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송합니다."
"아니, 그러니까 신경쓰지 않아도…"
"정말로 죄송합니다."
"……"
"죄송하고 송구스럽기 그지없습니다. 주인 하야테의 지인께 폭력을 휘두른 죄, 용서해주신다면 무엇이든지─"
볼켄리터의 리더, 열화의 장 시그넘은 이마가 바닥에 닿도록 엎드려 있었다. 상대는 물론 비정하리만치 주저없는 일격을 날렸던 엑스다.
비단 그녀 뿐만이 아니다. 비록 머리를 바닥에 찍고 있는 것은 그녀 뿐이었지만, 그녀의 뒤로 나머지 세 사람이 무릎을 꿇은 채 앉아있었다. 하지만 엑스로서는 이런 것을 받아봐야 그저 곤란할 뿐. 난처한 얼굴로 볼을 긁적이며 하야테를 돌아보자, 그녀도 천천히 고개를 저어 결정권을 엑스에게 맡겼다.
천만다행히도 하야테는 단순히 의식을 잃었을 뿐이라고 이시다에게 「아무 문제 없음」 판정을 받았다. 오히려 함께 찾아간 볼켄리터들이 수상함 120%의 차림새였기 때문에 그쪽을 추궁당했고, 시그넘과 사념 통화로 연결한 하야테가 '먼곳에서 와준 친척들'이라고 둘러댄 덕분에 간신히 간신히 넘어갈 수 있었다(물론 이시다가 완전히 믿었다고는 생각할 수 없고, 하야테의 태도를 봐서 그냥 넘어가준 것 같지만).
그리고는 돌아왔는데, 그 이후로 이런 상황. 시그넘을 비롯한 볼켄리터는 자리에서 일어날줄을 몰랐다.
결국 엑스는 한숨을 내쉬고 시그넘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시그넘씨… 라고 하셨던가요. 그리고 그 뒤의 분들이 샤멀씨와 쟈피라씨, 비타씨라고."
"예, 그렇습니다."
"그렇게까지 말하니, 제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까지 그런 일을 하면 곤란하니까 조금은 훈계하도록 하죠."
한 손으로 머리를 문지르고 있던 엑스가 자세를 똑바로 하는 것과 동시에 볼켄리터들이 고개를 들었다.
"여러분들에 대한 이야기는 '그녀'에 대해서 들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있던 곳과는 달리 이곳에서는 '싸워야할 적'이 그다지 존재하지 않아요. 그런 이곳에서 아까 전과 같은 공격을 남발하는 것은 문제가 크죠. 다행히도 이번에는 맞은 사람이 저였기 때문에 문제가 생기진 않았지만, 앞으로 같은 일이 생기면 굉장히 곤란해요. 물론 여러분의 주인은 제가 아닌 하야테니까, 여러분에게 직접적으로 지시할 권리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이번 일을 미안하다고 생각하면 따라줬으면 좋겠어요."
"… 네, 진심으로 반성하고 있습니다."
사실 과민반응을 보인 건 엑스도 마찬가지지만, 적어도 엑스는 힘 조절이라는 걸 했다. 비살상 설정이었다곤 하지만 전혀 사양않고 레반틴을 휘둘러준 시그넘에게 이런 이야기를 할 자격은 충분히 있다.
그리고 엑스는 손뼉을 쳐서 주변을 환기시켰다.
"그럼 제 이야기는 여기까지. 질문 사항이 있으면 지금 하도록 하세요."
"… 저기. 정말로, 이걸로 끝인가요…?"
머뭇거리면서도 손을 들고 질문한 것은 호수의 기사 샤멀이다. 사실 그녀만이 아니라, 엑스와 하야테를 제외한 이 자리의 모두가 그 뒤의 벌이 있을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뭐,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반성문도 써서 제출하라고 하고 싶지만 모르고 한 일이니까 거기까진 하지 않도록 하죠. 무엇보다도 여러분들은 하야테가 걱정되서 한 일이겠죠?"
"… 볼켄리터 일동, 온정에 감사드립니다."
"그렇구나… 이 아이가 어둠의 서구나."
"네."
