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달리는 열차 덴라이너… 그런 물건이 있을거라곤 생각못했네요.'
'음, 그런 물건이라면 확실히 S랭크 이상의 로스트 로기아로 분류될텐데.'
'모르는게 당연한거야. 보통의 방법으론 시간의 세계에 들어갈 수 없으니까.'
'그런데, 그럼 노가미씨는 어떻게 여기에 온 거예요?'
'왔다고 할까… 조금 다른 느낌이지만.'
'… 무슨?'
'평소처럼 덴라이너를 타고 달리는데, 갑자기 분홍색 빛줄기가 하늘을 뚫고 떨어져서는 선로를 날려버리지 뭐야.'
아스라 함 내의 전원 경직.
그러나 그것을 눈치채지 못한 료타로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달리다가 갑자기 선로에 그런 구멍이 생겨버려서, 어떻게 하지도 못하고 추락했거든. 혹시 뭔가 짐작가는 거 없어?'
'아, 하하, 아하하하하… 그, 글쎄요… 어떻게 된 일일까나…'
전원 시선 회피.
말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아니, 말해서는 안된다. 말하면 아무리 사람좋은 이 사람이라도 엄청나게 화낼 것이다.
실제 연령은 9세에 지나지 않는 나노하라고 해도, 그 정도는 간파할 수 있었다.
─그날부터 새롭게 시작된, 우리의 날들.
어떨 때는 놀랄만큼 시끄럽고, 어떨 때는 놀랄만큼 평온한… 그런 날들.
웃고, 떠들고, 화내고, 슬퍼하고.
그런 날들이, 언제까지고 계속되었으면 좋겠다고.
그들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처음으로 알게 된 진실의 무거움.
─시공을 넘어 새겨진 슬픔의 기억.
─과거의 아픔은, 마음 속에 조용히 녹여버리고…
─그 날, 가슴에 켜진 불꽃을 꺼트리지 않도록.
─깊은 어둠에 사라지지 않도록.
─맺어진 인연을 지키기 위해.
─지금, 미래로 향하는 문을 연다.
마법소녀 리리컬 나노하 T'S(Time knight'S) 시작됩니다.
(49)
─시간의 세계 카테고리 [도시]─
검에 붙어있는 레버를 1회 끌어당긴다.
그 순간, 검에 붙어있는 네개의 가면 중 붉은 색의 가면이 검날 쪽으로 돌아간다.
「Momo Sword」
그리고, 바로 옆으로 금색의 레일이 생겨난다.
[키에에에에에에에에엑!!]
저 앞에 있던 부정형의 괴물이, 괴성을 지르며 용해액을 발사한다.
그것을 피해, 옆의 레일에 올라탄다.
─레일 위에서 저절로 미끌어져, 전차의 형태를 한 '빛'과 함께 괴물에게로 돌진한다.
"필살─"
가면 아래에 있는 입에서, 작은 말이 흘러나온다.
그의 소중한 친구들은 센스 없는 이름이라고 놀려댔지만… 뭐, 이게 이 기술의 이름이라는 건 어쩔 수 없다.
「전차 베기電車切る」
… 원래 이름은 풀 스로틀 브레이크(Full Throttle break)인지 뭔지하는 이름이었던 것 같지만, 아무래도 상관없다.
빛으로 만들어진 전차는, 그대로 괴물을 통과했다.
괴물은 그 빛 안에서, 거대한 참격에 둘로 쪼개지고는 이윽고 폭발을 일으켜 산산히 흩어진다.
"……"
그는 조용히 휘둘렀던 검을 아래로 늘어뜨렸다.
그것으로, 조금전까지 이곳의 '시간'을 파괴하고 있던 괴물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의 이름은 덴오(電王-Den-O).
시간의 세계에서는 「리얼 레전드」/살아있는 전설 「라이트 나이트」/섬광의 기사 등 수많은 칭호를 가지고 있는 '영웅'.
실제로 그는 과거 두 번이나 시간이 소멸될 뻔한 사태를 막아냈다.
최강의 덴라이더, 가오에 의한 가오라이너 탈취 사건.
특이점 카이와 이매진들의, 시간파괴를 위한 총공격.
이외에, 이매진들이 활동하면서 시간에 영향을 끼치는 것을 막고 수복한 것까지 합치면 셀 수 없을 정도다.
그 모든 사태를─ 이매진 동료들의 힘을 빌렸다고는 하나 인간의 몸으로 막아낸 그는, 분명 「시간의 기사」라 불리기에 충분한 영웅이었다.
그리고 지금 그 영웅은…
"으아… 지쳤다…"
칼을 떨어뜨리고 발라당 주저앉아서 숨을 헥헥 거리고 있다.
"역시 익숙해지지 않는구나, 이거."
으쌰, 하고 검을 들어올려보지만, 체력이 떨어진 상태. 지금의 팔힘으론 그만큼 커다란 대검은 들기 어려웠다.
… 하긴. 평소에도 들고 휘두르기엔 무거운 검이기도 했지만.
그러나 그런 것보다도 더더욱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원인이 있다.
─지금의 그가, 단련같은 걸 할 수 없는 몸이라고 하는 것.
"아무튼 오늘 일도 끝났고… 큰일이네. 빨리 돌아가지 않으면 들킬텐데."
변신을 풀고 시계를 보니 지금 당장 돌아가도 아슬아슬한 시간이었다.
요 근래 들어서 갑자기 늘어난 '시간을 먹어치우는 괴물'들을 퇴치하고 있다는 건, 다른 사람들에게는 비밀로 하고 혼자서 하고 있는 일. 이야기하면 보나마나 걱정하면서 말리거나 돕겠다고 할 게 뻔하니까.
자신과는 달리, '자신들의 세계'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것만도 버거운 그녀들을 끌어들일 수는 없다.
"그러려면 걱정끼치면 안되겠지."
어디까지나 태연한 모습으로 돌아가야한다.
그래, 태연하게 평소같은 모습으로…
─미드칠더─
"어떻게 된 게 료타로 씨는 10년 전부터 지금까지 조금도 안 변하네요."
"아, 그게 말이지…"
료타로는 실로 딱딱하게 굳은 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돌렸다.
─뛰어오다가 맨홀 뚜껑이 열려있는 걸 발견못하고 빠져버린 게 3회.
─골목에서 뒤로 후진하는 차에 부딪혀서 땅바닥에 구른게 2회.
─길거리에서 만난 덩치 큰 개에게 쫓긴게 26회.
급기야는 연락도 없이 늦게 들어가는 것에 대한 사과의 선물이라도 할까 해서 케이크 가게로 갔건만 이미 문 닫은 다음이고.
터덜터덜 빈손으로 돌아오다가 아직 문을 연 과일가게가 있어 귤과 토마토를 사서 나오는 길에 실수로 떨어뜨린 걸 자동차가 밟고 지나가고.
최종적으로는 맡겨놓은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갑자기 불어닥친 돌풍에 휘말려 공사장으로 굴러들어간 다음 세워놓은 발판을 밟고 날아가 자전거 채로 나무 위에 걸러버린 것을 때마침 일을 마치고 돌아오던 길의 페이트가 발견하여 구출해 데려왔다.
페이트는 조용히 한숨을 쉬며, 옆좌석의 료타로를 곁눈질로 보며 말했다.
"도대체 뭘 어떻게 하면 거기까지 운이 나빠지는 건가요."
"…… 내가 알고 싶어."
생각해보면 모모타로스들을 만난 이후에는 눈에 띄게 불행한 일이 줄었지만 그 전까지만 해도 혼자 동네를 도는 것마저 일종의 '모험'이었을 정도의 불행아였다. 그것이 이제와서 원래대로 돌아온 것일 뿐.
그나마 싸움 중에는 이러지 않는다는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어디 갔다 오는 길이었어요?"
"아니, 별 건 아니고… 조금 볼일이 있어서."
"시그넘이랑 비타, 화 많이 났는데요. 모처럼 대련하기로 했는데 도망쳐버렸다고."
"윽…"
각오하고 있던 일이긴 했다.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을만한 명분도 있다.
대련을 한번 빠지는 것으로, '시간의 파괴'를 막을 수 있다. 그 정도라면 대가로서는 엄청나게 싼 것일 터다.
─그러나 그렇다고 두 사람에게 무슨 꼴을 당할지에 대한 공포가 사라지는 건 아니다.
지금 료타로는 평소보다 배는 달달 떨고 있었다. 옆에서 보고 있는 페이트가 안쓰러워질 정도로.
"참 나… 료타로씨, 강하잖아요? 게다가 진짜로 싸우는 것도 아닌데."
덴오 라이너폼이었던가, 그 모습으로 무장한 료타로는 확실히 강했다.
공중전을 못한다는 단점이 있긴 하지만, 나노하나 페이트는 물론 시그넘이나 비타… 누구도 그를 대련에서 '완전히' 제압해본 적이 없다. 아마 같은 조건이라면 대등 이상으로 싸울 수 있겠지.
실제로, 료타로는 나노하들에게 있어 누구보다도 믿을 수 있는 전우이기도 했다.
예전 어둠의 서 사건 때부터 나노하들이 도움을 바라거나 위험에 처했을 때는 가장 먼저 달려와서 도와줬으니까.
10년 전부터 지금까지. 그것은 변하지 않았다.
"… 그래도 두 사람은 무서운걸."
… 그리고 이런 점도 변하지 않았다.
페이트는 조용히 한숨을 쉬었다.
'그러고보니 이 사람은…'
정말로, 변하지 않았다.
처음 만난 이후부터 10년동안 지금까지, 얼굴이나 성격은 물론 키도 체중도.
─마치, 볼켄리터들처럼.
페이트는 그 이유를 알고 있다.
우연히 덴라이너의 오너와 료타로의 대화를 엿들어버린 그녀는.
하지만 그것은, 결코 다른 사람들에게 말해서는 안될 이야기.
