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및 문화 콘텐츠 사이트 삼천세계

IRREGULAR HUNTER - X


원작 | , ,


"처음 뵙는군요. 시공관리국 소속 차원항행함 「아스라」의 함장, 린디 하라오운이라고 합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이레귤러 헌터 소속 유격대장 엑스입니다."
[… 마그마 드래곤이다.]
[… 스톰 이글입니다.]
[… 웹 스파이더다.]
"협력자인 리니스라고 합니다."
"아스라 소속의 집무관 크로노 하라오운이다."
"유노 스크라이어 입니다."
"타, 타카마치 나노하예요…"


나노하와 유노의 명령 불복과 무단 행동에 대해 한바탕 야단을 친 후, 린디는 그들을 아스라로 불러들였다.
스스로를 이레귤러 헌터 소속이라고 당당하게 밝힐 수 있는 엑스와 달리, 다른 세 헌터들의 소개는 간결했다.
분명 그들은 스스로를 이레귤러 헌터로 여기고 있고, 그 신념으로서 움직이고 있지만 분류적으로는 '이레귤러'니까. 게다가 전과가 있기 때문에 자기 자신을 이레귤러 헌터라고 소개하기에는 여기저기 마음에 걸리는 점이 많다.
그들로서는 다행스럽게도, 그들의 자세한 사정을 모르는 린디는 그들 셋도 엑스와 같은 소속이라고 여기고 더이상 추궁하지 않았다.


하지만.


'… 뭐야, 이 방은.'
'저거, 시시오도시라고 하는거지. 게다가 곤로까지 있고.'
'분재는 그렇다쳐도… 나머지는 의미를 모르겠는데.'
'이건 그건가. 인터넷에서 슬쩍 봤던 일본 문화 잘못 배운 쟈포네스크라고 하는 거. 하지만 왜 이런 방으로?'


결정적으로, 린디도 그 옆의 크로노도 정좌 자세. 그에 이끌려, 이레귤러 헌터들도 얌전히 무릎을 꿇고 정좌 중이었다. 엑스의 경우엔 아직 헬멧도 벗지 않고 있었다.
물론 이레귤러 헌터 중에서 가장 인간형에 가까운 엑스나, 인간의 모습으로 변신이 가능한 리니스는 별 문제가 없었지만, 지금까지 태어나서 한번도 정좌라는 걸 해본 적이 없는 셋은 대단히 고생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불편을 입밖으로 꺼내지 않고 있는 것은, 지금 이 장소에서 중요한 이야기가 나올 것이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녀는 린디 하라오운이다. 시공관리국의 국원으로서 현장을 돌아다니며 수많은 공적을 쌓고 ​3​(​삐​이​이​이​)​세​라​는​ 비교적 젋은 나이에 함장이 되어 지금까지 그 자리를 역임하고 있는 인물. 상대가 불편하다고 여기고 있다는 정도는 금새 알아차렸다.


"어라, 자리가 불편하신 모양이네요."
[… 아니, 그 정도까지는.]
"신경쓰실 필요없어요. 여러분에게 비교적 익숙한 분위기를 마련한다고 준비한 건데… 오히려 불편하다면 본말 전도죠. 편하게 앉으세요."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엑스와 리니스 외의 셋은 곧바로 다리를 풀고 각자가 생각하는 가장 편안한 자세로 고쳐앉았다.


"함장~ 차 가져왔습니다."
"들어오렴."


문이 열리고, 에이미가 차를 가지고 들어와서 찻잔을 전원의 앞에 놓고 차를 따른 후, 쟁반을 내려놓고 자신도 한쪽에 자리를 잡아 앉는다.
린디는 곧 자신의 앞으로 쟁반을 끌고 와, 홍차에 우유를 타고 설탕을 집어넣기 시작했다.
홍차를 마시는 법에는 '밀크티'라고 하는 것도 있기 때문에 우유와 설탕을 타는 것 자체는 놀랄 것 없다. 그렇기에 린디가 스푼이 넘치도록 설탕을 퍼서 홍차에 한 스푼 집어넣을 때까지는 그러려니 하고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나 두 스푼, 세 스푼을 넘어 다섯 스푼이 되었을 때는 얼굴들이 경직되었고, 아홉 스푼까지 갔을 때는 외계인을 보는 표정으로 변했다.


이 자리를 상당히 어려워하고 있는 헌터들과는 달리 나노하와 유노, 크로노는 한결 편하게 자리에 앉아있었다. 지금까지 몇번이나 엑스에게 도움을 받아온 세 사람은 눈앞의 사람들이 적이 아니라고 인식하고 있었고─물론 크로노의 경우엔 마그마 드래곤에 대한 눈길은 험악했지만─, 그 덕분에 이 자리에서 꼭 협력하게 되길 바라고 있었으니까.
나노하는 부끄러움으로 얼굴을 물들이며 주저주저하다가 간신히 입을 열었다.


"저, 저기!"
​[​[​[​"​"​응​?​"​"​]​]​]​


조용한 가운데에 부르는 소리가 들리자, 헌터측의 다섯명이 전부, 일제히 나노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한순간 움찔하고 주눅이 들었던 나노하지만, 마음을 다잡고 용감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지난번에도, 그리고 이번에도… 도와주셔서 정말로 감사합니다!"


무슨 말이 나올까 경계까지 하고 있던 헌터들이었지만, 나노하에게서 나온 것은 순수한 감사의 인사였다.
그녀의 말에 엑스는 조용히 고개를 젓고 대답했다.


"천만에. 할 일을 한 것 뿐이니까."


'나노하양, 잘 했어.'


