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27 「백만귀야행」
일출이 햇빛이 힘을 얻기 시작하는 시간이라면, 황혼은 그 햇빛이 힘을 잃어가는 시간이다.
플랑도르는 저녁노을을 바라보고 있었다.
붉은 빛이 찌르듯이 두 눈을 태운다.
비유가 아니다. 눈부신 빛과 함께 전해져오는 뜨거움을, 흡혈귀 소녀는 확실하게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을 고통이라 생각하지는 않았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플랑도르에게 있어서 태양의 빛이란 자기 자신을 상처 입히는 두려운 빛이 아니다.
「예쁘다……」
흡혈귀 소녀는, 태양을 보고 감동하고 있었다.
낮이었다면, 닿자마자 치명상을 입었을 태양의 빛.
압도적인 빛을 내뿜는 거대한 불꽃의 구슬이, 산그늘 저편으로 가라앉아가는 모습을 지켜본다.
헤아릴 수 없는 힘이 사라져가는 장대한 광경을 바라보며, 하루라는 세계의 마지막을 느낀다──.
「엄청 예쁘다, 언니. 나 저런 거 처음 봤어」
「흡혈귀가 돼서 태양에 마음을 뺏기면 안 되지」
그 옆에서 나란히 비행하던 레밀리아가 기가 막히다는 듯 말했다.
그러나 그 얼굴에 쓴웃음이 지어진 이유는, 여동생의 기분을 자신도 조금은 알 것 같았기 때문이다.
자신의 멸망을 상징하는 햇빛을, 두려워하면서도 강하게 바란다──그런 모순된 마음을, 흡혈귀라는 종족 모두가 품고 있을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레밀리아는, 메이링에게 명령하여 플랑도르에게 닿는 저녁노을의 빛을 양산으로 가렸다.
「우우─, 잘 안보이잖아. 메이링!」
「죄송해요. 그렇지만 더 이상 보셨다간 몸에 해롭다구요」
「그 말 대로, 네. 플랑은 처음 봤을 테니 잘 모르겠지만, 흡혈귀는 태양의 빛을 쬐면서 느끼는 아픔보다도 빼앗기는 체력이 훨씬 많으니까」
그렇게 충고한 레밀리아는, 자신의 양산으로 제대로 햇빛을 가리고 있었다.
종자인 사쿠야는 물론 옆에서 대기하고 있지만, 그녀에게는 짐을 더 우선하도록 명령했다.
홍마관을 나선 그녀들은, 연회를 위한 식재료와 술을 가지고 하쿠레이 신사를 향하고 있었다.
「자, 빨리 가야지. 가장 먼저 도착하고 싶다고 한 건 너희잖니?」
레밀리아에게 꾸지람을 들은 플랑도르는 저녁노을이 지는 풍경에서 눈을 돌렸다.
태양은 서서히 모습을 숨기고, 땅거미가 대지를 감싼다.
밤이 찾아온다.
보름달이 뜨는 밤이다.
오늘 밤, 드디어 환상향에서도 전대미문의 대연회가 시작된다.
◆
「아아, 이럴 줄 알았어」
「뭐가 이럴 줄 알았다는 건데?」
하쿠레이 신사의 마당에 내려선 사쿠야는 고개를 떨구며 실망했따.
그런 그녀의 반응을 본 레이무가 기분 나쁘다는 듯 묻는다.
「너, 연회 준비를 아무것도 하지 않았구나」
「요리나 술은 각자 알아서 준비한다고──」
「그게 아니라, 장소 준비를 말하는 거야」
주변을 둘러보는 사쿠야를 따라 레이무도 휙 하고 고개를 돌렸다.
그 뒤를 따라 레밀리아와 플랑도르, 그리고 메이링도 똑같이 신사를 쭉 둘러봤다.
익숙한 풍경을 눈에 담은 레이무는, 아까와 똑같이 이게 어떠냐는 듯 말했다.
「준비 됐잖아. 청소도 제대로 해놨으니까」
「확실히 쓰레기는 없네. 하지만 그 많은 참가자가 모인다는데 돗자리 하나도 없다니. 그것도 연회를 개최할 시각은 밤이라고 했는데도 등 하나 없잖아」
「……맨바닥에 그냥 앉으면 되잖아? 그리고 요괴니까 달빛만 있어도 충분할 테고」
「OK, 알았어. 당신이 참가자를 환영할 마음이 없다는 걸」
「그 녀석한테 그런 걱정을 하는 게 낭비란 거야」
기막혀하는 사쿠야와는 다르게, 레밀리아는 유쾌하다는 듯 웃었다.
「그런데 레이무. 넌 그걸로 좋을지 몰라도 주최자인 선대무녀는 어떠려나?」
「읏」
「미비한 점이 있다면 그녀의 체면에 흠이 가지 않을까?」
레밀리아는 레이무를 다루는 법을 알고 있었다.
옛 이변을 거치며, 평범함과는 동떨어진 방법으로 서로를 알게 된 덕분이다.
어머니가 언급되자, 그 레이무라도 걸리는 게 있는 듯 딱딱한 표정으로 입을 닫았다.
「……확실히, 뒤쪽 창고에 낡은 멍석이 있었는데」
「죄인이 깔고 앉을 게 아니니까, 좀 더 품위 있는 걸 써. 사쿠야」
「네」
잘 알 수 없었지만, 당황하고 있는 레이무를 보며 만족한 레밀리아는, 사쿠야에게 명령했다.
어깨에 메고 있던 가방에서, 하나 둘 도구를 꺼내든다.
고급스런 융단, 훌륭한 장식이 가미된 랜턴, 탁자, 의자──서양적인 물건으로 치우쳐 있긴 하지만, 그것들은 전부 연회 장소를 가꾸는데 필요한 도구들이었다.
「방석 정도는 있지?」
「있긴 한데……너, 그거 어디에서 꺼낸 거야?」
분명히 가방보다도 커다란 것들을 하나 둘 꺼내놓는 사쿠야의 모습에 레이무는 기가 막혔다.
마치 가방 안쪽에 다른 공간이 있는 것만 같았다.
질문에 대답하는 대신, 도구를 전부 꺼내놓은 사쿠야는 가방에서 손을 떼어 입을 덮었다.
「──마술이야」
이번엔 입속에서, 수십 장의 트럼프 카드가 튀어나온다.
레이무는 그 어처구니없는 광경을 잠시 바라본 뒤, 그제서야 이게 아까 한 질문에 농담을 섞은 대답이라는 것을 이해했다.
「와아! 사쿠야, 대단해!」
「메이드의 소양이랍니다」
「언제 봐도 훌륭해요!」
말문이 막힌 레이무의 반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플랑도르와 메이링이 순수하게 칭찬했다.
──뭐야 이 녀석. 이런 녀석이었나?
소쇄한 메이드의 뜻밖의 일면을 봤다. 레이무는 그런 생각을 했다.
아무래도 좋지만.
「식재료는 메이링이 갖고 있어. 뭐, 자기가 요리한다면서 갖고 온 거지만」
「그렇게 됐습니다. 맡겨주세요!」
메이링은 레밀리아의 말에 가슴을 폈다.
레이무가 의심스럽다는 시선을 보낸다.
「네가? ……왠지, 중화요리 밖에 만들 수 없을 것 같은데」
「어이쿠, 생각이 경솔하시네요. 이래봬도 꽤 다양하게 만들 수 있다구요.
사쿠야 씨가 메이드장이 될 때까지, 누가 홍마관의 그 많은 식사를 해결했다고 생각하시나요?」
「실패작도 꽤 먹었지만 말이지」
「메이링이 만든 밥은 사쿠야가 만든 밥이랑 비슷할 정도로 맛있어!」
자매의 보증에 레이무도 납득했다.
「그럼 나도 요리 준비나 도울까」
「그러네. 터를 준비하는 건 레이무한테는 어울리지 않으니까」
「시끄러워」
「에, 그럼 난……」
「괜찮아, 플랑. 저런 건 아랫것들한테 맡기고 우리들은 우아하게 기다리기만 하면 돼」
「그 말대로야, 방해만 되니까」
「흐흥」
레이무의 농담에, 레밀리아도 여유를 가지고 반응한다.
그런 둘의 모습을 보며, 사쿠야는 몰래 안심하고 있었다.
이번 연회에 참가하자는 말은 솔직히 불안했다.
영야이변 때 자신도 포함하여 헤매임의 죽림에서 마주쳤던 수많은 인요가 혼란 속에서 싸웠던 그때를 아직 잊지 못했다.
「경계를 거두고 친애를」──낯선데다가, 힘까지 가진 상대에게, 그건 너무나도 어렵다. 그런 사실을 그때 실감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하물며, 홍마관은 일찍이 하쿠레이의 무녀와 적대적인 입장에 섰던 적까지 있다.
그 사건도 일단락 됐지만, 그 뒤 별다른 교류도 없이 그저 서로 숨을 죽이고 지켜보기만 하던 입장이다.
환영받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뿐만이 아니라, 최악의 상황이 도래할 가능성마저 있다──.
그런 점을 불안하게 생각한 사쿠야에게 지금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결코 나쁘지 않았다.
밝고 솔직한 플랑도르와 호의적인 메이링에 더해, 의외롭게도 레밀리아까지 레이무에게 악감정을 품지 않았다.
──괜한 걱정이었나.
사쿠야는 마음 한구석에 있던 레이무를 향한 경계심을 그제야 전부 거둘 수 있었다.
연회의 준비를 하기 위해, 도구에 손을 올린다.
그때──.
마당에 남아 있던, 사쿠야, 레밀리아, 플랑도르의 머릿속에서 경종이 울렸다.
세 인요의 시선이, 아무것도 없는 공중에 그어진 한 줄기 균열을 향해 모인다.
