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작은 소망이었습니다.
바란 것은, 아무 일도 없는 조용한 날들.
다만 온화하고 평화롭게 계속 지나가는 나날.
하지만 운명이라는 이름의 톱니바퀴는 천천히 굴러, 싸움의 시간을 불러옵니다.
누군가를 지키고 싶어.
눈앞에 있는 작은 생명들을 구하고 싶어.
그 마음에, 거짓은 있을 리 없어.
그녀들에게 바란 것은, 단지 곁에 있어주는 것.
이번에야말로, 내가 모두를 지킬테니까.
맹세는 '힘'이라는 이름의 검으로 바뀌고.
검은 사자는, 그 검으로 미래를 엽니다.
마법소녀 리리컬 나노하 拳武… 시작합니다.
2화
"전부터 느꼈지만, 세이는 가끔 떠맡지 않아도 될 일을 떠맡는 경향이 있는 거 같아."
"… 부정을 못한다는 게 슬프네. 근데 넌 오랜만에 만나서 한다는 게 속 긁는 거냐."
"어머? 하지만 흔히 볼 수 없는 장면이잖아. 세이가 드러누워 있는 건."
아리시아 테스타롯사는 키득거리면서 침대에 누워있는 세이를 바라보았다.
페이트하고 똑같은 얼굴인데도, 분위기 자체가 완전히 다르니까 구분하는 건 쉽다.
페이트는 좀더 얌전하고 정숙한 분위기랄까, 반면 이쪽은 굉장히 활달하다. 나노하랑 같이 세워놓으면 볼만할 정도로.
"하지만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정말 놀랐어. 다른 것도 아니고 과로라니."
"… 어쩔 수 없잖아. 휴일이고 뭐고 쉴 틈도 없는데."
장담하건데, 세이가 아는 사람 중 세이보다 일 많이 하는 사람은 유노밖에 없을 것이다. 어쨌거나 이쪽은 신인들 훈련에 미도리야 아르바이트에 비비오 육아까지 겸하고 있으니까. 게다가 휴일은 휴일대로 나노하들에게 이리 끌려가고 저리 끌려가고. 아, 그러고보면 대련하자고 끌고가는 녀석들도 있었다.
세이는 고개를 돌리고 조용히 중얼거렸다.
"… 물론 나노하들의 탓으로 미룰 생각은 없어. 고작 과로따위로 쓰러지다니, 자신의 미숙함에 이가 갈릴 뿐이야."
"그렇게까지 말하지 않아도 될텐데. 세이가 고생하고 있다는 건 다들 알고 있으니까."
"수행 시절에 비하면 고생 축에도 안껴, 이런 건."
이제와서 생각난 건데, 심각한 문제가 하나 생겼다. 신인들을 교육시키느라 세이 자신이 수행할 시간이 없다.
아니, 뭐. 이미 권성이고 권마고 죄다 능가한 경지에 올라버린 이상 수행을 안한다고 새삼 실력이 떨어질 일은 없지만…
'요즘 들어서 자꾸 초조하단 말이지.'
마치 옛날 리오였던 시절처럼.
'강해지지 않으면'이라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있을 때처럼.
무언가를 하고 있지 않으면 자꾸만 불안해져온다.
'이렇게나 강해졌는데…'
칠권성과 삼권마보다도.
자신이 알고 있는 리오는 물론 어쩌면 쟝보다도.
그런데도… 불안함은 커져만 가고 있다.
'인간을 능가하고 짐승을 넘어서라… 였던가.'
일찍이, 론이 자신을 환수권으로 끌어들이기 위해서 했던 말.
하지만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정말로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다.
'나는 강해.'
새삼 겸손같은 걸 떨 생각은 없다. 자신은, 시시오 세이는 강하다. 그것도 엄청나게.
'그리고 나노하들도 강해.'
그녀들에게는 충분히 재능이 있다. 아마 자신이 없었어도, 그녀들은 강해졌겠지.
하물며 자신에게서 격기와 임기까지 익힌 지금에 와서는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도…'
어째서, '앞'이 구름에 가려진 느낌인걸까.
"에잇."
"?!"
세이의 머리를, 쟁반이 강타했다.
세이가 머리를 감싸쥐고 바들바들 떠는 동안, 아리시아는 쟁반을 치우고 말했다.
"심각한 얼굴 금지. 세이는 지금 환자니까, 다른 거 생각하지마."
"… 너… 뭔가 많이 변하지 않았어?"
"괜찮아, 괜찮아~ 환자 씨는 얌전히 누워서 간호나 받아주세요~"
강제로 눕히고서 그 위에 이불을 덮어씌운다.
'…… 뭐 됐어.'
아리시아의 말대로, 일단은 몸을 회복시키고 나서 생각할 일이다.
나노하들에게 어떤 위기가 온다고 해도, 자신이 막아내면 되니까. 그러기 위한 힘이다. 그럴 때 쓰지 않으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설령…
'리오 때와 같은 끝을 맞이하게 된다고 해도.'
[인터루드]
"후우…"
페이트는 숨을 몰아쉬며, 시뮬레이션을 종료했다.
모두를 지키기 위해서. 자신의 의지를 관철하기 위해서.
그리고… 이번에는 자신이 세이를 지켜주기 위해서.
세이가 쓰러지고 나서야 간신히 알게 됐다.
─세이는 신도 악마도 아닌… 자신들과 같은 인간이라고 하는 것을.
계기치고는 참으로 지리멸렬하지만, 그 동안 세이가 그녀들에게 보여준 모습은 말그대로 '초인'이나 다름없었기에 잊고 있었다.
얼마나 한심한 일인가. 그토록 당연한 것을, 이제서야 깨닫다니.
지금까지 페이트가 연습한 것은, 바르디슈의 새로운 폼.
아직까진 불안정하고 미숙하지만, 이것이 제대로 완성되기만 하면─
"열심히 하네, 페이트짱."
"… 나노하."
누구보다도 마음이 통하고 있는 친우의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는 웃음을 띈 나노하가 서 있었다.
─거기까진 예상 내였는데, 그녀의 몸이 먼지 투성이에 여기저기가 타버린 모습이라는 건 예상 외였다.
"나노하, 그건…"
"으응, 조금 조절에 실패해버리는 바람에."
작게 혀를 내밀고 겸연쩍게 웃었다.
페이트는 이 순간 이해했다. 자신과 같은 생각을, 나노하도 하고 있다는 것을.
"페이트짱은 잘 되고 있나보네. 난 꽤 힘든데."
"나도 간신히 형태만 잡아둔 것 뿐이야. 종합적으로 보면 멀어도 한참 멀었어."
"그래도 페이트짱은 방향이라도 잡혔잖아. 역시 제일 먼저 시작해서 그런걸까…"
"… 제일 먼저, 라니?"
나노하보다 빨리 했다면 '제일'이라는 말은 붙일 필요가 없다.
지금 나노하의 말은, 마치 나노하와 페이트만이 아니라는 것 같은─
"그렇다고는 해도 그 숙련도는 놀라울 정도다. 우리도 이대로 뒤지고 있을 수는 없겠군."
"체엣, 나 혼자만 앞서 가려고 했더니 그렇게 내버려두질 않는구만, 다들."
이어서 다가오는 열화의 장과 철퇴의 기사.
물론 그 둘의 모습도 나노하나 페이트에 뒤지지 않을만큼 엉망이다.
"설마… 두 사람도?"
"아니, 셋이다. 주인 하야테는 따로 연습 중이고. 광역 범위가 특기니까 다른 사람들과 같이 연습하긴 힘들다는거지."
하야테도, 인가.
그러고보면 하야테도 세이에게 근접전을 교정받았다. 그녀의 경우, 종합 랭크는 SS지만 실제 전투에 있어서는 굉장히 약하니까. 만약 세이에게서 배운 것이 없었다면 기동 6과에서 가장 약한 것은 그녀일지도 모른다.
물론 나노하나 페이트처럼 과격기나 노임기를 내거나, 자피라나 크로노처럼 본격적으로 '수권'을 가르치진 않았지만, 적어도 보통의 격기를 내는 정도는 할 수 있고 수권 역시 어느 정도 배워둔 상태다. 아마 '기술'의 재규어권이었던가.
덕분에 나노하나 페이트, 시그넘, 비타와 비할 수는 없어도 신인들 상대로 지는 일은 없었다.
"모두들… 노력하고 있구나."
"아아. 저 녀석은… 세이는 바보니까 말야."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쭉 생각해왔다. 세이는 '자기 자신'을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라고.
언제나 언제나 「너희들하곤 관계없어.」「내가 왜 너희들을 도와야 하는건지 모르겠는데.」「내가 왜 그런 성가신 일을 하지 않으면 안되는 거야.」온갖 불평불만을 입에서 쏟아낸다.
하지만.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면, 그녀들을 대신하여 제일 위험한 곳에 서 있다.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면, 그녀들의 앞을 마치 방패처럼 지키고 서 있다.
그렇기 때문에 언제까지고 세이에게 지켜지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증명해보이고 싶었다.
지금의 자신들은 강해졌다고.
어렸을 때하곤 달리, 세이도 지킬 수 있을만큼.
그러니까… 자신들에게도 의지해달라고.
"뭐, 정말로 그렇게 되려면 아직 멀었다는 느낌이지만."
그러니까, 앞으로도 노력하자.
언젠가, 세이가 자신들에게 안심하고 등을 맡길 수 있게 될 때까지.
"이건 이렇겐가… 아니, 저렇게 였나?"
린포스는 드물게 고민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그녀에게, 츠바이가 다가왔다.
"아인(1), 뭐하고 있나요?"
츠바이의 눈에는 지금 린포스가 하고 있는 것은 매우 기괴해보였다.
앞치마를 두르고 한 손에 요리책을 들고 있는 그녀의 모습도 모습이었지만, 그녀의 앞에 있는 가스 렌지에서 데워지고 있는 냄비에 들어있는 물건은 아무리 봐도 음식물로밖엔 안보였다.
"세이에게 갖다줄 요리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 정도니까."
태연하게 대답하는 그녀는, 무표정이다 뿐이지 가정주부나 다름없었다.
─그 누가 믿을 수 있을까.
그녀가, 10년 전 저 무신(武神)을 상대로 싸워 무승부를 낸 사람이라고 하는 것을.
그때의 세이는, 지금과 비교하면 기술 수준이 미숙했다 뿐이지 파워나 스피드는 그다지 큰 차이가 없었다. 물론 지금의 세이야 그녀보다 위에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항상 그녀가 진다는 것은 아니다. 조건이나 환경만 갖추어진다면 세이와 대등 이상으로 싸울 수 있으니까.
세이를 제외하면 현 기동 6과 최강. 그것이 현재 그녀가 가진 타이틀이었다.
"으응… 그러고보니 리인만 그 사람에 대해서 아는 게 별로 없네요… 엄청 강하다는 건 알지만. 아인이 보기엔 어떤 사람인가요?"
"세이말인가. 그렇군…"
그녀는 어딘지 먼 곳을 보는 듯한 얼굴로 생각에 잠겼다. 물론 그 동안 렌지의 불을 끄는 것도 잊지 않았다.
"바보다."
"… 바보?"
예상외의 대답에 츠바이가 눈을 깜빡거렸다.
린포스는 다시 요리를 시작하며, 설명을 덧붙인다.
"입으로는 냉정하게 떠들고 혹평을 내려도, 결국 그 녀석은 타인의 '마음 속에 내리는 비'를 보고서 그냥 지나치지 못해. 그게 아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그렇고. 결국 그 녀석은 그 비를 그치게 하기 위해서 자신을 아낌없이 위험 속에 내던진다. 그걸 바보라고 하지 않으면 뭐라고 부를까."
"하지만, 그건 좋은 사람이라는 뜻 아닌가요? 남을 위해서 거기까지 한다는 건, 굉장히 상냥한 사람이라는 건데."
"그러니까 문제라는 거다. 그 녀석은 남의 비는 그치게 할 줄 알아도, 자신의 마음 속에 내리는 비는 그치게 할 줄 몰라."
10년 전 처음 만났을 때부터, 느끼고 있었다.
세이의 마음 한구석에서는, 언제나 '비'가 내리고 있다는 것을.
어쩌면, 세이의 지나치다 싶을 정도의 '동료애'는 거기에서 나오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니… 그런 건 어찌되었든 상관없다. 중요한 것은, 저런 식으로 가다간 언젠가 세이는 스스로 자멸할지도 모른다는 것. 아니, 높은 확률로 그렇게 될 것이다.
자신을 돌볼 줄 모르고 혹사시키는 인간이, 얼마나 오래 버틸 수 있을지는 아무도 장담하지 못하니까.
그렇기 때문에…
"그의 '비'를 그치게 해주고 싶다. 그가 더이상 자신을 부수지 않았으면 좋겠어. 아니, 세이의 '비'가 그쳐서 그가 행복해질 수 있다면 반드시 내가 아니라도 상관없어. 물론 그것이 나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정도는 하고 있지만."
디바이스로서, 인간이 아닌 자신으로서 가지면 안되는 감정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버릴 생각은 없다. 지금도, 앞으로도.
어쨌거나 린포스는, 그를 좋아하고 있는 지금의 자신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으니까.
─이후 죽을 가지고 들어간 린포스가, 때마침 세이에게 장난치고 있던 아리시아와 만나는 바람에 피바람이 불 뻔 했다는 건 또 다른 이야기.
[인터루드 아웃]
"갑자기 나가자고 하다니, 무슨 바람이 분 걸까나, 세이 군?"