나노하로서는 전혀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지금 그녀가 헌터들에게 말을 걸어준 것으로 상당히 분위기가 풀어졌다.
지금 이 상황에서 필요한 이야기를 꺼내려면, 딱딱한 분위기보다는 어느 정도 풀어져있는 것이 좋은 법이니까.


린디는 나노하에게 속으로 감사하며, 입을 열어 이야기를 꺼냈다.

 

 

 


IRREGULAR HUNTER - X



21화


 

 

 


헌터들의 대표로서 린디와 주로 이야기를 주고 받은 것은 엑스였다.
리니스에게 맡겨도 좋았겠지만, 자신들의 사정을 어느 정도 숨겨가며 밝히기 위해서는 자신이 직접 이야기하는 게 나을테니까.


레플리로이드. 인간과 지극히 유사하며, 감정을 가진 기계 생물.
이레귤러. 프로그램 이상이나 성격이 포악하여 인간에게 해를 끼치게 된 레플리로이드.
이레귤러 헌터. 그런 이레귤러들로부터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존재하는 레플리로이드 조직.
자신들은 이레귤러 헌터 소속이며, 이레귤러들을 쫓던 중에 리니스와 만나게 되었다는 것.
리니스로부터 '마법'과 '쥬얼 시드'를 비롯한 지식들을 얻었으며, 이 사태 해결을 위해 손을 대게 되었다는 것.
이 이야기들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자신들이 사실은 다른 세계의 소속이라거나 그 모든 레플리로이드의 근원이 자신이라는 사실은 제외했다. 이야기해서 마이너스가 되면 됐지 플러스가 될 것 같진 않았으니까.


"그렇군요… 우리들은 당신이 인간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인간은 아닙니다. … 제 아버지는 '인간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할 수 있도록' 저를 만드시긴 했지만요."


린디에게 있어서 그 말은 상당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보통의 '기계'는 인간이 아니다. 인간은 커녕, 생물조차 아니다.
하지만 눈앞의 소년은 그런 '기계'이면서도, 인간과 같이 될 수 있는 노력을 할 수 있다. 그런 것을 할 수 있는 '기계'를 만든 누군가가 있다.
린디는 이해타산을 떠나서 솔직한 심정으로, 그 '누군가'가 정말로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리니스… 라고 불러도 되나요?"
"네, 부디 편하신대로."
"그럼 리니스. 당신의 전 주인인 대마도사 「프레시아 테스타롯사」가 이 일련의 사건을 일으킨 배후라고… 그렇게 말했죠?"
"네."


차원을 넘어선 마법 공격. 게다가 그 공격들은 「전혀 다른 차원」에서, 「각기 다른 차원」 두개를 대상으로 이루어졌다.
그런 것이 가능한 사람이라면 틀림없이 대마도사 클래스. 관리국 전체를 통틀어도 열 손가락 안에 꼽힌다. 당장 린디만 해도 오버 S랭크의 마도사로 관리국 내에서도 인정받는 실력자지만 그런 것을 해낼 자신은 없었다.


─와지직.


느닷없이 들려온 소리에 깜짝 놀란 사람들이, 소리가 난 방향을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지금 막 들고 있던 찻잔을 뭉갠 걸로밖에 보이지 않는 엑스가 손을 닦고 있었다. 그 광경에 에이미가 당황하면서 말을 걸었다.


"… 저, 차가 입에 맞지 않았나요?"
"… 아니오. 이쪽의 문제이기 때문에."


오른손의 손가락을 움직여본다.
다섯개의 손가락 중 생각했던 대로 움직이는 것은 3개 뿐이고, 나머지 두개는 컨트롤과 달리 제각기 따로 놀고 있다.
아무리 엑스라고 해도 온리 메뉴얼로 움직이는 것은 부담이 클 수밖에 없고, 그 때문에 전투 시에도 극히 불리한 상황이라고 판단하지 않으면 그것을 사용하지 않는다. 때문에 지금은 행동 연산을 그만두고 불완전한 밸런스 회로를 가동시킨 상태.


─즉, 아까 이레귤러들과 싸우기 전의 엑스로 돌아온 것이다.


AI에 손상을 주지 않는 한도 내로, 온리 메뉴얼로 행동 가능한 시간은 5분.
'그녀'와 함께 만든 '프로그램'은 5분 동안의 온리 메뉴얼 행동을 가능하게 만들었고, 5분이 경과되면 강제적으로 밸런스 회로를 작동시키고 행동 연산을 그만두게 만드는 프로그램이다.
본래 엑스로서는 이런 것을 만들 생각이 없었지만, 타인이 위험하다 싶으면 자기 몸의 위험을 돌보지 않게 되버리는 엑스의 성격을 간파한 '그녀'가 엑스의 반항을 억누르고 반강제로 만들어 설치한 것이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판단은 옳은 것이었다. 실제로 엑스는 이게 없었다면 어디까지 무리했을지 모르니까.


"… 그, 손은?"
"부상의 후유증이라고 할까, 그런 거니까 신경쓸 필요 없어요."


의문은 남았지만 본인이 괜찮다고 하는 이상 더 추궁하는 것도 예의가 아니다.
그렇게 생각한 린디는 본론으로 들어갔다.


"크로노. 사건의 근원에 대한 자료를."
"네. 에이미, 부탁해."
"네이, 네이."


에이미가 이리저리 손가락을 움직였고, 곧 헌터들과 마도사들 사이에 하나의 스크린이 떠올랐다.
그 스크린에는, 칠흑색의 옷으로 몸을 감싼 한 사람의 중년 여성이 떠올라있었다.