「──어머, 아무래도 난 두 번째인가 보네」
그것은 「틈새」라 불리는 이차원의 경계였다.
이것을 조종할 수 있는 능력자는, 인요 중에서도 단 한 명 밖에 없다.
정체불명의 경계 조작이라는 힘을, 단순히 편리한 이동수단으로 이용한 야쿠모 유카리가 식 신인 야쿠모 란과 함께 마당에 내려섰다.
「오랜만이야, 야쿠모 유카리」
「오랜만이네, 레밀리아 스칼렛」
인사를 나누는 레밀리아의 얼굴에 레이무에게 보이던 온화함은, 이미 티끌조차 없었다.
불온한 분위기를 느낀 것일까, 플랑도르가 레밀리아의 그늘에 숨었다.
──아.
확 바뀌어버린 주변의 분위기를 느끼며, 사쿠야는 무심코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볼 뻔 했다.
유카리의 뒤에서 자신과 주인들을 건방진 눈으로 지켜보는 란의 싸늘한 시선을 받으며, 속으로 한탄했다.
──역시 괜한 걱정이 아니었어.
오늘 밤의 연회는, 전도다난 할 것 같았다.
◆
태양이 완전히 가라앉고, 밤이 깊어지기 시작했다.
「와아, 훌륭한 달이네요. 비도 내릴 것 같진 않으니, 연회를 하기에 딱 좋은 밤이에요」
토방의 창으로부터 달을 올려봐 메이링은 밝게 웃었다.
「그러게」
「그렇군요」
쌀쌀맞은 대답 덕분에 입가가 죄어든다.
애당초, 하쿠레이 신사의 부엌은 그렇게 넓지 않다.
그런 좁은 곳에서, 메이링을 포함한 세 명──레이무와 요우무가 함께 요리 삼매경에 빠져 있었다.
「저기─ 그, 그러니까……맞아! 요우무는 칼을 잘 다루네」
「감사합니다」
메이링의 칭찬에 요우무가 짧게 답한다.
대화는 거기서 끊기고 말았다.
메이링은 아까부터 계속 이런 거북한 침묵을 느끼고 있었다.
──왜 이렇게 된 거죠!?
딱히 대답해줄 상대도 없는 질문이었지만, 물을 수밖에 없었다.
적어도 레이무만 있었을 때엔 이렇게 거북한 분위기는 아니었을 텐데.
화기애애하진 않았어도, 평화로운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실제로도 메이링은 레이무를 좋게 생각하고 있었다. 레이무의 모친이 가진 인상에 영향을 받은 탓도 있겠지만.
연회의 참가자가 연달아 찾아온 듯, 마당 쪽에서 움직이는 기척이 늘어나기 시작했을 쯤부터 뭔가 이상해지기 시작했다.
「도우러 왔습니다」
유유코를 따라 식재료를 가지고 부엌에 나타난 요우무는 그렇게 말했다.
그 의도는 순수한 선의였고, 메이링은 감사히 받아들였다.
처음 만난 사이끼리 가볍게 자기소개를 끝내고 요우무가 레이무에게 말을 건넸다
「……오랜만입니다, 레이무 씨」
기묘하게 뜸이 든 인사였다.
그 인사를 받은 레이무 또한 묘하게 뜸을 들이더니, 이내 대답했다.
「어……그러니까. 미안, 너 누구더라?」
요우무의 분위기가, 눈에 보일 정도로 바뀌었다.
「명계에서 만난 건 알겠는데」
「……콘파쿠 요우무라고 합니다」
「아, 맞아 그랬지. 잊고 있었어」
그때, 메이링은 공기가 삐걱거리는 소리가 확실하게 들린 것 같았다.
거기다 공기의 질마저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분명히 레이무에게 뭔가 감정이 있어보이는 요우무와는 달리, 레이무 본인은 전혀 신경쓰이지 않는다는 듯 요리를 멈추지 않는다.
그런 그녀의 태도가 둘 사이에 낀 메이링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주변의 분위기를 점점 험악하게 변해가게 하는 원인이 됐다.
그런 분위기를 따라가듯, 요우무가 메이링을 대하는 태도마저 딱딱해져가기 시작했다.
「요, 요우무는 그 뭐냐……백옥루였나? 거기서 공주님의 식사를 해드리기도 해?」
「아니오.전문의 유령이 하고 있습니다」
「그렇구나─, 그런데도 이렇게나 요리를 잘 한다니, 대단하네─」
「감사합니다」
「레, 레이무는 평소에 자취하는 거지─?」
「그런데」
「혼자 살면 대충 해먹기 십상일 텐데, 솜씨가 제법인걸─?」
「어머니한테 배웠으니까, 밥은 제대로 해먹으라고 혼나기도 했고」
「그러니─, 역시 선대─」
「뭐, 그렇지」
「레이무가 보기엔 어때? 요우무의 요리 솜씨」
「꽤 제법 아냐? 메이링이 그렇게 말하는 걸 보니」
「감사합니다. 메이링씨」
「──」
이 꼴이다.
메이링은 이 상황에서 도망치고 싶었다.
하지만 아직 식재료가 남아있다.
게다가 여기서 자신이 빠진 뒤 이 둘이 나란히 서 있는 광경을 보는 것도 무섭다.
그런 마음을 참아내며, 메이링은 손에 익은 중화요리용 냄비에 생각을 돌렸다.
그 순간, 메이링은 갑자기 누군가가 자신의 등에 업히는 감촉을 느꼈다.
「본고장의 중화요리는 연기가 엄청 나오는구나. 아, 그래도 그만큼 냄새가 강해서 배를 자극하는걸~」
「우와앗!? 위험해요, 사이교우지 님」
「싫다 참, 유유코라고 불러줄래? 메─링」
「귓가에 속삭이지 말아주세요……유유코 씨」
등에 업힌 유유코의 말에 메이링은 쓴웃음을 지으며 답했다.
위험하다고 말하긴 했어도, 귀찮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등에 달라붙은 유유코의 풍만한 가슴에서 느껴지는 감촉과 망령 특유의 서늘함이 느껴지긴 했지만, 약간 떠올라 있기 때문인지 무게는 느껴지지 않았다.
메이링의 움직임을 방해하지 않도록 배려하고 있는 듯 했다.
거기에 더해, 유유코가 진짜 걱정하는 것은, 그 무엇보다 이곳의 분위기라는 것을 메이링은 이미 눈치채고 있었다.
주인인 유유코가 나타나자, 요우무의 딱딱했던 태도가 조금씩 풀어지기 시작했다.
「유유코 님, 품위 없는 행동은 그만둬주세요」
「요우무는 너무 딱딱해서 탈이라니까~. 저기, 메이링. 당신은 쌀쌀맞게 굴지 않을 거지?」
「군것질 거리가 필요하신 건가요, 품위 없으신 공주님?」
메이링은 충분히 익은 고기의 한 점을 젓가락으로 집어, 어깨너머로 내밀었다.
「뜨거울 테니 조심하세요」
「와아~」
유유코는 아이처럼 기뻐하며 고기를 물었다.
「으응~, 맛있네」
「연회가 시작할 때까지만 참아주세요」
「응, 알겠어. 요우무가 만든 음식도 기대하고 있을게」
「……예」
유유코의 말을 들은 요우무의 얼굴에 그제야 미소가 피었다.
메이링에게 있어서 유유코는 이 연회를 원만하게 풀어나가기 위한 귀중한 협력자다.
「명계의 공주」같은 무시무시한 이명을 가진 망령인 그녀였으나, 적어도 메이링에게는 마음을 편히 먹을 수 있는 상대였다.
──반대로 말하자면, 마음을 편하게 먹을 수 없는 상대가, 이 연회에는 너무 많지만.
「다음 요리는 다 만들었어?」
좋은 의미로 산만한 유유코가 떠나고, 나쁜 의미로 침착한 인물이 그 뒤를 이어 주방을 찾아왔다.
마리사에게 초대받아 연회에 참가한 앨리스였다.
「아, 네. 이걸로 부탁드려요」
「딱히 존댓말을 쓰지 않아도 괜찮아」
「아……예」
「존댓말을 써도 상관없긴 하지만」
「……그런가요」
지금 그 말은 앨리스 나름대로의 농담이었던 걸까?
메이링은 그녀의 진심을 알 수 없었다.
딱히 만나본 적도 없고, 그저 파츄리와 동급의 마법사라는 설명만을 들었을 뿐이다. 자연스레 존댓말이 나오게 된다.
하지만 그것은 경의가 아니라, 거리감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마치 인형처럼 담담한 앨리스의 말투는, 묘하게 파츄리와 닮았으면서도 치명적인 차이가 느껴졌다.
하지만 일단 연회 준비에 협력적이다.
완성된 요리에 보온마법을 건 뒤 탁자에 세팅하는 작업까지 도와주고 있다.
하지만 참가하는 인요가 많든 적든 이 연회에서 무언가를 느끼고 있을 터인데, 그녀만이 어떤 감정도 품지 않은 것만 같은 그 모습이, 메이링의 불안감을 자극하고 있었다.
「무거울 테니 같이 가져가죠」
「그러든가」
메이링은 요리를 담은 커다란 접시에 손을 더했지만, 앨리스는 그다지 필요 없다는 태도였다.
하지만 이제 와서 「그냥 혼자 가져가세요」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
레이무와 요우무를 단 둘만 내버려둔다는 자신의 실수를 그제야 깨달으면서도, 메이링은 앨리스와 함께 마당으로 나왔다.
연회는 조용히 준비되고 있었다.
그래, 조용하게──.
한 치의 소란조차 없는, 소리 없이 긴장된 분위기가 팽배해 있었다.