료타로도 원하지 않을 것이 분명하고, 다른 친구들에게도 괜히 마음의 짐밖에 되지 않는 이야기니까.
예전의 그녀는 나노하에 의해 구원받을 수 있었지만, 료타로는 다르다. 다른 사람들이 도울 수 없는, 료타로만의 문제.
그 때문에 사정을 알고 있으면서도─ 아니, 알고 있기 때문에 입을 다물고 있을 수밖에 없다.
두 사람은 별다른 대화없이 기동 6과의 숙소로 돌아왔다.
─물론, 몰래 들어가려던 료타로가 쟈피라에게 발견되고, 이윽고 볼켄리터들에게 붙잡혀 훈련장으로 끌려간 건 사소한 이야기.
─시간의 세계 카테고리 [숲]─
료타로─ 덴오는 이곳에서 거미의 모습을 한 괴물과 싸우고 있었다.
전에 부정형의 괴물이 나타난 세계는 '도시'와도 같은 형태였지만, 지금 이곳은 숲속. 말하자면 저쪽의 홈그라운드인 셈이다.
"으읏… 게다가 거미줄 때문에 움직이기 힘들어…"
한번 얽히면 못나온다, 수준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움직임이 상당히 둔해지는 것은 사실이다. 거미줄을 푸는데도 시간을 잡아먹고.
─무엇보다도 상대하기 어려운 점은, 이 거미괴물이 숲속에 숨어서 아직까지 제대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는 것.
거미라고 생각하는 것도 순전히 거미줄 때문으로, 덴오로서는 아직 그림자밖에 보지 못한 상태다. 그것도 딱 한번.
'하지만… 이런 곳에서 뭘 하려는거지?'
이런 곳을 봤자 시간 자체에는 큰 영향을 주기 힘들다. 아니, 거의 못준다고 봐야겠지.
지난번의 괴물이 나타난 도시의 세계는 수많은 '시간의 주민'들이 살아가고 있었기에 파괴되었다면 큰일났겠지만, 여긴 아니다.
그런데도 도대체 어째서…
'… 아니. 생각은 그만두자.'
자신은 시간을─ 미래를 지키기 위해서 여기에 있다.
아무리 사소한 시간이라도, 타인의 시간을 멋대로 부수려고 하는 자를 내버려둘 수는 없다.
덴오는 그 자리에 선채로 검을 늘어뜨렸다.
완전한 무방비 상태.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이런 자세로 있다면, 바보라도 자신을 끌어내려고 한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을 쓰러트리려 한다면 무리를 해서라도 나오는 수밖에 없다.
함정인 줄 알면서도 걸려들어야 하는 거미와, 위험한 줄 알면서도 이런 함정을 쳐야하는 자신. 이곳에서는 덴라이너를 쓸 수도 없기에, 자신이 무리를 할 수밖에 없다.
지금부터 시작되는 것은 '싸움'이 아니라 '사냥'. 익숙하지 않은 일이긴 하지만.
그 상태로 수십분이 경과하자, 결국 참지 못하고 움직인 것은 거미 쪽이다.
덴오로서는 미처 예상하지 못한 행운. 그것은, 거미가 이 세계의 시간을 파괴하기 위해 나타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처음부터 거미의 목적은 「덴오를 없애는 것」. 그렇기 때문에, 갈수록 초조해지는 쪽은 덴오가 아니라 거미다.
천천히 덴오의 주변을 멤돌며 거리를 좁혀간다.
마침내 덴오의 바로 뒤에 있는 수풀까지 들어왔는데도, 덴오는 석상처럼 움직이지 않고 있다.
이 거리라면, 어떻게 반응해도 자신의 거미줄이 먼저 덴오를 휘감을 수 있다.
결심을 굳힌 거미는 곧장 수풀에서 뛰쳐나와 입에서 거미줄을 뿜어냈다.
거미줄은 순식간에 덴오를 휘감아 움직임을 봉쇄한다.
그것을 확인한 거미는 그냥 곧바로 공격할까 하기도 했지만, 혹시나 줄 끊고 반격하기라도 하면 손해인 건 자신이다. 거미는 입에서 더욱 많은 거미줄을 뽑아내, 덴오를 꼼꼼하게 묶어갔다.
… 그리고, 그 행위가 패배로 이어졌다.
아무리 묶였다고 해도, 아직 '손목'과 '손'만은 자유로웠다.
덴오는 남은 손으로, 검의 레버를 당긴다.
이번에 전면을 향한 것은, '금색의 가면'.
「Kin Ax」
그렇게나 꽁꽁 묶었던 거미줄이, 한번에 끊어진다. 이매진들도 쉽게 끊을 수 없었던 자신의 실이.
덴오는 거미가 순간적으로 패닉 상태에 빠지는 것을 놓치지 않고, 두 손으로 거미줄을 붙잡은 후 끌어당겼다.
─3m가 넘어가는 거대한 거미가, 맥없이 딸려왔다.
분명히, 무의식 중에 힘을 넣고 버티고 있었다. 그런데도 끌려가는 것은 자신이다.
아무리 덴오라고 해도, 아무리 특이점이라고 해도 분명 이 녀석은 인간일 터, 이 정도의 힘을 지니고 있을 리 없다. 그런데도 어떻게…
─당황에 빠진 거미는, 위에서부터 내려쳐진 금색의 검에 반응조차 하지 못하고 둘로 쪼개졌다.
둘로 갈라진 거미의 몸이 천천히 허물어져 바닥에 떨어진다.
"다이나믹 촙… 이었지?"
자신의 힘에 절대적인 자신을 가지고 있던 금색의 이매진 킨타로스.
그를 떠올리면서, 덴오는 그 '시간'으로부터 벗어났다.
─미드칠더─
"이상해…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해… 언밸런스라구…"
"티아, 무슨 이야기야?"
기동 6과의 신인, 티아나와 스바루는 복도를 걸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료타로씨 말야. 그렇게나 겁쟁이면서, 싸울 때는 엄~청나게 강하잖아. 대장들한테도 뒤지지 않을만큼."
"어, 하지만 듣기론 나노하씨들이랑 초기부터 같이 해온 사람이라던걸. 그럼 이상할 것도 없잖아."
"그러니까 이상하다는 거야."
대장들과 관련이 있는 사람들은 전부 이상할 정도로 강하다.
료타로가 아니더라도, 그 이외에도 강한 사람은 얼마든지 있다.
'역시 재능이라는 건… 어떻게 해도 넘을 수 없는건가…'
티아나가 그런 생각을 하며 상념에 잠겨있을 때, 그 상념의 장본인이 나타났다.
"어라, 두 사람… 분명히 스바루랑 티아나였지?"
"안녕하세요, 료타로씨."
생각은 생각이고, 일단 인사는 했다.
─아무리 해도 납득하기 힘들었다. 이런 사람이, 그렇게 강하다고 하는 건.
그런 생각이, 자기도 모르게 입밖으로 튀어나와버렸다.
"료타로씨는, 어떻게 그렇게 강한건가요?"
"응?"
"아무리 생각해도 마법은 아니고… 어떤 힘을 지니고 있는지."
… 그러고보니 신인들은 아무것도 모르지.
덴라이너에 대해서도, 덴오에 대해서도.
알고 있는 것은, 나노하들과 하라오운의 사람들 정도다. 그 이외에는 정보가 넘어가지 않도록 필사적으로 노력했으니까.
"… 강해보였어? 내가?"
"네. 대장들에게 뒤지지 않을만큼."
"… 실례네, 그거."
료타로는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하지만 그것마저도 티아나의 신경을 거스르는 일이 되었다. 마치 '재능있는 자의 여유'같아 보였으니까.
───그러나 그 감정은, 료타로의 말에 의해 사라졌다.
"내 힘이 아냐."
"…… 네?"
"내 힘이 아냐, 그건. 「강하다」는 말을 쓸 수 있는 건, 너처럼 스스로 노력해서 힘을 얻은 사람 뿐. 나처럼 덜컥 주어진 힘을… 남에게서 멋대로 힘을 빌려쓰고 있는 녀석에게 강하다는 말을 쓰면, 이 세상의 모든 '강한 사람들'에겐 모욕이 될 거라고 생각해."
… 빌려쓰는 힘?
료타로는 '기밀'에 해당하는 부분은 쏙 빼버리고 말했다(예전의 료타로였다면 기밀이고 뭐고 다 불어버렸겠지만).
"나 자신은 정말로 별볼일 없는 인간이지. 힘도 없고, 둔하고, 허약한데다 덜렁거려서 실수투성이에… 그런 내가 싸울 수 있었던 건 나를 도와주는 친구들이 있었기 때문이야. 그리고… 나는 지금도 그 친구들의 힘을 빌려서 싸우고 있어. 그러니까, 내 힘이 아냐."
"… 그, 친구들은?"
료타로는 쓸쓸한 웃음을 지으며, 스바루와 티아나를 돌아보며 한마디만을 남기고 걸어갔다.
"이제 없어."
료타로가 사라진 후에도, 스바루와 티아나는 한참동안이나 그곳에 서 있었다.
십여분 가량의 침묵 끝에 먼저 입을 연 것은 티아나.
"… 어떡하지?"
"… 뭘?"
"미안해서 어떡하냐구!!"
티아나는 머리를 감싸쥐고 신음했다.
"어떡하지?! 안좋은 기억 떠올리게 해버린 거 같은데!!"
"으, 그… 뭐, 솔직히 티아가 잘못한 건 사실이니까…"
"어떡하지… 어떡하지… 보통 친구가 어떠냐고 물었을 때 '이제 없어'라고 하는 건,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이야기잖아?! 그런 걸 건드려버렸어!! 어떡해?!"
… 어떤 의미로는 맞는 말이지만, '이제 없어'라는 말이 꼭 죽었다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걸 간과하고 있는 티아나였다.
─시간의 세계 카테고리 [바다]─
덴오는 또다시 시간의 세계에서 싸우고 있었다.
