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거리도 겨울의 모습을 드러낸 요즈음.
코트가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한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모습을 드러내고, 머플러, 장갑도 활약할 자리가 주어진다.
그만큼 추워졌다는 거지만, 지금의 유키는 그 이상으로 자신에게 박히는 수많은 눈길 쪽이 훨씬 더 차가웠다.
기묘한 눈길이거나, 이물질이라도 보는 듯한 눈이거나, 그중에는 변태라도 보는 것 같은 애도 있었다. 릴리안 여학원의 학생들은 굉장히 정직한 모양이다.
유키는 유미를 원망했다.
그렇다. 유키가 어째서 릴리안 여학원의 정문 근처에 있는가. 그 발단은 누나인 유미였다. 유미는 주번이어서 평소보다 빨리 집을 나섰지만, 타고난 덤벙거림 탓인지 어머니가 만든 도시락을 잊어버렸다. 어쩔 수 없이 뒤늦게 집을 나선 유키가 가져와 주게 된 거지만, 역시나 여자의 화원. 학원축제의 도움으로 여러 번 오긴 했었지만 그건 방과 후였고, 학원축제의 무대극에서는 의상을 몸에 둘렀고, 게다가 여장을 하고 있었다.
압도적인 여학생 사이에 유키의 모습은 확실히 떠 있었다. 이게 코트를 입지 않는 시기였다면 더더욱 떠 있었겠지.
하지만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좋을지 유키는 고민에 잠겨 있었다.
놓고 간 물건을 가져왔다고 해 봤자 릴리안의 부지 안에 들어갈 수 있을 리는 없다. 그렇다고 해서 주위를 어슬렁거리고 있으면 무슨 일인지 의심받겠지. 얼마 안 되는 지인이 운 좋게 올 거라고도 생각할 수 없다.
포기하고 유미는 빵이라도 사 먹어야겠다고 생각한 뒤, 발 뒤축을 돌리려 했을 때. 생각지도 못하게 이름을 불렸다.
뒤돌아 보자 그곳에는.
“평안하십니까, 유키 군. 이런 곳에서 무슨 일이니?”
땋은 머리를 흔들며 큰 눈을 둥글게 뜨고 유키를 보고 있는 미소녀가.
“혹시나 유미 쨩에게, 뭔가 용건 있어?”
그 곁에는 아주 짧은 커트머리를 만지면서 유키를 내려다보고 있는 미소년, 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미소녀가.
“안녕하세요, 레이 씨, 요시노 양.”
가볍게 고개를 숙인다.
고개를 들어 나란히 서 있는 두 사람을 다시금 바라보고, 한숨을 내쉰다.
정말로 그림이 되는 두 사람이다. 미소년과 미소녀, 공주님과 기사, 가까이서 걸어가는 모습은 어울리는 커플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유키는 무심코 눈길을 빼앗겨 버렸지만, 아무 말도 없었던 탓인지 요시노 양이 눈살을 찌푸렸다.
“무슨 일이니?”
“아, 아아, 미안. 맞아 맞아, 유미에게 놓고 간 걸 전해주러 왔는데.”
“아아, 안에 못 들어가서 곤란해하고 있었던 거구나.”
“그래서, 유미 양은 뭘 잊은 거니?”
말을 듣고 유키가 가방 안에서 도시락을 넣어둔 보자기를 꺼내자, 요시노 양과 레이 양은 잠시 눈을 크게 떴었지만 곧 쿡쿡 웃기 시작했다.
“유미 쨩 답네.”
“정말이야, 그래도 잊은 걸 알아채면 어떤 표정을 지을지 약간 보고 싶을지도.”
입가에 손을 대고 함께 웃는 두 사람. 벙어리장갑을 끼고 있는 손가락은 보이지 않지만, 폭신폭신한게 움직이는 모습이 묘하게 귀엽다.
둘을 바라보고 있는 건 큰일이다. 눈에 보약이 되지만, 계속 이러고 있을 수도 없다. 다른 학생들의 눈도 신경 쓰이고.
“오케이. 그럼, 내가 전해 줄게.”
“부탁해요.”
살짝 보자기를 건넨다.
받아드는 요시노 양.
“우왓, 슬슬 안 가면 지각해 버리겠다. 그럼, 잘 부탁해요!”
다시금 고개를 숙이고 하나데라를 향해 가볍게 달리기 시작한다.
달리는 뒷모습을 향해 미소녀 두 사람이 손을 흔들고 있었던 걸 유키는 알아채지 못했다.
