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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선대록

東方先代録


원작 |

역자 | DanteSparda

전의 요요몽편이 잘 풀린다면 이번에 끝날 거라고 했습니다만, 결국 끝나지 않았습니다.
좀 더 정성들여 쓰고 싶다고 생각한 결과입니다.
이야기를 끌어버린 만큼, 다소 읽을 보람이 늘어났을 거라고 생각하니 즐겨주신다면 다행입니다.

12화 「요요몽」


  최근에 들어서야 나는 레이무에게 하쿠레이 무녀로서의 수행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레이무는 아직 10세 밖에 안 된 아이다.
  보통이라면 아직은 즐겁게 놀며 자유분방하게 자라야 할 시기다.
  부모로서 내 방식이 성급한 교육이란 것은 알고 있다.
  나는, 분명 잘못되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해야만 하는 이유가 있었다.

  ──레이무는, 아이임에도 뭐랄까 이미 시들시들했다.

  낮에 하는 일이 툇마루에서 볕쬐기뿐이라고요?  엄마 슬퍼집니다.
  그대로 놔두면 족히 반나절동안 멍─하니 뜰만 바라보고, 드디어 움직이나 싶더니 직접 차를 끓여 와서는 그대로 햇볕만 쬐고 있고.
  음음, 스스로 차를 끓일 수 있다니, 우리 아이는 자립심이 높구나.
  너무 높아서 눈물이 나올 정도로 말이지.「엄마 ​안​아​줘​」​라​던​가​「​날​씨​ 좋다─」같은 아이가 할 법한 말을 한 번도 들은 적 없어.
  얼마나 달관한 걸까, 우리 따님은.
  살만큼 산 노인도 아닌데…….

  아니, 집안일이라거나 이 나이에는 지나칠 정도로 열심히 도와주고 있습니다만.
  그렇지만 보통은 이런 일보다는 노는 게 더 즐거운 나이 아닐까?

  그 외에도 툇마루에 있지 않을 때엔 내가 마당을 청소하는 모습이나 수행하는 모습, 아니면 집안에서 재봉이나 요리하는 모습 같은. 뭔가 내 행동거지를 보고 있지만, 그래서야 별로 드물 것도 없어서 지루할 텐데.
  ​매​번​「​재​미​있​니​?​」​라​고​ ​물​으​면​「​재​미​있​어​」​라​고​ 대답한다.
  뭐, 감성은 사람마다 다르니 내가 딱히 뭐라고 말할 생각은 없지만…… 그래도, 좀 더 어린 아이답게 활발하게 자라줬으면 한단다!

  ──그렇지만, 레이무가 이렇게 된 원인은 반 정도 부모인 내게 있다.

  하쿠레이의 무녀로서 마을에서 떨어진 신사에 사는데다가 입지조건상 방문하는 사람도 적다.
  필연적으로 아이에게 필요한 동년대의 친구 같은, 놀기 위한 환경이 절망적인 상황에 빠져버린 것이다.
  나도 몸은 하나 밖에 없으므로 일상적인 집안일이나 수련, 하쿠레이의 일도 꽤 빈번해서 가족으로서 지내는 시간을 충분하게 보낸다고는 말하기 어렵다.
  대부분 목숨을 건 전투와 관련된 무녀의 일 때문에 수행을 게을리 할 수는 없는데다가, 그 일도 내 지위를 생각하면 소홀히 할 수 없다.

  ……어라, 뭐랄까 말하고 보니 깨달은 건데 나 정말「일만 해서 아이가 애정에 굶는 타입의 일바보 엄마」같은 느낌 아냐?
  미, 미안해요!  어른스러운 아이라고 외톨이로 만든 불량엄마라 미안해요 레이무……!!

  이런 느낌으로 자신을 되돌아보며 발작같이 죄책감에 시달리는 나.

  그러나, 변명할 생각은 요만치도 없지만, 나머지 원인의 반은 그런 말귀를 잘알아 듣는 어중간한 느낌의 레이무 자신에게도 있었다.
  이건 레이무의 특성 때문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지만, 어쨌든 인간관계나 사물에 대해 고집이 없다.

  보통 아이라면 신경써주지 않는 부모에게 억지도 부릴 테고, 자신이 처한 환경에 불만도 품을 것이다.
  나도 될 수 있는 한 레이무를 따라 마을이나 「타인이 생활하는 환경」을 보여주고 있으므로, 그곳에 있는 활기나 훌륭함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와는 대조적으로 자신이 지금 외로운 상황에 있다는 것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레이무는 그런 것을 ​알​면​서​도​「​상​관​없​어​」​정​도​로​ 밖에 생각하지 않는다.
  실제로, 전에 그에 대해 물어보니 생각대로「딱히 신경 쓰지 않아」라고 대답했으니까…….

  그것이 딱하다고 느끼는 것은 내 제멋대로인 생각이다.
  모르고 그렇게 대답한 것이라면 확실히 불행하지만, 레이무는 알고서 자신의 답을 낸 것이다.
  마을의 아이들과도 몇 번이고 만나게 해봤지만, 다른 아이보다 정신적으로도 한 걸음 앞서 있는데다가 집단에 속하는 것을 피하는 경향이 있다.
  아이 특유의 순진함이 없다고나 할까……결코 차갑다는게 아니다. 애들을 다루는 것에 능숙하기도 하고. 그렇지만 동년대의 아이에게 그런 대응을 한다는 것은 역시 거리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진정한 친구라는 것은, 대등한 관계에서 밖에 성립하지 않는 것이니까.

  그런고로, 레이무에게 있어 지금 지내는 환경이 오히려 편하다고 본인이 말하기도 했다.
  일반적인 아이를 기준으로 레이무를 측정하려는 것 자체가 잘못일지도 모른다.
  불필요한 배려를 해봤자 괜한 참견일 것이다.

  ……그렇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한들 지금에 만족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아서야 부모 실격이다!
  라는 느낌으로.

  조금 이를지도 모르지만, 나는 레이무에게 하쿠레이의 무녀를 위한 수행을 시작하기로 한 것이다.
  놀이 대신 공부를 가르치는 입장으로서 과연 이게 아이에게 있어 좋은 선택일지 불안하지만, 아이에서 그대로 선인이라도 될 것 같은 나날을 보내는 레이무를 방치하는 것보다 나을 것이다.

  사실 레이무와 함께 있을 수 있는 이유가 늘어나서 나도 약간 기쁘기도 하고.
  이런 구실이 없으면 레이무와 마주할 수 없는 나란 엄마는 진짜 못난이 엄마네.

  그게, 어두워 보인다고 들으면 상처입을 지도 모르고…….

  그, 그건 둘째 치고!  ──이렇게, 두 사람의 하쿠레이 신사 생활에 변화가 찾아온 것이었다.

  오늘의 수행은 실내에서 실시하고 있다.
  부적술에 사용하는 부적을 작성하는 연습이다. 수행이라고 해봤자 부적에 붓으로 문자를 쓰는, 받아쓰기 연습 같은 것이다.
  당연히 레이무는 아직 성장이 제대로 끝나지도 않은 아이이므로, 아직 육체단련이나 술식의 습득 같은 것을 배우게 할 생각은 없다.
  이런 도구의 준비나 손질 같은, 평범한 공부에서 조금 배울 것이 늘어난 것 같은 수행 외에도 가벼운 준비운동을 몇 가지 가르쳐서 몸을 움직이는 일부터 시작하고 있다.

  역시 제대로 순서를 맞춰 단련해나가지 않으면 안 되겠지.
  뭐, 전생의 지식을 깨달았을 때부터 만화에서 나오던 바보수행을 시작했던 내가 말해도 설득력이 없지만 말이지…….

  그나저나 레이무. 양손에서 피를 뿜어내면서 하는 관수 연습 보고「나도 그거 해보고 싶어」라니, 엄마 죽어도 허락하지 않을 거니까?

  새삼스럽게 교육에 좋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으므로 몸에 상처가 나는 수행은 남의 눈을 피해서 하고 있다.
  레이무는 나와 다른 정통파의 무녀가 되어 주었으면 한다.
  내 대에서는 전혀 사용 받지 못한 음양옥이 울고 있다고.

  부모의 제멋대로인 기대려나, 라는 불안은 레이무를 가르치기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레이무의 습득 속도를 본 뒤 그대로 기우로 끝났다.
  지금도 그렇다. 최근에 가르친지 얼마 안되는 한자를 쓱쓱 하고 망설임 없이 종이에 써 내린다.
  나는 그 옆에서 재봉을 하며 지켜보고 있었다.
  으─음, 도저히 아이가 쓴 거라고는 생각지 못할 정도의 달필이다.

  뭐, 그렇다. 어느 정도 눈치 챈 거지만, 우리 레이무는 다른 아이와 비교하면 재능면으로도 한 걸음 앞서있다. 분명 훌륭하게 자라줄 아이라는 건 알고 있었습니다만.
  이런 면을 보니 마을에 살지 않아서 다행이다─. 우리 아이의 기량과 재능을 보면, 다른 엄마들에게 내가 질투 받아버리는걸─. 진짜 곤란할 뻔 했다니까—. 우후후.

