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광장.
두 사람은 그곳에 있는 분수대에 걸터앉았다.
단, 엑스는 오른쪽 여인은 왼쪽이라는 식으로 서로에게 등을 돌린 채.
두 사람은 아무런 말도, 행동도 하지 않고 그저 앉아있었다.
수많은 행인들이 차례로 지나가고, 그리고 나타나고.
두 사람의 등 사이에 있는 분수가, 몇번인가 크게 물을 뿜어내 무지개를 만들고.
그러고도 한동안 침묵을 지켰다.
하지만.
서서히, 태양이 서쪽으로 넘어가 하늘을 석양빛으로 물들이기 시작했을 무렵.
'그녀' 쪽에서, 입을 열었다.
"…… 미안하군."
"……?"
"남자와 이런 식으로 만나는 것은 처음이라서 뭐라고 말을 시작해야할지 모르겠다. 실례가 안된다면, 당신 쪽에서 리드해줬으면 하는데."
"아니아니아니아니아니, 내 용무는 다른 거니까. 완전히 다른 거니까."
─두 이레귤러의 대화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물어볼 게 있어서 들어왔어. 질문해도 될까?"
"… 여기까지 찾아오는 손님도 드물다. 대답할 수 있는 거라면."
여전히 두 사람은 서로에게서 등을 돌린 채.
그는 눈을 감고 심호흡을 한 후, 분수대 건너편에 있는 '그녀'에게 말했다.
그가, 이곳까지 들어온 단 하나의 이유.
"'당신'은… 하야테에게 '해'가 되는 존재야?"
등 뒤쪽에서 작은 물소리가 들려왔다.
"그걸 묻기 위해서 여기까지 왔다는 건가. 두 팔을 그렇게까지 망가뜨려가면서?"
"나한테는 중요한 문제니까. 대답해줘."
들려오던 물소리가 멎고, 기척도 멈췄다.
얼마가 흘렀을까. '그녀'는 천천히 대답하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어쩔건가… 따위의 말은 하지 않겠다. 내가 '그런 존재'라고 판명된다면, 당신은 나와 싸우는 길을 택하겠지."
"… 잘 아네."
'그녀'의 입장에서 본다면 당연한 일이다.
그녀의 등 뒤에 있는 그는 고작 그 하나의 질문을 던지기 위해, 여기까지 왔다. 그만큼… 그 불행한 소녀를 소중하게 여기고 있다는 증거.
아마도 그녀가, 그 소녀에게 해가 되는 존재라고 판단된다면 망설이지도 않고 그녀를 파괴하기 위해 공격해올 것이다. 그런 각오가, 그에게서 느껴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그녀는, 소녀를 지키고 싶다는 그의 마음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왜냐하면 그녀 또한─
"당신이 생각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아."
"내가 그 말을 믿을 수 있는 근거는?"
입으로 설명하는 것은 간단하다. 근거를 대라고 한다면, 지금 당장 10개 이상을 읆어줄 수도 있다.
그러나 아무리 확실한 이론이나 언변이나 증거를 들이대도, 그를 납득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직접 대면하는 것은 처음이지만, 그것을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나에게, 당신을 납득시켜야할 의무는 없어."
"없다면 그걸로 됐어. 밖으로 나가서, 하야테에게 말한 다음 '책'을 파기한다. 그 뿐."
─그가 그렇게 말하는 순간 주변의 모습이 변해버린다.
조금 전까진 태양이 빛을 비추고 있던 하늘이 순식간에 새카만 구름으로 뒤덮힌다.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하고, 회오리바람이 불고, 낙뢰가 바닥에 내리꽂힌다.
두 사람이 앉아있던 분수대도 훨씬 더 맹렬한 기세로 물을 뿜어내기 시작한다.
그 많던 행인들이 어느 사이엔가 모습을 감추고, 남은 것은 두 사람 뿐.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어떠한 행동도 하지 않았다.
이 일련의 현상을 일으킨 그녀는 물론, 그조차 아무런 동요도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쏟아지는 폭우와, 몰아치는 바람을 느끼면서.
그녀의 말을 기다렸다.
"… '책'을 파괴한다라… 당신에게 그게 가능하다고?"
"못할 거라고 생각해?"
잠시 동안의 침묵.
그 침묵을 깨트린 것은 두 사람의 '대화'가 아니라 '행동'이었다.