그리고 물론, 그게 모든 일의 시작이라는 것 따위는 지금도, 모든 게 끝난 뒤에도 깨달을 수 있을 리 없었다.
요시노가 그걸 깨달은 건 점심시간이었다.
깨달았다기보다는 오히려 깨닫게 되었다고 해야 할까, 정보원은 사진부의 에이스, 츠타코 양이었다.
“내가 남자애에게 직접 만든 도시락을 건넸다고?!”
“쉿, 소리가 너무 커.”
소리가 크다는 말을 들었을 때, 이미 다른 학생들에게 소문이 나 있는 상태가 아니냐고 요시노는 생각했다.
요시노와 츠타코 양 외에 있는 건 유미 양, 마미 양과 평소의 인원들. 겨울이 되고 나니 역시나 추워서 안뜰에 나가서 도시락을 먹지는 않게 되어서, 교실에서 책상을 모아서 먹고 있다. 즉, 다른 학생도 주위에 잔뜩 있다는 이야기지만.
네 사람이 얼굴을 맞대고 소리를 죽인다.
“그 도시락은, 이거 이야기지?”
유미 양이 지금 딱 젓가락을 대고 있는 자기 도시락을 가리킨다.
요시노가 유키 군에게 부탁받아, 그 뒤 요시노의 손으로 유미 양에게 건넨 도시락이다.
“어디서 그런 이야기가 된 걸까?”
언제나 냉정한 마미 양이 이야기에 들러붙었다. 특종의 냄새가 난 걸까, 그게 아니면 단순한 흥미의 연장일까.
츠타코 양의 이야기를 듣자 학생들에게 소문이 난 건 이런 이야기였다.
아침, 교문 앞에서 황장미 봉오리인 요시노가 하나데라 학원의 남학생에게 도시락을 건넸다는 것.
사실은 반대지만, 그 모습을 본 학생이 착각했던 거겠지.
하지만 소문이라는 건 무서운 거여서, 퍼진 건 그 하나뿐만은 아니었다.
그 도시락을 건넨 건 실은 레이 쨩 쪽이었다거나, 건넨 건 요시노였지만 도시락을 만든 건 레이 쨩이라거나, 그 역이라거나.
끝에는 레이 쨩과 요시노가 한 명의 남자를 놓고 싸우고 있다거나.
“소문이란 무섭네.”
조용히 중얼거리자.
“그렇게 침착해도 괜찮니? 요시노 양만이 아니라 레이 님도 말려들었어.”
“그런 말을 해도.”
계란말이를 입에 던져 넣으면서 요시노는 예의 바르지 못하게 턱을 손에 괴었다.
확실히, 학원 축제 때에 유키 군을 둘러싸고 레이 쨩과 한바탕 말썽이 있었던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도 진작에 해결됐다고 할까 잘 수습되었다고 할까. 근본적으로 해결된 건 아닐지도 모르지만, 서로 응어리가 생기는 일은 없었고.
게다가, 오늘 일은 요시노도 레이 쨩도 당사자인 만큼 실태를 알고 있는 거다. 아무리 소문이 흐르든지, 설령 릴리안 학보에 요상한 기사가 실린다고 해도 서로 의심하거나, 꼴사납게 당황할 일도 없겠지.
“괜찮아. 남의 말도 사흘낮밤이라고 하니까.”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요시노 양.”
이렇게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을 정도니까 괜찮다. 그 소동을 넘어, 요시노는 성장한 거다. 지금은 약간 침착하게 생각해 보려고 하고 있다. 유키 군에 대해, 레이 쨩에 대해, 그 외에 여러 가지에 대해.
잘난 듯 말을 하곤 있지만, 요시노도 레이 쨩도 릴리안에서 자라 세상을 모른다. 남자에 대해서도 가족과 학원의 교사 외에는 거의 모르고, 접한 적이 없다. 그러니 우연히 친해질 기회가 있었던 동년배의 남자애에게 끌리게 되는 건 어느 의미 필연이었을지도 모른다.
역으로 정말로 자신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생각하면 의문이 남는 듯한 기분이 든다. 분명 레이 쨩도 마찬가지겠지.
그러니 얼마간 시간을 두고 거리를 두어 냉정하게 생각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마미 양도 이런 거 기사로 쓰지 않잖아?”
“그러게, 그게 사실과는 전혀 다르고, 당사자도 이런 느낌이고. 언니였다면 기뻐서 뛰쳐오늘 것 같지만.”
마미 양도 그다지 흥미가 없는 듯 젓가락을 움직이고 있다.
