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15 「텐구」
──대략 50년 정도 전 이야기다.
자세히 하자면, 까마귀 텐구들의 이익과 취미를 겸한 홍보 활동이 「와판」이 아니라 종이를 이용한 「신문」으로 이름을 바꾸어 요괴의 산만이 아닌 마을에도 퍼지기 시작했을 시기였다.
하쿠레이 대결계에 의해 현세에서 격리되어 완전한 비경이 된 환상향에, 바깥 세계의 근대 문명이 조금씩이나마 비집고 들어오기 시작했던 시기.
까마귀 텐구들 사이에서 「사진기」라는 문명의 이기가 알려지기 시작했던 시기.
그 후 찾아온 격동의 시대를 예고하는 것 같은, 작은 변화가 잔물결처럼 일어나던 시기였다.
그 날, 샤메이마루 아야는 요괴의 산을 빙그르르 돌며 날고 있었다.
그녀의 일과였다.
그것도 수백 년 전부터 줄곧 계속해온, 애착이 깃든 일과다.
날에 따라, 그것은 산책이나 단순한 기분 전환을 위한 비행이기도 하다. 딱히, 뭔가 명확한 목적을 가지고 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굳이 의미를 대라고 한다면, 그 습관에는 언제나 「기대」가 담겨 있었다.
어제와는 다른, 변화를 요구하는 기대.
일상에 불어오는 새로운 바람── 아야는 항상 그것을 바라고 있었다. 그야말로, 까마귀 텐구로서 태어난 이래 오랜 세월에 걸쳐.
요괴의 산이라는 세력권을 고수하며, 자신들이 만들어낸 사회제도를 지키며, 이에 침범하는 자들을 배척한다── 그런 텐구의 세계에 있어, 외부로부터 올 영향이나 변화를 바라는 그녀는 상당한 괴짜였다.
그녀만이 묘하게 열중하는 신문에 대해-가까운 미래, 사진기의 보급에 의해 약간의 붐이 되지만-다른 까마귀 텐구들은 딱히 정열을 쏟지 않고, 그저 여가를 위해 작업할 뿐이다.
샤메이마루 아야라는 요괴 자체는 사실, 텐구의 수장과도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을만한 연한을 자랑하는 오래 살아온 텐구다.
──긴 세월을 살아오며, 그 성격이나 품격에 중량감이 생기지 않는 기묘한 텐구.
──한 장소에 머물 줄 모르는 바람 같은 요괴.
텐구 동료들이나, 다른 요괴들이 말하는 그녀의 평가는, 대개 그런 것이었다.
「……아아―, 뭔가 재미있는 일이라도 생기지 않으려나」
그런 평가와는 반대로, 아야가 평소 생각하는 것은, 방금 힘없이 내뱉은 혼잣말 이상의 뜻이 담겨있지 않았다.
이미 질릴 만큼 바라본 하늘의 풍경.
계절이 지나가며 색채가 바뀌어가는 그 모습을 풍류라고 생각하는 감성 정도야 물론 있지만, 매일 느긋하게 그것만을 즐기며 살 수 있을 만큼 느긋한 성격도 아니다.
심심풀이 이상의 의미는 없는데다, 아야는 어제 봤던 산의 풍경을 기억에서 끌어올려서, 그것을 지금 보는 산의 풍경과 겹쳐 틀린 그림 찾기를 하듯이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요괴의 산에 침입자라든가, 반대로 탈주자라든가 나오지 않을까……」
뒤숭숭한 말을 하고 만다.
실제로 나온다고 해도, 그런 사건에 대응하는 것은 까마귀 텐구의 일이 아니니, 평탄한 어조였다. 강 건너 불구경이라는 느낌일까.
그렇지만, 정말로 그런 일이 일어날 만큼, 이곳의 생활이 자극적일 리가 없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오늘도, 큰 변함없이 하루가 끝나는 걸까.
해가 질 때가 가까워졌다는 것을 떠올리며, 아야는 묘한 좌절감을 느끼고 있었다.
「──응?」
문득, 낯익은 풍경에 이물이 비쳤다.
나무들 사이에 분명히 존재하는 작은 위화감.
아야는 조금 기대를 부풀리며 그곳에 내려와, 곧바로 낙담했다.
「뭐야, 인간인가……」
인간의 아이였다.
10살도 되지 않았을 터인, 어린 소녀다.
허름한 옷을 몸에 두르고, 멍하게 허공을 바라보고 있다.
하늘에서 내려온 까마귀 텐구인 아야에게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고, 마음이 이곳에 없는 것처럼, 이 요괴의 산 깊이 들어와 있었다.
얼빠진 눈동자에선 의사의 빛이 느껴지지 않는다.
드물다면 드문 광경이었다.
부모가 있는 것 같지도 않고, 이름 그대로 요괴가 사는 산에, 이런 작은 아이가 어떻게 온 걸까?
당연한 의문을, 아야는 잠시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기대하고 있었는데. 딱히 놀랄 일도 아니네」
아야는 대충 머릿속에서 상황을 예상하며 무기력한 아이에 대한 흥미를 완전히 잃었다.
아야의 혼잣말에 반응한 아이는 멍하니 시선을 옮겼지만, 아야는 이미 아이에게서 눈을 돌리고 있었다.
──짐승이나 요괴가 알아서 끝을 내겠죠.
그렇게 납득하며, 아야는 다시 날아올랐다.
방치된 어린소녀의 뒷일 따위엔 일절의 흥미조차 없다. 아야는 그것으로 하루의 일과를 끝마쳤다.
넓은 하늘로 날갯짓하며 날아오르는 까마귀 텐구의 뒷모습을, 그 아이는 줄곧 올려다보고 있었다.
다음날.
아야는 어제, 그 아이와 만난 장소를 향해 전력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좀 더 빨리 눈치챘어야 됐어……!」
어제 발견한 작은 아이에 대한 것을 잊고 하룻밤 푹 잔 뒤, 아침식사를 먹던 도중 아야는 갑작스레 생각난 것이다.
──어째서, 그 아이는 그런 장소에 있던 거지?
어제 그 자리에서 한 번쯤 생각해봤던 의문을, 부모가 버렸을 것이라고 대충 예상하며 무시해버렸었지만, 다시 생각해 보자니 큰 위화감이 든다.
아이가 혼자서 그런 곳까지 올 수 없다는 것은 안다.
그렇지만, 어른이라고 그곳까지 올 수 있을까?
아야가 사는 텐구의 마을에서 딱히 멀지 않은 그 장소는, 요괴의 산에서도 안쪽이다.
맹수나 잡요괴가 서식하고, 주위를 백랑 텐구가 감시하는 그런 장소에 단순한 인간이 어떻게 아이를 옮겼다는 걸까.
물론, 아야는 모른다.
모르기야말로 흥미가 돋운다.
「제발 살아 있어줘」
전날, 자신이 납득한 「짐승이나 요괴가 끝을 낸다」라는 상황에 초조감을 품으며 아야는 서둘렀다.
물론, 그 아이의 몸을 걱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단순한 흥미일 뿐이니까, 거기에 초조하기는 해도 걱정 같은 건 요만큼도 하고 있지 않지만.
그러나, 적어도 아야에게 있어 「흥미」라는 것은 중요했다.
집에서 뛰쳐나와, 눈 깜짝할 사이에 어제 그 장소까지 겨우 도착했다.
그곳에 아이는 없었다.
아야는 냉정하게 관찰하며, 주위에 피 냄새나 핏자국이 없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즉시 날아올라 그 아이를 찾기 시작했다.
발자국을 발견함과 동시에 그 아이가 스스로 이 장소에서 이동했다는 것에 조금 놀란다.
망연자실하고 있던 이유가, 부모에게 버려졌다는 절망 탓이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틀린 걸까?
어쨌든, 이 요괴의 산에서 하룻밤 지샌 다음, 마음이 꺾이지 않고 혼자 움직일 수 있을 정도의 의지를 가졌다니, 그 성숙함. 인간의 아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정체모를 현상이 늘어남과 동시에, 흥미 또한 깊어져 간다.
입가를 방긋 하고 올리며, 발자국을 쫓는다.
아이 혼자선 하산은커녕, 오래 걷는 것도 불가능할 것이란 아야의 예상은 맞았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흐르는 시냇물 옆에서, 아이의 모습을 찾아낸 것이다.
「……저 아이, 혼자서 강을 찾아낸 건가?」
아이는 냇물로 목을 축이며 얼굴을 씻고 있었다.
그다지 이상할 것 없는 모습이었으나, 아야는 그 이상성을 확실하게 이해하고 있었다.
강을 찾아낸 것 자체는 우연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저 모습을 보건데, 아이는 스스로 강을 찾은 것이다.
자신이, 살기 위해 필요한 것이라고 판단해서.
수원을 찾아내는 것이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행동이라는 것 정도는 어른이라면 누구라도 알고 있다.
그러나, 그 아이는 어딜 어떻게 봐도 부모의 보호 없이는 살아가지 못할 정도로 어리다.
살기 위한 지식은 물론, 상식마저 충분치 못할 것이다.
──역시, 저 아이는 이상하다.
평범한 인간의 아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이상성을 눈으로 본 아야는 확신했다.
그렇기에, 저도 모르게 떠오르는 미소를 멈출 수 없었다.
「이건…… 터무니없는 것을 주운 걸지도 모르겠네요」
지루하며 무기력했던 나날에 새로운 바람이 불어오는 것을, 아야는 느꼈다.
◇
──텐구다! 텐구의 짓이다!
제정신을 차린 나는, 혼란스러운 머리로 그런 바보 같은 말을 외치고 있었다.
현재, 절찬리에 혼란 상태입니다.
아니, 정말로 영문을 모르겠네. 나 왜 이런 산속에 있는 거지?
이런 작은 아이, 그것도 여자아이의 몸으로.
……아니, 잠깐만.
왜 거기에 위화감이 느껴지는 거지?
이 몸이 내 것이 아니라는 건 확신할 수 있지만, 진짜 내 몸이 어땠는지가 전혀 생각나지 않는다.
그것보다 지금 이런 상황에 처한 이유를 전혀 생각해 낼 수 없다.
그러니까, 잠깐만.
눈을 떠보니 갑자기 낯선 장소에 있고, 거기다 아이의 몸이라는 상황은 「이세계 전생 트립물」이라는 2차 창작 장르에서 꽤 흔한 전개인데…….
이세계── 그렇다면, 원래 내가 있던 세계는 어디지?
전생── 그렇다면, 원래 나는 어떤 인간이었지?
점점 선명해지는 머릿속의 지식들을 살펴보니, 나에겐 적어도 근대사회의 정보와 상식이 있다는 것은 알 수 있었지만, 그 사회에서 어떤 입장에 선 어떤 인간이었는지를 기억해낼 수 없었다.
이 몸에 위화감을 느끼는 것은 확실하지만, 전엔 몇 살에 어떤 체격이었으며, 원래 성별이 정말로 남자였는지조차 확신할 수 없다.
