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은 요 1개월 동안의 생활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걸까.
… 글쎄. 생각해보면 즐거웠다고 못할 것도 없다.
하지만 그것은 그것, 해야할 일은 하지 않으면 안된다.
[결국 나도 그 녀석과 마찬가지라는 건가.]
시간의 정원에서 사라진 거미를 떠올리며, 마그마 드래곤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는 자신의 신념에 따라 행동한 끝에 그렇게 산화했다. 그 목적은 아마도…
[… 누구냐.]
팔짱을 낀 채 고개만을 뒤로 돌리며 말을 던진다.
자신도 눈치채지 못한 사이에, 이렇게까지 간격 가까이 상대를 들여놓은 것은 엑스와 그 '녀석', 그리고 그 '악마' 이래로 처음이다.
─그렇다면, 그 세 사람에게도 뒤지지 않는 '누군가'라는 이야기.
[오랜만인데, 드래곤.]
[……!! 너는─]
알고 있는 얼굴, 알고 있는 목소리.
과거에 특A급을 넘어서서, 이레귤러 헌터 전체를 통틀어도 단 4명밖에 존재하지 않는 'S급' 헌터로 분류된 레플리로이드.
그러나 그 잔혹한 성격과 난폭함으로 인해 예의 주시됐었고, 결국 임무를 수행하던 도중 자신의 파괴욕구 충족과 재미를 위해 피해를 대폭 확대시켜 수많은 인명과 재산을 파괴하는 사고를 일으킴으로서 제명되고 유폐까지 됐었던 자.
─하지만, 그가 알고 있는 이 자는 진작에 죽었을텐데.
'설마 이 녀석까지 돌아왔을 거라고는.'
[긴장풀라고. 별로 널 어떻게 하려고 온 건 아니니까.]
그렇게 말해봤자, 이 녀석의 속이 시커멓다는 것을 모를 헌터는 없다. 마그마 드래곤은 몸은 돌리지 않았지만 여전히 경계를 늦추지 않은 채, 팔짱을 풀고 손을 아래로 늘어뜨렸다.
[굳이 덤비겠다면 그렇게 해도 좋은데, 그걸로 되는거냐?]
[… 뭐라고?]
[네가 싸우고 싶은 상대는 내가 아닐텐데.]
마그마 드래곤의 움직임이 멎었다.
그의 말은, 마그마 드래곤이 바로 조금 전까지 생각하고 있었던 것을 정확하게 찌르고 있었으니까.
[… 그러나 그것과 이것은 별개 문제다. 내가 싸우고 싶은 상대가 따로 있다고 해도, 너같은 놈을 그냥 보고 지나칠 순 없지.]
[호오? 그건 이레귤러 헌터로서의 의견이라고 하는거냐. 관둬, 관둬. 너한텐 안어울려. 스스로도 알고 있을텐데?]
알고 있다.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이 자식은 무슨 말을 하고 싶어서 여기까지 나타난걸까. 마그마 드래곤의 분노가 점점 차올라가는 가운데에.
[너무 그렇게 조급해하지 말라니까. 나는 말이지… 네가 알아야할 일을 알려주러 온 것 뿐이니까.]
그는, 가면으로 가려진 얼굴에 미소를 그리며 말했다.
지극히 추악하고.
지극히 악의로 가득한.
그럼에도, 거짓은 담지 않은.
그런, 악마같은 미소를.
IRREGULAR HUNTER - X
29화
"아, 엑스 군."
"… 응?"
오늘의 엑스는 드물게도, 아침부터 지금까지 집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쥬얼 시드 사건이 종결된지 1주일. 나노하들로부터 받은 염화 덕분에 어느 정도 감정을 정리할 수 있었던 엑스는 하야테와 시그넘들에게 신경쓰이게 한 것에 대해 고개숙여 사과했고, 하야테들은 시원스럽게 받아들여주었다.
… 하지만, 무엇때문에 그렇게 감정이 상했었는지까진 이야기하지 못했다. 애초에 쉽게 들려줄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고.
어쨌거나 요 몇일은 아리사나 스즈카를 만나지 않고 지냈다. 전화는 해왔지만, 그녀들 쪽에서도 딱히 지금 당장 만나자는 이야기를 꺼내거나 하진 않았고. 그리고 그 이유는 모두, 나노하와 연관되어 있었다.
쥬얼 시드 사건을 함께 겪었던 나노하는 엑스의 기분을 헤아려 두 사람을 자제시켜주었고, 두 사람도 그 의견을 들어주었던 덕분이다. 대신 그녀들은 그 동안 나노하를 만나지 못했던 것을 보상받으려고 하는 것처럼 신나게 놀러다니고 있는 모양이고.
오늘은 비타를 제외한 다른 볼켄리터들이 전부 직장에 나가있다. 그 덕분에 조용히 빈둥거렸고, TV 채널을 이리저리 바꿔가거나 소파에 누워서 멍하니 천정만 올려다본다던가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정적을 깨트린 것이, 하야테다.
"할일 없으믄 오늘은 비타까지 해서 셋이 같이 외출 좀 할까 하는디."