볼켄리터는 하야테의 앞에서 어둠의 서에 대한 설명을 했다. 덧붙여 엑스는 관련자가 아니기 때문에 한쪽 구석에 비켜서서 그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철이 들었을 때는 이미 선반 위에 있었는데. 예쁜 책이라서 소중하게 보관하고는 있었지만서도."
"각성 때와 자고 계실 때, 어둠의 책의 소리를 듣지 못하셨나요?"
하야테가 책상 위에 있는 작은 서랍장 안을 뒤적거리며 뭔가를 찾는 동안, 샤멀이 그렇게 물었다. 하야테는 신중한 얼굴로 물건을 찾으며 샤멀의 말에 대답한다.
"으응, 나 마법사 아니니까 막연했었는데… 아, 있다!"
그 동안 목적했던 물건을 찾았는지, 기쁜 얼굴로 외친다.
그리고는 휠체어를 이동시켜 수호기사들의 앞에 선다.
"알아낸 게 하나 있는데. 어둠의 책의 주인은 수호기사 모두의 의식주를 확실하게 책임져야만 한다는 거. 다행히 잘 곳은 있고, 요리는 특기네. 모두의 옷을 사야 하니까 사이즈 재게 해도."
그 질문에, 수호기사들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잠시동안 멍하게 하야테를 바라보았다.
그 대화를 지켜보며, 엑스는 다시 한번 한숨을 내쉬고는 조용히 오른손을 뒤로 돌렸다.
소리없이 스파크를 일으키며, 작은 경련으로 떨고 있는 손을 감추기 위해서.
IRREGULAR HUNTER - X
11화
아무튼, 옷이다.
지금 시그넘들이 입고 있는 옷은 몸에 달라붙는 검정색 슈츠. 까놓고 말해서 바깥에서도 입을 수 있는 옷이 아니다. 아니, 솔직한 심정으로는 집안에서도 입히고 싶지 않다.
그런 이유로, 하야테는 엑스를 데리고 시그넘들의 옷을 사기 위해 옷가게에 와있었다.
치수라면 이미 쟀으니까 문제없음. 옷의 취향은 듣지 못했기 때문에 하야테가 적당히 골라주는 수밖에 없지만, 하야테의 센스는 좋은 편이다. 필시 그다지 나쁜 옷은 사지 않겠지.
… 물론, 이번에도 코스프레같은 걸 시킬 셈이라면 전력으로 저지할 생각이었지만.
'그건 그렇고… 평행 세계인가.'
수호기사들과 하야테의 대화 중에 몇번이나 나왔던 단어다.
오랜 세월… 그러니까 결코 짧다고는 할 수 없을 엑스의 생보다 몇배는 긴, 정말로 오랜 세월 동안 수많은 세계를 여행해온 마도서라고 한다.
과학의 결정체인 엑스의 입장에서 '마법'이라고 하는 것은 낯설기 그지없는 단어지만, 이야기를 들어보면 기초는 과학에 있는 모양이라니까 고도로 발달된 과학 기술정도로 이해하면 문제없을 거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그런 것보다도.
'그럼 나도 아르카디아에서 평행 세계로 날려온 걸까.'
지금까지 얻은 정보로서는 그 점이 가장 유력하다. 게다가 그녀들의 이야기에 따르면 평행 세계를 이동하는 방법도 확립되어있다고 하니까, 어쩌면 아르카디아로 돌아가는 것도 가능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곧─
"엑스 군, 이거 어떻노?"
"좋지 않을까? 시그넘 씨는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약 0.0001초. 머리 속의 기묘한 노이즈가 생겨났지만, 통증은 미미했다. 인상을 찌푸리지 않고 끝났을 정도로.
그 대신, 조금 전까지 자신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잊어버리고 하야테의 질문에 대답하는 것을 우선했다.
'아직까지 모르는 부분이 많긴 하지만… 하야테한테 가족이 늘어나는 건 좋은 일이니까.'
사실대로 말하자면 엑스도 조금… 아니, 상당히 기대하고 있었다. 거의 즐기고 있는 셈이라고 봐도 좋다.
아무리 강한 정신력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파괴와 싸움만으로 도배되어있는 지난 세월은 엑스에게 너무나도 큰 고통이었다. 그렇기에, 요 1개월은 정말로 즐거웠고, 앞으로의 생활 또한 즐거울 것 같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상당히 기대되는걸.'