두 사람은 거의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천천히 손가락을 굽혀 주먹을 쥐기 시작했다.
오른쪽 주먹에서는 강렬한 스파크가 일어나고, 왼쪽 주먹에서는 주변의 기상과는 별개의 다른 회오리가 휘감긴다.
반면 그녀는 지금껏 가슴앞에서 끼고 있던 팔짱을 풀었다.
이토록 기상이 폭주하고 있는 가운데, 그녀의 머리칼은 여전히 늘어뜨려져있고, 그녀의 몸에도 물 한방울 묻지 않았다.
이 여자, 강하다.
그것도 어느 정도인지조차 감이 안잡힐만큼.
몇번이고 이야기했지만, 그가 지닌 AI의 연산속도는 다른 레플리로이드는 물론 기간트급 슈퍼 컴퓨터조차 능가한다. 그렇기 때문에 눈앞의 상대를 적으로 간주하고 대했을 경우, 어떤 패턴으로 어느 곳을 공략하면 될지 예상하는 것이 가능하다. 물론 그것이 실제로 효과가 있는지 어떤지는 해보기 전까진 모를 때도 있지만.
그렇지만, 지금 이 여자처럼 어떤 공략법도 떠오르지 않은 적은 없었다.
떠오르는 방법이라곤 "힘으로 정면에서 밀어붙이는 것". 엑스의 AI조차 그 정도의 공략밖에 생각해내지 못했다. 아르카디아에서는 단 한번도 없었던 일. 저 '최흉의 파괴병기' 루시퍼는 물론이고 시그마나 그의 친우조차도 이 정도로 골치아프진 않았다.
여기까지오면 전투력의 차이같은 문제가 아니다. 상대에게, 자신이 어떤 힘을 가지고 있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게 한다. 그것 또한, 이 여자가 가진 힘의 단편이겠지.
그리고 무엇보다도, 지금 이 상황은 상당히 좋지 않았다.
이곳은 그녀의 공간. 그녀의 안에 있는 바깥과는 별개의 세계. 말하자면 그녀의 몸속이나 마찬가지다. 시작부터 절대적인 핸디캡을 갖고 싸우는 거나 마찬가지고, 그 난이도는 이레귤러의 요새에 혼자 쳐들어갔을 때하곤 비교도 되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만약 이곳에 누군가가 있고, 두 사람의 '등을 돌린 대치'를 봤다면 공포 때문에 의식을 잃어버리거나 당장 뒤로 돌아 도망칠 것이 틀림없다. 그만큼, 지금의 분위기는 일촉즉발. 둘 중 누가 작은 행동을 취하기만 해도 폭발할지 모른다─ 그런 느낌이 감돌고 있다.
그 상황이 얼마나 지속되었을까.
"… 그만둘까. 싸우려고 일부러 여기까지 온 건 아니니까."
"… 당신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주인 하야테가 슬퍼하겠지."
두 사람은 동시에 그렇게 말하면서 몸을 돌린다.
조금 전까진 180도 반대. 몸을 돌린 지금은, 분수를 사이에 놓고 서로 마주보고 있는 형태가 된다.
폭주하여 날뛰던 하늘도 점차 진정되어, 폭우가 그치고 바람이 멎고 구름이 걷힌 후 태양이 드러났다.
이곳은 그녀의 공간이었기에 무슨 일이 일어나도 이상할 것 없겠지만 여기까지 변환자재일 정도라니. 만약 여기서 싸웠더라면 어떻게 됐을지,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다.
물론 진다고는 생각하지 않고, 질 생각도 없지만.
「사이버 피콕」
그는 여기에 들어올 때 사용했던 것과 같은 힘을 발동시켰다.
두 팔이 에너지 상태로 바뀌고, 곧이어 손에서 흘러나온 빛이 그의 몸 전체를 감싸기 시작했다.
"나갈 건가?"
"응. 당신의 말을 믿는 건 아니지만, 당신이 나쁜 녀석이 아니라는 걸 알았으니까 됐어."
"만약 내가 그 말을 어기게 된다면?"
그때는, 싸운다.
그 말만을 남긴 채, 그는 이 세계에서 떠났다.
그녀의 '주인'과 함께 있는 그는 예상했던 그대로의 성품을 지니고 있었다.
강하고, 올곧고, 거짓을 말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녀의 '주인'을, 굉장히 소중하게 여겨주고 있다.
