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부탁이야! 에리코 선생님
그건 가을의 끝자락에 가까운 시기였다.
기온이 겨울을 향해 단숨에 내려가고, 집에서는 히터가 가동을 시작한다. 건조한 공기에 살같이 버석거리고, 앞으로 이보다 더 추워질 것을 생각하면, 결코 추운 걸 좋아한다고 말하지 못하는 처지기에 조금이나마 우울해진다.
그리고 현실에 들러붙어 오는 오빠들 때문에 더더욱 우울해진다.
“아르바이트 같은 소린 듣지도 못했어, 에리 쨩!”
“맞아, 아르바이트 같은 걸 안 해도 바라는게 있다면 얼마든지 사줄텐데.”
“게다가, 가정교사라니! 혹시나 상대가 남자라거나 했다간, 에리 쨩 같은 귀여운 여자애와 단둘이 있다가 흑심이라도 품으면 어떡할 거야?! 아니, 에리 쨩 상대라면 틀림없이 흑심을 품을 거야!”
“지금이라면 안 늦었어, 다시 생각해 봐.”
수도 없이 되풀이된 말에 귀를 막았지만, 아무래도 에리코의 인내도 끝이 났다. 오빠들 쪽을 돌아보고 삼엄한 눈초리로 노려본다.
“저기, 나도 대학생이니까 아르바이트 정도 스스로 정할 수 있어. 그리고 내가 바라는 건 스스로 벌어서 사고 싶어. 또, 가르치는 상대는 아는 여자애니까 이상한 걱정 하지 말아줘.”
단숨에 말을 내뱉고, 아직 뭔가를 말하고 싶어 보이는 오빠 셋을 내비두고 에리코는 현관 문을 힘차게 열어 밖으로 나갔다.
“……추워.”
머플러를 가지러 돌아갈까 했지만, 오빠들의 기척이 현관 문을 건너 전해져 왔기에 포기하고 재킷의 목 언저리를 꾹 손으로 누르며 목을 움츠린다.
토리이 에리코, 18살. 대학생이 되고 첫 겨울을, 그리고 첫 아르바이트를 향해 걸어 가는 거였다.
가정교사 아르바이트가 결정된 건 겨우 1주일 정도 전의 일이다. 가정교사라 하는 아르바이트를 하기로 한 건 특별히 깊은 의미가 있었던 건 아니었지만, 아마도 접객업 같은 건 아버지나 오빠들이 봐주지 않으리라 생각했었으니까. 설령 봐준다고 해도 매일같이 가게에 쳐들어올 것 같아서 싫었던 것도 있다. (이게 꼭 농담이라 할 수 없는 게 더더욱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다.)
그리고 가정교사를 한다고 해도 상대가 남자라면 아까 전처럼 반대당할게 눈에 뻔히 보였기에 릴리안쪽 인맥을 통해서 상대를 찾은 거다.
그 결과, 어떻게 되었나 하면.
“에에, 아, 여기구나.”
버스에 타고 찾아온 곳의 문패를 보자.
―― 후쿠자와 ――
보고 생각지도 못하게 웃음을 흘려 버릴 뻔했지만, 마음을 다잡는다. 귀여운 후배라고는 해도 이번에는 버젓이 일로써 찾아온 거니까.
초인종을 누르자 바로 대답과 함께 문이 열렸다. 모습을 보인 건 호감이 생길 것 같은 여성. 유미 쨩의 어머니겠지.
“어서오세요, 지루한 곳이겠지만, 부디.”
“예, 실례하겠습니다.”
인사를 나누고 약간 잡담을 하면서 안에 들어간다. 집 안에서도 부드러운 분위기가 흘러나오고 있어서, 집에 사는 사람들의 성격을 드러내고 있는 것 같았다.
거실로 안내받은 뒤, 홍차를 내주셔서 잠시 이야기를 한다. 유미 쨩의 어머니도 역시 릴리안의 졸업생이어서, 원·황장미님인 에리코를 굉장히 칭찬해준다.