그리고 엑스는, 어느 사이엔가 웃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놀랐다.
이렇게 저절로 웃음이 나왔던 적은 오랫동안 없었는데.
'내일부터는 어떤 생활이 될까?'
'내일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멘탈 회로가 두근거리는 것을 느낀다.
엑스는 지금의 이 감각이 너무나도 기뻤다.
─우직.
"엑스 군?"
"어, 어어?"
"무슨 일 있나? 이 옷 별로 안좋은기가?"
"아니, 그런 게 아니라… 아무것도 아냐."
엑스는 황급히 그렇게 말했고, 하야테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별다른 추궁없이 다시 고개를 돌려, 옷 수색 작업을 재개했다.
하야테가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는 오른손을 뒤로 숨겼다.
그의 뒤에 있는 철제 난간의 일부분이, 심하게 찌그러져 있었다.
어둠의 서의 수호기사 「볼켄리터」.
그들이 만난 이번의 주인은, 어딘가 이상했다.
… 그래. 정말로… 지금까지 만났던 어떤 주인과도 달랐다.
"에, 기사 갑주?"
"네. 저희들에게 무기는 있습니다만, 투구와 갑옷은 주인으로부터 받지 않으면 안됩니다."
"자신의 마력으로 만들기 때문에, 형상만 떠올려주시면…"
"그런 일을 말해도, 난 모두를 싸우게 하거나 할 생각은 없는디…"
기사들의 소원에 대해, 머리를 짚고 진지하게 생각한다. 그것을 보면서, 기사들은 조금 전에 했던 생각을 다시금 떠올린다.
그녀는 확실히, 한번도 만나본 적 없는 타입의 주인. 지금까지의 이들처럼 그녀들을 강압적으로 대하거나, 단순한 싸움의 도구로 취급하는 게 아니라, 다른 '어떤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마치… 보통의 '인간'을 대하는 것처럼. 여기까지 자신들의 의견을 존중해주고, 그것을 고려해주는 주인은 없었다.
"아, 옷이면 되나? 기사다운 옷."
"네, 상관없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나쁜 기분이 든다는 것은 아니다. 단지 지금까지 대해보지 못했던 '상냥함'에, 어떻게 대답해야할지 모르는 것 뿐.
"그럼 자료를 찾아서 멋있는 걸 생각하지 않으면 안되겠네. 맡기만 도."
하야테는 수호기사들에게 웃으며 그렇게 대답했다.
그리고 약 1시간 후.
"…… 저, 여기는…"
"괘안데이, 괘안데이. 이런 곳에야말로 어울리는 게 있는거니께."
호수의 기사, 샤멀이 침음성을 흘리며 기가 막혀하는 것도, 어느 의미로는 당연한 일이다.
하야테가 비타와 샤멀을 데리고 온 가게의 이름은 '토이자러스'. 쉽게 말해 장난감 가게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야테는 그녀들의 반응에 전혀 신경쓰지 않고 앞으로 앞으로 나아간다.
문득, 뒤에서 말없이 따라오고 있던 비타의 발걸음이 멈춘다.
선반 앞까지 걸어가, 몸을 앞으로 굽히고 '눈에 띈 물건'을 응시한다.
그것은 그녀가 보고 있는 인형 선반 가장 안쪽에 앉아있는 하얀 토끼의 인형.
타원형으로 아래쪽으로 쳐진 빨간 눈, 꿰매져있는 입. 장식으로 붙어있는 검정색 나비 넥타이를 제외하면 다른 건 아무것도 붙어있지 않은, 단순한 토끼 인형이다.
하지만 비타는 말없이 그 녀석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비타는 그런 자신을 하야테가 보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로부터 수십분 후.
세 사람은 가게에서 필요한 것들을 구입한 후, 집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이미 해가 지는 시각이 되어, 하늘은 석양빛으로 물들고 기분좋은 바람이 불어오고 있다.
"상쾌한 바람이네요."
"정말이네."
"날씨도 좋고."
"산보가긴 딱 좋은 날이네."
