上
"이걸로 세라자드는 살 수 있다..."
살라딘은 자신의 옆에 있는 세라자드의 시신을 몇번씩 곁눈질 하며 아수라를 꺼내들었다. 아수라에 자신의 영혼을 봉인하고 자신의 돌(Doll)을 세라자드에게 넘긴다. 그것이 살라딘이 선택한 방법이었다. 집착이라해도 좋았다. 자신은 그저 세라자드가 살아주기를 바라고 있으니까. 그렇게 살라딘은 천천히 자신의 가슴에 아수라를 박아넣고 있었다.
그 순간...
'안돼!'
"누구...?"
갑자기 머릿속에서 울려퍼지는 외침에 살라딘은 자신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그리고 그 순간... 아수라가 격렬히 요동치며 빛을 뿜기 시작했다. 살라딘은 다급히 아수라를 제어하려 했으나 아수라는 살라딘의 제어를 벗어나 엄청난 빛을 뿜었다.
그리고 잠시 후. 살라딘은 그 기계장치에서부터 사라져 버렸다. 그 존재를 증명할 무엇하나 남기지 못한채...
"드디어 닭고기 전골이 완성되었군요."
"평소는 어딘가의 바보때문에 꽤나 늦어지지만 말이지."
여느때와 같이 느긋하기 짝이 없는 마사키가에서는 간만에 텐치 특제 닭고기 전골을 맛보기 위해 식탁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이런저런 이유로 맛보기 힘든 텐치 특제 닭고기 전골은 마사키가의 식탁 전반을 책임지는 사사미조차도 기다릴 정도로 호평인 음식이었다. 뭐, 언제나 첫번째건 쿠라미츠 미호시의 추락에 의해서 실패하게 되었지만 오늘만큼은 미호시가 도착한 후 했기 때문에 곧바로 먹을 수 있었다. 아니 먹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하늘은 언제나 잔혹했다.
늘 말썽을 일으키는 미호시가 말썽을 일으키지 않으니 하늘은 마사키가를 향해 다른 말썽을 보냈다.
피이이이잉-
"응?"
"갑자기 왜 그래 와슈?"
"아니, 조금... 뭐랄까 뭔가 떨어지고 있는듯한 느낌이 들어서 말이야."
"떨어져?"
"설마요, 미호시양은 집에 있잖아요. 이 집에서 추락과 연관된건 미호시양 정도..."
"미나기라던가..."
"설마..."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던 마사키 일가는 점점 크게 들려오는 추락음을 들으며 식은 땀을 흘렸다.
"혹시나... 혹시나...?"
"역시나인가..."
허탈한 표정을 지으며 내뱉는 텐치의 말과 함께 텐치의 집 호수에 무엇인가가 떨어졌다. 그 충격에 의해 호숫물은 크게 치솟으며 텐치네 식탁을 덮쳤다. 결국 마사키 텐치 특제 닭고기 전골은 여느때 처럼 2세트째를 준비해야만 했다.
"그나저나 방금 떨어진건 대체..."
와슈가 방금 마사키가 옆에있는 호수에 떨어진 '무언가'에 대해서 의문을 떠올렸을 때 쏟아져 내리는 호수물 사이로 한 인영이 모습을 드러냈다. 대략 와슈나 사사미정도의 키를 지닌 흑발의 소녀였다. 소녀는 기절해 있는 사람을 끌고 마사키가 사람들을 향해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저기... 누구 응급처치 할 줄 아는사람?"
소녀의 말에 마사키가 전원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소녀를 응시했다.
하늘에서부터 갑작스럽게 떨어져 내린 불청객에 의해서 마사키가의 전골파티가 무산된지 어언 일주일이란 시간이 흘렀다. 갑작스럽게 나타난 불청객 두사람, 정확히는 검 하나와 청년 한사람인 둘은 서로 쌀랑한 기운을 풍기며 마사키가에서 머물고 있었다.
"어째서 날 이곳으로 날려보낸거지?"
"네가 하는 짓이 참 같잖아서 그랬다 왜?"
검을 머리칼을 흩날리며 말하는 아수라의 말에 살라딘은 얼음장 같은 표정으로 자신의 건 슬라이서인 크로슬리 커스텀의 날을 뽑았다. 살라딘이 건 슬라이서의 날을 뽑자 아수라는 싸늘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실력행사를 해보겠다 이거지? 벌써 3번씩이나 져 놓고서 말이야"
아수라의 말과 함께 어느새 아수라의 손에는 칠흑의 검이 들렸다. 특별한 특색이 없는 흑색의 장검... 하지만 아수라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었다. 아수라가 사용하는 검이었다. 그것만으로도 왠만한 전설의 검은 명함조차 내밀지 못할 강력함을 자랑했다.
"와슈 스톱!!"
그렇게 말도 못하게 흉흉한 분위기를 흩뿌리던 두 사람은 갑자기 난입한 한 인물에 의해 처절하게 응징 당했다. 갑자기 난입한 인물은 마사키가에서도 최 연장자인 하쿠비 와슈. 그녀는 평소 자신이 종종 당하는 쥘부채로 두사람을 난타하기 시작했다. 일장의 신무(神武)가 끝나고 와슈는 기운이 빠진 두사람을 끌고 밖으로 향했다.
밖에서 싸우면 사람들에게 피해가 간다고 와슈의 이차원 공간에서 싸우는 두사람이었지만 와슈에게 있어서 두 사람은 그야마로 최강의 민폐덩어리였다. 텐치만큼은 아니지만 공간에 영향을 줄 정도의 초 강자들. 당연히 자신이 만든 이차원 격리공간 조차도 그들의 여파를 완전 해소하지는 못했다.
"정말인지... 지난 일주일간 싸운거면 충분하잖아! 조금은 건실한 일을 하라고!!"
솔직히 와슈가 할말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는 두사람이었으나 그 말을 함부로 내뱉을 만큼 담량이 좋은 두사람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녀의 진체가 뭔지. 그녀가 어떤 존재인지에 대해서 말이다.
봉인이 된 상태라 하더라도 신역에 다다른 둘은 단번에 느낄 수 있었다. 와슈와 사사미가 지닌 힘을, 그리고 자신들과는 차원이 틀린 신격을... 아마 안타리아를 만든 25명의 주신이 전부 모여 아스모데우스를 타고 달려든다 할지라도 어찌할 수 없을 정도로 무지막지한 신격을 지닌 상대여서야 천하의 아수라라 할지라도 질려버리는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와슈언니! 밥먹으러 온거야? 아슈쨩이랑 살라딘 오빠도 있네?"
마사키가의 가사 전반을 책임지는 사사미는 두사람을 끌고나오는 와슈를 보며 반가운 표정을 지었다.
최근 아수라와 살라딘에게서 얻은 자료를 통해 새로운 연구를 하기 시작한 관계로 식사를 거르는일이 종종 생긴 탓이었다. 뭐 살라딘과 아수라의 경우에는 다른 일때문에 식사를 거르는 상황인지라 밥을 차리는 사사미로서는 아쉬움을 금치 못했었다.