마당의 나무 사이를 연결하듯이 이어진 줄에 내걸린 랜턴과 등불이 연회장을 비추고 있다.
서양풍과 일본식이 섞여 들어간 기묘한 광경이 되어버린 것은, 홍마관의 물건만이 아니라 야쿠모 유카리가 준비한 도구도 섞였기 때문이었다.
연회의 주최자인 선대무녀의 부탁을 받아 원래는 유카리가 장소의 준비를 할 예정이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한들 딱히 어느 쪽이 준비를 마다할 이유도 없다.
사쿠야와 란이 미리 짜놓은 듯이 역할을 나누어 효율적으로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그저 그런 둘의 정확한 움직임 속엔, 상대를 견제하고 자칫하면 싸움으로 번질 것만 같은 소리 없는 긴장감이 감춰져 있다는 것을 메이링은 기척으로 알아차린 것이다.
그런 종자들의 활약을, 서로의 주인이 나란히 앉아 바라보고 있다.
다만, 서로 들러붙은 레밀리아와 플랑도르 옆에 미묘하게 거리를 벌려 유카리가 앉아 있는 배치에서 그 셋이 가진 깊은 도랑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 광경을 보며, 메이링은 「와아」라고 생각했다.
구체적인 감상은 없었다, 그저 「와아」였다.
이젠 야쿠모 유카리의 친구라던 유유코만이 살 길이다.
그런 유유코는 마리사와 멀찍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어이 좀도둑 마법사. 그런데서 귀중한 인재랑 수다 떨지 말라고.
자기가 데려왔으면 이 마법사를 책임져야 할 거 아냐! 아니 그 전에 넌 레이무의 친구 아니었어? 피하고 있단 걸 얼핏 봐도 알겠더구만, 바보 같으니!
메이링은 속으로 짜증이 담긴 투정을 내뱉었다.
「──홍 씨, 왜 그래?」
「아, 아니요. 아무것도 아니에요, 얼른 나르죠.
……그리고, 「홍 씨」라고 불리면, 뭔가 이상하니까 메이링이라고 부르셔도 괜찮아요」
「그래. 미안해」
「아, 아니에요! 괜찮으니까 신경 쓰지 마세요!」
그리고 이 삐걱거리는 커뮤니케이션도 문제다.
요리를 탁자 위에 올린 메이링은, 한숨 돌리는 척 하며 크게 한숨을 내뱉었다.
──아, 선대님. 얼른 와주세요.
연회의 주최자인 선대는 아직도 부재중이다.
그런 메이링의 절실한 소원을 하늘이 이루어준 듯, 새로운 참가자들이 마당에 내려섰다.
「반갑습니다. 초대해주셔서 감사해요. 영원정 대표 야고코로 에이린과 레이센이라고 합니다」
또 다시, 메이링이 보지 못한 상대였다.
또 다시, 정체를 알 수 없는 강자였다.
인간도 요괴도 아닌, 바닥을 알 수 없는 불쾌한 기척이 느껴졌다.
그리고 역시 예외가 아니라는 듯, 그녀가 데려온 종자로 보이는 요괴토끼 또한, 경계심과 적의를 흩뿌리고 있었다.
친해질 생각 따윈 한줌도 없다는 결의마저 느껴질 정도다.
그런 그녀들을 보며, 메이링은 「와아」라고 생각했다.
정말이지, 그저 「와아」였다.
◆
네 명의 여성이 나란히 앉아 있다.
야쿠모 유카리.
야고코로 에이린.
사이교우지 유유코.
레밀리아 스칼렛.
엄청난 광경이었다.
애당초 이 중 두 명만 모여 있어도 뭔가 음모나 뒤수작을 꾸미고 있다는 냄새가 풀풀 풍기는 인물들뿐이다.
그런 게 네 명. 게다가 단 한 장의 카펫 위에 앉아 서로 어깨를 맞대고 있다.
그저 앉아 있을 뿐인데 주변에 모인 인요들의 심정이 초조해진다.
그녀들이 서로 데려온 종자들도 다를 바 없었다.
란이 등불의 밝기를 조절하고, 요우무가 마지막 요리를 내왔다. 가만히 앉아있던 레이센은 사부의 명령을 따라 마지못해 탁자를 닦고 있다.
그 세 종자 사이엔, 얼마 전 영원정에서 그랬듯이 살기와 적의가 엇갈리고 있었다.
사쿠야는 그런 시선을 무덤덤한 얼굴로 넘겨 흘렸다.
「이제 얼마 안 있음 연회가 시작될 시간이네」
유카리가 모두가 들으라는 듯 허공에 대고 말했다.
네 명 모인 뒤 처음으로 나온 말이었다.
「오늘 밤의 주인공은 어디 있지?」
에이린이 유카리에게 묻는다.
「선대라면, 다른 참가자를 맞이하러 갔어」
「지저의 요괴 말이구나」
「주최자가 직접 마중 가다니, 정말로 참가한다는 거네」
사토리와 만나본 적 없는 레밀리아와 유유코가 서로의 생각을 남 몰래 중얼거렸다.
「그러고 보니, 레밀리아 양에겐 코메이지 사토리에 대해 경고하지 않아도 괜찮아?」
「……무슨 말이지?」
「불필요한 선입관을 가지지 않은 쪽의 반응도 보고 싶었거든. 게다가 그녀는 순순히 경고를 들어줄 성격도 아니고」
「……흐응. 너희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레밀리아의 눈빛이, 마치 피처럼 붉게 빛났다.
「너희들이, 나를 얕보고 있단 건 잘 알겠어」
보름달이 뜬 밤의 흡혈귀 특유의, 공포감을 조성하는 「두려운 기운」이 두 현자의 인식을 고쳤다.
레밀리아의 나이는 500세.
유카리나 에이린에게는 어린아이나 다름없다.
그러나 그녀는 이미 흡혈귀의 왕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자질을 지니고 있었다.
「사과할게, 레밀리아 양」
「나도 마찬가지야. 당신을 당신의 아버지보다 한 수 아래라고 평가한 건 실수였나 보구나」
「괜한 말이 많네. 뭐 좋아, 야쿠모 유카리. 네 경고를 들을 생각이 없다는 말은 틀리지 않았어.
그 선대무녀가 직접 부렀다는 지저의 요괴──직접 보고 그 실태를 알아봐주지. 그리고 전설의 「오니」인지 뭔지도 말이야」
소녀의 얼굴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흉흉한 미소가 떠오른다.
요괴인 그녀이긴 했으나, 그 미소엔 틀림없이 젊음의 패기가 깃들어 있었다.
노련한 두 현자가 그런 자신의 행동을 대항마로서 보고 있다는 것쯤, 레밀리아도 알고 있다.
그렇기에, 관철한다.
남의 기대 따윈 밟아 부수고, 자신만의 길을 간다.
일찍이 레이무와의 싸움에서 되찾은, 요괴로서의 강렬한 자존심과 오만함이었다.
「──왔나보네」
그때까지 침묵을 지키던 유유코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
마치 강 건너 불구경하는 것 같은 말투였기에, 그 셋은 잠시 유유코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곧바로 깨달을 수 있었다.
하쿠레이 신사의 마당으로 이어지는 계단.
그 아래에서, 뭔가가 온다.
힘의 덩어리와도 같은 뭔가가, 공기에조차 무게를 실은 듯 존재감을 드러내며 천천히 올라온다.
그렇다. 모두가 같은 생각을 품었다.
신사 안에 있던 레이무와 메이링이 바깥으로 나오고, 마당에 앉아 있던 모두가 일어서, 그것을 맞이한다.
맨 처음엔, 세 개의 발소리가 들렸다.
그 중에서도 나막신의 발굽 소리가 특히나 높고, 확실하게 들려왔다.
가장 처음 눈에 들어온 것은, 붉은 뿔이었다.
그 뿔을 시작으로 머리, 어깨, 몸통──건장한 체격의 「오니」가 그 모습을 드러낸다.
어깨에는 커다란 술통을 짊어지고, 반대쪽 손엔 거대한 멧돼지의 시체가 들려 있다.
그야말로 호쾌한 등장이었다.
지저의 요괴.
오니의 사천왕.
──호시구마 유우기.
「오오, 전부 날 마중 나온 건가? 기쁜걸」
긴장하는 일행을 휙 둘러본 유우기는 털털한 미소를 지었다.
살짝 드러난 송곳니에서 사나움이 느껴지긴 했으나, 묘하게 귀염성 있는 미소였다.
「늦어서 미안하다」
그런 유우기의 옆에 나란히 선 선대무녀가 말했다.
유우기와 비교해도 꿇리지 않을 정도의 커다란 키.
이 둘이 함께하니, 유카리 일행이 함께 있는 것과는 사뭇 다른 굉장한 무언가가 느껴졌다.
그도 그럴 것이, 요괴 중에서도 최강의 종족이라 손꼽히는 오니.
그리고 그 오니를 맨손으로 때려눕힌 인간.
그런 두 인요가, 지금 종족을 뛰어넘은 동지로써 어깨를 맞대고 있다.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박력이, 마당에 모인 인요들을 짓누르듯 압박하고 있었다.
「……이렇게 계단이 길다고는, 듣지 못했습니다만. 날아서 올 걸 그랬어요」
그곳에 모인 모두가 그 둘에게 눈을 빼앗겨 소리가 멎어들었을 쯤, 잔뜩 지친 것만 같은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처음엔, 누가 꺼낸 말인지 누구도 알아채지 못했다.
그리고 그제야 눈치챌 수 있었다.
유우기와 선대. 마치 태풍과도 같은 강렬한 존재감을 가진 둘 사이에 낀 한 마리 작은 요괴가 잊혀져가고 있었다.
양쪽에 선 둘이 보기 어려운 장신이기에 더욱 비교되는, 정말로 자그마하다는 인상의 소녀 요괴였다.
