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의 상처는 내버려두면 얼마든지 낫는다.
실제로 이번에 입은 상처도, 몇일 정도 방치하면 자동 회복 기능에 의해 회복될 것이다. 밸런스 회로의 회복도 딱히 길어지지 않았으니까, 예정했던 대로 크리스마스 전까진 낫겠지.
하지만, 마음의 상처는 그렇게 쉽게 낫지 않는다.
그것은 아주 오래 전부터 뼈저리게 느꼈던 것이다. 눈에 보이지도 않고, 자각 증세도 없으며, 본인조차 나았는지 안나았는지 알 수 없는 상처. 부상으로서는 최악이다.
그것이, 동료를 잃어버림으로서 생긴 상처라면 더욱 그렇다.
[…… 어떻게 생각해?]
[뭘 말이냐.]
[뻔하잖아. 스파이더 말야.]
스톰 이글의 말에 마그마 드래곤은 잠시 동안 생각에 잠겼다.
그렇지만 그 고민은 그다지 오래 가지 않았다.
[녀석은 뼛속까지 군인이었지. 예전부터 말야. 게다가 원래는 우리들처럼 이레귤러 헌터이기도 했고, 엑스나 그 녀석하곤 같이 싸운 전우였지. 이건 우리들도 마찬가지였지만. 그리고 무엇보다도… 완고했어. 상당히.]
슬래시 비스트와 같은 몇몇의 예외를 제외하면, 레플리포스 소속 레플리로이드들은 거의 다 웹 스파이더와 잘 맞는 성격이었다. 군인정신으로 꽉꽉 들어차고, 융통성없으며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는.
[하지만 그런 성격이기 때문에, 녀석은 자신이 한 일을 용서할 수 없었다… 거기에 나가기 전에 우리들을 묶어버리기까지 했다는 건 거기에서 돌아올 생각이 없었다는 거겠지. ]
[… 그곳을… 자신의 무덤으로 정했다는건가.]
신음이 저절로 흘러나왔다.
그 기분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엑스는 어떨 거 같아?]
[… 글쎄.]
그들이 알고 있는 유약한 성격의 엑스… 그러니까 100년 전의 엑스라면 또 예전처럼 이제 더이상 싸우고 싶지 않다면서 어딘가에 틀어박혀버린다고 해도 이상할 것은 없다.
하지만 지금의 엑스는 그때의 엑스가 아니다. 적어도, 그들이 보기엔 그랬다.
[어찌되었건 싸움은 끝났다. 앞으로는 어떻게 해야할지 정하지 않으면 안돼. 엑스도, 그리고 우리들도.]
마그마 드래곤은 거기까지 말하곤 입을 다물었다.
IRREGULAR HUNTER - X
28화
<─이상이, 이번에 일어났던 프레시아 테스타롯사 사건의 마지막 정리입니다.>
[정보 제공에 대해서는 감사드립니다. … 하지만 린디 제독. 우리들은 어디까지나 관리국과는 상관없는 '외부인'인데 이렇게 넘겨주셔도 괜찮은겁니까?]
<어머나, 저희들한테 있어서 여러분들은 그냥 '외부인'이 아닌걸요. 오히려 이번 사건을 해결하는데 큰 도움을 주신 분들이니까 표창이라도 해드릴까 하고 있는 중이에요. 나노하 양이나 유노 군도 마찬가지지만.>
[그 마음만 받겠습니다.]
린디가 스톰 이글에게 넘겨준 자료에 의하면, 페이트 테스타롯사와 그녀의 사역마인 알프는 거의 무죄가 확정된 상태다. 상황이 워낙에 특수하고, 그녀들이 스스로의 의지로 이 일에 관여한 것이 아니라는 것도 확실하기 때문이다. 남은 것은 상층부에 그 점을 이해시키는 것 뿐이다.
리니스의 경우엔 오히려 정보 제공이나 사태를 미연에 막기 위해 관리국에 협조해주었고, 애시당초 그녀가 한 일이라곤 페이트와 알프의 교육 뿐으로 이 일과 직접적인 관련은 없었다.