"그럼 간만에 모두와 함께 식사인거네~"
즐거워 하는 사사미를 보며 와슈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뺨을 긁적였다. 사실 두사람만 버리고 실험을 계속하려던 와슈는 그런 사사미의 미소에 어쩔 수 없이 두사람을 이끌고 식탁으로 향했다.
팍-
"익숙치 않은 괭이질은 힘들군..."
헐렁한 백색 티셔츠에 갈색 면바지를 입은채로 괭이질을 하고 있는 살라딘은 엉망진창으로 갈려진 밭과 괭이를 번갈아 보았다. 좀처럼 잘 되지 않는 괭이질. 엉망진창인 밭을 보며 살라딘이 느낀 기분은 막 탈옥했을 당시 느낀 무기력감이었다. 자신이 이리도 무능했나 하는... 그런 기분을 간만에 느끼고 있었다. 뭐 그때는 금새 강해지고자하는 소망이 생긴 탓에 금방 사그러들었지만서도...
그렇게 한참 무기력감을 느끼고 있는 살라딘을 향해 텐치가 다가갔다.
"역시 조금 쉬시는게..."
"힘들어서 그런게 아니야. 그저 마음먹은대로 땅이 파지지 않을뿐."
"뭐, 살라딘씨는 농사일이 처음이니까요."
"현재의 나로선 그저 방해가 될 뿐인듯하군."
"아뇨, 이런일은 익숙해지는 거니까요. 그보다 잠시 쉴까요? 사사미가 새참을 가져왔거든요."
"그런가? 고맙군..."
살라딘은 텐치의 손에 있는 사사미의 새참을 보며 고마움을 드러냈다. 하지만 감정표현이 워낙 없는 살라딘이다보니 그걸 텐치가 알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새참을 먹던 텐치는 조심스럽게 살라딘을 향해 물었다.
"저기... 살라딘씨는 어째서 아수라양과 그렇게 싸우는건가요?"
텐치의 질문에 살라딘은 약간 씁슬한 표정을 지으며(그래봤자 텐치로서는 알아보기 힘들지만말이다.) 입을 열었다.
"아직은 말하고 싶지 않군..."
"그렇습니까... 괜한걸 물었네요."
"아니, 그저 말하기 조금 난감한 이야기라 그런것 뿐... 그런데 아수라는?"
살라딘의 질문에 텐치는 살짝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산 건너편에 있는 마사키 신사를 가리켰다.
"카즈히토씨에게?"
"네. 뭐 할일은 다 했지만서도."
아수라의 경우는 사사미를 도와 요리및 청소를 하고 있었다. 뭐 청소한답시고 마사키 신사에 가서 신주인 텐치의 조부 마사키 카즈히토와 한담을 나누는게 평소 그녀의 일상이었다.
"뭔가 여유가 넘치는군... 그녀석은."
"그렇지만도 않아요."
"응?"
살라딘의 반문에 텐치는 난감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아수라양을 데리러 갈때면 어김없이 할아버지랑 검술을 논하거나 직접 검을 맞대는 모습을 자주본다는 것이었다.
"검의 달인인가 보군. 카즈히토씨는..."
"할아버지의 검술은 정말 엄청나다니까요. 순수하게 검술만으로 따지면 우주에서도 상대할만한 사람이 얼마 없을정도..."
"아수라가 검을 맞대는 이유를 알만하군..."
얘기만 들어도 카즈히토가 초검사급... 혹은 그 이상임을 알 수 있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안타리아 최강의 무인 흑태자의 무를 겪고 체현할 수 있는 그녀가 그에게 관심을 가지고 검을 맞댈 이유가 없으니까 말이다.
"뭐 덕분에 한동안 검술 연습은 안해도 되지만서도..."
"걱정말게나 텐치군. 자네의 검술 연습이 방해받는 일은 없을테니까."
텐치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의 뒤쪽에서부터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만하고 건방지면서도 앳된 목소리... 아니나 다를까 흑발을 흩날리며 서 있는 아수라가 있었다.
"무슨 말이지?"
"뭐, 지금부터 검술연습 시작이란거지"
아수라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하늘에서부터 두자루의 목도가 텐치와 아수라의 발 밑에 떨어져내려와 꽂혔다. 발밑에 꽂힌 목도를 뽑아든 아수라가 텐치를 향해 검을 겨누었다.
"기뻐해라 텐치, 당분간 내가 너의 검술을 봐주기로 했다."
"에엣?!"
"걱정말거라. 나는 카즈히토처럼 무르게 할 생각은 없으니까 말이다."
"그런...!"
텐치를 끌고가는 아수라는 갑자기 뭔가를 떠올린듯 살라딘을 향해 말했다.
"살라딘, 지금당장 카즈히토씨에게 가보도록."
"?"
"내 얘기를 듣고는 검을 마주해보고 싶다고 하는군"
아수라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어느새 살라딘의 앞에 두자루의 목도가 떨어졌다. 아수라와 텐치가 들고있는 목도와는 다르게 검은빛이 감도는 흑단목도였다.
"이건...?"
"아무리 전력이 아니라도 그 정도가 되지 않으면 버티지 못할테니까."
'목도든, 너 자신이든 말이지...'
아수라는 뒷말을 삼키며 조용히 텐치를 이끌고 사라졌다. 살라딘은 남겨진 두자루의 목도를 뽑아든 후 산 너머에 있을 마사키 신사를 응시했다.
"오호, 왔는가?"
살라딘이 두자루의 목도를 들고 마사키신사에 오르기 무섭게 같은 흑단 목검을 지니고 있는 마사키 카즈히토가 살갑게 맞이했다. 하지만 살라딘은 저 살가운 표정뒤에 숨겨진 무시무시한 기백을 느낄 수 있었다. 단순히 강함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었다. 완성된 무를 지닌 존재의 기백. 이 기백은 마치...
"초검사(超劍士)"
틀림이 없었다. 강함의 유무는 관계 없었다. 물론 초검사가 되면 강함이 쫓아오기 마련이지만 자신의 무(武)를 가지고 자신의 무를 완성한 존재가 바로 초검사였다. 그리고 지금 살라딘의 눈 앞에 있는 마사키 텐치의 조부이자 마사키 신사의 신주인 마사키 카즈히토는 그런 초검사였다.
"호오, 내 기백을 느낀건가? 아수라양의 말처럼 그렇게 그른건 아닌것 같구만"
"큿..."
살라딘은 갑자기 한층더 강렬해진 기백에 두자루의 목도를 고쳐잡고 땅을 박찼다. 더 이상 대치했다가는 카즈히토의 기백에 완전히 먹힐것만 같은 상황이었다. 차라리 무(武)를 모르면 또 모를까 무에 발을 담고 잇는 사람으로서 카즈히토의 기백은 힘의 강함에 관계없이 자신을 삼킬듯한 힘을 지니고 있었다.
딱-
요란한 소리와 함께 살라딘과 카즈히토의 흑단목도가 격돌했다. 단순한 격돌이었지만 살라딘은 카즈히토의 검에서 상당한 발발력을 느꼈다. 단순히 악력이라던가 그런건 아니었다. 단순한 악력만으론 이런 반발력이 나올 수 없으니까 말이다.
"하앗!!!"