그 가슴 위로 떠오른 기괴한 「제3의 눈」만이, 군중의 주목을 끈다.
「나 참, 미덥지 못하긴」
「미안하다. 오는 길에 업어줄 걸 그랬군」
유우기와 선대가, 번갈아 말을 건넨다.
둘 다 그녀를 위해 나온 말이었다.
──저 녀석이?
그 광경을 보던, 전말을 모르는 자들 모두가 눈을 의심했다.
──저 녀석이, 코메이지 사토리!?
한숨을 내쉰 사토리는, 말없이 고개를 들어 마당을 둘러봤다.
「……네. 예상은 하고 있었습니다만, 환영받지 못하는 것 같아 기쁘네요. 코메이지 사토리라고 합니다」
사토리는 비굴한 미소를 지으며, 자신을 바라보는 수많은 시선에 답했다.
◇
「아름답네요」
사토리가 져가는 태양을 바라보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하지만 사토리. 나는 그 석양을 등진 너의 붉은 옆모습이, 더 아름답다고 생각해…….
「재수 없어요」
그치─!
내가 말했다지만 「대체 뭔 개소리야?」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대사였어.
뭐, 그래도 이런 이상한 대사가 멋대로 나와 버릴 정도로 내 상태가 이상한 거겠지.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연회가 시작된다.
이미 하쿠레이 신사에서 유카리가 준비를 시작했을 것이다.
유카리가 서둘러 오지 않아도 괜찮다고 했기에, 나는 이렇게 사토리와 함께 천천히 걸어 지저에서 지상으로 나온 것이었다.
내게 있어선 당연한 지상.
그러나 사토리에겐 수백 년 만에 보는 세계.
푸른빛은 아닐지언정 노을빛으로 물든 하늘과, 지저와 이어진 출입구가 있는 요괴의 산의 산기슭에 늘어선 나무와 돌, 강줄기의 흐름──지상의 풍경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풍경도 풍경이지만, 초목의 소리에도 귀를 기울이고 있습니다」
사토리가 어디서나 볼 법한 들꽃에 손을 얹으며 덧붙였다.
대단해, 사토리는 정말로 풀이나 꽃의 마음까지 읽을 수 있는 거야?
「아니요. 시도해본 적은 없군요. 그저 당신이 가르쳐 준 창작물 안의 사토리 요괴는 가능하기에 흉내를 내보고 싶어졌을 뿐입니다」
오오, 그 사토리가 엄청 울었던 이야기 말이지.
「시끄러워요.……하지만, 역시 안 되는군요. 그 이야기랑은 다른 것 같네요」
무리였구나, 유감이네.
나는 만화 속의 기술이나 힘을 마구 재현해냈으니, 사토리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건, 아마 당신이 특별한 거겠죠. 능력에 관계된 건 아닐까요?」
능력?
……에, 요컨대 내가 가진 능력 덕분이란 소리야?
그런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 없는데. 내가 기술을 사용할 수 있는 건 그냥 열심히 수행해서 그런 거 아닐까 했고.
「뭐, 그런 것도 있겠지만 애당초 만화 속 기술이나 힘을 재현하는 데엔 어떠한 능력이 더해졌기 때문이라고 봐야하지 않을까요?」
그런가─.
생각해보니 짐작 가는 부분이 많다.
애당초 제대로 된 방법이 알려진 수행이라면, 그걸 따라 하기만 해도 누구든지 익힐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만화의 수행에는 애매한 부분 또한 많다.
그 불가사의한 부분을 이해하지 않고 알고 있는 것만 열심히 따라했던 내가, 설령 아무리 필사적이었다고 해도 만화와 같은 성과를 얻었다는 건 분명 이상하다.
하지만 잠깐 생각해보자.
그렇게 된다면, 모코우의 수행은 어떻게 된 거지?
내가 모코우에게 주었던 수행 덕에 「요괴소년 호야」에서 나오는 「천심」의 마음가짐을 습득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내게 그런 능력이 있다면, 그 능력이 내 자신 뿐만이 아니라 주위에 영향을 끼쳤다는 걸까?
그럼 내 능력은 대체──.
사토리에게 더욱 자세히 물으려던 내 귀에, 갑자기 엄청난 비명이 들렸다.
사람이나 요괴의 비명이 아니다.
비유한다면─아니, 말 그대로 「돼지 멱따는 소리」였다.
덤으로 비명과 거의 동시에 고기 덩이가 부서지는 소리가 함께 들려왔다.
나와 사토리는 무심코 고개를 돌렸고, 바로 그 원인이 뭔지 알 수 있었다.
「기다렸지! 이야, 풍년이야 풍년. 이 녀석이면 꽤 훌륭한 술안주가 될 테지」
바스락바스락 수풀을 밀어 헤치며, 유우기가 모습을 드러냈다.
함께 지상에 나오자마자, 「잠깐 작은 선물이라도 준비해올게」라고 말하고는 훌쩍 사라져버린 것이다.
작은 선물을 준비한다지만 이미 커다란 술통을 짊어지고 온 그녀였다.
대체 뭘 하고 온 거냐는 의문이 생겼으나, 반대쪽 손에 잡혀 질질 끌려오는 특출나게 커다란 멧돼지의 시체를 보고 바로 이해했다.
나랑 사토리가 한숨 돌릴 동안 사냥을 해온 거냐, 이 오니!
「지저의 식재료는 시체 고기뿐이고, 선물이 술만 있어선 따분하잖아」
확실히 살이 가득 오른 커다란 멧돼지의 정수리는 평평하게 펴져 있었다.
주먹이나 손바닥으로 힘껏 때린 것 같네.
정말이지─, 몰상식하기는─.
「당신도 똑같이 할 수 있을 텐데요」
사토리가 내 마음을 읽고 기가 막히다는 듯 중얼거린다.
뭐어, 할 수야 있지 않을까?
어릴 적에 곰한테 저런 적 있으니까.
「……가죠, 이 근육 바보들 같으니. 당신들을 따라가려니 머리가 아파지네요」
사토리는 머리를 움켜잡으며 앞장서서 걷기 시작했다.
잠깐, 기다리라니까.
안내원은 나래도.
그렇게 사토리를 앞지른 내가 일행을 이끌며, 짐덩이를 가지고 있음에도 전혀 속도가 떨어지지 않은 유우기가 뒤를 잇는다.
우리들은 천천히 하쿠레이 신사를 향해 환상향을 가로질렀다.
관광이라 말할 정도로 많은 장소를 지나치진 않았다.
그럼에도 걷는 곳에서 눈으로 보이는 곳들을 사토리와 유우기에게 소개하며, 우리들은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도보를 즐기고 있었다.
「지상이라……응, 좋은걸. 역시 선대를 따라오는 게 정답이었어」
「너는 지상을 기피하던 게 아니었나?」
「후후, 오니와 인간의 고집 싸움이 신경 쓰이는 거냐? 그 생각은 기우라고」
「정확하게 말하자면, 선대와 싸운 뒤로 생각이 조금 바뀐 거지만……인가요」
「임마, 사토리. 읽은 마음을 말하는 버릇은 그만두라고 했잖아. 쓸데없는 말싸움이 날지도 몰라」
「유우기 씨도, 존재 자체가 소란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다분하다고 생각됩니다만」
「음. 뭐, 나도 조심할게」
「피치 못할 경우엔, 어쩔 수 없지만 말이지……라고요」
「하하……그럴 수도 있잖아」
「그렇게 당당하게 가슴을 피셔도 곤란하다구요」
사토리와 유우기의 만담 같은 대화를 듣고 있으면 불안하다는 느낌이 전혀 느껴지지 않아서 신기하다.
의외로 저 둘 다 허물없이 친해질 수 있지 않을까?
그런 낙관적인 생각까지 해버릴 정도다.
「실제로 맞닥트리면 현실이 어떤지 알 수 있겠죠」
그건 너무 비관적이라고 생각하는데…….
어쨌든, 우리들은 하쿠레이 신사로 이어진 계단에 겨우 도착해 그 계단을 올라 연회장에 도착하게 된 것이었다.
밤이 깊었다.
레밀리아 일행을 위해 밤을 선택하긴 했지만, 다행스럽게도 오늘 밤은 보름달이 뜨는 날.
달빛만으로도 충분히 밝았으나, 신사의 마당은 인공적인 빛으로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오오, 대단해!
연회장이었다.
딱 봐도 연회장이라는 느낌이 오는 광경이었다.
환상향의 곳곳의 인요가 하쿠레이 신사 마당에 차려진 요리나 술 주변에 둘러앉아, 우리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마음속으로 간절히 바라던 꿈의 광경이 지금 여기 있다──!
「늦어서 미안하다」
나는 감격하며 모두에게 그렇게 말했다.
그 후, 사토리가 약간 토라진 인사를 하긴 했으나, 모두들 크게 괘념치 않고 우리를 맞아 주었다.
우선, 처음엔 역시 건배지.
사쿠야와 란이 익숙한 솜씨로 술이 따라진 잔을 나눠준다.
아, 고맙다 란─이라고 말했지만 무시당했으므로 사쿠야에게 받았다.
……응, 알고 있긴 했지만 말이지.
내가 란한테 미움 받고 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고.
이런 걸 해소하기 위한 연회이기도, 하니까!
속으로 눈물을 삼키며 전원이 술이 받은 것을 확인한다.
이렇게 멀리서 보니 전체적으로 자기들끼리 자연스레 선을 긋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홍마관은 홍마관의 멤버대로, 유카리는 유유코와 종자와 함께──서로가 전부터 알던 사이끼리 모여 있다.