하지만, 프레시아 테스타롯사는 무거운 처벌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했다.
<… 사정이 있었다곤 해도, 그녀가 차원 간섭이라는 중죄를 저질렀다는 것은 사실이니까요. 우선 본국으로의 송환은 확실하고, 최악의 경우 수백년의 유폐가 결정될 수도 있습니다.>
[수백년입니까…]
레플리로이드인 자신에게도 아득한 세월, 그것을 인간에게 물린다고 하는 건가.
치밀어올라오는 감정을 진정시키며, 스톰 이글이 말을 걸었다.
[그럼 여러분들은 이제 그… 본국으로 돌아가는 겁니까?]
<그렇게 해야 하지만… 아직 차원진의 여파가 가라앉지 않는 바람에요. 미드칠더까지 돌아가는 항로가 안정되려면 앞으로 조금 더 걸릴 것 같아요.>
[그런가요. … 수고하셨습니다.]
스톰 이글은 그렇게 말했지만, 스크린 속의 린디는 고개를 저었다.
<저희들로서는 오히려 당신들에게 감사하지 않으면 안되요. 여러분이 움직여주신 덕분에 저희들 쪽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던 데다… 여러분들은 동료를 잃으셨으니까요.>
그렇게 말한 린디는 곧 고개를 숙였다.
[… 아니오. 감사하실 것 없습니다. 저희들은 저희들의 의무를 한 것 뿐이고,본래부터 '정의'를 실현하는 일에는 위험이 따르는 법. 그에게도 순직할 각오는 있었을 겁니다.]
'정의를 실현하는 일'이라. 이런 소리가 자연스럽게도 나오는군. 스톰 이글은 린디가 눈치채지 못하도록 자조의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자신들이 그녀에게 감사를 받을 이유가 없다는 것은 사실이다. 웹 스파이더의 일도 그렇고. 그의 죽음은 그 자신이 바라던 일이었으니까 그녀가 책임을 느낄 일이 아닌 것이다.
<그러고보니… 헌터 엑스는 어떻게 하고 있는지 아나요? 통신도 받지 않던데.>
[… 그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감정을 진정시키고 있습니다. 녀석은 우리들 중에서도 좀… 그런 성격이라서요.]
얼버무리듯이 말했지만 린디는 금방 알아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지금까지 봐온 '엑스'는 그 강대한 힘에도 불구하고 고결하며 또한 고귀한 정신과 마음을 갖춘 사람이었다.
어떠한 강적을 앞에 두고도 흔들리지 않는 강인함, 사람을 구하기 위해서라면 주저없이 자신의 몸을 방패로 사용하는 용기, 타인의 속을 헤아리고 그에 앞서서 행동하는 현명함, 그리고 기계의 집합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만큼의 상냥함.
인간이고 아니고를 떠나서, 그는 훌륭했다.
하지만, 그런 사람일수록.
'동료를 잃어버린' 이 상황에 얼마나 상처를 입을지 짐작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 저기, 엑스 군?"
하야테는 식은땀을 흘리면서 그녀의 가족을 불렀다.
"… 무슨 일이야?"
대답이 돌아왔다. 그 작은 사실에도 하야테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요 며칠, 엑스의 분위기는 정말로 대단했었으니까. 말을 거는 것조차 꺼렸을 정도로.
무섭다던가 접근하기 어렵다, 는 레벨이 아니었다. 그야말로 가까이 가는 것만으로도 등골이 오싹해졌으니까. 저 백전연마의 볼켄리터인 시그넘이나 비타조차도 엑스에게 다가가려다가 그대로 돌아오길 반복했을 정도다.
지금으로부터 몇일 전, 엑스는 외출했다.
그리고는 밤늦게 돌아왔는데, 하야테가 그것을 안 건 다음날 아침.
한바탕 야단을 쳐줄까 하고 가벼운 기분으로 엑스의 방으로 간 하야테였지만, 그 대가로 그녀는 거기서 지옥을 봤다.
