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아슈쨩! 밥 다됐어!"
"알았다 사사미. 곧 가지"
"뀨-"
부엌에서 들려오는 사사미의 외침에 책을 읽고 있던 아수라는 책을 덮으며 자신의 어깨에서 자고 있던 아디와 함께 식탁으로 향했다. 살라딘과 아수라들이 이 세계에 오게된지 벌써 1년하고도 약간의 시간이 더 지났다. 어느덧 1년일나 시간을 보내게 된 아수라는 와슈와 사사미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아직 완전히 그대로 볼 수 있게 된건 아니었으나 그래도 진신만 보던 옛날에 비하자면 그야말로 장족의 발전이었다.
아수라가 아디와 함께 식탁에 도착하자 카즈히토와 함께 한국으로 떠나있는 살라딘을 제외한 마사키가에 거주하는 모든 이들이 식탁에 앉아있었다. 빈 자리를 찾아 앉은 아수라는 어깨에 앉아있던 아디를 료오키 옆에 둔 후 수저와 저분을 들었다.
"잘먹겠습니다."
약간은 어린애 같지만서도 마사키가 전통(?)의 약속이 마친후 식탁에 앉은 모두는 재빨리 식사를 시작했다. 물론 그 직후 개시되는 요란하면서도 엄숙한 마사키가의 식탁에서 벌어지는 아수라,료오코,아에카 세사람의 세사람을 위한 세사람만의 반찬 쟁탈전. 얼마나 텐치와 사사미의 신경을 건드리지 않고 많은 반찬을 차지하는가가 승리의 요건이었다. 오늘의 메인 메뉴는 감자고로케. 모두가 좋아하는 사사미 특제였다. 아수라는 검술로 단련(?)된 반사신경을 통해 재빨리 고로케를 집어갔다. 하지만 그것을 가만히 지켜보고있을 아에카와 료오코가 아니었다.
료오코는 파워로 아수라의 기교를 봉쇄하고 그 틈을 타 아에카가 두사람 몰래 고로케를 확보했다.
"물러서라 료오코, 아에카! 그 고로케는 내것이다!"
"순순히 내줄까 보냐! 검은 고양이에게!! 그보다 아에카! 몰래 뺴가지 마!!"
"당신들은 무식하게 싸우고 있지요? 전 그동안 맛있게 음미하고 있을 테니까요"
식탁위에서 불어닥치는 살벌한 분위기. 하지만 그 누구도 그 세사람에게 신경쓰지는 않았다. 매번 있는 일이다보니 만성이 된 탓이었다. 물론 예외적으로 와슈만큼은 츳코미를 걸고 싶은 기분이 만땅이었지만서도 그 뒤에 있을 여파 때문에 어쩌지 못하고 있었다. 이전 와슈가 츳코미를 걸었다가 밖에나가서 싸우게 된 세사람은 산 하나를 완전히 반파 시켜버린 탓이었다. 물론 와슈가 노력한 끝에 금방 복구하기는 했지만 덕분에 마사키 일족의 마을에는 기괴한 전설겸 속담이 더해지고 말았다.
세여자의 괴소가 들리면 산이 무너진다.라는...
"정말인지 한번만이라도 조용히 밥을 먹을 수는 없는건지..."
"뭐, 이것도 활기차서 좋잖아?"
"도만 넘지 않으면 좋아!"
"뀨뀨-"
"냐오~"
"나도..."
"미호시, 넌 빠져."
언제나 요란스러운 마사키가 식탁은 오늘도 변함 없이 요란스러웠다. 그렇게 모두가 식사를 즐기던 중...
딩동-
"응? 누구지?"
갑작스럽게 들려온 초인종소리에 텐치는 밥먹다가 말고 현관으로 나갔다. 물론 텐치보다 먼저 노이케가 먼저 나서려 했으나 갑작스럽게 나서려는 미호시를 진정시키느라 결국 텐치가 나오게 되었다.
계속 울리는 초인종 소리에 텐치는 "네, 네 곧 갑니다."를 외치며 문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텐치님."
문을 열기 무섭게 작달만한 소녀가 텐치에게 인사를 건넸다. 창백한것같은 하얀 얼굴 그리고 기묘하기 짝이 없는 문양과 복장. 이런 모습을 할만한 존재는 딱 하나밖에 존재하지 않았다.
"오랜만이네요. 도키미씨. 그나저나 어쩐일이에요?"
"놀러왔습니다~ 저도 가끔은 쉬고 싶으니까 말이죠."
"어서 들어와. 그런데 뒤에 있는 사람은?"
"대략 1년 전쯤에 새로구한 사도. 그러니까 종자라 하면 되려나?"
도키미의 말에 그녀의 뒤에 있던 사람이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도키미님의 종자인 얀 지슈카입니다."
"안녕하세요. 마사키가의 마사키 텐치라고 합니다. 얼른 들어오세요."
도키미와 그의 종자 얀 지슈카를 집으로 들인 텐치는 사사미에게 부탁해 2인분의 식사를 더 준비했다. 도키미와 그의 종자 얀 지슈카가 자리에 앉기 무섭게 고로케를 두고 사투중이던 아수라의 눈빛이 변했다. 물론 료오코가 그 틈을 타 고로케를 빼앗아 가 버린 탓에 금새 수라장에 복귀해야했지만 말이다.
"언제나 요란하네요. 마사키가의 식탁은."
"뭐, 그렇지."
도키미의 말에 텐치는 쓴 웃음을 지었다. 가족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집의 식탁을 보여주는 것은 솔직히 조금 부끄러웠다. 아수라, 료오코, 아에카에 의해 벌어지는 진풍경을 보여줘야 했으니 말이다. 도키미로서도 세사람이 벌이는 진풍경을 보며 쓴 웃음을 지었다.
"에잇!!"
쾅-
요란한 굉음과 함께 밥상에 작렬하는 료오코의 젓가락. 그리고 그 젓가락에 의해 하늘을 날게된 접시는 반찬을 흩뿌리며 도키미에게로 향했다. 그리고 그 접시가 도키미에게 닿으려는 순간...
웅-
공간을 울리는 듯한 소리와 함께 섬광이 번뜩였다. 번뜩인 섬광이 지나치기 무섭게 도키미에게로 날려진 접시는 수조각으로, 수십조각으로 나눠지며 불에 타 사라졌다. 그 광경을 본 아수라는 눈을 크게 뜨며 도키미의 옆에 시립해 있는 얀 지슈카를 향해 입을 열었다.
