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요몽편의 시리어스함이 끝나지 않은 편.
그렇지만……그렇지만 선대라면 어떻게든 해 줄 거야!
【카미시라사와 케이네의 갈등】
환상향의 밤은 깊다.
바깥 세계와는 달리 길에 가로등이나 밤늦게까지 열려있는 가게 따위는 존재하지 않으니까, 광원은 달빛이나 별빛 정도다.
그 깊은 어둠 속에서 싸돌아다니는 사람은 없다.
사람을 멀리하는 어둠에는 필연적으로 정적이 함께하며, 그런 공간에는 인간으로서는 위험한 무언가가 숨어있다.
그래서, 밤에는 사람이 돌아다니지 않는다──.
밤의 깊은 어둠과 고요함은 그렇게 만들어져 있었다.
그 어둠 속을, 달빛조차 피하며 움직이는 자들이 있었다.
세 명의 남자다.
모두 틀림없이 인간이다.
그러나, 그들은 이 어둠 속에서 미아가 되어버린 얼간이가 아니다.
그들은 기척을 죽이고, 발소리를 없애는 것에 뛰어났다.
이 밤의 어둠을 아군으로 만들 수 있는 자들이었다.
밤에 활동하는 요괴들의 눈조차 속이겠다는 듯이, 그들은 조용하게 목적지를 향한다.
남의 눈을 피해 어떤 꺼림칙한 행위를 목표로 움직이는 것일까. 그들이 도착한 곳은, 어디에나 있을법한 마을의 진료소였다.
단지, 그곳이 선대무녀가 운영하는 진료소라는 것 외엔, 어떤 특이점도 없는 장소다.
─그들의 목적은, 선대무녀 그 자체였다. 그녀를 「암살」하기 위해 온 것이다.
세 명의 발이 멈춘다.
서로 얼굴을 마주 봤으나 대화는 나누지 않는다.
그러나, 그 눈에는 곤란하다는 눈빛이 비치고 있었다.
예상외의 사태다.
대부분의 인간이 잠에 드는 심야임에도 불구하고, 진료소에서는 빛이 새어나오고 있다.
사전에 예비조사는 끝나 있었다. 이 시간이면 선대무녀는 다른 거주자와 같이 취침하고 있었을 터다.
그런데 아직까지 깨어있다는 불운이 하필 오늘 일어난 것이다.
세 명은 어떻게 해야 할 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목표인 선대무녀가 지금 다리를 제대로 움직일 수 없다는 사실은 변함없다. 잠에 들었을 때를 노린 이유는 더욱 신중을 기하기 위해서다.
이대로 암살을 시도할까, 아니면 신중을 기해 오늘 밤은 물러날까. 그렇게 고민하던 중──.
「꼼짝 마라」
그 이상 생각할 틈도 없이, 그들의 선택사항은 모두 사라졌다.
「너희들의 일은 실패로 끝났다. 물러나지 마라. 나아가지 마라. 일절의 행동을 허락하지 않는다.」
세 남자의 앞에 단신으로 나선 문지기 요괴는 조용한 목소리로 그들을 위협했다.
밤의 어둠 속에서도 빛나는 붉은 머리카락이 휘날린다.
그러나, 그들은 목소리가 들려온 그 순간까지 메이링이 다가온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자신들을 아득하게 넘어서는, 인외의 영역에까지 달한 완벽한 암행이다.
그에서 전해지는 실력의 차이를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그들은 미숙하지 않았다.
그들은 곧바로 철퇴를 선택했고── 자신들의 위기감이 전혀 충분치 않았다는 것을 다음 순간 실감했다.
「멍청한 놈들」
말 그대로, 눈 깜짝할 사이였다.
3대 1이다. 싸워도 이길 수 없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도주조차 불가능하다고는 생각지 못했다.
숨을 들이쉰 메이링이 세 명의 옆까지 접근하여, 날숨이 끝나기도 전에 전원을 쓰러뜨렸다.
자신들이 언제, 어떤 공격을 받았는지조차 이해하지 못하고 땅바닥에 쓰러진다.
「바, 바보 같은……!」
「바보는 너희들이다. 얼마나 받았는지는 모르겠다만, 고작 돈 따위에 목숨을 걸다니」
남자가 흘린 신음소리에, 메이링은 얼음 같이 차가운 목소리로 답했다.
그녀는 요괴이면서도 단련에 단련을 거듭한 희귀한 존재다. 게다가, 단련해온 시간과 밀도는 인간에 비할 바가 아니다.
평범한 단련과 평범한 아수라장을 빠져나온 인간 따위, 그녀에게 있어서는 먼지만도 못하다.
「네놈들 따위로는 만의 하나라도 그 사람에게 위해를 가할 수 없겠지만.」
「뭐, 그렇기는 해도 눈에 거슬리네」
「이야─, 그렇지만 놀랄 정도로 흥미가 솟지 않는 사람들이네요─. 이 사람들이 선대에게 사적인 원한이라도 있었다면 차라리 웃어줄 수야 있었겠지만. 입은걸 보니 완전히 그쪽 방면의 인간이에요」
「헤-에. 잘 모르겠지만, 이런 이상한 일이 직업인 인간도 있구나.」
메이링에 이어 어둠 속에서 나타난 것은, 파츄리, 소악마, 플랑도르였다.
그녀들과는 첫 만남인 그들에게 있어서, 그 광경은 이미 지옥과도 같았다.
도대체, 어째서 이런 사지에 발을 디뎌버린 걸까.
자신의 상식을 간단히 파괴해버리는 상황에, 전신에서 식은땀이 솟고 부들부들 떨 수밖에 없다.
「암살자라는 직업이 마을에서 필요한 일인지 궁금하네.」
파츄리가 딱히 흥미 없다는 어조로 중얼거리자, 그 뒤에서 나타난 새로운 인물이 대답했다.
「옛날에는 마을의 치안도 이 정도로 안전하지 않았다.
키리사메 만물상이 대표로 상사를 쌓아올려 마을의 점포들을 정리하기 전에는 수면 아래의 경쟁이나 정당치 않은 수법의 상업 때문에 상당히 어지러웠었지. 그들은 그런 시대에 뒤편서 살아가던 거주자들이다.」
케이네였다.
흡혈귀, 마녀──요괴들과 나란히 서 남자들을 내려다보는 그녀의 눈동자에는, 조금 참혹하다는 눈빛을 띄고 있었으나, 그 이상의 냉정함이 있었다.
「그리고, 그 득 없는 분쟁을 끝낸 자가 바로, 당시 키리사메 만물상의 점주와 교류가 있던 선대무녀였다.
그 사람이 몸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다는 것을 안 원한을 가진 자가 보냈을 테지. 지금도 그 사람은 마을에서 악행을 하는 자들의 억제력이 되고 있으니까.」
홍마관의 요괴들과 위화감 없이 나란히 선 마을의 수호자의 모습에 무언가를 눈치챈 건지, 혹은 오해한 건지.
케이네를 올려보는 남자의 얼굴이 혐오로 비뚤어진다.
「결국 짐승의 피가 섞인 반인이라는 거냐……!」
모멸하듯이 험담을 내뱉는다.
그 말을 들은 케이네는 약간 표정을 찡그릴 뿐이었다.
「과연. 일부의 인간이 너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이해할 수 있겠어」
「이 녀석들 자기들이 한 짓은 전혀 생각하지 않는 것 같은데요. 파츄리님, 한 명만 남기고 다른 두 녀석은 죽여도 괜찮을까요?」
「그만둬다오. 선대님을 노린 건 나도 용서할 수 없지만, 그 사람 곁에 더러운 것을 놔두고 싶지 않으니까」
평상시의 온화한 성격과는 전혀 딴판인 말을 하는 메이링을 케이네가 말린다.
메이링이 어깨를 약간 들썩이며 알겠다는 듯 물러난다.
딱히 얽매일 생각은 없다. 눈앞의 인간들은 메이링에게 있어서 그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두 사람과 자리를 바꾸며 플랑도르와 파츄리가 남자들에게 다가간다.
「다행이네, 당신들은 여기서 죽지 않아. 그렇지만, 다음에 아주머님을 노리면 용서하지 않을 거니까?」
플랑도르는 생긋 웃으며, 세 암살자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천진난만 그 자체인 표정 속에는, 어둠에 물든 일을 해온 그들조차 마음속 깊이 공포에 떨게 만들 정도의 기세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온몸에서 땀을 쏟아내며, 부들부들 몸을 떠는 남자들의 모습을 보며, 파츄리가 마무리를 짓는다.
「공포라는 걸 안 것 같네. 그 공포를 잊지 마, 당신들의 생명을 지키기 위한 선이 될 테니까.」
이처럼 어리석은 행위를 하는 것이 죽음과 직결됐다는 것을 경고하며, 파츄리는 남자들의 이마에 손가락을 가져댔다.
한마디의 주문조차 필요 없다.
단지 그 행동만으로 마법이 발동해, 남자들의 눈에서 이성과 지성이 사라진다.
넋이 빠진 그들은 천천히 몸을 일으키더니, 그대로 의지가 느껴지지 않는 발걸음으로 밤의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지금 그건 뭐지?」
케이네가 약간 불안한 어조로 묻는다.
「가벼운 저주. 작은 아가씨가 심은 공포의 감정을 이용해서 마음을 조금 부쉈어. 일주일 정도는 백치 상태겠네」
「객사하거나 하지는……」
「안심해, 사고를 완전히 빼앗은 건 아니야. 그들은 어슴푸레한 기억을 따라, 귀소본능으로 고용주에게 돌아가겠지.
그 후에는 자발적으로 움직이는 것조차 불가능하겠지만. 고용한 암살자가 돌아온 걸 본 그 아무개 씨는 계획이 실패했다는 걸 깨닫고 경고로 받아들일 테고. 꺼림칙한 일을 숨기기 위해 그들을 숨겨줘야 할 필요도 생긴다. 원만한 대처야」
「……그렇군. 충분하다.」
──고용주가 증거인멸과 그들을 돌볼 수고를 없애기 위해 죽일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파츄리는 그 가능성을 눈앞의 선량한 반인반수에 이야기할 생각은 없었다.
불필요한 걱정거리를 짊어지게 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도 있었지만, 그 이상으로 그 암살자들에게 그렇게까지 배려를 해줄 만한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죽는다면, 죽으면 된다.
자기 자신이나 주변 사람에게 해를 끼지는 존재 따위를 걱정할 필요는 없다.
당연한 것이다.
「그렇지만, 정말로 좋은 타이밍에 선대님의 문병을 왔군.
흡혈귀가 밤에 활동하기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설마 이렇게 정확히 녀석들의 활동시간과 방문시간이 일치할 줄이야.」
암살자들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자, 케이네는 딱딱한 분위기를 풀 작정으로 가볍게 말했다.
「사실, 병문안 날짜와 시간을 정한 건 레밀리아 아가씨에요. 혹시, 오늘 밤의 일을 예지한 다음에 말했을지도 모르겠네요」
「아─, 그 묘하게 수상한 능력 말인가요. 예지라든지 예언 같은건, 왠지 믿을 수 없어요. 게다가 「운명 (웃음)」이라니. 단순한 우연 아닌가요?」
「……너, 악마 주제에 그런 말해도 되는 거야?」
「아니, 악마의 예언은 대체로 뻥이나 자작극이니까요. 그리고, 역시 운명은 스스로 개척하는 거 아닐까요!」
「우와—, 소악마가 말하니까 멋진 대사가 이상하게 들려—」
화기애애한 넷의 대화를 바라보며 케이네는 쓴웃음을 지었다.
마을을 지키는 자로서 외부세력은 당연히 경계대상이다.
최근 이변을 일으킨 홍마관은 그 대표일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실제로 만나 보니 그녀들은 선대무녀를 위하면서도 그녀를 노린 불온한 인간을 죽이지 않고 원만하게 끝마쳤다.
조금 전, 그 남자들이 자신에게 향한 적의를 떠올리며, 케이네는 복잡한 감정을 품었다.
인간에게 혐오당하고 거부당하고 받아들여지고.
똑같이 요괴에게도 받아들여지기도 하는 반면 거부당하고 혐오당하기도 한다.
반인반수로 태어난 후 지금까지 자신은 두 종족의 사이에서 번롱되어 왔다.
앞으로도, 이렇게 헤맬 일은 많을 것이다.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 버리면, 적어도 고뇌 중 하나가 사라질지도 모른다.
「……바보 같군. 대답은, 훨씬 옛날에 나왔을 텐데.」
케이네는 자신을 타이르듯이 중얼거렸다.
뇌리에는 일찍이 봤던 선대무녀의 등이 비추고 있다.
──그렇지만, 그 사람이 없어진 다음은 어쩌지?
갑자기, 해결됐음이 분명한 의문이 다시 샘솟았다.
이해하고, 후회하고, 납득한 것이다.
그럼에도 아직 마음 어딘가에서 걸린다.
케이네는 계속 요동치는 결심을 품은 자신을 혐오하면서도, 진료소의 빛을 응시했다.
그 시선에 무언가를 눈치챈 듯, 플랑도르가 얼굴을 들여다본다.
「에- 그러니까…… 케-네 선생님?」
「아, 그래. 선생님……인가. 나를 그렇게 부르는 건가?」
「응, 아주머님한테 케-네는 「선생님이다」라고 들었으니까.」
플랑도르는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었다.
그 웃는 얼굴에, 서당에서 가르치는 아이들의 얼굴이 겹친다.
오랜 세월 광기를 품고 지금도 외출을 제한하고 있다는 이 악마의 여동생은, 케이네의 눈으로는 그저 순진무구한 소녀라고 밖에 생각되지 않았다.
조금 전 암살자들을 공포에 떨게 만든 흡혈귀로서의 위압감도 희미해져 버린 플랑도르의 순진함에 케이네는 자연스레 미소로 답하고 있었다.
「케-네 선생님도, 괜찮으면 함께 아주머님에게 가지 않을래?」
「나도, 말인가? 그렇지만…… 어째서지?」
「응. 잘 모르겠지만, 만나고 싶은 것처럼 보였으니까」
「……그런가」
순수한 마음의 눈이야말로, 겉치레나 손질된 외관에 속지 않고 본심을 간파한다는 걸까.
케이네는 플랑도르의 지적을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그럴지도 모르겠군.」
「그럼 같이 가자. 아주머님과 친한 거지?」
「그래……아마도. 그렇다면 좋겠다만」
「어라, 자신 없는 거야?」
플랑도르의 말은 케이네의 불안을 정확하게 알아맞혔다.
전의 사건을 되새긴다.
마음속 깊이 경애하고 있었음이 분명한 선대를, 일시적이라고는 한들 죽음에 이르게 한 자신의 어리석음을 떠올린다.
「……글쎄? 불안해질 정도로, 그 사람에게 못할 짓을 해버리고 말았다.」
무슨 말을 하는 거냐. 자업자득이 아닌가.
케이네는 마음속에서 자학의 말을 내뱉었다.
그날, 선대가 눈을 떴을 때 눈물이 나올 정도로 기쁨과 안도를 느끼면서, 그 이상의 후회와 참회의 감정을 품고 있었다.