뭐라고 할까, 온몸에서 "접근 금지"라는 새카만 안개를 내는 것 같았다고 해야 하나.
보통 때같았으면 그런 것을 무시하고 다가가 무슨 일인지 물어봤겠지만, 이번만큼은 하야테도 건드리지 않기로 했다.
'… 어쩔 수 없었는데. 그렇게 울 것 같은 얼굴은 엑스 군이 우리 집에 온 날 이래로 처음 보는 거였고.'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알고 싶긴 했지만, 섣불리 물어볼 수는 없었다. 그것은 지금 엑스의 상처를 칼로 도려내는 것이나 다름없는 짓일테니까, 엑스가 스스로 이야기해줄 때까지 기다릴 생각이었다.
그리고 오늘.
그 날 돌아온 이래, 엑스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하야테는 물론 다른 누구하고도 이야기를 하지 않으며, 그저 식사 때가 되면 내려와서 식사를 하고 다시 올라가, 그 이외의 시간에는 방에 혼자 틀어박혀 문을 잠그고 시간을 보냈다. 엑스가 그렇게까지 할 정도라면 분명 심상치 않은 일이 있었던 게 분명하지만, 엑스 본인이 입을 꾹 다물고 있어서야 어쩔 도리가 없었기에, 하야테의 주도 하에 가족들은 그에게 터치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아무튼, 엑스가 마침내 대답했다. 하야테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기로 결심했다.
"그, 엑스 군?"
"……"
"몇일 전의 이야기인디…"
"……"
"……"
"……"
안되겠다. 그 '다가가기 힘든' 분위기가 더욱더 무거워졌다.
"… 아니, 됐데이. 아무것도 아이다."
"……"
엑스는 하야테를 한번 보고는 다시 걸음을 옮겨 2층의 자기 방으로 향했다.
엑스가 계단을 올라 완전히 모습을 감추자, 그제서야 하야테와 볼켄리터들은 숨을 토해냈다.
"확실히 보통 일은 아닌 것 같군요. 다른 사람도 아닌 엑스가 저런 모습이라는 건."
"보통 때믄 뭐 화나는 일이 있어도 금방 풀어버렸을텐데 말이제…"
하야테가 한숨을 내쉬며 하는 말처럼, 볼켄리터들이 처음 나타나고부터 얼마 후까지 그렇게 고생하고도 엑스는 신경쓰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것은 '그런' 정도의 이야기가 아니라, 정말로 깊고 심각하다는 것.
<… 혹시나 하는 거지만.>
샤멀이 하야테를 제외한 다른 세 사람에게 염화를 걸었다.
<그, 얼마 전부터 마법 결계가 여기저기서 펼쳐졌잖아? 차원진으로 추정되는 진동도 일어났었고. 그거랑 관련된 일 아닐까?>
조심스럽게 자신의 의견을 밝히는 샤멀.
그녀의 말에, 다른 세 사람이 깜짝 놀랐다.
<…… 샤멀.>
<에?>
<너는, 그걸 이제서야 눈치챘다는건가.>
─나쁜 의미로.
상당한 매도가 담긴 시그넘의 말에 자피라가 염화를 걸어왔다.
<진정해라 시그넘. 다른 사람도 아닌 샤멀이 자력으로 눈치챘다. 오히려 나로서는 그것만으로도 큰 발전이라고 생각하는데.>
<나도 눈치채고 있던 시점에서 변명거리는 안된다고 생각하지만 말이지.>
<비타까지?! 나만 몰랐던 거야?! 다들 너무해~!!>
엑스가 밖으로 나간 횟수는 결코 적지 않고, 그 중엔 '느닷없이 나타난 마법결계'가 나타나고 사라질 때까지 돌아오지 않은 적도 많다. 이 정도로 상황이 겹치면 누구라도 어렴풋이 눈치채게 된다.
… 샤멀은 예외로 치고.