살라딘은 재빨리 들고있는 두자루의 목도를 휘둘러 맹공을 가했다. 지금 살라딘이 펼치고 있는 검은 하나의 검술이 아니었다. 어렸을때 익힌 왕국검법을 시작으로 기파랑 사부에게서 익힌 한제국검술과 제국검술. 그리고 투르제국의 슈미터검술까지 무척이나 다양하게 펼쳐지고 있었다. 만약 초검사급의 상대가 아닌 사람이 살라딘을 마주했다면 순식간에 손발이 어지러져 당했을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마사키 카즈히토는 초검사반열에 든 존재. 이정도에 당할만큼 녹록한 존재가 아니었다.
"한제국검술에 제국검술, 왕국검법에 시반슈미터의 검술인가. 참 다양하게도 익혔구만. 그중에서 가장 몸에 익은건 한제국검술과 시반슈미터의 검술인가?"
"!!"
무표정으로 일관해온 살라딘의 얼굴에 경악이 드러났다. 그도 그럴것이 자신의 검술을 완전히 꿰고 있었던 탓이었다. 아니 그전에 이 세계에 없는 검술을 어떻게 알고 있는지가 더 의문이었다. 하지만 그런 의문에 깊게 빠져있을 여유는 없었다.
조금이라도 긴장을 늦추면 자신의 검권의 빈틈으로 어김없이 카즈히토의 목도가 파고드는 탓이었다. 검술의 문제가 아니었다. 뭐랄까... 검술이 아닌 무언가가 이런 차이를 만들고 있었다.
'이대로는 안돼...'
살라딘은 이대로가다가는 자신이 철저하게 카즈히토의 검에 유린당할 것임을 직감했다. 그리고 이대로는 안된다 생각한 살라딘은 재빨리 강맹한 기파를 발해 카즈히토를 물러서게했다. 갑작스럽게 살라딘의 몸에서 발해지는 기파에 살짝 물러선 카즈히토는 갑자기 두자루의 목도를 땅에 박아넣는 살라딘을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저 기술은...!"
카즈히토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기술이 살라딘의 손에서 펼쳐지려 하고 있었다. 물론 그 위력도 말이다. 아무리 금방 복구할 수 있다지만 자신의 신사가 날아가는건 솔직히 싫은 카즈히토였다. 그렇기에 카즈히토도 목검을 땅에 박아넣었다. 살라딘이 사용하는 오의를 방해하기 위해서.
"제국검술 비전 천지파열무!!"
"타핫!"
두사람의 기운이 지맥을 타고 흐르기 시작했다. 지맥을 타고흐르는 두사람의 기운은 서로의 기운을 밀어내고 잠식해가며 서로의 영향력은 다투었다. 서로 엇비슷한것 같았으나 실질적으로는 살라딘이 밀리고 있었다. 살라딘이 쏟아부은 힘이 모자란 것이아니었다. 제어도 충분히 완벽했다. 다만... 그의 눈앞에서 그가 알고 있는 기술을 사용하는 마사키 카즈히토 때문에 동요한 탓이었다.
'저 기술은 사부님의 위풍당당..! 어째서 저 사람이...!'
살라딘이 동요하기 무섭게 카즈히토의 기가 지맥을 장악하고있던 살라딘의 기를 모조리 제압해 버렸다. 역류된 기에 의해 살라딘은 자신이 들고 있던 목도가 파괴되었으나 그건 무척이나 사소한 일이었다.
지금 자신이 알고자 하느 일에 비하면 말이다.
"카즈히토씨... 어떻게 사부의 비기인 위풍당당을 알고있는거지?"
"사부? 호오, 그런가? 자네가 바로 '필립'이로구만."
이세계에서... 그것도 이전세계에서 한번도 만나보지 못했던 사람에게서 자신의 본명을 듣게된 살라딘은 경악을 금치 못하며 카즈히토를 바라보았다. 카즈히토는 사람좋은 미소로 살라딘을 보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기파랑에 대해 듣고 싶은겐가?"
카즈히토의 말에 살라딘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되셨습니까..."
"한(韓)의 흔적을 찾겠다며 고려로 건너간 후에는... 아무런 소식이 없었지. 아마도 그곳에서 생을 마감했을거라 사료되네."
녹차를 홀짝이며 말하는 마사키 카즈히토의 말에 살라딘은 자신도 모르게 침울한 표정을 지었다. 처음 사부의 비기인 위풍당당을 봤을 때 만해도 사부를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카즈히토의 말에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마사키 카즈히토가 사부와 만난것은 벌써 700년도 더 된 이야기... 마사키 일가같은 존재가 아닌 평범한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살아남을 수 있는 세월이 아니었다.
"기파랑... 그녀석은 마지막에 떠나가면서도 제자걱정을 많이했지. 좀더 가르치지 못한게 한이라더군..."
"사부님..."
자신을 지키기 위해 묵호자와 싸우고 이세계에 떨어져서도 자신을 끊임없이 걱정한 한제국의 화랑 기파랑을 떠올리며 자신의 어렸을 적을 추었했다. 살라딘의 추억이 끝나기 무섭게 카즈히토는 살라딘의 전신을 훑어보며 입을 열었다.
"미안하지만, 기파랑에 대한이야기는 조금 있다가 계속하고 지금은 아수라양의 부탁을 먼저 행하도록하지."
"아수라의... 부탁?"
살라딘의 물음에 카즈히토는 녹차를 한모금 넘긴 후 말을 이었다.
"자네의 검술은 이미 완성단계에 이르렀네. 하지만 어째서인지 완성에 도달하고 있지못하고 있지."
맞는 말이었다. 물론 현재의 살라딘은 자신이 만난 초검사중 최강인 철가면조차 뛰어넘은 상태지만 검술의 완성과는 다른 부분이었다. 더구나 철가면을 능가한 것도 검술로서가 아닌 Doll과 아수라의 상승작용에 의한 부분이 많이 기인했다. 막말로 힘이 세져서 검술이 필요없게 된... 정확히는 검술이 의미없게 된 상황이라고 할 수 있었다.
"뭐, 힘이 넘쳐서 검술이 필요없게 된 상황이라면 조금 틀리겠지만 자네의 경우에는 그것이 아니니까 말이지."
"..."
확실히 힘이 넘치기는 하지만 아직 힘에 대한 제어가 불완전한지라 확실히 검술은 필요했다. 하지만 살라딘의 검술은 아직 완성되지 못한 상황이었다. 뭐랄까... 바리에이션은 많지만 그걸 하나로 묶을 만한 기량이 없는 상황이었다.
"뭐 없다기 보다는 정신적 문제같구만. 여자문제인가?"
"..."
"맞는것 같구만. 뭐 남자인 이상은 한번쯤은 꼭 겪게 되는 문제지. 그걸 어떻게 넘기느냐가 다를 뿐..."
찻잔에 남긴 녹차를 다 들이킨 카즈히토는 평소와 같은 미소로 입을 열었다.
"뭐, 이건 내가 어쩔 수 없는 부분이구만. 아수라양에겐 미안하지만 말이지 여자문제에 대한 고민은 자신이 답을 내야하니까 말이야."
"어떻게... 혹시 아수라에게?"
"뭐 귀띔은 들었지만서도. 그 얼굴을 보면 금방 알 수 있다네. 옛날이야기지만 나도 그런얼굴을 했었으니까 말이지."