"별로. 비비오한테 '파파'라고 불리는 주제에 아빠다운 일은 하나도 안했잖아. 이 기회에 해볼까 하고."
그렇게 말하며, 세이는 비비오를 들어올려 목마처럼 태웠다.
기뻐하는 비비오를 보면서, 세이 역시 마음이 따뜻해지고 있는 것을 느꼈다.
─자신에게 딸이 있었다면 이런 기분이었을까.
생각해보면 진짜 딸이 있다고 해도 이상할 것 없는 나이였지만.
어쨌거나 네 사람을 교육시키는데 정신이 팔려 이렇게 한가하게 외출하는 것도 오랜만이다.
낮에는 네 사람을 훈련시켰고, 저녁에는 원래 세계로 돌아가 미도리야에서 저녁 아르바이트. 신인들 훈련을 맡기 전까지는 타카마치 가에서 신세를 지고 있었지만, 그 이후부터는 타카마치 가에서 나와 기동 6과의 기숙사에서 지내고 있다.
결국 그렇게 이야기를 했어도, 그는 나노하들의 제의를 받아들인 것이다. 물론 기동 6과에 정식으로 들어가거나 하진 않았지만.
"아무튼, 모처럼 밖으로 나와서 기분은 좋은데…"
─세이는 돌연 얼굴을 굳히고 뒤를 돌아보았다.
"너희들은 왜?"
"나는 비비오의 마마니까 당연히 가야지."
"나도 비비오의 마마에다 나노하가 가니까."
"나는 페이트가 간다길래 따라온거야."
"나는 세이가 걱정되니까 가는 건데."
"신경쓰지 말그라. 산책 중인 거 뿐이니까."
"가는 방향이 같은 건 뿐이다."
"일일히 신경쓰지마, 쫌생이가."
"저희들은 그냥 끌려온건데요…"
위에서부터 나노하, 페이트, 아리시아, 린포스(1), 하야테, 시그넘, 비타, 그리고 신인 네 사람.
여기에 세이와 비비오까지 합치면 대군단이다. 이러니 눈에 안띄게 생겼나. 어째 아까부터 시끄럽다 했지.
"나는 그렇다 치더라도 너희들은 일이 있을텐데. 이렇게 나와있으면 안되잖아."
"괜찮아. 단체 휴가니까."
"… 휴가랍시고 싹 다 비우고 놀러나오면 어쩌자는 거야."
"자피라랑 샤멀이 남아있어. 설마 직접 가르친 자피라를 못믿겠다는 건 아니지?"
오호─
"요컨대 내 의견따윈 아무래도 좋다 이거군."
"정답."
이것들이.
순간적으로 임기를 터트릴뻔했지만, 간신히 억누르는데 성공한다.
어찌되었건 지금의 자신은 비비오를 태우고 있는 몸. 이런데서 폭주했다간 큰일난다.
'참아라, 세이. 리오 시절엔 온갖 욕을 다 퍼붓는 마크 앞에서도 참았잖아. 딸이 보고 있는데 추태를 보일 순 없어.'
그래, 이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아. 아무 짓도 안했는데 "네놈 지금 반역을 일으킬 생각을 하고 있구나. 솔직히 말해!!"라고 지껄이며 일단 패고 보던 마크하고 비교하면 아무 것도 아니니까.
… 관두자. 그때에 대해선 생각만 해도 우울해진다. 아마도 그때가 태어나서 제일 많이 두들겨맞은 때였을 것이다. 툭하면 생트집 잡아서 주먹을 휘둘러댔으니까. 게다가 아프긴 또 무지하게 아팠지.
'아아, 우울한 생각은 그만두자.'
오늘은 비비오를 위해서 나와있는 거니까.
─하지만, 그의 생각은 얼마 안 가 산산히 박살나게 되었다.
[인터루드]
가장 먼저 간 곳은 유원지.
사람 수가 워낙 많았기 때문에 조를 나누려고 했지만, 여기에서 문제가 생겼다.
스바루, 티아나, 에리오, 캐로의 네 사람은 아무 문제없었지만 세이와 비비오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이 문제. 너도나도 세이와 비비오쪽에 몰리려고 하니 문제가 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제비뽑기를 대신한 배틀로얄(마력은 사용하지 않고)이 벌어졌고, 다른 손님들이 전부 대피하는 상황이 일어나고 난 다음에야 비비오가 "통째로 빌린다"라는 해결책을 생각해내 겨우 수습되었다.
다음, 해수욕장.
유원지 때랑 별 차이없었다. 단지 이번엔 마력사용까지 불사했기 때문에 초토화 일보직전까지 갔다는 정도.
참고로 비비오는 신인들 틈에 섞여 위로받으며 무사히 해수욕을 마쳤다. … 세이의 경우엔 저 무시무시한 멤버 틈에 끼여 고생만 잔뜩했지만.
슬슬 배도 고파졌으므로, 일행은 레스토랑에 들어갔다.
─이번에도 기대를 져버리지 않고 대소동이 벌어졌다.
시작은 4인용 식탁에서 린포스와 나노하가 세이의 옆 의자를 동시에 잡아빼면서 벌어졌다. 둘이 실랑이를 벌이는 사이 하야테가 앉으려다 페이트에게 걸렸고 페이트는 시그넘에 의해 제지되고 몰래 앉으려던 비타는 나노하와 린포스에게 잡혔다는 식으로.
이 쟁탈전의 최종 승자는 다름아닌 비비오. 어쨌거나 세이의 무릎 위에 앉았으니까.
동물원. 솔직하게 고백하겠다. 여기에선 아무 일 없을 줄 알았다. 근데 아니었다.
의외로 사람들이 몰리는 바람에 비타와 비비오와 린포스 츠바이가 함께 길을 잃어버렸고, 나머지 사람들은 없어진 세 사람을 찾느라 발품 팔아야 했다. 나중에 알고보니 세 사람은 처음에 일행을 놓쳤던 매점 부근에서 거의 움직이지도 않았다고. 허무한 결말이었다.
마지막으로 간 곳은 영화관. 호러물, 괴수물, 폭력물이 상영 중이었기에 거의 불가항력적으로 괴수물을 택했다. 하지만 비비오가 예상 외로 좋아해주었으므로 다행이었다. 설마 비비오에게 괴수 선호 취향이 있을 거라고는.
그리고…
"세이 군은 제일 구석이네… 옆 자린 누구야?"
"나이지만."
"저기, 시그넘. 나한테 양보해주지 않겠어?"
"… 내가 왜 그래야하지?"
"물론 맨입으로 그래달라는 건 아냐. 조건이 있어."
"호오. 어떤?"
"내가 세이 군랑 5살 때부터 같이 지낸 건 알지?"
"그야… 유명한 이야기니까. 그러고보니 그걸 퍼트린 건 너였던가."
"어떻게든 기정사실로 만들어볼까 하고. 뭐, 실패로 돌아갔지만. 아무튼… 5살 때부터 9살 때까지 세이 군의 사진, 복사해줄게."
"……!"
열화의 장은 '움찔'했다. 그것도 엄청 크게.
"…… 보존 상태는?"
"내가 세이 군의 사진을 상하게 할 리가 없잖아. 최고 랭크로 2장 줄테니까. 어때?"
"…… 5장."
"에, 겨우 자리 한번에 그건 너무하네. 3장으로."
"좋아, 세장. 말한대로 기회는 이번 한번만이 아니니까. 그런데… 확실히 랭크는 높은 거겠지."
"직접 보고 판단해도 좋아. 여기."
"… 이건!"
시스템 : 시그넘은/는 스테이터스 이상 '비혈(鼻血 : 코피)'에 걸렸습니다.
"샤워할 때 사진이랑 집에서 아침 식사 시간 때 얼굴에 스프를 끈적끈적하게 묻힌 사진이지만."
"… 어떻게 찍은 거냐."
"내가 찍었을 리 없잖아. 이건 엄마의 작품. 아빠랑 쿄야 오빠랑 미유키 언니도 협력했다고 들었어. 아무튼, 대답은?"
"음, 이 시그넘. 티끌만한 후회도 없도다. 승낙하지."
… 암거래(?)가 이루어진 것을 제외하면, 영화관에서는 조용히 넘어갔다.
[인터루드 아웃]
악마다. 저 녀석들은, 틀림없이 악마다. 세이는 반쯤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얼굴이 상기되어있고, 남 모르게 호흡이 거칠어져있다. 게다가 열까지도 높다.
이상한 의미로 받아들이지 말길. 감기가 낫자마자 이런 소동에 휘말리는 바람에 몸은 물론 심적인 고생까지 더해져 감기가 다시 도졌기 때문이니까.
'이럴 줄 알았으면 비비오만 데리고 몰래 나오는 건데 괜히 이야기를 해가지고.'
그러나 어쩌랴, 모든 것은 자신의 주의가 얕았기 때문인 것을.
거짓말 안보태고 기숙사까지 돌아오는데 의식이 몇번 날아갔다.
인간, 아무리 강하다 해도 사소한 일로 목숨을 잃기 쉽다더니 지금의 세이가 딱 그 짝이었다.
기숙사의 앞에서, 세이는 일생일대의 기력을 짜내 억지 웃음을 지어보였다.
"비비오는… 내가 데려다 놓을테니까… 너희들은 이만 6과로 돌아가는게─"
"어라, 무슨 소리를 하노. 이제부터 파티할긴데. 모처럼 휴가니까 지쳐서 뻗을 때까지 놀아야 않것나."
하야테가 그렇게 선언하자, 다른 멤버들 사이에서는 환호가 터져나왔다. 생각해보면 전원 참가의 파티는 처음이었으니까.
─그거야 니들 사정이고, 이쪽은 그럴 수 있는 몸 상태가 아니란 말이다.
세이는 이를 빠득빠득 갈았지만 차마 입밖으로 끄집어낼 순 없었다. 감기가 도졌다고 말하는 순간 지난번의 악몽이 재현될 게 뻔하니까.
… 세상 모르고 잠들어있는 비비오가 너무나도 부러워졌다.
"그래서 지금 도망쳐나온거다 이거냐, 한심한 놈."
"… 그딴 식으로 말하지 마, 제자 놈."
자피라는 기가 막히다는 말투로 세이를 바라보며 말했다.
한편 유노는 '할 수 없네'라는 식으로 웃으며 세이의 편을 들어주었다.
"뭐, 그 아이들은 이거다 싶으면 곧장 돌진해버리는 경향이 있으니까. 불편한 몸으로 어울려주긴 조금 그렇겠지."
"역시 너 뿐이야. 제대로된 말을 해주는 건."
도대체 누구일까. 음료수 사이에 술을 섞어놓은 사람은.
덕분에 세이가 나올 당시에는 난장판이었다. 아리시아가 하야테와 힘을 합쳐 시그넘과 비타를 이지메 했다던가 린포스와 페이트가 나노하의 시중을 들고 있었다던가. 츠바이의 경우엔 창밖으로 번지점프를 하려는 걸 세이가 잡아다 끌어놨다.
신인들은 신인들대로 복잡했다. 스바루와 티아나의 공수역전(?)이라던가 그걸 말리려고 끼어든 에리오는 되려 협공(?)당했다던가 캐로는 프리드 데리고 인형 놀이를 하고 있다던가.
… 비비오를 일찌감치 재워놓길 정말 잘했다. 아무튼 그런 난장판이었기에, 세이가 몰래 카멜레온권의 임기를 써서 빠져나오는 동안 알아차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뭐, 지금의 나는 어깨를 두드려주진 못하겠지만… 잘 살아라.]
"그게 스승한테 할 말이냐, 너."
눈앞에있는 크로노가 화상통신이 아니라 진짜였다면 주저않고 때렸을 것이다.
문득, 유노가 사온 음료수 캔의 뚜껑을 따고 마시던 자피라가 입을 열었다.
"생각해보면… 남자 멤버 넷이 다 모인건 몇년만인지 모르겠군."
[확실히. 세이한테 동물주먹을 배울 때 이후론 처음이로군.]
"개별적으로 만난 적은 여러번 있지만 말야."
"그러고보니 크로노. 너… 수행 게을리하고 있는 건 아니겠지."
[설마. 그때 너한테 두들겨 맞은 게 얼마인데 그걸 잊겠나.]
15살짜리 소년이 9살짜리 소년에게 두들겨 맞는다. 보통이라면 생각도 하기 힘든 관계겠지만, 세이와 크로노의 사이에는 그 기묘한 관계가 성립되었다. 어쨌거나 세이는 크로노에게 있어서 '세명의 스승' 중 하나니까.
<확실히 말해두지. 넌 과격기 못내.>
<… 어째서지?>
<나노하나 페이트만큼의 재능이 없으니까. 너도 인정하고 있지 않아? 지금 당장은 네가 우위일지 몰라도 몇년 지나면 추월당하게 될 거라는 정도는.>
<… 분명 그렇다. 그럼 나는 이 이상 강해질 수 없다고 하는건가?>
<사람 말은 끝까지 들어. 과격기나 노임기같이 출력 자체를 몇배로 끌어올리는 것 이외에도, 격기를 단련할 수 있는 법은 있어. 문제는 네가 그걸 배울 수 있느냐 없느냐인데.>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시덥잖은 도발이었지.]
"그리고 넌 그 도발에 멋들어지게 걸려들었고 말야."
두 사람은 거의 동시에 키득거렸다.
"크로노가 배운게… 격기연찬(擊氣硏鑽)이었지? 기… 혹은 마력 자체를 '검'으로 연찬해서 무엇이든지 베어버리는 검으로 만드는 기술."