<자, 그러면 이야기를 되돌리겠지만… 엑스는 마도사가 아니다. 그렇다면 다른 마도사가 이곳에 나타나 저지른 일에 휘말린 거라고 생각해야 옳을텐데.>
샤멀이 한쪽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한없이 @을 그리고, 갑자기 그러기 시작한 그녀를 하야테가 영문모를 얼굴로 바라보는 사이 세 사람은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진행시켜버렸다.
<혹시 그걸까? 어둠의 서를 노리는 녀석들이라거나.>
<그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지만, 우리들은 그 동안 어떠한 파괴 활동도 하지 않았고 마법도 사용하지 않았다. 걸릴 확률은 낮다고 보는데.>
<게다가, 혹시 어둠의 서를 노리는 거라면 다른 곳 여기저기에 결계를 칠 이유가 없어. 바로 우리들을 공격했을 거다.>
어둠의 서와는 상관없으면서, 엑스가 휘말릴만한 사건.
설마 그것이 '쥬얼 시드'라는 로스트 로기아가 흩뿌려지면서 일어난 대사건이라는 것까진 알 리 없었고, 회의는 계속해서 평행선을 그렸다.
그렇지만 그 와중에도, "엑스가 어둠의 서를 노리는 이들과 한패일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에 대해서는 단 한번도 나오지 않았고 언급도 되지 않았으며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이미 다들, 무의식적으로 엑스는 적이 아니라고 마음 속 깊은 곳까지 새겨놓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결국 그가 직접 이야기해주길 기다리는 수밖에 없겠군…>
<하지만 그때까지 저 상태라는 건 좀 괴롭겠는데.>
<그냥 내가 아이젠으로 한방 때리고 물으면 되지 않을까? 의외로 시원스럽게 털어놓을 것 같기도 하고.>
<나중에 뭐가 돌아올 줄 알고 그런 발상을 하는거냐.>
<그치만 이대로 시간만 보내는 것도 좀…>
"다들 아까부터 뭘 그리 속닥거리노."
하야테가 끼어들었다.
"주, 주인 하야테?! 무슨 말씀을─"
"아무 말도 안하고 그리 오래 서로 쳐다보고 있으믄 누구라도 알아본데이. 대충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건가는 짐작하겠는디… 이번 일은 그냥 내비두는 게 좋을 거 같다."
그녀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그녀들의 주인은 단호한 어조로 이야기했다.
"주인 하야테. 하지만 저희들은…"
"안데이, 안데이. 다 안다 안카나. 지금까지 신세진 게 엄청나게 많으니께 조금이라도 갚아볼라 그라는 건 알겠는데… 지금은 아이데이."
하야테는 시그넘이 하려는 말조차 가로채서 끝을 맺었다.
그리고 그녀는, 고개를 들어올려 엑스가 올라간 계단 쪽을 바라보았다.
"무사히 돌아왔으니께. 지금은 그걸로 됐다아이가. 다른 건 나중에 엑스가 말하고 싶어질 때 이야기하게 하제이."
그리고 그때, 엑스가 자신들에게 도움을 청한다면.
그때는, 어떤 일이 됐더라고 해도 도와줄 것이다.
그게 가족이니까.
<… 좀 진정은 됐어?>
<…… 그럭저럭.>
아닌 것 같은데.
엑스의 목소리에 아직도 감정이 실린 것을 느끼고, 스톰 이글은 그렇게 생각했다.
<확실히 넌 동료를 잃었지. 하지만 녀석은 우리들한테 있어서도 동료였어. 그야, 예전엔 약간 의견 차이가 있긴 했지만 마지막의 마지막에는 틀림없는 우리들의 동료였지. 그러니까 네가 어떤 기분일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어. 하지만─>
<아니, 이해못해.>
스톰 이글의 말을 냉정하게 잘라냈다.
단 한마디 뿐이었지만, 그 안에는 스톰 이글조차 더이상 말을 꺼내지 못하게 할만큼의 박력이 담겨있었다.
