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의 스타리그 결승전 경기를 미리 보시면 더욱 재미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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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나는 결승전에 조금 늦었어요. 게다가 김캐리가 필승법에 대해 인터뷰하겠다고 했는데, 난 아직 자신이 없었기에 책망을 들을까 봐 꽤 겁이 났어요. 그래서 나는 차라리 결승전에 가지 않고 푸켓에나 가버릴까 하고 생각해 보기도 했어요.
날씨는 정말 더웠어요. 잠실 학생체육관 앞에는 직사광선이 이레디에잇처럼 사람들의 체력을 깎고 있었고, 체육관 문 앞에는 팬들이 주최측의 운영미숙을 까고 있었어요. 이것들이 나에게는 연습보다 더 볼만했지만, 나는 참고 체육관에 들어갔어요.
초대석 앞을 지나는데, 사람들이 옹기종기 앉아 있는 것이 내 눈에 띄었어요. 이태 전부터 가을의 전설은 없다느니 정명훈 올킬 우승이니 하는 스타판의 여러 가지 언짢은 예상들은, 다 이곳에서 나왔던 거예요.
"또 무슨 저주를 하려는 걸까?"
나는 여전히 뛰어가면서 생각했어요. 내가 초대석을 다 지날 때였어요. 푸른 눈의 전사 기욤 패트리 영감이 베르트랑과 함께 무언가를 쑥덕대다 말하는 것이었어요.
"얘야, 그렇게 서두를 것 없다. 결승전은 이번이 마지막이니까."
나는 영감이 나를 놀리는 줄로만 알고 숨을 몰아쉬면서 스테이지에 뛰어들어갔어요.
평소에는 스타 경기가 시작되면 으례, 해설자의 개드립이며 김캐리의 승리자 예상, 그리고 '좀 조용히 해'하고 김캐리에게 지적당한 선수가 절규하는 소리 등이 떠들썩하게 선수석 안까지 들려와, 나는 그법석을 부리는 통에 살짝 내 자리로 가려고 하다가 주춤하곤 했지요. 그런데 오늘은 2002월드컵 16강 골든골 때만큼 어마어마한 함성이 들렸어요. 어수선한 무대 위에, 진작 세팅을 마친 스태프들과 충혈되고 물기 어린 눈으로 자리에 앉아 있는 김캐리가 보였어요. 나는 이런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선수석에 들어가 앉는 수밖에 없었어요. 내 얼굴이 무처럼 하얘지고 투명해졌을 거라고 생각하세요? 천만에요, 김캐리는 아무 화도 내지 않고 날 바라보더니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어요.
"영무야, 어서 네 자리로 가서 앉거라. 우리는 그냥 레전드 매치를 한판 더 할 뻔했구나."
나는 얼른 박스 안의 내 자리로 가 앉았어요.
두려운 마음이 좀 가시자, 저만치 임요환과 홍진호가 과거 현역이었을 때의 선수복을 챙겨입은 것이 보였어요. 그것은, 이벤트 경기가 있거나 스타 관련 행사가 있을 때만 입는 선수 차림이었어요. 그리고 체육관 전체에 여느 때와는 다른 엄숙한 분위기가 감돌고 있었어요. 가장 놀란 것은, 평소에 비어 있던 사각지대까지 관중들이 가득했다는 것이었어요. 기욤 패트리, 베르트랑, 김동수, 박용욱, 박정석, 오영종, 그밖에 많은 사람들은 초대석에 앉아 있었어요. 임요환 영감은 모서리가 다 해어진 '나만큼 미쳐봐'를 무릎 위에 펴놓고, 그 위에 커다란 안경을 올려 놓고 있었어요.
나는 이런 광경을 보고 그저 어리둥절한 얼굴을 하고 있었어요. MC용준이 중계석에서 일어나더니, 나를 맞아줄 때와 다름없는 부드럽고 엄숙한 어조로 말했어요.