"… 응. 난 괜찮아. 상관없어."
그녀에게는 미안한 짓을 많이 했다.
자신의 감정만을 생각하느라 그녀의 감정은 신경쓰지 못했다. 난폭하게 반응하기도 했고.
그럼에도 그녀는 그것을 이해해주었고, 용서해주었다. 고맙게도.
"그런데… 무슨 일로?"
"뭐어, 뭐어. 나가보믄 안데이~"
…… 또 뭔가 꾸미고 있나보군.
한숨이 저절로 나왔지만, 지금까지 마음껏 어리광을 부리고 있었던 대가로 받아들이자. 그렇게 생각하며 엑스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복장을 체인지. 입고 있는 옷이 집에서 착용하는 간편한 복장 대신 외출복으로 바뀌었다.
"언제봐도 그거는 참 편하겠단 말이제… 갈아입히는 재미는 없겠지만서도."
"… 그건 봐줘."
예전의 악몽을 떠올리며, 엑스는 신음을 흘렸다.
하야테가 다른 두 사람을 이끌고 간 곳은 예전에도 왔었던 쇼핑가였다.
가장 먼저 들른 곳은 의외롭게도 장난감 가게. 비타는 신이 나서 잔뜩 골랐고, 하야테는 이것저것 꼼꼼히 살펴보며 다시 집어넣는 것을 반복했다.
"아, 엑스 군도 뭔가 마음에 드는 거 있음 골라라. 돈 많으니께."
"… 생각해볼게."
장난감인가. 생각해보면 이런 걸 가지고 놀아본 기억은 없다.
처음부터 자신은 헌터로서 깨어났고, 그 이래로 지금까지 주욱 전장을 돌아다녔으니까.
'지금에 와서는 상관없는 이야기지만.'
대충 고르는 척만 하고 하야테에게는 '마음에 드는 게 없었다'고 둘러대기로 하자.
─그렇게 결심하고, 딱 세발짝만에 걸음을 멈췄다.
"……"
안에는 솜이 들어있는, 단순한 봉제인형.
그런 인형에게 눈길을 빼앗긴 이유는 간단했다.
지금 이 진열대에는 수많은 종류의 봉제인형들이 있었는데, 그 중에는 용과 독수리, 그리고 푸른 갑옷을 입은 기사와 거미의 인형도 있었던 탓이다. 그것도 하필이면 그 네개의 인형이 한곳에 몰려있었고.
어떻게 할까.
한순간 고민하던 엑스는 결국 감정을 숨기면서 발걸음을 돌렸다.
"네~입. 엑스 군이 안 살거면 이건 내 거."
하지만 그런 엑스의 결심을 하야테는 단번에 깨부쉈다.
엑스가 보고 있던 4개의 인형을 포함해서, 그 블럭에 있는 인형을 몇개 더.
정확히 '엑스가 시선을 두고 있던 칸'에 있는 인형을 거의 대부분 쓸어담았다.
"하야테?!"
"문제 없다니께. 게다가 이건 상당히 싼 편이고. 그거 아나? 장난감 중엔 말이제, 한개에 십만 넘는 물건도 있다 안카나."
"… 십만?!"
"뭐라드라, 프리미엄이 어쩌고 그라든데 그런 매니아 쪽은 잘 모르겠고. 암튼 넉넉하게 갖고 왔으이 문제 없데이."
"아니, 하지만…!!"
엑스가 불러도, 하야테는 콧노래를 부르며 다음 코너로 이동했다.
… 일부러다. 분명히 일부러 저러고 있다.
하야테는 기본적으론 상냥하고 착한 소녀지만, 가끔 가다 상당히 짖궃어질 때가 있다. 아마 이번도 같은 맥락이겠지.
"…… 어쩔 수 없나."
한숨을 내쉬고, 그녀를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나 이거! 「딜럭스 스위트 파르페(大)」!"
"비타 짱. 여기 오면 매~번 아이스크림만 시킨데이. 다른 건 생각읍나?"
"괜찮아. 단 거 들어가는 배는 따로 있다고 샤멀이 그랬어. 그리고 여기 이 밤팥떡이랑 핫초코하고─"
샤멀 씨, 쓸데없는 걸 가르치다니.
지금쯤 열심히 편의점의 아이돌로 일하고 있을 호수의 기사를 떠올리며 엑스는 이를 갈았다.
이 가족의 돈 관리는 하야테가 하고 있지만, 가계부를 쓰는 것은 엑스도 돕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과소비가 되면 점점 신경쓰이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에 아랑곳없이.
"에, 그라믄 내도 이거. 「체리 블루베리 생크림 와플」이랑 바나나 쉐이크!"
"그것도 비싸?!"
하야테는 주저없이 골랐다.
"자자, 그런 소리 말고. 엑스 군도 어서 주문."
"……… 햄 샌드위치랑 우유면 돼."
아무리 돈이 있다고 해도 과소비는 좋지 않은데.
물론 이 가족이 이렇게 돈을 쓰는 일은 거의 없다. 생각해보면 돈을 가장 많이 썼던 건 볼켄리터들이 나타나고 그들의 옷과 소지품 구입, 그리고 환영회를 여느라 재료를 샀을 때 정도고, 그 이래로는 이렇게 많이 쓴 적이 없었다.