<상상할 수 있겠어? 그 녀석이 잠들어버린 이후부터 100년 동안, 나는 오직 혼자서 싸워왔어.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이레귤러와, 수많은 광기로 가득한 미친 과학자들과. 왜인줄 알아?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싸움을 할 땐 혼자인 게 나았으니까. 그래서 나는 함께 싸우는 동료를 만들지 않았어. 전장에는 혼자 돌입했고, 어떤 임무를 수행해도 혼자서 해냈어. 그리고 그것에 익숙해져야 했고. 결국 익숙해지지 않았지만.>
하지만, 이 세계에서 눈을 뜨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가족'이라는 것이 생겼다.
두번 다시 만들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동료'들까지 생겼다.
솔직히 말해서, 기뻐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시간과 공간을 넘어서 다시 만난 동료조차 못지켰어. 죽게 내버려뒀어.>
하필 그 순간 밸런스가 붕괴됐다.
그런 것은 변명거리도 되지 않는다.
무슨 짓을 해서라도, 자신과 믹스 포르테의 사이에 끼어드는 것을 막았어야 했다.
죽지 않게, 구해내야 했었다.
그걸 위한 힘이었을텐데도, 그렇게 하지 못했다.
스톰 이글은 엑스의 말을 끝까지 듣고 있었다.
그리고.
<헛소리하지마.>
조금 전과는 달리, 명확하게 분노를 담은 목소리에 고개를 들어올렸다.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아무리 수없이 싸워왔다고 해도 네놈 혼자서 얼마나 구할 수 있다고 하는거냐.>
짐승이 으르렁거리는 듯한 살기마저 어려있는 스톰 이글의 말.
그것은 지금, 엑스의 심장을 계속해서 찔러들어오고 있었다.
<지금 네가 지껄인 말이나 하고 있는 생각은 그 녀석을 더욱더 비참하게 만드는 것에 지나지 않아. 네놈이 지금 그렇게 지껄이는 것처럼, 웹 스파이더도 동료를 지키기 위해서 달려들었고, 그 결과로 목숨을 잃었다. 네놈은 지금 그것조차도 싸구려로 만들겠다는거냐!!>
웹 스파이더의 각오.
다른 동료 두 사람을 구속하면서까지 이루려고 했던 것.
웹 스파이더는 그것을 위해서 목숨을 걸었고, 그것을 위해서 죽었다. 그리고 해낸 것이다.
스톰 이글과 마그마 드래곤이 지금 그를 부러워하고 있을 정도로.
엑스가 동료를 소중하게 여기는 생각은 알고 있다.
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자신들 또한 엑스를 동료로서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다. 그렇기에 웹 스파이더는 주저없이 그 몸을 제물로 삼아서 믹스 포르테에게 달려들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런데도 이 바보 녀석은─
<녀석의 죽음은 너를 괴롭히기 위한 게 아니야… 너를 구하기 위해서였다. 네가 지금 이러고 있는 건 녀석을 모욕하는 것 밖에 안돼. 녀석이 가지고 있었던 자존심과 군인으로서의 정신까지 짓밟는 거란 말이다.>
웹 스파이더를 존중한다면 그의 죽음을 받아들여야 한다.
슬퍼하는 것도 애도하는 것도 자유지만, 지금의 엑스처럼 웹 스파이더의 의지 자체를 무시해서는 안된다.
스톰 이글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녀석이 무슨 생각으로 너를 구했는지 생각해라. 너는─>
<알고 있어!>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 엑스가 소리쳤다.
<나도 알고 있어!! 모를 거라고 생각했어?! 녀석이 자신이 했던 짓을 부끄러워하고 있다는 것도, 그걸 죽음으로 갚으려고 했던 것도 알아! 알고 있다고!>
<너…>
<알고… 있단 말이야… 하지만…!!>
눈앞이 하얗게 변했다.
하지만 입은 멈추지 않았다.
<그래도 나는… 동료가 살아주길 바랬어…>
그 말을 끝으로 엑스는 통신을 끊었다.
물론 완전히 절단하진 않았기 때문에 스톰 이글이 다시 연락하고자 하면 얼마든지 할 수 있었지만, 그렇게 되지 않았다.