이번에 온 세계는 「바다」. 게다가 이번 상대는 둘이었다.
─바다속에서부터 공격해오는 거대한 바다뱀.
─하늘에서부터 공격해오는 거대한 익룡.
수중전과 공중전. 어느 쪽도 인간에게는 장비가 없으면 불가능한 싸움.
덴오는 지금, 그 두 싸움을 한꺼번에 해야했다.
「Ura Rod」
검의 레버를 당기고, 청색의 가면이 가장 위쪽으로 움직인다.
검의 길이가 늘어나고, 덴라이너의 차량이 한대 분리되어 '거북이'의 형태로 변신한 후, 덴오를 태우고 바다 위를 달렸다.
─물론 그러는 사이에도 두 괴물들의 공격은 이어졌지만.
바다뱀이 물 밖으로 나타나 덴라이너를 휘감으려다 덴오의 검에 의해 실패하고 다시 바다속으로 들어갔다.
그 사이 뒤로 돌아온 익룡이 화살처럼 내리꽃혔지만, 그것은 덴라이너의 요격에 의해 가로막혔다.
─먼저, 바다뱀부터 처치하자.
검의 끝에서부터 튀어나온 청색의 실이 바다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 실은, 바로 아래에서 기회를 엿보고 있던 바다뱀의 입으로 기어들어가, 입천장에 박혔다.
[카아아아악?!]
덴오는 곧장 검을 끌어당겼다. 바다뱀은 고통에 몸부림치며, 수면과 수중을 왔다갔다한다.
요컨대, '낚시'라고 하는 것.
[키에에에에엑!!]
바다뱀은 계속해서 위치를 옮겨 어떻게든 '낚시바늘'을 뽑기 위해 발버둥쳤지만, 그럴수록 '바늘'은 더욱 깊게 박혔다.
게다가 덴오는 덴라이너의 힘을 이용해서 버티고 있기 때문에, 힘에 있어서도 바다뱀에게 전혀 뒤지지 않았다.
결국 바다뱀은 덴오가 이끄는대로, 수면 위로 튀어나오는 수밖에 없었다.
바다뱀이 나오자마자 덴라이너는 그대로 바다뱀을 향해 돌진하여, 직접 부딪혀서 바다뱀을 밀어냈다.
밀고 밀리고 밀고 밀려서, 바다뱀은 해안으로 넘어왔다.
─덴오는 몸을 뒤로 젖히고, 그대로 검을 투창의 형태로 바다뱀에게 날렸다.
바다뱀의 몸에 꽂힌 검은, '거북이의 등' 모양을 한 '표적'을 만들어냈다.
그것을 노리고, 달려가면서 그대로 점프하여 오른발을 내민다.
덴오의 점프킥이 '표적'의 한가운데에 적중되고.
표적이 산산조각나면서 일어난 폭발은, 바다뱀을 깨끗이 지워버렸다.
"좋아, 하나는 끝났고 다음은…"
말이 채 끝나지도 않았는데, 하늘을 멤돌던 익룡이 쏜살같이 내려와 덴오에게 몸을 부딪혔다.
속도가 속도인데다 막 몸을 돌리던 상태라 미처 피하지 못하고 날개에 맞아 날려갔다.
"우와아앗?!"
순식간에 수십미터를 날려간 덴오는, 덴라이너가 붙잡을 틈도 없이 바다에 빠져버렸다.
'… 움직이기 힘들어.'
수중전은 전부 우라타로스가 대신 해줬으니까, 이런 경우엔 어떻게 해야될 지 알 수 없었다.
허우적거리면서 간신히 수면 위로 올라왔을 때는 이미 방향을 틀어서 익룡이 다시 공격해오고 있었다.
허겁지겁 다시 수중으로 들어가자마자, 조금전까지 덴오의 머리가 있던 자리를 익룡의 발톱이 훓고 지나간다.
'역시 이대로는…'
다행히 '덴오'인 상태에선 숨을 쉬는데에 문제는 없다. 요컨대, 이 안에서도 얼마든지 버틸 수 있다는 것.
─그렇다면 노릴 것은, 자신이 다시 한번 수면 위로 나간 순간, 익룡이 공격하려고 할 때.
덴오는 다시 한번 검의 레버를 당긴다.
이번에 전면에 선 것은, 자색의 가면.
「Ryu Gun」
검은 어느 틈엔가 '총'으로 변했고, 덴오는 그것을 들고 천천히 수면을 향해 올라갔다.
… 물론 누군가가 본다면 상당히 꼴사나운 '몸부림'이겠지만.
덴오의 머리가 수면 위로 부상했다.
─지금까지 그것을 기다리고 있던 익룡이, 발톱을 드러내며 내려온다.
'이것만… 피하면…!!'
있는 힘을 다해서 목과 몸을 옆으로 틀었다.
─익룡의 발톱은, 아슬아슬하게 덴오의 어깨와 목 부근을 스쳤지만 잡아채지는 못했다.
고통을 억지로 참으며, 덴오는 총을 들어올리고, 익룡을 향해 겨눴다.
몸에서부터 흘러나오는 '보라색'의 빛이, 일제히 총구에 모였다.
방아쇠를 당기자, 익룡보다도 거대한 자색의 광탄이 발사되어 날아갔다.
이제 막 방향을 틀던 익룡은, 피하지도 못하고 직격되어 소멸한다.
─미드칠더─
"피곤해…"
싸움을 끝내고 나면 언제나 전신에서 힘이 쫙 빠지지만, 오늘은 특히 심했다. 아무래도 2:1의 싸움이었기 때문일까.
그나마 료타로에게 있어 다행인 것은, 오늘은 단체 휴가날이라 기동 6과에는 볼켄리터들밖에 남아있지 않다는 점. 고로 쓸데없이 끌려간다던가 할 일은 없다.
'오늘은 좀 쉴 수 있으려나…'
소파에 몸을 묻고, 천천히 눈을 감았다.
─그리고는 그대로 곯아떨어져 버린다.
꿈을 꾸고 있다.
꿈속에서의 그는, 붉은 색과 푸른 색과 금색과 보라색에게 둘러싸여있다.
붉은 색의 이매진 모모타로스. 가장 먼저 만난 '동료'이며, 누구보다도 마음이 통했던 '친구'.
푸른 색의 이매진 우라타로스. 거짓말 잘하고 속을 알기 힘들지만, 그래도 믿을 수 있는 '친구'.
금색의 이매진 킨타로스. 잠꾸러기에 바보스러웠지만, 힘이 세고 맹세를 중요시하던 '친구'.
보라색의 이매진 류타로스. 투정도 어리광도 심했지만 마지막에는 크게 성장했던 '친구'.
그들과 함께 웃고, 그들과 함께 떠들고, 때로는 싸우고 때로는 토라지고.
─그 시절이, 그에게 있어서는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
그러나 그 행복도, 끝을 고하게 된다.
특이점 카이가 일으킨 사건.
하마터면 시간이 붕괴되버릴 뻔했지만, 친구들의 도움으로 겨우 막아냈다.
자신들이 소멸할 위기속에서도, 친구들은 자신과의 시간을 지키는 쪽을 택해주었다.
전화위복이랄까, 카이가 소멸되고도 이쪽의 이매진들은 소멸되지 않고 살아남았지만.
그날 이후부터 친구들은 더이상 남의 기억에 의존하지 않고도 존재할 수 있게 되었다.
싸움이 끝난 후, 친구들은 시간의 선로를 통해 다른 곳으로 떠났다.
사는 세계는 달라도, 같은 시간을 살아간다면 언젠가는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고, 료타로는 혼자서 노력하기 시작했다.
언젠가 친구들을 다시 만나면, 그때보다 조금은 더 나은 자신을 보여주기 위해서.
─그렇지만, 그 모든 것이 고작 1년만에 반전되어버렸다.
단 하나뿐인 누나… 아이리가 세상을 떠나면서부터.
그때부터 자신은 '옅어지기' 시작했다.
의욕을 잃고, 의지를 잃고.
사람들의 기억에서부터도 지워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신은 그 시간대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서 잊혀졌다.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이미 덴라이너의 안.
그 시간에서 잊혀진 사람은, 자신을 기억해내는 사람이 생길 때까지 덴라이너를 타고 시간의 세계를 여행해야 했다. 예전에 한 노인이 그렇게 되었던 것처럼, 이번엔 그가 그렇게 되었다.
덴라이너의 안을 돌아다녀봤지만, 이미 자신의 친구들은 다른 정거장에서 내린 후 소식이 끊긴 상태였고.
자신은 그곳에서마저도 혼자였다.
그렇게 하루하루 멍하니 시간의 세계에서 지낼 무렵.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도 알 수 없다. 시간의 세계에서 '시간의 흐름'이라고 하는 것은 의미가 없으니까.
그리고 꽤 오랜 시간이 지난 후, 나타났다. 시간을 파괴하는 괴물들이.
이매진이 아닌, 괴물들.
대화도 통하지 않고, 그 형태도 보다 '짐승'에 가까운 괴물들.
보통 인간과 별 차이가 없는 시간의 주민들로서는, 그 괴수들을 어떻게 할 힘같은 건 없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있었다. 그 괴물들과 싸울 힘이.
덴라이너의 오너로부터 덴오의 벨트와 패스를 받고, 다시 한번 덴오로 변신했다.
이미 네 사람의 친구들은 없었지만, 그들로부터 받은 힘은 이미 등록이 되어있던 상태라 라이너폼이 되는 것도 가능했다.
그는 덴오의 힘으로 괴물들과 싸웠고, 승리했다.
그 이후, 그는 또다시 덴오로서 '시간'을 지키기 위해 싸웠다.
친구도 없이, 도와주는 사람도 없이.
혼자서 덴라이너를 끌고, 혼자서 검을 들어올리고.
그럼에도, 자신 이외에는 그것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기에.