그에게 있어서는 그녀와의 대면은 이번이 처음이다. 하지만 그녀로서는 그를 보는 것이 처음이 아니다.
왜냐하면, '책'의 상태에서도 보고 있었기 때문에.
그녀의 '주인'이 그를 이 집에 데리고 온 날부터, 줄곧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확신했다. 그라면 자신이 완전히 눈을 뜰 때까지 '주인'을 지켜줄 수 있을 것이라고.
"이번의 대면은 여기까지. 하지만…"
나중에 다시, 직접 이야기할 날이 올지도 모른다.
그렇게 그녀는 작은 기대를 품으며, '세계'를 닫고 '책'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만약 이때.
그가 그녀에게, 그녀의 '주인'에게 해가 되는 존재인가 라고 묻지 않고.
'인간'에게 해가 되는 존재인가, 라고 물었더라면.
이 이후의 미래도 운명도, 조금은 변했을지 모른다.
IRREGULAR HUNTER - X
9화
'… 괜찮을까.'
일단 대화는 나눴지만, 상당히 불안했다.
그녀의 말은 진심이라고 생각한다. 꽤 이런 거 저런 거 숨기는 건 있지만, 적어도 하야테를 소중하게 여긴다는 점은 엑스와 같다.
… 일단은 두고보도록 하자. 하야테에게 해가 되는 순간이 오면, 그때 가서 생각하자. 아까 전에 내렸던 결론을 다시금 내리며, 엑스는 책으로부터 몸을 돌렸다.
"… 읏."
몸을 돌리는 순간 통증이 엑스의 감각을 파고 든다.
조용히, 양팔을 들어올려 상태를 체크한다.
─엉망진창. 그 이상으로, 지금 그의 팔을 나타내는데 적합한 말은 없다.
사이버 피콕의 것에서 엑스 자신의 것으로 되돌린 팔은 심각할 정도로 망가져있었다. 물론 내버려두면 고쳐지겠지만, 그것도 일주일이 걸릴지 한달이 걸릴지. 잘못하면 그 이상이 걸릴지도 모른다.
"첫번째 '대화'의 대가가 두 팔이라…"
앞으로 저 '책'과 대화를 해야할 상황마다 이렇게 되야하는 건가. 그렇게 생각하니 상당히 우울했다.
그런 생각을 떠올린 엑스가 고개를 떨구고 한숨을 내쉬는 순간.
"내 왔데이~! 엑스 군 집에 있나?!"
아래 층에서, 인기척과 함께 그런 소리가 들려온다.
엑스는 팔을 재빨리 의태시키고, 상처를 숨긴 채 하야테의 방을 나섰다.
팔은 물론, 몸과 그 이외의 부분도 의태시키면서 밑으로 내려간 엑스가 본 것은, 무언가 여러가지 물건을 잔뜩 든 채 들어오는 하야테였다.
"… 뭐야, 그건?"
"으응, 오늘 저녁 거리들. 이야, 오랜만에 나가니까 좋은 거 많이 들어왔단 말이제."
"불러줬으면 좋았을걸."
"아, 그건 안되제. 재료는 눈으로 직접 안보면 불안하니까."
그렇더라도, 짐을 들어주는 정도는 할 수 있었을텐데. 라고 속으로 살짝 불평해보지만, 그것을 밖으로 끄집어내진 않았다. 끄집어낸다고 해서 그걸 들을 소녀도 아니고.
……
……
… 뭐, 괜찮겠지.
이런 사소한데서조차, 자신보다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하고.
또, 어떤 타산도 없는 호의를 보낼 수 있는 소녀.
그렇기 때문에, 자신은 이 소녀를 지키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는 거니까.
─약 0.0001초. 머리 속에서 지극히 미미한 통증이 발생했지만 엑스는 그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부탁은 묵살당했지만 달리 갈 곳이 있는 것도 아니었기에 리니스는 그대로 '아지트'에 있기로 했다. 물론 마그마 드래곤은 허락한 적없지만, 이미 부탁을 거절하기도 했고 리니스가 있어도 뭐라고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틀 째가 되던 날.
[… 계약?]
"네. 염치없지만 마력이 부족해져버려서요…"
'그녀'와의 계약이 끊긴지 슬슬 일주일 째. 위험수위는 진작에 지나쳤고, 이제 몇일만 더 있으면 정말로 리니스는 단순한 고양이로 돌아가게 될 처지였다.