엑스는 침대에 걸터앉은 채, 고개를 숙이고 또다시 생각에 잠겼다.
정말로, 진심으로.
자존심이나 의지같은 것보다.
살아남는 걸 우선으로 해줬다면 좋았을텐데.
마그마 드래곤은 리니스와 만남을 가지고 있었다.
두 사람이 처음으로 만난, 마그마 드래곤의 은신처에서.
[… 그렇군. 그럼 그 여자와 함께 가는건가.]
"네. 아무래도 프레시아를 돌봐야 할 사람도 있어야 할거고… 그녀도 이번 일로 생각이 바뀐 것 같으니까요."
결국 리니스는 프레시아의 사역마로 돌아가기로 했다.
의외였던 것은 프레시아가 상당히 순순히 체포를 받아들였고, 리니스에게 먼저 제안했다는 것. 리니스는 능력을 상당히 제한한 채로 프레시아의 사역마로 돌아가기로 했고, 페이트와 알프도 함께 가기로 되어있었다.
[그렇다면 너하고의 계약도 이걸로 끝이군.]
"…… 그렇네요."
리니스는 눈을 감고 이날 이때까지 있었던 일들을 떠올렸다.
가끔 험악한 이야기도 하고, 다투기도 했지만 그 모든 일들도 지금에 와서는 하나의 추억이었다.
"그때만해도 일이 여기까지 커질거라곤 생각지도 못했지만요."
[그건 이쪽이 하고 싶은 말이다. 돌아오다가 고양이 한마리를 주웠는데 그게 이런 대형 사고로 이어지다니, 기가 막힐 정도라고.]
두 사람은 서로를 마주보고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렇게, 얼마나 웃었을까.
리니스는 웃음을 거두고, 허리를 숙였다.
"… 죄송해요. 제가 그때 멋대로 말한 부탁때문에 여기까지 끌어들이게 되고, 동료분도─"
[그 놈 이야긴 꺼내지마.]
"… 네?"
웹 스파이더의 이야기가 나오려고 하자, 마그마 드래곤은 바로 잘라냈다.
[녀석은 자신의 의지로 그런 죽음을 택했다. 사과를 받을 이유가 없어. 오히려 녀석이라면 감사하겠지.]
자신이 죽을 자리를 찾아준 것에 대해서.
비록 확실하게는 모르겠지만, 리니스는 마그마 드래곤의 말을 어렴풋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마침내.
두 사람의 마지막 순간이 찾아왔다.
"… 정말로, 고마웠습니다."
[그래, 인사는 됐고. 저쪽에 가서까지 주인한테 폐끼치지 말라고.]
"안그래요! 정말… 이럴 때까지…!"
상기된 얼굴로 투덜거리던 리니스는 곧 그것을 멈추었다.
"저기…"
[뭐냐. 아직 볼일이 남은 건가.]
고양이 소녀는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곧 결심을 굳힌 듯 말했다.
"우리들…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겠죠?"
말도 안되는 소리 하지 말라고 말하려고 했지만, 마그마 드래곤은 그것을 입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그런 식의 농담으로 받아치기엔, 리니스의 얼굴이 간절함으로 가득했기 때문이다.
그녀의 눈을 정면으로 직시하던 마그마 드래곤은 곧 고개를 돌리며 대답했다.
[… 좋을대로. 내가 갈 능력은 없으니까 네가 와라.]
"…… 네!"
대답을 들은 리니스는, 정말로 기뻐보였다.
계약이 끊어지고.
리니스가 최후의 작별 인사를 남긴 후, 전송된다.
그녀의 모습이 사라지자, 마그마 드래곤은 오른손을 들어올려 자신의 가슴으로 가져갔다.
─역시, 거짓말은 상당히 마음에 걸린다.
리니스는 다시 만날 수 있느냐고 물었다.
마그마 드래곤은, 그녀가 원하면 만날 수 있다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그것이 이루어질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없다.
마그마 드래곤은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왜냐하면, 자신에게는 이제─
하야테의 집, 컴퓨터 속의 전뇌 공간.
