츠키무라 스즈카는 고민하고 있었다.
무슨 옷을 입고 나가야 할까, 어디 청결하지 못한 곳이 있는 것 아닌가, 머리 모양은 흐트러지지 않았는가. 평소보다도 훨씬 철저하게 자신을 점검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오늘이 특별한 날인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그저 친구인 아리사 버닝스와 만나서 놀기로 한 것 뿐. 또 한 사람의 친구는 최근 들어서 함께 놀기가 힘들어졌다. 무언가 바쁜 일이 생긴 것 같은데 이야길 해주지 않아서 조금 소외감을 느낄 정도.
물론, 단순히 친구와 만나기 때문에 이렇게 신경을 쓰는 것은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지금 이렇게 공을 들이고 있는 건 그녀의 친구와 관련은 있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그 친구가 아니다.
─바로, 지난번에 아리사가 소개해준 '그 소년'.
아리사는 전화를 할 때 할 말만 하고 끊어버리는 경향이 있기에, 그 소년이 그녀와 함께 있는지 어떤지 알 수 없는 경우가 많다. 물론 없을 때가 많지만, 아무런 이야기도 없었는데 '그 소년'과 맞닥뜨리게 되었을 때는 정말로 당황했다.
'아리사짱… 그런 건 미리 이야기해주면 좋을텐데…'
여자아이이면서도 무신경한 구석이 있는 친구를 떠올리며 한숨을 내쉰다.
동시에, 그 친구 덕분에 만날 수 있었던 소년에 대한 것도 연쇄적으로 기억해낸다.
'엑스 씨라고 했었지.'
나이는 그녀나 아리사보다 4~5살 정도 위로 보였다.
은색이 살짝 섞인 물빛 머리카락. 그것과 같은 색의 눈동자.
멋있다는 말도, 예쁘다는 말도 어울릴 것 같은 중성적인 얼굴.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그녀의 마음을 뒤흔든 것은 같은 또래의 소년들에게서는 결코 볼 수 없는 '분위기'.
의젓하다던가, 침착하다던가. 그런 단어로는 표현할 수 없는 '어떤 것'. 그런 걸 '공기'가 다르다고 말하던가. 단순히 느낌으로 본다면, 그녀가 지금까지 봐온 사람 중 언니의 지인이라고 하던 타카마치 쿄우야 정도가 그나마 가장 비슷하지만, 그와도 꽤 다르다.
더 깊고, 더 알 수 없는 '어떤 것'. 그런 것을 그 소년은 가지고 있었다.
그 때문인지 어떤지는 몰라도, 처음 만났을 때부터 자신의 심장이 빠르게 뛰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때의 두근거림은 아직도 그녀의 심장에 남아있고, '어떤 감정'을 맹렬히 불타오르게 했다.
'─인데, 어떻게 생각해?'
'그렇군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스즈카 아가씨께서 저런 행동을 보이신 적은 없습니다만.'
그리고 스즈카의 방을 문틈으로 관찰하고 있던 두 사람.
스즈카의 언니인 츠키무라 시노부와, 그녀의 사용인인 노엘이 그렇게 대화를 주고 받고 있다.
어째서 그녀들이 이런 짓을 하면서 이런 대화를 나누고 있느냐. 그 이유는 간단하다.
지금까지의 스즈카는, 거울을 보면서 얼굴을 붉게 물들이고 한숨을 내쉬다가도 몽롱한 얼굴을 하는 등의 행동은 한 적 없기 때문이다.
소녀의 변화는 가족들로 하여금 놀라게 만드는 건 물론이고 소름마저 끼치게 만들었다. 아무 이유없이 저럴 아이가 아닌데, 가족들로서는 도저히 원인을 짐작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때, 두 사람의 밑에 엎드려있던 또 한 사람의 사용인─ 파린이 말했다.
'그런 거, 당연하잖아요.'
'… 무슨 뜻이야, 파린.'
'저 표정, 저 얼굴, 저 거동… 모든 걸 조합해볼 때, 단 하나의 결론만이 나옵니다.'
시노부로서는 파린의 저 묘하게 자신감에 가득 차 반짝반짝 거리는 얼굴이 불쾌했지만, 일단 이야기는 마저 들어보기로 했다.
'네, 그래요. 저 모습은 바로…… 사모하는 분이 생긴 게 틀림없습니다!'
