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
"무슨 일이라도...?"
갑작스럽게 발걸음을 멈춘 노인을 보며 질문을 던진 집사복의 청년은 굳은 그의 표정을 보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눈 앞에 있는 노인이 저렇게 굳은 표정을 짓는것은 좀체 없는 일인 탓이었다.
"류가군은 시력이 꽤나 좋지? 저 멀리 있는 데우스마키나를 볼 수 있겠나?"
"데우스마키나입니까? 어떤 미친놈이 도시에서... 그것도 아캄시티에서!"
노인의 말에 류가는 그대로 아캄시티를 향해 달려가려했으나 노인의 제지에 멈춰야만 했다.
"보기만하세. 해결할 이는 이미 나온듯하니"
"누구입니까?"
"그거야 자네가 봐야하지 않겠나. 눈이 침침한 이 노인네 대신에."
"그런말을 믿을 사람은 아무도 없을겁니다."
그런 농을 던지며 노인이 가리킨 방향을 주시했다. 예전에 노마술사에게 잡혀 인체실험을 당했던 그는 일반인의 수십배에 달하는 신체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런만큼 노인이 가리킨 방향을 보는 것은 식은죽 먹기만큼 쉬웠다.
"저건... 데몬베인?"
류가는 노인이 손을 가리킨 방향에서 싸우고 있는 두대의 데우스마키나를 보며 놀람을 감추지 못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두대중 한대인 데몬베인 탓이었다. 데몬베인은 본디 노인의 것이며 노인이 탑승해 조종하는 데우스마키나. 그런데 지금 그것이 노인이 타지 않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움직이고 있었다.
"주인어른, 데몬베인이!"
"그런가... 드디어 때가 온건가..."
류가는 노인의 중얼거림에 의아함을 느꼈지만 노인의 채근에 데몬베인이 있는 곳을 주시할 수밖에 없었다.
"으앗!"
갑작스럽게 머리로 쏠리는 피에 쿠로는 자신도 모르게 놀라며 아래를 바라보았다. 상공 500m에서 떨어지는 느낌은 처음 겪는 탓인지 쿠로로서는 온몸의 피가 단숨에 빠져나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쿠로!"
순간 머리가 무겁고 답답해져 의식까지 멀어질 뻔한 쿠로였지만 알의 외침에 재빨리 정신을 차리며 데몬베인을 조작했다. 다행이도 기본적인 조작법은 알을 통해 역류한 지식을 통해서 알 수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곧장 잘 조종할 수 있다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쿨럭!"
밑에 있는 데우스 마키나를 밟기 무섭게 전해지는 충격- 일순간 내장이 올라올듯한 충격에 쿠로는 자신도 모르게 헛구역질을 하며 자리에 주저 앉았다.
"뭐하는 거냐 쿠로! 빨리 일어서거라!"
"아, 미안. 솔직히 속이 안좋... 큭!"
창백한 안색으로 숨을 헐떡이고 있던 쿠로는 갑작스럽게 작렬하는 충격에 머리가 띵해짐을 느꼈다. 데몬베인에게 밟혔던 상대편 데우스 마키나가 일어나면서 데몬 베인을 강타한 것이었다. 안그래도 좋지 않은 속에 심한 충격을 받은 쿠로는 속이 뒤집어 지는 것을 느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몸은 반사적으로 데몬베인의 주먹을 내밀고 있었다.
투쾅-
마치 폭발음과도 같은 소리가 들리며 날려가는 데우스마키나를 보며 쿠로는 자신의 손과 상대를 번갈아 보며 당황스런 표정을 지었다. 데몬베인이 강하다는것은 알고 있었지만 설마 단순한 주먹질 만으로 데우스마키나를 날려버릴 만큼 강력할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뭐야 이 기체는..."
"쿠로 정신 차려라! 적의 공격이 오고 있다!. 주법 결계 전개!"
알의 경고와 함께 전방의 데우스 마키나로부터 쏟아지는 마력을 담은 탄우彈雨의 세례. 한발 한발은 데몬베인의 주법 결계로 쉽게 막을 정도였으나 백단위가 가볍게 넘어가는 탄우의 세례는 서서히 데몬베인의 주법 결계를 갉아먹고 있었다.
"큭"
"공격을 피해라, 이대로 맞고 있으면 위험하니라!"
"알고 있어! 하지만..."
탄막의 밀도가 너무 높았다. 농담하지 않고 데몬베인이 아닌 다른 기체였다면 순식간에 너덜너덜해져서 박살났을 것이 분명했다. 움직이려 해도 움직 일 수 없는 탄막의 세례속에서 쿠로는 버틸 수밖에 없었다.
"정말인지 이 기체를 구성하고 있는 술식은 왜이리 특이한건지-"
"이거 개발에 관여했다면서!"
"내가 관여한 부분은 데우스 마키나와 술식의 조성과 제어에 대한 조언부분이다. 직접적인 술식 구성까지 관여하지 않았느니라!."
"그런...!"
알 아지프만 믿고 있던 쿠로는 알의 고백에 아연 실색하며 데몬베인의 조작계를 뒤지기 시작했다.
"데몬베인이!!"
탄우의 세례를 정면으로 받고 있는 데몬베인을 보며 하도우 루리는 자신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다. 자신의 할아버지의 애기이자 자신의 부모님의 유품이라 할 수 있는 데몬베인이 저런 웃기지도 않는 데우스 마키나에 의해서 엉망진창이 되고있는 모습을 보자면 비명을 지르지 않을 수가 없는 노릇이었다.
"아가씨 진정하십시오. 이정도로 쓰러질 데몬베인이었으면 지금까지 프나레 데우스에서 몇번씩이고 우승이 가능했겠습니까?"
"하기사..."
데몬베인은 사실상 현존하는 최강의 데우스 마키나였다. 20년 전 데우스 마키나가 전 세계에 공개되면서 펼쳐지게 된 데우스마키나의 제전 프나레 데우스. 여태까지 총 5번의 제전에서 전 대결 무패로 3번의 우승을 거머쥔 데몬베인의 전적은 그 어떤 데우스 마키나도 따라 할 수 없는 위업이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하지만 데우스마키나는... 데몬베인은 조종사, 마도서가 함께해야, 삼위 일체를 이뤄야 진짜힘을 발휘하는 존재. 지금 저기에는 리틀 에이다도 할아버지도 없다고요."