레이무가 레밀리아 일행 옆에 있는 건 의외였다. 하지만, 마리사가 레이무와 거리를 벌리고 있는 것은 나쁜 의미로 의외였다.
이렇게 말하는 내 옆에도 지상이 낮선 유우기와 사토리가 모여 있다. 그녀들 말고는 누구도 다가오려 하지 않는다.
음……뭐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으니 당연하려나.
연회가 시작되면, 서로가 서로에 대해 다양하게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럼 빨리 연회를 시작하자!
오늘 밤은 술판이다!
나는 주최자로서 연회의 개시를 선언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 순간 유카리가 손을 들었다.
「──제안, 이 있습니다만」
나를 포함한 전원이, 유카리의 발언에 시선을 집중한다.
「연회는 건배의 축사로 시작하는 게 정평. 그 축사를, 코메이지 사토리가 해주었으면 합니다만」
유카리의 갑작스런 제안에 몇몇 참가자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설마했던 지명을 받은 사토리가 의아하단 표정을 지었다.
「제가, 말인가요?」
「예. 당신이 말이죠」
「……저는, 이 연회의 참가자들과 안면조차 트지 못했습니다. 그런 제가 건배 축사라니, 걸맞지 않은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만」
「그렇기 때문에, 에요. 이번 연회의 취지는 「선대무녀의 복귀 축하」
그 연회에 온 당신의 말을 듣고 싶을 뿐. 그게 반드시 서로 알아갈 수 있는 계기가 되겠죠」
유카리의 설명을 들은 사토리가 침묵한다.
입을 꾹 다문 채 가만히 유카리를 바라보고 있다.
아마, 능력을 사용하여 유카리의 마음을 읽어내려 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불가능하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다.
사토리의 힘으로는, 유카리의 경계 조작을 파훼할 수 없다.
이윽고 마음을 읽는 것을 포기한 사토리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주변을 둘러봤다.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들. 그 시선들에 담긴 마음을 하나하나 확인하고는, 결국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주제넘지만 제가 맡도록 하죠」
전원의 주목을 받으며, 홀로 발을 옮겨 공터로 걸어 나온다.
그 모습을 옆에 선 유우기가 재미있을 것 같다는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지상의 인요들에게 둘러싸인 사토리가, 어떤 말로 연회를 시작할지 흥미가 생긴 것이다.
나도 흥미가 있긴 하지만, 동시에 불쌍하다는 생각 또한 느꼈다.
정말이지 유카리도 참, 너무 터무니없는 부탁 아니야?
주위엔 모르는 얼굴들뿐인데 갑자기 축사를 맡기다니, 「망신이나 당하시지」라는 말이나 다름없잖아…….
아마, 사토리는 연설문 따윈 생각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여기선 우선, 내가 도와줘야겠지.
사토리! 내 마음을 받아줘─!
「──!」
내 마음의 소리를 들은 듯 사토리가 이쪽을 바라본다.
자, 내 마음을 읽어봐.
나한테 좋은 생각이 있어!
……라기 보단 모처럼이니, 「이걸」 해줬으면 좋겠는데요!
「에─」
내 생각을 읽은 듯 하다.
사토리는 노골적으로 싫다는 표정을 지으며 작은 신음을 흘렸다.
◆
──확실히 「백귀야행」이다.
인요가 뒤섞인 연회장을 바라보며, 사토리는 남몰래 전율하고 있었다.
남일 보듯 방관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자신은 지금 이곳에 있다.
지저는 혈기왕성한 위험인물이 수도 없이 가득 차 위험한 곳이라 생각해왔으나, 이렇게 보니 지상도 별 다를 바가 없었다.
인간, 요괴, 혹은 둘 다 아닌 자들──.
미리 해놓은 각오가 우스워질 정도의 괴물들이, 한 공간에 모여 있다.
사토리가 그나마 다행인 건, 그녀들이 정체 모를 존재들이 아니며, 어느 정도는 정보를 알고 있다는 것이었다.
선대에게 「원작 지식」을 배워 그녀들을 알지 못했다면, 공포와 불안감에 시달려 바로 도망갔을지도 모른다.
지금이라면, 저들을 대할 방법을 대충이나마 안다.
──뭐, 그 선대 덕분에 경계 당하고 있기는 하지만요.
그러니까 빚은 없는 셈 치죠, 라며 사토리는 감사하기를 그만뒀다.
수많은 생각이 자신에게 향해지는 것을 느낀다.
자신의 「제3의 눈」으로, 이렇게나 다종다양한 마음을 보는 것은 오랜만이다.
지상의 요괴 중에서 그나마 만난 빈도가 많은 유카리는 경계 조작 능력 탓에 마음을 읽을 수 없었지만, 그녀가 예외였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실감할 수 있었다.
딱히 듣고 싶지 않은데도, 마음의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저 녀석이?
──저 녀석이, 코메이지 사토리!?
──정말로, 저런 게 지저의 관리자라고?
──작네.
──약해 보여.
──옆에 있는 오니가 훨씬 강해보이는걸.
──아니, 이건 방심시키기 위해 연기하고 있는 걸지도 몰라.
──마음을 읽는 능력을 가졌다던데?
──그럼, 이 생각도 읽히고 있는 거야?
──싫어.
──재미있네.
거의 모두가 비슷한 생각을 하며 자신을 둘러싸고 있다.
경시하는 자, 경계하는 자, 혐오하는 자──그리고, 뜻밖에도 약간이나마 호의적인 마음도 섞여 있었다.
자신에 대해서 알지 못하고 흥미를 가졌거나 선대무녀의 덕망 덕분이긴 했지만, 솔직히 그런 마음이 고마웠다.
이번 연회에서 연을 맺어도 안전할만한 상대는 이 호의적인 생각의 주인 뿐일까요? 라고 사토리는 타산적인 생각을 마쳤다.
물론 우호관계까지 바라는 것은 아니다.
그녀들도 대화를 나눠보면 알 것이다. 자신이 어째서 미움 받는 요괴인지.
사토리는 아직까지도 연회에 참가한 이유를 「선대에게 부탁받았기 때문」이라 고집했다.
유우기나 선대와는 다르다.
연회를 즐기고, 새로운 만남을 기대할 생각은 없다.
적당히 식사나 대화를 나누고, 야쿠모 유카리나 야고코로 에이린의 추궁을 잘만 넘기면 그걸로 충분했다──.
「연회는 건배의 축사로 시작하는 게 정평. 그 축사를, 코메이지 사토리가 해주었으면 합니다만」
유카리가 그런 제안을 했을 때도 사토리는 「그럴 줄 알았다」라는 생각을 했을 뿐이다.
「……저는, 이 연회의 참가자들과 안면조차 트지 못했습니다. 그런 제가 건배 축사라니, 걸맞지 않은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이런 건 선대가 하는 게 무난하고, 최선이다.
그녀는 주최자이며, 무엇보다 이곳에 모인 모두에게 덕망을 쌓았다.
모두가 납득하며 연회의 분위기를 살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마음을 읽을 수 없는 유카리의 대답을, 사토리는 이미 어느 정도는 예상하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에요. 이번 연회의 취지는 「선대무녀의 복귀 축하」
그 연회에 온 당신의 말을 듣고 싶을 뿐. 그게 반드시 서로 알아갈 수 있는 계기가 되겠죠」
──즉, 시험하고 있다는 건가.
시시한 악의만으로 하는 짓은 아니겠으나, 유카리가 장난을 핑계로 자신을 관찰할 셈일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유카리의 제안을 들은 일동이 자신에게 흥미를 보이고 있었다.
선대의 인사를 기대하던 자들은 예상을 배신당해 약간 불쾌감을 느끼고 있긴 했지만, 대부분의 인요가 품은 생각은 「이 정체불명의 요괴가, 어떤 말로 선대를 축하할까?」라는 강한 흥미였다.
선대와 자신이 친구사이라는 것을 알아도, 그 사이에 의심을 가진 인물 또한 많다.
그러므로 생긴 흥미였다.
실로, 속이 거북하다.
하지만 이미 어떻게 넘겨볼 수도 없는 노릇.
그랬다간 쓸데없이 의심이나 불쾌감을 부추길 뿐, 자칫 잘못하면 적대심마저 생길지도 모른다.
「알겠습니다. 그럼 주제넘지만 제가 맡도록 하죠」
어쩔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리자, 사토리는 한숨을 내쉬었다.
유카리 멋대로 자신의 행동이 조종당하는 것만 같았다.
처음부터 이런 꼴이라니.
벌써부터 이렇게 농락당하면서, 정말로 그녀를 속일 수 있을까? 라며 사토리는 큰 불안감을 느꼈다.
우선, 느릿느릿 떨어지지 않는 발을 옮겨 앞으로 나선다.
당연하게도 이곳에 모인 모든 참가자의 이목이 집중된다.
자신을 향한 수많은 마음이 자신을 더더욱 초조하게 만든다.
빨리 끝내 버리자.
불필요한 말은 하지 않고, 평범한 축사를 말한 뒤 「건배」로 끝내면 된다.
많은 사람이 기대하는만큼 재미있는 일은 없을 것이다. 필시 받아들여질 리 없을 테고, 반대로 욕이나 먹지 않으면 다행이다. 그래도 크게 악평을 받을 리도 없다.
사토리는, 그렇게 무난한 판단을 내렸다.
──하지만 그 순간.
갑자기, 그 누구보다 커다란 마음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사토리! 내 마음을 받아줘─!」
귀에 익은, 외모에 어울리지 않는 소란스런 소리.
선대를 향해 눈을 돌린 사토리는, 그녀의 상상을 읽고선 무심코 「에─」라며 작게 신음을 흘렸다.
──하라는 건가?
──「그걸」, 하라는 건가!?
진절머리를 내며, 시선으로 되묻는다.