"그런... 얼굴이라 함은?"
"나도 여자문제로 고민한적이 있었지 정확히 700년 전에 말일세. 그러고보면 그때는 나도 젊었구만...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고민으로 가출까지 하고 말이야."
"가출... 입니까?"
"뭐 여러가지 복합적인 문제가 있었지만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가출임에는 분명하지. 뭐 그렇게 지구에 오게 되었고 지구에서 또다른 여자를 사랑하게 되어 현재에 이르게 된거지만 말이야. 뭐 그 사랑하던 사람도 뒤늦게 다시 만나게 되었지만서도."
"그렇습니까..."
"그러니까 인생선배로서 한가지만 충고해주겠네. 어차피 그 나머지는 자네가 해결해야하는 일이니 말일세."
잠시 한숨을 돌린 카즈히토는 이내 살라딘의 눈을 직시하며 말했다.
"자신의 마음을 속이지 말게나."
"네?"
"책임감이나 죄책감같은걸로 자신의 마음을 속였다간 분명 후회하게 될걸세. 물론 그 사랑은 진실이겠지만 때때로 죄책감과 후회가 끼여져 또다른 진심을 속이게 되는 경우도 종종있지. 자네에게서는 그런 느낌이 들어..."
"저는...!"
"단정지을 수는 없지만 말이지. 뭐 시간은 많으니까 천천히 자신에게 묻는게 좋아. 의외로 가장 알수 없는건 바로 자기 자신의 마음이란 말도 있지 않나? 그러니까 고민하게나 진짜 자신의 대답을 찾기전까지 속이지말고 속지도 말며 자신의 마음에 대해 진정으로 물어보게나."
카즈히토의 말에 채 수긍하지 못하면서도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뭐랄까... 어디선가 공감하는 부분이 있었던 탓이었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서려던 찰나. 카즈히토는 "잠깐!"이라 외치며 살라딘을 잡았다. 그리고 눈을 가늘게 뜨며 살라딘을 향해 말했다.
"아까 대련중에 신사 부순건 치우고가게나."
"네..."
순간 살라딘은 잠시나마 카즈히토의 말에 공감해버린걸 급 후회하고 있었다.
"으아악!!!"
"게 섯거라 텐치! 피하면 수련이 안되질 않느냐!!"
"피하는것도 수련의 일환이에요! 그보다 그런걸 '힘'도 쓰지 않고 검술로만 받아내라니! 가능한겁니까!!!"
"걱정마. 여태까지 100명에 한명정도는 가능했으니까."
"그런!!!"
그시각 이런 느낌으로 마사키 텐치의 비명이 산중에 울려퍼진것은 무척이나 사소한 일이었다.
그날 저녁 마사키신사.
두사람의 훈련(?)을 마친 아수라와 카즈히토는 다른 가족들 몰래 술을 홀짝이며 두사람에 대한 대화를 나누었다.
"그래? 역시 짧은 시간 내로는 무리인가?"
"솔직히 그런 문제는 자기 자신의 문제니까. 제3자의 입장에선 어쩔 수 없는 노릇이지."
"흐음..."
아수라가 뭔가 불만스럽다는듯 인상을 찌푸리자 이번에는 카즈히토가 아수라를 향해 물었다.
"그나저나 텐치는?"
"으음... 뭐라고 해야할까... 신을 초월한 강함은 얻을지언정 너와 같으 궁극의 무에 근접하지는 못할 녀석이랄까?"
"그 말은?"
"뭐, 무술가로서의 성공할 타입은 아니란거지."
"예상은 했지만 할아버지로선 많이 아쉬운 말이로구만."
"뭐 어쩔 수 없는 일이잖아
그날 밤 아수라와 마사키 카즈히토는 서로 술잔을 나누며 아쉬움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늘어놨다.
"흐음, 심심풀이지만 다른세계를 돌아다니는 것도 괜찮군"
세계를 창조한 삼명(三命)의 정신(頂神), 혹은 창생의 3여신, 초신등으로 불리는 초차원신 토키미는 자신이 만들어낸 차원 이외의 차원을 발견하고 그곳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이유는 자신이 만들어내지 못한 곳에서 또 다른 가능성을 찾고자 하는 것이지만... 실상은 1년전에 있었던 언니인 와슈와 츠나미와의 대화 후 기분전환겸 여행을 다니고있는 것이었다. 물론 본체 그대로 갔다가는 이 세계가 남아나지 못하는 관계로 존재감과 힘을 최소한도로 줄인채 아바타를 만들어 내 돌아다니고 있었다.
"조급해 할 필요는 없어... 인가? 확실히 세상은 언니들 말씀대로 흥미로운 것들이 가득하네."
자신이 생각조차 못한 기술이며 생명들... 세상은 아직 자신이 모르는 것들로 가득차 있었다. 그렇게 모르는 미지를 찾아 떠돌아다니던 토키미는 문득 자신의 기감에 걸리는 무언가를 감지할 수 있었다.
"뭐지, 이건?"
갑자기 느껴지는 무언가를 찾아 이동한 토키미가 발견한 것은 죽어가고 있는 백의의 여인이었다. 강렬한 소망이랄까... 바램을 지닌 이 소녀는 사경을 헤메는 중에도 토키미의 기감에 걸릴만한 정신파를 발하고 있었다.
"헤에, 재미있는 존재네."
꼬마의 모습을 한 토키미는 희미한 의식속에서 죽어가는 여인의 의식을 깨우며 물었다.
"아가씨, 살고싶어?"
"누구...?"
"누군지는 나중에 가르쳐줄테니까. 우선 묻는말에 대답해줘. 살고싶어?"
토키미의 물음에 여인은 잠시간 침묵한 후 얼마 남지 않은 힘을 짜내며 입을 열었다.
"살고싶어... 그녀석을... 다시 한번 만나고 싶어..."
"후훗, 그게 너의 소망이야? 누굴 만나고 싶은지는 모르겠지만. 살려줄께. 오래간만에 흥미를 느끼기도 했고 말이야. 그나저나 이 상태로는 살리기 힘드려나?"
이미 반쯤 사선을 넘은 상황. 힘을 최소한도로 봉인한 이 아바타로는 중상이면 몰라도 이런 죽음과 마주한 상태의 존재를 살리는건 무리였다. 이것은 토키미가 와슈와 츠나미와는 달리 전투에 특화된 탓이기도 했다.
"뭐, 마침 제트도 사라져버린 탓에 적당한 사도가 필요하기도 했고."
토키미는 1년전에 있었던 사건을 떠올리며 미소를 지었다. 아마 한동안은 지루할일이 없으리라. 그렇게 그녀와 함께 이 세계에서 사라지기로 한 토키미는 깜빡했다는듯 여인을 향해 물었다.
"아참, 내 사도가 될 이의 이름도 몰라서야 안되겠지. 아가씨 이름이 뭐야?"
"얀... 지슈... 카..."
투르 제국의 최강검사 집단인 예니체리 중 최고라고 알려진, 시반 슈미터 전멸시 살라딘을 구하다 총에 맞아 죽은 것으로 알려진 얀 지슈카. 그것이 바로 죽어가던 여인의 이름이었다.