자신이 속해있던 시간에서 잊혀진 그는, 이미 시간축에서조차 벗어나있는 존재였다.
어떤 상처를 입어도, '시간을 뒤로 감아버리듯이' 나아버린다던가.
얼마나 시간이 지나든, 키도 몸무게도. 하다못해 머리카락조차도 자라거나 하지 않는다던가.
그리고 그것은 그가 '시간의 흐름'에 무감각해지는 데에 가장 큰 원인이 되었다.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데, 시간의 흐름을 무슨 수로 느낄 수 있을까.
그런 몸이 된 이후, 얼마나 싸웠는지는 그 자신조차도 모른다. 말했듯이, 시간의 세계에서 시간의 흐름이란 무의미.
느낌상으론 몇년은 지났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이윽고 그 인식조차도 무뎌지게 됐다.
덴라이너를 타고 유랑하면서, 괴물이 나타나면 달려가서 싸운다.
그런 생활이, 끝도 없이 반복됐다.
─자신밖에 싸울 수 있는 사람이 없으니까.
끝없이 반복되는 나날의 지루함을 견뎌내고.
─자신밖에 검을 들 수 있는 사람이 없으니까.
끝없이 이어진 싸움 속의 고통을 참아내고.
─자신밖에 덴오가 될 수 있는 사람이 없으니까.
쓰러질 뻔한 적도 몇번이나 있었지만, 결국 이겨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이것밖에 없으니까.
필사적으로 싸우고, 싸우고, 싸우고, 싸운다.
─언제까지 계속되어야 끝날지조차 알 수 없는 싸움.
멈추는 일도 없이, 쉬는 일도 없이.
─자신이 지키지 않으면, 부서져 버리니까.
모모타로스들이 힘을 합쳐내서 지키고.
아이리가 기억을 지워내면서까지 지키고.
사쿠라이가 '지워져'버리면서까지 지키고.
실로 많은 것들을 잃어버려가며 지킨 시간을.
저런 괴물들이, 부수게 할 수는 없다.
─오직 그 다짐만을 의지해, 지금까지 버텨내왔다.
"아, 일어났네요."
"… 나노하?"
눈을 떴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10년 전에 만나 지금까지 알고 지내온 소녀.
천천히 상반신을 일으키며 시계를 보자, 이미 퇴근 시간은 한참이나 지나있었다.
"벌써 이렇게 됐네. 깨웠으면 될텐데."
"하지만 너무 잘 자고 있었는걸요. 거기에… 요즘 료타로씨 피곤해보이기도 했고."
… 이런 아이였지, 참.
예전부터 남에게 '무슨 일'이 있다는 걸 잘 알아차렸고, 그것에 대해 걱정해주고, 어떻게든 돕기 위해 노력한다.
적어도 자신이 알고 있는 '타카마치 나노하'라는 소녀는 그랬다. 그렇기 때문에 숨기고 있는 거고.
"숨기는 거 있죠? 우리들한테."
"아니, 아무것도."
"혼자서 또 위험한 일 하고 있는 거 아닌가요?"
"아냐, 아냐. 평소랑 똑같아. 길에서 엄청 해매다가 피곤해진 것 뿐이야."
다행이다.
순간적으로 당황하긴 했지만, 간신히 표정으로 드러내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러나 정작 나노하는 전혀 믿지 않는듯한 말투로 말을 이었다.
"불공평해요."
"… 에?!"
"료타로씨는 언제나 우리들을 걱정하고 우리를 도와주는데, 우리들은 료타로씨를 돕지도 못하게 하잖아요."
"아니, 그러니까 그런 일이 아니라니까…"
게다가 상담같은 걸 할 수 있는 일도 아니고.
"물론 료타로씨가 우리들에게 이야기하지 않는데엔 그만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그래도 우리들, 료타로씨를 친구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10년 전 료타로씨와 우리들이 만난 그 날부터."
친구.
그러고보니, 그 말을 써본지도 들어본지도 오래됐다.
─무의식 중에, 자신에게 있어서 친구라고 할 수 있는 건 모모타로스들과 유토 뿐이라고 생각했으니까.
"우리들 처음 만났을 때 기억해요?"
"그걸 어떻게 잊어."
쓴웃음을 지으며, 그때의 일을 떠올려본다.
느닷없이 하늘을 뚫고 떨어진 분홍색의 '빛'.
빛은 '시간의 선로'를 날려버렸고, 그 위를 달리고 있던 덴라이너는 전복되면서 바깥으로 튕겨져 날아갔다.
멋들어지게 반파된 덴라이너가 도착한 곳이 바로 나노하들과 볼켄리터들이 싸우고 있던 세계.
나노하들은 갑자기 '허공'을 뚫고 떨어진 기차에 놀랐고, 료타로는 전혀 모르는 세계로 떨어진 것에 놀랐다.
료타로와 덴라이너의 갑작스런 등장 탓에 볼켄리터들은 그 국면에서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었고, 시공관리국── 아니, 나노하들과 아스라의 승무원들은 덴라이너에 대한 정보같은 것은 전혀 없었기에, 그 반응을 경계하느라 볼켄리터들을 쫓진 못했다.
그리고… 덴라이너의 안에서, 전복의 충격을 막기 위해 덴오로 변신한 상태의 료타로가 모습을 드러냈다.
까딱 잘못하면 교전 상태로 들어갈지도 모를, 일촉즉발의 상황.
─그 상황이 허무할만큼 쉽게 풀어진 건, 료타로 덕분이다.
<…………………… 죄송한데, 여기가 2000년대 맞나요?>
<…… 네?>
그 뒤, 료타로로부터 대강의 사정을 듣게 되었다.
그리고 덴라이너 전복의 원인이 자신에게 있다는 것도 눈치챘다.
… 물론, 차일피일 미루다보니 이 날 이때까지 말하지 못했지만.
나노하들의 사정을 들은 료타로는 덴라이너가 수리될 때까지 그녀들의 일을 돕기로 했다. 비록 '시간'에 관계된 일은 아니라고 해도, 세계 하나가 멸망할지도 모르는 일을─ 몰랐다면 모를까 알고서 그냥 지나치는 건 성격적으로 무리니까.
─그때부터… 그들의 인연이 시작됐다.
"그거, 나노하지?"
"네?"
"선로 날려버린 빛."
3초 간 경직.
그리고…
"죄송합니다!!!!"
나노하는 맹렬히 고개를 숙이며 사과했다.
… 10년이나 늦었는데 말야.
료타로는 그렇게 생각해며, 손을 저었다.
"아니, 됐어. 그냥 생각나서 말한 것 뿐이니까. 다행히 나 이외의 사람은 없었으니까, 피해자도 없었고. 덴라이너 수리가 끝날 동안 내가 지낼 곳을 마련해준 것도 나노하고."
"…… 근데, 언제부터 눈치챘었나요?"
"처음엔 몰랐어. 하지만, 그 뒤에 방어 프로그램이랑 싸울 때 페이트, 하야테랑 같이 썼잖아? 그거랑 같은 '분홍빛'."
… 그때였던가.
최대한 안보이게 한다고 다른 두 사람의 마법에 가려지게 쏘긴 했는데 아무래도 보여버렸던 모양이다.
아무리 피해자가 용서해줬다고 해도, 가해자로서는 아무래도 불편하기 마련. 나노하가 안절부절못하는 것을 보고 료타로는 작게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
"나는 오히려 그때 추락한게 다행이라고 생각하니까."
"… 네?"
"그때 그게 아니었으면, 나는 나노하도, 페이트도, 하야테도, 유노도, 알프도, 크로노도, 볼켄리터들도 만나지 못하고 지나가버렸을 테니까."
단순히 위로하기 위한 말이 아니다.
10년 전까지 자신은 시간을 지킨다는 명목으로 싸움만을 반복하고 있었다.
싸움과, 덴라이너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삶.
그것을 마치게 해준 것이, 나노하와 그녀의 친구들.
마치 예전에 모모타로스들과 있을 때처럼 하루하루가 즐거웠고, 가끔은 힘들었지만 그 이상으로 '살아있다'는 느낌이 있다.
그것과 비교하면, 덴라이너가 조금 부서진 정도는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는다.
"그러니까, 사과할 필요없어. 전혀."
오히려 감사해야할 것은 이쪽이다.
그녀들과 만난 덕분에 망가지지 않고, 예전처럼 돌아올 수 있었으니까.
"그럼 이왕 용서받는 김에… 한가지 부탁 더 들어줄래요?"
"할 수 있는 거라면, 뭐든지."
그 다음 나노하가 얼굴을 상기시키며 꺼낸 말.
"앞으로도 계속, 우리랑 같이 있어줘요."
그 말을 들은 료타로에게서, 조금전까지 있던 '기쁨'의 감정이 깨끗이 사라졌다.
─겉으로 내색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노하는 눈치채지 못했지만, 료타로는 얼어붙었다.
가능할 리가 없다.
자신은 그녀들과는 '다른 시간'의 인간.
단순한 비유가 아니다. 현실적으로, 료타로는 그녀들과 같은 시간을 걸어갈 수 없다.
─자신의 시간은, 다시 한번 덴오가 된 그 시점부터 멈춰져있으니까.
그녀들과 함께 한 10년 동안, 자신만이 전혀 변하지 않은 것이 가장 큰 증거.
자신이, 그녀들과 '다른 존재'라고 하는 지울 수 없는 각인.
그런 주제에 그녀들과 함께 살아간다니, 뻔뻔하기 짝이 없다.
─앞으로 얼마 남지 않았다.
그녀들에게, 자신의 힘이 필요없어지게 될 때까지.
그때가 되면 다시 덴라이너를 타고 시간의 세계로 돌아가, 두번 다시 이쪽으로 돌아오지 않을 작정이다.
지금까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던 만큼.
"응. 언제까지라도."
이렇게 거짓말을 할 때는, 가슴이 저려왔다.
