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노 하라오운은 예전에,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이 세상은 "이렇게 되지 않았어야 했다"라는 것들로 가득차있다고.
그것에 맞설까 어떨까는 개인의 자유지만, 자신의 제멋대로인 사정에 관련없는 타인까지 끌어들이는 것은 있어선 안된다고.
제대로 표현을 한 적은 없지만 엑스는 그의 말이 옳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이렇게 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싸우는 것 이외에, 다른 미래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말그대로 아무도 다치지 않고, 아무도 희생되지 않는 그런 '결과'를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과거의 이야기.
과거에 어쨌든 간에, 지금은 지금.
선택할 수 있었던 순간은 이미 지났다.
지금은, 싸우지 않으면 안된다.
상상을 초월하는 힘을 손에 넣은 저 사신과.
─아무리, 승산이 없다고 해도.
IRREGULAR HUNTER - X
51화
불꽃과 함께 사격음이 울렸다.
한발, 두발, 세발.
잠시 멈추고 위치를 바꾼 후 다시 한발, 두발.
총 5발의 빛의 탄환이 시그마를 향해 날아갔다.
그 모든 탄환들을 마법의 장벽으로 막아내고, 시그마는 주문을 영창했다.
「Blutiger Dolch」
순식간에 엑스의 주위로 21발의 핏빛 강철 단검들이 생겨났고, 그것들은 일제히 중앙의 엑스를 향해 발사된다.
발사부터 착탄까지 걸린 시간은 1초 이하. 그러나 그 순간에도 엑스는 버스터 슛으로 단검의 절반을 격추시켜 생긴 틈으로 피했고, 나머지 단검들은 엉뚱한 방향으로 날아가 폭발했다.
본래 이 마법은 한번 사출한 후에는 조종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그 공격 범위 안에서만 벗어나면 문제될 것이 없다.
「Schwarze Wirkung」
그 순간 엑스의 등 뒤로 돌아와있던 시그마가 주먹을 휘둘렀다.
몸을 재빨리 돌려 방어태세를 취한 것만으로도 엑스를 칭찬해야 마땅했지만, 시그마의 철권은 그런 방어 채로 엑스를 떨어뜨려 지면에 추락시켰다.
얼마 전, 린포스가 나노하들과 싸웠을 때 사용한 마법들. 하지만 지금 시그마가 사용할 수 있는 힘은 그것만이 아니다.
「Thunder Blade」
페이트가 링커 코어를 수집당했을 때, '어둠의 서'에 흡수되었던 마법.
하늘로부터 생겨난 무수한 번개의 검이 지면을 향해 떨어지기 시작했다.
엑스만을 노린 것이 아니고, 엑스를 포함한 그 일대 지역을 날려버리기 위한 공격. 땅에 박힌 검들은 곧 마법진을 전개하고, 방전과 함께 폭발을 일으켜 안그래도 폐허가 된 도시를 더더욱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그 먼지 구름을 헤치고 나오며, 엑스가 오른팔의 포구를 시그마에게 겨누었다.
이미 파란색에서 녹색까지 차지가 끝난 버스터 슛을 발사.
세컨드 차지 버스터는 시그마의 마법 장벽을 관통하고 그의 얼굴을 향해 날아갔다.
하지만 시그마는 왼손을 휘둘러 쳐내는 것만으로 그것을 막아냈고, 여유롭게 지면에 착지. 엑스와 시그마는 아까 전과 위치가 바뀐 채 대치했다.
이번에 먼저 대치를 깨트린 것은 엑스. 일직선으로 시그마를 향해 달려가면서 버스터를 난사했다.
달려가는 도중에 공격을 하고 있는데도 명중률은 100%. 처음 노렸던 곳을 조금도 벗어나지 않았다.
"소용없다고 몇번을 말해야 되는거냐!!"
「Protection」
시그마에게는 디바이스가 없다. 그러나 그는 '어둠의 서'의 힘을 거의 통채로 흡수했으며, 그 이전에도 디바이스 이상의 연산 속도를 지니고 있었다. 만들어진 프로텍션은 견고하기 그지없었고, 단 한발도 프로텍션을 뚫지 못하고 사라졌다.
「Haken Saber」
엑스의 공격이 사라지자 시그마는 손을 수도(手刀)의 형태로 휘둘렀다.
그 순간 압축마력의 광인(光刃)이 발사되고, 엑스를 향해 날아갔다.
이것 역시 본래는 페이트의 마법이며, 마력의 칼날을 날려 변칙적인 궤도로 공격하는 마법이다.
시그마의 손에서 발사되었을 때는 초승달의 형태였지만, 엑스를 향해 날아가면서 점차 가속되어 고속으로 회전하며 원형으로 변화한다.
「Divine Shooter」
오른손으로 하켄 세이버를 날리고, 왼손을 뻗어 분홍빛의 광탄들을 발사했다. 물론 이것은 나노하의 특기 마법이다.
총 8발의 광탄이 허공을 가로질렀으며, 하켄 세이버와 함께 엑스에게로 날아갔다.