─'밤의 일족'의 후예, 츠키무라 스즈카. 9세.
─소녀는 지금, '사랑'을 하고 있다.
IRREGULAR HUNTER - X
10화
'지금, 뭔가 오한이…'
엑스는 한기가 등골을 타고 올라오는 것을 느끼며 오싹거렸다.
스즈카에게 있어서는 안타깝게도, 오늘의 엑스는 아리사와 별 다른 약속이 없었다. 그렇기에 지금은 외출하지 않고 집에 얌전히 틀어박혀있는 중이고. 오늘은 정기검진날도 아니기 때문에 하야테의 곁에 있어줄 생각이었다.
─라고 결심한 것까진 좋았는데 어째서 이렇게 된걸까.
'이런 결과를 예상못한 것은 나 혼자만이었던가…'
"엑스 군. 거긴 그게 아니데이.
그리고 이 모든 사태의 원흉, 하야테는 상당히 불만스러운 얼굴로 손을 흔들었다. 다른 손에는 카메라를 든 채로.
"억지로 웃는 것처럼 보이믄 안된데이. 자연스럽게, 내츄럴하게."
엑스에게 지금 이 상황에서 '자연스럽게 웃어라'는 말은, 너무나도 가혹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엑스는 얼굴을 움직여, 소녀의 기대에 응하기 위해 표정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덧붙여서, 지금 소년이 입고 있는 옷은 평소의 것이 아니다.
─바로 얼마전, '심부름' 명목으로 사와야 했던 옷. 그 중 하나다.
드레스점 앤틱☆고딕은 그 이름 그대로, 앤틱계와 고딕계의 복장만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가게다. 부자들의 취미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의외로 가격은 꽤 저렴해서, 그쪽 계통의 코스프레를 즐기는 사람들에게도 상당한 호평을 받고 있었다─ 라는 사실을 엑스가 알고 있을 리는 없고, 그저 이 상황이 한시라도 빨리 지나가길 기도하고만 있었다.
하다못해, 지금 입고 있는 이게 '남성용'이기만 했어도 이렇게 좌절하지만은 않았을텐데.
여하간 하야테는 지난번에 사온 옷들로 두 사람만의 즉석 사진회를 개최했고, 이것이 2회 째. 그 전에는 집사 복장에다 고양이 귀와 꼬리를 붙여야 했다. 그것도 괴상하긴 마찬가지였지만 적어도 '남자옷'이라는 점에서 지금보단 나았다.
하야테는 엑스에게 이런저런 자세를 취하게한 후 셔터를 눌렀고, 방안에서는 플래시가 비추어졌다.
이제야 겨우 끝난건가, 라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순간.
"응, 응~♪ 굿 앵글로 나왔고… 그럼 다음 옷 간데이."
"아직도 있어?!"
"무슨 소리고. 이거, 엑스 군이 사온 옷이제? 그럼 더있는 거 알건데?"
… 확실히 그랬다. 그때 사왔던 기억에 의하면, 아직 남아있는 옷이 한벌 더 있다. 이 생지옥이 조금 더 이어져야 한다는 걸 생각하면 눈앞이 노랗게 되버릴 것만 같은 기분에 휩싸였다.
그나마 유일한 위안은 그것만 찍으면 끝난다고 하는 걸까. 사실 별 위안은 안되지만서도.
"어라어라. 엑스 군 지금 상당히 큰 착각을 하고 있나보네."
"… 무슨 소리야?"
다음에 이어진 하야테의 말은, 역전의 용사인 엑스조차 공포에 떨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지금까지 찍은 건 '감상용'. 이제 '보관용'이랑 '포교용'도 찍어야제."
"뭐야, 그건?! 게다가 '포교'라니?! 다른 사람한테도 보여주겠다는 거야?!"
지금까지 찍은 사진들이 하야테 이외의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보여진다 -> 대파국.
상정할 수 있는 최악의 사태에까지 생각이 이르자, 엑스의 얼굴에서 '혈색'이라고 할만한 것이 깨끗이 사라져갔다.
"응~ 그건 어떡할까냐~"
"…… 하야테."
자신은 분명 이 소녀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다. 그것을 너머, 어떤 종류의 의무감마저 가지고 있다고 해도 좋다.