"그 검술..."
"언니들!!!!"
하지만 아수라가 채 말을 꺼내기도 전에 엉망이된 식탁에 분노한 사사미가 아수라, 료오코, 아에카들에게 설교를 퍼붓기 시작했다. 결국 아수라는 그녀의 정체에 대해 채 묻기도 전에 사사미에게 이끌려가 지옥의 설교를 듣게 되었다.
밤까지 이어진 설교에서 겨우 벗어난 아수라는 문득 밖에서 호수에 비치고 있는 달을 내려다보고 있는 한명의 여인을 볼 수 있었다. 도키미의 옆에 시립해 있던 얀 지슈카였다. 아수라는 홀로 있는 얀 지슈카를 향해 조용히 말을 걸었다.
"주인의 곁에 있지 않아도 괜찮은 걸까나?"
"도키미님이 다른 가족분들과 편히 지내실 수 있도록 잠시 자리를 피한것 뿐입니다."
"흐음, 그런거 신경쓸 사람들이 아니지만서도. 확실히 이레귤러지. '우리'들은 말이야."
"'우리?'"
얀 지슈카의 물음에 아수라는 착 가라앉은 눈으로 달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당신, 트루제국의 사람이지? 그것도 트루제국내에서도 최강급이라는 전사집단 '예니체리' 출신이고"
"그걸 어떻게..."
"그 검술과 그 광검(光劍) 겪어본 거거든 이전의 대전에서. 뭐 너에게 있어선 할아버지가 한참 현역이거나 그 이전이었을때 이야기였겠지만..."
아수라의 말에 얀 지슈카는 인상을 찌푸리며 아수라를 바라보았다. 10세에서 조금 더 먹은 정도의 연령으로 보이는 외모... 하지만 그녀가 언급한 이전 대전이란 자신이 태어나기 수십여년 전에 있었던 다크아머와 실버애로우의 전쟁... 이 말에 의하면 그녀는 최소한도로 자신의 할아버지와 비슷한 나이를 지니고 있다고 봐야 했다.
"너... 정체는?"
"과거 게이시르 최강의 황제였던 흑태자의 검. 아수라다."
얀 지슈카의 말에 아수라는 자신의 일부를 드러내며 말했다. 그런 아수라를 보며 얀 지슈카는 자신도 모르게 너털 웃었다. 갑작스럽게 웃는 얀을 보며 아수라는 살짝 아미를 찌푸리며 물었다.
"뭐가 우스운거지?"
"아, 미안 머나먼 타향에서 설마 동향 사람... 아니 동향의 존재를 보게 될 줄 은 몰랐거든"
"적응력이 좋다고 해야할지, 정신적으로 강하다고 해야할지. 뭐 처음 여기 왔을때 찌질 거리던 그녀석보단 훨씬 나은듯 하지만서도..."
아수라는 얀 지슈카를 보며 제일 처음 여기 떨어졌을때의 살라딘을 회상했다.
"그때 참 많이 싸웠지..."
"당신말고도 다른 사람이?"
"아, 살라딘이라..."
"살라딘? 살라딘이 여기 있는거야?!"
갑작스럽게 자신을 붙들고 흔드는 얀 지슈카를 보며 아수라는 인상을 구겼다. 하지만 재빨리 이전에 얻은 기억의 단편들을 뒤져본 아수라는 이내 얀의 반응을 당연하게 여겼다.
"투르제국 최강검사 얀 지슈카. 나이 27세, 광검 지하드의 소유자. 그리고... 살라딘을 좋아하는 소녀심의 아가씨... 인가?"
아수라의 말에 얀은 어느새 얼굴을 붉혔다. 지금 이 상태에서 뭔가를... 그러니까 음식이나 요리같은걸 얹으면 분명 확실하게 익힐 수 있을 정도의 열을 뿜고 있었다.
"뭐랄까... 반응한번 과격하구만..."
아수라는 반쯤 폭주중인 얀 지슈카의 반응을 보며 살라딘이 오고난 후에 그녀가 어떤 식으로 나올지 무척이나 궁금해졌다.
살라딘과 카즈히토가 한국으로 떠난지 벌써 20일째. 그사이 마사키가에는 또 한명의 손님이 찾아왔다. 바로 아에카와 사사미의 할머니인 카미키 세토 쥬라이가 찾아온 것이었다. 물론 또한번 마사키가가 비상사태에 걸린것은 무척이나 당연한 일이었다.
"어라어라, 오랜만에 뵙네요. 얼마만인거죠?"
"2달 만이야. 정확히 그나저나 다른 성계 연합하고의 교섭 바쁘지 않아?"
"우후후후, 그 사람이 다 알아서 해주고 있답니다."
세토의 말에 사사미와 료오키, 그리고 미호시를 제외한 모두는 은근슬쩍 고개를 고개를 돌리며 속으로 생각했다.
'또 우츠츠미님께 넘겼구만... 아니면 미나호님이라던가...'
모두가 속으로 그 말을 집어 삼킬때 세토는 뭔가 발견한듯 흥미로운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텐치님, 저쪽에 있는 분들은?"
"아, 손님입니다. 이쪽은..."
"안녕하세요. 도키미라고 합니다. 그리고 제 뒤에 서 있는 사람은 제 종자인 얀 지슈카라고 합니다."
"호오, 도키미님과 얀 지슈카님이라 하는군요. 두분다 상당한 실력자 같으십니다만..."
"뭘요, 그래봤자 쥬라이의 오니히메라 불리시는 세토님께 비할바겠습니까?"
"겸손하시군요."
"별말씀을."
묘하게 벌어지는 신경전. 자기소개에서 뭔가 서로 거슬리는 부분이 있었던듯한 모양이었다. 외야에서는 알 도리가 전혀 없었지만 말이다. 그렇게 서로를 응시하던 두사람은 뭔가 통한건지 갑자기 미소를 지으며 조그마한 소리로 웃었다.
"우후훗"
"후후후"
갑작스럽게 웃는 두사람을 보며 외야에서는 어찌 반응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도키미쪽에서 예를 갖춰 세토를 향해 자기소개를 시작했다.
"정식으로 소개하겠습니다. 우주 제일의 천재 과학자 하쿠비 와슈의 동생인 하쿠비 도키미라고 합니다."
"현 쥬라이 황가의 무술사범인 카미키 세토 쥬라이라고 합니다. 우주 제일의 두뇌의 동생인 하쿠비 도키미양을 처음 뵙습니다."