"음, 그렇지. 이 녀석은 과격기를 내는 재능은 없었어도, 그쪽의 재능은 있었어. 과격기와 노임기를 낼 수 있는 수권사는 나노하와 페이트를 포함하면 9명. 하지만 격기를 연찬해낼 수 있었던 건 크로노를 포함해도 두명 뿐이니까."
"어? 그럼 세이도 못하는거야?"
"할 수는 있지만, 전공이 아니라서 서툴러. 크로노의 연찬과 부딪히면 깨져버릴걸. … 뭐, 기본 격기의 양에서 차이가 엄청나니까 그걸로 밀어붙이면 이길 수 있겠지만, 순수하게 연찬만으로 겨루면 크로노 쪽이 나보다 위야."
유노는 "굉장해~ 대단해~" 연신 감탄했고, 크로노도 어딘지 모르게 자랑스러운 얼굴이었다.
"그러는 너도 딱히 평범하진 않잖아. 격기를 가지고 노는 걸로 따지면 네가 제일 나을걸."
유노에게는 공격형 마법의 재능은 거의 없다시피 했다. 하지만 격기는 그런 그에게 '공격력'을 부여했다.
뭐라고 표현하면 좋을까. 격기를 이용해 여러가지 효과를 내는데에 있어서는 세이조차도 놀랐을 정도다.
격기를 사용하는 '기술'이 좋다고 해야할까. 마치 게키블루 후카미 레츠를 보는 듯한. 덕분에 유노는 어떤 상황─설령 수직의 벽에서의 격투전이라고 해도─ 전력으로 싸울 수 있는 지각력과 움직임을 손에 넣었다.
"그리고 자피라는 자격기를 익혔지. 게다가 천지전변타까지 가져갔고."
설마 천지전변타 익히는 법을 알려준지 일주일만에 배워버릴거라곤 생각도 못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 동안 익힌 사람이라곤 고우밖에 없는 "전설의 격기술"인데 너무 쉽게 배우는거 아냐. 그러고보면 고우도 다 배우는데 일주일밖에 안 걸렸다고 했지. 정말로 늑대 속성 가진 녀석들은 다 이런건가.
"그런데 넌 과격기와 노임기는 사용하면서 어째서 자격기는 사용하지 않는거냐?"
"…… 뭐라고 할까…"
세이는 대답을 골랐다.
확실히 이 녀석들은 이 세계에서 '친구'라고 부를 수 있는 몇안되는 녀석들이다. 그러니까, 오히려 쓸데없는 소리를 해서 걱정끼치고 싶지 않다.
"전에도 말했지만 내 전공은 임수권이지. 그래서 노임기를 사용하는게 가장 익숙해. 과격기는 발동시키는 조건이 정반대라서 짜증난다 뿐이지 원리 자체는 노임기와 같아. 그러니까 노임기와 함께 쓰기 편하지. 하지만… 자격기는 조건은 물론이고 원리까지 틀려. 같이 쓰기 힘들어. 게다가 기술적으로 다루지 못하면 반동이 나한테 오기도 하고. 내 입으로 이런 말하긴 뭐하지만, 기술적으로 기를 다뤄 싸우는 건 내 타입이 아냐."
"그렇지. 확실히 세이는 무식하게 힘이랑 양으로 밀어붙인다는 느낌─ 우왓?!"
"무한서고 관리하느라 바쁘다고 봐줬더니 계속 기어올라? 너 맞을래?"
"으윽, 벌써 때려놓고…"
유노는 뒤통수를 부여잡고 신음을 흘렸다.
… 하지만, 그 이유만은 아니다.
천지전변타와 마찬가지로, 자격기는 친구인 후카미 고우의 모습. 천지전변타를 익히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로, 자격기를 쓰지 않는 것은 친우의 모습을 자기 마음대로 바꿀 수 없다는 의지에서다. 이것만큼은 지금까지도, 그리고 앞으로도 변하지 않는다.
한동안 네 사람은 대화를 나눴고.
미량이라곤 하지만 술이 들어갔고(애초에 알콜에 면역이 없는 몸이기도 하고), 또한 안도감 때문에 무심코 마음이 풀어진 세이는 이렇게 말했다.
"나한테도… 가족이라는 게 있었어."
[… 응? 넌 고아였다고 알고 있지만.]
"그렇지. 고아였지. 내가 말하는 건 그 전의 이야기야."
세이가 말한 그 전이라는 것은, '시시오 세이'이기 이전의… 리오였을 때의 이야기다.
하지만 나머지 세 사람은 '나노하의 집에 입양되기 전'이라고 받아들였다. 사실 보통으로 생각하면 그쪽이 정상이니까.
"내 가족들과 함께… 산에 갔던 적이 있어. 거기서 갑자기 폭풍을 만나 비를 피하기 위해 커다란 나무 아래에 들어갔지."
그때의 일을 누군가에게 이야기하는 것은, 전생에도 후생에도 처음이었다.
그 날.
'리오'의 인생이, 완전히 뒤바뀐 날.
"그 장소에서 만난 '재앙'은, 나에게서 모든 걸 빼앗아갔고… 난 완전히 절망에 빠졌었지."
"… 재앙, 이라는 건?"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자신에게서 모든 것을 빼앗아갔고, 그 이후의 인생마저 조작한
"'금색의 괴물'. 내 가족들을, 내가 보는 앞에서 모조리 태워버린…"
세 사람은 아무 말도 없이 세이의 말을 듣고 있었다.
그들로서도, 지금처럼 세이가 약해보이는 건 처음이었으니까.
지금의 세이는 잘못 건드리면 깨질듯이 약해보였다.
"그날부터 난 '힘'을 원했어. 강해지지 않으면 죽게 될거라고 생각했으니까. 언젠가, 그 '금색의 괴물'이 다시 나타나 그때 죽이지 못한 나를 죽이러 올거라고 생각했어. 그것만으로도 초조함과 공포에 휩싸여서, 보다 강한 힘을 원했지. 하지만 내 갈증은 어떻게 해도 채워지지 않았어. 아무리 강해지고 강해지고 강해져도, 도저히 그 '금색의 괴물'에게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아서… 결국 나는, 힘에 미쳤다. 힘을 얻기 위해서라면 뭐든지 했어. 말그대로, 뭐든지 말야."
마스터 샤프의 밑에서 격수권을 익히고.
그것만으로는 공포를 극복하지 못해, 결국 금기인 임수권에 손을 댔다.
"그런데 말이지."
세이는 처연한 웃음을 지으며 세 사람을 돌아보고는 말을 이었다.
"얼마 전부터… 그때처럼 불안해졌어. 강해지지 않으면 돌아버릴 것처럼 불안해. 지금 이 순간에도."
"세이… 그건…"
"이상하지? 이렇게나 즐겁고 평화롭고 행복한데… 정작 나는 강해지고 싶어 미치겠어. 아니, 강해지지 않으면 안될 것 같아. 지금보다 훨씬 강해지지 않으면, 지금 손에 쥐고 있는 이 행복이 모조리 박살나버릴 것 같아. 이유도 모르겠고 짐작가는 곳도 없어.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지금의 나나 나노하들에게 이길 수 있는 녀석따위가 없다는 것도 알아. 그런데도… 불안해서, 미쳐버릴 것 같아."
쥐고 있던 음료수캔을 뭉개진다. 하지만 그런 것에 신경쓸 여유는 없었다.
"계속 지금처럼… 즐거우면 좋겠는데 말야…"
나노하들이 있고.
크로노와 유노들이 있고.
신인 녀석들이 있고.
지금처럼 시끄럽지만 행복한 생활이, 계속 되면 좋겠는데.
한참동안의 침묵 후.
가장 먼저 입을 연 사람은 크로노였다.
[…… 그래서. 속은 좀 풀렸나?]
"… 뭐?"
[속에 있는 걸 쏟아내고 나니까 좀 나아졌냐고 물었다.]
"…… 그렇지 않은 것도 아니지만."
[그럼 됐잖나. 너는 말이다, 옛날부터 우리들에겐 아무것도 털어놓지 않았으니까, 상당히 섭섭했다고.]
"……"
[하지만, 지금의 너는 우리들에게 그런 이야기를 해주었다. 평소라면 절대로 털어놓지 않았을 이야기를.]
그것만으로도, 세 사람은 기뻤다.
세이가 자신들을 의지해준다는 것이.
뒤이어서 자피라와 유노가 말했다.
"내 이 주먹을 완성시켜준 건 다름아닌 너였지. 그러니까… 우리들도 믿어봐라. 그리고 주인 하야테와 친구들도 믿어다오. 네가 느끼고 있는 불안이 어떤건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의 우리들이라면 충분히 부숴버릴 수 있다고 본다."
"나노하들도 그렇게 말할거라고 생각해. 이제 더이상… 세이 혼자서 싸우지 않아도 돼. 우리들 모두, 너에게 지금까지 지켜진 덕분에 강해질 수 있었으니까. 그러니까… 믿어줘. 네가 지금까지 지켜봐온 우리들을."
셋을 번갈아가며 바라보던 세이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 다 안다는 듯이 지껄이지마라, 너희들."
그것은, 세이가 부릴 수 있는 최대한의 허세였다.
"어라, 하지만 다 알고 있는걸."
하지만, 세 사람이 웃으면서 동시에 내뱉은 말에 의해, 그 허세는 산산히 깨졌다.
"["친우잖아. 우리들."]"
"…… 바보 놈들이."
그렇게밖에는 돌려줄 수 없었다.
이 세 사람에게는 어디까지 감사해야할지도 모를만큼 감사하고 있다.
─이 녀석들의 말은 틀렸다.
나노하들과 이 녀석들에게 구해지고 있는 건, 오히려 세이 쪽이니까.
"하아아아앗!!"
돌격형의 스바루는 유일한 라이벌을 떠올리게 할만큼 저돌적이다.
한번 돌격을 시작하면 물러섬이 없고, 또한 의지도 강하다. 그 점에 있어서는 쟝과 같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단지─
"봐주는 게 슬플만큼 파워도 내구력도 떨어진다는 걸 빼면."
"우와아아아아앗?!"
스바루의 주먹을 검지와 중지 두개로 막았다가, '이마 튕겨치기'의 요령으로 쳐냈다. 그랬더니 속절없이 날려간다.
"포메이션 L!"
티아나의 외침에 따라, 순식간에 진형이 변한다. 날려갔던 스바루조차 윙 로드를 불러내 제대로 착지하고 합류한다.
"호오."
이건 또 무슨 속셈이지?
세이가 의아해하는 동안, 에리오가 격기를 양발에 모은 후 그대로 가속했다. 마력만을 이용했을 때와는 비교도 안될만큼 빠른 속도. 확실히 후방 지원인 캐로를 제외하고는 전부 격기를 일으키는 방법을 가르친 것이 통했던 모양이다. 비록 과격기도 격기연찬도 무리인 보통의 격기라고는 해도, 단시간에 이만큼이나 익숙해지다니.
에리오가 양쪽의 건물 벽을 이리저리 박차고 돌아다니며 세이의 주위를 휩쓸었다. '훈련용' 스펙이기 때문에 시력까지 떨어뜨리고 있는 세이로서는 움직임을 포착하기 어려울 정도로 빠른 속도. 적어도 속도만이라면 페이트의 일반 폼과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위에서부터 스트라다를 세우고 떨어져내린다.
그것을, 고개를 살짝 옆으로 돌려 한손으로 스트라다의 창끝을 잡아내며 막았다.
─동시에, 사방에서 날아든 마력의 탄환들을 왼손만으로 쳐낸다.
'이건 티아나인가.'
"으랴아아아아아앗!!"
생각을 하는 사이, 스바루가 정면에서 돌진해온다.
할수 없이 잡고 있던 에리오를 던져버린 후 두 손으로 스바루의 두 주먹을 받아냈다.
그 순간 바닥에서 올라온 연홍색의 '빛의 끈'들이 세이의 몸을 묶는다.
"!"
"걸렸어요, 세이씨! 지금까지 공격이 전부 이걸 위한 거였으니까!"
주위를 둘러보자, 어느 틈엔가 네 사람의 사이에 포위된 상태였다.
스바루도 티아나도 에리오도 캐로도.
전부, 자신을 향해 쓸 수 있는 최대의 주문을 겨냥하고 있었다.
"이겼다! 처음으로 세이 씨한테 이겼─"
"일격필도, 디바인 버스터!!"
"왁, 스바루?!"
세이의 뒤쪽에 있던 스바루는 반사적으로 디바인 버스터를 발사했다.
그에 호응하듯이 본 모습으로 돌아가있던 백룡 프리드리히 역시 강력한 불길을 뿜어냈고.
"세이 씨! 큰일났다, 늦었─"
─에리오의 말을 비웃듯이, 세이는 캐로의 바인드를 끊어버리고 몸을 돌린다.
"임수 토드권 임기 「체유포」, 격기술 「파파참」!!"
오른손이 펼쳐지자, 바닥에서 솟아올라온 액체의 '방패'가 디바인 버스터를 막아낸다.
일찍이 게키렌쟈 3인의 필살기인 「순순탄」, 「전전탄」, 「포포탄」을 한꺼번에 막아낸 기술.
스바루의 디바인 버스터는 순순탄과 전전탄보다 파괴력이 위지만, 그래봤자 포포탄보다 아래. 체유포를 뚫을 수 있을 리 없다.
왼손이 수도(手刀)의 형태로 위에서 아래로 내려쳐진다.
