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ε-α 0: Prelude


Chapter 02 Up on the Groun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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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헉, 헉, 헉"

'쏴아.'

땀이 비오듯 흐르는 얼굴에 물을 뿌리며, 니콜라이는 훈련장에 마련된 벤치에 앉았다.  이 날도 언제나 그렇듯이 2km 달리기를 마치고 하루의 일과를 시작하려는 참이었다.

'벌써 3주가 지난 건가... 마치 시간 파리가 화살처럼 난 것 같군...'

도착한 바로 이튿날 부터 일과를 시작하는 바람에 그동안 눈 코 뜰 새 없이 바빴지만 - 그레이는 자신들을 부려먹는다고 한탄했다 - 슬슬 적응을 한 것인지 요샌 식사 자리에서 기지의 상태를 가지고 농담을 할 정도는 되었다.  물론, 3주 동안 많은 부분의 공사가 끝나게 되어 삶이 좀 편해진 것도 하나의 이유가 될 것이다.

잠시동안 멍하게 앞을 바라보던 니콜라이의 앞에, 누군가의 그림자가 비쳤다.  고개를 든 니콜라이의 눈에 쾌활해 보이는 인상의, 어깨에 커다랗고 길쭉한 가방(더플백)을 맨 남자가 비쳤다.

"니콜라이 중사님이십니까?"

거두절미하고 물어오는 남자에게 니콜라이는 일어서면서 고개를 끄덕인다.

"하사네.  ​자​네​는​?​"​

"에렌마이어 하사입니다.  ​오​늘​부​로​ 이 곳에 배속되었습니다.  그리고 중사님 맞습니다."

니콜라이가 남자를 빤히 바라본다.

"임명장입니다."

가방에서 펜 형태의 홀로그램 판을 꺼내어 건내주며 에렌마이어가 뒤늦게 경례를 한다.

"..."

잠시 말 없이 홀로패널을 바라보던 니콜라이는 곧 전원을 끄고 자신의 가슴 호주머니에 펜을 넣더니, 하사에게 눈길을 향했다.

"축하하네.  ​이 ​구멍(pit)에 온 것을.  자넨 무슨 말을 들어 여기 오게 되었나?"

"마음껏 원하는 총을 쏴 볼 수 있다길래 재미있을 것 같아서 왔습니다."

관자놀이가 갑자기 지끈거리기 시작하는 것을 느끼며, 니콜라이는 자신 앞에 선 호리호리한 남자를 다시 한 번 관찰했다.

"...딱히 이상한 사람은 아닙니다만?"

'일단 여기서 나가야겠군.'

니콜라이는 가볍게 인사를 건내고 돌아서서 그레이의 집무실로 향하려 했다.

"자랑은 아니지만, 아마 제 사격실력은 여기서 가장 으뜸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휙.  ​니​콜​라​이​는​ 등을 돌려 그를 뚫어버릴 기세로 노려보았다.

"자네가 어디서 굴러먹다 온 놈인진 모르겠지만, 이 바닥이 그리 만만한 것이 아니라는 것은 알 거라 생각하는데?"

"물론입니다.  한 번 저와 식사 내기를 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에렌마이어는 자신있다는 듯이 오른쪽 눈을 감았다가 떠 보였다.  ​니​콜​라​이​는​ 무표정하게, 하지만 속으로는 쾌재를 부르며 대답했다.

"좋아.  마침 준비도 끝났고 할 것도 없었으니 - 물론 뒷 부분은 거짓말이었다 - 한 번 넘어가 주지.  ​조​건​은​?​"​

"아무렇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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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장.  뭔 놈이 이래?"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중얼거리며 니콜라이가 털썩, 벤치에 주저앉았다.  그의 옆에 에렌마이어가 싱글싱글 웃으면서 다가와 섰다.

"만족하셨습니까, 중사님?  아, 그래도 아까 언트 래시(Aunt Lassy)는 정말 위험했어요."

퉷, 하고 침을 뱉은 다음 니콜라이는 에렌마이어를 올려보았다.

"그건, 비꼬는 건가?"

"아뇨.  순수한 칭찬입니다.  그 정도로 빠른 반응과 정확한 사격은 흔히 볼 수 있는 것이 아니지요.  ​아​마​.​.​.​ 가까운 거리에선 저보다 빠를지도 모르겠습니다."

니콜라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잠시 뜸을 들인 후, 에렌마이어는 다시 운을 때었다.

"그런데 중사님.  꽤 시간이 걸린 것 같은데, 다른 부대원들은 없습니까?"

이마에 손을 대고 있어 얼굴이 다 보이진 않았으나 니콜라이의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아아.  혹시 '그'들이 말해주지 않던가.  ​보​다​시​피​ 전투부대원은 나와 너.  둘 뿐이지.  뭐, 보조인원정도는 더 있지만."