물론 그 자리에서 바로 사죄했고, 선대도 그것을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용서했지만, 그 일은 아직도 케이네의 안에 남아있었다.
분명 이것은, 그 사람과 마주 보는데 있어서 일생토록 이어질 빚일 것이다.
「괜찮아!」
어두운 표정으로 고개 숙인 케이네를 바라보며 플랑도르가 말했다.
「아주머님은 나쁜 일을 하면 제대로 화내 주는 사람이니까.」
그 짧지만 당연한 말을 들은 케이네는 의표를 찔렸다는 표정을 짓는다.
「그리고, 반성하고 사과하면 제대로 칭찬해 줄 거야.」
플랑도르의 표리가 없는 말이 케이네의 마음에 힘을 실어줬다.
눈앞을 가리고 있던 억측과 도리, 그에서 온 불안이라는 안개가 사라지고 시야가 환해진 듯한 기분이었다.
자신은, 항상 헤매왔다.
그러나, 그때마다 대답을 내왔다.
지금까지 거듭해온 그 사실을, 케이네는 지금 와서야 깨달은 것이다.
「……고맙다」
케이네는 흡혈귀 소녀에게 깊은 감사를 품고, 그것을 솔직하게 입에 담았다.
플랑도르가 생긋 미소 짓는다.
「이야기는 끝난 것 같네」
「이야, 좋은 이야기네요. 그렇지만 제 앞에서 이런 이야기는 그만두셨으면 좋겠어요. 소름 돋아요.」
「소악마. 내 도움은 메이링으로 충분하니까, 역시 저택으로 돌아가는 게 어때? 아니, 돌아가」
옆에서 지켜보던 메이링 일행도 케이네와 플랑도르의 뒤를 따라 함께 걷기 시작한다.
밤의 어둠은 깊다.
그러나, 그녀들이 향하는 곳에는, 진료소 입구 앞에서 방문이 늦는 그녀들을 걱정하며 기다리고 있는 선대무녀의 모습이 비추고 있었다.
◆
【키리사메 마리사의 도전】
「스펠카드・브레이크, 다. 어때!」
「어때, 라니…… 그런 너덜너덜한 모습으로 자랑해봤자 말이지.」
「시끄럽구만!」
탄막놀이에서 훌륭하게 승리를 거머쥔 마리사는 땅으로 추락한 첸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헥헥거리며 어깨가 들썩일 정도로 숨을 쉬면서, 승자의 미소라기보다 죄어들어 입꼬리를 억지로 올려 비틀린 표정을 짓고 있다.
서로의 탄막에 데미지를 입었다고는 해도, 기가 막힌다는 시선으로 올려보는 첸이 오히려 여유로워 보였다.
제3자가 보면 승패를 이해하기 어려운 구도다.
「내 승리라는 건 틀림없다고. 불만 없지!?」
「아니, 그야 없지만……. 일단 내려와. 그 상처 치료해줄 테니까.」
「……응」
마리사는 휘청휘청 비틀거리며 땅에 내려섰다.
마요이가의 저택 안으로 뛰어들어간 첸이 의약품을 손에 챙겨 돌아오자, 툇마루에 들어앉아 있던 마리사가 감사인사를 했다.
「고맙긴 한데…… 괜찮아? 너 요괴잖아?」
「그렇지만, 너는 나한테 이겼잖아. 패자는 승자한테 따르는 게 규칙이니까.」
「그래 봤자 약해졌으니까, 먹어버려도 괜찮잖아.
너 말고도 몇 마리정도 요괴와 결투했지만, 그중에는 승부의 결과를 무시하고 달려드는 놈도 있었다구.」
그것을 때로는 격퇴하고, 때로는 도망친 마리사에게 있어서 스스로 패배를 인정하는 첸은 특이해 보였다.
스펠카드・룰에 직접적인 강제력이 없다고는 한들, 그것을 지키지 않는 자에게 어떤 말로가 기다리고 있는지조차 상상할 수 없는 사고가 부족한 약소 요괴가 가끔 있다.
그 점을 근거로 들어 보자면, 첸은 실력은 차치해도 어지간한 요괴보다 한수 위인 존재였다.
「헤헷, 나를 길바닥에 굴러다니는 잡요괴랑 동급이라고 생각해서는 곤란한걸. 그렇게 교활한 짓은 절대로 하지 않아」
언뜻 보면 어린 소녀의 외모와 분위기를 지닌 이 변신하는 능력을 가진 고양이에게는, 제대로 된 신념이 있는 것 같다.
치료를 받으면서, 마리사는 머리를 긁적였다.
애당초, 먼저 탄막놀이를 신청한 건 마리사 쪽이었다.
게다가 상대가 악행을 하고 있었다든가 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인간이 사는 마을로부터 떨어진 곳에 있던 저택이 우연히 눈에 띄어, 그곳에 있던 변신하는 능력을 지닌 고양이와 만난 것으로 시작된 것이다.
위세 좋게 승부를 도전한 마리사를 상대로 첸 또한 당당하게 응했기에 둘 다 신경 쓰지 않고 있었지만, 남이 보면 마리사가 갑자기 시비를 턴 상황이다.
「뭐랄까…… 미안. 놀랐어?」
「아앗, 요괴를 동정하는 거야? 그런 반응은 반대로 화난다고. 인간 주제에!」
마리사의 사과에 첸은 오히려 불쾌하다는 듯 날카로운 눈으로 답했다.
「사실은 요괴가 이기는 게 당연하니까 말이지! 나는 미숙해서 져버렸지만 요괴는 인간보다 강한걸!
그러니까, 인간은 불합리하게 습격당해도 어쩔 수 없고, 요괴는 퇴치당해도 어쩔 수 없다──그렇게 배웠어. 인간이 요괴에게 배려를 할 필요는 없어. 요괴는 두려워해야 할 존재니까」
「……그건 또 묘한 영재교육을 받고 있는걸.」
자신으로선 이해할 수 없는 인외의 가치관에 애매한 미소를 짓는다.
요괴란 보다 강한 힘을 가짐에 따라 약자에게 향하는 의식에 차이가 나는 것 같다.특히 그 차이는 인간에게 특히 현저하다.
뇌리에 야쿠모 유카리를 뒤따르던 여우요괴의 모습이 스친다.
확실히 강한 상대였다.
자신을 철저하게 얕보고 있었다.
첸이 말하는 요괴의 가치관과 딱 들어맞는 구도가 지금의 자신과 그 여우요괴와의 관계이며, 놈에게 있어 자신은 별 볼일 없는 인간과 같다는 것이다.
그것을 자각한 마리사의 안에 남아있던 무언가에 다시 불이 붙기 시작했다.
이번처럼 「만난 요괴와 닥치는 대로 탄막놀이를 한다」라는 무사수행 비슷한 행동을 일으킨 최대의 이유인 그날 이래 가슴 안쪽에 뿌리내린 뜨거운 「뭔가」였다.
「말해두겠는데, 나한테 이겼다고 착각하면 안 돼?
진짜 요괴라는 건 훨─씬 더 강하니까. 내 주인님같이」
「뼈에 사무칠 정도로 알고 있다고.」
「헤에, 그럼 넌 그런 요괴에게 진 적 있는 거야?」
「그래, 말 그대로 흠집하나 못 냈지. 완패였다고」
「그렇게 말하면서, 아직도 다른 요괴에게 싸움을 걸다니, 끈질기다고 할까 인간답지 않다고 할까」
「인간다우니까, 고집을 피우는 거야. 머지않아 강해져서 그 녀석이 뒤돌아보게 해주겠어.」
「……역시 인간답지 않아」
첸은 기막히다는 듯이 한숨을 내뱉었다.
눈앞의 인간은 그녀가 배워온 것과 반대되고 있다.
인간은 요괴를 무서워해야만 한다── 그 상식을 마리사는 정면에서 부수고 있다.
이런 녀석도 있구나, 라는 신기함으로 가득 찬 시선으로 마리사의 옆얼굴을 바라보며, 첸은 마지막 붕대를 감았다.
「자, 이걸로 치료 끝」
「오오, 고마워. 정말로 미안한데」
「그러니까, 괜찮다니까. 패배한 내가 나쁜 거야. 마리사는 이대로 다른 요괴와 승부를 계속할 예정이야?」
「그렇네—. 이제 체력도 한계고, 슬슬 돌아갈까」
첸은 자연스레 마리사의 이름을 부르고, 마리사도 그것을 당연하단 듯이 받아 들인다.
서로 자각은 없다.
그러나, 탄막놀이라는 승부와 그 후의 소통으로 인간과 요괴로서의 첫인상이 서로 바뀌어 있었다.
「조심해」
첸은 자신이 인간을 걱정하고 있다는 것에 위화감을 느끼지 못했다.
「그래. 또 다음에 승부하자구. 그리고, 네 주인이라는 녀석하고도 해 보고 싶은걸.」
「다음엔 지지 않을 거고, 네가 란님을 이길 수 있을 리 없으니까.」
「하핫, 그건 기대되는──」
오기 있는 성격은, 비슷한 마리사로서도 공감할 수 있었다.
요괴라지만 어린 외형에서 느껴지는 활발함에 미소로 답했으나 그것은 도중에 멈춘다.
첸의 등 뒤에서 나타난 다른 요괴의 존재를 눈치챈 것이다.
마리사는 그 요괴를 보자마자 의식이 완전히 돌아갔다.
「뭐야, 누군가 했더니 너였나.」
「너는……」
9개의 꼬리를 우아하게 나부끼며, 마성의 미모를 가진 여우요괴가 마리사의 앞에 내려섰다.
맨 처음 만났을 때와 완전히 같은, 싸늘한 시선이 마리사를 내려다보고 있다.
단순한 눈높이 이외의 의미가, 그 눈빛에 숨겨져 있었다.
「란님!」
뒤돌아 본 첸의 얼굴이 미소로 빛난다.
아무래도, 그녀의 주인이라던 요괴는 「란」이라고 불린 요괴였던 것 같다.
마리사는 너무나도 기묘한 만남에 쓴웃음이라도 지어보려 했으나 실패하고 말았다.
너무나 갑작스레 찾아온 재회가 감정과 사고에 혼란을 일으키고 있다.
란은 언짢은 표정으로 자신을 노려보는 마리사의 존재를 깡그리 무시하고 달려오는 첸에게 상냥하게 미소 지었다.
「첸, 잘 지냈니?」
「네! 오늘은 마요이가의 청소를 하고 있었습니다!」
「응, 제대로 할 일을 하고 있구나. 훌륭하다. 이곳은 평소에는 사용하지 않는다만, 사용할 때는 언제나 중요한 용건이 있을 때다. 성심성의껏 관리해라.」
「네, 알겠습니다!」
「좋다. 그럼, 다음은 저 인간의 이야기다만……」
화제를 바꾸면서도, 그 대상인 마리사에게 시선조차 돌리지 않고 란은 미소를 지은 채 첸의 뺨에 손을 가져다 댔다.
「저 인간과 승부를 했구나. 결과는 어땠지?」
첸은 묵묵히 눈을 내리깔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총명한 란에게 그 반응은 대답이나 다름없다.
「졌구나.」
「……네. 죄송해요」
란은 무력하게 고개를 숙인 첸을 보며 표정을 굳혔다.
말로는 드러나지 않았으나 분위기가 분명하게 긴장되어 있다.
란은 입을 꾹 다문 첸의 뺨을 강하게 쳤다.
무심코 참견하려 한 마리사는 란의 딱딱하지만 결코 화난 것은 아닌 진지한 눈을 보고, 움직임을 멈췄다.
분명, 이것은 외부인이 참견할만한 것이 아니다.
그렇다는 걸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었다.
명계에서 레이무와 선대무녀가 마주보고 있었을 때의 광경이 떠올랐던 것이다.
「첸. 너는 나의 식신, 나아가서는 야쿠모 유카리의 식의 식이다. 그 자각과 자부심을 잊지 말도록 해라.」
「네……죄송해요, 란님」
「사과하지 마라. 약한 태도는 버릇이 된다. 그저, 스스로 맹세하거라. 더 이상 지는 일 따위는 없도록, 강하게 되는 거다.」
「알았습니다」
첸은 눈에 눈물을 맺으면서도, 마지막에는 올곧게 란의 얼굴을 올려보며 대답했다.
란은 만족스럽게 끄덕이고는 다시 미소를 짓는다.
마리사가 안고 있던 란에 대한 인상을 무너뜨리는 의외의 일면이었다.
엄격하지만 상냥하기도 하다.
아마 가족에게 밖에 보이지 않는 진지한 태도다.
인간인 자신에게는 절대로 보일 일은 없을 것이다, 라고 납득하면서도 마리사는 란에게 굳어져 있던 인상을 고쳤다.
「그냥 화나는 녀석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말이지……」
「아직 있었나 인간. 냉큼 사라져라」
아, 역시 그냥 화날 뿐이네.
마리사는 이마에 힘줄을 세우며 노려봤다.
「내 이름은 키리사메 마리사라고?」
「기억하고 있다.」
「그럼 이름을 부르라고. 이쪽이 이름을 알려줬으면 불러주는 게 예의잖아.」
마리사는 두 요괴의 대화에서 「란」이라는 이름을 들었으나, 들음과 동시에 그것을 절대로 입 밖으로 꺼내지 말자고 결심했다.
란에게 직접 듣고, 그때서야 이름을 부를 생각이었다.
단순한 고집일 뿐인 결의였지만, 그 결의는 굳건했다.
그런 마리사의 결의를 비웃듯이, 란은 전혀 변하지 않은 싸늘한 시선으로 답한다.
「네 이름 따위를 내가 입에 댈 필요는 없다.」
그저 담담하게 사실만을 단언하는 대답이었다.
란은 마리사의 이름을 어쩌다 보니 기억하고 있을 뿐일 것이다.
「헤헷, 변함없이 높으신 분다운 대사인걸. 언젠가, 반드시 내 존재를 인정하게 해 주겠다고. 구체적으로는 네게 이겨서 말이지,」
「불가능하다」
그녀에게는 굳이 마리사만이 아닌 모든 인간이 하등한 존재였다.
「너희들 인간의 힘이 때로는 요괴의 그것을 웃돈다는 것은 인정하지. 그중에는 하쿠레이의 무녀와 같은 예외도 존재한다.
그러나, 인간이라는 종족 그 자체가 내게 있어서 기억하는 것조차 필요하지 않은 존재다. 아무리 강한 힘과 많은 영화를 손에 넣어도, 백년 정도 지나면 생명을 포함한 모든 것을 잃고 같은 시간을 거쳐 내 기억에서 사라진다.
그런 일의 반복이다. 너희들, 인간이라는 짧은 존재는. 나를 위협할 수도, 흔들 수도 없다. 그저, 시간의 흐름과 함께 사라지는 덧없는 존재지. 그리고 너는, 그런 인간 중에서도 특히 약하고 작은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
란은 자신에게 있어 마리사<인간>이 얼마나 무가치하며 흥미가 솟지 않는 존재인가를 담담하고도 정중하게── 그리고 어떤 감정도 담지 않고 마리사에게 말했다.
「그렇게 계속 나를 피라미라고 얕보고 있으라고.」
「피라미? 그건 적대하는 자의 인식이다. 너 따위는 해봤자 시끄러운 모기 정도다.」
그럼에도 마리사는 냉소를 짓는 란을 향해 사나운 미소로 답했다.