엑스는 뒤로 물러나면서 침착하게 버스터 슛을 발사하여, 우선 디바인 슈터부터 떨어뜨렸다. 나중에 쐈는데도 그 빠른 속도는 하켄 세이버를 앞질러 날아왔으며, 그렇기에 엑스는 디바인 슈터를 먼저 제거하기로 생각한 것이다.
유도형으로 이리저리 날아다니며 다가오는 디바인 슈터를 간신히 전부 격추시키고, 남은 하켄 세이버는 세컨드 차지로 파괴했다.
「Plasma Lancer」
쉴 틈도 없이, 이번에는 8발의 번개창들이 발사된다.
엑스가 위로 뛰어올라 그것을 피해내자, 번개창들은 엑스가 점프한 위치에서 방향을 위로 틀어 다시 한번 발사되었다.
그것을 보며 입술을 깨물며, 엑스는 버스터를 아래 쪽으로 향하여 발사. 플라즈마 랜서 1발을 파괴하는데 8발의 버스터 샷을 발사하여 간신히 전부 떨어뜨릴 수 있었다.
역시, 원거리는 안된다. 어떻게든 거리를 좁히지 않으면 이길 수 없다.
그렇게 판단한 엑스는 지면에 착지하는 것과 동시에 다시 한번 시그마에게로 달렸다. 단, 이번에는 직선이 아니라 이리저리 각도를 틀어가면서.
물론, 시그마 역시 엑스가 지금 무엇을 노리고 있는지 정돈 알고 있다.
「Ring Bind」
"!!"
달려가든 엑스의 몸에 갑작스러운 급브레이크가 걸렸다.
급히 고개를 돌려보니, 자신의 양손과 양발에 마력의 사슬이 채워진 것을 발견했다.
그 틈을 노려, 시그마는 두 손을 앞으로 내뻗었다.
─오른손으로, 분홍빛의 마법진.
─왼손으로는, 황금빛의 마법진.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는, 엑스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Divine Buster」
오른손에 펼쳐진 분홍빛의 마법진에서, 거대한 마력의 포가 발사되었다.
나노하가 자랑으로 여기는 그녀의 주포. 방대한 마력으로 직접 목표를 향해 방출한다고 하는, 심플하면서도 고위력의 포격 마법.
「Thunder Smasher」
왼손에 펼쳐진 황금빛의 마법진에서, 거대한 전격의 기둥이 발사되었다.
배리어 관통 능력이나 마력 승부는 디바인 버스터에 떨어져도, 뇌격을 수반하기에 직접적인 파괴력은 이쪽이 더욱 우수하다.
두개의 강대무비한 포격이, 바인드에 묶인 엑스를 향해 날아왔다.
"크,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앗!!"
엑스는 손과 발에 전력을 집중시키고, 있는 힘을 다해 휘둘렀다.
간신히 바인드를 깨트리고 몸이 자유롭게 된 순간 엑스는 위를 향해 솟구쳐 올랐다.
디바인 버스터와 썬더 스매셔는, 아슬아슬하게 엑스의 바로 밑을 지나가면서 광장을 둘로 쪼갰다.
간신히 바인드를 깨트리고 몸이 자유롭게 된 순간 엑스는 위를 향해 솟구쳐 올랐다.
디바인 버스터와 썬더 스매셔는, 아슬아슬하게 엑스의 바로 밑을 지나가면서 광장을 둘로 쪼갰다.
'겨우 피했……?!'
─철컥.
위를 향해 솟아오른 그 장소에서.
엑스는, 또다른 족쇄에 의해 붙잡혔다.
「Lightning Bind」
설치형의 포획 마법으로, 공간에 불가시의 마법진을 설치하여 거기에 닿은 대상을 구속하는 트랩형 마법. 발생 지점의 근처는 뇌격계 마법의 위력 향상 효과도 가지고 있다.
지금 엑스가 있는 자리는 아까 전 시그마가 공중에 떠있던 자리이며, 위치를 바꿨을 때 이곳으로 오게 된 것이다.
"아르카스, 크루타스, 에이기아스. 질풍같은 천신이여, 지금 인도에 따라 쳐라."
그런 엑스를 보며, 시그마는 주문을 영창했다.
─그의 주변으로, 수십발의 마법 발사체인 포톤 스피어들이 생겨난다.
이 마법의 이름은 포톤 랜서 팔랑크스 쉬프트(Photon Lancer Phalanx Shift).
엑스는 모르는 사실이지만, 이 마법은 과거 나노하와 페이트가 싸울 때 페이트가 최후의 카드로서 사용했던 마법. 그 당시 페이트에게 있어서는 최대이자 최강의 공격 마법이었다.
하지만 그때 그것을 보지 못했다고 해도.
기술 자체에서 나오는 위압감만으로도, 엑스는 저것이 보통 공격이 아니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어떻게든, 벗어나지 않으면…!'
바인드를 풀기 위해 사지에 힘을 가했다.