“왠지 요시노 양도 굉장히 침착해졌네.”
“뭐, 나름대로는.”
식사 중의 이야기는 이걸로 끝나게 되었다. 신문부도 사진부도 구체적으로 움직이지 않는 이상, 다른 학생들의 소문도 금방 잠잠해 질거라고 생각했다.
“――아아, 그러고 보면 그런 소문이 퍼졌던 모양이야.”
책상을 향하고 있던 레이 쨩이 의자를 돌려 뒤를 돌아봤다. 손에 든 샤프를 가볍게 위아래로 흔들며 뭔가를 떠올리려 하는 것처럼 고개를 천장에 향한다.
여기는 시마쿠라네 집 안에 있는 레이 쨩의 방.
귀가해서 저녁밥을 먹고 그 뒤에 요시노는 레이 쨩의 방에 뛰어들어간 거다. 목적은 물론 오늘 점심 동안 츠타코 양에게 들은 소문에 관해 이야기하기 위해서. 학교에 있는 동안은 이야기할 기회를 잡지 못했으니까, 수험 공부를 하고 있을 때에 뛰어들어가 버리는 건 약간 미안하다고 생각하지만, 계속 공부만 하고 있어도 숨이 막힐 테니 휴식 시간이라고 생각하면 괜찮을 거라고 요시노는 자기에게 적당한 해석을 하기로 했다.
“어떤 식의?”
땋은 머리를 풀어 약간 소바쥬 같아진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만지며, 요시노는 사촌 언니의 모습을 살폈다.
공부에 방해된다는 기색도 비치지 않은 채로 레이 쨩은 잠시 생각에 잠긴다.
“음―, 지금, 요시노가 들은 거랑 마찬가지야. 나와 요시노가 한 명의 남자를 사이에 두고 사랑 쟁탈전을 하고 있다고. 황장미 혁명 2탄, 이라나봐.”
자기가 말해놓고 껄껄 웃고 있다.
그걸 보고 요시노도 소리높여 웃었다.
역시, 괜찮다니까. 레이 쨩도 요시노도 소문 같은 거에 휘둘리지 않고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상황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듣고 보면, 소문이라고 할까, 상상력이라는 건 대단하네.”
“정말로.”
얼굴을 마주 보고 다시 함께 웃는다.
“그래도 역시나 이보다 더 이야기가 굉장해 지거나, 소란이 나거나 하면 곤란할지도.”
“그건 괜찮지 않을까?”
“그러려나?”
“나와 레이 쨩이 아무렇지도 않으면 그런 소문은 금방 사라져 버릴 거야. 이런 건 당사자가 뭔가 말하면 말할수록 이상하게 되는 거니까.”
근처에 놓여있던 고양이 인형의 귀를 쥐고, 눈싸움하며 요시노는 대답했다.
“분명, 다음 주에는 소문도 깨끗이 사라져 있을 거라니까.”
“……그러네. 요시노, 강해졌구나.”
“그래?”
레이 쨩이 요시노의 머리에 손을 두고 머리카락을 헝클어트리듯 쓰다듬는다. 어릴 적에는 자주 이랬었는데, 고등학교에 들어간 뒤에는 셀 수 있을 정도밖에 하지 않았다. 요시노는 몸을 움츠리고 눈을 좁혔다.
“잠깐, 레이 쨩, 그만둬―.”
“괜찮잖아, 이 쯤은.”
소문에 대해서는 이걸로 끝이라고 요시노도 레이 쨩도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요시노의 예상은 반쯤 맞았고, 반쯤은 틀렸다.
아니, 도시락 건에 한해서라면 예상은 완벽히 맞았었지만, 도시락에 대해서와는 전혀 다른 사태가 요시노를, 레이 쨩을 휩쓸리게 한 채로 다시금 터무니없는 소동이 되어 갈 거라는 건 상상할 수 없지 않은가.
그건 주가 시작된 뒤의 일이었다. 요시노의 예상대로 도시락의 소문에 대해서는 당사자나 신문부가 소란을 피우지 않았기 때문에 거의 수습되어가고 있었다. 아직 약간은 소곤소곤 소문 이야기를 하는 소리가 귀에 들려 오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긴 하지만, 신경 쓰일 정도는 아니다. 무시할 수 있는 레벨이었기에 요시노 입장에서도 한숨을 돌렸다.
―――라고 생각했던 건 등교하고 교실 자리에 앉고 나서 정말 잠시 뿐이었다.
