그 녀석은, 페이트를 선택하지 않았다.

아니, 선택의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고 해야할까.
애초에 '타인의 감정'같은 것에는 조금도 관심없던 자였다. 그렇기 때문에, 나노하와 결혼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엄청나게 경악했다.
그 남자가, 누군가의 청혼같은 걸 받아들일 줄이야. 그렇게 생각하고 페이트에겐 훼방꾼이 없을 줄 알았는데 뒤통수를 맞아도 엄청 크게 얻어맞았다.

… 그래도, 설마 지금까지도 페이트가 그에 대한 구상을 품고 있을거라고는.

아니, 오히려 예전보다 심해졌다고 해야할까. 그것도 훨씬.
아, 물론 그 남자가 끔찍할 정도로 강하고, 적어도 외견만은 예쁘다는 것만큼은 인정한다. 그 이외에도 못하는게 뭐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만능이라는 것도.
하지만 성격면에선 최악. 대화에서 '싸움'이란 단어를 빼면 연결이 안되는 전투바보. 더군다나 가끔 보여주는 '본성'은, 악마는 커녕 마왕조차 보고서 도망쳐버릴 정도로 두렵다.

'하고 많은 좋은 남자 중에 왜 하필 그 녀석인지.'

보나마나 안좋은 물만 들게 뻔한데.

[인터루드 아웃]

 

 

8월 1일.

저와 나노하… 아니, 기동6과에 있어 최악의 사건이 터졌습니다.
차원범죄자 제일 스칼리에티에 의해, 비비오가 납치당한 사건.
스칼리에티와 전투기인들의 목적은, 성왕의 요람. 그것을 위해 필요한 것이 비비오.
우리들은 모두, 경악과 망연에 빠졌습니다.

─단 한 사람만 빼고.

 

 

"당신이 화내는 건 이해해요."
"……"
"하지만, 이런식으로 무작정 행동하는 건 상황을 악화시키는 것밖에 되지 않습니다."
"……"
"최악의 경우, 녀석들이 비비오를 인질로 삼을수도 있어요. 그건, 당신도 바라는 바가 아니지 않습니까."
"……"

제바는 시종일관 무표정한 얼굴로, 크로노의 설득을 듣고 있었습니다.
… 네. 단지 듣고'만' 있었어요.
1분 정도.
제바는 크로노를, 크로노는 제바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제바가 크게 한숨을 쉬며 입을 열었습니다.

"… 네 말은 옳아. 나도 알고 있는 거고."
"그럼─"

 

 

"지랄까지마, 새꺄."

 

 

크로노의 얼굴이 밝아지는 순간.
제바의 손이, 크로노의 얼굴을 덮어버렸습니다.

"방해란 말이야, 네놈이!!"

… 아아, 해버렸다.
얼굴을 틀어쥔 채로 들어올려, 그대로 바닥에 내동댕이 쳐버립니다. 크로노는 바닥에 크레이터가 생길만큼 강하게 쳐박혀, 그대로 의식을 잃어버렸습니다. 불시에 당한 거라는 점도 있지만, 충격량이 충격량이니 당연한 결과랄까요.

"이해해? 네놈이 지금 시건방지게 내 기분을 이해한다고 지껄였어? 아, 물론 내가 열받아있는 건 사실이야. 하지만, 난 그 이상으로 무서워하고 있어."

… 무섭다고? 당신이? 도대체, 무엇이?
제바는 주먹을 강하게 움켜쥐고, 그것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습니다.

"지금 이걸 휘둘러서 이 안에 있는 '녀석'을 뿜어내지 않으면, 그게 언제 터질지 모른단 말야. 알고 있어? 나 말이지, 비비오가 납치됐다는 소릴 들었을 때 '금색 힘'으로 몽땅 날려버리고 싶다고 생각했어. 아니, 지금도 그러고 있어. 이대로라면 나는, 정말로 여기를 통째로 날려버릴지도 몰라. 나노하나 너희 놈들이 있다는 사실도 잊어버리고 말야. 그걸 겨우겨우 억누르고 있는데… 건드리지 말란 말야."

10년.
그렇게 오랫동안 알고 지냈는데도… 제바의 저런 얼굴은 처음 봤습니다. 아니, 상상조차 하지 못해봤어요.
─조금만 틀어지면, 울 것 같은 얼굴.
하지만 그 표정은 그야말로 순식간에 사라졌습니다. 표정을 고치고, '이쪽'을… 카메라를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확실히 들어둬. 또 날 막으러 나오는 녀석이 있으면… 이번엔 숨통을 끊어버릴지도 몰라. 이번만큼은 참을 자신없어. 그러니까… 나오지 말아줘. 나노하도, 너희들도."

그 말을 남기고.
제바는, 우리들의 앞에서 등을 돌렸습니다.

 

 

그 뒤로, 카메라를 통해 보이는 것은 일방적인 파괴와 살육.
하지만, 평소와는 확실하게 달랐습니다.
보통이라면 '아이 오브 블레이즈'나 '레이지 오브 스카이'의 불길과 번개로 부숴버렸을 텐데… 지금은 타이탄 소드로 하나하나 때려부숴가고 있습니다.

─하야테도, 시그넘도, 비타도, 다른 사람들도.
─나노하조차도, 눈치채지 못했지만.

저는 확실하게 볼 수 있었습니다.

─지금 저 사람은, 분노하고 슬퍼하면서도, 어둡고 싸늘하기 그지없는 '희열'에 휩싸여있다는 것을.

 

 

[인터루드]

그론기의 왕은 웃고 있었다.
덤벼오는 가제트 드론을, 압도적인 힘으로 짓뭉개가면서.
하지만, 나노하나 페이트들이 다른 곳에서 가제트 드론들을 부수고 있는 것과 비교할 때, 그 속도는 확실히 '느렸다'.
나노하와 페이트를 비롯한 기동6과 대원들이 가능한 한 신속하게, 일격으로 급소를 파괴하여 전투불능으로 만드는 식으로 싸우고 있다면, 그는 하나하나를 일일이 두들겨서 확실하게 가루로 만들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그가 걸어가는 방향은 틀림없이 스칼리에티가 있는 방향이다.

"고작 혼자서 여기까지─"

가로막는 남성 전투기인을, 문답무용으로 '쪼개'버린다.
이름도 듣기 전에, 어떻게 생겼는지 얼굴도 제대로 보지 않고서. 그로서는 매우 드문일이었다.
가제트 드론들이 계속해서 튀어나오지만, 대부분 일격에 기능을 상실하고 이후 공격들로 철저하게 분쇄된다.
방식이 방식인만큼, 한번에 처리할 수 있는 가제트 드론의 숫자는 그다지 많지 않았다.

─기분나쁜 시선이 느껴진다.

틀림없이 그 오렌지 자식이, 가제트 드론들… 그리고 주위에 설치해놓은 카메라들로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거겠지.
정확히는, 자신의 힘을.
그렇다면, 똑똑히 가르쳐줄 생각이다.