그날, 이 소녀의 앞에서 눈물을 보이고 난 후 이 소녀를 지키겠다고 맹세한 것은 틀림없이 진실. 거기에 거짓은 없다. 그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하야테. 아무리 그렇더라고 해도.
"나는 지금… 아주 조금, 네가 미워지려고 하고 있어."
"뭐, 이 부분은 농담이데이. 이건 불특정 다수한테 보여주긴 아까우니까."
'불특정 다수'가 아닌 사람에게는 보여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남기며, 하야테는 미소를 지었다.
결국 하야테의 '사진회'는 그로부터 약 2시간이 지난 후에야 종료되었다.
전투를 한 것도 아니고 격한 신체 노동을 한 것이 아님에도 몸과 정신 양측이 피로에 젖어있다. 요 근래 들어 이런 체험이 많아진 엑스는 슬슬 이런 일들에 익숙해져가는 자신자신을 자학하고 있었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과거의 실수에 얽매여있어서는 미래로 나아갈 수 없는 법. 좌절을 하는 건 1시간 정도로 끝내고 엑스는 정신을 차렸다.
"… 근데, 엑스 군은 지금 뭐하고 있는기고?"
하야테는 컴퓨터를 두들기고 있는 엑스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그렇게 말했다.
"업그레이드."
"… 부품같은 거 없는데?"
"아니, 컴퓨터 업그레이드 말고."
지난번 마그마 드래곤과의 교전에서 똑똑히 느낀 것이 있다.
첫째로, 보통의 레플리로이드나 그 수준의 적을 상대할 때는 문제가 없지만, 그 녀석처럼 정말로 강한 상대와 싸울 때에는 버스터 차지의 타임 러그마저도 치명적이라는 것. 둘째로, 그것을 메우기 위해 존재하는 '파츠 교체'마저도 통하지 않는 상대가 있다는 것.
지금의 엑스에게는 지금까지 그가 싸워왔던 A랭크 이상의 레플리로이드들이 가지고 있던 힘이 모두 담겨있다. 그것을 '팔'과 '다리'처럼 신체의 일부 파츠를 교환하는 식으로 사용했는데, 그것만으론 부족하다.
'쓸데없이 숫자만 많아봤자 의미가 없어. 그렇다면─'
─필요 최저한으로 숫자를 줄이고 하나하나의 기능과 위력을 올린다. 이것이 최선결 사항.
물론 이 세계의 컴퓨터─특히 하야테의 방에 있다가 엑스의 방으로 옮겨온 이 녀석─에 그의 몸을 개조할 수 있을 정도의 성능은 바랄 수 없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엑스 자신의 연산을 보조하기 위한 것. 그나마도 최저한도의 레벨로, 오직 복합연산을 위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본격적인 정비조차 무리겠지만, 적어도 지금 머리속에 떠오른 연산식들을 정리 해둘 수는 있다.
"… 뭐하고 있는건가 도저히 모르겠는데."
하지만 하야테의 눈에는 어디까지나 온갖 숫자들의 나열에 지나지 않는다. '일부러 그렇게 보이도록' 했으니까. 싸우기 위한 힘을 설계하고 있다는 것을 들키고 싶진 않았다.
한참동안 엑스의 뒤쪽에서 책장을 뒤적거리거나 침대에서 뒹굴거리거나 하고 있던 하야테는 결국 지루함을 견디지 못하고 다시 말을 걸었다.
"그러고보니까… 엑스 군 고향은 어떤 동네고?"
"… 어째서 갑자기?"
엑스는 하야테의 질문에 키보드를 두드리던 손을 멈추고 몸을 뒤로 돌렸다. 사실 계속 이것만 두드리고 있는 게 질리기도 했고, 하야테를 무시하는 것도 안좋은 일이니까.
"이야기해준 적 없으니까. 자아, 자아. 그래서. 어떤 곳이고?"
"어떤 곳이냐고 물어도…"
자신의 고향인만큼, 아르카디아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막상 그것을 언어로 바꾸려고 하면, 뭐라고 표현해야할지.
단어를 고르고 있는 엑스에게, 하야테는 "잠시 기다리그라."고 말한 후 책상 앞으로 다가가, 서랍을 열고 뒤적거렸다. 그리고는 한장의 종이를 꺼내고는 다시 엑스의 앞으로 돌아왔다.
"그러면─ 이렇게. 이 둘 중에 어느 쪽이고?"