가방 안에서 교과서를 꺼내 책상 안에 넣고 있자, 왠지 묘하게 가슴이 울렁거렸다. 문득 눈을 교실 앞쪽 문으로 향하자, 아가씨 학교답지 않은 세찬 발소리와 함께 교실에 뛰어들어 와서 급하다는 듯 고개를 좌우로 돌리며 요시노를 확인한 뒤, 쏜살같이 달려들어 오는 친구의 모습이.
“요요요요요시노 양?!”
“무슨 일이야, 유미 양. 그렇게 허둥지둥해선. 어제의 ‘백호대 스페셜’ 보는거 놓쳤니? 괜찮아, 제대로 녹화 해 뒀으니까 빌려 줄게.”
“그, 그런 마니악한 방송 안 봐―.”
욱, 뭐어, 유미 양이 볼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마니악 취급할 건 없잖아. 백호대는 그 비극성 때문에 팬도 많은데. 제법 예전에 방영된 연말 시대극 특집은 훌륭했었다. 본 건 비디오였지만.
“그건 일단 치워두고.”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서 어떤 물체를 들어올려 옆으로 옮기는 동작을 한다. 이런 전형적인 일을 해 주는 유미 양을 좋아한다.
……그래서 결국, 뭐가 일어난 걸까.
“어, 어제, 우리집에 온 거야! 아니, 오셨어!”
“하아?”
정말로 갈피를 못 잡겠다.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자.
“그러니까, 어제 유키를 찾아오신 거야.”
“유키라니……유미 양의 남동생인 유키 군?”
입 다물고 고개를 끄덕이는 유미 양.
“하나데라의 학생회장인?”
“맞아.”
“에에, 그, 그래서?”
“그래서……라니, 요시노 양은 별생각 없는 거니?”
“아니, 그런 소리를 해도 뭘 어떻게 생각해야 좋을지 전혀.”
유미 양의 이야기는 전혀 의미를 알 수 없었다. 아니, 흥분이 너무 넘쳐서 여러 단어가 빠져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분명 그녀 안에서 이야기는 모두 끝나 있어, 일부러 말할 것 까지도 아니라는 의식이 무의식중에 움직여 버리고 있는 거겠지.
뭐어, 여기선 냉정하게 생각해 보자.
유키 군, 이라는 건 생각할 것도 없이 올해 하나데라 학원의 학생회장을 맡고있는 유미 양의 연년생 남동생. 남자애치고는 제법 귀여운 얼굴이라 올해 릴리안 학원축제에서는 ‘토리카에바야’를 주연으로 참여했고, 실은 릴리안 여학생들 사이에서 은근히 인기가 있다. 레이 쨩과의 사이도 지금까지는 없었던 듯한 긴장감을 가져, 자칫 잘못했다간 지금까지 쌓아온 게 모두 무너져 버리는게 아닐까 하는 우려마저 있었다.
결과적으로 마지막에는 전부 잘 수습되어,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이상으로 요시노와 레이 쨩은 서로 잘 이해하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유키 군을 찾아 유미 양의 집에 온 사람이 있다고. 아니, 유미 양은 확실히 “왔다”에서 “오셨다”라는 식으로 일부러 말투를 바꿨다. 그렇다는 건 손윗사람이겠지. 그리고 분명 릴리안 관계자.
음―.
거기까지 생각해 보아도 역시 모르겠다.
하지만 다음에 유미 양이 꺼낸 한 마디가 요시노의 냉정함을 한 번에 180도 뒤엎는다. 그게, 그거야 그렇겠지.
“그러니까 유키를 찾아서 우리 집에 온 거야……황장미님, 아니, 전 황장미님이 되신 토리이 에리코님이!!!”
한순간 정적의 뒤에.
“에에에―――――――――――――――――엣?!”
하는 비명인지 절규인지도 구분할 수 없는 목소리가 요시노를 포함한 교실의 이곳저곳에서 튀어나왔다.
유미 양이 모두에게 들릴 정도로 큰 소리로 말해서, 이미 등교한 반 친구들 모두의 귀에 들어가 버린 게 아닌가. 게다가 전 장미님 분이라고 하면 당연히 지금 2학년은 알고 있고, 팬도 많다. 그건 ‘그’ 에리코 님이라고 해도 마찬가지고.
“―――아, 저질렀다.”
이제야 깨달은 건지, 유미 양은 머리를 긁적이고 있지만.
요시노 자신도 생각지도 못한 유미 양의 한 마디에 머릿속이 그저 새하얗게 되어 아무런 반응도 할 수 없었다.