  ……그것보다 레이무, 나보다 글자 예쁜 거 아냐?
  내 패배?

  위, 위험해. 나중에 나도 몰래 연습하자.

  곁눈질로 힐끔거리며 비밀로 결심하고는, 겉으로는 담담한 얼굴로 레이무의 옷을 수선한다.
  아이의 성장은 빠르니까.
  바깥세계와는 달리 평상복이 넉넉한 일본옷인 덕분에 이런 크기 조절이 그렇게 어렵지 않아 간편하다.

  재봉이 취미라고는 하지만, 사실 그다지 잘 하지 못한다.
  옛날과 비교하면 꽤 익숙해졌다고 생각하지만, 좀 더 경험을 쌓지 않으면 안 된다.
  재봉 실력 자체는 나쁘지 않지만, 어디까지나 평균적인 범주이며, 손가락도 자주 찌른다.
  전혀 아프지 않은데다 피도 나오지 않지만. 쌓이고 쌓인 수행 덕분에 손의 가죽도 두꺼워져 있어서 바늘로 찔러도 상처조차 나지 않는다. 이럴 때는 편리하다.

「저기, 어머니」

  평화로운 침묵 속에서 레이무의 목소리가 퍼진다.
  왜 그러니, 뭔가 모르는 거라도 있니?

「음?」

  젠장 또 딱딱한 목소리가 나와 버리고 말았다.
  딸에게는 더 친근한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하고 싶다.
  가만히 있으면 이런 기분이 들어 버리니 곤란하다. 뭐, 이제 와서 새삼스러운 이야기지만.

「어머니가 하는 수행은 내게 가르쳐 주지 않네.」
「그래, 네게는 필요 없다」

  어째선지 레이무는 내 수행에 흥미를 품고 있는 것 같지만, 내 대답은 언제나 변하지 않는다.
  이렇게 대답할 때마다 레이무는 무뚝뚝한 표정으로 유감스러운 분위기를 내보이지만, 그럼에도 내 결의는 단단했다.
  안됩니다. 필요하던 필요 없던 개인적으로 저런 혹독한 수행 레이무에게 흉내내게 할 수 없다구요.

「파문이라는 건?  숨만 쉴 뿐이잖아. 여러 모로 편리할 것 같은데」
「안 된다. 가르칠 수 없다.」
「짠돌이」
「짠돌이라도 괜찮다」

  드물게 삐쳤다는 얼굴을 하는 레이무의 반응이 아이 같아 속으로 흔들렸지만,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강철의 정신력으로 버텨냈다.

  파문을 익히는 것도 잘못하면 질식사를 할 수도 있는 위험한 수행이다.
  내가 하고 있는 터무니없는 수행들 모두 성과는커녕 생명조차 보증할 수 없다. 다르게 설명하자면 반대편에 있는 안보이는 벼랑으로 몸을 내던지는 것과 같은 불확실한 것 투성이인 도전이므로 누군가에게 가르칠 생각은 도저히 들지 않는다.
  그러니까, 레이무도 포함해 그 누구에게도 가르칠 생각은 없다.
  게다가, 파문에 관한 것은 그 편리함 덕분에 반대로 여러 가지 고민되는 것도 늘어버렸고.

  마침 좋은 타이밍이니 레이무에게 말해 볼까.

「레이무가 어른이 되면, 나는 더 이상 파문을 사용하지 않을 예정이다.」
「……왜?」

  내 말에 레이무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놀랐다.

「파문을 쓰고 있으면 나이를 먹기 어려워진다. 사용하면 사용할수록 익숙해져서, 점점 노화가 느려지기 때문이지.」
「계속 젊은 채로 있을 수 있다는 거야?  그거 좋은 거 아닌가?」
「장점만 있는 건 아니다」

  육체를 혹사하는 수행을 하는 입장으로선 젊음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은 좋지만.
  그런 나날이 이어지면 머지않아 레이무가 나보다 늙어버릴지도 모른다.
  만약의 이야기지만, 레이무가 수명으로 먼저, 라니……내가 지금 무슨 생각이람.

「……나 때문이야?」

  나는 자세히 대답하지 않았지만 레이무는 감으로 약간이나마 눈치 챈 듯 고개를 숙이며 중얼거렸다.
  어라?  뭐, 레이무가 이유라는 건 맞는 말이지만 저렇게 우울해질 필요는 없는데?

「평소 수행하던 시간도 줄어든데다가 편리한 파문도 사용하지 않고…… 그거, 전부 내가 있어서 그런 거지?」

  으음, 이건 예상 밖의 반응이다.
  즉, 레이무는 지금까지 봐온 나의 사생활이나 행동의 변화가 자신이 방해하고 있는 탓이라고 생각해버린 것이다.
  설마 레이무가 그런 걸 걱정하고 있었다고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나는 그 발언에 잠깐 멍해졌다.

「내가 있어서 어머니가 하고 싶은 걸 못하게 해버리는 거구나.」
「……레이무. 붓을 놓거라.」

  완전히 손이 멈춰버린 레이무에게 그렇게 말하며, 나도 바늘과 옷을 손에서 놓고, 일어섰다.
  레이무의 곁으로 다가가, 마주 앉는다.

「레이무. 미래에 하쿠레이의 무녀로서의 일을 해보고 싶다고 생각하니?  해야만 해서, 가 아니라 직접 해보고 싶어서, 무녀가 된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거니?」

  나의 갑작스런 질문에, 레이무는 조금 망설이다가, 그 총명함을 발휘해 결의가 담긴 진지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답했다.

「응. 나는 어머니와 같은 일을 해 보고 싶어.」
「……그런가. 그렇다면, 너는 아무 신경 쓸 거 없다」

  나는 레이무의 대답에 만족하며 자연스럽게 미소 짓고 있었다.

  정말이지, 내게는 너무 과분할 정도로 훌륭한 따님이야.
  피는 이어지지 않았지만, 이 아이의 어머니가 될 수 있도록 이끌어 준 운명이라던가 신에게, 아니면 다른 누구에게라도 감사할 수밖에 없다.

「내가 지금 하고 싶은 건, 네게 하쿠레이의 역할을 맡기는 것이다」
「맡겨? 내게?」
「그래. 지금은 수행보다 그것을 하고 싶다」
「……그렇지만, 그건 나를 위한 거지 어머니를 위한 게 아닌 거 아냐?」

  우리 아이 정말로 머리 너무 좋지 않아?
  보통 이 나이에 이렇게까지 어른을 상대로 배려할 수 있는 건가요?
  감동한 나머지 기세를 타서 안아버릴 뻔 했지만, 그 충동을 필사적으로 참으며 레이무의 어깨에 살그머니 손을 올렸다.
  참자 참아. 지금은 부모로서 좋은 모습을 보여줘야 할 때다.
  자, 힘내라. 평소에는 별로 일하지 않는 입과 혀.

「괜찮다, 너를 위해 뭔가를 하는 것은 나를 위한 것이기도 하다. 부모라는 건, 그런 거다」
「……모르겠어」
「너도 어른이 되면 알거라고 생각한다. 사람은 언젠가 죽는다. 어떤 수로 연명한들, 결국 마지막이 오고야 말지.
  내가 아무리 육체와 기술을 단련한들, 죽으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수행의 의미가 없어지는 거지. 그렇지만, 나는 너를 만난 덕분에 네게 맡길 수 있다」
「……뭘?」
「말로 표현하는 것은 어렵지만, 레이무는 내가 죽어도 내가 가르친 것들을 기억할 수 있니?」
「응. 잊을 리 없으니까.」
「고맙다. 그것이 뭔가를 맡긴다는 것이다」

  평소와는 달리 굳은 표정을 짓고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해 주는 레이무에게 정말로 마음속 깊이 감사하며 살그머니 머리를 쓰다듬는다.

「타인에게 뭔가를 맡기고 죽을 수 있다면, 그건 매우 행복한 것이다」

  확실히, 내가 바뀐 원인은 레이무임에 틀림없다.
  레이무라는 딸이 없었다면, 나도 이런 생각을 가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것은 과연 행복한 삶일까?
  수행이나 싸움의 끝에 한계를 맞이해서 쓰러져 죽거나, 아니면 한계를 넘어 인간 이상의 무언가가 되어 연명하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그렇지만 그런「만약」을 생각해봤자 어떤 의미도 없다.
  그렇게 됐을 때의 자신과 지금의 나는, 그 가치관부터 차이가 날 테니까.

  그렇지만 적어도── 「지금」을 안 내게는 그 「만약」의 인생이 행복하다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다.

  나는 레이무의 어머니가 되었다.
  그리고, 운좋게 어머니의 삶을 사는데 있어 최고의 행복을 손에 넣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너를 위해 사는 것은 내게 있어 행복한 일이다」

  나는 좋은 어머니의 흉내를 대충이나마 할 뿐인 녀석이다.
  레이무에게 쓸데없는 부담이나 짊을 짊어지게 하는 것이 무섭다.
  그렇지만, 이 아이에게 나라는 인간의 한 조각을 맡기는 입장으로서 기대를 하지 않는다는 것은 부모로서 잘못된 것이다.