격수 샤크권의 검술로서, 바다마저 갈라버리는 위력을 지닌 기술. 비록 손으로 펼쳐서 다소 위력이 떨어졌다곤 하지만, 아직 어린 용의 불길조차 가르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순식간에 두개의 공격을 무효로 돌려버린 세이는 전투태세를 풀고, 평상으로 돌아왔다.
"굉장해요, 세이 씨! 사각에서 들어간 공격을 그렇게 완벽하게─"
"스바루 이 바보가!! 진짜로 쏘진 말라고 했잖아!!"
"아야, 아야야야야야야! 아파, 진짜로 아파, 티아!"
티아가 스바루의 볼을 좌악 늘리고 캐로가 프리드를 혼내는 동안, 세이는 네 사람에게 말했다.
"에리오와 티아나가 적의 주의를 끌고, 스바루가 움직임을 정지시키면 캐로가 발을 묶고, 결정타는 넷이서 함께."
"저… 나빴나요? 괜찮다고 생각하는데…"
에리오가 조마조마한 얼굴로 물었다.
… 그러고보니 이 녀석들을 가르치면서 칭찬같은 걸 해준 기억은 한번도 없었다.
임수전도 아니니까, 그렇게 빡빡하게 할 필요는 없겠지.
"아니, 1:4의 전법으로는 더할 나위없었다. 여기저기 미숙한 곳이 있긴 하지만… 전체적으로 손볼 곳은 없더군."
"어, 그럼─"
"아아, 나한테 배우는 걸론 합격이야."
"해냈다~! 세이 씨한테 인정받았으니까 문제없다구!"
기뻐서 방방 뛰는 네 사람이지만, 세이는 특별히 놀랍지도, 아주 기쁘지도 않았다.
어쨌거나 이 녀석들은 재능이 있고, 노력까지 하고 있으니까 결실을 본 것 뿐으로, 오히려 이 정도가 안됐다고 하면 놀랐을 것이다.
"전법 자체는 나쁠 거 없지만, 너희들은 기초가 너무 딸려. 내일부터는 기초 단련에 집중하는 대신 강도는 높인다."
"네!!"
[인터루드]
그렇게 하루하루 시간은 흘러간다.
나노하들과 시끄럽게 떠들고.
비비오에게 아빠 노릇을 하고.
가끔 친구들과 이야기도 하고.
새로 생긴 제자들을 가르치기도 하면서.
리오 시절과는 비교도 안될만큼, 즐겁고 행복한 시간.
가능하면 이것이 계속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실제로도 그것은 계속 될 수 있었다.
─어느 한 사건만 일어나지 않았다면.
[인터루드 아웃]
차원범죄자 닥터 제일 스칼리에티와 그 휘하 전투기인 넘버즈가 움직이기 시작하고, 미드칠더 전체가 빠르게 움직였다.
자료 화면으로 전투기인들의 전투장면을 본 세이는 전혀 걱정하지 않았다. 고작 저 정도 스펙이라면 포워드 네 사람조차도 1:1로 승부를 겨룰 수 있을 정도니까.
그래서, 안심해버렸다.
그렇게 해서 일이 제대로 풀린 적따위 없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역시 기동 6과의 본부가 불태워지고 있는 광경이었다.
이 기습은 미드칠더 지상 본부의 습격과 함께 이루어진 터라 이쪽에서의 대응은 상당히 늦을 수밖에 없었다.
솔직히 말해, 질 거라고는 생각되지 않으니까.
아무리 리미터가 걸려있다고 해도, 본부에는 볼켄리터 중 자피라와 샤멀의 두 사람이 남아있고, 그 이외의 대원들도 많이 남아있었다.
게다가 자피라의 경우, 그가 익히고 있는 수권은 리미터에 해당사항이 없으니까 리미터가 있든 없든 전력으로 싸울 수 있다.
고작 전투기인 몇이 달라붙는다고 해서, 그가 패배할 일은 없다. 실제로 전투기인과의 전력 차는 그 이상이었으니까.
하지만 그 모든 것이 뒤집어졌다.
─딱 하나의 변수. 「금색의 괴물」에 의해서.
"격기술… 「천지전변타」!!"
수권의 창시자, 마스터 브루사 이가 남기고.
그 제자인 미쉘 펭이 후카미 고우에게 가르쳐주고.
고우는 그 기술을 적이 된 친우, 리오에게 사용했고.
그 리오의 후생인 세이가 자피라에게 익히는 법을 알려준 전설의 격기술.
몸에 있는 모든 격기를 주먹에 응축시키고, 전신전령을 다해 내지른다.
단지 그 뿐이지만, 그 주먹에 담긴 신념은 폭포를 역류시키고 산을 부수며 천지를 뒤바꾼다.
그것을 정면으로 막아낼 수 있는 자가 과연 이 세상에 존재할까.
─그것을 막아내는 론이 규격 외의 괴물일 뿐이다.
"바보같은…!!"
주인과 동료들을 지키겠다는 신념이 담긴 권.
그런 권을, 이 금색의 '용'은 막아냈다. 그것도 한 손으로.
지금의 론은, 본래 모습이 아니라 '환수권사'로서의 모습을 하고 있다.
이것 역시 '놀이'의 일환으로 만든 것에 지나지 않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천재지변에 가까운 재앙을 일으킬 수 있는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건 안 변한다.
론은 자피라의 손을 붙잡은 채로, 그대로 위로 던져올린다.
한순간에 공중에 뜬 자피라는, 이윽고 '회오리'에 휘말려 하늘 끝까지 올라가게 된다.
그렇다. 론은 지금 아무런 전조도 기색도 없이, 순식간에 초대형의 토네이도라고 하는, 천재지변을 일으켰다.
자피라의 경악과 절규는 바람 소리에 막혀 들리지도 않게 되었다.
"자피라!"
샤멀의 클라르빈트가 빛을 발하고, 거기서 나온 빛줄기가 회오리에 휩쓸린 자피라를 구출해낸다.
그래도 회오리의 여력이 남아있어, 크레이터가 생길만큼 강하게 땅에 쳐박혔지만.
"크윽…!"
"괜찮은거야?!"
"아아… 숨은 붙어있다… 그보다…"
"응… 도대체 어떻게 된 힘인지…"
자피라를 일으키면서도, 샤멀은 론을 바라보고 있었다.
주문같은 걸 외우진 않았다.
특별한 수인을 맺은 것도 아니다.
아니… 힘같은 걸 끌어모으는 시간 자체가 없었다.
그런데도, 날씨를 뒤바꿨다.
생각해보면 저 자는 나타났을 때부터 저랬다.
아무런 예고도 없이 낙뢰의 비를 때리고, 폭풍을 일으켜 지금은 발목까지 물에 잠기게 만들었다.
어느 의미로, 인간이 아니라고 할 수 있는 볼켄리터의 두 사람은 본능에 가깝게 느꼈다.
─저것은 절대로 인간이 아니다, 라고 하는 것을.
자신들과는 다른 의미로.
[미안하게 됐습니다. 수권이라는 거 자체에 안좋은 추억이 좀 있어서 그만 진심으로 해버리고 말았지 뭡니까.]
론은 한 손을 가슴에 갖다대고 정중하게 허리를 숙인다.
하지만 샤멀과 자피라에게는 이쪽을 놀리고 있는 듯한 느낌밖엔 들지 않았다.
아니, 그보다… 이 녀석, 수권을 알고 있어?!
[실례지만, 질문 한가지 하지요. 이 세계에는 분명 '수권'이라는 것 자체가 존재하지 않을 터… 그렇다면 당신은 누구에게서 수권을 익힌 겁니까?]
"대답할 것 같으냐, 괴물 놈이."
[그럴 거라고 생각했어요. 말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어차피 당신들은 여기서 죽게 될테니까, 곧 만나게 되겠죠.]
론은 두 손을 높이 들어올렸다.
이번에도 역시.
딱히 힘 같은 것을 모으는 기미도 없이 한순간에 거대한 전격의 구체를 만들어낸다.
매드 사이언티스트인 제일 스칼리에티조차도 외경을 품게 만든 절대적인 힘.
[수권의 족속들은 서로의 위험을 느끼면 달려와서 돕는다고 하더군요. 당신에게 수권을 가르쳐준 자 역시 분명히 수권사일 터. 당신들이 죽었다는 걸 알면 금방 달려올겁니다. 그럼… 사라지도록 하세요.]
전격의 구체가, 자피라와 샤멀 두 사람을 향해 떨어진다.
자피라가 바닥을 때리자, 무수한 강철의 기둥들이 올라와 구체를 막는다.
─그 강철의 기둥이, 열기로 녹아내린다.
[별볼일 없는 제한에 묶여있는 주제에 그걸 막으려고 하다니, 오만에도 정도가 있습니다.]
"크윽…!!"
모든 강철들이 사라지고.
번개는, 두 사람에게 떨어진다.
"격기술, 「격격포」!!"
태양빛의 구체가, 전격구를 옆에서 때린다.
덕분에 방향이 틀어진 전격의 구는, 전혀 엉뚱한 곳으로 떨어지고… 희생자를 만들지 못하고 사그라졌다.
[어라, 생각보다 빨리 왔군요. 근처에 있었나 봅니다?]
공격이 막혔는데도 불구하고 론에게는 별 동요가 없다.
─누구도 눈치채지 못하게, 희열에 젖어있었으니까 동요따윌 할 이유가 없다.
한편, 격격포로 론의 공격을 튕겨낸 세이는 자피라와 샤멀에게 다가갔다.
"잘 버텼어. 솔직히 늦었을거라고 생각했는데."
부상은 크지만,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
그것을 확인한 세이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유노에게서 초대장을 받고 미드칠더로 온 직후, 느껴질 리 없는 힘이 느껴졌다.
환기(幻氣). 세이─ 아니, 리오에게 있어서는 무엇보다도 떠올리기 싫은 저주스러운 힘.
처음에는 착각이라고 생각했다. 이 세계에 환기를 쓰는 자가 있을 리 없으니까.
하지만 그것이 착각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환기가 기동 6과 본부 방향을 뒤덮어버린 다음.
최악의 경우 샤멀과 자피라가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정말로 오랜만에 전력 질주로 달려, 겨우 시간에 맞춘 것이다.
"덕분에 살았군… 고맙다."
"관둬. 새삼스레 인사하지 말라구, 너희들하고 내 사이에."
세이에게 있어서, 자피라와 샤멀도 '동료'들이었다.
그 의미를 알고 있는 자피라는 작게 고개를 끄덕인다.
"조심해라. 저 녀석은…"
"알고 있어. 보나마나 너희들 앞에서 자기 힘을 과시하는 것처럼 날씨를 마구 바꿔댔겠지? 하긴. 그것도 저 녀석의 진짜 힘은 아니지만."
"… 세이 군, 알고 있어? 저걸?"
"아아… 잊을 수 있을 리가 없지."
세이는 자리에서 일어나, 론을 노려보며 대답했다.
"놈의 이름은 '론'. 인간이 아닌 「환수」다. 지금 저 모습은 위장이고."
[이건 놀라운걸요. 저와 일면식도 없는 인간이 저에 대해 알고 있다니.]
론 역시, 한 걸음 앞으로 나온다.
[이 세계의 인간이 저를 알고 있을리가 없는데… 당신이 쓰는 수권도 그렇고. 조금이지만 당신에 대해 흥미가 생겼습니다. 저에 대한 것을 어떻게 알고 있는지, 그 수권은 누구에게서 배운건지 남김없이 털어놓게 해드리지요.]
"… 아아, 그런가. 지금은 얼굴도 목소리도 말투도 완전히 다르니까, 못알아보는게 당연하겠군."
[… 무슨 말을?]
세이는 도발적인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왼손을 살짝 들어올린다.
"이러면 알아보겠지? 영원의 시간을 살아가는 네놈이 기억같은 걸 잃어버릴 리도 없고 말야."
[그걸 어떻게─]
"임수 라이온권 임기 「임기개장」."
세이의 뒤로.
황금색의 갈기와, 칠흑의 몸을 가진 사자가 모습을 드러낸다.
이어서 울리는, 론과 다른 의미로 폭풍을 불러일으킬 듯한 강맹한 포효.
한 차례 포효가 끝난 후, 사자의 몸은 산산히 분해되었고… 이윽고 '갑옷'으로 변해 세이의 몸을 감싼다.
우선은 다리와 무릎. 다음은 허벅지와 허리. 가슴과 복부. 팔과 어깨. 마지막으로 머리.
그 자리에 남은 것은… 문자 그대로 「검은 사자의 권사」.
이번에는, 론이 경악에 빠질 차례다.
[그 모습은…!!]
"용맹함은, 사자와 같이. 강인함 또한, 사자와 같이. 사악한 용을 매장시킬 자, 나의 이름은 「흑사자」 리오."
지금은 시시오 세이라는 이름을 쓰고 있지만.
[리오라고…?! 그런 바보같은 일이…!! 어떻게, 어떻게 당신이 이 세계에?!]
"진부한 말이지만, 환생이란 놈인 것 같더군."
무슨 이야기인지 알 리가 없는 자피라와 샤멀이 그것에 따라가지 못해 당황하고 있는 모양이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좋다.
"아아, 그런가. 내가 기억을 가진 채로 다시 태어난 건, 머지않아 봉인에서 풀려날 네놈을 다시 한번 매장시켜버리기 위함이었던가. 과연, 신이란 작자도 아무런 이유없이 나를 전생시켜준 건 아니라는 거군."
흑사자의 모습을 하면서, 말투까지 예전의 리오처럼 변했다.
그리고 그 흑사자의 몸에서, '분노'로 가득한 흑보라빛의 구름이 증기처럼 솟아오른다.