거기까지 이야기를 들은 마그마 드래곤은 손가락으로 볼을 긁적이는 제스처를 취했다.
물론 사정에는 동정이 간다. 스스로를 자각할 수 있는 존재가, 그 '자각'조차 빼앗길 처지에 놓여있다. '자각이 없어본 적이 없는' 마그마 드래곤으로서는 그것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적어도, 그에 대한 막연한 공포감은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어렴풋이 느끼는 것만이 가능한 마그마 드래곤과는 달리 리니스에게는 그것이 머지 않아 찾아올 '현실'. 두려워하는 것도 당연하다. 이미 한번 안면을 터버린 상대이기도 하고, 마그마 드래곤도 그녀를 도와주고 싶은 기분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네가 말했던 것처럼, 나는 기계다. 네가 말하는 '마력'이라는 건, 생물에게만 있는 거라고 하지 않았나?]
그래. 돕고 싶어도 도와줄 방법이 없어서야 도리가 없다. 그것이 마그마 드래곤이 망설이는 가장 큰 이유였다. '생물'에게만 가능한 도움이, '생물이 아닌' 자신에게 가능할 리가 없으니까.
하지만 리니스는 고개를 저으며 부정했다.
"분명 통상적인 경우라면 당신의 말이 맞아요. 하지만… 그런데도 당신에게는 '있을 리 없는' 마력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사용한다면 곧바로 리니스를 지금의 위기에서 구해낼 수 있을 정도의 양이.
마그마 드래곤은 곰곰히 생각했다. '마력'이니 뭐니하는 정체불명의 힘이 있다면 지금까지 몰랐을 리 없다. 게다가 리니스의 말에 따르면, 그쪽의 '마법'이라는 것도 과학 기술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것 같고. 똑같은 과학 기반이라면 아르카디아에도 이미 알려졌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 아르카디아에는 '마법'이 존재하지 않는다. '마력'이라는 것의 존재도 알려지지 않았다.
그렇다면 답은 한가지. 그의 '마력'은 극히 최근에 생긴 것이라는 이야기가 된다.
자신이 '죽기 전'과, '살아난 이후'. 그 차이는 오직 하나.
'그 망할 보석… 그걸 만진 건 실수였나.'
한순간 그렇게 생각했지만, 결국 그걸 만진 덕분에 다시 한번 '소원'을 이룰 기회를 얻었다. 그 점만큼은 인정하지 않으면 안되겠지.
하지만 그 보석은 이곳에 오자마자 버렸다. 그런 것이 아직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는 생각할 수 없으니까, 자신에게 마력이 생긴 것은 그 보석에 의해 되살아날 때. 그때 이외에는 없다.
"뻔뻔스럽고, 부끄러운 이야기입니다만… 부탁드립니다! 이대로라면─"
[그럼 괜찮겠지. 좋을대로 해라.]
"역시 무리겠죠… 다른 사람을 찾아보─ ………… 네?"
분명 리니스의 귀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귀에 들어온 말을 믿기 힘들었기에, 그렇게 반문했다.
[괜찮다, 라고 했다. 뭔가 문제라도 있나?]
"에, 아니오! 그, 저로서도 사정을 아는 사람이 도와주는 쪽이 좋지만, 왜 갑자기…?"
리니스의 질문에, 마그마 드래곤은 심드렁한 태도로 대꾸했다.
[말했다시피 변덕이다. 싫으면 관두고.]
"아니오, 아니오, 아니오, 아니오! 이쪽으로선 오히려 황송하달까 감사하달까 여기까지 폐를 끼쳐놓고 또 신세를 져야 한다는 게 민망해서…!"
한동안 얼굴을 빨갛게 물들인 채 횡설수설하던 리니스는 어느 순간 잠잠해졌고, 곧 마그마 드래곤에게 고개를 들어올렸다.
"그럼… 잘 부탁드립니다."
[말해두지만, 나는 마력인지 뭔지만 줄 뿐이다. 그 이외의 일은 알아서 해.]
태도와 말투는 더할 나위없이 불량했지만, 마그마 드래곤은 꽤 진지한 상태다.
몇번이고 이야기하지만, 마그마 드래곤은 마법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른다. 지금부터 리니스가 행할 '계약'이라는 것에 대해서도 전혀.
따라서, '마법에 필요한 행위'라고 하면서 리니스가 독을 넣든 바이러스를 넣든, 자신이 알아낼 방법은 없다.