그렇다. 데우스 마키나란 존재는 본디 마도서, 술자가 더해져 삼위일체를 이루어야 제 힘을 발휘 할 수 있는 존재. 설령 상급... 아니 원전급 마도서의 데우스 마키나라 할 지라도 삼위일체를 이르지 못하면 제 성능은 커녕 자신이 지닌 힘의 십분지 일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는 가련한 존재였다. 그런면에서 보자면 항상 일정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로봇이 좋지만 서도 술자와 마도서에 의한 상승효과는 너무나도 매력적인 것이었다.
그렇기에 데우스마키나에 다들 열광하는 것이겠지만-
[뭔가 바쁜듯 하지만 시간이 있는가?]
갑작스럽게 켜지는 영상, 그리고 보이는 보랏빛으로 번뜩이는 머리칼을 흩날리며 고양이 귀와도 같은 것을 머리에 달고있는 소녀가 모습을 드러냈다. 폭음과 잡음이 뒤섞인 영상에서 소녀는 여기 있는 사람들에게 다급함이 조금 뒤섞인 표정으로 말하고 있었다. 갑작스런 소녀의 영상에 하도우 루리는 동요하며 입을 열었다.
"누... 누구죠 당신은? 어떻게 주술 암호 처리가 된 이곳 기지에 끼어든 겁니까?"
하지만 정작 루리의 의문을 풀어준 것은 소녀가 아닌 오퍼레이터를 맡고있는 메이드였다.
"사령관님, 저 영상 발신원을 알아냈습니다. 데몬베인 내부입니다"
"뭐라고요?"
"그럼 저 소녀가 데몬베인을..."
루리는 그 말에 인상을 구기고 이마의 혈관이 도드라질 만큼 높아진 혈압으로 영상의 소녀를 향해 외쳤다.
"당신! 데몬베인을 맘대로 가져가 버리다니, 무슨 속셈입니까! 그 기체는 제 할아버지의 것입니다! 당신 같은 도둑놈이 함부로 건드려선 안될 물건이란 말입니다!!"
[그런 사소한 일은 신경쓰지 말거라. 그보다도 중요한건 이쪽인데...]
"사람 말을 듣는 겁니까!!"
자신의 말을 완전히 씹어버리는 소녀를 보며 루리는 지금 당장이라도 데몬베인의 콕픽트로 쫓아가 그녀를 끌고 내리게 만들어 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지금 저 녀석을 상대하기 위한 무기를 찾고 있지만 생소해서 말이지, 내가 해독하고 편집하기 곤란하다. 그러한 관계로 적당한 공격주법을 하나 골라서 가르쳐 주지 않겠는가?]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루리의 말을 흘려넘긴 소녀는 자신의 요구조건을 말하며 답변을 기다렸다. 너무나도 뻔뻔한 소녀의 행동에 루리는 뭐라 외치려 했으나 윈필드의 제지에 멈출 수밖에 없었다.
"누군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저 데우스마키나를 처리할 수 있겠습니까?"
"윈필드!"
"사령관, 지금은 화급한 사태입니다. 조속한 사태의 해결을 위해서라도 지금은 일단 협력하기로 하죠"
윈필드의 말에 루리는 불만이 가득하지만서도 이내 한숨을 내쉬며 생각을 정리했다. 비록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은 그녀였지만 본디 총명한 존재- 일의 선후를 무시할 만큼 우둔하지 않았다. 이내 자신의 머릿속을 정리한 루리는 데몬베인에 내장된 무장중 가장 적당한 것을 떠올리며 입에 담았다.
"제 1근접 승화주법 레무리아 임팩트."
[레무리아인가... 조금 미덥지 못한듯하다만]
"닥치고 들으세요. 이 술식은 그 위험성 때문에 이중으로 봉인 되어있습니다만... 지금부터 그 술식의 1차 봉인 해제를 위한 나이칼 코드와 기동술식을 전송하겠습니다. 술식을 기동하면 그 뒤에 나이칼 코드화 시켜 보낸 언령으로 술식을 제어해 주십시오. 조금이라도 제어가 느슨했다가는 도시가 절반 가량 날아가 버립니다."
[위험한 술식이군.]
"그만큼 절대적이기도 하죠"
[뭐 좋지. 쿠로, 레무리아 임팩트의 술식해동이 끝나면 바로 들어간다. 준비해라-]
소녀의 외침에 루리는 자신도 모르게 멍하니 소녀의 영상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잠시 후 정신을 차린 루리는 무척이나 당황하며 소녀를 향해 외쳤다.
"뭐... 뭐라고요! 쿠로?! 설마 다이쥬지 쿠로는 아니겠죠?"
[쿠로를 아는가? 그러고보면 쿠로를 고용한 것이 하도우 재벌이었군. 아는건 당연한 일인가]
"잠깐 쿠로씨좀 바꿔주지 않겠습니까?"
갑자기 뿜어지는 막대한 살기, 모니터 너머에서도 느껴질 정도의 엄청난 박력에 소녀는 살짝 움찔하더니 이내 태연한 목소리로 말했다.
[미안하지만 좀 바빠서- 그럼 부탁하지.]
"잠깐!!!"
루리의 외침이 끝나기도전에 꺼지는 영상, 그것을 보며 루리는 분통을 터트렸으나 이미 화낼 대상은 도망친 뒤였다.
"아가씨.."
"알고 있습니다. 나이칼 코드 전송준비를 해주세요!"
루리는 일이 끝나고 나면 쿠로를 어떻게 벌줘야 할지 고민하며 나이칼 코드의 전송을 시작했다.
"쿠로, 주법을 알아냈다. 주법 전송이 완료되면 곧바로 주법을 사용한다."
"알았어, 그런데 방금 살벌한 소리가 들렸던것 같은데..."
"신경쓰지 마라. 심해봤자 네가 죽는 정도니-"
"아, 그래... 가 아니잖아!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별거 아니다. 그저 네 의뢰주와 이야기를 좀 나눈것 뿐-"
"지옥이다..."
아마도 이번 싸움이 끝나면 쿠로의 목숨은 있어도 없는것이 될것이 분명했다.
"나이칼 코드 수신 완료- 시작해라 쿠로!"
"제길!!"
자신을 항거할 수 없는 위험에 쳐하게 만든 알 아지프에게 원망의 말을 날리고 싶은 쿠로였으나 지금은 눈 앞에 있는 적의 존재를 해결하는것이 우선이었다.