"리니스 씨의 증언을 바탕으로 자료를 뒤져 찾아낸. 우리들과 같은 미드칠더 출신의 마도사 「프레시아 테스타롯사」. 전공은 차원 항행 에너지의 개발. 위대한 마도사였지만… 위법 연구 및 사고에 의해 쫓겨난 인물입니다. 등록 데이터와 아까 공격의 마력 파동도 일치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마도, 예의 그 아이와 이 사람은…"


나노하는 기억을 떠올렸다.
번개가 떨어지기 직전에, 페이트가 중얼거린 소리를.
놀라움이라기 보다, 공포가 섞여있던 그 소녀의 목소리를.


분명히, '어머니'라고.


자신들의 머리 속에 떠오른 생각이 맞냐는 것처럼, 리니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리니스는 그녀들의 시선에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 저는 그녀의 딸인 페이트의 교육계로서 만들어졌고, 시한을 두고 계약하여 얼마 전까지 페이트의 교육을 맡아왔습니다. 그녀의 과거에 대해서는… 지금 알았지만요."


리니스의 이야기를 듣고, 에이미가 말을 시작했다.


"프레시아 테스타롯사… 미드의 연혁으로 26년 전에는 중앙 기술 개발국의 제 3국장이었지만 당시 그녀 개인이 개발하고 있던 차원 항공 에너지 구동로인 「휴드라」를 시용하던 중에 위법적 재료를 갖고 실험을 진행하여 실패. 결과적으로 중규모 차원진을 일으켰다는 이유로 중앙에서 쫓겨나 지방으로 이동하게 됐지요. 그 당시에도 상당히 시끄럽게 옥신각신 했던 모양이에요. 실패라는 건 단순히 결과일 뿐이고 실험 재료에도 위법성은 없었다고."


에이미가 가져온 기록에 의하면 지방으로 옮겨간 이후 수년 간은 기술 개발을 하지 않고 조용히 지냈다고 한다.
하지만 그로부터 얼마 후에 행방불명되었고… 지금, 모습을 드러내었다.


"행방불명 되기 전까지의 행동은 관리국의 공식 기록엔 남지 않았고… 그 공백 기간동안 페이트 테스타롯사가 태어났으며 그 교육을 위해 리니스와 계약을 했다…"


린디는 지금까지 나온 자료들을 종합해서 정리해보았다.
하지만 그래도 풀리지 않는 점은 많이 있다. 리니스라고 해서 프레시아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건 아니었고, 쥬얼 시드 수집의 동기나 본인이 직접 나서지 않고 어린 딸을 이용하는 이유, 여기에 '이레귤러'라고 칭해지는 기계인간들과의 협력 연유 등등. 하여튼 부족한 자료가 너무 많다.


"에이미, 프레시아 여사의 가족과 그 이후 행적에 대해서 본국에 문의해주겠니?"
"그렇게 말씀하실거라고 생각해서 벌써 본국에 조사해달라고 이야기해뒀어요. 오늘이나 내일 중으로 된다고."


에이미의 말에 린디는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유능한 부하는 일단 두고 볼 일이다.
프레시아도 페이트도, 그만큼의 마력을 방출한 직후다. 적어도 지금 당장 또 움직이거나 할 순 없을 것이다.


"그 사이에 아스라의 실드 강화도 하지 않으면 안되고…"


린디는 해야할 모든 일들을 생각해내고 계산한 다음, 나노하와 유노를 돌아보았다.


"너희들은 잠깐 쉬어두는 게 좋겠네. 특히 나노하양은 너무 오래 학교를 쉬면 좋지 않으니까. 일시적으로 귀가를 허가할테니 가족과 친구들에게 잠시 얼굴을 보여주도록 해. 말 나온 김에, 지금부터 갔다오는 게 좋을 것 같아."
"…… 네."


나노하는 석연치 않은 얼굴이었지만, 일단은 수긍했다.
아마도 그녀가 그런 표정을 하고 있는 것은 "어머니"라는 단어를 말하면서도 애정이 아닌 공포를 담고 있었던 페이트가 신경쓰였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린디가 말하는 것도 사실. 나노하와 유노는 자리에서 일어나, 한번 더 엑스들을 향해 고개를 숙이고 나갔다.


─그리고, 마침내 이 자리에는 원 아스라 멤버와 이레귤러 헌터, 그리고 리니스만이 남게 되었다.


"그러면 시작할까요. 프레시아 여사에게 협력하고 있는 그 '이레귤러'들은 어떤 이들인가요? 그리고 무슨 이유로 그녀에게 협력하고 있는건지 짐작가는 곳은?"


엑스는 린디의 질문에 잠시 눈을 감고 생각을 정리했다.
그리고 그것이 끝났을 때, 다시 눈을 뜨고 질문에 대답했다.


"그들은 기본적으로 자신의 욕망과 일그러진 심성에 의해 움직입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도저히 순수한 호의로 그녀─ 마도사 프레시아 테스타롯사에게 협력하고 있다고는 생각할 수 없어요. 가장 가능성이 있는 것은 그들이 원하는 것을 프레시아 테스타롯사가 가지고 있으며, 그것을 힘으로 빼앗기에는 여의치 않은 상황일 경우의 '거래'정도 겠죠. 저희들로서도 그들이 사람과의 거래를 하고 있다는 것에는 혼란스러워하고 있었습니다만, 그 의문도 풀렸습니다. 그녀가 그 정도로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다면, 정면 대결로는 손해가 크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레플리로이드라는 건, 거기까지 생각할 수 있는건가…"


기계의 몸인데도 인간과 같은 수준의 고등 사고 능력.
지금까지 가지고 있던 '로봇'에 대한 상식이 깡그리 부숴지는 것을 느끼며 크로노는 중얼거렸다.


"… 높은 사고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게 좋은 것만은 아니지만요."