그리고, 서랍에서 꺼낸 그림을 엑스에게 보여주었다.
http://cfile202.uf.daum.net/image/206AF41B4BDE297D024950
…… 한순간, 뭐라고 해야할지 말을 잃었다. 어째서 이런 그림이 책상 서랍에 들어있던걸까.
하지만 그보다도 더 웃긴 것은─ 실수. 웃을 수 없는 것은, 전체적으론 윗쪽이지만 부분적으론 아래쪽이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어디까지나 '부분적'으로지만.
'시그마의 반란'과 '요정전쟁' 이후, 아르카디아의 자연은 급속도로 황폐해져갔다. 숲과 초원은 생명을 잃어 사막으로 바뀌고, 산은 깎여나가 황무지로 변했으며, 강과 호수는 말라버렸다. 아르카디아의 지형 자체가 크게 변해, 바다를 볼 수 있는 곳도 사라져갔다. 결국 인간도 레플리로이드도, 특정한 '구역'에 세워진 도시 이외의 장소에서는 살아갈 수 없게 되버렸을 정도로.
─그리고, 그런 '바깥'에서는 이미 그들이 알고 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생태계'가 태어나고 있었다.
'안'과 '밖'을 구분하는 방어벽, 「프론트 라인」. 그 너머에 있는, 「그라운드 제로[절멸 지대]」(이하 GZ)라고 이름붙여진 땅.
엑스조차도 깊숙한 곳까지는 들어가보지 못했으며, 들어간다 하더라도 무상(無傷)으로 나올 수 있다고는 생각할 수 없는 곳. 마지막으로 가본 것은 2년 정도 전이지만, 그때에도 그전까진 볼 수 없었던 '괴생물체'들이 잔뜩 존재하고 있었다. 그야말로 엑스조차 경시할 수 없을 정도의 전투력을 가진 녀석들이.
게다가 더욱 놀라웠던 것은 이미 그곳에도 하나의 '질서'가 자리잡고 있었던 것이지만─ 지금 이 시점에서 중요한 사항은 아니다.
약 0.1초간 위의 생각을 정리한 엑스는 1초도 더 고민하지 않고 이렇게 대답했다.
"위쪽."
"…… 에."
"… 뭐야, 그 반응은."
"아니, 뭐랄까… '평범한 미래도시'라서 좀 실망했달까."
… 다행이다. 지금의 반응으로 보건대 하야테는 아르카디아에 대한 흥미를 잃어버린 것 같다. 하지만 차라리 그쪽이 낫다. 적어도, 그런 '꿈도 희망도 없는 진실'을 듣고 꿈이 깨져버리는 것보다는.
아주 약간, 양심의 가책을 느끼며 엑스는 그렇게 자기합리화에 들어갔다.
'라고 생각하고 있겠제, 지금 쯤.'
엑스의 거짓말은 알기 쉽다. 하야테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눈 감아주기로 했다. 물론 '어느 부분이 거짓말인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엑스가 있던 세계가 '평화로운 곳'이 아니라는 것만은 알 수 있다.
─만약 그랬다면, 이 소년이 그날 밤 그런 상처를 드러내진 않았을테니까.
굳이 지금, 소년에게 캐물어야할 이유는 없다.
이런 식으로 하나씩, 조금씩.
가까워지면서, 서로를 알아간다.
지금은 그것으로 충분. 소녀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럼 내는 내 방으로 돌아간데이. 저녁 식사 시간때엔 부를테니까."
소녀가 바란 것은 아주 작은 소원.
그저 이대로, 소년과 함께 하는 생활이 이어지기를.
소년이 바란 것은 아주 작은 소망.
그저 이대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평화가 이어지기를.
하지만.
그런 두 사람의 바램은.
이 날을 기점으로, 산산히 부서지게 된다.
6월 4일, 오전 0시.
야가미 하야테가 9세의 생일을 맞이하는 날.
쇠사슬이 감겨져있고, 십자형의 장식이 붙어있는 '검은 책'.
하야테가 특히 아끼는 그 책이, 책장에서 저절로 빠져나와 허공에 부유한 채로 어두운 흑보라빛을 발한다.
책의 표지는 마치 혈관을 연상하게 하는 '어떤 것'이 불룩 튀어나와 뒤덮은 채로 연동하고 있었다.
