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소문은 사실보다 기묘
남의 말도 석 달이라곤 하지만, 역시나 하루밖에 안 지났는데 소문이 그리 간단히 사라질 일은 없다. 하지만 소문의 당사자인 두 사람이 다 학교에 없는데도 소문이 퍼져가는 건 역시나 장미님이라 해야 할까, 소문 이야기를 즐기는 여고생의 무서움일까.
학교 안 한가득 까진 아니지만 반 안에는 이미 거의 퍼져있고, 거기서 파생해서 다른 반의 학생에게도 나름대로 이야기가 퍼져 있는 모양이었다.
무슨 이야기냐고 하면 물론 어제 유미 양이 꺼낸 이야기다. 게다가 소문이 점점 눈덩이처럼 불어나며 퍼지는 모양이라,
‘토리이 에리코 님이 하나데라의 학생회장인 후쿠자와 유키 씨의 집에 갔다.’
‘에리코 님과 유키 씨는 친밀한 교분을 가지고 있는 모양이다.’
‘전 장미님이 유키 씨의 집에 간 건 부모님에게 인사를 드리기 위해서.’
‘황장미님과 유키 씨는 납폐를 했다.’
‘레이 님과 유키 씨는 사귀고 있다.’
‘요시노 양도 더해서 삼각관계가 되어 있다.’
……등등, 요시노가 직접이든 사람을 통했던 들은 내용을 모으면 이런 차례가 된다. 아무래도,
토리이 에리코 → 전 황장미님 → 황장미님 → (현 황장미님) 레이 →
같은 느낌으로 이야기가 점점 뒤틀리면서 전해지고 있는 모양이다. 거기에 더해 딱 전주에 도시락 이야기가 화제가 된 것도 이야기가 부풀며 퍼져가는데 일조하고 있는 모양이다. 이대로 가면 황장미(전대 포함) 세 사람이 한 사람의 남자를 둘러싼 수렁의 애증극을 벌이고 있다는 이야기가 될지도 모른다.
게다가 귀찮은 일은, 유키 군의 친누나인 유미 양이 소문의 발생원이라는 거다. 에리코 님이 유미 양의 집에 갔다는 건 사실인 모양이니까, 완전히 거짓말로 시작된 이야기가 아니어서 미묘한 설득력이 있는 게 찝찝하다.
“……요시노 양, 미안. 설마 이렇게 될 줄은 몰랐어.”
“뭐, 뭐어, 괜찮아.”
정말은 그리 안 괜찮지만, 눈앞에서 역시나 낙담해 있는 유미 양의 얼굴을 보면 뭔가 말을 할 기력도 사라져 버렸다. 첫 발단이 유미 양이었다고는 해도 의미를 알 수 없는 전개를 보이고 있는 소문에 대해 책임은 없고.
덧붙여서 여기는 장미관의 2층. 도시락을 가지고 점심을 먹으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유미 양 외에도 시마코 양과 노리코 쨩도 와 있다.
“제가 있는 쪽에도 퍼졌었어요. 확실히 ‘레이 님과 결혼해서, 요시노 님을 애인으로 삼으려 했더니 원래 여친이었던 전 황장미님이 다시 사귀자고 밀어닥쳐왔다.’라든가 뭐라든가.”
노리코 쨩이 냉정한 말투로 말했지만, 대체 어떤 식으로 소문이 퍼지면 그런 말도 안 되는 이야기가 되는지 과정을 알고싶을 정도다.
“노리코, ‘전 여친’이라는 건 뭐니?”
“‘전 여자친구’라는 이야기예요. 요는 해어진 여자친구. ‘원 여친’도 괜찮다고 생각해요.”
“‘옛 여친’?”
“그게 말이죠…….”
사랑스럽게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는 시마코 양의 모습에 얼굴이 풀어진 노리코 쨩이 기쁜 듯 해설을 하고
“이야기가 지나치게 엉망진창이 된 탓에 마미 양도 기사감으로 삼기도 지친 모양이고.”
요시노와 레이 쨩은 적어도 자신들에게 관련된 부분에 대해서는 전혀 근거 없는 이야기라는 걸 알고 있다. 그렇게 되면 남은 두 사람은 하나데라의 학생회장에 릴리안 OG. 아무리 릴리안 학보라고 해도 현재 릴리안에 없는 사람을 중심으로 한 기사를 사실확인도 하지 않은 채로 대대적으로 쓸 수는 없겠지.