만약 레플리로이드들이 정말로 단순한 기계들처럼, 아무런 생각없이 주어진 임무를 수행하기만 하는 존재였다면 "이레귤러"라고 하는 것도 태어나지 않았을 것이고, 자의로 인간들에게 피해를 입히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레플리로이드들은 인간에 필적하는 '지성'과 함께,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능력을 갖추었고, 그것을 기반으로 더욱 성장하기까지 한다.
그 결과 '욕망'을 갖추게 되었고, 스스로 판단하여 인간에게 반기를 든다거나 인간처럼 온갖 사욕을 채우기 위해 범죄를 저지르는 일까지 생겼다. 결국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한다는 컨셉은 그야말로 희망과 위험을 함께 내포한 양날의 검이나 다름없게 되었다.


이미 인간과 다름없는 마음을 가지게 된 로봇들.
하지만 인간과 한없이 가깝기에, 더욱 더 큰 위험성을 갖게 된 로봇들.
그것이, ​"​레​플​리​로​이​드​"​다​.​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능력을, 올바른 방향으로만 발전시키는 것이 아니라 나쁜 방향으로 변질시키기도 한다… 그야말로, '인간'이네."


린디도 크로노도 에이미도, '인간'으로서 죄를 저지르는 차원 범죄자들을 상대하는 일이 많은 입장이다. 그렇기에 엑스가 말하는 '위험성'에 대해서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확실히 좋은 것만은 아니지만, 나쁘기만 한 것도 아니지."


그렇게 이야기를 꺼낸 것은, 그 "위험성이 많은 레플리로이드"의 한 사람에게 몇번이나 도움을 받은 크로노였다.


"분명 그 녀석들은 '엇나간 레플리로이드'의 견본같은 녀석들이겠지만, 여기있는 당신들처럼 '제대로 된 레플리로이드'의 견본들도 있잖아."


단지 자신이 도움을 받았기 때문에 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물론 그것이 계기이긴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예전의 크로노였다면 어떨지 몰라도, 눈이 트인 지금의 크로노에게는 확실히 보였다.


이들에게는, 그 다섯의 '이레귤러'에게는 없는 것이 있다.
올곧고, 비틀리지 않는 신념.
그것을 뒷받침하는 강인한 정신.
자신보다 동료를, 사람을 더욱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


그런 것을 가진 자들이, '악'일리가 없다.
지금의 크로노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당신들은 우리를 도운 게 '당연한 일'이라고 했지만, 남을 돕는 걸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시점에서 당신들은 놈들과 달라. 놈들 때문에 당신들이 부끄러워할 이유는 없고, 그럴 필요도 없어."


'… 어머나. 이건…'


린디는 아들이 다소 성장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녀의 아들은,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대단히 완고하고 융통성이 없었다. 어린 나이에 유능한 집무관이 되긴 했지만, 그 대신 지나치게 획일적인 '정의관'을 가지게 된 것이 걱정될 정도로.
그랬던 자신의 아들이, 불과 몇일만에 자신의 소신을 뒤집은 것이다.
자신들의 세계로 친다면 '전투기인'이나 다름없는 존재에게, 저렇게 솔직한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 있게 되었다.


'이건 나중에 따로 감사하지 않으면 안되겠는걸.'


린디가 아들을 보며 미소를 짓는 동안.


세 사람의 헌터들은 생각했다.
자신들은 다르다고.
지금이야 어떻든, 원래는 그 다섯과 다를 바 없는 존재라고.
자신들 중에서, 정말로 '올바른' 레플리로이드라고 할 수 있는 건 엑스 한 사람 뿐이라고.


엑스는 생각했다.
자신은, 그들이 생각하는 그런 존재가 아니라고.
─지금까지, 수많은 동족들을 쳐죽여 부숴오면서, 셀 수도 없는 죄를 쌓아왔다고.


하지만 아무도 지금의 감정을 입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얼굴로 드러내지도 않았다. 그럴 필요가 없으니까.


"자자, 그럼 이야기를 바꿔서."


그런 레플리로이드들의 감정을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 채, 린디는 손뼉을 치며 주의를 환기시킨 후 화제를 돌렸다.


"리니스. 당신은 그… 페이트 양의 선생님 역할을 했다고 했죠? 어떤 아이였나요? 그리고 그 늑대는?"
"… 착하고, 무슨 일에든 열심인 아이였어요. 단순히 어머니의 칭찬에 기뻐하고… 칭찬 받기 위해서, 마음에 들기 위해서 노력하고. 가끔은 그게 지나쳐서 무리를 할 때도 많았지만… 정말로, 착하고 좋은 아이였어요. 그리고 알프… 페이트의 사역마인 그 늑대요. 그 아이도 좋은 아이였어요. 물론 이거다 싶으면 밀어붙이는 경향이 강하고 가끔 생각하기를 싫어할 때도 있었지만, 둘은 좋은 파트너였죠."


리니스는 그녀들과 함께 했던 기억에 의존하여 그렇게 말했다.


"요컨대 어머니를 위해 노력하는 우등생과 그 사역마였다… 그런 이야기군요."
"… 네. 저는 어째서 이렇게 됐는지, 프레시아가 왜 이런 일을 벌이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그렇게, 오직 프레시아를 기쁘게 해주겠다는 것만을 위해서 노력하고 또 노력한 아이를 이런 위험한 일을 하게 만들다니."


결국, 모든 것의 열쇠는 프레시아와 그 아이에게 달려있다는 이야기다.
어째서, 프레시아는 쥬얼 시드를 노리는가. 그것을 밝혀내는 것만으로, 이 일의 진상에 대해 상당히 근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엑스 씨. 그리고 이레귤러 헌터 여러분. 정식적으로 부탁드리겠습니다. 이번 일이 해결될 때까지, 저희들에게 힘을 빌려주세요."


