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제로의 "인페르시아" 사역마
트리스테인 마법 학원.
지금 이곳에선 도대체 몇번째인지 모를 사역마 소환의식이 거행되고 있었다.
"우주 끝에 있는지 없는지 내 알 바 아니고 강력하기만 하다고 다 좋은 건 아냐. 제발 부탁이건대 제대로 된 녀석 좀 나와줘. 이제 학원이 박살나는 것도 싫고 알비온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도 싫고 세계 멸망 엔딩은 더더욱 싫거니와 깃발 플래그 세우고 다니는 녀석도 싫어. 내가 원하는 건 그저 '평범'한 녀석일 뿐이야. 신성하지 않아도 아름답지 않아도 강력하지 않아도 좋아. 아, 그치만 폭발은 일으키지 말아줘. 또 폭발일으켰다고 쿠사리먹기 싫으니까. 그럼, 나와줘."
목소리의 높낮이도 표정의 변화도 일절 없이 그런 수수께끼같은 주문을 외운다.
우선, 폭발은 없었다. 보라색의 마법진이 나타나고, 그 안에서 무언가가 천천히 올라온 것이다.
이것에 루이즈는 안심했다.
─그러나 폭발이 일어나지 않은 것은 어디까지나 페이크.
그녀의 소원은 이루어졌다. 단, 지금의 소원이 아니다. 맨 처음─ 그러니까 수많은 팬픽이 나오기 전의, 원작에서의 그녀가 빈 소원대로.
'신성'하고, '아름'답고, '강력'한 사역마가 나와'버렸다'.
그것도 열명이나.
"제로의 루이즈가 소환한 녀석들이니까 틀림없이 터무니없을 정도로 강력한 녀석들이라고 믿어의심치 않는다. 사실 지금 감정에 솔직하자면 당장 뒤돌아서서 도망쳐버리고 싶지만 억지력의 작용이랄까 발이 떨어지지 않는군. 아마도 이것은 '너는 언제까지나 어디에서나 무슨 일이 있어도 샌드백 신세다'라고 하는 아말감 브라더스의 계시겠지? 그렇다면 그 역할에 충실할 수 밖에. 어차피 전투력 측정기로서 끝날 인생이라면 하다못해 최고의 전투력 측정기가 되어주마! 그런 의미에서, 결투를 신청한다!"
기슈는 실로 용감하게 스태프를 들어올리며 외쳤다.
… 그러면서도 다리는 덜덜 떨고 있는 것이 실로 안쓰러웠지만.
"저기, 봐주면 안될까? 슬슬 기슈도 불쌍해지고 있으니까. 솔직히 그동안 저 녀석 박살나는 꼴이 재미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이지만─"
그러나 루이즈의 말은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그녀의 사역마로서 불려나온 열명의 명부신들은 원형으로 선 채, 그들의 무기를 앞으로 뻗어 서로서로 겹치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한가운데에 나타난 작은 불빛.
그 빛은 그들 사이를 뱅글뱅글 돌아다니다가, 이윽고 어딘가에 앉았다.
─왠만한 사람보다 거대한 대검.
그것의 주인은, 여기의 열명 중 가장 난폭하다고 일컬어지는 용마신.
[오~~~~예~~~~~!! 결투다아아아아아아!!]
드레이크는 좋아죽겠다는 얼굴로 대검을 붕붕 돌리고 있었다.
하기야, 여기에 와서는 싸울 일도 없었으니까.
이플리트와 사이클롭스는 꽤나 불만있는 표정이었지만, 잠자코 있었다.
고곤은 주위를 돌아다니며 학생들을 상대로 돈내기를 걸고 있었고, 토도는 그것을 돕고 있다. 내기의 내용인 즉 '기슈는 과연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5초 단위로'.
와이번과 티탄은 벌써부터 돗자리 깔고 도시락을 펼쳐놓고 있었다. 완벽한 관전 분위기.
… 라기보단 소풍 분위기지만.
열명 중 그나마 정상에 가까운 슬레이프닐과 스핑크스가 우려섞인 눈빛으로 주인과 리더를 번갈아가며 바라본다.
[… 괜찮은건가, 다곤.]
[아무리 그래도 살인은 좀 곤란할 것 같은데요. 저희들의 주인도 인간이니─]
그리고, 그들─ 명부10신의 리더라고 하는 작자는.
[자, 거세요~ 거세요~ 현재 가장 많이 걸린 것은 '시작하자마자 박살난다의 5초'와 '조금 가지고 논 후에 끝낼 것이다의 30초'입니다! 배율은 고작 1.00000000000001배지만요. 반면 가장 적게 걸린─ 아니, 아예 걸리지 않은 곳도 있습니다. '정말로 말이 안되는 이야기지만 기슈가 이긴다'. 배율은 무려 2천억배! 금화 한닢만 걸어도 2천억닢으로 불어납니다!]
고곤에 편승해서 내기를 확장시키고 있었다. 학생만이 아니라 교사들에게까지.
스핑크스는 기계처럼 뻣뻣하게 고개를 돌려, 슬레이프닐을 바라본다.
[… 안말립니까?]
슬레이프닐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이렇게 대답했다.
[인간들 사이에는 케세라세라(될대로되라)라고 참 멋진 말이 있더군. 될대로 되라지, 빌어먹을.]
이후, 학원의 안뜰에서는 녹색의 화염기둥이 하늘을 꿰뚫었다고 한다.
참고로 드레이크는 일부러 엄청 시간을 끌며 이겼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내기돈마저 혼자 거머쥐는 명예(?!)를 얻게 되었다.