알 아지프를 통해 머릿속으로 흘러드는 언령, 그것은 레무리아 임팩트의 기동을 위한 주법의 일부분이었다. 오른팔 제어부를 조작한 쿠로는 그대로 언령을 외치며 데몬베인의 오른팔에 내재된 마술기관을 일깨웠다.
"빛이 비치는 세계에 그대들 암흑이 있을 곳은 없나니"
데몬베인의 동력부인 은건수호신기관에서 발해지는 무한한 마력과 열량이 오른팔에 있는 기관으로 집속되기 시작했다. 집속된 마력과 열량은 엄청난 열기를 발하며 주위의 공기를 일그러뜨리고 있었다.
"목마름 없이, 굶주림 없이,"
데몬베인의 오른쪽 손에 생겨난 마치 진녹빛 어둠을 연상시키는 막대한 열량을 발하는 흑염의 구체는 다가오는 탄우의 세례를 단번에 기화시키며 그 존재감을 과시했다. 그리고 잠시 후 술식이 완성되고 마지막 언령을 남겨둔 상황에서 데몬베인은 땅에 딛고 있던 발을 떼며 눈앞의 데우스 마키나를 향해 흑염의 구체를 들이 박았다.
"무無로 돌아가라!"
마지막 언령이 발해지자 흑염의 구체는 그대로 데우스마키나를 집어삼키며 거대해 지기 시작했다.
"마... 말도 안돼! 내 데우스 마키나가!!"
갑작스럽게 데우스마키나에 의해 굴욕을 겪은것도 모자라 순식간에 형세 역전까지 당한 상황. 아무리 사본의 마도서를 지닌 자신이라지만, 아무리 이 데우스마키나가 정진정명한 데우스마키나가 아니라지만 이럴 수는 없는 일이었다.
"대체 저 녀석은 뭐인거냐!"
조금이라도 사회적인 생활을 했다면 눈 앞에 있는 데몬베인의 정체를 바로 알 수 있었을 것이나 아쉽게도 그는 사교 교주로서 오로지 자신의 세계에만 틀어박혀있었다. 그렇기에 데몬베인의 존재를 알지 못했고 여타 데우스마키나와 같은 대응을 하다가 파멸을 자초해 버렸다. 하지만 그는 아직 그것을 인정하지 못했고 결국 마지막으로 의지한 것이 자신의 손에 들린 유혈기도서 사본이었다.
"아브라카다브라 아브라카다브라! 위대하신 선혈신 즈아위아여 당신의 종을 구원해주소서-"
유혈기도서를 매개로 선혈신 즈아위아를 소환하려던 그는 문득 자신의 몸에서 부터 무엇인가가 빨려들어감을 느꼈다. 그리고 볼 수 있었다. 피로 흥건한 유혈기도서 사본과 피가 빨려나가 창백해진 자신의 피부, 그리고 어느새 미라처럼 말라버린 자신의 모습을-
"흐이익!"
- 나의 제물이 되어라 나의 종이어.
"아... 안....!"
그렇게 선혈신 즈아위아를 숭배하던 사교의 교주는 피 한방울, 살 한점, 존재조차 남기지 못하고 그대로 소멸해 버렸다.
"엄청난 주법이군. 그 아가씨의 말이 납득 갈 정도다."
알은 데몬베인의 제1근접승화주법이자 필살기라 할 수 있는 레무리아 임팩트를 보면서 놀람을 금할 수 없었다. 원전 마도서의 데우스마키나라 할 지라도 걸린 순간 단번에 소멸시킬 정도의 엄청난 위력을 지닌 주법- 이러한 주법이라면 그 제어가 풀렸을 경우 이 일대를 완전히 소거 시켜버릴 것이 분명했다.
"이게 데몬베인의 힘인가..."
알고는 있지만 막상 직접 그 힘을 행사하니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공포와 힘을 느끼고 있었다. 만약 이러한 힘이 자신을 향해 휘둘러진다면 자신은 이러한 공포앞에 항거할 수 있을 것인가? 그런 생각이 문득 들어버린 쿠로였지만 이상하게도 이내 느끼고 있던 공포는 이내 용기가 되었고 든든함이 되었다. 이 힘이 인류를 향하게 되지 않을거라는 믿음이 쿠로의 마음속에 자리잡게 된 것이었다.
그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갑작스런 강대한 마력반응... 사신! 쿠로!!"
"뭐?"
갑작스러운 알의 외침에 쿠로는 알을 향해 반문했으나 그 순간 쿠로는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막대한 적의와 공포를 느꼈다. 그리고 재빨리 주법결계를 전개하고 팔을 들어올려 상대의 공격을 막으려 했지만, 레무리아 임팩트의 승화속에서 나타난 상대의 공격은 너무나도 쉽게 데몬베인의 왼팔을 끊고 순백을 머금은 수도를 머리 바로 앞까지 찔러 넣었다. 하지만 힘이 다한 것일까? 수도에 담긴 순백의 힘은 그대로 사라지고 데몬베인의 머리를 향해 똑바로 날아오던 수도도 이내 힘을 잃으며 빗겨져 나갔다.
[이런이런... 역시 사본으로는 고작 이정도인가?]
"너는... 누구지?"
눈 앞에 나타난 선혈 빛으로 빛나는 거대한 날개를 지닌 데우스 마키나를 보며 쿠로는 엄청난 공포와 마주해야만 했다. 미스카토닉 대학에 있던 네크로노미콘의 사본에서 느낀 공포와 비견될... 어쩌면 그 이상일지도 모를 공포를 마주한 쿠로는 식은 땀을 흘리며 겨우겨우 입을 열었다.
[그런 질문을 하다니 왠지 섭섭하군 나의 사랑스런 원적이여. 하긴 이번엔 무대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듯하니 순순히 물러나도록하지. 나의 반신도 모습을 아직 찾지 못했음이니...]
"반신이라니...."
[그럼 다음에 보도록하지...]
애초부터 없었다는 듯이 사라져버린 선혈로 물든 귀계신의 팔을 보며 쿠로는 자신이 뭔가에 홀린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끊어져 바닥을 나뒹굴고 있는 데몬베인의 왼팔은 그 존재가 환상이 아님을 증명하고 있었다.
"방금건 대체..."
"선혈신 즈아위아. 살아있었던가! 그때 데몬베인으로 물리친게 아니었던가!!"
"알, 알고있는거야?"
쿠로는 놀란표정으로 외치는 알을 향해 물었으나 알은 아무말도 하지 않은채 즈아위아라 부른 존재가 있었던 자리만을 주시하고 있었다.
