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꾸기 5분 전
꿈을 꾸기 5분 전
어제도 밤을 거의 꼬박 새다시피 했다. 정해진 기간 내에 목적을 달성한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 평소 원활하게 잘 돌아가는 시간의 톱니바퀴에 게으름이라는 이물질이 끼어들 때 나는 어찌할 바를 모른다. 점점 깊어가는 밤 속에서, 흐릿해지는 시야를 가듬으며 부지런히 손을 놀려 본다. 하지만 그것은 발이 닿지 않는 깊은 물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정신을 차려 보니 의자에 앉아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어느새 아침이다. 과제는 채 반도 완성하지 못한 채였다.
무거운 마음으로 학교에 나갔다. 다행히 수업은 휴강이었다. 다행이란 말을 붙인다는 것은 학생으로서의 자세를 생각해 보게 만들지만, 나에겐 그런 여유가 없었다. 다음날로 미뤄진 과제를 완성시키기 위해 컴퓨터실에 들어갔다. 기어이 완성시킨 후 한숨 돌리며 목운동을 하자 새카만 창밖이 눈에 들어왔다. 무언가에 이렇게 집중해 본 적도 오랜만이었다. 어쩐지 뿌듯한 기분을 느끼며 집에 돌아왔다. 가방을 내려놓자 마음에서부터 울림이 느껴져 온다. 그것은 무척 따뜻하고 편안한 느낌이다. 그 울림을 밖으로 내어 중얼거렸다. 이제 나는 잘 수 있다.
일단 보일러를 켜고 화장실에 들어간다. 어쩐지 경건한 기분이 되어 옷을 벗는다. 화장실에는 커다란 거울이 하나 있어서 벗은 몸 전체를 비출 수 있다. 쓸데없는 군살은 붙지 않았지만 얼굴은 초췌해 보인다. 며칠간 철야를 한 탓일 게다. 스물넷이면 스스로의 얼굴에 책임을 느끼기 시작할 나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괜스레 얼굴에게 미안해진다. 그래서 샤워에 앞서 세수를 하기로 했다. 평소보다 뜨거운 물을 세면대에 받고, 세안제를 듬뿍 짠다. 얼굴 구석구석까지 씻어낸 후 거울 속의 나에게 고개를 꾸벅 숙여 보인다.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고, 그쪽도 고개를 숙여 보인다.
뜨거운 물이 몸에 닿자 땀이 흘러나온다. 그것은 물과 섞여 하수구로 빨려들어간다. 저 속에 지난 사흘간의 노력과 헛수고가 뒤엉켜 있을 것이다. 실제로 샤워를 하면 혈액에 쌓인 노폐물이 땀으로 배출이 된다고 한다. 당분간 이런 철야작업이 없다는 걸 생각하니, 어쩐지 번뇌를 벗고 해탈하는 기분이 든다.
타올에 비누거품을 듬뿍 묻힌다. 기왕이면 얼마 전 읽었던 소설에 나왔던, 등 밀어주는 너구리가 있었으면 싶다. 몸에 비누를 묻히는 것은 내 몸에 할 수 있는 최고의 헌신이다. 탈무드는 목욕이야말로 선행이라는 랍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그런 생각은 동양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아서 ‘수신 제가 치국 평천하’의 첫머리로 수신(修身)을 꼽고 있다. 온종일 옷 속에서 묵묵히 버텨 온 나의 몸은, 거품과 뜨거운 물이 한데 섞여 흘러내리자 현기증이 날 정도의 아찔함을 선사한다.
수건으로 몸을 닦고 새 속옷을 입는다. 낮 사이 건조대에서 햇볕을 듬뿍 받은 속옷에서 피죤 냄새가 퐁퐁 올라온다. 무심결에 아직 입지 않은 런닝셔츠를 집어들어 얼굴에 대 본다. 가을 바람과 햇볕에 잘 마른 고추처럼 사각거리는 느낌이 든다. 여름에는 이러한 정취를 느낄 틈이 없었다. 열대야는 늘 불쾌함만을 가져왔고, 나는 선풍기가 없는 내 방을 증오했었다. 찬물을 끼얹어 샤워를 끝내고 나면, 몸에 남은 그 냉기가 한줌의 먼지처럼 보잘것없어지기 전에 이불 속으로 달려가곤 했다. 여름과는 미묘하게 달라진 이 여유도 가을의 풍요라 부를 만하다.