 

─감히 누구를 건드린건지, 그 대가가 어떤건지.

 

제바의 앞에, 대검이 떨어진다.
그것과 교차로, 창이 떨어져 지면에 박힌다.
손에는 한 자루의 보우건이.
대검에서부터 보라색의 빛이, 창에서는 푸른색의 빛이, 보우건에서는 녹색의 빛이 발해진다.
이윽고, 보라빛은 거대한 거인의 형상으로 바뀌고, 푸른빛은 용으로, 녹색의 빛은 천마의 모습을 띄게 된다.
신장 수십미터에 달하는 보라빛의 거인은 제바의 뒤에 서서 두 주먹을 앞으로 뻗는다.
그리고 푸른 용은 거인의 오른팔에 감기고, 녹색의 천마는 왼팔에 내려선다.
─그 상태에서, 더욱더 거대화된다.

 

「세상을 부수는 삼멸의 심판」(얼티메이트 트리플 포스)

 

세 가지의 빛이 소용돌이 치면서, 가제트 드론을 쓸어버리는 것과 함께 그 일대의 지형마저 바꿔버린다.
남은 것은, 직경 킬로미터 단위에 달하는 초거대 크레이터 뿐.

<후, 후후후후… 대, 대단하긴 하지만, 그런 걸 썼으니 이제 남은 힘도─>

전투기인, 카트르의 필사적인 허세가 담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또 한번 거인과 용, 천마가 나타난다.
─이번엔 여덞 세트.

 

세상을 부수는 삼멸의 심판 8연타」(얼티메이트 트리플 포스 에이트 러시)

 

크레이터의 숫자는 순식간에 아홉개로 늘어났다.

"남은 힘이… 뭐 어쨌다구?"

그 장면을 보고 있던 모든 이들.
전투기인들도, 시공관리국 소속인들과 그 관련자들도, 스칼리에티나 기동 6과 대원들조차도.
전부 말을 잃어버리고 시선을 빼앗긴다.

─상상조차 못했다. 이런 힘.

제바는 고개를 돌려, 카메라 하나를 노려본다.
─카메라 너머.
스칼리에티와 눈이 마주쳤고, 제일 스칼리에티는 태어나서 한번도 겪어보지 못한 공포에 휩싸였다.

"10분."

제바는 갑작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리고 그 하얀 입에서 흘러나온 말은 모든 이들을 경악에 빠트렸다.

"지금부터 10분 안에 거기까지 도착할거야, 오렌지. 거기서 천천히 시간과 공을 들여서 정성을 다해 널 뼈하고 살로 분리시켜줄 생각인데… 어디 다른 데로 도망갈 생각하지 말고 얌전히 기다리고 있어."

제바는 웃었다.
그러나 그 웃음은, 그를 알고 있는… 아니, 알고 있다고 생각하던 사람들조차 전율을 느끼게 만들었다.


"이 세상에 태어난 걸 후회하게 해주는 건 물론이고 앞으로 영원히 태어나지 않게 해달라고 신에게 싹싹 빌게 만들어줄테니까."

 

 

제일 스칼리에티는 미친듯이 모든 가제트 드론과 함정을 발동시켰다.
하지만 무슨 짓을 어떻게 해도, 본성을 드러낸 그론기의 왕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통할 리 없다. 막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시간벌이조차도 되지 않는다.
그저 지나가는 것만으로 파괴되고 부서지고 죽는다.
특히 처참했던 것은 그를 막기 위해 나섰던 전투기인 다섯 사람.
일단 죽지는 않았다. 나노하가 필사적으로 죽이지 말라고 부탁한 덕분에(물론 제일 스칼리에티는 차마 살려놓으라는 이야기까진 할 수 없었지만).

─그러나 차라리 죽는게 더 나을 것 같은 꼴을 당했다.

아이 오브 블레이즈로 양팔과 양 다리를 '터트려' 버린 것이다.
사지가 날아간 고통을 여과없이 느낀 전투기인들은 정신붕괴 직전까지 갔으며, 나중에 그녀들을 치료한 샤멀의 말에 의하면, 팔 다리의 파편을 도저히 전부 찾질 못해 결국 '만들어서' 달아줘야 했다고 한다.

그 이후 이야기를 조금 하자면, 이때 당했던 전투기인들은 교육을 받고 있던 중에도, 꽤 오랜 시간을 심한 정신질환과 트라우마로 고통받아야 했다.

이야기를 다시 현재로 돌려서.
가로막는 모든 것들을 배제해버리고, 제바는 제일 스칼리에티의 앞에 섰다.

"찾~았~다~♪"

동네 술래잡기할 때 술래가 희생양을 찾았을 때처럼, 가볍게 흥얼거리듯이 말했다.
하지만 전신이 피와 오일로 젖어있는 귀기어린 모습이라 오히려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전율을 자아낸다.

"각오는 확실하게 되어있는거겠지? 응? 안되어 있어도 상관없지만, 이왕이면 하는게 좋을 건데."
"뭐냐, 너는…!!"

전신을 뒤덮은 절망과 공포를 겨우 억누르고, 스칼리에티는 절규에 가깝게 외쳤다.

"너, 너같은 녀석이 시공관리국에 있다는 소리, 듣지 못했다고…!!"

알았다면, 건드리는 짓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뭐야, 그런 건가. 제바는 앞머리를 쓸어올리며 엉겨붙은 핏덩어리를 떼어낸다. 아까부터 거슬렸어, 이거.

"못들어본게 당연하잖아. 내 이름같은 건 시공관리국 명단에도 올라와있지 않으니까."
"…… 뭐, 라고…?"
"이런 거 몰라? 진정으로 숨기고 싶은 자료는 극비 취급하는게 아니라 파기하는 쪽이 낫다는 이야기. 내 경우도 그거하고 마찬가지야. 나에 대해서 알고 있는 건 현 기동6과 대원들과 그 후원자들 뿐이거든. 그 이외엔 아무도 몰라. … 아니다, 모르게 만들었다고 해야 할까나."

특히 지상 본부 쪽에 보내지는 자료 중에선 4중 5중으로 걸러졌기 때문에 모르는게 당연하다.
그나마 후원자들 중에서도 제바의 정체와 힘을 확실하게 알고 있는 것은 크로노와 린디 뿐으로, 카림이나 3제독들조차도 "조금 특이한 능력을 보유한 특별대원"정도의 인식밖엔 못하고 있다.

"근데 이번 일로 완전히 조졌단 말이지. 네놈의 탓으로."

천천히 다가와, 스칼리에티의 왼팔을 붙잡는다.
─그 상태로 손톱을 세워, 팔을 긁어내린다.
뼈가 드러날만큼 깊게 파고들어, 단숨에 뼈만 남고 나머지 '살' 부분은 뜯겨진다.
그 부분에서 피가 튀어올라, 제바의 하얗던 몸이 더더욱 새빨갛게 물든다.