이곳에서 엑스는 '그녀'와 함께 있었다.
물론 엑스가 자의로 이곳에 온 것은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그녀'의 초대에 응한 것일 뿐이다.
"……"
"… 얼굴이 상당히 안좋군."
"… 그럴 일이 있었어."
엑스는 대답을 회피하려고 했다.
'그녀'는 굳이 캐물으려고 하지 않았다. 말하고 싶지 않은 것을 억지로 끄집어낼 생각은 없었으니까.
하지만, 그 대신.
이, 한없이 강하고 한없이 아름다우며 한없이 가련한 소년을 뒤에서 끌어안았다.
"……… 무슨 일, 있었어?"
"무슨 일이 있었던 건 내가 아니라 당신이겠지만."
풀어내려고 하면 풀어낼 수는 있다.
완력으로 치자면 '그녀'도 상당한 수준이지만, 어스 아머로 바꾸면 풀어헤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까지 할 생각은 들지 않았다.
엑스도 '그녀'도, 그 상태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시간을 보냈다.
─RRRRRRRRRRRRRRRRRRRRRRR.
엑스에게 연락이 들어왔다. 송신자는 스톰 이글.
아까 그 대화로부터 2시간이나 지났는데, 아직 할 말이 있었던가.
엑스는 허락을 구하는 것처럼 고개를 들어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그녀'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고, 곧 엑스는 자신의 앞에 스크린을 띄웠다. 단, SOUND ONLY로.
<엑스? 지금 어디있지?>
<내 방에 그대로. … 아직도 화났어?>
<화가 풀리지 않은 건 사실이지만, 지금은 화풀이나 하려고 부른 게 아냐.>
그럼 무슨 일로? 그렇게 생각하자마자 스톰 이글이 말을 이었다.
<그 아이들이 말야. 어떻게든 인사를 하고 싶다고 해서, 내가 염화를 받은 다음 경유로 보내주는거야. 그럼─>
스톰 이글의 말이 끊기기 무섭게, 다른 사람들이 끼어들었다.
<어? 이거, 지금부터 녹음되는거야?! 우아, 뭐라고 하지, 뭐라고 하지…>
기억에 있는 목소리다. 확실히, '타카마치 나노하'라고 하는 소녀였지.
하지만, 연락을 보내온 것은 그녀만이 아니었다.
<에, 또 그러니까 우선은… 타카마치 나노하입니다! 이번 일로 인사를 드리고 싶어서 연락드렸어요! 그, 엑스 씨가 아니었으면 위험했던 적도 여러번 있었고, 저희들을 구해주신 적도 많고! 이번에 정말로 신세 많이 졌어요! 저기, 그리고… 나중에라도! 나중에라도 혹시 제가 도울 일 같은 게 생기면 언제라도 저한테 이야기해주세요! 아리사 짱과 스즈카 짱의 친구는 저한테도 친구니까요! 그럼, 정말의 정말로 고마웠습니다! 나중에 또 뵈서 인사드릴게요!