처음과는 다르게 너무나도 정중히 인사를 나눈 두 사람을 보며 마사키가에 있던 사람들은 어떻게 반응해야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그저 대충 감을 잡은 와슈만이 허허한 미소를 지으며 맥빠진 웃음을 흘리고 있을 뿐이었다.
백년지기 친우라도 만난듯 친하게 대화를 나누던 도키미와 세토는 이제는 아예 술까지 꺼내 마시며 우정을 다지고 있었다. 묘하게 다가가기 힘든 두사람의 오라에 모두는 각자 자신의 위치로 향했고 얀 지슈카만와 노이케만이 두사람의 옆에서 안주를 갖다주거나 하며 있었을 뿐이었다.
"흠, 그러니까 양녀를 들이는 것과 중매가 취미라고요?"
"취미라니요. 전 언제니 진지하답니다."
사악한이 배어나오는 웃음은 전혀 믿음직 스럽지 못했다. 아니 당장에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무럭무럭 생길정도로 위협적인 느낌을 주고 있었다. 노이케는 당장에라도 그 웃음을 멈추게 하고 싶었지만 그랬다가는 어찌될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그나저나 도키미양, 혹시 얀 지슈카양을 저한테 주실 생각은 없으신가요?"
"어떤 의미죠?"
"흐음... 양녀로 삼고 싶어졌달까요?"
"양녀라... 얀 지슈카는 제가 특별히 마음에 든 시종이라서 말이죠."
"토키미양의 시종자리에서 물러나게 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저 제 딸로도 삼고 싶을 뿐이지요. 그녀가 원한다면 또 모를까..."
"재미있을지도..."
세토의 생각을 완전히 이해한 도키미는 세토와 같은 미소를 지으며 귓속말과 눈빛을 이용해 대담을 나누었다. 얀은 그런 두사람을 보며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그만두세요. 저에게 있어서 가족이라고는 할아버지 밖에 없었으니까요."
"응? 할아버지밖에? 아버지나 어머니는?"
도키미의 물음에 살짝 뺨을 긁으며 말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제가 아직 어렸을때 내전에 휩쓸려 사망하셨으니까요. 그 이후에는 할아버지께 거둬져서 투르 전역을 돌며 예니체리로서의 수행을 쌓았고... 결국 제게 있어서는 할아버지가 부모님이겠네요."
"그런, 그런 슬픈사연이."
척보기에도 과장된 몸짓과 눈물을 보이며 얀을 감싸 안는 세토. 척보기에도 티가나는 연기를 보며 얀은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더구나 그녀의 손에 쥐여진 안약을 본 바에야...
"세토님... 저건..."
"어라어라, 무슨 말인지? 그보다 얀양은 제 딸이 될 생각이 없나요?"
능청스럽게 손에 들려있던 안약을 숨기며 말하는 세토를 보며 얀은 한번 더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저는 세토님의 딸이 될 생각이 없습니다. 제나이가 벌써 28살 입니다. 다른사람의 양녀로 들어가기에는..."
"어라라 아직 한참 어리잖습니까."
"네?"
"800살도 안되었으니 어른대접받기엔 좀 이른게 아닐까요?"
얀은 그제서야 이 세계의 우주 거주자들 평균수명이 자신이 있던곳과는 매우 틀림을 자각했다. 하지만 그래도 세토의 딸이 될 생각이 없는 얀인지라 얀은 자신의 애검 자하드를 꺼내들며 입을 열었다.
"저는 저보다 약한 사람을 부모로 모실생각은 없습니다. 부모님을 전쟁으로 잃는건 한번이면 족하니까요."
"그럼 내가 너보다 강하면 내 딸이 되겠다는 말이네?"
"그렇게 되는겁니까... 뭐 만에 하나라도 그런 일은 없을것 같지만서도 말이죠."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기세를 끌어올리는 얀, 비록 살라딘을 지키기 위해 어이없이 죽을뻔 했지만 그녀 역시 투르 제일의 검사로 인정받은 초검사. 그 힘과 기세는 보통이 아니었다. 어지간한 상대는 그대로 겁을 집어먹고 도망가게 만들 수 있으며 왠만한 규모의 기지하나는 홀로 초토화 시키는게 가능했다. 더구나 현재는 도키미에 의해서 새로운 힘을 얻어 더 강해진 상태였다.
"호오, 재미있군요. 아에카."
"네, 할머님."
"싸울만한 곳이 있나요? 전력을 다해도 될 정도로."
"할머님이 전력을 다할만한 곳이요?!"
세토의 명성을 들어온 아에카로서는 그녀가 전력을 다할거라는 말에 식은땀을 흘려야만했다. 애초에 현 쥬라이 최강의 무투가인 마사키 미사키 쥬라이. 그런 쥬라이를 가르치고 아직까지 전설로서 군림하고 있는 것이 바로 카미키 세토 쥬라이였다. 그런 그녀가 전력을 다한다는 말은 그녀의 황가의 나무 미카가미의 보정을 받겠다는 말. 그녀가 황가의 나무의 보정까지 받았을 경우 그 힘은 이미 쥬라이 내에서는 상대할 사람이 없는... 아니 전 우주적으로도 상대할 이가 손에 꼽을 정도였다.
"전력이라면 월면에서 하시는게..."
"어라라? 달의 궤도가 변해도 좋다는건가요?"
상큼하게 웃으며 하는 세토의 말에 아에카는 식은땀을 무지막지하게 흘려야만했다. 농담같지만 저 말은 절대로 농담이 아니었다. 진짜 세토가 전력을 다한다면 달의 궤도가 변하는건 우스운 일이라고 할 수 있었다. 황가의 나무란 그만큼 강력한 것이니까. 물론 세토의 경우엔 애초부터 강한 존재였지만 말이다.
"그 장소, 내가 마련하지. 아무래도 실험해보고 싶어졌거든."
"와슈님, 설마..."
"그래, '그것'의 개량형이 완성되었거든."
와슈가 말한 '그것'이란 다름이 아닌 이전에 아수라와 살라딘이 싸울떄 쓰였던 격리공간. 본래의 공간으로부터 '거의'완벽하게 단절된 곳이었다. 물론 물리적인 얘기지만 말이다. 살라딘과 아수라의 싸움처럼 신역(神域)의 싸움이 아닌이상 부서질일은 없으리라.
와슈의 설명을 대충 들은 도키미는 왠지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얀을 보며 말했다.