​"​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괜찮아, 괜찮아. 이 정도론 안죽어."

그렇게 말한 직후에, 발화로 팔 부분을 살짝 구워 출혈을 막는다.

"분명히 말했지? 천천히 ​분​리​시​켜​주​겠​다​고​.​"​

바로 조금 전.
그토록 잔혹한 짓을 하고도, 제바는 웃고 있었다.
평소와 다름없이, 약간의 즐거움이 담긴 작은 미소.

[인터루드 아웃]

 


~페이트~


"아직, 늦지 않았을까…"

십중팔구 이미 늦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이야 많이 물렁해졌다고 하지만… 그 사람이 가장 본성에 가까웠을 때 그 사람과 대치해봤던 저는 확실하게 알고 있습니다. 제바가 정말로 화를 내면 어떻게 되는지.
저로서도 딱 한번 봤을 뿐이지만, 그때의 기억은 어제처럼 생생합니다.
그러고보니, 신인들은 아직 모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만…

저래뵈도 제바, 리미터가 걸려있는 상태입니다.

3단계로 다섯개. 기본 LV1부터 LV6까지.
완전해방인 LV6를 제외하고는 레벨 하나당 단계가 퍼스트, 세컨드, 파이널 세개로 나누어져있으며, 실제로는 16개가 걸려있는 셈입니다.
지금은 아마도 LV3의 세컨드 정도. 아니, 저 「섬멸 공격」이 연타로 나온 걸로 봐선 LV3 파이널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LV4가 나오지 않았다는 건, 그래도 아직 제바를 말릴 수 있는 일말의 가능성이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 리미터들은 제바가 스스로 자신에게 건 것으로, 그 해방의 열쇠를 저희들에게 맡기고 있을 뿐. 제바의 힘을 봉인할 수 있는 것은 제바 본인 뿐이니까요.
그 해방의 열쇠를 쥐고 있는 사람은 총 여섯명. 저, 나노하, 하야테, 카림씨, 크로노, 그리고 린디 어머님.
LV4를 개방하는데에는 여섯 사람 중 한 사람의 허가가, LV5는 세 사람의 허가가, LV6 완전해방은 최소 5인의 허가가 필요하죠.

물론 봉인을 건 사람이 제바 자신인 만큼, 하려고만 한다면 얼마든지 자력으로 리미터를 깨부술 수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 있다는 건, 제바에게 이성이 남아있다는 가장 큰 증거.

어쨌거나, 지금은 제가 제일 먼저 도착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나노하조차도, 제바의 '그 모습'은 알지 못하니까. 다른 사람들이 그걸 보게 되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그렇게 되기 전에 제바를 말리지 않으면─

"어라, 왔어? 생각보다 빠르네, 금발 꼬마."

제바는 평소와 다를 바 없이 웃는 얼굴로 손을 흔든다.
─그 흔드는 손에서 피가 튀어, 바닥을 물들였다.

"아, 이런. 그만 평소대로 해버렸네."

작게 투덜거리고는 적당히 피를 닦아낸다.
그리고 그런 제바의 발치에.
피투성이가 된 채로, 숨만 간신히 붙어있는 '고깃덩어리'가 있습니다. 이미 제일 스칼리에티라고는 상상도 못할만큼, 아니 원래 살아있는 인간이었다고는 믿기지 않을만큼.

"괜찮지? 아마담의 힘을 응용하면 폐랑 심장만 남겨놓는 것만으로도 살려둘 수 있어. 물론 통각은 적당히 조절해서, 딱 미치지 않을만큼만 통증을 낮추는 것도 중요하고."

… 알고 있었습니다. 이런 사람이라는 걸, 이것이 이 사람의 본성이라는 걸.
덕분에 '이것'을 보고도 그다지 혼란이 크진 않군요. … 충격이 아예 없진 않았지만.

"… 다시 원상태로 복귀시키는 건, 가능한가요?"
"그럼 의미가 없잖아. 기껏 이렇게 만들어놨는데."
"비비오가 무서워할텐데요."
"괜찮아."

제바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습니다.

"어차피 이젠 아무래도 상관없으니까."
"그런─"
"오해하지 말아줘. 미워졌다던가 하는 게 아니야. 단지 말야, '이런 손'으로 아이를 만질 수는 없잖아. 이런 손에 만져졌다가 이상한게 옮아버리기라도 하면 안되니까."

양손을 들어올려, 저에게 보입니다.
스칼리에티… 아니, 그 이전의 무수한 사람들을 죽이면서 묻힌 피로 물든 손.
아마 저의 피나 알프의 피도 저기에 있겠죠.

"그렇다고 해서 그냥 내버려둘 생각은 아냐. 이번처럼 비비오를 다치게 하거나, 슬프게 하거나… 비비오의 '적'이 되는 녀석들은 내가 뒤에서 부숴버릴거니까. 그런 의미에서 이 녀석은 딱 좋은 본보기인 셈이야. 어차피 이젠 시공관리국의 늙은이들이나 소식빠른 놈들은 '나'에 대해서 눈치챘을테니까, 잔혹하면 잔혹할수록 좋아. 그래야 다른 녀석들에게도 '경고'가 되니까. … 뭐, 다소 내 취미가 들어갔다는 건 부정 못하겠지만."

… 그렇군요.
너무나도 강하기 때문에, 무언가를 지키려고 하면 필연적으로 부서져버리는 것이 생겨버려.
그렇기 때문에, 차라리 처음부터 '지키기 위해 부수는' 쪽을 택했고…
너무 오랜 세월을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에, 그 방법밖에 모르는 거군요, 당신은.

"그래도 다행이야. 그 아이, 나노하나 너는 잘 따르잖아. 반쪽짜리도 못되는 아빠보단 백점 엄마 둘이 훨씬 낫지. 응, 분명 그럴거야. 그러니까 미안하지만, 그 녀석 부탁할게."

─정신을 차렸을 때는, 그 사람을 뒤에서 끌어안고 있었습니다.

후각이 마비될 정도로 강렬한 피냄새. 하지만 저는 그런 것보다도, 지금 저의 품안에 있는 그의 몸에 정신을 빼앗깁니다.
저보다도, 나노하보다도 작은, 소년의 몸.
이 사람은 이런 몸으로… 그토록 거대한 힘을, '왕'의 이름을, 수만년이라는 세월을 짊어져왔던 거군요.

"……… 너, 그러고보니 많이 컸네? 분명 예전엔 내 가슴 아래까지밖에 안왔던 것 같은데."
"그때부터 10년이나 지났는걸요. 언제적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 그렇지. 린트는 금방 자라버리니까. 5년이나 10년 정도만 지나도 몰라보게 달라져버려. 너도, 나노하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저도 제바도 ​이​상​해​져​있​었​습​니​다​.​
상상이야 많이 해봤지만, 실제로 이렇게 해보는 건 처음이고… 나노하 이외의 사람에게 이렇게 되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제바도 순순히 있었으니까요.
하물며 그것이 반 시체의 앞이라니.