하지만 조금 전에는 풀 수 있었던 링 바인드와는 달리, 이 라이트닝 바인드는 쉽게 풀리지 않았다.
간신히 오른손을 풀어내고 왼손을 묶고 있는 바인드에 손을 가져갔을 무렵, 시그마의 영창도 끝났다.
"바르엘, 자르엘, 브라우젤. 『포톤 랜서 팔랑크스 쉬프트」! 때려부숴라. 파이어!"
시그마가 외치는 순간, 38발의 포톤 스피어로부터 수많은 번개창들이 발사된다.
초당 7발의 사격을, 총 4초 동안 실시하는 마법. 그에 따라 발사되는 창의 수는 1000발 이상.
그 모든 창들이, 오직 엑스만을 노리고서 발사되었다.
섬광, 폭음, 섬광, 폭음, 섬광, 폭음, 섬광, 폭음, 섬광, 폭음, 섬광, 폭음, 섬광, 폭음, 섬광, 폭음.
번개창이 착탄할 때마다 일어나는 금색의 폭발은 끝날줄을 모르고 이어졌다.
"… 이 정도로군."
써보면 써볼수록, 사용하면 할수록.
더욱더 많은 마법을 써보고 싶은 욕구가 치밀어올랐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이 싸움은 딱 좋을지도 모른다. 시그마 자신이 얻은 힘을 시험해볼 절호의 기회가 될 수 있으니까.
서서히, 금색의 폭연들이 걷히기 시작했다.
─그것을 뚫고, 엑스가 순식간에 거리를 좁혔다.
"!!"
뒤로 물러나려는 시그마를 왼손으로 붙잡고, 오른손의 포구를 시그마의 가슴에 갖다대었다.
노멀 아머는 파괴되지 않은 곳보다 파괴된 곳이 훨씬 더많고, 엑스 자신도 피투성이에 상처투성이. 당장 쓰러져버려도 이상하지 않을─ 아니, 쓰러지지 않는 것이 이상할 정도의 상처를 입고 있으면서도, 엑스는 소리쳤다.
"이 거리라면, 방어막은 못 치겠지!!"
엑스의 오른팔.
거기에 모여있는 빛은.
푸른색을 넘어서.
녹색을 지나.
황금색을 통과하여.
─그 모든 색을 포함한, 수십 종류의 빛을 발하고 있었다.
"버스터, 슈우우웃!!"
「FULL CHARGE DOUBLE SHOOT」
한번.
거대한 광탄이 발사되어, 시그마의 가슴을 때렸다.
그 직후, 또 한번.
또다른 광탄이 발사되어, 이미 시그마에게 적중된 광탄에 부딪혔다.
그 순간 부딪힌 두 개의 광탄은 수십개로 쪼개어져, 시그마를 날려보냈다.
"하아… 하아…"
복합 풀 차지 어택으로 상당한 힘을 소모한 엑스는 흔들리는 몸을 간신히 지탱했다.
고통과 피로로 인해 몸이 떨렸지만, 무릎을 꿇지도 쓰러지지도 않았다.
아프다.
엄청나게.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지금 당장이라도 누워서 잠들어버리고 싶을 정도로.
그럼에도, 쓰러질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까.
"… 과연. 역시 아직은 익숙하지 못한 마법을 중심으로 싸운 것이 문제였던가."
시그마는 몸을 가리고 있던 망토 조각을 치워버리며 말했다.
지금 엑스가 할 수 있는 최강의 공격인 풀 차지 더블 슛조차도, 시그마의 외부 장갑을 부수는 것에 그쳤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 망토와 외부 장갑에 걸려있던 자체 마법 장벽과 부딪혀서 공멸한 거지만.
그 압력으로 시그마를 튕겨내긴 했지만, 결국 실질적인 데미지는 없었다.
물론 이제 그 망토와 장갑은 없으니까 공격하면 먹히긴 하겠지만, 똑같은 수법이 또 걸려줄까.
"뭐, 좋다. 마법을 사용하는 건 이제 그만두도록 할까. 이번에 손에 넣은 힘이 어느 정도의 것인지는, 네놈을 쓰러트린 후 천천히 시험해보도록 하지."
과거의 시그마는 자신이 새로 얻은 힘을 과신하여, 그 힘의 시험을 겸해서 엑스와 싸운 적이 많다. 그 결과, 자만이 패배를 불러와 파괴당했고.
하지만 지금의 그는 다르다. 새로 얻은 힘의 시험같은 것은 굳이 엑스와의 싸움에서 할 필요가 없다. 가장 위험한 적인 엑스를 쓰러트리고 난 이후에 천천히 알아보면 되는 것이다.
─지금은, 엑스를 없애는 것에 집중하면 된다.
"마법을 쓰지 않는다고 해도, 나의 이 몸은 과학과 마법이 결합되어 만들어진 최강의 바디. 이 힘으로, 너를 지옥 밑바닥으로 떨어뜨려주마!!"
오른손에서 광선 클로를.
왼손에서는 빔 블레이드를 뽑아들며.