이대로 떠들지 않고 조용히 있으면 분명히 이 소문도 다음 주쯤에는 수습되어 있을 거로 생각하니, 조금만 더 참으면 된다고 생각하며 지낼 수밖에 없다.
“……그럼 나는 노리코의 ‘현 여친’이라는 거니?”
“그, 그그그그, 그렇게 돼요!”
어쩐지 머리에 꽃이라도 핀 것 같은 이야기가 바로 옆의 백장미님 쪽에서 들려왔다. 노리코 쨩은 대체 시마코 양에게 뭘 가르치려고 하고 있는 건가.
“뭐, 어쨌거나, 앞으로도 한동안 시끄러울지도 모르겠는데…….”
작게 한숨을 내쉬면서 도시락통에서 닭튀김을 꺼내 들었다. 한 입 물어뜯었을 즈음에 삐꺽삐꺽하는 느낌으로 누군가가 계단을 올라오는 소리가 귓가에 들렸다.
기세좋게 문을 열고 모습을 보인 건 예상대로 레이 쨩이었다. 그런 야단스런 소리를 내는 사람은 산백합회 임원 중에 한 명 밖에 없다.
“요시노와 언니가 한 사람의 남성을 둘러싸고 결투를 한다는 거 진짜야?!”
들어가자마자 그런 걸 입 밖으로 꺼내는 모습을 요시노는 진절머리난 표정으로 바라봤다. 어떤 면에서는 에리코 님과 결투라고 하는 건 재밌을 것 같지만, 그 늙은 여우를 상대로 싸운다면 나름대로 준비를 하지 않으면 고전하거나 이쪽이 당하는 건 필연적이다.
“침착해, 레이 쨩. 대체 어떤 식으로 이야기가 전해졌는지는 상상이 가지만, 거기 시원스레 휘둘리지 마.”
“그그그그런 소리를 해도, 요시노~.”
또 얼간이 모드에 들어갔다.
요시노와 에리코 님에게 남자가 더해진 탓으로, 완전히 놀란 모양이다. 아무래도 레이 쨩의 귀에 들어간 소문 속에는 레이 쨩은 링 밖에 있었던 모양이다.
동요하고 있는 레이 쨩을 앉힌다. 노리코 쨩이 우려준 홍차를 마신 뒤에, 간신히 레이 쨩도 진정한 모양이었다.
“자, 유미 양. 제대로 설명 해 줘.”
“으, 응.”
사치코 님을 뺀 네 사람에게 눈길을 받아 약간 위축되면서도 유미 양은 입을 열었다.
“…………가정교사?”
모두가 의문조로 꺼낸 말에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유미 양.
그렇다. 놀랍게도 에리코 님이 유미 양의 집에 방문한 건, 유미 양의 남동생인 유키 군의 가정교사로서라는 모양이다. 그래서 그다지 두 사람이 뭐가 어떻다던가 하는 건 전혀 없는 모양이지만, 흥분한 유미 양이 큰 소리로, 정말 무슨 일이 일어난 것처럼 말을 꺼내서 억측이 억측을 부르고, 지금 같은 상태가 되어 버렸다.
“반성하고 있습니다.”
“뭐어, 유미 양 때문인 것도 아니고.”
“다행이다……그랬구나.”
가슴을 쓸어내리는 레이 쨩.
“저, 에리코 님은 아름다운 분인가요?”
아직 직접 만난 적 없는 노리코 쨩이 질문을 꺼낸다. 뭐어, 미인이라고 하면 미인이겠지만.
노리코 쨩은 거기에 더해서 낮은 목소리로 자그맣게 한마디.
“아름다운 연상의 가정교사와 젊은 남자가 방에서 단 둘이서……”
““그만―――!””
기묘하게도 유미 양과 레이 쨩이 동시에 소리쳤다.
“노리코 쨩, 이상한 만화 같은 거 너무 많이 읽은 거 아니니?”
하고 요시노는 놀리듯 말했지만.
상상했더니 기분이 나빠졌다.
다음 날.
레이 쨩과 나란히 릴리안을 향하던 도중.
“어쨌거나, 의연한 태도로 있어줘.”
“알고 있어.”
“우리가 묵직하게 있으면 소문 같은 건 금방 사라질테니까.”
“이제 괜찮다니까.”
“정말일까~. 어제의 모습을 보면 영 찜찜한데~.”