아니, 수십 분 전에 일어났던 사건조차 어슴푸레해서 제대로 기억나지 않는다.
정말로 농담이 아니라 「눈을 떠보니 여기였다」라는 상황이다.
내던져졌다, 라고 해도 된다.
이런 상황에서 애매하지 않은 것이 하나 있었다.
모든 것이 애매한 머릿속에서, 딱 하나, 선명하게 뇌리에 새겨진 광경이 내 의식을 현실에 연결해주고 있다.
그것은, 내가 가진 지식과 대조해 봐도 「있을 리가 없는 것」으로서 존재하는 광경.
하늘 높이 날아가는 아름다운 텐구 소녀의 뒷모습이었다.
그 광경이 몇 분 전의 일인지, 아니면 몇 시간 전의 일인지는 모른다.
망연자실하고 있었던 것 같은 내가 제정신을 차렸을 때, 그녀의 모습은 이미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점점 떠오르기 시작하는 지금 처한 상황에 대한 의문과 자신의 지식에서 나오는 모든 위화감에 사고가 엉망진창 뒤섞이던 중, 그 광경만을 선명하게 떠올릴 수 있었다.
아마, 지금 내가 영문 모를 상황에 처했으면서도 아직 어느 정도 머리가 돌아가는 것은, 그 기억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날아오르는 「그녀」의 뒷모습과 우아하게 펄럭이던 날개를 생각할 때마다 지금 상황의 심각함이 이해되며 솟구치는 절망감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을 정도로 마음속 깊이 감동했다.
그것은 현실도피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분명, 그것은 현실을 잊어버릴 만큼 환상적인 아름다움으로 넘쳐흐르고 있었다.
……냉정하게 생각해 보니, 환상적이랄까 진짜로 환상 맞구나.
왜냐면, 텐구라고. 요괴라고.
게다가, 뒷모습뿐이라고는 해도 저건 어딜 어떻게 봐도 아름다운 소녀의 모습이잖아. 맨다리 눈부십니다. 더 보고 싶……지 않아!
요괴가 소녀라니, 뭔 「동방 프로젝트」냐.
이 상황이 정말로 「이세계 전생 트립물」이라면, 그 가능성도 꽤 있지만 말이지.
──응, 꽤 진정됐다.
패닉에 빠지지 않고, 여러모로 냉정하게 생각할 수 있었던 덕분일까, 나는 진정하고서 주변을 둘러볼 여유가 생겼다.
우선, 지금은 현실을 받아들이고 문제를 제기해 대응해야 한다.
지금 나는 힘없는 여자아이이며, 이 인기척 없는 산속 깊은 곳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내게 안전한 장소는 아니다.
오히려, 그 텐구의 존재를 보아하니, 이곳에는 요괴가 존재하며, 그 요괴들이 내게 우호적으로 대해줄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말해도 좋다.
으음~, 이럴 때 참고가 될만한 건 내 지식에 있는 선구자 분들의 행동이다.
이런 상황에 빠진 2차 창작물의 주인공들은, 각각 살기 위해서 적절한 행동을 해왔다.
자주 있는 패턴을 예로 들자면 전생하기 전에 매우 프렌들리한 신님이라든가 천사가 특전이나 아님 뭔가 도움이 될 만한 능력을 주거나 하지만……나는 어떻지?
역시 아무리 떠올려보려고 해도, 전생의 자신은커녕, 수십 분전 상황조차 기억나지 않는다.
나를 이곳에 보냈을 어떤 존재에 대해 기억나지 않는다.
아니, 애당초 그런 존재가 있긴 할까?
왠지, 각종 종교에서 언급되던 사후 세계인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현실감이 없는걸.
딱히 상관없다. 어느 쪽이든 능력 운운은 그저 희망적인 바람이고 지금의 나는 모른다.
그런 이야기와는 달리, 우연히 날 보호해 줄만한 인물을 만날 수 있을 것 같지도 않고, 역시 지금은 기본적인 서바이벌 지식에 따라 행동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먼저 수원을 확보해야 한다.
강 같은 곳을 찾아낼 수 있다면 좋겠지만……뭐, 우선 지금은 행동만이 있을 뿐인가.
나는 그 자리에서 일어서서, 처음 내 다리로 이 몸의 중량감을 느꼈다.
가벼운 건지 무거운 건지 모르겠다…….
불안함은 역시 감출 수 없었지만, 얼굴을 굳히며 한 걸음을 내디딘다.
솔직히, 약간 막나가자는 느낌이 없는 건 아니다.
살기 위힌 행동이라고는 해도, 객관적으로 살펴보면 아이인 내가 이 산에서 살아나갈 가능성은 낮다. 요괴는 물론, 야생의 짐승한테라도 습격당하면 인생 끝났다~! 같은 상황이다.
그때는 그때 나름 죽을 수밖에 없다. 그렇게 포기하고 있었다.
이 장소에서 주저앉아 있는 편이 결과적으로 편하게 끝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할 수 있을 만큼 해서, 저항할 수 있다면 저항해 보려는 결의도 어느 샌가 내 마음속에서 굳어져가고 있었다.
그런 생각을 갖게 된 계기는, 역시 그때 느꼈던 「감동」일 것이다.
가능하다면, 죽고 싶지 않다.
살아서, 한 번 더 그 환상적인 광경을── 날개를 펼치며 날아오르는 소녀의 아름다운 뒷모습을 보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를 위해서 나는 움직이기 시작했다.
◆
이상한 인간 꼬마를 발견한 날부터, 아야의 생활에 변화가 생겼다.
아이가 그 냇가를 생활 거점으로 결정하는 모습을 보고, 아야는 직접 간섭하기 보다, 몰래 숨어서 지켜보는 쪽을 선택한 것이다.
아이를 보호하려는 생각은 없다.
그뿐만 아니라, 모습을 드러낼 생각도 없고, 적당한 나무 위에 숨어, 발견되지 않게 주의하면서 구경거리를 보듯이 가만히 관찰하고 있다.
그편이 재미있을 것 같으니까.
그것뿐이다.
지금까지는, 아야가 그 아이를 생각하는 이유엔, 약간의 흥미와 기대 이상의 감정은 없었다.
「결국 산을 내려가기로 결정했나보네요──」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영리한 아이다.
제일 있을 수 있을 만한 결말은, 그 총명한 머리로 지금 상황을 파악하고, 조금이라도 살아남을 가능성이 높은 방법을 선택하여, 하산을 시도해서──한밤중에 짐승이나 요괴에게 먹히든가, 운 좋게 초계 텐구에게 발견되는 것이다.
그것이 가장 손쉽고 재미없는 결말이다, 라고 아야는 생각하고 있었다.
「예상을 배신해 주면 이쪽도 기쁠 텐데 말이죠」
그러나, 그 아이는 평범한 선택을 하지 않았다.
겨우 도착한 냇가를 거점으로 삼아, 본격적으로 생활을 시작한 것이다.
부모가 그리울 만한 나이로 보이면서, 고독감 따위는 느끼지 못한다는 듯이 혼자서 살아가는 길을 선택한 것이다.
좋은 의미로 예상을 배신당한 아야는 내심 기뻐뻤만, 동시에 처음부터 품고 있던 그 아이를 향한 의심도 커졌다.
저 아이는 대체 뭐지?
평범한 인간의 아이가 아니라는 건 확실하다.
그것을 결정지은 것이, 생활 속에서 시작한 기묘한 행동이었다.
침상이나 식료의 확보를 익숙하지 않는 모습으로 날마다 조금씩 진행하면서, 식사나 수면을 제외한 시간에 아이는 무려 단련을 시작한 것이다.
처음 그 행동을 봤을 때, 아야는 그것이 단련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갑자기 숨이 찰 때까지 뛰어다니더니, 또 그 다음은 양손을 대고 몇 번이나 굽혔다 폈다를 반복한다. 그 외에도 땀투성이가 되어가며 어떤 행동을 반복하는 모습은, 아야의 눈에는 이상한 짓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렇지만, 냉정하게 관찰해 보니, 그 행동이 검을 휘두르는 것 같이 단련을 위한 반복 행동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아이는, 몸을 단련하고 있다.
그것을 이해했을 때, 그 엉뚱하기 그지없는 결론에 아야는 무심코 웃고 말았다.
──재미있네! 그 발상은 없었어!
요괴의 산에 홀몸으로 내던져져 내일을 맞이할 수 있을지 어떨지 모르는 상황에서, 살기 위해 선택한 행동이 자신을 단련하는 것이라니.
확실히, 지금 상황을 타파하는데 가장 효과적인 것은 「힘을 가지는 것」이다.
자신의 생명을 위협하는 것들을 피하고 없애기 위한 해결책으로서 모든 것에 통하는 것이 「힘에 의한 대항」이니까, 그 아이의 판단은 확실히 정답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한들 저렇게 갑자기 자신을 단련하기 시작하는 걸까?
저건 정말로 미친 거 아닐까, 머릿속의 나사가 몇 개인가 빠진 거 아냐, 라고 아야는 당분간 웃음을 견디는데 고생했다.
──그렇지만, 재미있어. 흥미로워. 그리고, 내게는 그것이 제일 중요해.
그 아이에 대한 의심은 더욱 더 깊어졌지만, 그에 비례해 흥미도 늘어난다.
당분간은 눈을 뗄 수 없을 것 같다.
관찰을 시작하고서 며칠. 완전히 특등석이 되어버린 나뭇가지에 앉아, 나무 열매를 갉아먹으며 강의 물고기를 맨손으로 잡으려 악전고투하는 아이의 모습을 바라본다.
「곰도 아니고, 잡힐 리가 없잖습니까」
그 우스운 모습을 히죽히죽하고 비웃으며, 아야는 요 며칠 동안 파악된 그 아이의 정보를 정리하고 있었다.
우선, 그 행동력과 근성, 총명함은 어른을 압도하는 것이었지만, 뭔가 조화되지 않는 것 같은 인상도 받았다.
식량으로 쓸 수 있을만한 산의 풀들을 알고 있는 것 정도야 이미 놀랄 것도 아니지만, 그 지식이 심하게 치우쳐 있다.
섭취하기 쉬운 나물류를 무시하고 나무 위의 과일을 고생해서 얻으려고 하거나 물고기는 노리면서 벌레에는 손을 대지 않는다.
그러나, 원시적인 도구를 이용한 불 피우는 방법 같은, 어른도 그다지 모르는 고도의 기술을 알고 있다.
「정말이지, 알수록 모를 아이네요」
아야의 혼잣말엔, 기막힘과 숨길 수 없는 기대도 들어가 있었다.
보고 있으면 질리지 않는다는 것은 중요하다.
변함없이 아이는 단련을 매일 같이 계속하고 있다.
식량도 생각대로 모이지 않을 테고, 하루 살아남는 것도 불안할 텐데, 도대체 어째서 저런 행동을 계속하는 걸까──.
하지만, 적어도 다소의 운은 있는 것 같다.