엑스는 주문한 음식들이 나오는 것을 보며, 새삼 볼켄리터들이 나타났을 때를 생각했다.
'… 그러고보니.'
자신이 여기로 온지도, 꽤 시간이 흘렀다.
2개월.
짧다면 짧고, 길다고 하면 길지도 모르는 시간.
하지만 그 동안 일어난 일들은 결코 적지 않았다.
하야테와의 만남.
마그마 드래곤과의 재회.
아리사와의 만남.
스즈카와의 만남.
볼켄리터들과의 만남.
'마법'과의 만남.
스톰 이글과의 재회.
쥬얼 시드의 폭주체와 싸운 일.
크로노를 비롯한 시공관리국과의 조우.
나노하와 유노와의 만남.
페이트와 알프와의 만남.
이레귤러들의 부활.
그들에게 한번 죽을 뻔했던 일.
시간의 정원에 돌입한 일.
믹스 포르테와 싸운 일.
그리고─
'…………'
그때의 일을 떠올리고, 엑스는 샌드위치를 내려놓았다.
"쵸──────옵!"
그 순간 엑스의 정수리를 향해, 하야테의 손날이 떨어졌다.
"?!"
"식사 중인데 우울한 생각 금지. 먹는데 집중할 것!"
엄격한 얼굴을 하면서, 하야테는 엑스의 앞에 검지손가락을 들이댔다.
엑스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였고, 그제서야 하야테는 웃음을 띄우며 몸을 돌렸다.
그리고, 그렇게 서로 다시 먹기 시작한지 얼마 안됐을 무렵.
"… 저기, 엑스."
비타가 머뭇거리면서 입을 열기 시작했다.
"그, 뭐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묻지 않겠어. 하야테도 말했지만, 네가 크게 다치지 않고 돌아온 것만으로도 충분히 기쁘니까."
사실은 상당히 다쳤었지만, 집으로 돌아올 때 쯤엔 재생이 많이 진행되어있었던 것 뿐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시시한 것으로 그녀의 말을 끊을 생각은 없었다.
"그렇지만 말야. 다음에 또 무슨 일이 생기면, 그땐 우리한테도 이야기해. 우리들, 이래뵈도 싸우는데엔 자신있고 가족이 혼자 싸우고 있는데 모른척할 생각도 없으니까. 그… 그러니까! 혼자 그렇게 끙끙 앓지 말고! 고민할 게 있으면 우리들도 같이 고민하고! 그렇게 하자고!"
그녀로서는 상당히 잘 이야기했다. 하야테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여하튼, 비타는 말재주가 별로 좋지 못하니까. 하지만 지금의 엑스에게는 이 정도로 직설적인 것이 좋을지도 모른다.
엑스는 잠시 동안 눈을 크게 뜨고 비타를 직시했다.
비타도 마찬가지로 엑스를 바라보았지만, 그 상태가 지속되자 얼굴을 빨갛게 하고는 몸을 뒤로 물렸다.
"………… 응. 알았어."
간신히.
엑스는, 그 한마디를 내뱉았다.
"자, 그라믄 엑스 군. 이거 받그라."
그리고 하야테가 선물 상자를 엑스에게 내밀었다.
열어보자, 그곳에는 아까 하야테가 잔뜩 담았던 봉제 인형들이 담겨있었다.
"이건─"
"아까 그거 계속 보고 있었제? 그래서."
비타 때도 그랬지만, 그녀는 이런 것을 상당히 좋아하는 것 같다.
물론 그것이 싫다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오늘은 모처럼 아버지가 집으로 돌아오는 날이었다.
사실은 당장이라도 전화를 걸어서 그 소년을 불러내고 싶었지만, 참기로 했다. 아무리 그래도 가족이 우선이니까.
우선은, 무슨 이야기부터 하는 것이 좋을까.
아버지가 돌아오는 것은 오랜만이니까, 오늘은 잔뜩 이야기를 나눌 생각이었다.
나노하의 이야기도 해야 하고, 스즈카의 이야기도 해야 하고, 학교의 이야기도 할 생각이었다.
그리고, 기회를 봐서 그 소년에 대한 이야기도.
"……………"
천천히, 천천히.
아리사 버닝스는 눈을 떴다.
잠시 동안은 잘 보이지 않았지만, 곧 눈이 어둠에 익숙해져 주변을 볼 수 있게 되었다.
눈에 보이는 것은 모르는 천정.
귀에 들리는 것은 자동차가 달리는 소리.
눈이 저절로 커졌다. 그제서야 기억을 떠올린 것이다.
자신은 분명 집으로 돌아오던 길에 집사인 사메지마가 운전하던 차에 올라타려던 도중, 갑자기 나타난 검은 차에서 내린 남자들에게 붙잡혔다. 그것을 막으려던 사메지마는 머리를 강하게 맞고는 쓰러져버렸고.
그리고 자신은 그대로 의식을 잃은 채─
"아, 이 꼬마 일어났다."