"그보다 이제 좀 떨어져줄래? 나야 이미 버린 몸이지만 피 냄새가 너한테까지 옮아버리면 큰일이잖아."
"옮아도 괜찮아요."

그것이, 당신이 짊어지고 있는 업의 일부라면.
당신의 피도, 당신의 마음도.
나누어 받을 수 있다면, 얼마든지 함께 나누어받아 줄텐데.
어째서 당신은, 나노하에게만─

"다시 한번, 비비오를 만나주지 않을래요?"
"싫어."

감정을 숨기고, 지금 이 상황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문제를 꺼냈습니다.
… 꺼내자마자 즉답이 나오긴 했지만.

"아무리 '이미 포기'라곤 해도… 또 도망치거나 하면 이번엔 넉다운이라구. 버틸 자신 없어."
"이번엔 괜찮을거예요. 분명히."
"… 근거는?"
"감이요."
"………………"

아, 멍해졌습니다. 틀림없이 '이 녀석 지금 진심으로 하는 소릴까'라고 생각하고 있겠죠.
그 생각이 '한대 때리면 정상으로 돌아오려나'는 생각으로 발전하기 전에, 뒷말을 덧붙입니다.

"당신이 자신때문에 얼마나 화를 냈는지 본 지금이라면… 비비오도 알아줄거예요."

 

 

8월 5일.

결과가 좋으면 다 좋다고 했던가요.
제바는 결국 비비오와 사이가 좋아지는데에 성공했습니다. 피투성이의 아빠를 딸이 조용히 끌어안는다는 장면은 참 보기 좋더군요.
─그 아빠가 잘못 보면 '엄마'로 보일지도 모르게 생겼다는 점과, 아빠와 딸의 포옹이 이루어진 곳이 폐허가 되버린 성왕의 요람이었다는 점만 빼면요.
지금은 영락없는 '바보 아빠와 귀여운 딸'로 잘 지내고 있습니다.

이후 스칼리에티 사건─물론 관계자들에서는 '오렌지 순살 사건'이라고 불리고 있습니다만─의 사후 처리로, 크로노와 기사 카림, 그리고 어머님과 하야테가 상당히 애를 먹은 모양입니다.
이유인 즉, "저 정도의 전력을 지니고 있으면서 어째서 보고하지 않고 숨긴 것인가"라는 것.
덕분에 상당히 곤란을 겪은 모양입니다만, 제바에게 이야기를 전해줬더니 깔끔하게 정리해버리더군요.

「시공관리국이 통째로 날아가는 것과 나에 대해 함구하는 것. 어느 쪽을 택할래?」

그 한마디로.
물론 "그런 위협에는 굴복하지 않는다!!"는 용감한 분들도 몇분 계셨습니다만, 제바가 시험삼아 성왕의 요람 잔해를 깨끗이 날려버리는 걸 보고 나선 조용히 입을 다물더군요. 사실 그쪽이 현명한 겁니다. 그 사람은 '세계를 상대로 싸울 수 있는' 정도가 아니라 '세계를 상대로 싸우고도 여유롭게 승리할 수 있는' 사람이니까요.
애초에 그 사람은 ​'​특​별​대​원​'​이​라​고​는​ 해도, 자신의 의지로 우리들을 도와주는 '협력자' 신분이었으니까 관리국측에서 그에게 뭐라고 할 권한은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제바가 그 회의실 탁자에 올려놓은 수많은 자료─관리국 상층부와 지상 본부의 각종 비리와 은폐 공작에 대한 서류와 그 증거들─를 보면 누구도 뭐라고 할 수 없겠죠. 도대체 어디서 그렇게 알아온건지 하야테와 크로노조차 기막혀했을 정도였으니까요.
나중에 물어보니 제바가 스스로 '발로 뛴' 결과라고 하더군요. … 감찰부는 그렇게 해매서 겨우 꼬리잡을까 말까였는데 이 사람은 고작 나흘만에 '장성급도 재판없이 영창으로 보내버릴 수 있는' 자료들을 산더미처럼 구해왔습니다.
아아, 도대체 어째서 이 사람은 그렇게 대단한 능력을 '이럴 때'에만 진심으로 발휘하는 건지.

하지만 사실 그 정도에서 끝난 것이 다행이었습니다. 본래라면 비비오의 납치… 정확히는 '제일 스칼리에티'와 연관되어 있는 모든 사람들을 스칼리에티와 '같은 신세'로 만들어버리려던 것을, 저와 나노하가 몇시간을 설득한 끝에 겨우 막았으니까요.

참고로 지금 스칼리에티는 말로 표현하기 힘든 모습으로 가사상태에 빠져있습니다. 전투기인들은 그것을 보고 제바에 대한 복수의지를 불태우며 재활 교육을 열심히 받고 있는 중이고. … 말로는 복수 의지라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제바가 무서워서 그러는 거 같은데 말이죠.

어쨌거나 이것으로 스칼리에티 사건은 ​깔​끔​하​게​(​정​말​로​?​)​ 종결.
덧붙여 원래 해산되었어야할 기동6과는 이번 사건으로 그 능력을 인정받고, 앞으로도 존속한다, 는 결말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 뒤에서 제바가 손을 썼다는 건, 말안해도 되겠죠.

 

 

"일단은 고맙다… 고 해둘게. 비비오와 화해할 수 있었던 건 네 덕분이니까."

해가 막 떨어지려는 석양의 아래.
고고한 하얀 왕은, 그렇게 말했습니다.
얼굴이 붉어져 있던 건 과연 ​석​양​때​문​이​었​을​까​요​.​ 지금에 와서는 모르겠습니다만… 한가지는 확실합니다.

─역시 이 사람은, 점점 '인간'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

10년 전, 자신의 '숙적'과의 싸움에서 아마담이 한번 깨진 이후.
이 사람은 그론기로서의 파괴본능을 점점 잃어가고 있습니다.
비록 지금도 가끔 그 '본성'이 튀어나오긴 하지만─전의 사건때처럼─ 그 정도는 점점 내려가고 있어요.
지금처럼, 솔직하게 '고맙다'고 말할 수도 있고, 먼저 사람들에게 대화를 걸 수도 있게.

… 곤란합니다.
정말로, 곤란하게 되버렸어요.
하얀 피부가, 새빨갛게 되버린 지금의 제바.
평소보다 훨씬, 못견딜만큼 아름답고, 귀엽고, 멋집니다.
이래서는 안된다는 걸 잘 알고 있는데도.
이 사람의… 나노하조차도 모르는 이런 얼굴을 볼 때마다 새삼 깨닫게 됩니다.