프레시아와 페이트만이라면 몰라도, 그녀들에게 협력하고 있는 이레귤러들의 존재는 버겁다. 결코 자신들의 힘이 약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상대의 힘을 과소평가할 생각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들에게는 이레귤러 헌터들의 힘이 필요하다.


"… 기꺼이. 하지만, 그 대신 저희들에게도 정보의 공유를 요청하겠습니다. 리니스 씨가 있다곤 해도, 저희들이 마법에 대해 완전히 문외한이라는 것은 변함이 없고, 대처 방법을 알아두지 않으면 안될테니까요."
"그야 물론, 얼마든지."


─그렇게.
'이레귤러 헌터'와 '차원항행함 아스라'의 국원들은 힘을 합치기로 결정했다.

 

 

 


[후우…]


부멜 쿠완거는 벽을 후려친 주먹을 추스렸다.
엑스에게 당했을 때 생겨난 분노도 격정도, 지금은 진정이 된 상태.
이것은 그의 냉정한 성격이 가져다 준 선물이기도 하다. 그의 두뇌는 지금 이 상황에선 쓸데없는 분노로 시간을 낭비하는 것보다는 앞으로의 일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을 내렸으니까.
엑스의, 그리고 헌터들의 힘이 예상 이상이었던만큼 계획을 서두르지 않으면 안되게 됐다.


[꾸왁. 쿠완거, 이제 어떡할거냐.]
[… 그 녀석들, 생각 이상으로 강했지. 결국 셋이서 하나 쓰러트리는 것도 못했잖아.]
[부옷! 그건 너희가 약해서다! 나 혼자였으면─]
[엉망진창으로 박살나서 가루가 됐겠지.]
[뭣?!]
[내가 틀린 말했냐, 코끼리.]
[이, 이 발 빠른 것 빼곤 쓸모도 없는 고양이 자식이이이…!!]


플레임 맘모스와 슬래시 비스트 사이의 공기가 스파크를 일으키기 시작했다.
무언가 계기만 있다면, 당장 싸움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그 정도로 살기를 내뿜고 있고, 무엇보다 이 둘의 성격을 감안하면 이상할 것도 없다.
그리고 여기에, 기름이 부어진다.


[꾸왁, 한심한 놈들. 그 따위로 노니까 3 : 1로 붙고도 못이긴거다.]
[부옷, 말 다했냐 난쟁이 펭귄!!]
[어이, 싸우는 건 알 바 아닌데 나한테는 피해 안오게 해라.]
[… 헌터 소속이었던 놈들은 전부 이런 놈들인가. 이놈이고 저놈이고 죄다 바보들 뿐이군.]
[레플리포스 떨거지가 함부로 지껄이지마!! 제네럴같은 얼간이 놈 밑에서 굴러다니던 놈이!!]
[?! 보스를 모욕했겠다, 이 자식!!]
[쳤냐?! 지금 친 거냐?! 오냐, 그래!! 너 아주 잘 걸렸다!!]
[자, 잠깐만! 아무리 그래도 우리들끼리 싸우는 건 게븍.]
[… 이건 또 어디서 끼어든거야?! 저리 꺼져!!]
[너나 사라져라, 쓰레기!!]


차일 펭귄이, 플레임 맘모스가, 스파크 맨드릴이, 슬래시 비스트가 목소리를 높여간다. 그 와중에 약간의 폭력 사태마저 일어나기 시작했다.
분노와 혐오와 경멸을 담은 말들이 사방으로 튀었고, 점차 불이 붙은 도화선이 줄어들듯이 가열되어간다.


그리고.

 


─쾅.

 


[전부 닥쳐.]


부멜 쿠완거가 벽을 쳐서 부수는 소리에, 일제히 소란이 멎었다.


[어째서 우리들 다섯이 힘을 합치게 됐는지 잊은거냐, 네놈들은.]


잊을 수 있을 리 없다.
자신들은 전부, 그 증오스러운 이레귤러 헌터 엑스에 의해 파괴됐던 이레귤러들. 두번 다시 그런 꼴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 힘을 합친 것이니까.


[잘 알고 있잖나. 그런데 지금 뭐하자는거냐, 이 한심하기 짝이 없는 꼴은.]


아주 작은 한마디를 시작으로.
신경에 거슬린다는 이유만으로, 일촉즉발의 상황까지 갔다.
이것은 어떻게 봐주어도, '협력자'들끼리의 관계라고 볼 수 없다.


[이래갖곤 아무리 머릿수가 있어도 소용없어. 놈들의 힘은 네녀석들도 그 몸으로 직접 겪어봤을 거 아냐!! 지금은 쓰잘데기없이 자존심을 내세우고 있을 때가 아니야!! 지금 이런 상황에서 우리끼리 갈라져버리면, 또 지난번과 같은 꼴을 당하게 될거다!! 그렇게 되고 싶다면 어디 한번 계속 해봐!!]


이빨을 가는 소리도 들렸고, 주먹을 움켜쥐는 소리도 들렸다.
─하지만 최종적으론, 부멜 쿠완거의 말에 반론하는 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할 말이 없다면, 이야기를 진행하겠다. 놈들의 힘은 분명 우리들의 예상을 넘고 있었다.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인정해야겠지. 이 중에서 놈들과 1 : 1로 정면 대결이 가능한 건 비스트 정도 뿐. 나를 포함한 나머지 넷은 분명히 말하는데, 놈들보다 한 수 아래다.]


물론 여기 모여있는 이들은 전부 헌터 랭크 특A급의 실력자였던 자들이다. 전투력에 대해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단지, 저쪽의 헌터들이 '같은 랭크 안에서 조금 더 실력이 좋은' 이들이 모여있다는 것이 문제였을 뿐이다.