"여러분, 이것이 내 마지막 중계에요. 온게임넷에서 스타크래프트 2 자유의 날개만 중계하라는 지시가 내렸어요. 내일부터 자유의 날개 중계에 도전합니다. 오늘로서 스타크래프트 부르드 워 중계는 끝입니다. 명심해 들어요."
나는 MC용준의 이와 같은 몇 마디 말에 마음이 흔들렸어요. 레전드들이 모인 이유는 바로 그거였어요.
마지막 스타리그 결승전-
그런데 나는 지금까지 겨우 우승을 1회 해봤을 정도였어요. 이제 더이상 우승을 못 한단 말인가! 이대로 끝맺어야 하나! 이제는 헛되이 보낸 그 대회들이 - 코택에게 발리고 콩라인의 후계자로 인정받던 시간들이 한스럽기 짝이 없었어요. 조금 전만 해도 그처럼 지겨운 생각이 들고 두려운 생각이 앞서던 내 유닛 - 리버, 아비터 등이 이제 와서는 헤어지기 아쉬운 친구처럼 생각됐어요. 해설진에 대해서도 같은 심정이었어요. 지금 해설진이 떠나면 프로토스 편애 중계가 사라질 것이라는 생각을 하니, 그간 콩라인이라 놀림받던 추억은 씻은 듯 가셔 버렸어요.
불쌍한 김캐리!
그러니까 김캐리가 중계석에 앉아 있던 것도 이 마지막 중계를 하기 위한 것이었어요. 그리고 은퇴한 레전드 영감들이 체육관에 와 있는 것도 그 때문이구요. 그것은, 그들이 행사에 좀더 자주 얼굴을 내놓지 못한 것을 뉘우치고 있다는 뜻으로도 보였어요. 그리고 그것은 엄전김이 십오 년 동안이나 수고한 공로에 대해 감사하고, 또 사라져가는 스타판에 대한 자기들의 의무를 다하려는 뜻도 곁들여 있는 것같이 보였어요.
내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MC용준은 나를 지명했어요. 정라덴과 경기 전 인터뷰할 차례가 된 거예요. 허영무가 동글동글한 게 콩라인의 정통 후계자가 아니냐는 질문을 씹을 수 있었던들 얼마나 좋았겠어요! 하지만 그간 쌓아온 전적 때문에 완전히 부정할 순 없었어요. MC용준이 말씀하셨어요.
"영무야, 난 널 탓하지 않아. 넌 충분히 뉘우치고 있을 테니까. 으례 그런 거야. 누구나 이렇게 생각해 왔지. '뭐 서두를 것도 없지 않나, 다음 대회도 있는데......'하고. 그 결과 너처럼 되는 거야. 아, 우승할 것을 날마다 내일로 미룬 게 우리 프로토스의 가장 큰 불행이었어. 이제 저 테란들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거야. '뭐라고? 너희는 프로토스면서 스톰도 제대로 쓰지 못하고 리콜도 번번이 막히는군!'하고. 하지만 영무야, 너만의 잘못은 아니야. 우리가 다 가책을 느껴야 해. 우리의 스폰서들은 부르드 원에 더 이상의 관심이 없었어. 게다가 마조작을 비롯한 일당들은 몇 푼의 돈을 더 벌기 위해 너희들을 사지에 내몰았지. 그럼 나 자신은 가책을 느낄 만한 짓을 하지 않았나? 스타리그를 응원하는 대신 그저 조작 패거리를 한탄하고 원망하지 않았나? 엄옹은 스타 뒷담화에서 처묵처묵으로 일관하지 않았나? 또 김캐리는 스타판에서 얻은 명성을 스타와 상관 없는 '나는 캐리다'방송을 만드는 데 사용하지 않았나?"
이어서 김캐리가 나와 프로토스에 대해 말씀하셨어요. 즉, 프로토스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고 강력한 종족이며, 우리가 잘 운용해야 한다는 것이었어요. 프로토스가 저그와 테란에 밀릴지라도 캐리어만 잘 간직하면, 마치 감옥의 열쇠를 쥐고 있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는 거지요. 다음에 김캐리는 캐리어 가야 한다고 다시 강조했어요. 나는 그것이 하도 예상했던 내용이라 놀랄 지경이었어요. 그것은 가엾은 김캐리가 중계를 마치기 전에 자기가 가지고 있는 캐리어 사랑을 전부 내 머릿속에 주입시키려는 듯이 보였어요.