따스함을 겉옷 대신 걸치고 나온다. 가을밤은 싸늘하지만, 집 안까지 침투할 정도는 아니다. 안으로 들어올 수 있는 것은 귀뚜라미 소리 정도이다. 뚜르르, 뚜르르. 짝짓기를 위해 날개를 비벼 소리를 내는 것이라고 파브르는 정의내리고 있다. 내가 볼 수 없는 곳에서 들려오는 그들의 소리는 차분하고 고요하다. 종족의 번식을 위해 천적에게 노출될 위험을 무릅썼다고는 생각하기 힘들다. 어쩌면 집 앞의 귀뚜라미는 그저 가을밤의 정취를 노래하고 싶은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 모습은 애니메이션 피노키오에 등장하는, 바이올린을 멋지게 켜는 귀뚜라미를 연상시킨다. 그 소리에 귀를 곤두세우며 보일러를 끄고 화장실의 환풍기를 켠다. 손발톱이 얼마나 자랐는지 확인해본다. 아직 자를 때가 되지 않았다. 냉장고를 열어 쥬스를 마시고 컵을 씻어 제자리에 놓는다. 짤막한 꼬리를 흔들며 날뛰는 강아지를 진정시킨 후 내 방에 들어간다. 그새 귀뚜라미 소리는 온몸에 묻어 있었다. 손으로 가볍게 쓰다듬으니 딱지처럼 떨어져 나간다. 뚜르르, 뚜르르 소리가 희미해진다.
걸레처럼 둘둘 말린 이불을 편다. 따뜻해진 방바닥 위에서 그것은 금새 형태를 갖추었다. 생각해보니 사흘 동안 제대로 이불을 펴고 잔 적이 없었다. 반쯤 편 이불에 옷을 입은 채인 몸을 내던지고, 일어나면 몇 초만에 둘둘 말아 구석에 던져놓았다. 한껏 여유가 생긴 지금에 와 뒤돌아보니 바보같은 짓이었다. 졸릴 때 자야 피곤이 풀린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본능에 내 몸을 맡겼었다. 하지만 숙면이란 의식이 수면을 결심했을 때 생기는 현상이다. 이제부터 잠들겠다는 사전 통보도 없이 기능을 정지당한 의식이 기분좋을 리 없다. 그동안 화가 많이 났을 의식을 달래주기 위한 첫 행동은 이불을 펴는 것이다. 매트 위에 두꺼운 이불을 펼친 후 모서리를 팽팽하게 잡아당긴다. 잔주름이 펴져 단정하게 된 이불은 해바라기의 넓은 꽃잎처럼 후덕한 느낌을 준다. 나는 벌처럼 조심스럽게 꽃잎 속을 파고들어간다. 아니, 불 끄는 것을 잊었다. 꾸물꾸물 몸을 일으켜 스위치를 누르고 다시 자리에 눕는다.
잠자리에 누워 사물을 응시하는 것은 신비로운 느낌이 든다. 아까까지 방 안의 사물들은 환한 빛 아래에서 가느다란 그림자를 머리카락처럼 등 뒤로 넘기고 있었다. 지금은 반대로 어둠을 뒤집어쓴 채 창문으로 들어오는 약한 빛을 살짝 드리우고 있다. 낮의 모습이 내리쬐는 햇빛 아래 우뚝 서 있는 느티나무였다면, 밤의 모습은 강가 그늘에서 흔들흔들 가지를 움직이는 수양버들이다. 달빛과 가로등 빛이 한데 섞인 조명은 이런 방의 분위기에 잘 스며든다. 나는 두꺼운 이불의 무게를 느끼며 그 모든 것을 지켜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