─시간의 세계 카테고리 [어둠]─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영상이 떠올랐다.
그 영상 속에서는, 시간의 기사가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부정형의 괴물을 상대로, 거미를 상대로, 익룡을 상대로, 바다뱀을 상대로.
그 이외도, 횟수를 셀 수 없을만큼 수많은 전투가 영상 속에서 표현되고 있었다.
… 강하다.
'그것'은 덴오를 보고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고작해야 인간이, 게다가 시간에 구속되어 더이상 강해질 수도 없는 몸으로 잘도 저기까지 해낸다.
전투력만이 강한 것이 아니다. 저 '기사'에게서는, "절대로 쓰러질 수 없다"는 의지─ 아니, 그 이상의 무언가마저 느껴지고 있다.
저래서야, 단순한 짐승에 지나지 않는 시간의 괴수들이 이길 수 있을 리가 없지.
─하지만, 거기까지다.
아무리 강한 의지가 몸을 받치고 있다고 해도, 그 힘에는 분명 '한계'가 존재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 이상의 힘으로 찍어눌러버리면 그 뿐.
그리고 자신에게는 그 힘이 있다.
덴오를 누를 수 있을 정도의 커다란 힘이.
제로라이너가 운행정지되고.
제로노스가 사라지고.
가오라이너가 사라지고.
인피니티 패스가 사라지고.
신의 노선이 행방불명된 지금.
덴오만 없애면, 모든 시간이 자신의 손에 들어온다.
'그것'은 천천히, 그 육중한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미드칠더─
기동 6과의 휴가날.
스바루를 비롯한 신인들이, 기지로 여자아이 하나를 데리고 왔다.
금발에 녹색과 적색의 오드 아이를 가진 아이. 이름은 비비오라고 한다.
하지만 료타로는 그날도 시간의 세계에서 괴물들과 싸웠기 때문에, 비비오와 만난 것은 나노하와 페이트가 비비오를 맡게 된 이후가 되었다.
"그럼, 나노하랑 페이트가 이 아이를 키우기로 한거야?"
침대에 누워 곤히 잠들어있는 비비오를 보며 료타로가 그렇게 말했다.
나노하는 약간 곤란한 듯한… 하지만 은근히 기뻐보이는 얼굴로 대답한다.
"진짜 부모가 나타나기 전까지만요."
"그렇다면 문제없겠지만…"
… 안나타나면 어떻게 되는거지.
료타로는 그런 생각을 했지만, 곧 머리를 흔들어 지워버렸다. 그건 자기가 고민할 문제가 아니니까.
"괜찮겠어? 물론 나노하랑 페이트를 못믿는 건 아니지만… 둘 다 아이같은 걸 키워본 적은 없잖아."
"문제없어요. 손이 가는 걸로 치면 료타로씨 돌보는 것도 만만치 않으니까."
… 상큼하게 웃는 얼굴로 아무렇지도 않게 심한 말을 한다.
하지만 그런 것보다도.
"… 부정을 못한다는 게 슬퍼."
"당연히 못하겠죠. 오늘 돌아오면서 분수대에 빠졌죠?"
"… 응."
"그리고 그 분수대는 이틀 전에도 한번 빠졌던 분수대고?"
"………… 응."
"그 이외에 큰 거 작은 거 따지면 셀 수도 없죠?"
"……"
여기까지 오면 할 말이 없어진다.
"그래도… 불쌍하네, 이 아이는."
료타로는 평온하게 잠든 비비오의 얼굴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렇게 어린데… 부모랑 떨어져서 이런 곳까지 왔잖아. 도대체 어떻게 된걸까."
"그러고보니, 료타로씨의 가족은 어때요?"
가족.
료타로에게는 그리운 말이다.
"누나가 한명 있어."
"부모님은?"
"… 몰라."
"… 네?"
"철 들때부터 누나밖에 없었으니까."
실수했다.
나노하의 잘못이라고 할 것은 없었다. 애초에 10년 동안 알고 지내면서도 료타로는 가족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으니까. 그녀들이 들은 것은 '모모타로스'라고 하는 이매진을 중심으로 한 료타로의 '친구들'에 대한 이야기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노하는 자신이 잘못한 거라고 생각했다.
─물론 료타로는 신경도 쓰지 않고 있지만.
"그래도 즐거웠어. 누나가 있고… 모모타로스들도 있었으니까."
이제는 아무도 없지만.
그 뒤의 말은 삼켜버렸지만, 나노하는 짐작할 수 있었다.
그 누나라는 사람도, 이미 료타로가 만날 수 없는 곳에 있다는 것.
덴라이너를 타면 시간마저 넘어갈 수 있는 료타로가 가지 못할 곳이라는 건 단 한 곳 뿐이니까.
그로부터 얼마 뒤.
매드 사이언티스트 제일 스칼리에티와 그 휘하의 전투기인 「넘버즈」에 의한 선전포고.
그리고 그 날 일어난 시공관리국과 기동 6과에 대한 기습.
'방심했다'이외의 뭐라고도 할 수 없는 실책으로, 그것을 허용하고 말았다.
나노하들은 본부 측의 공격을 막아내고(대원 하나가 납치되는 등 피해가 상당히 컸지만) 기동 6과로 돌아왔다.
그래도 그녀들은 한편으로 믿고 있었다.
기동 6과 본부에는 쟈피라와 샤멀만이 아니라, 료타로가… '덴오'가 남아있었으니까 전투기인이 얼마나 몰려오든 막아낼 수 있다고.
─그녀들이 기동 6과 쪽으로 방향을 틀 때 쯤, 기동 6과를 공격하고 있는 것은 전투기인과… 건물 전체를 통째로 휘감고도 남을만큼 거대한 '괴식물'이었다.
그리고, 그 괴식물은 지금 전투형태로 전환한 덴라이너와 교전 중. 쟈피라와 샤멀은 그 사이에 들어온 전투기인들을 막고 있다.
허공에 어지럽게 얽힌 수많은 선로.
덴라이너는 그 선로를 달려, 식물의 공격을 피하며 반격하고 있었다.
가장 끝, 다섯번째 차량에서는 새의 형태를 한 유도형 미사일들이.
그 바로 앞의 네번째 에서는 공의 모양을 한 폭탄이 두개씩 던져지고.
중간의 세번째 차량에서 나온 개의 입 형태를 한 메카에서 미사일들이 발사되고.
두번째의 차량에서는 끊임없이 탄환들이 발사되고 있다.
덴라이너의 모든 화력이 총동원되어, 기동 6과를 뒤덮은 식물을 공격한다.
기지는 커녕 도시 하나조차 순식간에 쑥대밭으로 만들 수 있는 전력.
─그럼에도, 식물의 기세는 조금도 줄어들지 않는다.
틀림없이 공격을 받고 불에 타거나 산산조각 나긴 했지만, 그 이상의 속도로 증식과 재생을 반복하고 있었다.
'달라…!'
저 괴식물, 분명히 지금까지 싸워온 '시간을 파괴하는 괴물'들과 같은 종류의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괴물들과는 '무언가'가 다르다. 규모, 혹은 질, 아니면 위압감. 딱 짚어서 말하기는 힘들지만, 분명히 다르다.
굳이 비유하자면, '보스급'이라고 해야 할까.
식물의 줄기 중 몇개가 덴라이너의 앞쪽에 있는 선로를 때려부순다.
미처 감속하지 못하고, 선로 밖으로 튕겨나가는 덴라이너.
다행히 착지는 제대로 했지만, 그 충격으로 바퀴가 몇개 빠져버려 더이상 아까같은 속도로 달리는 것은 불가능하게 된다.
덴오는 덴라이너에서 내리고, 검을 들어올렸다.
목표는 식물의 중앙에 있는 주황색의 발광체.
아까 덴라이너로 저 곳을 향해 포격했을 때, 식물은 줄기들을 엮어 방패로 만드는 수고까지 하며 공격을 막아냈다. 다른 부분으로 가는 공격은 전부 무시하고 몸으로 받아냈으면서.
약점인지 어떤지는 모르지만, 공격을 시도해볼 가치는 있을 터.
레버를 당겨, '붉은 가면'이 위로 오게 한다.
그러자, 금색으로 빛나는 무형의 선로가 생겨나, 덴오의 발판을 괴식물의 발광체까지 일직선으로 연결한다.
그 레일 위로 올라서자, 덴오의 위로 덴라이너의 형태를 한 금색의 빛이 겹쳐졌다.
─덴오의 몸은, 그 빛과 함께 레일 위를 달리기 시작한다.
발광체의 바로 앞까지 접근하는데 걸린 시간은, 고작해야 1초 이하. 다른 줄기들은 움직일 틈조차 없었다.
그리고.
발광체를 향해, 지금까지 수많은 이매진들을 쓰러트려온 검격이 작렬한다.
「전차 베기電車切る」
─검은, 박히지도 못하고 튕겨나왔다.
덴오를 완전히 쓰러트리기 위해, '그것'은 도박을 감행했다.
덴오가 가진 최대 최강의 일격.
그것은, 한점의 파괴력만 보면 덴라이너의 포격보다도 위였다.
바꿔말해, 그것만 막을 수 있으면 덴오의 어떤 공격도 통하지 않는다는 뜻.
그렇기 때문에 일부러, 자신의 심장을 바깥으로 드러내 저 일격을 유도했다.
결과는 대성공. 까딱 잘못했으면 죽었을지도 모르지만, 이걸로 확실해졌다.
자신의 힘은, 이미 덴오따위는 상대조차 되지 않을 정도라는 것이.
'그것'은, 점점 모습을 변했다.
식물에서, 괴물의 모습으로.
지금까진 단순한 식물의 줄기였던 것들도, 점점 '뱀'처럼 변해갔고.
발광체의 윗부분에 있던 꽃은, '공룡'의 머리와 같이 변했다.
그것은, 이미 한마리의 거대한 '화수(花獸)'.
