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켄틴 해머!!"
비타의 망치에 직격으로 맞고, 거대한 공룡이 옆으로 쓰러진다.
시그넘과 함께 가장 오랜 시간동안 '수집'에 힘쓰고 있는 비타였기에, 이미 옷차림도 몸상태도 엉망진창. 그럼에도 그녀는 피로에 젖은 몸을 움직이며 공룡에게서 링커 코어를 수집, 어둠의 서의 페이지를 모았다.
"좋아, 이걸로…"
지난번 그 하얀 마도사 꼬마에게서 얻은 걸로 페이지가 상당히 차긴 했지만, 그래도 아직 모자란다. 좀더 빨리, 그리고 좀더 많이 모아야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지금의 그녀들에게는 한시라도 빨리 모아야할 이유가 또 하나 생겼으니까.
"… 바보 자식."
한 소년을 생각하면서 비타는 욕을 내뱉았다.
수개월 전, 자신들이 눈을 뜨고 하야테를 주인으로 맞이했을 때 처음으로 만난 소년.
처음에는 하야테의 가족이라는 사실을 모른 채 교전했고, 그 결과 소년은 시그넘에게 한대 크게 얻어맞았었다. 그 뒤 나중에서야 그가 주인인 하야테의 가족이라는 걸 알게 됐고,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른다고 생각하면서도 각오하고 있었다. 자신들은 주인의 의지를 거스를 수 없는 전투인형이니까.
그럼에도 이 녀석은, 시원스럽게 용서해버렸다. 그토록 심하게 때린 자신들을, "맞은 사람이 저였으니까 문제없어요."라고 말하면서 이 세계에서는 마법을 함부로 사용하지 말라고 주의를 주는 정도에 그쳤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도, 내심 이렇게 생각했다. 이 녀석은 도대체 어디까지 호인인걸까, 하고. '어둠의 서'의 수호기사로서 살아오며 여러 종류의 주인을 만났고 또 여러 종류의 인간을 만났지만, 이 녀석과 지금의 주인 하야테같은 사람은 만난 적 없었다.
그래서, 특이한 녀석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지금은 단순히 '특이한 녀석'이 아니고, 하야테와 마찬가지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족'이었다.
그에게는 신세진 것도 많고, 갚아야할 것도 많이 있으며, 함께 하고 싶은 일도 많이 있다. 앞으로도 가족으로서 함께 살았으면 좋겠다. 볼켄리터 전원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그 소년이 눈을 뜨지 않은지, 사흘이 지났다.
샤멀의 회복 마법도 소용이 없었고, 아무리 하야테가 불러도 일어나지 않았다.
의사에게 데려가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그것은 하야테가 반대했다.
이유인즉, 하야테가 주저하면서 말하길 엑스가 인간이 아니라고 하는 것.
엑스는 "레플리로이드"라고 하는 기계 생명체이며, 보통의 인간이 가는 병원에는 갈 수 없다고 하는 것. 볼켄리터들로서는 처음 듣는 이야기였지만, 그 덕분에 엑스의 힘에 대해서 겨우 납득할 수 있었다. 마법도 쓰지 않고 그 정도의 전투력을 발휘할 수 있는 인간은,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으니까.
그러나 이것으로 문제는 더욱 난감해졌다. 인간의 몸이라면 몰라도, 자신들에게 기계에 대한 지식같은 것은 없다. 섣불리 고치겠답시고 뜯었다가 되돌릴 수 없게 되면 그때는 끝이다.
원인도 알 수 없고, 따로 깨울 수 있는 방법도 모르는 이상 내버려둘 수밖에 없었다. 이전처럼 자신들 중 한 사람은 반드시 집에 남아있는 것으로 하고.
덧붙여 쟈피라의 경우에는 하야테에게 "직장을 그만두고 두 사람을 돌보는 것에 집중하고 싶다"라고 말했고, 하야테는 조금 망설였지만 허락했다. 물론 쟈피라가 다니던 직장은 벌써 예전에 그만둔 상태였지만, 이걸로 쟈피라는 아무런 문제없이 집에 대기할 수 있었다.
상황은 나쁘지만, 자신들이 해야할 일은 변하지 않았다.
자신들이 의지할 수 있는 것은 '어둠의 서' 뿐. '어둠의 서'를 완성하기만 하면 하야테의 병도 고칠 수 있고, 엑스를 깨우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누가 뭐라고 해도 '어둠의 서'를 완성시킨 주인은 절대적인 힘을 얻을 수 있으니까.
이제 곧이다.
'어둠의 서'만 완성되면, 모든 것이 원래대로 돌아갈 것이다.
하야테와 함께, 엑스와 함께, 웃고 떠들고 화내고 슬퍼하며 행복하게 생활하던 그때로 돌아갈 수 있다.