"이게 어떻게 된거죠 3류탐정씨?"
지하격납고로 돌아온 알과 쿠로를 맞이한 것은 평소와 같은 드레스가 아닌 사령복을 입고 있는 하도우 루리였다. 한껏 노기를 띈 미소로 알과 쿠로를 마중한 그녀를 보며 쿠로는 자신도 모르게 위압되는 것을 느꼈다.
"에... 그게..."
뭐라 변명을 하고 싶었지만 잘못 변명했다간 그대로 이것저것 당한 후 아캄시티 해안에 묻힐것 같았다. 공포에 질린 쿠로는 분위기 전환을 위해서 재빨리 알을 잡아 앞으로 내민 후 외쳤다.
"의뢰한 물품입니다!"
"...."
"...."
갑자기 쏟아지는 냉랭한 시선, 걔중에는 '이 사람 제정신일까요?'라는 시선과 '아이를 팔다니 양심이 있는걸까?'라는 시선이 압도적이었다. 오직 윈필드만이 쿠로의 말에 흥미를 보이며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이 아가씨가 마도서입니까?"
"음, 나의 이름은 알 아지프. 그 옛날 압둘 알하자드가 지어낸 최고의 마도서니라"
"이 소녀가 마도서라고요?"
놀라는 하도우 루리, 그런 그녀를 보며 알은 아무것도 아니라는투로 말했다.
"그리 놀랄것도 없지 않느냐. 본디 데몬베인을 기동하는데 쓰이는 마도서인 리틀에이다도 인간의 모습을 취할 수 있다. 그런데 그녀의 원전인 내가 인간의 모습을 취하지 못할것이라 생각하는가?"
"하지만 그녀는 특별합니다!"
"확실히 그 아이가 특별하긴 하지. 정령의 모습을 그토록짧은 시간에 구축한 것은 그녀가 처음이니 말이다. 뭐 그것도 이 몸이 워낙 잘난 탓이겠지만-"
자화자찬에 지친 표정을 짓는 하도우 루리. 눈앞에있는 소녀... 아니 마도서는 정말 상대하기 힘든 존재였다. 그때 이곳 지하격납고의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며 두명의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척 보기에도 60을 넘긴 새하얀 백발의 건장한 노인과 그런 그를 수행하는 윈필드와 비슷한 복장의 집사. 알은 노인의 얼굴을 보더니 반가운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오랜만이군, 하도우 코조. 20년 만인가?"
"건강한듯 하구만 알 아지프"
"할아버지!"
"저 사람이 하도우 재벌을 만들고 아캄시티를 일궈낸 초인... 하도우 코조"
쿠로는 눈앞에 있는 노인을 보며 심한 압박감을 느꼈다. 오늘 하루는 정말 몸에 좋지 않은 하루였다. 심심하면 공포와 압박감을 느껴야 했으니 말이다.
알과 대화를 나누고 있던 코조는 이내 시선을 쿠로에게로 향하며 입을 열었다.
"자네가 데몬베인을 조종한 다이쥬지 쿠로군인가?"
"아... 넵! 죄송합니다!!"
재빨리 저자세로 나가는 쿠로. 하도우 재벌의 상징이자 비장의 패라고 할 수 있는 데몬베인을 멋대로 움직인 것이다. 까딱 잘못했다간 강바닥에 묻혀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의 입에서 나온건 쿠로의 예상과는 다른 말이었다.
"앞으로도 데몬베인을 잘 부탁하네"
"다시는... 네?"
"할아버지! 지금 데몬베인을 저 3류 탐정에게 맡기겠다고요?!"
의외의 말에 반발하는 루리. 하지만 그런 루리를 향해 코조는 약한 모습을 보이며 입을 열었다.
"하지만 루리야. 이 할애비도 벌써 70을 바라보는 나이다. 몸도 예전같지 않고. 설마 루리야 설마 이 할애비를 혹사시킬 생각은 아니겠지? 게다가 데몬베인은 데우스마키나, 데우스마키나는 술자와 마도서를 통해 삼위일체를 이뤄야 제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걸 알지 않느냐."
코조의 말에 당황하며 뒷걸음질 치는 루리. 아무리 건강하다지만 하도우 코조는 이미 70을 바라보는 나이. 데우스마키나를 움직이는것, 특히나 격렬한 전투행위를 한다는 것이 심히 부담되는 나이긴 했다.
게다가 데몬베인은 엄연한 데우스마키나. 당연히 술자와 마도서가 삼위일체를 이뤄야 함을 루리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긴 하지만..."
"뭐 네 불안도 모르는건 아니란다. 그러니까 루리 너와 쿠로군이 사귀... 쿠헉!"
"할아버지!!"
뭔가 말하려다가 손녀의 강렬한 보디 블로에 맞고 제지당한 코조. 그런 조손의 만담을 보며 쿠로는 자신도 모르게 재벌이라 할지라도 조손관계는 다른 집이랑 다를바 없구나란 생각을 해버렸다. 하지만 그 생각이 사라지는데는 얼마의 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손녀에게 보디블로를 얻어맞은 복부가 아픈지 아픈배를 쓰다듬으며 쿠로에게로 다가간 코조는 이내 친근하게 쿠로의 어깨에 팔을 걸치며 입을 열었다.
"아참 쿠로군. 한가지 충고할게 있네만"
"뭐... 뭡니까?"
"만약 내 손녀 루리를 곤란하게 하는 일이 있다면 말일세..."
"있다면...?"
"내 이름에 맹세코 아캄시티 지하에 최심층부에 파묻어주도록 하지, 아니 그건 너무 심심하니 내 별장이 있는 인마우스 해안에서 평생토록 쓰레기줍기 '알바'를 하게 만들어 주겠어-"
"잠깐! 청소부도 아니고 '알바'?!"
"뭐하면 '아, 50년 전 이 날 내가 그녀를 힘들게 하는 바람에 그 이후로 단 한명의 손님도 없게 되버렸지'라는 것도 좋으려나?"
코조의 협박에 쿠로는 속으로 생각했다.
'뭐가 철혈의 제왕이냐! 이 영감탱이 완전 조폭제왕 아니야!'
"대답은?"
"네..."
"뭐, 그걸로 좋아- 그럼 앞으로 잘 부탁한다네 쿠로군."
오늘 하도우 재벌의 여러가지 숨겨진 면을 보게되고 또한 묶이게 된 다이쥬지 쿠로였다.