"아~~~~~~악!! 전부 나가!!"
모두가 잠든 한밤중.
루이즈는 자신의 사역마들에게 소리쳤다.
[너무하잖아. 이런 한밤중에 갑자기─]
순간 루이즈의 분노가 다시 한번 폭발했다.
"나가라면 나가!! 이플리트 때문에 더워죽겠고 사이클롭스 때문에 추워죽겠어! 슬레이프닐은 뒤척일때마다 갑옷이 부딪혀서 시끄럽고 와이번은 자면서 무슨 수다를 그렇게 떨어대는거야! 티탄은 너무 커서 깔려죽을 것처럼 불안하고 토도는 너무 뚱뚱해서 바닥 무너질까 불안해! 스핑크스는 계산기로 삑삑 소리내서 깜짝깜짝 놀래키고 고곤은 방에 뱀 무리를 풀어놨어! 드레이크는 코골 때마다 입에서 불을 뿜고 다곤은 그 놈의 움마움마움마움마, 움만지 임만지 좀 그만 찾으란 말야아아!!"
… 결국 쫓겨났다.
[루이즈도 참, 인내심이 부족하군.]
[아니, 그녀는 참을만큼 참았다고 생각합니다만.]
[대체로, 네놈들이 너무 시끄럽기 때문이잖아.]
[자다가 불을 토해 루이즈가 아끼는 옷을 태워먹은 사람이 할 말은 아니군요.]
[와이번도 시끄러웠어. 잠을 잘 수가 없잖아.]
[너무한걸, 내 유일한 취미생활을. 하루라도 말을 안하면 입에 가시가 돋는단 말야.]
[보통은 그 반대잖아, 이 날파리가.]
[어쨌든 여기서 아무리 떠들어봐야 결론이 안나. 잘곳이나 찾아보자.]
[하지만, 어디에서? 마구간이라도 빌릴거냐?]
[마구간도 좁아, 이 인원으론.]
그들이 고민하고 있는동안.
한 소녀가, 그들에게 다가왔다.
"저… 미스 바리엘의 사역마분들이신가요? 어째서 이런 곳에─"
[우옷, 구세주다! 구세주께서 오셨다!!]
"… 네?"
[아가씨, 갑작스러운 부탁이지만 이곳에서 제일 넓은 곳을 좀 안내해주지 않겠어? 이왕이면 지붕 있는 곳으로. 침대가 있으면 더 좋고. 아, 그치만 내 경우엔 아가씨의 침실이─]
[와이번, 네놈은 좀 닥쳐. 사실 우리들 전부 주인이 쫓아내는 바람에 말야. 잘 곳이 없거든.]
"아, 그러시다면 이쪽으로 오세요."
시에스타가 안내한 곳은, 자신의 방이었다.
[… 괜찮은건가요? 우리가 여기서 자면 아가씨는─]
"상관없어요. 어차피… 전 조금 후에 여기서 떠날거니까요."
이야기인 즉, 왠 귀족 하나가 그녀를 사갔다는 이야기다.
그것을 이야기하는 그녀의 말투는 담담했지만, 표정은 침울해져있었다.
열명의 명부신은 그 자리에서 회의를 개시.
[어떻게 생각해?]
[주인은 문제 일으키지 말라고 했을텐데요. 귀족이 상대라면─]
[물렀구만, 사이클롭스! 우리들에게 잠자리를 제공해준 천사 아가씨가 위기에 처해있다고!]
[동감이다. 무엇보다 그 귀족놈, 나이값도 못하고 메이드에게 손대겠다는 심보 자체가 마음에 안들어.]
[이번만큼은 동감입니다. 은혜는 갚아야 하니까요.]
[자, 그럼 다들 같은 의견이지?]
[이왕 할거라면 오늘 밤 안으로 끝내고 오자. 시치미 뚝 떼야 되니까.]
그날 밤.
한 귀족의 저택이 깨끗이 사라졌다.
목격자의 말로는 녹색의 불덩어리가 날아오고 푸른 색의 빛의 기둥이 그 뒤를 이었으며 사방에서 쇠구슬이 날아왔고 뱀들이 집을 뒤덮었으며 대량의 독극물이 저택 위에 끼얹어지고 불로 만들어진 망치가 내려쳐졌고 이윽고 번개가 집을 후려쳤으며 사자의 울부짖음이 들림과 동시에 토네이도와 홍수가 저택을 통째로 쓸어갔다고 한다.
물론 그것을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그 목격자는 현재 정신병원에 감금되어 있다.
"뭐, 상대는 알비온의 반란군─ 그것도 대군이지만 당신들 10명이라면 문제없겠지. 맡기겠어."
루이즈는 담담한 얼굴로 그렇게 이야기했다.
그랬다.
이 열명만 있으면, 허무의 마법이든 뭐든 필요가 없으니까.
루이즈에 의해, 다곤을 대신하여 명부신의 리더가 된 슬레이프닐이 창을 높이 들었다.
[전원, 원래 사이즈로 복귀. 실시.]
명부신들은 일제히 원래의 크기로 돌아간다.
전부, 인간은 손가락 하나 크기에도 미치지 못할 정도로 거대하다.
이후 레콘키스타의 군대는 10명의 거신들에게 철저하게 박살났다.
이들 명부 십신은 대륙을 정복하고 그것을 통째로 루이즈에게 갖다바쳐 여제로 추대, 바리엘 제국을 탄생시키지만 그것은 먼 훗날의 이야기.
… 괜찮은거냐. 이 녀석들한테 맡겼다간 지상마계가 된다고. 어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