그것만이, 수호기사들의 유일한 믿음이었다.
IRREGULAR HUNTER - X
43화
"응. 참말로 미안하게 생각한데이. 먼저 이야기해놓고 이렇게… 응. 응. 그럼 나중에 보자."
하야테는 상대쪽에서 전화를 끊는 걸 확인하고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이해해준 것 같아서 다행이다. 하기야, 전에 스즈카와 만났을 때 충분히 느꼈던 거지만, 상냥한 아이니까.
하야테는 휠체어를 움직여, 자신의 방에서 나갔다.
그리고 휠체어용의 계단을 이용해 2층으로 올라가, 엑스의 방으로 향했다.
도착하자, 그곳에는 늑대의 형태로 변한 쟈피라가 한쪽 구석에 누워있다가 그녀를 발견했다.
"… 아직 안일어났제?"
"네."
쟈피라도 지금의 이 상황이 가슴아픈 것은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부르고 건드려도, 엑스는 눈을 뜰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자신들은 물론이고 하야테의 부름에마저도.
'… 도대체 너한테 무슨 일이 있었던거냐, 엑스…'
누군가에게 공격당했다고 한다면 복수라도 해줄텐데, 자신들은 그것조차 모른다.
언제까지 이렇게 기다려야만 하는 걸까. 역시 어둠의 서가 완성되기만을 기다릴 수밖에 없는걸까.
"주인 하야테."
"응?"
엑스의 침대 옆에 앉아, 엑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없이 그를 바라보기만 하는 하야테를 불렀다.
"정말로, 엑스가 소속되어있었다고 한 곳에 대해서는 듣지 못하셨습니까."
"……"
하야테는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엑스는 자신의 옛날 이야기에 대해서는 거의 이야기를 하지 않았고, 하야테도 굳이 들으려 하지 않았다. 옛날 이야기를 하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자신들은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도, 엑스가 소속되어있는 곳─어쩌면 엑스를 만들었을지도 모르는 곳─이라면 무슨 해결책이 있을지도 모르는데.
자신들은 정말로 무력하다. 싸우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으니.
"괘안타."
자괴감에 빠진 쟈피라의 귀에, 하야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들어올려보니 하야테는 여전히 엑스 쪽을 보고 있었지만, 계속 말하고 있었다.
"분명히, 일어날 거니께. 우리는 그때 야단쳐주면 되는기라."
"…… 네."
그럴 수밖에 없다.
지금은 이렇게, 그가 일어나길 기도하는 수밖에 없다.
'… 약속했으니까.'
그날.
하야테와 엑스가, '가족'이 되었던 날.
두 사람은 약속했었다.
엑스는 하야테의 가족이 되기로.
하야테는 엑스와 함께, 그가 살아가는 의미를 찾는 것을 도와주기로.
그리고 그 약속은 아직, 반 정도밖에 지켜지지 않았다.
'엑스 군은 약속 안어길거제…? 돌아와줄거제?'
하야테는 믿고 싶었다.
이 작은 용사가 얼른 일어나서, 다시 자신을 향해 웃어줄 것이라는 걸.
"응… 그런 거라면 어쩔 수 없네. 응? 아니아니, 신경쓸 필요 없어. 응, 그래. 그럼 나중에 기회가 되면. 응, 응. 그럼 잘 지내, 하야테."
딸칵하는 소리와 함께 스즈카가 전화기를 내려놓았다.
기대하고 있었는데. 작게 한숨을 쉬었지만, 어쩔 수 없다. 하야테에겐 하야테의 사정이 있으니까.
"스즈카 아가씨? 누구한테서 온 전화죠?"
"아, 파린. 전에 만났던 하야테짱 말인데, 집으로 놀러가겠다고 했던 약속 지킬 수 없게 되서 미안하다고 전화온거야."
"… 무슨 일이라도 생긴건가요?"
"응. 가족이 아파서 올 수 없대. 할 수 없지, 뭐."
그거 큰일이네요, 하고 파린이 걱정섞인 말을 했다.
전에 만났을 때 듣기로 하야테는 부모님없이 친척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고 했는데, 특히 '오빠'에 대한 자랑이 굉장했다. 이 아이는 정말로 자기 오빠를 좋아하는구나 싶을 정도로.
그런데 지금 그 오빠가 쓰러진 모양이다.
"다음번에 병문안이라도 가는 게 좋을까…? 하는 김에 아리사이나 나노하도 소개하고."
"그거 좋은 생각이네요. 안그래도 스즈카 아가씨는 좀더 친구를 많이 사귀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나노하와 아리사를 사귀기 이전에는 스즈카에게 '친구'가 없었다.
스즈카 자신이 '자신은 밤의 일족'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다른 사람들과 거리를 두었으며, 실제로 따돌림도 당하고 있었다. 그 벽을 주저없이 깨트리고 들어온 것이 나노하와 아리사였고, 세 사람은 곧 둘도 없는 친구들이 되었다.