우리는 캐리어 전략을 검토하고, 경기를 시작했어요. 김캐리는 끊임없이 앉았다 일어나기를 반복했는데, 입으로는 연신 '캐리어, 플릿 비콘, 캐리어, 플릿 비콘'이라고 중얼거리고 있었어요. 그것은 마치 캐리어를 뽑지 않으면 혼이 실린 승리가 아니라고 무효처리할 것처럼 보였어요. 모두가 얼마나 열심히 경기를 봤는지 몰라요. 아무도 조용히 있지 않았어요. 클릭을 한 번 할 때마다 고함과 비명이 들렸어요. 에어컨은 개판으로 돌아갔지만 아무도 나가는 사람이 없었어요. 마치 한국 전통 악기라도 되는 것처럼 용기와 신념을 가지고 열심히 부부젤라를 불던 패거리들도 보였어요.
나는 겁없이 날아온 드랍을 처리하며 이렇게 생각했어요.
'저 드랍십도 머지않아 토르를 태우고 오지 않을까?'
내가 가끔 모니터에서 눈을 들어 보면, 엄전김은 한시도 앉아 있지 않고 마치 자신의 앞에 있는 모든 풍경을 온통 눈 속에 넣어가기라도 할 듯 모니터와 관중을 번갈아 쳐다보는 것이었어요. 돌이켜보면, 엄전김은 안정된 삶을 버리고 '미친 짓'이라 생각되었던 스타 중계를 15년 동안 해온 거예요. 다만, 오래 중계하는 동안에 전용준은 MC용준이 되고, 엄재경은 식신이 되고, 김태형은 김캐리가 된 것 뿐이었어요. 하지만 이제 엄전김은 실직자가 될 위기에 놓인 것이예요. 그러니 얼마나 가슴이 아프겠어요! 이튿날이면 엄전김은 부르드워 중계를 아주 떠나야 하거든요.
그러나 엄전김은 중계를 끝까지 계속하려는 각오를 굳게 하고 있었어요. 땡드랍십 작전이 수포로 돌아가자, 다음은 벌쳐 드랍십 작전이 들어왔어요. 내 드라군들은 어렵지 않게 탱크와 벌쳐를 잡아냈어요. 관중석 앞쪽에서는 박정석 영감이 눈을 부릅뜨고 '캐리어! 캐리어!'라고 연호하고 있었어요. 그도 무척 열심이었어요. 그의 목소리는 감동한 나머지 떨리고 있었어요. 그의 연호가 하도 김캐리 같아 나는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알 수 없었어요. 아, 나는 이 마지막 스타 대회를 평생 잊을 수가 없겠지요.
경기시간이 12분 지나더니 드디어 캐리어가 나왔어요. 때마침 팩토리에서는 골리앗 대신 인터셉터의 제물이 될 벌쳐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어요. 김캐리는 매우 창백한 얼굴을 하고 중계석에서 일어났어요. 김캐리가 그렇게 커 보일 수가 없었어요.
"여러분, 최후의 프로토스가...... 최후의 캐리어를......!"
하고 김캐리는 말씀하셨어요.
김캐리는 감격 때문에 목이 메었던 거예요.
김캐리는 말을 다 끝맺지 못했어요.
김캐리는 중계석에서 일어나더니, 아이패드 전광판 어플에 선명하게 새겨진 커다란 글씨에 시선이 고정된 것이었어요.
'캐리어, 만세!'
김캐리는 마이크를 쥔 채 한동안 절규하더니, 시뻘개진 눈으로 우리에게 손짓하며 말씀하셨어요.