「레이무. 훌륭한 하쿠레이의 무녀가 되거라」
「……응, 노력할게」

  나의 기대에, 레이무는 씩씩하게 대답해주었다.







​「​스​펠​카​드​・​브​레​이​크​,​ 네」

  그저 담담하게 할 말만을 내뱉는 레이무의 얼굴을, 요우무는 가까이서 올려다보고 있었다.
  온몸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린다.
  육체적인 피로는 그렇게 대단치 않은데도 불구하고, 당장이라도 팽팽하게 당겨진 집중의 실이 끊어질 것 같다.

  ──나는, 이 녀석에게…….

  이어질 말을 필사적으로 부정한다.
  인정할 수 없다. 아직 승부가 시작한 뒤 얼마 되지도 않았다.
  사용한 스펠카드는 지금 그것으로 세장.
  아직 힘은 남아 있다.

  그러나──.

「더할 셈이야?」

  모든 탄막을 회피하고는, 간단하게 요우무의 눈앞까지 거리를 좁혀 다가온 레이무는 숨 하나 흐트러지지 않았다.

「당연, 하지……!」
「허세는 집어치워. 이미 네 눈이나 얼굴에 대답이 나와 있으니까.」

  차갑게 가라앉은 눈빛이, 마음속까지 간파하는 것만 같은 착각에 사로잡힌다.

  아니, 정말로 착각일까?
  이 무녀는, 마음속에서 우러나온 두려움과 체념을 완전히 간파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럴 리가 없다. 왜냐면 그런 감정은 자신에게 존재치 않으니까.

  요우무는 필사적으로 자신의 마음을 굳히고 있었다.
  현실을 직시하면 간단히 꺾여버릴 정도로 흔들린 마음을.

「……너, 같은 녀석에게. 내가……이제까지 단련해온, 시간이……!」

  눈앞의 무녀는 분명히 인간이었다.
  그 짧은 생을 눈 깜짝할 사이에 써버리고 마는 물러터진 종족임이 틀림없다.
  쌓아올린 시간의 양도 질도, 자신과는 다르다. 분명 다르다.
  요우무는 그렇게 단정 지으며, 그 생각에 의지하며 간신히 서있을 수 있었다.

「이런……룰에 묶인 결투가 아니었다면……!」

  요우무는 무의식중에 내뱉은 말에 정당성이 있다고 조금이나마 믿으며, 그 외의 모든 감정을 변명 섞인 자신의 말에 대한 의념과 후회로 메꾸고 있었다.

  레이무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저 싸늘한 눈빛으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 검에서 탄막을 발사하고 있는 거지?」

  레이무는 요우무가 쥔 칼을 가리키며 말했다.

「휘둘러보는 건 어때?」

  자신이 요우무의 칼이 닿을 간격에 있음을 알면서도, 가벼운 목소리로 말했다.

「탄막놀이의 룰에 어긋나지는 않으니까, 그것도」
「……큿!  ​우​와​아​아​아​아​앗​─​─​─​!​!​」​

  그 한마디에, 요우무의 흔들릴 대로 흔들린 정신은 한계를 맞이했다.

  처음에 보였던 세련된 검기 대신 살기를 불태우며 레이무를 향해 칼을 휘두른다.
  마음이 흔들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술로 뒷받침된 그 일태도는 인간을 간단히 양단할 수 있을 정도의 예리함을 가지고 있었다.
  더욱이, 명검인 「누관검」의 예리한 칼날은 어설픈 결계 채로 적을 벨 수 있다.

  찰나의 검섬이 번쩍였다.

「……아……앗」
「그래서──」

  요우무가 휘두른 혼신의 일태도는, 레이무의 손에 잡혀 멈춰있었다.
  단순한 방어가 아니다. 요우무가 휘두른 검의 변칙적인 움직임을 간파하고 진검을 맨손으로 잡아챈 것이다.
  더욱이 결계용의 부적 두 장 사이에 끼우듯 검신을 잡아, 그 위력을 완전히 받아냈다.

「더할 셈이야?」

  조금 전과 토씨하나 틀리지 않은 말을 들은 요우무의 마음은 꺾였다.
  온몸에서 전의와 힘이 사라져간다.

「너무 했어」

  승부가 났다고 판단한 마리사가 다가와 말했다.
  처음 모습을 드러냈을 때에 넘쳐흐르던 기세를 잃고 무기력하게 고개를 떨군 요우무에게서 시선을 돌리며, 얼굴을 찡그리고 있다.

  레이무는 스펠카드를 모두 브레이크 하지도 않고, 무기를 쥔 팔을 베서 잘라내지도 않았음에도 확실하고 재빠르게, 그리고 뼛속까지 새겨질 정도로 적에게 패배를 새겨넣은 것이다.
  무자비한 승자는, 그런 비난을 들어도 어깨를 들썩이기만 할 뿐 어떤 반응도 없었다.

「자 이제 심문 시간이야. 가능한 솔직하게 대답하는 게 좋을 거야」
「뭐, 이래서야 솔직하게 대답할 수밖에 없잖냐.」

  마리사는 속으로 협박이나 고문보다 확실하며 잔혹한 방법이라며 치를 떨었다
  마음속부터 졌다고 깨달은 자에게 저항할 수 있는 정신력 같은 건 이미 남지 않았다.

「네 주인과 그 목적은?」
「……백옥루의 주인이신 사이교우지 유유코님. ​목​적​은​…​…​사​이​교​우​지​ 아야카시라는 요괴벚나무를, 환상향의 「봄」을 이용해 피우는 것……」

  요우무는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대답했다.

「어째서 피우려는 거야?  현재 진행 상태는?」
「그것에는 누군가가 봉인되어 있다……. 사이교우지 아야카시에 걸린 봉인은, 그것이 만개하면 풀린다. 그러니까, 유유코님이 하고 싶다고 하셔서…… 만개까지 필요한 「봄」은 앞으로 조금……」
「뭐야, 단순한 공주님의 심심풀이 때문이냐」
「이변은 그런 거니까. 그래서──」

  레이무의 눈동자에 위험한 빛이 한 순간 스친다.

「그 백옥루라는 곳에 너희들 이외의 인간의 영혼이 하나 새롭게 들어오지 않았어?」
「선대무녀라면 망령이 되서 백옥루에서 살게 됐어.」

  들어본 적 있는 목소리가, 레이무의 질문에 답했다.
  기습에 대비한 레이무와 마리사가 준비를 끝마치기도 전에 요우무의 모습이 틈새 속으로 삼켜져 사라진다.
  아마 방해가 되지 않게 다른 장소로 이동시킨 것이다.

  그런 능력을 쓸 수 있는 요괴는, 한 명 밖에 없다.

「역시, 네가 범인이었다는 거네. 틈새요괴」

  만났을 때부터 느끼고 있던 혐오감과 적의는, 이미 살의가 되어 레이무의 몸에서 뿜어지고 있었다.
  선대무녀의 일에 대해 서로 용납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던 존재.
  그것이, 지금 증명되었던 것이다.

  공간이 찢어지고 그 안에서 야쿠모 유카리가 레이무와 마리사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대화를 해보자, 하쿠레이의 무녀」
「너와 이해하는 건 이제 무리라고 생각하지만 말이지.」

  대화를 하고는 있으나 이미 유카리를 이변의 일부라고 판단한 듯 곧바로 경계태세를 취하는 레이무.
  그러나, 반대로 유카리는 그런 레이무의 행동에서 대화의 여지가 남아있다는 것을 눈치 챘다.
  정말로 자신을 퇴치해야할 요괴라고 결정했다면, 문답무용으로 공격했을 것이다.
  전투를 하려면 대화 따위는 비효율적이니까.
  레이무에겐 그렇게 행동하면서도 확인하고 싶은 것이 있을 것이다.

「내가 네 어머니에게 찾아간 이유를 말할게.」

  그 말에, 레이무의 전의가 약간이나마 희미해졌다.
  유카리는 옆의 마리사에게 한 번 시선을 옮긴다.

「키리사메 마리사. 너는 잠깐 이 장소에서 물러나 줬으면 해.」
「뭐야, 나는 찬밥신세?」
「선대가 보증하고, 자기 스스로 힘을 증명해낸 네게는 이변해결에 관련될 자격이 있어. 하지만, 이 이야기에 끼어들 수 있는 입장은 아니야.」
「헤에, 그러셔. 근데 그걸 왜 네가 맘대로 판단하는 거야?」

  마리사는 유카리에게 불쾌감과 불신감을 드러내며, 레이무의 옆에 서듯이 전투태세를 취했다.
  설령 어떤 이유가 있었다고 한들 선대의 영혼을 앗아간 저 요괴의 행동을 용서할 생각은 없었다.
  악의를 품고 행해진 일이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다.
  그러나, 친구의 어머니를, 남의 신뢰를 이용해 그 사람을 속이는 짓은 마리사의 가치관에 크게 어긋나는 것이었다.

  높으신 분이면 뭐든지 해도 되는 거냐?
  이건 남을 위해서 한 일이니 잘못은 없다고 떳떳한 얼굴로 말할 수 있다는 거냐?