현재, 계절은 가을이 되기 직전이다.
지금부터 산에서 많은 소득이 생길 것이다. 그 아이의 구멍투성이인 지식으로도 우선 살 수 있을만큼의 식량은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그 아이의 힘만이 아니다.
아무래도 산책길에서 식량이 너무 쉽게 발견된다.
아야는 풍년의 신의 힘에 의한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풍년의 신은 저렇게 있으나 마나한 인간에게 자비가 깊었었나?
만약 그렇다면, 기근이나 굶주림으로 아이를 버리는 부모 따위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설마, 그 아이가 풍년의 신을 향한 신앙심을 가지고 있는 리도 없다.
또 하나 수수께끼가 늘었다.
「이 수수께끼, 머지않아 해명하기 위해서라도 지금은 잘 살아 남아 주세요?」
이윽고 해가 지기 시작하자 아야는 귀가하기 위해 일어섰다.
단련에 집중하는 아이에게는 보이지 않을 방향에서 몰래 다가가, 먹고 있던 나무 열매를 몇 개정도 떨어뜨려놓는다.
이걸로, 이 나무의 열매가 먹을 수 있는 것이라는 걸 눈치챌 것이다.
그러고 보니 집에 물고기 건어물이 남아 있었다. 내일은 그것을 가져다주자.
딱히 수고라고 말할 것도 없다.
수고가 아니라면 어느 정도는 도와줘도 괜찮다.
그 후는, 그 아이 자신의 힘과 운에 맡기고 살아남기를 바라자.
무책임한 소원과 제멋대로인 기대를 안으면서, 아야는 날아올랐다.
돌아갈 때, 보라는 듯이 주변에 요기를 흩뿌려둔다.
이걸로 어지간한 짐승은 가까이 오지 않을 것이다. 약한 요괴도 같다. 조금 만만치 않은 요괴라면……그건 저 아이의 운에 맞길까.
아야의 새로운 일과는 이렇게 해서 끝나는 것이었다.
◇
그쪽 지식 덕분에 「이세계 전생 트립물」의 패턴에 관해서는 충분히 파악했다고 생각했었는데, 이렇게 실제로 몸을 움직여 보니, 생계의 차이를 실감할 수 있다.
그런 작품의 주인공은 대단하구나. 경우에 따라선 초 고대 시대에 떨어질 때도 있는데, 제대로 적응하고 살아가니까.
나는, 평범한 서바이벌 생활만으로도 힘껏이다.
우선, 이런 경우 활용되는 전생의 기억 말인데, 내가 지금 제일 그 위대함을 마음속 깊이 느끼고 있는 것은 「교육 프로그램에서 배운 지식」이었다.
특히 여름방학 아침이라든가, 딱히 할 것도 없어서 멍하니 보고만 있던, 모 교육 채널의 내용.
아니, 전생의 내가 여름방학을 경험했는지 안했는지조차 생각해 낼 수 없지만.
아이전용으로 방송되는 프로그램 중에서 알기 쉽게 설명되던 산의 지식이라거나, 자연에서 얻을 수 있는 재료를 사용한 공작, 캠프를 위한 노하우 등등── 이 상황에선 무서울 정도로 도움이 되고 있었다.
아이전용이므로 알기 쉽고, 실천하기도 쉽다.
프로그램의 취지는 현대의 아이들에게 자연에 대한 흥미를 주기 위해서일 텐데, 지금 이렇게 내 생존에 톡톡히 공을 세우고 있을 정도니 얕볼 수 없다.
생전의 내가 어떤 인간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평범하게 살고 있었을 녀석이 전문적인 서바이벌 기술을 익힐 기회는 보통 없잖아.
그럼에도 의외로 살아갈 수 있는 걸 봐서, 정말로 조기 교육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나도 미래, 아이를 가지면 확실히 가르쳐 줘야지.
……응, 조금 현실도피하고 있었다. 우선 지금은 살아남기 위해 노력하지 않으면.
어떻게든 요 며칠 동안 어떻게든 살아남기는 했지만, 나의 이 험난한 자급자족 생활은 시작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다.
갈수록 산이다. 매일이 죽음과 이웃하고 있다.
일단, 지금은 짐승이나 요괴에게 습격당해서 죽을 가능성은 제쳐두고, 앞으로 일어날 수 있는 여러 사태에 대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선, 약간의 운이 따르는 걸까. 지금은 아무래도 가을이 시작되는 시기인 것 같다.
낮에는 조금 덥지만, 해가 지면 터무니없이 시원해지므로 나름 쾌적하다.
나도 알고 있는 산의 식물이 자주 발견되는 건, 식량 확보에 도움이 된다.
요괴가 있다면 역시 신님도 있는 걸까?
가을에 풍년의 신이라고 하니, 이전 문득 생각했던 「동방 프로젝트」라는 게임의 「아키 미노리코」가 생각난다. 그 언니인 아키 시즈하도.
이런 행운에, 딱히 그 외에 고마워할 상대도 없어서 나는 마음속으로 그녀들에게 감사인사를 해두기로 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부디 계속 은혜를 베풀어 주세요……기도에 매달려서 살아갈 생각은 없지만.
그렇지만, 동시에 문제가 일어나는 날도 가깝다.
구체적인 예를 들자면 머지않아 겨울이 온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지금이 여름이었다면 「더워서 죽는다」같은 나름 과장된 표현을 쓰겠지만, 「추워서 죽는다」라는 건 제법 있을법한 이야기다.
누가 입힌 건지조차 기억나지 않지만, 지금 내 장비는 다 헤져버린 옷 하나뿐. 이래서야 진짜로 동사해버린다.
어떻게든 서둘러서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그리고, 확보할 수 있는 식량도 겨울에 접어들어 격감할 것을 생각하자니, 지금 이대로는 좋지 않다.
지식이 있다고는 해도, 내 지식은 아직 불충분하다.
좀 더 많이, 자세하고, 먹힐만한 지식을 쌓지 않으면 안 된다.
이 문제에 대해서, 해결은 거의 절망적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여하튼, 이곳에는 나를 제외한 인간이 없다. 지식을 얻기 위한 수단이 없는 것이다.
최악이여도, 목숨을 걸고 실제로 먹을 수 있을지 없을지 판별을 해야 하는 걸까, 라며 고민하고 있었습니다만── 여기서 최대의 행운이 내려왔다.
──아무래도, 나한테는 피콜로 씨가 붙어있는 것 같다!
아니, 진짜로.
문득 보면 옆에 먹을 수 있는 나무열매라든가, 물고기 건어물이라든가, 사람의 손이 닿은 물건이 가끔 떨어져 있다.
분명 누군가가 도와주고 있다.
게다가, 상황을 보아하니 인간은 아니다.
나의 주의력이 충분하지 못할 뿐일지도 모르지만, 이쪽을 눈치채고, 인간이 무서워하는 요괴가 있는 산속에서 도와줄 만한 존재는, 요괴 외에 생각할 수 없으니까.
처음 그 사실을 깨달았을 때, 내 뇌리에는 그 텐구의 모습이 떠올랐다.
뭐, 역시 그건 너무 일이 잘 풀리는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만, 모습이 안 보이니, 상상하는 것뿐이라면 자유다.
나는 좋을 대로 이미지를 만들며, 얼굴도 모르는 아무개 씨에게 감사했다.
냉정하게 생각해서, 그저 식량을 주기만 할뿐 접촉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 누군가가 나를 순수하게 도우려는게 아니라는 건 안다.
조롱당하는 걸까, 혹시 관찰이라도 하고 있는 걸까── 그건 모르지만, 어쨌든 도와주고 있는 것만은 확실하다.
응, 역시 피콜로 씨 같은 이미지로 굳어져버린다.
뭐, 이쪽 좋을 대로 판단하자. 불평할 사람도 없고.
그런 「내가 아닌 누군가가 나를 지켜봐주고 있다」라는 인식이, 이 고립된 상황에서 마음을 지탱해주는 한 요인이 되고 있었다.
처음은 어떻게 되나 했지만, 의외로 나도 그런 팬픽의 주인공들처럼 운을 타고난 걸지도 모른다.
그렇게 운에도 도움을 받는 나지만, 전체적인 고민으로서 「지금부터 어떻게 하지? 」라는 막연한 문제가 남아있다.
요컨대 행동 방침이다.
물론 살아남는 것이 제 1순위지만, 이대로 매일매일 그때그때에 맞춰 대응할 뿐이어서야, 아마 어딘가에서 크게 터질 거다.
완전히 무시하고 있는 외적에 대한 대처는 전혀 없는데다, 만약 만났을 경우엔 포기할 수밖에 없다.
하산의 위험성은 충분히 알 수 있으므로 하지 않지만, 머지않아 여기를 떠나는 것도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평생 여기서 살 생각은 없으니까.
현재, 내 생존을 돕고 있는 운도 언제 다할지 모른다.
그것을 바탕으로, 가장 중요한 문제인 「살아남은 후에 나는 뭘 하고 싶은 거지? 」라는 고민도 뒤섞어 깊이 생각한 결과. 나온 결론이 이거다.
──수행하고 싶다. 바보 같은 수행에 도전해보고 싶다.
정말로 바보였다.
그런 셀프 딴죽마저 나올 지경이다.
그렇지만, 어쩔 수 없다. 이것이 지금 내 삶의 원동력이다.
어떤 일이든 힘을 쌓고 시작하는 오리주 무쌍계의 주인공 여러분들을 따라하고 싶다는 생각도 있지만, 뭣보다도 내게 생각이 들게하는 것은, 역시 이 세계에서 처음 봤던 그 환상적인 광경 때문이었다.
내가 가진 상식적인 지식으로는 측정할 수 없는, 현실을 초월한 존재.
하늘을 난다는, 알기 쉬우면서도 가장 강렬한 환상의 힘.
나는, 그것을 강하게 동경한 것이다.
심플하게 심정을 표현한다면 「물리법칙이고 뭐고 별거 아닌 걸」같은 느낌.
모처럼 온 이세계다, 이곳에서만 가능한 것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요컨대 말하자면── 나도 하늘 날아보고 싶어! 맨손으로 바위 부숴보고 싶어! 「10012……10013……」같은 터무니없을 만큼 팔굽혀펴기 해보고 싶어!
기억은 없지만 단언할 수 있다. 나는, 반드시 전생에서 「에네르기파를 연습해본 적이 있다」라고!
……대충 그런 느낌으로 방침이 정해졌다.
나도 내가 적극적인 건지 현실도피를 하는 건지, 아니면 그저 질러볼 뿐인 건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나름 큰 줄기가 굳어진 것이다.
뭐, 이 몸뚱이 하나로 할 수 있는 것은 한정돼있으니, 그렇게 잘못된 방침도 아닌 것 같단 생각도 든다.
어떤 행동이든, 지금은 역시 「가능성에 거는 내기」가 될 것이다.