그리고 잠시 지나서.
“에아앗, 에, 에리코 님?!”
하는 이상한 소리가 귀에 닿았다. 눈길을 옮겨보자 거실의 입구 즈음에서 눈을 크게 뜨고 멍하니 선 귀여운 후배의 모습이 보인다.
“어머, 유미 쨩, 평안하세요.”
“와, 와, 와.”
“어이, 유미 쨩, 조금 침착하렴.”
“하와와.”
아무리 뭐래도 너무 놀라겠지. 혹시나 가정교사 날을 잘못 기억하고 있었다거나. 그럴 수도 있으니만큼, 기가 막히기보다는 무심코 웃어 버릴 것 같다.
그래도 웃기만 하고 있을수도 없다. 에리코는 일어나서 눈을 끔뻑거리고 있는 후배를 향해 입을 연다.
“자, 그럼 슬슬 유미 쨩의 방으로 안내해 주지 않을래?”
“에?”
그러자 유미 쨩은 멍한 표정으로 에리코를 바라봤다.
“왜 그러니? 놀러 온 게 아니니까 제대로 공부 해야지.”
“아, 에, 그건, 알고 있지만…….”
왠지 유미 쨩과 아주머니는 얼굴을 마주보았다. 그리고 아주머니 쪽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입을 열었다.
“저, 에리코 양. 가정교사를 부탁한 건 유미의 동생인 유키 쪽인데.”
“……엣?”
에리코는 유미 쨩에게지지 않을 정도로 얼빠진 소리를 내 버렸다.
“……후쿠자와 유키입니다. 자, 잘 부탁드립니다.”
“토리이 에리코야. 이쪽이야말로, 잘 부탁해.”
빙긋 미소짓는다. 아까 전의 쇼크에서는 이미 빠져나와 진정한 상태다.
거기에 비하면 유키 군은 조금 긴장하고 있는 모양이다. 과외를 받는 건 처음이라고 하니까 그 때문일지도 모른다. 에리코도 처음이긴 하지만, 상대의 긴장을 보고 자신의 긴장은 어디론가 풀려나가 버렸다.
“그럼 처음은 간단한 테스트를 할 거야.”
“엣, 갑자기?!”
“아, 그렇게 신경 쓰지 않아도 괜찮아. 유키 군이 어느 부분이 서투른지를 조금 파악하고자 하는 거니까.”
“예……그래도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았는데…….”
곤란한 표정으로 머리를 감싸안는 유키 군.
음, 역시나 유미 쨩의 남동생. 휙 휙 바뀌는 표정을 보고 있는게 재미있다.
“자, 이거야. 시작해 줘.”
그 모습을 관찰하면서도 테스트는 시작한다.
그건 주요 3과목(영어·국어·수학)에 대해, 극히 기본적인 문제를 나열한 쪽지 시험이다. 기본적인 부분밖에 실려있지 않기에 이 기습 시험의 결과에 따라 어느 과목이 서투른지, 어느 분야가 서투른지를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다고 생각한 거다.
문제 수는 그리 많지 않기에 한 과목 20분, 총 1시간으로 테스트는 끝날 예정. 눈앞에서 진지하게 종이에 달라붙어 있는 유키 군을 보면서 아무렇지도 않은 듯 방 안을 살핀다. 사실 동년배 남자아이의 방에 들어온다는 건 에리코 자신도 처음이었기에 흥미진진했다.
에리코가 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르지만, 방 안은 정갈했다. 책장에 책상에 침대에 옷장. 책장에는 소설에서 만화까지 남자애다운 것들이 늘어서 있고, 늘어선 CD도 이상한 종류의 것들은 아니다. 벽에는 에리코도 알고 있는 아티스트의 달력이 걸려 있다.
“――자, 시간 됐어.”
영어는 끝났고. 이어서 국어 문제지를 건넨다.