… 과정은 좀 험악했지만.
아무튼 그랬던 스즈카가 지금은 스스로 새 친구를 만들려고 하고 있었다. 항상 그녀의 옆에서 지켜봐온 파린으로선 감개무량.
"힘내세요, 아가씨. 응원할게요!"
"무슨 소릴 하는 거야? 파린도 가는 건데."
"…… 아, 역시 그런가요."
쓴웃음을 지었지만, 사실 상관없었다. 어쨌든 자신은 이 소녀의 '보호자'니까.
스즈카는 그대로 침대에 걸터앉았고, 파린은 그런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그, 전의 그 분하고는… 연락이 안되나요?"
"…… 응. 전화를 안받아."
엑스와 만나지도 못하고, 이야기도 하지 못한 것이 몇일 째.
그 전까지만 해도 하루에 한번은 반드시 통화를 했었는데, 요 몇일은 아무리 전화를 걸어도 받지 않았다.
무슨 일이라도 생긴걸까. 혹시 그런 거라면 연락 한번 정돈 해줘도 좋을텐데. 아니면 연락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바쁜걸까.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고, 갈수록 나쁜 생각까지 들었다.
혹시, 자신이 귀찮아진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도 들었지만, 스즈카는 고개를 저었다.
그것은 아니다. 그 소년의 성격을 생각하면, 지금까지 떠올린 생각 중 가장 가능성이 낮은 것이 그것일 것이다.
일억의 하나 그 소년이 자신을 싫어하게 됐더라도, 이렇게 아무런 말도 없이 연락을 끊어버릴 일은 없다. 스즈카는 그렇게 확신하고 있었다.
'그러고보니 아리사도 그걸로 투덜거리고 있었는데.'
엑스와 연락을 못하고 있는 것은 자신만이 아닌 모양이었다. 아리사도 오늘 학교에서 갑자기 연락이 안된다고 투덜투덜거렸으니까.
연락도 못할만큼 바쁜 일이라고 하면 예의 '이레귤러'라는 것과 관계된 것일지도 모른다.
… 생각나버렸다. 지난번에 저택에 쳐들어왔던 그 '이레귤러'가.
그 녀석은 정말로 무서웠다. 지금 다시 생각해내는 것만으로도 몸이 떨릴 정도로. 아무리 '밤의 일족'인 그녀라곤 해도, 그 정도의 살기를 여과도 없이 받았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결과다.
엑스는, 지금까지 그런 것들을 상대로 싸워왔던걸까.
"뭐, 그 분이니까요. 틀림없이 엄청나게 바쁘신 걸거예요. 그게 끝나면 다시 뵐 수 있겠죠."
"그래. 분명 또 연락못해서 미안하다고, 사과안해도 될 걸로 사과하면서─"
그렇게 웃으면서 대답하려고 했다.
이대로였다면 스즈카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을 돌려줄 수 있었을 것이다.
─어딘지 모르게 꿈을 꾸는 듯한 표정으로 얼굴을 붉힌 파린을 보지 못했더라면.
"…… 파린? 지금 뭐하는 거야?"
"… 에? 에에?!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아가씨! 언니를 구해줄 때의 그 분이 엄청나게 멋있었다던가 그 로봇 상대로도 한발짝도 안물러나고 맞섰던 게 근사한 왕자님 같았다던가 그 분도 저랑 비슷한 종류니까 어쩌면 저한테도 기회가 있을지도 모른다던가 언니도 다시 만나게 되길 엄청나게 기대하고 있던 게 노리고 있는걸지도 모른다던가 옆에서 보기만 했던 저와는 달리 언니는 두번이나 직접 지켜지고 구해졌으니까 저보다 더할지도 모른다던가! 그런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았으니까!"
묻지도 않은 걸 알아서 가르쳐주고 있다.
이것도 그만큼 그녀가 순수하다는 이야기겠지만.
─물론, 그렇다고 지금 들은 이야기를 그냥 넘어가줄 생각은 없었다.
"잠깐, 파린? 나하고 이야기 좀 하지 않겠어? 진지하게. 그리고 노엘도 그렇다는 이야기는 뭐야?!"
"히이이이이~! 아무것도 아니에요 아무것도 아니에요 아무것도 아니에요오~!"
… 뭐, 스즈카에게도 악의는 없었다.
엑스와 연락이 되지 않은지, 몇일이 지났다.
스톰 이글은 이미 연락이 끊겼을 때부터 엑스를 걱정하고 있었다.
스톰 이글은 이미 연락이 끊겼을 때부터 엑스를 걱정하고 있었다.
'뭘 하고 있는거냐, 엑스…?'
100년 전.