─또 이것인가.
손과 발이 묶여있었다. 입은 구속되어있지 않았지만, 뒷좌석에 눕혀진 채다.
"당신들…!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건지 알고 있는거야?!"
"어이쿠, 기운이 넘치는데. 뭐, 진정하라고."
앞 좌석의 두 남자는 기분나쁜 미소를 지으며 차를 몰고 있었다.
벌써, 이 차는 모르는 길로 들어섰다.
"무슨 목적으로…!"
"뭐얼. 별 건 아냐. 그저, 너희 아버지께 부탁할게 좀 있어서 말이지."
저번에도 한번 겪었던 일이었기에, 상황을 빠르게 이해했다.
"사실은 저번에 했어야할 일이지만, 멍청한 놈들이 실수를 해버렸잖아. 너도 알지? 그러니까 이번엔 우리들이 올 수밖에 없었다는거야. 뭐, 얌전히만 있으면 다칠 일은 없을─"
"… 한심하게."
9세의 소녀가 말했다고는 믿기지 않을만큼 싸늘한 목소리가 두 남자의 귀에 들려왔다.
"불만이 있으면 파파의 앞에서 정정당당히 말해…! 능력이 안된다면 포기하고!! 아니면 뭐야?! 파파에게 정면으로 대항할 용기도 힘도 없으면서 이런 짓으로 우위에 서고 싶다는 거야?! 정말 한심하기 짝이 없네. 저번에 나타났던 녀석들하고 다를 게 하나도 없어!!"
두 남자의 얼굴이 점점 붉어지고 푸르게 변해간다.
겁을 먹어도 모자랄 판국에 오히려 자신들을 향해 이렇게 소리치고 있다.
─그 빌어먹을 사장과 똑같은 얼굴로.
"이, 이 망할 꼬마가…!"
"왜? 내가 틀린 말 했어? 당신들이 어디의 누구인진 모르지만 이런 바보같은 짓을 택했다는 것 자체가─"
그 순간 조수석에 있던 남자의 손이 아리사의 입을 틀어막았다.
"… 야, 야?!"
"넌 운전이나 잘 해. 난 이 꼬맹이 버르장머리 좀 고쳐놓을테니까."
그렇게 말하며, 남자는 추악한 웃음을 지었다.
엑스가 연락을 받은 것은 하야테들과 함께 집으로 돌아오던 길이었다.
느닷없이 나노하로부터 걸려온 염화. 그 내용은 심상치 않았다.
<저, 그러니까… 엑스 씨도 아리사 짱이 어디있는지 모른다고요…>
<응. 오늘은 만나지도 않았는데. 무슨 일이야?>
나노하의 목소리에 다급함이 섞이기 시작했다.
<그, 그게…! 집에 돌아와서 전화해보니까 연락이 안되요! 스즈카 짱도 모른다고 하고, 아리사네 집에도 안돌아갔다고 그러고! 집사 아저씨는 전화를 안 받고! 혹시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건…?!>
<… 다른 곳에 들렸다던가 한 건?>
<그럴 리 없어요! 오늘 아리사 짱, 모처럼 아버지가 돌아왔다고 기뻐하고 있었으니까…!>
─짐작이 가는 것은 있었다.
그와 아리사가 처음 만났을 때 아리사에게 일어났던 사건.
<… 잠깐만.>
엑스는 통신의 응용으로 아리사의 휴대폰을 찾기 시작했다.
공원 쪽을 찾고, 상점가 쪽을 찾고, 주택가 쪽을 찾고, 버닝스 저택을 찾아봐도 없다.
최종적으로 엑스가 아리사의 휴대폰 위치를 잡아낸 것은, 시외 근처. 그것도 상당히 빠른 속도로 이동 중이었다.
게다가 휴대폰은 꺼져있다. 엑스가 아니면 추적도 못했을 것이다.
<… 지금 시외로 빠져나가고 있는 것 같은데, 내가 찾아볼게. 그 동안 나노하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연락해줘.>
<네, 네!>
나노하와의 통신이 끊어지고, 엑스는 하야테와 비타를 바라보았다.
"저기, 하야테. 비타. 나는─"
"……… 무슨 일, 일어난거제?"
하야테는 엑스를 올려다보며 그렇게 물었고, 엑스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그를 바라보던 하야테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급한 일인 거 같으니께, 따지는 건 나중에 하꾸만. 갔다 온나."
"… 응. 고마워!"
그렇게 대답하고, 등을 돌린 엑스에게.
"엑스 군."
"… 어?"
"다치지 말그라."
하야테는, 그렇게 말해주었다.
"─────────!"
차를 잠시 세우고, 뒷좌석으로 옮겨탄 남자는 곧바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리사의 입을 테이프로 막아버리고는 그대로 다시 쓰러트려 눕혔다.
"생각이 좀 변했다. 원래부터 조금 아프게 해줄 생각이었지만, 넌 아무래도 기운이 넘치는 것 같으니까 보통보다 심하게 대해도 문제없겠지."
아무리 당차다고 해도 초등학생의 소녀. 성인 남자가 제대로 힘을 쓰면 뿌리칠 수 있을 리 없다.