─나는 정말로 이 사람을 좋아하고 있구나, 라고.

 

 


8월 21일.

마침내 어젯밤부터 기다리고 있던 날이 밝았습니다.
우선 얼굴과 머리부터 체크. 문제없음. 먼지도 없고 흐트러진 곳도 없어요. 아침부터 샤워를 몇번이나 했고 평소엔 거의 쓰지 않는 향수까지 사용했습니다.
그 다음 복장. 이런 기회가 또한번 있을지 어떨지 모르는 만큼, 준비를 소홀히 할 수는 없죠.
으음… 고민입니다. 평소처럼 정장을 입고 나가 엘리트 여성적인 분위기를 유지할지 아니면 모처럼이니까 약간 노출도 있는 원피스 타입으로 갈지.
… 어느 쪽으로 가든 제바는 이쪽의 기분같은 건 신경써주지 않을 거라는 불길한 예감(그리고 아마도 정확할)이 머리를 스쳤지만… 뭐, 그런 사람이라는 거 알고도 좋아하는 거니까.
결국 '승부'용의 원피스를 택하고, 마음을 굳게 먹은 다음 집을 나섰습니다.

아참.
10일 날 샀던, 제바에게 줄 선물도 잊으면 안되죠.

 

[인터루드]

… 제바는 지금, 만약에 빛의 오버로드가 살아있고 지금 자신의 앞에 있다면 당장 멱살붙잡고 흔들면서 물어보고 싶었다.

얘 도대체 왜 이러는 건데?

"이번엔 저기로 가요!"

10년 전부터 알고 지낸 「금발 꼬맹이」. 이름은 페이트 테스타롯사 하라오운.
뭐그때야 적으로 만났으니까 딱 죽지 않을만큼 밟아줬지만 그 이후로 나노하와는 누구보다도 친한 친구이기 때문에 제바와도 높은 확률로 마주쳤다. … 라고는 해도ㅡ 아무리 옛날 일이라도 자기를 한번 죽이려고 했던 상대에게 찰싹 달라붙는 건 제바의 기준으로는 도저히 이해불가능.
지금 그 「금발 꼬마」는 제바의 손을 잡아서 어디론가 가자고 조르는 중. 아니, 지금의 그녀는 10년 전과 달리 제바보다 키가 커져버린 상태기 때문에, 모르는 사람이 보면 '제바가 끌려가는' 형국이다.
목표는… 카페냐.

"너, 점심먹은지 30분도 안지났잖아. 나노하야 신기한 체질이라 아무리 먹어도 체중이 g단위로 늘어나는게 고작이지만…"

말은 못했지만 그 이전의 문제로, 지갑이 가벼워졌다. 처음과 비교하면 터무니없을 정도로.
뭐, 금전감각이 거의 없다시피한 제바이니만큼 '과다지출'에 대한 감정은 없었지만 그래도 쓰고 싶을 때 지갑이 비어있다고 하는 상황은 그다지 달갑지 않았다(힘으로 뺏는 거나 누구도 인식못하게 '그냥 가져오는' 것도 가능하긴 했지만, 나노하가 금지시켰기 때문에 가능하면 하고 싶지 않았고).

"안돼요. 이럴 때에 확실하게 즐겨두지 않으면 제바가 언제 또 이런 약속을 해준다는 보장도 없는걸요."

어째서 페이트의 기분이 이렇게 ​업​(​U​p​)​됐​는​지​도​,​ 제바로선 이해할 수 없다.
애초에, '타인의 기분'같은 것에는 조금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 그가 이해한다는 건 무리일지도 모르지만.
작게 한숨을 내쉰다. 어째 나노하와 알게 된 이후부턴 한숨이 자주 나온단 말이지.
제바는 고개를 숙여 지갑 속을 확인하며 말했다.

"아무래도 좋지만 말야, 꼬마야. 그렇게 뛰다가 넘어져도 난 몰─"

─뭉클─

"아, 지금 또 꼬마라고 불렀죠. 제대로 '페이트'라고 부르기로 해놓고!"
"… 오렌지 순살 사건 이후였었지. 알았어, 이름으로 부르면 되는 거잖아."

무언가 다 포기해버린듯한 표정.
한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한숨을 내쉬는 백발의 소년과, 그런 소년의 팔을 끌어안으며 아양을 부리는 금발의 여인.
누가 봐도 「연상의 여인과 연하의 소년 커플」로밖엔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 주위의 남성들의 눈에서는 분노와 증오와 질투와 살의의 감정들이 폭풍처럼 몰아치고 있었다.

그렇지 않은가. 누가 뭐라고 해도 페이트는 아름답고 스타일 훌륭한 미녀. 실제로 제바와 함께 거리를 돌아다니기 시작한 이래, 남성들 대부분의 눈이 그녀에게 못박혀있다. 바로 옆에 애인을 두고서도 시선을 빼앗겼다가 걷어차인 남성들도 상당수.
그런 그녀가 온갖 애교와 친근함을 표시하고 있음에도 심드렁하기 그지없는 소년은, 유감스럽지만 아무리 겉모습이 예쁘다고 해도 '남자의 적'이외에는 무엇도 아니다.

'빌어먹을 빌어먹을 빌어먹을 빌어먹을─'
'뭐야, 저 자식. 지금 우리한테 자랑하는거냐?'
'염장이냐, 그런거냐?!'
'어째서 저런 계집애같은 자식한테 저런 미녀가!!'
'아니, 여자를 데리고 있는 건 그렇다고 쳐!! 근데 뭐야 저 반응은!!'
'적이다… 저놈은 적이다!! 우리들의 적이다!!'

오싹─

"… 제바?"
"…… 아니. 지금 뭔가, 굉장한 한기가…"

그론기의 왕조차 한순간 공포를 느끼게 만드는 이들. 그 이름은 전 세계의 인기없는 남자들을 구제하기 위한 단체, 질투단.

"뭐, 기분탓이겠지."

그리고 그런 질투단의 질투조차 '기분탓'으로 돌려버리며 무시할 수 있는 제바 역시 '과연 하얀 파괴신'이었다.
… 근데, 관계가 있는건가, 그거.

[인터루드 아웃]

 

 

"… 뭐야, 이거."
"모르는 거예요? 파르페잖아요. 제바도 이건 좋아할텐데."
"아니, 그건 아는데. 내가 묻고 싶은 건 '사이즈'랑 '숫자'에 대한거야.

으응, 역시 조금 의심스러웠을까요.
제가 주문한 것은 특대 사이즈의 '커플용' 파르페. 당연히 나온 것은 한개고, 그것은 우리 두 사람의 사이에 놓여졌습니다.

"아까부터 지갑 걱정했잖아요. 이거라면 여러개 시키는 것보단 쌀거고, 지금 특별세일 기간이기도 하니까 시킨건데, 마음에 안드나요?"
"… 아니, 됐어. 이걸로 하자."