살라딘은 자신의 옆에 있는 세라자드의 시신을 몇번씩 곁눈질 하며 아수라를 꺼내들었다. 아수라에 자신의 영혼을 봉인하고 자신의 돌(Doll)을 세라자드에게 넘긴다. 그것이 살라딘이 선택한 방법이었다. 집착이라해도 좋았다. 자신은 그저 세라자드가 살아주기를 바라고 있으니까. 그렇게 살라딘은 천천히 자신의 가슴에 아수라를 박아넣고 있었다.
그 순간...
'안돼!'
"누구...?"
갑자기 머릿속에서 울려퍼지는 외침에 살라딘은 자신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그리고 그 순간... 아수라가 격렬히 요동치며 빛을 뿜기 시작했다. 살라딘은 다급히 아수라를 제어하려 했으나 아수라는 살라딘의 제어를 벗어나 엄청난 빛을 뿜었다.
그리고 잠시 후. 살라딘은 그 기계장치에서부터 사라져 버렸다. 그 존재를 증명할 무엇하나 남기지 못한채...
"드디어 닭고기 전골이 완성되었군요."
"평소는 어딘가의 바보때문에 꽤나 늦어지지만 말이지."
여느때와 같이 느긋하기 짝이 없는 마사키가에서는 간만에 텐치 특제 닭고기 전골을 맛보기 위해 식탁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이런저런 이유로 맛보기 힘든 텐치 특제 닭고기 전골은 마사키가의 식탁 전반을 책임지는 사사미조차도 기다릴 정도로 호평인 음식이었다. 뭐, 언제나 첫번째건 쿠라미츠 미호시의 추락에 의해서 실패하게 되었지만 오늘만큼은 미호시가 도착한 후 했기 때문에 곧바로 먹을 수 있었다. 아니 먹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하늘은 언제나 잔혹했다.
늘 말썽을 일으키는 미호시가 말썽을 일으키지 않으니 하늘은 마사키가를 향해 다른 말썽을 보냈다.
피이이이잉-
"응?"
"갑자기 왜 그래 와슈?"
"아니, 조금... 뭐랄까 뭔가 떨어지고 있는듯한 느낌이 들어서 말이야."
"떨어져?"
"설마요, 미호시양은 집에 있잖아요. 이 집에서 추락과 연관된건 미호시양 정도..."
"미나기라던가..."
"설마..."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던 마사키 일가는 점점 크게 들려오는 추락음을 들으며 식은 땀을 흘렸다.
"혹시나... 혹시나...?"
"역시나인가..."
허탈한 표정을 지으며 내뱉는 텐치의 말과 함께 텐치의 집 호수에 무엇인가가 떨어졌다. 그 충격에 의해 호숫물은 크게 치솟으며 텐치네 식탁을 덮쳤다. 결국 마사키 텐치 특제 닭고기 전골은 여느때 처럼 2세트째를 준비해야만 했다.
"그나저나 방금 떨어진건 대체..."
와슈가 방금 마사키가 옆에있는 호수에 떨어진 '무언가'에 대해서 의문을 떠올렸을 때 쏟아져 내리는 호수물 사이로 한 인영이 모습을 드러냈다. 대략 와슈나 사사미정도의 키를 지닌 흑발의 소녀였다. 소녀는 기절해 있는 사람을 끌고 마사키가 사람들을 향해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저기... 누구 응급처치 할 줄 아는사람?"
소녀의 말에 마사키가 전원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소녀를 응시했다.
하늘에서부터 갑작스럽게 떨어져 내린 불청객에 의해서 마사키가의 전골파티가 무산된지 어언 일주일이란 시간이 흘렀다. 갑작스럽게 나타난 불청객 두사람, 정확히는 검 하나와 청년 한사람인 둘은 서로 쌀랑한 기운을 풍기며 마사키가에서 머물고 있었다.
"어째서 날 이곳으로 날려보낸거지?"
"네가 하는 짓이 참 같잖아서 그랬다 왜?"
검을 머리칼을 흩날리며 말하는 아수라의 말에 살라딘은 얼음장 같은 표정으로 자신의 건 슬라이서인 크로슬리 커스텀의 날을 뽑았다. 살라딘이 건 슬라이서의 날을 뽑자 아수라는 싸늘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실력행사를 해보겠다 이거지? 벌써 3번씩이나 져 놓고서 말이야"
아수라의 말과 함께 어느새 아수라의 손에는 칠흑의 검이 들렸다. 특별한 특색이 없는 흑색의 장검... 하지만 아수라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었다. 아수라가 사용하는 검이었다. 그것만으로도 왠만한 전설의 검은 명함조차 내밀지 못할 강력함을 자랑했다.
"와슈 스톱!!"
그렇게 말도 못하게 흉흉한 분위기를 흩뿌리던 두 사람은 갑자기 난입한 한 인물에 의해 처절하게 응징 당했다. 갑자기 난입한 인물은 마사키가에서도 최 연장자인 하쿠비 와슈. 그녀는 평소 자신이 종종 당하는 쥘부채로 두사람을 난타하기 시작했다. 일장의 신무(神武)가 끝나고 와슈는 기운이 빠진 두사람을 끌고 밖으로 향했다.
밖에서 싸우면 사람들에게 피해가 간다고 와슈의 이차원 공간에서 싸우는 두사람이었지만 와슈에게 있어서 두 사람은 그야마로 최강의 민폐덩어리였다. 텐치만큼은 아니지만 공간에 영향을 줄 정도의 초 강자들. 당연히 자신이 만든 이차원 격리공간 조차도 그들의 여파를 완전 해소하지는 못했다.
"정말인지... 지난 일주일간 싸운거면 충분하잖아! 조금은 건실한 일을 하라고!!"
솔직히 와슈가 할말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는 두사람이었으나 그 말을 함부로 내뱉을 만큼 담량이 좋은 두사람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녀의 진체가 뭔지. 그녀가 어떤 존재인지에 대해서 말이다.
봉인이 된 상태라 하더라도 신역에 다다른 둘은 단번에 느낄 수 있었다. 와슈와 사사미가 지닌 힘을, 그리고 자신들과는 차원이 틀린 신격을... 아마 안타리아를 만든 25명의 주신이 전부 모여 아스모데우스를 타고 달려든다 할지라도 어찌할 수 없을 정도로 무지막지한 신격을 지닌 상대여서야 천하의 아수라라 할지라도 질려버리는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와슈언니! 밥먹으러 온거야? 아슈쨩이랑 살라딘 오빠도 있네?"
마사키가의 가사 전반을 책임지는 사사미는 두사람을 끌고나오는 와슈를 보며 반가운 표정을 지었다.
최근 아수라와 살라딘에게서 얻은 자료를 통해 새로운 연구를 하기 시작한 관계로 식사를 거르는일이 종종 생긴 탓이었다. 뭐 살라딘과 아수라의 경우에는 다른 일때문에 식사를 거르는 상황인지라 밥을 차리는 사사미로서는 아쉬움을 금치 못했었다.
"그럼 간만에 모두와 함께 식사인거네~"
즐거워 하는 사사미를 보며 와슈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뺨을 긁적였다. 사실 두사람만 버리고 실험을 계속하려던 와슈는 그런 사사미의 미소에 어쩔 수 없이 두사람을 이끌고 식탁으로 향했다.