'누가…'
남자의 손이 아리사를 향해 다가온다.
'울 거 같아…!!'
소녀의 눈에는 눈물이 고여있었지만, 결코 흘러내리진 않았다.
그녀의 자존심은, 아버지를 자랑스러워하는 마음은 흔들리지 않으니까.
'너 같은 녀석따위한테…!!'
한 소년의 얼굴이 떠올랐다.
하지만, 알고 있다.
아무리 그 소년이라고 해도, 이렇게 딱 맞춰서 나타나주는 일같은 건 있을 리 없다고.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녀에게 구원의 손길이 오긴 했다.
단, 그녀가 기다리던 유성의 용사가 아니라.
지극히 흉악한, 폭룡(爆龍)의 손길이었지만.
자동차의 천정이 부서진다. 정확히 말하자면 구멍이 뚫린 거지만.
─그 구멍으로부터, 불타고 있는 손이 내려와 운전수의 머리를 틀어쥐었다.
"끼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남자의 얼굴은 삽시간에 화상으로 물들었고, 그 고통으로 인해 핸들을 마구 흔들어댄 덕에 자동차도 제멋대로 움직인다.
당연히 뒷좌석에 있는 남자와 아리사도 진동에 영향을 받았고, 정신없이 흔들리던 가운데에 아리사의 옷을 벗기려던 남자는 뒤로 넘어지며 의자에 머리를 박았다.
"뭐, 뭐, 뭐…?!"
운전수가 옆으로 쓰러진다.
그러면서, 한순간이지만 남자의 눈에 운전수의 얼굴이 들어왔다.
──불덩어리를 직접 갖다댄 것과 같은, 지독한 화상.
"이, 이게 뭐야?!"
호위도 붙어있지 않은 초등학생 하나를 납치하는 것쯤 간단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돈을 벌 뿐만이 아니라, 부수입까지 따라오는 일이라고, 그렇게 생각하며 즐거워했었다.
바로 1분 전까지만 해도.
곧이어 천장을 뚫었던 손이, 이번엔 천정을 가르면서 남자의 얼굴을 향해 날아와 그를 붙잡았고.
처절한 비명이 이어진다.
멋대로 폭주하던 차량은, 결국 도로에서 튕겨져 절벽 밑으로 굴러떨어졌고.
─폭발을 일으켜, 주인들과 함께 사라졌다.
엑스가 그 장소에 도달한 것은, 그로부터 1분 정도의 시간이 흐른 뒤의 일.
아리사가 다음으로 눈을 떴을 때 가장 먼저 보인 것은 이제 막 서쪽으로 기울기 시작한 태양이었다.
우선은 자신의 몸에 이상이 없는지 확인했다. 손과 발은 여전히 묶여있었지만, 입을 가린 테이프는 없어졌다. 딱히 다친 곳도 없다.
'이게 어떻게 된 거야…?'
당하려던 직전에, 차가 엄청나게 흔들렸던 건 기억한다.
그 와중에 문 손잡이에 머리를 박았고, 고통과 함께 의식을 잃었다.
그 남자들은 어떻게 됐을까. 차는 어디로 간걸까. 애초에 차는 왜 그렇게 갑자기 흔들린걸까.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그러고보니 비명 소리를 들은 것 같기도 한데─
[회복이 빠르군.]
─딱 한번 들었을 뿐이지만, 잊어버린 적없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곧바로 후다닥 몸을 일으켰지만, 그 반동 때문에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다.
간신히 균형을 잡고 앉아, 자신이 겨우 바위 위에 눕혀진 상태였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그녀의 시선 끝에는, 단 한번 만났었던 폭염의 용이.
또 다른 바위에 걸터앉아있다.
"어떻게……?"
[지나가던 길에 네가 끌려가는 게 보이더군. 그래서다.]
… 그러니까.
지금 이 상황을 정리하자면─
"당신이… 나를 구해준거야…?"
[결과적으론 그렇게 되는 거겠지. 본의는 아니었지만.]
이쪽은 보지도 않고 그렇게 대답한다.
조금 욱했지만, 생명의 은인에게 그렇게 반응하는 것도 좀 뭐하다고 판단하고는 참아냈다.
"그, 저기… 고마워."
아리사가 그렇게 말하자, 처음으로 마그마 드래곤은 이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그 눈은, 무시무시하게 불타오르고 있었다.
[착각하지마라. 너를 본 건 우연이었고, 그 놈들은 내 사냥감을 가로채려고 했다. 그래서 공격한거고.]
"…………!!"
그때 기절하면서 느낀 열기는, 역시 꿈이 아니었던건가.
마그마 드래곤의 말을 듣는 순간 정신이 확 들었다.
"잠깐! 그럼 그 녀석들은?!"
[글쎄. 차량과 같이 절벽밑으로 굴러떨어져 폭발했으니까, 살긴 힘들지 않을까.]
아리사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눈앞에 있는 용은, 사람을 죽였다.
그리고 그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고 있다.
[이미 다섯자리수가 넘는 인간을 죽였다. 거기에 둘 정도 더 올려봐야, 변하는 건 없어.]