  마리사의 동기는 감정이다. 마음에 들지 않으니까, 우선은 한방 갈기고 나서 말한다면 들어 주려고 했다.
  그 때, 엉뚱한 방향에서 튀어나온 탄막이 마리사를 덮쳤다.

「──맘대로 판단할 수 있다. 그분은 요괴-강자-시며, 너희들은 ​인​간​-​약​자​-​이​니​까​.​」​

  마리사를 공격한 것은 유카리의 식신인 란이었다.
  당황해서 회피하는 마리사를 몰아내듯이, 더욱 탄막을 퍼붓는다.

「젠장, 방해하지 말라고!」
「네가 있으면 이곳의 풍기가 흐트러진다. 나중에 이어질 이변해결이라면 참가시켜줄 테니 얌전히 물러나라.」
「네 허가는 필요 없다고!」

  레이무와의 거리가 떨어지는 것을 보며 그것이 란의 의도라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마리사는 별달리 대처할 수 없었다.
  자신의 상대는 이 여우요괴인 것 같다.
  이 녀석을 쓰러뜨리지 않으면, 유카리에게 불평조차 할 수 없을 테고, 뭣보다 이 녀석 자체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자만하지 마라, 버러지가」
「정해진 것 같은 높으신 분 대사 땡큐. 버러지 근성으로 파워업 했다구.」

  란의 시선은 약자를 향한 비웃음과 동정이 뒤섞여 있었지만, 그런 시선은 이미 익숙하다.
  마리사는 대담한 미소를 지으며 승부에 도전했다.







「그럼, 선대무녀의 영혼은 이 앞에 있다는 거지?」
「어머니── 라고 부르지 않는 거니?」

  주변에서 펼쳐지는 상황을 무시하며, 하쿠레이 레이무와 야쿠모 유카리는 서로 마주보고 있었다.
  이미 레이무에게 싸울 생각는 없다.
  그러나, 표정이나 시선, 목소리. 그 어느 것에도 우호적인 감정은 깃들어 있지 않았다.
  마치 적대하는 것처럼.

  환상향을 관리하는 입장에 선 두 종족의 대표가 서로를 적대한다.
  원래대로라면,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다.

「선대무녀를 망령으로 만들어 영혼만을 남긴다. 쓸모없어진 육체는 버린다. 너는 그렇게 생각했다는 거네.」

  유카리의 농담에 답하지 않고, 레이무는 대답을 들을 필요도 없다는 듯이 단언하는 것처럼 자신의 예상을 말했다.

「……아니. 그녀를 망령으로 만든 건 일시적인 처치야」

  레이무의 딱딱하게 굳은 모습을 무감정하게 바라보던 유카리는 이윽고 일의 진상을 말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다리는, 지금으로선 어떤 방법을 써도 고칠 수 없어.
  그러나, 영원히 불가능한 것은 아니야. 여러 가지 방법을 모색해, 머지않아 찾아낼 거야. 다행스럽게도 다른 요괴들이 순순히 협력해주기도 했고.」

  유카리의 말투는 평소처럼 연극조가 아닌, 한없이 진지한 목소리였다.
  그 말에 거짓은 없다.
  선대무녀는 많은 인요들에게 존경받고 있다.
  유카리가 협력자로서 이번 건에 관련된 케이네나 치르노를 포함해 홍마관 같은 많은 권위자들을 두고 있음이 틀림없었다.

「그 방법을 찾아낼 때 까지, 선대는 망령이 되서 이 명계에서 살고, 육체는 보존한다. 그것이 내가 낸 결론이야」

  생각보다도 훨씬 심플한 이유였다.
  레이무에겐 그 말이 거짓말이라고는 느껴지지 않았다. 감이 그렇게 말하고 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그렇게 말하는 유카리의 목소리에 일절의 감정이 담겨지지 않았다는 것 또한 눈치 채고 있었다.
  이 이야기로는 야쿠모 유카리의 동기를 파악할 수 없었다.

「네 능력으로도 고칠 수 없는 거야?」
「내 능력이 통하는 것들은 대부분 개념적인 부분이 커. 인간의 육체를 대상으로 미묘한 조작은 불가능해.
  선대가 다리에 입은 상처는 매우 복잡한 거야. 상처자체는 이미 완치됐지만, 신경이나 골격의 이상을 수정하기 위한 기존에 없는 정밀한 기술을 찾든가 개발해야 할 정도로.」
「그래서야 시간이 꽤 오래 걸리겠네.」
「인간 입장으로 볼 때는 말이지. 하지만, 망령이 되면 시간은 관계없어」
「과연. 망령이라면 살아있을 때와 그다지 차이나지 않아. 의사소통도 가능하고, 서로 만질 수도 있고. 살아있을 적의 감각으로 지내면서 머지않아 올 부활에 대비할 수 있어.」
「그 말대로야.」
「이해 했어」
「좋아. 그럼, 네 대답을 들려줘.」

  서로 감정을 내보이지 않으며, 담담하게 대화를 주고받은 끝에 유카리는 그렇게 재촉했다.
  레이무는 한 순간의 망설임조차 보이지 않고 즉답했다.

「선대무녀의 영혼을 돌려받겠어. 그리고 이변도 해결할 거야. 방해한다면, 너를 쓰러뜨리고 지나가겠어.」

  간결하게, 그러나 흔들리지 않는 결의가 담긴 말에, 유카리는 그저 조용히 눈을 감았다.
  처음부터 이렇게 될 것이라 예상했던 것이다.

  인간과 요괴.
  가치관의 차이인가, 그렇지 않으면 사상의 차이인가. 어찌됐건, 두 종족의 사이에 존재하는 결코 좁혀지지 않을 차이가 지금 드러나고 있었다.
  그에 관한 대화가 무의미하다는 것을 유카리는 이미 알고 있다.
  멀고 먼 옛날부터, 인간과 요괴의 사이에서 몇 번이고 엇갈려온 것이니까.

「……너는 제대로 일어설 수조차 없는 네 어머니를 보고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 거니?」

  들어본 적 있는 질문에 레이무는 코웃음 쳤다.

「이 녀석이고 저 녀석이고 똑같은 말 밖에 하지 않네. 그 사람이 자신의 몸에 닥친 사건을 불행하다고 한탄한 적도 없는데 말이지.」
「인간의 생이란 삶이란 그릇에 여러 감정을 싣고, 자신만의 사상으로 그것을 단단히 엮어가는 거야.
  망령으로서 사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 거야?  너희들이 집착하는 인간으로서의 삶과 죽음이란 건 대체 뭐려나?  불편한 육체에 얽매여서 평범하게 늙어 죽는 게 인간다운 삶이라는 걸까?」
「달라」

  레이무는 단언했다.
  흔들리지 않는 마음이 담긴 굳건한 목소리였다.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맡기고 죽는 것. 맡겨진 것을 짊어지고 살아가는 것. 그것을 품고 살아가는 거야말로 인간다운 삶.
  그 사람은, 아이가 부모보다 빨리 죽어선 안 된다고 했어. 그 사람은 나보다 먼저 죽는다고 정하고 있었지. 그리고, 나는 그 사람에게서 무언가를 맡은 인간이야.」

  유카리의 얼굴에 씌워져있던 가면에 얼마 안되는 금이 생긴다.
  그곳에서는 레이무를 향한 부의 감정이 보일 듯 말듯 일렁이고 있었다.
  눈에 흉흉한 빛이 서리고, 그것을 숨기듯이 입가를 부채로 숨겼다.

「역시, 너는 선대에게 있어 족쇄에 불과해.」

  죄를 심판하듯이 말한다.

「너는 모를 거야.
  옛날의 그녀는 스스로를 단련하는 것에 한결같았어. 터무니없고 무모한 수련을 반복해서, 그 극한에 이르러도 더욱더 앞을 향하고 있었지.
  그렇지만, 네가 나타난 뒤 바뀌어 버리고 말았어. 네 존재가 그녀를 「어머니」라는 족쇄에 얽매이게 해서 끝없는 저편을 향하던 그녀에게 종착점을 줘버린 거야」

  ──선대무녀는, 너를 위해 죽는다.

  유카리의 말에는, 그런 의미가 숨겨져 있었다.
  근거 없는 트집이나, 그저 감정을 담아 말할 뿐인 질책이 아니다.
  어쩔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것은 레이무 자신도 인정하고 있었다.
  왜냐면, 레이무가 그 어머니에게서 직접 들었던 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러니까── 레이무는 단 한순간도 동요하지 않았다.

「확실히, 나는 몰라. 너와 함께하던 옛날의 그 사람을 몰라. 하지만……」

  레이무는 유카리의 눈동자를 똑바로 바라보며 답했다.
  분노나 초조함 따위는 느껴지지 않는다.
  그 어느 때보다도 강한 시선에 노려봐진 유카리는 무심코 숨을 삼켰다.

「너는, 단 하루도 그 사람의 딸로서 있어본 적 없잖아.
  그 사람에게 자란 것도, 배운 것도, 맡겨진 것도── 전부, 딸인 나만이 알고 있어.」

  레이무는 앞을 보며, 천천히 발을 움직였다.
  그와는 반대로 유카리는 전혀 움직일 수 없었다.
  전신이 딱딱하게 굳고, 목은 죄이는 듯 답답하다.