그와 엑스는 동료였다가 적이 되어 싸웠고, 최후에는 엑스의 손에 의해 파괴되었다.
이때 엑스는 스톰 이글이 자신을 봐준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던 모양이지만, 스톰 이글의 입장에선 딱히 봐주면서 싸운 기억은 없다. 스톰 토네이도를 엑스에게 차마 맞출 수 없었다는 걸 제외하면 꽤 진심이었으니까.
그리고, 100년이 지난 지금.
쥬얼 시드에 의해 부활한 자신은 다시 한번 엑스와 만났고, 또 동료가 될 수 있었다.
여하간, 100년이나 지났는데도 이 녀석은 변함이 없다. 괴조와 한번 같이 싸우고, 조금 등을 맞대고 싸운 정도로 100년 전에 있었던 일같은 건 그대로 묻어버리고 동료로 다시 받아주었으니까. 스톰 이글만이 아니라 다른 둘도 마찬가지였다.
하기야, 그 점이 바로 엑스의 약점이자 최고의 강점이지만.
생명을 소중히 여기고, 자신보다 타인을 소중이 여기는 「상냥함」.
어떤 강적이 상대라도 꺾이지 않고 흔들리지 않는 강인한 「투지」.
엑스는 100년 전부터, 그 두가지를 함께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두가지를 무기로, 저 '사신' 시그마를 상대로 싸워 쓰러트렸다.
자신은 결국 이기지 못하고 쓰러졌던 시그마를 상대로 싸워서. 아무도 이기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던 그 괴물을 상대로.
그토록 강한 엑스니까, 무슨 일이 생길 거라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 지금 단계에서는, 생각해봐도 소용없는 일인가.'
엑스의 위치조차 추적되지 않는 지금, 무작위로 엑스를 찾아 돌아다녀봐야 시간만 낭비할 뿐이다.
아니, 솔직한 심정을 말하자면 시간 낭비라도 좋다. 지금 당장 날개를 펼치고 날아올라 엑스를 찾고 싶었다.
그러나, 이곳의 일도 중요하다.
지난번 나노하를 공격하여 링커 코어를 강탈했던 일당. 스스로를 '볼켄리터'라고 칭한 자들.
만약 엑스였다면 어떻게 했을까.
동료의 힘을 믿고, 사건의 해결에 집중하지 않았을까.
그렇게 생각했기에, 스톰 이글은 엑스를 믿기로 했다.
엑스와 다시 만났을 때, 그를 똑바로 바라볼 수 있도록 노력하기로 했다.
'너희들도 이런 기분이었을까. 스파이더. 드래곤.'
너무 성급했다. 비타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요 몇일동안 페이스를 갑자기 올렸던 것도 그렇고, 뒤처리를 확실하게 하지 않은 것도 그렇고.
하야테의 문제에 엑스의 문제까지 겹쳐서, 마음이 급해진 탓이다. 그것이 틀림없다.
─덕분에, 꼬리를 잡혀서 지금 시공관리국의 무장국원들에게 포위되어 있었다.
비타와 쟈피라는 등을 맞댄 채 자신들을 원형으로 둘러싼 무장국원들을 경계하고 있었다.
"관리국인가."
쟈피라가 낮게 으르렁거리듯이 말했다.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무장국원의 숫자는 10명. 그에 반해 이쪽은 둘.
하지만 불리하다는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았다.
"문제없어. 이 녀석들 별볼일없으니까. 박살내주지!"
비타가 그라프 아이젠을 들어올리는 순간, 무장국원들은 그들에게서 거리를 벌리고 넓게 흩어지기 시작했다.
당혹스러워하는 비타와는 달리, 쟈피라는 냉정하게 생각했다.
그러고보면 이 녀석들은 자신들을 공격하지 않았다. 능력면은 둘째치고, 숫적으로는 완전히 우위에 있었는데.
마치, 자신들을 잡는 것보다는 여기에 묶어두는 것이 목적이라고 하는 것처럼.
… 묶어둔다. 시간을 번다고?
"… 위다!!"
쟈피라가 외치는 것과 동시에 두 볼켄리터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을 메우고 있는, 옅은 하늘색의 마력으로 이루어진 무수한 단검들이 눈에 들어왔다.
"스팅거 블레이드 엑시큐션 시프트!!"
크로노가 S2U를 내려치는 것과 동시에, 100개가 넘는 단검들이 떨어져내렸다.
그것을 본 쟈피라는 비타를 감싸듯이 앞으로 나와, 배리어를 펼쳤다.
단검들과 배리어가 충돌하고, 무수한 폭발을 일으키고 연기를 피어올렸다.
"조금은… 통했을까…?"
이것으로 쓰러트린다면 그것보다 좋은 일은 없겠지만.
그러나 크로노에게 있어서는 유감스럽게도, 비타는 찰과상 하나 입지 않았고, 쟈피라조차 앞으로 내밀었던 팔에 3개의 단검이 박혀있을 뿐이었다.