샤멀과 하야테가 서로 그런 대화를 주고받는 동안, 비타는 하야테로부터 받은 봉투를 소중히 끌어안은 채 뒤에서 걸어오고 있었다.
이건 뭘까. 감촉으로 뭔가 부드러운 물건이 들어있다는 것은 알 수 있다. 크기도 대강은 느껴진다. 꼭 '그 녀석'과 같은─ 아니아니, 그런 것은 생각할 수 없다. 쓸데없이 희망을 가지면 그게 빗나갔을 때의 실망이 몇배로 커지니까. 이것은 주인이 자신에게 맡긴 물건이다. 자신에게 준 물건이라는 보장은 일단 없다. 물론 이번의 주인은 지금까지의 주인들과는 심하게 엇나가고 있지만, 그래도─
"비타."
마음속으로 온갖 횡설수설을 하고 있는 비타의 머리를 하야테의 한마디가 정리시킨다.
"이제 봉투에서 꺼내도 된데이."
잠시 그녀를 멍하게 바라보던 비타는 그 말을 이해하자마자 재빨리 손을 봉투 안으로 집어넣어 꼼지락거렸다.
싸움 때 이외에, 매초가 이렇게도 길게 느껴졌던 적은 없었다. 곧 비타의 손은 '솜털같은 물건'을 붙잡았고, 그것을 봉투 밖으로 꺼낸다.
말할 것도 없이, 비타의 손에 잡혀나온 그것은 비타가 가게에서 발견했던 '그 녀석'. 흰 토끼 인형이다.
화아앗, 하고 비타의 얼굴에 웃음이 번졌다. 지금까지의 뚱한 얼굴과는 달리, 정말로 하야테 또래의 소녀로밖에 보이지 않는… 정말로 행복한 듯한 웃음이.
"하야테, 고마─"
감사의 인사를 하려다가, 먼저 가고 있는 하야테들을 발견하고는 그대로 뛰어가서 따라잡는다. 그녀의 입에는 조금전까지 있던 즐거운 웃음이 걸려있고 그 소리가 밖으로 나오고 있다.
수호기사로서 자아를 가진 이후, 이만큼 즐거운 적은 없었다. 그렇게 생각하며 비타와 샤멀은 하야테와 함께 집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주인 하야테…"
"그냥 하야테로 좋다는데도 그래 부르네. 근데, 와?"
"그… 엑스 씨, 라는 분은…?"
샤멀이 조심스럽게 꺼낸 말은 비타도 알고 싶었던 부분이다.
하야테의 말로는 가족. 이시다의 말로는 지인 겸 보호자. 하지만 혈연 관계는 없다. 외형상으로는 보통의 소년 정도로 보이지만 신체 능력만으로 쟈피라에 맞서보였던 격투 능력 등을 볼 때 보통 인간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다. 마도사는 아닌 것 같지만, 마지막에 보여준 갑주는 '전사'의 그것이다.
일단 저지른 죄가 있고 그것을 시원스럽게 용서해줬기에 묻어두고 있다 뿐이지 근본적인 의심은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 그녀들에게 있어서, 주인 이외의 인간은 일단 경계하고 봐야하는 존재니까.
"으응, 한달 쯤 전일까. 그때부터 같이 살고 있고마. 이래저래 사정은 복잡하지만서도 착한 아이인기라."
"착한 '아이'인가요…"
지금의 그 발언을 엑스가 들었다면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한순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생명의 은인이기도 하고!"
"… 생명의 은인?"
이것은 처음 듣는 이야기다.
"아, 밖에서 할 만한 이야기는 아니고… 집에 돌아가면 그때 자세하게. 응? 엑스 군도 요새 음식 솜씨가 늘었단 말이제~ 가르쳐주면 가르쳐주는대로 쑥쑥 잘 해내고. 가르키는 보람이 있다 안카나."
하야테가 요리할 때의 움직임을 자신의 신체 사이즈에 맞춰서 그대로 인스톨시킨 후 행하고 있을 뿐이라는 걸 알지 못하는 하야테에게 있어, 엑스는 훌륭한 학생이었다.
"그리고 있제… 샤멀들이 걱정하는 일은 없을기라."
"네?"
그리고 이때.
하야테가 뒷말을 이으며 지은 표정은, 놀랍도록 어른스럽고, 차분해보였다.