안전 따위와는 인연이 없는 환경이다. 어차피 생명을 건 생활이라면, 평범한 일상에서는 절대 할 수 없는 수행에 사용하고 싶다.
그런고로, 나는 날마다 살아남기 위한 활동을 하며 짬짬이── 아니, 거의 모든 시간을 「만화적인 수행」에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결의만으로는 어쩔 도리가 없다는 것 정도는 안다.
지금의 나는 아이다. 체력은 당연히 낮고, 튼튼하지도 않다.
죽을 각오로 수행할 생각이었지만, 정말로 죽는 것은 육체의 한계가 허락지 않았다.
전력으로 달리면 숨이 차고, 구역질을 하며 주저 앉는다.
횟수를 정하지 않고 팔굽혀펴기를 하면, 얼마 안가 근육이 중량에 견디지 못하고 쓰러진다.
그런 한계는, 매번 내가 상정했던 것보다도 훨씬 더 빨리 찾아왔다.
수행을 처음 시작할 때 내건 잭의 「하루 30시간의 모순된 트레이닝」은 꿈 속의 꿈이었다.
아니, 잭 본인도 정말로 30시간씩이나 트레이닝을 한 것이 아니라는 건 안다. 어디까지나 느낌이 그렇다는 거다.
그렇지만, 그 느낌에마저 다다르지 못한다.
나는 육체적으로는 물론, 정신적으로도 한계가 낮다는 것을 뼈저리게 실감했다.
아무리 「죽을 각오」를 했다고는 한들, 나는 역시 인간이다. 정말로 죽고 싶지는 않다.
아픈 것이나. 괴로운 것은 싫다. 편하게 쉬고 싶다.
그런 바람이, 마음 어딘가에 뿌리박혀 뽑히지 않는 것이다.
그러니까, 수행에도 한계를 느낀다.
정말로 육체의 한계로 움직임이 멈춰버릴 정도의 수행은, 지금의 나로선 불가능했다.
나는 평범한 수행을 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만화의 수행을 하고 싶은 것이다.
그를 위해선 우선, 이 상식의 범주에 들어 있는 정신적인 한계를 넘을 필요가 있다.
나는 고민했다.
여러 모로 고민해본 결과, 지금은 역시 현실을 넘기 위해서 현실이 아닌 인물의 생각을 모방해보기로 했다.
──죽음을 각오해라……! 길은 그곳에 열린다……!
이야, 긴씨 진짜 멋진 사람이라니까……
나는 지금 자각하지 못하고는 있어도 여자의 몸이긴 하지만, 이 사람이라면 안겨도 좋을 거라고 진심으로 생각할 정도로 남자다운 대사다. 그리고, 이걸 실천한 모리타 씨도 같다.
후후……가공의 세계의 캐릭터라고는 하지만, 역시 위대한 사람의 대사는 영향력이 어중간하지 않구나.
보통이라면 만화에서 나온 대사에 감화되서, 실천하다니 있을 수 없다.
그렇지만, 가공이라고 한다면, 요괴가 존재하는 세계에 떨어진 지금의 나도 현실과 상당히 동떨어져 있다.
이 세계에서 「가능성」을 봤다.
나는 만화의 캐릭터를 「흉내 내고 싶다」 는 것이 아니다. 그런 주체성 없는 꼬마나 하고 싶어 할 일을 하고 싶은 게 아니란 말이다.
나는 만화 캐릭터가 「되고 싶다」 는 거다.
내가……만화다! 라는 느낌이다.
그런고로, 나는── 죽기로 했다.
◆
더욱 시간이 흐르고, 가을이 본격적으로 깊어진 어느 날이었다.
변함없이 매일매일 생활과 수행에 악전고투하는 그 아이를 즐겁게 관찰하며, 아직 싫증은 나지 않았지만 슬슬 익숙해졌을 무렵.
아야는 그날, 변화를 눈치챘다.
아이가 강의 상류를 향해 이동하고 있었다.
「어라, 이제야 움직이기 시작한 건가?」
이대로 정착하면 안 된다, 그래서야 재미가 없다.
그런 제멋대로 품은 기대에, 아이가 답해준 것 같아 아야는 기분이 좋아졌다.
상류라는 것은 산의 위쪽으로 가고 있다는 것. 적어도 하산할 생각은 없는 것 같다.
그럼, 도대체 어떤 행동을 보여주는 걸까? 라고 생각하며 발각되지 않게 눈의 사각 지점인 머리 바로 위쪽을 날며 느긋하게 지켜본다.
서서히 경사가 가파라져가는 땅을 디디며 아이는 묵묵히 발걸음을 옮겼다.
강의 흐름이 강해지고, 주변의 지형이 바뀌며 한 언덕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이윽고, 아이는 간신히 발을 멈췄다.
목적지로 보이지만, 딱히 눈에 띄는 것은 보이지 않는다.
강을 따라 걸어왔지만, 그 강 주변은 이미 벼랑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뭘 할 생각이지?
다음에 무슨 짓을 할 셈일까, 두근두근 기대하며 바라보던 아야는, 아이가 조심조심 벼랑 아래로 시선을 돌리는 것을 보며, 눈썹을 찡그렸다.
아무래도 높이를 확인하는 것 같다.
확인할 것도 없다. 아주 높지는 않지만, 충분한 높이다. 떨어지면, 확실하게 죽는다.
아이는 몇 번이고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망설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망설여? 뭘?
「설마……」
아야는 싫은 예감이 들었다.
생각할 수 있는 한, 최악의 결말이 뇌리를 스쳐 지나간다.
최악의 결말이란, 그 아이의 죽음 따위가 아닌, 이제까지 해왔던 모든 것이 전부 쓸데없는 일이 되어 실망감과 허무함에 덮쳐지는 것이었다.
기분 나쁜 긴장감을 품은 아야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아이는 천천히 뒤로 물러나더니, 가까이 있던 나무에 마음껏 머리를 부딪치고는── 그것이 신호였다는 듯이 단번에 벼랑 끝을 향해 뛰었다.
「저 바보……!」
아야는 무심코 욕을 내뱉으며, 그 자리에서 뛰쳐나왔다.
그 아이를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매도하는 감정이 담긴 말이었다.
──쓸데없게 만들지 마. 이제까지 해왔던걸 쓸데없이 만들지 말라고……!
텐구 제일의 속도를 자랑하며, 낙하하는 아이를 잡기 위해 날아오른다.
그러나, 손보다 빠르게 눈이 그 아이를 봤을 때, 아야는 무심코 멈춰 서고 말았다.
아이는 벼랑 아래로 추락해간다.
하지만, 그냥 추락하는 것이 아니다.
벼랑에서 튀어나온 바위나 시든 나무에 손을 부딪치며 그럴 때마다 상처를 입으면서도 확실하게 낙하 속도를 줄이며, 떨어지고 있었다.
우연이 아니다. 자신의 의지로 몸을 움직여,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고 있다.
자기가 벼랑에 뛰어들었으면서, 도대체 무슨 속셈으로 한 행동인지 아야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 범상치 않은 행동력과 결단력에 순간 멍해지고 말았다.
얼마 안 되는 순간이 지나가고, 낙하가 끝난다.
상당히 감속하긴 했지만, 아이는 땅바닥에 꽤 세게 등으로 충돌했다.
제정신을 차린 아야는 당황해서 아이에게 달려 들었다.
당연하지만 심했다.
낙하하던 도중 바위에 부딪친 팔은 양쪽 모두 부러져있다. 그것도 손목부터 손가락에 걸쳐 빈틈없이.
다리는 비교적 무사하지만, 잘해도 염좌, 아니면 겉으로는 보이지 않을 뿐, 똑같이 부러졌을지도 모르다.
몸이 바위와 나무에 부딪쳐 온통 상처투성이였다.
「……그렇지만, 살아 있네」
아야는 자기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사지를 희생하여, 머리나 내장 같은 몸의 중요 부위는 확실하게 지킨 것 같다.
계산해서 한 행동이라면, 괴물 같은 냉정함과 의지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역시, 이 아이는 평범한 인간이 아니다.
분명 어딘가 미쳤든지, 아니면 진짜 바보일지도 모른다.
무엇을 계기로 이런 행동을 일으킨 건지, 아무 것도 이해할 수 없었던 아야는 치를 떨었다.
과연 이번엔 「흥미」선에서는 끝낼 수 없다.
「어, 어쨌든 치료하지 않으면……」
살아남았다고는 해도, 아이는 정신을 잃었으며, 상처도 깊다. 내버려두면 이대로 죽어버릴 것이다.
그렇게 되면 진짜로 모든 것이 쓸데없는 일이 되어버리고 만다.
그런 건 사절이다.
「그렇지만, 마을에 데려갈 수도 없고, 난 치료에 관한 지식도 경험도 충분치 않은데」
상황을 정리한다.
아야는 긴 세월을 살아온 텐구지만, 본디 있던 강함 때문에 깊은 상처를 입어본 적이 거의 없다.
오히려 그런 사태를 잔꾀로 피하며 여태까지 살아왔다.
오랜 세월에서 우러나오는 경험 덕에 어느 정도의 지식은 있지만, 반쯤 죽은 인간을 치료하기엔 불충분했다.
이럴 땐, 타자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의료 지식 그 자체가 뛰어날 필요는 없지만, 적어도 이 수준의 외상에 적절한 치료가 가능하며, 무엇보다도 이 아이에 대한 것을 비밀로 할 수 있는 자.
다른 텐구── 그것도 자신보다 신분이 윗줄인 텐구에게 발각되면 협박도 불가능하다. 그러니, 하급 텐구에게 돕게 하는 편이 바람직하다.
이 조건에 들어맞으며, 아야보다 신분이 낮은 자라면──.
「…………칫, 내키진 않지만 어쩔 수 없네……!」
괴로운 신음소리를 내며 아야는 날아올랐다.
시간을 더 이상 지체할 수는 없다.
말 그대로 바람처럼 날아서, 눈 깜짝할 사이에 목적지에 도착한다.
「모미지!」
아야의 예상대로, 오늘은 순찰 돌 일도 없으니, 하급 텐구의 집단 생활소에서 이누바시리 모미지는 쉬고 있었다.
동료 백랑 텐구와 장기를 두고 있던 것 같지만, 착지 했을 때의 풍압으로 장기판 째로 말이 날아가 버린 광경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아야는 그 이름을 부른다.
「──뭔가 볼일이시라도?」
지금 확실하게 장군을 잡기 직전, 갑자기 눈앞에 있는 장기판이 뒤집어졌다는 사실에 전혀 동요치 않으며, 천천히 일어섰다.
주변의 동료들은 갑자기 나타난 이름 높은──악명이 대부분이지만──샤메이마루 아야와 그녀가 일으킨 피해에 당황하고 있었지만, 모미지 자신은 담담하게 대하고 있었다.
화난 것도 당황한 것도 아니다.
이것이 이누바시리 모미지라는 백랑 텐구다.
그리고, 아야가 이 부하에게 골머리를 썩는 원인이기도 했다.