시그마가 흉폭한 미소와 함께 소리쳤다.
이 녀석은 위험하다.
정말로, 터무니없이 위험하다.
아르카디아에 있을 때부터 시그마는 아르카디아를 몇번이나 멸망시킬 뻔 했던 '사신'. 그랬는데, 지금은 '마법'이라고 하는 새로운 힘까지 손에 넣었다.
이대로 시그마를 바깥으로 내보낸다면.
그 피해는 분명, 아르카디아로 그치지 않을 것이다.
얼마나 되는 생명이 희생되고, 얼마나 많은 세계가 파멸할 것인가.
한가지 확실한 것은, 본래의 '어둠의 서'보다 훨씬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거다. 그것만큼은 확실하다.
그러니까, 지금 이 자리에서 반드시 쓰러트리지 않으면 안된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엑스는 시그마에게 걷어차여 하늘 높이 올라갔다.
"크, 아악…!!"
지금, 시그마의 움직임을 완전히 놓쳤다.
시그마에게서 눈을 뗀 적따윈 없는데도.
그런데도, 시그마의 스피드를 따라잡을 수 없었다.
곧이어 시그마는 자신이 걷어차올린 엑스보다도 빠른 스피드로 위로 올라가, 그대로 발로 짓밟아 바닥으로 추락시켰다.
지면에 크레이터가 생기고, 엑스는 거기에 파묻혔다.
"으, 읏…!"
손으로 바닥을 짚어서 일어나려고 하던 엑스는 공기가 갈라지는 소리를 포착하고 뒤를 돌아보지도 않은 채 몸을 옆으로 굴렸다.
그 직후 시그마의 광선검─ 시그마 블레이드가 바닥에 꽂혔고, 엑스는 그 틈을 이용해 몸을 일으켰다.
─일으키자마자, 시그마의 무릎에 얼굴을 걷어차여 또다시 뒤로 날려갔다.
"죽어라!!"
날려가는 엑스를 달려서 따라잡은 시그마는 오른팔을 높이 들어올렸다가, 레이저 클로를 엑스에게 내려쳤다.
엑스는 팔을 십자 형태로 교차시켜, 그것을 막아냈다. 물론 아무리 엑스의 장갑이 견고하다고 해도 시그마의 클로를 정면으로 받아냈다간 단번에 절단나버릴 것이 분명하다.
엑스가 막은 것은 클로의 칼날이 아니라, 그것을 휘두르고 있는 시그마의 손목.
시그마는 오른손만으로도 엑스의 두 팔을 내리눌러, 손등의 클로로 베어버릴 기세였다.
엑스도 점차 그것을 버티지 못하고, 무릎이 아래로 내려가고 있다.
그렇지만 어느 순간.
엑스의 몸이 밑으로 내려오는 것이 멈추더니.
천천히, 다시 일어서기 시작했다.
"흥!!"
그것을 보고 시그마는 코웃음을 치며 오른손에서 힘을 빼는 것과 동시에 엑스의 복부를 걷어찼다.
그 일격으로 자세가 무너져버린 엑스를 향해 시그마 블레이드를 횡으로 휘둘렀다.
엑스는 일부러 몸을 뒤로 넘어뜨려 그 공격을 피하고, 손으로 바닥을 튕겨 그 기세로 몸을 뒤로 빼낸 후 다시 일어섰다.
"거리가 벌어지면 그만큼 이쪽이 유리해진다는 걸 잊은거냐!!"
시그마는 광소에 가까운 웃음과 함께 손바닥을 뻗었다.
그 손에서 발사된 사격 마법 「포톤 블렛」이 엑스를 노렸고, 엑스는 두 손을 겹쳐 앞으로 내밀어서 그것을 막아냈지만, 그 위력때문에 1미터 정도 바닥을 갈면서 뒤로 밀려났다.
'큰일났다…!'
근거리도 중거리도 원거리도, 완전히 압도당하고 있다.
이래서야 아까 전과 마찬가지인 상태. 아니, 시그마가 본격적으로 근접전투태세를 갖춘 지금, 아까보다 훨씬 나쁜 상황이다.
"이번엔 내가 네놈 방식에 맞춰서 싸워주지."
시그마 블레이드를 휘두르며, 사신은 용사를 향해 돌진했다.
엑스라면, 가능할지도 모른다.
정말로 린포스를 구하고, 천년 동안 이어져내려온 '어둠의 서'의 저주를 완전히 끊어버릴 수 있을지 모른다.
아무런 근거도 무엇도 없었지만, 그라면 가능하다. 하야테들에게 있어서 엑스란, 그런 믿음을 주는 존재였다.
하지만.
"… 뭐야, 이건."
지금, 그녀들에게 보여지는 광경은.
"… 저 녀석, 본 적 있어…!"
너무나도, 예상 밖이었다.
아무래도 엑스가 걱정된다는 하야테들을 위해, 린포스는 자신의 속에 있는 세계를 모니터링하여 화상으로 만들어 스크린으로 띄웠다. 그 덕분에 하야테들도 엑스가 린포스의 세계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볼 수 있었다.