물론 거짓말입니다. 단지 제바와 먹고 싶었을 뿐. 한순간이라도, '커플'이 되고 싶었던 것 뿐입니다.
내키지 않는 얼굴로 숟가락을 놀리던 제바도, 먹다보니 얼굴이 풀리고 점점 웃는 얼굴로 변해갑니다.
그것을 보고 있으면, 저 역시도 기분이 좋아지더군요.

 

 

"공원 산책도 느긋한 기분이 드니까 좋네요."
"글쎄에… 난 지루해서 별로인데 말야."

대놓고 귀찮아, 지루해, 뭐 할 거 없어?라는 얼굴로 저를 돌아보는 제바.
아무리 실제 나이가 많다고는 해도, 이럴 때의 이 사람은 영락없는 '어린애'입니다.
저는 단순히 제바와 함께 걷기만 하는 걸로도 충분하지만요.

"그럼 저기 잠깐 앉았다 갈래요? 벤치랑 분수도 있으니까."
"잠깐만, 내가 하고 싶은 건 가만히 있는게 아니라─"

대답할 틈도 주지 않고, 손을 잡아끕니다.
이럴 때엔 이 사람도 뿌리치진 못하니까.

 

 

"아, 제바. 이거 저한테 어울릴까요?"

보석상에서 루비 반지 하나를 들어올려 제바에게 보여봤습니다.
─하지만 제바는 고개를 가로젓네요.

"반지는 손 들어올리기 전엔 눈에 잘 안띄잖아. 차라리─"

놀랐습니다.
설마, 자기가 골라줄 거라고는.
제바는 진열되어있는 보석 중, 두개를 골라듭니다.
가넷으로 된 귀걸이와, 오팔로 된 팔찌.

"일단, 이거 두개 정도일까."
"그런데, 어째서 루비는?"
"? 너, 눈이 그거하고 같은 색이잖아. 눈이 더 예쁘면 보석이 묻혀버리지 않아?"

…………… 무슨 말인지 이해하는 순간, 얼굴이 화악하고 뜨거워졌습니다.
이 사람은 가끔, 자각조차 없이 굉장히 부끄러운 말을 내뱉아요.

근데 제바, 알고 있어요?
가넷도 오팔도 '사랑'을 뜻하는 보석들이라는 거.

 

 

"… 잠깐만. 여기, 상당히 비싸지 않아?"

저녁 식사를 위해 예약해놓은 레스토랑으로 오자, 제바는 드물게 놀란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일까요. 오로지 이 날을 위해서 찾아낸 레스토랑인데다 어머님의 도움까지 받아서 간신히 오늘의 예약까지 해놓은, 미드칠더에서도 손꼽히는 고급 레스토랑이니까.

"이런 곳이니까 온거죠. 걱정하지 마세요."

이미 사전 조사는 다 마친 상태입니다. 나노하나 비비오와 같이 외식을 한 적도 몇번 있긴 하지만, 대부분 '맛집 정복' or '제한 시간내에 많이, 혹은 빨리 먹기'라는 것을. 당연히 이런 고급 레스토랑에는 와본 적이 거의 없다는 것도.
예상 적중. 제바는 안그런 척 하면서도 매우 기뻐했습니다. 다행~ 다행~♡

 

 

"제바는 영화 안좋아하나요?"
"별로. 나노하랑 비비오가 하도 졸라서 본 적은 몇번 있지만."
"액션 영화같은 건 좋아할 것 같은데요, 제바는."
"내가 걔들보다 액션 더 잘하는데 뭐하러."

… 생각해보니 맞는 말이네요.
하지만 지금 보고 있는 것은 액션이 아니라,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로맨스 영화입니다.
내용은─ 그다지 교훈적이라고는 못하겠네요. '결혼한 남자와 그를 좋아하는 소녀'에 대한, 일종의 불륜물. 아마 밤 시간이기 때문에 이런 영화를 틀 수 있는 거겠죠.

…………
…………
…………

아, 안됩니다. 무심코 빠져버렸어요.
그래도 이 영화… 심리 묘사라던가 정말로 잘되어있네요.
옆을 슬쩍 보자, 제바는 꾸벅꾸벅 졸고 있었습니다.

영화의 결말은, 결국 맺어지게 된 두 사람… 입니다.
처음부터 불안을 안고, 사이가 그다지 좋지 않은 여성과 결혼한 것이었기에 가능했던 결말.

… 하지만, 저에게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무엇보다도, 제바와 나노하는 '부부' 이상의 무언가로 ​연​결​되​어​있​으​니​까​요​.​

 

 

시계는 슬슬 11시를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지금 저와 제바가 있는 곳은 한 조용한 술집.
… 조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특별실 하나를 통째로 빌렸으니까.

"너, 너무 마시고 있어. 적당히 하지?"

상관없어요. 겨우 1시간 정도 쉬지 않고 마신 정도로.
애초에, 제바 당신은 '술'이라고 하기도 뭐한 알콜을 그냥 마시고 있잖아요.

"내가 너하고 같은 줄 알아? 이 정도 들이붓지 않으면 '술 마셨다'는 느낌도 안와."

네에, 그럼 마음대로 하세요.
언제나처럼.

"… 묘하게 삐딱한데, 너."

상관마세요.

"… 내 참."

제바는 혀를 차다가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습니다.
그리고 손가락을 튕겨, 불을 붙입니다.

"… 언제부터 담배피웠어요?"
"응? 별로. '맛이 어떤가' 해서 가끔 피워보는 것 뿐이야. 이걸로 두 개피 째일까."
"하루에?"
"아니. 달에 두 개피."

… 니코틴이든 알콜이든 중독이 안된다는 건 정말 편리한 몸인 것 같아요.

"그야, 그렇겠지. 「괴물」의 몸이니까."

그런 의미로 한 말 아닌데요.

"알고 있어. 그냥 그렇다는 거야."

그리고, 제바는 괴물 아니에요.

"괴물 맞아."

아니에요.

"인간하고 다른 종족이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괴물이야."

그렇게 말하면, 저도─

"아니, 넌 인간. 「몸」도 「마음」도. '탄생과정'이 다르다는 정도로 인간이 아니라고 할 수는 없지. 인간이 아니라는 건, 몸도 마음도 전혀 다른 생물을 말하는 거야. 이를테면──── 여기 있는 나라던가."

… 이 이야기는, 지난번에 들은 기억이 있습니다.
술에 취해 몽롱한 정신을 억지로 깨워, 그때의 기억을 떠올립니다.