손에 든 영어 답안을 채점하면서 다시 한 번 방 안을 둘러본다. 솔직히 말해서, 눈을 끄는 물건이 없다. 적령기의 남자애라면 좀 더 이렇게, 그럴 법한 게 있어야 하지 않나 싶지만, 아무것도 없어서 재미없다. 물론 가지고 있었다고 해도 에리코가 온다는 걸 알면서 눈에 닿을 곳에 둘 리는 없을테니 어딘가에 숨겨두고 있을지도 모른다. 침대 아래같은 데를 살펴보고 싶지만, 역시나 그걸 실행할 수는 없다.
“그럼, 이게 마지막이야.”
수학의 프린트를 건넨다.
진지한 표정을 짓고 문제에 몰두하는 모습을 바라본다.
방 안에는 아직까진 재밌는 건 찾아내지 못했지만, 그래도 어딘가 독특한 풍취나 분위기 같은 걸 느낀다. 적어도 요코나 세이의 방과는 전혀 다른 풍취를 느낄 수 있었다. 오빠들의 방과도 조금 다르다.
“……자, 수고했어.”
시간이 끝나 쪽지 시험은 끝났다. 딱 아주머니가 차와 과자를 옮겨 왔기에 휴식하면서 마지막의 수학을 채점해서, 시험에 대한 감상 등을 듣는다.
“죄송해요, 잠시 화장실에 다녀올게요.”
휴식 중에 유키 군이 자리를 비웠다. 유키 군이 방에서 나간 뒤, 자연스럽게 크게 숨을 내뱉고 있었다. 역시나 나도 모르게 힘이 들어가 있었던 모양이었다. 에리코는 자리에서 일어나 가볍게 기지개를 펴서 몸을 풀었다.
그리고, 그 때.
“……어머?”
책상 위에 놓여있던 물건에 눈이 갔다. 앉아있을 때는 시선이 낮아서 깨닫지 못했었지만, 자리에서 일어났기에 그게 눈에 들어왔다.
책상 위에 놓여 있는 건 교과서와 공책과 참고서. 별다른 점은 아무것도 없지만, 에리코의 눈을 끈 건 교과서들의 아래쪽에 약간 삐져나온 한 장의 종이, 아니 사진. 원래 거기까지 할 생각은 없었지만, 얼핏 보인 사진에서 다시금 눈에 비친 극히 자그만 부분에 빨려 당겨간 거다.
걸어서 책상에 다가가 가까워짐에 따라 확신이 강해진다.
틀림없이 낯익은 사람의 일부분이었다. 옅은 갈색을 띤 땋아 내린 머리카락. 손가락을 뻗어 사진을 슬쩍 당겨보자, 눈이 커다란, 마치 공주님처럼 가련한 용모를 지닌 여자애의 모습이.
“…………헤에.”
무의식중에 입 꼬리가 올라간다.
에리코는 사진을 슬쩍 원래 위치에 돌려놓았다.
그 타이밍에 유키 군이 돌아왔다.
“어라, 무슨 일 있나요?”
“아, 미안해. 가족 외의 남자 방에 들어온 게 처음이어서 조금 보고 있었어.”
“그런, 재밌는 건 없다고 생각하는데요.”
“그러려나?”
“에, 저기, 뭔가 있었나요?”
약간 조바심 나는 표정을 보인다.
“딱히 그런 건 아니었는데. 어머, 혹시나 뭔가 보였다간 곤란할 것 같은 거라도 있는 거니?”
“아, 아뇨, 그런 건…….”
“후훗, 괜찮아. 나, 오빠가 있으니까 야한 책 같은 걸 찾아도 놀라거나 하진 않고, 그런 걸로 유키 군에 대한 내 생각이 바뀌거나 하지도 않으니까.”
장난스레 한눈을 감아 보이자, 예상대로 유키 군은 얼굴을 가볍게 붉히고 허둥거린다.
“노, 놀리지 말아주세요!”
“후후, 미안해. 농담이야. 딱히 방 안을 뒤져보거나 하진 않았으니까. 정말로 잠깐 둘러보고 있었던 것뿐이야. 자, 그럼 결과를 봐 볼까?”