"쟈피라?!"
"신경쓰지마라. 이 정도로 어떻게 될만큼… 약하지 않아!"
쟈피라가 팔에 힘을 집중하자 박혀있던 검들이 근육에 밀려 뽑혀나왔고, 땅에 떨어졌다.
상당히 마력을 소모한 공격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대에게는 데미지가 없었다.
쟈피라가 별 데미지를 받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한 비타는 사나운 미소를 지으며 몸을 움직였다.
지금 나타난 저 시공관리국의 집무관을 때려눕히기 위해서.
─하지만.
관리국의 집무관이 갑자기 눈을 돌려, 옆쪽의 빌딩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놀란 목소리로 외쳤다.
"나노하, 페이트?!"
"……!!"
비타는 소녀들의 얼굴을 보고 확실하게 기억해냈다.
저번의 첫 만남 때 싸우고 쓰러트렸던 마도사 소녀들. 그 중 하얀 쪽은 링커 코어까지 강탈했었는데 지금 이 자리에 서 있었다.
그리고 그 뒤쪽에는 그녀들의 사역마로 보이는 두 소년과 소녀도 서 있었다.
"저 녀석들…!"
두 소녀 마도사는 손을 높이 들어올리고 외친다.
"레이징하트!!"
"바르디슈!!"
""셋 업!!""
분홍빛과 금빛이 두 사람을 감싸고, 두 사람에게 에이미의 통신이 들어왔다.
<놀라지 말고 잘 들어! 레이징하트도 바르디슈도 새로운 시스템을 장착하고 있어. 그 아이들이 자신의 의지와 자신의 마음으로 바란 새로운 힘을! 불러주도록 해, 그 아이들의 새로운 이름을!"
『Get set.』
『Stand by Ready.』
두 사람의 디바이스가 준비를 마치고 기다린다.
자신들의 주인이, 자신들의 새로운 이름을 외쳐주기를.
그리고, 소녀들은 외쳤다.
"레이징하트 엑셀리온!!"
"바르디슈 어설트!!"
『『Drive ignition.』』
자신들의 주인을 지키지 못했던 무력함.
자신들의 주인을 노리는 적을 쳐부수지 못했던 원통함.
두 디바이스가, 자신들의 의지로 원한 힘.
─베르카식 카트리지 시스템.
그것이 장착된, 새로운 모습으로 변한다.
무장국원들이 설치한 결계의 밖.
이곳에서 볼켄리터의 리더, 시그넘은 완전 무장을 갖춘 채 결계를 노려보고 있었다.
"경상형 포획 결계. 비타와 쟈피라는 여기에 갇힌건가…"
위험 신호를 받고 와봤더니 이런 일이 되어있을 거라고는.
『Wahlen Sie Aktion.』
그녀의 분신이 행동을 결정하라고 말해오고 있다.
시그넘은 레반틴을 향해 말했다.
"레반틴. 너의 주인은 이런 상황에서 물러설 기사였나?"
『Nein.』
부정의 대답.
레반틴의 자루를 움켜쥐고, 열화의 마검을 들어올린다.
"그렇다, 레반틴. 우리는 지금까지 계속 그렇게 해왔다."
레반틴이 움직여, 카트리지를 로드하자, 검날이 불길에 휘감겼다.
이것만으로도, 레반틴에 담긴 파괴력은 수배로 상승한다.
"우리들은 물러설 수 없다… 무엇이 가로막고 있다고 해도!!"
"저 녀석들의 디바이스, 설마…?!"
비타의 경악성이 울렸다.
확실히 저번에도 보통이 아닌 의지가 느껴졌었지만, 설마 자신들에게 당한지 몇일만에 자신들의 것을 모방한 시스템을 자신들의 디바이스에 장착하고 나타날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우리들은 당신들과 싸우러 온 게 아니야. 우선 이야기를 들려줘."
"어둠의 서의 완성을 목표로 하는 이유를!"
대화로 해결하는 것이 가능한 문제라면 대화로 풀고 싶다.
그녀들에게도 이런 일을 하는 이유가 있을 터. 그렇기에 이유를 물었다.
만약 자신들이 협력할 수 있는 문제라면, 그것을 해결해줄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하지만 그런 그녀들의 말을 들은 비타는 팔짱을 낀 채 말했다.
"저기 말야. 베르카의 속담 중에 이런 말이 있어."
쟈피라가 고개를 돌려 자신을 보는 것도 신경쓰지 않은 채, 비타는 말을 이었다.
"'화평의 사자라면 창은 들지 않는다'."
나노하와 페이트는 비타의 말을 듣고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비타는 냉소를 지은 채 그라프 아이젠을 휘둘러 나노하를 가리켰다.