─당연히, 지금 시그마와 싸우고 있는 것도.
비록 보기 시작한 것은 압도적인 마력으로 마법을 퍼부을 때부터였지만, 저 괴물은 정말로 '악마'같은 힘을 발휘하고 있었다.
고대 베르카식의 마법, 미드칠더의 마법, 나노하와 페이트가 자랑하는 마법. 때로는 그 모든 것을 동시에 쓰기도 하고, 그녀들조차 모르는 마법을 사용하면서 엑스를 몰아붙여갔다.
그리고 포톤 랜서 팔랑크스 쉬프트를 맞고도 기회를 잡아 반격을 한 엑스를 봤을 때는 진심으로 감동했고.
그런 엑스의 공격을 직격으로 받고도 상처 하나 없이 나타나 다시 몰아붙여오는 시그마를 봤을 때는 진심으로 절망했다.
"린포스!! 어떻게든 할 수 없는 거야?!"
"…… 무리입니다. 어느 틈엔가, 제어권의 대부분을 저 자에게 빼앗겨버리는 바람에…!"
그게 아니었더라면 당장 들어가서 도왔을 것이다.
하지만 저 괴물은 '야천의 서'의 기능을 거의 완전히 장악했으며, 하려고만 하면 린포스의 의식을 빼앗아버리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그것을 하지 않고 있는 것은 엑스와의 싸움에 정신이 팔려있기 때문이다.
이미 방화벽도 그에게 넘어가버린 상태이며, 린포스로서는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럼 뭐고?! 이대로─ 이대로 보고만 있어야 된다는기가?!"
하야테의 비통한 외침에도,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러나.
볼켄리터보다도.
나노하들보다도.
하야테보다도.
이 자리에서 가장 괴로운 것은 린포스였다.
그는 지금 자신을 위해서 자신의 세계 안에 들어가있다.
그런데도 자신은, 그를 지켜주기 위해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지켜보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그가 자신의 세계에 들어가있지만 않았더라면, 야천의 서 자체를 저 바이러스와 함께 파괴해버리는 것도 가능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할 수 없다. 그랬다가는 엑스까지 파괴되버릴테니까.
─자신이 아니었더라면 그가 들어갈 일도 없고.
─그가 들어가지만 않았더라면, 이 사태도 해결할 수 있었다.
'어떻게든…!!'
자책감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것보다.
괴로움에 가슴 아파하는 것보다도 먼저.
그를 구해낼 방법을 찾아야 한다. 슬퍼하는 것도 괴로워하는 것도 나중에 얼마든지 할 수 있으니까.
생각하고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머리가 아플만큼, 깨져버릴지도 모른다 싶을 정도로 생각했다.
그런데도, 생각하면 할수록 '바깥'에서는 어떻게도 할 수 없다는 결론밖에 나오지 않았다.
'적어도…!'
적어도, 누군가.
그녀의 세계를 둘러싸고 있는 방화벽을 깨고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러나 그런 것이 가능할 리 없다.
나노하나 페이트는 아예 인간이니까 들어갈 수 있을 리 없고, 볼켄리터들 또한 방화벽을 돌파할 수 있을 정도의 힘은 없다.
결국 자신은, 이번에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인가.
린포스의 마음이, 절망의 색으로 물들어갈 때.
─무언가가, 그녀들의 앞에 떨어졌다.
"버스터 슛!!"
엑스가 버스터를 난사하여 광탄들을 쐈다.
그 모든 공격들을 검과 클로로 쳐내가며 거리를 좁힌 시그마는 오른쪽 무릎으로 엑스의 복부를 걷어차 앞으로 숙이게 만든 후, 그대로 들어올린 오른발 뒤꿈치 내려찍기로 바닥에 추락시켰다.
"……!!"
엑스의 몸에는 이미, 비명조차 나오지 않을만큼 데미지가 누적된 상태다.
"어떻게 된거냐, 엑스!! 너는 사람을 지키는 이레귤러 헌터겠지!! 그런데도 고작 이거냐!! 이것이 네 힘의 전부라는거냐!!"
그 엑스의 힘을 전부 봉쇄해버린 주제에, 잘도 떠들고 있다.
하지만 이를 가는 건 이를 가는 거고, 실제로 그의 말은 사실이었다. 지금 이 세계의 엑스로서는 이 정도 힘밖에 낼 수 없었으니까.
엑스의 몸을, 시그마 블레이드의 검면으로 후려쳐 날려 옆의 건물에 쳐박는다.
반쯤 무너져가던 석재 건물이 그 충격으로 완전히 무너져내렸고, 엑스는 그 잔해에 깔렸다.
버스터로 잔해를 뚫고, 엑스는 간신히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시그마는 곧바로 공격해오진 않았지만, 시그마 블레이드로 엑스를 겨누며 말했다.
"호오, 아직도 일어설 힘이 남아있을 거라고는. 칭찬해주마."
스펙으로도, 무장으로도.