지금까지 그저 상냥한 소녀라고만 생각했던 인상을 뒤집어버리듯이.
"언제부턴지도 모를만치 이래 살아왔으니께, 딴 사람들 악의라던가 하는 거엔 특히 민감하단 말이제…"
그러니까, 엑스 군은 문제없다.
그렇게 말을 맺으며, 하야테들은 집으로 돌아왔다.
야가미 저(邸)의 부엌은, 전쟁터가 되어있었다.
"─그럼."
엑스는 지극히 진지하고 신중한 얼굴로, 손에 쥔 계란을 프라이팬 모서리에 부딪혔다.
그 순간 튕겨져서 허공으로 올라간 계란은 높은 포물선을 그리며 엑스의 머리에 낙하. 그대로 깨져서는 투명하고 노란 내용물이 흘러나와 엑스의 청은빛 머리카락을 물들였다.
뚝뚝 바닥에 떨어지는 점액질을 보며, 엑스는 한탄했다.
"… 또인가."
고기를 다지려다 도마 채로 썰어버린 게 3회.
생선을 굽다가 폭발시켜버린 게 7회.
야채를 손질해서 샐러드로 만들다 엎어버린 게 22회.
그리고 지금처럼 실수해서 계란을 깨트린 게 대망의 30회 째.
평소에는 문제없이 할 수 있었던 행위들이 지금은 하나하나가 요새 함락에 필적하는 난이도를 자랑하고 있었다.
다시 한번 분명히 말해두겠다. 평소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하야테만이 아니라 이시다에게도 "성인이 되면 요리사라도 해보는 게 어때?"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정도니까. 지금이 '이상사태'인 것이다.
"… 괜찮으십니까."
처음 3회 째의 실패 이후 멀찌감치 떨어져 대피해있던 시그넘과 쟈피라(지금은 푸른색 늑대의 모습)가 다가와 조심스럽게 물었다.
"네, 괜찮아요. 힘 조절을 조금 잘못한 것 같네요."
"… 아까부터 그 '조금'이 계속 이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만."
"자각하고 있으니까 그렇게 돌려서 말하지 않아도 되요."
그래도 어찌어찌 요리 자체는 완성되었다. 고기 찌개에 감자조림, 쌀밥과 된장국을 비롯한 그 이외의 음식들의 조합. 원래는 서양인으로 보이는 수호기사들을 배려해서 양식으로 할 생각이었지만 거듭된 실패로 재료가 바닥나버리는 바람에 어쩔 수 없었다. 조금 전의 계란은 계란 프라이까지 포함해보려다가 실패한거고.
… 이건, 들키면 혼날지도.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새 가족의 환영회였기에 조금 요란하게 하기로 했지만 소모된 재료에 비해 완성된 음식은 상당히 적다. 아마도 사용된 재료의 반 이하. 물론 6인이 먹기엔 충분하다고 생각되지만─
'… 뭐, 이건 걱정해도 어쩔 수 없을까.'
솔직하게 말하고, 꾸중을 듣도록 하자. 반쯤 체념에 가까운 생각을 하며 엑스는 주방을 정리하고 자신이 쓰고 있는 2층의 욕실을 향해 걸어갔다.
엑스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시그넘과 쟈피라는 간신히 한숨을 토하며 소파에 앉았다(쟈피라의 경우엔 바닥).
"… 끝났다…"
"… 아아."
무서웠다. 진심으로 무서웠다. 설마하니 '요리'를 가지고 저런 전쟁터를 방불케하는 광경을 만들어낼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투지는 커녕 어쩐지 살기마저 담은 채 요리를 하고 있던 엑스의 모습은 귀신이 따로 없었다. 저 백전연마의 수호기사 시그넘과 쟈피라마저도 주눅들게 만들 정도로.
"더 놀라운 건 어떻게든 청소가 끝났다는 거군."
쟈피라의 말대로다. '주방을 정리하고'라고 말은 가볍게 했지만, 그 내용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분명 엑스가 청소하는 것에 실수는 없었다. 필요한 장소에 정확히 그 실력을 발휘했으며, 그의 손이 거친 곳은 완벽하게 요리 전의 모습으로 돌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에는 대단히 놀랐다.