"대화를 하자면서 무기를 들고 찾아오는 녀석이 어딨냐, 바보! 너 말야, 바보!"
"가, 갑자기 아무 말도 안하고 습격해온 사람이 그런 말을 해?!"
따지고 보면 문답무용으로 공격을 시작한 것은 비타였다. 나노하는 욱하고 받아쳤다.
거기에 더해 아군인 쟈피라는 손을 더해주긴 커녕 반대로 태클을 걸었다.
"그리고 그건 속담이 아니라 단순한 옛날 이야기의 마무리 대사다."
"…!! 사, 상관없다고 사소한 건!!"
그 순간, 상공에서 거대한 폭음이 울렸다.
보라색의 번개와도 같은 균열이 결계 상부를 찢었고, 그 빛의 주인은 가까운 빌딩 위에 내려섰다.
─볼켄리터의 리더, 열화의 맹장 시그넘.
그녀를 본 순간 페이트가 반응했다.
이 시점에서, 각자의 상대가 정해졌다.
나노하는 비타를 바라보며, 다른 사람들에게 혼자 싸우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페이트 역시 시그넘을 주시하며 그녀와 일 대 일로 대면하고 싶다고 말했다.
알프는 페이트의 의견에 동의하며, 그녀 또한 쟈피라를 매섭게 노려보았다.
나노하는 비타를 바라보며, 다른 사람들에게 혼자 싸우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페이트 역시 시그넘을 주시하며 그녀와 일 대 일로 대면하고 싶다고 말했다.
알프는 페이트의 의견에 동의하며, 그녀 또한 쟈피라를 매섭게 노려보았다.
<마침 잘됐나… 유노. 나와 네가 분담해서 어둠의 서의 주인을 찾는거야.>
그것을 지켜보고 있던 유노의 머리 속에 크로노의 염화가 들어왔다.
<어둠의 서의?>
<녀석들이 갖고 있지 않으니까, 아마 또 한명의 동료나 주인이 어딘가에 있을거야. 난 이글과 함께 결계 바깥쪽을 찾을테니까, 넌 안쪽을.>
<… 응. 알았어.>
크로노와 유노가, 소리없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남은 것은 볼켄리터 세 사람과, 이쪽의 세 사람.
대치는 결코 오래 가지 않았고, 마도사와 기사들은 곧바로 행동에 들어갔다.
[전투는 호각인가. 하지만 관리국 쪽 놈들은 숫자가 많으니 장기전으로 갈수록 볼켄리터 쪽이 불리하겠군.]
<그리고 스톰 이글이 결계 바깥쪽을 돌고 있다. 장기전으로 가지 않아도, 충분히 불리한 상황이지.>
VAVA와 시그마는 그 일련의 모든 것들을 지켜보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비록 시그마는 이쪽에 없기 때문에 자기 눈으로 직접 볼 수는 없었지만, VAVA가 보내주는 영상을 통해 직접 보는 것과 다름없이 관찰할 수 있었다.
VAVA가 말했던 것처럼 직접 전투는 호각.
나노하는 비타와 싸우고, 페이트는 시그넘과 싸우며, 알프는 쟈피라와 교전 중이었다.
지난번에는 불시의 습격이었던데다 준비도 되어있지 않아 일방적으로 당했지만, 이번에는 준비도 철저히 해왔고 무엇보다 그때와는 각오가 다르다. 아마, 볼켄리터라고 해도 쉽게 이길 수는 없겠지.
더군다나 관리국이 쳐놓은 저 결계.
VAVA는 마법에 대해선 잘 모르지만, 적어도 그리 쉽게 찢겨질 물건이 아니라는 정도는 느낄 수 있었다.
[스톰 이글은 어떻게 하지? 바깥에 있는 호수의 기사 혼자선 관리국의 까만 꼬마 하나만도 벅찰텐데.]
정안된다 싶으면 자신이 직접 가서 때려부수는 수도 있다. 오히려 그쪽이 자신의 성격에는 잘 맞고.
VAVA는 두 손을 끊임없이 쥐었다 폈다 하면서 당장이라도 나갈 기세로 하늘을 멤도는 스톰 이글을 노려보았다.
<그럴 필요는 없다. 너한테는 따로 맡기고 싶은 일이 있으니까 돌아와.>
한순간 욱했다.
[너 말야… 저번부터 날 아주 심부름꾼으로 부려먹고 있는데…]
<참아라. 그보다 어서 빨리 돌아와. 일레인이 네놈을 찾고 있으니까.>
아, 그 빌어먹을 년이.
저번에 한번 구해준 정도로 만날 때마다 찰싹 달라붙는 일이 많아졌는데, 버스터 캐논으로 날려버리고 싶었던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 뭐, 스팅 카멜레온보다는 훨씬 낫지만.
[그럼 여기 일은 어떻게 할거냐.]