「나에게 맡기고, 죽는다고 결정해 줬으니까, 나는 그 사람을 최후까지 인간으로서 살리겠어.」

  눈앞까지 다가온 레이무에게 움직일 수조차 없던 유카리의 옆을, 그대로 지난다.
  전투는 없었으며, 언쟁도 없었다.
  유카리는 레이무의 말에, 이미 저항할 의사를 잃어버렸다.
  레이무의 말에는 그 정도로 굳은 힘과 의지가 담겨있었다.

  레이무는 그대로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그대로 돌계단의 끝에 있는 백옥루와 거기서 기다릴 흑막을 향해 비상했다.

「……기다려, 레이무!」

  대면한 뒤 처음으로 자신의 이름을 부른 유카리의 목소리에 레이무는 그대로 발을 멈췄다.

「뭐야?」
「하나만 대답해줘. 너는 선대가……어머니가 사라졌을 때의 슬픔이나 상실감을 받아들일 수 있니?  그에 저항할 마음이 조금도 생기지 않는 거야?  결국 죽을 인간이니 받아들일 수 있는 게 아니잖아?」
「하나가 아니잖아. 뭐, 대답은 하나뿐이지만.」
「말 돌리지 말고 가르쳐줘.」
「싫어.」

  어깨너머로 뒤를 돌아보며, 얼굴에는 드러나지 않았지만 매우 허약하게 느껴지는 유카리를 내려다보며 살짝 혀를 내밀었다.

「너 같은 녀석한테 가르쳐 주기 싫은걸.」

  그렇게 말하고는 그대로 고개를 앞으로 돌려 얽혀오는 시선을 뿌리치며 단번에 돌계단의 위쪽을 향해 날았다.

  유카리는 쫓아오지 않았다.
  놀라거나 잠시 어이를 잃어서 그런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왠지 모르겠지만 유카리가 자신의 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방해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저 무언가를 확인하기 위해서 온 것이라고 생각했다.

  등 뒤로 점점 멀어져가는 기척을 무시하며 레이무는 유카리의 존재를 머리 한쪽 구석으로 몰아냈다.

  선대무녀가 있는 장소와 이변이 발생한 장소. 이번 사건의 종착점을 향해 가까워지는 탓일까, 점점 집중력이 올라가고 있다.
  멀리서 들려오는 탄막의 폭음과 그곳에 있을 마리사의 안전이 마음에 걸렸지만, 돌계단의 정상이 보임과 동시에 사고를 완전히 전환했다.

  시야가 넓어진다.
  돌계단을 지나쳐 더욱 위쪽으로 오르니 넓게 펼쳐진 광대한 대지 위로 백옥루라고 불리우는 대저택과 거대한 벚나무가 눈에 띄었다.
  벚나무에서 뿜어져 나오는 방대한 요기와 한기를 보고는 하나의 확신을 얻었다.

「저게 사이교우지 아야카시……」

  이 사건의 흑막을 찾기 위해 여기저기 시선을 돌리던 레이무가 뿌리를 내려다보고는 약간이지만 눈을 크게 떴다.
  낯익은 것이 있었다.
  반나절도 지나지 않았음에도 매우 그립게 느껴지는 그 모습.

  어머니의 등이었다.

  이쪽의 시선을 눈치 챈 듯, 저쪽에서도 일어서 이쪽을 뒤돌아본다.
  겉으로만 봐선 평범한 인간과 다를 게 없어 보였지만, 무녀인 레이무에게는 그 모습이 영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유카리의 말 대로다.
  그러나, 어머니가 자신의 두 다리로 자연스럽게 일어서는 것을 본 레이무는 한순간 자신도 모르게 조금 전과는 전혀 다른 생각을 품고 있었다.

  만약, 이대로──.
  퍼뜩 정신을 차리고는 머릿속에 떠오른 잡념을 뿌리친다.

「같은 홍백의 무녀라. 생전의 그녀와 인연이 있는 인간이려나?」

  레이무의 마음속에 있던 얼마 되지 않는 동요를 간파한 것만 같은 타이밍에 사이교우지 유유코가 모습을 드러냈다.
  요사스러운 복숭아 색 빛을 뿜어내는 사이교우지 아야카시를 배경으로, 죽음의 기척을 풍기는 아름다운 망령이 부유하는 광경은 확실히 환상 그 자체였다.
  그 요사스런 매력 속에 있는 위험을 간파한 레이무는 마음을 사로잡히지 않도록 자세를 바로잡았다.

「그 사람은 아직 죽지 않았어. 영혼은 받아가겠어」
「어머, 너는 이변을 해결하러 온 게 아니었니?  그렇다면 데리고 돌아가도 상관없는데」
「물론 이 이변도 해결할 거야. 이제까지 앗아간 봄을 내놔.」
「가족과 일, 대체 어느 쪽이 더 소중한 거야?」
「대답할 필요는 없어. 어느 쪽이건 해낼 테니까.」
「그래. 그 무녀는 네 가족이구나.」
「……흥」

  유유코는 선대무녀의 정체를 모른다.
  평범한 농담을 주고받았을 뿐인데 실수로 적에게 정보를 주고 말았다.
  지금부터 싸워야 할 적에게 자신의 정보를 주고 말다니, 실책이다.
  레이무는 무심코 신음을 내뱉으며 입을 다물었다.

「언니……아니, 어머니. 응, 많이 닮았어.」
「……그러셔」
「잠깐 이야기하고 올래?  나는 여기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시간 벌기에 어울려줄 생각은 없어.」
「어머어머, 쌀쌀맞은 따님인걸.」
「……망령이 살아생전의 기억을 잃는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어.」
「우후훗. 과연 하쿠레이의 무녀, 간단한 상대는 아니네.」

  그쪽이야 말로, 라며 레이무는 속으로 욕을 내뱉었다.

  이 정도의 도발로 마음이 흔들릴 만큼 감정에 휩쓸리는 타입은 아니다.
  그러나, 눈앞의 적에게서는 만만치 않은 무언가가 느껴지고 있었다.
  조금 전 싸운 시종과는 확실히 격이 다르다. 과연 그 주인이라고나 할까.
  바닥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부드러운 말투 속에 정체모를 압력이 담겨있다.
  야쿠모 유카리와 같은 타입의 강대한 존재다.
  단지, 미혹을 품고 있던 유카리와 비교해, 이쪽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흔들림 없는 의지를 가지고 행동하고 있다.

「뭐, 요컨데 심플하게 해결하자는 거네.」

  모든 염려를 시원스럽게 넘겨버리고, 레이무는 전투를 위해 사고를 전환했다.
  심플한 힘 싸움이다.
  그녀는 위협을 앞에 두고 주저하는 일 따위는 없다.

「요우무가 이길 수 없을 만도 하네. 부모의 망령을 앞에 두고 한 치의 동요조차 없다니. 훌륭해. 훌륭한 하쿠레이의 무녀야.」

  부처 같은 미소와 함께 도발하는 유유코.
  그러나 그에 답하는 레이무는 오히려 약간이지만 미소를 지으며 웃었다.

「고마워. 더할 나위 없는 칭찬이야.」







  ──피할 수 없어!

  마리사는 자신이 유인 당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압도적인 물량으로 밀어 붙이는 것으로 보이던 탄막은 사실 치밀한 계산으로 이루어진 탄막이었다.
  그저 회피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낸 것이 아닌 미로같이 뒤얽힌 회피루트를 구성, 피할 수 없는 상황으로 몰아넣는다.

  마리사는 확실히 란의 손바닥 위에서 놀아나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한발의 탄환이 하복부에 명중한다.

「크윽……!?」

  신경을 타고 정수리까지 도달한 격통에 입까지 차오른 절규를 필사적으로 다시 삼켰다.
  전신이 경직되고 모든 자유가 한순간 빼앗긴다. 말조차 내뱉을 수 없다.
  탄환이 배를 관통해 내장을 뚫렸다── 그렇게 착각했다.

  절망적인 감정을 담아 시선을 아래로 돌려보니, 맞은 곳은 상처는커녕 옷조차 찢어져있지 않았다.

「뭐……야, 이거……?」
「안심해라, 물리적인 파괴력은 없다. 죽을 정도로 고통스러울 테지만.」

  의식마저 몽롱해질 정도의 격통을 느끼며 마리사는 간신히 란의 목소리를 알아들었다.

「스펠카드・룰에는 의도적인 살상이 금지되어 있다.
  네가 얼마나 많은 요괴들과 서로 싸워 왔는지는 모른다만, 그자들은 모두 취약한 인간이 죽지 않을 정도로 탄막의 위력이나 양을 조절하고 있었겠지.
  동정하마. 힘 조절에 자신이 없는 자들은 규칙위반의 위험성을 고려해 레벨을 내리지 않으면 안 될 정도다.
  정말이지, 너희 인간들의 상대를 하는 건 도자기를 다루듯이 세세한 배려를 해야 하니 귀찮을 정도다.」

  마리사는 완전히 이쪽을 얕보고 있는 란의 말에 신음을 흘리며 들을 수밖에 없었다.
  설령 말할 수 있다한들 반론할 수 없었을 것이다.
  란이 말하는 내용은 사실이니까.