덴라이너는 물론, 기지조차도 훨씬 웃도는 거구의 괴물.
그런 것이, 이빨 하나 크기조차 되지 않는 인간을 향해 입을 열었다.
나노하들이 기지로 돌아왔을 때 발견한 것은, 엉망으로 부서진 기지.
그리고 그와 비슷할 정도로 부서진 덴오였다.
료타로가 의무실에서 정신을 차린 것은 그로부터 꼬박 하루가 지난 다음이었다.
나중에 자료영상을 돌려보고 안 사실이지만, 빈사상태에 가까웠던 그를 화수에게서 빼낸 것은 자피라와 샤멀 두 사람. 하지만 그 때문에 전투기인들에게 빈틈을 보여버려, 두 사람 역시 크게 부상당하고 말았다(물론 가장 부상이 심했던 건 료타로였지만).
료타로는 시그넘과 비타의 추궁끝에, 그 화수에 대한 것을 털어놓게 된다.
그것은, 시간을 먹어치우는 힘.
가오라이너와 마찬가지로, 시간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지워'버릴 수 있는 힘을 가진 존재.
말하자면, 이미 '신의 영역'에 도달한 능력을 지닌 괴물이라는 것.
그렇기 때문에 덴오조차도 그의 공격에는 회복이 느렸던 것이다.
─시간에 묶여 어떤 상처도 금방 회복되는 몸이지만, 상대가 '시간' 자체를 파괴할 수 있는 괴물이라면 의미가 없다.
하지만 저 괴물이 원하는 것은 자신의 능력에 따라오는 '시간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 전체를 지배하는 것.
괴물이면서도 지극히 인간같은 욕망을 품고 있는 괴물에게, 시간을 지키는 덴오는 단 하나의 장애물이었다.
"… 이해는 했다. 이 경우엔 너무 잘해서 화가 치민다만."
시그넘은 드물게 노기가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비타와 하야테가 그 말을 이었다.
"너는, 혼자서 그런 괴물을 상대로 지금까지 싸워왔다고 하는 거군."
"우리들한테는 말 한마디없이 말이죠."
아니, 저 녀석이랑 직접 싸운 건 이번이 처음인데.
라고 변명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기에 료타로는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나노하와 페이트는 비비오의 일로 충격을 받고 다른 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이 일이 그녀들의 귀에 들어가진 않았다는 것.
─물론 지금 당장은 넘길 수 있겠지만 나중에 그녀들이 알게 되면 어떻게 될지 뻔하다.
게다가 료타로로서는 지금 앞에 있는 볼켄리터들과 하야테의 고비를 넘기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 사정은 알겠네요."
하야테는 조용히 한숨을 쉬었다.
분명히 료타로는 자신들이 휘말리길 바라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그가 이제와서 사실을 밝힌 것은, 이미 자신들이 그 괴물의 공격에 휘말려버렸기 때문이다.
만약 이번 일이 아니었다면, 료타로는 끝까지 자신들에게는 말하지 않고 혼자서 싸웠을 것이다.
─그것이 제일 용납이 안된다.
"너는, 우리가 '시간파괴수'따위에게 당할 거라고 생각했다는 거냐."
실로 오랜만에 인간형으로 돌아온 자피라는 이를 빠득갈면서 말했다. 하야테의 앞이 아니었다면 주먹을 날렸을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가─"
"잠자코 있어요. 이 경우엔 료타로군이 잘못한 거니까."
샤멀까지 설교조로 말한다. 거의 죄인 취급.
아니, 확실히 '모두를 위해서'라는 명목이라곤 하나 지금까지 일을 숨겨왔으니 죄인이라고 해도 할 말없다.
"이걸로 한가지는 확실해졌군. 너는 우리들을 믿지 않고 있다."
"─틀려. 나는─"
"아니, 맞다. 너는 우리들을 「소중히」 생각하는지는 몰라도, 「믿지」는 않고 있다. 정말로 우리들을 믿는다면, 도움을 요청하진 않았을지언정 지금까지 숨겨오진 않았을 거다."
…… 시그넘의 말이 틀린가.
료타로는 자신에게 반문해보았다.
분명히, 그녀들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 않다던가 이건 자신의 싸움이니까 그녀들을 휘말리게 하고 싶지 않다는 것은 진심이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그녀들이 다치게 되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았다.
"… 나중에 나노하짱이랑 페이트짱한테도 제대로 사과해두세요."
천천히.
하야테와 볼켄리터들은 자리를 떴다.
혼자 남은 료타로는, 한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어떻게 했어야 했던걸까.
진심으로 소중하다고 생각하니까, 싸우게 하고 싶지 않았던 것 뿐인데.
시간은 경과하고.
결전의 순간이 다가왔다.
하지만 그 전까지, 료타로는 나노하와 페이트들을 만나지 않았고.
하야테와 볼켄리터들과도 얼굴을 마주하지 않았다.
'… 역시, 여기까지로구나.'
10년. 생각해보면 상당히 오랜 시간이었다.
그녀들 덕분에, 망가지지 않고 싸워올 수 있었다.
그걸로, 충분하다.
─끝이 이렇다는 건 씁쓸했지만, 이 이상 그녀들을 자신의 싸움에 말려들게 할 수 없다.
그랬다간, 틀림없이 그녀들이 부서져버린다.
아이리처럼, 사쿠라이처럼.
그렇게 되기 전에.
─화수를 없앤다.
─그리고, 두번다시 이곳으로 돌아오지 말자.
이 싸움이 끝나면, 예전처럼 시간의 세계로 들어가 나오지 않을 생각이다.
그러면 더이상 그녀들을 만날 일도, 그녀들을 휘말리게 할 일도 없어진다.
─지금의 료타로는, 그런 식으로 '지킨다'는 것 외의 방식을 할 수 없었다.
시공관리국과 기동 6과가 성왕의 요람을 요격하는 동안.
료타로는, 또다시 혼자 화수(花獸)에 맞섰다.
설마 그렇게 심하게 당해놓고 이번에도 혼자 갈거라곤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맹점을 찔렸다고 볼 수 있다.
덴오는 다시 한번 화수에게 도전장을 내민다.
─설령 이번에야말로 죽게 된다고 해도.
그 녀석만은 반드시 쓰러트린다.
나노하들에게는, 이 세계에 있는 친구들에게는 절대로 손대지 못하도록.
굉음이 울린다.
화수의 촉수 중 하나가, 덴오를 후려치면서 생긴 소리.
"으, 윽…!!"
아무것도 통하지 않는다. 모모타로스의 검도, 우라타로스의 기술도, 킨타로스의 힘도, 류타로스의 화력도. 이런 상황에서 제대로 상대가 될 리 없다.
싸움이 시작된지 수십분만에 엉망으로 파괴된 덴오의 슈츠.
마찬가지로 엉망이 된 덴오의 검.
지금의 덴오는, 검을 지팡이 삼아 간신히 서있을 뿐이다.
[소용없다. 네녀석이 가진 것 중 가장 위력이 강한 건 풀 스로틀 브레이크. 그것이 내 심장에 상처조차 낼 수 없는 것이라면, 다른 힘따윈 빌려봤자지.]
"…… 말도 할 수 있을만큼, 지능이 높아진 건가…"
역장에게 들은 바로, 저 화수는 처음에는 작은 식물에 지나지 않았다고 한다.
그랬던 것이, 어느 틈엔가 저런 괴물이 되어버렸다고.
[아직도 모르는건가.]
"……?"
[내가 먹은 건 네가 쓰러트리고, '너희들'이 소멸로 이끈 이매진들이다.]
덴오는 한순간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지금 무슨 소릴 한 거지?
['원한'과 '증오'라고 하는 감정은 의외로 끈질기거든. 설령 존재 자체가 지워진 존재들이라고 해도, 이매진들이 '한번 존재했었던 것들'이라는 것은 변하지 않으니까. 알고 있을텐데? '시간의 세계'는, 존재하는 모든 시간과 연결된 곳. 보통의 세계에서는 이매진들의 존재나 이매진들에 대한 기억마저 깨끗이 지워졌는지 몰라도, 시간의 세계에서만큼은 '이매진들이 존재한 과거'까지 지워지진 않는다. 당연히 놈들이 남긴 원한도 여기로 모일 수밖에.]
화수는 천천히 자신의 촉수의 형태를 변화시켰다.
─촉수 하나하나가, 료타로와 모모타로스들이 쓰러트리고 소멸시켰던 이매진들의 모습으로 변한다.
[그걸 먹어치우고 힘으로 바꾼 것 까진 좋았는데, 그 힘이 어느 정도인지는 알 수 없었지. 그래서 주위의 짐승들을 괴물로 변화시켜 네놈에게 보낸 거다. 이매진들을 모조리 쓰러트린 너의 힘이라면 딱 좋다고 생각했거든. 게다가, 시간을 손에 넣으려면 네가 제일 걸리적 거리기도 하고.]
"…… 시간을 지배하겠다고 하는 건, 이매진들의 영향인가…?"
[확실히 그럴지도 모르지. 내 지식과 내 감정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게 그것들 이니까. 하지만 그런 거, 이제와서 알 게 뭐냐. 중요한 건 지금 '내'가 시간을 손에 넣고 싶어한다는 거다.]
화수는 그 거대한 몸을 움직인다.
그에 따라, 이매진들이 서서히 덴오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그 일에 가장 방해가 되는 게 바로 너고 말이지, 「덴오」노가미 료타로.]
"……"
[알고 있겠지만, 시간에 묶인 네가 데미지를 받지 않는 건, 시간에 지배되는 세계에 있는 존재들의 공격 뿐이다. 마찬가지로 시간의 범위 밖에 있는 이매진들이나 시간파괴수들… 그리고 내 공격에는 대책없단 말이지.]
이매진들이 무기를 들어올린다.
─이렇게 되면, 덴라이너로 자폭이라도 하는 수밖에 없다. 통할지 어떨지는 몰라도.