만명 이상.
이 세상의 어떤 연쇄살인마도 그렇겐 죽이지 못했을 것이다. 아리사로서는 그것이 어느 정도인지, 상상조차 가지 않았다.
"왜… 왜 그런 짓을…?! 그리고 나는 왜 데리고 온 거야?!"
그야 뻔하지.
마그마 드래곤은 다시 고개를 돌리며 대답했다.
[녀석과 싸우기 위해서.]
아리사는 이 용과 처음 만난 날, 그와 엑스가 나누었던 대화를 떠올렸다.
확실히 그때도 엑스와 이 용은 싸움을 벌였다. 자신이나 다른 사람들이 없었더라면, 둘 중 누군가가 죽었어도 이상할 것이 없는 싸움을.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녀석의 성격은 너도 잘 알겠지. 게다가 요 근래엔 성가신 일도 생기는 바람에, 왠만큼 큰 일을 저지르지 않고선 녀석을 진심으로 나와 싸우게 만들지 못해. 그렇다고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지만. 사실 간단하지. 시내에서 한번 날뛰고 10명이고 100명이고 죽여대면 되니까.]
마그마 드래곤 본인은 대수롭지 않게 말하고 있었지만, 아리사에게는 그것이 농담으로 들리지 않았다.
진심이다. 이 녀석은, 하려고 하면 우미나리 시 한복판에서 날뛸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랬다간 스톰 이글─또 한명의 헌터까지 적으로 돌리게 될 확률이 커. 그건 귀찮거든. 그러니까 엑스가 아는 사람을 끌고 온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거다. 게다가, 아무리 쓰레기였다지만 지금은 인간도 두 사람 죽였지. 더할 나위없어. 이젠 기다리기만 하면 돼.]
한마디, 한마디가 끔찍하기 그지없는 말이었다.
이 녀석은, 오직 그 소년과 싸우기 위해서 살인까지 불사했다는 것이다. 아니, 지금도 하려고 하면 얼마든지─
─막지 않으면 안된다.
어떻게 막아야할지도 모르겠고, 자신에게 그런 힘이 있을 리 없다는 것도 알지만.
그래도, 막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했다.
"바, 바보 아냐?! 이런 곳에 다짜고짜 데려온다고 그 녀석이 올 리가 없잖아! 당연히 함정이라고 생각하고 경계하겠지! 나를 납치했다고 해서─"
[온다.]
아리사의 말을 중간에 끊어버리며, 마그마 드래곤이 단언했다.
그 박력에, 아리사는 말과 함께 숨을 집어삼켰다.
[녀석은 반드시 온다. 하늘이 둘로 찢어지든 땅이 갈라지든 무슨 일이 있어도 온다. 자기가 아는 녀석의 목숨이 걸렸다고 하면 더더욱 그렇지. 너도 녀석과 지금까지 알고 지냈다고 하면 그 정돈 알텐데.]
─알고 있다.
그 녀석이, 바보같을 정도로 사람 좋다고 하는 것은.
그리고, 누군가의 목숨이 걸린 일이라고 하면 주저없이 움직일 거라고 하는 사실 정도는.
그렇기 때문에 막고 싶었다.
'어떻게든…!'
생각해냈다.
필사적으로 생각해냈다.
이 싸움을 말릴 수 있는 방법을.
'어떻게든, 하지 않으면 안돼…!'
하지만, 떠오르지 않았다.
애시당초 자신은 엑스에 대해선 잘 안다고 자부할 수 있지만, 이 용에 대해서 잘 모른다. 어떤 사정이 있기에 엑스와 이렇게까지 싸우려고 하는 것인지도 모르고, 정확히 어떤 성격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런 상황이라면 당연히 막을 수 있는 방법같은 게 떠오를 리 없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아리사가 모르는 사실이 하나 있다.
설령 두 사람에 대해서 잘 알고 있어도, 이 싸움을 막을 방법따윈 없다는 것을.
우선은, 대화부터 해보자.
그렇게 생각한 아리사가 입을 열었다.
"저, 저기…!!"
[왔군.]
마그마 드래곤이 자리에서 일어나고.
아리사 역시, 반사적으로 그가 시선을 주고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그녀가 그렇게도 보고 싶어했던.
하지만 이 자리에는 나타나지 않기를 바랬던 '푸른 유성의 용사'가 서 있었다.
그것을 확인한 마그마 드래곤의 손이 움직였다.
그 순간, 아리사의 손과 발을 묶고 있던 줄이 끊어졌다. 아리사에게는 작은 상처 하나도 내지 않고.
"에…?"
[말려들게 해서 미안했다. 이제 돌아가라.]
그렇게 말하고는 한발짝 앞으로 나갔다.
[네 걸음으로 저쪽을 향해 수십분 정도 걸어가면 도로로 돌아갈 수 있을거다. 그 뒤에는 네 통신장치도 작동될테니까, 돌아갈 수 있겠지.]
"자, 잠깐만……!!"
아리사가 뭐라고 더 말하기도 전에, 마그마 드래곤은 엑스를 향해 걸어갔다.