팍-
"익숙치 않은 괭이질은 힘들군..."
헐렁한 백색 티셔츠에 갈색 면바지를 입은채로 괭이질을 하고 있는 살라딘은 엉망진창으로 갈려진 밭과 괭이를 번갈아 보았다. 좀처럼 잘 되지 않는 괭이질. 엉망진창인 밭을 보며 살라딘이 느낀 기분은 막 탈옥했을 당시 느낀 무기력감이었다. 자신이 이리도 무능했나 하는... 그런 기분을 간만에 느끼고 있었다. 뭐 그때는 금새 강해지고자하는 소망이 생긴 탓에 금방 사그러들었지만서도...
그렇게 한참 무기력감을 느끼고 있는 살라딘을 향해 텐치가 다가갔다.
"역시 조금 쉬시는게..."
"힘들어서 그런게 아니야. 그저 마음먹은대로 땅이 파지지 않을뿐."
"뭐, 살라딘씨는 농사일이 처음이니까요."
"현재의 나로선 그저 방해가 될 뿐인듯하군."
"아뇨, 이런일은 익숙해지는 거니까요. 그보다 잠시 쉴까요? 사사미가 새참을 가져왔거든요."
"그런가? 고맙군..."
살라딘은 텐치의 손에 있는 사사미의 새참을 보며 고마움을 드러냈다. 하지만 감정표현이 워낙 없는 살라딘이다보니 그걸 텐치가 알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새참을 먹던 텐치는 조심스럽게 살라딘을 향해 물었다.
"저기... 살라딘씨는 어째서 아수라양과 그렇게 싸우는건가요?"
텐치의 질문에 살라딘은 약간 씁슬한 표정을 지으며(그래봤자 텐치로서는 알아보기 힘들지만말이다.) 입을 열었다.
"아직은 말하고 싶지 않군..."
"그렇습니까... 괜한걸 물었네요."
"아니, 그저 말하기 조금 난감한 이야기라 그런것 뿐... 그런데 아수라는?"
살라딘의 질문에 텐치는 살짝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산 건너편에 있는 마사키 신사를 가리켰다.
"카즈히토씨에게?"
"네. 뭐 할일은 다 했지만서도."
아수라의 경우는 사사미를 도와 요리및 청소를 하고 있었다. 뭐 청소한답시고 마사키 신사에 가서 신주인 텐치의 조부 마사키 카즈히토와 한담을 나누는게 평소 그녀의 일상이었다.
"뭔가 여유가 넘치는군... 그녀석은."
"그렇지만도 않아요."
"응?"
살라딘의 반문에 텐치는 난감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아수라양을 데리러 갈때면 어김없이 할아버지랑 검술을 논하거나 직접 검을 맞대는 모습을 자주본다는 것이었다.
"검의 달인인가 보군. 카즈히토씨는..."
"할아버지의 검술은 정말 엄청나다니까요. 순수하게 검술만으로 따지면 우주에서도 상대할만한 사람이 얼마 없을정도..."
"아수라가 검을 맞대는 이유를 알만하군..."
얘기만 들어도 카즈히토가 초검사급... 혹은 그 이상임을 알 수 있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안타리아 최강의 무인 흑태자의 무를 겪고 체현할 수 있는 그녀가 그에게 관심을 가지고 검을 맞댈 이유가 없으니까 말이다.
"뭐 덕분에 한동안 검술 연습은 안해도 되지만서도..."
"걱정말게나 텐치군. 자네의 검술 연습이 방해받는 일은 없을테니까."
텐치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의 뒤쪽에서부터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만하고 건방지면서도 앳된 목소리... 아니나 다를까 흑발을 흩날리며 서 있는 아수라가 있었다.
"무슨 말이지?"
"뭐, 지금부터 검술연습 시작이란거지"
아수라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하늘에서부터 두자루의 목도가 텐치와 아수라의 발 밑에 떨어져내려와 꽂혔다. 발밑에 꽂힌 목도를 뽑아든 아수라가 텐치를 향해 검을 겨누었다.
"기뻐해라 텐치, 당분간 내가 너의 검술을 봐주기로 했다."
"에엣?!"
"걱정말거라. 나는 카즈히토처럼 무르게 할 생각은 없으니까 말이다."
"그런...!"
텐치를 끌고가는 아수라는 갑자기 뭔가를 떠올린듯 살라딘을 향해 말했다.
"살라딘, 지금당장 카즈히토씨에게 가보도록."
"?"
"내 얘기를 듣고는 검을 마주해보고 싶다고 하는군"
아수라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어느새 살라딘의 앞에 두자루의 목도가 떨어졌다. 아수라와 텐치가 들고있는 목도와는 다르게 검은빛이 감도는 흑단목도였다.
"이건...?"
"아무리 전력이 아니라도 그 정도가 되지 않으면 버티지 못할테니까."
'목도든, 너 자신이든 말이지...'
아수라는 뒷말을 삼키며 조용히 텐치를 이끌고 사라졌다. 살라딘은 남겨진 두자루의 목도를 뽑아든 후 산 너머에 있을 마사키 신사를 응시했다.
"오호, 왔는가?"
살라딘이 두자루의 목도를 들고 마사키신사에 오르기 무섭게 같은 흑단 목검을 지니고 있는 마사키 카즈히토가 살갑게 맞이했다. 하지만 살라딘은 저 살가운 표정뒤에 숨겨진 무시무시한 기백을 느낄 수 있었다. 단순히 강함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었다. 완성된 무를 지닌 존재의 기백. 이 기백은 마치...
"초검사(超劍士)"
틀림이 없었다. 강함의 유무는 관계 없었다. 물론 초검사가 되면 강함이 쫓아오기 마련이지만 자신의 무(武)를 가지고 자신의 무를 완성한 존재가 바로 초검사였다. 그리고 지금 살라딘의 눈 앞에 있는 마사키 텐치의 조부이자 마사키 신사의 신주인 마사키 카즈히토는 그런 초검사였다.
"호오, 내 기백을 느낀건가? 아수라양의 말처럼 그렇게 그른건 아닌것 같구만"
"큿..."
살라딘은 갑자기 한층더 강렬해진 기백에 두자루의 목도를 고쳐잡고 땅을 박찼다. 더 이상 대치했다가는 카즈히토의 기백에 완전히 먹힐것만 같은 상황이었다. 차라리 무(武)를 모르면 또 모를까 무에 발을 담고 잇는 사람으로서 카즈히토의 기백은 힘의 강함에 관계없이 자신을 삼킬듯한 힘을 지니고 있었다.
딱-
요란한 소리와 함께 살라딘과 카즈히토의 흑단목도가 격돌했다. 단순한 격돌이었지만 살라딘은 카즈히토의 검에서 상당한 발발력을 느꼈다. 단순히 악력이라던가 그런건 아니었다. 단순한 악력만으론 이런 반발력이 나올 수 없으니까 말이다.
"하앗!!!"