"재미있겠네요. 전력을 발휘하세요 얀."
"네, 전력을 다하도록 하겠습니다."
쥐락펴락하는 그녀의 왼손에서 방전이 일어났다. 세토도 간만에 전투복으로 갈아입은 후 만전을 기했다. 방금전에 얀이 일으킨 기세에서 보통이 아님을 느낀 탓이었다.
"포스의 의지를 보여드리죠."
"간만에 전력으로 가볼까나."
서로를 보며 한껏 달아오른 몸을 만전상태로 만든 두사람은 그대로 와슈가 만든 격리공간을 향해 발을 내딛었다. 그리고 두사람이 격리공간안으로 들어가기 무섭게 격리공간의 입구는 사라졌다. 그리고 잠시 후, 와슈가 만든 격리공간이 흔들렸다. 공간에 영향을 끼칠 정도의 막대한 힘의 향연, 바깥에서 안의 상황을 볼 방도가 없었지만 그것만큼은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이쪽도 살라딘과 아수라못지 않게 무지막지하구만..."
"엄청나네요... 료오코양이 전력을 발휘하면 모를까... 저희들 중에서 저만한 힘을 발할 수 있는건..."
"텐치님이나 천지검을 사용하는 카즈히토님 정도랄까? 나도 못할건 없지만... 아무래도 부담이 된달까..."
사실 와슈라면 자신이 만든 발명품의 힘으로 저만한 위력을 발휘하고도 남았지만 그 뒤 걸리는 부담이 귀찮기 떄문에 자제하고 있는 편이었다.
"요즘 준차원급내지는 준신급의 힘을 존재들이 자주보이는것 같아... 미카가미의 보정을 받고있는 쥬라이의 귀신공주야 그렇다 치더라도 황가의 나무나 다른 것의 보정도 없이 그런 무지막지한 힘을 발휘하는 존재란 정말인지..."
그리고 와슈가 그렇게 투덜대고난 얼마뒤, 격리공간이 풀렸다. 격리공간이 풀리기 무섭게 그 자리에 있던 모두는 볼수 있었다. 이마에 선혈을 가득 흘린채 기절한 얀을 업고 나오고 있었다. 피를 한가득 흘리고 있는 세토를 보며 도키미와 와슈를 제외한 모두는 순간 핏기가 싹 간 창백한 얼굴을 했다.
"할머님!"
"세토님?!"
"이런이런, 세토씨 무리했구만..."
"얀도 방심했네요. 저기까지 몰아붙였으면서 당한거 보면."
이미 상황을 어느정도 파악한 두사람은 세토와 얀을 번갈아 보며 평했다. 결국 힘으로는 얀이 우세였지만 끝까지 들러붙은 세토가 승리한 것이었다. 그렇게 얀 지슈카였던 소녀(?)는 카미키 얀 쥬라이가 되게 되었다.
얀이 강제적으로(?) 세토의 양녀가 된지 10일이란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얀은 무척이나 괴로운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얀, 이건 어떻니? 아, 이게 더 좋을지도..."
"세..."
"어머니! 혹은 엄마!"
"어머니... 전 옷갈아입는 인형이 아닌데요..."
"딸의 옷을 갈아입히는건 모든 엄마의 특권이란다~"
"절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만..."
얀이 뭐라고 말하든 그것을 들을 세토가 아니었다. 결국 얀은 포스 임팩트를 한방 날린 후 그대로 세토에게서 부터 도주를 감행했다. 하지만 그런 얀의 도주를 그냥 보고 있을 세토가 아니었다.
"놓치지 않아요!!"
얀을 뒤쫓아 나서는 세토를 마사키가 사람들은 모두다 지쳤달까, 반쯤 해탈한 표정을 지었다. 그저 와슈와 도키미만이 재미있다는 표정을 지으며 둘이 나간 곳을 바라보았다.
"오늘은 얼마만에 돌아올까요?"
"글쎄... 한 20분 걸리지 않을까?"
두사람이 느긋하게 차를 마시고 있을때 마사키가의 문이 열렸다. 그리고 어느새인가 한국에서 돌아온 셔츠차림의 살라딘과 관광객 차림의 카즈히토가 들어왔다. 카즈히토는 뭔가 기묘한 마사키가의 분위기에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왜그런가 모두?"
"오라버니."
"할아버지!"
"어라, 살라딘 왔나?"
어느새 욕탕에서 나온 아수라는 약 1개월만에 귀환한 살라딘을 보며 평소와 같은 인사를 했다. 간만에 보는것 치고는 상당히 냉랭한 반응이었지만 살라딘은 그런것에 신경쓰지 않았다. 그녀가 그렇게 밖에 표현하지 못하는 존재인것을 알고 있는 탓이었다.
"아, 그래"
"네가 원하던 소득은?"
"충분히 얻었어."
기파랑의 흔적과 기록을 봤고 그들의 후인을 봤다. 그리고 그들에게 있어 기파랑이 어떤존재인지 확인했다. 이정도면 이번 여행의 목적은 충분하다 못해 넘칠정도로 달성했다고 할 수 있었다.
살라딘이 다시한번 기파랑에 대해서 떠올리고 있을때 아수라가 재미있는게 떠올랐다는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살라딘, 네가 없는동안 재미있는 일이 생겼다."
"뭐지?"
"우리 말고도 안타리아 출신이 이곳에 왔어."
"안타리아? 설마..."
살라딘은 아수라의 말에 무심했던 아까와는 달리 황급히 밖으로 향했다. 혹시 크리스티앙이나 죠안이 이 세계로 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탓이었다.
"하아, 겨우 따돌렸다."
세토를 겨우 따돌린 얀은 무척이나 지친듯 숨을 헐떡이며 마사키가의 문앞에서 숨을 골랐다.
"정말인지 무지막지하다니까..."
내기에 진 관계로 어머니로 모시게 되었지만 정말인지 무지막지한 사람이었다.
"돌아올때까지 조금 쉬자..."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린 얀은 집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문을 열었다.
"응?"
"아."
얀과 살라딘, 두 사람이 동시에 문을 열기 무섭게 두사람은 얼굴을 마주했다. 서로 변한 모습이었으나 그런것은 상관없었다. 왜냐하면...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해서 너무나도 잘 알 고 있었으니까.
"얀...?"
"살라딘...?"
안타리아를 떠난지 3년째, 살라딘은 절친한 옛 친구인 얀 지슈카와 재회하게 되었다. 안타리아와는 아주 머나먼 차원에서...