"자유의 날개, 군단의 심장 가면 캐리어 없거든요...... 이제 저는 캐리어를 볼 수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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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스타 - 어느 프로토스 선수의 이야기
그날 나는 결승전에 조금 늦었어요. 게다가 김캐리가 필승법에 대해 인터뷰하겠다고 했는데, 난 아직 자신이 없었기에 책망을 들을까 봐 꽤 겁이 났어요. 그래서 나는 차라리 결승전에 가지 않고 푸켓에나 가버릴까 하고 생각해 보기도 했어요.
날씨는 정말 더웠어요. 잠실 학생체육관 앞에는 직사광선이 이레디에잇처럼 사람들의 체력을 깎고 있었고, 체육관 문 앞에는 팬들이 주최측의 운영미숙을 까고 있었어요. 이것들이 나에게는 연습보다 더 볼만했지만, 나는 참고 체육관에 들어갔어요.
초대석 앞을 지나는데, 사람들이 옹기종기 앉아 있는 것이 내 눈에 띄었어요. 이태 전부터 가을의 전설은 없다느니 정명훈 올킬 우승이니 하는 스타판의 여러 가지 언짢은 예상들은, 다 이곳에서 나왔던 거예요.
"또 무슨 저주를 하려는 걸까?"
나는 여전히 뛰어가면서 생각했어요. 내가 초대석을 다 지날 때였어요. 푸른 눈의 전사 기욤 패트리 영감이 베르트랑과 함께 무언가를 쑥덕대다 말하는 것이었어요.
"얘야, 그렇게 서두를 것 없다. 결승전은 이번이 마지막이니까."
나는 영감이 나를 놀리는 줄로만 알고 숨을 몰아쉬면서 스테이지에 뛰어들어갔어요.
평소에는 스타 경기가 시작되면 으례, 해설자의 개드립이며 김캐리의 승리자 예상, 그리고 '좀 조용히 해'하고 김캐리에게 지적당한 선수가 절규하는 소리 등이 떠들썩하게 선수석 안까지 들려와, 나는 그법석을 부리는 통에 살짝 내 자리로 가려고 하다가 주춤하곤 했지요. 그런데 오늘은 2002월드컵 16강 골든골 때만큼 어마어마한 함성이 들렸어요. 어수선한 무대 위에, 진작 세팅을 마친 스태프들과 충혈되고 물기 어린 눈으로 자리에 앉아 있는 김캐리가 보였어요. 나는 이런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선수석에 들어가 앉는 수밖에 없었어요. 내 얼굴이 무처럼 하얘지고 투명해졌을 거라고 생각하세요? 천만에요, 김캐리는 아무 화도 내지 않고 날 바라보더니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어요.
"영무야, 어서 네 자리로 가서 앉거라. 우리는 그냥 레전드 매치를 한판 더 할 뻔했구나."
나는 얼른 박스 안의 내 자리로 가 앉았어요.
두려운 마음이 좀 가시자, 저만치 임요환과 홍진호가 과거 현역이었을 때의 선수복을 챙겨입은 것이 보였어요. 그것은, 이벤트 경기가 있거나 스타 관련 행사가 있을 때만 입는 선수 차림이었어요. 그리고 체육관 전체에 여느 때와는 다른 엄숙한 분위기가 감돌고 있었어요. 가장 놀란 것은, 평소에 비어 있던 사각지대까지 관중들이 가득했다는 것이었어요. 기욤 패트리, 베르트랑, 김동수, 박용욱, 박정석, 오영종, 그밖에 많은 사람들은 초대석에 앉아 있었어요. 임요환 영감은 모서리가 다 해어진 '나만큼 미쳐봐'를 무릎 위에 펴놓고, 그 위에 커다란 안경을 올려 놓고 있었어요.
나는 이런 광경을 보고 그저 어리둥절한 얼굴을 하고 있었어요. MC용준이 중계석에서 일어나더니, 나를 맞아줄 때와 다름없는 부드럽고 엄숙한 어조로 말했어요.