  인간과 요괴가 스펠카드・룰을 지키며 싸웠을 경우, 그 승패가 어떻든 그 뒤에 있는 것은 「약자는 룰에 보호 받는다」라는 불변의 진리다.
  그 진리야말로 이 룰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기능이지만, 극히 일부의 강자가 그를 비웃는 것도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란은, 확실히 그 일부에 속한 강자였다.

「네가 쟁취한 승리가 얼마나 많은 배려 덕에 가능했던 건지를 반성하는 것이 좋다.」
「……헤헷, 그 말은 넌 날 봐줄 생각이 없다는 거지?」

  아직도 복부를 쑤셔 후비는 것 같은 통증을 견디며 마리사는 간신히 웃음으로 답했다.

「안심하라고 했을 터. 죽지는 않는다.
  나의 탄막은 살상력을 극도로 깎고 고통을 가하는 것에 특화해 있다. 외상은 없지만, 내장이 뒤틀릴 정도로 고통스러울 거라 생각한다만?」

  그것이, 자신의 주인이 만든 룰을 연구하여 도출해 낸 효율적인 수단들 중 하나였다.
  고통은 데미지로서 가장 느끼기 쉬우며 상대를 다치게 할 위험도 없으니 탄막의 레벨 자체를 내릴 필요가 없다.
  룰에 지켜져야 할 약자를 배려한 덕분에 더욱 흉악한 난이도의 탄막을 구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거, 진짜로 배에 칼 맞았을 때의 아픔하고 같다는 거야?」
「몸의 안전은 보증한다만, 여러 번 맞으면 정신이 버티지 못할 터다. 쇼크사로 죽기 전에 항복해라. 아니면, 아직도 이 이변해결에 끼어들고 싶은 건가?」

  어디까지나 시선은 위에서 아래로 향해 있다.
  란은 마리사의 행동이 전부 자신의 생각대로 좌지우지 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지금, 약하디 약한 인간의 마음은 굴욕감에 찌들어 있겠지만, 그건 당연한 것이라 생각했다.

  자연의 섭리다.
  인간은, 요괴보다 약하니까.

「과연……」

  찌부러진 것 같은 목소리로 마리사가 중얼거린다.

「즉, 내 근성이 계속되는 한 네게 도전해도 OK라는 거지……!」

  간신히 몸이 어느 정도 자유를 되찾고, 다시 적을 바라보기 위해 얼굴을 올렸을 때엔 비지땀을 송글송글 맺혀 있었지만 그와 함께 처음처럼 대담한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마리사를 얕보고 있던 란의 눈이 조금 가늘어진다.

「제대로 들었나?  너희 인간은 고통만으로도 간단히 죽는 종족일 텐데.」
「아, 들었다구. 마음이 꺾이지 않는 한 마음껏 도전하라는 말이잖아?
  나는 기억력이 안 좋아서 머리보다는 몸으로 탄막의 공략법을 찾는 타입이라서 말이지. 배려 해줘서 고맙다구.」
「……그런가」

  란은 천천히 끄덕였다.
  다시 내민 스펠카드는, 마리사가 회피에 실패한 그것이다.

「그렇다면 뜻대로 죽어라.」

  인정사정없이 탄막이 발사된다.
  처음 본 것이 아니라고는 해도 아직 탄막의 패턴을 채 파악하지 못했다.
  거기다 맨 처음 사용했던 회피루트는 함정이었다. 또 다른 길을 찾지 않으면 이 스펠을 공략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한 번 회피에 실패한 탄막을 피하고 그 앞에 있을 미지의 영역을 뛰어넘을 있을까──?

「나의 잔기는 무한이라구!!」

  마리사는 마음속에서 솟아오르는 절망감을 무시하며 크게 소리치고는 날아올랐다.
  다가오는 탄환 하나하나에 공포를 느낀다.
  맞으면, 또 그 엄청난 격통을 맛보게 된다.
  알고 있다고 한들 참을 수 있을 정도로 약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알고 있기에 공포로 움직임이 무뎌진다.

  그러나, 마리사는 멈추지 않았다.
  고통의 공포를 능가할 정도의 의지나 목적이 있던 것은 아니다.
  단지, 용서할 수 없다는 고집뿐이었다.
  아직도 남아있는 고통과 직격 당했을 때 찾아올 고통에 의한 공포가 조금 전보다 마리사의 움직임을 무디어지게 하고 있다.
  애초에 과한 속도를 주체하지 못하던 마리사의 기동은 서서히 정밀한 탄막의 포위에 따라잡히더니 이윽고 초조함 탓에 집중력이 흩어져 치명적인 빈틈을 만들어 냈다.
  바로 앞에서는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다수의 탄환이 다온다.
  그 중 한 탄환의 궤도상에는, 마리사의 머리가 있었다.

  ──머리는, 위험한데.

  자신의 실책을 깨달았을 때엔 공포나 절망보다 먼저 그런 생각이 들었다.
  도대체 얼마나 고통스러울지 이미 상상조차 할 수 없다.
  탄환은 그대로 마리사의 이마까지 다가왔다. 그리고──.

「시간이여, 멈춰라」

  정신을 차리고 보니, 마리사는 어느새 탄막의 포위망에서 빠져나와 란의 등 뒤로 돌아와 있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누군가에게 안겨서 완전히 다른 장소로 이동해 있었다.
  모든 것이 갑작스럽게 마리사가 지각할 수 있는 범위 외에서 행해진 사건이었다.

「……에!?」

  그 찰나 하나의 기억이 스쳐지나간다.
  마리사는 당황해서 자신을 껴안은 팔의 주인을 올려보았다.

「사, 사쿠야!?」

  마리사를 탄막의 포위망 속에서 구한 자는, 어느새 나타난 이자요이 사쿠야였다.
  놀라움과 동시에, 지금 일어난 일에 대한 모든 의문이 풀렸다.
  그 순간 사쿠야는 자신의 능력을 사용해 시간을 멈추고 난입, 마리사를 안아 장소를 이탈한 것이다.
  붉은 머플러 휘날리며 사쿠야는 품안에 안긴 마리사에게 시선을 돌렸다.

「일단 사과할게. 미안해, 마리사」
「아……아니, 무슨 말이야?  도움 받은 건 이쪽……」
「이 승부는 네 패배야.」

  사쿠야의 말에 마리사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한편 란은 난입자에 대해 경계를 늦추지 않고 있었지만, 그 상대가 무지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는 콧방귀를 뀌었다.

「알고도 한 행동이라면 딱히 말할 바는 없다.
  사전에 선언했다면 몰라도 스펠카드를 발동한 이후 타인의 난입은 반칙이다. 요컨대, 키리사메 마리사. 이 승부는 네 패배다.」
「으엑, 진짜냐고……!」
「그러나, 널 도와준 홍마관의 메이드에게 ​감​사​해​둬​라​.​「​뜻​하​지​ 않은 사고」라는 녀석에게서 도움 받았으니까 말이지.」
「나에 대해서 알고 있을 줄이야.」
「나의 주인님은 모든 것을 알고 계신다.」

  란과 사쿠야. 둘의 차가운 시선이 서로에게 맞부딪친다.
  서로가, 서로 마주 보는 상대와 기묘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우호적인 것이 아닌, 동족혐오에 가까운 적의와 살의였다.
  자신의 주인에게 향하는 존경심과 충성이 두 시종 사이에서 반발한다.

「마침 딱 좋을 때 승부가 났군. 나는 슬슬 비켜주도록 하지.」
「아, 기다려!  아직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고!」
「내 할일은 끝났다. 이미 네 상대를 할 필요도 없지.」

  혈기왕성하게 덤벼오는 마리사에게 하나같이 냉담한 말로 답한다.
  그런 란을 사쿠야가 쏘아보듯이 응시하고 있었다.

「알겠네. 피차 주인님의 명령이 절대니까.」
「그런 거다」
「아주 잘 알겠어. 분명 안타깝기 그지없겠지. 그런 주인님의 명령을 따를 수 없었을 때의 기분이라는 건.」
「……그렇다, 분명히 말이지. 만약 다시 만날 때가 온다면 시험해 봐도 괜찮다」
「나도 그렇게 됐으면 좋겠네.」

  일촉즉발의 분위기임에도 냉정하게 사쿠야와 란은 헤어졌다.
  란이 그 자리를 떠난 뒤 남겨진 불만 가득한 표정의 마리사와 아까와는 달리 경계를 푼 사쿠야가 다시 서로를 마주본다.

「젠장!  자기 할 말만 하고 가버리다니!」
「침착해. 저런 녀석에게 열 낼 필요는 없어.」
「아니, 열 낼 거라고!  저 녀석에게 아무것도 보여주지 못하고 승부가 끝나버렸으니까!」

  마리사는 발버둥 치듯이 사쿠야의 품 속에서 빠져나와, 등을 돌린 채 잠시동안 험담을 내뱉고 있었다.
  사쿠야는 그저 조용히 그런 마리사를 지켜보았다.