타인을 완전히 믿고, 자신의 생명을 맡기는 것과 다름없는 행위. 이전의 자신이라면 상대가 오래 알고 지내온 전우가 아닌 이상 결코 하지 않았을 행동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자신은 그렇게 하고 있다.
어째서일까.
─약 0.0001초. 머리 속에서 지극히 미미한 통증이 발생했지만 마그마 드래곤은 그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 아무렴 어때. 나쁜 녀석은 아닌 것 같고.
마그마 드래곤은 조금 전까지 머리를 채우고 있던 의문을 가볍게 일축해버리며, 리니스와의 계약을 받아들였다.
이 시점까지도, 마그마 드래곤은 자신의 '이상'을 눈치채지 못했다.
[………………]
조용히 손을 들어올려 이마를 만진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머리가 아팠던 것 같은데, 착각이었던가.
아니, 그럴 리는 없다. 고개를 붕붕 저으며, 머리 속에 떠오른 가설을 부정했다. 환지통(幻肢痛)이라고 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생물에게만 존재하는 것. 자신과 같은 레플리로이드에게는 해당 사항이 아니다.
원인을 알 수 없는 고통이라는 게 이렇게 불쾌한 거였던가. 지금까진 한번도 느껴본 적이 없어서 몰랐다.
─약 0.0001초. 머리 속에서 일어났던 통증이 다시 한번 일어나지만, 스톰 이글은 그것을 눈치채지 못한다.
[하지만 어차피 원인도 모르고, 생각해봐야 헛수고인가.]
의문을 털어버리고, 그는 앞으로의 일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우선 가장 먼저 생각해야할 것은
[이것의 처리군.]
오른손의 검지와 엄지. 그 두 손가락만으로 들어올린 물건을 바라본다.
푸른색의 마름모꼴 보석. 그리고 아마도 이것이… 자신을 수리하고, 이 세계로 오게 만든 원인.
이 세계로 온지 1개월. 그 동안 스톰 이글이라고 놀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당연히 이곳이 어떤 곳인지 조사했고, 대강은 끝마친 상태다. 무엇보다 이 세계에는 다소 구식이지만 쓸만한 인터페이스가 있어서 시간을 줄일 수 있었고.
전체적인 문명으로 볼 때, 아르카디아보다 상당히 뒤떨어진다. 이곳에는 레플리로이드도 없고, 그보다 구식 타입인 로봇의 개념조차도 아직 확실하게 잡히지 않았다.
물론, 아르카디아에도 '비공식'의 괴과학은 있었던만큼 이곳의 '비공식'은 어떨지 모르니까 속단은 금물.
뭐, 그건 일단 그렇다치고.
[엑스와… 마그마 드래곤인가…]
1개월 전에 있었던 두 사람의 충돌.
엑스의 경우엔 마그마 드래곤의 공격을 막는 것만도 벅찼던데다 부상까지 겹쳐서, 라는 이유로.
그리고 마그마 드래곤은 원래 그에게는 그런 기능이 달려있지 않았기 때문에, 라는 이유로.
두 사람의 싸움을 관찰하고 있는 이들이 있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물론 스톰 이글이라고 해서 전부 파악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자신을 포함해서 둘. 많으면 셋 정도의 "레플리로이드"가 그 싸움을 관찰하고 있었다는 것만은 알고 있다. 뭐니뭐니해도 그는 창공의 전사. '눈'만큼은 엑스에게도 뒤지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있으니까.
[우선, 엑스에겐 제대로 사과해두지 않으면 안되겠지…]
과거에 있었던, 최초의 대규모 레플리로이드 반란 사태. 통칭 '시그마의 날'.
모든 레플리로이드의 아버지, Dr.케인이 만든 최강의 레플리로이드 「시그마」가 일으킨 그것은, 아르카디아의 역사를 통틀어서도 요정전쟁에 필적하는 '최악의 재해'로 취급하고 있다.
본래 시그마는 이레귤러 헌터의 제 17 정예부대의 대장을 역임하고 있던 레플리로이드로서, 그 자신도 사회와 세계를 지키겠다는 정의감에 불타던 자였다. 저 '푸른 유성' 엑스는 물론이고 '붉은 섬광'과 그 이외의 '영웅', 혹은 '용사'라고 칭해지던 레플리로이드들을 부하로 두고 있었으며, 다른 수많은 레플리로이드들에게 있어서도 존경과 경외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그는 어느 날 갑자기 돌변했다.