그리고 그 이외의 모든 면에서도.
지금의 시그마는 엑스를 훨씬 웃돌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여기까지다. 아머가 없는 지금의 너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이를 갈았다.
그러나 시그마의 사실이었기에 반박도 할 수 없었다.
─얼티메이트 아머를 갖고 있다고 해도.
어차피, 쓸 수 없다.
그래서야 없는 거나 다름없다.
"이제 그만 죽어라!!"
시그마가 블레이드를 휘두른다.
핏빛의 광선검은 똑같은 빛의 분류를 뿜어냈고, 그 핏빛의 파도는 엑스를 향해 몰려들었다.
피하기에는 공격이 너무 빠르다.
피하기에는 지금의 엑스가 너무 둔하다.
엑스는 반사적으로 몸을 낮추고, 두 팔을 교차시켜 방어 자세를 취했다.
하다못해, 이 공격을 받아서 살아남기 위해서.
【갑옷이라면 있다.】
핏빛의 분류는, 엑스의 바로 앞에서.
'무언가'에 가로막혀, 양 옆으로 갈라졌다.
【바로, 여기에 있다!!】
"뭐라고?!"
시그마 블레이드의 공격을 막아낸 것.
그것은 바로 조금 전에 하늘에서 떨어져내린 작은 가면.
말할 것도 없이, '리미티드'였다.
"네놈은…!! 오리지널 리미티드?!"
【찾았다… 찾아냈다… 겨우, 찾아냈다고!!】
마더 리미티드를 죽이고.
스톰 이글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모든 원흉.
그것을 앞에 두고, 리미티드는 증오화 분노와 희열로 가득한 웃음을 터트렸다.
【엑스!! 내가 힘을 빌려주겠다!! 저 녀석을, 날려버려!!】
그 말과 함께 리미티드는 뒤로 날아가 엑스의 몸에 달라붙었다.
순식간에 리미티드는 엑스의 노멀 아머와 동조하여, 새로운 갑옷이 되어 엑스의 몸을 감쌌다.
리미티드와, 레플리로이드.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을 지배하거나.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을 포식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의 의지를 존중하고.
스스로의 의지로 같은 목적을 가지고 움직이게 되는, 궁극의 융합형태.
「클리어 아머 : 레플리캡쳐」
"… 이제와서, 너같은 놈이 가세한다고 달라지는 게 있을까보냐!!"
시그마는 강하게 소리를 지르며 시그마 블레이드를 휘둘렀다.
아까의 분류와는 달리, 초승달 형태의 절단파가 발사되어 엑스를 향해 날아왔다.
【엑스! 지금이라면 버스터의 위력도 몇배로 높아졌을거다! 냅다 갈겨버려!!】
「클리어 버스터」
오른팔이 변형된 포구를 들어올려, 연속으로 버스터 샷.
아까보다 더욱 강하고 빨라진 광탄들이 절단파에 부딪혔고, 곧이어 절단파를 관통하여 시그마에게 적중되었다.
"크, 으윽…!!"
「Divine Shooter」
아까와는 파괴력이 틀린 광탄에, 시그마가 뒤로 물러났다.
그러면서도 시그마는 주변에 분홍빛의 구체들을 만들어내, 그대로 엑스를 향해 사출했다.
"온다!"
【신경쓰지말고 달려!!】
엑스는 리미티드의 말에 따라 시그마를 향해 일직선으로 대쉬했다.
그리고 리미티드는 자신의 힘으로 배리어를 쳐, 디바인 슈터들을 막아냈다.
"이놈, 건방진 짓거리 하지마라!!"
시그마가 소리를 지르며 가까이 다가온 엑스를 향해 레이저 클로와 시그마 블레이드를 휘둘렀다.
【건방진 건 네놈이다!!】
리미티드가 변화된 아머가 자체적으로 움직였다.
시그마의 레이저 클로에 가까이 접근한 어깨 갑옷이 손톱 형태로 변형되어, 시그마의 오른손을 찔렀다.
그리고 엑스의 허리를 향해 휘둘러진 시그마 블레이드는 클리어 아머의 가슴에 있는 문양에서 발사된 빔에 튕겨졌다.
"하아아아아아아아아앗!!"
이어지는 연타연타연타연타연타연타.
주먹과 발을 움직여, 시그마를 두들기기 시작했다.
양손, 양발에 클리어 아머에서 만들어낸 부스터들이 일제히 점화된다. 그로 인해, 보통의 펀치와 킥에는 있을 수 없었던 파워와 스피드가 실려, 시그마는 한층 더 강력한 데미지를 받았다.
때리고, 찬다.
있는 힘을 다해서, 가장 빠르게.
시그마는 엉망으로 두들겨지면서도 다리를 휘둘러 엑스의 허리를 걷어차려고 했다.
하지만 엑스는 그 짧은 순간에 뛰어올라 시그마의 다리 위에 올라탔고, 거기서 한번 더 뛰어올라 떨어지면서 팔꿈치로 시그마의 안면을 찍어 눌렀다.