「따라와」
변함없이 얼굴에 철판을 덧댄 것 같은 담담한 대응에, 사실 매번 압도당하고 있다는 것을 속으로 숨기며, 아야는 그 한마디만을 했다.
이유도 알려주지 않고, 근무시간이 아닌데도 불러낸다.
그 태도는 횡포 그 자체다.
상하 관계가 분명한 텐구의 사회에서, 이런 상사의 위압적인 언동은 아야만이 아니라 때때로 벌어질 때가 있다.
「예」
그러나, 모미지는 조금의 주저도 없이 그 말에 따랐다.
물론, 말단 텐구들은 상사에게 반항하거나 불만을 드러내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지 충분히 알고 있다. 단지, 모미지의 경우는 속마음과 말이 똑같을 뿐이다.
과묵하지만, 성실하면서도 정직한 성격이라고 평가되고 있다.
뭣보다, 아야는 그 성실함과 정직함이 「지나치다」라고 느껴서 골치를 썩이고 있지만.
그래서일까, 오랜 세월동안 이어진 기묘한 운명에 의해, 이 리는 아야와 가장 가까운 부하가 되었다.
이번에 내려진 갑작스런 명령에도 「또 아야의 쓸데없는 장난에, 성실한 모미지가 말려들어갔다」라고 생각할 뿐이다.
아야 입장에선 절대로 본의가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 생각해서 그렇게 알아먹는 쪽이 좋으니, 모미지를 부리기로 한 것이다.
──이 녀석은 분명 나를 싫어하고 있겠지만, 사적인 감정 없이 복종할 테니까요.
아야는 모미지가 「자신을 싫어하고 있는 것」과 「자신에게 절대로 복종한다는 것」만은 확신하고 있다.
사실은, 딱히 얽히고 싶지 않은 상대지만 이번만큼은 이 녀석 외에 적임이 없다.
아야는 모미지를 데리고 방금까지 있던 장소로 돌아왔다.
아야의 스피드를 따라오기 위해, 전력을 쥐어짜서 날아 왔음에도 안색조차 변하지 않는 모미지를 보고 속으로 혀를 차며 아직 쓰러져 있는 아이를 본다.
「이 인간 꼬마를 봐봐」
「……죄송합니다. 저희들의 실태입니다.
신속하게 처분한 뒤, 후에 저도 책임을 받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그런 의미로 「보라」고 한 게 아니야, 상처를 보라는 거지!
그리고, 네가 말하는 「책임」이라는 거 할복이라든가 그런 것뿐이잖아! 매번 말하겠는데 필요 없다고 그런 거!」
변함없이 대하기 어렵다는 것을 느끼며, 아야는 그것을 숨기듯이 고함쳤다.
명령을 받은 모미지가, 처음으로 약간의 난색을 드러낸다.
「그러나, 이 인간은 요괴의 산에 불법으로 침입했습니다. 그것도, 텐구의 영역과 이렇게나 가까운 곳 까지」
「그렇네. 그래서 뭐?」
아야는 이 아이에 대해 전혀 알려주지 않았다.
그저, 말과 행동으로 더욱 사납게 밀어붙였다.
모미지는 잠시 침묵하더니, 이윽고 「알겠습니다」라며 한번 끄덕였다.
그 대답을 들은 아야는 안심했다.
제일 걱정하고 있던, 이 빌어먹을 만큼 성실한 녀석이 상사인 자신이 아니라, 더 윗줄인 대텐구의 명령이나 자신에게 임명된 명령 그 자체를 따르는 것이었다.
만약 그렇게 됐을 경우, 이 장소는 권위가 아니라 실력으로 붙어보는 「힘싸움」이 되겠지만── 솔직히, 적으로 만들고 싶지는 않다.
모미지는 자신의 신념을 올곧게 지키는 성격이다.
이 아이를 신경 쓰고 있는 이유는 그저 흥미 때문이다. 무언가를 즐기며 결사적인 긴장감 같은 것을 같지 느끼고 싶진 않다.
얼마나 즐겁게, 쉽게, 잘 사는 것만이 중요한 아야는, 모미지의 그런 점이 서툴러 싫은 것이다.
「뭔가 도구 같은 건 필요 없어?」
「아니요, 괜찮습니다. 우리들 백랑 텐구는 일 도중 부상당했을 때, 그 자리에서 충분한 치료를 할 수 없습니다. 최저한의 도구와 주변에 있는 물건들을 이용합니다」
어쩌다 들은 말단의 고생담에 조금 뜨끔거리며, 주변의 나뭇가지와 넝쿨, 약초, 소량의 약과 천을 사용해 정확하게 치료하는 모습을 바라본다.
의외로 재빠르고 간단하게 작업이 완료됐다.
항상 사선에 서 와서 그런 걸까, 연한이 다르다. 역시 맡겨서 다행이었다, 라는 것만은 인정했다.
「이걸로 괜찮은 거야?」
「아이의 체력으로는 아직 위험합니다만, 일단 살 수는 있을 겁니다. 데리고 돌아갈까요?」
「아니, 두고 가겠어」
「……알았습니다. 다른 자들이 가까워지지 않도록, 주의 하겠습니다」
「그 천리안으로 지켜볼 수 있다고는 해도, 당신 입장으로 뭘 할 수 있다는 거야. 필요없는 걱정은 하지 않아도 괜찮아」
아야의 야유에, 모미지는 「신경 써주셔서 감사 합니다」라며 고개를 깊이 숙였다.
숙여진 머리를 벌레 씹은 표정으로 내려다본다.
야유나 농담조차 먹히지 않는다. 이런 점 또한, 아야가 싫어하는 부분이었다.
뭔가 엄청 지쳤다.
처음엔 아픔 탓일까 고통스런 표정을 띄우고 있던 아이가, 지금은 비교적 편한 표정을 띠고 자고 있는 모습에서 눈을 돌리며, 아야는 맥 빠진 한숨을 내뱉었다.
◇
역시, 누군가 나를 지켜보고 있는 것 같다.
격통으로 정신을 차리고, 기절하기 전의 상황을 돌이켜 보고 내 몸의 참상을 상상하며 눈을 뜬 내게 보인 것은, 생각지 못한 치료의 흔적이었다.
부러진 팔에는 부목이 붕대로 매여 있다. 입 안이 쓴 이유는, 뭔가 약을 먹었기 때문일까.
나는 벼랑에서 떨어져서 살아남았다.
그리고, 그 후 누군가에게 도움 받은 것이다.
누군가가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이런 결과를 기대해서 몸을 내던진 건 아니다.
역시 이것도 어쩌다 온 행운이다.
얼굴 한번 보지 못한 누군가에게의 감사의 마음이 점점 깊어간다.
도대체 누군지 알고 싶긴 하지만, 지금 이대로 여서야 무의미다.
지금의 나로선 그 사람에게 보답할 방법이 없으니까.
그러니까, 나는 그저 감사함을 잊지 않기로 했다.
──그건 그렇고, 몸이 아프다. 뭐, 당연한 거지만. 너무 무모했나.
벼랑에서 몸을 내던지다니 자살 이외의 아무것도 아니지만, 이걸 「수행」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만화의 굉장한 점이다.
이 행동을 한 이유는, 물론 자살 따위가 아니라 모 격투가가 했던 아드레날린·컨트롤이다.
죽기 직전의 집중력에 의해 주위가 느리게 보인다거나 하는 그거다.
솔직히, 그대로 낙사하는 결말로 끝날 가능성이 매우 높았던 내기였지만, 아무래도 잘 풀렸다면 잘 풀린 것 같다.
사는데 필사적이어서 제대로 기억나진 않지만, 낙하하는 동안 시간이 매우 길게 느껴진 것과, 살기 위해 애썼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뭐, 충분히 단련되어 있던 그와는 다르게, 미숙한 지금의 내가 이룬 결과가 이 보기 흉한 모습이지만.
하지만 살아 있다는 것은, 충분한 성과다.
무엇보다, 이 수련을 한 원인이며, 제일 큰 목적이었던 정신적인 한계를 돌파하는데 성공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나는 「끊어졌다」
딱히 화났다는 의미가 아니라, 머릿속의 리미터 같은 것이 뚝하고 끊어진 것 같은 느낌이다.
기분 탓이 아니다.
한번, 죽음을 경험하여, 무의식적으로 몸을 지키려던 본능이 없어진 것이다.
왜 그렇게 단언할 수 있는 거냐면, 놀랄 정도로 엉뚱한 행동에 대한 저항감이 없어졌으니까.
그게, 봐봐──.
나, 지금 일어서려고 하고 있다고.
다리가 부러졌을지도 모른다. 부러지지 않았다고 해도, 엄청 아프다. 분명 상처가 악화될 것이다.
그것을 알고 있음에도, 누워 있을 시간이 아까워서, 일어서려고 한다.
일어서서, 수행을 계속하고 싶다고 마음이 외치고 있다.
망설임은 없다.
오히려, 이 상태에서 수행을 마구하면 「굉장하다고, 인체는」같은 느낌으로 상처가 나을 거다, 라고 믿고 있다.
왜냐면, 아라이Jr도 그랬으니까.
할 수 있을 거라고, 나도! 아마도지만! 될지 안 될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해보자! 나중 따위는 없다!
아드레날린 분비가 멈추지 않아서일까, 너덜너덜한 몸이면서, 내 기분만큼은 이 이상 어쩔 수 없을 정도로 고양되어 있었다.
우선, 원래 있던 강변까지 돌아가자.
돌아가면 수행이다.
아니, 달리면서 쉐도우 복싱이라도 할까.
역시 양팔은 부러져 있는 것 같으니 팔굽혀펴기는 무리……아니 잠깐, 무리라고 정해진 건 아니잖아. 해보자. 혹시 하고 있는 동안 뼈가 알아서 나을지도 몰라. 근거는 없지만.
상처가 악화돼서, 고통에 휩싸여 죽을 가능성도 있지만──그 때는 죽자. 그렇게 되기 전에.
처음 한 결의대로, 나는 그날 한번 죽었다.
그리고, 진짜 새로운 나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
어느 날 밤, 아야는 동료인 히메카이도 하타테와 함께 마을의 술집에 있었다.
가을이 끝나고 겨울에 들어갈 시기다.
바깥 기온도 상당히 추워졌지만, 오늘 밤엔 비까지 내리고 있다.
말 그대로 살을 에듯이 차가운 이 비에 맞으면, 아무리 텐구라도 몸이 상한다.
이 가게의 문을 지나자마자 바로 내려서 운이 좋았던 건지, 아니면 운이 나빴던 건지 모르겠다. 슬슬 문 닫을 때가 가까워진 술집 안에서, 아야와 하타테는 술잔을 주거니 받거니 하고 있었다.
「주변 눈이 점점 사나워지네」
몇 번짼가 술을 주문했을 때, 데운 술을 두고 가던 점주의 표정을 생각해내며, 아야는 심술궂게 웃었다.
애당초, 인간의 가게에 방문하는 요괴는 환영받지 못한다.
