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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페이지 미스터리


다이어트


내 별명은 0.2톤이었다.

사실 내 몸무게는 180킬로도 채 되지 않는다고 항변해도, 이 별명을 포기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사실 내가 내 자신을 돌아보더라도 20킬로의 차이 따윈 정말 눈으로 구별하기 어려웠다.

내가 이렇게 된 것은 엄마 잘못이 가장 컸다. 엄마는 내가 어렸을 때부터 밥을 남기면 혼냈고, 냉장고 문이 너덜너덜해질 정도로 먹을거리를 꺼내 주었다. 게다가 그것들을 다 먹으면 착하다고 용돈까지 줄 정도였다. 이런 엄마 밑에서 파블로프의 개마냥 훈련을 받은 내가 살이 찌지 않을 리 없었다. 게다가 아빠는 돈을 많이 벌어와 내 식비가 끊이지 않도록 보탰고, 주말마다 가족끼리 외식을 나가 내 식탐을 부추겼다. 그 둘이 내게 작작 좀 먹으라고 처음부터 말해줬더라면 - 지금은 귓구멍이 쑤실 만큼 듣는 소리지만 - 내가 이렇게 되진 않았겠지. 또 그동안 내게 변변한 여자 하나 소개시켜주지 않은 형의 잘못도 있었다. 내가 여자친구를 가졌다면 살을 빼려는 의욕이 생겼을 텐데, 형은 항상 돼지새끼가 무슨 연애냐며 날 비웃곤 했다. 그 결과 난 스트레스를 받아 더욱 먹어댔단 말이다.

다이어트를 시도해보지 않은 건 아니었다. 하지만 다이어트는 괴롭고 짜증나는데다 살이 빠지는 것도 아니었다. 식이요법도 며칠 해 보았고 운동도 며칠 해 보았지만, 체중계 바늘은 파르르 떨리는 것 이상의 변화를 보이지 않았다. 며칠간 힘들게 했는데 조금의 변화도 없다면, 더 시도해봤자 소용없는 짓이다. 이런 내 고생을 모르는 식구들은 매일같이 다이어트 좀 하라고 나를 들볶아댄다.

그래서 난 그냥 자살하기로 했다.

 

지금 내가 서 있는 곳은 집에서 멀리 떨어진 산의 중턱쯤이다. 집 근처에서 자살하려다 식구들에게 걸리기라도 하면 망신만 당할 뿐이다. 자살이란 깔끔하게, 고통 없이 훅 가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가장 좋은 건 수면제였지만 이건 구하기도 힘들뿐더러 요새는 실패하는 경우가 많이 보인다. 그래서 내가 선택한 방법은 투신이었다. 높은 곳에서 투신하면 떨어지는 도중 이미 의식을 잃어버리기 때문에 고통은 없을 거라는 상식을 접한 건 행운이었다.

여기까지 올라오는 건 매우 힘들었다. 길도 험하고 볼 것도 없는 산이라 올라가는 사람은 나 하나뿐이었다. 오후 한 시에 오르기 시작했는데, 뛰어내리기 적당한 장소를 찾아냈을 땐 이미 해가 반 너머 져 사방이 어둑해질 무렵이었다. 어두운 데다 내 뱃살 때문에 발아래가 제대로 보이지 않아 별로 무섭지도 않았다. 게다가 ‘너희들 때문에 내가 이렇게 된 거야’라고 휘갈겨 쓴 유서를 떠올리니 유쾌해지기까지 했다.

난 씩 웃으며 앞으로 한 걸음 내디뎠다.

 

이 반장은 자판기 커피가 뽑혀지는 동안 옆에 있던 김 형사에게 물어보았다.

“그래, 그 미라의 신원은 밝혀졌나?”

“누구 말씀입니까? 아, 2주 전에 발견된 아사자 말이죠? 산에서 발을 헛디뎠던?”

“그래. 불쌍하게 됐어. 바위 틈의 나무에 걸렸다 떨어져 죽지 않았다는 건 다행인데, 그렇게 온몸의 뼈가 으스러진 채 몇 주나 방치되었다니.”

자기라면 혀라도 깨물었을 것 같다고 생각하며 이 반장은 커피를 뽑아들었다. 김 형사가 뒤이어 동전을 자판기에 넣으며 맞장구쳤다.

“전 아사자를 직접 보긴 처음이었는데, 정말 안쓰러울 정도로 ​말​라​비​틀​어​졌​더​군​요​.​ 오전에 부검 결과가 나왔는데, 위 안에서 잡초와 흙, 종이쪼가리 같은 게 나왔더군요. 게다가 박살난 휴대폰을 마지막까지 빨고 있었다고 합니다.”

“먹고 죽은 귀신이 때깔이라도 좋은데 말이지.”

다음 생에는 희생자가 투실투실 살찔 수 있는 인생을 살 수 있기를 기원하며 두 사람은 커피를 훌쩍 넘겼다. 커피는 오늘따라 희한하게 맛있었다.

 

반전 면에선 네 개 중에서 가장 맘에 드는 작품입니다.
참고로, 주인공이 '높은 데서 뛰어내리면 의식을 잃겠지'는 우리나라 동네 뒷산에선 통하지 않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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