살라딘은 재빨리 들고있는 두자루의 목도를 휘둘러 맹공을 가했다. 지금 살라딘이 펼치고 있는 검은 하나의 검술이 아니었다. 어렸을때 익힌 왕국검법을 시작으로 기파랑 사부에게서 익힌 한제국검술과 제국검술. 그리고 투르제국의 슈미터검술까지 무척이나 다양하게 펼쳐지고 있었다. 만약 초검사급의 상대가 아닌 사람이 살라딘을 마주했다면 순식간에 손발이 어지러져 당했을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마사키 카즈히토는 초검사반열에 든 존재. 이정도에 당할만큼 녹록한 존재가 아니었다.
"한제국검술에 제국검술, 왕국검법에 시반슈미터의 검술인가. 참 다양하게도 익혔구만. 그중에서 가장 몸에 익은건 한제국검술과 시반슈미터의 검술인가?"
"!!"
무표정으로 일관해온 살라딘의 얼굴에 경악이 드러났다. 그도 그럴것이 자신의 검술을 완전히 꿰고 있었던 탓이었다. 아니 그전에 이 세계에 없는 검술을 어떻게 알고 있는지가 더 의문이었다. 하지만 그런 의문에 깊게 빠져있을 여유는 없었다.
조금이라도 긴장을 늦추면 자신의 검권의 빈틈으로 어김없이 카즈히토의 목도가 파고드는 탓이었다. 검술의 문제가 아니었다. 뭐랄까... 검술이 아닌 무언가가 이런 차이를 만들고 있었다.
'이대로는 안돼...'
살라딘은 이대로가다가는 자신이 철저하게 카즈히토의 검에 유린당할 것임을 직감했다. 그리고 이대로는 안된다 생각한 살라딘은 재빨리 강맹한 기파를 발해 카즈히토를 물러서게했다. 갑작스럽게 살라딘의 몸에서 발해지는 기파에 살짝 물러선 카즈히토는 갑자기 두자루의 목도를 땅에 박아넣는 살라딘을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저 기술은...!"
카즈히토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기술이 살라딘의 손에서 펼쳐지려 하고 있었다. 물론 그 위력도 말이다. 아무리 금방 복구할 수 있다지만 자신의 신사가 날아가는건 솔직히 싫은 카즈히토였다. 그렇기에 카즈히토도 목검을 땅에 박아넣었다. 살라딘이 사용하는 오의를 방해하기 위해서.
"제국검술 비전 천지파열무!!"
"타핫!"
두사람의 기운이 지맥을 타고 흐르기 시작했다. 지맥을 타고흐르는 두사람의 기운은 서로의 기운을 밀어내고 잠식해가며 서로의 영향력은 다투었다. 서로 엇비슷한것 같았으나 실질적으로는 살라딘이 밀리고 있었다. 살라딘이 쏟아부은 힘이 모자란 것이아니었다. 제어도 충분히 완벽했다. 다만... 그의 눈앞에서 그가 알고 있는 기술을 사용하는 마사키 카즈히토 때문에 동요한 탓이었다.
'저 기술은 사부님의 위풍당당..! 어째서 저 사람이...!'
살라딘이 동요하기 무섭게 카즈히토의 기가 지맥을 장악하고있던 살라딘의 기를 모조리 제압해 버렸다. 역류된 기에 의해 살라딘은 자신이 들고 있던 목도가 파괴되었으나 그건 무척이나 사소한 일이었다.
지금 자신이 알고자 하느 일에 비하면 말이다.
"카즈히토씨... 어떻게 사부의 비기인 위풍당당을 알고있는거지?"
"사부? 호오, 그런가? 자네가 바로 '필립'이로구만."
이세계에서... 그것도 이전세계에서 한번도 만나보지 못했던 사람에게서 자신의 본명을 듣게된 살라딘은 경악을 금치 못하며 카즈히토를 바라보았다. 카즈히토는 사람좋은 미소로 살라딘을 보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기파랑에 대해 듣고 싶은겐가?"
카즈히토의 말에 살라딘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되셨습니까..."
"한(韓)의 흔적을 찾겠다며 고려로 건너간 후에는... 아무런 소식이 없었지. 아마도 그곳에서 생을 마감했을거라 사료되네."
녹차를 홀짝이며 말하는 마사키 카즈히토의 말에 살라딘은 자신도 모르게 침울한 표정을 지었다. 처음 사부의 비기인 위풍당당을 봤을 때 만해도 사부를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카즈히토의 말에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마사키 카즈히토가 사부와 만난것은 벌써 700년도 더 된 이야기... 마사키 일가같은 존재가 아닌 평범한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살아남을 수 있는 세월이 아니었다.
"기파랑... 그녀석은 마지막에 떠나가면서도 제자걱정을 많이했지. 좀더 가르치지 못한게 한이라더군..."
"사부님..."
자신을 지키기 위해 묵호자와 싸우고 이세계에 떨어져서도 자신을 끊임없이 걱정한 한제국의 화랑 기파랑을 떠올리며 자신의 어렸을 적을 추었했다. 살라딘의 추억이 끝나기 무섭게 카즈히토는 살라딘의 전신을 훑어보며 입을 열었다.
"미안하지만, 기파랑에 대한이야기는 조금 있다가 계속하고 지금은 아수라양의 부탁을 먼저 행하도록하지."
"아수라의... 부탁?"
살라딘의 물음에 카즈히토는 녹차를 한모금 넘긴 후 말을 이었다.
"자네의 검술은 이미 완성단계에 이르렀네. 하지만 어째서인지 완성에 도달하고 있지못하고 있지."
맞는 말이었다. 물론 현재의 살라딘은 자신이 만난 초검사중 최강인 철가면조차 뛰어넘은 상태지만 검술의 완성과는 다른 부분이었다. 더구나 철가면을 능가한 것도 검술로서가 아닌 Doll과 아수라의 상승작용에 의한 부분이 많이 기인했다. 막말로 힘이 세져서 검술이 필요없게 된... 정확히는 검술이 의미없게 된 상황이라고 할 수 있었다.
"뭐, 힘이 넘쳐서 검술이 필요없게 된 상황이라면 조금 틀리겠지만 자네의 경우에는 그것이 아니니까 말이지."
"..."
확실히 힘이 넘치기는 하지만 아직 힘에 대한 제어가 불완전한지라 확실히 검술은 필요했다. 하지만 살라딘의 검술은 아직 완성되지 못한 상황이었다. 뭐랄까... 바리에이션은 많지만 그걸 하나로 묶을 만한 기량이 없는 상황이었다.
"뭐 없다기 보다는 정신적 문제같구만. 여자문제인가?"
"..."
"맞는것 같구만. 뭐 남자인 이상은 한번쯤은 꼭 겪게 되는 문제지. 그걸 어떻게 넘기느냐가 다를 뿐..."
찻잔에 남긴 녹차를 다 들이킨 카즈히토는 평소와 같은 미소로 입을 열었다.
"뭐, 이건 내가 어쩔 수 없는 부분이구만. 아수라양에겐 미안하지만 말이지 여자문제에 대한 고민은 자신이 답을 내야하니까 말이야."
"어떻게... 혹시 아수라에게?"
"뭐 귀띔은 들었지만서도. 그 얼굴을 보면 금방 알 수 있다네. 옛날이야기지만 나도 그런얼굴을 했었으니까 말이지."