지금까지 세이가 사용해온 노임기와는 깊이가 다르다. 오랜 세월, 분노와 증오의 근원이었던 자가 살아서 눈앞에 나타났으니까. 지금의 노임기는 물리력까지 갖추고, 폭풍처럼 주변을 밀어버렸으니까. 방어막을 치고 있던 자피라와 샤멀은 방어막 채로 뒤로 밀려났다.
그리고… 그 압도적인 분노는, 분명 론을 향하고 있다.
"신이라고 하는 것이 정말로 존재한다면, 난 지금 그 신에게 진정으로 감사하고 있다… 설마 네놈을 다시 만나 이 주먹으로 부술 수 있게 되다니… 이제야말로, 네놈에게 '모든 것'을 되갚아주겠다!"
하지만.
그 분노를 앞에 두고도.
론은 희열과 광기에 차 있었다.
[뭔가… 대단한 착각을 하고 있군요, 당신은. 도대체 어디까지 어리석은 인간인건지.]
론의 몸에서, 금색의 힘… 환기가 뿜어져나온다.
[신에게 감사해야할 건 당신이 아니라 접니다. 2천만년… 당신같은 인간들은 상상도 못할만큼 긴 세월을, 그 좁고 어두운 통곡환 속에 갇혀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보내야 했던 제 분노와 증오를,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스스로도 미쳐버리지 않은 것이 자랑스러울만큼 두려운 어둠 속에 저를 가둬놓은 수권사에게 복수할 수 있다는 기쁨과 환희를, 이해할 수 있나요?]
론에게서 흘러나온 환기는, 점차 '무거워'져 주변을 깔아내린다.
─앞서 주변을 덮고 있던 노임기마저도.
[이번에 매장되는 건 내가 아니라 당신이야.]
"파파… 괜찮겠지?"
"괜찮아. 비비오도 파파가 얼마나 강한지 알지? 그러니까 걱정하지마."
기지 내부에서, 샤리는 비비오를 달래고 있었다.
비비오에게 있어서 지금 이 상황은 확실히 '공포'였다.
확실히 지금 이 상황은 위기라고 할만 했지만, 그녀를 비롯한 6과 관계자들은 '믿고' 있었다.
자료 화면을 통해 본, 몇번 안되는 세이의 전투.
그의 힘은, 이미 인간이 아니라 '신'이라고 해도 될 정도라는 것을, 그녀는 확실하게 알고 있다.
그리고… 지금 그 무신(武神)이, 자신들의 위기를 알고 이곳으로 달려와주었다.
그러니까, 지금 이 사태도 반드시─
"…… 응?"
고개를 들어올리자.
전원이 나가있던 스크린에 불이 들어오고.
바깥의 광경이, 스크린에 비춰졌다.
"이건─"
나노하도, 페이트도, 하야테도, 린포스도, 아리시아도, 볼켄리터도.
크로노도 유노도 린디도 프레시아도.
기동 6과 소속의 인간이거나, 그들과 조금이라도 관련이 있는 사람들은 절대로 믿을 수 없는 광경이 스크린에 비쳐지고 있다.
아니, 그들만이 아니다. 그와 몇번 부딪혀서 크게 혼난 넘버즈조차도, 지금의 스크린에 나온 화면을 믿을 수 없었다.
"임수 라이온권 임기 「강용호파」, 격기술 「포포탄」."
오른손에는 금색과 흑색의 기가.
왼손에는 은색과 적색의 기가 모인다.
"수권 「강용호포탄」!!"
두 마리의 맹수가 동시에 입을 벌리고 달려든다.
흑색의 사자와, 적색의 호랑이. '리오'의 힘과, '쟝'의 힘. 이거라면 분명─
[소용없다고 몇번을 말해야 알아들을겁니까.]
─두 맹수는, 론의 환기가 둘러진 손칼 한번에 파괴되어 사라졌다.
그것과 동시에 하늘에서 떨어진 번개가 세이에게 직격한다.
"……!!"
임기개장의 위인데도 어마어마한 충격. 저절로 한쪽 무릎이 꿇려버린다.
[어차피 수권은 짐승 흉내. 궁극의 짐승인 「환수」인 제 상대가 될 수 있을리가 없지요.]
"… 그러는 네놈은 그 짐승흉내에 한번 무릎을 꿇지 않았나…"
바닥에 손을 짚고 간신히 몸을 일으킨다.
어떻게든 전투를 속행하는 것은 가능할 것 같다.
[…… 어라? 눈치채지 못한 겁니까?]
론에게서 나온 것은 의아함으로 가득한 말이었다.
[옛날의 리오였다면 저라고 해도 일말의 패배 가능성 정도는 있었겠습니다만… 지금의 당신이 상대라면 도저히 질 것 같지가 않군요.]
"…… 뭐, 라고?"
[리오가 더 강했다고 말하고 싶은겁니다, 저는.]
한순간.
세이의 몸이 완전히 굳었다.
그 다음에 터져나온 것은 거센 반발.
"무슨 바보같은 소리를…!! 지금의 나는 격수권과 임수권의 모든 기술을 익혔다! 과격기까지 낼 수 있게 됐고! 임수권밖에 쓰지 못했던 리오 시절보다 약할리가─"
[기술의 문제가 아닙니다.]
론은 손가락을 양옆으로 까딱거리며 말했다.
[리오였던 시절의 당신은 인간이라곤 믿기지 않을 분노와 증오를 품고 있었습니다. 분노만으로 사물을 부술 수 있다고하면, 틀림없이 세상마저도 부술 수 있을만큼. 약한 자신에 대한 분노, 강해지는데 방해가 되는 감정들에 대한 분노, 힘을 원하는데도 힘을 주지 않는 스승에 대한 분노, 자신보다 강한 자에 대한 분노, 그리고 세상 자체를 향한 분노. 그 분노가, 당신에게 불사신같은 파워를 선사했던 겁니다.]
그리고 론의 손가락은 세이를 향했다.
[하지만 지금의 당신은 어떨까요.]
"……!"
[친구 놀이에 빠져 분노도 증오도 사그라들었어,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부의 감정 때문에 과격기의 위력도 제대로 나오지 않아. 격수권과 임수권의 모든 기술을 익혔다고 해도, 그 기본인 격기와 임기의 위력이 줄어든 이상 당연히 약해질 수밖에요. 지금의 당신은 단순한 한명의 수권사, 「흑사자」 리오라고 자칭할 자격조차 없는 파편에 불과합니다.]
세이는 일어섰다. 단지 일어섰을 뿐, 그 이상의 행동은 하지 못했다.
"약해졌… 다고? 내가?"
[실망하지 말아주세요. 지금 이 자리에서 정말로 실망해야하는 건 저니까. 어느 정도 열화됐을 거라고 짐작은 했습니다만 설마 이 정도까지 일 줄은.]
론은 고개를 돌려 세이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이래서야 그때 당신의 가족들을 죽인 보람이 없지 않습니까.]
나노하들로서는 처음 듣는 이야기.
하지만, 크로노와 유노, 자피라만은 눈치챌 수 있었다.
─저 녀석이 바로, 세이가 말하던 '금색의 괴물'이라고 하는 것을.
[당신은 수천년만에 한번 나온다고 하는 선택받은 재능의 소유자. 그토록 찾아해맸던 자가 가족들과 함께 비를 피하기 위해 제 숲속에 들어왔을 땐 정말로 기뻐했지요.]
론은 세이의 전생─ 리오를 처음 만났을 때를 떠올린다.
[하지만… 모처럼 가지고 태어난 재능도 가족의 보호 아래에만 있으면 빛을 발하기 힘든 법. 그래서…]
세이 역시, 리오였던 시절 론을 처음 만났을 때를 떠올렸다.
[불태워드린 거랍니다. 당신의 눈앞에서, 깨끗이.]
웃었다.
태연하게, 타인의 가족을 몰살시켰다고 말하면서.
그 모습은 이 광경을 보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전율을 안겨준다.
그러다가 갑자기 웃음을 그치고 말을 이었다.
[하지만 인간이라는 건 정말로 손이 많이 가는 생물이더군요. 기껏 강하게 만들어놓을 생각으로 다른 인간들 틈에 던져놓으면 금새 쓸데없는 감정에 물들어버리니까요. 멀리 갈 필요도 없이, 지금의 당신이 증명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 내가, 동료들 때문에, 약해졌다고 말하는거냐…!!"
[까놓고 말해 그렇습니다만.]
────아, 안된다.
이것만큼은 도저히 용서가 안된다.
아니, 원래부터 용서할 생각따윈 눈꼽만큼도 없긴 했지만.
"…… 지금 그 말… 후회하게 해주지."
[호오, 지금의 당신이 무슨 수로─]
세이의 손가락이, 그 자신의 명치를 찌른다.
─그 순간 임기가 폭발적으로 터져나왔다.
[이건?!]
예전의 리오와 비교해도 손색없을, 아니… 그 이상일지도 모를 임기.
지금의 세이가 이런 힘을 낼 수 있는 방법은 하나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임기… 「무한열파」."
보라색의 임기가, 칠흑색의 노임기로 변한다.
함께 해온 나노하들이나 크로노들조차도 지금껏 본 적 없는 거대한 기.
[무한열파… 자신의 피와 세포를 태워 임기로 바꾸는 임수권 유일의 금기…!]
"임수 라이온권 임기 「강용충타」!!"
세이의 양쪽 장갑에 붙어있는 사자의 얼굴이 빛을 발한다.
그 직후 순식간에 거리를 좁히고, 론의 복부를 향해 장타(掌打).
별다른 자세조차 취하지 않고 있던 론은 무방비로 강용충타를 받게 된다.
[카아아아아아아아악?!]
이 단 한번의 공격으로, 론의 내장은 모조리 폭발을 일으켰다.
인간이라면, 아니 제대로된 '생물'이라면 틀림없이 즉사할 공격.
론의 몸이 뒤로 좌악하고 밀려나, 돌출되어있던 바위에 부딪히고 난 후에야 간신히 멈추었다.
"임수 라이온권 임기…"
자세를 낮추고, 두 손을 한데 모은다.
그 손바닥 사이로, 무한열파로 상승된 임기가 전부 모였다.
일찍히 게키렌쟈들의 필살기술이었던 "격격포"를 모델로 만들어진 기술.
그리고… 게키레드, 칸도 쟝의 초격격포와 함께 론을 파괴한 적이 있는 기술.
"「강용호탄」!!"
흑자색의 구체는 론에게로 날아가고, 날아가는 동안 점점 커져 론에게 부딪힐 당시에는 인간 하나쯤 가볍게 집어삼킬 수 있을 정도의 크기가 되었다.
론과 부딪힌 강용호탄은 대폭발을 일으켰고… 론의 몸은 산산히 파괴됐다.
"후우… 후우… 후욱─"
그것을 확인하자마자 세이는 한쪽 무릎을 꿇었다.
─죽을 뻔 했다. 론이 아니라 세이 자신이.
무한열파란 자신의 생명을 힘으로 바꾸는 임수전의 비전. 조금만 더 오래 끌었다면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세이!! 괜찮──"
"오지마!!"
달려오려는 자피라를 향해 손을 들어올려 그를 제지한다.
잠시 숨을 돌린 후, 무릎을 펴고 일어난다.
"아직… 안 끝났어…"
[그 말대로입니다.]
자피라와 샤멀은 거의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목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그곳에는, 조금 전에 파괴되었음이 분명한 '금색의 괴물'이 상처 하나 없는 몸으로 서 있다.
[도대체 어디까지 어리석은 인간인건지… 분명히 예전에 말했을텐데요. 저는 불로불사의 몸. 아무리 목숨을 걸고 공격해봤자 죽는 건 당신 혼자일 뿐입니다.]
"불사신… 이라는 거냐…!"
있을 수 없다. 그런, 세상의 법칙을 무시하는 존재따윈.
[인간의 기준으로 판단하지 말아주시겠습니까. 전 당신네들이 세상에 태어나기도 전부터 존재해왔으니까.]
론은 두 팔을 벌리고 마치 자랑하듯이 말했다.
아니, 실제로 자랑하고 있었다.
[지금 눈에 보이는 저의 육체를 파괴할 수는 있어도, 저를 죽이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어찌되었건 지금처럼 곧바로 부활해버리니까 말입니다. 자, 이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인간 여러분.]
"어디서 저런 괴물이 나온거야…!!"
하야테는 벽을 주먹으로 쳤다.
스크린으로 보이는 론과 세이의 싸움.
분명 세이가 론을 파괴한 것처럼 보였지만, 그 직후에 론은 아무런 일도 없던 것처럼 '부활'했다.
차라리 환술이거나 무슨 종류의 마법이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저것은, 말그대로 속임수도 뭣도 없는 진짜 '부활'.
게다가 육체가 완전히 박살났는데도 부활하는데 걸리는 딜레이조차 없다.
저런 부조리한 존재가, 이 세상에 존재할 수도 있었던가.
'이대로는 모두 죽게 돼…! 세이 군도 샤멀도 자피라도 6과에 남아있는 모두가!!'
어째서 저런 괴물이 스칼리에티와 손을 잡았는지는 몰라도 어떻게든 해야한다.
세이가 버티고 있는 동안에 이곳을 정리하고 스칼리에티의 목적을 막아야했다.
하지만… 어떻게?
하야테와 함께 지상 본부에서 발목이 잡혀있는 린포스나 나노하, 페이트도 상태가 나쁜 건 마찬가지였다.