최근, 바깥 세계의 변화 탓일까 요괴의 활동이 활발하게── 아니, 흉포하게 변해가는 경향이 있다.
변화가 보이기 시작한 건 최근 일이지만, 시작은 하쿠레이 대결계에 의해 환상향이 완전하게 바깥 세계와 단절된 후부터가 아닐까 하고 아야는 생각하고 있었다.
하급 요괴들은 무언가에 초조해하며 사람을 덮쳐 죽이고, 먹으며, 퇴치 당한다.
텐구는 비교적 인간과 가까운 종족이지만, 결코 우호적이진 않다.
텐구을 인간을 낮잡아 보며, 그것을 아야 자신이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다.
지금도 주변의 인간들이 노골적으로 자신들을 피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것을 즐기고 있다.
「저기, 항상 말하는 건데. 넌 왜 마을 술집에서 모이자고 하는 거야?」
「이쪽이 편하거든」
놀리는 것 같은 아야의 질문에, 하타테는 낙담하며 대답했다.
지위는 물론, 나이로 따져 봐도 대등한 자가 별로 없는 아야와 말을 섞을 수 있는 얼마 안 되는 상대가 그녀다.
그렇기에, 이 악우의 기묘한 초대도 환영한다.
「확실히 안주 맛은 이쪽이 좋지만 말이지. 술은 우리 가게 쪽이 낫지 않아?」
「텐구의 가게는 점원도 텐구니까 싫어」
「텐구의 마을이니 당연하잖아. 뭐가 싫다는 거야, 딱히 상사와 마시는 것도 아닌데」
텐구는 종족 자체가 애주가이므로, 술집만이 마을에서 유일한 오락시설이다.
규모는 작아도, 수요는 충분하다.
그러나, 하타테는 그런 가게를 싫어한다.
「하지만, 그런 가게는 주문할 때, 부탁한다기보다 명령하게 되잖아?」
「뭐, 일하는 건 말단 텐구 뿐이니」
「남한테 명령하는 건, 왠지 무서워서……」
풋, 하고 가볍게 뿜고만 아야를 하타테와 다른 손님이 노려본다.
「너는 정말이지, 성격이 나약하다니까」
「상사에게 반항할 수 없는 소심한 녀석들을 부려먹는 주제에 그런 말 하지 마! 그런 점이 난폭하다는 거야. 왜 모두 저항하지 않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다니까」
「세상을 쉽게 산다고 말해줬으면 하는데. 네가 그러니까, 까마귀 텐구 사이에서 따돌림 당하는 거야」
「하, 하아? 나 딱히 따돌림 같은 거 당하지 않는다고! 혼자 있는 게 마음 편해서 좋아할 뿐이야!」
「그리고, 친구는 나밖에 없다, 라는 거네」
「너도 그렇잖아」
「아야야, 내 경우엔 넓고 얕은 교제가 좌우명이니까 말이지. 게다가, 그저 순수하게 미움 받고 있을 뿐이야」
「지위와 힘을 사용해 제멋대로 횡포를 부리니 그런 거잖아……」
싸우는 것처럼 보이나, 둘은 서로 이렇전 농담을 주고받는 것을 좋아했다.
인외의 미모와 힘을 가진, 텐구 사이의 장난이다.
만약 정말로 싸운다면, 손님이나 점원은 물론 가게 자체가 붕괴한다.
그렇기에, 이 둘은 마을 어느 가게에서도 환영받지 못한다.
인간과 인간이 아닌 자 사이에 파인 도랑은 깊다.
「조금 진지한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다음엔 마을 말고 딴 곳에서 마시지 않을래? 뭣하면 내 집에서 마셔도 괜찮으니까」
「왜 그래? 뭔 일이라도 있었어?」
「넌 변함없이 까마귀 텐구 주제에 산 바깥의 사정에 서먹하네.
최근, 마을이 여러모로 수상해. 방금──여기에 들어오기 전에 아이를 사지 않겠냐는 말을 들었어」
「……뭐야 그게. 텐구보고 아이를 사라니?」
「아무래도 최근, 인신매매가 횡행하는 것 같아. 요괴나 흉년으로 부모를 잃는 아이가 늘어나서 그런 것 같던데」
「그렇네. 술맛이 없어져」
하타테는 지긋지긋하다는 표정으로, 술 냄새가 밴 한숨을 내뱉었다.
두 명은 이야기를 할 때 목소리를 낮추지 않았다. 당연히, 주위의 인간들도 듣고 있다.
안 그래도 장마 때문에 우중충해진 분위기가 더욱 무거워진 것 같은 가게 안의 분위기를 어떻게는 해보겠다는 듯이, 하타테는 화제를 바꿨다.
「아이라고 하니 생각난 건데, 너 가을 초부터…… 뭔가 몰래 하고 있지」
확실하게 목소리를 낮춰서 말한 하타테.
말의 뜻을 눈치챈 아야가, 이제야 눈매를 날카롭게 하며 하타테를 노려봤다.
「……누구한테 들었어?」
「누구에게서도 듣지 않았고,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을 거야」
말로 알리는 대신, 하타테는 술잔의 술에 손가락을 가져다 댔다.
그 작은 수면에는, 하타테 자신이 비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그저 비취진 것이 아니다. 수면 속에는 각도로 보아 비치지 않아야 할 터인 하타테의 등 뒤를 비치고 있었다.
등 뒤에 앉아 있는 손님의 시야를, 술의 수면을 통해 훔쳐보는 것이다.
「그저, 직접 봤을 뿐이지」
「정말이지 기분 나쁜 능력이네. 그런 거에만 의지하고 있으니까 바깥에 나가기 싫어지는 거야」
타인의 시야를 다른 물건에 비추는 것── 하타테의 능력은 그런 것이다.
히메카이도 하타테도 까마귀 텐구. 보도가 일이다. 그러나, 그 정보 수집은 아야와는 다르게, 직접 뛰면서 모으는 것이 아니라, 이 능력에 의한 것이었다.
그러니, 그녀는 일을 할 때도 바깥에 거의 나오지 않는다.
그 결과, 아야와는 다른 이유로 동료들 사이에서 평판이 좋지 않았다.
「이 능력을 조금만 더 잘 다룰 수 있으면 좋지 않을까 하다가 타인의 시야 외에 대상을 바꿔 보려고 시험하고 있었는데」
「그래서, 그 시험하던 중에 우연히 봤다는 거야?」
「정말로 우연이라고? 그러니까, 쓸데없이 딴 녀석들한테 말하진 않을 거야」
「흐응……뭐, 상관없지만」
예전에 그 아이를 걱정하던 이유는 단순한 흥미뿐이었지만, 지금은 미래에 좋은 기사거리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여 꽤 기대하고 있었다.
아야는, 당연히 그 소재를 독점하고 싶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들켜버렸으니 어쩔 수 없다.
내키진 않지만, 아야는 마지못해 하타테에게 그 기묘한 아이에 대한 것을 자백했다.
「──그렇구나. 난 또 쿠라마 텐구 흉내라도 하는 거라고 생각했어」
「인간을 제자로 받아들였다는 그 이야기? 인간들이 멋대로 지어낸 거잖아」
「뭐, 아무래도 좋잖아. 네가 잔혹한 녀석이라는 건 변하지 않으니까」
「어디가?」
「적당하게 도와준 다음에 대충 방치하고 있는 점이.
지금도 그 아이는 산에서 차가운 비를 맞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어차피 보살필 거라면 왜 제대로 하지 않는 거야」
「네 인간을 향한 배려는 상냥함이 아니라 비굴함──」
하타테의 꾸짖는 것 같은 말에 아야가 매번 그렇듯 듣기 싫은 말을 섞은 반론을 하려던 찰나, 갑자기 가게의 문이 활짝 열렸다.
변함없이 내리는 격렬한 빗소리와 함께, 흠뻑 젖은 외투를 입은 인물이 가게 안으로 들어온다.
외투를 벗지도 않고 바닥을 젖게 만든 그 손님에게 점주가 불평하기 위해 다가가다, 외투 속에서 날카롭게 빛나는 안광에 무심코 멈춰 선다.
「……어, 모미지?」
간신히 얼굴 부분만을 드러낸 외투 안쪽에서 낯익은 백발을 본 아야는 그 이름을 중얼거렸다.
그렇다는 듯이 작게 끄덕이며, 모미지가 둘이 앉아있는 자리로 다가온다.
뚝뚝하고 모미지의 외투에서 물이 방울방울 떨어지지만, 주변에서 보내오는 항의 담긴 시선 따윈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찾고 있었습니다」
「왜? 네가 있으면 술 맛이 없어지는데」
노골적으로 싫다는 태도를 취하는 아야에게 하타테가 경고를 담은 시선이 보냈지만, 무시한다.
모미지는 입을 다문 채 하타테를 보더니, 잠시 우물쭈물거리다가 외투로 숨기며 아야에게만 품속을 내보였다.
팔에, 그 아이를 안고 있었다.
「──!」
「심한 열입니다. 내버려두면, 머지않아 죽습니다」
모미지는 짧게 사실만을 말했다.
안겨 있는 아이는 열 탓일까, 얼굴이 붉으며 대량의 땀을 흘리고 있었다.
호흡은 흐트러진 데다. 허약하기까지 하다. 당장이라도 멈춰버릴 것 같다.
절박한 그 모습을 보고, 아야의 안색이 창백해진다.
「치료는!?」
「무리입니다. 다른 동료가 있으므로 제 거처에는 데려갈 수 없습니다. 약도 준비되어있지 않습니다」
「하타테, 방금 이야기를 들었으니까 협력해!」
「엣? 엣? 무, 뭐야……?」
갑작스러운 사태로 당황하하타테를 억지로 끌며 술값을 점주에게 던지고, 아야는 바깥으로 뛰쳐나왔다.
비가 심했지만, 채 젖기도 전에 바람의 결계를 만들어 하타테와 모미지를 포함한 주변을 감싼다.
「뭐야? 뭔 일인지 모르겠는데! 어디로 가는 거야!」
「네 집에 가는 거야, 감기약 정도는 있겠지!」
「있긴 하지만……에엣, 네 「바람」을 사용할 셈!?」
「모미지, 내 바람을 타라! 늦지 마!」
「예」
아야가 조종하는 바람이, 비 내리는 밤의 정적을 찢는다.
하타테의 집까지 일직선으로 뻗은 바람의 길.
그 바람을 몸으로 받으며, 세 텐구는 단번에 가속한다.
「왜 내 집인데! 네 능력이 얼마나 민폐인지 알아?! 만약 여파로 집이 망가지기라도 하면……!」
「잘 조절할게! 네 집을 선택한 이유는, 마을 외곽에 있어서야. 그 아이를 다른 텐구들이 보면 귀찮아!」
「따, 딱히 사는 곳까지 고립된건 아니니까 말이지! 착각하지 말라고!」
「어찌됐든 상관없어!」
비나 바람의 소리에도 지지 않을 만큼 큰 목소리로 대화하며, 셋은 그야말로 눈 깜짝할 사이에 산에 도착했다.