그 연동이, 그 진동이 점차 심해지더니, 책을 감싸고 있던 쇠사슬에 점차 금이 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실이 끊어지고─ 맹렬한 기세로 책이 펼쳐진다.
─하야테는 일련의 과정을, 침대 위에 주저앉은 채로 그저 넋을 잃은 채 지켜보고만 있었다.
한참동안 페이지가 넘어가던 '검은 책'이 느닷없이 덮여지고, 장식이 붙어있는 가장 앞의 표지가 하야테를 향한다.
─그 십자 장식이, 흑보라빛을 덮어버릴 듯한 새로운 빛을 발한다.
「Anfang(기동)」
어디의 누가 말한 것일까.
그런 것을 생각하기도 전에, 하야테의 가슴으로부터 하얀 빛이 흘러나와 그녀의 눈을 끌었다.
이윽고, 하야테의 앞에 떠오르는 작은 빛덩어리. 그것은 천천히 책을 향해 날아가, 그 안에 깃들었다.
그 순간 강렬한 빛이 터져 나와, 하야테의 눈을 가렸다.
"으, 웃…!!"
빛이 사라질 때까지, 하야테는 두 팔로 눈을 가리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빛이 사라지고, 하야테가 팔을 내린 후 눈을 열면 침대 앞에, 보라색의 수많은 문장들이 나타나 천천히 회전하고 있다.
─그리고, 그 앞에.
─하야테를 향해, 검정색의 옷으로 몸을 감싼 네 명의 '인간'이 한쪽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인 채 있다.
가장 먼저, 앞에 있는 장발의 여인이 입을 열었다.
"어둠의 서의 기동을 확인했습니다."
그 뒤에 있는, 금발의 여인이 뒷말을 잇듯이 말한다.
"저희는 어둠의 서를 수집하며 주인을 지키는 수호 기사입니다."
금발 여인의 옆에 있는 갈색 피부의 남자가 말한다.
"야천의 주인 밑에 모인 구름."
그리고 가장 오른쪽에 있는 작은 체구의 소녀가 말을 끝맺는다.
"볼켄 리터. 무엇이든지, 명령을."
그 상태로, 네 사람은 새로운 주인의 명령을 기다린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새로운 주인'에게서 명령이 떨어지지 않는다.
어떻게 된일일까, 하고 고개를 살짝 들어올려 '주인'을 살핀 소녀─ 비타의 눈이 커진다.
뭐라고 형용할 수 없는 표정을 하며, 비타는 자리에서 일어나 침대로 향했다.
그리고는 잠시 후 동료들을 향해 사념 통화를 날렸다.
<저기 말야. 여기, 여기.>
볼켄리터의 장 「시그넘」과 금발의 여인 「샤멀」은 그런 비타를 향해 사념을 받아쳤다.
<비타짱, 쉿!>
<하지만 말야…>
<입 다물고 있어. 주인 앞에서의 무례는 용납되지 않아.>
그렇지만, 그런 두 사람의 비난에도 비타는 태연하게 말했다.
<무례라고 할까… 이 녀석, 기절한 거 같은데.>
<… 뭐?>
<거짓말?!>
비타의 말을 듣자마자, 세 사람은 고개를 들어올려 '새로운 주인' 하야테를 올려다보았다.
비타의 말대로 하야테는 침대 위에 발랑 넘어진 채 의식을 잃고 있었다.
어떻게 해야할까 고민하다가, 이대로 둘 수도 없기에 옮기기로 하고 하야테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때였다. 소녀의 '보호자'가 나타난 것은.
"무슨 일이야!!"
벌컥, 하는 효과음이 어울릴듯한 기세로 엑스는 거세게 문을 열고 들어왔다.
어둠의 서의 수호기사, 볼켄리터는 어둠의 서의 주인을 보호하는 사명을 지니고 있다. 당연히 '정체를 알 수 없는 인물이 갑자기 주인의 방에 난입해온 상황'은 그들에게 경계심을 품게 만들었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경계심의 수위라면 엑스 쪽이 더 높았으면 높았지 낮을 리 없다.
방에 들어오고 난 이후에야 발견한 거지만, 하야테는 의식을 잃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런 하야테의 앞에 있는, 수상하기 그지없는 4인조. 이런 상황에서는 의심하지 않는 쪽이 이상하다.