마법을 쓸 수 없는 지금, 자신들이 저기로 갈 방법은 없으니까.
스바루를 비롯한 포워드들은 저곳에 가봤자 큰 도움이 되진 못한다. 기댈 곳이라곤 시그넘과 비타 정도지만, 지금은 그녀들도 각각의 적에게 붙들려있다.
"어떻게 해야 좋은 거냐구…!!"
──스크린에서, 세이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 과연. 이대로는 이길 수 없겠군.>
<아까부터 그렇게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래봤자 수권은 짐승들의 정점에 군림한 저를 흉내낸 것에 불과한 것… 어차피 모조품이 아닙니까. 모조품이 진짜를 이겨낼 재간은 없지요.>
<닥쳐라, 괴물. 싸움은 아직 안 끝났으니까.>
세이는 강하게, 그리고 단호하게 말했다.
아직도, 무언가 방법이 있다고 하는 건가.
<아직도 뭔가 해볼 것이 남아있다는 겁니까? 제가 불사라는 건 다름아닌 당신이 증명해주었지 않습니까. 전생에 리오였던 당신이 목숨을 버려가며 사용한 대개포조차도 제 육체를 단 한순간 파괴했을 뿐인데.>
<분명히 그렇지. 하지만 네놈은 인간을… 그리고 나를 너무 얕보고 있다.>
<얕볼만 하니까 얕보는 거지요. 아니면 당신이 더이상 얕보지 못하게 해주실겁니까?>
세이는 웃었다.
하지만… 세이를 알고 있는 모든 사람들은.
깨져버린 투구 사이로 보이는 그 웃음이, 무서웠다.
<나는 더이상… 네놈에게만은 아무것도 잃어버리지 않아… 나에게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법'을 가르쳐준 지금의 친구들도, 이 장소도… 무슨 짓을 해서든 반드시 지켜보이겠다!!>
<허어… 그러면 무슨 수로 지킬 것인지 구경이나 해볼까요.>
세이의 몸에서 임기의 갑옷이 사라졌다.
남은 것은, 피투성이가 된 세이 뿐.
그러나… 론은 그런 그에게서 묘한 압박감을 느꼈다.
<말했지… '무슨 짓을 해서든'이라고… 네놈을 박살내고 내 친구들을 지킬 수만 있다면… 뭐라도 되주겠다… 그것이, 「파괴신」이라고 해도 말야!!>
세이의 몸에서 기가 터져나온다.
과격기의 태양빛도.
노임기의 어둠도 아닌.
─론과 같은, 환기(幻氣)의 금빛으로.
[환기라고?! 그럴리가, 그런 일이 가능할 리가 없는데?!]
"말했을텐데. 넌 나를 너무 얕봤다고… 편법이라곤 해도 한번 도달했던 길, 두번이라고 못할 리 없다."
세이는 오른손을 들어올리고, 선언했다.
"「환기개장」."
가장 먼저 터져나온 것은, 노임기.
노임기는 임기개장의 갑옷으로 변해 세이의 몸을 뒤덮었다.
하지만 그 직후, 금색의 환기가 노임기를 덮어버리고.
무수한 빛의 깃털과 함께 갑옷은 '금색'으로 물들어, 그 형태마저 변해버린다.
마치 론과도 같은─ 또 하나의 '금색'으로.
세이는, 다시 한번 자신의 이름을 말한다.
두번 다시 말하지 않게 되길 바랬던, 저주받은 이름을.
[강한 것도 용맹함도 세상에 견줄 수 없이 무쌍한 자… 내 이름은 「환수왕」 시시오 세이.]
요 몇일 동안, 머리가 깨질만큼 고민한 결과가 이것.
이 방법밖에 없었다.
보다 강해지기 위해서는.
영영 쓰지 않게 되길 바랬던 힘.
하지만 아무리 저주스러운 힘이라고 해도, 힘을 사용해야 할 때가 왔을 때 사용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 앞에서, 옛날의 트라우마따윈 아무것도 아니다.
[후… 후후후… 하하…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론은 웃었다.
분노에 휩싸인 환수왕을 앞에 두고도.
[아아, 정말이지… 이제와서 인간임을 포기하고 저를 즐겁게 해주다니… 생각이 변했습니다. 다시 한번 당신을 파괴신으로 만들어드리지요.]
[……]
[멜로 드라마를 찍는 건 여기까지입니다. 환수왕이 된 지금의 당신은 인간을 초월한 존재… 더이상 인간들의 편따윌 들 이유가 없어요.]
[……]
[자, 함께 가시죠. 인간은 맛볼 수 없는… 최강을 향한 저 편으로 말입니─]
─그 대가로 돌아온 것은, 눈에 보이지도 않을만큼 빠르며, 론조차 일격에 수미터를 날려갔을만큼 강력한 힘이 담긴 철권.
[?!]
이것저것할 것없이 곧바로 안면을 맞은 론은 날려가 반쯤 무너져내린 벽을 완전히 부숴버리고, 그 파편 속에 파묻혔다.
[한낱 짐승도 자신의 둥지를 건드리면 살의를 품는 법…]
어느새 휘두른 오른주먹을 앞으로 들어올리며, 잔해를 해치고 일어나는 론에게 말한다.
[나의 권은 왕의 권, 환수 그리폰권. '왕의 둥지'를 건드린 대가가 어떤건지, 그 몸에 새겨주지.]
강하다.
그 말 이외에, 뭐라고 표현해야할까.
원래의 세이나 린포스도 강하긴 했지만… 지금의 세이는 격이 달랐다.
─어쨌거나 좀 전엔 그렇게나 밀렸던 론이, 이번엔 반대로 밀리고 있으니까.
[환기 「파천공」!!]
세이─ 환수왕의 두 주먹이 그림자조차 남기지 않고 론을 향해 뻗어졌다.
일격이나 이격 정도로 끝날 리 없다. 십격, 백격─ 숫자를 셀 수도 없을만큼의 주먹이 날아간다.
그것을, 론은 막지도 피하지도 못하고 두들겨맞는다.
수백발의 펀치가 꽂히고, 마지막으로 지금까지 나온 연타를 합친 것만큼의 파괴력을 담은 일격이 론의 가슴에 꽂혀, 론은 다시 수백미터를 날려갔다.
그럼에도.
[재미있어… 좀더 저를 즐겁게 해주시지요!]
론은 부서질 기미도 보이지 않고 다시 일어섰다.
환수왕은 다시 돌격하여, 론을 향해 주먹을 뻗었다.
[환기 「류선격」!!]
이번에 나온 것은 론의 기술.
론의 주변을, 강렬한 회오리가 둘러싼다.
물론 보통의 회오리라면 F5급이라고 해도 손가락 하나 까딱않고 일으킬 수 있는 론이지만 지금 이 회오리는 바람이 아니라 '환기'로 이루어진 회오리.
닿는 모든 것을 부식시키고 베어버리는 용권. 처음 기동 6과의 방어시설을 한번에 날려버린 것도 이 기술이었다.
─비록 주먹질 한번에 돌파당해버리긴 했지만.
[굉장해…! 이게 환수왕의 힘…!]
똑같은 '환수권사'로서 직접 맞서보니 알겠다. 눈앞의 이 자는, 틀림없는 '최강의 수권사'. 공격, 방어, 스피드. 모든 면에서 완벽.
그러나 무엇보다도 경이로운 것은, 한계가 존재하지 않는 육체와 힘.
어떤 기술로 공격하거나 어떤 기술로 방어한다고 해도, 오로지 힘만으로 돌파해버린다.
절대적인 힘앞에선 어떤 기술도 의미를 잃게되니까.
[말했을 터다… 나의 권은 왕의 권. 적이 누가 됐든, 내 권이 무적이란 사실은 변하지 않아!!]
환수왕의 전신에서부터 흘러나온 환기는 금빛의 기둥이 되어 하늘을 꿰뚫는다.
지금 그의 힘은, 확실히 론을 웃돌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그 환기를, 오른주먹 하나에 집중시킨다.
[환기 「수라파쇄격」!!]
주먹이 론에게 닿자, 모아두었던 환기가 한꺼번에 폭발을 일으킨다.
─그 빛이 사라졌을 때.
론의 몸은, 금색의 입자로 변해 흩어졌다.
─물론 다음 순간에 멀쩡히 나타나긴 했지만.
[과연… 같은 환기라서 그런지 몸이 더 잘 부서지는 느낌입니다만.]
론은 과장되게 두 팔을 벌리고 말했다.
[인정하지요. 당신은 강합니다. 인간, 악을 품으면 귀신이 된다고도 합니다만 당신은 그것조차 넘어서버린 모양이군요. 하지만… 이제 슬슬 위험수위 아닙니까?]
무슨 말을 하는거지?
론의 말이 가진 의미를 알아차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환수왕 본인을 제외하고는.
[환수왕의 힘은 파괴신의 힘. 사용하면 할수록 이성이 날아가지요. 지금 이 순간에도 버티기 힘들텐데요.]
확실히 그랬다.
몸 안에서 힘이 차오르며… 마치 자신과 힘이 동일한 존재인 것 같은 느낌.
전율스러울 정도의 쾌감이, 투지가 몸을 채우고 있다.
자신이 천천히 '힘을 휘두른다'는 행위의 쾌락에 먹혀가고 있다는 것을 자각하고 있는데도, 멈출 수가 없다.
폭주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멈춰지지가 않는다.
한번 겪었던 일이라고 해도… 이 '환수왕'이라는 존재를 너무 얕본 것 같다.
여기서, 론은 다시 한번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다시 한번 말하도록 하지요. 이미 인간이 아닌 당신이 인간과의 인연따위에 얽매일 이유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당신이 진정한 환수왕으로 각성한다면, 시공에 존재하는 모든 세계를 파멸로 이끌 힘마저 손에 넣을 수 있어요. 게다가, 위선으로 가득한 시공관리국 따위보단 닥터 스칼리에티 쪽이 훨씬 더 재미있기도 하고. 당신도 이쪽으로 오십시오. 거긴 당신의 자리가 아닙니다.]
[… 나도 말했을텐데.]
환수왕은 고개만을 살짝 뒤로 돌려, 이쪽을 보고 있는 '동료'들을 봤다.
다시 고개를 앞으로 돌려, 한껏 투지를 담아 론에게 말한다.
[내가 인간이길 포기했다면 그건 내 동료들을 위해서지 네놈의 생각대로 움직이기 위해서가 아냐.]
[… 교섭결렬이군요. 아깝게도.]
론은 몸을 살짝 낮추고, 두 팔을 늘어뜨렸다.
환수왕 역시도, 두 주먹을 들어올려 론에게로 향한다.
부숴도 부숴도 론은 끊임없이 되살아난다.
─그래도 상관없다. 되살아나는 대로 다시 부순다. 자신이 할 일은 그 뿐이니까.
[한가지 질문이 있습니다만.]
[짖어라. 안들을테니.]
[너무 하시는군요. 뭐, 상관없습니다. 간단한 질문이니까요. 당신이 저와 싸우고, 저 사람들이 우리들의 싸움에 정신을 파는 동안 저와 함께 온 전투기인들은 지금 뭘하고 있을까요?]
모두의 얼굴이 굳었다.
─그것과 동시에, 하늘에서 비명이 울렸다.
고개를 들어올렸을 때, 한 사람의 전투기인이 비비오를 안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아아…!!]
[당신과 노는 것도 즐겁습니다만, 일단 부탁받은 일이 있으니까요.]
이미 환수왕에게 론의 말따윈 들리지 않는다.
들리는 것은, 자신을 부르는 비비오의 비명 뿐.
환기로 된 날개를 펼치고, 곧장 비비오를 향해 날아간다.
물론 그 앞을 론이 가로막았다.
[곤란합니다, 마음대로 가버리시면.]
[로온……!!]
이 금색의 괴물은.
또다시 자신에게서 빼앗아갈 생각이다.
'가지고 놀 장난감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자신에게서 모든 것을 빼앗고 절망에 빠트린 이 괴물이.
간신히 얻은 '평화'와 '행복'의 상징마저도 빼앗으려 하고 있다.
─용납할 것 같으냐.
[비────────켜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엇!!]
환기 「신황격」.
주먹으로 가격한 상대를 환기로 휘감아 그대로 하늘 끝까지 날려버리는 기술.
당연히 론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고, 한순간에 론의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전투기인들과의 거리는 눈깜짝할 사이에 좁혀졌다.
가로막는 전투기인들을 무력화시키는 데는, 주먹까지도 필요없다. 단순한 환기 방출만으로도 밀어내는데에는 충분했으니까.
거리가 가까워진 비비오에게 손을 뻗는다.
지금 이 모습이라면 틀림없이 무서워하겠지만, 그래도 지금은 어쩔 수 없다.
가깝다. 앞으로, 몇 센티미터만 더 가면 비비오를 붙잡을 수 있다.
비비오를 안고 있는 전투기인은 필사적으로 도망치고 있지만, 환수왕의 앞에선 무의미. 비비오를 되찾으면 날려버릴 생각이다.
그리고… 마침내 손이 닿았다.
비비오의 어깨에.
그의 손이─
─닿는다.
─어?
[…… 누구냐, 너는.]
비비오가, 아니다.
그것을 알아차리는 순간.
─희미한 통증이 느껴진다.
망연한 상태라 그랬던가.
손가락 끝을 조금 다친 듯이, 약한 통증만이 느껴졌다.
─손으로 등 뒤에서 복부를 관통당했다고 하면, 엄청난 부상인데도.
[걸렸네요. 멋들어지게.]
론의 목소리가 들린다.