덴오는 생각을 굳히고.
덴라이너 쪽으로 몸을 돌린다.
─이번에야말로, 지켜주고 싶으니까.
─다시 한번.
──덴오의 앞에, 빛이 나타난다.
───오래 전에 봤던, 분홍색의 빛.
────그리고 지금 다시 떨어진 빛의 기둥은, 덴오 앞의 이매진들을 모조리 날려버린다.
<아, 됐다! 지난번에 할 수 있었으니까 이번에도 되지 않을까 했는데 정답이었어!>
이제 두번 다시 들을 수 없을거라고 생각했던 목소리가 하늘에서 들려왔다.
고개를 들어올려도, 보이는 것은 파란 하늘 뿐.
하지만, 그래도 목소리는 계속해서 들려오고 있다.
<료타로씨, 들려요? … 그쪽 상황은 보이는데 목소리는 안들리네. 이쪽 사건은 해결됐어요. 비비오도 찾았고, 성왕의 요람도 격추했고. 이제 료타로씨만 돌아오면 되요.>
… '돌아오면', 이라고?
이대로 떠날 생각이라는 건 편지에 적어서 남겼을텐데.
차마 얼굴을 보고 작별을 고할 용기는 없었던 터라 그런 방식을 택했다.
<아, 그리고 편지는 읽었어요. 보자마자 찢고 잊어버렸지만. 설마 그런 걸 허락할 거라고 생각한 건 아니죠?>
아니, 허락받고 떠날 생각이었으면 편지같은 걸 남겼을 리 없잖아.
그렇게 생각했지만, 안타깝게도 이쪽의 말은 저쪽에 안들린다.
<하야테짱한테 료타로씨의 일은 들었어요. 그리고… 페이트짱한테 료타로씨의 '시간'에 대한 것도. 잘못이라는 건 알지만, 료타로씨와 덴라이너의 오너씨가 이야기하는 걸 들었대요.>
그때 있었던가… 아마 그때는 '녀석들'과 싸우기 위해 덴라이너의 운행 권한을 완전히 넘겨받을 때였을텐데.
<료타로씨가 얼마나 외롭고 괴로울지, 우리들은 알지 못해요. 료타로씨처럼 '시간'에 묶은 게 아닌 우리들이, 그걸 이해한다고 말하는 건 말도 안되는 소리겠죠. 그러니까,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하나 뿐이에요.>
이미 료타로의 신경은, 완전히 하늘에 쏠려있다.
자신이 나노하의 말을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조차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우리들은 절대로, 료타로씨를 혼자 놔두지 않아요.>
<당신이 시간의 세계에 있든 다른 세계에 있든.>
<반드시 찾아내서, 데리고 올 거니까.>
<그러니까… 계속 함께 있어줘요.>
<이번엔 우리가, 료타로씨를 지켜줄테니까.>
[웃기는 소릴 하는 인간이로군. 가능할 리가 없잖아, 그런 게.]
눈앞의 화수는 나노하의 말을 비웃고 있다.
… 아니, 그쪽이 당연한 반응이겠지.
정말로, 가능할 리가 없는 꿈같은 소리니까.
애초에, 살아가는 시간이 너무나도 다르니까.
그녀들이 계속 나이를 먹고.
그녀들이 이 세상에 없게 된다고 해도.
자신은 지금과 변함없이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그걸 알고 있으면서도.
─어째서 자신은, 기뻐하고 있는거지?
검을 들어올린다.
분명히 조금전까진 무거워서 들어올릴 수도 없었던 검이, 너무나도 쉽게 들려졌다.
그것을 보고, 이매진 몇이 달려든다.
단 한번 검을 휘두른 것으로, 전부 베어버리지만.
[아직도 그런 힘이 있는거냐. 인간주제에 터프하군.]
뭐야.
충분히 싸울 수 있잖아, 나.
료타로─ 덴오는 검을 고쳐쥐며 웃었다.
아아, 그렇다.
자신은 아직도 싸울 수 있다.
정말로 좋아하는 친구들이 기다려주고 있으니까, 얼마든지 싸울 수 있다.
자신이 완전히 다른 시간을 걸어간다는 것도.
이미 인간이라고 할 수 없는 존재인데도.
그녀들은, 나노하는 함께 있어준다고 한다.
비록 그게 꿈같은 이야기라고 해도, 가능할 리가 없는 일이라고 해도.
'누나…'
검의 레버를 당긴다.
다시 한번 금빛의 선로가 생겨나, 화수의 심장에 도달한다.
그리고 그 일직선상에 있는 이매진들이 모두 선로에 쓸려 소멸한다.
'아이리 누나…'
금색으로 빛나는 열차가 나타나고.
덴오의 몸은, 다시 한번 열차와 달리기 시작한다.
'나 말이지, 도망치고 있었어. 누나 핑계로.'
소중한 것을 잃었을 때의 상실감과 무력감. 그리고 절망.
그걸 피하기 위해서, 이번에도 도망치려고 하고 있었을 뿐이다.
'미안. 그렇게 약속해놓고, 또 한심한 꼴 보여서. 하지만… 이제 괜찮아.'
이젠 아무것도 잃어버리지 않아.
두번 다시 무너지는 일도 없어.
설령 이번에도 상처를 입게 된다고 해도.
시간이 자신과 친구들을 갈라놓을 때까지.
이를 악물고, 이번에야말로 반드시 지켜낼거야.
「전차 베기電車切る」
덴오의 일격이, 다시 한번 화수의 심장을 강타한다.
한번 베고, 그 힘을 버티지 못해 검과 함께 날려가 넘어지는 꼴 사나운 모습을 보이긴 했지만.
쩌적─
하는 소리와 함께.
화수의 심장에, 금이 갔다.
[말도 안돼…?! 뭐야, 이건?! 있을 수 없다, 이런 일따윈?! 이런 걸, 인정할까보냐!!]
효과가 있다.
지금까진 전혀 통하지 않았던 공격이.
검을 쥐고 들어올린다. 상처투성이의 몸인데도, 평소처럼─ 아니, 평소보다도 빠른 움직임으로.
[웃기지 마라…!! 시간을 지배하기 위해서 태어난 내가, 시간을 지키는 인간따위에게 당할 것 같으냐!!]
화수는 다시 한번 이매진들을 불러낸다.
그와 동시에, 뱀의 형태를 한 촉수들마저 만들어내 덴오를 공격한다.
─검이 내려와, 촉수를 자른다.
─석장이 떨어져, 이매진을 꿰어버린다.
─도끼가 이매진을 둘로 쪼개버린다.
─자주빛 빛덩어리들이 이매진들을 부순다.
─새하얀 깃털들이 촉수들을 터트린다.
"이건…"
이 무기들도, 이 공격 방식도.
너무나도 익숙한… 그리고 너무나도 그리운 이들의 것이다.
[또 혼자서 무리하는구만, 너.]
[동감이네요, 선배. 하지만 그래도 대단한걸요.]
[으음, 못보던 사이에 강해졌구나, 료타로.]
[우와! 저기 이상한 꽃있다! 아니, 도마뱀인가?]
[이건 또 기이한 식물이로고. 나로서도 처음보는군.]
잊지 않고 있는 목소리들이 들려온다.
아니, 잊을 수 있을리가 없다.
'이 녀석들'의 목소리만은, 아무리 시간이 흐른다고 해도 잊을 수 없다.
"우라타로스…"
[오랜만이네, 료타로. 근데 오너 말대로 하나도 안변했네.]
파란 거북이의 모습을 한 이매진의 이름을 부른다.
거짓말쟁이지만, 신뢰할 수 있는 친구.
"킨타로스…"
[오, 료타로. 다시 만나게 되서 굉장히 기쁘다.]
금색 곰의 모습을 한 이매진의 이름을 부른다.
바보지만, 누구보다도 믿음직스러운 친구.
"류타로스…"
[히히, 료타로 오랜만~!]
보라색 용의 모습을 한 이매진의 이름을 부른다.
철없는 어린애지만, 언제나 밝고 쾌활한 친구.
"…… 에, 그러니까… 지크?"
[어째서 나의 이름을 기억해내는 것에는 그렇게 애를 써야 하는건가.]
하얀 새의 모습을 한 이매진의 이름을 기억해낸다.
함께 한 시간은 얼마 안되지만, 그래도 소중한 친구 중 하나.
그리고…
[여어, 료타로. 몇년만인지 기억도 못하겠지만, 잘 지냈냐?]
"모모타로스…"
붉은 도깨비의 모습을 한 이매진의 이름을 부른다.
누구보다도 먼저 만났고.
누구보다도 오랫동안 함께 싸웠고.
누구보다도 의지할 수 있는 친구.
"… 잠깐만. 너희들, 어떻게 여기에 있는거야?!"
[덴라이너 오너랑 나오미가 킹라이너로 데리러 왔었어. '료타로군이 핀치인데 도우러 안갑니까?'라고. 데네브는 못오게 됐다고 엄청 슬퍼했지만, 그 녀석은 우리랑은 달리 붙어있는 사람이 보통 사람이니까 혼자 두고 올 수도 없었지.]
[솔직히… 네가 지금까지 살아있을 거라곤 생각도 못했거든. 우리들도 다른 세계에서 좀 놀고 있어서, 네 소식은 전혀 못들었으니까.]
"다른 세계?"
[하르케… 거북아, 뭐였냐? 거기 이름이?]
[하르케기니아. 이제 좀 외울 때도 되지 않았나요, 선배. 뭐, 지금은 저걸 처리하는게 우선인 것 같지만.]
우라타로스가 화수를 손가락질하며 말하자, 킨타로스와 지크가 말을 잇는다.
[동감이다. 그런데, 무지 크군. 저렇게까지 큰 건 하르케기니아의 환수 중에도 없었는데.]
[믿기진 않지만, 이매진의 느낌도 어느 정도 나고 있다. 기분나쁘군.]