코트가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한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모습을 드러내고, 머플러, 장갑도 활약할 자리가 주어진다.
그만큼 추워졌다는 거지만, 지금의 유키는 그 이상으로 자신에게 박히는 수많은 눈길 쪽이 훨씬 더 차가웠다.
기묘한 눈길이거나, 이물질이라도 보는 듯한 눈이거나, 그중에는 변태라도 보는 것 같은 애도 있었다. 릴리안 여학원의 학생들은 굉장히 정직한 모양이다.
유키는 유미를 원망했다.
그렇다. 유키가 어째서 릴리안 여학원의 정문 근처에 있는가. 그 발단은 누나인 유미였다. 유미는 주번이어서 평소보다 빨리 집을 나섰지만, 타고난 덤벙거림 탓인지 어머니가 만든 도시락을 잊어버렸다. 어쩔 수 없이 뒤늦게 집을 나선 유키가 가져와 주게 된 거지만, 역시나 여자의 화원. 학원축제의 도움으로 여러 번 오긴 했었지만 그건 방과 후였고, 학원축제의 무대극에서는 의상을 몸에 둘렀고, 게다가 여장을 하고 있었다.
압도적인 여학생 사이에 유키의 모습은 확실히 떠 있었다. 이게 코트를 입지 않는 시기였다면 더더욱 떠 있었겠지.
하지만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좋을지 유키는 고민에 잠겨 있었다.
놓고 간 물건을 가져왔다고 해 봤자 릴리안의 부지 안에 들어갈 수 있을 리는 없다. 그렇다고 해서 주위를 어슬렁거리고 있으면 무슨 일인지 의심받겠지. 얼마 안 되는 지인이 운 좋게 올 거라고도 생각할 수 없다.
포기하고 유미는 빵이라도 사 먹어야겠다고 생각한 뒤, 발 뒤축을 돌리려 했을 때. 생각지도 못하게 이름을 불렸다.
뒤돌아 보자 그곳에는.
“평안하십니까, 유키 군. 이런 곳에서 무슨 일이니?”
땋은 머리를 흔들며 큰 눈을 둥글게 뜨고 유키를 보고 있는 미소녀가.
“혹시나 유미 쨩에게, 뭔가 용건 있어?”
그 곁에는 아주 짧은 커트머리를 만지면서 유키를 내려다보고 있는 미소년, 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미소녀가.
“안녕하세요, 레이 씨, 요시노 양.”
가볍게 고개를 숙인다.
고개를 들어 나란히 서 있는 두 사람을 다시금 바라보고, 한숨을 내쉰다.
정말로 그림이 되는 두 사람이다. 미소년과 미소녀, 공주님과 기사, 가까이서 걸어가는 모습은 어울리는 커플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유키는 무심코 눈길을 빼앗겨 버렸지만, 아무 말도 없었던 탓인지 요시노 양이 눈살을 찌푸렸다.
“무슨 일이니?”
“아, 아아, 미안. 맞아 맞아, 유미에게 놓고 간 걸 전해주러 왔는데.”
“아아, 안에 못 들어가서 곤란해하고 있었던 거구나.”
“그래서, 유미 양은 뭘 잊은 거니?”
말을 듣고 유키가 가방 안에서 도시락을 넣어둔 보자기를 꺼내자, 요시노 양과 레이 양은 잠시 눈을 크게 떴었지만 곧 쿡쿡 웃기 시작했다.
“유미 쨩 답네.”
“정말이야, 그래도 잊은 걸 알아채면 어떤 표정을 지을지 약간 보고 싶을지도.”
입가에 손을 대고 함께 웃는 두 사람. 벙어리장갑을 끼고 있는 손가락은 보이지 않지만, 폭신폭신한게 움직이는 모습이 묘하게 귀엽다.
둘을 바라보고 있는 건 큰일이다. 눈에 보약이 되지만, 계속 이러고 있을 수도 없다. 다른 학생들의 눈도 신경 쓰이고.
“오케이. 그럼, 내가 전해 줄게.”
“부탁해요.”
살짝 보자기를 건넨다.
받아드는 요시노 양.
“우왓, 슬슬 안 가면 지각해 버리겠다. 그럼, 잘 부탁해요!”
다시금 고개를 숙이고 하나데라를 향해 가볍게 달리기 시작한다.
달리는 뒷모습을 향해 미소녀 두 사람이 손을 흔들고 있었던 걸 유키는 알아채지 못했다.