그 물음에 답하는 선대의 시선과 마음은, 커다란 기대로 가득 부풀어 있었다.
앞에 나선 뒤로 입을 꾹 다물고 있는 사토리의 모습에, 의심의 소리가 늘어간다.
빨리, 무슨 말이든 해야만 한다.
이 장소를 견디는 것도 힘들거니와, 별다른 대책도 생각해내지 못한 사토리는, 반쯤 자포자기 하며 선대의 요구를 들어주기로 했다.
어떻게 되든 몰라! 그런 무책임한 생각도, 꽤 있었다.
「선대, 앞으로 나와 주세요」
사토리의 갑작스런 발언에, 참가자들이 당황한다.
단 한 명, 선대만이 당연하다는 듯 그 지시에 따랐다.
미리 짜놓은 것처럼 사토리의 옆에 서서, 연회의 참가자 모두와 얼굴을 마주한다.
그런 선대를 내세우듯이, 사토리가 한 걸음 물러서더니 크게 숨을 들이마시고는, 외쳤다.
「──부! 활!」
몸속 깊은 곳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목소리가, 마당에 낭랑하게 울려 퍼진다.
사토리의 첫인상과는 전혀 다른 강직한 외침에, 거의 모든 인물이 깜짝 놀랐다.
할 말을 잃은 참가자들의 시선을 받으며, 사토리는 말을 이었다.
「선대무녀 부활!!」
피를 토할 것만 같은──아니, 정말로 뭔가를 토하는 것만 같은 필사적인 외침.
그러나 의표를 찔린 참가자들은 기세 뒤로 감추어진 비정상적일 정도의 박력을 느꼈다.
「선대무녀 부활!!」
이미 건배의 인사도 뭣도 아니지만, 사토리는 그저 전신전령을 담아 반복할 뿐이었다.
오로지 그 대사의 출처를 알며, 자신이 그 대사를 듣고 있다는 상황에 속으로 만족하여 기뻐하는 선대만이 미소를 지었다.
그런 모습이, 사토리의 갑작스런 기행의 인상을 바꾸었다.
「선대무녀 부활!!」
사토리는 이미 무아의 경지, 다른 말로 하자면 정신줄을 놓고 있었다.
자기만 신나있는 선대에게의 짜증도 함께 담아, 오로지 소리를 내지른다.
그리고 세 번 째 외침에 와서야, 그때까지 할 말을 잃고 있던 참가자들이 반응하기 시작했다.
최초로, 유우기가 미소를 지었다.
사토리의 예상하지 못했던 행동을, 오히려 칭찬하는 것만 같은 밝은 미소였다.
그대로 호탕하게 웃어버릴 것 같은 유쾌함을 느끼며, 그런 마음을 다잡아 사토리를 따라 외쳤다.
『선대무녀 부활!!』
사토리의 목소리에, 유우기의 목소리가 겹친다. 아니, 음량만 따진다면 유우기의 목소리가 훨씬 더 컸다.
오니의 외침은, 그 특유의 힘을 담아 다른 참가자들의 몸과 마음을 울렸다.
유우기의 행동에, 바로 반응하기 시작한 것은 마리사였다. 그 뒤를 따라 메이링, 레밀리아──.
당황하고 있던 인요들의 얼굴에, 견딜 수 없다는 듯 미소가 지어져간다.
『선대무녀 부활!!』
또 다시, 수많은 목소리가 겹쳤다.
이미 신사의 마당을 넘어 환상향 전체로 울려 퍼질 것만 같은 음량.
당연히 누구도 가장 먼저 외치기 시작한 사토리의 의도를 알지 못했다.
그러나 의도를 모름에도, 뭐라 표현 못할 묘한 일체감을 느꼈다.
그리고 그런 일체감이, 영문 모를 즐거움과 흥분을 부추겼다.
『선대무녀 부활!!』
이미, 그 자리에 모인 대부분의 참가자가 웃으며 사토리를 따라 외치고 있었다.
타이밍을 살피던 사토리가, 이번엔 아무 말 없이 손에 쥔 잔을 높게 들어올렸다.
이미 사토리 자신조차 예상하지 못한 일체감에 싸여있던 연회의 참가자들은, 아무 의심 없이 그녀의 뒤를 따라 서로의 술잔을 높게 들어올렸다.
「……건배」
무리하여 쉬어버린 목소리로, 소근소근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마무리가 어설펐다.
그러나, 아무도 그런 그녀에게 불만을 품지 않았다.
『건배!!』
인요가 하나 되어 크게 외치며, 연회의 시작을 성대하게 알렸다.
◆
「──예상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 「밖」이라는 표정인걸」
「정말이지, 그 말대로야」
옆에 앉은 에이린의 말에 유카리는 쓴웃음을 지으며 맞장구를 쳤다.
연회 개시 전의 기묘한 긴장감을 없애듯이, 연회는 부드럽게, 그리고 떠들썩하게 개최되었다.
연회에 모인 인요들의 보이지 않는 벽에 금을 낸 것은, 아니 부서버린 것은 틀림없이 코메이지 사토리가 했던 축사 덕분이었다.
그 한 순간의 일체감이, 수많은 인요들의 마음을 연 것이다.
유카리 자신마저 무심코 그 기세를 탈 뻔 했으니, 말 다했다.
실제로 유유코는 이미 흥을 타고 연회를 즐기고 있었다.
순수하게 연회를 즐기는 모습을 바라보며, 유카리는 기막히다는 미소와 함께 이상한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저 사토리가 그런 걸 할 수 있을 줄은 몰랐어」
유카리는, 사토리를 시험했다.
그건 틀림없다.
약간 불쾌한 말투를 쓰긴 했지만, 그 상황에서 사토리가 어떤 행동을 할지를 관찰하고, 그로부터 그녀의 실체를 알아낼 생각이었던 것이다.
──참가자의 마음을 읽고, 언변을 놀려 교묘히 심중을 장악해 믿음이나 존경심을 얻을까.
──아니면, 그저 눈에 띄지 않도록 무난히 끝마칠 것인가.
그러나, 사토리의 행동은 유카리가 했던 어느 예상들과도 달랐다.
그녀는 이치가 아니라, 의미 없는 단순한 기백으로 참가자의 마음을 장악한 것이다.
화술이나 책략과는 정반대에 위치한 수단이었다.
여태까지 품었던 코메이지 사토리의 인상이 단번에 뒤집어질 정도로 무리한 언변이었다.
어느 쪽이냐 하면 저 유우기라는 오니나 할 법한 방식.
그것이 결과적으로 사토리를 경계하던 인요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다.
그렇기에 「예상 밖」이었다.
코메이지 사토리가, 지략에 뛰어난 요괴일 것이란 예상은 했었다.
그러나 그런 예상의 둘레를 그녀는 전혀 다른 방법으로 빠져 나간 것이다.
「무섭네. 그녀한테서 어떤 말이 튀어 나올지 예상이 가지 않아」
화려한 건배를 올린 후, 살금살금 숨어들 듯이 연회장 구석탱이에서 술을 홀짝거리는 사토리를 에이린은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작은 요괴다. 유일하게 마음을 읽는 능력만이 그나마 경계할만한 요괴──그런 인상을 주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그런 작은 요괴에게서 인외들의 연회를 한데 묶는 말과 힘이 튀어나온 것이다.
정말로, 예상을 할 수 없다.
그래서, 무섭다.
「그러게, 무섭네」
에이린의 말에 동의하며, 유카리도 다시금 고개를 끄덕였다.
사토리에게서 느껴지는 끝을 알 수 없는 불가사의함이, 더더욱 강해져가고 있었다.
그런 현자들의 울적함에도 아랑곳 없이, 연회는 흥을 타고 이어진다.
◆
오니가 앉아있다.
그것도 무려 3마리.
장소는 텐구의 마을, 천마의 저택이다.
오니란, 일찍이 요괴의 산을 지배했으나 지상에서 떠난 종족일 터.
지저로 들어가, 수많은 인간과 요괴의 기억에서 사라질 정도로 오랜 세월이 지났다.
그렇게 잊혀졌음이 분명한 오니가, 왜 지금에 와서 이 요괴의 산에 돌아와, 일찍이 하인이던 텐구의 앞에 나타났는가.
──알 수 없다.
오니를 앞에 두고, 아야는 모든 것에 의문을 품었다.
──그전에 왜 내가 여기 있는 건지도 알 수 없다.
오니와 마주보며 아야를 비롯한 여럿의 텐구가 그 자리에 앉아있었다.
아야는 그런 텐구들 중에서도 조금이라도 오니의 시야에 들어가지 않도록, 구석에 진을 치고 있었지만.
지금 이 상황에 대한 불합리함을 한탄하며, 창백한 안면으로 다른 동료들의 눈치를 본다.
텐구를 대표하여 정중앙에 앉아 있는 텐구들의 대장인 천마.
한때의 대장들 앞에서도 위풍당당한 그 모습이 실로 믿음직하다.
그 옆에는 대텐구.
평소에는 가능하면 얽히고 싶지 않은, 까다로운 분이지만, 지금은 의지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대텐구의 옆에는, 왠지는 모르겠으나 일개 하급 텐구 이누바리시 모미지가 있었다.
이 자리에 그녀가 있는 이유가 가장 궁금하긴 했지만, 일단 이런 상황에서도 평소와 다름없는 무뚝뚝한 표정을 지을 수 있는 담력을 조금이지만 존경했다.
그리고 대텐구의 반대편, 천마의 옆에 있는 것이 이 자리에서 가장 큰 위험요소인 히메카이도 하타테였다.
그녀가 이곳에 있는 이유는 알만하다.
자기보다도 격이 높은 상대라도 겁내지 않고, 힘 또한 텐구 중에서 상위에 위치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솔직히 너무 겁 없지 않아? 라는 생각도 들었다.