레플리로이드의 가능성을 지나칠 정도로 과신하며, 자신들이 인간을 능가하는 존재라고 믿기 시작했다. 그것이 "레플리로이드만의 유토피아"라는 생각으로까지 발전했고, 반란으로 이어졌다. 그의 부하였던 레플리로이드들은 대부분이 그에 찬동하여 따라갔고, 원래부터 '표면적으로만 정상'이었을 뿐 마음 속 깊은 곳에서는 가지각색의 불만을 품고 있거나 불순한 이상을 품고 있던 "이레귤러"들 또한 시그마에게 합류하여 인류의 세계를 끝장내버리기 일보직전까지 갔었다.
물론 스톰 이글에게 그런 바보같은 일에 찬동한 기억은 없다. 그의 성향은 어느 쪽이냐고 하면 엑스 쪽에 가까워서, 올바른 것을 선호하고 뒤틀린 것을 바로잡기 위해 힘을 쓰는… 그런 레플리로이드였으니까.
오히려 그는 시그마를 막으려고 들었고, 결과적으로는 시그마와 직접 대결까지 벌였으니까.
그러나, 결국 그는 시그마에게 패배했다.
똑같이 '대장'의 직책에 있었다곤 하지만 시그마는 Dr.케인이 인정한 '최강의 레플리로이드'. 정면 대결이라면, 처음부터 스톰 이글에게 승산같은 것은 없었다.
시그마의 힘에 굴복한 이후, 그는 살아남기 위해 시그마를 따랐다. 그를 위해서, 한때 동료였고 그때에도 동료라고 생각했던 엑스에게 발톱을 세웠던 것이다.
[이제와서 뭐라고 하던 변명밖엔 안되겠지만 말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는 하고 싶었다. 그와 싸운 것은 본의가 아니었다는 해명 정도는 하고 싶었다. 실제로 그것을 행하는 것은 간단하다. 엑스라면… 저 바보같을 정도로 착한 녀석이라면 자신이 모습을 드러낸다고 해서 무턱대고 공격하지도 않을 거고 이야기를 들으면 오히려 기뻐하면서 맞이해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직은 안된다.
아직 그조차도 정체를 파악하지 못한 나머지 "레플리로이드".
우선은 녀석들에 대해 알아내고 난 다음, 녀석들이 인간에게 피해를 끼칠 녀석들인지 어떤지부터 알아내지 않으면 안된다.
이것은 단순한 고집. 그런 짓을 하지 않아도 엑스라면 그를 용서해버릴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가볍게 끝나는 것은 한때 인류를 위해서 싸웠던 이레귤러 헌터로서의 프라이드를 완전히 내버리는 일이 된다.
스톰 이글은, 만약 다른 레플리로이드들이 이레귤러라고 판명되면 혼자의 힘으로 해결할 생각이다.
이길 수 있거나 이길 수 없거나, 그런 사소한 문제는 둘째로 돌려버리고.
적어도 엑스와 다시 마주하는 것은, 그 자신이 이레귤러 헌터로서의 자신을 되찾았다는 실감을 얻고 난 다음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뭐, 그런 걸로 해두고.]
스톰 이글은 몸을 뒤로 돌리고, 호수를 향했다.
오른손으로 주먹을 쥐고, 그 위에 푸른 보석을 올린 다음────── 손가락을 튕겨, '푸른 보석'을 호수 한가운데에 빠트린다.
[신세졌어. 하지만… 이 뒤로는 나 혼자 하지 않으면 안되는 거라서 말야.]
그 가치를 아는 자들이 봤다면 입에 거품을 물고 쓰러졌을 일을 너무나도 가볍게 해버린 스톰 이글은 자신을 이 세계까지 이끌어준 '보석'에게 작별을 고했다.
만약 이대로.
만약 지금 이대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면.
그것은 그저, 사소한 돌멩이조차 되지 않았을 것이다.
어떠한 '변화'도 '이변'도 가져오지 않고, 그저 아무렇지 않게 끝났을 일.
지금 이대로, 그냥 지나쳤더라면 분명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을 것이다.
푸른 유성의 용사도.
화산의 맹룡도.
창공의 날개도.
그리고 그 이외의 자들도.
만나지 않고 끝났더라면, 좀더 다른 결말을 맞이했을지도 모른다.
───to be continu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