제바에게 있어, '인간'이라고 하는 단어는 매우 범위가 넓어요. 나노하는 물론, 저같은 인조마도사나 전투기인들까지도.
아마, 그것을 알게 된 건─

 

 

'너, 그거 지금 나한테 물은 거야?'
'……'

그것은 어둠의 서 사건이 끝나고 얼마 후의 일.
저는, 스스로 탄생과정이 다른 '인조마도사'─ 즉, 나노하나 하야테들과는 같지 않다는 것에 크나큰 콤플렉스를 느끼고 있었습니다.
의논 상대를 찾다못해, 스스로도 최악의 선택이라고 자각하며 제바에게 물어보았죠.
'인간'과, '인간이 아닌 것'을 가르는 기준이 무엇인지.

'린트(인간)도 아닌 나한테 그런 거 물어봤자 말이지.'
'… 모르는건가요?'
'으응, 글쎄.'

제바는 주저앉아있는 저의 옆에 있는 나무에 기대어 서서 생각에 잠겼습니다.

'…… 생각해보면, 나쁘지 않을지도 모르겠는걸. 의외로 린트는 린트 자신의 일을 잘 모르니까, 린트가 아닌 내 관점에서의 이야기를 듣는 것도 참고 정도는 될지도.'
​'​이​야​기​해​주​세​요​.​'​

당신이라면, 혹시─

'뭐, 간단하잖아. 린트가 린트지.'

─기대한 제가 바보였습니다.

'… 진심으로 말한거면, 화낼겁니다.'
'진심이야.'

울컥해서, 바르디슈를 들어올릴 뻔했습니다.
남은 진지하게 상담을 요청했는데, 이런 식으로 대응했으니까요.
─하지만, 제바의 얼굴에 평소의 장난기 대신, 진지함이 자리잡고 있는 걸 보고 바르디슈를 내렸습니다.

'내 기준으로 볼 때, 나노하나 하야테는 물론 너와 그 기사놈들도 '린트'다. 충분히.'

그 말은, 저에게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린디 어머님도 그렇게 말씀하긴 했지만, 이 사람도 그렇게 말할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으니까요.

'잘 들어라, 꼬마. 린트─ 인간을 인간이라고 결정짓는건, 자신이 스스로를 인간이라고 자각하느냐 아니냐에 달려있다. 몸뚱아리는 인간이라도 자신이 스스로를 인간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면 그런 녀석은 더이상 인간이 아니다. 하지만─'

제가 아는 한,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습니다. 린트라는 말대신, '인간'이라는 말을 써준 것은.
제바는 몸을 낮춰, 저와 눈높이를 맞추었습니다.
그리고─ 그 검은 눈동자로, 저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해주었습니다.

'스스로 자신이 인간이라는 자각을 가지고, 인간으로서 살아가기 위해 발을 움직이는 녀석은 탄생과정이 어쩌고 생김새가 어쩌고에 관계없이 모두 '인간'이다. 그런 면에서… 너도, 볼켄리터도. 훌륭한 '인간'이지.'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습니다.
─그저
─이 사람이
─저를 '인간'이라고 인정해준 것이
─너무 기뻐서─

 


"야, 일어나. 여기서 자면 어떻게 하라고."
"… 어라, 저 잤었나요?"
"그래. 탁자에 머리박고 아주 잘. 이마에 도장까지 찍혔어."

황급히 거울을 꺼내 들여다보자, 과연 이마 한가운데가 붉게 물들어있습니다.
우웃, 이런 실수를.

"슬슬 돌아가보는게 좋을 것 같은데. 벌써 1시야."
"아, 그럼 일어나죠, 이제─"

─어라?
일어나려는 순간, 다리가 풀려서 다시 앉아버렸습니다.
탁자를 붙잡고 일어났지만, 놓자마자 다시 풀썩.
제바는 이마를 손으로 짚고 한숨을 내쉬며 말합니다.

"취했네, 너."
"… 저, 멀쩡한데요."
"정신이 멀쩡하면 뭐해. 몸이 갔는데."

몸이 들려집니다.
… 나 아직 일어나지도 않았는데?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제바가 저를 엎은 채로 걸어가고 있었던 거죠.
─라니, 잠깐?!

"제, 제바! 혼자 걸을 수 있어요!!"
"웃기는 소리하지마. 이리 비틀 저리 비틀하다 결국 쓰러진 주제에."

… 사실이니까 뭐라고 반박할 수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자기보다 키가 작은 사람에게 업힌다는 건, 음… 기분 묘하네요.
우리들은 주점에서 나와, 집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집이란… 제바와 나노하의 집.

저의 귀와 손목에는, 제바가 준 귀걸이와 팔찌가.
제바의 귀에는… 제가 선물해준, 저의 것과 같은 디자인의 귀걸이가.

비록 박혀있는 보석은 다르지만… 그래도, 지금은 똑같이 빛을 발하고 있었습니다.
그 빛을 조용히 감상하고 있을 때, 제바가 입을 열었습니다.

"… 안되겠네. 너, 오늘은 자고 가. 가족들한텐 연락해둘테니까."
"아니오, 거기까지 폐를 끼치는 건─"
"… 너 말야. 그런 거 하나하나를 폐라고 생각하면 세상 못산다? 게다가 비비오도 네가 오면 기뻐할거고."

… 이럴 때에까지 딸 생각이라니.
한참을 제바의 등에 업혀서 가다가 어느 정도 다리에 힘이 들어가고 상태가 회복되자, 저는 억지로 제바의 등에서 내려왔습니다. … 그래도 꽤 비틀거렸기 때문에 제바가 한쪽 팔을 잡아서 부축해주었지만.
우리들은, 한동안 말없이 거리를 걸었습니다.

"… 제바."
"뭐야."
"제바는, 마음이 생각하고 다르게 움직인 적 있나요?"

제바는 잠깐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대답했습니다.

"글쎄. 몸이 멋대로 움직여 반격한다던가 한 적은 있지만."
"그런거 말구요."

천천히.
가슴속에만 숨겨두었던 말을, 끄집어냅니다.

"이래서는 안된다, 이래서는 안된다… 몇번이나 그렇게 생각하고 다짐했는데도… 정신을 차려보면 어느 사이엔가 그 '안되는 일'에 마음을 빼앗겨버려요. 사회적으로도… 윤리적으로도 용서가 안된다는 걸 알고 있는데도, 어떻게 해서든 갖고 싶어서…"

그리고 그걸 가져버리면.
저는, 세상에서 누구보다도 좋아하는 친구를 배신하게 됩니다.

"이대로는,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어요… 보통이라면, 포기해야겠지만… 그래도 저는─"
"하나, 물어봐도 될까."
"… 뭘요?"
"그건 진짜로 네 '마음'에서 나오는 감정인건가."

……
……
… 그건, 생각할 필요도 없는 질문입니다.

"네. 그것만은, 확실해요."
"……"
"역시, 이상하죠… 잘못됐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진심으로 '가져서는 안되는 무언가'를 바란다니…"
"틀려."

제바는.
저의 말을… 부정해주었습니다.
그 '무언가'가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단호하게.