하타테의 집에 뛰어들어, 상황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집주인이 침상을 제공하고, 당황해 약을 찾아낸다.
지금 하타테는 완전히 말려 들어간 셈이지만, 그 흐름에 거역하지 않는 것이 그녀의 성격을 드러내고 있다.
친절하다거나 유약한 성격임이 아니라, 이제까지 시달려봤기에 그에 맞는 대응을 할 뿐이다.
전신의 땀을 닦고, 잠옷으로 갈아입힌 뒤, 약을 먹인다.
「──할 만큼은 했네」
이윽고, 아주 조금이지만 자는 얼굴이 편하게 변해가는 것을 보며, 아야는 안심의 한숨 내뱉었다.
부지런하게도 이마의 땀을 닦아주는 모미지에게서 시선을 돌리고, 이 안에서 제일 지쳐 보이는 하타테를 본다
.
「도와줘서 고마워, 하타테」
「이쪽은 정말로 지쳤다고. 어째서 관계없는 내가 제일 지쳐야하는 거야」
「아니, 정말로 고마워하고 있어. 약이 충실하게 갖춰져 있는 것도, 고마워」
「응, 뭐 병에 걸렸을 때엔 아무도 간병해주지 않으니까, 혼자서 고치지 않으면 안 돼서 말이지」
「……그, 그렇구나」
──다음에, 문병 정도는 가주자.
아야는 속으로 눈물을 흘리며, 그렇게 결의했다.
「모미지도 바보 같은 상사한테 휘말려서 힘들었겠네.」
「아니요」
모미지는 정중히, 그러나 쓸데없는 수식어를 붙이지 않고 짧게 답했다.
그걸로 나를 배려할 셈인가, 라고 불합리한 이유로 기분이 나빠지는 것을 느끼며, 아야는 시선을 돌려 아이의 얼굴을 본다.
──살아서 다행이다.
아야는 안심하고 있었다.
──여기서 죽으면, 모든 게 쓸데없는 일이 돼버린다. 그렇게 되면 재미없다.
「……저기, 아야. 아까 가게에서 한 이야기 말인데」
자는 얼굴을 바라보는 아야의 옆모습을 보던 하타테가, 갑자기 말을 건넸다.
「무슨 이야기?」
「그 아이에 대한 거 말이야」
「상태가 나아지면 눈을 뜨기 전에 원래 있던 장소로 돌려보낼 거야」
「아니, 이제 네 방식은 뭐라 하지 않겠는데── 아야가 일이 아닌 다른 것에 정신이 빠졌다는 소문이 제법 퍼졌어」
아야는 무심코 하타테를 바라봤다.
「……그렇게 눈에 띄었어?」
「외출 빈도가 많은데다가, 길기까지 하니까. 정기 총회에도 출석하지 않았잖아」
「일은 제대로 하고 있는데……」
「일이 아닌 무언가에 몰두하고 있다는 게 뻔히 보이니까. 더 이상 주목받기 전에 조금 거리를 두는 편이 좋지 않아?」
하타테의 충고에, 아야는 잠시 갈등했다.
그리고, 곧바로 갈등의 여지 따위는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애초부터 재미로 시작한 것이 아닌가. 쓸데없이 몰두할 의미 같은 건 없다는 것을 항상 알고 있기 때문에야 말로 이 아이를 방치해둔 채 관찰해온 것이다.
가벼운 흥밋거리를 위해 사회에서의 입장을 위태롭게 할 생각 따윈 요만치도 없다.
아야는 납득하듯이 한번 끄덕였다.
「그렇네. 당분간, 이 아이와 얽히는 건 삼가 할게」
「……조금, 외롭다거나 해?」
하타테는 자신의 충고가 폐가 되는 것 아니냐는 듯 조심스럽게 물었다.
「……………응?」
바보를 보는 것 같은 표정으로, 아야가 하타테를 본다.
「무슨 말이야?」
「―……넌, 자기가 자기 마음을 잘 모를 때가 있으니까」
애매한 대답 대신, 하타테는 시선을 아야의 손으로 향했다.
그것을 쫒아 시선을 돌린 아야는, 자신의 손에 꽉 잡힌 아이의 손을 찾아냈다.
하타테가 말하고 싶은 것을 눈치채고, 기막히다는 듯 한숨을 내뱉는다.
「아―, 예예. 오해 고마워.
의외로 꽉 잡혀서 말이지. 무리하게 놓으려다 눈을 떠도 곤란할 뿐이야」
「아니, 자기가 손을 잡았다는 걸 눈치채지 못한 게 신경이 쓰이는데」
이번에야말로, 아야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침묵했다.
빙긋하고 웃는 하타테를 무시하며, 의미 없이 모미지를 노려본다.
모미지는 변함없는 딱딱한 표정을 지은 채, 곧은 자세로 앉아 있었다.
그 표정이 아주 조금이지만 풀려보이는 것은, 아야의 단순한 망상임이 틀림없다.
◇
아―……방심했다.
겨울이 시작되고, 산에서의 생활도 서서히 힘들어 지기 시작했을 무렵.
걱정하고 있던 겨울이, 예상대로 어렵긴 했지만 나름 계획대로 풀려가던 것에 조금 낙관적이게 됐을지도 모른다.
매일 먹을 식량 확보 같은 준비나 수행이 제법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으므로, 위기감이 희미해졌던 것이다.
한번 해보고 싶긴 했지만, 폭포수를 맞는 수행은 이 계절엔 역시 위험했던 걸까…….
몸의 나른함과 뜨거움을 눈치챘을 땐, 이미 움직일 수조차 없었다.
매일 해오던 수행 탓에 상처에는 익숙해져 오히려 내성조차 생겨버릴 지경이었지만, 병은 아니었다.
나는 어쩔 수도 없이 쓰러진 채 그대로 죽음을 기다리는 꼴이 됐다.
공포와 몸을 지킨다는 본능을 잊고 있었기 때문일까, 인간이라는 것은 죽기 쉽다는 것을 새삼스레 깨달았다.
이제 눈을 뜰 수 없으려나──하고 각오하며 눈을 감았지만, 나는 다시 눈을 뜰 수 있었다.
또 다시 나를 지켜보는 누군가에게 도움 받은 것 같다.
눈을 떴을 때엔, 평소 살던 강변에 누워 있었지만, 분명히 무언가가 달라져있다.
불충분한 지식과 기술로 만든 지붕과 벽만이 있던 집은 제대로 보강되어 있고, 내 주변엔 보지 못한 낯선 물자가 놓여 있었다.
약으로 보이는 가루가 들어간 통과, 대량의 건육. 덤으로 늑대의 모피로 만든 것 같은 모포까지.
이것이 누군가의 도움이라는 것은 틀림없다.
……이런, 감동해서 눈물이 나올 것 같다.
몇 번이고 목숨을 살려준, 아직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를 향한 감사가 점점 깊어진다.
그렇지만, 아무리 상대가 요괴여도 말하고 싶은 것이 있다.
──인정이 뜨겁습니다!
아니, 정말로. 나 혼자 이곳에서 살아가는 것이 혼자 힘으론 불가능하단 게 절실히 통감된다.
이 누군가가 없었으면 나는 몇 번이나 죽었을 거다.
무사히 이번 겨울을 극복하면── 아니, 머지않아 수행에 성공해 힘을 가질 수 있게 된다면, 반드시 그 누군가를 찾아내 보은하자.
나는 그렇게 굳게 맹세했다.
……그런데, 이번에 보태준 물건들을 보고 있자니 생각나는 것이 있다.
형태가 있는 그것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무언가 따스한 느낌이 나지만, 그 이상의 무언가가 형태는 없어도 내 손안에 분명히 남아있었다.
형태가 없는 것이니, 확실한 근거는 없다.
그러나, 감각적일 뿐이지만 무언가가 확실히 남아있다.
열에 시달리는 동안, 손을 잡아줬던 누군가가 있었다는 것을.
분명, 그 사람이 처음부터 나를 지켜봐주던 누군가임이 틀림없다.
근거도 없이 나는 그렇게 확신하고 있었다.
착각 같은 것이 아니다.
더욱 큰 따스함이 남아있는 손바닥을, 강하게 쥔다. 그 열을 평생토록 놓치지 않기 위해.
──왠지 눈물이 나왔다. 겨울인데도 차갑지 않은, 뜨거운 눈물이.
◆
요괴의 산에서 사귄, 기묘한 텐구와 인간 아이의 인연이 소원하게 된 후, 약간의 세월이 흘렀다.
여러 번 계절이 변했지만, 나날이 수행에 매진하는 인간과 긴 삶을 사는 텐구에게 자세한 연수는 신경쓰이는 것이 아니었다.
어쨌든, 수년── 아이가 소녀로 성장하기에 충분한 시간이 지났다.
그 사이, 아야도 그 아이와 관계를 아예 끊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다른 텐구들에게 의심받지 않을 정도로만 시간을 내서 관찰해오고 있었다.
그날 이래 조금씩 말려들게 한 하타테와 모미지도 강제적으로 협력시켜, 아이의 모습을 봐왔다.
기이하게도 겨울이 지나 산의 생활이 익숙해지기 시작하자, 수행이라는 단조로운 작업에 몰두하기 시작한 그 아이의 일상은 조금 재미없게 바뀌었다.
매일이 스스로를 몰아넣고, 단련하는 것의 반복.
매일 같이 변하지 않는 행동을 바라보며 즐길만큼 아야는 참을성이 좋지 않다.
관찰하는 시간을 바꿔 매일 수행하는 모습보다 수행의 성과를 보며 즐기는── 그런 방향으로 바뀌어 갔다.
처음 했던 예상대로, 그 아이는 평범하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기 시작했다.
──어느 날, 썩기 시작한 커다란 나무에 주먹을 찍어, 마침내 그것을 부러뜨렸다.
──어느 날, 자신의 키만큼 커다란 바위를 짊어지고 산을 올랐다.
──어느 날, 우연히 발견한 동굴을 거처로 삼으려다, 안에서 자고 있던 거대한 곰과의 사투의 끝에 맨손으로 물리쳤다.
매일을 엄청난 밀도의 단련에 소비한다고는 해도, 경이적인 속도로 아이는──아니, 소녀는 인간으로서의 한계를 하나하나 넘어갔다.
어쩌면, 이 녀석은 텐구마저 위협할 만큼 강대한 존재가 되는 게 아닐까──?
그렇게 생각해버릴 정도의 성장속도였다.
그 성과를 보며 아야는 자기 일처럼 기뻐했다.
사실, 그 장래성에 주목하고 있던 아야에게 있어, 그녀가 독점할 수 있는 특종이 점점 커져가는 모습이 기뻐서 어쩔 수 없었다.
이미 물을 주지 않아도 마음대로 커져가는 과실이, 납득 갈만큼 익는 것을 지켜보는 기분이었다.