시그마는 후두부부터 지면에 떨어져, 크레이터를 만들며 땅에 쳐박혔다.
"크, 우오오오오오오오오오!!"
시그마는 분노로 가득한 포효를 터트리며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다시 한번 시그마의 주변에, 아까 사용했던 포톤 스피어들이 만들어졌다.
엑스를 한번 궁지로 몰았던 마법. 포톤 랜서 팔랑크스 쉬프트.
그것이 지금, 다시 한번 발휘되려고 하고 있었다.
【하지만 너무 느려!!】
"「클리어 슛」!!"
클리어 버스터의 세컨드 차지 샷.
그것이 시그마의 몸에 적중되면서, 시그마의 몸이 굽혀지는 것과 동시에 포톤 스피어들이 움직임을 멈췄다.
"어째서…!! 나는, 세계를 멸망시킬 힘을 손에 넣었을텐데, 어째서어어어?!"
시그마의 절규에.
엑스는, 리미티드의 감정까지 담아 말했다.
"그것이, 너의 패인이다."
끝까지 자신의 힘을 믿지 않고, 마법에 의지하려고 했던 빈틈.
그것이, 지금의 엑스와 스펙 차이가 거의 없는 시그마가 이토록 압도적으로 패배한 원인이다.
"이걸로, 사라져라!!"
「클리어 하이 버스터」
청색, 백색, 그리고 적색.
그 세가지 빛이 뒤섞인 스트림이, 시그마를 휘말았다.
클리어 하이 버스터에 의해, 시그마의 몸이 사라졌다.
그러자, 폐허가 됐던 도시가 저절로 원래 모습으로 복구되기 시작했다.
"도시가…"
【버그까지 함께 먹어치운 녀석이 사라졌기 때문이야. 조금 있으면, 원래대로 돌아가겠지.】
"그래…"
엑스는 한숨을 내쉬며, 겨우 싸움이 끝났다는 것을 인식했다.
"그런데… 너는 어떻게 여기에 들어온거야?"
【… 넌 모르는 모양이군. 지금 밖에 있는 녀석들, 이걸 스크린으로 보고 있었다고. 널 도와주지 못해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걸 좀 도와줄까 해서 내려와봤더니 그 놈이 보이지 뭐야. 그래서 그대로 들어온거지.】
엣헴, 하고 리미티드는 그렇게 말했다.
얼핏 듣기엔 경박하기 짝이 없는 태도.
그렇지만 이래뵈도, 리미티드는 지금 대단히 벅찬 감동을 느끼고 있었다.
마침내, '어머니'의 복수를 했으니까.
"네가 여기에 있다는 건, 이글은 역시…"
【… 죽어버렸어. 그 바보는. 너를 구한다고, 힘을 다 써버리는 바람에.】
생각했던 것보다, 충격은 적었다.
사실 예상은 하고 있었으니까. 엑스가 '어둠의 서'에서 해방됐을 때, 스톰 이글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고 통신도 연결되지 않았으니까.
"고마워."
【뭐?】
"그에게 마지막까지 싸울 힘을 준 건 너지? 그게 고맙다는거야."
리미티드가 고개를 돌려버리는 것이 느껴졌다. 쑥쓰러워하는 건가.
"자, 그러면─"
이제, 돌아가지 않으면 안되겠지.
「티얼스 오브 루시퍼」
하늘에서.
'빛'이, '비'처럼 쏟아져내렸다.
그렇게밖엔 표현할 수 없었다.
이변을 알아차린 엑스가, 하늘을 보며 방어 태세를 취했다. 물론 리미티드도 클리어 아머의 방어력을 풀 전개해, 배리어를 펼쳤다.
─배리어는 너무나도 쉽게 파괴되고.
─클리어 아머 역시, 산산히 부서졌다.
'뭐가… 있었던 거지…?'
정신을 차렸을 때, 엑스는 바닥에 쓰러져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몸을 일으키기 위해서 손을 움직이려 했지만, 그것조차 힘겨웠다.
'리미티드, 는……?'
【엑, 스……】
희미하게,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리미티드…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고개… 들어보면… 알아… 엄청난 일이… 되버렸어…!!】
리미티드의 말에 따라, 겨우 몸을 일으켜 고개를 들었다.
그곳에 있었던 것은, 5m가 넘는 거대 레플리로이드.
이 세상 어떤 동물과도 닮지 않았지만, 어떻게 보면 고릴라를 닮았다고도 할 수 있는 모습.
이 세상 어떤 동물과도 닮지 않았지만, 어떻게 보면 고릴라를 닮았다고도 할 수 있는 모습.
잊을 수 없다. 이 녀석은─
"루, 시퍼어…?!"
[그 말대로다.]
그리고, 그런 루시퍼의 머리 위에.
수많은 다각형으로 이루어진, 얼굴만이 남아있는 바이러스.
─시그마의 머리가 떠있었다.
"이게, 어떻게…?!"