「좋아…… 적어도 눈에 띄지도 않는 자갈도 아니고, 눈에 보이는 모기 정도로는 봐줬다는 거구만. 첸에게 이긴 덕분이려나?」
결투를 거쳐 서로 소통할 수 있었던 첸을 들먹이는 짓은 마리사로서도 거부감이 들었지만, 그 도발은 처음으로 란에게 효과를 발휘했다.
아주 약간. 정말로 아주 약간이지만 란의 얼굴에 불쾌감이 드러난다.
눈을 가늘게 치켜뜨며, 적의를 담아 마리사를 내려다본다.
그녀가 벌레를 쫓을 정도로만 힘을 발휘해도 마리사는 저항할 새도 없이 날아갈 것이다.
그러나, 그 결과가 어느 쪽의 패배이며 승리인지, 란과 마리사는 서로 자연스럽게 이해하고 있었다.
「……입만은 죽지 않는 인간이군.」
결국, 란은 그런 한마디 말만을 내뱉었다.
그리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마리사를 무시하며 등을 돌리고 떠난다.
둘의 대화를 지켜보던 첸이 힐끔힐끔 마리사를 돌아보며 당황해서 그 뒤를 따른다.
마리사는 멀어져가는 란의 등을 가만히 노려보고 있었다.
멀고, 높은 존재다.
지금은 이렇게 올려볼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기다려라.
머지않아──.
「네 이름을 불러주겠어. 그리고, 내 이름을 부르게 해주겠다고」
반드시.
자신의 의지를 확인하듯이, 마리사는 중얼거렸다.
「……라고는 한들, 지금 이대로는 어려우려나.
아, 역시 독학은 한계가 있는 걸까. 그렇지만, 파츄리에게 이 이상 배우는 것도……」
가르침 받는 상대로서 적절한 마법사 선배가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고민하는 것은 여유 같은 게 아닌, 단순한 고집이었다.
그러나, 그 고집이 마리사의 불굴의 투지를 지탱하는 뿌리다.
그녀는 아직 미숙하고, 젊다.
그것이야 말로 강점이라는 것조차, 자각하지 못했다.
◆
【콘파쿠 요우무의 미주*】(迷走 : 정해진 길을 벗어나 돌아가다)
요우무의 마을 방문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그렇다고는 해도, 오래전부터 정기적으로 방문해온 것도 아니다.
요우무가 사는 명계는 결계에 의해 지상과 분단되어 있다.
같은 환상향이라도 생자가 살아가는 장소와 사자가 머무는 장소로 나뉘어 오랜 세월 동안 떨어져 지내왔다.
그 결계가 최근에 파괴되었다.
두말할 것도 없이, 지금 「춘설이변」이라 불리는 이변이 일어났을 때의 일이다.
그때 레이무가 파괴한 명계의 결계는 지금도 수복되지 못한 채 명계와 지상의 경계를 애매하게 만들고 있다.
주인인 유유코가 요우무에게 그 명계의 출입구를 지나 지상에 심부름을 보낸 것은, 그 이변이 종결되고 얼마 지나지 않은 날이었다.
명목은 가지각색이다.
평소에는 말 그대로 「심부름」이다. 주로 마을의 가게를 방문해 과자나 서적 같은 놀 거리를 사오라고 시킨다.
그런 필요 없어 보이는 명령이,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라는 것을 요우무는 최근 들어서야 이해하기 시작했다.
요우무는 그 이변 이래── 정확하게 말하자면 레이무에게 결정적인 패배감을 맛본 이래, 어딘가 상태가 이상했다.
정원사로서의 일을 훌륭히 해내고, 연습도 매일 계속하고 있다.
그러나, 몸이 움직이는 것 같지가 않다.
자신의 안에 있는 톱니바퀴가 멈춰버리고 말았다. 그런 막연한 위화감을 안은 채 매일매일을 보내고 있었다.
그 어쩔 수 없는 위화감은 조금씩 겉으로도 드러나기 시작했다.
오늘도 심부름을 끝마치고 마을을 걷는 요우무의 고개는 숙여져 있었고, 왠지 모르게 어두웠다.
「……어라? 여기, 외곽 쪽이다.」
문득 정신을 차린 요우무는 자신이 마을의 외곽 길을 따라 걷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뭘 하는 거냐 나, 라고. 넋이 반 정도 빠져서 걷던 자신을 질책한다.
처음에는 가게가 많은 마을의 중앙으로 가려고 했다.
도대체, 뭘 어떻게 해야 정해진 루트에서 이렇게 엇나간 곳까지 올 수 있는 걸까.
──아니, 이해는 하고 있다.
유유코에게서 지정받은 가게는 항상 다르다.
무작위로 선택하는 거 아닐까? 하고 생각할 정도로, 항상 다른 장소에서 다른 것을 사와 달라고 부탁받는다.
마치, 마을 안을 탐방시키는 것이 목적인 것처럼.
그런 예상이 들게 된 것은「심부름」을 몇 번 정도 반복했을 때였다.
마을의 거주자나 가게의 점원과 만나 지상의 많은 정보를 자연스럽게 얻을 동안 요우무는 자신이 무의식중에 피해가는 장소가 있다는 것을 어느덧 자각했다.
이 마을에는, 선대 하쿠레이 무녀가 근무하는 진료소가 있다.
선대── 즉, 그 레이무의 어머니다.
그리고, 레이무는 종종 마을에 들려 그 어머니를 방문한다고 한다.
그것을 안 이래 요우무는 일부러 길을 돌아서라도 진료소를 피해 숨죽여 달아나듯이 마을을 떠나게 됐다.
이유는 명백하다.
만나고 싶지 않았다. 하쿠레이 레이무와 그 친척을.
「보기 흉하다…… 나」
요우무는 자조 섞인 한숨을 내뱉었다.
몇 번이고 자신에게 질문했지만, 언제나 대답은 하나였다.
요컨대, 레이무를 만나는 것이 무서운 것이다.
이미 그녀와 적대 관계는 아니지만, 처음 경험한 완전한 패배가 레이무에 대한 감정을 매우 부정적으로 만들고 있었다.
그것을 어떻게든 해보겠다는 마음조차 들지 않는다. 그저 그녀와 두 번 다시 맞서고 싶지 않다는 공포와 절망만이 남아있다.
지금 레이무와 만난다면 단순한 지인으로서의 대화정도는 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속으로는 자신은 항상 그녀에게 항복하고 있는 상태다.
자신을 이긴 강자에게 꼬리를 마는 개처럼.
그렇게 비참한 기분은 사양이었다.
지금까지 나날이 길러온 힘과 신념이, 그 자각과 자부심이 요우무의 마음을 완전한 패배자로 타락하는 것을 용서하지 않았다.
레이무에게 이길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에 몇 번이고 그 사실을 들이대 져도 견딜 수 있었다.
처음으로 경험한 실전의 결과는, 단련해온 자신의 힘으로 사명의 달성에 불타고 있던 젊은 검사를 단순한 겁쟁이로 바꿔버리고 말았다.
「…………이대로, 계속 도망칠 건가?」
마을의 입구를 향하던 발을 멈추고, 요우무는 몇 번이나 반복했는지 모를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그리고, 언제나 같은 대답으로 끝난다.
──도전해봤자, 이길 수 있을 리가 없다.
어쩔 수가 없었다.
제멋대로인 변명에 의지했으나 그마저도 분쇄되고 말았다.
요우무는 한 번 더 한숨을 내뱉더니, 발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대로 백옥루로 돌아가서, 저택의 일을 끝내고, 의미가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단련을 반복하고, 그리고── 몇 번이나 잘 수 없는 밤을 지새야할까?
요우무는 입술을 씹었다. 작게 상처가 나 피가 흐른다.
이렇게 고뇌하는 요우무의 모습을 보던 유유코는 어떠한 변화를 기대하고 그녀를 지상으로 심부름을 보내던 것이다.
새로운 만남이든, 미지와의 만남이든. 뭐든지 좋다.
그리고 오늘에서야 그 기대는 이뤄질 수 있었다.
그 일은, 마을을 나오자마자 일어났다.
교통이 혼잡해지므로 마을 안에서의 비행은 금지되어 있다.
인기척이 없는 곳까지 다다른 요우무는 백옥루를 향해 날려고 했다.
그러나, 그때 점점 가까워지는 짐승의 냄새를 눈치챘다.
거기에, 피 냄새다.
온몸에서 그런 냄새를 풍기며 다가오는 것이 단순한 짐승이 아니라 넝마가 된 외투를 머리부터 뒤집어쓴 덩치 큰 남자라는 것이 요우무에게 강한 경계심을 갖게 했다.
틀림없이 요괴다.
게다가, 이 녀석은 사람인지 동물인지는 모르겠지만, 생물을 대량으로 죽였다.
코를 찌르는 비린내에, 감각이 예리한 요우무는 불온한 분위기가 섞여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멈춰라」
상대가 누군지는 모른다. 이대로 아무 일도 없이 자신을 지나칠지도 모른다.
그러나, 남자가 향하는 곳에는 마을이 있다.
요우무는 그 남자의 앞을 막아서서, 허리에 찬 칼에 손을 얹고 말을 걸었다.
「이 앞에 있는 곳은 마을이다. 이렇게 피 냄새를 풍기면서 마을에 들어갈 셈이냐?」
남자는 대답하지 않는다.
그저, 얼굴을 가리는 외투의 그림자 속에서 인간과는 동떨어진 이상한 눈빛이 빛났다.
요우무는 그 순간 옆으로 뛰었다.
그 직후, 바로 아까까지 있던 요우무가 있던 장소를 남자의 손톱이 가른다.
외투에서 뻗어 나온 남자의 팔은 털로 뒤덮였으며 손톱은 칼날처럼 날카롭고, 길다.
「스펠카드・룰은 어떻게 했나!?」
그런 말을 외친 요우무는 자신이 물러빠진 대응을 했다는 것을 알고 후회했다.
저 녀석은 싸움을 걸었다.
그것이 탄막놀이든 탄막놀이가 아니든, 반격해야 한다.
요우무는 칼에 손을 얹은 채, 적이 된 남자를 관찰했다.
의표를 찌를 정도로 민첩한 몸놀림 때문에 외투가 벗겨져, 남자의 전신이 공공연연하게 드러난다.
그 팔처럼 전신에서 털이 돋아난 몸은 크며, 근육이 부풀어있다.
흉흉한 눈빛을 뿜어내는 얼굴은 인간의 것이 아니었다.
불쑥 튀어나온 콧등과 겉으로 튀어나온 송곳니는 개나 늑대의 그것과 같다.
남자의 정체는 늑대인간이었다.
「무……녀……」
간신히 언어 같은 것을 입에 담는 늑대인간. 그러나, 그것은 짐승의 신음소리가 섞여 있었다.
그 눈에 지성의 빛은 느껴지지 않는다.
「하쿠레이의……무녀……!!」
「뭐, 하쿠레이라고……!?」
넘치는 살의가 담긴 말은 요우무에게는 의외였다.
그녀는 모른다.
이 늑대인간이 말하는 하쿠레이의 무녀가, 당대의 레이무가 아닌 그가 시중들던 주인을 살해한 선대 하쿠레이의 무녀라는 것을──.
일찍이 존재하던 이성은 긴 세월에 풍화됐으나, 그저 하나의 망집에 자극받아 그는 환상향을 방황했다.
도대체 어디에서 들은 건지도 모를 선대무녀의 부상을 듣고, 얼마 안 되는 지성이 이끄는 대로 이곳으로 왔다.
그리고 지금, 늑대인간은 눈앞을 가로막는 장해물로서 요우무를 목표물로 정했다.
인외의 순발력을 사용해 다시 달려든다.
「빠르다……!」
두 번째로 경험한 실전은 레이무와 싸웠을 때와는 달랐다.
이성이 없는 늑대인간은 스펠카드・룰을 완전하게 무시하고 단순하게 폭력을 사용한다.
그것은 생명을 건 싸움이었다.
물론, 그런 것에 기죽을 요우무가 아니다.
그녀는 누군가를 상처 입히기 위해 만들어진 칼이라는 무기를 다루는 단련을 해왔다.
요우무는 기술을 전혀 쓰지 않는 무지한 짐승 그 자체인 적의 움직임을 냉정하게 회피한 뒤 칼을 발도해 베려고 했다.
그러나, 칼이 뽑히지 않는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칼을 뽑을 결의를 할 수 없었다.
──벤다.
적의 공격을 회피해, 훌륭한 발놀림으로 빈틈투성이인 등 뒤를 잡는다.
──지금이다, 벤다.
적이 뒤돌려고 한다.
칼이 뽑히지 않는다.
──뭘 하는 거냐. 베라. 빨리. 주저하지 말고. 베라. 벤다. 베라. 베는 거다.
적이 완전히 몸을 돌렸다.
다시 뻗어진 손톱을 당황해서 회피한다.
조금 전보다 약간이지만 반응이 늦었다.
──벤다…… 정말로 벨 수 있나?
전투가 시작된 이래, 계속 무시하고 있던 의문이 점점 커져가기 시작한다.
아무리 해봐도 자신이 적을 베는 모습을 상상할 수 없다.
뽑아서 휘두른 칼이 적의 두꺼운 근육과 털에 막히고, 다음 순간 반격을 받아 자신이 살해당하는 이미지만이 선명하게 뇌리에 떠오른다.
적에게 공격이 통하지 않을 것이라는 근거 없는 불안이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을 필사적으로 부정하려고 노력했지만, 불안에 힘을 더하는 요소만이 눈에 띤다.
요우무가 지금 허리에 맨 칼은 계승받은 두 자루의 명검이 아니다.
싸구려까지는 아니어도, 무명의 칼에 지나지 않는다.
레이무에게 들은 도발마저 마음에 남아, 고집 부리듯 두 칼을 몸에서 떼어놓고 있던 결과가 이것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그 고집이 요우무의 불안을 가중시키고 있다.
이런 칼로, 이런 솜씨로, 정말로 저 적을 벨 수 있을까──?
끝없이 부풀어 오르는 불안과 의문이 요우무의 움직임을 방해한다.
높은 신체능력에 의지한 엉터리 같은 늑대인간의 연공에 요우무는 서서히 회피가 늦어지고 있다.
마침내, 적의 손톱이 요우무의 뺨을 얕게 벤다.
시야에 자신의 피가 흩날리는 것이 보인다.
다음 일격은, 분명 목에 닿을 것이다. 그렇게 자신도 모르게 확신했다.
칼은, 뽑히지 않는다.
벨 수 없다.
이길 수 없다.
죽는다.
「싫어……」
궁지에 몰린 요우무의 속에서, 무언가가 엇나갔다.
그것은 이변의 날부터 쌓여온 불안이나 굴욕 같은 비틀린 감정을 만드는 족쇄였을지도 모른다.
요우무는 그것을 풀어 제쳤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앗───!!!」
절규와 함께, 칼을 뽑는다.
검의 재능을 논한다면, 요우무는 확실히 천성의 재능을 지녔다.
궁지에 몰렸을 때, 그녀 안에 잠들어있던 잠재능력이 무의식중에 발휘된 것이다.