그리고 물론, 그게 모든 일의 시작이라는 것 따위는 지금도, 모든 게 끝난 뒤에도 깨달을 수 있을 리 없었다.
1. 시끄러운 개막
요시노가 그걸 깨달은 건 점심시간이었다.
깨달았다기보다는 오히려 깨닫게 되었다고 해야 할까, 정보원은 사진부의 에이스, 츠타코 양이었다.
“내가 남자애에게 직접 만든 도시락을 건넸다고?!”
“쉿, 소리가 너무 커.”
소리가 크다는 말을 들었을 때, 이미 다른 학생들에게 소문이 나 있는 상태가 아니냐고 요시노는 생각했다.
요시노와 츠타코 양 외에 있는 건 유미 양, 마미 양과 평소의 인원들. 겨울이 되고 나니 역시나 추워서 안뜰에 나가서 도시락을 먹지는 않게 되어서, 교실에서 책상을 모아서 먹고 있다. 즉, 다른 학생도 주위에 잔뜩 있다는 이야기지만.
네 사람이 얼굴을 맞대고 소리를 죽인다.
“그 도시락은, 이거 이야기지?”
유미 양이 지금 딱 젓가락을 대고 있는 자기 도시락을 가리킨다.
요시노가 유키 군에게 부탁받아, 그 뒤 요시노의 손으로 유미 양에게 건넨 도시락이다.
“어디서 그런 이야기가 된 걸까?”
언제나 냉정한 마미 양이 이야기에 들러붙었다. 특종의 냄새가 난 걸까, 그게 아니면 단순한 흥미의 연장일까.
츠타코 양의 이야기를 듣자 학생들에게 소문이 난 건 이런 이야기였다.
아침, 교문 앞에서 황장미 봉오리인 요시노가 하나데라 학원의 남학생에게 도시락을 건넸다는 것.
사실은 반대지만, 그 모습을 본 학생이 착각했던 거겠지.
하지만 소문이라는 건 무서운 거여서, 퍼진 건 그 하나뿐만은 아니었다.
그 도시락을 건넨 건 실은 레이 쨩 쪽이었다거나, 건넨 건 요시노였지만 도시락을 만든 건 레이 쨩이라거나, 그 역이라거나.
끝에는 레이 쨩과 요시노가 한 명의 남자를 놓고 싸우고 있다거나.
“소문이란 무섭네.”
조용히 중얼거리자.
“그렇게 침착해도 괜찮니? 요시노 양만이 아니라 레이 님도 말려들었어.”
“그런 말을 해도.”
계란말이를 입에 던져 넣으면서 요시노는 예의 바르지 못하게 턱을 손에 괴었다.
확실히, 학원 축제 때에 유키 군을 둘러싸고 레이 쨩과 한바탕 말썽이 있었던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도 진작에 해결됐다고 할까 잘 수습되었다고 할까. 근본적으로 해결된 건 아닐지도 모르지만, 서로 응어리가 생기는 일은 없었고.
게다가, 오늘 일은 요시노도 레이 쨩도 당사자인 만큼 실태를 알고 있는 거다. 아무리 소문이 흐르든지, 설령 릴리안 학보에 요상한 기사가 실린다고 해도 서로 의심하거나, 꼴사납게 당황할 일도 없겠지.
“괜찮아. 남의 말도 사흘낮밤이라고 하니까.”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요시노 양.”
이렇게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을 정도니까 괜찮다. 그 소동을 넘어, 요시노는 성장한 거다. 지금은 약간 침착하게 생각해 보려고 하고 있다. 유키 군에 대해, 레이 쨩에 대해, 그 외에 여러 가지에 대해.
잘난 듯 말을 하곤 있지만, 요시노도 레이 쨩도 릴리안에서 자라 세상을 모른다. 남자에 대해서도 가족과 학원의 교사 외에는 거의 모르고, 접한 적이 없다. 그러니 우연히 친해질 기회가 있었던 동년배의 남자애에게 끌리게 되는 건 어느 의미 필연이었을지도 모른다.
역으로 정말로 자신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생각하면 의문이 남는 듯한 기분이 든다. 분명 레이 쨩도 마찬가지겠지.
그러니 얼마간 시간을 두고 거리를 두어 냉정하게 생각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마미 양도 이런 거 기사로 쓰지 않잖아?”
“그러게, 그게 사실과는 전혀 다르고, 당사자도 이런 느낌이고. 언니였다면 기뻐서 뛰쳐오늘 것 같지만.”
마미 양도 그다지 흥미가 없는 듯 젓가락을 움직이고 있다.