"무슨 일이라도...?"
갑작스럽게 발걸음을 멈춘 노인을 보며 질문을 던진 집사복의 청년은 굳은 그의 표정을 보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눈 앞에 있는 노인이 저렇게 굳은 표정을 짓는것은 좀체 없는 일인 탓이었다.
"류가군은 시력이 꽤나 좋지? 저 멀리 있는 데우스마키나를 볼 수 있겠나?"
"데우스마키나입니까? 어떤 미친놈이 도시에서... 그것도 아캄시티에서!"
노인의 말에 류가는 그대로 아캄시티를 향해 달려가려했으나 노인의 제지에 멈춰야만 했다.
"보기만하세. 해결할 이는 이미 나온듯하니"
"누구입니까?"
"그거야 자네가 봐야하지 않겠나. 눈이 침침한 이 노인네 대신에."
"그런말을 믿을 사람은 아무도 없을겁니다."
그런 농을 던지며 노인이 가리킨 방향을 주시했다. 예전에 노마술사에게 잡혀 인체실험을 당했던 그는 일반인의 수십배에 달하는 신체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런만큼 노인이 가리킨 방향을 보는 것은 식은죽 먹기만큼 쉬웠다.
"저건... 데몬베인?"
류가는 노인이 손을 가리킨 방향에서 싸우고 있는 두대의 데우스마키나를 보며 놀람을 감추지 못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두대중 한대인 데몬베인 탓이었다. 데몬베인은 본디 노인의 것이며 노인이 탑승해 조종하는 데우스마키나. 그런데 지금 그것이 노인이 타지 않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움직이고 있었다.
"주인어른, 데몬베인이!"
"그런가... 드디어 때가 온건가..."
류가는 노인의 중얼거림에 의아함을 느꼈지만 노인의 채근에 데몬베인이 있는 곳을 주시할 수밖에 없었다.
3화 데몬베인
"으앗!"
갑작스럽게 머리로 쏠리는 피에 쿠로는 자신도 모르게 놀라며 아래를 바라보았다. 상공 500m에서 떨어지는 느낌은 처음 겪는 탓인지 쿠로로서는 온몸의 피가 단숨에 빠져나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쿠로!"
순간 머리가 무겁고 답답해져 의식까지 멀어질 뻔한 쿠로였지만 알의 외침에 재빨리 정신을 차리며 데몬베인을 조작했다. 다행이도 기본적인 조작법은 알을 통해 역류한 지식을 통해서 알 수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곧장 잘 조종할 수 있다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쿨럭!"
밑에 있는 데우스 마키나를 밟기 무섭게 전해지는 충격- 일순간 내장이 올라올듯한 충격에 쿠로는 자신도 모르게 헛구역질을 하며 자리에 주저 앉았다.
"뭐하는 거냐 쿠로! 빨리 일어서거라!"
"아, 미안. 솔직히 속이 안좋... 큭!"
창백한 안색으로 숨을 헐떡이고 있던 쿠로는 갑작스럽게 작렬하는 충격에 머리가 띵해짐을 느꼈다. 데몬베인에게 밟혔던 상대편 데우스 마키나가 일어나면서 데몬 베인을 강타한 것이었다. 안그래도 좋지 않은 속에 심한 충격을 받은 쿠로는 속이 뒤집어 지는 것을 느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몸은 반사적으로 데몬베인의 주먹을 내밀고 있었다.
투쾅-
마치 폭발음과도 같은 소리가 들리며 날려가는 데우스마키나를 보며 쿠로는 자신의 손과 상대를 번갈아 보며 당황스런 표정을 지었다. 데몬베인이 강하다는것은 알고 있었지만 설마 단순한 주먹질 만으로 데우스마키나를 날려버릴 만큼 강력할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뭐야 이 기체는..."
"쿠로 정신 차려라! 적의 공격이 오고 있다!. 주법 결계 전개!"
알의 경고와 함께 전방의 데우스 마키나로부터 쏟아지는 마력을 담은 탄우彈雨의 세례. 한발 한발은 데몬베인의 주법 결계로 쉽게 막을 정도였으나 백단위가 가볍게 넘어가는 탄우의 세례는 서서히 데몬베인의 주법 결계를 갉아먹고 있었다.
"큭"
"공격을 피해라, 이대로 맞고 있으면 위험하니라!"
"알고 있어! 하지만..."
탄막의 밀도가 너무 높았다. 농담하지 않고 데몬베인이 아닌 다른 기체였다면 순식간에 너덜너덜해져서 박살났을 것이 분명했다. 움직이려 해도 움직 일 수 없는 탄막의 세례속에서 쿠로는 버틸 수밖에 없었다.
"정말인지 이 기체를 구성하고 있는 술식은 왜이리 특이한건지-"
"이거 개발에 관여했다면서!"
"내가 관여한 부분은 데우스 마키나와 술식의 조성과 제어에 대한 조언부분이다. 직접적인 술식 구성까지 관여하지 않았느니라!."
"그런...!"
알 아지프만 믿고 있던 쿠로는 알의 고백에 아연 실색하며 데몬베인의 조작계를 뒤지기 시작했다.
"데몬베인이!!"
탄우의 세례를 정면으로 받고 있는 데몬베인을 보며 하도우 루리는 자신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다. 자신의 할아버지의 애기이자 자신의 부모님의 유품이라 할 수 있는 데몬베인이 저런 웃기지도 않는 데우스 마키나에 의해서 엉망진창이 되고있는 모습을 보자면 비명을 지르지 않을 수가 없는 노릇이었다.
"아가씨 진정하십시오. 이정도로 쓰러질 데몬베인이었으면 지금까지 프나레 데우스에서 몇번씩이고 우승이 가능했겠습니까?"
"하기사..."
데몬베인은 사실상 현존하는 최강의 데우스 마키나였다. 20년 전 데우스 마키나가 전 세계에 공개되면서 펼쳐지게 된 데우스마키나의 제전 프나레 데우스. 여태까지 총 5번의 제전에서 전 대결 무패로 3번의 우승을 거머쥔 데몬베인의 전적은 그 어떤 데우스 마키나도 따라 할 수 없는 위업이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하지만 데우스마키나는... 데몬베인은 조종사, 마도서가 함께해야, 삼위 일체를 이뤄야 진짜힘을 발휘하는 존재. 지금 저기에는 리틀 에이다도 할아버지도 없다고요."