"알았다 사사미. 곧 가지"
"뀨-"
부엌에서 들려오는 사사미의 외침에 책을 읽고 있던 아수라는 책을 덮으며 자신의 어깨에서 자고 있던 아디와 함께 식탁으로 향했다. 살라딘과 아수라들이 이 세계에 오게된지 벌써 1년하고도 약간의 시간이 더 지났다. 어느덧 1년일나 시간을 보내게 된 아수라는 와슈와 사사미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아직 완전히 그대로 볼 수 있게 된건 아니었으나 그래도 진신만 보던 옛날에 비하자면 그야말로 장족의 발전이었다.
아수라가 아디와 함께 식탁에 도착하자 카즈히토와 함께 한국으로 떠나있는 살라딘을 제외한 마사키가에 거주하는 모든 이들이 식탁에 앉아있었다. 빈 자리를 찾아 앉은 아수라는 어깨에 앉아있던 아디를 료오키 옆에 둔 후 수저와 저분을 들었다.
"잘먹겠습니다."
약간은 어린애 같지만서도 마사키가 전통(?)의 약속이 마친후 식탁에 앉은 모두는 재빨리 식사를 시작했다. 물론 그 직후 개시되는 요란하면서도 엄숙한 마사키가의 식탁에서 벌어지는 아수라,료오코,아에카 세사람의 세사람을 위한 세사람만의 반찬 쟁탈전. 얼마나 텐치와 사사미의 신경을 건드리지 않고 많은 반찬을 차지하는가가 승리의 요건이었다. 오늘의 메인 메뉴는 감자고로케. 모두가 좋아하는 사사미 특제였다. 아수라는 검술로 단련(?)된 반사신경을 통해 재빨리 고로케를 집어갔다. 하지만 그것을 가만히 지켜보고있을 아에카와 료오코가 아니었다.
료오코는 파워로 아수라의 기교를 봉쇄하고 그 틈을 타 아에카가 두사람 몰래 고로케를 확보했다.
"물러서라 료오코, 아에카! 그 고로케는 내것이다!"
"순순히 내줄까 보냐! 검은 고양이에게!! 그보다 아에카! 몰래 뺴가지 마!!"
"당신들은 무식하게 싸우고 있지요? 전 그동안 맛있게 음미하고 있을 테니까요"
식탁위에서 불어닥치는 살벌한 분위기. 하지만 그 누구도 그 세사람에게 신경쓰지는 않았다. 매번 있는 일이다보니 만성이 된 탓이었다. 물론 예외적으로 와슈만큼은 츳코미를 걸고 싶은 기분이 만땅이었지만서도 그 뒤에 있을 여파 때문에 어쩌지 못하고 있었다. 이전 와슈가 츳코미를 걸었다가 밖에나가서 싸우게 된 세사람은 산 하나를 완전히 반파 시켜버린 탓이었다. 물론 와슈가 노력한 끝에 금방 복구하기는 했지만 덕분에 마사키 일족의 마을에는 기괴한 전설겸 속담이 더해지고 말았다.
세여자의 괴소가 들리면 산이 무너진다.라는...
"정말인지 한번만이라도 조용히 밥을 먹을 수는 없는건지..."
"뭐, 이것도 활기차서 좋잖아?"
"도만 넘지 않으면 좋아!"
"뀨뀨-"
"냐오~"
"나도..."
"미호시, 넌 빠져."
언제나 요란스러운 마사키가 식탁은 오늘도 변함 없이 요란스러웠다. 그렇게 모두가 식사를 즐기던 중...
딩동-
"응? 누구지?"
갑작스럽게 들려온 초인종소리에 텐치는 밥먹다가 말고 현관으로 나갔다. 물론 텐치보다 먼저 노이케가 먼저 나서려 했으나 갑작스럽게 나서려는 미호시를 진정시키느라 결국 텐치가 나오게 되었다.
계속 울리는 초인종 소리에 텐치는 "네, 네 곧 갑니다."를 외치며 문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텐치님."
문을 열기 무섭게 작달만한 소녀가 텐치에게 인사를 건넸다. 창백한것같은 하얀 얼굴 그리고 기묘하기 짝이 없는 문양과 복장. 이런 모습을 할만한 존재는 딱 하나밖에 존재하지 않았다.
"오랜만이네요. 도키미씨. 그나저나 어쩐일이에요?"
"놀러왔습니다~ 저도 가끔은 쉬고 싶으니까 말이죠."
"어서 들어와. 그런데 뒤에 있는 사람은?"
"대략 1년 전쯤에 새로구한 사도. 그러니까 종자라 하면 되려나?"
도키미의 말에 그녀의 뒤에 있던 사람이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도키미님의 종자인 얀 지슈카입니다."
"안녕하세요. 마사키가의 마사키 텐치라고 합니다. 얼른 들어오세요."
도키미와 그의 종자 얀 지슈카를 집으로 들인 텐치는 사사미에게 부탁해 2인분의 식사를 더 준비했다. 도키미와 그의 종자 얀 지슈카가 자리에 앉기 무섭게 고로케를 두고 사투중이던 아수라의 눈빛이 변했다. 물론 료오코가 그 틈을 타 고로케를 빼앗아 가 버린 탓에 금새 수라장에 복귀해야했지만 말이다.
"언제나 요란하네요. 마사키가의 식탁은."
"뭐, 그렇지."
도키미의 말에 텐치는 쓴 웃음을 지었다. 가족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집의 식탁을 보여주는 것은 솔직히 조금 부끄러웠다. 아수라, 료오코, 아에카에 의해 벌어지는 진풍경을 보여줘야 했으니 말이다. 도키미로서도 세사람이 벌이는 진풍경을 보며 쓴 웃음을 지었다.
"에잇!!"
쾅-
요란한 굉음과 함께 밥상에 작렬하는 료오코의 젓가락. 그리고 그 젓가락에 의해 하늘을 날게된 접시는 반찬을 흩뿌리며 도키미에게로 향했다. 그리고 그 접시가 도키미에게 닿으려는 순간...
웅-
공간을 울리는 듯한 소리와 함께 섬광이 번뜩였다. 번뜩인 섬광이 지나치기 무섭게 도키미에게로 날려진 접시는 수조각으로, 수십조각으로 나눠지며 불에 타 사라졌다. 그 광경을 본 아수라는 눈을 크게 뜨며 도키미의 옆에 시립해 있는 얀 지슈카를 향해 입을 열었다.
