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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페이지 미스터리


흔들리는 차


눅진한 공기가 밤길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달은 희뿌연 달무리를 음산하게 뿌리고 있었고, 초목은 기분나쁘게 바스락거렸다. 진수는 수백 번도 넘게 이 길을 왔다갔다했지만, 그렇다고 이 으슥한 길에 애정이 생기는 건 아니었다.

학교 뒤편에 있는 이 길을 이용하는 건 진수 혼자뿐이었다. 대체 무슨 시스템을 어떻게 돌린 건지, 진수는 가까운 고등학교를 놔두고 걸어서 삼십 분은 가야 하는 먼 곳에 배정받았다. 친구도 없었고, 하다못해 등하굣길을 같이 할 사람도 없었다. 그나마 아침엔 버스라도 다녔지만, 밤에는 야자 때문에 버스가 끊기는 시간을 맞추지 못해 걸어다녀야 했다. 어둡고 긴 밤길을 지나 높다란 언덕을 넘어야 나오는 자신의 코딱지만한 집이 보일 때면 진수는 그 집을 불살라버리고 학교 옆 아파트로 이사가고픈 충동을 느끼곤 했다.

진수가 막 언덕에 도착했을 때였다.

“어? 이런 차가 있었나?”

나무 그늘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 곳에 중형차 한 대가 서있었다. 차를 잘 모르는 진수가 보기에도 제법 고급차였다. 근처에 가게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이곳의 야경이 좋은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진수는 그 차가 왜 여기 주차되어 있는지 통 짐작가지 않았다. 어차피 지나가는 길이었기 때문에 진수는 그 차 근처로 갔다. 자세히 볼 생각까진 없었고, 그저 이 차에 주인이 타고 있는지 아닌지 정도만 확인해 볼 생각이었다.

그의 의문에 대답이라도 하듯, 그가 다가갔을 때 차가 거세게 흔들렸다.

“으악!”

진수는 자기도 모르게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났다, 그가 그러거나 말거나 진동은 계속되었다. 리드미컬하게, 그러다 큰 차체가 덜컹거릴 정도의 난폭하게 차가 요동쳤다. 잠시 어안이 벙벙했던 진수는 곧 상황을 깨닫고 얼굴을 붉혔다. 그도 알 건 다 아는 나이였다.

“씨발, 누군 여자친구도 없는데 누구는 팔자 좋게 이런 데서 씹질이야.”

말해놓고 나니 자신이 너무 찌질해 보여서 진수는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그런다고 갑자기 생긴 울분이 풀릴 리 없었다. 분명 인적이 드물다는 이유만으로 여기 차를 세우고 거사를 치루려는 모양인데, 자신의 눈앞에서 그딴 불법적인 풍기문란을 저지르는 건 용납할 수 없었다. 갑자기 정의감이 마구 샘솟아버린 진수는 이를 응징하기로 결심했다.

“에라, 정의의 라이더 킥!”

그래도 차마 문짝을 걷어찼다가 수리비라도 청구될까 두려워, 진수는 새로운 목표로 삼은 차 타이어를 있는 힘껏 걷어찼다. 안의 사람들이 벌떡 일어날 만한 위력적 킥이었다. 하지만 이건 스트리트 파이터의 보너스 게임이 아니었기 때문에, 진수는 한 번 차자마자 냅다 내뺐다. 기껏 거사를 저지르고 현장에 그대로 있다간 잡히기 딱 좋았다. 으슥한 곳인 만큼 잡히면 뭔 짓을 당할지 모르니, 얼른 도망가는 게 맞다. 하지만 그의 예상과는 달리 차에서 누가 뛰쳐나와 쌍욕을 퍼붓는 일은 없었다.

 

-살려줘! 제발!

미영은 필사적으로 날뛰었다. 밖에선 보이지 않지만 차 안은 박스테이프로 꽁꽁 싸매져 아무도 나갈 수 없게 되어 있었다. 그녀와 같이 타고 있던 사람들은 이미 눈을 까뒤집고 죽은 상태였다. 차의 뒷좌석에는 연탄 화로가 지금도 독초를 태우며 가스를 내뿜고 있었다. 뒷좌석으로 건너갈 기운이 없었기에, 그녀는 그저 몸부림치며 바깥의 사람이 여기 관심을 가져주기를 바랄 뿐이었다. 자살 클럽에 지원한 것도, 연탄가스보다 효과가 좋다는 독초를 사용한 것도 지금은 그저 후회될 뿐이다. 독초는 약속했던 환각 대신 지독한 고통만을 안겨주었고, 그 순간 미영은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어느새 희뿌옇게 된 창 너머로 흐릿한 인영 하나가 뛰어간다. 미영이 힘 빠진 몸뚱이를 버르적댔지만 인영은 점점 멀어져간다. 멀어져간다.

밤길, 으슥한 도로를 걷다 흔들리는 차를 목격하고 지은 작품입니다.
물론 다음날 사람이 죽었다는 뉴스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마지막의 '멀어져간다. 멀어져간다.'가 울림이 있어 지금도 맘에 든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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