둘 다 자리에 앉아 다시금 결과를 확인하자, 수학이 제일 괜찮았고 영어, 국어의 순이 되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그리 큰 차이가 있는 것도 아니다.
“음, 뭐어, 나쁘지 않네.”
“칭찬이 아니죠?”
“음―. 조금 더 확연히 괜찮은 부분이나 나쁜 부분이 있거나 하면 재밌을텐데.”
“후쿠자와 집안은 뭐든 평균점이어서요.”
아주머니께서 내주신 물양갱을 입에 가득 넣으며 말하는 유키 군을 보고 무심코 웃음이 흐를 뻔했지만, 새치름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잇는다.
“그럼, 오늘은 이 시험에서 틀린 부분을 중심적으로 복습해 볼까.”
약간 미지근해진 차를 마저 마시고, 에리코는 프린트를 펼쳤다.
“틀린 곳을 보면, 유키 군이 서투른 쪽은…….”
담담히 가르쳐 나간다. 유키군도 이야기를 잘 들어 주고, 이해력 역시 나쁘지는 않다. 첫 가정교사 일이기에 에리코도 어느 정도 의욕을 내고 있었지만, 어떻게든 해나갈 수 있을 것 같아서 속마음으로 안심한다.
“……그래서 여기의 접속사가 어디에 걸쳐있나 하면…….”
그런 느낌으로 순조롭게 가르쳐가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
아무래도 약간 전부터 집중력이 바닥난 것처럼 보인다. 어딘지 안절부절 못하고, 눈길이 이상한 곳을 헤메이고 있다.
“유키 군? 듣고 있니?”
“에, 아, 예, 옛. 미안해요, 무슨 이야기였죠?”
“무슨 일이야, 지쳤니?”
“아, 아니요, 괜찮아요.”
그렇게 말하긴 하지만 역시나 상태가 이상하고.
그리고 그때, 에리코는 간신히 감을 잡았다. 머리띠에서 흘러 떨어지는 머리칼을 누르면서 유키 군의 얼굴을 바라본다.
“저기, 유키 군.”
“예?”
“……야해.”
“으에?!”
샤프심이 부러졌다.
“무, 무무무무무, 무슨 일인가요, 갑자기!”
“에, 모르겠니?”
“모, 몰라요.”
“흐응…….”
유키 군은 프린트에 집중하는 것처럼 아래를 바라보고 펜을 움직이고 있다.
에리코는 미소 지으며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공부를 이어 나갔다.
그리고 예정된 두 시간도 얼마 안 남았을 즈음.
“그럼, 마지막으로 간단한 게임을 해보자.”
“게임?”
“이건 유키 군의 판단력과 뇌의 순발력을 확인하기 위한 거야. 내 문제를 듣고 바로 대답해 줘. 준비 됐니?”
“아, 예.”
“일본의 수도는?”
“도쿄.”
“시코쿠 4현은?”
“에, 에―, 가가와, 도쿠시마, 고치, 에히메?”
“1에서 100까지의 숫자를 전부 더하면 얼마?”
“에에, 아―, 5050.”
“원소기호에서 주석, 아연, 망간에 공통되는 알파벳은 뭘까?”
“아……음, 에, 엠?”
“빛의 삼원색이라고 하면 빨강, 파랑, 또 하나는?”
“초, 초록!”
“내 오늘 브라 색은?”
“핑크!”
“……역시 보고 있었구나.”
“앗…….”
유키군은 급하게 입가를 눌렀지만, 이미 늦었다.
아무래도 가르치는 데 열중하느라 몸을 앞으로 숙이고 있었을 때 가슴팍이 유키군의 시야에 들어왔던 모양이다. 실내에는 히터가 너무 강해서 조금 더웠기에 블라우스 버튼을 아까 하나 풀었었다. 아마 가슴께가 느슨한 블라우스였기도 하니, 그 탓이겠지.
“아아아아아니, 저기, 얼핏 눈에 들어온 것뿐이고, 그.”