"그 검술..."
"언니들!!!!"
하지만 아수라가 채 말을 꺼내기도 전에 엉망이된 식탁에 분노한 사사미가 아수라, 료오코, 아에카들에게 설교를 퍼붓기 시작했다. 결국 아수라는 그녀의 정체에 대해 채 묻기도 전에 사사미에게 이끌려가 지옥의 설교를 듣게 되었다.
밤까지 이어진 설교에서 겨우 벗어난 아수라는 문득 밖에서 호수에 비치고 있는 달을 내려다보고 있는 한명의 여인을 볼 수 있었다. 도키미의 옆에 시립해 있던 얀 지슈카였다. 아수라는 홀로 있는 얀 지슈카를 향해 조용히 말을 걸었다.
"주인의 곁에 있지 않아도 괜찮은 걸까나?"
"도키미님이 다른 가족분들과 편히 지내실 수 있도록 잠시 자리를 피한것 뿐입니다."
"흐음, 그런거 신경쓸 사람들이 아니지만서도. 확실히 이레귤러지. '우리'들은 말이야."
"'우리?'"
얀 지슈카의 물음에 아수라는 착 가라앉은 눈으로 달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당신, 트루제국의 사람이지? 그것도 트루제국내에서도 최강급이라는 전사집단 '예니체리' 출신이고"
"그걸 어떻게..."
"그 검술과 그 광검(光劍) 겪어본 거거든 이전의 대전에서. 뭐 너에게 있어선 할아버지가 한참 현역이거나 그 이전이었을때 이야기였겠지만..."
아수라의 말에 얀 지슈카는 인상을 찌푸리며 아수라를 바라보았다. 10세에서 조금 더 먹은 정도의 연령으로 보이는 외모... 하지만 그녀가 언급한 이전 대전이란 자신이 태어나기 수십여년 전에 있었던 다크아머와 실버애로우의 전쟁... 이 말에 의하면 그녀는 최소한도로 자신의 할아버지와 비슷한 나이를 지니고 있다고 봐야 했다.
"너... 정체는?"
"과거 게이시르 최강의 황제였던 흑태자의 검. 아수라다."
얀 지슈카의 말에 아수라는 자신의 일부를 드러내며 말했다. 그런 아수라를 보며 얀 지슈카는 자신도 모르게 너털 웃었다. 갑작스럽게 웃는 얀을 보며 아수라는 살짝 아미를 찌푸리며 물었다.
"뭐가 우스운거지?"
"아, 미안 머나먼 타향에서 설마 동향 사람... 아니 동향의 존재를 보게 될 줄 은 몰랐거든"
"적응력이 좋다고 해야할지, 정신적으로 강하다고 해야할지. 뭐 처음 여기 왔을때 찌질 거리던 그녀석보단 훨씬 나은듯 하지만서도..."
아수라는 얀 지슈카를 보며 제일 처음 여기 떨어졌을때의 살라딘을 회상했다.
"그때 참 많이 싸웠지..."
"당신말고도 다른 사람이?"
"아, 살라딘이라..."
"살라딘? 살라딘이 여기 있는거야?!"
갑작스럽게 자신을 붙들고 흔드는 얀 지슈카를 보며 아수라는 인상을 구겼다. 하지만 재빨리 이전에 얻은 기억의 단편들을 뒤져본 아수라는 이내 얀의 반응을 당연하게 여겼다.
"투르제국 최강검사 얀 지슈카. 나이 27세, 광검 지하드의 소유자. 그리고... 살라딘을 좋아하는 소녀심의 아가씨... 인가?"
아수라의 말에 얀은 어느새 얼굴을 붉혔다. 지금 이 상태에서 뭔가를... 그러니까 음식이나 요리같은걸 얹으면 분명 확실하게 익힐 수 있을 정도의 열을 뿜고 있었다.
"뭐랄까... 반응한번 과격하구만..."
아수라는 반쯤 폭주중인 얀 지슈카의 반응을 보며 살라딘이 오고난 후에 그녀가 어떤 식으로 나올지 무척이나 궁금해졌다.
살라딘과 카즈히토가 한국으로 떠난지 벌써 20일째. 그사이 마사키가에는 또 한명의 손님이 찾아왔다. 바로 아에카와 사사미의 할머니인 카미키 세토 쥬라이가 찾아온 것이었다. 물론 또한번 마사키가가 비상사태에 걸린것은 무척이나 당연한 일이었다.
"어라어라, 오랜만에 뵙네요. 얼마만인거죠?"
"2달 만이야. 정확히 그나저나 다른 성계 연합하고의 교섭 바쁘지 않아?"
"우후후후, 그 사람이 다 알아서 해주고 있답니다."
세토의 말에 사사미와 료오키, 그리고 미호시를 제외한 모두는 은근슬쩍 고개를 고개를 돌리며 속으로 생각했다.
'또 우츠츠미님께 넘겼구만... 아니면 미나호님이라던가...'
모두가 속으로 그 말을 집어 삼킬때 세토는 뭔가 발견한듯 흥미로운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텐치님, 저쪽에 있는 분들은?"
"아, 손님입니다. 이쪽은..."
"안녕하세요. 도키미라고 합니다. 그리고 제 뒤에 서 있는 사람은 제 종자인 얀 지슈카라고 합니다."
"호오, 도키미님과 얀 지슈카님이라 하는군요. 두분다 상당한 실력자 같으십니다만..."
"뭘요, 그래봤자 쥬라이의 오니히메라 불리시는 세토님께 비할바겠습니까?"
"겸손하시군요."
"별말씀을."
묘하게 벌어지는 신경전. 자기소개에서 뭔가 서로 거슬리는 부분이 있었던듯한 모양이었다. 외야에서는 알 도리가 전혀 없었지만 말이다. 그렇게 서로를 응시하던 두사람은 뭔가 통한건지 갑자기 미소를 지으며 조그마한 소리로 웃었다.
"우후훗"
"후후후"
갑작스럽게 웃는 두사람을 보며 외야에서는 어찌 반응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도키미쪽에서 예를 갖춰 세토를 향해 자기소개를 시작했다.
"정식으로 소개하겠습니다. 우주 제일의 천재 과학자 하쿠비 와슈의 동생인 하쿠비 도키미라고 합니다."
"현 쥬라이 황가의 무술사범인 카미키 세토 쥬라이라고 합니다. 우주 제일의 두뇌의 동생인 하쿠비 도키미양을 처음 뵙습니다."