"여러분, 이것이 내 마지막 중계에요. 온게임넷에서 스타크래프트 2 자유의 날개만 중계하라는 지시가 내렸어요. 내일부터 자유의 날개 중계에 도전합니다. 오늘로서 스타크래프트 부르드 워 중계는 끝입니다. 명심해 들어요."
나는 MC용준의 이와 같은 몇 마디 말에 마음이 흔들렸어요. 레전드들이 모인 이유는 바로 그거였어요.
마지막 스타리그 결승전-
그런데 나는 지금까지 겨우 우승을 1회 해봤을 정도였어요. 이제 더이상 우승을 못 한단 말인가! 이대로 끝맺어야 하나! 이제는 헛되이 보낸 그 대회들이 - 코택에게 발리고 콩라인의 후계자로 인정받던 시간들이 한스럽기 짝이 없었어요. 조금 전만 해도 그처럼 지겨운 생각이 들고 두려운 생각이 앞서던 내 유닛 - 리버, 아비터 등이 이제 와서는 헤어지기 아쉬운 친구처럼 생각됐어요. 해설진에 대해서도 같은 심정이었어요. 지금 해설진이 떠나면 프로토스 편애 중계가 사라질 것이라는 생각을 하니, 그간 콩라인이라 놀림받던 추억은 씻은 듯 가셔 버렸어요.
불쌍한 김캐리!
그러니까 김캐리가 중계석에 앉아 있던 것도 이 마지막 중계를 하기 위한 것이었어요. 그리고 은퇴한 레전드 영감들이 체육관에 와 있는 것도 그 때문이구요. 그것은, 그들이 행사에 좀더 자주 얼굴을 내놓지 못한 것을 뉘우치고 있다는 뜻으로도 보였어요. 그리고 그것은 엄전김이 십오 년 동안이나 수고한 공로에 대해 감사하고, 또 사라져가는 스타판에 대한 자기들의 의무를 다하려는 뜻도 곁들여 있는 것같이 보였어요.
내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MC용준은 나를 지명했어요. 정라덴과 경기 전 인터뷰할 차례가 된 거예요. 허영무가 동글동글한 게 콩라인의 정통 후계자가 아니냐는 질문을 씹을 수 있었던들 얼마나 좋았겠어요! 하지만 그간 쌓아온 전적 때문에 완전히 부정할 순 없었어요. MC용준이 말씀하셨어요.
"영무야, 난 널 탓하지 않아. 넌 충분히 뉘우치고 있을 테니까. 으례 그런 거야. 누구나 이렇게 생각해 왔지. '뭐 서두를 것도 없지 않나, 다음 대회도 있는데......'하고. 그 결과 너처럼 되는 거야. 아, 우승할 것을 날마다 내일로 미룬 게 우리 프로토스의 가장 큰 불행이었어. 이제 저 테란들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거야. '뭐라고? 너희는 프로토스면서 스톰도 제대로 쓰지 못하고 리콜도 번번이 막히는군!'하고. 하지만 영무야, 너만의 잘못은 아니야. 우리가 다 가책을 느껴야 해. 우리의 스폰서들은 부르드 원에 더 이상의 관심이 없었어. 게다가 마조작을 비롯한 일당들은 몇 푼의 돈을 더 벌기 위해 너희들을 사지에 내몰았지. 그럼 나 자신은 가책을 느낄 만한 짓을 하지 않았나? 스타리그를 응원하는 대신 그저 조작 패거리를 한탄하고 원망하지 않았나? 엄옹은 스타 뒷담화에서 처묵처묵으로 일관하지 않았나? 또 김캐리는 스타판에서 얻은 명성을 스타와 상관 없는 '나는 캐리다'방송을 만드는 데 사용하지 않았나?"
이어서 김캐리가 나와 프로토스에 대해 말씀하셨어요. 즉, 프로토스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고 강력한 종족이며, 우리가 잘 운용해야 한다는 것이었어요. 프로토스가 저그와 테란에 밀릴지라도 캐리어만 잘 간직하면, 마치 감옥의 열쇠를 쥐고 있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는 거지요. 다음에 김캐리는 캐리어 가야 한다고 다시 강조했어요. 나는 그것이 하도 예상했던 내용이라 놀랄 지경이었어요. 그것은 가엾은 김캐리가 중계를 마치기 전에 자기가 가지고 있는 캐리어 사랑을 전부 내 머릿속에 주입시키려는 듯이 보였어요.