에렌마이어의 그림자가 비틀거렸다.  아니, 그가 비틀거렸다.

"...잘 못들었습니다?"

"나와 자네.  두 명 뿐이라고.  자, 가세.  식사를 대접해 줘야지."

니콜라이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미소를 지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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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 마감이 덜 되었지만, 적어도 이젠 내부 배선을 볼 일이 없는 통로를 지나며 니콜라이는 연신 웃음을 숨기지 않았다.  그에 반해 그의 옆 뒤에서 걸어오는 에렌마이어는 뭔가를 계속 중얼거리며 걷고 있었다.

"이제 그만 현실을 인정하는 게 어떻겠나."

"...중사님은, 아셨습니까?"

갑작스런 상황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 한 것 치고는 그래도 절제된 축의 목소리가 질문했다.

"당연히.  ​처​음​부​터​.​  ​더​군​다​나​ 내가 올 땐 이 곳의 내부도 다 보였지."

"..."

이번에는 에렌마이어가 할 말을 잃을 차례였다.

"걱정말게나.  ​자​네​라​면​ 아마 잘 적응할 수 있을 거야.  ​무​엇​보​다​ 자네가 그리 좋아하는 총도 많지 않은가."

"그것은, 비꼬는 겁니까?"

"아니.  ​칭​찬​일​세​.​"​

"어떻게 칭찬이 되는지 ​모​르​겠​습​니​다​만​.​.​.​.​ 하아.  설마 이런 곳에 떨어질 줄이야."

​"​.​.​.​그​것​만​큼​은​,​ 동감이네."

카페테리아의 입구에 도착한 니콜라이는 익숙하게 문을 열었다.  내부의 불은 꺼져 있었지만 보통 그랬기에 그는 개의치 않았다.  ​하​지​만​.​.​.​

"엉?"  ​"​에​?​"​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테이블도, 관엽식물도, 의자도, 아무것도.  ​심​지​어​는​ 항상 구석에서 가만히 서 있던 라프조차도.  마치 카페테리아를 그만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래서, 계속 웃고 계셨던 겁니까, 중사님?"

"아니.  이런 일은 이전에 본 적이 없는데."

잠시 정적이 흘렀다.

"일단, 한 번 주방에 들어가 보지.  어짜피 바깥은 쓰지도 않았으니까."

"그러도록 하죠."

니콜라이는 성큼성큼, 발걸음을 옮겨 주방으로 통하는 문을 열었다.

안은 어두워서 잘 구별할 수 없었지만, 적어도 아직 요리를 하는 테이블은 남아있는 것 같았다.  ​니​콜​라​이​는​ 벽을 더듬어 스위치를 켜 보았지만 - 원래는 사람이 들어오면 자동으로 켜 져야 하는 게 정상이었을 터였다 -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이지."

니콜라이가 중얼거렸고, 에렌마이어는 입구에 얼어붙어 있었다.

"장난하시는 거라면 정말로 좋겠습니다만, 아무래도...아닌 것 같군요."

"그래.  전혀 장난 칠 기분이 아니야, 이건."

니콜라이는 조심스럽게 주방 안으로 들어갔다.  어쩌면 안쪽에서 주방장 구룡이 자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

그리고 그를 따라 에렌마이어가 주방 안으로 발을 옮긴 순간,



문이 그들의 뒤에서 닫히고, 둘은 완전한 암흑 속에 놓이게 되었다.  ​잽​싸​게​,​ 에렌마이어가 어딘가에서 소형화기로 추정되는 것을 꺼내는 소리가 났다.

"..."

니콜라이도, 에렌마이어도 아무 말 하지 않고 주위를 경계하는 듯 했다.

그리고 잠시간의 정적이 흐른 다음, 갑자기 불이 환히 켜지더니 시끄러운 소리가 났다.  뭔가가 가볍게 터지는 듯한...

팡!

"여기에 온 것을 축하하네, 신입...아니, 닉.  왜 그런 표정을 ​짓​는​가​.​.​.​다​가​오​지​ 말게!  아니, 내가 생각한 게 아니야!"

폭죽소리와 함께 그레이가 케잌을 들고 나타났다가, 곧바로 달려드는 니콜라이에게서 도망쳤다.  ​에​렌​마​이​어​는​ 그저 쓴웃음을 지었다가, 잠시 눈을 날카롭게 하고 주방 맨 뒤쪽 벽에 등을 붙이고 셋을 바라보는 주방장을 힐끔 쳐다보았을 뿐이었다.

"또 우릴 속일 생각이겠지?  그 케잌에 뭘 장치해 두었나!"

니콜라이가 무시무시한 얼굴로 호령하며 그레이를 쫓았다.

"젠장, 이 케잌은 진짜라고!  ​거​짓​말​이​ 아냐!"

그레이의 단말마가, 좁은 주방에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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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완료.  수정 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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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이야기:  전투의 서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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