[그 정도의 차이라면 금방 메우고 또 넘을 수 있다. 그럴 수단이 있으니까.]
[…?! 설마, 쓸 생각이냐!!]


스파크 맨드릴의 말에, 플레임 맘모스와 차일 펭귄도 눈을 부릅떴다.
유일하게 그 '수단'에 대해서 알지 못하는 슬래시 비스트만이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을 뿐이다.


[아, 그래. 쓴다. 가능하면 아껴둘 생각이었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어. 아무리 이걸 갖고 있어도, 우리들이 살아있어야 쓸모가 있는 거다.]


그렇게 말한 부멜 쿠완거는 작은 기계를 꺼내들었다.
그와 함께, 다른 세 이레귤러도 같은 형태의 기계를 꺼냈다.


[미안하군, 비스트. 이건 우리 넷밖에 없을 때 생각해낸 거라서 우리들 것밖에 없어.]
[… 아무래도 좋지만 말야. 그거 뭐하는 물건이야?]


슬래시 비스트는 자신의 몫이 없다는 사실에 신경쓰기보다, 그 기계의 정체를 궁금해하고 있다.
…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단순한 놈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부멜 쿠완거는 입을 열었다.


[아아, 그래. 이건─]

 

 

 


알프는 머리 끝까지 화가 난 상태로, 프레시아의 방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비록 몇년되지도 않는 삶이었지만, 태어나서 이렇게까지 화나본 적이 있을까. 대답은 NO다. 심지어는 리니스와 만났다는 사실조차 지금 이 순간만큼은 잊어버렸을만큼, 그녀의 삶 중에서 가장 화가 나있는 상태였다.


이유는 지극히 간단하다. 그런 일을 하고 돌아온 페이트에게 위로나 격려는 고사하고 또다시 학대를 했기 때문이다.
어째서 그렇게 좋은 기회를 두고 놓친거냐고, 그렇게도 어머니를 슬프게 하고 싶은 거냐고 지껄여대면서 채찍을 휘둘러댔다.
페이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저 죄송하다고 말하면서 비명을 지르는 것 뿐이었다.


결국 페이트는 그렇게도 무리를 한 몸으로, 의식을 잃어버릴 때까지 두들겨 맞았다.


용서못한다. 지금까지 계속 참고 있었지만, 더는 안된다. 이 이상은 용서할 수 없다.
알프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어떻게 자신의 아이에게 저렇게까지 가혹할 수 있는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다. 지금 그녀의 마음을 채우고 있는 것은 오로지 프레시아에 대한 분노 뿐으로, 지금 당장 찾아가서 주먹으로 날려버리며 따지지 않으면 자신이 견디지 못하게 될 것 같았다.


쓰러진 페이트에게, 자신의 외투를 걸쳐준 후 프레시아의 방을 향해 달려갔다.


"으, 아아아아아압!!"


─그리고, 있는 힘껏 문을 때려부수며 안으로 들어갔다.

 

 

 


프레시아의 방.
수많은 비석들이 반쯤 쓰러진 채 놓여져있고, 말라죽어가는 나무들이 우거진… 오래된 공동묘지와도 같은 풍경을 가진 방.
그곳에서 프레시아 테스타롯사는 지금까지 입수한 쥬얼 시드들을 자기 주변의 허공에 띄운 채, 그것들을 주시하고 있었다.
지금 그녀가 가지고 있는 쥬얼 시드는 전부 해서 11개. 과반수가 넘는 숫자지만, 그럼에도 충분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모은 쥬얼 시드는 전부 11개. 전체의 절반이 넘는 숫자지만, 그럼에도 모자랐다.
이걸로도 차원진을 일으킬 수는 있지만, 자신이 목표로 하고 있는 곳까지는 도달할 수 없다.
그나마도 이 중 넷은 부멜 쿠완거를 비롯한 이레귤러들 덕분에 얻게 된 것. 실제적으로 페이트가 얻은 것은 7개에 지나지 않았다.


도대체, 그토록 공을 들였는데 어째서 저렇게까지 무능한걸까.
페이트에 대해서 생각하면 할수록 분노와 혐오가 치밀어올랐다.


"아직, 모자라… 이걸로는 알하자드에 도달할 수 없어…!"


이대로는 안된다.
페이트는 무능하고, 부멜 쿠완거를 비롯한 이레귤러들도 큰 소리친 것에 비해 도움이 되지 않는다.


빨리 무슨 수든 쓰지 않으면─


"…… 욱!!"


갑작스럽게 나온 기침.
그와 함께, 입을 가로막은 프레시아의 손가락 사이에서는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 이제… 시간이 얼마 없어…! 나한테도, ​아​리​시​아​에​게​도​…​!​!​"​

 

 

─콰아아아앙!!

 

 

그 순간 방의 문이 부서지며, 폭발이 일어난다.
그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방으로 들어온 것이 알프라는 것을 확인하자 흥미를 잃은 것처럼 다시 몸을 돌렸다.


"……!!"


프레시아를 발견한 알프의 얼굴이 분노로 일그러졌다.
그녀에게는 이 방의 풍경도, 바닥에 살짝 고여있는 피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를 악물고, 단번에 도약하여 프레시아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녀의 손톱이, 이빨이.
대마도사의 머리를 노리고 날아든다.

 


─그 순간 프레시아의 등 바로 위에서 펼쳐진 보라빛의 장벽이 알프를 가로막는다.

 


"윽?!"


방어벽은 엄청난 압력으로 알프를 밀어냈지만, 날려간 알프는 곧바로 자세를 바로잡고 착지했다.
프레시아는, 그녀 쪽을 바라보지도 않고 있다.


이 여자…!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한 태도로…!