그렇다. 데우스 마키나란 존재는 본디 마도서, 술자가 더해져 삼위일체를 이루어야 제 힘을 발휘 할 수 있는 존재. 설령 상급... 아니 원전급 마도서의 데우스 마키나라 할 지라도 삼위일체를 이르지 못하면 제 성능은 커녕 자신이 지닌 힘의 십분지 일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는 가련한 존재였다. 그런면에서 보자면 항상 일정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로봇이 좋지만 서도 술자와 마도서에 의한 상승효과는 너무나도 매력적인 것이었다.
그렇기에 데우스마키나에 다들 열광하는 것이겠지만-
[뭔가 바쁜듯 하지만 시간이 있는가?]
갑작스럽게 켜지는 영상, 그리고 보이는 보랏빛으로 번뜩이는 머리칼을 흩날리며 고양이 귀와도 같은 것을 머리에 달고있는 소녀가 모습을 드러냈다. 폭음과 잡음이 뒤섞인 영상에서 소녀는 여기 있는 사람들에게 다급함이 조금 뒤섞인 표정으로 말하고 있었다. 갑작스런 소녀의 영상에 하도우 루리는 동요하며 입을 열었다.
"누... 누구죠 당신은? 어떻게 주술 암호 처리가 된 이곳 기지에 끼어든 겁니까?"
하지만 정작 루리의 의문을 풀어준 것은 소녀가 아닌 오퍼레이터를 맡고있는 메이드였다.
"사령관님, 저 영상 발신원을 알아냈습니다. 데몬베인 내부입니다"
"뭐라고요?"
"그럼 저 소녀가 데몬베인을..."
루리는 그 말에 인상을 구기고 이마의 혈관이 도드라질 만큼 높아진 혈압으로 영상의 소녀를 향해 외쳤다.
"당신! 데몬베인을 맘대로 가져가 버리다니, 무슨 속셈입니까! 그 기체는 제 할아버지의 것입니다! 당신 같은 도둑놈이 함부로 건드려선 안될 물건이란 말입니다!!"
[그런 사소한 일은 신경쓰지 말거라. 그보다도 중요한건 이쪽인데...]
"사람 말을 듣는 겁니까!!"
자신의 말을 완전히 씹어버리는 소녀를 보며 루리는 지금 당장이라도 데몬베인의 콕픽트로 쫓아가 그녀를 끌고 내리게 만들어 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지금 저 녀석을 상대하기 위한 무기를 찾고 있지만 생소해서 말이지, 내가 해독하고 편집하기 곤란하다. 그러한 관계로 적당한 공격주법을 하나 골라서 가르쳐 주지 않겠는가?]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루리의 말을 흘려넘긴 소녀는 자신의 요구조건을 말하며 답변을 기다렸다. 너무나도 뻔뻔한 소녀의 행동에 루리는 뭐라 외치려 했으나 윈필드의 제지에 멈출 수밖에 없었다.
"누군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저 데우스마키나를 처리할 수 있겠습니까?"
"윈필드!"
"사령관, 지금은 화급한 사태입니다. 조속한 사태의 해결을 위해서라도 지금은 일단 협력하기로 하죠"
윈필드의 말에 루리는 불만이 가득하지만서도 이내 한숨을 내쉬며 생각을 정리했다. 비록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은 그녀였지만 본디 총명한 존재- 일의 선후를 무시할 만큼 우둔하지 않았다. 이내 자신의 머릿속을 정리한 루리는 데몬베인에 내장된 무장중 가장 적당한 것을 떠올리며 입에 담았다.
"제 1근접 승화주법 레무리아 임팩트."
[레무리아인가... 조금 미덥지 못한듯하다만]
"닥치고 들으세요. 이 술식은 그 위험성 때문에 이중으로 봉인 되어있습니다만... 지금부터 그 술식의 1차 봉인 해제를 위한 나이칼 코드와 기동술식을 전송하겠습니다. 술식을 기동하면 그 뒤에 나이칼 코드화 시켜 보낸 언령으로 술식을 제어해 주십시오. 조금이라도 제어가 느슨했다가는 도시가 절반 가량 날아가 버립니다."
[위험한 술식이군.]
"그만큼 절대적이기도 하죠"
[뭐 좋지. 쿠로, 레무리아 임팩트의 술식해동이 끝나면 바로 들어간다. 준비해라-]
소녀의 외침에 루리는 자신도 모르게 멍하니 소녀의 영상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잠시 후 정신을 차린 루리는 무척이나 당황하며 소녀를 향해 외쳤다.
"뭐... 뭐라고요! 쿠로?! 설마 다이쥬지 쿠로는 아니겠죠?"
[쿠로를 아는가? 그러고보면 쿠로를 고용한 것이 하도우 재벌이었군. 아는건 당연한 일인가]
"잠깐 쿠로씨좀 바꿔주지 않겠습니까?"
갑자기 뿜어지는 막대한 살기, 모니터 너머에서도 느껴질 정도의 엄청난 박력에 소녀는 살짝 움찔하더니 이내 태연한 목소리로 말했다.
[미안하지만 좀 바빠서- 그럼 부탁하지.]
"잠깐!!!"
루리의 외침이 끝나기도전에 꺼지는 영상, 그것을 보며 루리는 분통을 터트렸으나 이미 화낼 대상은 도망친 뒤였다.
"아가씨.."
"알고 있습니다. 나이칼 코드 전송준비를 해주세요!"
루리는 일이 끝나고 나면 쿠로를 어떻게 벌줘야 할지 고민하며 나이칼 코드의 전송을 시작했다.
"쿠로, 주법을 알아냈다. 주법 전송이 완료되면 곧바로 주법을 사용한다."
"알았어, 그런데 방금 살벌한 소리가 들렸던것 같은데..."
"신경쓰지 마라. 심해봤자 네가 죽는 정도니-"
"아, 그래... 가 아니잖아!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별거 아니다. 그저 네 의뢰주와 이야기를 좀 나눈것 뿐-"
"지옥이다..."
아마도 이번 싸움이 끝나면 쿠로의 목숨은 있어도 없는것이 될것이 분명했다.
"나이칼 코드 수신 완료- 시작해라 쿠로!"
"제길!!"
자신을 항거할 수 없는 위험에 쳐하게 만든 알 아지프에게 원망의 말을 날리고 싶은 쿠로였으나 지금은 눈 앞에 있는 적의 존재를 해결하는것이 우선이었다.