그 순간에 이르기까지의 갈등이나 고뇌를 단번에 베어버리듯이, 요우무가 뿜어낸 검격은 말 그대로 한줄기 섬광이 되어 적의 팔을 절단했다.
요우무의 손에 굉장한 반응이 전해지고, 결코 벨 수 없을 거라 믿고 있던 늑대인간의 굵은 팔이 잘린 나무처럼 허공을 난다.
절단면에서 뿜어져 나오기 시작한 피가 요우무의 얼굴을 더럽히고, 뒤늦게 적의 날카로운 비명 소리가 울려 퍼진다.
「……벨 수 있어」
시야에 비치는 광경을 반 넋을 잃고 바라보던 요우무는 간신히 현실을 받아들였다.
「나는, 이 녀석을 벨 수 있어!」
원래의 자리로 되돌아온 칼이 다른 한쪽 팔을 베어 날린다.
이미 의심할 필요조차 없었다.
눈앞의 늑대인간은 요우무의 적수가 아니다.
섬광이 수십 차례 번쩍인다.
마치 요리재료를 손질하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요우무는 눈앞의 적을 철저하게 다졌다.
세 번째 섬광이 몸을 가를 때 이미 절명한 늑대인간은 사지가 뿔뿔이 조각날 때까지 절단된 후, 최후에는 자비를 선사하듯이 목을 잘려 간신히 땅에 쓰러졌다.
아니, 떨어졌다고 표현하는 것이 올바를지도 모른다.
피와 인체를 닮은 고깃덩어리가 땅에 흩뿌려진다.
「하앗……하앗……」
피로가 아닌 흥분으로 숨을 헐떡이며, 요우무는 칼을 쥔 채 자신이 만든 참상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베는 것에만 의식을 빼앗겨 튀기는 피조차 온전히 피하지 못한 요우무는 미숙하다.
그러나, 어찌 됐건 간에 두 번째 실전은 틀림없이 승리로 끝났다.
그 누구도 뒤집을 수 없는 사실이었다.
「핫……하핫……하, 하하하핫」
붉게 물든 얼굴에 죄어든 것 같은 미소가 떠오른다.
요우무의 마음속에서는 수많은 감정이 혼잡하게 뒤섞이고 있었다. 그 감정 안에는 올바른 감정도 부정한 감정도 섞여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단 하나 큰 감정이 두드러졌다.
그것은, 성취감이었다.
「뭐야, 나……이길 수 있구나……」
씹어 삼키듯이 중얼거리자, 그 감정이 전신에 스며들듯이 차올라 안심할 수 있었다.
레이무에게 패배한 이래, 쭉 느껴왔던 고뇌가 깨끗하게 사라졌다.
자기 멋대로 나는 이길 수 없다고 믿고 있었다.
이대로 평생 패배자일 것이라고.
그러나, 그것은 착각이었다.
실제로 칼을 휘둘러보니 뭐라 할 필요도 없이 당연하게 판단된 사실이었다.
「승부는, 싸워볼 때까지 몰라. 고민 따위는 필요 없어. 그 외의 일은 생각하지 않아도 괜찮아. 상대가 강할지, 내가 강할지는──」
확연히 뒤바뀐 확신과 자신감으로 가득 찬 말투로 허공을 향해 단언한다.
「베면, 안다」
그날, 백옥루로 돌아간 요우무는 기척을 죽이고 저택까지 이동해, 피가 묻은 몸과 옷을 유유코의 눈에 띄지 않고 처리하는 것에 성공했다.
담담한 얼굴로 지금 막 귀가한 것처럼 가장하고 평소같이 일과에 착수했다.
유유코는 그런 요우무의 모습을 보고 그녀 안에서 지금까지와는 다른 결정적인 무언가가 바뀐 것이라고 왠지 모르게 확신했다.
일말의 불안과 함께──.
◇
【오늘의 선대】
──이야기는 들었다. 환상향은 멸망한다!
무, 뭐라고─!? 라는 느낌으로 혼자서 만담놀이.
아니, 그렇지만 유카리한테 이번 이변의 경위라든가 발단이라든가 이유라든가, 덤으로 유카리의 참회까지 들은 내가 할 수 있는 반응은 그 정도였다.
우선 「춘설이변」이라 불리게 된 명계의 이변은 당연히 원작대로 유유코가 일으킨 것이었으므로 특별히 언급할 점은 없다.
뭐, 굳이 말하자면 우리 레이무가 너무 굉장했다는 점일까.
이변해결에 나서서 최단거리를 최고속도로 돌파, 탄막놀이까지 퍼펙트하게 이기고 내 눈앞에서 유유코까지 이겨 내보인 것이다.
그 뒤의 활약은 말할 것도 없다.
비디오카메라가 있었으면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녹화했을 정도였다고.
그리고, 중요한 내 자신에 관한 사건.
계속 궁금했었던 유카리가 내 영혼을 뽑아내 망령으로 만들어 버린 이유──.
비통한 각오를 담은 표정으로 사죄 받은 나는, 어찌해야 할지 몰라 혼란에 빠졌다.
우선 유카리를 꾸짖을 이유는 눈에 띄지 않는다.
확실히 기습 같은 느낌으로 영혼을 뽑혀서 살해 비슷한 걸 당하기는 했지만, 그게 악의로 한 일이 아니란 걸 알았으니까.
들어보니 움직이지 못하게 된 내 다리의 치료를 위해서라잖아.
뭐—, 그거네. 바깥 세계에서도 몇 번 들었던 치료법이 생길 때까지 냉동수면으로 기다리는 SF영화 같은 처치다.
물론, 그다음에 눈이 떠졌을 때 내가 아는 인간이 전부 사라졌을 정도로 시간이 흘렀다─ 같은 느낌으로 끝날 가능성이 있었다는 걸 듣고 조금 식은땀이 흘렀지만.
그렇지만, 유카리는 어디까지나 나를 걱정해서 그런 행동을 일으켜준 것이다.
처벌이나, 사실 오랜 세월 동안 숨기고 있던 악의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최악의 경우까지 예상하고 있던 내게 유카리의 고백은 환영받아 마땅한 것이었다.
그러니까, 딱히 신경 쓰지 않는다고 가벼운 느낌으로 용서할 생각이었지만…….
안 된다.
떠나던 유카리의 표정을 보니 유카리 본인이 매우 신경 쓰이는 것 같았다.
응, 걱정 같은 게 아니라 내 본심이었는데.
말하면 솔직하게 받아들여 주지 않을까?
유카리 외에도, 케이네라든지 치르노라든지. 이번 사건에 관련된 것 같은 사람들에게 사죄를 받고 그것을 나는 받아들이고 서로 대화하거나 함께 식사를 하거나하며 조금씩 화해해나갔다.
딱히 피해를 받은 것도 없으니 내 입장에서는 사죄도 뭣도 필요 없지만.
아, 그리고 소생했을 때에는 없었지만 유카도 와있었던 것 같다.
이 다리로는 답례하러 가는 것도 상당히 고생스러운 일이라 글로 써서 치르노에게 편지를 보냈더니, 받은 그 자리에서 읽은 직후 눈앞에서 태워버렸다고 한다.
치르노는 웃는 얼굴로 그렇게 보고해줬다.
나도 웃는 얼굴로 답했다.
둘이서 생각하는 것은 하나!
──제대로 읽었다.
유우카링 진짜 츤데레.
그런 느낌으로 나날을 보내다 정신이 들고 보니 이번 사건과는 관계없는 홍마관 패밀리까지 다시 병문안을 와줬다, 병석에서 일어난 사람 축하하는 것 같다.
물론, 내가 한 번 죽어서 망령이 된 것은 사건의 관계자들에게만 알려졌다.
그러니까 남은 문제는 아직도 죄책감이 남아 있는 걸로 보이는 유카리 뿐이다.
아무리 말로 표현해도 그녀에게는 제대로 전해지지 않을 것이다.
나도 딱히 할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따라서, 나는 그날 아침에 유카리와 언젠가 약속한 것을 지키기로 한 것이었다.
「……그래서 오늘 아침은 이 녀석이 있다는 거네.」
「그래, 아침 식사에 초대했다」
「……실례하겠어.」
원래는 나 혼자 사용하는 식탁에 레이무와 유카리가 더해져 세 명이서 둘러앉아 있다.
조금 좁지만, 어떻게든 됐구나..
생각해 보니, 이렇게 유카리와 같은 식탁에 둘러앉는 건 처음이다.
유카리는 유카리대로 변함없이 내게 죄책감을 느끼고 있어서인지 식사를 조금 억지까지 부리며 초대했더니 선선히 OK 해줬다.
레이무와 유카리는 변함없이 사이가 안 좋아 보였지만, 어째선지 전보다 친해진 것처럼 보인다. 기분 탓인가?
그 이변에서 뭔가 있었던 걸까…… 뭐, 그런 추측은 뒷전으로 넘기고.
「왜, 네가 마을의 진료소에 있는 거야? 신사는 어쩌고?」
「식사가 끝나면 제대로 돌아갈 거야. 케이네와 교대로 가끔 어머니의 상태를 보러 오니까.」
「그 이변 이후 인상이 상당히 바뀌었네. 무슨 일이라도 있었던 거야?」
「그 대답 하지 않았어? 너한테는 안 가르쳐줘.」
이런 농담 주고받기도 변함없다.
그러나, 역시 전보다 서로 꺼려하는 분위기가 적어진 것 같다.
물론, 좋은 일이다.
자 우선 아침식사를 하자.
한솥밥을 먹으면 유카리도 나에 대한 이상한 응어리도 없어질 거라고!
「이 식사는 선대가 만든 거야?」
살포시 합장한 다음, 젓가락을 손에 쥔 채로 물어본 유카리에게 나는 끄덕였다.
사실 레이무도 도와줬지만 기본적으로는 내가 만들었습니다.
직접 만든 요리를 먹는 것도 화해를 하는데 있어서 큰 의미가 있으니까 말이지.
응, 맛도 양호하다.
특히 이 무 조림은 국물이 제대로 스며들어 있다.
「……살아간다는 것은, 몸에 무언가를 넣는 것이다.」
문득, 나는 그런 말을 중얼거리고 있었다.
식사를 차분히 맛볼 수 있는 덕분일까. 고로짱 같은 명언을 무심코 말해버렸다.
그렇지만, 이 말은 진리라는 걸 절실히 느낀다.
──라는 느낌으로 감동하면서 먹고 있자니, 레이무와 유카리가 이쪽을 주목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구나. 산다는 건, 그런 당연한 일이야」
그리고, 뭔가 납득한 것 같이 온화한 미소를 짓는 유카리.
이 패턴 오래간만 아냐?
내가 어쩌다 중얼거린 말에서 대체 어떤 의미를 찾아낸 건지, 유카리는 방금까지 나와 자기 사이에 만들고 있던 벽을 어느새 허물고 있었다.
뭐랄까, 정신적인 거리 같은 게 좁아진 것처럼 느껴진다. 완전히 감이지만.
내가 그저 응시하는 것으로 답하자 유카리는 똑같이 무를 한입 깨물고 천천히 씹으며 맛보았다.
……미인은 식사하는 모습도 우아하구나.
「맛있어」
「고맙다」
유카리의 미소에, 만든 사람인 나는 미소로 답했다.
응.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내 생각은 맞은 것 같다.
함께 맛있는 것을 먹으면, 마음도 풍부해지니 화해도 간단해진다.
우리들은 웃는 얼굴로 식사를 계속했다.
「이 된장국도 일품이네.」
「아, 그거 만든 건 나야.」
유카리의 말에 레이무가 아무렇지도 않은 어조로 대답하고── 직후, 식사가 정지했다.
「……미안해. 이제 보니 이거, 조금 맛이 진해.」
유카리는 아까의 칭찬과는 정 반대로 입가를 누르며 그릇을 놨다.
레이무의 눈썹이 약간 치켜 올라간다.
「아, 그래. 미안하네, 노인한테 맞을 법한 싱거운 맛내기를 할 수 없어서.」
「신경 쓰지 않아도 돼. 네가 미숙하다는 건 잘 알고 있으니까.」
「다 먹었으면 빨랑빨랑 돌아가. 식기를 정리해야 돼」
「어머, 식후의 휴식 정도는 허락해줬으면 하는걸. 선대는 다리가 아프니 뒷정리는 네게 맡길게.」
어롸롸—? 왠지 조용하고 온화하던 식사 시간이 갑자기 살벌해지기 시작했다—?
평소 같은 텐션을 되찾았다고 생각하자마자 레이무와의 관계도 돌아와 버린 유카리.
이변을 거쳐, 둘의 사이가 조금은 개선됐다고 생각했는데 딱히 그렇지도 않았구나!
우선 이 상황, 평소라면 나는 입도 뻥긋 못하고 지켜볼 수밖에 없지만 식사중이 되면 이야기가 다르다.
내가 한번 노려보자, 어릴 적 함께 살았던 레이무는 시선의 의미를 눈치채고 당황하며 입을 다물었다.
유카리는, 레이무의 요리에 트집을 잡고 싸움을 시작한 원흉이므로 엄하게 간다.
나는 식사 예절에 대한 것이라면 시끄러운 타입이다.
「엣? 앗, 선대 잠깐 기다려……. 미, 미안해, 장난이 지나쳤─, 아팟, 아프다니까!」
내 표정이 진지하다는 걸 눈치채고 당황해서 손을 휘젓는 유카리의 팔을 꺾는다.
요컨대, 암락이다.
이 분노의 표출을 보면 알겠지만, 내가 식사에 대해 바치는 경의는 고로짱에게 감화된 것이다.
「음식을 먹을 때는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자유롭게. 뭐랄까, 편해질 수 없다면 안 돼……」
「어머니는 식사 중에 이야기하는 건 괜찮지만, 못된 장난을 치는 건 용서하지 않는 성격인 것 같아.」
「그, 그걸 먼저 말해! 요, 용서해줘! 내가 잘못했으니까, 이제 안 할 테니까. 아야야얏……!?」
문득, 도중에 좋은 생각이 떠오른 나는, 잠시 동안 유카리를 암락으로 붙들어뒀다.
이걸로 유카리가 신경 쓰고 있던 이변 때의 일도 갚은 걸로 해두자.
응, 내가 생각한 것 치고는 꽤 합리적인 생각이다.
결국, 이후 유카리의 목소리가 거의 울기 직전까지 갔기에 부탁을 하나만 들어주겠다는 약속을 얻어 낸 걸로 이번 사건은 완전히 종료됐다.
뭐, 물론 터무니없는 부탁을 할 생각은 없지만.
맞다…… 마침 기회가 기회고 하니 유카리의 틈새로 지저에 방문해볼까.
사토리도 만나고 싶고.
치르노도 데리고 갈까?
「……저기, 「사토리」는 누구? 나 지저라는 곳 모르는데.」
「……자세한 건 다음에 이야기할게. 간단하게 말해서, 선대와 특별히 친해진 지저의 거물 요괴야」
「……헤에」
지저로 갈 예정을 짜고 있던 내 귀에, 뭔가 몰래 속닥거리는 레이무와 유카리의 대화 내용은 들리지 않았다.
역시, 저 둘 의외로 사이 좋은 거 아냐?