걸렸어? 누가? 무엇에?
…… 그렇다는 건─
[네, 놈이…!!]
[당신도 충분히 알지 않습니까. 제가 사람 가지고 노는 걸 무엇보다도 즐거워한다는 걸.]
환술이었던가.
론의 비웃음이 들린다.
… 패닉 상태에 빠져있던 시간이 꽤 길었던 모양이다.
주변에 있던 가제트 드론들까지 몰려와서, 그의 몸에 칼을 박아넣고 있었으니까.
이미 다섯 자루 정도가, 팔과 다리와 허리와 어깨에 박혔다.
[슬슬 '본론'으로 넘어가도록 하지요. 저는 '다른쪽의 당신'에게도 흥미가 있으니까.]
환수왕의 몸을 관통하고 있는 론의 팔이, 환기에 휩싸였다.
[환기 「뇌광아」.]
하늘에서 번개가 친다.
하나가 아니다. 십여발에 달하는 번개가, 일제히 떨어졌다.
─오직 론의 팔에 꽂혀있는 환수왕만을 노리고.
원래의 환수왕이었다면 이런 번개따윈 백을 받아낸다고 해도 문제없었겠지만, 그것이 몸 내부로 타들어간다고 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것도 단순히 환기의 갑옷 안쪽이 아니다. 몸을 관통한 론의 팔을 타고, 내장과 혈관이 있는 몸 속에 직접 들어가는 것이다.
[카… 아…!]
우선, 열발.
하지만 그것은 시작이었고, 이윽고 몇번이고 수십발 단위의 번개가 론의 팔에 떨어진다.
[카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초 단위로 수십발의 번개가 떨어지기 시작한지 약 1분.
그제서야 론은 팔을 뽑아냈고… 전격에 휩싸인 환수왕은 땅에 떨어졌다.
환수왕이 먼저 떨어지고.
그 뒤를 이어 론이 착지했다.
뭐라고 할 것도 없이,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간단하다.
─시시오 세이는 '금색의 괴물'에게 완전히 패배했다, 고 하는 것.
"… 졌어… 세이 군이…?"
그녀들에게 있어서, 그는 '최강'이자 '불사신'의 상징이었다.
어떤 상황에 처한다고 해도 반드시 살아서 헤쳐나오는 강인한 힘.
그런 힘을 지니고도 잘못된 길로 빠지지 않는 강인한 정신력.
─그 '상징'이, 무너졌다.
10년 전 린포스와의 싸움때하고는 비교도 안될만큼.
"세이 군… 죽은 거야…?"
누가 누구에게 말한건지는 모른다.
어쨌거나, 스크린을 통해서는 살았는지 어떤지도 알 수 없다.
"누구라도 좋으니까… 말해줘… 세이 군, 살아있는거야…?"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격기술, 「엄엄권」!!"
론이 몸을 돌리자, 자격기의 덩어리가 바로 코앞까지 다가온 상태였다.
두 팔을 교차시켜 그것을 막아내지만, 몇발짝인가 뒤로 밀려나고 만다.
"네놈이, 잘도──────!!"
공중에서부터 자격기를 담은 회전 돌려차기가 떨어진다. 아마 랑랑축이었던가.
그 공격을, 아무렇지도 않게 어깨로 받아낸다.
[이거 참, 뭘 보신겁니까. 저를 파괴해도 소용없다는 건 조금 전 '그'가 그렇게나 열심히 증명해주었─]
"닥쳐!"
자피라는 지면에 내려섰다가 다시 론에게 돌진했다.
팔꿈치, 무릎, 주먹, 팔꿈치, 발, 팔꿈치, 무릎, 무릎, 주먹.
일격일격에 자격기가 담겨있다. 상대가 전투기인 정도였다면 최초의 일격으로 끝내버렸을 정도의 파괴력으로.
─그러나 그것조차도, 론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친우가 당했는데도, 얌전히 있을 수 있을 것 같으냐!! 격기술 「승승권」!"
원거리 공격용인 엄엄권과 동등한 파괴력의 자격기가 담긴 어퍼컷.
이 일격은 론의 턱을 완전히 날려버렸지만, 어차피 불사신인 론에게는 의미가 없다.
턱을 내주고, 손을 앞으로 뻗어 번개를 뿜어내 자피라의 몸을 날린다. 워낙 큰 기술을 쓴 직후였던 터라, 회피도 방어도 못하고 직격.
"크학?!"
뒤로 날려가, 벽에 부딪힌 후 땅에 떨어졌다.
['당했는데도'라고?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시작은 이제부터인데.]
"… 뭐?"
샤멀의 부축을 받아 간신히 일어선 자피라가 반문했다.
"무슨 소리를…"
[말했지 않습니까. 환수왕의 힘은 파괴신의 힘. 이성으로 억누르고 있었다곤 해도, 본능적으로 전투와 파괴를 원한답니다. 따라서…]
론은 천천히 몸을 뒤로 돌렸다.
─불길 속에서, 환수왕이 몸을 일으켰다.
[크, 가아아아…!!]
"세이!! 살아있었─"
"잠깐, 뭔가… 상태가 이상해…!"
샤멀의 말대로, 지금의 환수왕은 이상했다.
신음을 흘리며, 머리를 부여잡고 이리저리 부딪히고 있다.
[치명타를 받고 인간으로서의 의식이 잠이 들어버린 지금… 남아있는 건 해방된 파괴신으로서의 본능 뿐.]
[으… 어, 으… 가, 아악… 크, 어어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환수왕의 입에서, '포효'가 터져나왔다.
그와 동시에 그의 몸에서는 환기가 뿜어져나왔고… 거대해졌다.
[크, 카아… 그에악… 케엑, 케에… 카…]
이미 입에서는 언어가 되지 않는 '무언가'만이 흘러나오고 있다.
그 자리에 대신 나타난 것은, 신장이 수십미터에 달하는 거인.
[으, 으어… 으어어어어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거대해진 환수왕의 몸에서, 폭발적으로 환기가 뿜어져나왔다.
이성을 잃은 이상, 환수왕은 단순한 '괴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환수왕은 곧장 날뛰면서 주변을 부수기 시작했다. 크기가 크기인데다 엄청난 환기까지 뿜어대고 있던 덕에, 그 피해는 어마어마했다.
그것을 코 앞에서 보게 된 론은 환희에 가득한 목소리로 외쳤다.
[지금의 그야말로, 모든 시공을 멸망으로 이끌 파괴신, 진정한 환수왕… 오너라, 파멸의 시간이여!]
[크가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이럴수가…"
린포스는 허물어질 것 같은 몸을, 벽에 지탱시켜 간신히 유지시켰다.
세이가 살아있다. 그것은 좋았다. 하지만 지금 저 모습은 뭔가.
─마치, 폭주한 야천의 서 방어 프로그램과 같은 모습.
오로지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모든 것을 파괴하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괴물.
세이는 분명히 알고 있었다. 자신이 저렇게 될 거라는 걸. 그러니까 인간이길 버렸다는 이야기가 나온 거겠지.
"우리들을 지키기 위해서 싸운 결과가… 그 모습이라는 건가… 세이…"
그녀가 망연해진 사이.
갑자기 소란스러워졌다.
린포스가 뒤를 돌아보자, 나노하와 페이트가 국원들의 도움을 받아 어떤 기기를 손보고 있었다.
"지금 뭘하는거지?"
"말릴거야…"
"… 뭐?"
"통신기로 저쪽에 있는 스피커에 직접 연결해서 말할거야! 그러면, 세이 군도 들어줄지 몰라!"
이미 완전히 이성을 잃어버린 그에게, 그녀들의 말이 들릴지 어떨지는 모른다.
하지만… 시도해볼 가치는 있다. 아니, 그 이외엔 그녀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나도 돕지. 희망이 있다면 그것 뿐이니까."
환수왕은 눈에 보이는 모든 것에 손을 뻗었고, 부쉈다.
그나마 지금까지는 가제트 드론과 '벌레'들이 하늘을 날아다녔기에, 그것들에 정신이 팔려 기동 6과 자체에는 아직 손을 안대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여기까지. 환기의 방출로 모든 가제트 드론들을 날려버린 지금, 환수왕은 기동 6과 쪽으로 몸을 돌렸다.
"묶어라, 강철의 멍에!!"
자피라의 앞에 나타난 은색의 마법진. 그 안에서 나타난 쇠사슬이 환수왕을 옭아맨다.
─물론, 움직이자마자 깨져버렸으니 시간벌이조차도 되지 못했지만.
"제길… 역시 안되나…!"
"에너지의 차이가 너무 커… 어쩌면 하야테의 마법을 맨몸으로 받아내도 타격을 받지 않을지도…"
그야 당연하다. '이것'을 로스트 로기아로 분류하면 랭크로 성왕의 요람보다도 위가 될테니까. 물론 '제어불가능'이라고 하는 단점이 붙어있기 때문에 실질적인 랭크는 비슷할지도 모르지만.
[그래요… 부숴버리세요. 지금까지 당신이 지키려고 했던 모든 것들을, 당신의 손으로!]
론은 폐허가 된 건물의 옥상에 앉아 그것을 관찰하며 즐거워했다.
2천만년 전에는 포기해야했던 즐거움이 바로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데 어찌 즐겁지 않을 수 있을까.
이 세계를 멸망시킨 후, 환수왕을 다른 세계로 보내면 환수왕은 그 세계도 멸망시킬 것이다. 이곳외에도, 시공에는 무수한 세계가 있다고 하니까.
─지금 보고 있는 이 절경을, 몇번이고 계속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최고다… 당신은 정말 최고야…! 더욱 더 저를 즐겁게 해주시죠, 파괴신이여!]
론은 환호했다.
이제부터 벌어질 파괴의 향연에.
<세이 군… 들려?>
기동 6과에 설치된 스피커에서부터, 나노하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환수왕은, 걸음을 멈추지 않았지만.
<세이 군이 우리 집에 처음으로 오고, 14년… 그 동안 굉장히 많은 일들이 있었지.>
─환수왕은, 여전히 걸음을 멈추지 않고 있었다.
<세이 군은 언제나 우리들을 지켜줬고, 언제나 우리들을 걱정해줬어. 세이 군 덕분에, 우리들은 여기에 있는거야.>
다음으로, 페이트들의 말이 이어진다.
<세이는 나도, 어머니도, 아리시아도 구해줬어. 그걸 얼마나 어떻게 감사해야할지도 모르겠지만… 언제나 고마워하고 있었어.>
<페이트짱만이 아냐. 나와 아이들도 구해주고, 계속 함께 할 수 있게 해줬어.>
<나의 존재를 구해주고, 주인과 함께 있을 수 있게 해줬다.>
<진정한 강함이 어떤 것인지, 힘이 있는 자가 그 힘을 어떻게 써야하는지도 알려주었다.>
<입은 냉정했어도, 돌이켜보면 언제나 제일 위험한 곳에서 우리들을 지켜왔어.>
차례대로 페이트, 하야테, 린포스, 시그넘, 비타.
그리고 이번엔 크로노와 유노의 말.
<나에게는 '마법에 의지하지 않는 강인함'과 함께 '새로운 친우'를 주었지.>
<친구들과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하고 싸울 수 있는 힘을 선물해줬어.>
이 자리에 있는 자피라와 샤멀이 말했다.
"단순한 전투술만이 아니라… 어떤 때에도 꺾이지 않는 의지도 넘겨줬다."
"우리들이 언제나 안심하고 싸울 수 있도록, 우리들을 지켜줬어요."
지금까지, 그에게서는 수많은 것들을 받아왔다.
언제나 지켜지고, 언제나 받기만 해왔다.
이제부터 하나하나 돌려줄 생각이었는데, 이렇게 끝날 수는 없다.
<그렇게나 많이 빚진 걸, 아직 하나도 갚지 못했어…>
<그걸 받지도 않고 그냥 떠날 생각은 아니겠지.>
<환수왕인지 뭔지, 냉큼 걷어차버리고 일어나.>
<들려…? 세이 군.>
<세이 군이 우리를 좋아해주는 것처럼…>
<우리들 모두… 세이 군, 정말로 좋아하고 있으니까…!>
<돌아와줘. 우리들의 곁으로.>
[이제와서 무슨 소리를…]
론은 헛웃음을 터트렸다.
완전히 각성한 환수왕에게, 인간의 말따위가 먹힐 리가 없다.
… 아니, 먹힐 리가 없어야 했다.
─환수왕이, 그 걸음을 멈췄다.
기동 6과의 바로 앞에서.
[… 뭐야.]
론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있을 리가 없는 일이 벌어졌다.
지금의 환수왕에게, 인간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의 이성이 남아있을리가─
─예전에도, 이런 일이 있지 않았나?
한번 파괴신으로 각성한 리오는, 메레의 필사적인 외침에 리오로 되돌아왔었다.
─한번 벌어졌던 일이 두번 벌어지지 않는다는 법은 없다.
론은 환수왕을 주시했다.
환수왕은 여전히 움직임을 멈춘 채로 서 있었다.
그리고…
[카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길게 포효하며, 환기를 뿜어냈다.
[하… 하핫… 그렇지, 역시 그래야지! 그래야 환수왕이지! 인간의 말따위가 통할 리 없지 않습니까! 하하하하하하핫!!]
론은 배를 붙잡고 웃음을 터트렸다.
이것을 보고 있는 인간들이 어떤 절망에 빠져있을지 상상하며, 고개를 들어올린다.
─어째서, 환수왕이 여길 보고 있는거지?
그 의문에 대한 답은, 거대한 환수왕의 주먹으로 돌아왔다.