하타테는 벌써부터 오니들을 향한 적대감이 엿보이고 있었다.
──돌아가 줘.
아야는 절실하게 바랐다.
오니와 마주하는 것──그것뿐이라면 처음이 아니다.
지저에서, 그 호시구마 유우기와 이야기를 나눈데다가 대작까지 했던 자신이다.
이제 두 번 다시 그런 일이 없었으면 하는 마음도 있긴 하지만, 그와 함께 익숙해졌다는 생각도 했었고, 다시 같은 상황이 벌어져도 어떻게든 도망칠 수 있을 것이란 자신감도 생겼다.
그러니 자신이 이곳에 불린 이유는 안다.
그러나 상황이 전혀 다르다.
──부탁이니까, 집으로 돌아가라고!
텐구의 마을에 아무 예고도 없이 방문한 오니는 세 마리.
물론, 그 누구도 아야와 아는 사이는 아니었다.
그리고 유우기처럼 온화하고 우호적이지도 않았다.
아야의, 아니면 고참 텐구들의 기억에 남은 대로, 텐구의 마을을 찾아온 세 마리의 오니는 강렬하며 오만했다.
원래는 같은 텐구여도 상당히 지위가 높은 자들만이 들어갈 수 있는 천마의 저택. 그 알현의 방에 눌러 앉은 것도 모자라 가장 좋은 술을 내오라더니, 그걸 아깝지도 않다는 듯 병나발을 불고 있었다.
난폭하면서도, 전혀 텐구에게 아랑곳하지 않는 불손함.
실제로도 오니들에게는 이 넓은 공간을 집어삼킬 것만 같은 존재감이 있었다.
한 마리를 중심으로, 양옆으로 앉은 두 마리의 오니는 단순히 체격 또한 컸다.
상반신의 근육이 풍선처럼 부푼 외눈박이 오니와 가죽이 바위 같아 보이는 눈이 없는 오니.
그 모두가 거인이라고 부르기 합당한 천마와 필적할 정도의 크기였다.
그러나 아야가 느끼기에, 그 두 마리보다 중심에 있는 한 마리──체격 자체는 소녀나 다름없는 작은 오니가, 가장 거대하게 느껴졌다.
그도 그렇겠지.
그 모습은 텐구들에게도 널리 알려지고, 이름은 천하를 울렸다는 전설이 아직도 퇴색하지 않고 남아 있는 오니였으니까.
「──이부키 스이카 공」
천마가, 그 전설의 오니의 이름을 입에 담았다.
호시구마 유우기와 대등한 「오니의 사천왕」 중의 하나.
「지금, 뭐라고 말씀하셨는지요?」
「뭐냐, 일부러 되묻는 거야? 오니는 말 돌리는 걸 싫어하는데. 짧고, 간단하게 말했다고 생각한다만」
스이카는, 그 외모에 맞는 소녀처럼 가녀린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나, 그 아무렇지도 않다는 말투에서부터, 뭐라 표현할 수 없는 두려움이 느껴졌다.
「그럼, 한 번 더 말해주마. 두 번은 말하지 않을 테니 확실하게 대답하라고」
스이카는 삐진 듯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밝게 웃으며 말했다.
「마을을 덮친다. 너희들 전부 와서 도와라」
아까 했던 말과 한 토씨도 틀리지 않고, 그런 말을 입에 담은 것이다.
옆에서 듣고 있던 아야는 이미 구역질이 올라오기 시작하고 있었다.
자신을 제외한 텐구가 전혀 동요하고 있지 않다는 것만이 유일한 구원이었다.
자신은 이미 이 상황에서 아무 말도 할 수 없다. 남에게 떠맡길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게다가 평소엔 입장이 반대여야 할 하타테가, 지금의 스이카의 그 한 마디에 표정이 더욱 험악해져 있었다.
아야는 「부탁이니 제발 말썽 일으키지 말아줘」라며 속으로 기도했다.
「……그건, 환상향의 규칙을 거스르는 행위입니다만」
「그게 어쨌는데」
천마를 대신하여 나선 대텐구의 말에, 외눈박이 오니는 다 아는 걸 말하지 말라는 듯 덤덤하게 대답했다.
「마을을 덮치면, 그곳을 지키는 인간이나 요괴는 물론, 환상향의 관리자와도 적대하게 될 텐데요?」
「그래, 맞아. 전쟁이다」
「안심해라, 이쪽 머릿수도 꿇리진 않거든. 여기 있는 우리들 말고도 다른 오니들도 있어」
「정말로, 환상향의 모든 인요를 적으로 돌릴 셈입니까?」
「우리들을 따르는 요괴도 꽤 있을 거다. 아니, 설령 없어도 닥치는 대로 먹어치울 뿐이지」
대텐구의 물음에, 외눈박이 오니와 눈이 없는 오니가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그 말 어디에서도 거짓이나 허세를 찾을 수 없었다.
모두, 진심이다.
그리고 오니에게는 그것을 가능케 할 힘이 있다. 머릿수까지 갖춰진다면, 더욱이 그렇다.
두 오니의 대답을 들은 스이카는 그저 유쾌한 듯 능글능글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닥치는대로, 먹어치운다는 건 말이지──」
스이카는 약간이지만 몸일 내세웠다.
그 얼마 안 되는 움직임에서, 집채보다도 거대한 바위가 굉음과 함께 움직인 것만 같은 착각이 일어났다.
「즉, 이 이야기를 거절하면 너희 텐구도 포함된다는 말이다만?」
스이카가 진심이 담긴 위협을 하기 시작했다.
오니의 협박이다.
숨을 쉬는 것조차 불가능한 찌릿찌릿한 압박감이 피부 위로 느껴진다
만약, 이 교섭──이라기보다 일방적인 요구를 듣고 있던 것이 아야였다면, 이 시점에서 모두 받아들였을 것이다.
파멸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뻔히 알아도, 오니와 함께 마을을 덮쳤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장소에서 그런 협박에 부들부들 떨고 있는 텐구는, 아야 밖에 없었다.
그 모미지마저 반항적인 눈빛으로 세 마리의 오니를 바라보고 있다.
「대답을, 들어볼까?」
「……야쿠모 유카리와 하쿠레이의 무녀도 나설지 모릅니다만?」
대텐구가, 마지막 확인을 하듯이 물었다.
이부키 스이카와 야쿠모 유카리가 남몰래 우호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건, 극히 일부의 요괴만이 알고 있다.
과연, 이 질문에는 스이카도 생각하는 바가 있다는 듯 안색이 바뀌었다.
다만, 유열에 찬 미소로.
「하하, 유카리라! 좋지, 그 녀석은 나와 대등하다고 인정한 요괴다. 그 녀석과 진짜 싸움을 해 보는 것도 재미있겠는걸」
망설임은 없는 듯 같다.
이미 이 지경까지 이르렀다.
최악의 결단을 내릴 때인가──.
「하지만」
아야는 숨을 삼키며, 스이카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나는 그것보다, 하쿠레이의 무녀를 쳐 죽이고, 먹어버리고 싶거든」
「으챠!」
처참한 미소를 지으며 그렇게 말한 스이카의 얼굴에 하타테가 발을 휘둘렀다.
마치 선풍과도 같은 움직임.
앉아 있던 스이카로선 버틸 수단이 없었다.
얼굴이 단번에 꺾이며, 그 뒤를 따라가듯이 몸도 함께 날아간다.
다다미를 깎으며 데굴데굴 구른 스이카는 그대로 저편에 있는 방의 벽에 격돌했다.
이곳에 모인 전원이 생각지도 못한 사건이었다.
한쪽 발을 내민 채 선 하타테의 모습을, 아야는 눈알이 튀어 나올 기세로 경악하며 바라봤다.
「──히메카이도 하타테!」
말문이 막힌 다른 오니들보다 빠르게, 천마가 소리를 지른다.
「대역 수고! 이게 텐구의 대답이야!!」
천마가 처음으로 표정을 바꾸었다.
오니를 향한, 흉포한 웃음이었다.
「네놈!!」
「후회하게 만들어주마!」
머리 끝까지 화가 차오른 오니 두 마리가 힘차게 일어선다.
두려울 정도의 박력이 들이친다.
하지만, 이 장소에서 기가 죽어 움직일 수 없는 건 적과 아군을 포함해 아야 뿐이었다.
「모미지, 베라!」
「예!」
대텐구의 외침을 들은 모미지가 칼을 뽑아든다.
앉아 있으면서도, 적을 베기 위한 자세를 취하고 있던 것이다.
하타테처럼 눈에 보이지도 않는 속도는 아니었으니, 충분히 날카로운 파고들기로 눈이 없는 오니에게 접근하여 검을 내리친다.
하지만, 쇠가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칼날은 가죽조차 베지 못하고 그 자리에 멈췄다.
바위처럼 단단해보이는 피부였으나, 실제 강도는 그 이상. 강철과도 같은 단단함이었다.
「고작 백랑텐구 따위의 검술로 덤비다니!」
오니가 그런 그녀를 비웃으며 움직임이 멈춘 모미지를 그대로 짓뭉개려고 한 그 순간.
그 오니가 치켜든 팔은, 모미지의 정수리에 닿기 직전에 잘려나가 있었다.
「뭣이!?」
강철의 팔을 절단한 검섬의 정체는, 소리도 없이 다가온 대텐구의 검이었다.
「어설픈 놈! 베라고 했으면 확실하게 베라!!」
기백이 가득 찬 기합과 함께, 대텐구가 휘두른 칼이 오니의 목을 베어 갈랐다.
아무리 오니라도 목을 잘리고 살 수는 없다.
한순간에 동료가 죽고 홀로 남겨진 외눈박이 오니가 분노했다.