그리고 아리사는 마그마 드래곤이 가르쳐준 방향으로 움직일 생각도 못한 채 그것을 지켜봤다.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게 말하는 마그마 드래곤을 바라보는 엑스의 얼굴은, 처음 이 세계에서 재회했을 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유일한 차이점이라고 하면, 무표정 속에 슬픔과 안타까움이 담겨있다는 정도일까.
"… 처음부터, 아리사를 죽일 생각같은 건 없었군?"
[당연하지. 네가 나타나면 저 꼬마는 필요없으니까.]
그 이전에, 싸울 수도 없는 소녀를 죽일 리가 없다.
지금 마그마 드래곤을 지탱하고 있는 것은 오직 한가지, 전사로서의 자긍심이었으니까.
"사람을… 죽였더군."
[납치에 강간 미수. 덧붙여 일이 끝난 후엔 저 꼬마를 죽일 의사까지 있었지. 내 기준으로 봤을 땐 죽어도 상관없는 놈들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마그마 드래곤의 입에 미소가 걸린다.
[그렇다고 해도 너는 용납못하겠지, '이레귤러 헌터 엑스'.]
당연한 이야기다.
인간이 저지른 죄는 인간이 심판해야하는 것.
다른 종족인 레플리로이드가 임의로 판단하고 처벌하는 일은 있어선 안된다. 하물며, 목숨까지 빼앗다니.
왜 이렇게 된 것인가.
엑스는 입술을 깨물었지만, 이미 일어난 일은 어쩔 수 없다.
"… 목적은?"
[여기에 와서 처음 만났을 때부터 줄창 이야기했을텐데. 물론 너와 싸우기 위해서다.]
마그마 드래곤은 단호하게 말했다.
협상의 의지나, 대화의 여지같은 것은 남아있지 않다고 말하는 것처럼.
그런 마그마 드래곤을 보면서, 한순간 엑스의 표정이 변했다.
실로, 애처로운 얼굴로.
침묵을 지키던 엑스는 잠시 눈을 감고 표정을 고친 후, 다시 눈을 떴다.
그리고 마그마 드래곤에게 물었다.
"그건, 당신의 생명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인가."
[… 잘도 눈치챘군. 꽤 잘 숨겼다고 생각했는데 말야.]
역시 이 녀석을 속이는 것은 무리였던 것 같다.
물론 '저쪽'에 있을 때의 엑스라면 속여넘겼을 수도 있지만, 이곳에 와서 '마력'에 대한 감지까지 가능하게 된 엑스를 속이는 것은 불가능했다.
[네 말대로다. 앞으로 길어봤자 반년. 그나마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잠만 쳐잤을 때의 이야기고, 보통으로 활동하면 불과 앞으로 수개월. 혹은 그보다 더 짧을 수도 있겠지.]
"어째서… 어째서 그렇게?!"
물론 그 이유는 알고 있다. 지금 엑스가 보고 있는 마그마 드래곤은 예전과 비교해서 생명력이 현저하게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생명력이 줄어든 원인'은 도저히 알 수 없었다. 도대체 무엇때문인지.
그리고 마그마 드래곤 역시 그 원인은 알지 못했다. 바로 얼마 전에, 그 반역자에게 듣기 전까지는.
처음 들었을 때는 거짓말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현재의 상황과 대조해보면 그의 말은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가장 큰 문제라면 역시, 너와 내 차이점이겠지.]
"차이점……?"
[너는 살아있는 채로 여기에 왔지만, 나는 쥬얼 시드에 의해 부활한 몸이라고 하는거다.]
레플리로이드는 인간이 아닌 기계다.
죽은 생명을 되살리는 것은 어떤 로스트 로기아나 마법이라도 불가능하겠지만, '파괴된 기계'를 복구하는 것은 그것과 이야기가 다르다.
쥬얼 시드는 마그마 드래곤을 비롯한 레플리로이드를 기억채로 복구시켰고, 다시 한번 이 세상에서 움직일 수 있게 해주었다.
하지만, 그것도 완벽한 것은 아니었다.
[쥬얼 시드는 우리들을 부활시켰다. 그러나 완전히 파괴된 자들을 다시 살린다고 하는 일이, 아무런 리스크도 없이 가능할 리 없지. 무언가를 대가로 바쳐야만 하던가─]
"…… 제한 시간이 있던가."
엑스의 말대로.
쥬얼 시드는 그들에게, 한정된 생명만을 부여했다.
이것은 쥬얼 시드의 생각이 아니다. 애초에 그것이 쥬얼 시드의 한계였기 때문이다.
[스톰 이글의 문제는 걱정하지 않아도 돼. 녀석이라면 보통 인간정도는 살 수 있을테니까. 나는 아니지만.]
"왜, 당신만 그렇게 된거지…?"
엑스의 필사적인 질문에.
마그마 드래곤은, 이렇게 대답했다.
자신들은 한정된 생명을 갖고 태어났다.
그리고, 그 한정된 생명을 표시하는 피라미터는.
─본래 기계인 그들이 갖고 있을 리 없는, '마력'.