「……미안해. 도와줬는데, 괜히 너한테 화풀이해서.」
「괜찮아, 화난 건 알겠으니까. 그렇지만 감정을 제대로 조절하지 못하면 아까 그 녀석에게는 이길 수 없어.」
「뭐야, 아까 그거 보고 있었던 거야?」
「맨 마지막만 조금.
  공포를 없애는 건 무리겠지만, 적어도 무모하게 도전하는 것만은 그만둬. 불필요한 전투도 말이지. 힘들 때는 깨끗하게 물러나는 것도 방법이야.」
「그렇게……할 수는 없다고.」

  마리사는 고개를 떨구고는 입술을 깨물었다.

「레이무도 함께 왔었는데. 그녀석만 특별취급이었어. 나는 방해니까, 아까 그놈이 상대하고 있었고.
  아마, 레이무는 이미 저 앞에 있을 이변의 원흉한테 도착했을 텐데. 나는 적의 부하에게 당하다가, 할일이 끝났다고 남겨져버렸다고.」
「……그 하쿠레이의 무녀는, 내가 봐도 비정상이야. 마리사가 약한 게 아니니까.」
「에에, 위로는 고마워.
  레이무가 특별하다는 것 정도야 나도 알고 있어. 그러니까, 아무리 불리한 승부라도 도망칠 수 없다고. 평범한 내가 한 번 멈춰버리면 그녀석하고 어깨를 마주댈 수 없으니까.」

  사쿠야는 그 말을 들으며 하나 이상한 점을 깨달았다.
  자신의 속내를 실토하는 마리사의 얼굴에는, 레이무를 향한 선망의 색은 있으나 질투 같은 부의 감정은 찾아볼 수 없다.

  어째서 저렇게까지 그 무녀와 대등한 자리에 서길 바라는 것일까?
  솟아오른 의문은 그대로 질문으로 변했다.

「왜, 그녀와 대등하게 되고 싶은 거야?」
「알고 있어?  진짜 친구라는 건 대등한 관계가 아니면 될 수 없는 거라구.」

  웃는 얼굴로 부끄러운 말을 하는 마리사에게, 사쿠야는 기막히다는 듯이 쓴웃음 지었다.
  마법사답지 않은 순수한 소녀라고 생각하고는 있었지만, 이렇게 소녀다운 생각을 하고 있으리라곤 생각지 못했다.
  그리고, 그 속내와는 반대로 완고하며 강하다.

  마리사가 가진 우직하기까지 한 고집은, 완전히 반대인 성격을 한 사쿠야를 어딘지 모르게 끌어당기고 있었다.

「그 무녀의 어디가 그렇게 좋은 건지 모르겠네. 하쿠레이의 무녀는 사람에게 사랑받는 성질이라도 가지고 있는 걸까.」
「굳이 말하자면 내버려 둘 수 없다는 느낌이야. 그것도 부모자식 둘 다.」
「선대무녀도?  이번 이변에 관련되어 있기라도 해?」
「가면서 이야기 할게. 일단 저쪽으로 가자. 사쿠야도 이번 이변을 해결하러 온 거지?」
「그래. 오는 길에 쓸데없이 소령이라던가 봄의 요정 같은 녀석들과 싸워서 시간을 날렸지만」
「아, 레이무가 결계를 부숴서 들어온 건가.」

  두 명이 나란히 비행하며 돌계단의 정상을 향한다.
  피로와 고통에 마리사의 비행이 불안정하다는 것을 깨달은 사쿠야는 자연스럽게 다가가 마리사를 부축했다.

「미안한걸, 하나부터 열까지」
​「​괜​찮​아​.​…​…​그​런​데​,​ 마리사」
「왜?」
「너, 조금 냄새나.」
「……」
「이 냄새는……」
「그게……사실, 미안해. 아까 그 탄막놀이에서 맞았을 때…… 무지 추운데다 아파서……」
「설마 너」
「……조금, 지렸어」
​「​어​…​…​그​러​니​까​…​…​」​
「아무 말 하지 마!  나도 아가씨라고!  상처 입는 다구!!」

  마리사의 말을 따라 사쿠야는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
  더 거북해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싸움은, 숨이 막힐 정도의 아름다움으로 흘러넘치고 있었다.

  나비를 본뜬 유유코의 탄막이 말 그대로 하늘을 춤추듯이 난무하며 희미한 빛의 꼬리를 이어 공중에 독특한 아트를 그려내고 있다.
  유유코 자신에게서 뿜어지는 영력이 부채의 형상이 되어 등 뒤로 펼쳐져, 한 폭의 그림 같은 광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덧없는 아름다움을 연상시키는 그 탄막의 흉악한 실태가, 그에 잔혹함을 덧붙인다.
  빛나는 나비 한 마리 한 마리가 맞은 자의 생명력을 한계까지 빨아들인다는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압도적인 밀도로 펼쳐지는 탄막 속을 무녀가 춤춘다.
  강자들이 펼치는 탄막놀이는 확실히 인지를 넘은 환상적인 아름다움으로 충만했다.

  그러나 실제로 싸우는 본인들은 그런 애매한 감동을 품을 수 없었다.
  스펠카드를 내밀며 우아하게 미소 짓는 유유코의 이마에는 한줄기 땀이 흐르고 있었다.

「어떻게…… 정말로 무서운 적이네, 하쿠레이의 무녀라는 건.」

  속으로 느껴지는 전율감을 드러내지 않는 것은 지체 높은 신분을 가진 자의 위엄 때문이다.
  평소에는 얼이 빠진 듯이 생활하고 있기는 해도 그녀에게는 충실한 시종에게 보여지고 있다는 자각과 책임이 있었다.

  그러나, 그런 감정도 눈앞의 현실이 상대여서야 요동칠 것 같았다.
  엄청난 밀도로 적을 밀어붙이는 스펠카드를 세장이나 사용했음에도 불구하고 레이무에게는 단 한줄기의 생채기조차 없었다.

「아름다운 탄막이야. 그렇지만 겉모양에 비해 위력은 지독하네.」

  천천히 문드러져가는 무녀복의 소매에서 시선을 돌리며 레이무는 담담하게 중얼거렸다.
  유유코의 탄막에 닿은 부분이다.
  이게 몸에 맞았을 경우 따위는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레이무에게는 일말의 두려움조차 품지 않는 정수와 같은 마음가짐이 갖춰져 있다.

「요우무가 그 정도로 타격을 받을 만 하구나. 내 마음도 그렇게 꺾여버릴 지도.」
「아, 그 녀석 괜찮아?」
「대체 무슨 얼굴로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걸까?  너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잔혹하거나 뻔뻔한 성격이구나.
  그 아이는 틈새로 보내진 후 지금까지 주저앉은 채 움직이지 않고 있어. 상처 하나 없는데, 당분간은 제대로 싸울 수도 없을 거야.」
「연약한 녀석이네.」
「네가 너무 대담한 거야. 어머니의 교육 덕이려나?」
「그 말 대로야.」

  자신을 덮치던 탄막 속에서도 그저 담담하던 표정이, 한순간 변했다.
  어딘가 자랑스러운 듯한 미소를 보며 유유코는 이 두 무녀 사이에 있는 깊은 정을 느꼈다.
  모든 면에서 완벽하다고 생각되는 이 하쿠레이의 무녀를 흔들기 위해선 역시 어머니의 존재를 이용해 공격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동시에 그것이 졸렬한 술책이라는 것 또한 알고 있었다.
  그녀는 어머니의 존재로 강점만을 얻고 있다.
  예를 들면, 지금 이 자리에서 그 망령을 조종하거나 소멸시켜 봤자 눈앞의 무녀는 그것을 계기로 또 다른 힘에 눈을 뜰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날 때부터 강력했던 존재가 가진 강함과는 다르다.
  예상조차 하지 못할 방향으로 성장── 아니, 진화하는 미지의 힘을 숨긴, 유유코가 만나본 적 없는「강한 인간」이었다.

「정공법으로는 쓰러뜨리지 못할 것 같네.」

  ──하지만 정공법 이외의 술책도 풍류가 없구나.
  패배의 조짐을 느껴도, 꺾이지 않는다.
  우아한 몸짓으로 다음 스펠을 발동하는 유유코의 모습은, 명계의 공주로서 부끄럽지 않을 위엄으로 가득 흘러넘치고 있었다.
  그에 대적하는 레이무 또한 환상향을 관리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자로서 모든 장해물을 꿰뚫는 예리함이 있다.

  직선. 곡선. 고속. 지속.
  복잡하게 뒤얽힌 나비의 무용을 레이무는 종횡무진 돌파한다.
  주위를 부유하는 두개의 음양옥에서 발사된 탄막은 예측할 수 없는 궤적을 그리며 표적을 향해 내달린다.

  정확 무비한 유도탄.

  위력은 낮지만, 설령 어떤 위치에 있던 피할 수 없을 정도로 정확하게 적을 노리는 탄막에 유유코는 감탄했다.
  반대로 자신의 탄막은 명중할 것이라 생각되는 이미지가 전혀 떠오르지 않는다.