기다리는 것조차 행복으로 느껴지는 시간을, 아야는 보내고 있었다.
머지않아 그녀는 산을 내려갈 생각인 걸까?
이미 산의 짐승이나 잡요괴 따위는 적이 아닌 그녀가, 점점 불온해져가는 마을을 방문하여 어떤 행동을 할 것인지, 매우 흥미롭다.
혹은, 그녀가 아직 움직이지 않을 생각이라면, 슬슬 이쪽에서 모습을 드러내보는 것도 재밌을지도 모른다.
상상을 부풀려가는 소재가 마르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 날.
당대 하쿠레이의 무녀의 사망에 의해, 텐구의 마을이 조금 어수선했던 시기가 간신히 지났을 무렵.
다른 때보다 훨씬 오랜만에 그 소녀의 모습을 보러 향했다.
이번엔 간단한 선물로서 만두가 들어간 짐을 가져가고 있다.
하쿠레이의 무녀가 죽은 뒤, 요괴의 현자나 마을의 동향은 어떻게 될까 지켜보고, 향후의 방침을 결정하자는 결론이 나온 뒤에서야 텐구의 마을에서도 무녀의 죽음을 애도했다. 아야는 지금 그 명색뿐인 장례식에서 빠져 나온 참이었다.
그럼 이제 그녀 앞에 모습을 드러낼까? 아니면 만두만 두고 찾아냈을 때의 반응을 즐겨볼까? 라며 행복한 고민을 한다.
그리고, 평소의 강변에 가까워진 그때.
「──뭐야!」
아야는 바로 땅으로 내려와, 기척을 죽였다.
요기를 느꼈다.
그것도 약한 요괴가 아니다.
찍어누르는 것 같은 강대함은 느껴지지 않지만, 무서울 정도로 기분 나쁘며 두려운 감각을, 오랜 세월의 경험으로 파악했다.
방향은, 틀림없이 그 소녀의 거처다.
자신의 실력으로 이길 수 있을 상대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아야는 살그머니 몸을 숨기며 상황을 살폈다.
「저건……야쿠모 유카리」
아는 요괴 중에서도 최악의 요괴가, 그 소녀 앞에 서있었다.
◇
이 세계에 전생 해 수년.
이제 와서 알았습니다── 여기, 진짜로 「동방 프로젝트」의 세계였어!
나는 눈앞에 서있는 야쿠모 유카리를 바라보며, 경악할만한 사실에 멍 때리고 있었다.
아니, 갑작스럽게 공간이 찢어지더니 이 사람이 나타났을 때는 쫄아야 할지, 게임 캐릭터의 등장에 감동해야 할지…… 영문을 몰라서 별 반응을 할 수 없었다.
어쩐지 유카리는 그걸 보더니 「당황하지 않았구나. 역시나네」라며 칭찬 같은 말을 했다.
어쨌든, 갑작스럽게 나타나서 놀란 것도 있지만, 갑작스럽게 받은 제안에도 깜짝 놀랐다.
──나를 하쿠레이의 무녀로 삼고 싶단다.
뭐야, 그 초전개!
나날의 수행에 몰두하고 있자니 갑자기 이런 권유다.
진짜로 너무 갑작스러운데요 ……이런 건 보통 전생 직후에 끝내야 하는 거 아니야?
이미 산에서의 생활이나 수행이 익숙해져 버렸는데, 갑작스럽게 원작 개입 이벤트가 발생하다니.
하쿠레이의 무녀라니, 동방에서도 상당히 중요한 포지션 아닙니까.
아니, 안 되겠어……동요한 탓에 머리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당신의 힘은 이대로 놓아둘 수 없어. 강제로 시키진 않겠지만, 부디 이 제안을 받아줬으면 하는데」
의외로울 정도로 열렬한 야쿠모 유카리의 권유에, 무심코 OK를 할 것 같다.
왜냐하면, 동방에서도 유명한 캐릭터가 적극적으로 유혹하고 있다고? 거절하라니, 엄청 어려운 일이고, 그럴 이유도 없잖아.
그리고, 생으로 보고 있자니 진짜 예쁘다.
남자라면 어떤 부탁이든지 간단히 들어줄 것 같다.
뭐, 그런 그녀를 앞에 두고도 성적으로 흥분되지 않는 건, 내 몸이 여자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걸까.
어쨌든, 이 권유. 내겐 거절할만한 이유가 없었다.
「알았다. 수락하지」
나는 짧게 대답했다.
이 산에서의 생활도 나쁘진 않지만, 한층 더 많은 수행을 위해 하쿠레이의 무녀로서 기술을 배우는 것도 나쁘지 않다.
잘 되면, 지금까지 해왔던 수행으로는 하지 못했던 「기」이라든가 「오오라」같은 힘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르고. 노려라, 에네르기파!
나의 대답에 야쿠모 유카리는 생긋 웃으며──예쁘다……핫! ──이동하기 위한 틈새를 열었다.
「그럼, 빨리 산에서 나가자. 챙길 물건이 있다면, 지금의 챙겨 두렴」
그 말을 듣고 나는 거처인 동굴에서 중요한 것만을 꺼냈다.
아직 조금 내용물이 남아있는 약통. 애용하는 모포. 그리고, 이미 작아졌지만 병이 들었을 때에 입고 있던 잠옷.
전부 어렸을 때 나를 도와줬든 은인에게서 받은 것이다.
그 누군가와는 결국 만날 수 없었다.
지금도 지켜봐 주고 있다는 건, 가끔 찾아내는 흔적으로 알 수 있지만.
은혜는 반드시 갚는다──그 마음은 변하지 않았지만, 산에 있는 동안 얼굴 정도는 알아 두고 싶었다.
그것만이, 내 미련이다.
양손에 챙긴 물건을 가지고, 야쿠모 유카리에게 돌아간 나는, 틈새에 들어가기 전에 한번 더 뒤돌아봤다.
거처였던 동굴에는, 사실 그만한 애착은 없다.
그저, 이 몇 년간 생활해온 장소 그 자체, 이 산 그 자체에 표현할 길 없는 깊은 생각을 품고 있다.
──나는 여기서 태어나고 여기서 죽었으며, 여기서 살아왔다.
분명, 이곳이 내가 태어난 「집」이다.
그리고 그런 나를 도와주던 누군가는, 반드시 내게 있어──.
「……가지」
「그래, 가도록 하자」
야쿠모 유카리에게 재촉받은 나는 틈새에 발을 디뎠다.
땅에서 다리가 떨어지며 살던 장소를 뒤로 한다.
나는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것을 깨달았다.
아마, 나는 영원히 기회를 놓치고 말았을 것이다.
만약 그 산에서, 머지않아 나를 도와줬던 누군가와 만났다면, 분명 그때는 솔직하게 말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젠 두 번 다시 말할 수 없다.
산을 나와, 어른으로 성장한 후의 나는 그 누군가와 만난다 해도, 어른으로서 응할 테니까.
──나는 여기서 태어나고 여기서 죽었으며, 여기서 살았다.
──이곳이 내게 있어 「집」이라면, 그런 나의 성장을 지켜봐주던 누군가는, 분명.
「다녀오겠습니다……「엄마」」
◆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야쿠모 유카리와 소녀 사이에 무언가 대화가 오갔다.
아무래도 싸움 같은 뒤숭숭한 볼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안심하고 있는 틈에 소녀는 야쿠모 유카리와 함께 그 자리에서 떠나 버렸다.
껴들 틈이 없었다.
아니, 총명한 아야가 그런 엉뚱한 행동을 할 수 있을 리 없다.
행선지가 어딘지는 모르지만, 분명 이 산을 떠났을 것이다──그것을 깨달았다.
그 소녀는, 마침내 아야의 앞에서 사라진 것이다.
「……아아, 결국 헛수고인가……」
요괴의 현자를 상대하기엔 좋지 않다.
그렇게 이해는 하고 있어도, 아야는 진정할 수 없었다.
그 소녀와 다른 모습으로 재회할 수는 있겠지만, 그땐 오늘까지 쌓아온 관계는 모두 물거품이 되 버렸을 것이다.
특종의 독점이라니, 당치도 않다. 상대는 이쪽의 얼굴마저 모르니까.
──이럴 바엔, 빨리 모습을 드러내서 도와준 은혜라도 받을 걸 그랬다.
한탄하고, 후회해도 어쩔 수 없다.
그럼에도 속으로 욕을 내뱉는 것을 그만둘 수 없다. 서서히 솟아오른 초조함과 분노를 발산할 장소를 찾았다.
좋아, 모미지에게 엉뚱한 화풀이라도── 아니, 녀석은 바보처럼 정직하게 그것을 받아들이고, 할복이라도 할 테니 그만두자. 하타테와 자포자기 술이라도 마실까…….
길게 산만큼, 불합리한 처사를 당했을 때의 정신적 대응도 익숙해졌다.
내일은 기분을 다잡고, 다시 새로운 것에 도전하기 위해, 아야는 그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야야? 그렇게 긴장 했던 건가」
문득 깨닫고 손바닥을 보니, 땀에 흠뻑 젖어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힘을 줘서 쥔 탓에 손이 붉어져 있었다.
야쿠모 유카리와 소녀의 대화를 지켜보는 동안, 계속 주먹에 힘을 주고 있었던 것 같다.
한손에 잡고 있던 만두도 끔찍한 모양으로 변해 있었다.
쓸데없어진 그것을 내던지며, 손가락에 붙은 만두소를 닦았다.
잘못했으면 발견될 뻔했다, 라며. 자기도 모르게 흥분했다는 것을 드물다고 생각했다.
그 이유를 알고 싶었으나, 왠지 생각이 미치지 못했다.
「아―……―……아아―……」
일어섰으나, 어째선지 그대로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한 채, 의미 없는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아니, 지금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은 잘 알고 있다.
의미 없는 짓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음-……」
목소리를 내며, 큰 한숨을 내뱉어본다.
전혀 기분이 풀리지 않는다.
무언가가 가슴 속에 응어리져있다.
그것을 토해내고 싶었다.
분명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하겠지만, 어쨌든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다.
「…………젠장」
이성으로 감정을 억누르는 오랜 세월의 버릇이 활약한 덕분에, 아야는 결국 작은 목소리로 욕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초조해하는 이유를, 그녀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날, 마을에 한번 커다란 바람이 불었다.
마치 의지를 가진 것 같은 강대한 바람이 마을의 구석구석까지 불어, 모래는 물론 돌까지 하늘로 뜨고, 집의 지붕이 벗겨지며, 아이가 날아갈 정도였다.
바람이 강한 날도 아니었으며, 단 한번밖에 불지 않은 불가사의한 돌풍의 정체를 많은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다.
──텐구의 짓이다.
──산의 텐구님이 화내고 계신다.
사람들은 우려가, 진실인지는 확실치 않다.
샤메이마루 아야가, 하쿠레이의 무녀가 된 그 아이와 재회하는 것은, 그렇게 멀지 않은 미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