한편, 화수 쪽은 분노를 있는대로 터트리고 있었다.
[이매진의 배신자 놈들이, 내 앞을 가로막는거냐!!]
[배신자라니, 듣는 사람 기분나쁘게. 게다가 애초에 그쪽 편이었던 적도 없다고.]
어쩐지, 모모타로스는 여유가 상당히 늘어난 느낌이다. 옛날엔 좀더 신경질적이었는데.
[가자, 료타로.]
모모타로스는 료타로를 돌아보며 말했다.
아니, 그 만이 아니다. 이 자리에 모인 친구들 모두가, 그를 보고 있다.
[오랜만에, 모두 같이 한번 날뛰자고.]
그 단순한 말이.
이렇게까지 기쁘게 들릴 수 있을까.
"응… 응!!"
눈물마저 고인 눈으로.
료타로는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Climax plus one」
최강이자 최고이자 최후의.
진정한 '시간의 기사'가, 모습을 드러낸다.
여러가지 색이 섞인 슈츠.
그 슈츠에, 이매진들의 얼굴이 여기저기에 붙은 기괴한 모습.
그리고 그 등에는, 하늘색의 날개가 펼쳐져 있다.
[[[[[[말해두겠는데.]]]]]]
여섯명의 목소리가, 멋지게 겹쳐진다.
[[[[[[우리들은 최초부터 클라이맥스라고!!]]]]]]
"저게… 료타로씨의 친구들…"
붉은 도깨비, 파란 거북이, 금색 곰, 보라색 용, 그리고 하얀 새.
과연, 료타로에게 듣던 그대로다.
"시간의 세계에 들어갈 수 없는 우리들로서는, 저들이 료타로와 함께 싸워서 이기길 바라는 수밖에 없다는 거군."
시그넘이 이를 빠득갈면서 한 말은, 여기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심정을 대변한 말이었다.
─한 사람만 빼고.
"아니, 있어요. 도울 수 있는 방법이."
나노하를 돌아본다.
그녀는 레이징 하트를 들고, '저쪽'을 겨누고 있다.
"잠깐만, 나노하! 지금은 료타로씨들이 근접전으로 싸우고 있어! 나노하의 그거라면 료타로씨들까지…"
"지금 쏘려는 거 아냐. 기다려야지."
"… 기다린다니?"
나노하는 작게 웃음을 띄며, 하지만 눈은 '저쪽'에 고정한 채로 대답했다.
"료타로씨가 날 부를 때까지."
[이매진 몇놈의 힘을 빌린 정도로, 이 나를 쓰러트리겠다니!! 오만도 정도껏 가져라!!]
몸을 위로 띄운다.
그 바로 아래로, 직경 2m에 달하는 거대한 촉수가 훓고 지나간다.
저쪽의 입장에서는 '슬쩍 건드려보는' 수준의 공격도, 이쪽의 입장에선 죽음의 일격이다.
[어떻게 생각하나.]
[예상외로 단단한데요.]
[으음, 확실히 료타로가 그 지경이 될만하군.]
[저기저기, 이 녀석 식물이야, 동물이야?]
[이 상황에서 그런 말이 나오냐, 바보가.]
"저기, 모두… 조용히 좀 해주면 안될까…"
료타로의 말은 가볍게 무시당했다.
그렇다곤 해도 화수는 확실히 강적이었다. 이매진 다섯의 힘을 빌린 이 모습인데도 호각 이하. 생각해보면 라이너폼으로 잘도 거기까지 버텼다.
[이대로는 교착 상태가 계속될 뿐인데요.]
[동감이다. 무슨 수를 내지 않으면, 체력이 다하는 건 우리가 먼저겠지.]
[하여간, 저런 괴물이 어디서 튀어나와가지고 이런 고생을 시키는건지.]
[그치만 저거 디게 재밌다. 촉수도 나오고 이매진도 나오고.]
[그게 제일 짜증나. 아무리 부숴도 끝이 없잖아.]
"아니, 있어. 방법이."
순간, 이매진들의 의논이 멈췄다.
료타로의 입에서 생각지도 못한 말이 튀어나왔기 때문이다.
[… 진짜냐, 료타로.]
지금 덴오의 몸을 움직이고 있는 모모타로스가 질문한다.
료타로는 대답하지 않았지만… 모모타로스는 긍정이라고 생각했다.
[좋아. 그럼 그걸로 가자고. 통할지 어떨지는 그때 가보면 알겠지.]
… 역시, 모모타로스도 그때 그대로다.
새삼 그렇게 느끼며, 료타로는 입을 열었다.
"풀 차지로, 전력공격하자."
[… 어디를 목표로?]
"아까 전차 베기로 심장에 균열 만들어놨어."
[… 과연. 그거라면 통할지도 모르겠는걸.]
[하지만 료타로. 위험이 너무 커. 저 녀석이 막기라도 하면 거기서 실패라구.]
"괜찮아. 그거라면."
료타로는 웃으면서 말했다. 아니, 물론 지금은 얼굴을 움직일 수 없으니까 '웃는 느낌'으로 말한 거지만.
[… 좋아. 한번 해보지.]
모모타로스는 패스를 벨트 앞으로 가져갔다.
「Charge and Up」
벨트가 순서대로 다섯 개의 빛을 뿜어낸다.
붉은 빛, 푸른 빛, 금빛, 보라빛, 그리고 하얀 빛.
그 빛들이… 다섯 이매진의 힘이, 전부 오른발 하나에 모인다.
[이 몸의… 아니지, 아니야.]
모모타로스는 천천히 몸을 낮춘다.
오른발을 앞으로 내밀고, 몸을 옆으로 튼 채.
[우리들의 필살기, 클라이맥스 윙 버전!!]
날개의 힘을 빌려, 하늘 높이 날아오른다.
[멍청한 놈들이, 정면으로 덤비겠다는거냐!!]
화수는 냉소를 터트리며, 촉수들을 전부 끌어모아 자신의 앞에 펼쳤다.
─그렇다. '전부'를.
그러니까 저것만 돌파하면 이쪽의 승리다.
[이제 어쩔거냐, 료타로.]
공중에 떠서, 떨어지기 직전.
모모타로스가 료타로에게 물었다.
확실히, 지금의 덴오에게도 저것을 돌파할만한 힘은 없다.
하지만─
"괜찮아."
이번에는 문제없다.
"빌릴 수 있는 힘이라면, 하나가 더 있으니까."
료타로는 위를 올려다본다.
그리고, 그 위에서 빛을 발하는 하얀 소녀를 바라봤다.
"그렇지? 나노하."
「Star Light Breaker」
10년 전에 두번.
그리고 조금 전에 한번.
료타로의 삶을 바꿔놓은 분홍빛이 떨어진다.
그리고, 그 빛은 고스란히 덴오의 오른발에 흡수된다.
[뭐야, 이거?!]
[우와, 이건 굉장한데요, 선배!!]
[출력만 따지면 우리 다섯보다 이쪽이 더─]
[굉~장해! 엄청 멋진 빛이야, 이거!]
[이게 정녕 인간의 힘이란 말인가…!]
다섯 이매진들이 경악하는 소리가 한꺼번에 들려오지만.
그런 것따윈 아무래도 좋다.
"이게 우리들의……"
료타로는, 힘을 담아 외쳤다.
"전력전개 클라이맥스다아아아아아!!"
「Extreme Star Strike」
[너치곤 나쁘지 않은 이름이잖냐, 이거.]
모모타로스의 아주 작은 감탄을 남기고.
여섯개의 색이 소용돌이치는 빛은, 화수의 모든 방어벽을 뚫고 그 심장을 파괴한다.
화수는 단말마의 비명조차 남기지 못하고 소멸된다.
그리고…
─씨.
─로 씨.
"료타로 씨!!"
"히이이이이익?!"
료타로는 갑자기 들려오는 소리에 소파에서 떨어졌다.
"으, 으읏…… 나노하?"
"정말이지, 언제까지 자고 있을 생각이에요."
나노하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빨리 일어나세요. 다들 기다리고 있으니까."
"… 아, 그랬지. 오늘이 그거였구나."
화수를 쓰러트린지, 반년이 지났다.
성왕의 요람을 격추하고, 스칼리에티 사건을 종결시켰으며, 거기다 시공의 붕괴가 될뻔한 사건을 막아낸 공적덕분이랄까, 기동 6과는 그대로 존속하는 쪽으로 결정되었다.
오늘은 그 기념식.
"빨리 가요. 오늘은 모처럼 하르케기니아에서 타로스씨들도 놀러와줬고, 재활훈련이 끝난 전투기인 여러분도 참가해줬으니까."
"… 대인원이네."
고개를 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 그러고보면 옷까지 다 갈아입어놓고 깜빡 졸아버린 자신이 잘못한 거라는 생각도 들지만.
"아아~ 옷 구겨져버렸네."
"됐으니까, 빨리 가요. 어차피 료타로씨가 '그런 사람'이라는 건 전투기인들까지 다 아니까."
그랬다. 전투기인들의 재활훈련에는 료타로도 참가했으니까.
… 료타로가 가진 극도의 '언럭키'에 대한 것까지 알고 있으니 말 다했지.
료타로는 자리에서 일어나, 나노하를 따라 기념식장으로 걸어갔다.
걸어가다 말고.
나노하가 몸을 빙글 돌려 말을 걸었다.
"참, 료타로씨. 그때 했던 약속, 아직 유효해요?"
약속? 그런 걸 했던가.
료타로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나노하는 '어쩔 수 없네'라는 느낌의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앞으로도 계속, 우리들이랑 같이 있어주는 거죠?"
그러고보니, 이 반년동안 그것에 대해 제대로 이야기하지 않았다.
… 역시, 대답하지 않으면 안되겠지.
료타로는, 얼마만인지 모를… 진심으로부터 우러나오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응. 언제까지라도, 함께."
이번에야말로, 진심을 담아서.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