<네가 나서지 않아도 대신 처리해줄 사람은 있어. 이를테면…>
지금 이 순간도 열심히 머리를 굴리고 있을 그 제독이라거나.
<상황은 별로 좋지 않아. 시그넘과 비타가 질 거라곤 생각하지 않지만, 여기선 일단 이탈할 필요가 있다. 샤멀, 밖에서 어떻게 할 수 있겠나?>
쟈피라는 알프와 싸우는 와중에도 바깥으로 염화를 날려 샤멀과 의사를 교환했다.
<어떻게든 하고 싶어도 국원들이 밖에서 결계를 유지하고 있어서 내 마력으로는 깰 수 없어… 시그넘의 팔켄이나 비타의 기간트급 마력을 써야해.>
<… 둘 다 다른 걸 할 여유는 없어. 할 수 없지. 그걸 쓸 수밖에.>
어둠의 서의 페이지를 소모하여, 그 힘을 사용한다.
그렇게 하면 저런 결계 정돈 얼마든지 깰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지금까지 그녀들이 목숨을 걸고 모아온 페이지를 써버린다는 이야기가 된다. 바로 그것이 샤멀로 하여금 섣불리 어둠의 서를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원인이었다.
"수색지정 로스트 로기아의 소지, 사용 혐의로 당신을 체포합니다."
그녀의 뒤에서 목을 향해 겨누어진 크로노의 S2U.
그것을 영상으로 지켜보고 있던 린디와 에이미는 미소를 띄웠다.
"저항하지 않는다면 당신에게는 변호의 기회가 있다. 동의한다면 무장의 해제를."
이대로 체포하고, 어둠의 서를 빼앗는다. 사정은 그 후에 들으면 된다.
그렇게 생각하고, 크로노는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 S2U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그 순간, 옆구리에 강렬한 충격이 전해져왔다.
롯테와 아리아는 예의 '가면 남자'의 모습으로 변신한 채 끼어들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그리고 크로노가 수호기사를 발견하고 체포하려고 하는 것을 보자마자, 롯테는 앞뒤 가리지 않고 그대로 달려들어 크로노를 강타했다.
"… 당신은?"
"… 어둠의 서의 힘을 써서 결계를 파괴해라."
샤멀의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돌아온 것은 샤멀이 조금 전까지 고민하고 있던 것이었다.
"하지만 그건…!!"
"써버린 페이지는 다시 모으면 된다. 동료가 당해버리면 그땐 늦을텐데."
"……!!"
동료들이 있다면, 페이지는 다시 모을 수 있다.
하지만 이대로 내버려둬서 그들이 당해버리면 아무런 의미가 없어진다.
샤멀은 입술을 깨물고 결단을 굳혔다.
[찾아냈다!!]
그리고 '가면의 남자'의 머리 위로, 손톱이 떨어져내렸다.
남자는 두 팔을 들어올려 그 손을 막아냈지만, 곧 그가 딛고 있던 바닥이 무너져내렸다.
'… 이런 힘을…!!'
이런 녀석이 있다는 이야기도 들었고, 지난번 그레이엄과 크로노가 대면했을 때 보기도 했지만 설마 이 정도의 힘을 갖고 있을 줄은 몰랐다. 마법조차 사용하지 않고 순수한 힘만으로 이런 파괴력을.
'이래서야 거의 괴수 레벨이잖아…!!'
가면남자─ 롯테는 이를 갈며 다시 날아올랐고, 스톰 이글은 그대로 롯테를 공격했다.
그 뒤를 이어 아리아가 합류하여 스톰 이글을 향해 킥. 스톰 이글은 그것을 붙잡아 휘둘러 롯테를 향해 쳐박았다.
"큭…!!"
[죽일 생각은 없다. 얌전히 뻗어있어!!]
「스톰 토네이도」
스톰 이글의 오른팔이 변화된 포구에서 회오리가 발사되어, 롯테를 휘감았다.
그것을 본 아리아가 롯테를 구하기 위해 스톰 이글을 향해 날아왔지만, 이번엔 다시 돌아온 크로노가 가로막았다.
"내버려둘 것 같으냐!! 당신들 역시 그녀와 같은 공범으로 판단하고 체포하겠다!!"
제자주제에 건방지게.
그렇게 생각했지만, 입밖으로 꺼낼 수는 없었다.
이대로는 곤란했다.
이대로 싸움이 계속 진행되버리고, 수호기사들이 당해서 체포되버리기라도 하면.
자신들의 목적이.
자신들의 아버지의 오랜 목표가 사라져버린다.
'… 그렇게 둘 것 같아!!'
이미 돌이킬 수 없다.
죄책감을 묻어버리고 이번 일을 시작한 시점에서.
엑스를 공격하고, 그가 쓰러지는 것을 보기만 한 시점에서.