"꼭 그런 것만은 아냐. 그것이 정말로 너의 '가슴'에서 나오는 진심이고,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길을 잃고 해매는 상태라면… 그 '진심'이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는 건 틀린 일이 아냐."

제바는 저를 바라보면서… 손가락을 들어올려, 저의 심장을 가리켰습니다.

"잘 들어라, 페이트 테스타롯사 하라오운. 네가 너의 진심을 인정하고, 그것을 감당해낼 각오가 되어있다면, 받아들여라. 인간은 '이성'이라는 걸 지니고 있기 때문에 '감정'에 지나치게 많은 족쇄를 채우고 있지만─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얻고 싶다면, 그런 족쇄따윈 부숴버려. 그것 역시 인간으로서─ 아니, 인간이기 때문에 택할 수 있는 길 중 하나다."

인간이 아닌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제바는 끝까지 그렇게 덧붙였습니다.
─서서히.
집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 내가 한 소리긴 하지만, 대답이 됐어?"
"… 네. 고마워요. 굉장히… 도움이 됐어요."
"그래. 이 은혜 잊지 마. 넌 나한테 빚 하나 생긴 셈이니까."
"후후후, 네에… 절대로… 잊지 않을게요."

정말로, 절대로.
잊어버리지 않겠습니다.
당신과 함께 한 오늘을.

 

 

8월 22일.

(이 날의 일기는 기록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시공관리국 기동6과의 공식 일지에는 「타카마치 대위와 하라오운 집무관의 모의전」이라고 기록되어있지만, 그 바로 밑에 엄청나게 작은 글씨로 「하얀 악마와 금색 뇌신이 정면충돌 일으킨 날」이라고 적혀있다)

 

​-​-​-​-​-​-​-​-​-​-​-​-​-​-​-​-​-​-​-​-​-​-​-​-​-​-​-​-​-​-​-​-​-​-​-​-​-​-​-​-​-​-​-​-​-​-​-​-​-​-​-​-​-​-​-​-​-​-​-​-​-​-​-​-​-​-​-​-​-​
 

제 글에서의 운 다그바 제바는 인간─ 그가 말하는 '린트'로 서서히 변화되어 가고 있는 상태입니다.
저번 편에서 말했지만, 쿠우가와의 전투에서 아마담이 한번 파괴되었고, 그때부터 그론기로서 가지고 있던 잔학성과 포악성이 사라져가고 있지요. 그리고 그것은 아마담이 완전히 재생된 지금도 계속 진행중입니다.
덕분에 이번 편에 나온 것처럼 '완전히 빡돌 때' 이외에는 상당히 '인간'같은 모습을 보입니다.


이번에 제바에게 걸린 '리미터'의 전모가 드러났습니다. 예에, 인페르시아에 혼자 쳐들어갔을 때조차 전력이 아니었던 거지요.
LV1~5까지는 각 레벨당 개별적으로 퍼스트, 세컨드, 파이널의 '락'이 걸려있습니다(예를 들어 LV1의 퍼스트라면 LV1로서 발휘할 수 있는 힘의 30%, 세컨드는 70%, 파이널은 100%까지 해방가능.). 제바의 입장에선 참 성가신 형식입니다만.
LV6은 따로 락이 걸려있지 않기 때문에, 3X5+1로 실제적으로 제바에게 걸려있는 리미터는 16개.
참고로 제바의 완전체 모습을 제외한 이전의 모습들 모티브는 '가면라이더 아기토'.
솔직히 말해 '그 모습'은 너무할 정도로 화려하지 말입니다. 일개 잔챙이 상대론 써먹기 싫을 정도로.
(그리고 개인적으로 쿠우가 vs 아기토라는 그림도 보고 싶고)

 

 

LV1 블랭크
노멀. 그러나 전투력 자체는 고다이표 쿠우가의 라이징에 필적합니다.
형태상의 모티브는 가면라이더 아기토의 '그라운드 폼'.

LV2 스트라이크
본격적인 전투형태. 이때부터 타이탄소드, 드래곤랜스, 페가수스 보우건을 사용합니다.
블랭크와 신체적인 스펙차이는 그다지 나지 않지만, 화력은 비교를 불허할만큼 높아졌습니다.
형태상의 모티브는 가면라이더 아기토의 '트리니티 폼'.

LV3 아이온
운 다그바 제바 식의 '금색 힘'을 사용할 수 있는 단계. 제바가 '허락없이' 사용할 수 있는 힘 중에서는 '전력전개'에 해당합니다. 더불어 어느 정도 강하다 싶은 상대와 싸울 때 가장 많이 사용되는 폼이기도 하고, 이번 글에서 오렌지를 밀어버린 폼이기도 합니다.
인페르시아에서 난리피운 것은 아이온폼의 세컨드, 드레이크와 치킨레이스 벌인건 이 레벨의 파이널이지요.
참고로 아이온폼의 파이널은 제바의 전체 전력의 25%에 해당합니다.
형태상의 모티브는 가면라이더 아기토의 '미라쥬 아기토'.

LV4 도미네이터
레벨로 본다면 쿠우가의 어메이징에 해당합니다. 이 레벨의 리미터를 해체하기 위해서는 나노하, 페이트, 하야테, 크로노, 카림, 린디의 6인 중 한 사람의 허가가 필요하지요. 도미네이터폼의 파이널은 제바의 전체 전력의 50%에 해당합니다.
형태상의 모티브는 가면라이더 아기토의 '샤이닝 폼'.

LV5 아포칼립스
달리 표현하자면 제바식의 얼티메이트라고도. 지구에서 쿠우가 얼티메이트와 싸울 때는 이것이 제바의 ​'​전​력​'​이​었​습​니​다​.​ 6인 중 최소 세 사람 이상의 허가가 필요한 만큼, 끔찍할만큼 강합니다. 이것만으로도 어지간한 세계는 '지워'버릴 수 있을 정도니까.
아포칼립스폼의 파이널은 '현재의 제바'의 전체 전력의 80%에 해당합니다.
이때의 모습은 운 다그바 제바의 진짜 모습입니다.

LV6 ─────
이름은 없습니다. 임시로 nihil폼이라는 이름이 붙어있긴 하지만, 정식 명칭은 아닙니다.
쿠우가와의 전투 이후, 완전히 파괴된 아마담이 재생된 다음에 얻은 힘. 그러나 이 힘은 운 다그바 제바 자신조차도 전혀 가늠할 수 없을 정도이기 때문에, 지금까지 단 한번도 사용해본 적 없습니다.
6인 중 최소 다섯 사람 이상의 허가가 필요하며, 제바의 완전한 전력전개를 의미합니다.
써본 적이 없는 폼이라 그 전모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음(물론 제바 본인조차도).


물론 이 리미터들도, 제바 본인이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풀어버릴 수 있습니다만… 그러지 않고 있지요.
이 글에서의 제바에게는 이 리미터야 말로 자신이 나노하들과 함께 있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니까요.

댓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