하지만 가끔 가다 싱크대에 부딪힌다거나 접시를 쌓아놓은 선반을 쳐서 넘어뜨릴 뻔하여 시그넘과 쟈피라가 재빨리 달려가─아마도 전투 상황이 아니면서 이렇게 빨리 움직여본 적은 없다 싶을 정도로─ 받치게 만들었다거나.
분명 청소나 요리에 익숙한 모습을 보였으면서도 '익숙한 사람이라면 결코 저지르지 않을 실수'를 반복하고 있었다. 물론 요리할 때에 비하면 봐줄 수 있는 수준이라곤 하지만, 두 사람이 도와주었기 때문에 '봐줄 수 있는 수준'이 됐다는 걸 감안하면 용서할 거리가 못된다. 만약 시그넘과 쟈피라가 없었더라면 주방은 완전히 초토화 됐을테니까.
잠시 소파에 몸을 눕혀 정신적인 피곤함을 달래고 있자니, 얼마 지나지 않아 욕실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마도 엑스가 몸을 씻고 나온거겠지. 그렇게 생각했을 무렵.
─무시무시한 소리가 연달아서 들려온다.
"무슨 일입니까?!"
소리의 근원지는 엑스가 있던 방향. 정확히는 2층의 욕실에서 1층으로 내려오는 계단 쪽이다.
시그넘과 쟈피라가 도착했을 때… 엑스는 계단 아래 쪽에 거꾸로 넘어져 천정을 올려다보고 있는 상태였다.
"……"
"……"
"… 굴러떨어진 겁니까?"
"축약하면 그렇게 되네요."
아까의 것은 계단에서 굴러떨어지는 소리였던가.
누운 채로 몇번째인지 모를 한숨을 토한 엑스는 몸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하지만 일어나자마자 다시 비틀. 벽을 짚고 근처에 있던 시그넘이 부축하고 나서야 간신히 제대로 일어설 수 있었다.
"어딘가 불편하신 것 아닙니까? 아까부터 계속─"
"아니오, 문제없으니까요… 조금 있으면 괜찮아져요."
자동 수복 프로그램이 멀쩡한 건 정말로 다행이라니까. 속으로 그렇게 덧붙인다.
"… 와아, 심하네, 저 녀석."
계단에서 굴러떨어진 것까진 있을 수 있는 실수라고 쳐도, 요리 때 있었던 일은 멀리 이곳에서 지켜보고 있던 그녀조차 등골이 오싹해질 정도였다. … 뭐, 괜찮을까. 용케도 살아있는 것 같으니까.
유감스럽게도 어둠의 서 각성 장면이나 저 녀석이 처음 집에 온 날은 놓쳤지만, 그 뒤로 꾸준히 감시를 계속해온 결과, 그녀가 엑스에 대해서 내린 판정은 '무해'였다.
정체를 알 수 없다곤 해도 결국은 평범한 인간 소년. 오히려 그녀의 아버지는 그 성실함과 상냥함을 높게 평가한 것 같다. 가능하면 이런 일에는 휘말리지 않았으면 좋았을것을, 이라고 했을 정도로.
그녀로서도 다소는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지만, 어쩔 수 없다.
이 일은, 아버지와 자신들의 오랜 숙원이니까.
"지금 정도는 평온하게 지내주세요."
짧은 시간이겠지만, 괜찮을 것이다.
아무리 미리 정해놓은 일이라곤 하지만, 지금 정도의 행복을 누리는 것은.
소녀에게도, 소년에게도 그 자격은 있을테니까.
그렇게 생각하며, 그녀는 보고를 위해 모습을 감추었다.
"우와, 많이도 차려놨네."
"정말이네요. 이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됐을텐데."
하야테와 샤멀의 감상을 들은 시그넘과 쟈피라는 고개를 돌렸다.
이 테이블을 태우기 위한 음식을 만드는데 어떤 일이 벌어졌었는지 다 알고 있었던 두 사람이기에, 차마 뭐라고 말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덧붙여서 먹고 싶은 기분도 들지 않았다.
하야테와 샤멀, 비타가 자리에 앉자, 마지못해서 시그넘과 쟈피라도 자리를 차지한다.