무엇보다도 엑스가 알고 있는 사람 중에는 납치당할 뻔한 소녀, 아리사도 있다. 최근에는 마그마 드래곤이 좀처럼 자기 앞에 나타나지 않기에 생긴 초조감도 갖고 있었다.
─그렇기에, 곧바로 4인조를 향해 돌진한다는 방법을 택했다.
"문답무용, 적인가…!!"
볼켄리터의 마지막 한 사람, 쟈피라는 돌진해오는 엑스를 보고는 앞으로 나섰다.
그리고 날아오는 철권. 엑스는 얼굴을 향해 날아오는 주먹을 그대로 두 손으로 붙잡았다.
"뭐…!"
쟈피라가 놀라는 것도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 그의 주먹에는 '보통 인간'이라면 받아낼 수 없을 정도의 힘이 실려있었다. 그런 것을, 두 손이라고는 해도 어떤 무게감도 없이 잡아내버린 것이다.
「볼트 캣피쉬」
엑스의 오른손이 전기를 다루는 레플리로이드의 것으로 변한다.
그 변화가 끝나자마자 엑스는 붙잡은 주먹을 통해, 쟈피라에게로 전격을 흘린다. 보통 인간이라면 의식을 잃어버릴─하지만 결코 생명에는 지장이 없을─ 정도의 출력으로.
─그러나 쟈피라는 그것을 무시하고 남아있는 왼쪽 주먹을 휘둘렀다.
'쓰러지지 않아… 어째서?!'
아무런 방어도구도 없이, 붙잡은 팔을 통해 직접 주입한 전격에도 끄떡없다.
그것에 놀라면서도 엑스는 방어를 잊지 않았다. 쟈피라의 오른팔을 잡고 있던 두 손을 놓고 빠르게 움직여, 날아오는 왼주먹을 받아낸다. 그리고 그 받아내는 충격을 이용해 몸을 반회전시키며, 왼발로 걷어차 쟈피라를 공격한다.
하지만 쟈피라 역시 두 팔을 빠르게 회수하여 교차시키고 그 킥을 막아낸다.
─'쾅'하고, 사람의 발과 사람의 팔이 부딪혔다고는 생각할 수 없는 파공음이 들리고는 쟈피라의 거체가 뒤로 수십센티미터 정도 밀려난다.
'인간이 맨몸으로 받아냈어… 지금 그 공격을?!'
'마법도 사용하지 않고 이 충격…! 이 녀석 인간이 아닌건가?!'
'마법도 사용하지 않고 이 충격…! 이 녀석 인간이 아닌건가?!'
'마력'이라는 힘이 존재하며 그것으로 신체를 강화할 수 있다는 것을 알 리 없는 엑스. '레플리로이드'라는 기계 생명체가 지닌 전투력을 알 리가 없는 쟈피라. 두 사람은 서로에게 경악하면서 거리를 벌렸다.
엑스는 다시 몸을 낮추고 전투 태세를 취하고, 쟈피라는 우둑우둑 소리를 내며 팔을 풀었다.
"조심해라. 이 녀석은 강하다."
쟈피라는 시선을 엑스에게서 돌리지 않은 채, 다른 기사들을 향해 경고했다.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다른 기사들도 움직이기 시작한다. 시그넘과 비타가 자신들의 검과 철퇴를 불러내고 샤멀이 마력을 운용한다.
'… 다른 세 사람도, 이 남자와 같은 힘을 가지고 있다고 하면─'
게다가 아직 힘을 본격적으로 드러낸 게 아니라고 하면, 전투형태가 되지 않는 한 상대할 수 없다.
생각이 끝난 다음 해야할 일이 정해진 이상, 망설일 것도 주저할 것도 없다. 엑스는 앞으로 달려나가며, 자신의 몸을 '아머'로 감쌌다.
─목표는, 가장 앞에 나와있는 검의 기사.
"이 나를 상대로 정면으로 오는건가…!"
잠깐 놀란 얼굴을 했던 여성, 시그넘은 곧 도발적인 미소로 얼굴을 물들였다.
그녀는 자신의 분신, 불꽃의 마검 「레반틴」을 들어올리고 한발짝 앞으로 나간다.
그 시점에서 이미, 엑스는 그녀의 바로 앞까지 도착한 상태. 엑스의 주먹은 이미 그녀의 얼굴을 목표로 하고 날아오고 있었다.