알 아지프를 통해 머릿속으로 흘러드는 언령, 그것은 레무리아 임팩트의 기동을 위한 주법의 일부분이었다. 오른팔 제어부를 조작한 쿠로는 그대로 언령을 외치며 데몬베인의 오른팔에 내재된 마술기관을 일깨웠다.
"빛이 비치는 세계에 그대들 암흑이 있을 곳은 없나니"
데몬베인의 동력부인 은건수호신기관에서 발해지는 무한한 마력과 열량이 오른팔에 있는 기관으로 집속되기 시작했다. 집속된 마력과 열량은 엄청난 열기를 발하며 주위의 공기를 일그러뜨리고 있었다.
"목마름 없이, 굶주림 없이,"
데몬베인의 오른쪽 손에 생겨난 마치 진녹빛 어둠을 연상시키는 막대한 열량을 발하는 흑염의 구체는 다가오는 탄우의 세례를 단번에 기화시키며 그 존재감을 과시했다. 그리고 잠시 후 술식이 완성되고 마지막 언령을 남겨둔 상황에서 데몬베인은 땅에 딛고 있던 발을 떼며 눈앞의 데우스 마키나를 향해 흑염의 구체를 들이 박았다.
"무無로 돌아가라!"
마지막 언령이 발해지자 흑염의 구체는 그대로 데우스마키나를 집어삼키며 거대해 지기 시작했다.
"마... 말도 안돼! 내 데우스 마키나가!!"
갑작스럽게 데우스마키나에 의해 굴욕을 겪은것도 모자라 순식간에 형세 역전까지 당한 상황. 아무리 사본의 마도서를 지닌 자신이라지만, 아무리 이 데우스마키나가 정진정명한 데우스마키나가 아니라지만 이럴 수는 없는 일이었다.
"대체 저 녀석은 뭐인거냐!"
조금이라도 사회적인 생활을 했다면 눈 앞에 있는 데몬베인의 정체를 바로 알 수 있었을 것이나 아쉽게도 그는 사교 교주로서 오로지 자신의 세계에만 틀어박혀있었다. 그렇기에 데몬베인의 존재를 알지 못했고 여타 데우스마키나와 같은 대응을 하다가 파멸을 자초해 버렸다. 하지만 그는 아직 그것을 인정하지 못했고 결국 마지막으로 의지한 것이 자신의 손에 들린 유혈기도서 사본이었다.
"아브라카다브라 아브라카다브라! 위대하신 선혈신 즈아위아여 당신의 종을 구원해주소서-"
유혈기도서를 매개로 선혈신 즈아위아를 소환하려던 그는 문득 자신의 몸에서 부터 무엇인가가 빨려들어감을 느꼈다. 그리고 볼 수 있었다. 피로 흥건한 유혈기도서 사본과 피가 빨려나가 창백해진 자신의 피부, 그리고 어느새 미라처럼 말라버린 자신의 모습을-
"흐이익!"
- 나의 제물이 되어라 나의 종이어.
"아... 안....!"
그렇게 선혈신 즈아위아를 숭배하던 사교의 교주는 피 한방울, 살 한점, 존재조차 남기지 못하고 그대로 소멸해 버렸다.
"엄청난 주법이군. 그 아가씨의 말이 납득 갈 정도다."
알은 데몬베인의 제1근접승화주법이자 필살기라 할 수 있는 레무리아 임팩트를 보면서 놀람을 금할 수 없었다. 원전 마도서의 데우스마키나라 할 지라도 걸린 순간 단번에 소멸시킬 정도의 엄청난 위력을 지닌 주법- 이러한 주법이라면 그 제어가 풀렸을 경우 이 일대를 완전히 소거 시켜버릴 것이 분명했다.
"이게 데몬베인의 힘인가..."
알고는 있지만 막상 직접 그 힘을 행사하니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공포와 힘을 느끼고 있었다. 만약 이러한 힘이 자신을 향해 휘둘러진다면 자신은 이러한 공포앞에 항거할 수 있을 것인가? 그런 생각이 문득 들어버린 쿠로였지만 이상하게도 이내 느끼고 있던 공포는 이내 용기가 되었고 든든함이 되었다. 이 힘이 인류를 향하게 되지 않을거라는 믿음이 쿠로의 마음속에 자리잡게 된 것이었다.
그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갑작스런 강대한 마력반응... 사신! 쿠로!!"
"뭐?"
갑작스러운 알의 외침에 쿠로는 알을 향해 반문했으나 그 순간 쿠로는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막대한 적의와 공포를 느꼈다. 그리고 재빨리 주법결계를 전개하고 팔을 들어올려 상대의 공격을 막으려 했지만, 레무리아 임팩트의 승화속에서 나타난 상대의 공격은 너무나도 쉽게 데몬베인의 왼팔을 끊고 순백을 머금은 수도를 머리 바로 앞까지 찔러 넣었다. 하지만 힘이 다한 것일까? 수도에 담긴 순백의 힘은 그대로 사라지고 데몬베인의 머리를 향해 똑바로 날아오던 수도도 이내 힘을 잃으며 빗겨져 나갔다.
[이런이런... 역시 사본으로는 고작 이정도인가?]
"너는... 누구지?"
눈 앞에 나타난 선혈 빛으로 빛나는 거대한 날개를 지닌 데우스 마키나를 보며 쿠로는 엄청난 공포와 마주해야만 했다. 미스카토닉 대학에 있던 네크로노미콘의 사본에서 느낀 공포와 비견될... 어쩌면 그 이상일지도 모를 공포를 마주한 쿠로는 식은 땀을 흘리며 겨우겨우 입을 열었다.
[그런 질문을 하다니 왠지 섭섭하군 나의 사랑스런 원적이여. 하긴 이번엔 무대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듯하니 순순히 물러나도록하지. 나의 반신도 모습을 아직 찾지 못했음이니...]
"반신이라니...."
[그럼 다음에 보도록하지...]
애초부터 없었다는 듯이 사라져버린 선혈로 물든 귀계신의 팔을 보며 쿠로는 자신이 뭔가에 홀린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끊어져 바닥을 나뒹굴고 있는 데몬베인의 왼팔은 그 존재가 환상이 아님을 증명하고 있었다.
"방금건 대체..."
"선혈신 즈아위아. 살아있었던가! 그때 데몬베인으로 물리친게 아니었던가!!"
"알, 알고있는거야?"
쿠로는 놀란표정으로 외치는 알을 향해 물었으나 알은 아무말도 하지 않은채 즈아위아라 부른 존재가 있었던 자리만을 주시하고 있었다.