[너야말로, 중요한 걸 잊었군. 어둠의 서는 이미 네놈의 기억을 한번 읽었다. 루시퍼의 존재를 모를 리 없지.]
"알고, 있어…!! 하지만, 그렇게 나타난 방어 프로그램의 카피 루시퍼는, 진짜가… 아니었어…!!"
당연하다.
루시퍼 역시 아르카디아의 과학으로 만들어진 레플리로이드.
'어둠의 서'의 마법이 아무리 강력하다고 해도, 그 구조를 모르는 이상 100% 똑같이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니까.
하지만.
[그래. 그래서 남는 건 내가 메웠다. 내가 갖고 있는 레플리로이드의 지식을 총동원해서, '어둠의 서'의 힘으로 루시퍼의 육체를 100% 재현한거다!!]
비록 데이터 뿐이지만, 이 공간에서는 그 데이터만으로 충분하다.
[이제야말로, 나의 '궁극'을 보여주마!! 아르카디아 역사상 '최악'의 레플리로이드와 '최흉'의 레플리로이드!! 거기에 '어둠의 서'의 힘이 합쳐진, 궁극의 파괴신을!!]
시그마 바이러스가 루시퍼의 육체를 뒤덮는다.
빨려들어가듯이 루시퍼의 몸속으로 들어간 시그마는, 루시퍼의 몸 그 자체를 변화시키기 시작했다.
우측에는 악마와 같은 세 장의 날개.
좌측에는 천사와 같은 세 장의 날개.
하반신은 뱀과도 같은 형태로 합쳐지고.
그 복부에는 수십에 달하는 눈이 일제히 개안(開眼)했다.
오른쪽 어깨에는 루시퍼의 머리.
왼쪽 어깨에는 시그마의 머리.
그리고 원래 머리가 있어야할 자리에는, 두 악마의 머리가 하나로 합쳐진 듯한 형태.
말그대로, '악마' 그 자체라고 불러야할모습.
아니.
'악마'가 아니라, '마왕'… 그것을 넘어선 '마신'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그에게서 느껴지는 힘의 파동은, 조금 전하고조차도 비교가 되지 않는다.
말그대로, 세상에 종언을 고하기 위해서 태어난 파괴의 신이니까.
그런데도.
[호오, 아직도 일어날 수 있는 힘이 남아있는건가. 대단하군. 정말로 대단해. 대단하지만… 일어나서 뭘 어쩌겠다는거냐. 클리어 아머의 힘도, 지금의 나에게는 통하지 않는데.]
"…… 상관없어."
엑스는 일어났다.
엑스와 함께, 그의 안에 있는 리미티드도 일어났다.
"살아있으니까… 살아있는한… 너와 싸운다… 그것 뿐이야…!"
[멍청한 놈. 절대적인 힘을 갖고 있으면서도 인간에 대한 의무에 얽매여 있다니 어리석기 짝이 없구나!!]
시그마의 포효가 이 세계를 뒤흔들었다.
그럼에도 엑스는, 흔들림없이 '그건 아니야'라고 말했다.
"'어둠의 서'에 흡수됐을 때… 제로와 만났어. 그 덕분에, 간신히 깨달은 게 있지."
[끝간데 모르고 어리석구나, 네놈은. 그따위 건 '어둠의 서'가 기억을 구현시키는 바람에 만들어진 환상에 지나지 않아!!]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상관없다.
만약 '진짜 제로'였다고 하더라도, 자신에게 그 '환상'과 똑같은 말을 했을테니까.
"내가 싸우는 건… 내가 싸우는 건, '지키기 위해서'다. 하지만 그건 이레귤러 헌터로서의 의무감 때문이 아니야!! 오히려 그 반대다!! 나는, '지키기 위해서' 이레귤러 헌터가 됐던 거다!!"
어째서 잊고 있었을까.
어째서 기억하지 못했을까.
자신이, 이레귤러 헌터가 됐던 이유.
─너무나도 사랑하는 '인간'들을, 지키기 위해서였는데.
"나는, 인간을 지키겠다고 맹세했다!! 다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에게!!"
그것은, 처음부터 엑스에게 존재했던 '속박'일지도 모른다.
Dr.라이트가 엑스를 만들면서 넣었던, '속박'일지도 모른다.
인간을 지키라고, 자신에게 짜넣어진 프로그램일지도 모른다.
물론 라이트 박사가 그런 일을 했을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실제로 했는지 어땠는지 그 진실은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그게 뭐 어쨌다는건가.
누군가에 의해 프로그램된 '명령'이라고 해도.
누군가의 의도에 따라 입력된 '사명'이라고 해도.
─지금이라면,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
─자신은, 엑스는.
─스스로가 원해서, 인간을 지키고 있는 거라고.
그렇기에, '이 이름'도 지금은 아무 거리낌없이 외칠 수 있었다.
엑스는 버스터를 시그마에게 겨누며, 소리쳤다.
모든 마음을 담아서.
"내 이름은 「록맨 엑스」!! 너 같은 녀석으로부터, '인간을 지키는 자'다!!"
───to be continu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