"그런... 얼굴이라 함은?"
"나도 여자문제로 고민한적이 있었지 정확히 700년 전에 말일세. 그러고보면 그때는 나도 젊었구만...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고민으로 가출까지 하고 말이야."
"가출... 입니까?"
"뭐 여러가지 복합적인 문제가 있었지만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가출임에는 분명하지. 뭐 그렇게 지구에 오게 되었고 지구에서 또다른 여자를 사랑하게 되어 현재에 이르게 된거지만 말이야. 뭐 그 사랑하던 사람도 뒤늦게 다시 만나게 되었지만서도."
"그렇습니까..."
"그러니까 인생선배로서 한가지만 충고해주겠네. 어차피 그 나머지는 자네가 해결해야하는 일이니 말일세."
잠시 한숨을 돌린 카즈히토는 이내 살라딘의 눈을 직시하며 말했다.
"자신의 마음을 속이지 말게나."
"네?"
"책임감이나 죄책감같은걸로 자신의 마음을 속였다간 분명 후회하게 될걸세. 물론 그 사랑은 진실이겠지만 때때로 죄책감과 후회가 끼여져 또다른 진심을 속이게 되는 경우도 종종있지. 자네에게서는 그런 느낌이 들어..."
"저는...!"
"단정지을 수는 없지만 말이지. 뭐 시간은 많으니까 천천히 자신에게 묻는게 좋아. 의외로 가장 알수 없는건 바로 자기 자신의 마음이란 말도 있지 않나? 그러니까 고민하게나 진짜 자신의 대답을 찾기전까지 속이지말고 속지도 말며 자신의 마음에 대해 진정으로 물어보게나."
카즈히토의 말에 채 수긍하지 못하면서도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뭐랄까... 어디선가 공감하는 부분이 있었던 탓이었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서려던 찰나. 카즈히토는 "잠깐!"이라 외치며 살라딘을 잡았다. 그리고 눈을 가늘게 뜨며 살라딘을 향해 말했다.
"아까 대련중에 신사 부순건 치우고가게나."
"네..."
순간 살라딘은 잠시나마 카즈히토의 말에 공감해버린걸 급 후회하고 있었다.
"으아악!!!"
"게 섯거라 텐치! 피하면 수련이 안되질 않느냐!!"
"피하는것도 수련의 일환이에요! 그보다 그런걸 '힘'도 쓰지 않고 검술로만 받아내라니! 가능한겁니까!!!"
"걱정마. 여태까지 100명에 한명정도는 가능했으니까."
"그런!!!"
그시각 이런 느낌으로 마사키 텐치의 비명이 산중에 울려퍼진것은 무척이나 사소한 일이었다.
그날 저녁 마사키신사.
두사람의 훈련(?)을 마친 아수라와 카즈히토는 다른 가족들 몰래 술을 홀짝이며 두사람에 대한 대화를 나누었다.
"그래? 역시 짧은 시간 내로는 무리인가?"
"솔직히 그런 문제는 자기 자신의 문제니까. 제3자의 입장에선 어쩔 수 없는 노릇이지."
"흐음..."
아수라가 뭔가 불만스럽다는듯 인상을 찌푸리자 이번에는 카즈히토가 아수라를 향해 물었다.
"그나저나 텐치는?"
"으음... 뭐라고 해야할까... 신을 초월한 강함은 얻을지언정 너와 같으 궁극의 무에 근접하지는 못할 녀석이랄까?"
"그 말은?"
"뭐, 무술가로서의 성공할 타입은 아니란거지."
"예상은 했지만 할아버지로선 많이 아쉬운 말이로구만."
"뭐 어쩔 수 없는 일이잖아
그날 밤 아수라와 마사키 카즈히토는 서로 술잔을 나누며 아쉬움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늘어놨다.
"흐음, 심심풀이지만 다른세계를 돌아다니는 것도 괜찮군"
세계를 창조한 삼명(三命)의 정신(頂神), 혹은 창생의 3여신, 초신등으로 불리는 초차원신 토키미는 자신이 만들어낸 차원 이외의 차원을 발견하고 그곳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이유는 자신이 만들어내지 못한 곳에서 또 다른 가능성을 찾고자 하는 것이지만... 실상은 1년전에 있었던 언니인 와슈와 츠나미와의 대화 후 기분전환겸 여행을 다니고있는 것이었다. 물론 본체 그대로 갔다가는 이 세계가 남아나지 못하는 관계로 존재감과 힘을 최소한도로 줄인채 아바타를 만들어 내 돌아다니고 있었다.
"조급해 할 필요는 없어... 인가? 확실히 세상은 언니들 말씀대로 흥미로운 것들이 가득하네."
자신이 생각조차 못한 기술이며 생명들... 세상은 아직 자신이 모르는 것들로 가득차 있었다. 그렇게 모르는 미지를 찾아 떠돌아다니던 토키미는 문득 자신의 기감에 걸리는 무언가를 감지할 수 있었다.
"뭐지, 이건?"
갑자기 느껴지는 무언가를 찾아 이동한 토키미가 발견한 것은 죽어가고 있는 백의의 여인이었다. 강렬한 소망이랄까... 바램을 지닌 이 소녀는 사경을 헤메는 중에도 토키미의 기감에 걸릴만한 정신파를 발하고 있었다.
"헤에, 재미있는 존재네."
꼬마의 모습을 한 토키미는 희미한 의식속에서 죽어가는 여인의 의식을 깨우며 물었다.
"아가씨, 살고싶어?"
"누구...?"
"누군지는 나중에 가르쳐줄테니까. 우선 묻는말에 대답해줘. 살고싶어?"
토키미의 물음에 여인은 잠시간 침묵한 후 얼마 남지 않은 힘을 짜내며 입을 열었다.
"살고싶어... 그녀석을... 다시 한번 만나고 싶어..."
"후훗, 그게 너의 소망이야? 누굴 만나고 싶은지는 모르겠지만. 살려줄께. 오래간만에 흥미를 느끼기도 했고 말이야. 그나저나 이 상태로는 살리기 힘드려나?"
이미 반쯤 사선을 넘은 상황. 힘을 최소한도로 봉인한 이 아바타로는 중상이면 몰라도 이런 죽음과 마주한 상태의 존재를 살리는건 무리였다. 이것은 토키미가 와슈와 츠나미와는 달리 전투에 특화된 탓이기도 했다.
"뭐, 마침 제트도 사라져버린 탓에 적당한 사도가 필요하기도 했고."
토키미는 1년전에 있었던 사건을 떠올리며 미소를 지었다. 아마 한동안은 지루할일이 없으리라. 그렇게 그녀와 함께 이 세계에서 사라지기로 한 토키미는 깜빡했다는듯 여인을 향해 물었다.
"아참, 내 사도가 될 이의 이름도 몰라서야 안되겠지. 아가씨 이름이 뭐야?"
"얀... 지슈... 카..."
투르 제국의 최강검사 집단인 예니체리 중 최고라고 알려진, 시반 슈미터 전멸시 살라딘을 구하다 총에 맞아 죽은 것으로 알려진 얀 지슈카. 그것이 바로 죽어가던 여인의 이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