"이게 어떻게 된거죠 3류탐정씨?"
지하격납고로 돌아온 알과 쿠로를 맞이한 것은 평소와 같은 드레스가 아닌 사령복을 입고 있는 하도우 루리였다. 한껏 노기를 띈 미소로 알과 쿠로를 마중한 그녀를 보며 쿠로는 자신도 모르게 위압되는 것을 느꼈다.
"에... 그게..."
뭐라 변명을 하고 싶었지만 잘못 변명했다간 그대로 이것저것 당한 후 아캄시티 해안에 묻힐것 같았다. 공포에 질린 쿠로는 분위기 전환을 위해서 재빨리 알을 잡아 앞으로 내민 후 외쳤다.
"의뢰한 물품입니다!"
"...."
"...."
갑자기 쏟아지는 냉랭한 시선, 걔중에는 '이 사람 제정신일까요?'라는 시선과 '아이를 팔다니 양심이 있는걸까?'라는 시선이 압도적이었다. 오직 윈필드만이 쿠로의 말에 흥미를 보이며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이 아가씨가 마도서입니까?"
"음, 나의 이름은 알 아지프. 그 옛날 압둘 알하자드가 지어낸 최고의 마도서니라"
"이 소녀가 마도서라고요?"
놀라는 하도우 루리, 그런 그녀를 보며 알은 아무것도 아니라는투로 말했다.
"그리 놀랄것도 없지 않느냐. 본디 데몬베인을 기동하는데 쓰이는 마도서인 리틀에이다도 인간의 모습을 취할 수 있다. 그런데 그녀의 원전인 내가 인간의 모습을 취하지 못할것이라 생각하는가?"
"하지만 그녀는 특별합니다!"
"확실히 그 아이가 특별하긴 하지. 정령의 모습을 그토록짧은 시간에 구축한 것은 그녀가 처음이니 말이다. 뭐 그것도 이 몸이 워낙 잘난 탓이겠지만-"
자화자찬에 지친 표정을 짓는 하도우 루리. 눈앞에있는 소녀... 아니 마도서는 정말 상대하기 힘든 존재였다. 그때 이곳 지하격납고의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며 두명의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척 보기에도 60을 넘긴 새하얀 백발의 건장한 노인과 그런 그를 수행하는 윈필드와 비슷한 복장의 집사. 알은 노인의 얼굴을 보더니 반가운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오랜만이군, 하도우 코조. 20년 만인가?"
"건강한듯 하구만 알 아지프"
"할아버지!"
"저 사람이 하도우 재벌을 만들고 아캄시티를 일궈낸 초인... 하도우 코조"
쿠로는 눈앞에 있는 노인을 보며 심한 압박감을 느꼈다. 오늘 하루는 정말 몸에 좋지 않은 하루였다. 심심하면 공포와 압박감을 느껴야 했으니 말이다.
알과 대화를 나누고 있던 코조는 이내 시선을 쿠로에게로 향하며 입을 열었다.
"자네가 데몬베인을 조종한 다이쥬지 쿠로군인가?"
"아... 넵! 죄송합니다!!"
재빨리 저자세로 나가는 쿠로. 하도우 재벌의 상징이자 비장의 패라고 할 수 있는 데몬베인을 멋대로 움직인 것이다. 까딱 잘못했다간 강바닥에 묻혀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의 입에서 나온건 쿠로의 예상과는 다른 말이었다.
"앞으로도 데몬베인을 잘 부탁하네"
"다시는... 네?"
"할아버지! 지금 데몬베인을 저 3류 탐정에게 맡기겠다고요?!"
의외의 말에 반발하는 루리. 하지만 그런 루리를 향해 코조는 약한 모습을 보이며 입을 열었다.
"하지만 루리야. 이 할애비도 벌써 70을 바라보는 나이다. 몸도 예전같지 않고. 설마 루리야 설마 이 할애비를 혹사시킬 생각은 아니겠지? 게다가 데몬베인은 데우스마키나, 데우스마키나는 술자와 마도서를 통해 삼위일체를 이뤄야 제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걸 알지 않느냐."
코조의 말에 당황하며 뒷걸음질 치는 루리. 아무리 건강하다지만 하도우 코조는 이미 70을 바라보는 나이. 데우스마키나를 움직이는것, 특히나 격렬한 전투행위를 한다는 것이 심히 부담되는 나이긴 했다.
게다가 데몬베인은 엄연한 데우스마키나. 당연히 술자와 마도서가 삼위일체를 이뤄야 함을 루리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긴 하지만..."
"뭐 네 불안도 모르는건 아니란다. 그러니까 루리 너와 쿠로군이 사귀... 쿠헉!"
"할아버지!!"
뭔가 말하려다가 손녀의 강렬한 보디 블로에 맞고 제지당한 코조. 그런 조손의 만담을 보며 쿠로는 자신도 모르게 재벌이라 할지라도 조손관계는 다른 집이랑 다를바 없구나란 생각을 해버렸다. 하지만 그 생각이 사라지는데는 얼마의 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손녀에게 보디블로를 얻어맞은 복부가 아픈지 아픈배를 쓰다듬으며 쿠로에게로 다가간 코조는 이내 친근하게 쿠로의 어깨에 팔을 걸치며 입을 열었다.
"아참 쿠로군. 한가지 충고할게 있네만"
"뭐... 뭡니까?"
"만약 내 손녀 루리를 곤란하게 하는 일이 있다면 말일세..."
"있다면...?"
"내 이름에 맹세코 아캄시티 지하에 최심층부에 파묻어주도록 하지, 아니 그건 너무 심심하니 내 별장이 있는 인마우스 해안에서 평생토록 쓰레기줍기 '알바'를 하게 만들어 주겠어-"
"잠깐! 청소부도 아니고 '알바'?!"
"뭐하면 '아, 50년 전 이 날 내가 그녀를 힘들게 하는 바람에 그 이후로 단 한명의 손님도 없게 되버렸지'라는 것도 좋으려나?"
코조의 협박에 쿠로는 속으로 생각했다.
'뭐가 철혈의 제왕이냐! 이 영감탱이 완전 조폭제왕 아니야!'
"대답은?"
"네..."
"뭐, 그걸로 좋아- 그럼 앞으로 잘 부탁한다네 쿠로군."
오늘 하도우 재벌의 여러가지 숨겨진 면을 보게되고 또한 묶이게 된 다이쥬지 쿠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