처음과는 다르게 너무나도 정중히 인사를 나눈 두 사람을 보며 마사키가에 있던 사람들은 어떻게 반응해야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그저 대충 감을 잡은 와슈만이 허허한 미소를 지으며 맥빠진 웃음을 흘리고 있을 뿐이었다.
백년지기 친우라도 만난듯 친하게 대화를 나누던 도키미와 세토는 이제는 아예 술까지 꺼내 마시며 우정을 다지고 있었다. 묘하게 다가가기 힘든 두사람의 오라에 모두는 각자 자신의 위치로 향했고 얀 지슈카만와 노이케만이 두사람의 옆에서 안주를 갖다주거나 하며 있었을 뿐이었다.
"흠, 그러니까 양녀를 들이는 것과 중매가 취미라고요?"
"취미라니요. 전 언제니 진지하답니다."
사악한이 배어나오는 웃음은 전혀 믿음직 스럽지 못했다. 아니 당장에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무럭무럭 생길정도로 위협적인 느낌을 주고 있었다. 노이케는 당장에라도 그 웃음을 멈추게 하고 싶었지만 그랬다가는 어찌될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그나저나 도키미양, 혹시 얀 지슈카양을 저한테 주실 생각은 없으신가요?"
"어떤 의미죠?"
"흐음... 양녀로 삼고 싶어졌달까요?"
"양녀라... 얀 지슈카는 제가 특별히 마음에 든 시종이라서 말이죠."
"토키미양의 시종자리에서 물러나게 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저 제 딸로도 삼고 싶을 뿐이지요. 그녀가 원한다면 또 모를까..."
"재미있을지도..."
세토의 생각을 완전히 이해한 도키미는 세토와 같은 미소를 지으며 귓속말과 눈빛을 이용해 대담을 나누었다. 얀은 그런 두사람을 보며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그만두세요. 저에게 있어서 가족이라고는 할아버지 밖에 없었으니까요."
"응? 할아버지밖에? 아버지나 어머니는?"
도키미의 물음에 살짝 뺨을 긁으며 말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제가 아직 어렸을때 내전에 휩쓸려 사망하셨으니까요. 그 이후에는 할아버지께 거둬져서 투르 전역을 돌며 예니체리로서의 수행을 쌓았고... 결국 제게 있어서는 할아버지가 부모님이겠네요."
"그런, 그런 슬픈사연이."
척보기에도 과장된 몸짓과 눈물을 보이며 얀을 감싸 안는 세토. 척보기에도 티가나는 연기를 보며 얀은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더구나 그녀의 손에 쥐여진 안약을 본 바에야...
"세토님... 저건..."
"어라어라, 무슨 말인지? 그보다 얀양은 제 딸이 될 생각이 없나요?"
능청스럽게 손에 들려있던 안약을 숨기며 말하는 세토를 보며 얀은 한번 더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저는 세토님의 딸이 될 생각이 없습니다. 제나이가 벌써 28살 입니다. 다른사람의 양녀로 들어가기에는..."
"어라라 아직 한참 어리잖습니까."
"네?"
"800살도 안되었으니 어른대접받기엔 좀 이른게 아닐까요?"
얀은 그제서야 이 세계의 우주 거주자들 평균수명이 자신이 있던곳과는 매우 틀림을 자각했다. 하지만 그래도 세토의 딸이 될 생각이 없는 얀인지라 얀은 자신의 애검 자하드를 꺼내들며 입을 열었다.
"저는 저보다 약한 사람을 부모로 모실생각은 없습니다. 부모님을 전쟁으로 잃는건 한번이면 족하니까요."
"그럼 내가 너보다 강하면 내 딸이 되겠다는 말이네?"
"그렇게 되는겁니까... 뭐 만에 하나라도 그런 일은 없을것 같지만서도 말이죠."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기세를 끌어올리는 얀, 비록 살라딘을 지키기 위해 어이없이 죽을뻔 했지만 그녀 역시 투르 제일의 검사로 인정받은 초검사. 그 힘과 기세는 보통이 아니었다. 어지간한 상대는 그대로 겁을 집어먹고 도망가게 만들 수 있으며 왠만한 규모의 기지하나는 홀로 초토화 시키는게 가능했다. 더구나 현재는 도키미에 의해서 새로운 힘을 얻어 더 강해진 상태였다.
"호오, 재미있군요. 아에카."
"네, 할머님."
"싸울만한 곳이 있나요? 전력을 다해도 될 정도로."
"할머님이 전력을 다할만한 곳이요?!"
세토의 명성을 들어온 아에카로서는 그녀가 전력을 다할거라는 말에 식은땀을 흘려야만했다. 애초에 현 쥬라이 최강의 무투가인 마사키 미사키 쥬라이. 그런 쥬라이를 가르치고 아직까지 전설로서 군림하고 있는 것이 바로 카미키 세토 쥬라이였다. 그런 그녀가 전력을 다한다는 말은 그녀의 황가의 나무 미카가미의 보정을 받겠다는 말. 그녀가 황가의 나무의 보정까지 받았을 경우 그 힘은 이미 쥬라이 내에서는 상대할 사람이 없는... 아니 전 우주적으로도 상대할 이가 손에 꼽을 정도였다.
"전력이라면 월면에서 하시는게..."
"어라라? 달의 궤도가 변해도 좋다는건가요?"
상큼하게 웃으며 하는 세토의 말에 아에카는 식은땀을 무지막지하게 흘려야만했다. 농담같지만 저 말은 절대로 농담이 아니었다. 진짜 세토가 전력을 다한다면 달의 궤도가 변하는건 우스운 일이라고 할 수 있었다. 황가의 나무란 그만큼 강력한 것이니까. 물론 세토의 경우엔 애초부터 강한 존재였지만 말이다.
"그 장소, 내가 마련하지. 아무래도 실험해보고 싶어졌거든."
"와슈님, 설마..."
"그래, '그것'의 개량형이 완성되었거든."
와슈가 말한 '그것'이란 다름이 아닌 이전에 아수라와 살라딘이 싸울떄 쓰였던 격리공간. 본래의 공간으로부터 '거의'완벽하게 단절된 곳이었다. 물론 물리적인 얘기지만 말이다. 살라딘과 아수라의 싸움처럼 신역(神域)의 싸움이 아닌이상 부서질일은 없으리라.
와슈의 설명을 대충 들은 도키미는 왠지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얀을 보며 말했다.