"어? 엑스 군은?"
"잠시 방에 올라가있겠다고 했습니다."
"에, 이건 시그넘들 환영회고, 엑스 군이랑 내랑 만난 1개월 기념인데."
"많이 피곤한 듯이 보여서…"
하기야, 냉장고 안에 뭐가 들었는지도 모를 시그넘과 쟈피라가 요리했을 리는 없고. 혼자서 이만한 양을 차리려고 하면 상당히 힘들었겠지. 하야테는 그렇게 납득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할 수 없네… 그러면 다들─ 잘 먹겠습니다~"
"… 잘 먹겠습니다."
하야테가 먼저 말하고, 그 뒤를 수호기사들이 잇는다.
쟈피라는 여전히 늑대의 모습이었기에 홀로 식탁 밑에 있는 밥그릇에 입을 대고 있었고, 비타의 경우엔 젓가락의 사용법을 몰라 젓가락 끝으로 음식을 '푹' 찔러서 들어올려 먹고 있다. 다행히도 시그넘과 샤멀은 어째서인지 젓가락 사용법을 알고 있었고.
그리고 수초 후.
"… 맛있다."
비타의 입에서 나지막하게 나온 말이, 모두의 감상을 대신하고 있었다.
"그제, 그제? 엑스 군도 요리 잘한다니까네."
"놀랐네요. 가능하면 엑스 씨 본인도 참가해줬으면 했지만 이렇게 맛있는 걸 만들려고 노력해줬으니까 강요할 수도 없고."
이건 하야테와 샤멀의 감상.
하지만 시그넘과 쟈피라의 감상은 조금 달랐다.
'조리 과정에서 있었던 일을 생각하면─'
'… 이건, 상정했던 걸 가볍게 뛰어넘는군.'
확실히 요리 실력 자체는 좋았던 모양이다. 과정이 문제였지.
'… 잊자. 잊는거다. 부엌에선 아무 일도 없었던거야.'
두 사람은 눈빛만으로 그렇게 의견을 통일했고, 아까 전까지 있었던 재난을 잊어버리기로 했다.
"… 역시."
엑스의 방.
소년은 혼자서, 몸 상태를 자체 진단하고 있었다. 오늘 하루 있었던 이런저런 일들의 원인을 찾기 위해서.
하지만 엑스 본인도 대강 짐작은 하고 있었고, 원인은 상정했던 시간보다 훨씬 빨리 발견되었다.
그리고 그 원인이란 역시, 생각했던대로─
"지속적으로 누적된 데미지의 폭발… 이라."
1개월 전, 루시퍼와의 재전 때부터 이어졌던 부상. 그것이 마그마 드래곤과의 교전에서 다시 터졌었고, 그 위에 '어둠의 서'에게 접속하다가 입은 데미지가 쌓였다. 아마 하야테를 만난 날에 발견되었던 멘탈 회로의 이상도 한몫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누적된 데미지를 한번에 폭발시킨 열쇠는
"… 시그넘 씨의 공격이군."
마그마 드래곤의 승룡권을 제외하면 이 세계로 온 이래 최대의 충격이었다. 그런 것이 헬멧도 없는 머리에 직격했으니 이상이 없을 리 없다.
그것은 엑스도 알고 있었지만, 설마 그것이 '누적 데미지 폭발'이라는 최악의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까지는 생각하지 않았다.
게다가 그 공격이 불러온 효과는 그것만이 아니다.
바로, 오늘 있었던 모든 일들의 원인.
"… 밸런스 회로, 엉망이네."
덕분에 지금 균형을 잡기가 상당히 힘들었다. 난간을 찌그러뜨린 것도, 요리를 망친 것도, 계단에서 굴러떨어진 것도, 이런 것도 저런 것도 전부 밸런스를 잡지 못해서 생긴 일. 아까도 생각했지만 천만다행히도 자동 수복 프로그램은 이상이 없었으니까, 밸런스 회로도 폭발한 데미지도 언젠가는 고쳐질 것이다. 물론 반년 정도의 시간은 걸리겠지만.
'그때까지는 이 신세… 우울해지는데.'
그리고 엑스는, 몇번째인지 모를 한숨을 다시 한번 토했다.
───to be continu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