[이럴수가?! 이런, 바보같은?!]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론이 그 주먹을 피하자, 환수왕의 주먹은 론이 있던 건물을 완전히 파괴했다.
─그럼에도, 환수왕은 계속해서 론을 쫓아 주먹을 날렸다.
[말도 안돼!! 이런 건 말도 안돼!!]
환수왕은 모든 것을 파괴하는 존재. 당연히 적과 아군을 구분할 수 있을 리 없다.
인간으로 돌아온 것도 아닌데, 어째서 자신만을 공격하고 있는거지?!
[그런가…!!]
폭주 상태는 그대로 유지되고 있었다.
파괴충동 역시 사그라지기는 커녕 처음보다 더 커져있다.
─그럼에도, 표적은 자신 하나 뿐.
환수왕은 저 인간들의 말에 반응했지만 아직까지 자신을 완전히 제어할 수가 없다.
─그러니까 오로지 자신만을 파괴대상으로 정했다, 라고.
기적이라고 하는 것이 일어났다고밖엔 볼 수 없다.
[모처럼 다시 손에 넣었다고 생각했는데.]
말투는 평상시와 다를 바 없었지만, 그 목소리에는 더할나위없는 분노가 담겨있었다.
"이제 그만 포기하시지!! 비열한 수법에 의지하지 않으면 네놈은 세이의 상대가 되지 못할텐데!!"
자피라의 외침에 론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의 틀린 말은 아니다. 어쨌거나 지금 환수왕의 힘은 론을 웃돌고 있다. 어떤 천재지변을 일으킨다고 해도 주먹만으로 다 깨부술 수 있는 존재가 환수왕이니까.
같은 조건─ 그러니까 환신호천변으로 거대화해서 맞선다고 해도 그것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환수권사'로서의 론이라면.
[어쩔 수 없네요. 이렇게까지 하고 싶진 않았지만.]
론은 땅에 내려섰다.
환수왕이 잠시 주춤한 사이, 입을 벌렸다.
[지금이야말로 저의 진짜 모습… 진짜 힘을 보여드리지요.]
─입에서부터 금색의 빛줄기들이 튀어나온다.
─마치 뱀과 같은 형태의 빛들이, 서로 얽히고 얽혀서 하늘을 향해 뻗어나간다.
─아니… 뱀이 아니다. '용'이라고 불러야할 것들.
─용'들'은 점점 커져갔고… 실체가 없는 '빛'에서부터 실체를 가진 '괴물'로 변해간다.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세이… 리오는 이 괴물을 알고 있다.
─리오였던 시절, 자신의 가족을 눈앞에서 불태웠고.
─라이벌인 쟝의 마을을 몰살시키고 그 어머니를 살해한 '금색의 괴물'.
─기린의 몸과 네 개의 발과 여덞 개의 머리를 가진 용.
─이것이, 론의 진짜 모습.
거대한 '용'은, 환수왕의 앞에 내려섰다.
환수왕보다도 훨씬 거대한 몸으로.
[저의 진짜 이름은 「무간룡」. 머나먼 옛날부터… 어떨 때는 길을 안내해주기도 하고, 어떨 때는 현혹시키기도 하며. 인간들을 조종해, 그들을 희롱해온 존재.]
이 앞에서는, 저 환수왕조차도 하찮은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
무간룡의 여덞 입에서 동시에 청색의 용염(龍炎)이 뿜어져나와 환수왕을 덮었다.
[카아아아아아아아아악?!]
용의 분노에 휩싸인 환수왕은 불길의 기세에 밀려나 산에 부딪혔다. 그 충격으로 지진이 일어나, 기동 6과가 반쯤 무너져내린다.
하지만 론의 '일격'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산이 전부 녹아내릴 때까지 밀어붙이다가, 녹아내린 다음에는 그 뒤로 밀어내 다음 산에 부딪히게 만들었다.
[기껏 이야기가 재미있게 돌아가나 했더니, 잘도 또…!!]
론이 불길을 거두었을 때는 이미 산이 4개 정도 사라진 다음.
[어라, 아직도 살아있는 겁니까. 제가 만들긴 했습니다만, 튼튼하긴 엄청나게 튼튼하군요.]
아직도 몸을 일으키는 환수왕을 보며 질렸다는 것처럼 말했다.
물론 어디까지나 '것 처럼'일 뿐, 진짜로 질린 건 아니지만.
몸을 일으킨 환수왕의 두 손이 환기로 불타오른다.
그 두 주먹을, 가슴의 앞에서 부딪혔다.
주먹에 모여있던 환기는 주먹의 사이로 모였고, 주먹의 사이가 천천히 벌어짐에 따라 금색의 구체로 변해갔다.
[그건…]
론의 기억에 있는 기술이다.
환수 그리폰권 비전환기 「천지파멸권」.
하늘이든 대지든, 무엇이든지 멸망으로 이끌 수 있는… 환수왕의 힘 그 자체를 의미하는 무적의 권.
직접 환수왕을 만들었기 때문에 충분히 알고 있다. 저것의 위력이 어느 정도인지.
본래는 세계를 멸망시키라고 준 힘이건만 그 힘으로 자신에게 덤빈단 말이지.
[재미있군요.]
론의 여덞 개 머리에서 동시에 환기가 뿜어져나온다.
─그것은, 중앙에 있는 머리 앞에서 금빛의 구체로 형성된다.
[특별히 당신에게 맞춰서 싸워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것'에 이름따윈 없었습니다만… 지금 짓도록 하지요.]
어찌보면 천지파멸권과 똑같은 형태의 기술.
그렇기 때문에, 론이 이 '기술'에 붙인 이름은 천지파멸권을… 아니, 환수왕을 조롱하기 위한 것이었다.
[환수 드래곤권 비전환기 「천마신멸」.]
[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환수왕은 '천지파멸권'을 양 손 사이에 모은 채 그대로 돌격해 들어왔다.
옆으로 젖혀두었던 양팔을 앞으로 휘두르자, 거기에 있는 환기의 결정은 론이 만든 것과 부딪혔다.
똑같은 색의 환기이건만, 지금 이 자리에서는 완벽하게 두개로 분리되어 서로를 밀어내고 있었다.
론의 환기도 환수왕의 환기도, 서로에게 조금도 밀리지 않고 서로를 집어삼키기 위해 빛을 발했다.
[힘은… 호각입니까…!]
예상외였다. 환수왕의 힘이 계속 진화해간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짧은 시간에 여기까지.
… 이럴 줄 알았으면 '진화 속성'은 안 주는건데.
이제와서 후회해봤자 이미 소용없는 일. 지금은 이 환수왕을 때려눕히는 것이 선결이다.
[하지만, 그래봤자 근본은 인간. 진정한 '환수의 왕좌'인 제 상대가 될 수는 없습니다!!]
론의 환기가 폭발적으로 늘어나, 환수왕의 환기를 억누르기 시작했다.
[크, 가아아…!]
점차 천지파멸권 쪽이 밀리기 시작했다.
환기가 역류하기 시작하고… 환수왕의 몸이 빛에 감싸인다.
<세이 군…!!>
남아있던 단 한개의 스피커가, 마지막으로 목소리를 전송한다.
<힘내… 지지 마…!>
스피커가 파괴되고, 그녀들의 목소리도 끊어진다.
─하지만, 그걸로 충분.
[카아아아아아아아악!!]
사그라들었던 환수왕의 환기가 증폭되어, 론의 환기를 밀어낸다.
[아직도…!!]
론은 이를 갈았지만, 그의 환기도 계속 환수왕의 환기를 억누르지 못했다.
결국, 다시 호각의 상태로 돌아온다.
─여기서, 환수왕의 행동이 변했다.
왼손으론 계속 환기를 밀어내며, 오른손은 뒤로 빼낸다.
그리고… 오른손의 손바닥 위로, 또 하나의 천지파멸권이 만들어진다.
[케아아아아아아아악!!]
오른손의 천지파멸권이.
앞서서 론의 환기를 막아내고 있던 환기에 더해진다.
─서서히, 론의 환기를 밀어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여기 좀 보라요, 환수왕 나리.]
"파파~~~~!!"
환수왕을 포함해서, '이쪽 편'의 모두가 그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거기에는, 론이나 환수왕과 같은 '금색'이 비비오를 붙잡고 있었다.
"네놈은…?!"
[환수 바실리스크권의 산요다요.]
말투 자체는 어린애들이나 쓸 것 같은 말투였지만, 체구 자체는 장대했다. 얼핏 봐도 자피라의 두배 이상으로 보였으니까.
"그 아이를 내려놓으세요!!"
[그렇게는 안된다요. 론한테 혼난다요.]
산요는 고개를 절래절래 저었지만 이미 샤멀과 자피라는 행동에 들어갔다.
자피라의 마법으로, 바닥에서부터 산요의 움직임을 묶기 위한 '강철의 송곳'들이 솟아난다.
그리고 샤멀은 공간을 넘어, 산요의 링크 코어를 빼내기 위해 손을 뻗었다.
[환기 「우라비돈」!!]
─위에서부터 떨어지는 '금빛의 가루'들이, 두 사람을 '눌렀다'.
"뭐…!"
"이건─ 중력 조작?!"
아니, 두 사람만이 아니다.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 중 넘버즈와 비비오를 제외한 모두가 압도적인 중력에 눌려 바닥에 쓰러졌다.
[산요의 환기는 중력을 조종할 수 있다요. 손 안대도 적을 자멸시킬 수 있다요.]
"괴물, 놈들…!!"
론은 날씨를 조종하더니 이 녀석은 중력. 환수권이란 건 다 이런 거냐.
느긋해진 산요는 손에 들고 있는 비비오를 바라보며 말했다.
[자, 꼬맹아. 어서 울어봐라요.]
"흑…!!"
[그래그래, 어서어서 울라요. 넌 원래 그런 존재다요. 자신을 지키기 위해 강한 사람에게 들러붙은 것 뿐이니까, 그 '강한 사람'에게 도와달라고 한다요.]
─비비오는 벌렸던 입을 다물었다.
[… 응? 왜 안우냐요?]
"안 울어…! 하나도, 안 무서운걸…!"
무서움에 떨면서도.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리는데도.
비비오는 말했다.
"하나도 안 무서워! 파파랑 마마들이랑, 다른 사람들이…! 당신 같은 사람, 꼭 혼내줄거니까! 그러니까, 파파는 부르지 않을거야…! 나쁜 용을 물리치면 여기로 올거니까… 비비오는 나중에 구해줘도 되니까!!"
잠시 멍해져있던 산요는 웃음을 터트렸다.
[꼬맹이 주제에 제법 기특한 소리를 한다요. 근데 말이다요.]
비비오의 얼굴을 강제로 돌려, 환수왕을 보게 만들었다.
[너네 아빠는 그렇게 생각안하는 것 같다요.]
[키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이쪽을 바라보며 포효한다.
조금전까진 '파괴충동'이외엔 아무것도 없었던 환수왕에게서, '분노'와 '초조감'이라는 감정이 떠올랐다.
그리고…
[당신 바보입니까? 똑같은 수법에 두번이나 넘어가다니.]
이번엔 환술이 아니라 진짜지만.
그 감정들이 방해가 되어, 천지파멸권의 환기가 사그라들었다.
동시에 천마신멸 역시 가로막고 있던 환기와 함께 소멸한다.
[이제 슬슬 막을 내리도록 할까요.]
론의 여덞 개의 입에서.
일제히 용염이 발사된다.
각기 다른 입에서 발사된 용염들은 소용돌이의 형태로 한데 묶이고… 또 한마리의 '용'이 되어 환수왕을 집어삼킨다.
[─────────────────────────────────────────!!]
기나긴 비명과 포효만을 남기고.
환수왕은, 용염에 의해 깨끗이 녹아내린다.
[덕분에 전에 없이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감사하지요, 리오. 아니, 지금은 시시오 세이라는 이름을 쓰고 있던가요. 뭐, 지금에 와서 그런 건 아무래도 좋습니다만.]
무간룡은 금색의 '빛'으로 변해, 모습을 감췄다.
"파파… 파파…! 파파~~~~~!!"
[거참, 시끄러우니까 잠이나 자라요.]
비비오의 이마에 손가락을 갖다대고, 아주 약간의 환기를 터트린다.
─그것으로, 비비오는 의식을 잃었다.
비비오를 허리에 찬 산요는 넘버즈들에게 말을 걸었다.
[그럼 이만 돌아가자요.]
"하지만, 아직 끝장내진 않았는데…"
[목적은 달성했다요. 얘네들은 단지 '놀이 상대'다요. 죽이는 건 언제든지 할 수 있다요.]
그 말만을 남긴 채.
산요 역시, 론처럼 금색의 빛으로 변해 어디론가 날아갔다.
그 뒤를 이어 넘버즈가 사라지고 난 다음에야 산요의 환기가 사라져, 다른 사람들이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이 날은, 기동 6과 아니, 시공관리국 창설 이래 최악의 사태로 기록되었다.
이후 기동 6과와 차원항행부대, 그리고 지상 부대의 합동 작전으로 '성왕의 요람'을 격파하고, 제일 스칼리에티 및 넘버즈를 체포한 뒤 잡혀있던 타카마치 비비오를 구출하는데 성공했지만, 환수왕이 녹아내린 자리에서 의식을 잃은 채 발견된 시시오 세이는 그때까지 의식불명 상태였다.
덧붙여 성왕의 요람을 격추할 때에도 한 이후에도, 론과 산요 둘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한다.
──────────────────────권무 「환수왕」편 종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