그렇지만……그렇지만 선대라면 어떻게든 해 줄 거야!
막간 「요요선대록」
【카미시라사와 케이네의 갈등】
환상향의 밤은 깊다.
바깥 세계와는 달리 길에 가로등이나 밤늦게까지 열려있는 가게 따위는 존재하지 않으니까, 광원은 달빛이나 별빛 정도다.
그 깊은 어둠 속에서 싸돌아다니는 사람은 없다.
사람을 멀리하는 어둠에는 필연적으로 정적이 함께하며, 그런 공간에는 인간으로서는 위험한 무언가가 숨어있다.
그래서, 밤에는 사람이 돌아다니지 않는다──.
밤의 깊은 어둠과 고요함은 그렇게 만들어져 있었다.
그 어둠 속을, 달빛조차 피하며 움직이는 자들이 있었다.
세 명의 남자다.
모두 틀림없이 인간이다.
그러나, 그들은 이 어둠 속에서 미아가 되어버린 얼간이가 아니다.
그들은 기척을 죽이고, 발소리를 없애는 것에 뛰어났다.
이 밤의 어둠을 아군으로 만들 수 있는 자들이었다.
밤에 활동하는 요괴들의 눈조차 속이겠다는 듯이, 그들은 조용하게 목적지를 향한다.
남의 눈을 피해 어떤 꺼림칙한 행위를 목표로 움직이는 것일까. 그들이 도착한 곳은, 어디에나 있을법한 마을의 진료소였다.
단지, 그곳이 선대무녀가 운영하는 진료소라는 것 외엔, 어떤 특이점도 없는 장소다.
─그들의 목적은, 선대무녀 그 자체였다. 그녀를 「암살」하기 위해 온 것이다.
세 명의 발이 멈춘다.
서로 얼굴을 마주 봤으나 대화는 나누지 않는다.
그러나, 그 눈에는 곤란하다는 눈빛이 비치고 있었다.
예상외의 사태다.
대부분의 인간이 잠에 드는 심야임에도 불구하고, 진료소에서는 빛이 새어나오고 있다.
사전에 예비조사는 끝나 있었다. 이 시간이면 선대무녀는 다른 거주자와 같이 취침하고 있었을 터다.
그런데 아직까지 깨어있다는 불운이 하필 오늘 일어난 것이다.
세 명은 어떻게 해야 할 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목표인 선대무녀가 지금 다리를 제대로 움직일 수 없다는 사실은 변함없다. 잠에 들었을 때를 노린 이유는 더욱 신중을 기하기 위해서다.
이대로 암살을 시도할까, 아니면 신중을 기해 오늘 밤은 물러날까. 그렇게 고민하던 중──.
「꼼짝 마라」
그 이상 생각할 틈도 없이, 그들의 선택사항은 모두 사라졌다.
「너희들의 일은 실패로 끝났다. 물러나지 마라. 나아가지 마라. 일절의 행동을 허락하지 않는다.」
세 남자의 앞에 단신으로 나선 문지기 요괴는 조용한 목소리로 그들을 위협했다.
밤의 어둠 속에서도 빛나는 붉은 머리카락이 휘날린다.
그러나, 그들은 목소리가 들려온 그 순간까지 메이링이 다가온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자신들을 아득하게 넘어서는, 인외의 영역에까지 달한 완벽한 암행이다.
그에서 전해지는 실력의 차이를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그들은 미숙하지 않았다.
그들은 곧바로 철퇴를 선택했고── 자신들의 위기감이 전혀 충분치 않았다는 것을 다음 순간 실감했다.
「멍청한 놈들」
말 그대로, 눈 깜짝할 사이였다.
3대 1이다. 싸워도 이길 수 없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도주조차 불가능하다고는 생각지 못했다.
숨을 들이쉰 메이링이 세 명의 옆까지 접근하여, 날숨이 끝나기도 전에 전원을 쓰러뜨렸다.
자신들이 언제, 어떤 공격을 받았는지조차 이해하지 못하고 땅바닥에 쓰러진다.
「바, 바보 같은……!」
「바보는 너희들이다. 얼마나 받았는지는 모르겠다만, 고작 돈 따위에 목숨을 걸다니」
남자가 흘린 신음소리에, 메이링은 얼음 같이 차가운 목소리로 답했다.
그녀는 요괴이면서도 단련에 단련을 거듭한 희귀한 존재다. 게다가, 단련해온 시간과 밀도는 인간에 비할 바가 아니다.
평범한 단련과 평범한 아수라장을 빠져나온 인간 따위, 그녀에게 있어서는 먼지만도 못하다.
「네놈들 따위로는 만의 하나라도 그 사람에게 위해를 가할 수 없겠지만.」
「뭐, 그렇기는 해도 눈에 거슬리네」
「이야─, 그렇지만 놀랄 정도로 흥미가 솟지 않는 사람들이네요─. 이 사람들이 선대에게 사적인 원한이라도 있었다면 차라리 웃어줄 수야 있었겠지만. 입은걸 보니 완전히 그쪽 방면의 인간이에요」
「헤-에. 잘 모르겠지만, 이런 이상한 일이 직업인 인간도 있구나.」
메이링에 이어 어둠 속에서 나타난 것은, 파츄리, 소악마, 플랑도르였다.
그녀들과는 첫 만남인 그들에게 있어서, 그 광경은 이미 지옥과도 같았다.
도대체, 어째서 이런 사지에 발을 디뎌버린 걸까.
자신의 상식을 간단히 파괴해버리는 상황에, 전신에서 식은땀이 솟고 부들부들 떨 수밖에 없다.
「암살자라는 직업이 마을에서 필요한 일인지 궁금하네.」
파츄리가 딱히 흥미 없다는 어조로 중얼거리자, 그 뒤에서 나타난 새로운 인물이 대답했다.
「옛날에는 마을의 치안도 이 정도로 안전하지 않았다.
키리사메 만물상이 대표로 상사를 쌓아올려 마을의 점포들을 정리하기 전에는 수면 아래의 경쟁이나 정당치 않은 수법의 상업 때문에 상당히 어지러웠었지. 그들은 그런 시대에 뒤편서 살아가던 거주자들이다.」
케이네였다.
흡혈귀, 마녀──요괴들과 나란히 서 남자들을 내려다보는 그녀의 눈동자에는, 조금 참혹하다는 눈빛을 띄고 있었으나, 그 이상의 냉정함이 있었다.
「그리고, 그 득 없는 분쟁을 끝낸 자가 바로, 당시 키리사메 만물상의 점주와 교류가 있던 선대무녀였다.
그 사람이 몸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다는 것을 안 원한을 가진 자가 보냈을 테지. 지금도 그 사람은 마을에서 악행을 하는 자들의 억제력이 되고 있으니까.」
홍마관의 요괴들과 위화감 없이 나란히 선 마을의 수호자의 모습에 무언가를 눈치챈 건지, 혹은 오해한 건지.
케이네를 올려보는 남자의 얼굴이 혐오로 비뚤어진다.
「결국 짐승의 피가 섞인 반인이라는 거냐……!」
모멸하듯이 험담을 내뱉는다.
그 말을 들은 케이네는 약간 표정을 찡그릴 뿐이었다.
「과연. 일부의 인간이 너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이해할 수 있겠어」
「이 녀석들 자기들이 한 짓은 전혀 생각하지 않는 것 같은데요. 파츄리님, 한 명만 남기고 다른 두 녀석은 죽여도 괜찮을까요?」
「그만둬다오. 선대님을 노린 건 나도 용서할 수 없지만, 그 사람 곁에 더러운 것을 놔두고 싶지 않으니까」
평상시의 온화한 성격과는 전혀 딴판인 말을 하는 메이링을 케이네가 말린다.
메이링이 어깨를 약간 들썩이며 알겠다는 듯 물러난다.
딱히 얽매일 생각은 없다. 눈앞의 인간들은 메이링에게 있어서 그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두 사람과 자리를 바꾸며 플랑도르와 파츄리가 남자들에게 다가간다.
「다행이네, 당신들은 여기서 죽지 않아. 그렇지만, 다음에 아주머님을 노리면 용서하지 않을 거니까?」
플랑도르는 생긋 웃으며, 세 암살자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천진난만 그 자체인 표정 속에는, 어둠에 물든 일을 해온 그들조차 마음속 깊이 공포에 떨게 만들 정도의 기세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온몸에서 땀을 쏟아내며, 부들부들 몸을 떠는 남자들의 모습을 보며, 파츄리가 마무리를 짓는다.
「공포라는 걸 안 것 같네. 그 공포를 잊지 마, 당신들의 생명을 지키기 위한 선이 될 테니까.」
이처럼 어리석은 행위를 하는 것이 죽음과 직결됐다는 것을 경고하며, 파츄리는 남자들의 이마에 손가락을 가져댔다.
한마디의 주문조차 필요 없다.
단지 그 행동만으로 마법이 발동해, 남자들의 눈에서 이성과 지성이 사라진다.
넋이 빠진 그들은 천천히 몸을 일으키더니, 그대로 의지가 느껴지지 않는 발걸음으로 밤의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지금 그건 뭐지?」
케이네가 약간 불안한 어조로 묻는다.
「가벼운 저주. 작은 아가씨가 심은 공포의 감정을 이용해서 마음을 조금 부쉈어. 일주일 정도는 백치 상태겠네」
「객사하거나 하지는……」
「안심해, 사고를 완전히 빼앗은 건 아니야. 그들은 어슴푸레한 기억을 따라, 귀소본능으로 고용주에게 돌아가겠지.
그 후에는 자발적으로 움직이는 것조차 불가능하겠지만. 고용한 암살자가 돌아온 걸 본 그 아무개 씨는 계획이 실패했다는 걸 깨닫고 경고로 받아들일 테고. 꺼림칙한 일을 숨기기 위해 그들을 숨겨줘야 할 필요도 생긴다. 원만한 대처야」
「……그렇군. 충분하다.」
──고용주가 증거인멸과 그들을 돌볼 수고를 없애기 위해 죽일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파츄리는 그 가능성을 눈앞의 선량한 반인반수에 이야기할 생각은 없었다.
불필요한 걱정거리를 짊어지게 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도 있었지만, 그 이상으로 그 암살자들에게 그렇게까지 배려를 해줄 만한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죽는다면, 죽으면 된다.
자기 자신이나 주변 사람에게 해를 끼지는 존재 따위를 걱정할 필요는 없다.
당연한 것이다.
「그렇지만, 정말로 좋은 타이밍에 선대님의 문병을 왔군.
흡혈귀가 밤에 활동하기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설마 이렇게 정확히 녀석들의 활동시간과 방문시간이 일치할 줄이야.」
암살자들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자, 케이네는 딱딱한 분위기를 풀 작정으로 가볍게 말했다.
「사실, 병문안 날짜와 시간을 정한 건 레밀리아 아가씨에요. 혹시, 오늘 밤의 일을 예지한 다음에 말했을지도 모르겠네요」
「아─, 그 묘하게 수상한 능력 말인가요. 예지라든지 예언 같은건, 왠지 믿을 수 없어요. 게다가 「운명 (웃음)」이라니. 단순한 우연 아닌가요?」
「……너, 악마 주제에 그런 말해도 되는 거야?」
「아니, 악마의 예언은 대체로 뻥이나 자작극이니까요. 그리고, 역시 운명은 스스로 개척하는 거 아닐까요!」
「우와—, 소악마가 말하니까 멋진 대사가 이상하게 들려—」
화기애애한 넷의 대화를 바라보며 케이네는 쓴웃음을 지었다.
마을을 지키는 자로서 외부세력은 당연히 경계대상이다.
최근 이변을 일으킨 홍마관은 그 대표일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실제로 만나 보니 그녀들은 선대무녀를 위하면서도 그녀를 노린 불온한 인간을 죽이지 않고 원만하게 끝마쳤다.
조금 전, 그 남자들이 자신에게 향한 적의를 떠올리며, 케이네는 복잡한 감정을 품었다.
인간에게 혐오당하고 거부당하고 받아들여지고.
똑같이 요괴에게도 받아들여지기도 하는 반면 거부당하고 혐오당하기도 한다.
반인반수로 태어난 후 지금까지 자신은 두 종족의 사이에서 번롱되어 왔다.
앞으로도, 이렇게 헤맬 일은 많을 것이다.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 버리면, 적어도 고뇌 중 하나가 사라질지도 모른다.
「……바보 같군. 대답은, 훨씬 옛날에 나왔을 텐데.」
케이네는 자신을 타이르듯이 중얼거렸다.
뇌리에는 일찍이 봤던 선대무녀의 등이 비추고 있다.
──그렇지만, 그 사람이 없어진 다음은 어쩌지?
갑자기, 해결됐음이 분명한 의문이 다시 샘솟았다.
이해하고, 후회하고, 납득한 것이다.
그럼에도 아직 마음 어딘가에서 걸린다.
케이네는 계속 요동치는 결심을 품은 자신을 혐오하면서도, 진료소의 빛을 응시했다.
그 시선에 무언가를 눈치챈 듯, 플랑도르가 얼굴을 들여다본다.
「에- 그러니까…… 케-네 선생님?」
「아, 그래. 선생님……인가. 나를 그렇게 부르는 건가?」
「응, 아주머님한테 케-네는 「선생님이다」라고 들었으니까.」
플랑도르는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었다.
그 웃는 얼굴에, 서당에서 가르치는 아이들의 얼굴이 겹친다.
오랜 세월 광기를 품고 지금도 외출을 제한하고 있다는 이 악마의 여동생은, 케이네의 눈으로는 그저 순진무구한 소녀라고 밖에 생각되지 않았다.
조금 전 암살자들을 공포에 떨게 만든 흡혈귀로서의 위압감도 희미해져 버린 플랑도르의 순진함에 케이네는 자연스레 미소로 답하고 있었다.
「케-네 선생님도, 괜찮으면 함께 아주머님에게 가지 않을래?」
「나도, 말인가? 그렇지만…… 어째서지?」
「응. 잘 모르겠지만, 만나고 싶은 것처럼 보였으니까」
「……그런가」
순수한 마음의 눈이야말로, 겉치레나 손질된 외관에 속지 않고 본심을 간파한다는 걸까.
케이네는 플랑도르의 지적을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그럴지도 모르겠군.」
「그럼 같이 가자. 아주머님과 친한 거지?」
「그래……아마도. 그렇다면 좋겠다만」
「어라, 자신 없는 거야?」
플랑도르의 말은 케이네의 불안을 정확하게 알아맞혔다.
전의 사건을 되새긴다.
마음속 깊이 경애하고 있었음이 분명한 선대를, 일시적이라고는 한들 죽음에 이르게 한 자신의 어리석음을 떠올린다.
「……글쎄? 불안해질 정도로, 그 사람에게 못할 짓을 해버리고 말았다.」
무슨 말을 하는 거냐. 자업자득이 아닌가.
케이네는 마음속에서 자학의 말을 내뱉었다.
그날, 선대가 눈을 떴을 때 눈물이 나올 정도로 기쁨과 안도를 느끼면서, 그 이상의 후회와 참회의 감정을 품고 있었다.
물론 그 자리에서 바로 사죄했고, 선대도 그것을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용서했지만, 그 일은 아직도 케이네의 안에 남아있었다.