“왠지 요시노 양도 굉장히 침착해졌네.”
“뭐, 나름대로는.”
식사 중의 이야기는 이걸로 끝나게 되었다. 신문부도 사진부도 구체적으로 움직이지 않는 이상, 다른 학생들의 소문도 금방 잠잠해 질거라고 생각했다.
“――아아, 그러고 보면 그런 소문이 퍼졌던 모양이야.”
책상을 향하고 있던 레이 쨩이 의자를 돌려 뒤를 돌아봤다. 손에 든 샤프를 가볍게 위아래로 흔들며 뭔가를 떠올리려 하는 것처럼 고개를 천장에 향한다.
여기는 시마쿠라네 집 안에 있는 레이 쨩의 방.
귀가해서 저녁밥을 먹고 그 뒤에 요시노는 레이 쨩의 방에 뛰어들어간 거다. 목적은 물론 오늘 점심 동안 츠타코 양에게 들은 소문에 관해 이야기하기 위해서. 학교에 있는 동안은 이야기할 기회를 잡지 못했으니까, 수험 공부를 하고 있을 때에 뛰어들어가 버리는 건 약간 미안하다고 생각하지만, 계속 공부만 하고 있어도 숨이 막힐 테니 휴식 시간이라고 생각하면 괜찮을 거라고 요시노는 자기에게 적당한 해석을 하기로 했다.
“어떤 식의?”
땋은 머리를 풀어 약간 소바쥬 같아진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만지며, 요시노는 사촌 언니의 모습을 살폈다.
공부에 방해된다는 기색도 비치지 않은 채로 레이 쨩은 잠시 생각에 잠긴다.
“음―, 지금, 요시노가 들은 거랑 마찬가지야. 나와 요시노가 한 명의 남자를 사이에 두고 사랑 쟁탈전을 하고 있다고. 황장미 혁명 2탄, 이라나봐.”
자기가 말해놓고 껄껄 웃고 있다.
그걸 보고 요시노도 소리높여 웃었다.
역시, 괜찮다니까. 레이 쨩도 요시노도 소문 같은 거에 휘둘리지 않고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상황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듣고 보면, 소문이라고 할까, 상상력이라는 건 대단하네.”
“정말로.”
얼굴을 마주 보고 다시 함께 웃는다.
“그래도 역시나 이보다 더 이야기가 굉장해 지거나, 소란이 나거나 하면 곤란할지도.”
“그건 괜찮지 않을까?”
“그러려나?”
“나와 레이 쨩이 아무렇지도 않으면 그런 소문은 금방 사라져 버릴 거야. 이런 건 당사자가 뭔가 말하면 말할수록 이상하게 되는 거니까.”
근처에 놓여있던 고양이 인형의 귀를 쥐고, 눈싸움하며 요시노는 대답했다.
“분명, 다음 주에는 소문도 깨끗이 사라져 있을 거라니까.”
“……그러네. 요시노, 강해졌구나.”
“그래?”
레이 쨩이 요시노의 머리에 손을 두고 머리카락을 헝클어트리듯 쓰다듬는다. 어릴 적에는 자주 이랬었는데, 고등학교에 들어간 뒤에는 셀 수 있을 정도밖에 하지 않았다. 요시노는 몸을 움츠리고 눈을 좁혔다.
“잠깐, 레이 쨩, 그만둬―.”
“괜찮잖아, 이 쯤은.”
소문에 대해서는 이걸로 끝이라고 요시노도 레이 쨩도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요시노의 예상은 반쯤 맞았고, 반쯤은 틀렸다.
아니, 도시락 건에 한해서라면 예상은 완벽히 맞았었지만, 도시락에 대해서와는 전혀 다른 사태가 요시노를, 레이 쨩을 휩쓸리게 한 채로 다시금 터무니없는 소동이 되어 갈 거라는 건 상상할 수 없지 않은가.
그건 주가 시작된 뒤의 일이었다. 요시노의 예상대로 도시락의 소문에 대해서는 당사자나 신문부가 소란을 피우지 않았기 때문에 거의 수습되어가고 있었다. 아직 약간은 소곤소곤 소문 이야기를 하는 소리가 귀에 들려 오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긴 하지만, 신경 쓰일 정도는 아니다. 무시할 수 있는 레벨이었기에 요시노 입장에서도 한숨을 돌렸다.
―――라고 생각했던 건 등교하고 교실 자리에 앉고 나서 정말 잠시 뿐이었다.