“흐응―. 그래도 어차피 속옷밖에 안 봤을 리 없겠지? 어디까지 봤으려나? 내 가슴.”
“아, 안 봤어요! 보인 건 골짜기뿐이고!”
“역시나, 봤잖아.”
“아읏……아우, 죄, 죄송해요.”
얼굴을 빨갛게 붉히며 유키 군은 고개를 숙여 버렸다. 뭐어, 유키 군을 꾸짖는 건 너무하겠지. 그런 모습을 보여 버린 건 에리코고, 젊은 남자라면 그런 게 눈에 들어와 버리는 건 어쩔 수 없겠지.
그보다, 보인 건 에리코니까 에리코 쪽이 부끄러울 텐데, 유키 군 쪽이 부끄러워하고 있다 보니 그럴 마음도 안 들어 버린다.
하지만 그만 장난을 치고 싶어 져서.
“……나, 유키 군에게 보여 버린 거구나……부끄러워.”
“아니아니, 전부가 아니에요! 확실히 하얗고 볼륨이 있는……에, 으아아.”
“역시!”
그렇게 탄식하고 양손으로 얼굴을 가린다.
그보다, 정말로 제대로 보고 있었잖아 하고 마음속에 약간 화가 쌓인다.
“……유미 쨩에게 전해야겠어.”
“엣……그, 에에에?!”
일어서서 문을 향한다.
그러자 등 뒤에서 유키 군도 당황해 자리서 일어나는 기색이 느껴졌다.
“기, 기다려 주세요, 에, 에리코 선생님!”
내 팔을 잡아 끌어당긴다.
그 힘이 생각 이상으로 강해서 에리코는 균형을 무너뜨렸다. 그리고 잡아당긴 유키 군도.
“우와앗?!”
“꺅!”
뒤엉키듯 바닥에 쓰러진다.
그리고 다음에 눈을 뜬 순간에는, 유키 군의 얼굴이 눈 앞에 있었다.
위를 향해 쓰러진 에리코의 위에 유키 군이 덮여 있다. 오른손은 급하게 에리코를 감싸려 한 건지 에리코의 뒷머리에 감겨있다. 그리고 왼손 쪽은 에리코의 오른 가슴을 감싸듯 놓여 있어서.
게다가 잡아당겼을 때 끌러진 건지, 블라우스의 세 번째 버튼 즈음까지 가슴이 풀어 헤처져, 오른 어깨가 노출되고 속옷도 반쯤 빠져나와 버린 상황인 곳에 손이 닿아서.
유키 군은 한편, 알고는 있겠지만, 생각이 따라가지 못하는 듯이 완전히 굳어 버렸다.
“차암, 유키 군, 그렇게 갑자기……좀 더, 상냥하게 해줘…….”
미묘하게 고개를 옆으로 돌리며 부끄러워하는 듯 에리코는 꼭 눈을 감았다.
“에, 에, 에리코, 선생님?”
유키 군의 얼굴이 망설이는 빛을 띄우면서도, 천천히 가까워져 온다. 기분 탓인지 가슴에 놓여있는 손에도 약간 힘이 들어오는 것 같아서―――.
―――찰칵―――
“……찰칵?”
의아스런 표정을 지으며 소리가 난 쪽을 향하는 유키 군. 그 눈길이 향한 곳에는, 에리코의 손에 잡혀 있는 휴대전화가.
“……에에…….”
“잠깐, 유키 군. 언제까지 만지고 있을 셈이니?”
“에, 아, 아앗?!”
에리코의 위에서 빠르게 비켜서는 유키 군. 에리코는 천천히 몸을 일으키고, 옷차림을 정돈한다. 그리고 손에 든 휴대전화의 액정 화면에 눈을 향하고, 만족스럽게 미소짓는다.
“자, 잘 찍혀 있어.”
그렇게 말하며 보란 듯 보여준 사진은 물론.
“에, 자, 잠깐, 이건―――?”