분명 이것은, 그 사람과 마주 보는데 있어서 일생토록 이어질 빚일 것이다.
「괜찮아!」
어두운 표정으로 고개 숙인 케이네를 바라보며 플랑도르가 말했다.
「아주머님은 나쁜 일을 하면 제대로 화내 주는 사람이니까.」
그 짧지만 당연한 말을 들은 케이네는 의표를 찔렸다는 표정을 짓는다.
「그리고, 반성하고 사과하면 제대로 칭찬해 줄 거야.」
플랑도르의 표리가 없는 말이 케이네의 마음에 힘을 실어줬다.
눈앞을 가리고 있던 억측과 도리, 그에서 온 불안이라는 안개가 사라지고 시야가 환해진 듯한 기분이었다.
자신은, 항상 헤매왔다.
그러나, 그때마다 대답을 내왔다.
지금까지 거듭해온 그 사실을, 케이네는 지금 와서야 깨달은 것이다.
「……고맙다」
케이네는 흡혈귀 소녀에게 깊은 감사를 품고, 그것을 솔직하게 입에 담았다.
플랑도르가 생긋 미소 짓는다.
「이야기는 끝난 것 같네」
「이야, 좋은 이야기네요. 그렇지만 제 앞에서 이런 이야기는 그만두셨으면 좋겠어요. 소름 돋아요.」
「소악마. 내 도움은 메이링으로 충분하니까, 역시 저택으로 돌아가는 게 어때? 아니, 돌아가」
옆에서 지켜보던 메이링 일행도 케이네와 플랑도르의 뒤를 따라 함께 걷기 시작한다.
밤의 어둠은 깊다.
그러나, 그녀들이 향하는 곳에는, 진료소 입구 앞에서 방문이 늦는 그녀들을 걱정하며 기다리고 있는 선대무녀의 모습이 비추고 있었다.
◆
【키리사메 마리사의 도전】
「스펠카드・브레이크, 다. 어때!」
「어때, 라니…… 그런 너덜너덜한 모습으로 자랑해봤자 말이지.」
「시끄럽구만!」
탄막놀이에서 훌륭하게 승리를 거머쥔 마리사는 땅으로 추락한 첸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헥헥거리며 어깨가 들썩일 정도로 숨을 쉬면서, 승자의 미소라기보다 죄어들어 입꼬리를 억지로 올려 비틀린 표정을 짓고 있다.
서로의 탄막에 데미지를 입었다고는 해도, 기가 막힌다는 시선으로 올려보는 첸이 오히려 여유로워 보였다.
제3자가 보면 승패를 이해하기 어려운 구도다.
「내 승리라는 건 틀림없다고. 불만 없지!?」
「아니, 그야 없지만……. 일단 내려와. 그 상처 치료해줄 테니까.」
「……응」
마리사는 휘청휘청 비틀거리며 땅에 내려섰다.
마요이가의 저택 안으로 뛰어들어간 첸이 의약품을 손에 챙겨 돌아오자, 툇마루에 들어앉아 있던 마리사가 감사인사를 했다.
「고맙긴 한데…… 괜찮아? 너 요괴잖아?」
「그렇지만, 너는 나한테 이겼잖아. 패자는 승자한테 따르는 게 규칙이니까.」
「그래 봤자 약해졌으니까, 먹어버려도 괜찮잖아.
너 말고도 몇 마리정도 요괴와 결투했지만, 그중에는 승부의 결과를 무시하고 달려드는 놈도 있었다구.」
그것을 때로는 격퇴하고, 때로는 도망친 마리사에게 있어서 스스로 패배를 인정하는 첸은 특이해 보였다.
스펠카드・룰에 직접적인 강제력이 없다고는 한들, 그것을 지키지 않는 자에게 어떤 말로가 기다리고 있는지조차 상상할 수 없는 사고가 부족한 약소 요괴가 가끔 있다.
그 점을 근거로 들어 보자면, 첸은 실력은 차치해도 어지간한 요괴보다 한수 위인 존재였다.
「헤헷, 나를 길바닥에 굴러다니는 잡요괴랑 동급이라고 생각해서는 곤란한걸. 그렇게 교활한 짓은 절대로 하지 않아」
언뜻 보면 어린 소녀의 외모와 분위기를 지닌 이 변신하는 능력을 가진 고양이에게는, 제대로 된 신념이 있는 것 같다.
치료를 받으면서, 마리사는 머리를 긁적였다.
애당초, 먼저 탄막놀이를 신청한 건 마리사 쪽이었다.
게다가 상대가 악행을 하고 있었다든가 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인간이 사는 마을로부터 떨어진 곳에 있던 저택이 우연히 눈에 띄어, 그곳에 있던 변신하는 능력을 지닌 고양이와 만난 것으로 시작된 것이다.
위세 좋게 승부를 도전한 마리사를 상대로 첸 또한 당당하게 응했기에 둘 다 신경 쓰지 않고 있었지만, 남이 보면 마리사가 갑자기 시비를 턴 상황이다.
「뭐랄까…… 미안. 놀랐어?」
「아앗, 요괴를 동정하는 거야? 그런 반응은 반대로 화난다고. 인간 주제에!」
마리사의 사과에 첸은 오히려 불쾌하다는 듯 날카로운 눈으로 답했다.
「사실은 요괴가 이기는 게 당연하니까 말이지! 나는 미숙해서 져버렸지만 요괴는 인간보다 강한걸!
그러니까, 인간은 불합리하게 습격당해도 어쩔 수 없고, 요괴는 퇴치당해도 어쩔 수 없다──그렇게 배웠어. 인간이 요괴에게 배려를 할 필요는 없어. 요괴는 두려워해야 할 존재니까」
「……그건 또 묘한 영재교육을 받고 있는걸.」
자신으로선 이해할 수 없는 인외의 가치관에 애매한 미소를 짓는다.
요괴란 보다 강한 힘을 가짐에 따라 약자에게 향하는 의식에 차이가 나는 것 같다.특히 그 차이는 인간에게 특히 현저하다.
뇌리에 야쿠모 유카리를 뒤따르던 여우요괴의 모습이 스친다.
확실히 강한 상대였다.
자신을 철저하게 얕보고 있었다.
첸이 말하는 요괴의 가치관과 딱 들어맞는 구도가 지금의 자신과 그 여우요괴와의 관계이며, 놈에게 있어 자신은 별 볼일 없는 인간과 같다는 것이다.
그것을 자각한 마리사의 안에 남아있던 무언가에 다시 불이 붙기 시작했다.
이번처럼 「만난 요괴와 닥치는 대로 탄막놀이를 한다」라는 무사수행 비슷한 행동을 일으킨 최대의 이유인 그날 이래 가슴 안쪽에 뿌리내린 뜨거운 「뭔가」였다.
「말해두겠는데, 나한테 이겼다고 착각하면 안 돼?
진짜 요괴라는 건 훨─씬 더 강하니까. 내 주인님같이」
「뼈에 사무칠 정도로 알고 있다고.」
「헤에, 그럼 넌 그런 요괴에게 진 적 있는 거야?」
「그래, 말 그대로 흠집하나 못 냈지. 완패였다고」
「그렇게 말하면서, 아직도 다른 요괴에게 싸움을 걸다니, 끈질기다고 할까 인간답지 않다고 할까」
「인간다우니까, 고집을 피우는 거야. 머지않아 강해져서 그 녀석이 뒤돌아보게 해주겠어.」
「……역시 인간답지 않아」
첸은 기막히다는 듯이 한숨을 내뱉었다.
눈앞의 인간은 그녀가 배워온 것과 반대되고 있다.
인간은 요괴를 무서워해야만 한다── 그 상식을 마리사는 정면에서 부수고 있다.
이런 녀석도 있구나, 라는 신기함으로 가득 찬 시선으로 마리사의 옆얼굴을 바라보며, 첸은 마지막 붕대를 감았다.
「자, 이걸로 치료 끝」
「오오, 고마워. 정말로 미안한데」
「그러니까, 괜찮다니까. 패배한 내가 나쁜 거야. 마리사는 이대로 다른 요괴와 승부를 계속할 예정이야?」
「그렇네—. 이제 체력도 한계고, 슬슬 돌아갈까」
첸은 자연스레 마리사의 이름을 부르고, 마리사도 그것을 당연하단 듯이 받아 들인다.
서로 자각은 없다.
그러나, 탄막놀이라는 승부와 그 후의 소통으로 인간과 요괴로서의 첫인상이 서로 바뀌어 있었다.
「조심해」
첸은 자신이 인간을 걱정하고 있다는 것에 위화감을 느끼지 못했다.
「그래. 또 다음에 승부하자구. 그리고, 네 주인이라는 녀석하고도 해 보고 싶은걸.」
「다음엔 지지 않을 거고, 네가 란님을 이길 수 있을 리 없으니까.」
「하핫, 그건 기대되는──」
오기 있는 성격은, 비슷한 마리사로서도 공감할 수 있었다.
요괴라지만 어린 외형에서 느껴지는 활발함에 미소로 답했으나 그것은 도중에 멈춘다.
첸의 등 뒤에서 나타난 다른 요괴의 존재를 눈치챈 것이다.
마리사는 그 요괴를 보자마자 의식이 완전히 돌아갔다.
「뭐야, 누군가 했더니 너였나.」
「너는……」
9개의 꼬리를 우아하게 나부끼며, 마성의 미모를 가진 여우요괴가 마리사의 앞에 내려섰다.
맨 처음 만났을 때와 완전히 같은, 싸늘한 시선이 마리사를 내려다보고 있다.
단순한 눈높이 이외의 의미가, 그 눈빛에 숨겨져 있었다.
「란님!」
뒤돌아 본 첸의 얼굴이 미소로 빛난다.
아무래도, 그녀의 주인이라던 요괴는 「란」이라고 불린 요괴였던 것 같다.
마리사는 너무나도 기묘한 만남에 쓴웃음이라도 지어보려 했으나 실패하고 말았다.
너무나 갑작스레 찾아온 재회가 감정과 사고에 혼란을 일으키고 있다.
란은 언짢은 표정으로 자신을 노려보는 마리사의 존재를 깡그리 무시하고 달려오는 첸에게 상냥하게 미소 지었다.
「첸, 잘 지냈니?」
「네! 오늘은 마요이가의 청소를 하고 있었습니다!」
「응, 제대로 할 일을 하고 있구나. 훌륭하다. 이곳은 평소에는 사용하지 않는다만, 사용할 때는 언제나 중요한 용건이 있을 때다. 성심성의껏 관리해라.」
「네, 알겠습니다!」
「좋다. 그럼, 다음은 저 인간의 이야기다만……」
화제를 바꾸면서도, 그 대상인 마리사에게 시선조차 돌리지 않고 란은 미소를 지은 채 첸의 뺨에 손을 가져다 댔다.
「저 인간과 승부를 했구나. 결과는 어땠지?」
첸은 묵묵히 눈을 내리깔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총명한 란에게 그 반응은 대답이나 다름없다.
「졌구나.」
「……네. 죄송해요」
란은 무력하게 고개를 숙인 첸을 보며 표정을 굳혔다.
말로는 드러나지 않았으나 분위기가 분명하게 긴장되어 있다.
란은 입을 꾹 다문 첸의 뺨을 강하게 쳤다.
무심코 참견하려 한 마리사는 란의 딱딱하지만 결코 화난 것은 아닌 진지한 눈을 보고, 움직임을 멈췄다.
분명, 이것은 외부인이 참견할만한 것이 아니다.
그렇다는 걸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었다.
명계에서 레이무와 선대무녀가 마주보고 있었을 때의 광경이 떠올랐던 것이다.
「첸. 너는 나의 식신, 나아가서는 야쿠모 유카리의 식의 식이다. 그 자각과 자부심을 잊지 말도록 해라.」
「네……죄송해요, 란님」
「사과하지 마라. 약한 태도는 버릇이 된다. 그저, 스스로 맹세하거라. 더 이상 지는 일 따위는 없도록, 강하게 되는 거다.」
「알았습니다」
첸은 눈에 눈물을 맺으면서도, 마지막에는 올곧게 란의 얼굴을 올려보며 대답했다.
란은 만족스럽게 끄덕이고는 다시 미소를 짓는다.
마리사가 안고 있던 란에 대한 인상을 무너뜨리는 의외의 일면이었다.
엄격하지만 상냥하기도 하다.
아마 가족에게 밖에 보이지 않는 진지한 태도다.
인간인 자신에게는 절대로 보일 일은 없을 것이다, 라고 납득하면서도 마리사는 란에게 굳어져 있던 인상을 고쳤다.
「그냥 화나는 녀석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말이지……」
「아직 있었나 인간. 냉큼 사라져라」
아, 역시 그냥 화날 뿐이네.
마리사는 이마에 힘줄을 세우며 노려봤다.
「내 이름은 키리사메 마리사라고?」
「기억하고 있다.」
「그럼 이름을 부르라고. 이쪽이 이름을 알려줬으면 불러주는 게 예의잖아.」
마리사는 두 요괴의 대화에서 「란」이라는 이름을 들었으나, 들음과 동시에 그것을 절대로 입 밖으로 꺼내지 말자고 결심했다.
란에게 직접 듣고, 그때서야 이름을 부를 생각이었다.
단순한 고집일 뿐인 결의였지만, 그 결의는 굳건했다.
그런 마리사의 결의를 비웃듯이, 란은 전혀 변하지 않은 싸늘한 시선으로 답한다.
「네 이름 따위를 내가 입에 댈 필요는 없다.」
그저 담담하게 사실만을 단언하는 대답이었다.
란은 마리사의 이름을 어쩌다 보니 기억하고 있을 뿐일 것이다.
「헤헷, 변함없이 높으신 분다운 대사인걸. 언젠가, 반드시 내 존재를 인정하게 해 주겠다고. 구체적으로는 네게 이겨서 말이지,」
「불가능하다」
그녀에게는 굳이 마리사만이 아닌 모든 인간이 하등한 존재였다.
「너희들 인간의 힘이 때로는 요괴의 그것을 웃돈다는 것은 인정하지. 그중에는 하쿠레이의 무녀와 같은 예외도 존재한다.
그러나, 인간이라는 종족 그 자체가 내게 있어서 기억하는 것조차 필요하지 않은 존재다. 아무리 강한 힘과 많은 영화를 손에 넣어도, 백년 정도 지나면 생명을 포함한 모든 것을 잃고 같은 시간을 거쳐 내 기억에서 사라진다.
그런 일의 반복이다. 너희들, 인간이라는 짧은 존재는. 나를 위협할 수도, 흔들 수도 없다. 그저, 시간의 흐름과 함께 사라지는 덧없는 존재지. 그리고 너는, 그런 인간 중에서도 특히 약하고 작은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
란은 자신에게 있어 마리사<인간>이 얼마나 무가치하며 흥미가 솟지 않는 존재인가를 담담하고도 정중하게── 그리고 어떤 감정도 담지 않고 마리사에게 말했다.
「그렇게 계속 나를 피라미라고 얕보고 있으라고.」
「피라미? 그건 적대하는 자의 인식이다. 너 따위는 해봤자 시끄러운 모기 정도다.」
그럼에도 마리사는 냉소를 짓는 란을 향해 사나운 미소로 답했다.