쥬얼 시드가 그들의 몸 속에 집어넣은 마력이야말로 그들을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었으며.
이것이 다 되면, 그들은 예전처럼 죽음으로 돌아간다.
더군다나 그들에게 있는 마력은 1회용. 오직 소모되기만 하는 것으로, 충전은 불가능하게 되어있다.
왜냐하면 그들의 몸 속에 있는 마력은, 쥬얼 시드가 그들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특별히 정제한 것이었으니까. '사용'하는 것은 보통의 것처럼 할 수 있어도, 다시 채워지진 않는다. 한번 써버리면 그것으로 끝인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 마력을 상당히 많이 써버렸으니까 말야.]
─바로, 리니스와의 계약으로 인해.
그의 죽음은, 쥬얼 시드가 준 생명보다 더욱더 앞당겨졌다.
"… 리니스 씨는, 그 사실을…"
[몰라. 모르고 떠났다. 말할 이유도 없고.]
그럴 것이다. 만약 리니스가 이 사실을 알았더라면 그냥 넘어가진 않았을테니까.
다른 마도사에게 마력을 받는 것도 불가능하다. 그런 마력을, 자신에게 나누어주는 것으로 그의 수명이 급속도로 줄어들었다.
그것을 알게 됐더라면, 그 마음착한 소녀는 어떻게 반응했을까.
… 상상하고 싶지도 않았다.
[뭐, 그걸로 불평할 생각은 없어. 그 녀석과 있는 동안 즐겁기도 했고.]
리니스와의 만남, 그녀와의 계약.
그리고 이레귤러들과의 싸움.
지난 1개월은, 상당히 즐거웠다.
한번 죽어 없어져버린 자신에게는 분수에 넘친다 싶을 정도로.
그러니까 그녀를 원망하거나 증오할 생각같은 것은 없다. 오히려 감사하는 마음도 어느 정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나쁘지 않았어. 나쁘지 않았다고. 요 1개월은.]
그럼에도.
[그 녀석하고 아웅다웅거리는 것도 재밌었고, 너희들과 뭉쳐다닌 것도 괜찮았어. 그렇지만.]
─미련은 남아있다.
[죽음을 앞에 둔 지금, 나한테 새겨져있는 전사로서의 영혼이 단 한가지의 소망을 포기하지 못하고 있다. 적어도 마지막의 마지막 순간만은, 내가 알고 있는 최강의 전사와 후회없이 싸우다 죽고 싶다고!!]
이랬으면 어땠을까, 하는 일 없이.
저랬으면 이겼을까, 하는 일 없이.
전심, 전력, 전령을 모두 쏟아부어, 아무것도 남기지 않는 싸움.
그는, 그것을 원하고 있었다.
[네 사정은 알고 있다… 전력으로 싸울 수 있는 시간은 불과 5분이라고…! 하지만!!]
두 손을 높이 들어올린다.
손을 펼치고, 손톱을 세웠다.
그리고.
─아래로 내리쳐, 자신의 가슴을 용서없이 파헤쳤다.
"……!!"
엑스와 아리사가 경악한다.
파헤쳐진 가슴에서, 반쯤 망가진 회로가 얼핏 보였다.
상처에서는 끊임없이 의사체액이 쏟아지고 있었고, 마그마 드래곤조차 격통으로 잠시 비틀거렸다.
하지만 그는 곧 자신의 손을 가슴에 올려 열기를 방출, 장갑을 녹여서 접합하는 것으로 출혈을 막아냈다.
그것 또한 말할 것도 없이 엄청난 고통을 동반하는 일이었지만, 마그마 드래곤은 신음소리조차 흘리지 않았다.
상처의 깊이.
조금 전에 보인 중앙회로의 손상.
쏟아져버린 의사체액의 양.
그것으로 볼 때.
─마그마 드래곤이 움직일 수 있는 시간은, 앞으로 불과 몇분.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마그마 드래곤에게서 느껴지는 위압감은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믹스 포르테를 능가하는 수준까지 도달했다.
그에게 남아있는 활동기간은 수 개월이라고 했었다. 그것이 가능할 정도의 에너지가 남아있다고. 설령 회로가 파괴되었다고 해도, 그 에너지까지 없어져버리는 것은 아니다.
그 에너지를, 앞으로의 몇분을 위해 모조리 써버리고 있다.
파워도 스피드도 출력도,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되지 않게 올라갔을 터.
굳이 마그마 드래곤이 지금 싸우길 원한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이 이상 시간을 끌었더라면 남아있는 에너지는 점점 고갈되어갔을테니까. 같은 방식을 사용했다고 해도 엑스의 전투력에는 따라갈 수 없었을 것이다.
─지금, 이 순간, 이 자리에서 싸우기 때문에.
두 레플리로이드는, '같은 조건'으로 싸울 수 있는 것이다.
[이걸로 조건은 너도 나도 마찬가지!! 지금이야말로, 결판을 낼 때다!!]
폭염의 용은 포효한다.
남아있는 생명을 모조리 힘으로 바꾸면서.
[나와 싸워라, 엑스!!]
───to be continu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