우리는 캐리어 전략을 검토하고, 경기를 시작했어요. 김캐리는 끊임없이 앉았다 일어나기를 반복했는데, 입으로는 연신 '캐리어, 플릿 비콘, 캐리어, 플릿 비콘'이라고 중얼거리고 있었어요. 그것은 마치 캐리어를 뽑지 않으면 혼이 실린 승리가 아니라고 무효처리할 것처럼 보였어요. 모두가 얼마나 열심히 경기를 봤는지 몰라요. 아무도 조용히 있지 않았어요. 클릭을 한 번 할 때마다 고함과 비명이 들렸어요. 에어컨은 개판으로 돌아갔지만 아무도 나가는 사람이 없었어요. 마치 한국 전통 악기라도 되는 것처럼 용기와 신념을 가지고 열심히 부부젤라를 불던 패거리들도 보였어요.
나는 겁없이 날아온 드랍을 처리하며 이렇게 생각했어요.
'저 드랍십도 머지않아 토르를 태우고 오지 않을까?'
내가 가끔 모니터에서 눈을 들어 보면, 엄전김은 한시도 앉아 있지 않고 마치 자신의 앞에 있는 모든 풍경을 온통 눈 속에 넣어가기라도 할 듯 모니터와 관중을 번갈아 쳐다보는 것이었어요. 돌이켜보면, 엄전김은 안정된 삶을 버리고 '미친 짓'이라 생각되었던 스타 중계를 15년 동안 해온 거예요. 다만, 오래 중계하는 동안에 전용준은 MC용준이 되고, 엄재경은 식신이 되고, 김태형은 김캐리가 된 것 뿐이었어요. 하지만 이제 엄전김은 실직자가 될 위기에 놓인 것이예요. 그러니 얼마나 가슴이 아프겠어요! 이튿날이면 엄전김은 부르드워 중계를 아주 떠나야 하거든요.
그러나 엄전김은 중계를 끝까지 계속하려는 각오를 굳게 하고 있었어요. 땡드랍십 작전이 수포로 돌아가자, 다음은 벌쳐 드랍십 작전이 들어왔어요. 내 드라군들은 어렵지 않게 탱크와 벌쳐를 잡아냈어요. 관중석 앞쪽에서는 박정석 영감이 눈을 부릅뜨고 '캐리어! 캐리어!'라고 연호하고 있었어요. 그도 무척 열심이었어요. 그의 목소리는 감동한 나머지 떨리고 있었어요. 그의 연호가 하도 김캐리 같아 나는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알 수 없었어요. 아, 나는 이 마지막 스타 대회를 평생 잊을 수가 없겠지요.
경기시간이 12분 지나더니 드디어 캐리어가 나왔어요. 때마침 팩토리에서는 골리앗 대신 인터셉터의 제물이 될 벌쳐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어요. 김캐리는 매우 창백한 얼굴을 하고 중계석에서 일어났어요. 김캐리가 그렇게 커 보일 수가 없었어요.
"여러분, 최후의 프로토스가...... 최후의 캐리어를......!"
하고 김캐리는 말씀하셨어요.
김캐리는 감격 때문에 목이 메었던 거예요.
김캐리는 말을 다 끝맺지 못했어요.
김캐리는 중계석에서 일어나더니, 아이패드 전광판 어플에 선명하게 새겨진 커다란 글씨에 시선이 고정된 것이었어요.
'캐리어, 만세!'
김캐리는 마이크를 쥔 채 한동안 절규하더니, 시뻘개진 눈으로 우리에게 손짓하며 말씀하셨어요.
"자유의 날개, 군단의 심장 가면 캐리어 없거든요...... 이제 저는 캐리어를 볼 수 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