“제목은 ‘연상의 미인 가정교사를 억지로 덮쳐서 자기 것으로 하려는 소년. 선생님, 저, 선생님을 정말로――’라는 정도일까?”
내가 지었으면서도 너무 센스가 없는 제목인가 싶었지만, 오빠 방에 숨겨져 있었던 요상쩍은 DVD의 제목에 이런 느낌의 문장이 쓰여 있었던 기억이 있는 거다.
문제의, 휴대폰으로 찍은 사진은 아무리 봐도 유키 군이 에리코를 덮치고 있는 걸로 밖에 안 보인다. 에리코의 옷차림은 흐트러졌고, 가슴 위에 손이 놓여, 에리코는 체념한 듯한 표정으로 눈을 감고 있다. 그리고 유키 군 쪽은 짐승 같은 눈(으로 보인다)으로 에리코를 내려다보고 있다. 200만 화소 급으로 찍은 사진은 선명해서 얼굴도 제대로 보인다.
“저, 저기, 에리코 선생님……?”
“그럼 또 다음번에 보자, 유키 군.”
백을 손에 들고 에리코는 상쾌한 미소를 띄우고 손을 흔들며, 가벼운 발걸음으로 돌아갔다.
방 안에 아직 얼이 빠진 소년을 홀로 남겨두고――.
얼마나 시간이 지난 걸까. 아직 쇼크에서 깨어날 수 없다고 할까, 뭐가 일어난 건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유키를 정신 차리게 한 건 누나였다.
“유키? …………왜 굳어 있니?”
“아, 유, 유미. 에에, 나는.”
“무슨 일이니, 이미 한참 전에 끝났잖아. 에리코 님, 돌아간 지 꽤 되셨어.”
“아, 아아, 그런가.”
거기서 유미는 수상쩍은 표정을 짓고 유키를 추궁해 왔다.
“그런데 유키 너, 에리코 님이랑 뭔가 있었니?”
“뭣, 무무무무무무무, 뭔가라니, 뭐야?!”
“뭘 더듬고 있어. 에리코 님, 굉장히 생기 넘치는 표정으로 나가셨어. 저건 뭔가 흥미가 돋는 재밌는 걸 찾아냈을 때의 표정이야.”
“엣……?”
“에리코 님은 뭐든지 할 수 있는 슈퍼맨 같은 분이지만, 뭐든지 할 수 있다 보니 흥미를 느끼는 게 그리 많지 않다고. 그러니까 재밌는 걸 찾아내면, 거기에 달려들어서 놔주지 않는 거야.”
“그, 그건.”
“아마 유키에게 재밌는 뭔가를 본 게 아닐까. 저기, 어떤 실수를 저지른 거니?”
질문을 들어도 그런 거에 대답할 수 있을 리 없다.
그보다, 유키에게서 재밌는 부분을 찾아냈다기보다는 앞으로 유키를 써서 뭔가 재밌는 걸 하려고 하고 있는 게 아닐까?!
“에, 에에에에――――?!”
유키는 절규했다.
귀갓길에 에리코는 날아가는 듯한 발걸음으로 걷고 있었다.
얼이 빠진 유키 군의 얼굴을 떠올리고, 홀로 소리를 죽이고 웃는다.
좀 불쌍했을지도 모르겠지만, 속옷을 보이고 가슴을 보인데다 덤으로 손대기까지 한 거다. 조금쯤은 괴롭혀도 벌은 받지 않겠지.
그래도 손댄 쪽이 오른쪽 가슴이어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에리코라 해도 적령기의 아가씨. 과연 예상 밖의 사태에 가슴이 두근두근해 버린 거다.
그럼, 다음번은 어떻게 할까.
유키 군은 어떤 표정으로 에리코를 맞아들이려 하게 될까. 생각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기분이 되어간다.
아, 그래도 다음번은 옷차림에는 신경을 써야겠지.
바람이 분다.
몸을 가르는 듯한 차가운 바람일 터인데, 에리코의 마음은 어딘가 타올라 왔다.
―――재밌는 일이 될 것 같네, 하고.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