가방 안에서 교과서를 꺼내 책상 안에 넣고 있자, 왠지 묘하게 가슴이 울렁거렸다. 문득 눈을 교실 앞쪽 문으로 향하자, 아가씨 학교답지 않은 세찬 발소리와 함께 교실에 뛰어들어 와서 급하다는 듯 고개를 좌우로 돌리며 요시노를 확인한 뒤, 쏜살같이 달려들어 오는 친구의 모습이.
“요요요요요시노 양?!”
“무슨 일이야, 유미 양. 그렇게 허둥지둥해선. 어제의 ‘백호대 스페셜’ 보는거 놓쳤니? 괜찮아, 제대로 녹화 해 뒀으니까 빌려 줄게.”
“그, 그런 마니악한 방송 안 봐―.”
욱, 뭐어, 유미 양이 볼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마니악 취급할 건 없잖아. 백호대는 그 비극성 때문에 팬도 많은데. 제법 예전에 방영된 연말 시대극 특집은 훌륭했었다. 본 건 비디오였지만.
“그건 일단 치워두고.”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서 어떤 물체를 들어올려 옆으로 옮기는 동작을 한다. 이런 전형적인 일을 해 주는 유미 양을 좋아한다.
……그래서 결국, 뭐가 일어난 걸까.
“어, 어제, 우리집에 온 거야! 아니, 오셨어!”
“하아?”
정말로 갈피를 못 잡겠다.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자.
“그러니까, 어제 유키를 찾아오신 거야.”
“유키라니……유미 양의 남동생인 유키 군?”
입 다물고 고개를 끄덕이는 유미 양.
“하나데라의 학생회장인?”
“맞아.”
“에에, 그, 그래서?”
“그래서……라니, 요시노 양은 별생각 없는 거니?”
“아니, 그런 소리를 해도 뭘 어떻게 생각해야 좋을지 전혀.”
유미 양의 이야기는 전혀 의미를 알 수 없었다. 아니, 흥분이 너무 넘쳐서 여러 단어가 빠져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분명 그녀 안에서 이야기는 모두 끝나 있어, 일부러 말할 것 까지도 아니라는 의식이 무의식중에 움직여 버리고 있는 거겠지.
뭐어, 여기선 냉정하게 생각해 보자.
유키 군, 이라는 건 생각할 것도 없이 올해 하나데라 학원의 학생회장을 맡고있는 유미 양의 연년생 남동생. 남자애치고는 제법 귀여운 얼굴이라 올해 릴리안 학원축제에서는 ‘토리카에바야’를 주연으로 참여했고, 실은 릴리안 여학생들 사이에서 은근히 인기가 있다. 레이 쨩과의 사이도 지금까지는 없었던 듯한 긴장감을 가져, 자칫 잘못했다간 지금까지 쌓아온 게 모두 무너져 버리는게 아닐까 하는 우려마저 있었다.
결과적으로 마지막에는 전부 잘 수습되어,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이상으로 요시노와 레이 쨩은 서로 잘 이해하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유키 군을 찾아 유미 양의 집에 온 사람이 있다고. 아니, 유미 양은 확실히 “왔다”에서 “오셨다”라는 식으로 일부러 말투를 바꿨다. 그렇다는 건 손윗사람이겠지. 그리고 분명 릴리안 관계자.
음―.
거기까지 생각해 보아도 역시 모르겠다.
하지만 다음에 유미 양이 꺼낸 한 마디가 요시노의 냉정함을 한 번에 180도 뒤엎는다. 그게, 그거야 그렇겠지.
“그러니까 유키를 찾아서 우리 집에 온 거야……황장미님, 아니, 전 황장미님이 되신 토리이 에리코님이!!!”
한순간 정적의 뒤에.
“에에에―――――――――――――――――엣?!”
하는 비명인지 절규인지도 구분할 수 없는 목소리가 요시노를 포함한 교실의 이곳저곳에서 튀어나왔다.
유미 양이 모두에게 들릴 정도로 큰 소리로 말해서, 이미 등교한 반 친구들 모두의 귀에 들어가 버린 게 아닌가. 게다가 전 장미님 분이라고 하면 당연히 지금 2학년은 알고 있고, 팬도 많다. 그건 ‘그’ 에리코 님이라고 해도 마찬가지고.
“―――아, 저질렀다.”
이제야 깨달은 건지, 유미 양은 머리를 긁적이고 있지만.
요시노 자신도 생각지도 못한 유미 양의 한 마디에 머릿속이 그저 새하얗게 되어 아무런 반응도 할 수 없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