"재미있겠네요. 전력을 발휘하세요 얀."
"네, 전력을 다하도록 하겠습니다."
쥐락펴락하는 그녀의 왼손에서 방전이 일어났다. 세토도 간만에 전투복으로 갈아입은 후 만전을 기했다. 방금전에 얀이 일으킨 기세에서 보통이 아님을 느낀 탓이었다.
"포스의 의지를 보여드리죠."
"간만에 전력으로 가볼까나."
서로를 보며 한껏 달아오른 몸을 만전상태로 만든 두사람은 그대로 와슈가 만든 격리공간을 향해 발을 내딛었다. 그리고 두사람이 격리공간안으로 들어가기 무섭게 격리공간의 입구는 사라졌다. 그리고 잠시 후, 와슈가 만든 격리공간이 흔들렸다. 공간에 영향을 끼칠 정도의 막대한 힘의 향연, 바깥에서 안의 상황을 볼 방도가 없었지만 그것만큼은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이쪽도 살라딘과 아수라못지 않게 무지막지하구만..."
"엄청나네요... 료오코양이 전력을 발휘하면 모를까... 저희들 중에서 저만한 힘을 발할 수 있는건..."
"텐치님이나 천지검을 사용하는 카즈히토님 정도랄까? 나도 못할건 없지만... 아무래도 부담이 된달까..."
사실 와슈라면 자신이 만든 발명품의 힘으로 저만한 위력을 발휘하고도 남았지만 그 뒤 걸리는 부담이 귀찮기 떄문에 자제하고 있는 편이었다.
"요즘 준차원급내지는 준신급의 힘을 존재들이 자주보이는것 같아... 미카가미의 보정을 받고있는 쥬라이의 귀신공주야 그렇다 치더라도 황가의 나무나 다른 것의 보정도 없이 그런 무지막지한 힘을 발휘하는 존재란 정말인지..."
그리고 와슈가 그렇게 투덜대고난 얼마뒤, 격리공간이 풀렸다. 격리공간이 풀리기 무섭게 그 자리에 있던 모두는 볼수 있었다. 이마에 선혈을 가득 흘린채 기절한 얀을 업고 나오고 있었다. 피를 한가득 흘리고 있는 세토를 보며 도키미와 와슈를 제외한 모두는 순간 핏기가 싹 간 창백한 얼굴을 했다.
"할머님!"
"세토님?!"
"이런이런, 세토씨 무리했구만..."
"얀도 방심했네요. 저기까지 몰아붙였으면서 당한거 보면."
이미 상황을 어느정도 파악한 두사람은 세토와 얀을 번갈아 보며 평했다. 결국 힘으로는 얀이 우세였지만 끝까지 들러붙은 세토가 승리한 것이었다. 그렇게 얀 지슈카였던 소녀(?)는 카미키 얀 쥬라이가 되게 되었다.
얀이 강제적으로(?) 세토의 양녀가 된지 10일이란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얀은 무척이나 괴로운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얀, 이건 어떻니? 아, 이게 더 좋을지도..."
"세..."
"어머니! 혹은 엄마!"
"어머니... 전 옷갈아입는 인형이 아닌데요..."
"딸의 옷을 갈아입히는건 모든 엄마의 특권이란다~"
"절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만..."
얀이 뭐라고 말하든 그것을 들을 세토가 아니었다. 결국 얀은 포스 임팩트를 한방 날린 후 그대로 세토에게서 부터 도주를 감행했다. 하지만 그런 얀의 도주를 그냥 보고 있을 세토가 아니었다.
"놓치지 않아요!!"
얀을 뒤쫓아 나서는 세토를 마사키가 사람들은 모두다 지쳤달까, 반쯤 해탈한 표정을 지었다. 그저 와슈와 도키미만이 재미있다는 표정을 지으며 둘이 나간 곳을 바라보았다.
"오늘은 얼마만에 돌아올까요?"
"글쎄... 한 20분 걸리지 않을까?"
두사람이 느긋하게 차를 마시고 있을때 마사키가의 문이 열렸다. 그리고 어느새인가 한국에서 돌아온 셔츠차림의 살라딘과 관광객 차림의 카즈히토가 들어왔다. 카즈히토는 뭔가 기묘한 마사키가의 분위기에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왜그런가 모두?"
"오라버니."
"할아버지!"
"어라, 살라딘 왔나?"
어느새 욕탕에서 나온 아수라는 약 1개월만에 귀환한 살라딘을 보며 평소와 같은 인사를 했다. 간만에 보는것 치고는 상당히 냉랭한 반응이었지만 살라딘은 그런것에 신경쓰지 않았다. 그녀가 그렇게 밖에 표현하지 못하는 존재인것을 알고 있는 탓이었다.
"아, 그래"
"네가 원하던 소득은?"
"충분히 얻었어."
기파랑의 흔적과 기록을 봤고 그들의 후인을 봤다. 그리고 그들에게 있어 기파랑이 어떤존재인지 확인했다. 이정도면 이번 여행의 목적은 충분하다 못해 넘칠정도로 달성했다고 할 수 있었다.
살라딘이 다시한번 기파랑에 대해서 떠올리고 있을때 아수라가 재미있는게 떠올랐다는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살라딘, 네가 없는동안 재미있는 일이 생겼다."
"뭐지?"
"우리 말고도 안타리아 출신이 이곳에 왔어."
"안타리아? 설마..."
살라딘은 아수라의 말에 무심했던 아까와는 달리 황급히 밖으로 향했다. 혹시 크리스티앙이나 죠안이 이 세계로 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탓이었다.
"하아, 겨우 따돌렸다."
세토를 겨우 따돌린 얀은 무척이나 지친듯 숨을 헐떡이며 마사키가의 문앞에서 숨을 골랐다.
"정말인지 무지막지하다니까..."
내기에 진 관계로 어머니로 모시게 되었지만 정말인지 무지막지한 사람이었다.
"돌아올때까지 조금 쉬자..."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린 얀은 집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문을 열었다.
"응?"
"아."
얀과 살라딘, 두 사람이 동시에 문을 열기 무섭게 두사람은 얼굴을 마주했다. 서로 변한 모습이었으나 그런것은 상관없었다. 왜냐하면...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해서 너무나도 잘 알 고 있었으니까.
"얀...?"
"살라딘...?"
안타리아를 떠난지 3년째, 살라딘은 절친한 옛 친구인 얀 지슈카와 재회하게 되었다. 안타리아와는 아주 머나먼 차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