“어제 그건 어쩔 수 없었잖아. 요시노와 언니가 그런 상황이 되었다고 들었다간…….”
“아니, 들은 순간에 거짓말이라고 알 수 있잖아.”
이런저런 불만을 말하면서 등교했지만, 이럴 수 있는 것도 얼마 안 남았다고 생각하면 조금 쓸쓸하다. 집이 가까우니 언제라도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레이 쨩이 진급할 때마다 놓고 간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하늘을 올려다보면 어두침침하게 잿빛이 깔린 답답한 분위기. 바람도 차가워서, 무심코 몸을 움츠리고 싶어지지만 그래도 요시노는 행복을 느끼고 있다. 심장이 약했을 무렵은 여름의 더위도 겨울의 추위도 몸에 안 좋기에 무리하게 해 주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온몸으로 계절을 받아들일 수 있다.
예전에는 설령 아무리 하늘이 맑더라도 마음속은 어딘가 흐렸었다.
지금은 역이다. 거무침침한 하늘인데도 요시노의 안에서는 언제나 맑고 푸른 하늘이 펼쳐져 있다.
옆을 걷는, 머리 하나치 키가 큰 사촌 언니의 모습을 올려다본다.
추운 듯 흰 숨을 내쉬면서도 무도로 단련된 몸은 추위에 움츠러들거나 하지 않았다. 언제나 등을 곧게 뻗고 상냥한 눈으로 요시노를 배려하며 바라본다.
요시노는 살며시 레이 쨩의 손을 잡았다.
레이 쨩은 약간 놀란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닌 게 아니라, 고등부에 들어가서 손을 잡고 등교하는 일은 거의 없어졌으니 놀라기도 하겠지.
그래도 레이 쨩은 요시노의 마음을 알아준 것처럼 아무 소리도 하지 않고 약간 세게 힘을 넣어 손을 맞쥐어 주었다.
“괜찮아, 요시노. 우리들은.”
생긋하고 상쾌한 아이돌 풍의 미소를 짓는다.
“맞아. 레이 쨩만 정정하게 있으면.”
“뭐야, 그 말은.”
“그렇잖아.”
“후훗.”
서로 자연스럽게 웃음이 흘러나온다.
맞잡은 손에 서로 벙어리장갑을 끼고 있었는데도, 따스함은 제대로 전해져 왔다.
그 날은 오전중에 요시노는 학교를 조퇴해, 병원으로 정기검진을 받으러 갔다. 수술로부터 1년이 지났고, 아무 일도 없이 보내고 있고 동아리 활동으로 체력도 붙어서 문제는 없으리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그래도 검진을 게을리할 순 없다. 아무튼, 자신이 괜찮다고 아무리 말해봐야 부모님이나 레이 쨩이 시끄러운 거다.
전철을 갈아타 언제나 다니던 병원으로 가서, 낯익은 간호사와 수다를 떨고, 평소의 선생님에게 진찰을 받는다. 결과는 물론 어디에도 이상 없음. 선생님도 보증해 주었다.
“하아~…….”
건강하다고는 하지만 검진을 받으면 역시나 나름대로 지친다. 그리고 그 이상으로, 점심을 먹지 않았기에 배가 고파서 기분이 안 좋다.
요시노는 일단 역까지 가서 눈에 들어온 패스트 푸드 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주문한 에그버거와 애플파이와 아이스티를 천천히 뱃속으로 떨어뜨려 가자, 간신히 살아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암.”
물어뜯는다.
입도 작고 얼마 전까지 몸이 약하기도 했어서, 요시노는 먹는 속도가 느렸다.
먹으면서 무심코 거리를 바라본다. 2층의 창가 위치기에 밖을 걷는 사람들의 모습은 잘 보인다. 병원에서 검진을 받는 동안에 시간도 오래 지나, 학교가 끝나 돌아가는 중인지 아니면 놀러 갈 생각인지 교복을 입은 사람들도 눈에 제법 들어온다.
예전에는 상당히 생각하기 어려웠지만, 지금 요시노의 몸이라면 귀가길에 놀러 가는 것도 그리 문제없이 할 수 있다. (애초에, 기본적으로 그런 건 금지지만.)
레이 쨩과 함께 나가도 괜찮다. 일단 집에 돌아가서 옷을 갈아입지 않고, 일부러 교복을 입은 채로 어딘가에 들러서 잠시 놀다 오는 것도 좋은 추억이 되는게 아닐까.