「좋아…… 적어도 눈에 띄지도 않는 자갈도 아니고, 눈에 보이는 모기 정도로는 봐줬다는 거구만. 첸에게 이긴 덕분이려나?」
결투를 거쳐 서로 소통할 수 있었던 첸을 들먹이는 짓은 마리사로서도 거부감이 들었지만, 그 도발은 처음으로 란에게 효과를 발휘했다.
아주 약간. 정말로 아주 약간이지만 란의 얼굴에 불쾌감이 드러난다.
눈을 가늘게 치켜뜨며, 적의를 담아 마리사를 내려다본다.
그녀가 벌레를 쫓을 정도로만 힘을 발휘해도 마리사는 저항할 새도 없이 날아갈 것이다.
그러나, 그 결과가 어느 쪽의 패배이며 승리인지, 란과 마리사는 서로 자연스럽게 이해하고 있었다.
「……입만은 죽지 않는 인간이군.」
결국, 란은 그런 한마디 말만을 내뱉었다.
그리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마리사를 무시하며 등을 돌리고 떠난다.
둘의 대화를 지켜보던 첸이 힐끔힐끔 마리사를 돌아보며 당황해서 그 뒤를 따른다.
마리사는 멀어져가는 란의 등을 가만히 노려보고 있었다.
멀고, 높은 존재다.
지금은 이렇게 올려볼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기다려라.
머지않아──.
「네 이름을 불러주겠어. 그리고, 내 이름을 부르게 해주겠다고」
반드시.
자신의 의지를 확인하듯이, 마리사는 중얼거렸다.
「……라고는 한들, 지금 이대로는 어려우려나.
아, 역시 독학은 한계가 있는 걸까. 그렇지만, 파츄리에게 이 이상 배우는 것도……」
가르침 받는 상대로서 적절한 마법사 선배가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고민하는 것은 여유 같은 게 아닌, 단순한 고집이었다.
그러나, 그 고집이 마리사의 불굴의 투지를 지탱하는 뿌리다.
그녀는 아직 미숙하고, 젊다.
그것이야 말로 강점이라는 것조차, 자각하지 못했다.
◆
【콘파쿠 요우무의 미주*】(迷走 : 정해진 길을 벗어나 돌아가다)
요우무의 마을 방문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그렇다고는 해도, 오래전부터 정기적으로 방문해온 것도 아니다.
요우무가 사는 명계는 결계에 의해 지상과 분단되어 있다.
같은 환상향이라도 생자가 살아가는 장소와 사자가 머무는 장소로 나뉘어 오랜 세월 동안 떨어져 지내왔다.
그 결계가 최근에 파괴되었다.
두말할 것도 없이, 지금 「춘설이변」이라 불리는 이변이 일어났을 때의 일이다.
그때 레이무가 파괴한 명계의 결계는 지금도 수복되지 못한 채 명계와 지상의 경계를 애매하게 만들고 있다.
주인인 유유코가 요우무에게 그 명계의 출입구를 지나 지상에 심부름을 보낸 것은, 그 이변이 종결되고 얼마 지나지 않은 날이었다.
명목은 가지각색이다.
평소에는 말 그대로 「심부름」이다. 주로 마을의 가게를 방문해 과자나 서적 같은 놀 거리를 사오라고 시킨다.
그런 필요 없어 보이는 명령이,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라는 것을 요우무는 최근 들어서야 이해하기 시작했다.
요우무는 그 이변 이래── 정확하게 말하자면 레이무에게 결정적인 패배감을 맛본 이래, 어딘가 상태가 이상했다.
정원사로서의 일을 훌륭히 해내고, 연습도 매일 계속하고 있다.
그러나, 몸이 움직이는 것 같지가 않다.
자신의 안에 있는 톱니바퀴가 멈춰버리고 말았다. 그런 막연한 위화감을 안은 채 매일매일을 보내고 있었다.
그 어쩔 수 없는 위화감은 조금씩 겉으로도 드러나기 시작했다.
오늘도 심부름을 끝마치고 마을을 걷는 요우무의 고개는 숙여져 있었고, 왠지 모르게 어두웠다.
「……어라? 여기, 외곽 쪽이다.」
문득 정신을 차린 요우무는 자신이 마을의 외곽 길을 따라 걷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뭘 하는 거냐 나, 라고. 넋이 반 정도 빠져서 걷던 자신을 질책한다.
처음에는 가게가 많은 마을의 중앙으로 가려고 했다.
도대체, 뭘 어떻게 해야 정해진 루트에서 이렇게 엇나간 곳까지 올 수 있는 걸까.
──아니, 이해는 하고 있다.
유유코에게서 지정받은 가게는 항상 다르다.
무작위로 선택하는 거 아닐까? 하고 생각할 정도로, 항상 다른 장소에서 다른 것을 사와 달라고 부탁받는다.
마치, 마을 안을 탐방시키는 것이 목적인 것처럼.
그런 예상이 들게 된 것은「심부름」을 몇 번 정도 반복했을 때였다.
마을의 거주자나 가게의 점원과 만나 지상의 많은 정보를 자연스럽게 얻을 동안 요우무는 자신이 무의식중에 피해가는 장소가 있다는 것을 어느덧 자각했다.
이 마을에는, 선대 하쿠레이 무녀가 근무하는 진료소가 있다.
선대── 즉, 그 레이무의 어머니다.
그리고, 레이무는 종종 마을에 들려 그 어머니를 방문한다고 한다.
그것을 안 이래 요우무는 일부러 길을 돌아서라도 진료소를 피해 숨죽여 달아나듯이 마을을 떠나게 됐다.
이유는 명백하다.
만나고 싶지 않았다. 하쿠레이 레이무와 그 친척을.
「보기 흉하다…… 나」
요우무는 자조 섞인 한숨을 내뱉었다.
몇 번이고 자신에게 질문했지만, 언제나 대답은 하나였다.
요컨대, 레이무를 만나는 것이 무서운 것이다.
이미 그녀와 적대 관계는 아니지만, 처음 경험한 완전한 패배가 레이무에 대한 감정을 매우 부정적으로 만들고 있었다.
그것을 어떻게든 해보겠다는 마음조차 들지 않는다. 그저 그녀와 두 번 다시 맞서고 싶지 않다는 공포와 절망만이 남아있다.
지금 레이무와 만난다면 단순한 지인으로서의 대화정도는 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속으로는 자신은 항상 그녀에게 항복하고 있는 상태다.
자신을 이긴 강자에게 꼬리를 마는 개처럼.
그렇게 비참한 기분은 사양이었다.
지금까지 나날이 길러온 힘과 신념이, 그 자각과 자부심이 요우무의 마음을 완전한 패배자로 타락하는 것을 용서하지 않았다.
레이무에게 이길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에 몇 번이고 그 사실을 들이대 져도 견딜 수 있었다.
처음으로 경험한 실전의 결과는, 단련해온 자신의 힘으로 사명의 달성에 불타고 있던 젊은 검사를 단순한 겁쟁이로 바꿔버리고 말았다.
「…………이대로, 계속 도망칠 건가?」
마을의 입구를 향하던 발을 멈추고, 요우무는 몇 번이나 반복했는지 모를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그리고, 언제나 같은 대답으로 끝난다.
──도전해봤자, 이길 수 있을 리가 없다.
어쩔 수가 없었다.
제멋대로인 변명에 의지했으나 그마저도 분쇄되고 말았다.
요우무는 한 번 더 한숨을 내뱉더니, 발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대로 백옥루로 돌아가서, 저택의 일을 끝내고, 의미가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단련을 반복하고, 그리고── 몇 번이나 잘 수 없는 밤을 지새야할까?
요우무는 입술을 씹었다. 작게 상처가 나 피가 흐른다.
이렇게 고뇌하는 요우무의 모습을 보던 유유코는 어떠한 변화를 기대하고 그녀를 지상으로 심부름을 보내던 것이다.
새로운 만남이든, 미지와의 만남이든. 뭐든지 좋다.
그리고 오늘에서야 그 기대는 이뤄질 수 있었다.
그 일은, 마을을 나오자마자 일어났다.
교통이 혼잡해지므로 마을 안에서의 비행은 금지되어 있다.
인기척이 없는 곳까지 다다른 요우무는 백옥루를 향해 날려고 했다.
그러나, 그때 점점 가까워지는 짐승의 냄새를 눈치챘다.
거기에, 피 냄새다.
온몸에서 그런 냄새를 풍기며 다가오는 것이 단순한 짐승이 아니라 넝마가 된 외투를 머리부터 뒤집어쓴 덩치 큰 남자라는 것이 요우무에게 강한 경계심을 갖게 했다.
틀림없이 요괴다.
게다가, 이 녀석은 사람인지 동물인지는 모르겠지만, 생물을 대량으로 죽였다.
코를 찌르는 비린내에, 감각이 예리한 요우무는 불온한 분위기가 섞여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멈춰라」
상대가 누군지는 모른다. 이대로 아무 일도 없이 자신을 지나칠지도 모른다.
그러나, 남자가 향하는 곳에는 마을이 있다.
요우무는 그 남자의 앞을 막아서서, 허리에 찬 칼에 손을 얹고 말을 걸었다.
「이 앞에 있는 곳은 마을이다. 이렇게 피 냄새를 풍기면서 마을에 들어갈 셈이냐?」
남자는 대답하지 않는다.
그저, 얼굴을 가리는 외투의 그림자 속에서 인간과는 동떨어진 이상한 눈빛이 빛났다.
요우무는 그 순간 옆으로 뛰었다.
그 직후, 바로 아까까지 있던 요우무가 있던 장소를 남자의 손톱이 가른다.
외투에서 뻗어 나온 남자의 팔은 털로 뒤덮였으며 손톱은 칼날처럼 날카롭고, 길다.
「스펠카드・룰은 어떻게 했나!?」
그런 말을 외친 요우무는 자신이 물러빠진 대응을 했다는 것을 알고 후회했다.
저 녀석은 싸움을 걸었다.
그것이 탄막놀이든 탄막놀이가 아니든, 반격해야 한다.
요우무는 칼에 손을 얹은 채, 적이 된 남자를 관찰했다.
의표를 찌를 정도로 민첩한 몸놀림 때문에 외투가 벗겨져, 남자의 전신이 공공연연하게 드러난다.
그 팔처럼 전신에서 털이 돋아난 몸은 크며, 근육이 부풀어있다.
흉흉한 눈빛을 뿜어내는 얼굴은 인간의 것이 아니었다.
불쑥 튀어나온 콧등과 겉으로 튀어나온 송곳니는 개나 늑대의 그것과 같다.
남자의 정체는 늑대인간이었다.
「무……녀……」
간신히 언어 같은 것을 입에 담는 늑대인간. 그러나, 그것은 짐승의 신음소리가 섞여 있었다.
그 눈에 지성의 빛은 느껴지지 않는다.
「하쿠레이의……무녀……!!」
「뭐, 하쿠레이라고……!?」
넘치는 살의가 담긴 말은 요우무에게는 의외였다.
그녀는 모른다.
이 늑대인간이 말하는 하쿠레이의 무녀가, 당대의 레이무가 아닌 그가 시중들던 주인을 살해한 선대 하쿠레이의 무녀라는 것을──.
일찍이 존재하던 이성은 긴 세월에 풍화됐으나, 그저 하나의 망집에 자극받아 그는 환상향을 방황했다.
도대체 어디에서 들은 건지도 모를 선대무녀의 부상을 듣고, 얼마 안 되는 지성이 이끄는 대로 이곳으로 왔다.
그리고 지금, 늑대인간은 눈앞을 가로막는 장해물로서 요우무를 목표물로 정했다.
인외의 순발력을 사용해 다시 달려든다.
「빠르다……!」
두 번째로 경험한 실전은 레이무와 싸웠을 때와는 달랐다.
이성이 없는 늑대인간은 스펠카드・룰을 완전하게 무시하고 단순하게 폭력을 사용한다.
그것은 생명을 건 싸움이었다.
물론, 그런 것에 기죽을 요우무가 아니다.
그녀는 누군가를 상처 입히기 위해 만들어진 칼이라는 무기를 다루는 단련을 해왔다.
요우무는 기술을 전혀 쓰지 않는 무지한 짐승 그 자체인 적의 움직임을 냉정하게 회피한 뒤 칼을 발도해 베려고 했다.
그러나, 칼이 뽑히지 않는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칼을 뽑을 결의를 할 수 없었다.
──벤다.
적의 공격을 회피해, 훌륭한 발놀림으로 빈틈투성이인 등 뒤를 잡는다.
──지금이다, 벤다.
적이 뒤돌려고 한다.
칼이 뽑히지 않는다.
──뭘 하는 거냐. 베라. 빨리. 주저하지 말고. 베라. 벤다. 베라. 베는 거다.
적이 완전히 몸을 돌렸다.
다시 뻗어진 손톱을 당황해서 회피한다.
조금 전보다 약간이지만 반응이 늦었다.
──벤다…… 정말로 벨 수 있나?
전투가 시작된 이래, 계속 무시하고 있던 의문이 점점 커져가기 시작한다.
아무리 해봐도 자신이 적을 베는 모습을 상상할 수 없다.
뽑아서 휘두른 칼이 적의 두꺼운 근육과 털에 막히고, 다음 순간 반격을 받아 자신이 살해당하는 이미지만이 선명하게 뇌리에 떠오른다.
적에게 공격이 통하지 않을 것이라는 근거 없는 불안이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을 필사적으로 부정하려고 노력했지만, 불안에 힘을 더하는 요소만이 눈에 띤다.
요우무가 지금 허리에 맨 칼은 계승받은 두 자루의 명검이 아니다.
싸구려까지는 아니어도, 무명의 칼에 지나지 않는다.
레이무에게 들은 도발마저 마음에 남아, 고집 부리듯 두 칼을 몸에서 떼어놓고 있던 결과가 이것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그 고집이 요우무의 불안을 가중시키고 있다.
이런 칼로, 이런 솜씨로, 정말로 저 적을 벨 수 있을까──?
끝없이 부풀어 오르는 불안과 의문이 요우무의 움직임을 방해한다.
높은 신체능력에 의지한 엉터리 같은 늑대인간의 연공에 요우무는 서서히 회피가 늦어지고 있다.
마침내, 적의 손톱이 요우무의 뺨을 얕게 벤다.
시야에 자신의 피가 흩날리는 것이 보인다.
다음 일격은, 분명 목에 닿을 것이다. 그렇게 자신도 모르게 확신했다.
칼은, 뽑히지 않는다.
벨 수 없다.
이길 수 없다.
죽는다.
「싫어……」
궁지에 몰린 요우무의 속에서, 무언가가 엇나갔다.
그것은 이변의 날부터 쌓여온 불안이나 굴욕 같은 비틀린 감정을 만드는 족쇄였을지도 모른다.
요우무는 그것을 풀어 제쳤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앗───!!!」
절규와 함께, 칼을 뽑는다.
검의 재능을 논한다면, 요우무는 확실히 천성의 재능을 지녔다.
궁지에 몰렸을 때, 그녀 안에 잠들어있던 잠재능력이 무의식중에 발휘된 것이다.