하지만 분노하면서도, 그와 함께 웃고 있었다.
「하하하! 바뀌었나, 텐구! 아니, 바뀐 건 시대인가!?」
「그 말대로다」
그 자리에 앉은 채 움직이지 않던 천마가, 한 손을 남은 오니를 향해 치켜들었다.
다음 순간, 오니만을 감싼 국지적인 회오리가 발생하더니, 그대로 곧게 뻗쳐올라 천장과 바닥을 거칠게 유린한다.
그 회오리의 중심에 있던 오니의 육체가, 갈가리 찢겨 산산조각 난다.
아야는 멍하니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오니 두 마리를, 텐구가 죽여 버린 것이다.
새삼스럽지만, 아야는 기묘한 납득이 가기 시작했다.
평범한 텐구라면, 오니를 쓰러트리기는커녕 적대하는 상황조차 견디지 못하고 자기 몸 챙기기에 급급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장소에 있던 텐구들은 모두 예외적인 사상이나 신념을 가진 자들 뿐이었다.
──이곳에 이런 멤버를 모은 건 처음부터 그런 목적이었나?
뭐가 「그런」인지, 아야는 깊게 생각하는 것을 포기했다.
「모미지, 이 미숙한 놈. 힘도 기술도 결단코 모자르구나」
「죄송합니다, 대텐구 님」
「앞으로 있을 수련은 더 엄할 거다. 정진해라」
「예」
「……하지만, 망설임 없이 파고든 자세만은 훌륭하더군」
「감사합니다」
「착각하지 마라. 칭찬 받을만한 건 그것뿐이었으니」
「……재수 없는 새침데기 할방구 같으니」
「할 말이라도 있나? 히메카이도 하타테」
「아뇨, 없는데요」
「애당초 네 녀석, 천마님의 명령도 듣지 않고──」
동료와 상사의 대화를 들으며, 아야는 그 누구도 이 사태의 심각함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아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지금 여기서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알고는 있는 건가?
텐구가 오니를 죽였다.
게다가, 하타테에 이르러선 그 이부키 스이카를 말도 없이 걷어찬 것이다.
이걸로 사태가 끝났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하지만 오니의 말을 들어보니, 아직도 동료가 있는 듯 했다. 게다가 그 오니들 전부가 환상향을 덮칠 셈이다.
시급히 대책을 세워야 한다.
아니 「대책」같은 적극적인 행동보다, 어떻게든 얽히지 않을 최선의 판단이 필요했다.
아야는 소란스러운 셋을 무시하고, 천마에게 지시를 받기 위해 다가간 그 순간──.
「이거──기쁜걸!!」
폭발하는 것만 같은 포효와 함께, 스이카가 천마를 향해 덤벼들었다.
하타테가 입힌 데미지는 확실히 남아 있었으나, 코피를 흘리면서도 스이카는 웃으며 부활한 것이다.
작은 폭풍이 텐구들의 사이를 지나쳐 천마를 향해 일직선으로 다가온다.
굳게 쥐어진 주먹이 어떤 방해도 없이 천마의 몸에 박히기 직전, 눈에 보이지 않는 벽이, 그 주먹을 막아내고 있었다.
「뭣이, 바람의 벽인가!」
스이카는 바로 그 벽의 정체를 간파했다.
빠듯하게 그 사이로 끼어든 것은, 우연히 근처에 있던 아야였다.
그녀의 자랑거리인 주먹을 완벽하게 막아낸 아야의 모습에, 스이카는 송곳니를 드러내며 웃었다.
「훌륭한걸! 그럼 다음 차례는 네놈이냐!?」
「히익!」
스이카의 표적이, 아야로 바뀐다.
그러나 빼내려고 했던 주먹이 움직이지 않는다.
다시 한 번 시선을 돌린 스이카는, 바람의 벽에 꽂힌 자신의 주먹이, 이번엔 바람의 족쇄에 묶여 완전히 고정되어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오오! 굉장해, 이건 뭐지!? 전혀 움직이질 않아!」
「아와와와와와, 움직이지 말아주세요!」
아야는 필사적으로 능력을 발휘했다.
바람을 조종하여 종횡무진 휘몰아쳐, 스이카의 전신을 옭아맸다.
당황하는 모습과는 달리, 상대에게 저항할 틈조차 주지 않은 재빠른 솜씨였다.
「──으아! 안 돼~, 움직일 수 없어. 이건 졌는걸. 내 패배야」
이윽고 저항을 포기한 스이카는 이젠 됐다는 듯 웃었다.
뜻밖에도 포획에 성공한 스이카를, 천마 일행이 둘러싼다.
여담으로, 최대의 공로자인 아야는 스이카가 얼굴을 기억할 수 없도록 모미지의 뒤에 숨는다는 쓸데없는 행동을 하고 있었다.
「이야, 그래도 정말로 기쁜걸. 천마여, 너 좋은 부하를 가지게 됐구나」
「송구합니다」
「어떻게 할까요? 이 녀석도, 죽일까요?」
「히메카이도! 이분은 오니의 사천왕인 분이다! 불경한 말을 입에 담지 마라!」
「하지만, 지금은 그냥 적이잖아요?」
「그래, 그 말이 맞아! 좋아, 절로 기분이 좋아질 정도로 확실한 여자인걸. 히메카이도라는 이름이냐?」
「하타테라고 합니다」
「그런가, 하타테란 말이지」
죄인처럼 속박됐음에도, 스이카는 즐겁게 수다를 떨고 있었다.
여유와도 같은 무언가가 느껴졌다.
하지만, 스이카는 이미 자신이 패배했다는 것을 인정했다.
그것은 여유가 아니라, 오니라는 강대한 종족이 가진 관록과도 같은 것이었다.
「이부키 스이카 공, 질문에 대답해 주시지요」
「그래, 좋다. 진건 나니까 뭐든지 대답해주마」
천마의 질문에 스이카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이곳에 온 자들 말고도 동료가 있다, 그렇게 말씀하셨지요?」
「그래, 있어. 이미 지상에 나와있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여기저기 있어」
「……여기저기란?」
「여기저기라니──」
스이카는 생긋 웃으며,
「그냥 여기저기야. 환상향 안, 가고 싶은 곳에, 가고 싶은 녀석들이 같이 가서 흩어졌지」
그런 무서운 말을 꺼냈다.
처음으로, 텐구들 사이에서 전율이 흐른다.
「수는?」
「백 정도려나」
「목적은?」
「글쎄, 하고 싶은 건 서로 다르니까. 인간을 먹고 싶다거나, 뭔가를 부수고 싶다거나, 강한 녀석과 싸워 보고 싶다거나……다양해」
묻는 쪽이 말문을 잃을 정도로, 노골적인 웃음을 지으며 대답한다.
뭐라 표현할 수 없는 박력이 담긴 진실함이 있었다.
그런 스이카의 변화를, 아야가 재빨리 눈치챘다.
바람의 족쇄에 묶인 스이카의 몸에서, 점점 힘이 빠져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윽! 도, 도망갑니다!」
「뭣이!?」
아야가 외쳤을 때에는, 이미 늦고 말았다.
스이카의 몸이 눈으로 보일만큼 엷어지더니, 연기처럼 흩어져 사라졌다.
「물론, 나도 마찬가지야! 따로 하고 싶은 게 있거든──!」
마지막으로 그런 말만을 남기고, 스이카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크게 어질러진 방 안에 텐구만이 남겨졌다.
자신이 놓쳤다고 생각한 아야가, 황송해하며 천마의 눈치를 살폈다.
「죄, 죄송합니다……」
「괜찮다. 이부키 스이카 공은 「밀도를 조종하는 정도의 능력」을 가진 오니.
안개로 변해 도망치면 간단히 잡을 수는 없지. 아마, 이곳에 온 것도 분신일 게다. 힘에 위화감이 느껴지더군」
「과연 오니의 사천왕, 인가요」
자신이 상대했던 것이 약한 쪽이었다는 사실에, 하타테는 신음을 흘렸다.
다만, 표정은 불만으로 가득 차있었다.
뭐가 불만인지, 아야는 알고 싶지 않았다.
「──그럼, 천마님. 이 사태, 텐구는 어떻게 움직일까요?」
대텐구가 명령을 기다렸다.
스이카의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이미 환상향 전역에 오니가 흩어져있다.
뭘 할 셈인지, 서로마다 다르다.
그저 공통되는 것이 있다면, 폭력에 의한 욕망의 해소라는 최악의 수단 뿐.
오늘 밤, 인간, 요괴를 가리지 않고 삼킬 백귀야행이 환상향을 유린하려는 것이다.
「알지 않나. 텐구의 의사는 이미 오니에게 전해졌다」
두 마리의 오니를 죽이고, 이부키 스이카를 걷어찬 사실을 가리키며, 천마는 말했다.
「샤메이마루, 히메카이도, 이누바시리 셋은 하쿠레이 신사까지 가 야쿠모 유카리와 하쿠레이의 무녀에게 사정을 전해라. 그곳엔 선대무녀도 있을 것이다. 협력을 구해봐라」
「예!」
「아……예에」
천마의 명령에 하타테와 모미지가 낭랑한 목소리로 답하고, 아야는 노골적으로 싫다는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대텐구는 당장 소집령을 내려라」
「고참 텐구들은, 심하게 꺼릴 텐데요」
「그렇다면 목줄이라도 매서 끌어와라. 이미 방관할 수만은 없게 됐으니」
「그럼」
「오냐」
천마는 끄덕였다.
「이제부터 환상향에서, 오니 퇴치를 시작한다──!」
역자후기
이게 얼마만의 선대록이냐. 하하하하하. 어제 5연참으로 번투력을 다 쓴줄 알았더니 아니었어.