물론 잊으면 안 되는게 유미 양, 시마코 양. 언제나 진지해 보이는 시마코 양을 데려가는 것도 재밌을 것 같다. 동급생끼리 간다면 그 외에는 츠타코 양과 마미 양. 둘 다 기뻐하며 따라올 것 같다.
또, 언젠가 여동생을 만든다면 역시나 여동생과도 그런 별것 아닌 일상을 쌓아올리고 싶다. 누가 여동생이 되는 건지, 떠오르는 모습은 있어도 아직 현실감이 부족한 상황이지만.
그리고…….
친한 듯이 걸어가는 남녀의 모습이 창문 너머에 비친다. 함께 교복을 입고 있는 그녀들은 연인 사이인 걸까. 자신도 언젠가 그런 사람이 생길 때가 오는 걸까. 그때, 자신의 옆을 걷는 건 어떤 사람인 걸까.
동년배의 남성 중 아는 사람이 적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어떻게 해도 떠올라 버리는 건 그 사람의 얼굴.
함께 걷고, 별것 아닌 이야기를 하고, 크레이프도 먹고, 잡화점 점원에게 놀림도 받고. 잘 생각해 보면 레이 쨩과 항상 하고 있는 듯한 일이지만, 상대가 다르면 완전히 다른 세계처럼 느껴진다.
상상의 세계에서 다시금 현실로 돌아와 바깥세상에 눈을 향한다. 또 다른 남녀가 사이좋은 듯 달라붙어 걷고 있는 게 보인다. 그래, 딱 저런 느낌으로…….
“……아니, 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엣?!”
지금 자신이 있는 장소를 잊고서 무심코 요시노는 큰 소리를 지르며 일어났다. 그 기세에, 소란스런 소리를 내며 의자가 쓰러진다.
“―――아, 죄, 죄송합니다.”
가게 안의 다른 사람의 눈이 무슨 일인지 확인하듯 일제히 요시노를 향했다. 고개를 숙이고 의자를 원래대로 돌려놓고 얼버무리듯 앉았지만, 눈은 다시금 창 밖의 거리를 향한다.
창에 거의 달라붙어서 눈을 크게 뜨고 사람들 속에서 확실히 확인했던 그 모습을 쫓는다. 그 모습은 바로 찾을 수 있었다. 잊을 수 있을 리도 없고, 잘못 볼 리도 없다.
같은 곳에서 그 둘이 각자 헤어진다면, 아직 있을 수 있는 일이라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눈에 비치는 광경은 말도 안 된다고 할까,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는 거여서.
“어, 어째서? 어떻게 된 거야?”
나란히 걸을 정도라면 괜찮지만, 들러붙어서 팔짱을 끼고 사이좋게 걷는 모습은 아무리 봐도 단순한 아는 사람의 선을 넘은 걸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절대로 단순한 가정교사와 학생 같은 관계에서는 있을 수 없다.
그렇다. 사이 좋게 팔짱을 끼고 걷고 있는 한쪽은 교복 위에 코트를 입은 유키 군이고. 그 유키 군과 팔짱을 끼고 있는 건 퍼가 붙은 귀여운 하얀 다운 코트를 몸에 두르고, 슬림한 청바지에 잘 빠진 다리를 넣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서도 아직도 변함없이 해어 밴드로 예쁜 이마를 내보이고 있는 토리이 에리코 님 본인이었다.
“―――아아아, 자, 잠깐 기다려.”
멍하니 있을 때가 아니었다.
정신을 차리고 요시노는 막 먹기 시작한 애플 파이를 내버려둔 채로 계단을 뛰어 내려가, 가게 밖으로 뛰쳐나갔다.
고개를 둘러 좌우를 살펴 두 사람을 봤던 곳 주위를 살펴보지만, 이미 두 사람의 모습은 인파에 휩쓸린 건지 아니면 다른 곳으로 이동한 건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에리코 님이 가정교사로서 유키 군을 가르치러 갔다는 건 유미 양에게서 들었다. 하지만 그걸로 둘이 데이트를 하는 사태로 비약할 거라곤 생각지도 못해서.
“환각, 이 아니겠지…….”
중얼거려 보았지만.
미소에 물든 유키 군과 에리코 님의 모습은 확실히 요시노의 마음과 기억에 들러붙어 있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