그 순간에 이르기까지의 갈등이나 고뇌를 단번에 베어버리듯이, 요우무가 뿜어낸 검격은 말 그대로 한줄기 섬광이 되어 적의 팔을 절단했다.
요우무의 손에 굉장한 반응이 전해지고, 결코 벨 수 없을 거라 믿고 있던 늑대인간의 굵은 팔이 잘린 나무처럼 허공을 난다.
절단면에서 뿜어져 나오기 시작한 피가 요우무의 얼굴을 더럽히고, 뒤늦게 적의 날카로운 비명 소리가 울려 퍼진다.
「……벨 수 있어」
시야에 비치는 광경을 반 넋을 잃고 바라보던 요우무는 간신히 현실을 받아들였다.
「나는, 이 녀석을 벨 수 있어!」
원래의 자리로 되돌아온 칼이 다른 한쪽 팔을 베어 날린다.
이미 의심할 필요조차 없었다.
눈앞의 늑대인간은 요우무의 적수가 아니다.
섬광이 수십 차례 번쩍인다.
마치 요리재료를 손질하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요우무는 눈앞의 적을 철저하게 다졌다.
세 번째 섬광이 몸을 가를 때 이미 절명한 늑대인간은 사지가 뿔뿔이 조각날 때까지 절단된 후, 최후에는 자비를 선사하듯이 목을 잘려 간신히 땅에 쓰러졌다.
아니, 떨어졌다고 표현하는 것이 올바를지도 모른다.
피와 인체를 닮은 고깃덩어리가 땅에 흩뿌려진다.
「하앗……하앗……」
피로가 아닌 흥분으로 숨을 헐떡이며, 요우무는 칼을 쥔 채 자신이 만든 참상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베는 것에만 의식을 빼앗겨 튀기는 피조차 온전히 피하지 못한 요우무는 미숙하다.
그러나, 어찌 됐건 간에 두 번째 실전은 틀림없이 승리로 끝났다.
그 누구도 뒤집을 수 없는 사실이었다.
「핫……하핫……하, 하하하핫」
붉게 물든 얼굴에 죄어든 것 같은 미소가 떠오른다.
요우무의 마음속에서는 수많은 감정이 혼잡하게 뒤섞이고 있었다. 그 감정 안에는 올바른 감정도 부정한 감정도 섞여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단 하나 큰 감정이 두드러졌다.
그것은, 성취감이었다.
「뭐야, 나……이길 수 있구나……」
씹어 삼키듯이 중얼거리자, 그 감정이 전신에 스며들듯이 차올라 안심할 수 있었다.
레이무에게 패배한 이래, 쭉 느껴왔던 고뇌가 깨끗하게 사라졌다.
자기 멋대로 나는 이길 수 없다고 믿고 있었다.
이대로 평생 패배자일 것이라고.
그러나, 그것은 착각이었다.
실제로 칼을 휘둘러보니 뭐라 할 필요도 없이 당연하게 판단된 사실이었다.
「승부는, 싸워볼 때까지 몰라. 고민 따위는 필요 없어. 그 외의 일은 생각하지 않아도 괜찮아. 상대가 강할지, 내가 강할지는──」
확연히 뒤바뀐 확신과 자신감으로 가득 찬 말투로 허공을 향해 단언한다.
「베면, 안다」
그날, 백옥루로 돌아간 요우무는 기척을 죽이고 저택까지 이동해, 피가 묻은 몸과 옷을 유유코의 눈에 띄지 않고 처리하는 것에 성공했다.
담담한 얼굴로 지금 막 귀가한 것처럼 가장하고 평소같이 일과에 착수했다.
유유코는 그런 요우무의 모습을 보고 그녀 안에서 지금까지와는 다른 결정적인 무언가가 바뀐 것이라고 왠지 모르게 확신했다.
일말의 불안과 함께──.
◇
【오늘의 선대】
──이야기는 들었다. 환상향은 멸망한다!
무, 뭐라고─!? 라는 느낌으로 혼자서 만담놀이.
아니, 그렇지만 유카리한테 이번 이변의 경위라든가 발단이라든가 이유라든가, 덤으로 유카리의 참회까지 들은 내가 할 수 있는 반응은 그 정도였다.
우선 「춘설이변」이라 불리게 된 명계의 이변은 당연히 원작대로 유유코가 일으킨 것이었으므로 특별히 언급할 점은 없다.
뭐, 굳이 말하자면 우리 레이무가 너무 굉장했다는 점일까.
이변해결에 나서서 최단거리를 최고속도로 돌파, 탄막놀이까지 퍼펙트하게 이기고 내 눈앞에서 유유코까지 이겨 내보인 것이다.
그 뒤의 활약은 말할 것도 없다.
비디오카메라가 있었으면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녹화했을 정도였다고.
그리고, 중요한 내 자신에 관한 사건.
계속 궁금했었던 유카리가 내 영혼을 뽑아내 망령으로 만들어 버린 이유──.
비통한 각오를 담은 표정으로 사죄 받은 나는, 어찌해야 할지 몰라 혼란에 빠졌다.
우선 유카리를 꾸짖을 이유는 눈에 띄지 않는다.
확실히 기습 같은 느낌으로 영혼을 뽑혀서 살해 비슷한 걸 당하기는 했지만, 그게 악의로 한 일이 아니란 걸 알았으니까.
들어보니 움직이지 못하게 된 내 다리의 치료를 위해서라잖아.
뭐—, 그거네. 바깥 세계에서도 몇 번 들었던 치료법이 생길 때까지 냉동수면으로 기다리는 SF영화 같은 처치다.
물론, 그다음에 눈이 떠졌을 때 내가 아는 인간이 전부 사라졌을 정도로 시간이 흘렀다─ 같은 느낌으로 끝날 가능성이 있었다는 걸 듣고 조금 식은땀이 흘렀지만.
그렇지만, 유카리는 어디까지나 나를 걱정해서 그런 행동을 일으켜준 것이다.
처벌이나, 사실 오랜 세월 동안 숨기고 있던 악의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최악의 경우까지 예상하고 있던 내게 유카리의 고백은 환영받아 마땅한 것이었다.
그러니까, 딱히 신경 쓰지 않는다고 가벼운 느낌으로 용서할 생각이었지만…….
안 된다.
떠나던 유카리의 표정을 보니 유카리 본인이 매우 신경 쓰이는 것 같았다.
응, 걱정 같은 게 아니라 내 본심이었는데.
말하면 솔직하게 받아들여 주지 않을까?
유카리 외에도, 케이네라든지 치르노라든지. 이번 사건에 관련된 것 같은 사람들에게 사죄를 받고 그것을 나는 받아들이고 서로 대화하거나 함께 식사를 하거나하며 조금씩 화해해나갔다.
딱히 피해를 받은 것도 없으니 내 입장에서는 사죄도 뭣도 필요 없지만.
아, 그리고 소생했을 때에는 없었지만 유카도 와있었던 것 같다.
이 다리로는 답례하러 가는 것도 상당히 고생스러운 일이라 글로 써서 치르노에게 편지를 보냈더니, 받은 그 자리에서 읽은 직후 눈앞에서 태워버렸다고 한다.
치르노는 웃는 얼굴로 그렇게 보고해줬다.
나도 웃는 얼굴로 답했다.
둘이서 생각하는 것은 하나!
──제대로 읽었다.
유우카링 진짜 츤데레.
그런 느낌으로 나날을 보내다 정신이 들고 보니 이번 사건과는 관계없는 홍마관 패밀리까지 다시 병문안을 와줬다, 병석에서 일어난 사람 축하하는 것 같다.
물론, 내가 한 번 죽어서 망령이 된 것은 사건의 관계자들에게만 알려졌다.
그러니까 남은 문제는 아직도 죄책감이 남아 있는 걸로 보이는 유카리 뿐이다.
아무리 말로 표현해도 그녀에게는 제대로 전해지지 않을 것이다.
나도 딱히 할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따라서, 나는 그날 아침에 유카리와 언젠가 약속한 것을 지키기로 한 것이었다.
「……그래서 오늘 아침은 이 녀석이 있다는 거네.」
「그래, 아침 식사에 초대했다」
「……실례하겠어.」
원래는 나 혼자 사용하는 식탁에 레이무와 유카리가 더해져 세 명이서 둘러앉아 있다.
조금 좁지만, 어떻게든 됐구나..
생각해 보니, 이렇게 유카리와 같은 식탁에 둘러앉는 건 처음이다.
유카리는 유카리대로 변함없이 내게 죄책감을 느끼고 있어서인지 식사를 조금 억지까지 부리며 초대했더니 선선히 OK 해줬다.
레이무와 유카리는 변함없이 사이가 안 좋아 보였지만, 어째선지 전보다 친해진 것처럼 보인다. 기분 탓인가?
그 이변에서 뭔가 있었던 걸까…… 뭐, 그런 추측은 뒷전으로 넘기고.
「왜, 네가 마을의 진료소에 있는 거야? 신사는 어쩌고?」
「식사가 끝나면 제대로 돌아갈 거야. 케이네와 교대로 가끔 어머니의 상태를 보러 오니까.」
「그 이변 이후 인상이 상당히 바뀌었네. 무슨 일이라도 있었던 거야?」
「그 대답 하지 않았어? 너한테는 안 가르쳐줘.」
이런 농담 주고받기도 변함없다.
그러나, 역시 전보다 서로 꺼려하는 분위기가 적어진 것 같다.
물론, 좋은 일이다.
자 우선 아침식사를 하자.
한솥밥을 먹으면 유카리도 나에 대한 이상한 응어리도 없어질 거라고!
「이 식사는 선대가 만든 거야?」
살포시 합장한 다음, 젓가락을 손에 쥔 채로 물어본 유카리에게 나는 끄덕였다.
사실 레이무도 도와줬지만 기본적으로는 내가 만들었습니다.
직접 만든 요리를 먹는 것도 화해를 하는데 있어서 큰 의미가 있으니까 말이지.
응, 맛도 양호하다.
특히 이 무 조림은 국물이 제대로 스며들어 있다.
「……살아간다는 것은, 몸에 무언가를 넣는 것이다.」
문득, 나는 그런 말을 중얼거리고 있었다.
식사를 차분히 맛볼 수 있는 덕분일까. 고로짱 같은 명언을 무심코 말해버렸다.
그렇지만, 이 말은 진리라는 걸 절실히 느낀다.
──라는 느낌으로 감동하면서 먹고 있자니, 레이무와 유카리가 이쪽을 주목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구나. 산다는 건, 그런 당연한 일이야」
그리고, 뭔가 납득한 것 같이 온화한 미소를 짓는 유카리.
이 패턴 오래간만 아냐?
내가 어쩌다 중얼거린 말에서 대체 어떤 의미를 찾아낸 건지, 유카리는 방금까지 나와 자기 사이에 만들고 있던 벽을 어느새 허물고 있었다.
뭐랄까, 정신적인 거리 같은 게 좁아진 것처럼 느껴진다. 완전히 감이지만.
내가 그저 응시하는 것으로 답하자 유카리는 똑같이 무를 한입 깨물고 천천히 씹으며 맛보았다.
……미인은 식사하는 모습도 우아하구나.
「맛있어」
「고맙다」
유카리의 미소에, 만든 사람인 나는 미소로 답했다.
응.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내 생각은 맞은 것 같다.
함께 맛있는 것을 먹으면, 마음도 풍부해지니 화해도 간단해진다.
우리들은 웃는 얼굴로 식사를 계속했다.
「이 된장국도 일품이네.」
「아, 그거 만든 건 나야.」
유카리의 말에 레이무가 아무렇지도 않은 어조로 대답하고── 직후, 식사가 정지했다.
「……미안해. 이제 보니 이거, 조금 맛이 진해.」
유카리는 아까의 칭찬과는 정 반대로 입가를 누르며 그릇을 놨다.
레이무의 눈썹이 약간 치켜 올라간다.
「아, 그래. 미안하네, 노인한테 맞을 법한 싱거운 맛내기를 할 수 없어서.」
「신경 쓰지 않아도 돼. 네가 미숙하다는 건 잘 알고 있으니까.」
「다 먹었으면 빨랑빨랑 돌아가. 식기를 정리해야 돼」
「어머, 식후의 휴식 정도는 허락해줬으면 하는걸. 선대는 다리가 아프니 뒷정리는 네게 맡길게.」
어롸롸—? 왠지 조용하고 온화하던 식사 시간이 갑자기 살벌해지기 시작했다—?
평소 같은 텐션을 되찾았다고 생각하자마자 레이무와의 관계도 돌아와 버린 유카리.
이변을 거쳐, 둘의 사이가 조금은 개선됐다고 생각했는데 딱히 그렇지도 않았구나!
우선 이 상황, 평소라면 나는 입도 뻥긋 못하고 지켜볼 수밖에 없지만 식사중이 되면 이야기가 다르다.
내가 한번 노려보자, 어릴 적 함께 살았던 레이무는 시선의 의미를 눈치채고 당황하며 입을 다물었다.
유카리는, 레이무의 요리에 트집을 잡고 싸움을 시작한 원흉이므로 엄하게 간다.
나는 식사 예절에 대한 것이라면 시끄러운 타입이다.
「엣? 앗, 선대 잠깐 기다려……. 미, 미안해, 장난이 지나쳤─, 아팟, 아프다니까!」
내 표정이 진지하다는 걸 눈치채고 당황해서 손을 휘젓는 유카리의 팔을 꺾는다.
요컨대, 암락이다.
이 분노의 표출을 보면 알겠지만, 내가 식사에 대해 바치는 경의는 고로짱에게 감화된 것이다.
「음식을 먹을 때는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자유롭게. 뭐랄까, 편해질 수 없다면 안 돼……」
「어머니는 식사 중에 이야기하는 건 괜찮지만, 못된 장난을 치는 건 용서하지 않는 성격인 것 같아.」
「그, 그걸 먼저 말해! 요, 용서해줘! 내가 잘못했으니까, 이제 안 할 테니까. 아야야얏……!?」
문득, 도중에 좋은 생각이 떠오른 나는, 잠시 동안 유카리를 암락으로 붙들어뒀다.
이걸로 유카리가 신경 쓰고 있던 이변 때의 일도 갚은 걸로 해두자.
응, 내가 생각한 것 치고는 꽤 합리적인 생각이다.
결국, 이후 유카리의 목소리가 거의 울기 직전까지 갔기에 부탁을 하나만 들어주겠다는 약속을 얻어 낸 걸로 이번 사건은 완전히 종료됐다.
뭐, 물론 터무니없는 부탁을 할 생각은 없지만.
맞다…… 마침 기회가 기회고 하니 유카리의 틈새로 지저에 방문해볼까.
사토리도 만나고 싶고.
치르노도 데리고 갈까?
「……저기, 「사토리」는 누구? 나 지저라는 곳 모르는데.」
「……자세한 건 다음에 이야기할게. 간단하게 말해서, 선대와 특별히 친해진 지저의 거물 요괴야」
「……헤에」
지저로 갈 예정을 짜고 있던 내 귀에, 뭔가 몰래 속닥거리는 레이무와 유카리의 대화 내용은 들리지 않았다.
역시, 저 둘 의외로 사이 좋은 거 아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