아버지의 계획을 엿듣고, 그것을 자신들에게 맡겨달라고 자원한 시점에서.
"방해하지마라!!"
아리아는 한순간의 빈틈을 찔러 크로노의 복부를 걷어찼고, 그 반동으로 크로노의 공격 범위에서 벗어난 후 스톰 이글을 향해 돌진했다.
스톰 이글은 혀를 차며 스톰 토네이도를 풀었고, 아리아는 풀려난 롯테와 함께 스톰 이글을 공격했다.
그리고 뒤를 이어 크로노가 다시 합류하면서 난전을 거듭한다.
「여행의 거울」을 통해 나타난 샤멀의 손이, 스톰 이글의 가슴을 관통하기 전까지.
스톰 이글에게는, 아니 레플리로이드에게는 '링커 코어'라고 하는 물건이 존재하지 않는다.
당연하다면 당연하다. 그들은 일반적인 자연계의 생명체와는 동떨어진 존재니까.
그렇기 때문에, 이런 공격을 받는다고 해서 링커 코어를 강탈당할 일은 없다.
그렇지만.
지금의 이 공격은.
스톰 이글은 물론이고, 샤멀조차 예상하지 못한 효과를 가져왔다.
스톰 이글에게는 링커 코어가 없지만, '마력'은 있다.
쥬얼 시드가 그에게 선사한, 그의 생명을 유지하고 있는 '마력'이.
그 마력은 통상의 링커 코어같이 심장부에 뭉쳐져있었으며.
그것으로 스톰 이글의 생명이 유지되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샤멀의 링커 코어 공격으로 인해.
구체 형태로 뭉쳐져있던 마력이, 파괴됐다.
[───────────!!]
태어나서 한번도 느껴본 적 없는 고통.
팔이 부러지거나 다리가 잘리거나 전신이 박살났을 때도 이렇게까지 아프진 않았다.
문자 그대로, '생명'을 직접 공격당한 듯한 고통.
천공의 귀공자는 날개를 펼치지도 못한 채 땅으로 추락했다.
[크, 카악…!! 카학, 크하, 크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왼손으로 가슴을 움켜쥐고, 오른손으로 바닥을 두들긴다.
가슴에는 아무런 상처도 없다. 없지만, 그럼에도 고통은 여전히 느껴지고 있었다.
[크, 쿠, 헉… 카아… 하아, 하아…! 크아, 아…!!]
아팠다. 엄청나게.
너무나도 아파서, 차라리 미쳐버리고 싶을 정도의 고통.
미쳐버리면 편할지도 모르지만, 너무나도 아팠기에 미쳐버리려던 정신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그리고 스톰 이글은.
이 땅에 떨어진 하늘의 귀공자는.
─손으로 바닥을 짚고, 일어나기 시작했다.
다리가 떨려서 넘어진다.
그럼에도 다시 일어났다.
또다시 넘어졌다. 그래도 일어났다.
아무도 없는 골목길에서, 그는 벽을 붙잡고 일어났다.
[웃기지… 마…! 이런 곳에서… 죽을 것 같으냐!!]
자신의 몸에 대한 이야기는 엑스에게 이미 들었다.
자신의 이 생명은, 쥬얼 시드가 준 마력에 의해 유지되는 것이라고.
아까 전의 그 공격을 당했을 때, 나노하는 마력의 근원인 링커 코어를 빼앗겼다고 했다.
자신에게는 링커 코어가 없지만, 그 공격이 자신을 유지하고 있는 마력에 타격을 가했을 가능성은 있다. 아니, 이 무시무시한 통증을 보면 그것이 틀림없을 것이다.
지금 당장 이 자리에 쓰러져 죽지 않은 이상, 마력이 전부 날아가진 않은 것 같다.
자신은 아직, 살아있다.
[아직은… 못죽어…! 나한테는, 해야할 일이…! 있다고!!]
<아니. 넌 죽는다. 살 수 없어.>
─결코 잊을 수 없는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려왔다.
고통조차 잊어버린 채, 발광하는 것조차 잊어버린 채.
스톰 이글은 완전히 굳어버렸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고개를 뒤로 돌렸다.
시야에 들어온 것은, 머리 끝부터 발끝까지 칠흑색의 망토로 감싼 '어떤 것'.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스톰 이글은 본능에 가깝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틀림없다.
망토로도 전부 가려지지 않는 '악의'.
그리고, 고통이 아닌 다른 이유로 떨리고 있는 자신의 이 몸.
스톰 이글은 간신히, 하나의 이름을 말할 수 있었다.
[시그, 마……!!]
<오랜만인데, 스톰 이글. 직접 보는 건 100년만이군.>
그리고.
악몽의 사신은, 추락한 귀공자를 바라보며 흉악한 웃음을 지었다.
───to be continu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