엑스는 자신을 향해 떨어지는 그녀의 검을 인식했다.
그것을 피한다고 해도, 그다지 큰 타임 러그는 없다. 피하고 나서도, 충분히 공격을 넣을 수 있다.
설령 그 뒤에 뭔가 다른 수가 있다고 하더라도, 이쪽 역시 그것을 감지하고 대처할 수 있─
─엑스의 머리 속을, 느닷없이 찾아온 통증이 차지한다.
─눈앞이 백색과 흑색의 노이즈로 가득 차고─
─지극히 한순간. 아마도 0.1초도 되지 않는 시간이지만─
─의식을, 잃어버렸다.
그 다음, 엑스가 의식을 찾았을 때.
그때는 이미 그녀의 검이 보라빛의 전격을 휘감은 채 엑스의 머리로 떨어지기 직전이었다.
「자전일섬紫電一閃」
조금 전 엑스와 쟈피라가 일으켰던 충돌음. 그것을 몇배로 불린 듯한 폭음이 울린다.
거기에 더해 보라색의 스파크가 방안을 가득 메워 시야를 어지럽힌다.
그러나 그것은 지극히 짧은 순간의 일이고─ 그것이 끝나기도 전에, 엑스는 머리부터 바닥에 쳐박혀, 바닥을 함몰시킨다.
"… 제압한건가?"
"아마도… 라고 생각하지만."
시그넘이 미심쩍은 표정으로 말하지만, 엑스는 이미 움직이기 시작했다.
바닥을 양손으로 짚고 머리부터 바닥에서 떼어낸 후 몸을 일으킨다. 그리고는 한손으로 얼굴 부분을 감싼 채 뒤로 물러났다.
<… 쟈피라.>
<아아. 조금 전의 공방 때도 보통 녀석이 아니라고는 생각했지만… 살상 설정이 아니었다곤 해도 네 공격을 머리에 받고도 일어나는건가.>
엑스에 대한 경계심을 높이며, 볼켄리터는 무기를 들어올렸다.
하지만 엑스의 상태는 겉보기만큼 멀쩡하진 않았다. 아니, 단언하건대 이 세계로 온 이후 최악이다.
손으로 가리고 있는 얼굴 부분에서는 끊임없이 스파크가 튀어오르고 있고, 머리 속에서는 온갖 이명과 노이즈가 자리잡고 있는 중이다.
균형 감각은 이미 잃어버린지 오래. 서있는 것이 고작으로, 한 걸음이라도 움직였다간 넘어져버릴지도 모른다.
이 세계에 온 이후로 줄곧 그를 괴롭히고 있던 두통. 그것이 일어나고 있는 와중에 머리를 공격당했다. 게다가─
'지금 그건… 전기 속성이었나…!'
아까 머리에 공격을 받았을 때, 충격과 함께 전기충격이 흘러들어왔다.
말할 것도 없지만, 엑스는 '기계생명체'다. 당연히 머리도 전자 두뇌로 되어있고, 그곳에 전기충격이 직접 가해진다는 것은 상당히 위험한 일이다. 보통이라면 헬멧으로 막아냈겠지만, 유감스럽게도 지금의 엑스는 루시퍼에 의해 헬멧을 파괴당한 상태다.
그것이 두통과 합쳐져서 이명과 노이즈의 원인이 되어 균형감각을 흐트러뜨리고 있었다. 이제 겨우 마그마 드래곤에게 받았던 머리의 데미지가 나아가고 있었는데.
그러나, 그렇더라도 싸우지 않으면 안된다.
자신의 몸같은 것은 나중에 고쳐도 된다. 지금은 하야테를 구하는 것이 우선.
그렇게 생각하고, 손을 버스터로 바꾼다.
"… 그러고보니."
'책'의 안에서.
'그'와 이야기를 나누었던 분수대에 걸터앉아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던 '그녀'는 나지막하게 한숨을 토했다.
"저번에 만났을 때 '책'이 기동하는 게 '오늘'이라고 이야기해주는 걸 잊고 있었다."
잠시 후, '그녀'가 바깥으로 신호를 보내 "어? '주인'의 가족?! 어어, '보호자'라고옷?! '적'이 아닌거잖아?! 싸울 상대가 아닌 거잖아?!" 바깥에서 대패닉이 일어나게 만든 것은 말할 것도 없다.
───to be continu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