자신이 왜 여기에 왔는지.
어째서 이러고 있는건지.
그런 것따윈 신경쓰지도 않는다.


그것이, 화가 났다.


어째서 이 여자는, 이렇게까지…!!


​"​으​아​아​아​아​앗​!​!​"​


울부짖으며 다시 한번 달려들었다.
알프의 손이 프레시아의 머리에 닿기 직전 다시 한번 방어벽이 쳐졌으며, 알프는 그것에 가로막힌다.


압도적인, 정말로 압도적인 힘의 차이가 두 사람의 사이에 있었다.
상대는 자신이… 아니, 자신을 태어나게 해준 페이트가 이 세상에 나오기 훨씬 전부터 '대마도사'라고 불리던 여자.
보통으로 생각하면 이길 수 있을 리가 없다. 알프 자신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이기고 지는 것 따윈 아무래도 좋다.


어떻게든 이 여자에게 한방 먹여주고 크게 소리쳐주고 싶었다.
오직 그 일념만으로, 알프는 프레시아의 장벽을 깨부수고 그녀의 목을 틀어쥐어 자신쪽으로 방향을 돌렸다.


"당신은…"


두 손으로 프레시아의 목 근처 옷깃을 붙잡았다.
목을 그대로 잡고 있다간, 힘을 넣어서 부러뜨려버리지 않을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당신은 엄마고, 저 애는 당신의 딸이잖아!! 저렇게 노력하는 애한테… 저렇게 열심히, 죽을 힘을 다해서 노력하는 애한테…! 어떻게 그렇게까지 심한 짓을 할 수 있는거야?! 어떻게 그렇게까지 매정할 수 있는거야?! 부모라는 건… 엄마라는 건 그런 게 아니잖아!!"


지금까지 줄곧 하고 싶었던 말들이 한꺼번에 터져나왔다.
이번만이 아니다. 이 여자의 '체벌'을 가장한 '학대'는 이번 한번만이 아니다.
이 여자의 채찍은 지금까지 수없이, 수없이 페이트를 때렸고, 그때마다 알프는 이빨을 악물고 참아왔다.
이제껏 쌓아왔던 울분이, 지금 이 순간 한꺼번에 터져나온 것이다.

 


─하지만.


─그런 분노를 받아놓고도.


─프레시아는, 어떠한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아니,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고 하기 보다.
좀더 다른 무언가같은 느낌.


마치, '인형'처럼 텅 비어버린 눈동자로, 자신을 바라보고만 있을 뿐이다.
어떠한 대답이나 반론도 없이, 어떠한 감정도 보이지 않은 채.


'이 여자는… 대체…?'


마치 움직이지 않는 인형에 대고 소리치는 듯한 기분.
그 허무감에, 알프는 손에서 힘을 뺐다.

 


─그 한순간의 틈에, 프레시아의 손이 알프의 복부를 향해 보라빛의 빛을 쐈다.

 


"……!!"


프레시아의 손에서 발사된 '빛'은 알프의 복부를 관통했고, 알프의 몸은 그대로 날려가 벽에 부딪히고 바닥에 떨어졌다.


"크, 으윽…!"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들어올렸을 때.
프레시아는 바로 자신의 코앞에 있었다.


"… 저 아이는 사역마를 만드는 기술이 서툴구나. 쓸데없는 감정이 너무 많아."


조금 전의 인형과도 같았던 얼굴과는 달리, 지금의 그녀는 경멸을 담은 미소를 지으며 자신을 보고 있었다.
뭐라고 지껄이든 더이상 듣고 싶지도 않았지만,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움직이는 것조차도 힘들었다.
그렇기에, 그 대신 외쳤다.


"페이트는… 당신의 딸은… 당신이 웃어주기를 바래서… 다정했던 당신으로 돌아오기를 원해서… 오직, 그것만을 위해서 그렇게…!"


하지만.
알프의 분노에도.
알프의 슬픔에도.
그 모든 것을 담은 필사적인 절규에도.


프레시아는 그저 미소짓고 있을 뿐이었다.


─알프조차 알 수 있을만큼, 지독히도 잔혹한 미소를.


프레시아의 손에, 그녀 전용의 디바이스가 쥐어진다.
그 지팡이는 분명, 알프를 향해 보라빛을 내뿜고 있었다.


"너는 방해밖에 안돼… 사라져버려."

 

 

 


"페이트. 일어나렴."
"… 네, 엄마…"


알프의 외투에 덮여, 시체처럼 잠이 들어있던 페이트가 힘없이 대답하며 눈을 떴다.
아무리 기력이 없고, 아무리 몸이 아파도 그녀는 일어나야 했다.
왜냐하면 그녀의 어머니가 불렀으니까. 그녀에게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페이트가 간신히 몸을 일으켰을 때, 프레시아는 그녀에게 말했다.


"지금 여기에 있는 쥬얼 시드는 전부 11개… 하지만 이걸로는 부족해. 최소한 앞으로 3개. 가능하다면 그 이상. 빨리 가서 가져와주렴. 어머니를 위해서."


그것은, 딸을 향한 어머니의 말이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냉혹했다.
그럼에도 페이트는 거기에 의심조차 품지 않고, 오직 자신만을 탓하며 일어났다.


─일어났지만, 그때서야 위화감을 느꼈다.


"…… 알프…?"


언제나 옆에 있어주던 자신의 사역마가 없다.
그 뿐만 아니라, 링크도 느껴지지 않았다.


"아아, 그 아이는 도망쳤단다. 무서워서 더는 싫다고."


평소의 미소를 지우지 않은 채, 프레시아는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는 아직 상반신만 일으켰을 뿐인 페이트의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으며 말을 잇는다.