추신 : 페이트 짱과 친구가 되었습니다. 이것도 엑스 씨가 이 사건을 해결하는데 도와주신 덕분이라고 생각해요.>
<유노 스크라이어입니다. 저도 나노하와 같은 일로 연락을 드렸어요. 저도 엑스 씨가 아니었으면 이번 일을 이렇게 해결할 수 없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물론 동료분들의 도움도 컸고요. … 다른 한분의 동료분 일은 정말로 유감으로 생각해요. 이 모든 일의 원인은, 제가 쥬얼 시드를 떨어뜨리면서 생긴 일이니까 원망하시려면 얼마든지 하셔도 좋아요… 하지만, 이것만큼은 알아주세요. 저도, 저도 엑스 씨한테는 굉장히 감사하고 있어요! 그럼!>
<… 페이트 테스타롯사입니다. 직접 대화를 한 건 맨 처음 만났을 때가 처음이고, 그 이후론 이야기해보지 못했네요. 하지만 엑스 씨가 저희들 때문에 고생하셨다는 것만은 확실히 알고 있습니다. 여러가지로 폐를 끼친 점 사과드립니다. 원래라면 직접 뵌 다음 말해야겠지만, 곧 본국으로 소환될 예정이라서요. 혹시라도 제가 나중에 이곳으로 돌아오게 된다면, 그때는 정식으로 이야기하고 싶어요. 그럼, 여러가지로 죄송했고, 감사했습니다.>
<알프라고 해. 혹시 기억하고 있어? 같이 싸웠던 빨간색 늑대말야. 그게 나거든. … 뭐, 너라면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말야. 솔직히 고마웠어. 네가 그들을 쓰러트려주지 않았다면 페이트는 구해지지 않았을지도 모르고, 혹시 구해졌다고 해도 어머니를 잃어버렸을지도 몰라. 그러니까, 이래뵈도 너한테 상당히 고마워하고 있다고, 우리들. 우리는 곧 본국으로 소환되지만, 그래도 그 나노하라는 하얀 꼬마랑 너에 대한 건 잊지 않을게. 그럼 잘 지내!>
<크로노 하라오운이다. 우리들의 역량 부족으로 인해 결국 너희들에게 크나큰 사고를 겪게 했군… 진심으로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다. 생각해보면 처음 만났을 때의 나는 한 가지 사실밖에 보지 못했지. 그 때문에 너를 공격하게 됐고. 하지만 지금은 너와 만나게 되서, 정말로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네 덕분에 지금까지 살아온 세계보다 훨씬 넓게 볼 수 있게 됐어. 나는 인간이고, 너는 레플리로이드지만… 그래도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마음'은, 차이가 없다고 생각한다. 이것을 깨닫게 된 것도 네 덕분이야. 정말로, 고맙다.>
<안녕, 에이미야! 아스라에서 딱 두번 만난 것 뿐이지만, 그래도 나 잊어버린 건 아니겠지? 앞의 사람들도 줄줄이 이야기했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말해야겠어. 나도 당신들한테 정말로 고마워하고 있어. 이쪽에도 몇 사람 희생이 있긴 했지만, 그래도 너희들이 없었다면 그렇게 최소한의 희생으로 이번 일을 해결하진 못했을거야. 크로노도 다치지 않았고, 최선을 다해줘서 고마워!>
<린디 하라오운입니다. 직접 연락을 하고 싶었지만, 저희들 연락은 아직 받지 않으셔서 헌터 이글편으로 이 염화를 보냅니다. 여러분들 덕분에 이 사건을 해결할 수 있었고, 또 그에 대해 깊은 감사를 표합니다. 언젠가 나중에 다시 만나게 되면, 그때는 관리국이나 헌터로서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으로서 함께 차를 마셔보고 싶네요. 그때가 오기를 기다리겠습니다.>
이번에 엑스와 만난 소년과 소녀들.
이번에 엑스와 함께 싸우고, 또 그 위기를 헤쳐나온 사람들이 보낸 메시지.
그것이, 엑스에게 닿았다.
"…………"
알고 있다.
이런 이야기를 아무리 들어도, 면죄부는 되지 않는다.
아마도 엑스는 계속해서 웹 스파이더의 일로 슬퍼할 거고, 그의 일로 안타까워할 것이다. 어쩌면 계속 스스로를 책망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고는 해도.
웹 스파이더는, 이 사람들을 위해서 희생한 것이다.
자신같은 '기계'를 상대로, 솔직하게 고맙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좋은 사람들을 위해서.
그의 죽음은, 무가치한 것이 아니었다.
절대로.
"……… 저기."
"… 응?"
"조금만 더… 이대로 있어도 돼?"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이런 것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조금은. 정말로 아주 조금은.
마음이 가벼워진 것 같았다.
엑스는 눈을 감고, 따뜻한 온기에 몸을 맡겼다.
─엑스가, 아리사의 납치 소식을 들은 것은 그로부터 몇일 후의 일이었다.
───to be continu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