  초조함이 드러나지 않도록 항상 짓고 있던 미소가 마침내 굳어가던 그 때──.

  레이무의 등 뒤에서 엄청난 빛이 뿜어져 나왔다.
  감이 전력으로 위험을 고한다.
  그것은 예기치 못한 기습이었다. 레이무와 유유코 조차도.

  레이무가 마침 그 때 등 뒤에 두고 있었던 것은, 사이교우지 아야카시였다.
  이미 풀리기 직전이던 봉인에서 흘러넘친「살해의 힘」이 탄막이 되어 주변에 무작위로 흩뿌려졌던 것이다.
  의지가 없는 벚나무가 뿜어낸 그것은 단지 생명을 빼앗는 해일이 되어 레이무를 덮쳤다.

  ──등 뒤에서의 기습.

  ──이미 인식하고 있던 적에게서 한눈을 파는 것에 대한 주저.

  그것들이, 레이무의 신들린 회피에 자그마한 지연을 일으켰다.
  피할 수 없다.
  레이무는 그것을 깨닫고 어깨 너머로 덮쳐오는 죽음을 응시한다.

  그것을 순순히 받아들일 생각은, 없다.

「──레이무!!」

  레이무 자신의 대처보다 빨리, 힘이 담긴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지상에서 발사된 무수한 광탄이, 레이무를 덮치기 직전이던 모든 탄막을 지워 없앴다.
  발사선상에 일제히 뿜어져 나온 그것은, 이미 탄막이라기보다 산탄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옳다.

  두 명이 동시에 광탄이 뿜어져 나온 곳을 향해 시선을 돌리자, 시야에 들어온 자를 알아본 레이무와 유유코는 경악에 눈을 치켜떴다.
  상공을 향해 주먹을 내뻗은 채, 곧게 레이무를 응시하는 선대무녀가 있었다.
  망령이 스스로 딸의 이름을 불렀던 것이다.

「……어머머. 이거 진짜야?」

  이 날 중 제일 크게 놀란 유유코는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웃을 수밖에 없었다.
  동요하고 있던 것은 레이무도 마찬가지였으나, 제정신을 훨씬 더 빨리 차렸다.

  선대의 모습을 본 순간.
  자신의 이름이 어머니에게서 불려진 순간.
  레이무 속에서 터진 경악을 능가한 사명감이 솟구치고 있었다.
  유유코의 빈틈을 놓치지 않고 단번에 접근해 스펠을 발동한다.

「몽부 「이중결계」!」

  전면에 두 겹으로 전개된 부적으로 완성된 결계가, 유유코를 날려버렸다.
  강고한 방어를 공격으로 사용한 그 일격은 절대적인 위력을 발휘해, 유유코 자신에게 큰 데미지를 줌과 동시에 등 뒤에 펼쳐져있던 영력의 부채를 부쉈다.

「조금, 납득할 수 없기는 해도……승부 끝. 이려나……」

  커다란 허탈감을 느끼며 유유코는 포기했다는 듯이 웃었다.
  난입에 의한 반칙패지만, 의도치 않는 일이라고 한들 유유코의 소유물인 사이교우지 아야카시의 폭주가 먼저다.
  탄막놀이의 결과는, 레이무의 승리로 끝났다.
  그러나, 이변이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는 것을 레이무는 알고 있었다.

  추락하던 유유코가 허공에서 그대로 사라진다.
  사이교우지 아야카시의 봉인이 풀려가고 있는 탓이다.
  레이무는 유유코와 사이교우지 아야카시의 사이에 있는 인과관계를 모른다.
  단지, 자연스럽게 경계하는 대상이 사이교우지 아야카시에게 옮겨져 있었다.

  감이 고하고 있다──.

「이 녀석을 봉인하지 않으면 이변은 해결되지 않아.」

  말하지 않는 벚나무를 상대로 이미 스펠카드・룰 따위에 의미는 없다.
  그러나, 순수한 요마조복에 관한 일 또한 하쿠레이의 무녀의 전문이다.
  만개가 아니라 한들, 이미 반쯤 풀려버린 봉인을 찢으며 뿜어지는 사이교우지 아야카시의 힘은 기이하게도 탄막의 모습으로 주위에 퍼져나간다.

  유유코의 탄막을 닮은, 생명을 빨아들이는 힘.
  하지만 탄막용으로서의 조절 따위는 없다. 하나하나가 이미 완전한 죽음을 선사하는 공포의 덩어리가 되어 무수한 숫자로 흩뿌려지기 시작했다.
  한발이라도 맞으면 즉사할 수밖에 없는 상황 속에서 레이무는 역시 동요하지 않고 냉정하게 대처했다.

  음양옥 둘을 앞으로 내세워, 그것을 중심으로 강력한 결계를 형성한다.
  하쿠레이의 비보인 음양옥은 무녀의 영력을 증폭시켜 여러 형태로 바꾸는 신기한 특성을 가지고 있다.
  거기에 둘을 함께 사용하는 것으로 효과는 더욱 배가된다.
  역대의 하쿠레이 중에서도 최고의 재능을 가진 레이무가 이 비보의 힘을 빌려 결계를 전개하면, 그것은 그 무엇도 꿰뚫을 수 없는 강고한 벽이 된다.
  그 결계로 죽음의 힘을 견뎌내며, 풀려버린 봉인에 더욱 강한 봉인을 건다.
  레이무는 그런 전개를 예상하고 있었다.

  이 단계에서, 아래에 있던 선대무녀의 존재는 사고에서 떼어내고 있다.
  배려하고 있을 여유는 없으며, 무엇보다도 무의미하다.
  생자에게는 위협이 되는 이 힘이 망령에게 주는 영향은 미지수이며, 완전하게 무해할 가능성도 있다.
  결국 싸우지 않고 헤어진 야쿠모 유카리가 만전의 상태로 주변에 있는 이상 선대를 버리는 일도 있을 수 없다.

  그런 요소를 계산하고 쓸데없는 감정에 의한 판단의 치우침마저 배제한 지금의 레이무는 확실히 완벽한 하쿠레이의 무녀로서 실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사방팔방으로 무차별하게 발사된 사이교우지 아야카시의 죽음의 탄막이 다가온다.
  공포는 없었으며, 주저도 없었다.

  레이무는 그저 스스로의 사명을 수행하는 것만을 생각하고 있었다.

  단지, 그 뿐을 생각하고 있었을 터인데.

「──지켜!」

  그 순간.
  위협이 이미 눈앞에까지 다가왔을 때, 레이무는 음양옥 중 하나를 움직이고 있었다.
  레이무의 곁에서 멀어진 음양옥이 선대의 곁으로 날아올라 그 앞에서 선대를 지키기 위한 결계를 형성한다.

  그 모든 것이 레이무가 가진 하쿠레이의 무녀로서의 사고 밖에서 행해진 것이었다.

  무의식, 과는 조금 다르다.
  감정에 휩쓸릴 만큼 어리석지 않으니까.
  레이무는 자신의 돌발적인 행동을 당연하다는 듯이 납득하고 있었다.

「응, 이건……뭐 어쩔 수 없네」

  오히려 당연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다시 생각될 정도로 기묘한 만족감이 차오르고 있었다.
  사이교우지 아야카시의 탄막이 결계에 접촉하자 그 굉장한 압력에 음양옥이 줄어 약해진 결계가 비명을 지른다.

  그러나 레이무는 자신의 판단이 잘못됐다는 후회 따위는 떨끝만치도 없이, 대담하게 웃으며 이 곤경에 도전할 결의를 굳히고 있었다.
  그곳에 있던 것은 하쿠레이의 무녀로서의 책무가 아닌, 하쿠레이 레이무로서의 의지였다.
작자후기

선대 「언제부터 내가 마지막 시점 담당이라고 착각하고 있던 거야?」

「선대시점에서 안심 됩니다」 「좋은 ​결​말​이​었​습​니​다​」​라​는​ 감상이 많아서 이번엔 주인공 시점을 최초로 가져와 시리어스 분위기를 이었습니다.

……나중 와서 분위기가 급개그가 되니까!

다음편에는 정말로 요요몽 에피소드 종료입니다.
끝까지 레이무가 히로인. 유카리에게는 조금 불쌍한 결말이 될지도 모릅니다만, 짭짤한 막간도 예정되어 있으니, 팬 분들은 안심해 주세요.

역자후기

이번편은 제 수학여행도 포함되어 있어서 꽤 늦게 번역 되어 버렸군요. 여러 분들에게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여러분. 지금 레이무 위기로 보이시죠? 괜찮아요. 이건 어차피 선대곤볼이라고요. 다음편에서 셀전에서 오반이 도와주던 오공처럼 선대님이 도와주실 거에요(...)

오늘의 한마디. 사쿠야 "하하하 마리사 이 녀석 하하하"

p.s 이번편에는 두장의 삽화가 포함되어 있습니다만 그 삽화는 원본 주소로 들어가서 봐주시길 바랍니다.
      일단 다른 건 몰라도 저 삽화에 대한 허가는 받지 못했기 때문에 함부로 불펌할 수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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