"필요하다면 좀더 좋은 사역마를 준비해줄게. 잊지 마렴. 정말로 네 편을 들어주는 건 엄마밖에 없다는 걸. … 알겠지? 페이트."
"…… 네, 어머니."


의심해서는 안된다.
어머니의 말은 절대적.
그녀가 그렇다고 말하면 그것이 진실이고 사실이다.
자신은 단지, 그것에 따르기만 하면 된다.


페이트는 그렇게 생각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런 페이트를 내려다보는 프레시아는.


─여전히, 평소와 같은 웃음을 띄우고 있을 뿐이었다.

 

 

 


[무섭군, 무서워. 정말로 무서워.]


자신의 방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프레시아의 귀에 그런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 앞의 벽에, 부멜 쿠완거가 팔짱을 낀 채 기대어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인간의 가족이라거나 그런 건 잘 모르고, 이해할 생각도 없지만 말야… 보통 그렇게까지 할 수 있는건가? 자신의 딸에게.]
"이쪽 일에 신경쓰지 말고, 당신이 해야할 일이나 잘 하는게 어때? 큰소리치던 것치곤 기대 이하던데."


프레시아의 표독스러운 말에도 부멜 쿠완거는 그저 어깨를 으쓱했을 뿐이다.


[뭐, 그런 말을 들어도 할 말 없긴 하지만 말이지. 그렇게 언제나 긴장하고 있다간 몸이 못버틸걸.]
"… 쓸데없는 소리를."


설마, 눈치챈 건가.
한순간 그런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그녀가 알고 있는 이들의 성격이라면, 그녀에게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는 것이 밝혀질 경우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곤란하다. 아니, 안 좋은 상황이다. 지금 이 시점에서, 이 자들까지 적으로 돌리는 것은─


[심장 박동 수가 잠깐 빨라졌었군. 뭘 경계하고 있는거지?]
"아무것도. 당신 감각 회로가 이상해진 거 아냐?"
[바닥에 흘린 피는 제대로 닦거나 덮어두는 게 좋다고 충고해주고 싶은데.]


들켰다. 확실하게.
생각과 동시에 디바이스를 꺼냈다.


하지만 정작 부멜 쿠완거는 자신의 목 바로 앞까지 디바이스가 다가와도 반응이 없었다.


[관두는 게 좋을걸. 이 거리에서라면, 컨디션이 나쁜 지금의 당신이 사용하는 마법보다 내 검이 더 빨라.]
"……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거지?"


방심할 수 없다. 플레임 맘모스나 슬래시 비스트, 스파크 맨드릴이라면 몰라도, 차일 펭귄과 이 레플리로이드는 지극히 교활하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읽기도 어렵고, 설령 읽었다 하더라도 이 녀석 또한 자신의 생각을 읽고 있다.
속고 속이기가 일상이 된 상대. 하지만 지금의 이 상황은 자신이 불리하다.


그렇지만.


[별로, 아무것도.]
"…… 뭐?"
[쓰잘데기없는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는거다. 이 사실을 알고 있는 건 나 뿐이고, 그나마도 지나가다가 폭발이 나길래 들어가본 것 뿐이야. … 뭐, 당신은 이미 그 방에서 나온 다음이었지만.]
"……"
[하지만, 수확이 아주 없는 것도 아니지.]


전부터 느끼고 있었지만, 이걸로 확신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당신 성격이라면, 이 틈에 나를 죽이고 쥬얼 시드를 강탈하는 쪽을 택할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생각을 안해본건 아니지만 말야. 가만히 생각해보면 우리들은 마도사도 아니고 그걸 제어할 줄도 모르지. 아무리 커다란 힘이라고 해도 제어하지 못한다면 본말전도다.]


그들에게 있어서 쥬얼 시드는 분명 탐나는 물건이었지만, 섣불리 손댈 수 없는 것 또한 사실이다. 지금까지 쥬얼 시드에 손을 댔다가 폭주를 일으킨 자들을 그들은 몇번이고 봐왔으니까.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굳이 쥬얼 시드를 원하지 않았다.
하지만 부멜 쿠완거가 '수확'이라고 말한 것은 그런 사실이 아니다.


[굳이 이름붙이자면 '동병상련'일까. 당신만큼 미친 건, 이레귤러 중에도 그다지 없으니까 말이지.]


스스로의 의지로 인간을 거역하고 이레귤러로 떨어진 부멜 쿠완거조차.
이 여자의 광기에는 질려버렸다. 질려버렸지만─ 그만큼 매혹적이기도 했다.


인간이면서도, 자신들 이상으로 잔혹하며 광기에 젖은 대마도사.


[앞으로 얼마 남지 않은 계약기간 동안, '동류'끼리 서로 치고받으며 힘을 뺄 이유는 없어. 그럴 바엔 빨리 계약을 완수하고 원하는 걸 얻은 다음 바이바이해버리는 게 가장 건전하다고.]


… 일단, 이 녀석은 현 시점에선 그녀의 뒤통수를 칠 생각은 없는 것 같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방심은 금물이지만.


─그렇다면, 이쪽에서도 이용할 수 있을만큼 이용하면 된다.


"그건 상관없지만 당신… 지난번에도 엉망으로 박살났을텐데? 이길 수는 있는거야?"


거듭 말하지만, 프레시아가 알고 있는 부멜 쿠완거는 결코 바보가 아니다.
한번 그렇게 철저하게 당해놓고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상당한 근거가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리고, 프레시아의 예상대로.
부멜 쿠완거는 사나운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아. 이길 수 있고 말고.]


이 녀석만 있으면.
그렇게 덧붙이며, 부멜 쿠완거는 작은 기계 장치를 꺼내 보였다.

 


살아있는 것처럼 꿈틀거리는, 기분 나쁜 기계장치를.

 

 

 


───to be continue

댓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